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매체학자 프리드리히 키틀러는 그의 저서 <축음기, 영화, 타자기>에서 타자기가 인간의 신체와 언어를 분리시킨 장치였다고 말한다. 손으로 글을 쓰던 시절, 신체는 사유의 흐름을 따라 움직였다. 그러나 타자기 앞에서 언어는 데이터가 될 뿐 자판의 배열과 기계의 리듬에 맞춰 재편된다.
가상공간이 현실의 반영이라거나, 현실의 불안이 게임으로 흘러들어온다는 식의 분석은 이미 오래된 틀이다. 익스트랙션 슈터가 보여주는 것은 그보다 좀 더 급진적인 무언가에 가깝다. 가상공간이 현실로부터 독립적인 삶의 층위로 자리잡았다는 것. 그 안에서 세워진 자아가 독자적인 소유를 갖고, 그 소유의 상실이 독립적인 감각으로 작동한다는 것. 이것은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진다는 말과는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