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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 포 올에서 협력을 유도하기 – 아크 레이더스

    멀티플레이어 게임이라는 틀 안에서도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은 정말이지 천차만별의 형태를 보인다. 게임이 추구하는 바에 따라 서로 적대적인가, 우호적인가, 규모는 얼마나 되는가, 실시간인가 비동기인가 같은 각종 요소에 따라 어떤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가의 큰 틀이 정해지곤 한다. < Back 프리 포 올에서 협력을 유도하기 – 아크 레이더스 28 GG Vol. 26. 2. 10. 멀티플레이어 게임이라는 틀 안에서도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은 정말이지 천차만별의 형태를 보인다. 게임이 추구하는 바에 따라 서로 적대적인가, 우호적인가, 규모는 얼마나 되는가, 실시간인가 비동기인가 같은 각종 요소에 따라 어떤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가의 큰 틀이 정해지곤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플레이어라는 변수는 항상 본래의 의도, 예측보다 거대하고 강력해서, 게임의 흐름과 문화 자체를 미지의 세계로 이끌고 가버린다. 그 정도에 따라, 어떤 게임은 그렇게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서비스를 아예 틀어버리기도 하고, 어떤 게임은 서비스를 종료하게 되어버리는 무서운 일도 있었다. 그리고 지난해, 이러한 멀티플레이어 게임에서의 플레이 유도 측면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례가 있었다. 바로 ‘아크 레이더스’ 다. ‘아크 레이더스’ 는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 에서 시작된 익스트랙션 슈터의 유행을 따르는 게임이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분명히 독자적이고 다른 형태의 게임 플레이를 향유했다. ‘아크 레이더스’ 가 수많은 SNS 피드와 릴스, 숏츠를 장악한 원동력은 온갖 우스꽝스러운 상황과 긴박한 프리 포 올(Free for all)의 전장에서 맺어지는 갑작스러운 유대와 배신에 있었다. 이들은 대체 무엇 때문에 모두가 적이 되는 전장에서 낭만의 협력을 추구하게 된걸까? 물론, 이는 기본적으로 게임 제작자들의 의도와 그에 맞춘 설계가 뒷받침된 덕분이긴 하지만, 단순히 한두가지 변화로만 만들어진 건 아니었다. 각 게임의 문화는 플레이어와 제작자의 WWE 게임 플레이를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플레이어의 반응을 유도하는 능력이다. 이에 대해서 여러 명작을 만들어낸 개발자들이 수도 없이 강연을 진행하거나 코멘트를 남겼을 정도다. ‘포탈 2’ 코멘터리 모드에서 수많은 테스트를 거치며 플레이어의 방향성을 정하기 위해 게임을 수정해온 경험을 들을 수 있고,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관련 강연에서도 개발자들은 오픈월드 게임이지만 철저히 플레이어들의 흐름, 방향을 유도하고 정하는 식으로 오픈월드를 설계했음을 밝히기도 했다. 때문에 잘 짜여진 게임 플레이는 기본적으로 게임 제작자의 탁월한 의도와 유도방식에 플레이어가 나름의 방식으로 호응하여, 큰 틀에서는 정해진 흐름을 따라가면서도 세부적으로 제각각 플레이어들의 개성이 드러나는 독자적 플레이가 만들어질 때 나온다. 너무 기본적인 플레이 노선을 벗어나게 되거나, 너무 틀에 박힌 플레이만 가능하다면 게임 플레이는 금새 지루해지고 재미를 느끼기 어렵게 된다. 그래서 대체적으로 이러한 플레이 유도를 철저히 잘 계산하여 디자인할 수 없다면, 좀더 포괄적인 방향으로 한계선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는게 기본이다. 하지만 긴 호흡의 라이브 서비스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플레이어들의 행동을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방식은 꾸준히 시도되어 왔다. PVP 게임은 아니지만, ‘헬다이버스 2’ 가 좋은 예이다. ‘헬다이버스 2’ 는 전체 지도 하에서 개발자들이 그때그때 플레이어들의 참여도와 성공률을 파악하며 다음 진행 루트를 제시하고, 그 안에서 플레이어들이 커뮤니티를 통해 단결하면서 게임 플레이 흐름을 정하고, 또다시 그에 따라 실제로 게임 내 플레이와 환경이 변화하는 게임플레이를 보여주었다. 이는 기존의 라이브 서비스 게임들보다 한발 더 나아간 셈이었다. 기존의 라이스 서비스 게임들은 이미 사전에 설계된 플레이 과정을 제시하고, 이를 플레이어들이 개별 진척도로 이루어내는 일종의 비동기식에 가까운 방법을 추구했다. 하지만 게임들이 점차 커뮤니티 밀착이 강해지고, ‘헬다이버스 2’ 라는 특유의 게임 테이스트와 결합하여 전체 플레이어가 하나의 캠페인에 참가하는 온라인 공동 캠페인의 방식을 도입함으로서 전체 플레이어가 훨씬 ‘멀티플레이어 게임’ 에 걸맞는 플레이를 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헬다이버스 2’ 에서 함께 플레이하는 건, 비단 나와 함께 전장에 투입된 3명의 플레이어들 뿐만 아니라 함께 커뮤니티를 구성해나가는 모든 이들이었던 셈이다. 이런 예시처럼, 멀티플레이라는 개념 역시 꾸준히 발전해왔다. 그리고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을 키워드로 삼고 있는 익스트랙션 슈터의 문화를 바꾼 ‘아크 레이더스’ 의 방법론은 사실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비롯됐다. ‘아크 레이더스’ 는 분명 PVP 라는 대전제가 붙어있는 게임이지만, PVP 게임이라면 왜 이런 기능이 있는지 의문이 들만한 디테일이 많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부분이 바로 이모트휠 최상단에 위치한 “쏘지마!(Don’t Shoot!)” 으로, 싸우라고 만든 게임에서 쏘지 말라는 이모트가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셈이다. 그리고 정확히 그 반대에는 “같이 팀할래?” 가 있고, 다른 쪽에는 “고마워!”, “맞아.”, “아니오.’ 가 위치해 있다. 즉, 이 게임의 이모트휠은 굉장히 실용적이고 목적성 강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존재한다. 여기에 거리에 따라 들리도록 설정되어 있는 음성채팅이 적극 권장되는 게임이기에, 보통 가장 빠르고 편리한 대화수단인 총탄만큼이나 사람 목소리를 많이 듣게 된다. 이미 이보다 이모트가 훨씬 부실했던 게임인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 에서도 총소리만으로도 한국인끼리 우호적인 싸인을 보내는 문화가 있었음을 감안할 때(흔히 말하는 짝짝 짝짝짝 대한민국! 패턴) 이 이모트는 굉장한 발전이다. 거기다 부활 킷을 들면 적대 플레이어라도 살려낼 수 있고, 연주 가능한 악기가 존재하며, 여러 부착물, 지뢰 등의 작동 방식도 피아 식별 규칙이 일반적인 게임과 조금 다른 부분들도 많다. 즉, 커뮤니케이션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또 디테일을 통해 예상 못한 변수를 만들어낼 수 있는(=기본 목적과 다른 용도로 쓰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이러한 디테일들은 결국 플레이어들이 협동을 하고자 할 때 얼마든지 그 시도와 신뢰 형성이 가능하도록 돕고 있다. 그리고 이런 수많은 여지가, 마침내 이루어진 협력을 각별하게 한다. 기간제 이벤트로 벌어지는 벙커 이벤트는 한두명이 아닌 세션 전체의 인원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 당연히 그만큼 성공하는 일보다 실패하는 일이 많고, 때로는 뒤따르는 배신으로 깊은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쉽지 않은 과정이 있기에 마침내 이루어낸 협력이 더욱 각별하게 여겨지고는 한다. 반대로, 배신의 과실도 그만큼 더욱 달콤하게 다가온다. 낯선 이를 만나 무방비 상태에서 함께 파밍을 했다면 대강 그가 어떤 아이템을 들고 있을지 알 수 있을 터. 또 때로는 가학적인 행위가 재미를 주기도 하는 PVP 게임인 만큼 상대방의 절망을 최고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최후의 배신이란 종종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즉, 이렇게 협력이 가능하게 만드는 시스템은 협력만큼이나 배신과 폭력도 더 달콤하게 만드는 셈이다. 또한 이러한 게임 시스템, 환경을 문화현상으로 비화하게 한, 게임에서 벌어진 일을 게임 밖 커뮤니티로 꺼내 공유할 수 있는 수단 자체의 발전도 특기해볼 만 하다. 엔비디아의 섀도우 플레이, OBS 같은 툴에서 제공하는 기능들은 이미 지나간 플레이도 저장하여 편집, 가공하기 쉽도록 되어 있고, 유튜브 등의 플랫폼 역시 이러한 쉬운 공유를 돕는다. 그렇게 소수의 플레이어가 직접 겪은 상황들이 넓게 퍼져나가 어떤 교훈이 되고, 예시가 되어주면서 새롭게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들 또한 “이 게임은 무작정 서로 총질만 하는 게임은 아니다.” 라는 사전 지식을 갖출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중요한 건, 앞서 이야기했듯 결국 이러한 게임 제작자의 안배가 가득 들어있다 하더라도 플레이어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도록 하느냐이다. 아무리 랜덤하게 조우한 상대와 즉석에서 협력을 할 수 있도록 도구와 방법을 많이 준비해놓았더라도, 협력의 확실한 목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철저히 목적 중심으로 움직이는 플레이어들에게는 불필요한 사치가 될 뿐이다. 결국 플레이어들에게 어떤 공통된 목적의식, 또는 이러한 일시적 동맹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공통의 적, 아크가 등장한다. ‘적의 적은 나의 친구’ 라는 명제 아래, 아크라는 공통의 무자비한 위협 앞에서 플레이어들은 빠르게 계산을 굴리게 된다. 아크는 모든 플레이어에게 공정하게 적대적이고 특유의 행동 패턴이 명확하기에 분석 가능한 적이다. 불확실성은 예측할 수 없는 변수를 늘리지만, 아크의 행동 패턴은 명확하기에 플레이어들의 계산은 명확해진다. 일시적인 동맹으로 아크를 우선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공동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 여기에 단순히 수집 퀘스트를 진행중이거나, 탈출 직전의 공생 아니면 공멸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러한 선택의 여지는 매우 뾰족해진다. 플레이어의 행동 방향이 명확해질 수 밖에 없는 셈이다. 이러한 게임의 매 순간마다 주어지는 목적성이 있기에, 플레이어들은 필요에 따라 일시적 동맹을 맺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즉, 단순히 커뮤니티 밈이자 재미를 위한 돈슛단을 넘어서서, 실제로 이러한 플레이가 상황과 플레이어에 따라 이익에 부합하는 행동이 되는 셈이다. 공격성 기반 매치메이킹, 회색분자를 길들이기 여기에 화룡점정으로 따라오는 시스템이 바로 공격성 기반 매치메이킹이다. 그 자체로서 오직 긍정적인 효과만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여러 논쟁이 있지만, 공격성 기반 매치메이킹이 이 게임에서 가져다주는 이점은 명확하다. 서로 비슷한 성향의 플레이어들을 묶어 그들이 겪는 허탈함이나 스트레스를 감내 가능한 선으로 낮추는 것이다. * 개발진 인터뷰를 통해, 속칭 카르마 매치메이킹, 또는 공격성 기반 매치메이킹이 실존함을 알 수 있다. (※ 이미지 출처 – GamesRadar+) 하지만, 공격성 기반 매치메이킹은 한가지 더 중요한 역할을 가지고 있다. 사실 어쩌면 이거야말로 핵심이라고 할 수도 있는 부분으로, 협력과 폭력 사이의 회색지대를 주 무대로 삼는 이들을 향한 것이다. 익스트랙션 슈터가 극히 매니악하고 저변이 넓지 못한, 하는 사람만 하는 게임이 되는 이유중 하나는 바로 ‘억울한 죽음’ 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훨씬 강력한 장비로 무장한 플레이어만을 만나거나, 또는 ‘아크 레이더스’ 처럼 협력이 가능한 게임이라면 자신은 명확히 적대한 적이 없음에도 일방적으로 살해당하는 경험을 지속적으로 당한다면 그 플레이어의 피로도는 수직상승하게 된다. 바로 이른바 양민학살, 불공정한 상황에서의 일방적 살육만을 즐기는 부류의 플레이어들이 그러한 불쾌감을 유발하는 주된 요인이다. 물론 이들이야말로 익스트랙션 슈터라는 게임 타입의 정체성과도 같은 플레이어들이지만, 이런 플레이어들이 더 많아지고 마주치는 빈도가 높아질수록 플레이어들은 고립되고 빠르게 수가 감소하기 마련이다. 즉, 이들은 장기적으로는 게임 서비스 유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부류이기도 하다. ‘아크 레이더스’는 바로 이러한 플레이어들의 비중을 줄이는데 게임의 여러 요소를 할애하고 있다. 이 게임에서 살육을 하려면 자신 또한 살육당할 위험에 놓여야만 한다는게 이 게임의 룰이라는걸 주지시킨다. 이는 거시적인 측면에서 게임이론의 ‘팃 포 탯(Tit for Tat)’ 과도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물론 ‘팃 포 탯’ 의 중요 전제인 협력/적대 대상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고, 그동안 협력/적대에 대한 기록이 있다는 전제가 일반적인 게임에서는 배제되지만, 비슷한 성향의 플레이어들을 한데 묶어놓는 이러한 매치메이킹에서는 매칭된 다수의 플레이어가 비슷한 성향의 그룹으로서 특정될 수 있기에 명확한 개인 대 개인의 데이터는 아니더라도 상대의 행동 방향을 예측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즉, 게임이론 하에서의 팃 포 탯이 각각 대상의 기록을 바탕으로 이어지는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다면, 공격성 기반 매치메이킹은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과 유사한 상대와 매칭된다는 전제에 대한 신뢰로 상대 유저에 대한 기대를 조정하여 행동을 결정한다는 근거의 차이가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은 비슷한 면이 있다. 이러한 기대치를 통해 팃 포 탯의 선제 협력, 즉각적인 응징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한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이에 대한 우려와 비판도 있다. 공격성 기반 매치메이킹에 대해 가해지는 주된 비판은 게임 플레이의 촉매제와도 같은 이러한 플레이어들을 게임에서 배제시킨다는 점이다. 이를 옹호하는 이들은 이 또한 익스트랙션 슈터의 플레이이며 아예 사라져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무조건적인 폭력이나 무조건적인 협력만 남는다면 그 폭력도 협력도 이만큼 각별해지지 않을테니 말이다. 이는 꽤나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게임 상에 오직 이런 플레이어들만 남게 된다면 흔히 말하는 뉴비 제초의 연쇄로 인해 더는 플레이어들이 남아있지 않게 된다는걸 의미한다. 그만큼 이들은 아예 사라져서는 안되지만 적절한 비중으로 억제되어야 하고, 때문에 공격성 기반 매치메이킹은 매우 제한적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개발진은 밝히고 있다. 즉, 아무리 비슷한 성향의 플레이어들이 모이더라도 상황에 따라 다른 플레이를 펼칠 여지가 남아있음이 명확해야, 이를 플레이어들이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더 공정해져야 하는 부분은, 협력 대신 폭력을 선택한 플레이어들이 무조건적인 악, 또는 처벌받아야할 대상으로 여겨져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러한 폭력의 긴장감이 없다면 이 게임은 매우 시시한 협력 게임이 되어버릴 뿐이다. 때문에 ‘가능성’ 측면에서, 폭력과 협력 중 어느 것도 순간적인 판단으로 뒤집힐 수 있다는 긴장감은 이 게임 내내 유지되어야만 한다. 이에 대해 ‘아크 레이더스’ 의 개발자들도 공격성 기반 매치메이킹이 전투 성향의 플레이어들에게 주어지는 패널티가 아님을 항상 강조하고 있다. 정확하게는 이를 통해 일방적인 양민학살만 즐기는 플레이어들을 회색지대에서 빼내어, 보다 예측 가능한 플레이어의 범주에 넣고자 하는 시도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시스템은 절대적인 판단자가 아니며, 플레이어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시스템을 교란시킬 수 있다는 점 역시 주요한 포인트다. 오래된 기록은 휘발되고 플레이어의 최근 행동에 기반하고 시스템의 판단 방식이 플레이어가 예측할 수 있는 수준이기에, 마치 모범수인척 착하게 하루 정도를 보내다가 낮은 공격성의 플레이어들 속에 섞여 들어가 살육을 벌이는 것 까지는 막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또한 게임의 텐션을 유지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즉, 이 게임이 정말 간단하게 서로 공격만 가능하게 하거나, 서로 협력만 가능하게 하는 이분법적인 게임 디자인을 따르지 않고 이러한 복잡한 유도체계를 활용한 이유도 이러한 변수가 존재하는 상황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긴장감과 카타르시스 때문이다. 배후의 연출자가 탁월할 때 무대는 다채로워진다 이렇게 수많은 안배에서 볼 수 있듯, 게임 플레이를 만들어나가는 주도권은 플레이어에게 있지만 그 책임은 게임 제작자에게 있다. 고양이를 길들이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정말로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말 같지만 실제로 수많은 게임들의 플레이 구조가 완성되는 과정은 이러했다. 그럼 핵심은 어떤 영리한 방법으로 주도권을 쥔 이들을 알게모르게 자신이 원하는대로 몰아갈 것인가? 이며, ‘아크 레이더스’ 개발진이 내놓은 답안이 이러할 뿐이다. 익스트랙션 슈터의 주된 재미는 불확정성에서 오곤 한다. 어떤 상황을 겪을지,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어떤 사람을 만날지 모두가 변수이고, 그러한 변수는 통제되지 않은 듯 보이지만 교묘하게 플레이어마다 다른 기대치를 충족시키도록 조율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게임은 배후의 연출자가 되기를 택했다. 그게 바로 이 게임이 그동안의 다른 익스트랙션 슈터, 그리고 PVP 슈터와 확연하게 다른 면이다. Tags: 익스트랙션슈터, 코옵, 슈터, 1인칭, FFA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이명규 게임 기자(2014~), 글쓴이(2006~), 게이머(1996~)

  • 울기 싫은 플레이어의 애도하기: <마이 리틀 퍼피>

    애도는 개와 인간의 관계만큼이나 <마이 리틀 퍼피>의 중요한 주제다. 봉구에 대한 애도는 재회에 대한 염원에서 시작해 게임에 등장한 모든 영혼에게 각자의 해피엔딩을 쥐어주는 것으로 발전했다. 이 과정에서 봉구와 ‘아빠’는 개와 인간, 죽은 자와 산 자로 관계맺으며 서로를 변화시켰을 것이다. < Back 울기 싫은 플레이어의 애도하기: <마이 리틀 퍼피> 28 GG Vol. 26. 2. 10. 인간사의 비극에는 꿈쩍 않던 사람이 을 볼 때는 눈물을 참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꼭 반려동물을 키우거나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렇다. 동물의 감정은 언어로 표현될 수 없기 때문일까. 그 순수함에 감응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리하여 동물이라는 소재는 보편적인 ‘눈물버튼’으로 쓰인다. ‘마이 리틀 퍼피’는 명백히 동물이 ‘눈물버튼’인 사람들을 겨냥한 게임이다. 견종 중에서도 귀여움으로 이름 높은 웰시코기 ‘봉구’가 사후세계에서 ‘아빠’를 마중나가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 반려동물을 먼저 보낸 게이머라면 아마 천국의 강아지들이 주인과 재회하는 도입부부터 눈물을 훔쳤으리라. 필자 또한 반려견을 잃어버려 갑작스러운 이별을 맞은 경험이 있기에 그리웠던 강아지를 만나자마자 무너지는 사람들을 보고 휴지를 찾아 일어서야 했다. 무지개 다리를 내달리는 봉구의 치명적인 뒷태와 다리가 짧아 높은 턱을 오르지 못해 바둥거리며 낑낑대는 모습에 앓는 소리를 내는 것은 무조건 반사적인 행동이다. 게임은 반려견과 죽음이라는 소재에서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충실하게 보여준다. 생전에 보호소에서 주인을 만나고 먼저 떠나기까지의 사연과 주인을 향한 맹목적인 사랑, 여기에 섬세하게 구현한 강아지의 움직임이 더해져 애틋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필자는 <마이 리틀 퍼피>에 쉽게 마음을 열어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눈물은 ‘눈물버튼’이 눌린 결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신파에 울지 않으려는 소비자 특정 소재에 ‘눈물버튼’이 눌리는 현상은 해당 창작물에 대한 평가와 무관하다. 신파의 서사를 접했을 때 발생하는 감정은 기계적인 반사작용으로 여겨진다. 이에 정형화된 신파에 익숙해진 소비자는 흔히 감정적으로 완전히 무감해지거나, 여전히 눈물을 흘리면서도 창작물과 심리적 거리를 두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곤 한다. 전형적인 한국식 신파 영화를 보고 나와 벌건 눈으로 ‘눈물이 나서 자존심이 상한다’며 성을 내는 관객이 좋은 사례일 것이다. <마이 리틀 퍼피>의 플레이 중반까지 나는 예시로 든 관객과 같이 이중적인 반응을 보였다. 신파에 냉담해진 소비자는 신파의 냄새를 맡는 순간부터 이러한 태도를 보이며 감정적 반응을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슬픈 영화를 보며 울지 않기 위해 일부러 촬영장의 모습을 상상하거나 배우의 연기일 뿐이라고 거듭 생각하는 식이다. 이는 특정 형식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자신의 감정적 반응을 통제하려는 태도와 연결되어 있다. 정형화된 형식에는 진정성이 부족하며, 이에 감응하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문화비평가 에밀리 부틀이 주장하듯 진정성은 21세기의 시대정신이다. 사람들은 창작물의 진정성에 천착하며 그것에 자신이 감동할 가치가 있는지 추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눈물버튼’이라는 표현의 유행을 해석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부틀에 의하면 진정성은 자신의 가식을 인정하는 개념으로 팔린다. ‘눈물버튼’을 탓하는 이는 자신의 감정적 반응은 자동반사적인 것일 뿐 진정으로 감동하진 않았다며 진정성의 결여를 인정하고, 이를 통해 진정성을 획득할 수 있다. 이러한 반응 때문에 신파의 소재로 인지되는 순간부터 그 소재의 확장성은 제한된다. 특정 소재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는 뻔하다고 생각하는 소비자는 실제 이야기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의외성을 적극적으로 간과하고, 재해석의 필요를 무시하곤 한다. 설사 99%가 전형적 신파의 반복이라 하더라도, 수용자의 상황에 따라 유의미한 감정의 승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 신파의 힘을 빌렸다는 것만으로 작품을 평가절하할 수는 없다. 신파라는 말에 갇혀 소재가 가진 힘이 소실되는 것은 창작자에게도, 소비자에게도 손해이다. 필자 역시 ‘눈물버튼’이 눌리길 거부하는 소비자이기에 <마이 리틀 퍼피>와 거리를 두기 위해 노력했다.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하며 위험천만한 맵을 지나게 하고 있자니 봉구를 고생시키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던 탓도 있었다. 감동적인 재회를 위해 나의 컨트롤 미스로 강아지가 절벽에서 떨어지는 장면을 봐야 한다는 것에 의아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반부를 넘어서며 <마이 리틀 퍼피>의 잔인함은 이 게임이 재현하려는 세계의 중요한 성격으로 드러난다. ‘힐링 게임’에 어울리지 않는 잔인함 전형적 신파의로 소비되기 쉬운 주제에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지점은 연출과 재현이다.‘마이 리틀 퍼피’의 제작진은 강아지 시점에서 전개된다는 점을 특징으로 내세웠으나 이는 이미 다양한 매체의 창작물에서 시도된 바 있다. 고양이의 행동양식을 사실적으로 구현해 화제가 된 게임 <스트레이>와 비교해 보면 그와 같은 수준의 본격적인 시점 전환이 의도된 것은 아니다. <마이 리틀 퍼피> 역시 강아지의 행동을 매력적으로 구현해 냈지만, 인간의 언어는 완전히 배제된 <스트레이>와 달리 <마이 리틀 퍼피>는 그림과 자막을 통해 강아지들의 의사를 인간의 언어로 해석해준다. 그보다 눈에 띄는 건 게임이 재현하기로 선택한 인간과 개의 모습이다. 봉구가 천국에서 처음 만나는 인물들을 자세히 보면 심상치 않다. 갓난아기와 아기를 지키는 허스키, 교복을 입은 학생, 헤진 옷을 입은 노인까지 각자의 사연이 있으리라 짐작되는 이들이 등장한다. 게임의 배경이 사후세계이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게임 내 모든 캐릭터가 망자임을 인식하고 그들이 세상을 떠난 배경을 유추하게 된다. 평화롭지 못한 죽음을 맞은 것이 분명해보이는 천국의 인물들은 플레이어의 감성을 자극하기 위한 일회적인 장치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아기자기한 천국의 풍경에서 이들이 등장했을 때 플레이어가 느끼는 위화감은 게임 중반부의 사막 맵에서 진돗개 가족과 들개 무리를 마주했을 때 다시 찾아온다. 어미 진돗개와 새끼 세 남매는 봉구 이외에 처음으로 생전의 사연이 소개되는 캐릭터들이다. 보호소에서 지내던 어미 개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새끼들은 입양을 기다리다 안락사되었다. 입양 공고에서 예쁘게 보이기 위해 둘렀던 장식을 사후에도 하고 있다. 이들의 등장을 통해 게임이 조명하는 세계는 봉구와 아빠라는 개체 간 관계를 넘어서, 개와 그들이 생전에 속했던 세계의 관계로 확장된다. 봉구와 진돗개 가족을 위협하는 들개 무리의 등장은 이를 더욱 분명히 한다. 들개 무리는 실험견, 투견 등 인간에 의해 학대당한 개들로 구성되어 있다. 학대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은 들개들의 모습은 게임의 동화적인 디자인과 어긋나며 위화감을 불러일으키고, 그 감각은 대자연만이 펼쳐진 사후세계와 대비되는 잔인한 이승의 세계, 인간의 세계를 가리킨다. 들개 무리와의 추격전이 펼쳐지는 미니게임에 실패할 경우, 들개들이 봉구와 진돗개 가족을 위협하는 장면이 나오며 게임이 종료된다. 마냥 사랑스러운 게임을 기대한 플레이어라면 이 장면에서 분명 당황했을 것이다. 처참한 모습의 들개들이 공격성을 표출하는 모습은 게임의 메인 빌런인 악령들의 공격과 달리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게임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잔인한 재현은 수의사 캐릭터가 등장하며 절정에 이른다. 수의사는 저승의 은신처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거나 아직 천국으로 가지 못한 개들을 돌보고 있다. 생전에 보호소에서 일하며 수많은 강아지를 안락사시켜야 했던 그녀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죽음을 택했다. 안락사된 개들과 정신적으로 무너진 수의사는 게임 전체에서 가장 어둡고 잔인하게 묘사된다. 시커멓게 칠해진 수의사의 눈은 공포게임 연출을 연상케 할 정도로 이질적이다. 예고없이 나타나는 잔인한 재현과 게임의 동화적 미학이 불화할 때의 이질감은 익숙한 신파의 구조에서 플레이어를 미끄러트린다. 잔인함의 구체성이 현실을 호출해 냉소를 유지하게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이 미끄러짐을 통해 플레이어는 신파로부터의 거리두기를 중단하고 게임이 ‘개’라는 종을 다루는 방식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로써 신파에 갇힌 ‘펫 로스’라는 소재의 확장이 가능해진다. 이질적 연출의 등장과 동시에 이야기의 중심은 봉구에게서 진돗개 가족, 들개 무리, 수의사로 이동하며, 게임은 인간과 개의 양면적인 관계를 전면에 내세우게 된다. 이들의 사연을 통해 그려지는 두 종의 관계는 긴밀하고도 일방적이다. 개에게 사랑을 주는 것도 상처를 주는 것도 사람이다. 사랑과 상처의 흔적은 미련이 되어 개들이 죽어서도 저승을 떠돌게 한다. 이처럼 귀여움과 잔인함이 병존하는 이질적인 재현 방식은 불편한 진실에 대한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바로 인간에게 종속된 개의 삶에는 태생적으로 잔인한 측면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 표현형이 사랑이든, 상처이든 간에 말이다. 개와 망자라는 타자와의 관계 게임을 플레이하며 필자가 느낀 잔인한 일방적 관계는 생물학자이자 페미니즘 이론가 도나 해러웨이가 <반려종 선언>에서 지적한 바 있다. 해러웨이는 개들의 ‘무조건적 사랑’의 능력이 있다는 믿음은 그 자체로 개와 인간 모두에게 가학적이며, 이 사랑이 소중하다면 오히려 무조건적인 사랑의 담론에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과의 사랑의 관계에 종속된 개는 이 사랑의 환상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버려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개라는 개체와 종 전체에 대한 종합적 이해를 시도하지 않고 사랑의 관점으로 개를 보는 것은 “종류와 개체 모두를 무조건적으로 죽이게 된다.” <마이 리틀 퍼피>는 봉구를 통해 무조건적 사랑의 담론을 충실히 재생산하는 한편, “개 자신의 가치-와 삶-는 개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인간의 인식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해러웨이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재현을 보여준다. 들개 무리는 게임의 마지막까지 인간과 함께하지 않고 저승을 떠돌길 선택한다. 과거 자신들을 받아줬던 수의사에게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들개들은 유유히 길을 떠난다. 이들의 존재는 저승에서 주인을 기다리며 ‘무조건적 사랑’을 실천하는 다른 개들 역시 사랑의 담론에 종속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플레이어는 그간 함께한 봉구와의 여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이러니하게도, 개의 입장이 되어보길 권하는 이 게임을 통해 필자는 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음’을 이해하게 됐다. 인간은 개를 관찰해 가상의 개를 모델링할 수 있지만 개를 완전히 이해할 순 없다. 그러나 해러웨이에 따르면 이와 같은 ‘이해할 수 없음’에 대한 인식, ‘부정의 방식으로 아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다. “핵심은 타자나 자신에 대해 알 수 없지만, 관계 안에서 누구와 무엇이 출현하고 있는지를 항상 질문하는 것이다.” 개와 인간은 함께 관계를 구성하며 그 속에서 서로를 변형시키고 있다는 것만이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관계를 통해 존재한다. 해러웨이는 이 관계를 통해 개와 인간에게 서로에 대한 ‘권리’가 구축되며, 그에 대해 이야기하고 책임을 지는 것이 윤리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개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인간의 무지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인간을 위한 이야기이다. 이는 산 자와 죽은 자의 관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산 자는 죽은 자를 알 수 없으며, 애도의 목적으로 쓰여지는 모든 이야기는 산 자를 위한 것이다. 하지만 해러웨이가 말하는 개와 인간의 관계에서처럼, 산 자와 죽은 자의 관계는 상호적이다. 산 자가 죽은 자의 흔적을 만질 때에 죽은 자도 산 자를 변화시킨다. 애도는 개와 인간의 관계만큼이나 <마이 리틀 퍼피>의 중요한 주제다. 봉구에 대한 애도는 재회에 대한 염원에서 시작해 게임에 등장한 모든 영혼에게 각자의 해피엔딩을 쥐어주는 것으로 발전했다. 이 과정에서 봉구와 ‘아빠’는 개와 인간, 죽은 자와 산 자로 관계맺으며 서로를 변화시켰을 것이다. 더불어 봉구가 생전에 ‘아빠’라는 개인을 어떻게 구성했는지도 되돌아보게 된다. 이야기는 신파에 대한 냉소로 되돌아온다. <마이 리틀 퍼피>는 감정의 과잉이라는 신파의 문법을 적극 활용한다. 그러나 이 감정은 들개 무리와 수의사의 이야기를 통과하며 개인 간의 애틋함이라는 전형적 서사의 감정에서 인간과 개의 관계가 지닌 비대칭성과 책임에 대한 고찰이 남기는 감상으로 변모한다. 이때 플레이어가 느끼는 감정은 ‘눈물버튼’이 눌린 결과를 넘어서, 개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윤리적 재고를 거친 것이 된다. 역설적으로 봉구와 아빠의 이야기 역시 이 과정을 통해 다시금 힘을 얻게 된다. 애도의 진정성조차 평가의 대상이 되는 사회에서 <마이 리틀 퍼피>는 감정을 솔직하게 밀어붙이며 플레이어에게 ‘아빠’의 애도에 동참하길 요청한다. 꼭 반려동물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떠나보내거나 사랑한 적 있는 플레이어라면 이 여정을 함께하며 그 솔직함에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다. Tags: 건조, 강아지, 반려동물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에디터) 박유진 시사 유튜브·팟캐스트를 만드는 직장인이자 평범한 게이머. 시사를 녹여낸 게임 이야기를 전하는 일에 종종 함께합니다.

  • 아포칼립스의 거울: 불완전한 정보는 어떻게 인간을 심판자로 만드는가?

    태양 폭발로 문명이 무너진 세계, 플레이어는 매일 밤 TV 앞에 앉아 정부가 배포하는 식별 가이드를 시청한다. 지하에서 올라와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쓴 ‘방문자’를 색출하라는 임무다. 뉴스는 완벽하게 고른 흰 치아, 털 없는 매끈한 겨드랑이, 빛에 민감해서 충혈된 눈 등을 방문자의 징후라고 보도한다. 위생 관리가 불가능한 아포칼립스 상황에서 청결함은 역설적으로 괴물의 증거가 된다. 이 플레이어에게 건네는 첫 번째 질문이다. < Back 아포칼립스의 거울: 불완전한 정보는 어떻게 인간을 심판자로 만드는가? 28 GG Vol. 26. 2. 10. 태양 폭발로 문명이 무너진 세계, 플레이어는 매일 밤 TV 앞에 앉아 정부가 배포하는 식별 가이드를 시청한다. 지하에서 올라와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쓴 ‘방문자’를 색출하라는 임무다. 뉴스는 완벽하게 고른 흰 치아, 털 없는 매끈한 겨드랑이, 빛에 민감해서 충혈된 눈 등을 방문자의 징후라고 보도한다. 위생 관리가 불가능한 아포칼립스 상황에서 청결함은 역설적으로 괴물의 증거가 된다. 이 플레이어에게 건네는 첫 번째 질문이다. 문제는 정보는 필연적으로 맥락을 삭제한 채 극도로 단편적으로 전달된다는 점에 있다. 뉴스가 ‘방문자’라고 말한 기준을 현장에 적용하는 순간 플레이어는 지독한 딜레마에 빠진다. 문을 두드린 남자는 자신의 손톱 밑 흙에 대해 정원사라서 당연하다고 항변하고, 치아가 고른 이는 최근에 교정을 마쳤을 뿐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붉게 충혈된 눈을 가진 여성은 빛에 민감해서가 아니라 가족을 잃고 밤새 울었기 때문일 수 있다. 플레이어에게 주어진 정보는 ‘충혈된 눈은 곧 괴물’이라는 공식뿐이지만, 눈앞의 현실은 그보다 훨씬 복잡한 사연을 품고 있다. 그러나 생존 본능은 복잡한 맥락을 무시하고 안전한 공식을 따르도록 강요한다. 결국 플레이어는 정원사를, 교정 환자를, 유가족을 잠재적 괴물로 규정하고 총구를 겨누게 된다. 위험한 존재를 집에 들이는 것은 플레이어뿐 아니라 같은 장소에 기거하는 생존자들의 안전도 위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 그림1. 정보만으로 인간과 ‘방문자’를 구분할 수 없다고 해서 혼자 생존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에서 집에 혼자 남는 경우는 ‘방문자’의 표적이 되거나 연제청에 잡혀가 제거된다. 게임의 엔딩 중 하나인 ‘비질란테의 분노’는 불완전한 정보를 맹신한 인간이 어떻게 파멸에 이르는지를 극적으로 드러낸다. 방문자를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광기에 사로잡힌 자경단원은 “너 같은 인간들이 내 친구를 죽였다”고 울부짖으며 플레이어의 집을 찾아온다. 그가 움켜쥔 전리품, 즉 뽑힌 치아와 잘린 손가락은 그가 사냥한 대상이 괴물이 아니라 육체를 가진 진짜 인간의 것이다. 이는 방문자의 식별 징후인 ‘완벽하게 고른 치아’를 색출하겠다는 강박이 개인적 원한과 결합했을 때, 인간이 얼마나 쉽게 타자를 괴물로 오인하고 무차별적인 폭력의 도구로 전락하는지를 보여준다. 자경단원은 스스로를 공동체의 심판자로 규정했지만, 결국 그는 괴물보다 더 끔찍한 학살자가 되어버린다. 그의 손에 들린 전리품은 단순한 증거물이 아니라, 인간성을 잃고 광기에 잠식된 자경단원의 몰락을 상징하는 물증이다. 이 엔딩은 미디어가 제공하는 불완전한 식별 기준이 무력, 그리고 맹목적인 복수심과 결합할 때 어떤 참혹한 결과를 낳는지를 경고하며, 괴물을 잡겠다는 집착이 오히려 인간을 괴물로 변모시킨다는 아이러니를 그려낸다. <격리 구역(Quarantine Zone: The Last Check)>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관료주의적 시스템 안으로 끌어온다.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한 세상에서 격리 시설 관리자가 된 플레이어는 검문소에 선 생존자들을 오직 수치로만 판단해야 한다. 체온계, 청진기, 육안 검사라는 도구가 주어지지만 이 역시 인간의 생사를 가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다리에 있는 상처가 좀비에게 물린 자국인지 단순히 넘어져 생긴 멍인지 구별하기 어렵고, 얼굴이 붉은 것은 감염 증상일 수도 있지만 단순히 더위에 익은 것일 수도 있다.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플레이어를 압박하는 것은 ‘효율성’이라는 이름의 비용이다. 감염자를 들이면 기지가 위험해지고, 의심스러운 자를 모두 격리하면 수용 시설 유지비가 폭증한다. 결국 플레이어는 화씨 180도 이상이라는 숫자에만 매몰되거나,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우면 일단 추방하는 효율성의 논리를 택한다. 아이의 떨림이나 생존자의 호소는 배제된 채, 인간은 오직 데이터로 전락한다.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다 보면 어느새 플레이어는 비인간적인 행위에 가담하게 된다. 성벽 밖에서 으르렁거리는 감염자보다, 모호한 정보 앞에서 효율성을 택하는 자신의 손끝이 더 섬뜩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반면 는 시각 정보가 주는 공포를 역이용해 판별 행위 자체를 무력화하는 독특한 지점을 보여준다. 주인공 샘은 창문을 열어 ‘방문자’라 불리는 우주적 존재를 목격하거나 인식하면 끔찍한 괴물로 변이한다는 명확한 정보를 획득한다. 샘이 거주하는 아파트는 물리 법칙이 무시된 미로로 변해 있으며, 복도에는 하키 마스크를 쓴 거구의 여성, 머리가 카메라와 융합된 이웃 라일, 바퀴벌레 떼가 뭉쳐 지성을 갖춘 바퀴 씨 등 기괴한 형상의 이웃들이 돌아다닌다. 기존의 서바이벌 호러 문법대로라면 이들은 생존을 위해 제거하거나 배제해야 할 ‘적’으로 간주되지만, 샘은 시각적 기표가 주는 혐오감을 넘어 그들의 내면을 보기를 택한다. 그는 변이한 이웃들에게 식량을 나누어 주고 거처를 제공하며 대화를 시도하고, 그들은 괴물의 외형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샘에게 고마움을 표하거나 그를 왕으로 추대하는 등 인간적인 유대와 이성을 유지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게임 후반부에 이웃이자 조력자였던 ‘11’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판별의 무의미함은 존재론적 차원에서 증명된다. 인류의 기원은 사실 우주를 떠도는 거대한 생명체인 방문자의 미세한 말단 신경세포였으며, 인간이 방문자를 목격하는 순간 발생하는 변이는 외부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이 아니라 독립된 개체라는 환상이 깨지고 본체와 하나가 되려는 회귀 본능의 발현이었다. ‘11’이 기억을 지우고 육체와 분리되면서까지 숨기려 했던 것은 바로 “우리가 곧 괴물의 일부”라는 사실이었다. 결국 눈으로 보고 괴물이라 판별하며 배척하려 했던 존재는 가장 근원적인 자아의 본모습이었고, 이 게임에서 창문은 외부를 감시하는 방어 기제가 아니라 내면의 끔찍한 기원을 비추는 거울로 기능한다. 시각적 정보에 의존해 타자를 괴물로 규정하는 행위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그리고 불완전한 정보가 어떻게 우리를 진실로부터 격리시키는지를 이 게임은 역설한다. 판별의 서사는 <도시전설 해체센터>에 이르러 물리적 실체를 넘어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정보’ 그 자체에 대한 가차 없는 폭로로 확장된다. 앞선 작품들이 가시적인 괴물과 인간의 경계를 획정하려 했다면, 이 작품은 SNS와 미디어라는 거울에 투영된 비가시적 공포, 즉 도시전설의 이면을 해체하는 인식론적 탐구에 집중한다. * 그림2. <도시전설 해체센터>의 침대 밑의 남자 에피소드. 괴담은 단편적인 시각 정보와 결합되어 확산된다. 플레이어는 ‘침대 밑의 남자’, ‘저주받은 상자’, ‘도플갱어’ 등 전형적인 괴담의 형식을 띤 사건들을 추적하지만, 그 심연에서 마주하는 것은 초자연적 존재가 아닌 인간의 뒤틀린 욕망과 악의다. 첫 번째 에피소드인 ‘침대 밑의 남자’의 경우, SNS를 통해 괴한의 침입이라는 공포가 실시간으로 확산되지만 그 실상은 타인의 파멸을 발판 삼아 이득을 취하려는 치밀한 기획이었다는 사실을 플레이어는 확인할 수 있다. 목격자를 자처했던 김하나는 사실 고위층을 대상으로 한 성매매 브로커였으며, 피해자를 심리적 궁지로 몰아 통제하기 위해 괴한을 고용한 자작극을 벌인 것이다. 대중은 자극적인 이미지와 텍스트에 매몰되어 피해자를 향한 무분별한 신상 털기와 2차 가해를 서슴지 않았다. 결국 이 사건의 진짜 괴물은 침대 밑의 괴한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유희로 소비하고 확산시킨 익명의 대중과 조작된 정보 그 자체다. ‘저주받은 상자’ 에피소드 역시 궤를 같이한다. 상자를 접한 이들이 뱀의 환각과 심장마비를 일으킨다는 소문은 오컬트적 저주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남미산 환각 성분과 알코올의 상호작용에 의한 화학적 반응으로 밝혀진다. 저주의 매개체로 여겨진 치아와 인형 또한 광신도 집단 ‘삼매지마’에 세뇌된 택배 기사가 살의를 담아 배치한 범죄 도구에 불과했다. 나아가 후반부의 ‘그레이트 리셋’ 음모는 실체 없는 공포가 어떻게 사회를 붕괴시키는지 극명하게 투영한다. 테러 집단은 예언의 형식을 빌린 카드를 유포해 대중의 불안을 선동하고, 이를 주가 조작과 사회 혼란의 도구로 삼았다. 우리가 재앙이라 믿었던 현상들은 사실 조회수를 갈구하는 미디어, 타인을 해하려는 악의, 그리고 검증 없이 정보를 유포하는 대중 심리가 합작한 거대한 시뮬라크르였던 셈이다. “소문 자체가 악이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인간이 문제”라는 센터장 빈차아의 일갈은 이 게임의 문제의식을 관통한다. 현대의 아포칼립스는 핵전쟁이나 좀비 창궐이 아니라,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혐오를 배양하고 인간성을 잠식하는 순간 도래한다. <도시전설 해체센터>는 불완전한 정보를 맹신하고 확산시키는 우리의 태도야말로 시대의 진정한 공포임을 역설하며, 판별의 화두를 타자가 아닌 ‘정보를 소비하는 나 자신’에게로 돌려놓는다. 앞서 언급한 네 편의 게임이 공유하는 핵심은 판별이라는 행위가 지닌 윤리적 함정이다. 우리는 불완전한 정보와 모호한 기준을 손에 쥐고 너무나 쉽게 타인을 심판대에 세운다. 생존을 위해 타인을 의심하는 동안 그 의심의 근거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잊어버린다. “당신은 인간입니까?”라는 질문은 결국 “당신은 단편적인 정보로 타인을 괴물로 낙인찍고 있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괴물은 바깥에서 침략하는 것이 아니다. 타자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손쉬운 정보로 심판하려는 게으른 시선 속에 이미 도사리고 있다. 아포칼립스가 비추는 거울 속에서 플레이어는 괴물이 아니라 정보를 맹신하며 방아쇠를 당기는 자신의 일그러진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Tags: 포스트휴먼, 인본주의, AI, 인공지능, 비인간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성균관대학교 강사) 홍현영 패미콤을 화목한 가족 구성원의 필수품으로 광고한 덕분에 게임의 세계에 입문했다. <저스트댄서> 꾸준러. 『81년생 마리오』, 『게임의 이론』, 『미디어와 젠더』 등을 함께 썼다.

  • 수퍼히어로물의 다음 세대를 건져올린 <디스패치>

    가장 미국적인 문학 장르인 수퍼히어로는 경이(amazing)적 판타지의 장르다. 주인공 히어로와 빌런이 사용하는 초능력이라는 경이 요소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때문에 판타지이며 개연성 대신 핍진성만이 작동하는 장르다. 이 장르는 만화와 라디오 드라마를 거쳐 영상 영화를 지나 게임까지 와 있다. < Back 수퍼히어로물의 다음 세대를 건져올린 <디스패치> 28 GG Vol. 26. 2. 10. 디스패치의 수퍼히어로적 이분법 가장 미국적인 문학 장르인 수퍼히어로는 경이(amazing)적 판타지의 장르다. 주인공 히어로와 빌런이 사용하는 초능력이라는 경이 요소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때문에 판타지이며 개연성 대신 핍진성만이 작동하는 장르다. 이 장르는 만화와 라디오 드라마를 거쳐 영상 영화를 지나 게임까지 와 있다. 애드혹 스튜디오의 2025년작 디스패치(Dispatch)는 수퍼히어로 문학에서 찾기 어려운 약간 독특한 구도를 내세운다. 수퍼히어로 문학을 게임이 풀어낼 때는 전투라는 요소에 초점을 맞춰 히어로 체험을 메인 컨텐츠로 삼는다. 아캄 시리즈는 배트맨의 전투와 수사를 체험한다는 컨셉이고, 마블 스파이더맨 시리즈 역시 스파이더맨의 전투와 웹 스윙을 체험하는 것이 게임의 핵심이다. 반면 디스패치의 히어로 전투는 시네마틱 씬의 중간에 QTE(Quick Time Events)를 입력하는 정도이며 이는 게임의 강점인 체험 컨텐츠라기엔 무리가 있다. 디스패치, 파견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이 게임의 주인공은 히어로가 아니라 히어로를 보조하는 동료다. 히어로의 동료는 보통 조수 혹은 사이드킥(sidekick)으로 불린다. 디스패치의 주인공은 방금 일시 은퇴를 한 히어로지만 다른 히어로의 사이드킥이라기보다는 히어로들에게 임무 정보를 제공하여 임무 지역으로 보내는 임무를 맡은 사람이다.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스파이더맨의 친구 네드 리즈는 이 오퍼레이터 역할을 의자에 앉은 자, Guys in the chair라고 표현했다. 그 말 그대로 주인공 로버트는 책상에서 네트워크 단말기 앞에 앉아 헤드셋을 쓰고 있다. 게임의 주 컨텐츠는 로버트가 들여다보는 화면 안에서만 이루어진다. 메카맨이라는 이름으로 3대째 히어로를 하던 로버트는 메카맨 수트의 파괴로 인해 일시 은퇴하게 된다. 그는 스카웃 제의를 받아 SDN(Superhero Dispatch Network)이라는 회사에 취직해 디스패치 업무를 맡게 된다. 이 회사는 구독제 서비스를 제공한다. 구독 회원들은 앱을 통해 목격 사실을 제보하거나 의뢰를 하고, 회사는 소속 히어로를 현장에 투입하는 일종의 용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히어로 팀에게 임무 위치와 임무 내용을 설명하고 돌발 상황 발생시 추가 정보를 찾아 제공하는 업무를 로버트가 속한 디스패치 부서의 인원들이 맡는다. 그리하여 게임은 두 가지 축으로 돌아간다. 일과를 시작하면 로버트의 단말기 화면에 떠있는 지도 위에 의뢰 핀이 뜬다. 제한 시간 내에 해당 의뢰에서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는 조합으로 팀의 히어로 하나 이상을 선정해 파견(dispatch)한다. 파견된 히어로들이 해당 의뢰를 처리하고 복귀해 한숨 돌리는 동안에도 다른 의뢰가 뜨고, 각각의 제한 시간 내에 의뢰 접수를 하여 성공할 수 있도록 시간 분배와 캐릭터 조합을 행한다. 의뢰 성공의 보상으로 히어로가 성장 기회를 얻으면 그 성장 방향도 결정한다. 이 일과가 게임의 한 축이다. 다른 한 축은 일과 업무가 끝나고 내일 업무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시간에 벌어지는 QTE와 선택지다. 오프듀티 시간에 파괴된 메카맨 수트의 복구 같은 개인사, 담당하는 팀원들을 비롯한 회사 동료들과의 인간 관계가 여기서 진행된다. 이 두 축으로 이루어진 게임 플레이가 하루하루 쌓이면서 선택지에 의한 서사 분기도 이루어진다. 연애는 블론드 블레이저와 인비저갤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동시에 히어로로서는 낙제점인 인비저갤을 어떻게 성장시켜 히어로로 육성하는가 하는 멘토링 임무가 깔려 있다. 그러면서 로버트의 인간상을 고전적이고 윤리적인 ‘트루 히어로’로 할 것인가, 반대로 정의를 위해서는 윤리를 구부릴 수 있는 ‘안티 히어로’로 할 것인가의 선택지도 계속 주어진다. 이는 최후의 결전 후에 메인빌런 슈라우드의 생사를 결정하는 선택이 된다. 플레이 컨텐츠 두 가지, 연애 선택지 두 가지, 멘토링 성공의 이지선다, 윤리 선택지 두 가지, 세상을 선악의 둘 – 영웅과 악당으로 나누는, 물론 중간지대는 인정하지만, 수퍼히어로 장르의 세계관적 특성이 게임 플레이와 서사에도 적용되어 있다. 그리고 본작 디스패치의 특성은 그렇게 나뉜 두 영역을 대표하는 히어로와 빌런 중에서는 주인공이 없다는 점이다. 로버트는 히어로였으나 본작에서는 히어로를 보조하는 ‘의자에 앉은 사람’ 역할을 수행한다. 여타의 수퍼히어로 서사에서는 주변 인물이었던 포지션의 시야가 중심 서사로 이동했다. 이는 수퍼히어로 장르가 꾸준히 발전시킨 현실성 강화 흐름의 한 형태인 동시에, 수퍼히어로 서사의 다음 돌파구를 찾는 시도 중 하나일 수 있다. 현실성을 찾는 수퍼히어로 1939년 수퍼맨이 탄생하면서 수퍼히어로 장르의 신드롬이 일어났다. 초능력을 가진 강력한 영웅이 자신을 상징하는 코스튬을 입고 범죄와 사고를 수습하며 사람들을 돕는다는 서사 장르였다. 당대의 최신 장르로 시작한 만화에서 시작해 라디오 드라마와 영화로 옮겨갔다. 장르의 특징이 서사의 구조에 있다 보니, 그 서사를 살려줄 수 있는 수많은 장르와 결합하면서 혼종 장르가 되었다. 수퍼맨은 SF의 요소를 가져왔고, 배트맨은 탐정 활극의 서사 요소가 들어왔다. 네이머와 원더우먼은 신화에서 가져온 소재였고, 캡틴 아메리카는 전쟁물과 첩보물의 문법을 일부 차용했다. 흥행 면에서 최고 기록을 올린 캡틴 마블 – 현재 명칭 샤잠은 아동 만화의 성격을 표방했고, 코믹 만화의 요소를 본격적으로 가져온 플라스틱맨 같은 예까지 등장하면서, 수퍼히어로 장르는 만화라는 신생 장르를 대표하는 하위 장르로 성장했다. 온갖 장르를 흡수하던 이 황금기를 음역하여 골든에이지라 부른다. 골든에이지는 2차대전의 종전 이후 급격히 사그라들었다. 명확한 선악 대비 구도로 서술할 수 있었던 전쟁에 수퍼히어로 장르가 프로파간다로서 복무한 직후, 만화의 버블 또한 함께 꺼지면서 몰락한 것이다. 하지만 60년대가 되면서 재부흥 시기가 도래했고, 이 두 번째 황금기를 골든 에이지에 이어지는 실버 에이지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도 타 장르의 성과를 차용하는 잡탕 장르로서의 성격이 보였다. 플래시는 물리학의 시간과 속도 개념을 대중 문학의 형태로 번역하면서 SF 수퍼히어로의 계보를 이었고, 리뉴얼된 그린랜턴은 아예 스페이스 오페라의 세계에 수퍼히어로를 넣는 작업이었다. 아이언맨은 역사 속 철가면의 이미지에 과학기술의 외피를 넣은 시도였고, 닥터 스트레인지는 당대 호러 영화의 형식과 사이키델릭 음악의 분위기를 만화에서 접목하는 시도인 동시에 신화 요소 위에 오컬트의 요소가 덧씌워지는 시도이기도 했다. 그리고 60년대의 기술입국 분위기와 포스트모더니즘 분위기의 당대성은 실버 에이지의 수퍼히어로들의 설정을 조금은 더 현실적이게 만들었다. 전 지구의 소리를 다 들을 수 있고 주먹질로 행성을 부술 수 있으면서도 도덕적으로 완벽한 인물인 수퍼맨과, 신체 능력도 직업적 소양도 윤리철학의 관념도 모두 매우 모범적인 완벽한 인물인 캡틴 아메리카의 예시는 골든 에이지 시절의 수퍼히어로에 신화의 성격이 있음을 암시하는 증거다. 실버 에이지부터는 전능한 신과 같은 영웅보다는 제한된 초능력 혹은 인간적 약점이 있어 현실 세계에 접점을 갖는 히어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현실성의 닻’이라고 부르기를 주창하는 이 흐름을 주도한 사람이 스탠 리다. 수퍼히어로의 서사와 설정이 심화 발전되면서, 이 현실성의 닻은 점점 커져 갔다. 70년대부터는 사람들이 비평적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는데, 그 질문은 이랬다. ‘현실이라면, 이런 히어로의 주변 사람들은 빌런에 의해 안전을 위협받을 것이다. 그럼 과연 히어로가 그 모든 주변인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을까?’ 73년에 그 대답이 나왔다. 스파이더맨의 연인 그웬 스테이시가 빌런 그린 고블린의 공격에 의해 사망했다. 사상 최초로 수퍼히어로 장르에서 주요 인물이 죽었고, 이 사건의 충격은 새로운 시대인 브론즈 에이지를 낳았다. * 이 상징적 장면은 영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에서도 동일하게 재현되었다. 시장 상황으로 서술하면 일종의 연착륙, 즉 골든 에이지의 급격한 몰락과는 대비되는, 일종의 성숙기인 이 브론즈 에이지의 특징은 실버 에이지 시대가 던진 화두인 ‘현실감 있는 세계 구축’을 본격적으로 시도했다는 점이다. 점점 동화적인 분위기가 줄어들었고, 등장인물들의 인격적 결점이 부각되었으며, 등장인물의 죽음이나 파멸 같은 소재가 점점 잦아졌다. 사회 이슈를 직접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 또한 이 시기의 특징이다. 1971년의 ‘Snowbirds Don’t Fly’는 그린 랜턴과 그린 애로우 두 사람이 마약 범람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는 내용이다. 같은 해의 스파이더맨에서는 해리 오스본이 마약 중독으로 고통 받는 장면을 내보냈다. 이 두 만화는 검열 코드를 이겨내는 사례로도 많이 인용되지만, 동시에 수퍼히어로 만화가 사회 문제를 반영할 만큼 현실적으로 성숙해졌다는 증거로도 인용된다. 이런 조류가 더 많이 반영되는 동시에 다양성의 가지로 뻗어나간 현재를 일반적으로는 모던 에이지라고 부른다. 명확한 시기 정의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신호탄은 1986년의 ‘왓치멘’으로 꼽는 것이 중론이다. 모순 투성이의 사회에서 히어로는 딱히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증상을 억누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서사적 상상력이다. 그래서 별칭으로는 다크 에이지, 암흑기라고도 부른다. 또한 현대에 들어서면서 영상화의 시도가 늘어났다. 그리하여 현대 영화 장르에서 수퍼히어로를 정착시킨 1989년의 배트맨 영화 또한 어두운 도시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히어로 서사를 사용했다. 탐정 활극 소설이 배트맨의 모태였고 이후 역사가 진행되면서 탐정 느와르 또한 배트맨 서사에 들어왔는데, 그 어두운 테이스트가 그대로 영상으로 이어진 것이다. 더욱더 어두워야 하니 인물의 죽음이나 파멸을 통해 독자에게 충격을 전달하는 기법 또한 이어졌다. 1999년이 되면 작가 게일 시몬은 그웬 스테이시의 죽음 이후 히어로 주변인물의 죽음과 파멸이 지나치게 자주 사용되며 동시에 주로 여성 인물에게 가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성 히어로의 동기 부여나 각성을 위해 여성 인물이 희생되는 이 현상은, 1994년 그린 랜턴의 이야기에서 주인공 카일 레이너의 여자친구가 토막 나 냉장고에 들어가있었던 장면에서 따와 ‘냉장고 속 여자(Women in Refrigerators)’로 명명되었고 곧 프리징(fridging)이라는 약어도 등장했다. 현실감을 높이기 위한 시도 중의 부작용이었다. 현실감을 높이기 위한 시도는 영상화에선 핵심이었다. 몇십 년 전에 디자인된 코스튬은 영상으로 만들어놓으면 촌스럽거나 현실감이 없었다. 때문에 배트맨이건 엑스멘이건 모든 히어로의 영상화 과정에서 코스튬 디자인의 현대화는 필수 작업이 되었다. 미국적 핍진성 추구의 보수성 역사의 흐름은 계속해서 핍진성의 강화, 즉 현실감 강화였다. 그리고 그 첨단에서 디스패치는 기업이라는 조직을 상상한다. 히어로가 일상의 일부가 될 정도의 세계라면 히어로의 활동을 통해 가치 창출과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생길 수 있다. 어벤져스, 저스티스 리그와 같은 히어로 집단이 법인이 된 세상이다. 이 상상력은 새롭지 않지만, 디스패치는 새롭게 만들었다. 한 발 더 나아가 기업이 조직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히어로가 아닌 히어로의 활동을 뒷받침하는 ‘의자에 앉은 자’의 시점으로 게임을 조직한 것이다. 그리하여 디스패치에는 그간 수퍼히어로 장르가 수집해 온 타 장르의 요소가 모두 자본주의적 기업의 아래에 모였다. 메카맨을 비롯한 테크놀로지 계통이 대표하는 SF, 말레볼라가 대표하는 신화와 오컬트 같은 다양한 요소 말이다. 이것 또한 지극히 미국적이다. 다종다양한 인종과 문화와 종교가 모여 있지만 완전히 섞여 온전한 하나가 되지는 않는, 샐러드 보울로서의 미국인 동시에 자본주의적 가치를 추구하는 조직이 이를 모아놓은 것 또한 미국의 모습이다. 동시에 등장인물들이 주고 받는 블랙 유머는 탐정 느와르의 흔적임과 동시에 농담을 중요시하는 미국 문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로버트가 담당하는 Z팀의 성격 또한 매우 자본주의에 포섭되어 있다. 갱생 전향한 전직 빌런들로 이루어진 이 팀의 실적은 매우 낮다. 로버트가 채용되면서 받아든 가장 중요한 임무는 실적 꼴찌인 인비저갤을 온전한 히어로로 키워내는 것인 동시에 Z팀을 회사가 해산하지 않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 멤버 한 명을 해고해야 하기도 한다. 이는 수퍼히어로 장르 자체가 가지는 한계 혹은 보수성을 연상시킨다. 수퍼히어로에는 혁명의 서사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수퍼히어로는 중국 문학의 협객처럼, 공권력이 무력한 자리에서 정의를 행하는 존재다. 혁명 서사로 이어질 법도 한데, 그보다는 현재의 사고와 범죄를 처리하는 서사에 집중한다. 간간이 사회 변혁에 개입하기도 하는 무협 서사와는 달리 수퍼히어로 서사에는 기본 구도를 흔드는 식의 혁명성이 없다. 언제나 사고와 범죄가 있고 도움을 기다리는 무력한 대중이 있는 세계를 상정하고 있는 장르이기 때문에 나오는 보수성이다. 그리하여 디스패치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인 회사, SDN은 물리법칙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Z팀 멤버들이 왜 빌런에서 갱생하여 히어로가 됐는지 그 동기도 다뤄지지 않는다. 전향한 것은 한 것이고, 회사에 들어왔으니 해고되지 않고 성장해야 하며, 해고되면 원한을 갖게 된다. 범죄의 근원을 찾지 않는 수퍼히어로처럼, 디스패치의 회사는 의심의 대상이 아니다. 개헌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미국다운 상상력의 한계이기도 하다. 시선 이동의 가치 한계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넘어가더라도, 시선을 옮긴 것은 중요한 시도다. 모던 에이지의 수퍼히어로 장르는 현재 답보 상태에 있다. 온갖 장르에서 가져온 요소를 엮고 섞어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고, 더 많은 서사를 위해 평행 우주를 만들어냈지만, 이 확장된 세계는 확장성의 맹점으로 인해 진입 장벽이 되어버리는 모순을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만화에서 발생한 양날의 검은 이제 영상에서도 발생했다. 어벤져스 다음 영화를 온전히 이해하고 즐기기 위해서 봐야 하는 이전의 영화와 드라마가 너무 많아지고, 그 각각의 작품이 서로 너무 많은 예고 장면을 보여주면 관객들이 피로해졌다. 서사의 클리셰는 훨씬 오래 전부터 고민의 대상이었는데, 수용자가 장르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하자 클리셰의 부정적 측면이 더욱 크게 다가오게 되는 악순환이 만들어졌다. 수퍼히어로 게임이 맞닥뜨린 벽은 조금 다르다. 게임은 포맷의 획일성 하나만을 고민하는 중이다. 수퍼히어로를 소재로 한 게임이라면 가장 먼저 착안하게 되는 것이 수퍼히어로 체험이다. 당연히 수퍼히어로를 직접 조작하는 것, 즉 전투 위주의 게임 플레이가 주축이 된다. 그리하여 주류는 액션 어드벤처 장르가 되었다. 배트맨, 스파이더맨, 어벤져스 모두가 같은 장르로 만들어졌다. 수집 배틀 장르는 꾸준히 시도되었지만 액션 어드벤처처럼 주류가 되지 못했다. 가장 먼저 시도된 장르인 격투 게임은 장르 자체가 매니아화 되면서 주류에서 밀려났다. 마블 미드나잇 선즈는 전투 위주의 장르이지만 턴제 전략을 기본 시스템으로 하면서 특색을 보였지만 흥행에서 아쉬운 성적을 내면서 다른 시도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본작 디스패치의 이전 세대인 텔테일 배트맨 시리즈 또한 클래식한 어드벤처 장르를 시도했지만 평이한 스토리와 선택지의 무의미함이 발목을 잡았다. 반면 디스패치는 텔테일 배트맨 시리즈의 미흡한 점을 보완한 동시에 아예 히어로를 주인공에서 내려버리는 발상까지 보여주면서 흥행 성적도 올렸다. 액션 장르 외의 어드벤처 형식으로도 충분히 수퍼히어로 게임을 만들 수 있음을 알린 동시에, 서사의 시점을 히어로가 아닌 주변인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다른 형태의 서사를 조직할 수 있음도 증명했다. 배트맨의 집사 알프레드로서 플레이하는 게임도 가능할 수 있다. 혹은 SDN의 CEO가 되어 경영 시뮬레이션을 플레이하는 것도 상상할 수 있다. 게다가 상상을 조금 더 해보면, 현재 답보 상태인 만화와 영상에 건네는 힌트가 될 수도 있다. 최소한 클리셰 변형의 시도 중 하나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조금 더 상상을 넓혀서 비약의 영역으로 간다면, 수퍼히어로 장르 전체가 변화하는 단초일 수도 있다. 모던 에이지의 시작은 정의에 따라 다르지만 80년대의 어느 시점 혹은 90녀대의 어느 시점이다. 이미 30에서 40년 가량 지나왔으니 다음 시대를 그려볼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 그렇다면 어두운 현실 반영으로 시작해 다양한 플랫폼과 형태로 뻗어나간 이 시대의 다음을 어떤 형태로 상상할까가 과제가 된다. 영웅 서사에서 영웅이 아닌 주변인의 시점으로 옮겨간 이 시도는 다음 시대로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이 가장 첨단의 미디어인 게임에서 제시되었다고 해석하면 첨단성에 대한 찬사로도 보일 것이다. 이 장르의 한 팬으로서는 충분히 기대하고 싶다. Tags: 히어로물, 코믹스, 골든에이지, 북미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 [대담회] 같이 논다는 것의 의미: 골목에서 온라인까지

    우리는 이제 코옵을 장르로서 바라볼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장르로서 코옵의 핵심적 특성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코옵의 핵심 특성이 협업이라면, 협업과 경쟁은 완벽히 구분되는 것일까? 오프라인 코옵과 온라인 시대 코옵의 차이는 무엇일까? 혹 모든 게임 플레이 자체를 기본적으로 코옵이라고 불러야만 하는 건 아닐까? < Back [대담회] 같이 논다는 것의 의미: 골목에서 온라인까지 28 GG Vol. 26. 2. 10. 과거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같은 화면을 바라보며 버튼을 누르던 오락실의 기억부터, 온라인에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팀플레이에 이르기까지 코옵(Co-operation)의 의미는 다의적으로 확장되는 것처럼 보인다. 헤이즈 라이트 스튜디오처럼 ‘코옵 게임'의 컨셉을 내세우는 게임사들도 등장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제 코옵을 장르로서 바라볼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장르로서 코옵의 핵심적 특성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코옵의 핵심 특성이 협업이라면, 협업과 경쟁은 완벽히 구분되는 것일까? 오프라인 코옵과 온라인 시대 코옵의 차이는 무엇일까? 혹 모든 게임 플레이 자체를 기본적으로 코옵이라고 불러야만 하는 건 아닐까?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 속에서, 이번 GG 대담에서는 게임연구자들이 만나 코옵 플레이의 역사적 변화와 감각적 차이를 짚으며 ‘함께 플레이한다’는 말이 어떤 조건과 전제를 포함하는지 탐색해 보았다. 오락실과 콘솔 2인용 게임으로부터: 오프라인 코옵의 원형적 경험 이경혁 편집장: GG의 대담회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주제는 ‘코옵(Co-operation)’으로, 보통 코옵이라 하는 게임에 대해서 연구자나 플레이어들의 입장에서 좀 어떤 감상을 갖고 있고 어떤 경험이 중요한 것인지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나보라 박사: 먼저 코옵의 정의를 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 옛날에 우리가 오락실 2인용에 앉아서 게임한 것도 코옵이기도 할 텐데 둘이 협력을 할 때만 코옵이라 봐야 할지요? 경쟁형 게임은 포함이 안 될까요? 이경혁 편집장: 아무래도 Co-operation이니까 경쟁보다는 협력을 하는 게 전제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다들 오락실에서 해본 코옵 중에 기억나는 게임이 있으실까요? 이선인 평론가: 많습니다. 근데 제 시대에는 역시 <던전 앤 드래곤(DND) 2>가 생각이 나네요, 거의 안 하면 소외되는 수준이었어요. 이정엽 교수: 저희 때는 <더블 드래곤>, <골든 액스>, <보글보글> 그런 거 많이 했죠. 나보라 박사: 코옵에 준할 만한 것들은 오락실에서 해 본 기억이 나요. 요즘의 PC방 같은 공간에서는 코옵이 발생하는 경우가 없을까요? 이경혁 편집장: PC방 코옵도 충분히 가능하다 봅니다. <스타크래프트> 시대에 디펜스 류, 저글링 디펜스 이런 건 코옵이었어요. 여기까지는 우리가 코옵이라고 동의할 수 있지만, 예를 들어 “3대 3 헌터 초보만”은 코옵인가 부터는 얘기가 달라질 수 있겠지요. 이게 코옵이라면 <리그 오브 레전드>도 코옵이 되는 셈입니다. 이정엽 교수: 그런데 <리그 오브 레전드>의 경우 부분적으로 코옵의 성질을 갖기도 하지만 먼저 ‘대전’이라는 차원이 들어가다 보니 코옵이라 부르지는 않는 듯해요. 공통의 목표를 향해서 PVP보다 PVE의 성격을 띨 때 보통 코옵이라고 많이들 얘기했던 것 같아요. 실제로도 같은 편이긴 하지만 라인이 서너 개로 갈라져 있고 각자의 라인을 책임지며 각자의 역할을 하는 거지, 상대방을 막 도와준다는 의미는 덜 부각된달까요? 메카닉 상으로 이 게임을 본다면 각자의 역할이 어느 정도 구분되어 있고 그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 같네요. 이경혁 편집장: 즉 게임에 경쟁이나 대전적 요소가 들어간다면 협업의 속성보다 조금 더 상위에 위치하게 되는 것이군요. 저도 <리그 오브 레전드>가 코옵이 아니라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점수가 팀 단위가 아니라 개인별로 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가 코옵이라고 부르는 게임들은 대체로 두 사람 사이의 경쟁이 완전히 없는 걸까요? 그렇다고 보긴 애매한 게, 게임 안에서도 간단하게 코옵을 하는 플레이어들 사이 대결을 시킬 때가 있거든요. 예를 들어 아까 얘기하신 <더블 드래곤>의 경우 마지막에 두 플레이어를 싸움을 시키죠. 이선인 평론가: 코옵 개념이 애매한 게임 중에 하나가 <아이스 클라이머> 인 것 같아요. 둘 중 하나가 화면 위로 전진하면 나머지 하나가 죽는 구조다 보니 거의 ‘우정 파괴 게임’이라 불리는데, 기본적으로는 협업을 시키는 게임이긴 하잖아요. 이경혁 편집장: 무엇을 코옵으로 부르는지 논하려면, 메카닉 자체보다도 코옵 개념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를 따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데요. 제일 먼저 오프라인 코옵과 온라인 코옵의 특성을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옛날 코옵'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서 이루어지는 코옵과 온라인 코옵은 서로 같을까요, 다를까요? 이정엽 교수 : 옛날의 코옵부터 얘기해 보면, 일단 기본적으로 한 장소에 있어야 되니까 주로 오락실이나 2인용 가정용 게임기가 있는 집에서 게임을 했고. 같이 플레이하는 사람들도 대체로 학교 친구나 형제자매 같이 현실 속에서 알고 있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았죠. 반대로 대전의 경우 오락실에서 하게 되는데, 물론 <스트리트 파이터> 같은 예외도 있었지만 보통 모르는 사람과는 코옵을 잘 안 했던 것 같아요. 오락실에서 모르는 사람과 를 하려면 최소한 ‘같이 하실래요?' 정도의 인사나 제안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좀 뻘쭘하잖아요. 이경혁 편집장: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저도 1인용을 하던 시절, 처음 보는 사람이 갑자기 옆에서 2P에 돈을 넣고 하는 걸 보고 부담스러워서 오락실을 나간 적이 있어요(웃음). 생각해 보면 대전 액션(에서의 조인)은 어떤 예절이 필요가 없고 동전 넣고 들어가서 이기면 내가 먹는 게 당연했죠. 하지만 PVE 아케이드 게임은 그렇지 않았는데 그 차이가 뭐였을까요? 이선인 평론가: 대전 액션의 핵심적 경험은 누군가가 내 상대를 해줘야지 연장되는 것인데, PVE 아케이드에서의 게임들은 결국 누가 (2P로) 들어오면 나의 경험을 해칠 수 있는 거잖아요. 나의 게임에 들어와서 잘해주면 다행인데 잘해줄 거란 보장도 없고 설령 잘한다고 하더라도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못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다 보니 내 경험이 파괴된다고 느끼는게 아닐까 싶어요. 이정엽 교수 : 그런데 <신야구(스타디움 히어로)> 같은 게임은 대전시에도 따로 매치를 해서 들어갔던 기억이 나거든요. 즉 대전도 예전에는 알고 있는 사람과의 대전이 일반적이었다가 모르는 사람과의 대전 개념이 생긴 게 <스트리트 파이터 2>가 보편화되면서부터였던 것 같아요. <스파 2>가 나올 때 그게 굉장히 센세이션했던 기억입니다. ‘옛날 코옵’의 복원을 꿈꾸는 ‘요즘 코옵’, 헤이즈라이트 스튜디오의 작품들 이정엽 교수 : 최근에 나오는 코옵 이야기를 해 보자면, 아마 <스플릿 픽션>과 <잇 테익스 투>를 만들었던 ‘헤이즈라이트 스튜디오’ 이야기가 제일 많이 나올 것 같긴 합니다. 사실 헤이즈라이트는 <브라더스>나 <웨이 아웃>을 통해 그 전부터 코옵을 해왔는데, 전체적으로 작품들이 게임 메카닉상으로 엄청나게 발전이 있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어요. 기본적으로 코옵 메카닉은 한쪽이 뭔가를 하면 다른 한 쪽이 거기에 대해 반응을 보여주어야 인터랙션이 완성되는 형태를 비슷하게 계속 쓰고 있다고 보여요. 그런데 그 이후 이들의 게임에서 무엇이 발전했는지 생각해 보면 바로 ‘내러티브’ 같아요. 예를 들면 처음에는 형제의 얘기였다가 두 번째는 같은 동료, 그 뒤에는 부부, 같이 글을 쓰는 작가 이런 식으로 시리즈 안에서 일종의 메타 서사 같은 느낌으로 서사가 발전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기존의 코옵은 승패가 분명하고 뚜렷한 형태의 목표가 있고 아케이드 안에서 서사가 그렇게 뛰어나진 않은 게임 위주였던 것 같은데, 이들이 코옵이라는 메카닉 안에 기존에 시도되지 않던 형태의 서사들을 넣어서 그 안에서 협업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코옵의 의미와 형태를 바꾸지 않았나 싶어요. 그게 진화라면 진화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선인 평론가: 제가 이번에 GG에 관련 글을 쓰는데, 헤이즈라이트의 전략은 배제적 방식을 쓴다는 점에서 독특하다고 생각해요. 이들이 배제하는 플레이 첫째가 AI를 이용한 1인 플레이를 금지하는 거였어요. TT 게임즈에서 만든 <레고 비디오 게임> 같은 경우도 2인이 풀어야 하는 퍼즐을 혼자서 플레이하면 AI가 자동으로 도와주는데 이 부분을 파기한 거죠. 둘째는 랜덤 온라인 매칭을 없애서 오히려 모르는 사람과는 절대 게임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겁니다. 전적으로 플레이어가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끼리 플레이를 하지 않으면 게임이 작동하지 않도록 만들어 놓은 것 같은데 아까 정엽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서사의 기능과 두 플레이어의 관계성이 만나는 지점 같아요. 이정엽 교수: 그렇죠. 저는 <스플릿 픽션>은 아들과, <잇 테익스 투>는 아내와 플레이했어요. 본래 관계가 이미 있는 사람들끼리 매칭을 시켜준다는 것 자체가, 사회적인 연결고리를 계속 맥락상으로 게임 안에 위치시키려는 전략 아닐까 해요. 제약을 많이 거는 거니까 그런 게 재미있는 부분이죠. 나보라 박사: 혹시 헤이즈라이트가 코옵에 천착하는 이유에 대해 따로 밝힌 바가 있었나요? 이정엽 교수 : 제가 알기로 디렉터가 원래 게임을 만들던 사람이 아니고 영화계에서 시나리오를 쓰던 분으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관계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에 시나리오의 초점을 맞추어 놓고 코옵의 메카닉도 이런 관계들과 매칭될 수 있게끔 맞춘 것 같아요. 이런 걸 보면 코옵에서 사실 (메카닉의 새로운) 방식을 더 이상 생각하는 게 어려운 것인데 그런 와중에 내러티브를 돌파구로 찾지 않았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보라 박사: 말씀을 들으면, 헤이즈라이트는 게임이라는 매체의 특성이나 메커니즘을 가지고 노는 게임이라기보다는 원래 (제작자가) 가졌던 어떤 영화적 시각을 토대로 게임이라는 매체를 활용한 느낌으로 들리네요. 역사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처음 <퐁>처럼 2인용을 기획한 형태의 게임이 나오다가, 기계의 성능이 올라가면서 1인용 플레이가 메인이 되었는데 그 와중에 여전히 2인용 게임들이 유지되면서 코옵 형태의 게임도 등장했을 것이라 예상하게 됩니다. 헤이즈라이트 이전에 코옵을 시도했던 게임은 어떤 의도로 만들었을까 궁금해집니다. 예를 들어 경쟁형과 달리 코옵형 게임은 게임 바깥에서 볼 때 어떤 비즈니스 모델상의 이점이 있었을까? 아니면 플레이 내적으로 봤을 때도 경쟁과는 달리 얻을 수 있는 뭔가가 있을 텐데 그건 무엇이었을까요? 이정엽 교수: 사실 오락실에서 코옵하게 되면 플레이 시에 쓰게 되는 동전의 개수가 더 많아지긴 합니다. <천지를 먹다> 같은 게임을 하면, 내가 동전 하나 넣어서 한 판을 플레이할 때보다 4명이 모여서 4배씩 넣을 때 게임 기대치도 4배 이상이었던 것 같아요. 혼자일 때보다 더 재미있게 플레이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치가 있었고 실제로도 같이 플레이했을 때 재미가 배가됐구요. 이경혁 편집장: <라이덴> 같은 게임은 주로 1인용 게임인데, 코옵을 하면 비행기 2대를 겹쳤을 때 추가 총알 효과가 나오는 혜택이 있잖아요. 그 이유가 기계 한 대에 1명보다 2명 분량의 동전이 들어가는 게 더 이득이기 때문일 겁니다. 즉 혜택을 더 줘서 플레이가 길어지더라도 수익률 이득을 위해 코옵을 시키는 게 좋은 거죠. 그래서 코옵은 하나의 기기가 돌릴 수 있는 시간당 수익률을 올리는 방향으로 의도된 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선인 평론가: 코옵을 할때 플레이어들이 잘 인지하지 못했던 함정이 있는데, 사실은 이런 벨트 스크롤 액션 게임에는 플레이어 수에 따라서 난이도 증감률이 있습니다. 문제는 제곱으로 올라간다는 것이지만요(웃음). 나보라 박사: 같이 한다고 쉬워지는게 아니고, 협조하니까 더 힘들어지는 역설적인 구조네요(웃음). 이경혁 편집장: 물론 상품적인 측면만으로 코옵을 다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아까 말씀하신 대로 어깨를 맞대고 하는 코옵의 즐거움이 따로 있을 겁니다. 기존의 코옵은 어깨를 맞댈 수 있을 만큼 친한 사람의 관계여서 가능한 즐거움이었다면 헤이즈라이트 시대의 코옵은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같이 한다는 것’의 의미 자체도 온라인 이전과 이후로 달라지지 않았나 싶거든요. 이정엽 교수: 이를테면 MMO 안에서 공대나 레이드를 꾸릴 때, 초기에는 정말 길드 안에서 무작정 사람을 모으는 방식이라 공대를 위해서는 먼저 직업 얘기부터 하고 각자 잘하는 것들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이 한 30분 정도 있었죠. 그래서 실은 공대를 꾸리는 과정 자체도 상당히 재미있었는데 지금은 자동 매칭을 시켜주니 재미가 덜한 느낌이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자동 매칭도 있고 전처럼 직접 유저를 인터뷰하는 게 아니라 아이템 평균 레벨이나 클리어 업적이 얼마고, 토익 점수같이 스펙처럼 계량화가 되는 부분이 있죠. 이런 얘기가 ‘온라인을 베이스로 이제 우리는 어떤 소통이 더 가능할까’라는 얘기로 계속 이어지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온라인을 통해서 정보는 확실히 거리에 상관없이 실시간 연동되지만, 반대로 우리 게임 세계에는 온라인만으로는 전달할 수 없는 정보를 갖고 있는 네트워크라는 게 있다는 걸 재발견할 기회도 생기는 듯 해요. 예를 들어 나보라 박사님과 제가 원거리에서 <웨이 아웃>을 그냥 같이 하는 것과 디스코드를 열어 놓고 하는 건 다르죠. 디스코드로 우리의 대화를 보면 게임 얘기만 하는게 아니라 다른 얘기도 엄청 하거든요. 단순히 청각 레이어가 하나 더 들어갔을 뿐인데 거기에 또 다른 (네트워크의) 레이어가 하나 더 들어가는 거죠. 다른 예시로 저와 연우 씨가 앉아서 <스플릿 픽션>을 같이 한다면 물리적 공간이 가까우니 디스코드에서의 딜레이조차도 사라지고 더 추가되는 맥락들이 있을 겁니다. 즉 네트워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코옵과 가까이에서의 코옵은 좀 다른 것 같아요. 헤이즈라이트의 코옵은 옛날 우리가 겪었던 그 코옵의 재현은 아닌거죠. 나보라 박사: 인터넷이 생기면서 예전에 아케이드 시절에 실제로 어깨를 부딪히면서 하던 직접적 코옵 경험이 온라인으로 넘어오면서 여러 형태로 확장됐잖아요. 같이 게임할 수 있는 사람들의 규모도 커졌고 생판 모르는 사람하고도 친해져서 게임을 할 수 있고. 그러다가 지금은 사람들이 그런 네트워킹을 번거롭게 여기면서 다시 그 과정이 자동화돼 버리고 생략되는 흐름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와중에 헤이즈라이트라는 스튜디오는, 온라인임에도 불구하고 과거 오프라인에서의 그 어떤 끈끈했던 관계성을 살리고 싶어 하고 그걸 추구하려는 개발사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온라인 시대 코옵의 다양한 형태와 관계의 재구성 이정엽 교수: 요즘 유튜브 게임 라이브 방송을 보면 플레이할 때 옆에서 같이 댓글들을 치잖아요. 그 댓글의 느낌이 마치 우리가 오락실에서 예전에 했던 코옵과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이제는 그 느낌을 1대 1로 직접적으로 하기보다 아예 사회적으로 틀거리가 만들어져 있는 방송 채널에서 익명성을 담보한 상태로 하는 것이고, 굳이 누군가와 사회적인 관계를 맺을 필요는 없으나 경험은 왁자지껄한 느낌으로 소비했으면 좋겠다는 방식의 생각들을 많이들 하는 것 같아요. 즉 지금 세대가 (과거) 코옵의 느낌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돼 있다 보기는 어렵고, 나름대로 코옵과 비슷한 형태의 사회적 느낌을 이런 식으로 다양하게 발설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만 매체나 형식이 좀 다를 뿐이지요. 이경혁 편집장: 게임 라이브 채팅창은 옛날 오락실에서 동네 꼬마들이 옆에 앉아서 ‘아저씨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요 제가 깨 드릴까요?' 이런 느낌 아니에요? (웃음) 아주 넓은 의미로 코옵을 얘기한다면 오락실에서 옆에서 그거(훈수) 하는 것도 코옵이네요. 이정엽 교수: 당시에도 그런 게임들 할 때 보면 옆에서 계속 지켜보면서, 동네 형들이 대체 어떤 기술을 가지고 플레이를 하는지 지켜보는 것 자체가 그 게임을 플레이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이 맥락은 사실 기존에는 코옵보다는 ‘보는 게임’의 맥락으로 많이 해석되곤 했죠. 이걸 코옵의 맥락으로 가져와서 잘 섞어서 생각해 보는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코옵의 형태를 극단적으로 주장해 보자면 인터넷 라이브의 형태로도 간다고 얘기해 볼 수도 있을 것 같구요. 요즘은 라이브 중에 왼쪽 길로 갈지 오른쪽 길로 갈지, 누구를 살릴 것인지 시청자들에게 투표를 받기도 하잖아요. 다들 투표만 하는 게 아니라 되게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요. 이정엽 교수 : 그렇죠. 같은 게임을 보면 실제로 컴퓨터를 만지는 사람은 한 명인데 주변에 다른 사람이 매뉴얼을 보고 뭘 하라고 도와주지요. 플레이어와 비 플레이어간 비대칭성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그런 형태의 비대칭도 코옵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도 진짜 코옵이라고 생각합니다. 매뉴얼을 보고 무엇을 누르라고 일러주는 사람이 따로 없으면 게임 자체가 성립을 안 하고, 혼자서 플레이할 때 매뉴얼을 보고 자신이 그냥 입력을 해버리면 답안을 다 보고 찍는 셈이 되는 거니까 게임 자체가 재미 없어지게 되니까요. 이선인 평론가: 얘기를 듣다 보면 희한하게 느껴지는 게, 온라인으로서의 연결이 이상하게도 어떤 직접적인 협응은 잘 안 되는 것 같은데 방금 말씀하신 부분 같은 간접적인 협응은 오히려 되게 잘 작동한다는 느낌이 있거든요. 예를 들면 <데스 스트렌딩> 같은 게 대표적이지요. 그것도 코옵으로 보게 된다면 온라인적 특성이 강화되면서 실시간적 직접적 협응보다는 간접 협응이 더 강해지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정엽 교수: 온라인으로 맺어졌다고 해도 완전히 단절은 아닌 게, 모바일 <포켓몬 고>를 할 때 레이드 매칭을 쉽게 해주는 형태의 ‘포켓 레이드' 같은 앱들이 나오고 있어요. 시간이 한정되어 있는 전설 포켓몬을 잡기 위해 전 세계에 있는 사람들과 빨리 친구를 맺어서 그룹화하는 과정을 지원해 주는 앱이에요. 그래서 실제로 레이드가 끝나면 친구를 바로 끊기도 하고 안 끊기도 하는데. 저는 레이드를 돌다 맺어진 친구들과 깊은 소통은 아니지만 계속 선물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이어 놓아서, 다음에 규모가 더 크고 익명으로 사람을 모아 가기 어려운 레이드를 뚫어갈 때 도움을 받곤 해요. 그들과 실제 대화도 자동번역 시스템으로 간단한 말만 주고받은 적밖에 없지만, 그 친구가 온라인에 들어와 있을 때는 바로 ‘우리 같이 누구 잡으러 갈까’ 이런 느낌이 들거든요. 그 친구가 들어와서 나를 초대하기도 하고 제 초대를 그가 받아주는 확률도 높고요. 이런 건 아주 진한 유대관계는 아니지만 가느다란 형태로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관계죠. 그래서 모르는 사람과 플레이하지만 제가 맺었던 관계가 코옵이냐라고 물으면 저는 코옵이 맞다고 생각이 돼요. 이경혁 편집장 : 저는 정엽 선생님과는 반대 입장인 것 같아요. 어느 순간부터 온라인이라는, 데이터만을 전송하고 주고받는 환경에서 이룰 수 있는 관계가 새로 구축되면서 그 이전에 어깨를 부딪히던 코옵에서 있었던 관계를 우리는 아예 말할 수 없게 된 것은 아닌가 싶거든요. 이 관계가 어떻게 보면 기존보다 얄팍해졌다고 표현해도 될 것 같은데, 온라인 네트워크 이후에 지배적인 환경이 된 변화로 볼 수 있는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이정엽 교수: 게임 시스템들이 서로 깊은 관계를 못 맺도록 그걸 계량화시키는 부분이 있지요. ‘포켓 레이즈’도 결국 똑같긴 해요. 유저들끼리 서로 타이핑으로 대화할 수야 있지만 지금 당장 빨리 몬스터 하나를 잡아야 하는데 거기서 무슨 채팅을 치고 그러겠어요. 사실 상호관계의 지원이야 현재의 게임이 충분히 해줄 수 있는 거고, 또 음성 채팅까지 넣을 수 있겠지만 그런 관계의 구축이 되지 못하는 것은 게임이 인터페이스적으로 사람과 사람 간의 사회적 교류를 차단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봐요. 그래서 게임을 (협업보다는 각자) 빨리 플레이해서 어떤 소기한 목적을 이룰 수 있게끔 하는 힘이 되게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환경이 그렇게 바뀌었기 때문에 헤이즈라이트가 집중하는 그 코옵이 우리에게 더 특별하게 다가오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지금의 어떤 데이터로 거래되는 베이스의 게임 내 관계는 코옵이 아니야, 우리가 생각하는 진짜 코옵의 재미는 여기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고. 지금 같은 익명 베이스의 랜덤 매칭으로 돌아가는 게임 환경에서 모르는 사람과 게임을 해봐야 재미가 없다라는 컨셉으로 익명의 랜덤 매칭을 배제했다는 게 큰 차이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저는 이 게임 시리즈를 보면 매번 가슴이 약간 짠한 구석이 있어요. 노스탤지어를 느끼기도 하고요. 이선인 평론가: 그렇다면 노스탤지어가 처음부터 없는 사람들은 이 게임을 어떻게 느낄까요? 이정엽 교수: 아들이랑 <스플릿 픽션>을 했다고 했었는데, 제 경우 게임 서사가 어려운 편이다 보니 아들이 그 서사를 완전하게 다 공감을 했는지는 알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그 게임을 하면서 ‘아빠 여기서는 이렇게 해야 돼' 하면서 저와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좋아진 건 있어요. 나보라 박사: 저 같은 경우 남편이나 아들과 <마리오 오딧세이> 같은 게임을 참 많이 했거든요. 헤이즈라이트와는 또 다른 형태의 코옵이 거기에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경혁 선생님 이야기와 연결될 수도 있겠는데 게임이 ‘게임 디자인’과 ‘게임 플레이’의 영역이 나뉘어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어떤 디자인의 게임이든지 간에 근본적으로 플레이의 영역은 코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게임 디자인 자체는 서로 때리고 죽이는 게임일지라도 플레이하는 영역에서는 사실은 ‘야 왼쪽 쳐봐 오른쪽 쳐봐’ 이런 식의 플레이가 일어날 수 있는거죠. 즉 게임의 플레이라는 것 자체가 근본적으로 Co-operative한 성격을 가지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현 단계 코옵의 두 가지 방향성 이정엽 교수: 예전에 세가에서 나온 <버추어 스트라이커>라는 축구 게임을 하면서 ‘왜 축구 게임은 한 명의 플레이어가 여러 명의 선수를 동시에 컨트롤하지? 각자 한 명의 선수만 컨트롤하면서 22명의 플레이어가 같이 하는 축구 게임은 없을까?'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요. 아마 과거엔 기술적 한계가 있었겠지만, 사실 요즘의 코옵도 대체로 최대 플레이어 수가 4-5인 정도고 그 이상은 잘 못 본 것 같거든요. 즉 우리가 게임이 발전을 굉장히 많이 했다고 표현하지만 전부 보면 1인이나 2인 플레이 중심으로 빠른 랜더링이나 품질들을 높이기 위한 형태의 기술적 발전에 초점을 맞췄지 실질적인 메카닉 차원에서 여러 명의 협업을 동시에 하는 게임들을 지원하는 데까지는 발전하지 못하지 않았나 생각이 드는데요. 다들 어떠세요? 나보라 박사: 그건 꼭 기술의 문제라기보다는 휴대폰 연락처가 천 명이 넘어가도 결국 자주 연락할 수 있는 인간의 수는 정해져 있는 것처럼, 인간이 기본적으로 의미 있는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상대의 수라는 게 한정될 수밖에 없는 차원의 문제가 아닐까요? 이정엽 교수: 실제로 그런 형태의 인터페이스가 지원되는 게임이 만들어질 경우, 상용화는 어렵겠지만 테마파크 같은 곳에서만 집중적으로 돌리면 될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저는 그래서 <스타크래프트>가 출시 당시 8명까지 동시에 대전을 할 수 있어서 굉장히 특이하게 느껴졌어요. 그 8명이 모였을 때의 경험, 플레이어 수 자체가 주는 어떤 베리에이션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저는 1대 1일 때 <스타>가 그렇게 재밌지 않았는데 4대 4가 되면 왁자지껄한 느낌도 들고 코옵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거든요. 이경혁 편집장: MMORPG에서의 PV 레이드도 비슷합니다. 제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40인팟 공대장을 해 보니 분명히 짜릿한 순간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와우가 정원을 결국 25명으로 줄였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도 알겠더라구요. 공격 들어가기 전에 전투 준비 체크를 누르면 40명 전원에게 모두 ‘준비되셨습니까?' 메세지가 가고 응답을 받아야 되는데, 정말 40명이 한 번에 다 바로 동의한 적이 없어요(웃음). 진짜 미쳐버리겠더라구요. 다인 플레이에서 컨트롤되는 범주라는 게 한계가 있다는 걸 이젠 모두가 아는 것 아닐까요. 즉 여러 사람이 게임을 함께 했을 때 재미라는 게 원천적으로는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는 그걸 이미 디지털 게임 이전에 어렸을 때 같이 놀면서도 다 알고 있었고요. 그래서 22명의 축구 선수를 뛰게 만드는 게임도 요즘 기술로는 가능하겠지만 현실적인 차원의 문제가 따로 있는 것 같아요. 이선인 평론가: 우리가 계속 게임에 함께할 수 있는 플레이어 숫자 이야기를 했잖아요. 근데 이게 일정 숫자를 넘어가면 사실 그때부터는 플레이가 아니라 거의 '페스티벌'인 것 같습니다. 한 4명까지는 아폴론인데 8명쯤 넘어가면 이제 디오니소스예요(웃음). 그래서 아곤이랑 알레야가 없고 일링크스밖에 없습니다(웃음) 혼란스러운데 사실 그 재미로 노는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플레이어 숫자가 늘어나면서 그 재미가 되게 그라데이션으로 변하죠. 그러나 디지털 공간은 어쨌든 계산된 놀이 공간인 거고, 혼돈이라는 것을 허용하기 어려운 규칙이 있다 보니까 40인팟에서 25인팟으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코옵 얘기로 돌아가면 이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여요. 그 밖에 있는 계산되지 않은 형태의 커뮤니케이션들이 배제된 상태에서의 재현이 디지털 코옵인 건 아닐까요. 다만 그것이 요즘 같은 시대에는 어떤 디지털 게임의 한계로 이해되기보다는 오히려 확장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나보라 박사: 그러니까 온라인 시대가 열리면서 두 가지 코옵의 방향성이 열린 셈인데요. 하나는 헤이즈라이트 스튜디오처럼 오프라인 시대의 코옵의 특성을 다시 살려보려는 방향성이 있는 거고, 다른 하나는 Co-operative한 것을 오프라인과는 다르게 계속해서 확장하려는 방향이 있는거고, 이렇게 코옵이라는 것이 구축된 것이 아닐지요. 그래서 전자는 코옵이라는 장르를 딱 잡고 나가는 거고, 후자의 경우 코옵이라는 장르로 분류하지는 않겠지만 스스로를 어쨌든 온라인이라는 세상 속에서 확장된 코옵이 어디까지 가능할지, 우리가 물리적 세계에서는 한 50년 이상의 인맥을 관리하기 힘든데 온라인의 경우에는 어쩌면 더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실험을 해 왔던 것이고 그 예시 중 하나가 아까 말씀하신 MMO 시대의 레이드가 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이정엽 교수: 우리가 디지털 코옵의 시대로 가면서 인터랙션을 다양하게 주기보다 계량화, 간소화를 통해 게임 플레이에만 집중하게 한다는 얘기를 했었지요. 그게 어떻게 보면 제약을 많이 두는 셈인 건데 제약 자체가 늘 코옵을 방해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도 들어요. 전에 서로 대화를 나누기 어려운 게임을 했을 때, 어떤 유저에게 도움을 받아서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어서 필드 위에서 이렇게 하트 모양으로 열심히 걸었던 적이 있어요. 그게 제약 속에서 제가 타인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던 방식인데, 제약을 계속 걸면 그 안에서 주어진 제약 안에서 어떤 형태로든 메시지를 표현하려고 하는 게 또 인간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 디지털 게임 시스템이 주어진 시간 안에 빠른 형태의 게임 플레잉을 유도하고 있지만, 플레이어들이 항상 거기에 맞춰서만 플레이를 하는 게 아니라 삐져나와서 자기만의 전유를 하는 느낌들을 계속 만들어내는 것도 코옵에서 볼 수 있는 흥미로운 매력 같습니다. 아까의 유튜브도 그런 식의 효과 같거든요. 그게 같이 있다는 느낌 혹은 공동의 어떤 목표가 이루어졌다는 느낌을 공유하게끔 만드는 거라서. 그래서 저는 최근의 게임 디자이너들이 그런 사례를 잘 활용해서 약간의 숨통을 틔어주는 커뮤니케이션적 요소들을 잘 활용하면, 지금 이렇게 계량화된 게임 세계 안에서도 플레이어들이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게끔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이경혁 편집장: 정리해보면, 어쨌든 제작자건 플레이어건 모든 사람들에게 ‘같이 하는 게임이 매우 재미있다’는 전제는 동일한 것 같아요. 다만 말씀하신 대로 그 같이 한다는 즐거움을 어떻게 풀 것인가에 대해서 제작자들 각자의 해법이 있는 거죠. 예를 들어 헤이즈 라이트는 아까 얘기한 대로 우리가 생각했던 그 코옵을 추구하고, MMORPG나 기타 협동 게임들은 기존과는 조금 다른 협업을 추구하는 것이고요. 제작자들의 입장이 그렇다면 플레이어들은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모여서 방송이 될 수도 있고 여러 방식으로 재밌는 걸 해 나가는 입장인 것 같고요. 그 중에 우리가 이야기하는 ‘코옵’이라는 건 하나의 장르로서 이야기되는 어떤 한 지점일 것이다, 정도로 개인적인 정리를 해볼 수 있을 듯합니다. 각자가 나름의 방식대로 코옵에 대한 이야기들을 정리하셨으리라 생각하며 대담회를 마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Tags: 코옵, 이경혁, 나보라, 이정엽, 이선인, 헤이즈라이트, 잇테익스투, 웨이아웃, 스플릿픽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수 문화와 지식, 공간과 학술 장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합니다. 게임의 역사와 게이머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김재석

    8년 동안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서브컬처 스타트업에서 대외협력을 맡고 있다.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김재석 김재석 8년 동안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서브컬처 스타트업에서 대외협력을 맡고 있다.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Read More 버튼 읽기 In Search of Our UX: Remembering Arcade Co-op Play Back then, there was a kind of ritual among my schoolmates. No matter what games we played, the final stage of the night was always . Gals Panic, put simply, was a territory-capture style game where you control your marker in 8 direntions-up, down, left, right, and diagonally-to claim areas and win. 버튼 읽기 누가 미국을 묻는다면 패드를 들어 GTA를 플레이하게 하라 이토록 GTA는 찬사와 공격, 열광과 거부를 동시에 받아왔다. 한편에서는 미국 사회를 가장 정확하게 묘사한 문화적 기록물로 평가받고, 다른 한편에서는 국가·도덕·질서에 대한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공격받았던 것이다. 2기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통치가 점입가경으로 치닫는 지금, 미국이라는 지리적, 문화적 배경 속에서 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쉬지 않고 꺼내온 GTA 시리즈가 지니는 의미는 남다르다 할 수 있겠다. 버튼 읽기 GGOTY 2025: 2025년 GG가 뽑은 올해의 게임과 사건들 게임제너레이션(GG)은 2025년을 돌아보며 총 27명의 필자를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습니다. ‘올 한해 출시된 게임 중 가장 주목했던 게임’(최대 3개까지 중복 답변 가능)과 그 선정 이유, ‘2025년에 접하신 사건, 책, 논문, 보고서, 영상 중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2025년 GG에서 가장 인상깊게 본 글’과 그 이유 등을 물었습니다. 우리는 2025년을 어떤 시간으로 기억할까요? 버튼 읽기 확률형 부분유료결제 앞에서의 EA가 마주한 고민 포인트를 구매할 수 없으면, 얼티메이트 팀을 구성할 수 없으므로 한국 시장에 은 핵심 요소가 사실상 탈거된 상태로 시장에 출시되었다. EA는 얼티밋 에디션과 FC 포인트 판매 제외의 이유에 관해 "국내법 변경으로 인해 한국에서 FC 포인트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다. 한국 유저들이 7월 17일부터 선수팩, 드래프트, 소모품, 진화에 사용하는 FC 포인트를 구매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소개했다. 국가의 규제와 게임사의 사업 전략이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다. 버튼 읽기 눈 먼 돈 사냥: 멈춰버린 메타버스와 살아있는 메타버스 진흥법 그 시절의 보도자료 중 대부분은 메타버스-NFT&P2E 소식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모든 기업이 '메타버스'를 선언했다. 게임사는 물론이고 통신사, 제조사, 심지어 은행까지 너도나도 메타버스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그들의 보도자료는 놀랍도록 비슷했다. 실체가 모호한 가상공간 그림 몇 장에 'MOU 체결', '생태계 확장', '미래 선도' 같은 단어들이 버무려져 있었다. 블록체인 기술은 메타버스를 완성할 열쇠처럼 여겨졌다. 버튼 읽기 25년의 심즈, 내일의 인조이 게임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국가의 경영과 역사 속 전쟁, 용과 엘프가 나오는 판타지,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의 생존은 훌륭한 게임 소재다. 그렇지만 컴퓨터 조립(PC 제작 시뮬레이터)이나 트럭 운전(유로트럭), 자동차 조립(카 메카닉 시뮬레이터)처럼 비교적 사소한 일들도 게임이 된다. 버튼 읽기 포스트 코로나 시대, 게임쇼의 미래를 묻다 ‘게임기자가 되면 뭐가 좋아요?’. 최근 술자리에서 진로를 고민하던 후배가 물었다. 쉽게 답하기 어려운 대답이었다. 필자는 게임기자를 대변할 깜냥도 없을뿐더러, 글밥을 벌어 먹고사는 것이 날로 어려워진다는 사실은 굳이 게임기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아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버튼 읽기 어린이를 위한 게임은 없다 도발적인 제목을 들고 왔지만, 놀랍게도 필자는 어린이가 아니다. 더 놀랍게도 필자는 아직 2세가 없다. 당사자성이 없는 사람이 어린이와 게임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대단히 조심스러웠다. 게임제너레이션(GG) 편집장으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가정에 어린이가 있는 필자를 새로 구해보시는 게 어떠냐'라고 완곡하게 돌려 말했다. 편집장은 '어린이가 없는 입장이 보다 객관적'이라고 답했다. GG 편집진의 고약한 취미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버튼 읽기 셧다운제부터 게임 사전심의까지 - 21대 국회에서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 그럼에도 유독 지난 국회에서는 ‘친게임’이라 부를 만한 국회의원이 다수 활동했으며, 유의미한 성과를 기록했다. 게임이라는 의제에 대한 정치권의 높은 관심은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어져 각 정당의 대통령 후보들이 게임 정책을 힘주어 발표하거나, 게임 전문 유튜버, 매체와 인터뷰를 가지기도 했다. 버튼 읽기 하이파이 러쉬: 2023년의 깜짝 락스타를 놓치지 마시라 기라성 같은 게임이 대단히 많았기에 게임 업계 종사자들은 으레 올해를 풍년이라고 부르곤 했다. 올해는 한국에서도 과 <데이브 더 다이버>가 '쌍백만'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새로운 희망을 보여줬다. 대한민국 게임대상을 두고 두 게임이 경쟁했던 일화는 훗날에도 오래 기억될 만하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올해의 게임을 고르기 어렵다'라는 이야기가 나왔던 2023년. 리듬+액션 게임 <하이파이 러쉬>(Hi-Fi Rush) 또한 빠져서는 안 될 수작이다. 버튼 읽기 현황점검: 플랫폼 인앱결제의 오늘 카메라 앞에 선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청바지 주머니에서 아이폰을 꺼내든 것이 2007년의 일이다. 사람들 주머니에 통화도 되고, MP3 플레이어도 되고, 동영상 재생기도 되는 스마트폰이 담기기까지 채 10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유저들은 ‘그 작은 기계로 무슨 게임이냐’라는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즐기고 있다. 버튼 읽기 메타버스, 호흡을 고르고 냉정하게 바라보면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메타버스가 오고 있다”고 발언했다. 에픽게임즈 CEO 팀 스위니도 10억 달러 규모 투자를 유치하고 메타버스를 핵심 비전으로 언급했다. 마크 저커버그는 "향후 5년 후에 페이스북을 메타버스 회사로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펄어비스와 텐센트도 메타버스를 주요 아젠다로 언급했고, 지난 NDC에서도 넥슨 김대훤 부사장이 “더이상 게임 회사, 게임 산업이라는 말을 쓰지 말자” 제안했다. 다분히 메타버스를 의식한 발언이다.

  • [Editor's View] 네트워크 시대에 새롭게 자리잡은 협동의 의미에 대하여

    온라인 네트워크의 대중화는 디지털게임에도 큰 영향을 미쳐, 이제는 함께 하는 게임이라는 개념이 싱글플레이보다도 보편적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코옵CO-OP이라는 말은 어쩌면 당대의 모든 온라인게임을 아우를 수 있는 말인 것 같지만, 실제 이 말이 사용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어색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 Back [Editor's View] 네트워크 시대에 새롭게 자리잡은 협동의 의미에 대하여 28 GG Vol. 26. 2. 10. 온라인 네트워크의 대중화는 디지털게임에도 큰 영향을 미쳐, 이제는 함께 하는 게임이라는 개념이 싱글플레이보다도 보편적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코옵CO-OP이라는 말은 어쩌면 당대의 모든 온라인게임을 아우를 수 있는 말인 것 같지만, 실제 이 말이 사용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어색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코옵이라는 말의 역사적 연원과, 오늘날의 사용방식을 생각하며 우리의 협동 게임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생각해봅니다. 멀티플레이가 보편적인 시대임에도 우리가 코옵이라고 부르는 것은 때로는 장르적이며, 때로는 좁은 의미입니다.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코옵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미가 작용했을 것입니다. 코옵을 이야기함에 있어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온라인이라는 개념의 도입이라고 생각합니다. 온라인 이전의 코옵과 온라인 이후의 코옵은 확실히 다릅니다. 우리는 두 코옵을 같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변화 과정에서 코옵은 새로운 협동을 얻거나, 혹은 기존의 코옵 중 무언가를 잃었습니다. 무엇이 더 낫고 덜하다는 가치평가를 넘어서 우리는 코옵의 변화를 읽고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온라인에서 사람을 만나고 협동하는 일은 동시대의 온라인 기반 사람들에게는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두근거리는 일입니다. 같은 맥락은 놀이에서의 코옵에도 일어나는 듯 싶습니다. GG 28호는 그 코옵에 시선을 두었습니다. 1970년대에 지구촌이라는 개념과 함께 네트워크로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공동체로 엮이는 듯한 변화를 겪었음에도 우리는 도리어 그 하나된 네트워크 안에서 더욱 강렬하고 적대적인 사람들의 모습을 봅니다. 어쩌면 그 해답을 코옵의 변화에서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In Search of Our UX: Remembering Arcade Co-op Play

    Back then, there was a kind of ritual among my schoolmates. No matter what games we played, the final stage of the night was always . Gals Panic, put simply, was a territory-capture style game where you control your marker in 8 direntions-up, down, left, right, and diagonally-to claim areas and win. < Back In Search of Our UX: Remembering Arcade Co-op Play 28 GG Vol. 26. 2. 10. ***You can see the Korean version of this article at: www.gamegeneration.or.kr 우리의 UX를 찾아서: 오락실 코옵을 추억하다 그 시절 같은 학교 친구들에게는 일종의 의식이 있었다. 무슨 게임을 하든 가장 마지막 코스는 <갈스패닉 S2>로 플레이하기로 한 것이었다. <갈스패닉>이란 쉽게 말해 땅따먹기 게임으로 상하좌우에 대각선까지 8방향으로 기체를 조작해 구역을 확보하면 승리하는 게임이다. 여기까지만 설명하면 거짓말에 가깝다. <갈스패닉>에서는 땅을 따먹으면 그 구역에는 ‘갈’이 등장했고, 특정 퍼센테이지를 완수하면 온전한 일러스트를 볼 수 있었다. 이 게임의 핵심 인기 요인은 일러스트였다. Every evening, the arcade was filled with passionate cheering Back then, there was a kind of ritual among my schoolmates. No matter what games we played, the final stage of the night was always . Gals Panic , put simply, was a territory-capture style game where you control your marker in 8 direntions-up, down, left, right, and diagonally-to claim areas and win. But stopping the explanation there would be almost a lie. In , once a territory was claimed, a “gal” appeared within that space, and upon reaching a certain percentage, a complete illustration was revealed. The game’s core appeal lay precisely in those illustrations. That was why, at the machine tucked away in the far corner of the arcade, cooperative play emerged as a means of meeting the game’s requirements. Whoever happened to have the most spare change that day became the sponsor, while the friend with the best control took the seat. Others called out incoming bullet patterns or the remaining time; some explained the next pattern, others how to trap enemy monsters. Since this was an era when you couldn’t photograph the finished result with a phone camera, the only option was to take the illustration in with your eyes. Everyone tried their hardest to store the image in their memory. This user experience (UX) is precisely the intriguing story I wish to tell. The arcade was, in every sense, a space optimized for cooperative play (Co-op). Beyond the previously mentioned Gals Panic, many other games also featured Co-op play. By virtue of the arcade’s nature—a place where many people gathered in the same physical space—even those who were not seated at the machine could participate, communicating with one another and collectively working through puzzles. In Search of Our UX In retrospect, the arcade was a space especially suited to two-player games. Most arcade machines were equipped with two seats, which naturally led to many games structured around competition between Player 1 and Player 2—but there were just as many that emphasized working together toward a shared goal. The first game that comes to mind is . Although the game was designed to allow players to choose from four characters—snow, lightning, water, and wind—in arcades it was typically limited to two-player play due to hardware constraints. Much of the fun lay in each player trapping monsters into balls and then bursting them at precisely the right moment. Belt-scrolling action games like the arcade versions of and could be said to represent the very essence of Co-op play. Two players would sit shoulder to shoulder at a cramped machine, bumping into one another as they frantically mashed the buttons. A quiet ethic of generosity was at work: yielding health recovery items to each other, or giving up buff items—or weapons—that would better suit the other player’s character. We would exchange high fives after clearing a mission, and at times, even if I had survived, I would gladly drop another 100 won to revive Player 2 rather than continue alone. Yes—paying money for someone else’s play was considered an undeniably cool thing to do in the arcade. Unless one resorted to unacceptable behavior—taking over someone else’s game, extorting money in a nearby shady alley, or secretly adding credits with a coin-up trick—everyone had to insert a 100-won coin into the machine to play. Within this strict 100-won rule, the reciprocity of sharing one’s single credit can occasionally be found in the online gaming era, in practices like quietly slipping help to newcomers. Even then, the weight of the gesture is different—it is often merely a veteran player distributing a fraction of their surplus resources. The Happiness of 100 Won With a bit of humor, the rule that everyone had to put in 100 won per game can be directly linked to what we now call P2W—Pay to Win. Because players who kept feeding more coins into a given machine naturally became more skilled, those who invested heavily in a game held a clear advantage in PvP. Once a player’s skill surpassed a certain threshold, however, they became a kind of “monster” who could see an entire game through on a single coin—earning the wary glances of the arcade owner. There was someone who would insert just one 100-won coin and spend the entire day playing , defeating everyone who challenged him. Soccer games were popular then, as they are now, so many people were waiting to play, but because he dominated the machine, its turnover rate was extremely low. In the end, what stopped him was an anonymous tip reporting that he was skipping mandatory evening self-study to be at the arcade. Friends much younger than him speculated that it was probably the arcade owner who had made the call. My personal favorite arcade game was , a shooter developed by Psikyo. I was completely absorbed by its distinctive Japanese look and feel and its thrilling gameplay. I would often walk with a close friend to a neighboring district’s arcade that had a cabinet, and that journey itself feels incomparable to anything today. In 2022, who would walk twenty minutes just to pay 100 won for a single round of a game? Game magazines existed, but it was difficult to find arcade strategies in them at the time, so during those twenty minutes on foot, my friend and I would discuss which characters to choose and how we might clear each stage. In , there was a hidden character named Ain. By inputting the command up, up, up; down, down, down; up, up, up, up, up, up, up on the selection screen, the character could be unlocked. Choosing such a hidden character for someone who didn’t know the command could itself be seen as a form of cooperation. In that sense, Co-op also functioned within PvP games like . Much like selecting “Orochi Iori” for a friend in KOF ’97—officially known as Insane Iori with Blood of Orochi Under the Night of the Moon. 3 Meters to a ‘Real-Life fight’ Couples often played games like or at the arcade. The sound of laughter, mixed with the rapid pounding of domed buttons, remains part of the memory. In many ways, feels like it presented a prototype for , which was named Game of the Year by multiple outlets in 2021. Both are two-player games, and both carry the risk that excessive immersion in play can result in damage to the relationship itself. Back when I was a regular arcade-goer, I once witnessed a couple arguing while playing , with one accusing the other of not going easy on them—“Why won’t you let me win?” In truth, fights between couples were usually just playful affirmations of affection, often endearingly minor in scale. But during competitive fighting games, there were occasions when disputes between two burly men escalated to the point that all gameplay in the arcade came to a halt. At the arcade in my neighborhood, there was once a physical fight during after one player repeatedly used Devil’s laser attacks, prompting the other to shout, “Stop using cheap tactics.” In arcade fighting games, after all, your opponent’s face sits directly across from your own. What Does Offline Co-op Mean to Us Today? We now live in an online era. Even to play —a game often regarded as a tribute to offline Co-op, with its many embedded mini-games—two people no longer need to meet in the same physical space. With a single click on an online “invite friend” button, they can depart together into the game world. So what meaning does offline cooperative play still hold for us? To be sure, the Nintendo Switch still offers many excellent party games, and even without software, solving puzzles together at an escape room café could also be considered a form of Co-op. Yet offline Co-op seems to have been pushed out of the mainstream, relegated to the realm of nostalgia. The experience of multiple people reacting together to a single screen is becoming a special event rather than an everyday occurrence. When offline Co-op in arcades was at its peak, access to the internet for new information was (relatively) scarce. Few households had consoles or PCs capable of running games, and of course, not everyone carried a phone in their pocket. The only way to leave a record of one’s play was to inscribe one’s initials on the leaderboard. In offline Co-op, each and every game mattered. In the online era, access to “a single game” has improved beyond comparison. Yet alongside this, we also see people who, shielded by the veil of anonymity during gameplay, unleash words they would otherwise hesitate to utter. In online random matchmaking, people sometimes insult casually—and disappear just as casually. Having lived through both eras, this is not an attempt to claim that “the arcade days were better.” The offline Co-op culture of old arcades also included various abuses carried out by so-called neighborhood toughs. Nevertheless, if we take the term UX literally—as the totality of user experience—then the distinctive environment of the arcade explored here deserves to be recorded as a special chapter in the history of game UX.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김재석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Researcher in Cultural Studies) Jisu Kim I am interested in a variety of topics concerning culture, knowledge, space, and learning environment. The history of games and the life of gamers are also something that fascinates me.

  • 몰입은 정말 즐거움의 중심에 있는가? - 칙센트미하이의 flow를 다시 생각하다

    2021년에 출간된 는 바로 그 생략을 지적한다. 제목을 한글로 옮기면 “몰입에 반하여”가 되듯, 이 책은 몰입 이론의 무분별하고 무비판적인 사용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관건은 몰입 이론의 옳고 그름을 판정하자는 것에 있지 않다. 오히려 이론을 충분히 재검토해서 이 개념이 어떤 맥락에서 등장했고, 어떤 가치를 전제하며, 사회적으로 어떻게 작동해왔는지를 추적한다. 몰입의 반대나 해체가 아닌 재검토에 가깝다. < Back 몰입은 정말 즐거움의 중심에 있는가? - 칙센트미하이의 flow를 다시 생각하다 28 GG Vol. 26. 2. 10. 주변을 잊게 만드는 경험, 몰입 게임을 하다보면 어느새 훌쩍 지나간 시간에 놀랄 때가 있다. 행동 하나하나 의식하기보다 자연스럽게 게임의 흐름에 몸을 맡기듯 즐기게 되는 순간. 항간에 ‘시간 순삭’ 게임이라고 평가되는 <뱀파이어 서바이버즈>나 <문명> 시리즈의 리뷰에서는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아침이 됐다”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모든 게임이 그런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은 게임을 즐기며 빠져드는 경험을 겪는다. 이를 설명할 때 자주 사용되는 개념으로 ‘몰입’ 또는 ‘플로우(flow)’가 있다. 몰입이란 하나의 활동에 깊이 빠져든 상태에서, 자기 의식이 옅어지고 시간과 공간 감각이 약화되는 순간을 가리킨다.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1990년에 베스트셀러 (국내 번역: 몰입, FLOW)를 통해 이 이론을 대중적으로 확산시켰다. 정의만 놓고 보면, 사람들이 게임하면서 푹 빠졌던 감각은 “몰입 상태에 있다”로 설명된다. 한창 긍정심리학과 자기계발 열풍이 있을 때, 몰입 이론은 자기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필승 전략으로 소개됐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게임 분야에서 이 게임이 “왜 재미있는지”를 설명하는 분석 틀이자 “잘 만든 게임은 이렇게 만들어야한다”는 설계 규범으로 자주 쓰인다. 게임 디자인, 게임 경험 분석, 게이미케이션, 게임 연구 등 학계 및 산업계 전반 종사자라면 알아야 할 ‘기본 지식’ 중 하나다. Against Flow, 몰입에 반하여 사실, 이론이 널리 쓰인다고 해서 충분히 검토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몰입의 조건‘이라는 말의 요약본만이 체크포인트처럼 여기저기 떠돌며 이론의 효용만 강조되고, 조건이 딛고 있는 전제는 생략된 것이 오늘날의 실정이다. 충분한 검토 없이 우리는 몰입이라는 개념을 그저 ‘좋은 것’으로만 전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론이 탄생한 역사적 배경과 주변의 사상적 맥락을 살피면, 몰입 이론은 그렇게 밝은 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무색무취의 중립성을 띠고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실제 사용되는 현장에서는 이러한 검토가 자주 생략된다. 2021년에 출간된 는 바로 그 생략을 지적한다. 제목을 한글로 옮기면 “몰입에 반하여”가 되듯, 이 책은 몰입 이론의 무분별하고 무비판적인 사용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관건은 몰입 이론의 옳고 그름을 판정하자는 것에 있지 않다. 오히려 이론을 충분히 재검토해서 이 개념이 어떤 맥락에서 등장했고, 어떤 가치를 전제하며, 사회적으로 어떻게 작동해왔는지를 추적한다. 몰입의 반대나 해체가 아닌 재검토에 가깝다. 이 글은 가 던진 문제의식을 발판으로 삼아, 몰입 이론을 다시 들여다보려 한다. 이론의 정합성보다는 게임 학계와 산업계에서 이론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쓰여왔는지를 점검해보고자 한다. * , MIT Press (2021)** 이론의 시작: 인간을 성장시키는 즐거움에 대한 질문 몰입 이론은 처음부터 성공한 게임의 비밀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은 절대 아니었다. 이론을 제시한 칙센트미하이는 1960년대 후반, 인간이 언제 자신의 활동을 즐겁고 의미있게 경험하는지를 탐구하고자 했다. 그는 등산가, 체스 플레이어, 화가, 무용수, 운동선수 등이 다양한 활동에 몰두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보상이 없어도 활동 그 자체에 깊이 빠져드는 경험을 묘사했고, 행동에 대해 의식하지 않게 되었으며, 배고픔이나 위험에 대한 감각까지 잊어버리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1971년 칙센트미하이는 이 경험을 ‘몰입’이라는 모델로 개념화하여 논문으로 제시했다. 몰입의 영어명은 행동이 끊기지 않고 흐르는 듯한 감각을 비유한 ‘플로우(flow)’이며, 또 다른 영어 단어인 immersion과는 차이가 있다. 몰입 이론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요소는 ‘실력’과 ‘도전‘이다. 실력은 개인이 현재 보유한 수준이고, 도전은 목표가 요구하는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몰입은 이 두 수준이 서로 균형을 이룰 때 발생한다. 만약 실력보다 도전이 낮으면 지루함을 느끼고, 반대로 실력이 도전보다 높으면 불안과 좌절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 균형은 고정된 상태가 아니다. 지속적으로 상호 조정되어야 한다. 실력이 향상되면 도전의 수준도 함께 상승해야 몰입이 유지된다. 칙센트미하이는 몰입 상태가 인간을 성장시키는 즐거운 과정임을 밝혔다. 이 설명은 단순하면서도 설득력을 가지며 이후 다양한 분야에 ‘즐거움의 정치학’이라는 명칭으로도 확산되었다. 이론의 성격: 마르크스주의의 대안? 그렇다면 칙센트미하이는 왜 이러한 이론을 주창하게 되었을까? 그가 몰입에 탐닉하게 된 배경에는 그의 개인사가 깊게 얽혀 있다. 그는 1934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2차 세계대전을 정면으로 겪었다. 그의 가족은 모두 전쟁을 피해 헝가리로 가게 되었고, 비극적으로 소련이 헝가리를 점령하면서 그 여파로 칙센트미하이의 가족들이 소련군에 의해 죽거나 수용소에서 행방불명되는 참혹한 피해를 입었다. 그는 어린 시절을 “무의미하고 잔혹하고 혼란스러웠다”라고 기억한다. 칙센트미하이는 난민 수용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체스를 배우게 되었다. 그런데 고도의 집중을 필요로 하는 체스를 두는 순간, 그는 자신의 주변에 펼쳐지는 전쟁의 혼란을 잊어버리는 신기한 경험을 깨닫게 된다. 그에게 체스는 세계의 붕괴 속에서 내면을 되찾는 방식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어린 시절 전쟁에서의 경험은 이후 그의 학문적 관심으로 이어지게 된다. 칙센트미하이는 소련으로부터 삶이 무너졌기에 소련이 추구하던 사회 변혁 사상에도 반감을 갖게 된다. 사회가 인간의 의식을 규정한다는 관점에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고, 나아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적 입장으로 이어졌다. 1967년 칙센트미하이의 초기 저작을 살펴보면, 마르크스가 <정치경제학 비판>에서 사회가 인간의 의식을 규정한다고 한 것에 그가 개탄하면서, 계급의식과 혁명의 사회적 흐름에서 자아를 해체하지 말고 오히려 개인적 의식을 강화해야 비로소 연대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개인의 의식이 약화될수록 사회적 연대 역시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몰입은 ‘소외’를 다루는 방식으로 등장한다. 소외란 마르크스주의에서 노동자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신의 노동의 결과와 자기 자신, 타인으로부터 분리되는 상태를 뜻한다. 그는 마르크스주의가 해소하지 못하는 소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몰입 이론을 생각했다. 몰입 이론에서 소외는 외부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내면에서 해결 가능하며, 혁명 없이도 삶에 몰입함으로써 소외를 완화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사회 변혁이 반드시 개인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가 비판한 것은 마르크스주의만이 아니었다. 인간을 그저 반응 기계처럼 보는 행동주의, 인간의 행위를 무의식과 욕망의 산물로 해석하는 정신분석학, 그리고 개인을 구성하는 외부적 힘을 밝혀내는 일에 중심을 두는 20세기 철학 전반의 흐름이 그에게는 의식의 몰락처럼 보였다. 칙센트미하이는 의식이 만들어내는 개인 행위성의 힘을 되찾고자, 여러 사상들과의 긴장 속에서 몰입 이론의 정치적 성격을 형성하게 된다. 이런 배경을 고려하면, 몰입 이론은 단순한 심리 상태 설명으로만 보기 어렵다. 그가 직접겪었던 경험에 대한 증명이며, 개인의 의식이 사회적 조건에 의해 규정된다는 관점에 대한 반박이자, 소외의 문제를 다시 배치하려는 시도였다. 몰입은 즐거움을 설명하는 개념이기 이전에, 개인이 세계와 맺는 관계를 재구성하려는 하나의 입장이었다. * TED 강연 <몰입, 행복으로 향하는 비밀>(2008) 중 칙센트미하이. 출처: https://www.ted.com/talks/mihaly_csikszentmihalyi_flow_the_secret_to_happiness 이론의 재배치: 자본주의 그리고 게임 칙센트미하이가 1970년대 처음 이론을 주장했을 때와 달리 시간이 흐르며 이론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의 여러 저작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TED 강연은 성공적으로 확산되었다. 몰입은 긍정심리학과 자기계발 담론에 빠르게 흡수되면서, 어느새 개인의 ‘성장’과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방법으로만 이야기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몰입은 자본주의 안에서 작동하는 심리학 이론의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몰입이 약속하는 것은 더 많은 행복, 더 많은 에너지, 더 많은 성취이다. 칙센트미하이는 저서 <굿 비즈니스>에서 몰입을 통해 노동자의 만족과 생산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고 관리자에게 제안하며, 사회 변혁의 대안으로 개인의 행위성을 되찾고자 했던 초기 구상은 결과적으로 더 깊은 몰입과 더 많은 성과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몰입은 삶을 재구성하는 태도라기보다 성과를 관리하는 기술로 받아들여지게 됐다. 게임 산업에서도 이런 개념 전환은 그대로 반복된다. 몰입은 이용자의 게임 플레이 시간을 늘리고, 이탈을 줄이며, 소비를 지속시키는 효과적인 개념이다. 많은 게임 디자이너들은 앞서 살펴본 이론적 배경이나 문제의식 없이 몰입을 게임 디자인의 핵심 원리로 제시한다. 경험을 설명하던 개념은 어느새 경험을 통제하는 기준으로 바뀌어버렸다. 그 결과 몰입은 게임 디자이너에게 하나의 실천 규범으로 기능하고 있다. <림월드>의 제작자 타이난 실베스터는 몰입을 좋은 게임 경험의 기반으로 규정한다. 몰입이 깨지면 경험 전체가 무너진다고 말하면서, 나쁜 게임이 가지고 있는 많은 문제들은 “몰입이 깨져서 일어나는 것이다”라고 평가한다. 에픽 게임즈와 유비소프트에서 UX 전문가로 있었던 셀리아 호든트 역시 그의 저서 <게이머의 뇌>에서 몰입 이론의 실력-도전 난이도 곡선을 제작 프레임워크로 언급한다. 그리고 “몰입 파괴자”, 예를 들면 불공평한 죽음과 실패, 화면의 정지, 너무 긴 카메라 워크나 컷신은 이 개발자가 반드시 피해야 할 존재라고 강조한다. 이런 담론은 해외뿐 아니라 국내 게임 개발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산업의 관점에서 플레이어가 게임에 더 오래 머물고, 주의를 게임 외부로 돌리지 않는 상태는 매우 이상적이다. 집중이 유지될수록 다음 콘텐츠와 다음 상품을 제안하기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몰입은 즐거운 경험의 조건인 동시에, 소비를 지속시키기 위한 환경 조건이다. 이론의 현재: 스스로 난이도를 고치는 게임 게임 산업이 점차 발전하면서 몰입 이론은 게임 시스템 설계까지 직접적으로 적용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동적 난이도 조정(DDA, dynamic difficulty adjustment)이다. DDA는 플레이어가 좌절하거나 지루해지기 전에 난이도를 조정해 몰입 상태를 유지하려는 설계 방식이다. 플레이어가 선택을 통해 능동적으로 조정하거나 시스템이 자동으로 조정하는 방식이 있다. 어느 방식이든 공통된 목표는, 플레이어가 자신의 실력 수준과 도전이 균형을 이루는 자신만의 ‘플로우 존’에 머물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게임의 시스템은 플레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분석한다. 그 결과에 따라 적의 수, 이동 속도, 공격 빈도 같은 요소들이 자동으로 조정된다. 고전적인 예로 <스페이스 인베이더>에서 적의 수가 줄어들수록 남은 적의 움직임이 빨라지는 구조를 들 수 있다. 현대의 게임들은 이보다는 복잡한 방식으로 여러 변수를 동시에 조정하고 있다. 중요한 점은, DDA는 자연스럽게 작동해야하며 플레이어는 이 변화를 체감하지 못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플레이어가 게임에 맞춰지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한 채 자신의 성장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DDA가 깊은 곳에서 몰래 작동할수록 플레이어는 자신의 실력 향상의 환상을 믿게 된다. DDA는 몰입 이론에 크게 의존하며 발전해왔다. 문제는 DDA가 지향하는 바가 즐거움을 생성하기보다 좌절과 지루함을 사전에 제거하는 데에 맞춰졌다는 점이다. 게임 산업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임 중단, 접속 종료, 환불 등을 방지하기 위해, 몰입 이론은 위험 관리 수단이다. 이 구조는 궁극적으로 몰입을 중독의 방향으로 향하게 할 수밖에 없다.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지속적으로 ‘맞춰진’ 경험을 제공하고, 그 과정에서 긍정적인 감각만을 반복적으로 강화한다. 반대로 현실에서는 그런 일들이 쉽게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현실에서의 일들이 더 거칠고 불편하게 느껴지며, 게임에 몰입하는 동안 현실의 불안이나 우울을 잊게 된다. 하지만 잠시 잊혀질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몰입이 끝났을 때 다시 마주하는 것은 잠시 뒤로 밀어두었던 현실이다. 흥미롭게도 칙센트미하이는 자신의 연구에서 게임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그가 놀이를 통해 몰입을 설명할 때 든 예시는 주로 체스였다. 1990년대 이르러서야 게임을 몰입의 사례로 간단하게 언급하지만, 그마저도 텔레비전 시청을 비판하는 맥락이었다. 그는 무비판적으로 텔레비전 시청에 빠져드는 상태를 경계했고, 마찬가지로 게임에 무비판적으로 빠져있는 사람들은 그가 꿈꿨던 이상적인 개인의 성장형 몰입의 상태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이야기는 쏙 빠지고 난이도 곡선만이 남아서 업계를 떠돌고 있다. 이론의 비판적 소비를 위하여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을 통해 개인이 소외를 극복하고 삶의 활동을 재구성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한편 동시에 그는 여러 저작에서, 몰입이 중독이나 자기중심적 소비, 현실 회피로 변질될 수 있는 위험한 자원이라는 점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한 외과 의사 이야기를 예로 들었는데, 수술하는 일을 즐겼던 의사는 자신의 일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휴가를 못 즐기고 수술해볼 수 있는 다른 병원을 휴가지에서 찾아다녔다는 것이다. 몰입은 어떤 경우에 고립을 초래하여 자아 내부에만 집착하게 되는 부작용을 낳는다. 칙센트미하이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문제는 몰입이 좋은가 나쁜가를 가르는 데 있지 않다. 어떤 맥락에서,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는가가 더 중요하다. <플레이의 미학>을 쓴 브라이언 업튼은 몰입이 매력적인 요소이지만 필수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실력과 도전을 두 축으로 한 매끈한 그래프 바깥에서도, 즐거움은 당연하게 발생할 수 있다. 가끔 그 어긋남 자체가 경험의 핵심이 되기도 한다. 숙련을 극한으로 끌어올릴 때까지 좌절을 지속하거나, 아예 몰입을 깨뜨릴 목적의 게임은 무수히 많다. 나아가 는 거리두기를 통해 몰입을 깨는 게임, 몰입을 통해 오히려 현실의 성찰을 이끌어내는 게임 등 다양한 경험의 양상을 여러 사례로 보여준다. 우리는 이론이 단편적으로 소비되는 현 상황을 되돌아보고, 비판적 소비로 도약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몰입 이론이 굳어져 사용되는 방식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이 책은 참고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할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이선 사회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연구합니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결국 인간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 [논문세미나] 게임 플레이를 통한 파트너쉽: 장거리 연애 커플이 친밀감 증진을 위해 디지털 게임을 이용하는 방식에 대한 연구

    “(게임) 플레이를 통한 파트너쉽”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연구는, 게임과 같이 사람들의 생활과 밀착된 활동에서 연인들 사이에 발생하는 실제 의사소통 과정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주목해 롱디 커플이 관계 연결의 매개로 디지털 게임을 이용하는 현상을 탐구한다. < Back [논문세미나] 게임 플레이를 통한 파트너쉽: 장거리 연애 커플이 친밀감 증진을 위해 디지털 게임을 이용하는 방식에 대한 연구 28 GG Vol. 26. 2. 10. TEXT: Devasia, N., Rodriguez, A., Tuttle, L., & Kientz, J. A. (2025, July). Partnership through Play: Investigating How Long-Distance Couples Use Digital Games to Facilitate Intimacy. In Proceedings of the 2025 ACM Designing Interactive Systems Conference (pp. 3563-3580). 들어가며 미국 대학생의 25-50%가 장거리 연애 중이라는 통계가 나올 정도로, 교육과 고용기회가 증가하면서 미국 사회에서 장거리 연애(Long-distance relationship, 이하 롱디) 커플의 비중은 늘어나고 있다. 롱디 커플의 경우 지리적으로 근접한 커플보다 만남의 빈도나 관계 스트레스의 측면에서 여러 장벽을 쉽게 마주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둘 이상의 전자 디바이스를 사용한 컴퓨터 매개 커뮤니케이션(CMC)은 실시간 메세지나 영상통화, 여가생활의 공유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롱디 커플의 관계 유지를 위한 핵심 도구가 되었다. 그간 많은 연구들이 게임을 통해 구성되는 ‘일반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주목해 왔다. 그러나 이 중 게임이 구성하는 연인 사이의 ‘로맨틱한 관계'에 초점을 맞춘 연구는 거의 없다. “(게임) 플레이를 통한 파트너쉽”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연구는, 게임과 같이 사람들의 생활과 밀착된 활동에서 연인들 사이에 발생하는 실제 의사소통 과정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주목해 롱디 커플이 관계 연결의 매개로 디지털 게임을 이용하는 현상을 탐구한다. 구체적인 연구질문은 다음과 같다: 1) 디지털 게임의 특징과 양식은 롱디 커플의 친밀감과 유대감 증진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 2) 롱디 커플이 게임을 할 때 서로를 친밀하게 느끼기 위해 이용하는 대인 전략은 무엇인가? 3) 이러한 통찰은 롱디 커플을 위한 특수한 기술 설계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관련 연구 해당 연구는 게임과 관계 문제에 관련되어 우리가 참고할 수 있는 여러 주제의 선행연구들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로,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CMC(컴퓨터 매개 커뮤니케이션)의 발전에 주목해 사회적 관계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메신저와 SNS, 게임을 이용하는 선행 연구들을 참고해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선행연구가 ‘우정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게임을 연구하고 있지만 로맨틱한 관계에 게임이 이용되는 방식을 연구하는 사례는 찾기 어렵다. 중요한 점은, 게임이 고립된 가상의 경험이라기보다는 친구, 가족, 배우자와 같은 기존의 오프라인 관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플레이어들이 관계유지를 위한 ‘제 3의 장소(third places)'라는 역할을 수행하는 게임의 위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둘째,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이나 자기 자신의 위기 상황에서 기분이나 감정을 조절하기 위한 수단으로 게임을 이용하는 사례에 대한 연구들이 있다. 즉 게임이 심리적 회복을 명시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플레이어들이 자신만의 의미를 게임에 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장거리 관계에 대한 기술 연구가 있다. 일례로 다양한 사인을 통해 친밀감을 전달하고 커플이 소통할 매체를 구성할 수 있는 ‘커플 테크놀로지(couple technology)'의 디자인에 관한 연구들이 있으며, 하센잘 등(Hassenzahl et al, 2012)의 연구처럼 관계성을 매개하기 위한 전략을 풀어내는 연구들도 있다. 특히 하센잘과 동료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성을 인지(awareness), 표현성(expressivity), 물리성(physicalness), 선물 주기(gift giving), 공동행위(joint action), 기억(memories)과 같은 여섯 가지 측면으로 풀어내고 이를 매개하기 위한 전략을 구상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비디오 게임을 하는 커플들을 연구대상으로 삼은 선행연구들이 있다. 본 연구처럼 커플의 유대감 형성 수단으로 게임을 주목하는 연구는 적으며, 대부분은 남성 파트너가 주로 게임을 하고 여성 파트너는 게임에 거의 참여하지 않는 상황에서 발생되는 관계의 문제를 다뤘다. 본 연구는 하센잘과 동료들의 관계성 및 연결성 관련 논의를 분석의 틀로 삼지만, 주로 연구환경에 주목하는 커플 테크놀로지 연구나 기존 커플들의 게임 연구와는 다른 측면에서, 양자가 적극적으로 애정 표현을 위해 ‘오용(misuse)'하는 매체로 게임을 규정하고자 한다. 연구 방법 이 연구는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질문 아래 롱디 커플을 대상으로 혼합적 연구 방법을 시도했다. 먼저, 연구진의 소속대학과 트위터와 레딧 등 소셜미디어 사이트에서 서로 50마일 이상 떨어져 거주하는 18세 이상의 커플을 조건으로 참여자를 모집했으며, 연구과정에서 이탈하거나 중간에 이별하여 누락된 사례를 제외하고 총 13쌍의 연구참여자를 확보했다. 연구참여자들의 평균 교제기간은 2.34년이고 적게는 2달에서 많게는 8년까지 다양했다. 대부분의 커플은 한달에 한 번 오프라인으로 만남을 가졌으며, 오직 두 커플만 교제 이후 지금까지 실제로 만난 경험이 없었다. 연구 방법은 일지 연구(diary study), 반구조화된 인터뷰, MDA(Mechanics, Dynamics, Aesthetics) 활동을 조합했다. 먼저, 커플들의 게임 경험과 이들이 관계를 위해 활용하는 게임 메커니즘 등을 파악하기 위해 게임 활동 후 최소 5회 이상 구글 폼으로 연구진이 제시한 질문에 대한 답변과 게임 일지를 기록하게끔 했다. 특히 하센잘 등의 연구에서 제시된 관계성의 6가지 측면 중 이들이 어떤 점에 주목하는지를 탐구했다. 다음으로 반구조화된 인터뷰를 통해 게임 활동과 관계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아가 연구진은 이들과 함께 롱디 커플에 특화된 미래의 게임디자인 전형을 만들기 위한 디자인 활동을 수행했다. 인터뷰 종료 후 MDA 프레임워크를 개별 요소로 분할하여 연구참여자 자신들이 원하는 게임의 요소를 스티커 메모로 붙이는 활동을 진행했다. 인터뷰 자료는 질적 분석과 개방 코딩을 병행했고, 일지 기록에 대해서는 통계분석을 진행했다. 연구 결과 1) 게임 일지 기록의 개요: 대부분의 커플은 협동형 농장 시뮬레이션인 <스타듀 밸리>를 가장 많이 플레이했으며(18.3%), 게임 유형은 협력형(85.9%) 또는 목표 지향형(84.5%) 게임으로 나타났다. 평균 플레이 시간은 2시간 가량이었고 게임 플레이 중 파트너와의 연결감은 리커트 척도 결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였다. 연결성/관계성의 6가지 측면 중에서는 게임이 인지(92.9%)과 공동행위(87.3%)를 촉진한다는 답변이 주를 이루었다. 2) 커플들이 각자 다른 게임방식을 중시하는 이유: 기본적으로 둘 이상의 플레이어가 참여하는 게임은 ‘협력이냐 경쟁이냐', ‘의존이냐 독립이냐'라는 이분법적인 메카닉의 특성을 지닌다. 인터뷰 결과, 협력형 게임을 즐기는 롱디 커플들은 현실적으로 쉽게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게임이 연인과 함께 성취감과 완결감을 느끼게 해 준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협력형 게임의 과제인 공동의 목표를 위한 소통이 커플의 전반적 의사소통 능력 향상에도 도움을 주었다고 답변했다. 한편 경쟁형 게임을 즐기는 커플들 또한 타인보다 연인과 함께 했을 때 심리적 부담이 더 낮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언급했다. 평소 승부욕이 높은 커플조차도 연인과의 게임에서는 자신의 성격을 쉬이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3) 현실과 게임플레이 사이의 경계성: 롱디 커플들은 대면으로 함께 할 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게임의 특정 측면을 현실의 활동과 유사한 것으로 연동시켜 이해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게임 내 한정 이벤트는 연인과 즐기는 전시관람과 비슷한 것으로 이해되었으며, 연인과의 게임 플레이는 친구와의 플레이보다 특별히 시간을 내 의도적으로 보내는 활동으로 이해되었다. 특히 디스코드나 팬 그룹 등 게임 관련 디지털 공간은 많은 롱디 커플들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돕는 중요한 공간이었고, 실제로 이곳을 통해 교제를 시작한 커플도 있었다. 4) 게임 메카닉을 통한 애정 표현: 커플들은 게임 메카닉을 활용해서 연인에 대한 물리적 애정표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연인의 졸업 선물을 학사모 모양의 아이템으로 주거나, 자신을 구하러 와주는 파트너를 보고 돌봄을 받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롱디 커플들에게 같이 공유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이 부족하여 불가능했던 일들이 게임 세계를 매개로 가능해졌고, 게임이 이를 보완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중요한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5) 하센잘과 동료들(2012)의 관계성(연결성)의 6가지 측면으로 게임 플레이 분석하기: 마지막으로, 하센잘과 동료들의 연구에서 드러난 관계성이 가지는 여섯 가지 측면 중, 게임을 하는 롱디 커플에게서는 ‘인지’가 가장 자주 느껴졌던 요소로 드러났다. 즉 게임은 ‘인지'를 고취시킴으로써 가까이에 부재한 연인의 존재감을 느끼게 해주는 중요한 매체이며 공동 행위를 통해 상호 공존의 느낌을 구현하는 매체라 할 수 있다. 한편 하센잘의 모델에서 연구참여자들이 게임을 통해 제일 부족하게 느꼈던 요소는 연인 상대와의 ‘기억’을 촉진하는 전략으로, 스크린샷과 같이 게임 속 연인과의 추억을 저장할 수 있는 수단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는 대부분의 대중적 게임 플랫폼에서 잘 구현되지 못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커플의 게임 플레이 스타일 전형(archetype) 개발하기 분석 결과 커플의 게임 플레이 스타일 유형으로 세 가지 타입이 도출되었다. 첫째는 협력형 게임을 매우 선호하여 공동 행동을 최우선적으로 선호하는 유형으로, 이 경우 ‘관계적 플레이'에 강하게 동기를 받으며 경쟁형 게임보다는 캐주얼하고 협력적, 반복적인 게임을 선호한다. 둘째로 협력형 게임과 경쟁형 게임을 균형있게 플레이하는 유형으로 관계에 동기부여를 받지만 첫 번째 유형과 비교하면 성취감 또한 중요하게 여김을 확인할 수 있다. 셋째로 경쟁형 게임을 매우 선호하여 표현성을 최우선적으로 선호하는 유형이다. 이들은 협력형 게임이 다소 지루해질 수 있는 반면 경쟁형 게임에서는 강력한 성취 동기와 자율성을 획득한다고 답변했다. 위와 같은 분석 결과를 통해 본 연구는 게임 디자이너와 기술을 개발하는 HCI 연구자에게 다음과 같이 제언을 하고 있다. 먼저, 게임과 현실 생활 사이에 비교적 높은 경계성(liminality)이 구축된 상황에서 게임은 평소에는 더 접하기 어려운 다양한 관계유지 행동을 수행할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장거리 관계를 유지하고 증진해야 하는 롱디 커플에게 게임은 이러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매체 중 하나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롱디 커플을 위해 특별히 설계된 대중 게임이 극히 드문 상황에서 <잇 테익스 투(It takes Two)>와 같은 커플을 소재로 한 게임이 높은 호응도를 갖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커플을 위한 게임에서 다양한 공동 행위를 유도하거나 선물, 기간 한정 이벤트 기능, 기억(연인과의 추억을 보존할 수 있는 특별 수집품)과 같은 다양한 메커니즘을 구축한다면 관계유지를 위해 플레이어가 게임 메커니즘을 활용하는 방식들을 더 촉진시킬 수 있을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수 문화와 지식, 공간과 학술 장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합니다. 게임의 역사와 게이머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2025 게임이용자 실태조사 리뷰: 이용률 급락의 구조적 맥락과 데이터가 말하지 않는 것들

    게임을 떠난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답은 “동영상 시청으로 갔다”다. 게임 대신 선택한 여가활동의 86.3%가 ‘OTT·영화·TV·애니메이션 시청’이었다. 이 항목이 나타내는 범위가 너무 포괄적이고 중첩적임은 차치하고, 그 수치가 압도적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 Back 2025 게임이용자 실태조사 리뷰: 이용률 급락의 구조적 맥락과 데이터가 말하지 않는 것들 28 GG Vol. 26. 2. 10. 1. 게임은 더 이상 국민 여가가 아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25년 12월 공개한 <2025 게임이용자 실태조사>는 한국 게임문화의 구조적 전환점을 포착했다. 전국 10~69세 국민 1만 명을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서 게임 이용률은 50.2%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 대비 9.7%p, 그리고 2022년 74.4%에서 불과 3년 만에 24.2%p가 감소한 수치이다. 2015년 조사 시작 이래 최저치이자, 과반을 간신히 유지하는 수준에 그친다. 하지만 50.2%라는 숫자는 단순한 통계치 하락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지난 십수 년간 게임 산업과 담론을 지배해 온 ‘게임의 보편화’라는 신화에 가해진 균열이다. 국민 대부분이 게임을 즐긴다고 자랑해왔던 그간의 조사결과는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이 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게임 이용률이 70%대로 상승했다가, 엔데믹 전환 이후 급락세로 반전되었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팬데믹 특수의 종료와 엔데믹 이후의 야외 활동 증가 정도로만 해석하는 것은 본질을 놓치는 일이다. 2019년 이미 65.7%였던 이용률을 감안하면, 현재의 50.2%는 팬데믹 이전 수준을 훨씬 밑도는 수치다. 즉, 구조적 하락세 위에 팬데믹이라는 일시적 변수가 중첩되었다 사라진 것이며, 팬데믹 이후 드러난 것은 팬데믹 이전부터 있어 왔을, 아니면 최소한 팬데믹과 함께 진행돼 왔을 게임 이용기반의 침식이다. 연령별 격차는 더욱 극명하다. 10대의 이용률은 80.9%로 여전히 높지만, 60대는 23.1%에 불과하다. 이는 게임이 특정 세대의 전유물로 고립되어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주목할 점은 10대 이용률 역시 절대 수치는 높지만, 2022년 대비 하락세를 보인다는 사실이다. 10대 인구 자체의 급감과 맞물려, 게임산업의 미래 이용자 풀 자체도 줄어들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기기를 손에 쥔 ‘디지털 네이티브’이자 당연한 ‘예비 게이머’로 간주해온 측면이 있지만, 더 이상은 그런 이야기도 쉽게 할 수 없게 되었다. 2. ‘동영상 시청’이라는 대체재의 부상 게임을 떠난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답은 “동영상 시청으로 갔다”다. 게임 대신 선택한 여가활동의 86.3%가 ‘OTT·영화·TV·애니메이션 시청’이었다. 이 항목이 나타내는 범위가 너무 포괄적이고 중첩적임은 차치하고, 그 수치가 압도적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독서·웹툰·웹소설(40.3%)’, ‘운동·스포츠 관람(37.5%)’이 뒤를 이었지만, 그 합조차 ‘OTT·영화·TV·애니메이션 시청’에 미치지 못한다. 디지털 여가를 둘러싼 주의력 경제의 헤게모니가 ‘플레이’에서 다시금 ‘시청’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응답자가 항목 내 ‘OTT’에 유튜브나 틱톡 같은 숏폼 플랫폼을 포함하거나, ‘영화·TV·애니메이션’을 보고 해당 장르를 재가공한 숏폼 콘텐츠를 함께 떠올렸다면 디지털 여가의 주의력 경제 헤게모니 이동론은 더욱 탄력을 얻는다. (실제 보고서 중반부의 FGI에서 인터뷰이들은 OTT를 비롯한 동영상 시청과 관련해 숏폼을 함께 언급한다.) 이러한 대체재 선택은 우연이 아니다. OTT·영화·TV·애니메이션은 게임과 동일한 ‘스크린 시간’을 두고 경쟁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소비구조를 갖는다. 게임은 능동적 참여와 일정 수준의 몰입을 요구하는 반면, OTT·영화·TV·애니메이션 영상은 (물론 콘텐츠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나) 수동적 시청만으로도 즉각적 만족을 제공한다. 특히 숏폼 콘텐츠까지 확장해 생각하면, 그것들은 15초에서 1분 내외의 짧은 호흡으로도 이용자들의 도파민을 분출시키며, 별도의 진입 장벽이나 학습 곡선 없이도 누구나 바로 소비할 수 있다. FGI 결과는 이러한 맥락을 생생하게 전한다. 50대 게임 미이용자들은 OTT를 보는 것이 편하며, 게임을 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20~30대 미이용자 사이에서도 게임은 집중해야 하는데, OTT나 숏폼은 틀어놓기만 하면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나왔다. 팬데믹 이후 확산된 동영상 시청 문화는 사람들에게 ‘노력 없는 혹은 힘을 들이지 않는’ 휴식의 경험을 각인시켰고, 게임의 능동성은 이제 강점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즐거움을 얻기 위해 뒤따르는 피로로도 인식된다. 이는 단순한 선호의 변화가 아니라, 여가 문화의 패러다임 전환을 나타낸다. 과거 게임이 제공했던 도전과 성취의 쾌락은, 알고리즘이 최적화한 무한 스크롤의 수동적 쾌락과의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다. 특히 비여가시간에 일과 학습에 많은 집중을 해야 하는 직장인과 학생들에게 여가 시간은 ‘재충전’의 시간이지 ‘또 다른 도전’의 시간이 아니다. 게임 미이용 이유 1위가 ‘이용 시간 부족(44.0%)’이지만, 그들은 같은 시간에 동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이는 절대적 시간 부족이 아니라, 게임에 투자할 ‘심리적 여력’의 부족을 의미한다. 3. 비즈니스 모델의 피로감 게임 이용률 하락의 또 다른 요인은 비즈니스 모델의 피로감이다. 조사에서 게임 미이용 이유 2위는 ‘게임 흥미 감소(36.0%)’였고, ‘게임 이용동기 부족(33.1%)’도 상위권에 올랐다. FGI에서 20~30대 이용자들은 반복적인 과금 구조, 새로운 경험의 부족, 돈을 쓰지 않으면 강해질 수 없는 구조에 대한 피로감을 토로했다. 특히 한국 게임 시장을 지배해 온 확률형 아이템 중심의 모델은 단기 수익 극대화에 큰 도움이 되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신규 이용자의 유입을 막는 장벽으로 기능했다. 시간과 노력 대신 돈을 써야 강해지는(Pay to Win) 구조로의 이행은, 많은 게임 플레이를 취미가 아닌 투자, 심하게는 도박과 유사한 행위로 인식되게끔 만들었다. 2025년 조사에서 게임 내 신규 상품 구매 경험이 있는 이용자는 37.8%에 불과했다. 이는 대다수 이용자가 무과금 혹은 최소 과금으로 게임을 즐기려 함을 뜻하며, 동시에 수익은 소수의 ‘고래 유저’에게 집중되는 구조가 고착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구조에서 신규 이용자는 과금(특히 고래) 이용자를 위한 들러리 역할로 전락하기 쉽고, 당연히 게임에 진입을 안 하거나 게임을 이탈하는 선택을 하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4. 플랫폼 전쟁의 새로운 국면 플랫폼별 이용률 변화는 시장 재편의 신호탄으로 읽힌다. 모바일은 여전히 89.1%로 압도적이지만, 전년 대비 2.6%p 감소했다. PC는 58.1%로 2.9%p 줄었다. 반면, 콘솔은 28.6%로 4.5%p 증가하며 유일하게 성장세를 보였다. 플레이스테이션 5 프로, 닌텐도 스위치 2 등 현세대 콘솔은 완성도 높은 패키지 게임 중심의 생태계를 구축했고, 이는 모바일의 P2W 피로감에 질린 이용자들에게 유의미한 대안으로 작용하고 있는 듯 보인다. 조사에서 콘솔 게임 이용 이유 1~2위가 각각 ‘이용 환경의 익숙함, 편리 또는 편안함(59.4%)’, ‘플랫폼 독점 콘텐츠/플랫폼 고유 매력(18.7%)’이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는 모바일 게임 이용 이유 1위가 마찬가지로 ‘이용 환경의 익숙함, 편리 또는 편안함’이긴 하나 응답률이 72.0%로 높다는 점, 그리고 ‘플랫폼 독점 콘텐츠/플랫폼 고유 매력’이 7.8%로 3위에 그친다는 점과 대비된다. 국내 게임사들도 이러한 흐름을 감지하고 콘솔 시장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모바일 시장의 성장 둔화가 명확해진 지금, 80조 원 규모의 글로벌 콘솔 시장은 새로운 먹거리로 주목받는다. 이에 많은 게임사들이 기존 PC → 모바일게임 중심에서 콘솔로 플랫폼을 확장 중이다. 다만, 콘솔을 중심으로 하되 멀티 플랫폼 형식을 취하는 것도 중요한 흐름 중 하나다. 이는 고품질 그래픽, 사실적 묘사, 액션 손맛 등을 구현하는 데 있어 콘솔이 최적의 플랫폼이고, 바로 그러한 점이 게임 개발 및 출시과정에 반영돼 있음을 의미한다. 거기에다 멀티 플랫포밍 전략은 최근 글로벌 게임 비즈니스의 추세이기도 하다. 모바일 시장 자체의 변화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장조사업체 센서타워(SensorTower)에 따르면 2025년 하반기 한국 모바일게임 다운로드 수는 약 2억 1천만 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21% 감소했다(유예나, 2026). 다운로드 감소는 신규 유입 둔화를 의미하며, 이는 시장이 성숙을 넘어 포화 단계에 진입했음을 시사한다. 시장이 포화 단계에 접어들면 소수의 검증된 타이틀에 이용자가 집중되고, 신작의 성공 확률은 급격히 낮아질 수밖에 없다. 5. 잃어버린 10대 조사에서 가장 우려되는 지점은 10대 게임 이용률의 질적 변화다. 10대 이용률은 80.9%로 여전히 높지만, 절대 인구수가 급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22년 0.78명, 2023년 0.72명, 2024년 0.75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며, 2020년부터 인구 자연감소가 시작되었다. 이는 현재 10대 인구가 향후 10년 간 지속적으로 감소할 것임을 가리킨다. 게임 이용률이 유지되더라도, 모집단 자체가 줄어들면 절대적인 이용자 수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10대의 여가시간 자체가 감소하고 있으며,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남은 여가 시간마저 동영상 이용에 잠식당하고 있다. 학부모 세대의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여전하다. 조사에서 게임 이용에 부정적인 주변 사람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40.1%였으며, 특히 ‘조/부모님(20.6%)’, ‘친구/연인/배우자(14.8%)’가 주를 이뤘다. 그런 중에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 예방 및 해소를 위해 부모 및 자녀가 함께 게임 사업자에게 게임 서비스 시간이나 기간 제한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게임시간 선택제’에 대한 인지도는 28.3%에 그쳐,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이런 구조적 변화와 긍정적이지 못한 환경이 지속되는 속에서 10대가 게임을 계속 여가로 선택할까? 현재 20~30대가 보여주는 게임 이탈 현상을 고려하면, 전망은 어둡다. 게임 업계와 정부 입장에서 미래 이용자 풀에 대한 고려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6. 게임 문화의 재구성이 필요한 시점 <2025 게임이용자 실태조사>가 보여주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게임의 문화적 위상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게임은 더 이상 국민 여가가 아니며, 특정 연령층의 전유물로 축소되고 있다. 동영상 플랫폼이라는 오래된 경쟁자는 게임보다 더 쉽고, 더 빠르게, 더 적은 에너지로 즐거움을 제공한다. 이제 소위 게임과 관련된 일에 종사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근본적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여가 활동 간의 경쟁은 어떻게 작동하나, 게임만이 줄 수 있는 경험은 무엇인가, 디지털 콘텐츠 소비의 미래는 어디로 향하며 그 안에서 게임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은 어느 정도인가, 그래서 결국 지금 우리는 게임을 무엇 때문에 하는가.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어떻게 내려가야 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게임을 돈을 쓰는 곳이 아니라 경험을 얻는 곳으로, 시간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즐기는 것으로,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덜 쉽지만 훨씬 더 의미 있는 유희를 주는 것으로 되돌릴 필요가 있다는 부분이다. 이는 게임 메카니즘과 비즈니스 모델의 근본적인 혁신,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와 즐거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50.2%는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다. 이 수치가 바닥이 되어 반등의 계기가 될지, 아니면 더 깊은 추락의 중간 지점이 될지는 지금의 업계, 정부, 그리고 이용자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미래가 없다는 사실이다. 참고자료 유예나 (2026). [2025년 하반기 국내 모바일 게임 결산] 매출 28억 달러로 상반기 대비 8.3% 상승… 넥슨 사상 첫 퍼블리셔 1위. <센서타워>. URL: https://sensortower.com/ko/blog/2H2025-mobile-games-recap-in-Korea 지표누리 – 합계출산율. URL: https://www.index.go.kr/unify/idx-info.do?idxCd=5061 한국콘텐츠진흥원 (2025). <2025 게임이용자 실태조사>.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강신규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게임, 방송, 만화, 팬덤 등 미디어/문화에 대해 연구한다. 저서로 <흔들리는 팬덤: 놀이에서 노동으로, 현실에서 가상으로>(2024), <서브컬처 비평>(2020), <아이피, 모든 이야기의 시작>(2021, 공저), <서드 라이프: 기술혁명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2020, 공저), <게임의 이론: 놀이에서 디지털게임까지>(2019, 공저) 등이, 논문으로 ‘이기지 않아도 재미있다: 부모-자녀 게임 플레이의 사회성과 행위성, 그리고 분투형 플레이’(2024), ‘커뮤니케이션을 소비하는 팬덤: 아이돌 팬 플랫폼과 팬덤의 재구성’(2022), ‘‘현질’은 어떻게 플레이가 되는가: 핵납금 게임 플레이어 심층인터뷰를 중심으로’(2022, 공저), ‘게임화하는 방송: 생산자적 텍스트에서 플레이어적 텍스트로’(2019) 등이 있다.

  • AAA의 한계를 뒤로 하는 북미 게임업계의 뉴미들

    지난해 11월, 워너 브라더스 게임즈는 수년간 공들여 개발한 <수어사이드 스쿼드: 킬 더 저스티스 리그>에 오프라인 모드를 추가한다는 내용을 조용히 발표했다. 겉으로는 유저 편의를 위한 업데이트처럼 보였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이를 사실상의 서비스 종료 예고로 받아들였다. < Back AAA의 한계를 뒤로 하는 북미 게임업계의 뉴미들 28 GG Vol. 26. 2. 10. 2025년 북미 게임시장, 라이브 서비스는 왜 무너졌나 지난해 11월, 워너 브라더스 게임즈는 수년간 공들여 개발한 <수어사이드 스쿼드: 킬 더 저스티스 리그>에 오프라인 모드를 추가한다는 내용을 조용히 발표했다. 겉으로는 유저 편의를 위한 업데이트처럼 보였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이를 사실상의 서비스 종료 예고로 받아들였다. DC 유니버스라는 거대 IP를 앞세워 수천억 원을 쏟아부은 라이브 서비스 게임이 출시 1년도 채 되지 않아 백기를 든 것이다. 숫자를 보면 이런 결정이 이해가 간다. 2025년 1분기 워너 브라더스 디스커버리 실적 발표에서 게임 부문 매출은 전년 대비 48% 급감했다. 경영진은 공개적으로 "게임 전략 수정"을 언급했고, 라이브 서비스 중심 전략에서 철수를 선언했다. 검증된 프랜차이즈 중심의 전통적 개발 방식으로 회귀하겠다는 것이었다. 소니 역시 비슷한 국면을 맞았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 온라인> 프로젝트와 <갓 오브 워> 라이브 서비스 게임은 모두 개발 중단됐다. 물론 게임의 퀄리티와는 무관한 논란이 있기도 했지만 2024년 출시된 멀티플레이 슈터 <콩코드>는 극심한 흥행 부진 끝에 수개월 만에 서비스를 종료했고 결국 스튜디오 폐쇄로 이어졌다. 2025년 소니 CFO는 실적 발표 자리에서 솔직하게 인정했다. "라이브 서비스 게임 전략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시간을 두고 벌이는 전쟁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핵심은 단순하다. 라이브 서비스는 유저의 '돈'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경쟁하는 모델이며, 이 시간은 본질적으로 한정돼 있다. <포트나이트>, <로블록스>, 같은 소수의 초대형 플랫폼형 게임이 유저의 시간을 독점하는 상황에서, 신규 라이브 서비스 게임은 진입 단계부터 구조적으로 불리하다. 여기에 시즌 패스, 데일리 미션, 한정 이벤트로 대표되는 비즈니스 모델은 피로감을 주고 있다. 절대 놓칠 수 없다는 조바심을 뜻하는 Fear of Missing Out(FOMO)에 기반을 뒀기 때문이다. 2025년 하반기 레딧과 디스코드에서는 "게임이 취미가 아니라 숙제가 됐다"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나왔고 새로운 온라인 게임이 나와도 이에 익숙해지고 새로 배우는 것이 부담스러워 시작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많았다. 또 하나의 결정적 요인은 '출시 후 완성' 문화에 대한 신뢰 붕괴다. 이전의 싱글 플레이 게임과는 달리 출시 후 패치를 전제로 발매되는 게임들이 많다. <배틀필드 2042>, <헤일로 인피니트>, <마블 어벤져스> 등은 모두 불완전한 상태로 출시된 뒤 장기적인 패치를 약속했지만, 결과적으로 유저 신뢰를 회복하지 못했다. 특히 <마블 어벤져스>는 출시 직후 분기 손실 약 6300만 달러를 기록하며, 라이브 서비스 실패가 얼마나 큰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이제 유저들은 미완성 게임을 돈을 지불하고 기다려주지 않는다. 엔딩이 있는 게임의 귀환 이러한 흐름 속에서 2025년 12월, 더 게임 어워즈를 전후로 가장 뜨거웠던 질문은 명확했다. "왜 우리는 다시 싱글 플레이어 게임에 열광하고 있는가?" 답은 단순하면서도 명확했다. 유저들은 엔딩이 있는 경험, 즉 완결된 만족감을 다시 원하기 시작했다. 이 변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작품이 <33원정대>다. 프랑스의 중소 규모 스튜디오 샌드폴 인터랙티브가 약 30명 내외의 팀으로 제작한 이 게임은 언리얼 엔진 5를 활용한 AAA급 비주얼과 실험적인 턴제 전투 시스템으로 북미 시장을 뒤흔들었다. 출시 6개월 만에 누적 판매량 500만 장을 돌파했고, 엑스박스 게임 패스 역사상 2025년 가장 성공적인 서드파티 런칭 타이틀로 기록됐다. 더 게임 어워즈 2025에서는 무려 1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9관왕을 차지했다. 개발비는 약 1000만 달러 수준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대형 AAA 게임 평균 개발비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캡콤의 <몬스터 헌터 와일즈> 역시 같은 흐름 위에 있다. 온라인 협동 요소를 포함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싱글 플레이를 중심으로 한 완결형 액션 RPG인 이 게임은 출시 3일 만에 800만 장 이상 판매되며 캡콤 역사상 가장 빠르게 팔린 게임이 됐다. 비평과 유저 반응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된 강점은 "라이브 서비스처럼 느껴지지 않는 설계"였다.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지금 당장 해야 할 이유'를 강요하지 않았고, 대신 서사, 탐험, 성장의 리듬을 존중했다. 뉴 미들의 부상 이 변화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3000억이 넘는 예산, 5년이 넘는 개발기간을 거치는 초대형 라이브 서비스 프로젝트는 이제 과도한 리스크를 동반한 도박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뉴미들, 즉 고품질 AA 시장이다. 1000억원 이하의 예산, 3년 이하의 개발기간, 명확한 기획과 타겟을 가진 싱글 플레이어 중심 프로젝트들이 산업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들이 무엇보다 유저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기술 발전과 개발 툴의 대중화가 만들어낸 결과다. 언리얼 엔진 5 같은 도구 덕분에 이제 소규모 팀도 AAA급 비주얼을 구현할 수 있다. 유저는 더 이상 '가장 큰 게임'이 아니라 '가장 밀도 높은 게임'을 선택한다. 북미 게임업계에서 오랜 시간 일한 한 개발자는 “누구나 다 퀄리티가 높은 게임을 하고 싶어하지만 게임사 입장에서는 퀄리티를 높이며 커져버린 비용을 회수하려면 당연히 라이브 서비스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며 “그래서 많은 유저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라이브 서비스 게임을 해온 면이 있다. 피로도가 누적된 유저들이 눈을 돌리니 퀄리티가 높으면서도 유저들을 ‘쥐어짜지 않는’ 싱글 플레이 게임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라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실제로 2025년 하반기부터 북미 주요 퍼블리셔들은 라이브 서비스 프로젝트 수를 줄이고, 대신 중규모 싱글 플레이어 게임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2026년은 북미 게임 산업이 '규모의 경제'에서 '밀도의 경제'로 이동하기 시작한 변곡점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라이브 서비스의 신화는 무너졌고, 완결형 싱글 플레이어 게임은 다시 중심으로 돌아왔다. 미래는 가장 비싼 게임의 것이 아니라, 가장 명확한 비전을 가진 게임의 것이다. 한국은 여전히 라이브 서비스 하지만 여기에 뉴미들을 곁들인 북미 게임업계 관계자들이 보는 한국의 게임업계는 라이브 서비스의 선두주자였다. 넥슨은 이전부터 부분유료화라는 모델을 만든 게임회사라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드러내왔고 NC소프트는 모바일 라이브 서비스 게임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는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서 수익을 창출해 왔다. 특히 (과거 FIFA 시리즈)를 만들고 있는 EA가 한국의 의 비즈니스 모델을 보고 이를 참고해서 라이브 서비스를 운영해왔다는 것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여전히 한국의 게임사들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 것은 라이브 서비스 게임들이다. <던전앤파이터>, <배틀그라운드>, <리니지> 등 각 게임사의 대표게임들이 검증된 수익모델로 자리잡고 있는 이상 회사들은 여기에 자원을 투자할 수 밖에 없다. 다만 완전히 모든 자원을 모바일 라이브 서비스 게임에 올인하는 것 같던 2010년대의 분위기는 조금씩 누그러지고 오히려 엔딩이 있는 게임을 개발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 <스텔라 블레이드>, <데이브 더 다이버> 등의 성공사례가 있고 관련 분야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붉은 사막> 또한 3월 출시를 앞두고 있다. 4년전 NC소프트의 한 관계자를 만나 업무관련 협의를 하는데 그는 당시 사내 분위기를 전했다. <리니지> 처럼 모바일 라이브 서비스 게임을 통해 극히 적은 고액 결제 유저, 이른바 고래들에게 의지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이제 저물고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고. 2020년대 들어서부터는 한국의 게임사들이 이러한 위기감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020년대도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위기감의 결실들이 하나씩 보이고 있다. 북미 게임계의 뉴미들과 경쟁할 만한 좋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올지 지켜볼 만하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나성인) 홍영훈 캘리포니아에서 살면서 게임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에 출연하고 매체에 기고를 하며 많은 분들에게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패션부터 게임까지 분야에 상관없이 재밌는 글을 평생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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