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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화 불량 커비의 사물 머금기

    커비는 왜 인간이 사물을 쓰던 방식과 다른 접근을 취할까? 커비가 사물과 상호 작용하게 된 배경에는 이번 〈디스커버리〉가 펼쳐지는 무대에 있다. 〈디스커버리〉에서 커비가 도착한 곳은 커비의 세계와 인간 세계가 충돌한 곳이다. 이제까지 커비의 모험이 주로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우주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별 모양의 행성 팝스타에서 이루어졌다면, 〈디스커버리〉에서 커비가 종횡무진하는 이 세계는 플레이어에게 어딘가 익숙하다. < Back 소화 불량 커비의 사물 머금기 06 GG Vol. 22. 6. 10. 신세계에서 발견한 물건을 베어 물면 커비가 변형! 다양한 액션으로 대모험! 1) * 커비의 다양한 머금기 변형 종류 〈별의 커비 디스커버리〉는 2022년 3월 25일 커비 시리즈의 30주년을 맞이하여 발매된 게임으로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커비를 소개한다. 횡스크롤 게임 플레이에서 벗어난 첫 번째 전방향 3D 액션 게임으로 큰 화제가 된 〈디스커버리〉는 출시 2주만에 210만 장이 판매되는 등 현 시점까지도 인기를 끌고 있다. 난이도를 고려하여 섬세하게 개발된 플레이 시점, 이전과는 차별화된 스테이지 디자인 등 여러 요소들이 이목을 끌고 있으나 그중에서도 괄목할 만한 것은 이번 게임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커비의 머금기 변형이다. 영어로는 ‘마우스풀 모드(Mouthful Mode)’, 한국어로는 ‘머금기’라고 불리는 상호 작용은 커비가 사물을 빨아들이다 반 머금을 때 특정한 행동이 가능해지는 특수한 능력이다. * 물건을 반만 머금기 직전 자동차를 다 소화하려고 노력하는 커비의 모습 게임은 평화롭게 자신의 행성을 산책하던 커비가 하늘에 난 구멍이 만든 푸른색의 폭풍에 휘말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포털을 통해 미지의 세계에 도착한 커비는 스테이지를 활보하다가 길 한가운데에 뒹굴고 있는 사물을 만나게 된다. 다른 것과 달리 반짝이는 이 사물은 커비의 접근을 유도한다. 사물 앞에서 커비는 관성적으로 자신이 늘 하던 빨아들이기를 사용한다. 그런데 한 입에 모두 삼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커비는 이내 반 정도를 뱉어낸다. 자동차, 꼬깔콘, 고리, 전구, 계단, 지게차 등을 만나며, 우주와 같은 자신의 위장 속에 사물을 삼키지 못한 커비의 입과 몸은 사물의 형태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형된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고안되어 특정한 능력을 보유하지 않는 사물을 머금으면 그다음에는 무슨 일이 발생할까? 불, 물, 칼, 폭탄 던지기와 같은 명확한 정체성이 없는 사물이 커비와 접촉하면 커비는 이를 어떻게 사용하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사물과 커비가 맺는 특별한 관계가 생성된다. 이는 더 나아가 게임 내에 사물이 존재하는 양상에 대한 재고찰을 돕고 플레이어와 사물이 주체와 객체로 고착화되는 공식을 뒤집으면서 다른 상호 작용의 가능성을 제안한다. 머금기 변형이 등장한 배경에는 2D에서 3D로의 전환이 있다. 2020년, 닌텐도 스위치용으로 발매된 전작 〈커비 파이터즈 2〉만 해도 횡스크롤 스타일을 고수하였다. 개발진들은 2D 커비의 귀여운 특성을 살리면서도 이를 어떻게 3D 액션 플레이로 연계할 것인가 고민하였고, 이 과정에서 머금기 변형이 새로운 능력으로 등장하였다. 2) 다양한 것을 먹고 늘어났다 줄어드는 모습은 자유자재로 변화하는 기묘한 커비의 개성을 3D로 구현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3D에서는 2D와 달리 상하좌우의 부피감을 인지할 수 있기에 넘어지기, 가속하기, 늘어나기, 사방으로 움직이기 등 다양한 방식의 움직임을 플레이 요소에 더하는 것이 장려되며, 이러한 움직임을 가능하게 해 주는 장치로 사물이 사용된 것이다. 제작진의 의도와 다르게 머금기 변형은 단순히 3D 효과를 부각하는 것을 넘어 게임 내에서 사물의 위상을 바꾸었다. 사물은 커비의 능력을 경유하여 본래의 목적과는 다르게 번역되고, 주변 환경을 연결하기도, 또 해체하기도 한다. 이러한 특성을 자세히 들여다보기에 앞서 짚어야 할 것은, 커비의 머금기 변형은 변신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커비의 위장은 흔히 우주와 같이 무한하다고 알려져왔으나 이번 시리즈에서는 사물을 온전하게 흡수하지 못하며, 대상을 완전히 모방하고 변신하려는 커비의 시도는 실패한다. * 캡처 능력을 활용하여 굼바에 빙의한 마리오 〈디스커버리〉가 참고하여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와 비교하면 변신과 변형의 차이가 더 명확해진다. 커비의 3D 월드는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로부터 스테이지 구성 혹은 시점 변화 등의 요소를 계승하였다. 머금기 또한 마리오의 ‘캡처’ 능력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사물을 이용하여 퍼즐을 해결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캡처는 마리오가 자신의 모자인 캐피를 던져 특정한 대상에 맞추면 그 대상으로 빙의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나 이 기술은 주로 적에 빙의했을 뿐 아니라 마리오가 본래 지니고 있던 고유한 특성에서 기인한 움직임은 아니었다. 또한 완전한 빙의로 인해 마리오스러운 플레이를 운용하는 것에 실패한다. 실제로 이 캡처 능력은 마리오의 캐릭터성을 중시 여기는 이들에게는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반면 커비의 머금기는 커비의 정체성과도 같은 흡입하기와 뱉기를 활용하면서도 더 나아간다. 사물을 ‘머금었다’라는 제약은 커비의 사물-되기를 방지한다. 사물을 머금은 커비는 커비도 사물도 아닌, 커비-사물 혹은 사물-커비의 중간 상태를 계속해서 유지하게 된다. 애매모호한 존재가 되어 버린 커비의 상태는 커비 본래의 특성을 플레이어에게 이해시키면서도 오히려 역으로 플레이에 재미를 부여한다. 사물을 뱉고 나면 다시 탄력적으로 원래의 크기와 능력으로 돌아가는 커비를 통해 이 일시적인 결합은 사물과 관계 맺는 방식을 강조한다. 커비의 번역은 새로운 관계 맺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커비는 처음 보는 사물을 낯선 방식으로 쓴다.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사물의 용도에 새로운 쓰임을 부여하고 커비만의 방식으로 사물들을 번역한다. 이는 더 나아가 플레이어에게 새로운 쓰임을 익히게 하고 게임 내의 필수적인 요소로 이해하게 만든다. ‘플레이어 - 사물 - 커비’의 삼자관계는 플레이어가 커비를 조종하는 일방향적인 관계를 다각화한다. 커비는 왜 인간이 사물을 쓰던 방식과 다른 접근을 취할까? 커비가 사물과 상호 작용하게 된 배경에는 이번 〈디스커버리〉가 펼쳐지는 무대에 있다. 〈디스커버리〉에서 커비가 도착한 곳은 커비의 세계와 인간 세계가 충돌한 곳이다. 이제까지 커비의 모험이 주로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우주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별 모양의 행성 팝스타에서 이루어졌다면, 〈디스커버리〉에서 커비가 종횡무진하는 이 세계는 플레이어에게 어딘가 익숙하다. 커비가 마주치는 잔해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즉 인류 문명이 멸망한 뒤 자연이 울창해진 세계이기 때문이다. 곳곳에는 허름한 쇼핑몰, 놀이 기구만 살아남은 놀이공원, 폐공장, 빈 도심 등이 배경으로 펼쳐진다. 인류가 사라진 자리에는 자동차, 토관, 자판기 등 여러 사물만이 남아 있다. 커비의 세계에는 부재한 사물들이다. 따라서 커비는 본래의 용도를 모르는 상태에서 사물을 조우하며,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빨아들이기를 통해 이용한다. 사물은 정해진 능력이 없고 목적에 따라 달리 사용되기 때문에 커비가 사물을 빨아들이면 능력을 복사하는 대신 사물의 일부 특성이 소환된다. 커비는 이를 자신의 쓰임새에 맞게 용도를 전환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 머금기는 가속의 기능을 활용하여 막힌 곳을 뚫는 데에 사용하고, 삼각 머금기로는 파열된 수도관이나 금이 간 바닥에 구멍을 뚫고, 돔 머금기는 저수 탱크 열기, 로커 머금기는 버둥거려서 길 만들기, 고리 머금기는 풍력을 이용한 동력원으로 사용하거나 바람으로 적 날리기, 자판기 머금기는 캔을 뱉어 길을 뚫는다든지 적 물리치기, 계단 머금기는 옆 혹은 앞으로 넘어지기, 토관 머금기는 데굴데굴 구르기, 작업차 머금기는 높은 곳에 닿기, 아치 머금기는 글라이더로 변형하여 비행하기 등이 있다. * 간판에서 떨어진 철자 O를 고리로 머금기 위해 다가가는 커비 * 트래픽콘 외에도 삼각형 모양의 아이스크림 조각상 하단부도 삼각 머금기의 대상이다 본래 트래픽콘이 차량을 통제하거나 위험을 표시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것과 달리, 커비는 이를 원뿔로 인식하고 금이 간 바닥이나 수도관을 터트려 길을 만든다. 또한 커비는 트래픽콘을 도움닫기 삼아 높은 지형물에 올라가기 위해 활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높게 점프하는 커비의 본래 능력의 연장선상에서 새롭게 번역된 사물의 쓰임이다. 한편 고리 머금기의 경우에는 보다 다양한 사물로부터 비롯되는데 바닥에 떨어진 글자, 시계 또한 그 대상이 된다. 본래의 용도가 무엇이었든 커비는 고리 모양이라면 이를 머금어 바람을 불어 보트를 움직이거나 적을 날려버리며, 이러한 고리의 사용법은 커비의 내뱉는 능력에서 파생된다. 시계의 기능이나 철자 O로 읽는 것은 커비의 능력이나 필요와는 무관하기 때문에 무용지물이다. 마찬가지로 트래픽콘과 아이스크림 콘은 본래 사물의 목적, 기능과 관계없이 커비에게는 동일한 물체로 인식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의 언어로 이해되었던 사물은 커비의 언어로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지고 끝없이 새로운 질서를 만들며 역할을 부여받는다. 번역은 다른 체계의 대상을 같게 만드는 동시에 차이를 형성하는 과정이며 네트워크를 건설한다. 3) 기존의 연결 고리를 끊고 다른 요소들과 결합한다는 점에서 커비와 사물의 만남은 새로운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는 게임에서 사물로 변형된 커비가 도달할 수 있는 곳들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디스커버리〉에는 커비가 스테이지를 돌파하는 목적 외에도, 더 좋은 설계도를 획득하거나 실종된 웨이들 디를 구하는 미션 등이 주어진다. 숨겨진 보물을 찾기 위해서는 여러 장치들을 통과해야 하는데, 사물을 머금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는 길들이 여럿 있다. 사물을 머금을 때 비로소 위로 도달할 수 있고, 막혔던 길이 뚫리거나 숨겨졌던 길을 발견하는 등의 과정은 특정한 사물로 인해서 발생하는 네트워크를 가시화한다. 유니티의 매뉴얼에 따르면 게임 내 사물은 그 개체 자체로는 ‘아무것도 이루어 낼 수 없는’ 것이다. 4) 사물은 게임에서 항상 몰입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특히 사물과의 상호 작용성은 플레이어의 몰입을 이끄는 요소로 여겨졌다. 몰입을 더하기 위해 게임의 사물들은 주로 현실의 형태와 물리 엔진을 모사하는 방식으로 재현되어 왔다. 플레이어의 몰입과 관심을 계속해서 붙잡기 위해 최대한 우리 세계에 가까운 방식으로 작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직관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플레이어가 게임의 주요한 서사에서 이탈하지 않게 하고자 하는 위함도 있다. 따라서 게임 그래픽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사물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은 여전히 고전적인 측면이 있다. 한편 〈디스커버리〉에서 사물의 문법을 번역하고 비틀어 상이한 질서를 부여하는 방식은 우리로 하여금 사물을 중심으로 두고 어떻게 관계 맺을지를 고안하게 한다. 우연히 길을 걷다가 발견한 아이템을 인벤토리에 넣고 360도 돌려 글귀를 읽는 방식과는 상이하다. 이를 테면 게임에서 다양한 종류의 사물과의 상호작용은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 블랙박스(black-box)를 빗겨나갈 수 있게 해 준다. 블랙-박스는 사람들이 외부의 입-출력에만 의존하여 내부의 네트워크를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며 다종의 행위자들이 연루된 네트워크를 인식하지 못하게 되면서 네트워크에 점점 무관심해지는 것을 일컫는다. 5) * 머금기에 익숙해진 플레이어는 트래픽콘을 내려 찍는 감각으로 인식하게 된다 연결과 해체의 연속적인 과정을 통해 게임 내에서 사물은 단순히 퍼즐의 한 요소가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가능하게 하는 전체이자 요소로 등장한다. 게임이 기묘하게 비트는 현실의 규칙들은 오히려 사물과의 관계를 재고하고 이에 대한 새로운 사용법을 익히도록 한다. 이처럼 사물의 관계 맺기 양식을 다양화하는 게임들은 플레이어의 몰입을 창의적인 방식으로 이끈다. 특히 이번 커비 게임에서 사물의 지위는 단순히 부차적인 힌트나 아이템과 같은 보관의 용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머금어 창조적으로 이용하여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방식을 통해 재고찰된다. 계단이 높은 곳을 걸어서 올라가는 곳이 아니라 옆으로 쓰러져 눕는 사물이 되었을 때 계단 끝의 모서리, 딱딱함, 둔탁함은 다른 감각으로 찾아온다. 트래픽콘을 통행 금지의 표식이 아닌 뒤집은 모서리가 내리찍을 지면과 연결하여 인식하게 된다. 소화 불량 상태를 벗어난 커비의 모습이 괜히 아쉬워지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는 동료 멜트미러와의 대화 속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음을 밝힙니다. 1) “Kirby Speical Ability” 『星のカービィ』公式ポータルサイト, https://www.kirby.jp/ability/special/mouthful-mode.html. 2022년 5월 30일 접속. 2) “개발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닌텐도, 2022년 3월 24일. https://www.nintendo.co.kr/interview/arzga/03.php 2022년 5월 29일 접속. 3) 브뤼노 라투르, 『인간·사물·동맹』, 홍성욱 역 (서울: 이음, 2010), p. 25. 4) “Unity Manual: GameObjects”. Unity Documentation, 2021년 3월. https://docs.unity3d.com/Manual/GameObjects.html 2022년 5월 30일 접속. 5) 브뤼노 라투르, 『인간·사물·동맹』, 홍성욱 역 (서울: 이음, 2010), p. 24.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획자) 박유진 시각 문화의 경계 안과 밖에서 읽고, 쓰고, 상상한다. 다른 시간과 공간이 교차하는 방법론에 관심이 많으며 플랫폼을 만들고 매개자로부터 배우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자 한다. 현재는 상상력을 통해 현실에 균열을 내는 실천에 관심을 두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아레시보 Arecibo》를 기획했다. (@_ehpark)

  • 거대전쟁기계와 게이밍, 전 지구적 지각의 병참학 - 세계체제 자본주의 게임공간의 알레고리

    이 냉혹한 전지구 권력의 게임공간 안에서 플레이어들은 힘의 수직적 전달자, 말 그대로 행위의 주체가 아닌 논 플레이어블 캐릭터(None Playable Character)가 된 것은 아닐까? 우리에게 전쟁은 이제 단순히 TV나 소셜미디어에서 흘러나오는 스펙타클이 아닌, 실존의 위협이라는 사실이 인지되어야 한다. “전쟁, 전쟁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 Back 거대전쟁기계와 게이밍, 전 지구적 지각의 병참학 - 세계체제 자본주의 게임공간의 알레고리 25 GG Vol. 25. 8. 10. 시뮬레이션, 지각의 재목적화 혹은 전술화 먼 미래, 22세기 말 우주로 진출한 인류는 태양계 외곽에서 외계 종족 ‘버거’와 조우한다. 버거는 인간을 적으로 간주하고 두 차례 지구를 침공하지만 지구 함대는 가까스로 막아내고 3차 전쟁을 준비한다. 지구인들은 뛰어난 상황 판단, 전술 지휘 능력을 지닌 아이들을 선발해 게임으로 그들을 훈련시킨다. 이 게임은 각각 ‘마인드 게임’, ‘배틀 게임’, ‘함대 지휘 시뮬레이션’ 세 가지로 이뤄져 있다. ‘마인드 게임’은 심리 분석용 롤플레잉 게임, ‘배틀 게임’은 무중력 공간에서 펼쳐지는 분대 단위 전투 게임이며, ‘함대 지휘 시뮬레이션’은 대규모 함대를 통제해 싸우는 지휘 게임이다. ‘엔더 위긴’은 특출난 재능을 지닌 유망주로, 유년 학교에서 사령관 학교까지 승승장구하며 성장한다. 엔더는 졸업 시험으로 전 인류 군대를 이끌고 버거의 모행성을 침공하는 함대 결전 시나리오를 플레이하는데, 엄청난 아군 희생, 비인간적이고 극단적인 전략 운용 끝에 가까스로 버거 종족을 멸망시키는 데 성공한다. 게임이 끝나나자 그를 지도하던 선생들은 엔더를 추켜세우며 환호한다. “자네가 해냈어. 자네가 인류를 구원한 거야. 이건 게임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었다네, 엔더.” 망연자실한 엔더는 그제야 자신이 희생시킨 동료들, 폐허, 버거 종족 멸망이 모두 자기 손에서 벌어진 진짜였음을 깨닫는다. * 올슨 스콧 카드, 『엔더의 게임』(1985). 영화 <엔더의 게임>(2013). 올슨 스콧 카드의 SF소설 <엔더의 게임>의 스토리다. 이 작품은 <스타워즈>, <스타트렉>, 은하영웅전설>, <듄> 등 전쟁을 소재로 한 유명 스페이스 오페라물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게임을 소재로 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소설이 다루는 전쟁 게임 덕분에, 다른 작품들에 비해 훨씬 현실적으로 전쟁의 본질을 보여준다. 왜 그럴까? 프랑스의 기술철학자 폴 비릴리오(Paul Virilio)에 따르면, 전쟁의 핵심은 적의 인구와 영토를 파괴하는 물리력이 아니라 적의 ‘지각’을 지배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전쟁은 마술적 스펙타클로부터 분리될 수 없으며, 스펙타클을 생산하는 것이 전쟁의 목표다. 적을 무찌르는 것은 곧 적의 지각을 사로잡는 것이고, 죽음 이전에 죽음의 공포를 적에게 심어주는 것이다…무기의 힘은 야만적인 물리력이 아닌 영적인 힘이다.” [1] 그렇다면 공포와 흥분, 무력감과 엔돌핀, 도파민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길들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무엇이 될까? 흥분과 공포를 대리 체험하고 뇌리에서 구조화하도록 만들어주는 ‘시뮬레이션’은 게임을 만들고, 플레이할 때 가장 활성화된다. 두뇌의 시뮬레이션 기능은 인간 진화의 핵심으로 단순히 시청각적 감각의 모방을 넘어 지각의 체계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인간은 어릴 때부터 본능적으로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상황의 서사를 시뮬레이션한 뒤 스스로 모방·학습해 나간다.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들은 예술의 본질이 모방이라고 했지만, 모방의 진정으로 구조적이고 구성적인 측면은 놀이에 있음을 우린 유년 시절 즐겼던 수많은 게임으로부터 배웠다. 경찰과 도둑놀이, 술래잡기에서 사냥감을 쫓거나 혹은 포식자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체득했으며, 장난감 총칼을 든 전투에서는 폭력의 위험성과 쾌감을 동시에 느꼈다. 게임, 특히 폭력이나 전쟁을 소재로 한 게임은 이 감각을 체험하는 가장 가깝고도 단순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게임이 아이를 폭력적으로 만든다’는 말이 진공에서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그것은 특정한 방식으로 우리의 지각을 바꿔놓기 때문이다. 이라크전쟁 미 해병대의 잔혹한 현실을 풍자한 전쟁드라마 <제너레이션 킬>에는 게임광 출신 병사 ‘트롬블리 일병’이 등장한다. 그는 전투에서 자신이 즐겼던 FPS 게임의 효과음을 입으로 내며 사격하고, 적군을 사살할 때마다 킬 카운트를 확인한다. “전쟁은 왜 이리 지루하죠? 게임은 화려하고 실감나던데.” 마인드게임, 배틀 게임, 지휘 시뮬레이션 폴 비릴리오는 인류 전쟁 역사의 본질이 ‘지각의 병참학’ 이었다고 정의한다. 전쟁은 점점 물리적인 공간이라기보다는 ‘지각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다시 말해 물리적인 힘이 직접 교차하는 성격은 사라지고 은폐와 드러내기, 즉 ‘보기’에 대한 테크닉의 장으로 바뀌어가는 중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론은 현대전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최첨단 대공 레이더는 드론을 포착하지 못했고, 수십억짜리 주력전차들은 마트에서나 파는 상용 드론에 무력화됐다. 군함 한 척 없는 우크라이나 해군은 해상 드론으로 러시아 해군 기함 모스크바함을 격침했다. 트위터X에는 양측이 올린 전투드론 영상으로 도배되어 있는데, 보병의 개인화기로는 드론을 잡는 게 불가능하다. ‘보는 순간 교전한다’가 아니라 ‘보는 순간 모든 건 끝났다’가 이 전쟁이 자아내는 냉혹한 현실이다. 현대 전쟁은 동호인들이 즐기던 값싼 취미에 의해 공간의 소멸을 야기하고 있으며, <콜 오브 듀티> 나 <메달 오브 아너>의 흥분 넘치는 ‘택티컬’은 전쟁의 도파민을 가장 장벽 없이 즐길 수 있는 밀리테인먼트로 기능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게임이 <엔더의 게임>에서 주인공이 마지막에 느낀 절망감을 반영하는가? ‘마인드 게임’에 해당하는 심리분석 및 RPG게임, ‘배틀 게임’에 해당하는 피지컬 중심의 전술 게임(FPS), 함대 지휘 시뮬레이션(실시간 및 턴제 전략 시뮬레이션)은 놀라울 정도로 전쟁의 심연에 가까이 있다. 전쟁-게임-기술의 삼체문제가 향하는 지점은 더 많은 살상, 더 효율적인 응시, 유기체적 지각에 대한 무기체적 지각의 승리에 있다. 우리는 <에이스 컴뱃> 같이 화려한 현대 전투기 도그파이팅을 소재로 한 슈팅 게임에서 인간 인지와 감각의 승리를 자처하지만, 붉은 남작의 시대와 같은 낭만 넘치는 기사도 이야기는 전쟁기술과 게임기술의 결합 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능동 위상 배열 레이더(은폐를 드러내는 장치), 장거리 공대공 미사일(물리력 투사), 조기 경보 시스템(전장 조망 체계), 네트워크전 시스템(데이터 공유), 그리고 조종사에 주어지는 HMD(헬멧 마운트 디스플레이)와 키네틱 조작장치의 조합으로 구성되는 BVR(Beyond Vision Range) 전투는 밀리테인먼트에서 순수 인간 육체의 지각 능력이 얼마나 비루한지를 보여준다. 러-우 전쟁에 참전했던 서방의 한 용병은 전쟁 내내 어디서 날아오는지 모르는 자주포 포격음과 폭발소리, 드론의 비행 소리만 들었고, 육안으로 적을 볼 기회는 거의 없었다고 증언한다. “그들을 눈으로 본다는 건 곧 내가 죽는다는 걸 의미합니다.” * 17세기 천체 망원경의 출현은 전쟁 기계와 정찰 기계를 합치시켰다. 광학장치로 조망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시야가 미치지 않는 곳까지 전투가 확장되고, 현실적인 것과 가상적인 것은 뒤섞인다. 20세기 초 카메라와 항공기, 인공위성과 레이더는 H.G.웰스가 자신이 직접 제작한 전쟁게임 <리틀 워즈>의 현실-가상 복합 조망체계를 실현시켰다. 현대의 정찰드론과 VR기술의 결합은 시야가 미치지 않는 곳에 물리력을 투사할 뿐 아니라 ‘본다는 것’의 의미를 바꾸고, 배틀 게임-지휘 시뮬레이션의 가상적 지각을 실제 전장에 위상학적으로 정렬시킨다. 개입할 수 없는 플레이어, 그리고 전쟁이라는 게임 공간 ‘게임을 즐기면 폭력에 둔감해지고 야만성에 휩싸인다’는 비판은 정말 1차원적인 발상이다. <콜 오브 듀티>, <스타크래프트>, <하츠 오브 아이언>이나 시리즈를 즐긴다고 플레이어가 야만 전사가 되지는 않는다. 이런 주장은 ‘게임은 질병이다’라는 허무맹랑한 거짓말과 더불어 종교 근본주의자, 전미 총기협회 관계자가 즐겨 쓰는 조삼모사 수사학에 불과하다. 총기 난사 사고의 근본적인 문제는 총을 둘러싼 삶의 규범(예컨대 미국 수정헌법 2조)에 있지 시리즈에 있지 않다. 한편 게임을 사랑하고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게이머들, 게임 산업 관계자들, 의료 전문가 집단은 게임과 폭력이 아무 상관없으며 산업에 해가 되는 규제를 모두 풀어야 한다거나 ‘자유’ 라는 측면에서 검열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소모적인 갑론을박 속에서 두 가지가 뒤로 밀려나게 되는데, 하나는 전쟁-폭력-게임을 둘러싼 전 지구의 지정학적 갈등에 대한 구조적 비판이 사라진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기와 게임을 결합하는 군산복합 기술체계의 실체가 가려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투의 폭력이 아닌 전쟁의 폭력이 무엇인지 아는 문제, 전쟁-게임을 매개하는 기술을 이해하는 문제가 시급하게 요청되는 바이다. 상황주의 예술가이자 좌파 정보기술 비평가인 맥켄지 와크(Mckenzie Wark)는 자신의 책 『게이머 이론』에서 이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낸다. 게임은 단순히 군사 기술을 민간에 옮겨온 것이거나 병사를 훈련시키는 장치가 아니라, 인터페이스와 컨트롤러를 조작해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고 반응하는 능력(capability)의 총체라는 것이다 [2] . 문제는 VR기기를 쓰고 전투 중인 드론 조종사가 전쟁의 정치경제적 맥락에 개입할 수 없는 것처럼, 인터페이스를 조작하는 게이머들 또한 그러하다는 것이다. 군인들처럼 게이머들 또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임무를 완수하는 것만 요구될 뿐이다. 무기에 복잡하게 연동되어있는 인터페이스, 통제장치의 코드(전쟁의 정치적 목적)는 감춰져 있고, 전쟁 폭력은 추상화된다. <제너레이션 킬>에서 트롬블리 일병이 왜 전쟁을 지루해 했는지 이제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게임에서는 ‘임무 완료’ 와 임무 소요시간, 성과 등이나마 보여주지만 현실에서 전투의 결과는 모호하기 짝이 없다. 적군을 몇 명 죽여서 어떤 정치적 승리를 거뒀는지, 그 영향력이 무엇이었는지 일개 병사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군인은 끊임없이 고통(agony)에 시달린다. 자신의 행위가 만들어낸 결과가 도대체 뭔지 파악할 길이 없어서이다. 와크에 따르면, 전 지구적 군산복합체를 중심으로 펼쳐진 세계체제 공간은 이제 게임공간(Gamespace)이 되어간다. 지정학, 전쟁, 국제정치, 산업과 노동 모두 게임 인터페이스-컨트롤러의 코드를 닮아가지만, 게임의 규칙은 불공정하고 깨져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게임의 규칙이 공정하다고 믿고 이 게임의 알레고리(Allegory)를 수행하지만, 현실이라는 게임공간에는 정당한 보상도 공정한 규칙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게임간이란 곧 자본주의 불평등의 게임이며, 알레고리는 지배 권력이 예외상태로 배제된 자들을 추방하는 알고리즘이라 할 수 있다 [3] . 거대전쟁기계(Mega War Machine)의 전달자로서 플레이어 이런 관점에서 보면, <콜 오브 듀티>와 <배틀필드> 등 전쟁 스펙타클 게임류는 다른 문제, 전쟁을 둘러싼 국제정치의 복잡한 지형들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보여주는 문제로 비판받는다고 할 수 있다. 이 게임을 즐긴 사람들, 그러니까 프라이스 대위를 존경하거나 멋있다고 느끼는 플레이어들 중 중동의 복잡한 정세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이 게임들은 시아파와 수니파, 대영제국 시절의 식민주의와 이스라엘의 극단적인 시오니즘, 그리고 ISIS의 창궐과 아프가니스탄의 부족주의, 쿠르드족 민병대 등이 왜 각자의 이해관계로 전쟁에 얽히는지에 대해 지나친 일반화를 통해 말초적 재미로 소구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페르시아인과 아랍인들의 차이조차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프라이스 대위가 전쟁을 통해 도대체 무슨 값(price)를 받아내려는지도 알 길이 없다. 플레이어가 이른바 ‘택티컬’한 흥분 속에서 얻는 가짜 교훈이란 이슬람교가 극단적인 테러리즘 종교라는 일차원적 믿음과 허구헌날 클리셰로 등장하는 러시아 갱단의 무기 탈취 및 지구 멸망 시나리오 등이다. 다이어-위데포드와 드 퓨터의 명저, 『제국의 게임』은 이런 관점에서 게임이 MIME-NET(Military, Industry, Media, Entertainment Network)이라고 일부라고 비판한다. 비디오게임은 한 마디로 ‘제국’의 가상 이데올로기적 장치이다. 그것은 군사적인 해결책을 정상인 것처럼 포장하고, 지정학적 갈등을 단순한 선과 악의 대결로 그리며, 게이머들을 가상의 군인으로 훈련시킨다 [4] . * 당신은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하는가? 전설적인 델타포스와 네이비 씰 대원이 되어 적진에서 ‘택티컬’한 교전을 하길 갈망하는가? 2004년 그런 확신을 안고 미군이 이라크를 점령했지만, 이라크에 대량 살상무기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 국제사회로부터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을 향한 ‘택티컬한’ 침략이 하마스의 인질극에서 비롯됐다고 보는가? 실상은 20여년 가까이 이어진 봉쇄로 가자지구 인구 대부분이 굶어죽는 비참한 현실이다.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자신의 선조들이 아우슈비츠에서 당한 인종청소와 똑같은 전쟁범죄를 재현하는 시오니스트들의 추악한 형용모순이다. 이스라엘인들이 가자지구에서 행하는 ‘전술’이란 굶주린 사람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하고, 병원과 구호트럭을 폭격하는 학살행위 등이다. 불평등이라는 룰이 적용된 이 세계체제 게임공간에서, <콜 오브 듀티>를 즐기는 것의 의미와 <디스 워 오브 마인>이 생산하는 전쟁의 구조적 폭력 비판은 동시에 상기되어야 한다. 이 게임의 플레이어는 군 통수권자들이지 당신이 아니다. 당신은 플레이어가 아니라 그저 폭격으로부터 살아남고자 발버둥 쳐야만 하는 NPC(None Playable Character)에 불과할 따름이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전쟁을 찬미하고 미국 중심 국제 질서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는 게임 말고도 영화, 드라마, 다방면에 널려 있다. 그렇지 않은 매체를 찾기가 힘들 정도다. 그러나 ‘세계 체제 게임공간’ 에 접속해 최신 전쟁무기를 휘두르는 플레이어의 감각은 이데올로기 너머의 문제로, 기술체계와 지각의 병참학에 깊이 연루되어 있다. 오래 전 기술문명사학자인 루이스 멈포드는 기술의 본질이 단일한 대상이나 혹은 용도 변경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라, 거대기계(Megamachine)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거대기계란 물리적 강제력과 물리학, 수학, 천문학 등 과학적 지식, 그리고 관료제의 권위가 결합한 사회적 기계로, 인간 자체를 부품으로 삼아 구축된 사회조직의 총체이다 [5] . 고대 이집트 시대 피라미드에서부터 현대 증기기관까지, 인류의 기술 문명은 대량 살상 능력과 대량 생산 노동력, 사회 지배 이데올로기를 결합한 기술 체계의 앙상블로 진화해 왔다. 현대의 거대기계는 더 파괴적인 원자력과 미디어 재현 기술을 흡수하며 ‘권력의 펜타곤’으로 진화한다. 여기에는 기업의 경제력, 군사력, 그리고 대중매체까지 포함되며, 레짐의 유지와 권력 증식만을 목표로 움직이는 반 유기적 시스템(anti-organic system) 안에서 인간은 부품 그 자체로 전락한다 [6] . 게임산업과 군산복합체, 그리고 전쟁과 세계체제 빅테크-자본주의 권력은 이미 유기적으로 결합한 거대 전쟁기계(Mega Warmachine)이 된 것은 아닐까? 자폭드론은 VR과 조이패드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드론에 탑재된 전장AI는 피터 틸, 일론 머스크 같은 빅테크 기술 영주들이 정부와 동맹을 맺고 발달시킨 안면인식, 스타링크, 범죄자 식별 알고리즘을 망라하는 AI와 거대 언어모델을 동반한다. 이를 처리하기 위한 컴퓨터 연산 장치를 공급하는 업자는 엔비디아와 AMD 등 게임계 핵심적인 하드웨어 업체들이다. 이 냉혹한 전지구 권력의 게임공간 안에서 플레이어들은 힘의 수직적 전달자, 말 그대로 행위의 주체가 아닌 논 플레이어블 캐릭터(None Playable Character)가 된 것은 아닐까? 우리에게 전쟁은 이제 단순히 TV나 소셜미디어에서 흘러나오는 스펙타클이 아닌, 실존의 위협이라는 사실이 인지되어야 한다. “전쟁, 전쟁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1] 폴 비릴리오, 『전쟁과 영화』. 권혜원 역, 한나래, 2004. [2] Wark, Mckenzie. 2007. Gamer Theory. Havard University Press. [3] Ibid. [4] 닉 다이어-위데포드, 그릭 드 퓨터, 『제국의 게임』. 남청수 역, 갈무리, 2015. [5]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1』. 유명기 역, 아카넷, 2013. [6]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2』. 김종달 역, 경북대학교 출판부, 2012. Tags: 전쟁기계, 이데올로기, 국제정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디지털 문화연구/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신현우 문화연구자, 문화평론가이며 기술비판이론과 미디어 정치경제학을 전공했다. 게이밍, 인공지능, 플랫폼, 블록체인을 둘러싼 문화현상을 연구하며 서울과기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한다.

  • 〈Deluded Reality (망상 현실)〉: ‘통로’를 지나 풀 다이브(full-dive)

    필자는 지난 호에서도 큐레이터 동료가 언급한 바 있는 전시, 《MODS》(2021, 합정지구, 서울)에서 장진승 작가와 프로젝트 ‘SYNC’를 진행했었다.1) 전시를 위한 이 프로젝트는 작가와 서로 관심이 있는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시작되었는데, 우리의 대화는 동시대 시뮬레이션 비디오게임 플레이어의 자율성, 몰입도로 초점이 맞춰졌다. < Back 〈Deluded Reality (망상 현실)〉: ‘통로’를 지나 풀 다이브(full-dive) 05 GG Vol. 22. 4. 10. [이미지1] 《MODS》 (사진:박승만) 시작하기 필자는 지난 호에서도 큐레이터 동료가 언급한 바 있는 전시, 《MODS》(2021, 합정지구, 서울)에서 장진승 작가와 프로젝트 ‘SYNC’를 진행했었다. 1) 전시를 위한 이 프로젝트는 작가와 서로 관심이 있는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시작되었는데, 우리의 대화는 동시대 시뮬레이션 비디오게임 플레이어의 자율성, 몰입도로 초점이 맞춰졌다. [이미지2] 사이버펑크2077 SYNC 프로젝트가 시작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면 그 때는 2020년 12월로, CDPR의 〈사이버펑크2077〉이 엄청난 기대와 함께 출시될 무렵이었다. 출시까지의 8년은 기대감을 집중시켰고 발매와 동시에 갖은 논란들을 가져왔다. 그 중 출시 전까지 수년간 “오픈월드”라는 키워드를 전면에 내놓은 개발사의 언론 마케팅이 여러 커뮤니티에서 스토리나 플레이의 면면을 파헤침 당하며 다양한 공방을 일으켰다. 그리고 ‘사이버펑크’라는 이제는 대중적이라고 말 할 수 있는 문화코드에 대한 기대함 또한 빼놓을 수 없었는데, 많은 영화나 게임에서 이미 너무 많이 그려진 적이 있는 이 세계를 얼마나 더 새롭고 황홀한 그래픽과 아트웤으로 완성할 것인지가 게임을 기다리는 게이머들의 또 다른 설렘이기도 했다. 게임이 출시되고 거세게 일었던 일련의 이슈들을 들여다보며 필자는 게이머들에게 ‘오픈월드’ 게임이라고 하면 이제 이동의 자유는 기본이고, 물리적, 감각적으로 젖어 들어갈 수 있는 환경과 함께 무궁무진한 상호작용이 보장되어 있어야하며, 플레이어의 창발적 플레이 또한 시도해 볼 수 있는 그런 방대한 가능성을 갖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슷하게 의미가 부여된 ‘이머시브 심(Immersive Simulation)’과 같은 게임 장르가 이미 호명되어오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RPG에 기대하는 바가 확장되었다는 것만은 분명해보였다. 2 ) 접속과 동시에 게임의 가상세계로 몰입이 가능하며, 피부 가까이에서 그것을 느끼고, 시스템 안에서 적극적인 수행자로서 개인의 마음과 자유에도 또한 본질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접속-되기 [이미지3] 〈존 말코비치되기〉 포스터 “Ever want to be someone else? Now you can.” - 영화 〈존 말코비치되기(Being John Malkovich)〉 (1999) 게임으로의 ‘접속’이라는 건 마치 다른 사람이 되는 상상을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 속 ‘통로’로 물리적 비유가 가능하다. 영화의 주인공 크레이그 슈와츠(Craig Schwartz: 존 쿠삭 분)는 어느 날 다니고 있는 회사의 ‘딥 스토리지Deep storage’에서 영화배우 존 말코비치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 15분간 그의 눈으로 보고, 그의 몸으로 감각하며, 온전히 그의 삶을 가상체험 할 수 있는 통로를 발견한다. 생계를 위해서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동시에 무명의 마리오네뜨 인형술사였던 크레이그는 그 통로를 통해 말코비치의 주체가 된다면 우울한 현재의 삶에서 벗어나 유명한 사람이 되어 꿈을 이루고 짝사랑하는 맥신(Maxine: 케서린 키너 분)의 마음 또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대로 말코비치의 의식 속에 자리를 잡고 원하던 바를 이룬다. 말코비치의 머리에 들어간 또 다른 사람인 그의 아내 라티(Lotte Schwartz: 카메론 디아즈 분)는 그 통로를 통해 미처 깨닫지 못했었던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평생의 사랑을 이루게 된다. 이 영화에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의 현실에서는 할 수 없는 것들, 알 수 없었던 것들을 타인되어 극복하게 되고, 성취하게 된다. 이 타인의 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영화적 설정은 ‘자아와 타인이 구별되는 지점은 무엇인가, 육체와 분리된 영혼은 존재하는가, 경험을 한 육체와 경험을 기억하는 의식 중에 자아를 구성하는데 더 지배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등과 같은 형이상학적이며 아득한 질문을 상기시키면서도 동시에 어쩌면 언제나 인간은 나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어보는 상상을 별스럽지 않게 항상 하고 있지 않은가, 항상 그렇게 되기를 염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통로’로 풀 다이브(full-dive) [이미지4] 장진승, 〈Deluded Reality (망상 현실)〉, 2021 스틸컷 장진승 작가의 13분 25초 길이의 영상작업 〈Deluded Reality (망상 현실)〉은 등장인물이 어딘지 알 수 없는 어떤 세계에서 눈을 뜨면서 시작된다. 감각이 없었던 상태에서 점차 들리는 소리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등장인물 ‘나’는 본인의 감각을 의심하면서도 그 곳이 어딘지 파악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들리는 말소리와 빗소리에 집중한다. 사실 그는 디지털 게임 세계에 존재하는 인물인데, 첫 장면에서는 본인이 현실에 존재하는지 가상에 존재하는지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다가 빠르게 청각과 시각의 감각을 획득하면서 본인이 있는 세계를 파악해나간다. 이 과정에서 ‘나’는 그래픽으로 구성된 특정한 세계의 안에서 그의 본질과 존재하고 있는 위치를 알아내고, 주어진 세계 밖을 넘어가는 체험을 하기도 한다. 화면은 1인칭과 3인칭의 시점을 번갈아가며 그와 밀착하기도 했다가 멀어지기도 하는데, 이런 화면의 변화가 몰입을 위한 최적화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붙었다가 떨어지는 접속의 과정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이미지5,6] 장진승, 〈Deluded Reality (망상 현실)〉, 2021 스틸컷 스스로 존재하는 곳에 대한 지각적 신념을 갖게 된 영상 속 그는 거의 모든 것을 예측가능하다고 하면서 현재 그가 존재하는 가상현실이 아닌 다른 특정 시공간으로 자신을 ‘전송’하고자 한다. 영상의 말미에는 실험실 같은 곳 유리창 너머에서 다른 차원에 존재할 ‘그’와 같은 인물을 만들고 있는 또 다른 ‘나’들이 등장하며 끝난다. 마치 ‘통로’에서 빠져나와 나로 돌아온 것 같달까. 작품의 제목이 주지하듯 작가는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인지하게 되는 ‘나’의 경험을 ‘망상 현실’로 규정하고자 했다. ‘망상’은 ‘현실’을 전제하지 않는, 그래서 양립불가능한 개념이지만, 유효한 것으로 병존시켜놓음으로써 “이 불안한 동시에 유연하기도 한 자기 파열의 내적 구조만이 서로 다른 차원에 놓인 세계들에 자유로이 동기화 할 수 있는 ‘의식 연동’의 가능성을 내재할 지도 모른다” 3) 는 명제를 환기시키고자 했다. 수잔 손탁(Susan Sontag, 1933-2004)은 역사적으로 ‘기예’들이 예술로 승격화 되었던 첫 번째 ‘신화적 예술’의 탄생 이후 예술은 보다 복잡하고 비극적인 것이 되었다고 언술한 바 있는데, 이를테면 단순한 기준으로 스스로를 긍정하는 의식에서 머무르지 않는 방식으로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예술은 (단순한) 의식의 표현이 아니라 “의식 속에서 생겨난 의식의 해독제(antidote)”인 셈이다. 4) 가상현실에서 만들어진 가상인간이 모델로 등장하는 광고들이 종종 눈에 띄는 요즘, 가상현실로의 풀 다이브는 가능한 것인가라는 이 글을 시작하는 질문은 꽤나 주관적인 답안을 갖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능한 새로운 세계를 탐구하고 그것에 일루젼을 일으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갖고 쫓는 것은 시각예술에 있어서 기실 늘 중요한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지난 해에 이어 장진승 작가와 두 번째 프로젝트를 준비한다. 다양한 분과에서 더 매끈하게 열려가고 있는 ‘통로’에 관하여, 그 현상에 관하여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져보고, 패치 후 또 다른 궤적을 그려볼 예정이다. 1) 큐레이터-게이머 동인 모즈(Mods)의 전시 《MODS》 관련 지난 아티클,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pageNum=2&match=id:65, 김세인, 「로우스코어 걸: (Not Really) Full Game Walkthrough」, GG vol.3. 2) 유명 유투버나 위키, 개발자들이 정리한 바로는 ‘몰입가능한 거대 가상세계를 배경’으로 ‘제시된 시스템과 규칙을 활용하여 창발적 플레이가 가능한 물리엔진과 인공지능’을 갖춘 ‘선택과 결과에 방점이 찍힌 비선형적 디자인(을 지향하는 형식)’의 게임을 말한다. [Immersive Sim]https://www.giantbomb.com/immersive-sim/3015-5700/ [The Comeback of the Immersive Sim] ]https://www.youtube.com/watch?v=kbyTOAlhRHk 3) 작가노트 참고. 4) 수잔 손택, 「침묵의 미학」,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현대미학사, 2004), pp.11-16 참고.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큐레이터 게임 동호회 ‘Mods’ 멤버) 구윤지 유미주의자이지만 항상 카니발적 그로테스크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타이쿤류의 게임들을 좋아해서 척추가 망가졌다. 게임이든 뭐든 궁금한건 못 참아서 빠르게 엔딩을 보고 자주 새로 시작한다.

  • e스포츠의 미래를 위하여 - 젠지글로벌아카데미 백현민 디렉터

    이러한 시선을 바꾸고 e스포츠라는 업계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리더들이 필요한데, 이 리더들은 e스포츠에 대해서 열정만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분야에 대한 전문가여야 합니다. 그 분야가 마케팅이 될 수도 있고, 영업이나 스폰서십이 될 수도 있고 교육이 될 수도 있는데, 그런 분들이 많아지면서 e스포츠가 성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e스포츠 배경이 아니라 교육 배경을 가지고 있고 저희 CEO님 같은 경우에도 메이저리그 야구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e스포츠를 사랑하면서 자기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많아질수록 업계가 성장할 뿐만 아니라 다른 업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Back e스포츠의 미래를 위하여 - 젠지글로벌아카데미 백현민 디렉터 03 GG Vol. 21. 12. 10. 오늘날의 게임 생태는 많은 특수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e스포츠는 ‘보는 게임’으로의 전환이 가장 대표적으로 일어나는 영역이다. e스포츠의 시청자층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으며, 그 안에는 직접 게임을 하지 않지만 중계를 챙겨보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실제로 2012년에 1억 3000만이었던 세계 e스포츠 시청 규모는 2023년에 6억 4,600만 명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 있어 우려도 존재한다. 급변하는 게임 환경 속에서 e스포츠 시장이 언제까지 유효할지, 속 빈 강정이 되지 않을지에 관한 우려이다. 그런데 이러한 우려처럼 게임 생태는 급변할 수 있음에도, 다음 세대를 바라보고 나무를 심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얼핏 보면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게임과 교육을 접목시키려 한다. 심지어 게임 교육기관이 미국 대안학교로 인증을 받고, 유수의 대학들과도 연계했다. 이들은 e스포츠에 대해서 어떤 상(想)을 그리고 있는 것일까? 젠지 글로벌 아카데미(GGA, 이하 GGA)의 백현민(Joseph Baek) 디렉터를 편집장이 만나고 왔다. 편집장: 기본적으로 아카데미가 가지고 있는 비전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해 주세요. 백현민 디렉터: 저희의 비전은 저희 학생들이 e스포츠 내에서 성공적인 길을 걷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의 성공은 단순히 게임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에서 각기 다른 꿈을 이루는 것입니다. 편집장: 그러면 그 비전 속에서 학생들의 일과나, 한 학기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등 아카데미의 실제 운영과정을 듣고 싶습니다. 백현민 디렉터: 먼저 젠지 엘리트 e스포츠 아카데미(GEEA)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GEEA는 국제학교로서 학업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엘리트 학교에서 하루 4시간 고등 교육에 해당하는 수업을 받고 그다음에 저희 건물로 넘어와서 e스포츠 관련 교육을 받게 됩니다. 이때, 수업들은 블록 스케줄 식으로 운영이 돼 월, 수 / 화, 목을 나누어 각기 다른 수업을 하고, 금요일은 선택 과목을 듣게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e스포츠에 관련해 제공하는 교육은 게임 이론 즉, 영상을 보면서 게임에 대해 배우는 부분도 있고, 스크림을 통해서 팀플레이를 배우는 부분도 있고, 금요일 선택 과목 같은 경우에는 e스포츠의 역사나 e스포츠 업계에 관하여 배우는 부분도 있습니다. 특히 교육적 관점에서 저희 GEEA의 특별한 지점은 단순히 게임을 더 잘할 수 있도록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개별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게끔 가르친다는 부분입니다. 많은 학부모님이 저희한테, “자녀가 예전에는 잠도 안 자고, 밥도 제때 안 먹었고 게임을 했는데, GEEA 수업을 듣고 나서는 새벽 1시에도 영어 숙제를 하고 있었다”는 말씀들을 해주십니다. 이처럼 학업이나 일상적인 부분에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데, 저희는 이런 학업적인 성장이 그들의 게임 플레이에도 반영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저희 학생들의 평균 티어가 다이아 3이었을 때, 평균 티어가 다이아 1인 다른 학원과의 스크림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이는 저희 학생들이 피지컬 쪽에서 떨어지더라도 팀플레이로 부족한 부분들을 메꾸었기 때문입니다. 편집장: 결국 게임 플레이라는 것이 그냥 ‘논다’는 의미로만 묶이지 않는 것 같아요. 학업도, 게임도 일종의 사회 활동이고 이런 활동을 통해 게임 플레이에서도 기존보다 더 나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보고 계시는 거지요? 백현민 디렉터: 네. 맞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내용을 기반으로 저희의 두 번째 주요 프로그램인 GGA 온라인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GGA는 온라인 학원이라고 생각하시면 이해하기 편하실 겁니다. GGA 온라인은 개개인의 역량에 맞춘 굉장히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프로 선수들에게 피드백을 받는 경우에 ‘이번 플레이가 좋았다’, ‘안 좋았다’는 식의 단순한 피드백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저희 코치님들 같은 경우에는 ‘이 순간에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니면 ‘팀원의 플레이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는지’ 등 세부적으로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이 학생의 게임 실력뿐 아니라 소통하는 방법 등 인간적인 영역에서의 성장을 돕는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저희 학생들끼리도 ‘우리는 어떤 전략을 갖고 있었지?’ ‘그 전략이 왜 성공했지?’ 등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소통을 합니다. 이러한 초점은 많은 학생들이 더 빠른 속도로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게 도와주고 있습니다. 편집장: 요즘에는 사설이나 과외 형태로 개인 강습을 받는 학원이나 프로그램이 많은데, GGA 같은 경우에는 그냥 게임을 잘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차별성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백현민 디렉터: 네. 저도 그 부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저희는 최고의 선수가 단순히 게임 실력을 뜻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게임을 통해서 인간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학생들은 더 높은 티어의 선수들과 스크림을 해서도 이길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눈앞에 보이는 점수나 티어 등에 신경 쓰지 않고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해서 인간적인 부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었을 때 학원을 운영했었는데 다른 학원들을 보면 굉장히 대표적인 한국 스타일, 그러니까 시험 점수를 올리는 것을 강조하고, 시험을 볼 때 필요한 전략이나 노하우, 팁들을 굉장히 중요시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연습을 하다 보면 시험 점수는 올라가겠지만, 시험 점수 이외에는 얻는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 학생들에게는 내용을 이해하고 이 내용이 왜 중요한지 강조하곤 합니다. 그리고 GGA에서도 학생들이 전반적으로 성장을 함으로써 티어가 함께 올라가고 있습니다. 편집장: e스포츠 선수들 같은 경우에 한동안 인성 문제로 굉장히 논란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e스포츠 플레이에 대한 교육을 받는 데 인성에 관련된 교육 프로그램도 준비가 되고 있나요? 백현민 디렉터: 네. 저희도 그런 부분들을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좀 상대적으로 덜 언급되는 부분이지만, 미국에서는 굉장히 강조되는 부분이 ‘소프트 스킬’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직업에서 필요한 전문적 지식이나 능력이라기보다 팀워크나 리더십, 소통, 적응력 등 다양하게 사용될 수 있는 부분들을 소프트 스킬이라고 하는데, 하버드 조사에 따르면 직업에서 성공을 결정하는 요인의 85%가 소프트 스킬이라고 합니다. 저도 많은 프로 선수들이 과거 인성 문제로 논란이 되어 있었다는 걸 알고 있고, 그것 때문에 아직도 e스포츠의 평판이 안 좋은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다음 세대의 선수들의 인격을 육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바라는 부분은 다음 세대 선수들이 좋은 쪽으로 업계를 대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세대에 투자함으로써 e스포츠 업계가 장기적으로 성공적인 미래를 가질 수 있길 바라고 있습니다. * 홈페이지에 게시된 GEEA의 수업 사진 편집장: 아카데미의 첫 번째 사업이 일종의 대안 교육의 형태이면서 한국에서는 생소한 방식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생소함이 같이 있는데 첫 번째는 게임을 가지고 교육을 한다는 생소함. 두 번째는 게임이 아니더라도, 스포츠와 교육을 병행한다는 생소함입니다. 한국의 엘리트 스포츠는 교육과의 병행을 목표로 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이 교육이 정말 성과가 있을지 실제로도 학부모들로부터 질문을 많이 받으실 텐데 주로 어떻게 답변을 하시나요? 백현민 디렉터: 네. 학부모님들이 그런 걱정을 많이 하세요. 특히 한국에서는 학업과 스포츠를 병행한다는 일에 대해서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오히려 전통적인 스포츠보다 e스포츠가 학업과 병행하기에 더 적합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전통적인 스포츠는 신체적인 부분에 많이 포커스가 맞춰져 있지만, e스포츠는 기술적이고 전략적인 부분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어서 그런 부분들이 인간적인 성장 혹은 학업적인 성장을 많이 유도해내고 있습니다. 실제로 저희 학생 중에서는 학교에서 성적이 굉장히 안 좋거나 학교를 자퇴한 학생들이 있었지만, 저희 프로그램을 통해서 대학교를 간 사례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런 e스포츠의 특징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또 다른 사례로 한 학생 같은 경우에는 저희한테 처음 왔을 때 실력이 그렇게 특출나지는 않았지만, 저희 프로그램을 거치고 현재 오버워치 팀 서울 다이너스티의 선수로 등록이 되는 쾌거를 이루어냈습니다. 이런 성공 사례들을 기반으로 전에는 학교에서 성적을 잘 못 내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성적을 잘 내는 학생들도 저희 프로그램과 함께함으로써 자신의 미래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서 많이 오고 있습니다. 편집장: 대안학교 이야기가 나왔는데, 젠지 아카데미는 대안학교로의 기능도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시나요? 백현민 디렉터: 먼저 GEEA는 공식적으로도 대안학교로 인정을 받고 있고요. GGA 온라인의 경우, 대안학교는 아니지만 결국은 GEEA와 같은 결과물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GGA 역시 e스포츠 교육을 중점으로 하고 있지만, 저희 프로그램을 통해서 외국으로 유학 가거나 한국 내에서 대학교를 진학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편집장: 고등학교를 대안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남들과 다른 길을 간다는 데에서 오는 불안함이 있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게임의 특성상 경쟁을 하다 보니까 지거나 도태된다는 점에서 오는 불안과 스트레스가 있을 것 같은데, 혹시 그런 지점들에 대한 관리가 별도로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백현민 디렉터: 물론 학생들이 경쟁에 대한 불안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 코치들이야말로 그런 부분을 케어해 주시기에 가장 적합한 분들입니다. 왜냐하면, 저희 코치들은 전부 프로 경험이 있거나 업계에서 굉장히 오랫동안 일해온 분들이기에 게임 내에서의 승패와 경쟁에 대한 스트레스를 깊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런 코치진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토대로 학생들을 잘 케어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안학교라는 게 남들과 다른 길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요즘에는 그것이 성공의 지름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을 진학하고 졸업한다고 해서 좋은 직업이나 좋은 미래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e스포츠라는 색다른 길을 감으로써 더 성장을 하고 더 성공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편집장: 많은 학생들이 프로 게이머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아카데미에 문을 두드립니다만 모두가 알다시피 그 도달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당연히 많은 청소년이 좌절감을 느낄 것인데, 교육자의 입장에서는 그런 좌절감을 걷어내고 또 다른 길을 제시해 주셔야 하잖아요. 이에 어떤 길들을 주로 제시하시는지?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진출해서 본인도 만족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례가 있으신지 묻고 싶습니다. 백현민 디렉터: 둘 다 한꺼번에 대답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많은 학생들이 저희 GGA를 찾아오는 이유는 프로 선수가 되고 싶다는 부분이 맞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학생들에게 얘기하는 것은 ‘GGA가 자동으로 프로 게이머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꿈을 좇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점입니다. 다만, 조금 더 생산적인 방법으로 꿈을 좇게끔 도와주는 것인데, 프로 선수가 된다는 꿈 하나만 너무 좁은 초점으로 바라본다면 프로 선수가 되기를 실패했을 때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게 너무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학생들이 좀 넓은 시야를 갖고 다양한 가능성을 바라보게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까 말씀드린 대학에 진학한 친구를 사례로 말씀드리자면 그 친구 같은 경우에는 프로 선수가 꿈이었지만 나이나 기타 상황의 문제로 프로 선수가 되지 못했고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새로운 꿈으로 삼았지만 그것도 잘 안 됐습니다. 하지만 저희 프로그램을 통해서 미국의 캔터키 대학에 40% 장학금을 받고 진학을 할 수 있었고 지금도 캔터키 대학에서 e스포츠 관련 부분에 대해 리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그 학생 같은 경우에는 저희 젠지 재단에서 후원을 받고 젠지와 인턴십 경험까지 하면서 꿈을 확장시킨 사례입니다. 프로 선수라는 원래 꿈은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저희는 학생들에게 여러 가지 대안이나 다른 커리어를 제공해 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편집장: 한국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일 것 같은데요. 홈페이지에 지금 나와 있는 소개를 보면 미국 대학으로의 진출 케이스들이 많은데 현실적으로 한국 학부모들은 아카데미 출신이 한국 대학에 특례 입학 하기를 바라고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 이에 대한 계획이 있으신가요? 백현민 디렉터: 네. 저희도 한국 대학과 파트너십을 맺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사실 아직도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는 게임을 공부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보거나 애들이 스트레스 풀려고 하는 것이라고 가볍게, 혹은 안 좋게 보는 시선들이 많습니다. 이에 저희는 e스포츠를 보는 시선을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스포츠와 게임 업계는 전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미래에 성장할 일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e스포츠라는 업계가 책임감 있고 긍정적이며 생산적인 방향으로 성장해 나가려면 이런 시선을 바꿔야 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한국의 대학들이 시선을 바꿀 수 있게끔 꾸준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덧붙이자면 저희 졸업생 한 명이 이번에 한성대학교에서 20% 장학금을 받고 진학하게 된 케이스가 있습니다. 한성대학교는 ‘리그 오브 레전드’ 관련 신설 학과를 개설했습니다. 그리고 저희 졸업생은 아니지만 GGA 학원을 경험한 학생도 비슷한 목표를 달성한 학생이 있습니다. 편집장: e스포츠는 굉장히 큰 산업이죠.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항상 가지고 있는 우려, 즉 하나의 게임, 하나의 장르가 영원할 수 없다는 리스크도 분명히 있습니다. 만약 한 장르가 쇠퇴했을 때, 그 길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막막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으실지 묻고 싶습니다. 백현민 디렉터: 네. 말씀하시는 부분도 분명히 우려가 될 수 있는 상황입니다.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같은 사례가 있다시피 게임 종목이 갑자기 퇴보할 수도 있고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일단 다양한 종목을 가르치고 있고, 무엇보다 저희에게 중요한 것은 게임 자체라기보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인간적으로 학생들이 성장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부분은 크게 걱정하지 않고 새로운 게임, 새로운 종목들이 나오면 그것을 통해서 또 미래 학생들을 성장시키는 데 노력하려고 합니다. 편집장: 마지막으로 한국 사회에서 게임이, 그리고 e스포츠가 어떤 식으로 인식되면 좋겠다라는 꿈이 있으실까요? 백현민 디렉터: 중요한 것은 게임과 e스포츠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바뀔지에 관한 것일 것 같습니다. e스포츠를 사랑하고 e스포츠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업계가 더 성장하지 못한 이유는 사회적으로 안 좋게 바라보는 시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전부터 선수들이나 코치, 매니저 등 e스포츠라는 환경 자체는 만들어져 있었지만, 프로페셔널하지 않다거나 체계적이지 않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선을 바꾸고 e스포츠라는 업계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리더들이 필요한데, 이 리더들은 e스포츠에 대해서 열정만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분야에 대한 전문가여야 합니다. 그 분야가 마케팅이 될 수도 있고, 영업이나 스폰서십이 될 수도 있고 교육이 될 수도 있는데, 그런 분들이 많아지면서 e스포츠가 성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e스포츠 배경이 아니라 교육 배경을 가지고 있고 저희 CEO님 같은 경우에도 메이저리그 야구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e스포츠를 사랑하면서 자기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많아질수록 업계가 성장할 뿐만 아니라 다른 업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 “개발자는 자기 자신을 향해 끝없이 질문해야 한다” - 죄책감 3부작의 개발자 somi 인터뷰

    세계에서 마주하게 되는 죄책감을 느슨한 연결로 풀어낸 SOMI의 ‘죄책감 3부작’이 막을 내렸다. 전의 두 작품이 세상 밖으로 닿는 길을 터주었다면, 2020년 신작 <더 웨이크>는 한 개인의 과거와 깊은 내면으로 안내한다. 암호를 해독하며 엔딩에 이르렀을 때, 눈 앞에 펼쳐진 가장 개인적인 삶은 나를 뒤돌아보게 한다. < Back “개발자는 자기 자신을 향해 끝없이 질문해야 한다” - 죄책감 3부작의 개발자 somi 인터뷰 01 GG Vol. 21. 6. 10. 세계에서 마주하게 되는 죄책감을 느슨한 연결로 풀어낸 SOMI의 ‘죄책감 3부작’이 막을 내렸다. 전의 두 작품이 세상 밖으로 닿는 길을 터주었다면, 2020년 신작 <더 웨이크>는 한 개인의 과거와 깊은 내면으로 안내한다. 암호를 해독하며 엔딩에 이르렀을 때, 눈 앞에 펼쳐진 가장 개인적인 삶은 나를 뒤돌아보게 한다. <더 웨이크>로 ‘죄책감 3부작’이 완성되었다 두 번째인 <리갈던전>까지 만든 뒤 내 게임이 ‘죄책감’에서 기인한다는 걸 느꼈다. 사회적 부조리와 구조적 불평등, 소외된 이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은데 방관자로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 <더 웨이크>는 개인적이고 근원적인 죄책감의 발원지를 찾으면서 시작되었다. 사진과 영상이 풍부해 게임에 더 몰입했다 영상과 사진 모두 내 앨범에서 가져왔다. 영상도 어렸을 때 삼촌이 홈 비디오 카메라로 찍어주신 걸 컴퓨터 파일로 변환해서 넣었다. 일상 그대로를 담아선지 제작하면서도 만감이 교차하더라. 플레이 하는 사람들이 게임 속 아버지를 욕할 때마다 우리 아빤데 저런 식으로 욕을 먹네 싶어서 기분이 묘하다. (웃음) 사람들의 반응은 확인했는지 자신의 어린 시절이나 부모와의 연대에 대한 회고 형식의 글을 리뷰로 남겨주시는 분이 많아서 놀랐다. 감동을 받기도 했다. 이 게임이 지난 상처를 치유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싶더라. 게임은 ‘만드는 사람을 비추는 창’ 직업이 있는 상태에서 게임 개발을 시작했다 결심한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게임에 얽힌 추억이 궁금하다 초등학교 입학 전 한국에 ‘재믹스’라는 게임기가 막 들어왔을 때 아버지께서 그걸 사오셨다. 동네 꼬맹이들이 모두 다 우리 집 앞으로 모여서 ‘갤러그’를 했고 가끔씩은 아버지, 어머니, 형, 나까지 네 식구가 함께 모여 ‘로드 러너’를 했다. 플레이어가 죽고 뜨는 정지 화면을 앞에 두고 온 식구가 어떻게 해야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갈 수 있을지 궁리했다. 게임 광고 화면에 쓰일 법한 아름다운 모습이지 않은가. 이 기억 덕분에 게임에 애착을 느끼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메시지와 재미를 둘 다 잡는 데 성공한 개발자다 어떻게 하면 메시지를 부각하면서도 재미를 잡을 수 있을까 사람들이 말하는 게임의 ‘재미’란 뭘까? 혹자는 ‘재미’가 원시적인 말이라더라. 사람마다 기준도 다르고 의미도 포괄적이다. 그 자체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을 목표로 삼다 보면 유행을 따르게 된다. 그래서 게임에 어떤 세계를 담을지 고민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독자적인 세계관과 서사를 만들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에게 인격을 부여해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세계는 세계를 만드는 사람과 그의 생각을 닮게 된다. 그러니 개발자는 자신에 대해 더 많이 묻고 성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게임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나 유년기 이후로는 게임에 대한 기억이 없다. 친구들 다 스타크래프트 하던 학창시절에도 공부만 했다. 게임 개발을 위해서 다시 게임을 접했다. 게임 개발에 뛰어든 이유는 고등학생 땐 만화를 그렸고 대학생 때는 신춘문예 등단의 꿈을 갖고 소설을 썼다. 항상 내 창작물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고 싶었다. 그러다 아이폰이 처음 들어왔을 때 앱스토어에 개인이 창작물을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듣고 이야기가 들어가는 앱을 제작해 배포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에 아예 게임을 만들어볼까 생각이 들어 3개월 동안 무작정 게임을 받아 보고 나름의 게임 공부를 해서 <레츠놈>을 만들었다. 창작의 종류에 따라 필요한 역량이 다르다는 걸 느꼈을 것 같다 게임 개발자에겐 필요한 역량은 무엇일까 잘 모르겠다. 어떤 특징이 장점이 될 지 단점이 될 지는 알 수 없다. 개발 초반엔 내 게임 경험이 부족해 기존 게임 문법을 모르는 게 단점이 될 줄 알았는데 그런 접근법을 신선하게 여기고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있더라. 그럼 본인의 장점을 꼽자면 한 분야에서 출중한 재능을 가지지는 못 했지만 작은 요소들의 조화를 이룰 줄 안다. 고등학교 때부터 만화 그리는 걸 좋아해서 대학교 때는 그래픽 디자인을 했다. 디자인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내가 도맡아 했다. 문학적인 경험도 있고. 이렇게 여러 분야를 소화해 보고 작은 요소들을 접목할 줄 알았던 점이 게임이라는 특이한 장르에서 도움되었던 게 아닐까 싶다. 이야기로서 게임 크레딧을 보면 항상 책이 등장한다 각 게임마다 어떤 책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듣고 싶다 책 읽는 걸 좋아한다. 세상엔 귀한 작품이 많다. 게임 개발을 할 때도 다 끝내고 읽을 책을 리스트로 만들어둘 정도다. <레플리카>를 처음 완성했을 때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재능있는 리플리>라는 소설을 기반으로 했다. 그러다 2016년 국정농단이 한창일 때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에서 한 국회의원분께서 코리 닥터로의 장편소설 <리틀 브라더>를 언급하시는 걸 듣게 되었다. 소설을 읽고 대한민국의 참혹한 현실과 대비되어 고민이 많아져서 원작 작가 분께 허락을 구하고 플롯을 가져왔다. <더 웨이크>를 제작할 땐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 서적을 모아 읽고 있었다. 그때 엘리슨 백델의 그래픽노블 <펀 홈>을 접했다. 작가가 가족의 죽음을 중심으로 자아를 통찰한다는 데서 감화되어 기본 구성을 가져오게 되었다. 게임을 이끌어가는 암호 기계는 2차 세계대전 때 나치가 사용한 ‘에니그마’를 차용했다. 이 또한 다비드 라게르크란츠의 <앨런 튜링의 최후의 방정식>을 읽다가 찾은 소재다. 주제의식이 뚜렷한 편이다 기억나는 사람들 반응은 <레플리카> 출시 초기에는 빨갱이 소리와 함께 ‘북한에서 만든 게임 아니냐’는 반응이 제법 있었다. 특이했던 반응은 …해외에서 전직 CIA 요원을 하셨던 분이 추천글을 써 주셨던 게 기억에 남는다. ‘Voice Of America’란 매체에선 나를 ‘한국의 저항적 운동가’라고 표현하더라. (웃음) 정치적 내용이 포함된 게임인 만큼 어느 정도 예상한 전형적인 반응이라서 게임이 역할을 다 했다 싶었다. https://www.voanews.com/east-asia/south-korean-video-game-raises-awareness-government-surveillance 여러 포맷 중에서도 게임으로 이야기하면 무엇이 가능해질까 전엔 게임은 종합예술이라면서 게임의 상호작용성을 휘황찬란하게 설명했다. 특히 탄핵 당일 날 사람들이 축배처럼 <레플리카>를 플레이 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명을 받았다. 게임을 통해 플레이어들이 서사에 참여해 공명을 일으킬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이후에, 게임에서 주인공의 고통을 체험했을 거라 믿었던 사람들이 한 개인의 사상을 검증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았다. <레플리카>에서 정보 기관이 개인을 억압하기 위해 사용한 검열 방식과 유사했다. 더 이상 게임의 매체적 특성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게임은 단지 이야기를 담는 그릇일 뿐이다. 중요한 건 게임 안에 담긴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가 얼마나 큰 감흥을 줄 수 있는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게임은 문화다? 한국의 정부기관이 거론하는 ‘게임은 문화다’라는 구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형 개발사들은 플레이어들이 아이템에 더 큰 금액을 소비할 수 있도록 BM(비즈니스 모델, Business model) 설계에 열을 올리며 도박과의 경계가 흐릿한 확률형 가챠 게임을 쏟아낸다. 인간의 중독 기제에 관한 연구를 하고 중독 유발 요소를 적재적소에 배치했다고 자랑스럽게 인터뷰 한다. 여성혐오나 소수자 혐오를 부추기는 게임이 지속적으로 출시 되고 여성 캐릭터의 신체 부위를 더 현실같이 재현하는 데 최신 기술이 동원된다. 우리가 게임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문화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바보 같은 선언보단 지금까지의 잘못을 반성하고 앞으로 어떤 게임을 만들 지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 정말로 게임이 문화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문화로서의 게임, 가능할까 모두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만 보는 게 아니듯, 게임도 이야기의 힘만으로 매력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다. 투입된 자본의 양이나 중독성을 자극하는 요소를 떠나서 매력적인 작품은 지금도 충분히 많다. 앞으로 그런 작품들이 사람들에게 더 큰 공감을 불러 일으킬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런 게임들이 국내에 많지 않은 게 문제다. 대형 자본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소규모 게임을 인디게임으로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있다 인디게임 개발 당사자로서 생각은 어떤지 듣고 싶다 인디 게임은 저항 정신이다. 국가와 사회의 주류에, 유행하는 장르나 플랫폼, 서사 구조, 기믹에 저항하면 인디게임이라고 생각한다. 형식적인 부분을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 개발자들이 대형 퍼블리셔에 엮이는 건 그 우산 속으로 들어가야 자신의 게임을 더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1인 인디게임 개발자로서 SOMI 크레딧을 보면 항상 협업자가 있다 협업자를 어떻게 구하는지 궁금하다 어디서든 좋은 음악이나 원화, 양질의 번역을 보면 작업 의뢰 연락을 드린다. 내 소개와 포트폴리오, 협업을 원하는 작업물에 대한 소개를 보내는 거다. 이렇게 해서 서로의 작업 방식에 대한 이해가 전제된 상태로 협업을 시작하게 되면 제작에 대한 관점을 공유할 수도 있고 서로 작업물 퀄리티를 알아서 좋은 시너지가 난다. 상업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갖춘 인디게임 중 추천할 작품이 있다면 이탈리아 개발자 중 레너드 멘치아리의 '라이엇: 시빌 언레스트(RIOT: Civil Unrest,)'를 추천한다. 플레이어는 시위 현장에서 시위대, 경찰, 시위를 막는 경찰 중 누구든 선택할 수 있다. 각자 입장에서 플레이 하다 보면 시위 속 대립하는 당사자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지게 된다. 개발자가 이탈리아에서 시위에 참여했던 경험을 토대로 주요 국가를 돌아 다니면서 취재한 시위 현장을 게임에 녹여냈다. 그것도 사비로. (웃음) 2016년도 ‘인디 케이드(IndieCade)’에서 만나 친해진 친구라, 그 게임의 한국판 경찰 목소리는 내가 연기했다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다. 레너드와 퍼블리셔 사이에 마찰이 있어서 레너드 버전은 모바일에서 무료로 배포되어 있으니 꼭 플레이 해보길 바란다. ‘이터널 캐슬(The Eternal Castle)’도 추천한다. 다음엔 리듬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했었는데 리듬 게임은 이상향 같은 존재다. 매번 잘못된 번역 때문에 시달렸다. 그래서 <더 웨이크> 때는 아예 문학 작품을 번역하시는 분께 의뢰 드렸고 전엔 팬분들이 배포 이후 자발적으로 번역에 참여해주시기도 했다. 늘 텍스트 없는 게임을 만들고 싶지만 만약에 하고 싶은 얘기가 생긴다면 마음이 또 바뀔 거다. 언제까지 게임을 만들고 싶은지 일과 게임 개발을 병행하는 게 쉽지 않다. 퇴근해서 저녁을 먹으면 딱 8시 반, 아기랑 놀고 집안일 하다 보면 11시, 12시라 하루에 쏟을 수 있는 시간이 새벽의 한 두 시간 뿐이다. 갑자기 게임이 빵 뜨면 6개월 정도 휴직하면서 게임을 마음껏 만들고 싶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박혜정 미디어와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을 궁금해 합니다. K-POP 팬덤 연구를 하며 즐겁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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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G Vol. 19 호러는 디지털게임에서 무엇인가? 게임에서의 호러는 다른 매체의 호러와는 무엇이 같고 다른가? 게임이라는 놀이매체를 가지고 공포감을 다루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고룡풍운록>을 통해 보는 무협추리게임 <고룡풍운록>은 무협과 추리를 어떻게 결합시켰을까? 이 무협 추리 게임은 어떤 역사가 누적돼 탄생한 걸까? 어떻게 해서 과거의 토대 위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혁신할 수 있었는가? 이 글은 <고룡풍운록>의 내용, 역사적 맥락, 혁신적인 디자인 및 윤리 개념의 4가지 관점을 통해 독자들에게 이 게임의 핵심을 보여주고자 한다. Read More Frights, Fears, and Fallout: Layers of Horror in Popular Gaming In my personal gaming history I have two distinct memories of fear. The first time I was truly scared while playing a game was during the first Resident Evil in what has become a notorious scene from the game. Though at the time Resident Evil felt more like a slower action game than a horror game, there was one key moment when the player walks down a hallway when suddenly one dog, then another bursts through the windows from the outside causing fright, disorientation, and panic. This is an example of a pretty standard jump scare in games (and other media), and though it did frighten me at that moment, I didn’t carry any greater fear of those dogs and what they represented beyond a slightly heightened anxiety while I walked the halls of Spencer Mansion. Read More Is this Lies of K?: “Lies of P” game discourse in the context of the South Korean game industry’s longing for a stand-alone game title “Lies of P” (Neowiz, 2023) takes place in Krat, a fictional city inspired by the Belle Époque period in Europe. One of the game’s NPCs (non-player characters), Eugénie, is portrayed as an outsider from a distant country east of Krat. She claims to come from the so-called ‘country of the morning,’ with a visual character design that resembles East Asian ethnic groups. Perhaps this character’s story was inspired by the Joseon Dynasty, a kingdom that existed on the Korean peninsula from the 14th to 19th century, which was typified as the “Land of Morning Calm” in the West around the 18th century based on the loose translation of the country’s name in Chinese characters (朝鮮). Read More Playing with Shivering Bodies: Expectation, Exploration, Perception The dark hallway I walk through seems to be deserted. I can only hear my own steps and the eerie soundscape of the cranking metal pipes surrounding me, and can barely see what lays beyond the light of my flashlight. I’m afraid, as I don’t know if something is waiting in the shadows for me. As I enter the next room, I hear heavy breathing and as the light catches a mutilated body, in between the dead and living, I feel my stomach contract from disgust. Read More [Editor's View] 생존본능에서 장르에 이르기까지의 공포 공포는 흔히 생존본능에서 만들어졌다고들 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위험한 것들을 피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우리는 위험을 보고 무서움을 느낍니다. 덕분에 살아남아 다양한 기술을 발전시킨 인류는 실존하는 위험으로부터 무서움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분리해내기에 이르렀고, 많은 예술을 통해 분리된 감정은 호러라는 장르를 만들기에 이르렀습니다. Read More [논문세미나] Horror Video Games and the “Active-Passive” Debate 호러 비디오 게임과 “능-수동” 토론 / 데이비드 크리스토퍼 & 에이단 로이즐러 결론적으로 저자들은 위의 작품들을 루돌로지적 상호작용성으로 명명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루돌로지적 행위성을 강조하는 이분법으로는 위 작품들이 발휘하는 특유의 효과를 온전히 담아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모든 호러 게임을 루돌로지적 상호작용성의 원리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Read More [인터뷰] AI로 새로운 게임성을 만든다는 것: <마법소녀 카와이 러블리 즈큥도큥 바큥부큥 루루핑>의 이가빈 PD,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의 한규선 PD 크래프톤의 스튜디오 중 하나인 렐루게임즈는 딥러닝 기술을 게임과 접목시켜 새로운 경험들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여러 시도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음성 역할 시뮬레이터와 프리폼 채팅 어드벤처라는 독특한 게임 장르를 만들어냈다. 이번 호에서는 평단과 게임사의 관점뿐 아니라, 유저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는 <마법소녀 카와이 러블리 즈큥도큥 바큥부큥 루루핑>(이하<즈큥도큥>)의 이가빈 PD와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이하<스모킹건>)의 한규선 PD를 만나, AI 기술의 가능성과 현시점에서의 한계를 짚어보고, 새로운 게임성이 만들어진 과정에 대해 들어보았다. Read More [인터뷰] TRPG로 미술하기: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제작자 인터뷰 지난 6월과 7월, 전시장 ‘팩션’에서는 TRPG(Tabletop Role Playing Game)라는 게임의 형식과 관객 참여형 예술을 결합한 전시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노스탤지어의 벌레들>이 열렸다. 전시장을 활용해 약 한시간 반 동안 진행되는 퍼포먼스에서, 작가는 TRPG 게임 마스터가 되고 게임의 참여자인 관객들은 재난이 닥친 고향에 돌아왔다는 설정의 캐릭터가 되어 함께 이야기를 구성한다. Read More ‘공포’와 ‘놀이’로서의 비장소 : <8번 출구>를 포착하기 현대의 공포는 흐른다. 곧, 어디서든 틈입한다. 일찍이 공포라는 키워드 하에 내포되어 온 스테레오 타입화된 형상들―가령 괴물, 귀신, 살인마, 악마 등―만으로 이 정서의 출처는 설명되지 않는다. 해당 공포는 좀 더 내밀한, 혹은 하이퍼객체와 같은 유동성을 발휘하기에 우리는 이 공포를 ‘앎’의 영역으로 안배하기에 항상 실패한다. Read More 공포와 액션의 사이에서: 바이오하자드 시리즈 공포 게임의 공포는 반드시 옅어지고, 무뎌지고, 희석되고, 탈각된다. 바이오하자드/레지던트 이블이 9개의 넘버링과 3개의 외전과 3개의 리메이크, 그 외 다수의 서브 작품을 진행하면서 얻은 결론은 이 태생적 모순을 피하거나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이다. 7편의 방향성을 2~4편의 리메이크작과 8편 또한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긍정하고 활용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Read More 두려움, 공포 그리고 폴아웃: 게임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공포의 양상 내가 지금까지 게임을 플레이해오면서 기억하고 있는 공포의 유형으로는 2가지가 있다. 게임을 하면서 처음으로 겁을 먹은 것은 <레지던트 이블(Resident Evil)>의 악명 높은 장면을 플레이했을 때였다. 당시 <레지던트 이블>은 호러 게임이라기 보다는 속도가 느린 액션 게임쪽에 가까웠는데, 게임 내에서 복도를 걷고 있을 때 갑자기 개 한 마리가, 뒤이어 또 다른 한 마리가 창문을 뚫고 들어왔을 때 두려움과 혼란, 공포를 느꼈다. Read More 떨리는 몸으로 플레이하기: 기대, 탐험, 그리고 인식 텅 비어있는 것 같은 어두운 복도를 걸어간다. 내 발소리와 금속 파이프에서 들려오는 끼익거리는 소리만이 이 고요함을 깨뜨린다. 손전등이 비추는 곳 너머의 어둠 속에 무엇이 숨어 있을지 알 수 없어 두려움이 엄습한다. 다음 방에 들어서자, 무거운 숨소리가 들려오고, 훼손된 사람의 신체가 불빛에 드러난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그 모습에 나는 속이 메슥거린다. Read More 비디오게임과 기이한 유령들의 세계 비디오게임에서 유령이란 존재할 수 있는가? 물론 다들 이것이 꽤나 이상한 질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유령은 수많은 비디오게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슈퍼 마리오」시리즈의 부끄부끄부터 「F.E.A.R.」 시리즈의 알마까지, 비디오게임에는 다양한 아이코닉한 유령 캐릭터들이 존재한다. Read More 인간인듯 인간아닌 인간같은 너: 좀비의 과거와 오늘 좀비물은는 비단 디지털게임에서만 붐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앞선 매체들인 영화나 소설 등에서도 좀비는 매력적인 소재로 특히 호러물에서 자주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마도 게임에서의 좀비 또한 앞선 매체들의 영향 아래 놓였을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게임에 등장하는 좀비의 의미는 다른 매체의 의미를 포괄하면서도 동시에 게임 특유의 요소들로 인해 조금 더 두드러진다. 이 글에서는 좀비에 관한 긴 이야기는 과감히 생략하고, 디지털게임에서의 좀비라는 보다 좁은 주제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Read More 코스믹 호러의 게임적 변용 이토 준지풍의 그림체와 크툴루 세계관이 결합된 <공포의 세계>의 장점 역시 동일하다. 그로테스크하고 이질적으로 변화한 마을 구성원들을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다는 소름 돋는 경험이야말로 등대에 강림할 고대신보다 공포스러운 일이다. 내가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확신은 일상의 궤도에서 이상 징후와 균열을 발견할 때 불안으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Read More 플레이할 결심: 공포 게임을 못_잘_안 하는 이유에 대한 성찰적 자기반성을 토대로 나는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공포 게임이 무섭기 때문이다. 무서워하라고 만든 게임을 무서워해서 하지 않으니 자연스럽긴 한데 뭔가 아쉽긴 아쉽다. 바로 내가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공포 게임에도 명작이 참 많다. Read More 호러를 즐기는 보통의 방식 사실 호러 게임은 꽤 마이너한 장르에 속한다. 물론 좀비물의 성격을 차용한 <더 라스트 오브 어스>처럼 장르적 요소를 가져오거나,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나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처럼 본격적으로 호러 게임을 표방하는 AAA 게임이 없던 것은 아니다. Read More

  • 〈포켓몬 고〉는 당신의 시공간에 침투한다

    〈포켓몬 고〉는 2016년 글로벌 출시된 증강 현실 모바일 게임이다. 증강 현실이란 더해진 현실이라는 뜻이니, 현실 위에 정보 레이어가 한 겹 더해졌다는 의미다. 일반적인 지리 데이터 위에 포켓몬스터 데이터를 덧씌워보니 게임이 탄생했다. 출시 초기 〈포켓몬 고〉는 플레이어의 GPS를 추적하여 구글 맵 위에 포켓몬들을 등장시키고,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으로만 보여주던 포켓몬스터 트레이너의 삶을 살아보도록 선보였다. < Back 〈포켓몬 고〉는 당신의 시공간에 침투한다 08 GG Vol. 22. 10. 10. 〈포켓몬 고〉는 2016년 글로벌 출시된 증강 현실 모바일 게임이다. 증강 현실이란 더해진 현실이라는 뜻이니, 현실 위에 정보 레이어가 한 겹 더해졌다는 의미다. 일반적인 지리 데이터 위에 포켓몬스터 데이터를 덧씌워보니 게임이 탄생했다. 출시 초기 〈포켓몬 고〉는 플레이어의 GPS를 추적하여 구글 맵 위에 포켓몬들을 등장시키고,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으로만 보여주던 포켓몬스터 트레이너의 삶을 살아보도록 선보였다. 하지만 지리 정보를 이용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한국의 사례와 같이 국가 기밀 등의 이슈로 국가별 지도 데이터 확보는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2017년 개발사는 오픈 소스인 오픈 스트리트 맵(Open Street Map, OSM)으로 지도 데이터 기반을 바꿔 지금까지 현실 공간을 모험의 공간으로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구글의 사내 스타트업에서 시작한 개발사 나이언틱이 자사의 지리 정보를 포기하고 오픈 소스를 선택한 것은 과감하면서 탁월한 결단이었다. 이후로 〈포켓몬 고〉는 철저히 커뮤니티 기반의 서비스가 된다. 오픈 스트리트 맵은 위키피디아처럼 전세계의 개인 편집자들이 정보 수집에 기여하여 하나의 지도를 만들어가는 형태다. 〈포켓몬 고〉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플레이 요소인 포켓 스탑이나 체육관의 위치를 유저 커뮤니티가 논의하여 결정할 수 있게 ‘Niantic Wayfarer’라는 자체 심사 시스템을 구축했다. 〈포켓몬 고〉 속의 지리 정보는 수많은 유저들이 만든 결과물이다. 지리 정보의 기여자가 되기 위해서 트레이너 레벨 37 이상 달성해야한다. 플레이어는 트레이너를 넘어 ‘맵 제작자’가 되는 또 하나의 역할을 부여 받게 된 셈이다. 당신의 데이터를 주워 만드는 게임 〈포켓몬 고〉가 표방하는 주요 컨셉은 한마디로 “포켓몬들이 당신의 근처에 있다”는 것이다. 일명 ‘야생’ 상태의 포켓몬은 플레이어가 움직이고 있는 위치 근방에서 생성된다. 마주친 포켓몬에게 플레이어는 포켓볼을 던져서 잡는다. 이 과정은 모두 확률 싸움이다. 던진 포켓볼의 등급, 회전구의 여부나 던진 타이밍의 정확도, 나무 열매 아이템의 사용 여부, 그리고 포켓몬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희귀도 등이 점수로 합산되어 포켓몬을 최종 포획하는 확률이 결정된다. 이 말은 즉,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게임 조작 능력을 크게 요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커브볼이나 타이밍에 맞춰 던지는 행위는 며칠 플레이 하다보면 쉽게 손가락 요령을 얻을 수 있다. 길을 걷고, 발견하고, 던지는 이 심플한 〈포켓몬 고〉의 메카닉은 플레이어의 연령대 경계를 파괴한다. 때문에 어린이부터 중년층 이상까지 넓은 유저풀이 6년 가까이 이 게임을 즐기고 사용자수 순위권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게임의 또 다른 컨셉은 “당신이 사는 곳 근처가 게임의 무대가 된다”로 이어진다. 플레이어가 매일 드나드는 포켓 스탑과 체육관은 실제 지역의 거점에 기반한다. 퀘스트와 아이템을 획득하고, 자신의 포켓몬을 과시하거나 다른 유저와 싸우기 위해서 플레이어는 근처의 공원이나 프랜차이즈 편의점, 골목길 벽화, 특이한 조형물에 행차한다. 그곳이 게임이 펼쳐지는 주 무대다. 특히 체육관은 특정 시간이 되면 희귀 포켓몬이 출현하는 레이드의 공간으로 설정된다. 레이드를 벌여 여러 명의 플레이어를 같은 시간 같은 장소로 끌어들이는 독특한 오프라인 자력이 〈포켓몬 고〉라는 게임이 작용시키는 ‘힘’인 것이다. 〈포켓몬 고〉는 보행하는 플레이어가 떨어뜨리는 데이터 조각들을 열심히 주어 담아 게임의 자료로 남김없이 가공한다. 보행 거리, 날씨, 자연 환경, 계절 등이다. 오늘 얼마나 걸었는가? 게임은 플레이어의 족적을 측정하여 포켓몬의 알을 부화시키고 퀘스트를 달성하도록 한다. 오늘 날씨는 어떠한가? 비가 내릴 때와 눈이 올 때 당신은 서로 다른 포켓몬을 마주할 것이다. 게임은 날씨에 맞는 포켓몬 군집을 배정하여 다양하게 등장하도록 짜여져있다. 혹시 사막 또는 해변 근처에서 걷고 있는가? 그렇다면 특정한 자연 환경에서만 서식하는 포켓몬이 나타나 있을 것이다. 사계절 중 지금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는가? 여름과 겨울에 만날 포켓몬들은 각각 차이가 있을 것이다. 예측할 수 없다는 현실의 본질은 게임에서 ‘이벤트화’되기 최상의 조건으로서 탈바꿈한다. * 포켓몬 고와 연동되는 계절 데이터 코로나19 위기에 단단해진 게임 현실 데이터로 치밀하게 직조된 게임은 당연하게도 코로나19의 직격탄을 피할 수 없었다. 현실과 연동된 게임은 정지한 현실에 뒤따라 함께 멈춰버렸다. 사람들이 걷지 않자 포켓몬 트레이너도 한 발자국도 발을 뗄 수 없었다. 〈포켓몬 고〉는 시류에 맞추어 대책을 세우며 오프라인에서 세미-오프라인으로 기준점을 옮겨가기로 했다. 우선 포켓몬 출몰량이 증가하는 특별한 날인 ‘커뮤니티 데이’가 사라졌다. 사람들의 군집 가능성을 차단시킨 것이다. 전염병 사태가 더욱 심해지자 플레이를 집중하도록 만드는 장치였던 레이드 아워, 스포트라이트 아워 등 또한 무기한 중지되었다. 이에 따라 안전하게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추가적인 수단이 도입되었는데, 2020년 3월 3일 〈포켓몬 고〉의 플레이어들이 원격으로 서로 배틀을 진행할 수 있도록 배틀 리그 참가조건을 제거했고, 체육관이나 포켓 스탑에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가닿을 수 있도록 접근 반경을 조정했으며, 포켓몬 등장 확률을 높이는 아이템인 향로의 지속시간을 증가시켰다. (글을 쓰는 2022년 현재 중지되었던 이벤트는 재개 되었으며 배틀리그 참가 조건 등의 플레이 원격화 대책들은 유지 상태에 있다.) 자칫 존폐 위기에 있던 〈포켓몬 고〉는 위기를 기회삼아, 마치 포켓몬들이 방어 기술로 ‘단단해지기’를 사용하는 것처럼, 온라인-오프라인 하이브리드 형태를 구축하며 단단해졌다. 친구 관계는 오프라인으로(QR코드) 맺되 교류는 원격으로 할 수 있도록 하고, 다른 유저들과 침대에 누워서 싸울 수 있지만 출전할 포켓몬의 성장은 일정한 거리를 활보해야만 도모가 가능하도록 한다. 여러 명이서 힘을 합쳐 공략하는 레이드를 각자의 집에서 할 수도 있게 리모트 레이드패스 아이템을 추가하였지만 그 아이템의 취득의 난이도를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 리모트 레이드 패스 게임이 매개하는 지역 커뮤니티 ‘레이드방’ 게임이 출시되고 얼마 되지 않은 2017년, AR게임이라는 하이프를 겪은 이후 인기가 사라질 것 같았던 〈포켓몬 고〉는 여러 시스템을 추가하면서 국내에서 모바일 게임 이용자수가 가장 많은 게임 중 하나로 순위권에서 빠지지 않고 있다. 무엇이 인기를 꾸준히 유지하게 만들었을까?이렇듯 단단해진 게임의 코어에는 레이드 배틀(줄여서 레이드)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다. 레이드는 불시에 출몰하는 고급 포켓몬을 체육관에 여러 사람이 모여 동시에 공격하는 파티 성격의 이벤트다. 인원을 모으고 서로의 시간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사전 작당모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지역을 기반으로 한 유저 커뮤니티가 활발하고, 이 커뮤니티에서 레이드 참여자를 모집하거나 정보를 공유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주로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 형성된 커뮤니티는 마포구, 송파구, 구로구와 같은 구 단위로 형성되거나 김포, 제주와 같은 시 단위로 묶이기도 한다. 해당 위치에서 활동하는 플레이어라면 누구나 검색하여 채팅방에 참여할 수 있다. 필자는 지역 레이드방에서 활동하며 문화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을 관찰했고 일부를 소개하고자 한다. 〈포켓몬 고〉의 지역 레이드방은 온라인의 익명 구조에 있지만 같은 지역에 거주한다는 신뢰에 기반한 정보 공유의 장이 된다. 마치 GPS 인증 기반 중고 거래 장터앱 ‘당근 마켓’이 넓은 범위의 온라인 커뮤니티 ‘중고 나라’보다 끈끈한 공동체의 성격을 보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레이드방에서 주로 공유되는 정보는 인근 레이드 보스 출현 현황이다. 레이드 보스는 한 번 등장하면 45분이라는 제한 도전 시간이 넉넉하게 주어지지만, 언제 어떤 포켓몬이 보스로 등장할지 플레이어가 알 수 없는 레이드 시스템의 특성상 하루종일 게임을 확인하지 않고서는 레이드 현황을 시간 맞춰 파악하기 어렵다. 레이드방 참여자들은 어떤 레이드 보스가 해당 지역 근방에 등장하고 있는지 또는 등장할 예정인지를 스크린샷과 함께 정보를 공유하며 돕고 있다. 레이드 보스가 알에서 깨어나기 때문에 이를 ‘알 상황’ 공유라고도 부른다. A: 00쪽 알 상황 알 수 있을까요? B: (사진) A: B님 감사합니다. A: 여러분 00백화점 근처 ‘터검니’ 나왔어요! B: 저 지금 본가에 와 있는데 슬프네요. A: 혹시 ‘마기’ 등장하면 제보 부탁드리겠습니다. B: 저도 제보 기다립니다. 레이드는 1성, 3성, 5성과 같이 도전 난이도가 부여되어 있는데, 어려운 레이드의 보스는 일정 인원 이상이 참여해야만 성공 가능성이 확실해진다. 레이드에 도전하고 싶은 유저는 함께 도전할 팀원을 모집하는 공고문을 레이드방에 게시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채팅방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공고문 양식은 까다롭고 규격화 되어있다. 이 양식에는 만나기로 할 약속 시간과 장소, 레이드 난이도 또는 등장하는 보스 포켓몬 이름, 참여자 이름이 들어갈 공란의 수가 적시 되는 편이다. 만약 참여자가 스마트 폰을 2대로 참여한다면 2인분을 커버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디 옆에 +1을 적어두기로 합의된다. 레이드 모집은 하루에도 수도 없이 이루어지지만, 매주 특정 요일 및 시간마다 반복되는 레이드 아워 이벤트 때에 가장 활발한 편이다. 카카오톡 메시지 알림은 끊임 없이 울린다. 모집 공고문이 마감되면, 약속된 시간에 모인 레이드 팀원들은 서로의 인상착의를 올려 현실 만남에서 알아볼 수 있도록 한다. “조형물 앞에 하얀 외투 입고 서있습니다"와 같은 말들이 오고 간다. 레이드 개최자로부터 최초 공지되는 공고문 7:23 00지역 00조형물 앞 레이드 난이도 5성 1 A(개최자) +1 2 3 4 사람들의 참여로 채워지는 공고문 양식 7:23 00지역 00조형물 앞 레이드 난이도 5성 1 A(개최자) +1 2 B +2 3 C +1 4 D 5 E 6 F 7 G +1 8 H +1 레이드 시작 직전과 직후의 대화 (레이드 시작 전) A/31 : 어디세요? B/30 : 000앞 도착했습니다~ A/31 : 어디세요 다들 C/28 : 000이 어디 쪽인가요? D/30 : 0000 앞 광장이요 E/28 : 000앞인데 E/19 : 저도 000 앞이에요 (레이드가 끝난 후) C/28 : 000? 여기 이건가... 아머드 뮤츠 E/19 : 저희 끝났습니다.. G/26 : 끝났어요ᅮ E/28 : 헐 ᅲ A31 : 고생하셨어요 여러분~~ E/19 : 고생하셨습니다!! D/30 : 고생하셨어요~~~ ᄒᄒᄒᄒᄒ 오프라인으로 만나기 때문에 파티 약속은 신뢰가 매우 두텁다. 물리적인 공간 이동을 필요로 하여 다른 플레이어가 허탕을 치게 하면 손해가 막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레이드 파티에 무단 결석시 채팅방에서 퇴장되어 더이상 활동을 할 수 없도록 처벌이 가해지기도 한다. 또한 해당 채팅방에서 모집된 레이드 팀원은 현장에 모인 일반 개인 유저들과 플레이가 뒤섞이면 안된다. 모집문에 기입된 명단이 모두 참석했는지 확인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쇼를 하는 팀원의 경우 공개적으로 질타와 제재를 받아야 한다. 따라서 레이드 리더는 반드시 참여코드를 생성하여 레이드 팀원만 플레이에 입장할 수 있도록 공유한다. 사람들은 같은 체육관 앞에 서있지만, 투명하게 세워진 경계에 의해 분리된다. 이러한 레이드 참여 규율들은 〈포켓몬 고〉 지역 커뮤니티 채팅방에 명시되어 있어 반드시 지켜야할 규칙으로서 나타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다고 마냥 이해타산적이며 친밀함의 경계를 삼엄하게 세우진 않는다. 다양한 배경의 플레이어들이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재미있는 일들도 벌어진다. 참여자들의 주요 연령대는 20~30대지만, 극단에는 10대나 50대 이상도 존재한다. 이들은 서로를 연령 구분 없이 ‘님’이라는 수평적인 호칭으로 부르며 활발하게 플레이를 이어간다. 이들의 연령 구분 없는 문화의 단편적인 일화를 언급하자면, 나이든 유저를 혼내는 중학생 유저가 있었다. 14세라고 밝힌 한 레이드 개최 유저는 공고문을 올려 사람들을 모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한 43세 유저가 레이드 약속 시간에서 5분 정도 지각을 할 것 같아 뛰어오고 있었고, 14세 레이드 리더는 “안 오시면 시작할 거예요”라는 엄포를 놓으며 닦달하였다. 나이든 유저를 버리고 시작했는지, 아니면 기다렸는지 채팅 밖 상황은 알 수 없지만, 게임의 유저 문화는 현실에서 오는 어떠한 위계가 작동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마음 따뜻한 광경이 펼쳐질 때도 있었는데, 한 49세 유저는 자신이 오늘 잡은 희귀 포켓몬을 자랑했다. 그러자 15세, 31세, 44세, 48세 유저들이 연이어 칭찬어린 말을 이어갔다. 손수 사진을 찍어 본인이 잡은 포켓몬을 보이고, 채팅방 속 읽은 숫자가 점차 늘어나더니 “잡으신 것 축하드려요!"라고 떠오르던 메시지들. 필자가 관찰했던 지역 커뮤니티 레이드방 풍속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서로 같은 목적을 지향하는 놀이 모임이자 익명의 지역 공동체에 가까웠다. 공간을 넘어 플레이어의 시간과 간식까지? 위치 정보에 기반하여 플레이어의 공간과 연동되는 것을 필두로 했던 게임은 점차 넓은 범위로 촉수를 드리 세운다. 시작과 끝이 있는 정적인 게임과 다르게, 출시 이후 플레이어의 삶과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생명을 이어가는 라이브옵스(LiveOps)의 특성이 〈포켓몬 고〉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게임은 날짜에 기반한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플레이어의 한 달 스케줄을 조직한다. 매주 화요일 오후 6시~7시는 특정 포켓몬이 등장하는 스포트라이트 아워, 수요일 6~7시는 희귀한 포켓몬이 레이드 보스로 자주 등장하는 레이드 아워, 한 달에 한 번 사전 공지되어 찾아오는 보상 집중의 커뮤니티 데이, 그리고 매주 달라지는 특별한 포켓몬 등장과 종종 추가되는 이벤트 기간까지. 〈포켓몬 고〉는 한 달 내내 계획을 세워 플레이어들을 더욱 게임과 결합시킨다. 플레이어들은 이에 맞춰 이벤트 달력을 만들고 커뮤니티에 공유하여 패턴을 맞추도록 노력한다. 기간 한정이지만, 〈포켓몬 고〉는 동일한 포켓몬스터 IP를 활용하는 포켓몬빵과도 연동을 시도한다. 스티커를 모으기 위해 품절 대란이 이는 포켓몬빵을 활용하여, 스티커 뒷면에 코드를 삽입해 〈포켓몬 고〉 게임 속 아이템을 증정한다. 플레이어는 처음엔 삶의 공간과 게임을 연동하고, 그 다음에는 삶의 시간과, 마지막으로 자신이 먹는 음식과 게임을 연결 짓는 은밀한 경험을 한다. * 사진 4- 커뮤니티에 공유되는 이벤트 달력 * * * 서비스 6년이 넘은 〈포켓몬 고〉는 가장 처음 기반을 닦은 GPS기반 컨셉에서 점차 플레이어의 다른 데이터와 연동을 실현하고 있다. 개인정보 수집과 이용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게임은 굴복하지 않은채 그 틈을 찾고 주인 없는 데이터를 주워 현실-가상현실 간의 연결을 꿰한다. 개발사의 이러한 시도 속에서 플레이어들은 레이드를 중심으로 끈끈한 지역 커뮤니티를 형성하기도 한다. 오프라인 속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게임의 대명사라고 볼 수 있는 〈포켓몬 고〉가 점차 온라인-오프라인의 하이브리드를 선보인다. 이 모든 것은 캐릭터를 매개로 한 구글과 닌텐도 자본의 기획, 점차 게임 콘텐츠로 활용될 포켓몬 수가 고갈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리는데, 다음에는 또 어떤 ‘이벤트'를 기획하여 현실-가상현실 간 데이터 연결을 탄생시킬지 주목할만 하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이선 사회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연구합니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결국 인간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 윤석열 정부의 게임 정책을 예견해 보다

    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당선자가 윤석열 후보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고백하건대, 미래가 어떻게 될지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다. 공약을 열심히 들여다보면 집권 후 방향성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지만, 어느 정도일 뿐이다. 다이나믹 코리아는 본게임 이전, 프리게임 때부터 치열하고 예측 불가능이다. < Back 윤석열 정부의 게임 정책을 예견해 보다 05 GG Vol. 22. 4. 10. 0) 프리게임 : 다이나믹 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당선자가 윤석열 후보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고백하건대, 미래가 어떻게 될지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다. 공약을 열심히 들여다보면 집권 후 방향성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지만, 어느 정도일 뿐이다. 다이나믹 코리아는 본게임 이전, 프리게임 때부터 치열하고 예측 불가능이다. 때문에 게임 공약들이 폐기 혹은 수정의 대상이 될지, 그대로 정책으로 연결될지는 예측할 수가 없다. 공약에 대한 깊은 분석과 비평도 어렵다. 분석만으로 예측하기가 어려우니 연관된 ‘사람’을 함께 보자. 해당 공약과 정책을 누가 만들고 동력을 제공하는지를 함께 본다면 불확실성이 조금은 줄어들 것이다. 1) 본게임 맵 : 질병코드와 셧다운제 게임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기반은 당선인 자신이 갖고 있는 게임에 대한 태도다. 게임 장르를 어떤 성격으로 바라보는지는 곧 게임의 맵과 같다. 맵에 가득한 안개를 걷어내기 위해 제일 처음 만나볼 발언은 후보 시절 인벤닷컴과의 인터뷰다. 인터뷰어인 이두현 기자가 인터뷰 말미에 게임 중독의 질병코드화에 대해 물었을 때의 답변이다. “게임을 포함한 모든 문화콘텐츠들은 상품이기도 하지만 사용자들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진흥과 규제를 적절하게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중략) 청소년들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으므로 부모님들에게 게임에 관한 정확한 이해와 접근 방향, 게임을 즐기는 자녀와의 관계 설정 등을 도울 수 있는 ‘교육과 이해의 과정’ 제공 등도 필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호의적으로 해석하면, 질병코드화 인정이라기보다는 건강한 게임 이용을 교육하자는 태도이다. 또한 너무 짧은 답변이기에 태도 전반을 도출해내기엔 부족하다. 다만 “게임을 포함한 모든 문화콘텐츠”의 부정적 측면을 지적하면서 “정신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을 들었다는 점에 추측해볼 여지가 있긴 하다. 거칠게 바꿔보면 ‘이런 거 보고 자라서 뭐 되려고 그래?’라는 문장이며, 등급제도의 기반 논리이기도 하다. 딱히 문제가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이 지점에서 선을 잘못 넘어가면 사전검열제도의 기반 논리로 둔갑한다는 점은 늘 염두에 둬야 한다. 반면 호의적으로 해석하지 않을 경우엔 이 발언이 질병코드화를 긍정하는 쪽으로 읽힐 수가 있는데, 마침 당시 윤석열 캠프에 있었던 두 사람 때문에 우려가 증폭됐다. 여성특보로 있었던 손인춘 전 의원은 셧다운제 확장을 발의한 이력이 있고, 아동폭력예방특보로 있었던 신의진 전 의원은 게임 중독을 강력히 주장한 악명이 있다. 증폭된 우려에 오래 쌓인 분노가 첨가되면서 후보에게 ‘질병코드화 긍정이냐 부정이냐’ 하는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여론이 만들어졌다. 기실 그 사이의 회색지대 선택지가 여럿 존재하긴 하지만, 대선과 같은 뜨거운 전장에서 던져지는 정치적 질문이라면 그런 영역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결국 후보는 10여 일 후에 게임을 질병으로 보지 않는다고 진화를 시도해야 했다. 그리고 이 시점부터 윤석열 캠프에서 게임 공약을 얘기할 때 앞으로 나서는 인사가 게임특위위원장으로 막 임명된 하태경 의원으로 바뀌었다. 비약과 가정을 많이 섞어서 추측한다면 게임 공약에 영향력을 주는 인사가 손인춘/신의진에서 하태경으로 바뀐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리하여 현재는 손인춘/신의진의 이름을 인수위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추측에 힘을 실어주는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담당자가 여럿 바뀌는 캠프 내 혼란상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손인춘/신의진의 유산인 셧다운제에 대한 캠프의 태도는 어떨까. 현재 셧다운제는 청소년이 이용시간을 자율 선택하는 것으로 바뀌면서 강제성이 사라져 사실상 폐지된 상태다. 캠프가 게임 분야를 하태경 체제로 정리하면서 제일 처음 정리해서 낸 공약은 셧다운제 이슈와 연결되어 있는 공약인, 전체 이용가 게임의 본인인증 면제다. 게임의 본인인증 제도가 도입된 배경 논리는 게임 과몰입과 중독을 예방하기 위한 규제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를 전체이용가 게임에 한해서라도 해제하는 방향은 손인춘/신의진의 자장에서 국민의힘이 빠져나오고 있다는 정황일 수 있다. 다만 함정이 있으니, 이 공약은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서에 없다. 2) 공약 주무기 – 2Big : 확률형 아이템, e스포츠 지역연고제 그럼 이제 후보 시절 공약서에 있는 공약을 살펴보자. 게임 공약은 340쪽이 넘는 공약서 기준으로 한 페이지에 불과하다. 캠프는 그 한 페이지에서 4개 항목을 짚었는데, 2가지 큰 항목과 2가지 작은 항목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항목에서 하태경 의원의 흔적이 보인다. - 1Big: 확률형 아이템 공약서 252페이지는 게임 공약이고, 이 페이지의 제목은 이렇다. “게임산업의 불공정 문제를 해소하고 e스포츠를 대한민국 미래산업으로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초점이 불공정에 맞춰져 있다. 누구에 대한 불공정일까? 공약 내용에 따르면 게이머들이 겪는 불공정이다. 윤석열 당선인의 게임 공약 첫 번째 큰 줄기는 확률형 아이템 규제다. 아이템 확률 조작은 이미 국정감사에도 진출한 이슈다. 국회에서 실제 확률을 소비자에게 공개하라고 한 후에도 같은 문제가 발생해 자율 규제에 대한 회의론이 짙어졌다. 그래서 윤석열 캠프는 아예 게임이용자권익보호기구를 일정 규모 이상 게임사마다 설치하게 하고, 이용자가 직접 확률형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하겠다고 한다. 이슈 선정은 좋지만 불안감은 존재한다. 당선인 자신이 인터뷰 당시에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공개를 ‘영업비밀 공개’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업으로서 수용하기 어려운 영업비밀 공개 의무화 등의 강력한 규제도 무조건 능사가 아닙니다.” 감시 기구를 만드는 것은 좋은데 그게 꼭 게임사 내에 만드는 형태여야만 했냐는 반론도 가능하다. 또한 다중뽑기 같은 일부 형태는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징벌하는 형식의 규제 대신, 정보 공개와 감시 정도를 선호하는 우파 색채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 공약은 하태경 의원이 대표로 발의해 계류중인 게임산업법 개정안의 내용이기도 하다. 하태경 의원실은 이 개정안을 확률조작 국민감시법이라고 명명했다. 게임물이용자권익보호위원회라는 기구를 문체부 내에 만들어서 컨트롤 타워로 삼고, 게임사 내에는 이용자위원회를 두는 방안이다. 윤석열 공약과 거의 동일하니 하태경 발의안이 공약으로 들어온 것이라 봐도 좋을 것이다. 반면 경쟁 상대였던 이재명 캠프의 관련 공약은 조금 더 단호했다.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의 기능을 확대하는 정도로 규제를 갈음하지만, 동시에 컴플리트 가챠 등의 다중뽑기는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공약이었다. 즉 현재 규제를 강화하면서 금지 지역을 설정하는, 경쟁자의 공약에 비하면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은 어느 정도 게임사의 입장을 반영한 정책이다. 다르게는 자율 규제에 한 발을 담그고 있는 정책이라고 서술할 수도 있다. 아마 이 공약이 정책으로 실현되면, 몇몇 게임사는 사내의 보호기구를 무력화할 방안을 연구할 것이고 정부의 보호위원회는 이를 막으려 들면서 정책 전선이 만들어질 것이다. 즉 이런 전선이 안 만들어지면 이 제도가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기능을 제대로 할 경우에도 대기업의 회피 기동을 잡아내지 못하면 중소기업 차별 이슈가 불거질 수 있다. 사내의 소비자보호기구를 만들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야 할 것이고, 이들은 대기업처럼 무력화 시도를 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런 경우 중소기업이 할 말은 ‘왜 쟤들은 피해갈 수 있는데 우리는 안 되느냐’ 하는 볼멘소리다. 이 부분들이 향후 이 제도 시행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 2Big: e스포츠 지역연고제 e스포츠 지역 연고제가 두 번째 큰 공약이다. e스포츠 구단을 지역 사회에 뿌리내리게 하겠다는 포부가 돋보인다. 지역 사회마다 PC방이 있으니 이 네트워크를 이용해 아마추어 리그를 만들고, 이 리그를 프로 구단의 유망주 풀로 활용한다. 당연히 동네 PC방에서 게임 좀 하는 유소년들은 유소년 클럽 시스템으로 들어갈 수 있다. 유소년 클럽 – 아마추어 리그 – 프로 리그의 단계적 시스템이다. 이런 시스템이면 클럽이나 구단에서 선수들을 상대로 게임 교육을 할 때 게임 리터러시 교육을 할 수 있다. 이 커리큘럼을 통해 중독 혹은 온건한 용어를 써서 과몰입을 줄일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다. 지도자 또한 자격증을 신설해 체계적 배출이 가능하게 한다. 단계적 리그 체계는 모든 프로 스포츠의 꿈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그 꿈을 완벽하게 이룬 프로 스포츠는 야구 외에는 없다시피 하다. 야구조차도 그나마 완전히 이룬 상태는 아니며, 다른 3대 구기 종목은 아직 벽을 넘지 못하고 청소년 엘리트 체육 시스템에 기대어 버티는 중이다. 과연 e스포츠는 그 벽을 제대로 넘어갈 수 있을까? 이 공약 또한 하태경 의원이 추진 중인 정책이다. 대선 직전이던 지난 2월 8일, 하태경 의원실은 김승수/허은아 의원실과 함께 지역연고제 도입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 패널에는 샌드박스게이밍의 정인모 이사, 크래프톤 e스포츠팀의 김우진 팀장, 인벤의 이두현 기자, 전 프로게이머이자 국민의힘 청년 보좌역인 한우성 등이 참여했다. 지역 연고제 관철을 위한 성격인지라 긍정적인 입장 위주로 진행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두현 기자의 토론 내용은 부정적인 시각이 묻어난다. 이두현 기자는 e스포츠 산업의 특성이 팬 위주이기 때문에, 지역으로 인위적 재편을 시도하는 것은 산업을 망칠 우려가 있다는 논지를 폈다. 이두현 기자는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의 주장을 인용하기도 했다. 정인모 이사의 경우엔 지역연고제가 정착된 중국의 예를 들며 성공 가능성을 피력했는데, 이상헌 의원의 주장에 따르면 지역연고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인구가 필요하기에 중국에서 성공한 것이다. 각 지역에 지어진 경기장을 채울 수 있는 관객의 수가 담보되어야 하는데 한국은 그만큼의 인구가 되지 않는다. 또한 e스포츠는 팀 위주의 팬심이 아닌 선수 위주의 팬심으로 돌아가는 리그다. 선수가 구단을 이적하면 그 팬은 기존 구단에 남지 않고 선수와 함께 이동한다. 게다가 e스포츠는 오프라인 직관만이 가지는 메리트가 상대적으로 적다. 경기장의 물리적 위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니 지역연고제가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콘텐츠진흥원이 작년 12월에 발표한 ‘2021 e스포츠 정책연구’에서도 부정적인 연구 결과가 있다. 중국처럼 산업 초기에 지역연고제 기반으로 디자인이 되었다면 팬 문화가 그에 따라 만들어질 수 있지만, 한국은 이미 e스포츠 산업이 원숙기에 들어선 후라서 지역연고제를 강행하면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연구 결과다. 오히려 공약 내용에 있는 유소년 클럽과 아마추어 리그 확충은 지역연고제의 결과나 과정이 아니라 전제 조건에 더 가깝다. 이토록 다양한 형태의 비판 논거와 반대 연구가 존재하는 이유는 지역연고제가 스타 프로리그 시절부터 20년 동안 제시된 정책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제시된 만큼 오랫동안 논의가 되어 왔고, 적합하지 않거나 너무 어렵기 때문에 추진되지 못한 정책이다. 그럼 윤석열 캠프와 하태경 의원은 이렇게 오래된 주장을 왜 정책으로 내건 것일까? 추측해볼 단서는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e스포츠 구단을 유치해 지역연고제 구단을 만들면 운영 자본이 필요하다. 한국의 프로 스포츠 리그는 이렇게 필요한 자본을 대기업 자본에서 가져오는 것에 익숙하다. 그리고 스포츠 구단을 설립/운영하는 기업은 그 비용의 10%만큼 세금 감면 혹은 공제를 받는다. 작년 12월에는 이 조세특례 종목에 e스포츠가 추가되었다. 또한 윤석열 캠프의 공약에는 체육진흥투표권, 즉 스포츠토토에 e스포츠 종목을 추가해 자금을 끌어오겠다는 청사진이 있다. 사실 이 이슈 역시 작년 초에 이상헌 의원과 국민체육진흥공단이 합동으로 논의를 시작한 주제다. 그리하여 e스포츠 지역연고제 공약은 부자 구단주들과 토토의 자본을 리그로 끌어오겠다는 내용으로 치환할 수 있다. 다만 진정으로 지역연고제가 e스포츠의 미래라고 믿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런 사람이 지켜봐야 할 지표는 부산 리브샌드박스다. 게임 구단 최초로 지방자치단체와 연고 협약을 맺어 연고제를 실험하는 구단이다. 구단 프론트 인력을 지역에서 채용하고, 지역 경기장을 활용한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으며, 지역 내 아카데미를 만들어 인력 풀을 만들어가려는 중이다. 2) 공약 보조무기 - 2Small : 소액 사기 전담기구, 장애인 접근성 오프닝 공약과 2가지 큰 공약 줄기 사이에는 2가지 작은 공약도 있다. 디테일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생활밀착형이 될 수 있겠다. 작은 공약 첫째, 게임 내의 소액 사기를 전담하는 수사기구를 설치한다. 너무 작은 사안이긴 하지만, 캠프가 유권자의 적절한 목소리를 수신한 사안이다. 디테일한 공약의 크기만큼이나 잘 다뤄지지 않은 공약인데, 이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는 궁금하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예로 들면 몇백 몇천 골드 수준의 사기 피해를 당한 유저는 이를 구제 받으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피해를 산정하기 위해 유저간 거래 시세를 적용할까 아니면 해당 골드를 입수하기 위해 들어간 유저의 시간을 적용할까? 또한 소액 사건의 수사를 맡는 경찰은 사건이 접수되면 사이버수사국 요원으로 배정을 할까 혹은 전담기구 내에 전담 요원을 만들어서 배정할까? 후자라면 신규 채용 필요가 생기지만, 윤석열 당선인은 공무원 감축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검사는 이 사건을 어떤 형태로 기소할 것이며, 동시에 판결을 맡을 판사의 업무량 상승은 고려가 될까? 아직은 알 수 없다. 작은 공약 둘째, 장애인의 게임에 대한 접근성을 향상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게임접근성진흥위원회’를 설치한다. 대선 기간 동안 언론은 이 공약에 아무런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는데, 이 공약 역시 하태경 의원실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작년 4월 20일에 발의된 게임산업법 개정안에는 하태경 의원, 그리고 국민의힘 비례대표로서 장애인을 대표하는 김예지 의원, 진보의 정의당 류호정 의원 등이 참여한 법안으로 현재 계류 중이다. 이 법안은 정부에게 장애인의 게임 접근성 향상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도록 의무를 지우는 내용이다. 이런 내용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21세기 초입부터 제기가 되었고, 2004년에는 국제게임개발자협회(International Game Developers Association, IGDA)가 개념화하여 게임 개발 지침을 만들면서 조류(wave)가 시작되었다. 이후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접근성 지침, 장애인 플레이어 환경 가이드와 같은 가이드라인들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런 조류에 맞춰가는 법안인 것이며 공약으로 바뀌자 해당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권고를 내리는 기구로 위원회가 만들어지는 내용이 된 것이다. 장애인 게임 접근성에 관해서 잘 정리된 정보는 게임제너레이션 3호에 강신규 연구자의 글( 링크 )에 있으며, 장애인 게임 유저로서 강신혜 작가가 쓴 글( 링크 )은 게임제너레이션의 4호에 실려 있다. 이 분야를 연구자와 당사자가 쓴 저 두 편의 글보다 잘 설명할 자신이 없다. 이 공약에서 핵심이 될 부분은 게임접근성진흥위원회가 내릴 권고의 무게다. 현재 독립적 지위를 가진 위원회로서 권고의 무게가 가장 무거운 위원회는 국가인권위원회다. 하지만 그런 인권위 권고조차 정부 부처나 기업이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권고는 법적 강제성이 약하기 때문에 불수용 결정이라는 제도적 출동 사례가 생기는 것이다. 과연 게임접근성진흥위원회의 권고는 어느 정도의 권위를 지니게 될까? 3) 중요 NPC : 하태경 의원 윤석열 당선인의 게임 공약을 분석하기 위해 처음에 살펴봤던 것은 인벤닷컴과의 인터뷰였다. 하지만 서면으로 이루어진 이 인터뷰는 당선인의 실제 답변일 가능성이 별로 없다. 게임 공약을 정리해서 처음 발표하던 1월 12일, 윤석열 후보는 자신이 직접 인터뷰한 것이 아니고 선대위 내부에서 답변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 시기는 하태경 의원이 선대위 내에서 게임특위위원장이 되는 시기외 맞물린다. 12일의 공약 발표에서도 공약에 대한 질의 응답은 윤석열 후보 자신보다 하태경/원희룡 두 사람이 더 많이 했다. 따라서 향후 윤석열 정부의 게임 정책의 핵심은 하태경 의원이 될 것으로 예상해도 무방할 것이다. 하태경 의원은 현재 인수위에서 맡은 직책이 없다. 현직 국회의원이라 행정부 인수위에 들어가지 않았나 생각할 수는 있지만, 한국 정치에서 그런 이유의 인선은 없었다. 당장 배준영 의원은 인수위에서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에 들어가 있고, 추경호 의원은 기획조정분과의 간사로 들어가 있다. 이번 인수위 인선은 유독 문화체육 분야가 약하다고 평가받고 있는데, 특히 게임 분야는 한 명도 없다. 하태경 의원이 인수위 인선에서 빠졌다는 것은 당선인이 게임 공약의 우선순위를 앞에 놓고 있지 않다는 의미다. 공약 사항 외에 놓친 것을 찾아보기 위해 다시 인벤닷컴 인터뷰로 돌아가 보자. 인터뷰어인 이두현 기자는 국회에서 계류 중인 게임산업법 전부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질문했다. 이에 대한 당시 답변은 원칙적 찬성이었으나, 정작 법안 내용을 캠프가 모르고 있었다. “개정안 내용의 골자는 게임의 사행성과 사용자들의 게임중독에 관한 규제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다만, 앞서 말씀드린 대로 그동안 우리나라 온라인게임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고 수많은 일자리와 혁신도 주도했던 만큼 업계의 애로 사항도 충분히 감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우리 국민의힘은 온라인게임 본인인증 절차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이 대표 발의해 아직 계류 중인 게임산업법 전부개정안은 사행성/게임중독 규제에 대한 내용과는 맥락이 완전히 다르다. 이 전부개정안의 내용 중에서 중요한 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게임배급업을 명확히 규정하고 관련 요소의 법적 정의를 해서 구역을 명확히 구분한다. 2. 중소게임사에 문체부가 예산 지원을 할 법적 근거를 만든다. 3. 비영리 인디 게임에 등급 분류를 면제시켜 주고, 패치가 등급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경우 새로 등급 분류를 면제시켜 주는 등 등급분류제의 많은 부분을 손질한다. 이 내용 중 일부는 다른 개정안 통과로 인해 이루어졌다. 4. 등급 표시 외에도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정보 등을 명시하도록 의무화한다. 5. 국내 업장이 없는 외국 회사가 국내에서 게임 사업을 할 때 국내 대리인 지정, 지사 설립이나 운영대리회사 지정을 하게 만들어서 수익 일부가 국내 경제권에 남도록 한다. 이번 회기의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회기 시작 후 2년 동안, 게임산업법 관련한 입법 활동으로 등급분류제와 확률형 아이템 규제를 손질하는 작업을 주로 하는 중이다. 그런 활동 사이사이로 셧다운제 내용 완전 삭제, 장애인 접근성 등의 내용이 있다. 이상헌 의원의 전부개정안은 현재 문체위의 메인 퀘스트 중간 종합판이라 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위의 입법 활동 중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인데도, 이 내용을 캠프가 혹은 하태경 의원이 몰랐다는 것은 의아한 부분이다. 하태경 의원이 이 전부개정안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은 핑계가 되지 않는다. 인벤닷컴 인터뷰에서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P2E 게임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다. “국민 여론에서 사행성 논란이 있다면 건전한 놀이문화가 되기도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따라서 국민 대다수가 이해한다면 P2E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에서 최소한의 고려를 해 볼 수는 있겠지만, 환전성이 가능한 게임에 대해서는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됩니다. 사행성 논란이 없어져야 해당 시장도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부분은 지난 2월 28일에 내려진 사법부 결정과 궤가 같다. 환전을 하는 게임에 대해 이뤄진 헌법소원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환전업을 금지한 게임산업법의 해당 조항이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유저 간의 게임머니 거래는 묵인할 수 있지만, 게임사가 게임머니를 현금으로 환전해주는 형태는 불법이 맞다는 확언이었다. 이는 한국 P2E 게임의 선택지를 극도로 좁게 하는 판결이며, 1월 초에 나온 캠프의 태도와 부합하는 판결이다. 다시 0) 애프터게임 : out of focus 윤석열 당선인의 게임 공약은 전체적으로 봤을 때 장단점이 매우 뚜렷하다. 대부분은 결을 잘 잡았지만 의구심이 드는 지점의 공백이 너무 크다. 과연 당선인이 이 공약들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장담하기 어렵다. 반면 공약 작성 당사자로 보이는 하태경 의원을 중심으로 봤을 때, 국회와 연계하여 정책 전개를 해나갈 전망은 희망적이다. 그래도 여전히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 이유는, 정황상 게임 정책의 국정과제 우선순위가 매우 뒤쪽일 것 같기 때문이다. 어차피 국회와의 연계가 필요한데, 그 하태경 의원은 다른 문체위 의원들이 집중하는 초점에서 반쯤 벗어나 있다. 낙제점은 아니지만 미싱 링크가 볼수록 크게 보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 [공모전수상작] 〈Ib〉: 미술관이라는 공포 체험

    2022년은 〈Ib〉의 공개로부터 10주년이 되는 해였다. 제작자kouri는 스팀을 통해 기존 〈Ib〉에 새로운 기능이나 디테일을 더한 리메이크판을 공개했다. 이듬해 2023년에는 닌텐도 Switch 용 〈Ib〉의 발매 소식이 공개되었고, 게임 홍보를 목적으로 게임의 전시를 재현한 ‘게르테나전’이 도쿄 시부야에서 열리기도 했다. < Back [공모전수상작] 〈Ib〉: 미술관이라는 공포 체험 20 GG Vol. 24. 10. 10. “어서오세요 게르테나의 세계에”: 미술관 나라의 이브 2022년은 〈Ib〉의 공개로부터 10주년이 되는 해였다. 제작자kouri는 스팀을 통해 기존 〈Ib〉에 새로운 기능이나 디테일을 더한 리메이크판을 공개했다. 이듬해 2023년에는 닌텐도 Switch 용 〈Ib〉의 발매 소식이 공개되었고, 게임 홍보를 목적으로 게임의 전시를 재현한 ‘게르테나전’이 도쿄 시부야에서 열리기도 했다. 〈Ib〉는 여러 가지 장르로 설명될 수 있다. RPG 만들기 툴(RPG Maker)로 만들어진 롤플레잉 어드벤처 게임이기도 하고, “프리호러게임” [1] 에 들어가기도 하고, 캐릭터 간의 대화 횟수나 대사 선택지에 의해 엔딩이 갈린다는 점이나 캐릭터의 매력을 살린 2차 창작으로 입소문을 탔다는 점에서는 미소녀 게임의 일종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개념미술가 다니엘 뷔랑은 “전시회의 주제가 더 이상 전시된 미술 작품들이 아닌, 미술 작품의 전시 그 자체로 바뀌는 추세”라고 주장했다. [2] 이러한 주장에 따른다면, 〈Ib〉에 등장하는 미술 작품들은 대부분 배경 소품이나 ‘모브 캐릭터' 정도로 등장하는 데에 그치더라도 ‘게르테나전’이라는 전시회 자체가 〈Ib〉의 주제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전시회 체험’으로서의 〈Ib〉에 주목한다. 〈Ib〉에서 ‘게르테나전'은 크게 서너가지 시공간을 가리킨다. 첫번째로 이브가 처음에 부모님과 함께 도착한 미술관이자 비일상적인 호러 세계를 빠져나와 돌아가야 할 장소인 작중 일상 세계의 “게르테나전”이다. 두 번째는 이브가 홀로 뛰어들어 게리와 메리와 함께 탐험하게 되는 위험천만한 “상상화의 세계”이다. 그 안에서도 메리의 세계인 “스케치북의 세계"는 나머지 “상상화의 세계"와는 다소 궤를 달리하는, 어느정도 독자적인 공간으로서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Ib〉의 세계에 등장하는 모든 작품을 포함하는, 제작자 kouri의 전시라고도 할 수 있을 2022년판 〈Ib〉의 “진 게르테나전”이 있다. 다양한 ‘게르테나전’을 탐험하는 〈Ib〉라는 어드벤처 게임에서, 플레이어 캐릭터는 ‘이브’인 동시에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 자신의 분신이다. 게임 도중 특수한 조건을 만족시키면 일정 부분을 다른 캐릭터의 시점에서 플레이할 수 있기는 하지만, 플레이어는 대체로는 이브를 통해, 이브가 되어 ‘게르테나전’을 경험한다. 플레이어/이브에게 있어서 ‘게르테나전’이 어떤 식으로 ‘신비롭고도あやしくも 아름다운’ 경험이 되는가 살펴보자. * 이미지 1: “게르테나가 생전에 그린 신비롭고도 아름다운 작품들을 부디 마음껏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일본어로 あやしい는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것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수상하고 불길한 것을 가리키는 형용사이기도 하다. “작품에 손을 대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게르테나전이라는 ‘화이트 큐브’ 〈Ib〉에서 새 게임을 시작한 플레이어는 부모님과 함께 미술관에 가는 장면 속에 놓인다. 플레이어의 분신이자 게임의 주인공인 ‘이브’는 미술관을 처음 경험하는 아홉 살 소녀이다. 블라우스에 붉은 치마와 리본, 구두 차림에 “진짜 레이스"와 자수로 장식된 손수건을 가지고 있다. 미술관에 도착한 플레이어/이브는 티켓 접수에 시간이 걸리고 있는 부모님에게 먼저 들어가서 전시를 보고 싶다고 표현한다. 게임의 진행을 위해서라도 ‘엄마'는 허락하면서도, 다른 관람객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조용히 관람해야만 한다며 거듭 주의를 준다. 아무튼 잔소리를 다 들었다면, 비로소 플레이어는 자유롭게 이브를 움직일 수 있게 된다. 게르테나전에 발을 들이는 순간 가장 의식하게 되는 세 가지는 흰 벽, 액자 그림, 그리고 BGM ‘코렐리 라 폴리아'다. 테이트 미술관 홈페이지는 “화이트 큐브"란 “사각형 공간, 희게 칠한 벽, 그리고 천장에서 내려오는 광원으로 대표되는 전시회들의 특정한 미적 형식"이라고 요약한다. 바로크 클래식 음악과 관객으로부터 동떨어져(야만 하는) 흰 배경에 놓인 값비싼 예술품들은 ‘화이트 큐브’를 구성하는 요소들 그 자체이다. “게르테나전”과 같은 ‘화이트 큐브’는 지금도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익숙한 미술 전시의 형태일 것이다. 이브/플레이어는 전시장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관람객에게 말을 걸 수 있다. 대뜸 작품에 대한 감상을 물어봤으면서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면 어린애라고 무시하는 관람객이 있으면, 작품의 일부를 먹어보고 싶다는 식욕 왕성한 관람객도 있고, 조각 작품이 조금만 건드려도 무너질 것 같다며 배상금을 상상하며 두려워하는 관람객이 있기도 하다. 그런 관람객들이 넌지시 드러내는 공통된 두려움에 끄떡이듯, 조각상 근처의 벽에는 “작품에 손을 대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하는 경고문이 걸려있다. 게임의 도입부의 “게르테나전”은 플레이어에게 달려드는 초상화나 접촉하면 ‘게임 오버’가 되는 조각품 같은 것들이 등장하지 않는 ‘안전한’ 공간이다. 그러나 아홉 살 어린이 이브에게 있어서, 어쩌면 ‘호러 게임’ 〈Ib〉의 ‘호러’는 이미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느껴졌다. 전시장은 여자 어린이 이브에게 있어서, 그리고 아홉 살 소녀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면에서 이브와 비슷한 면이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결코 편안한 장소가 아니다. 미술관이란 손을 대면 때가 탈 것만 같은 새하얀 벽에 둘러싸여 있고, 실수로라도 만졌다가는 무시무시한 금액을 물어내야 할 성스러운 미술품들이 걸려있는 데다, 기침이라도 했다가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엄격한 공간이다. “게르테나전” 2층에는 “고양이다-! 엄마아-! 고양이 그림이 있어-!” 하며 작품에 대한 열의를 공유하려고 했으나 “알겠으니까 조용히 하렴! 큰 소리 내면 안돼!”하고 꾸중만 듣고 마는, 이브보다 어려 보이는 (작은 도트로 표현되는) 어린이 관람객이 있다. 같은 층의 다른 관람객의 말( “으…… 역시 너 같은 아이한테는 아직 이해하기 어려우려나……” )처럼, 미술관은 때로는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술적 조예’나 ‘똑똑한 머리’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어려운 곳이기도 하다. 이브는 한자로 표기된 작품 라벨을 거의 읽지 못한다. 이브가 혼자서 읽을 수 없는 어려운 한자는 모두 물음표로 표현되고, 라벨이 물음표로 표시되는 작품의 제목을 알기 위해서는 어른 동료와 동행해야만 한다. 미술관에서 실수하기는 너무나 쉽고 미술을 이해하기는 너무 어렵다. “상상화의 세계": 미증유의 ‘그레이 존'에 뛰어들기 이런 게르테나전을 헤매던 이브 앞에 불현듯 나타난, 읽기 쉬운 히라가나로 된 “이 리 오 렴 이 브”는 ‘화이트 큐브’에서 꺼내주겠다고 하는 유혹과 같았을지도 모른다. 불가항력처럼 뛰어든 “상상화의 세계”는 원래 세계의 게르테나전과는 사뭇 다른 미술관의 모습을 보여준다. 벽은 붉고 푸르고 초록색이며, 미술 작품은 자유롭게 만질 수 있고 가격이 매겨져 있지도 않다. 라벨이 없는 작품도 여러 점 있으며, 작품은 반드시 벽에 걸려있지도 않고, 심지어 자아를 가지고 자유롭게 돌아다니기도 한다. * 이미지 2: 먼 곳의 높은 벽에 걸려있는 자신의 초상화에 접근할 수 없는 개미를 위해 액자를 벽에서 떼어 들고 가서 보여줄 수도 있다. 눈높이에서 보고 싶은 작품을 마음대로 떼어서 볼 수 있는 초록색 전시관은, 하얗고 고요한 “게르테나전”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이러한 점에서는 “상상화의 세계”는 원래 세계의 게르테나전에 대한 대안의 상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디지털 문화 이론가 레브 마노비치는 20세기부터 미술관과 극장theatre은 반대되는 개념이었으며, ‘화이트 큐브’인 미술관은 고급문화로, 그리고 ‘블랙 박스’인 극장은 저급문화로 여겨졌다고 설명했다. [3] 한편, 현대예술에서는 공연의 거처가 ‘블랙 박스’에서 ‘화이트 큐브’로 옮겨진 경우도 있다. 극장에서와 달리, 미술관에서의 공연은 유동적인 관객을 상정하기에 관객이 없어도 계속될 수 있으며, 동시에 극장 공연에 비해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기에 용이하다는 특징을 가졌다. 클레어 비숍은 이와 같이 ‘블랙 박스’와 ‘화이트 큐브’의 특성이 혼재된 공간을 ‘그레이 존’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4] 이브나 게리가 뛰어들기 전부터 존재했던 듯이 보이며, 작품이 자아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관람객/플레이어와 교류하는 “상상화의 세계”는 ‘그레이존’이라는 설명에 딱 들어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상화의 세계”는 안전하지 않다. RPG 게임 〈Ib〉에서, “상상화의 세계”에서 자아를 가진 작품들은 플레이어를 향해 달려들며 목숨을 노리고, 그러면서도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지 말고 영원히 남으라고 종용한다. 이것은 확실히 호러다. 그렇다면 작중 서사에서 “상상화의 세계”가 공포스럽게 작용하는 방식을 배제하고, 하나의 전시로서의 “상상화의 세계”는 어떨까? 안타깝게도 “상상화의 세계”라고 해서 “게르테나전”보다 모두에게 안전하고 재미있는 전시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들은 흰 벽에 불안과 강박을 느끼지만, 대안으로써 알록달록한 벽을 채택한다면 과잉된 시각적 자극에 감각 과민을 경험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관람객이 미술품을 만질 수 있게 하면 시각장애인이나 신경다양인 등이 다양한 방법으로 전시를 즐길 수 있게 되지만, 감염의 위험이 커져서 면역이 취약한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안전하지 못한 공간이 될 수도 있다. [5] 전통을 거스르는 대안적 시도는 필연적으로 다면적인 복잡함과 어려움을 마주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상상화의 세계”는 ‘화이트 큐브’를 벗어나려고 하는 시도의 불확실성, 그리고 실패 가능성에 대한 불안의 은유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상상화의 세계”는 “게르테나전”의 한계를 타파하고 극복한 결과라기보다는, 오히려 “게르테나전”에서 느낀 공포의 연장선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 예시로, 작중 이브가 꾸는 악몽에서는 “게르테나전”의 공포와 “상상화의 세계”의 공포가 하나로 합쳐지기도 한다. * 이미지 3: 이브가 “상상화의 세계”에서 정신력이 다해 쓰러졌을 때 꾼 악몽. “상상화의 세계”에 비해 “게르테나전”은 안전하다. 비록 부모님이 데리러 오지 않으면 떠날 수 없고, 큰소리도 내면 혼나고, 쉽게 이해할 수도 없는 데다, 전시품을 건드리면 변상해야 하지만 목숨이 간당간당한 “상상화의 세계”보다는 무한히 안전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상상화의 세계”에 비해서 안전하다고 해서, “게르테나전”이 모두에게 있어서 가장 안전하다는 주장은 ‘화이트 큐브’가 내세우는 이데올로기 그 자체 같다. 미술관에 ‘화이트 큐브’를 처음 적용하기 시작한 데 스틸과 바우하우스와 같은 예술가 그룹들은 ‘화이트 큐브’에 둘러싸여 있을 때 미술이 가장 돋보이고, 방해받을 여지 없이 안전하게 관람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6] 정말 그럴까? 만약 그렇다면, ‘화이트 큐브’에서 ‘안전하게’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브는 거기에 포함될 수 있을까? “스케치북의 세계”: ‘화이트 큐브’에 대한 메리의 도전 큐레이팅이란 무엇일까? 폴 오닐은 저서 『동시대 큐레이팅의 역사』를 통해 큐레이터가 단순히 작품을 관리하고 요구에 따라 꺼내어 전시하는 위치에 있었던 과거와 달리, 현대의 큐레이터는 전시라는 예술적 경험을 총괄하는 비평가이자 일종의 메타적인 예술가라고 주장한다. ‘게르테나전’이 크게 서너 가지 존재하는 것과 짝을 맞추어, 〈Ib〉에는 크게 서너명의 큐레이터가 존재한다. 이브와 부모님이 사는 세계의 ‘게르테나전’을 만든 작중에 등장하지 않는 가상의 큐레이터, “상상화의 세계”의 근본에 있는 바이스 게르테나 (그는 의식적으로는 존재할 수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스케치북”의 세계를 만들어낸 메리, 그리고 물론 ‘진 게르테나전’은 〈Ib〉를 제작한 kouri와 〈Ib〉를 플레이해서 완성하는 플레이어의 합작이다. * 이미지 4: 미술관이 어린이를 환대하는 공간이 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할까? “상상화의 세계” 안에서도 “스케치북”은 메리가 직접 그리거나 모은 오브제들로 구성된 맵이다. 메리가 즐겨 쓰는 그림 도구인 크레용으로 그려진 세계에는 집, 사람, 나무 외에도 백조가 있는 호수, 나비들의 공간, 커다란 푸딩 등이 그려져 있다. 검은 공간은 여백이기에 만지거나 걸을 수 없으며, 색이 칠해져 있는 부분만 물성을 지닌다는 자체적인 물리법칙도 있다. “스케치북 안에는 “장난감 상자”가 있고, “장난감 상자”에는 스토리의 진행에 필요한 열쇠 외에도 그림, 인형, 조각 등… 요컨대 메리의 ‘친구들’이 흩어져 있다. 뉴욕 브루클린의 미술재단 Recess에서 발행한 미술관 접근성 가이드 “Accessibility in the Arts: A Promise and a Practice”에서는 아이들을 동반한 관람객을 위해 미술관에서 놀이방이나 장난감과 그림 도구로 채운 상자를 마련할 것을 제안한다. [7] 이 제안의 모습과 유사한 메리의 “스케치북"은 꼭 어린이 관람객을 위한 놀이공간 같다. * 이미지 5: “스케치북” 속 “장난감 상자” “스케치북” 세계는 그림은 액자 안에 존재해야 하며 액자는 미술관에 걸려 있어야 한다는 전제 자체를 무시한다. 밟고 있는 길, 들어갈 수 있는 집, 호수와 백조와 나무와 과일은 모두 캔버스 바깥에 존재하는 물체인 동시에 그림으로 인식된다. 이런 자유로움은 어린 시절 바닥에 분필로 그림을 그려서 즐겼던 땅따먹기 놀이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평면에 그린 그림을 컴퓨터나 스마트 기기의 카메라로 인식해 3D 영상으로 렌더링하던 초기 AR(증강현실) 애플리케이션들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미술관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화이트 큐브’를 벗어나 놀이 공간에 가까워지려고 더 자주 시도한다면, 메리와 같이 에너지가 많고 집중력이 짧은 어린이 관람객에게도 덜 무섭거나 지루한, 심지어 신나는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억의 미술관 이브의 다사다난한 미술관 경험에서도 비추어지듯, ‘화이트 큐브'로 대표되는 미술관은 어린이 혹은 그 밖에도 신경다양인, 장애인, 티켓을 살 돈이 없는 사람들, 조용하게 걸을 수 있는 신발이 없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썩 환대의 공간은 아니다. 그러나 이미 너무나 오랫동안 미술관의 전통으로 굳어져 온 ‘화이트 큐브'의 대안을 고안하고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새로운 방식의 전시는 저마다 모두 나름의 의의와 한계들이 있고, 때로 전시의 한계는 상업성과 자본이라는 맥락에 의해 결정되기도 한다. ‘게르테나전’은 지난 2023년, 닌텐도 Switch 판 〈Ib〉의 발매를 기념해 현실로 옮겨오기도 했다. 2023년의 게르테나전은 시부야 PARCO백화점 지하 1층의 전시공간인 GALLERY X BY PARCO에서 열렸다. [8] 150점이나 되는 게르테나의 작품이 모두 전시되지는 못했지만, 특히 조각 작품은 제작과 운반에 투자할 여력이 없었는지 한 점도 전시되지 못했다. 흰 사각형 벽에 액자가 걸려있는 모습은 전형적인 ‘화이트 큐브’였지만, 그러면서도 프로젝션 매핑을 통해 그림의 ‘움직이는’ 요소를 재현하고 흰 벽을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VR헤드셋을 쓰고 ‘파란 인형의 방’을 체험할 수 있는 ‘블랙 큐브’도 있었다. 그렇지만 프로젝션 매핑이나 VR 등의 기술적인 시도보다도, 가장 기억에 남은 체험은 ‘세이브 포인트’였다. 〈Ib〉 작중 세이브 포인트인 노트와 펜을 재현한 방명록에는 노트를 전부 채우고도 앞, 뒤표지까지 흘러넘칠 정도로 빽빽한 ‘세이브’가 기록되어 있었다. 전시를 관람했을 뿐만 아니라, 게르테나의 세계에 참여했다는 경험의 기록을 남기고자 한 사람들의 열망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 흔적은 방명록뿐만아니라 수많은 관람객의 휴대폰의 카메라 롤과 SNS의 미디어함에도 기록되었다. ‘그레이 존’ 개념을 제안한 클레어 비숍은 관객이 동원할 수 있는 모바일 기기와 네트워크 기술이 늘어나, 기존에는 촬영을 금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미술관에서 SNS를 통한 전시의 공유와 확산을 권장하게 된 현상이 ‘그레이 존’의 예시라고 보았다 [9] . 그렇다면 ‘화이트 큐브’, ‘블랙 박스’와 ‘그레이 존’의 요소가 모두 존재한 현실의 게르테나전은 아홉 살 이브에게 조금은 더 친절하고 마음 놓이는 공간이 될 수 있었을까?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미술관이 그저 무섭고 끔찍한 공간일 뿐이라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를 ‘호러’라고 정의한다고 해서 그것이 즐거움이나 다른 의미를 줄 수 있는 여지가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Ib〉라는 게임도 그렇다. 어쩌면 이브/〈Ib〉가 그렇듯이, 어린 시절의 ‘호러’의 경험은 곧잘 ‘모험’과 연결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 〈스탠 바이 미〉는 사이가 좋은 어린 소년들이 함께 철길을 따라 걸으며 자라는 성장 영화라고 요약되곤 하지만, 호러적인 위험이 가득한 모험을 통해 묻혀있는 시체를 찾는다는 시놉시스는 영락없는 공포 영화이기도 하다. 이러한 〈스탠 바이 미〉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비디오 게임 〈MOTHER〉 역시 어드벤처 RPG의 교과서적인 고전 작품이지만, 최종 보스 ‘기그’의 공포성은 〈MOTHER〉에서 인상깊은 부분으로 손꼽히는 구성요소 중 하나이다. 첫 〈포켓몬스터〉 게임들 역시 유령이 등장하는 ‘보라타운’이나, 엔딩 후 동굴 깊은 곳에서 플레이어를 기다리는 강력한 ‘뮤츠’는 많은 게이머들의 어린 시절 강렬한 공포 경험으로 남아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오즈의 마법사』도, 『피터 팬』도…… 어린이가 훗날에는 마치 꿈과 같은 기억으로만 남게 되는 흥미진진한 모험을 떠나는 내용의 명작들은 모두 어딘가 공포스러운 면이 있다. 이브의 미술관 모험 역시 공포스러운 동시에 흥미진진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화이트 큐브’는 분명 무서운 공간이고, 특히 이브와 같은 어린이 관람객을 환대하는 것에는 아직 실패하고 있음도 분명하다. 그러한 사실은 ‘화이트 큐브’의 변화를 재촉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 대부분의 미술관이 ‘화이트 큐브’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브가 흥미진진한 미술의 세계를 즐길 여지는 언제든 있다고 믿고 싶다. [1] 〈유메닛키〉, 〈아오오니〉 등 RPG 만들기 툴로 제작된 호러게임 중 제작자의 개인 홈페이지 등을 통해 무료로 배포된 게임 전반을 이르는 장르명으로, 〈Ib〉의 유행 시기를 중심으로 2010년대 초 한국 인터넷에서 자주 사용되었다. [2] “Écrits - Conférences / Les Écrits : Quelques Textes Daniel Buren,” 1972. https://danielburen.com/bibliographies/2/8 . [3] Lev Manovich, “The Poetics of Augmented Space,” Visual Communication 5, no. 2 (June 1, 2006): 219–40, https://doi.org/10.1177/1470357206065527 . [4] Dancing Museums, “Black Box / White Cube - Dancing Museums,” April 16, 2022, https://www.dancingmuseums.com/artefacts/black-box-white-cube/ . [5] Carolyn Lazard, Accessibility in the Arts: A Promise and a Practice (Reading PA: The Standard Group, 2019), 28. [6] Tate, “White Cube | Tate,” n.d., https://www.tate.org.uk/art/art-terms/w/white-cube . [7] Lazard, Accessibility in the Arts, 27. [8] “Nintendo Switch版『Ib』 発売記念『ゲルテナ展』 | GALLERY X BY PARCO | PARCO ART,” PARCO ART, 2023, https://art.parco.jp/galleryx/detail/?id=1160 . [9] Dancing Museums, “Black Box / White Cube - Dancing Museums,” April 16, 2022.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윤수빈 포켓몬스터 시리즈의 대사(?) "햇살이 강해졌다!"가 삶의 모토.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0시간 운동하고 〈링 피트 어드벤처〉의 두번째 맵을 영영 벗어나지 못하며 살아왔으나, 작년에 프로레슬링을 접하고서 처음으로 운동을 지속하는 데에 성공했다.

  • 일상시뮬레이션, 현실을 편집하는 꿈을 꾸다 - <심즈> 시리즈를 중심으로

    <심즈>는 특정 대상의 생활을 시뮬레이션하는 소위 ‘라이프 시뮬레이션(Life Simulation)’ 비디오 게임 중에서도 대명사 격에 위치한 시리즈다. 현대적인 직업을 갖고, 퇴근 후 집안일을 하며, 때에 맞춰 공과금을 내야 하는 생활을 다루는 <심즈> 시리즈는 “가장 말도 안 되는 판타지”를 실현하는 비디오 게임으로 예화 되기에는 부적절해 보인다. <심즈> 시리즈의 디자이너 윌 라이트(Will Wright)는 최초에 <심즈>를 구상했을 때 이 게임이 제공할 수 있는 즐거움을 회사에 설득하기가 어려웠다고 회고한다. < Back 일상시뮬레이션, 현실을 편집하는 꿈을 꾸다 - <심즈> 시리즈를 중심으로 20 GG Vol. 24. 10. 10. "Video games are great. They let you try out your craziest fantasies. For example, on The Sims, you can have a job and a house." "비디오 게임은 위대하다. 게임은 당신이 가진 것 중 가장 정신 나간 공상까지 이뤄준다. 예를 들어 <심즈The Sims>에서, 당신은 직업과 집을 가질 수 있다." -인터넷 상에서 발견한 익명의 농담 * 심즈3(The Sims™ 3) 스팀 소개 이미지, EA 제공 <심즈>는 특정 대상의 생활을 시뮬레이션하는 소위 ‘라이프 시뮬레이션(Life Simulation)’ 비디오 게임 중에서도 대명사 격에 위치한 시리즈다. 현대적인 직업을 갖고, 퇴근 후 집안일을 하며, 때에 맞춰 공과금을 내야 하는 생활을 다루는 <심즈> 시리즈는 “가장 말도 안 되는 판타지”를 실현하는 비디오 게임으로 예화 되기에는 부적절해 보인다. <심즈> 시리즈의 디자이너 윌 라이트(Will Wright)는 최초에 <심즈>를 구상했을 때 이 게임이 제공할 수 있는 즐거움을 회사에 설득하기가 어려웠다고 회고한다. “쓰레기를 치우고 화장실을 청소하는 게임”의 기획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세계를 구하거나 제트기를 조종하는” 게임들과 비교하면 <심즈>에 흥미로운 요소가 없다고 생각했다(Barnes). “가장 정신 나간 공상”이라고 일컬어진 대목은 물론 “쓰레기를 치우고 화장실을 청소하는” 부분은 아닐 것이다. 그 공상은 <심즈>에서 플레이어가 서는 출발선과 관련을 맺는다. <심즈>를 최초로 시작할 때, 플레이어는 ‘심’이라고 불리는 아바타를 하나 혹은 여럿 만들어낸다. 심의 성격과 취향, 생김새를 빚어낸 플레이어는 주어진 초기 예산을 바탕으로 그의 심들에게 거주지를 지정한다. 자신의 거주지를 거점으로 심들은 <심즈>의 가상 세계에 진입하고 직업을 구해 본격적으로 생계와 살림을 꾸려 나간다. 심의 생계와 살림은 ‘허기’, ‘용변’, ‘재미’, ‘수면’, ‘위생’과 ‘사교’로 대표되는 그들의 여섯 가지 욕구를 충족하거나 억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플레이어는 단순히 즉각적인 욕구를 충족하기를 넘어서 다종다양한 야망을 이룰 수 있도록 심의 일상을 구조화해 나갈 수 있다. 『커밍 업 쇼트』에서 제니퍼 M. 실바(Jennifer M. Silva)는 포스트산업 노동 계급의 세대가 “성인이 되는 경험”을 “블루 칼라 일자리가 아니라 그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생겨난 유동성과 유연성”으로서 정의하는 보편적인 경향을 확인한다(실바 54-55). <심즈> 시리즈는 아메리칸 드림과 미국 중산층 교외의 삶을 테마로 삼아 출발했다. “당신은 직업과 집을 가질 수 있다”로 끝나는 펀치라인은 플레이어의 심에게 주어지는 출발점 자체가 “가장 정신 나간 공상”의 영역에 속하게 된 유동성과 유연성의 시대를 가리키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당신’의 현실에서 불가능한 바를 게임 속에서 이룬다는 대리 충족의 논리는 우리가 라이프 시뮬레이션, 혹은 생활 시뮬레이션을 유희적으로 즐길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도 깔끔한 설명을 내놓는 것처럼 보인다. 도대체 왜 우리가 가상 세계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화장실을 청소하기를 감수하는가? 그게 더 나은 삶, 더 좋은 삶의 가능성이 확정적으로 열려 있는, 개연성 있는 허구적 세계 안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더 좋은 삶’에 대한 정의는 물론 개인화되고 다양화될 수 있겠다. 하지만 어떠한 정의에서나 “쓰레기를 치우고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이 그 좋은 삶의 가능성을 유지하는 목적 지향적인 행동으로 의미 지어지고, 반복할 만한 가치와 쾌감을 띄는 것은 동일할 것이다. ‘진짜 현실과는 다르게’ 말이다. 이는 아바타와 플레이어 사이의 강한 동일성을 근거로 손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제공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설명은 생활 시뮬레이션의 다양한 플레이 양상 중 한 가지 버전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여러 생활 시뮬레이션 중에서도 적어도 <심즈>는 아바타와 플레이어 사이의 강력한 동일시를 가능하게 만드는 장치들이 강제력을 갖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아바타를 가상 세계의 중심에 두고서 등 뒤를 바라보는 시점으로, 혹은 아바타의 1인칭 시점으로 주변을 관망하도록 강제 받지 않는다. 하나의 아바타만 조작하는 플레이가 장려되는 것도 아니다. <심즈 4>에서 플레이어는 자신의 시점에 일치된 카메라로 심들이 자리한 공간을 원형 극장처럼 360도 돌려가며 관망할 수 있다. 플레이어는 정밀 카메라를 조작하는 듯한 감각으로 한 아바타의 움직임을 쫓거나 상을 확대하거나 축소할 수도 있고, 하나의 심, 하나의 가정만을 조작하지 않고 다른 동네에 사는 여러 가정을 돌아가며 조작할 수도 있다. 거주지만이 아니라 심들이 방문할 수 있는 술집, 클럽, 헬스장을 지을 수 있고, 심의 생활을 플레이하는 도중 잠시 시간을 정지시키고 인테리어를 바꿀 수도 있다. 이러한 가단성은 ‘놀이터’, ‘모래사장’ 혹은 ‘장난감’으로 시뮬레이션 게임을 다루는 논리를 뒷받침한다. ‘놀이터’의 은유는 게임 연구가 곤살로 프라스카(Gonzalo Frasca)의 논의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다. 시뮬레이션의 교육적이고 윤리적인 잠재력을 높게 평가했던 프라스카는 카이와와 피아제의 개념을 참조하며 “루두스”와 “파이디아”의 이원론을 비디오 게임에 도입한 걸로 잘 알려져 있다. 루두스적인 게임이 승리와 패배를 결정하는 규칙들을 가지며 “체스보드”, “운동장”, “축구장”과 같은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게임이라면, 파이디아적인 게임은 승리와 패배를 결정하는 규칙들을 갖지 않으며, 전통적으로 “놀이터”에서 펼쳐지는 역할극과 같은 놀이 행위다(프라스카 11). 그는 ‘루두스’의 위상이 프로그래밍되어 있지 않고 “파이디아”의 위상이 최종 심급이며, “괴물과 트롤”이 아니라 “우리와 매우 친숙한 실제 사람”을, 그리고 그들이 삶을 관리해가는 체계를 모델화했다는 점에서 <심즈>가 “사회적, 정치적, 철학적 이슈들”을 다루기에 적합한 플랫폼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프라스카, 46). 프라스카는 “루두스”의 차원이 존재하지 않는 “파이디아”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의 동기, 이 특정한 유형의 게임을 함으로부터 얻어지는 쾌와 재미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는 크게 관심이 없었던 걸로 보인다. 하지만 플레이어의 조작을 촉구하고 전제하는 매체의 잠재력을 논의할 때, 게임 디자인에 호응하거나 그것을 ‘오용’하는 조작의 동인, 곧 관습적 경로를 따라가면서 변주하는 쾌감을 살피지 않는 건 반쪽짜리 논의가 될 테다. ‘놀이터’의 은유를 통해 말하자면, 젠더화된 소꿉놀이, 아름다운 모래성을 짓고 파괴하는 손짓, 이파리와 자갈 따위를 배치해 개미의 진로를 방해하는 감각 등이 어떻게 서로를 보완하거나 강화하며 재미를 만들어내는지 질문하는 게 역시 필요한 것이다. 오히려 프라스카가 시뮬레이션의 급진적 가능성이 충분히 개화되지 못한 형태로서, 혹은 보편화될 수 없는 형태로서 평가했던 플레이 유형들로부터 우리는 <심즈> 시리즈와 같은 생활 시뮬레이션이 선사하는 재미에 대한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표적으로 <심즈>의 ‘포토앨범’ 기능에 대한 프라스카의 언급을 살펴보자. 심들의 생에서 특별한 순간들을 스냅사진으로 찍을 수 있도록 하는 이 기능을 플레이어는 디자인된 의도를 넘어서 “그들의 심들이 주연하는 스토리들을 창조”하려고 활용한다(프라스카, 228). 플레이어들은 “이미지로 표현되어 있는 어떤 상황을 창조하기 위해” 게임을 플레이하고 “텍스트적인 주석”을 덧붙이는 등의 편집을 가미함으로써 “스토리보드”를 구성하고 이를 온라인상에서 공유한다(프라스카 ,81). 심들의 자율성으로 인해서, 가족 앨범 스토리의 시퀀스에 추가할 만한 제대로 된 스냅사진을 찍는 건 많은 시간과 정성이 소요될 수 있는 작업이다. 하지만 <심즈>의 많은 플레이어들은 이러한 시간과 정성을 감수하고 스냅사진 기능을 활용해 대체로 “통속적이거나 멜로드라마적”인 “선형적인 내레이션”을 만들어냈다(프라스카, 81). 게임이 고정된 내러티브로 환원되는 걸 경계했던 프라스카는 “만화를 창조하기 위해 시뮬레이션을 활용하는 것은 사진을 찍기 위해 무비카메라를 활용하는 것과 같다”고 평하며 좀 더 친숙한 영상과 애니메이션의 문법적 관습에 기댄 이러한 실천들이 시뮬레이션이란 매체의 가능성이 완벽하게 표현된 형태는 아니라고 본다(Frasca 82). 하지만 프라스카의 이러한 부인 속에서 플레이어들이 많은 불편을 감수하고서도 ‘포토앨범’ 기능을 활용하는 강력한 동인이 시뮬레이션된 세계로부터 선형적인 이야기를 함축한 시퀀스를 발생시키고자 하는 욕구이며 “사진을 찍기 위해서 무비카메라를 활용”하는 비효율적인 행위에서 오는 쾌락임이 드러난다. 프라스카의 논의는 주로 심즈 프랜차이즈의 첫 판본을 다루고 있다. 시리즈는 UI와 그래픽, AI의 정교함 상에서 기술적으로 발전했고, ‘포토 앨범’의 기능 역시 정교화되었다. ‘심즈 일지’로 불리는 스토리텔링 형태도 이에 발맞춰 복잡성을 획득했다. 게임 내에서 제공하는 스크린샷 기능, 모더(modder)들이 배포하는 특수한 조명 효과, 포토샵 보정 기능 등을 활용하여, 플레이어들은 심들의 반복되면서도 변화하는 일상을 기록하고 그것을 시퀀스를 가지도록 배치한다. ‘일지’라는 규정은 개인화된 경험에 방점을 찍는다. 하지만 대체로 ‘심즈 일지’는 ‘나’를 주어로 하지 않고 심에게 부여된 가상의 이름을 주어로, 즉 3인칭으로 서술된다. 플레이어들은 아바타에 동일시되기보다는 카메라의 줌인과 줌아웃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카메라 감독과 같은 위치에 선다. ‘심즈 일지’의 제작 과정은 특정 시퀀스나 내러티브를 환기하는 요소들을 정교하게 배치하고 주변 환경을 조성하며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갖고서 움직이는 심들을 수고스럽게 조작함으로써 이뤄진다. 하지만 ‘심즈 일지’를 만드는 유저들은 이러한 조작 과정을 최종적인 내러티브 산물로부터 세심하게 삭제한다. <심즈 4>의 경우 ‘심즈 일지’를 더욱 손쉽게 만들 수 있도록 게임 내에 스크린샷과 녹화 기능을 단축키로 제공한다. 플레이어는 심들을 기동하고 조작하는 버튼 인터페이스와 ‘욕구’와 관련된 UI를 편리하게 배제한 채로 스크린샷을 저장할 수 있다. 저장된 스크린샷의 개연성 있는 배치와 텍스트 주석을 통해서 ‘일지’는 심들에게 개인화된 역사성을 부여한다는 환상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환상을 지탱하는 강력한 근거인 기록물은 버튼을 누른 뒤 다시 하위 버튼을 누르는 식의 마우스 연타, 특정 행동을 보기 위해 필요한 시간의 계측, 원하는 상황을 연출해 내도록 돕는 모드의 다운로드 등 게임 내외적으로 이뤄지는 복잡한 조작을 거쳐 연출되지만, 이러한 조작 절차는 자주 비가시화된다. ‘심즈 일지’로부터 우리는 자신의 시뮬레이션에 대한 조작 과정이 전면화되기를 원치 않는 플레이어들의 소망을 읽을 수 있다. 인터페이스를 배제하는 스크린샷의 기능은 ‘포토앨범’ 스토리텔링에 이미 잠재되어 있던 수요에 게임 디자인이 반응한 결과다. 게임사에서 새로운 DLC를 예고할 때 보이는 티저 이미지 등에서도 역시 조작 인터페이스는 드러나지 않게 처리된다. <심즈> 시리즈의 트레일러들은 마우스와 키보드 클릭이 필요치 않은, 일일 연속극의 예고편을 차라리 연상시킨다. ‘심즈 일지’를 작성하는 플레이어에게 있어서, 상호작용하며 시뮬레이션을 조정해 나가는 차원의 인터페이스는 기록 과정에서 전면화되지 않기를 넘어서 은폐되어야 한다. 시뮬레이션된 세계가 띄는 허구적인 리얼리티는, 이 시뮬레이션의 전제 조건들과 설정들을 조작하는 인터페이스의 은폐를 통해서 추체험된다. * The Sims 4 그로잉 투게더: 공식 게임플레이 트레일러, The Sims 제공 은폐를 실천하는 다양한 전략들 중 흥미로웠던 심즈 일지의 양태는 심들이 하는 대화를 상상적으로 구성하고 스크린샷의 하단에 ‘자막’을 달아서 표시하는 형식이다. 심들은 옹알이처럼 들리기도 하는 “심리시(Simlish)”라는 가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걸로 가정되어 있는데, 자막 형식의 사용은 마치 실재하는 언어를 플레이어의 모국어로 번역해낸 것과 같은 효과를 준다. 이 같은 편집은 현실과 가상 사이의 경계를 없는 체하는 기만과는 다르다. 오히려 자신만의 개성을 담은 은폐의 전략들을 활용하면서, 플레이어는 ‘현실’에 대한 편집자이자 촬영 감독의 자의식을 표현해낸다. 게임 커뮤니티와 게임 내 상호작용을 포괄하여, 게임 내외적으로 일어나는 이러한 자의식의 표현이 <심즈> 시리즈가 전하는 쾌의 중핵을 이룬다. 앞서 언급한 ‘모더’들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 <심즈> 시리즈는 모딩 커뮤니티와 함께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프랜차이즈다. 나는 <심즈 4>를 정확히 밝히기 민망스러울 정도로 긴 시간 동안 플레이했는데, 이는 <심즈 4>가 시리즈 중 가장 진보했거나 흥미로운 판본이기 때문은 아니다. 심즈 유저들과 모더의 커뮤니티가 현시점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성화되어 있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타냐 시보넨(Tanja Sihvonen)의 정의를 빌려오자면, 모딩(Modding)은 “공식적으로 발매된 컴퓨터 게임, 그 게임의 그래픽과 소리, 캐릭터를 사용자 정의 콘텐츠를 통해서 확장하고 변경하는 다양한 방식”을 가리키는데, 이는 “새로운 게임 메카닉, 새로운 게임 플레이 레벨”을 창조하는 것까지 의미할 수 있다(Sihvonen 6). 모더들은 게임 플레이 상의 편의성과 상호작용의 가능성을 증대하기 위하여 게임의 전제들을 뒤바꾸기도 하고, 심의 외양과 건축물을 꾸밀 수 있는 사용자 정의 콘텐츠(custom contents)를 창조한다. <심즈>의 모더 역시 모드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코딩 절차나 포토샵, 블랜더와 같은 툴의 사용을 전면화하기보다는 허구적 리얼리티의 편집자로서 자의식을 표현하는 다양한 전략들을 취한다. 그 전략들이 자주 분업화되고 전문화된 현대적 직업의 제스처를 취함으로써 표현된다는 건 특기할 만하다. 가령 게임 속 심에게 입힐 수 있는 새로운 복장들을 만들어내는 모더들은 심들의 옷을 갈아 끼우는 게임 플레이 기본 화면을 통해 자신의 옷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보단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입은 심을 촬영하고 편집해서 모델 화보와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 공유 페이지의 전면에 내세우는 게 일반적이다. Sentate와 같은 모더들은 그가 제작한 의상 모델링을 걸치고서 <심즈 4> 내에서 워킹을 하는 심 모델들이 출연하는 패션쇼 영상을 만들기도 한다. * Sentate Haute Couture 2022 Collection (Sims 4 CC), Sentate 제공 케이팝 아이돌과 한국의 예능인을 닮은 심을 창조하는 유튜버 심즈 아무나AMUNA 역시 그가 세심한 조작을 통해서 빚어낸 심을 ‘출연’시켜 뮤직비디오나 한국 예능의 문법을 패러디한 영상들을 만들어낸다. 한편, <심즈> 시리즈에서 깔끔하게 지워지거나 코믹하게 그려질 따름인 폭력과 비극적인 사고를 구현하는데 관심이 있는 모드 “Life is Tragedy”의 경우 과잉의 부정적 감정 표현을 선보이는 막장 멜로드라마의 제스처들과 컬트 영화의 황당무계한 폭력들을 함께 빌려온다. 모더의 홈페이지는 자신의 모드로 <심즈> 상에서 연출할 수 있게 되는 장면들을 슬래셔와 코미디에 각각 반 발자국씩 걸쳐 있는, B급 영화의 포스터를 연상시키는 섬네일을 통해 예고한다. <심즈> 시리즈의 모더와 플레이어 모두 다양한 층위에서 시뮬레이션의 전제들을 조작하고 변경하며 상상적으로 현실을 구성하는 이들이란 점에서 시뮬레이터로 느슨하게 묶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시뮬레이터가 화려하게 인테리어한 건축물을 만들고 그것을 다른 플레이어의 심이 생활해갈 수 있는 환경으로서 공유한다면, 또 다른 이는 하이틴 드라마나 컬트 무비의 PD이자 촬영 감독이 되고, 패션 디자이너와 뮤직비디오 촬영 감독으로서 의식을 표현하기도 한다. 시뮬레이터의 무궁무진하면서도 일관성 있는 자기표현은 <심즈> 시리즈의 폭넓은 자유도나 소위 ‘현실’과의 근접성을 뒷받침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시뮬레이터의 자기 상은 매스미디어의 문법들, 그 심상들과 함축을 조립하고 편집하는 소위 ‘창작자’의 분업화되고 전문화된 자의식을 대체로 참조한다. ‘자기 브랜딩’의 영역을 유희화하는 수준에까지 말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심즈> 시리즈가 무한한 자유도를 보장한다기보다는, 그것에 함축된 통속성, 현대적 분업과 ‘창조적’ 생활의 맥락이 시뮬레이터의 즐거움을 장르화하고 구체화하는 차원을 확인할 수 있다. 게임 텍스트, 게임의 이데올로기적 함축과 인터페이스와의 관계, 그리고 그 게임에 지배적인 장르들이 교차하여, 시뮬레이터의 자의식과 그것을 표현하는 즐거움이 띌 수 있는 형상들을 빚어낸다. 라이프 시뮬레이션 게임을 플레이하며 그 제반 조건을 변화시키고 조작하며 편집적인 현실을 생성하는 과정은 시뮬레이터 자신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이는 시뮬레이터의 자기 표현 과정 역시 게임적인 쾌가 펼쳐지는 장소이며, 게임 디자인과 플레이가 상호 개입하며 기틀을 잡아가는 구조물로서 식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참고 문헌 곤살로 프라스카.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비디오게임, 김경섭 역, 커뮤니케이션북스, 2008 제니퍼 M. 실바. 커밍 업 쇼트 : 불확실한 시대 성인이 되지 못하는 청년들 이야기, 문현아, 박준규 역, 리시올, 2020 Barnes, Adam. “The Sims Turns 20: Creator Will Wright Reflects on the Battle He Waged to Get One of the Best Games of All Time Made.” Gamesradar , GamesRadar+, 4 Feb. 2020, www.gamesradar.com/the-making-of-the-sims/ . Sihvonen, Tanja. Players Unleashed ! Modding the Sims and the Culture of Gaming . Amsterdam University Press, 2009.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성훈 문학을 전공했다. 게임과 만화를 좋아한다. <심즈 4>는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 게임인데 1500시간 정도 했고 그게 수치스러운지 웃긴 건지 헷갈린다. 뚜이부치란 필명으로도 활동한다.

  • [논문세미나] 미국에서의 비디오게임 비평에 대한 개론 - 2017 (원제: Videogame Criticism and Games in the Twenty-First Century)

    이번 논문 세미나는 비평 공모전 특집에 맞춰, 시카고 대학 영화 및 미디어학과와 영문학과 연구 교수인 패트릭 자고다(Patrick Jagoda)가 2017년에 쓴 "비디오게임 비평과 21세기 게임"을 다루고 있다. 자고다는 시카고 대학에서 웨스턴 게임 랩(Weston Game Lab)과 미디어 아츠 앤 디자인(Media Arts and Design, MADD) 학부 프로그램의 책임자로서, 시카고 대학을 북미 게임 연구의 중심지로 자리 잡게 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 Back [논문세미나] 미국에서의 비디오게임 비평에 대한 개론 - 2017 (원제: Videogame Criticism and Games in the Twenty-First Century) 20 GG Vol. 24. 10. 10. 이번 논문 세미나는 비평 공모전 특집에 맞춰, 시카고 대학 영화 및 미디어학과와 영문학과 연구 교수인 패트릭 자고다(Patrick Jagoda)가 2017년에 쓴 "비디오게임 비평과 21세기 게임"을 다루고 있다. 자고다는 시카고 대학에서 웨스턴 게임 랩(Weston Game Lab)과 미디어 아츠 앤 디자인(Media Arts and Design, MADD) 학부 프로그램의 책임자로서, 시카고 대학을 북미 게임 연구의 중심지로 자리 잡게 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자고다에 따르면, 2017년에 '게임이 예술이다'라는 주장은 이미 너무도 자명해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식상한 주제다. 그래서 그는 게임 비평의 필요성을 이론적으로 논증하기보다는, 2017년 당시 미국에서 존재했던 다양한 실험적 게임과 그 비평 흐름을 추적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중요한 사건들과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게임들을 기록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에 따라 나도 자고다가 언급한 게임들과 비평적 작업을 최대한 빠짐없이 정리하는 방향을 택했다. 수많은 설명을 듣는 것보다, 여기에 언급된 게임들을 직접 찾아 살펴보는 것이 게이머와 게임 비평가들에게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물론, 미국의 게임이나 비평을 이상적인 모델로 삼을 필요는 없다. 또한 이 글은 7년 전에 쓰여진 것이므로, 최신 경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에서 게임 비평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이 글이 실린 게임 제너레이션 20호를 참고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게임계의 변화 자고다는 2007년을 인디 게임, 아트 게임, 시리어스 게임, DIY 게임 제작, 캐주얼 게임과 같은 다양한 게임들이 눈에 띄게 성장한 시점으로 평가한다. 동시에, "게이미피케이션"이라는 게임적 사고방식이 사회적 도구로서 확장된 중요한 시기로 진단한다. 그가 언급하는 주요 흐름은 다음과 같다: 캐주얼 게임: 2006년 닌텐도 Wii를 시작으로 대중을 겨냥한 게임들이 더욱 활발히 제작되기 시작했다. [예: 위 스포츠 ( Wii Sports , 2006), 타운으로 놀러가요 동물의 숲 ( Animal Crossing: City Folk, 2008)] 작가주의적 게임 디자이너들의 등장: 2007년에서 2009년 사이, 조나단 블로우(Jonathan Blow), 메리 플라나간(Mary Flanagan), 제이슨 로흐러(Jason Rohrer)와 같은 디자이너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예: 페세지 ( Passage, 2007), 브레이드 ( Braid, 2008), 플라워 ( Flower, 2009)] 주류 게임사의 변화: 같은 시기, 더욱 복잡한 내러티브와 다층적인 캐릭터를 도입한 게임들이 출시되었다. [예: 바이오쇼크 ( BioShock , 2007), 매스 이펙트 ( Mass Effect , 2007), 폴아웃 3 (Fallout 3 , 2008)] 예술적 기반: 게임에 대한 예술적 논의가 활발해졌고, 예술 분야에서 정부의 지원도 확대되었다. [예: 스미소니언 비디오 게임 전시회, MoMA의 비디오 게임 컬렉션] 기술 발전: Unity, Twine과 같은 제작 도구와 Steam, PlayStation Network, Xbox Live 같은 온라인 배포 플랫폼이 확산되었다. 제도적 발전: 독립 및 아트 게임 컨퍼런스들이 성장했다. [예: Indiecade, Games for Change Festival, Independent Games Festival] 이와 같은 다양한 발전은 문학 비평의 방법론 역사와 유사한 흐름을 반영하면서, 게임 비평 분야에도 지속적인 변화와 성장을 가져왔다. 예를 들면: 역사적 연구: 켄트의 2001년 연구 (Kent, Steven L. The Ultimate History of Video Games: From Pong to Pokémon and Beyond: the Story Behind the Craze That Touched Our Lives and Changed the World. Roseville, CA: Prima Pub, 2001.) 형식주의적 연구: 머레이의 1997년 연구 ( Murray, Janet. Hamlet on the Holodeck: The Future of Narrative in Cyberspace. New York: Free P, 1997.) 현상학적 연구: 수드노의 1983년 연구 (Sudnow, David. Pilgrim in the Microworld. New York: Warner Books, 1983.) 플레이어와 게임 캐릭터와의 동일시: 쇼의 2014년 연구 (Shaw, Adrienne. Gaming at the Edge: Sexuality and Gender at the Margins of Gamer Culture. Minneapolis: U of Minnesota P, 2014.) 놀이와 미학 이론: 업튼의 2015년 연구 (Upton, Brian. The Aesthetic of Play. Cambridge, MA: MIT P, 2015.) 게임에서의 감정에 대한 역할: 이스비스터의 2016년 연구 (Isbister, Katherine. How Games Move Us: Emotion by Design. Cambridge, MA: MIT P, 2016.) 네트워크 비디오 게임에서의 정동: 자고다의 2016년 연구 (Jagoda, Patrick. Network Aesthetics. Chicago: U of Chicago P, 2016.) 디자인과 비평의 교차점 : 슈리에의 2016년 연구 (Schrier, Karen. Knowledge Games: How Playing Games Can Solve Problems, Create Insight, and Make Change. Baltimore: Johns Hopkins UP, 2016.) 게임이란 무엇인가? 자고다는 비디오 게임이 PC, 콘솔, 모바일, AR 등 여러 플랫폼과 장르에서 계속 성장하고 변화하면서, 무엇을 비디오 게임이라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해졌다고 지적한다. 단적인 예로, 크리스틴 러브(Christine Love)의 아날로그 ( Analogue: A Hate Story , 2012)를 들 수 있다. 이 게임에 대한 대중적 반응을 보면, 과거 체스나 바둑과 같은 추상 전략 게임에만 국한되었던 '게임'이라는 범주가, 이제는 멀티미디어와 트랜스미디어 작품에까지 마케팅 용어로 확장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디오 게임의 정의에 대한 이러한 모호함은 아날로그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으나, 조이 퀸(Zoe Quinn)이 패트릭 린제이(Patrick Lindsey)와 아이작 생클러(Isaac Schankler)와 협업하여 만든 디프레션 퀘스트 ( Depression Quest, 2013)에서는 큰 논란을 일으켰다. 형식과 장르의 관점에서 디프레션 퀘스트 는 대화형 내러티브와 롤플레잉 게임의 융합으로 볼 수 있다. 이 게임은 주로 텍스트 기반의 내러티브로 구성되어 있지만, 게임적 요소인 의사 결정과 정기적인 피드백 시스템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프레션 퀘스트 를 비난하는 이들이 자주 제기했던 불만 중 하나는 이 게임이 '게임이 아니다'라는 주장이었다. 디프레션 퀘스트 를 둘러싼 논쟁은 결국 ‘진정한 게이머’와 비디오 게임의 정의를 누가 소유할 것인가에 대한 싸움이었다. 자고다는 디프레션 퀘스트 가 게임이 아니라는 비판이 형식주의적 논의를 방패로 삼아, 게이머 문화의 경계를 고착화하고 외부인의 침범으로부터 방어하려는 보수적 문화적 충동을 은폐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외부인'에는 PC주의를 대표하는 여성과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비디오 게임의 주류적 예시와 깔끔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는 진지한 예술적 게임이나 DIY 게임 제작자들도 포함된다. 실제로, 이러한 실험적 형식에 자주 사용된 트와인(Twine) 엔진을 활용한 디자이너들 중 다수는 백인, 남성, 이성애자 엔지니어가 아닌, 조이 퀸(Zoe Quinn), 안나 앤트로피(Anna Anthropy), 메릿 코파스(Merritt Kopas), 폴펜틴(Porpentine)과 같은 퀴어 및 트랜스 여성들이었다. 게임이라는 범주를 넘어 게임의 정의가 확장되면서, 오락적 기능보다는 교육적 효과를 강조하는 새로운 유형의 게임이 등장하거나, 게임의 기능을 다른 분야에 적용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리어스 게임 시리어스 게임은 1970년 클라크 앱트(Clark Abt)가 제안한 개념으로, "분명하고 신중하게 고안된 교육적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오락을 주 목적으로 하지 않는" 게임을 뜻한다. 2004년에는 사회적 참여를 장려하는 게임의 제작과 배포를 지원하는 게임즈 포 체인지 (Games for Change) 재단이 설립되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시리어스 게임들이 등장했다. 다르푸르 이즈 다잉 ( Darfur Is Dying , 2006): 액션과 경영 시뮬레이션을 결합해, 다르푸르 전쟁과 난민 위기를 다루는 게임. 맥도날드 비디오게임 ( McDonald's Videogame , 2006)과 오일 갓 ( Oil God , 2006): 기업의 탐욕을 패러디한 시뮬레이션 게임. 카트 라이프 ( Cart Life , 2011)와 스펜트 ( SPENT , 2011): 미국의 저취업과 빈곤 문제를 다룬 게임. 페이트 오브 더 월드 ( Fate of the World , 2011)와 바이오하모니어스 ( Bioharmonious , 2013): 기후 변화와 환경 균형 문제를 다룬다. 게이미피케이션: 전통적으로 게임이 아닌 활동에 게임 메커니즘을 사용하여 소비자 행동, 직원 교육, 건강 및 운동 습관, 교육 및 기타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비디오 게임 형태의 매체가 일상 생활의 다양한 측면으로 스며들어 학습을 장려함 [예: 칸 아카데미 (Khan Academy, 2006), F-12 (2013, DirecTV의 직원 교육 게임)] 전문가와 아마추어 모두의 기여를 요청하여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고자 하는 시도들 [예: 폴딧 ( Foldit , 2008), EteRNA (2010)] 개인적인 서사, 혹은 특정 인물의 전기를 다루는 게임들: 메리 플래너건(Mary Flanagan)의 도메스틱 (domestic , 2003): 인칭 슈팅 엔진을 사용하여 어린 시절의 집 화재에 대한 기억을 되새긴다. 안나 앤트로피(Anna Anthropy)의 오마이갓 아 유 올라이트? ( ohmygod are you alright? , 2015): 차에 치인 경험으로 시작하여, 적절한 재정적 자원이 없는 트랜스 여성으로서 병원과 의료를 탐색하는 어려움을 탐구한다. 피터 브린슨(Peter Brinson)과 쿠로쉬 발라네자드(Kurosh ValaNejad)의 더 캣 앤 더 쿠 ( The Cat and the Coup, 2011): 민주적 수단으로 선출된 최초의 이란 총리 모하마드 모사데그를 무너뜨리기 위한 1953년 CIA 쿠데타를 다룬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한다. 아트 게임과 게임 아트: “아트 게임” 은 제이슨 로흐러(Jason Rohrer)가 2005년에 제안한 개념으로, 매체의 고유한 속성을 사용하여 예술적, 철학적 문제를 탐구하는 게임을 말한다. [예: 조나단 블로우(Jonathan Blow)의 브레이드 ( Braid , 2008)] 반대로, "게임 아트" 는 존 샤프(John Sharp)가 제시한 용어로, 게임을 이용해 만든 예술 작품을 의미하며, 게임에서 "예술"로 초점을 옮긴다. [예: 코리 아칸젤(Cory Arcangel)의 슈퍼 마리오 클라우즈 ( Super Mario Clouds , 2002)] 게임 비평의 경향 비디오 게임은 이제 단순한 오락을 넘어, 일상 생활의 일부이자, 대중 매체로서 사회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개인적이거나 예술적인 의미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다. 이러한 비디오 게임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반영하기 위해, 비디오 게임 비평은 다양한 학제 간 방법을 통해 접근하고 있다. 주요 경향을 살펴보면... 게임 미학과 형태 존 샤프의 2015년 연구 (Sharp, John. Works of Game: On the Aesthetics of Games and Art. Cambridge, MA: MIT P, 2015.) 샤프는 사물이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를 암시하는 특성을 설명하는 제임스 깁슨의 "어포던스" 개념을 활용한다. 샤프는 조디(Jodi)의 SOD (2002)와 브렌다 로메로(Brenda Romero)의 씨오칸 레앗 ( Sîochân Leat, 2009) 같은 아방가르드 게임에서 개념적, 형식적, 경험적 어포던스를 분석하며, 그래픽, 서사, 메커닉, 규칙에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분석은 형식주의적이지만, 게임 공동체에 대한 이해도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 샤프는 게임 공동체가 체스를 하나의 게임으로 보는 반면, 예술 공동체는 체스를 예술적 표현의 재료로 보는 관점을 대조하며, 미술사와 시각 디자인의 전통에 기반하여 분석한다. 비디오 게임의 문화와 역사 칼리 코큐렉의 2015년 연구 (Kocurek, Carly A. Coin-Operated Americans: Rebooting Boyhood at the Video Game Arcade. Minneapolis: U of Minnesota P, 2015.) 코큐렉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초 비디오 게임과 오락실이 미국 남성성을 어떻게 형성했는지 탐구한다. 코큐렉은 이러한 게임들이 젊은 남성들에게 컴퓨터 중심의 화이트칼라 서비스 경제와 규제가 완화된 시장에서 노동자이자 투자자로서의 역할을 준비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그녀의 연구는 미국학과 문화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게임 자체보다는 오락실 공간, 사진, 기타 역사적 문서에 초점을 맞춘다. 이같은 연구는 게임 문화 연구라는 성장하는 학문 분야에 속하며, 비슷하게는 Twitch TV에서 특정 플레이어를 시청하는 커뮤니티와 e스포츠 관객들에 대한 연구도 유망한 연구 분야라고 할 수 있다. 디자인 문학 비평과 창작 글쓰기 사이에 큰 격차가 있는 영문학과 같은 학문 분과와 달리, 게임 연구는 이론과 실천을 자주 통합한다. 케이티 살렌(Katie Salen)과 에릭 짐머만(Eric Zimmerman)의 2003년 저서는 형식적인 이론과 실용적인 디자인 조언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Salen, Katie and Eric Zimmerman. Rules of Play: Game Design Fundamentals. Cambridge, MA: MIT P, 2003.) 슈라이어(Schrier, Karen)의 2016년 저서도 학문 분과 간의 경계를 넘는다. 슈라이어는 심리학, 교육학, 비판 이론,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식을 끌어와, 현실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임을 효과적으로 디자인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Schrier, Karen. Knowledge Games: How Playing Games Can Solve Problems, Create Insight, and Make Change. Baltimore: Johns Hopkins UP, 2016.) 기타 철학과 비판 이론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비디오 게임을 사용하는 연구 맥켄지 워크의 2007년 저서 (Wark, McKenzie. Gamer Theory. Cambridge, Mass: Harvard UP, 2007.) 디지털 게임의 소프트웨어와 플랫폼을 탐구하는 연구 몬포트의 2009년 저서 (Montfort, Nick and Ian Bogost. Racing the Beam: The Atari Video Computer System. Cambridge, MA: MIT P, 2009) 실제 플레이어의 행동을 민족지학적, 질적 방법론을 통해 연구 쇼의 2014년 연구 (Shaw, Adrienne. Gaming at the Edge: Sexuality and Gender at the Margins of Gamer Culture. Minneapolis: U of Minnesota P, 2014) 나아가, 21세기 초반 게임 연구에 중요한 기여자 중 일부인 이안 보고스트(Ian Bogost)와 메리 플래나간(Mary Flanagan)은 게임의 형식, 문화, 역사에 주목하면서도 성공적인 게임 디자이너로서의 경력을 쌓아가고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김지윤 연세대학교에서 언론홍보영상학과 인류학을 공부하고,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했다. 부족한 실력으로 게임을 하다가 게임의 신체적 퍼포먼스에 관심을 갖게 되어 게임 연구를 시작했다. 여성 게이머의 게임 플레이 경험을 분석한 석사학위 논문을 써서 2020년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우수 학위논문상을 받았다. 현재 미국 시카고대학 영화·미디어학과 (Cinema and Media Studies) 박사 과정에서 게임문화를 전공하고 있다.

  • 15년 만에 다시 돌아온 <어이쿠, 왕자님>, 게 섯거라 이놈아!

    버틀러는 이러한 패러디적인 창조성을 원본이라는 것 자체도 원래 본질적으로 원본인 것이 아니라 원본이라고 가정되는 이상적 자질을 모방을 통해 보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원본이 동시에 모방본이라는 점에서 원본과 모방본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든다. 모방본도 원본도 원본의 상상적 특성들을 모방하는 것이고, 오히려 모방본이 원본의 모방적 자질을 드러내주는 것이라면 이제 오히려 모방본이 원본에 선행한다는 역설적인 생각까지 가능해진다. 이는 원본이 가진 창조성의 가치와 패러디의 모방본이 가진 창조성의 가치가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오히려 패러디 요소를 내재하고 있는 모방본이 원본에 선행하여 더 높은 창조적 위치를 점유한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 Back 15년 만에 다시 돌아온 <어이쿠, 왕자님>, 게 섯거라 이놈아! 10 GG Vol. 23. 2. 10. 〈프린세스메이커〉라는 게임을 아는가? PC용 게임으로 시작하여 모바일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사랑받아 온 이 게임은 1991년 최초로 ‘육성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를 개척해낸 게임이다. 이 새로운 장르의 주인공은 그야말로 귀엽고 밝은 ‘소녀’다. 게임을 시작하면 우리는 자신의 딸을 다양한 방식으로 육성시킬 수 있다. 물론 딸이 ‘프린세스’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게임이 시작되면 우리는 우리가 짜놓은 스케줄을 따라 움직이고, ‘아버지’라고 부르며 밝게 웃어주는 딸의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아마도 이후 〈프린세스메이커〉 시리즈가 연이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게임 플레이를 통해 발생하는 딸과의 다양한 정서적 감응 때문이 아니었을까. 게이머들은 플레이를 통해 딸과 대화를 나누기도, 바캉스를 즐기기도 하며 8년동안 자라나는 딸에게 애정, 슬픔 혹은 (내가 원하는 엔딩을 이루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분노 등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다양한 감정의 발생은 게임의 이야기 진행 방식이 영화나 드라마와는 달리 게이머에게 일정한 역할을 부여하면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게이머는 적어도 마우스를 클릭하는 등의 아주 작은 행동을 통해, 게임의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는 ‘권위’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권위는 우리가 행위하고 조작하는 대상에 대한 ‘애정’이나 ‘친밀감’과 같은 정서적 교류를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기제가 된다. 그러나 나는 이 게임이 재밌으면서도 어딘가 불편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게임 안으로 들어간 게이머인 ‘나’는 내가 사회적으로 주체화한 성별과는 무관하게 딸이 ‘아버지’라 부르는 걸 묵과해야했던 경험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프린세스메이커〉는 기본적으로 ‘아버지가 딸을 키우는’ 게임이다. 내러티브상으로는 여성 게이머를 고려하지 않은 ‘남성적’ 게임이었다는 의미이다. 여성 게이머는 게임 밖에서는 여성이지만 게임 안에서는 ‘딸을 잘 키워 왕자를 만나도록 애쓰는 아버지’로 남아야 하는 것이〈프린세스메이커〉를 플레이하는 여성 게이머의 역설이다. 심지어 〈프린세스메이커〉의 엔딩 중 하나엔 그 딸이 아버지와 결혼을 원해 아내가 되기도 한다. 아니 내 딸이 나(시스젠더 여성+남성애자)와 결혼을 원하다니. 이 얼마나 이성애-전복적인 상황인가. 지금 생각해보면 〈프린세스메이커〉를 통해 게임이라는 콘텐츠를 접했던 많은 여성들이 이미 이 당시 탈이성애를 경험하고도 남았을 상황이다. 이뿐만 아니라 그 딸이 자라면서 다양한 경험을 시도하는 것(다이어트를 하거나,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풍류환을 먹고 가슴이 커진다던가 하는)이 나 자신을 대상화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고, 결국 나는 이 시리즈가 묘하게 불편해졌다. 그렇게 10대가 가고 20대에 접어든 나는 2007년 우리나라의 몇몇 아마추어 여성 게이머가 〈프린세스메이커〉의 성역할을 전도시킨 일종의 패러디 게임 〈어이쿠 왕자님∼호감가는 모양새〉 (이후 〈어이쿠 왕자님〉)를 제작하고 있다는 소식을 블로그를 통해 접했다. 이 게임은 딸이 아닌 아들을 키우는 형식이고, 게임 속 주체를 아버지/어머니 중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어이쿠 왕자님〉은 단순히 〈프린세스메이커〉 패러디로서의 특성만 갖는 것이 아니었다. 이 게임은 인디문화의 속성을 공유하는 게임인 동시에 남성 동성애물을 표방한다는 의미의 동인(同人)게임 1) 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나는 이 게임이 PC 게임으로 발매되고 드라마시디까지 제작되는 걸 보면서 굉장한 희열을 느꼈다. 그리고는 이를 플레이하는 여성 게이머들을 찾기 시작해 논문을 썼다. 그게 무려 15년 전이다. 그런 〈어이쿠 왕자님〉이 2023년 크라우드펀딩으로 다시 돌아왔다. 심지어 펀딩율 1200%를 달성하고, 오디오 드라마까지 풀로 착장한 채. 〈어이쿠 왕자님〉은 단순한 인디/BL 게임으로 호명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 〈어이쿠 왕자님〉과 〈프린세스메이커〉의 첫 번째 차이점은 프린세스메이커 시리즈의 커다란 틀로써 작용하고 있었던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아버지 혹은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로 변용하여 제작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여성 게이머의 젠더 트러블 요소로 작용했던 '아버지 되기'에서 선택적 사항을 더한 것으로 '아버지 혹은 어머니'되기를 통해 여성 게이머로서 느낄 수 있었던 젠더 트러블적 요소를 제거하여 여성 게이머의 주체성을 부각한 부분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어이쿠 왕자님〉은 〈프린세스메이커〉가 가진 남성적 요소들을 제거하여 원작과는 다른 의미를 게이머에게 전달한다. 여기서 남성적 요소들이란 남성 게이머가 〈프린세스메이커〉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 요소, 즉 여성을 보는 대상으로 하며 남성의 시각을 주체로 하여 얻는 쾌락적 요소를 말한다. 〈어이쿠 왕자님〉은 〈프린세스메이커〉를 〈프린세스메이커〉로 전복시킴으로써 여성 게이머들에게 보는 대상을 남성으로 치환시키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는 원작이 가진 의미를 완전히 전복한 것으로 남성을 위한 게임에서 여성을 위한 게임으로 의미화하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프린세스메이커〉와 〈어이쿠 왕자님〉이 지닌 가장 큰 차이점은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차이점을 복합적으로 변용하여 이성애적인 젠더체계의 틀을 벗어나 남성 성장서사를 남성 동성성애 서사로 패러디 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어이쿠 왕자님〉은 부성애와 모성애가 선택적으로 존재하는 게임적 장치와 더불어 남성동성성애의 서사로 패러디함으로써 당시 소수였던 여성 게이머들뿐만 아니라 이를 플레이하는 게이머 모두에게 원본과 원본을 넘어서는 패러디의 의미를 플레이를 통해 경험하게 했다. 인디게임이 일반적으로 기존의 지배적인 문화, 주류문화의 흐름으로부터 벗어난 게임을 말한다는 점에서 〈어이쿠 왕자님〉 인디게임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인디게임의 생성 동기와 존립 근거가 새로움에서 찾을 수 있다면 〈어이쿠 왕자님〉이 가지고 있는 새로움-창조성은 단순히 개인의 주관적인 기회가 아니라 사회구조와 그 구조내의 행위자와의 충돌, 그리고 그러한 충돌 과정에서 정체성을 생성하고 새로운 생활양식의 변화와 사회적 관계를 구축하면서 기존 질서에 대한 대안적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어이쿠 왕자님〉을 플레이하는 여성 게이머들은 기존의 사이버 공간에서 이미 원본을 동성성애화하여 패러디한 2차 콘텐츠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행위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있던 세대였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기존의 텍스트 부분 및 내용이나 형식을 변형하고 확대하며 생략하는 과정을 통해 그들의 콘텐츠을 생산하고 유통하는데 익숙했던 것이다. 특히 게임이라는 영역은 여전히 생산이 제한된 영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이버 공간의 지속적인 생산경험을 통해 여성 게이머들은 자신이 게임 유통과 생산 과정에 진입이 가능하다는 생산자적 자율성과 창조성을 획득하여 〈어이쿠 왕자님〉이라는 게임을 생산해낸 것이다. '인디 집단'자체가 수년간 축적해둔 일상적 생산적 주체의 경험은 고착화된 구조나, 단계가 아닌 잠재적으로 단순한 수용자, 게이머가 될 수 있으며 동시에 진화를 통한 창조적 생산자가 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게 한다. 특히 게임이라는 매체는 실제와 허구 사이의 경계가 붕괴되는 공간을 만들어 낸다. 게임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새롭게 자기표현을 찾는 능동적 생산자를 관객으로부터 유도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몰입하고 플레이하는 것에 큰 도움을 준다. 게임이라는 공간에서 실제 본인의 성별과 상관없이 스스로 새로운 자기 정체성을 만들고, 억제된 욕구 표현의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만들며 주체를 분산시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여성 게이머들은 자신들의 젠더를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생물학적 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여성들은 앞서 논의한 다양하고 새로운 주체를 경험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동시에 〈어이쿠 왕자님〉에는 풍자와 익살적인 요소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게임의 배경은 시공간이 모호한 중세 판타지 풍의 바이케 왕국이다. 바이케 왕국을 거꾸로 읽으면 게이바다. 또한 바이케 왕국에 내려오는 전통춤으로는 바닥에 꽂힌 길다란 봉 주위를 돌며 추는 매우 관능적인 춤이라 할 수 있는 'bar dance'(봉춤)이 있으며, 정기적으로 국가에서 주최하는 경연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현재 왕위는 노므헨 국왕이 갖고 있으며, 왕족 '맨슨(이명박)'이 등장하여 해저도로를 건설하자고 굳건히 이야기 하는 이벤트는 당대의 정치상황을 절묘하게 패러디 하여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나 〈어이쿠 왕자님〉의 패러디 요소는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기존의 패러디의 의미를 더욱 확장시킨다. 패러디의 성립조건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전복과 치환, 다른 의미 담기를 통해서 단순하게 익살과 풍자의 모방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어이쿠 왕자님〉은 기존 텍스트의 담론적 권위나 지위에 의존하여 기존 텍스트의 의미체계와는 전혀 다른 의미체계를 지니는 새로운 텍스트를 생산한다. 패러디 기법인 '낯설게 하기'는 기존 텍스트의 병치, 재구성, 해체를 이용한 담론효과를 산출하는 것이다. 이는 보이는 대상에서의 보는 주체로의 여성, 이성애중심의 젠더체계의 전복이라는 이중적 패러디를 생산하면서 더욱 심화된다. 이러한 이중적 패러디는 모방의 한 형식이지만 동시에 패러디된 작품을 희생시키지 않는 다는 점에서, 그리고 '차이'의 창조성을 생성한다는 점에서, 유희적이고 해체적이면서 동시에 창조적이라도 말할 수 있다. 버틀러는 이러한 패러디적인 창조성을 원본이라는 것 자체도 원래 본질적으로 원본인 것이 아니라 원본이라고 가정되는 이상적 자질을 모방을 통해 보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원본이 동시에 모방본이라는 점에서 원본과 모방본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든다. 모방본도 원본도 원본의 상상적 특성들을 모방하는 것이고, 오히려 모방본이 원본의 모방적 자질을 드러내주는 것이라면 이제 오히려 모방본이 원본에 선행한다는 역설적인 생각까지 가능해진다. 이는 원본이 가진 창조성의 가치와 패러디의 모방본이 가진 창조성의 가치가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오히려 패러디 요소를 내재하고 있는 모방본이 원본에 선행하여 더 높은 창조적 위치를 점유한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1) 현재는 동인이라는 용어는 거의 쓰이지 않고, BL(Boys’ Love)이라는 용어로 대체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인은 사실 일본에서 수입되어 처음에 ‘동인지’라는 소수의 문인들이 창작 활동을 위해 만든 문예잡지에서 유래되었다. 그 이후 한국에서 동인은 아마추어라는 뜻을 강하게 내포하게 되었고, 주류 콘텐츠가 될 수 없었던 남성동성애서사 또한 동인의 대표적인 콘텐츠로 자리잡게 되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조교수) 장민지 덕후 진화론(덕후는 정신적/육체적/기술적으로 진화한다)을 믿는 팬-미디어 연구자.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상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5년 박사논문〈유동하는 세계에서 거주하는 삶 : 20~30대 여성청년 이주민들의 집의 의미와 장소화 과정〉으로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 학회 학술상, 2016년 〈비인간 캐릭터에 대한 대중의 환상〉으로 한국방송작가협회 한국방송평론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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