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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은 정말 즐거움의 중심에 있는가? - 칙센트미하이의 flow를 다시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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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6. 2. 10.

주변을 잊게 만드는 경험, 몰입


게임을 하다보면 어느새 훌쩍 지나간 시간에 놀랄 때가 있다. 행동 하나하나 의식하기보다 자연스럽게 게임의 흐름에 몸을 맡기듯 즐기게 되는 순간. 항간에 ‘시간 순삭’ 게임이라고 평가되는 <뱀파이어 서바이버즈>나 <문명> 시리즈의 리뷰에서는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아침이 됐다”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모든 게임이 그런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은 게임을 즐기며 빠져드는 경험을 겪는다.


이를 설명할 때 자주 사용되는 개념으로 ‘몰입’ 또는 ‘플로우(flow)’가 있다. 몰입이란 하나의 활동에 깊이 빠져든 상태에서, 자기 의식이 옅어지고 시간과 공간 감각이 약화되는 순간을 가리킨다.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1990년에 베스트셀러 <Flow: The Psychology of Optimal Experience>(국내 번역: 몰입, FLOW)를 통해 이 이론을 대중적으로 확산시켰다. 정의만 놓고 보면, 사람들이 게임하면서 푹 빠졌던 감각은 “몰입 상태에 있다”로 설명된다.


한창 긍정심리학과 자기계발 열풍이 있을 때, 몰입 이론은 자기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필승 전략으로 소개됐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게임 분야에서 이 게임이 “왜 재미있는지”를 설명하는 분석 틀이자 “잘 만든 게임은 이렇게 만들어야한다”는 설계 규범으로 자주 쓰인다. 게임 디자인, 게임 경험 분석, 게이미케이션, 게임 연구 등 학계 및 산업계 전반 종사자라면 알아야 할 ‘기본 지식’ 중 하나다.



Against Flow, 몰입에 반하여


사실, 이론이 널리 쓰인다고 해서 충분히 검토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몰입의 조건‘이라는 말의 요약본만이 체크포인트처럼 여기저기 떠돌며 이론의 효용만 강조되고, 조건이 딛고 있는 전제는 생략된 것이 오늘날의 실정이다.


충분한 검토 없이 우리는 몰입이라는 개념을 그저 ‘좋은 것’으로만 전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론이 탄생한 역사적 배경과 주변의 사상적 맥락을 살피면, 몰입 이론은 그렇게 밝은 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무색무취의 중립성을 띠고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실제 사용되는 현장에서는 이러한 검토가 자주 생략된다.


2021년에 출간된 <Against Flow>는 바로 그 생략을 지적한다. 제목을 한글로 옮기면 “몰입에 반하여”가 되듯, 이 책은 몰입 이론의 무분별하고 무비판적인 사용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관건은 몰입 이론의 옳고 그름을 판정하자는 것에 있지 않다. 오히려 이론을 충분히 재검토해서 이 개념이 어떤 맥락에서 등장했고, 어떤 가치를 전제하며, 사회적으로 어떻게 작동해왔는지를 추적한다. 몰입의 반대나 해체가 아닌 재검토에 가깝다.


이 글은 <Against Flow>가 던진 문제의식을 발판으로 삼아, 몰입 이론을 다시 들여다보려 한다. 이론의 정합성보다는 게임 학계와 산업계에서 이론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쓰여왔는지를 점검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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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gainst Flow: Video Games and the Flowing Subject>, MIT Press (2021)**


이론의 시작: 인간을 성장시키는 즐거움에 대한 질문


몰입 이론은 처음부터 성공한 게임의 비밀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은 절대 아니었다. 이론을 제시한 칙센트미하이는 1960년대 후반, 인간이 언제 자신의 활동을 즐겁고 의미있게 경험하는지를 탐구하고자 했다. 그는 등산가, 체스 플레이어, 화가, 무용수, 운동선수 등이 다양한 활동에 몰두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보상이 없어도 활동 그 자체에 깊이 빠져드는 경험을 묘사했고, 행동에 대해 의식하지 않게 되었으며, 배고픔이나 위험에 대한 감각까지 잊어버리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1971년 칙센트미하이는 이 경험을 ‘몰입’이라는 모델로 개념화하여 논문으로 제시했다. 몰입의 영어명은 행동이 끊기지 않고 흐르는 듯한 감각을 비유한 ‘플로우(flow)’이며, 또 다른 영어 단어인 immersion과는 차이가 있다.


몰입 이론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요소는 ‘실력’과 ‘도전‘이다. 실력은 개인이 현재 보유한 수준이고, 도전은 목표가 요구하는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몰입은 이 두 수준이 서로 균형을 이룰 때 발생한다. 만약 실력보다 도전이 낮으면 지루함을 느끼고, 반대로 실력이 도전보다 높으면 불안과 좌절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 균형은 고정된 상태가 아니다. 지속적으로 상호 조정되어야 한다. 실력이 향상되면 도전의 수준도 함께 상승해야 몰입이 유지된다.


칙센트미하이는 몰입 상태가 인간을 성장시키는 즐거운 과정임을 밝혔다. 이 설명은 단순하면서도 설득력을 가지며 이후 다양한 분야에 ‘즐거움의 정치학’이라는 명칭으로도 확산되었다.



이론의 성격: 마르크스주의의 대안?


그렇다면 칙센트미하이는 왜 이러한 이론을 주창하게 되었을까? 그가 몰입에 탐닉하게 된 배경에는 그의 개인사가 깊게 얽혀 있다. 그는 1934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2차 세계대전을 정면으로 겪었다. 그의 가족은 모두 전쟁을 피해 헝가리로 가게 되었고, 비극적으로 소련이 헝가리를 점령하면서 그 여파로 칙센트미하이의 가족들이 소련군에 의해 죽거나 수용소에서 행방불명되는 참혹한 피해를 입었다. 그는 어린 시절을 “무의미하고 잔혹하고 혼란스러웠다”라고 기억한다.


칙센트미하이는 난민 수용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체스를 배우게 되었다. 그런데 고도의 집중을 필요로 하는 체스를 두는 순간, 그는 자신의 주변에 펼쳐지는 전쟁의 혼란을 잊어버리는 신기한 경험을 깨닫게 된다. 그에게 체스는 세계의 붕괴 속에서 내면을 되찾는 방식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어린 시절 전쟁에서의 경험은 이후 그의 학문적 관심으로 이어지게 된다.


칙센트미하이는 소련으로부터 삶이 무너졌기에 소련이 추구하던 사회 변혁 사상에도 반감을 갖게 된다. 사회가 인간의 의식을 규정한다는 관점에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고, 나아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적 입장으로 이어졌다. 1967년 칙센트미하이의 초기 저작을 살펴보면, 마르크스가 <정치경제학 비판>에서 사회가 인간의 의식을 규정한다고 한 것에 그가 개탄하면서, 계급의식과 혁명의 사회적 흐름에서 자아를 해체하지 말고 오히려 개인적 의식을 강화해야 비로소 연대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개인의 의식이 약화될수록 사회적 연대 역시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몰입은 ‘소외’를 다루는 방식으로 등장한다. 소외란 마르크스주의에서 노동자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신의 노동의 결과와 자기 자신, 타인으로부터 분리되는 상태를 뜻한다. 그는 마르크스주의가 해소하지 못하는 소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몰입 이론을 생각했다. 몰입 이론에서 소외는 외부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내면에서 해결 가능하며, 혁명 없이도 삶에 몰입함으로써 소외를 완화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사회 변혁이 반드시 개인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가 비판한 것은 마르크스주의만이 아니었다. 인간을 그저 반응 기계처럼 보는 행동주의, 인간의 행위를 무의식과 욕망의 산물로 해석하는 정신분석학, 그리고 개인을 구성하는 외부적 힘을 밝혀내는 일에 중심을 두는 20세기 철학 전반의 흐름이 그에게는 의식의 몰락처럼 보였다. 칙센트미하이는 의식이 만들어내는 개인 행위성의 힘을 되찾고자, 여러 사상들과의 긴장 속에서 몰입 이론의 정치적 성격을 형성하게 된다.


이런 배경을 고려하면, 몰입 이론은 단순한 심리 상태 설명으로만 보기 어렵다. 그가 직접겪었던 경험에 대한 증명이며, 개인의 의식이 사회적 조건에 의해 규정된다는 관점에 대한 반박이자, 소외의 문제를 다시 배치하려는 시도였다. 몰입은 즐거움을 설명하는 개념이기 이전에, 개인이 세계와 맺는 관계를 재구성하려는 하나의 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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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ED 강연 <몰입, 행복으로 향하는 비밀>(2008) 중 칙센트미하이. 출처: https://www.ted.com/talks/mihaly_csikszentmihalyi_flow_the_secret_to_happiness


이론의 재배치: 자본주의 그리고 게임


칙센트미하이가 1970년대 처음 이론을 주장했을 때와 달리 시간이 흐르며 이론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의 여러 저작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TED 강연은 성공적으로 확산되었다. 몰입은 긍정심리학과 자기계발 담론에 빠르게 흡수되면서, 어느새 개인의 ‘성장’과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방법으로만 이야기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몰입은 자본주의 안에서 작동하는 심리학 이론의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몰입이 약속하는 것은 더 많은 행복, 더 많은 에너지, 더 많은 성취이다. 칙센트미하이는 저서 <굿 비즈니스>에서 몰입을 통해 노동자의 만족과 생산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고 관리자에게 제안하며, 사회 변혁의 대안으로 개인의 행위성을 되찾고자 했던 초기 구상은 결과적으로 더 깊은 몰입과 더 많은 성과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몰입은 삶을 재구성하는 태도라기보다 성과를 관리하는 기술로 받아들여지게 됐다.


게임 산업에서도 이런 개념 전환은 그대로 반복된다. 몰입은 이용자의 게임 플레이 시간을 늘리고, 이탈을 줄이며, 소비를 지속시키는 효과적인 개념이다. 많은 게임 디자이너들은 앞서 살펴본 이론적 배경이나 문제의식 없이 몰입을 게임 디자인의 핵심 원리로 제시한다. 경험을 설명하던 개념은 어느새 경험을 통제하는 기준으로 바뀌어버렸다.


그 결과 몰입은 게임 디자이너에게 하나의 실천 규범으로 기능하고 있다. <림월드>의 제작자 타이난 실베스터는 몰입을 좋은 게임 경험의 기반으로 규정한다. 몰입이 깨지면 경험 전체가 무너진다고 말하면서, 나쁜 게임이 가지고 있는 많은 문제들은 “몰입이 깨져서 일어나는 것이다”라고 평가한다. 에픽 게임즈와 유비소프트에서 UX 전문가로 있었던 셀리아 호든트 역시 그의 저서 <게이머의 뇌>에서 몰입 이론의 실력-도전 난이도 곡선을 제작 프레임워크로 언급한다. 그리고 “몰입 파괴자”, 예를 들면 불공평한 죽음과 실패, 화면의 정지, 너무 긴 카메라 워크나 컷신은 이 개발자가 반드시 피해야 할 존재라고 강조한다. 이런 담론은 해외뿐 아니라 국내 게임 개발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산업의 관점에서 플레이어가 게임에 더 오래 머물고, 주의를 게임 외부로 돌리지 않는 상태는 매우 이상적이다. 집중이 유지될수록 다음 콘텐츠와 다음 상품을 제안하기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몰입은 즐거운 경험의 조건인 동시에, 소비를 지속시키기 위한 환경 조건이다.



이론의 현재: 스스로 난이도를 고치는 게임


게임 산업이 점차 발전하면서 몰입 이론은 게임 시스템 설계까지 직접적으로 적용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동적 난이도 조정(DDA, dynamic difficulty adjustment)이다. DDA는 플레이어가 좌절하거나 지루해지기 전에 난이도를 조정해 몰입 상태를 유지하려는 설계 방식이다. 플레이어가 선택을 통해 능동적으로 조정하거나 시스템이 자동으로 조정하는 방식이 있다. 어느 방식이든 공통된 목표는, 플레이어가 자신의 실력 수준과 도전이 균형을 이루는 자신만의 ‘플로우 존’에 머물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게임의 시스템은 플레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분석한다. 그 결과에 따라 적의 수, 이동 속도, 공격 빈도 같은 요소들이 자동으로 조정된다. 고전적인 예로 <스페이스 인베이더>에서 적의 수가 줄어들수록 남은 적의 움직임이 빨라지는 구조를 들 수 있다. 현대의 게임들은 이보다는 복잡한 방식으로 여러 변수를 동시에 조정하고 있다.


중요한 점은, DDA는 자연스럽게 작동해야하며 플레이어는 이 변화를 체감하지 못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플레이어가 게임에 맞춰지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한 채 자신의 성장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DDA가 깊은 곳에서 몰래 작동할수록 플레이어는 자신의 실력 향상의 환상을 믿게 된다.


DDA는 몰입 이론에 크게 의존하며 발전해왔다. 문제는 DDA가 지향하는 바가 즐거움을 생성하기보다 좌절과 지루함을 사전에 제거하는 데에 맞춰졌다는 점이다. 게임 산업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임 중단, 접속 종료, 환불 등을 방지하기 위해, 몰입 이론은 위험 관리 수단이다.


이 구조는 궁극적으로 몰입을 중독의 방향으로 향하게 할 수밖에 없다.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지속적으로 ‘맞춰진’ 경험을 제공하고, 그 과정에서 긍정적인 감각만을 반복적으로 강화한다. 반대로 현실에서는 그런 일들이 쉽게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현실에서의 일들이 더 거칠고 불편하게 느껴지며, 게임에 몰입하는 동안 현실의 불안이나 우울을 잊게 된다. 하지만 잠시 잊혀질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몰입이 끝났을 때 다시 마주하는 것은 잠시 뒤로 밀어두었던 현실이다.


흥미롭게도 칙센트미하이는 자신의 연구에서 게임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그가 놀이를 통해 몰입을 설명할 때 든 예시는 주로 체스였다. 1990년대 이르러서야 게임을 몰입의 사례로 간단하게 언급하지만, 그마저도 텔레비전 시청을 비판하는 맥락이었다. 그는 무비판적으로 텔레비전 시청에 빠져드는 상태를 경계했고, 마찬가지로 게임에 무비판적으로 빠져있는 사람들은 그가 꿈꿨던 이상적인 개인의 성장형 몰입의 상태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이야기는 쏙 빠지고 난이도 곡선만이 남아서 업계를 떠돌고 있다.



이론의 비판적 소비를 위하여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을 통해 개인이 소외를 극복하고 삶의 활동을 재구성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한편 동시에 그는 여러 저작에서, 몰입이 중독이나 자기중심적 소비, 현실 회피로 변질될 수 있는 위험한 자원이라는 점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한 외과 의사 이야기를 예로 들었는데, 수술하는 일을 즐겼던 의사는 자신의 일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휴가를 못 즐기고 수술해볼 수 있는 다른 병원을 휴가지에서 찾아다녔다는 것이다. 몰입은 어떤 경우에 고립을 초래하여 자아 내부에만 집착하게 되는 부작용을 낳는다. 칙센트미하이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문제는 몰입이 좋은가 나쁜가를 가르는 데 있지 않다. 어떤 맥락에서,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는가가 더 중요하다. <플레이의 미학>을 쓴 브라이언 업튼은 몰입이 매력적인 요소이지만 필수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실력과 도전을 두 축으로 한 매끈한 그래프 바깥에서도, 즐거움은 당연하게 발생할 수 있다. 가끔 그 어긋남 자체가 경험의 핵심이 되기도 한다. 숙련을 극한으로 끌어올릴 때까지 좌절을 지속하거나, 아예 몰입을 깨뜨릴 목적의 게임은 무수히 많다.


나아가 <Against Flow>는 거리두기를 통해 몰입을 깨는 게임, 몰입을 통해 오히려 현실의 성찰을 이끌어내는 게임 등 다양한 경험의 양상을 여러 사례로 보여준다.


우리는 이론이 단편적으로 소비되는 현 상황을 되돌아보고, 비판적 소비로 도약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몰입 이론이 굳어져 사용되는 방식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이 책은 참고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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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문화연구자)

사회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연구합니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결국 인간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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