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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AA의 한계를 뒤로 하는 북미 게임업계의 뉴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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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6. 2. 10.

2025년 북미 게임시장, 라이브 서비스는 왜 무너졌나


지난해 11월, 워너 브라더스 게임즈는 수년간 공들여 개발한 <수어사이드 스쿼드: 킬 더 저스티스 리그>에 오프라인 모드를 추가한다는 내용을 조용히 발표했다. 겉으로는 유저 편의를 위한 업데이트처럼 보였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이를 사실상의 서비스 종료 예고로 받아들였다. DC 유니버스라는 거대 IP를 앞세워 수천억 원을 쏟아부은 라이브 서비스 게임이 출시 1년도 채 되지 않아 백기를 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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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를 보면 이런 결정이 이해가 간다. 2025년 1분기 워너 브라더스 디스커버리 실적 발표에서 게임 부문 매출은 전년 대비 48% 급감했다. 경영진은 공개적으로 "게임 전략 수정"을 언급했고, 라이브 서비스 중심 전략에서 철수를 선언했다. 검증된 프랜차이즈 중심의 전통적 개발 방식으로 회귀하겠다는 것이었다.


소니 역시 비슷한 국면을 맞았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 온라인> 프로젝트와 <갓 오브 워> 라이브 서비스 게임은 모두 개발 중단됐다. 물론 게임의 퀄리티와는 무관한 논란이 있기도 했지만 2024년 출시된 멀티플레이 슈터 <콩코드>는 극심한 흥행 부진 끝에 수개월 만에 서비스를 종료했고 결국 스튜디오 폐쇄로 이어졌다. 2025년 소니 CFO는 실적 발표 자리에서 솔직하게 인정했다. "라이브 서비스 게임 전략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시간을 두고 벌이는 전쟁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핵심은 단순하다. 라이브 서비스는 유저의 '돈'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경쟁하는 모델이며, 이 시간은 본질적으로 한정돼 있다. <포트나이트>, <로블록스>, <GTA 온라인> 같은 소수의 초대형 플랫폼형 게임이 유저의 시간을 독점하는 상황에서, 신규 라이브 서비스 게임은 진입 단계부터 구조적으로 불리하다.


여기에 시즌 패스, 데일리 미션, 한정 이벤트로 대표되는 비즈니스 모델은 피로감을 주고 있다. 절대 놓칠 수 없다는 조바심을 뜻하는 Fear of Missing Out(FOMO)에 기반을 뒀기 때문이다. 2025년 하반기 레딧과 디스코드에서는 "게임이 취미가 아니라 숙제가 됐다"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나왔고 새로운 온라인 게임이 나와도 이에 익숙해지고 새로 배우는 것이 부담스러워 시작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많았다. 


또 하나의 결정적 요인은 '출시 후 완성' 문화에 대한 신뢰 붕괴다. 이전의 싱글 플레이 게임과는 달리 출시 후 패치를 전제로 발매되는 게임들이 많다. <배틀필드 2042>, <헤일로 인피니트>, <마블 어벤져스> 등은 모두 불완전한 상태로 출시된 뒤 장기적인 패치를 약속했지만, 결과적으로 유저 신뢰를 회복하지 못했다. 특히 <마블 어벤져스>는 출시 직후 분기 손실 약 6300만 달러를 기록하며, 라이브 서비스 실패가 얼마나 큰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이제 유저들은 미완성 게임을 돈을 지불하고 기다려주지 않는다.



엔딩이 있는 게임의 귀환


이러한 흐름 속에서 2025년 12월, 더 게임 어워즈를 전후로 가장 뜨거웠던 질문은 명확했다. "왜 우리는 다시 싱글 플레이어 게임에 열광하고 있는가?" 답은 단순하면서도 명확했다. 유저들은 엔딩이 있는 경험, 즉 완결된 만족감을 다시 원하기 시작했다.


이 변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작품이 <33원정대>다. 프랑스의 중소 규모 스튜디오 샌드폴 인터랙티브가 약 30명 내외의 팀으로 제작한 이 게임은 언리얼 엔진 5를 활용한 AAA급 비주얼과 실험적인 턴제 전투 시스템으로 북미 시장을 뒤흔들었다.


출시 6개월 만에 누적 판매량 500만 장을 돌파했고, 엑스박스 게임 패스 역사상 2025년 가장 성공적인 서드파티 런칭 타이틀로 기록됐다. 더 게임 어워즈 2025에서는 무려 1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9관왕을 차지했다. 개발비는 약 1000만 달러 수준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대형 AAA 게임 평균 개발비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캡콤의 <몬스터 헌터 와일즈> 역시 같은 흐름 위에 있다. 온라인 협동 요소를 포함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싱글 플레이를 중심으로 한 완결형 액션 RPG인 이 게임은 출시 3일 만에 800만 장 이상 판매되며 캡콤 역사상 가장 빠르게 팔린 게임이 됐다. 비평과 유저 반응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된 강점은 "라이브 서비스처럼 느껴지지 않는 설계"였다.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지금 당장 해야 할 이유'를 강요하지 않았고, 대신 서사, 탐험, 성장의 리듬을 존중했다.



뉴 미들의 부상


이 변화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3000억이 넘는 예산, 5년이 넘는 개발기간을 거치는 초대형 라이브 서비스 프로젝트는 이제 과도한 리스크를 동반한 도박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뉴미들, 즉 고품질 AA 시장이다.


1000억원 이하의 예산, 3년 이하의 개발기간, 명확한 기획과 타겟을 가진 싱글 플레이어 중심 프로젝트들이 산업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들이 무엇보다 유저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기술 발전과 개발 툴의 대중화가 만들어낸 결과다. 언리얼 엔진 5 같은 도구 덕분에 이제 소규모 팀도 AAA급 비주얼을 구현할 수 있다. 유저는 더 이상 '가장 큰 게임'이 아니라 '가장 밀도 높은 게임'을 선택한다.


북미 게임업계에서 오랜 시간 일한 한 개발자는 “누구나 다 퀄리티가 높은 게임을 하고 싶어하지만 게임사 입장에서는 퀄리티를 높이며 커져버린 비용을 회수하려면 당연히 라이브 서비스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며 “그래서 많은 유저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라이브 서비스 게임을 해온 면이 있다. 피로도가 누적된 유저들이 눈을 돌리니 퀄리티가 높으면서도 유저들을 ‘쥐어짜지 않는’ 싱글 플레이 게임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라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실제로 2025년 하반기부터 북미 주요 퍼블리셔들은 라이브 서비스 프로젝트 수를 줄이고, 대신 중규모 싱글 플레이어 게임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2026년은 북미 게임 산업이 '규모의 경제'에서 '밀도의 경제'로 이동하기 시작한 변곡점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라이브 서비스의 신화는 무너졌고, 완결형 싱글 플레이어 게임은 다시 중심으로 돌아왔다. 미래는 가장 비싼 게임의 것이 아니라, 가장 명확한 비전을 가진 게임의 것이다.



한국은 여전히 라이브 서비스 하지만 여기에 뉴미들을 곁들인


북미 게임업계 관계자들이 보는 한국의 게임업계는 라이브 서비스의 선두주자였다. 넥슨은 이전부터 부분유료화라는 모델을 만든 게임회사라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드러내왔고 NC소프트는 모바일 라이브 서비스 게임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는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서 수익을 창출해 왔다. 특히 <EA FC>(과거 FIFA 시리즈)를 만들고 있는 EA가 한국의 <FIFA 온라인>의 비즈니스 모델을 보고 이를 참고해서 라이브 서비스를 운영해왔다는 것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여전히 한국의 게임사들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 것은 라이브 서비스 게임들이다. <던전앤파이터>, <배틀그라운드>, <리니지> 등 각 게임사의 대표게임들이 검증된 수익모델로 자리잡고 있는 이상 회사들은 여기에 자원을 투자할 수 밖에 없다.


다만 완전히 모든 자원을 모바일 라이브 서비스 게임에 올인하는 것 같던 2010년대의 분위기는 조금씩 누그러지고 오히려 엔딩이 있는 게임을 개발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P의 거짓>, <스텔라 블레이드>, <데이브 더 다이버> 등의 성공사례가 있고 관련 분야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붉은 사막> 또한 3월 출시를 앞두고 있다.

4년전 NC소프트의 한 관계자를 만나 업무관련 협의를 하는데 그는 당시 사내 분위기를 전했다. <리니지> 처럼 모바일 라이브 서비스 게임을 통해 극히 적은 고액 결제 유저, 이른바 고래들에게 의지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이제 저물고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고. 2020년대 들어서부터는 한국의 게임사들이 이러한 위기감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020년대도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위기감의 결실들이 하나씩 보이고 있다. 북미 게임계의 뉴미들과 경쟁할 만한 좋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올지 지켜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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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인)

캘리포니아에서 살면서 게임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에 출연하고 매체에 기고를 하며 많은 분들에게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패션부터 게임까지 분야에 상관없이 재밌는 글을 평생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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