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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거울: 불완전한 정보는 어떻게 인간을 심판자로 만드는가? <No, I'm not a Hu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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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6. 2. 10.

태양 폭발로 문명이 무너진 세계, 플레이어는 매일 밤 TV 앞에 앉아 정부가 배포하는 식별 가이드를 시청한다. 지하에서 올라와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쓴 ‘방문자’를 색출하라는 임무다. 뉴스는 완벽하게 고른 흰 치아, 털 없는 매끈한 겨드랑이, 빛에 민감해서 충혈된 눈 등을 방문자의 징후라고 보도한다. 위생 관리가 불가능한 아포칼립스 상황에서 청결함은 역설적으로 괴물의 증거가 된다. <No, I'm not a Human>이 플레이어에게 건네는 첫 번째 질문이다.


문제는 정보는 필연적으로 맥락을 삭제한 채 극도로 단편적으로 전달된다는 점에 있다. 뉴스가 ‘방문자’라고 말한 기준을 현장에 적용하는 순간 플레이어는 지독한 딜레마에 빠진다. 문을 두드린 남자는 자신의 손톱 밑 흙에 대해 정원사라서 당연하다고 항변하고, 치아가 고른 이는 최근에 교정을 마쳤을 뿐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붉게 충혈된 눈을 가진 여성은 빛에 민감해서가 아니라 가족을 잃고 밤새 울었기 때문일 수 있다. 플레이어에게 주어진 정보는 ‘충혈된 눈은 곧 괴물’이라는 공식뿐이지만, 눈앞의 현실은 그보다 훨씬 복잡한 사연을 품고 있다. 그러나 생존 본능은 복잡한 맥락을 무시하고 안전한 공식을 따르도록 강요한다. 결국 플레이어는 정원사를, 교정 환자를, 유가족을 잠재적 괴물로 규정하고 총구를 겨누게 된다. 위험한 존재를 집에 들이는 것은 플레이어뿐 아니라 같은 장소에 기거하는 생존자들의 안전도 위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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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1. 정보만으로 인간과 ‘방문자’를 구분할 수 없다고 해서 혼자 생존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No, I'm not a Human>에서 집에 혼자 남는 경우는 ‘방문자’의 표적이 되거나 연제청에 잡혀가 제거된다.

     

게임의 엔딩 중 하나인 ‘비질란테의 분노’는 불완전한 정보를 맹신한 인간이 어떻게 파멸에 이르는지를 극적으로 드러낸다. 방문자를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광기에 사로잡힌 자경단원은 “너 같은 인간들이 내 친구를 죽였다”고 울부짖으며 플레이어의 집을 찾아온다. 그가 움켜쥔 전리품, 즉 뽑힌 치아와 잘린 손가락은 그가 사냥한 대상이 괴물이 아니라 육체를 가진 진짜 인간의 것이다. 이는 방문자의 식별 징후인 ‘완벽하게 고른 치아’를 색출하겠다는 강박이 개인적 원한과 결합했을 때, 인간이 얼마나 쉽게 타자를 괴물로 오인하고 무차별적인 폭력의 도구로 전락하는지를 보여준다.


자경단원은 스스로를 공동체의 심판자로 규정했지만, 결국 그는 괴물보다 더 끔찍한 학살자가 되어버린다. 그의 손에 들린 전리품은 단순한 증거물이 아니라, 인간성을 잃고 광기에 잠식된 자경단원의 몰락을 상징하는 물증이다. 이 엔딩은 미디어가 제공하는 불완전한 식별 기준이 무력, 그리고 맹목적인 복수심과 결합할 때 어떤 참혹한 결과를 낳는지를 경고하며, 괴물을 잡겠다는 집착이 오히려 인간을 괴물로 변모시킨다는 아이러니를 그려낸다.


<격리 구역(Quarantine Zone: The Last Check)>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관료주의적 시스템 안으로 끌어온다.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한 세상에서 격리 시설 관리자가 된 플레이어는 검문소에 선 생존자들을 오직 수치로만 판단해야 한다. 체온계, 청진기, 육안 검사라는 도구가 주어지지만 이 역시 인간의 생사를 가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다리에 있는 상처가 좀비에게 물린 자국인지 단순히 넘어져 생긴 멍인지 구별하기 어렵고, 얼굴이 붉은 것은 감염 증상일 수도 있지만 단순히 더위에 익은 것일 수도 있다.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플레이어를 압박하는 것은 ‘효율성’이라는 이름의 비용이다. 감염자를 들이면 기지가 위험해지고, 의심스러운 자를 모두 격리하면 수용 시설 유지비가 폭증한다. 결국 플레이어는 화씨 180도 이상이라는 숫자에만 매몰되거나,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우면 일단 추방하는 효율성의 논리를 택한다. 아이의 떨림이나 생존자의 호소는 배제된 채, 인간은 오직 데이터로 전락한다.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다 보면 어느새 플레이어는 비인간적인 행위에 가담하게 된다. 성벽 밖에서 으르렁거리는 감염자보다, 모호한 정보 앞에서 효율성을 택하는 자신의 손끝이 더 섬뜩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반면 <Look Outside>는 시각 정보가 주는 공포를 역이용해 판별 행위 자체를 무력화하는 독특한 지점을 보여준다. 주인공 샘은 창문을 열어 ‘방문자’라 불리는 우주적 존재를 목격하거나 인식하면 끔찍한 괴물로 변이한다는 명확한 정보를 획득한다. 샘이 거주하는 아파트는 물리 법칙이 무시된 미로로 변해 있으며, 복도에는 하키 마스크를 쓴 거구의 여성, 머리가 카메라와 융합된 이웃 라일, 바퀴벌레 떼가 뭉쳐 지성을 갖춘 바퀴 씨 등 기괴한 형상의 이웃들이 돌아다닌다. 기존의 서바이벌 호러 문법대로라면 이들은 생존을 위해 제거하거나 배제해야 할 ‘적’으로 간주되지만, 샘은 시각적 기표가 주는 혐오감을 넘어 그들의 내면을 보기를 택한다. 그는 변이한 이웃들에게 식량을 나누어 주고 거처를 제공하며 대화를 시도하고, 그들은 괴물의 외형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샘에게 고마움을 표하거나 그를 왕으로 추대하는 등 인간적인 유대와 이성을 유지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게임 후반부에 이웃이자 조력자였던 ‘11’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판별의 무의미함은 존재론적 차원에서 증명된다. 인류의 기원은 사실 우주를 떠도는 거대한 생명체인 방문자의 미세한 말단 신경세포였으며, 인간이 방문자를 목격하는 순간 발생하는 변이는 외부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이 아니라 독립된 개체라는 환상이 깨지고 본체와 하나가 되려는 회귀 본능의 발현이었다. ‘11’이 기억을 지우고 육체와 분리되면서까지 숨기려 했던 것은 바로 “우리가 곧 괴물의 일부”라는 사실이었다. 결국 눈으로 보고 괴물이라 판별하며 배척하려 했던 존재는 가장 근원적인 자아의 본모습이었고, 이 게임에서 창문은 외부를 감시하는 방어 기제가 아니라 내면의 끔찍한 기원을 비추는 거울로 기능한다. 시각적 정보에 의존해 타자를 괴물로 규정하는 행위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그리고 불완전한 정보가 어떻게 우리를 진실로부터 격리시키는지를 이 게임은 역설한다.


판별의 서사는 <도시전설 해체센터>에 이르러 물리적 실체를 넘어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정보’ 그 자체에 대한 가차 없는 폭로로 확장된다. 앞선 작품들이 가시적인 괴물과 인간의 경계를 획정하려 했다면, 이 작품은 SNS와 미디어라는 거울에 투영된 비가시적 공포, 즉 도시전설의 이면을 해체하는 인식론적 탐구에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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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2. <도시전설 해체센터>의 침대 밑의 남자 에피소드. 괴담은 단편적인 시각 정보와 결합되어 확산된다.
     

플레이어는 ‘침대 밑의 남자’, ‘저주받은 상자’, ‘도플갱어’ 등 전형적인 괴담의 형식을 띤 사건들을 추적하지만, 그 심연에서 마주하는 것은 초자연적 존재가 아닌 인간의 뒤틀린 욕망과 악의다. 첫 번째 에피소드인 ‘침대 밑의 남자’의 경우, SNS를 통해 괴한의 침입이라는 공포가 실시간으로 확산되지만 그 실상은 타인의 파멸을 발판 삼아 이득을 취하려는 치밀한 기획이었다는 사실을 플레이어는 확인할 수 있다. 목격자를 자처했던 김하나는 사실 고위층을 대상으로 한 성매매 브로커였으며, 피해자를 심리적 궁지로 몰아 통제하기 위해 괴한을 고용한 자작극을 벌인 것이다. 대중은 자극적인 이미지와 텍스트에 매몰되어 피해자를 향한 무분별한 신상 털기와 2차 가해를 서슴지 않았다. 결국 이 사건의 진짜 괴물은 침대 밑의 괴한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유희로 소비하고 확산시킨 익명의 대중과 조작된 정보 그 자체다.


‘저주받은 상자’ 에피소드 역시 궤를 같이한다. 상자를 접한 이들이 뱀의 환각과 심장마비를 일으킨다는 소문은 오컬트적 저주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남미산 환각 성분과 알코올의 상호작용에 의한 화학적 반응으로 밝혀진다. 저주의 매개체로 여겨진 치아와 인형 또한 광신도 집단 ‘삼매지마’에 세뇌된 택배 기사가 살의를 담아 배치한 범죄 도구에 불과했다. 나아가 후반부의 ‘그레이트 리셋’ 음모는 실체 없는 공포가 어떻게 사회를 붕괴시키는지 극명하게 투영한다. 테러 집단은 예언의 형식을 빌린 카드를 유포해 대중의 불안을 선동하고, 이를 주가 조작과 사회 혼란의 도구로 삼았다. 우리가 재앙이라 믿었던 현상들은 사실 조회수를 갈구하는 미디어, 타인을 해하려는 악의, 그리고 검증 없이 정보를 유포하는 대중 심리가 합작한 거대한 시뮬라크르였던 셈이다.


“소문 자체가 악이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인간이 문제”라는 센터장 빈차아의 일갈은 이 게임의 문제의식을 관통한다. 현대의 아포칼립스는 핵전쟁이나 좀비 창궐이 아니라,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혐오를 배양하고 인간성을 잠식하는 순간 도래한다. <도시전설 해체센터>는 불완전한 정보를 맹신하고 확산시키는 우리의 태도야말로 시대의 진정한 공포임을 역설하며, 판별의 화두를 타자가 아닌 ‘정보를 소비하는 나 자신’에게로 돌려놓는다.


앞서 언급한 네 편의 게임이 공유하는 핵심은 판별이라는 행위가 지닌 윤리적 함정이다. 우리는 불완전한 정보와 모호한 기준을 손에 쥐고 너무나 쉽게 타인을 심판대에 세운다. 생존을 위해 타인을 의심하는 동안 그 의심의 근거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잊어버린다. “당신은 인간입니까?”라는 질문은 결국 “당신은 단편적인 정보로 타인을 괴물로 낙인찍고 있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괴물은 바깥에서 침략하는 것이 아니다. 타자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손쉬운 정보로 심판하려는 게으른 시선 속에 이미 도사리고 있다. 아포칼립스가 비추는 거울 속에서 플레이어는 괴물이 아니라 정보를 맹신하며 방아쇠를 당기는 자신의 일그러진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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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휴먼, 인본주의, AI, 인공지능, 비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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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강사)

패미콤을 화목한 가족 구성원의 필수품으로 광고한 덕분에 게임의 세계에 입문했다. <저스트댄서> 꾸준러. 『81년생 마리오』, 『게임의 이론』, 『미디어와 젠더』 등을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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