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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uded Reality (망상 현실)〉: ‘통로’를 지나 풀 다이브(full-dive)

05

GG Vol. 

22. 4. 10.

[이미지1] 《MODS》 (사진:박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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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난 호에서도 큐레이터 동료가 언급한 바 있는 전시, 《MODS》(2021, 합정지구, 서울)에서 장진승 작가와 프로젝트 ‘SYNC’를 진행했었다.1) 전시를 위한 이 프로젝트는 작가와 서로 관심이 있는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시작되었는데, 우리의 대화는 동시대 시뮬레이션 비디오게임 플레이어의 자율성, 몰입도로 초점이 맞춰졌다.  


[이미지2] 사이버펑크2077 

SYNC 프로젝트가 시작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면 그 때는 2020년 12월로, CDPR의 〈사이버펑크2077〉이 엄청난 기대와 함께 출시될 무렵이었다. 출시까지의 8년은 기대감을 집중시켰고 발매와 동시에 갖은 논란들을 가져왔다. 그 중 출시 전까지 수년간 “오픈월드”라는 키워드를 전면에 내놓은 개발사의 언론 마케팅이 여러 커뮤니티에서 스토리나 플레이의 면면을 파헤침 당하며 다양한 공방을 일으켰다. 그리고 ‘사이버펑크’라는 이제는 대중적이라고 말 할 수 있는 문화코드에 대한 기대함 또한 빼놓을 수 없었는데, 많은 영화나 게임에서 이미 너무 많이 그려진 적이 있는 이 세계를 얼마나 더 새롭고 황홀한 그래픽과 아트웤으로 완성할 것인지가 게임을 기다리는 게이머들의 또 다른 설렘이기도 했다. 


게임이 출시되고 거세게 일었던 일련의 이슈들을 들여다보며 필자는 게이머들에게 ‘오픈월드’ 게임이라고 하면 이제 이동의 자유는 기본이고, 물리적, 감각적으로 젖어 들어갈 수 있는 환경과 함께 무궁무진한 상호작용이 보장되어 있어야하며, 플레이어의 창발적 플레이 또한 시도해 볼 수 있는 그런 방대한 가능성을 갖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슷하게 의미가 부여된 ‘이머시브 심(Immersive Simulation)’과 같은 게임 장르가 이미 호명되어오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RPG에 기대하는 바가 확장되었다는 것만은 분명해보였다.2)  접속과 동시에 게임의 가상세계로 몰입이 가능하며, 피부 가까이에서 그것을 느끼고, 시스템 안에서 적극적인 수행자로서 개인의 마음과 자유에도 또한 본질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접속-되기


[이미지3] 〈존 말코비치되기〉 포스터


“Ever want to be someone else? Now you can.”

- 영화 〈존 말코비치되기(Being John Malkovich)〉 (1999) 


게임으로의 ‘접속’이라는 건 마치 다른 사람이 되는 상상을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 속 ‘통로’로 물리적 비유가 가능하다. 영화의 주인공 크레이그 슈와츠(Craig Schwartz: 존 쿠삭 분)는 어느 날 다니고 있는 회사의 ‘딥 스토리지Deep storage’에서 영화배우 존 말코비치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 15분간 그의 눈으로 보고, 그의 몸으로 감각하며, 온전히 그의 삶을 가상체험 할 수 있는 통로를 발견한다. 생계를 위해서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동시에 무명의 마리오네뜨 인형술사였던 크레이그는 그 통로를 통해 말코비치의 주체가 된다면 우울한 현재의 삶에서 벗어나 유명한 사람이 되어 꿈을 이루고 짝사랑하는 맥신(Maxine: 케서린 키너 분)의 마음 또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대로 말코비치의 의식 속에 자리를 잡고 원하던 바를 이룬다. 말코비치의 머리에 들어간 또 다른 사람인 그의 아내 라티(Lotte Schwartz: 카메론 디아즈 분)는 그 통로를 통해 미처 깨닫지 못했었던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평생의 사랑을 이루게 된다. 이 영화에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의 현실에서는 할 수 없는 것들, 알 수 없었던 것들을 타인되어 극복하게 되고, 성취하게 된다.  


이 타인의 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영화적 설정은 ‘자아와 타인이 구별되는 지점은 무엇인가, 육체와 분리된 영혼은 존재하는가, 경험을 한 육체와 경험을 기억하는 의식 중에 자아를 구성하는데 더 지배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등과 같은 형이상학적이며  아득한 질문을 상기시키면서도 동시에 어쩌면 언제나 인간은 나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어보는 상상을 별스럽지 않게 항상 하고 있지 않은가, 항상 그렇게 되기를 염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통로’로 풀 다이브(full-dive)  


[이미지4] 장진승, 〈Deluded Reality (망상 현실)〉, 2021 스틸컷

장진승 작가의 13분 25초 길이의 영상작업 〈Deluded Reality (망상 현실)〉은 등장인물이 어딘지 알 수 없는 어떤 세계에서 눈을 뜨면서 시작된다. 감각이 없었던 상태에서 점차 들리는 소리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등장인물 ‘나’는 본인의 감각을 의심하면서도 그 곳이 어딘지 파악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들리는 말소리와 빗소리에 집중한다. 사실 그는 디지털 게임 세계에 존재하는 인물인데, 첫 장면에서는 본인이 현실에 존재하는지 가상에 존재하는지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다가 빠르게 청각과 시각의 감각을 획득하면서 본인이 있는 세계를 파악해나간다. 이 과정에서 ‘나’는 그래픽으로 구성된 특정한 세계의 안에서 그의 본질과 존재하고 있는 위치를 알아내고, 주어진 세계 밖을 넘어가는 체험을 하기도 한다. 화면은 1인칭과 3인칭의 시점을 번갈아가며 그와 밀착하기도 했다가 멀어지기도 하는데, 이런 화면의 변화가 몰입을 위한 최적화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붙었다가 떨어지는 접속의 과정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이미지5,6] 장진승, 〈Deluded Reality (망상 현실)〉, 2021 스틸컷 

스스로 존재하는 곳에 대한 지각적 신념을 갖게 된 영상 속 그는 거의 모든 것을 예측가능하다고 하면서 현재 그가 존재하는 가상현실이 아닌 다른 특정 시공간으로 자신을 ‘전송’하고자 한다. 영상의 말미에는 실험실 같은 곳 유리창 너머에서 다른 차원에 존재할 ‘그’와 같은 인물을 만들고 있는 또 다른 ‘나’들이 등장하며 끝난다. 마치 ‘통로’에서 빠져나와 나로 돌아온 것 같달까. 


작품의 제목이 주지하듯 작가는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인지하게 되는 ‘나’의 경험을 ‘망상 현실’로 규정하고자 했다. ‘망상’은 ‘현실’을 전제하지 않는, 그래서 양립불가능한 개념이지만, 유효한 것으로 병존시켜놓음으로써 “이 불안한 동시에 유연하기도 한 자기 파열의 내적 구조만이 서로 다른 차원에 놓인 세계들에 자유로이 동기화 할 수 있는 ‘의식 연동’의 가능성을 내재할 지도 모른다”3) 는 명제를 환기시키고자 했다. 


수잔 손탁(Susan Sontag, 1933-2004)은 역사적으로 ‘기예’들이 예술로 승격화 되었던 첫 번째 ‘신화적 예술’의 탄생 이후 예술은 보다 복잡하고 비극적인 것이 되었다고 언술한 바 있는데, 이를테면 단순한 기준으로 스스로를 긍정하는 의식에서 머무르지 않는 방식으로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예술은 (단순한) 의식의 표현이 아니라 “의식 속에서 생겨난 의식의 해독제(antidote)”인 셈이다.4)


가상현실에서 만들어진 가상인간이 모델로 등장하는 광고들이 종종 눈에 띄는 요즘, 가상현실로의 풀 다이브는 가능한 것인가라는 이 글을 시작하는 질문은 꽤나 주관적인 답안을 갖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능한 새로운 세계를 탐구하고 그것에 일루젼을 일으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갖고 쫓는 것은 시각예술에 있어서 기실 늘 중요한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지난 해에 이어 장진승 작가와 두 번째 프로젝트를 준비한다. 다양한 분과에서 더 매끈하게 열려가고 있는 ‘통로’에 관하여, 그 현상에 관하여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져보고, 패치 후 또 다른 궤적을 그려볼 예정이다.



1) 큐레이터-게이머 동인 모즈(Mods)의 전시 《MODS》 관련 지난 아티클,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pageNum=2&match=id:65, 김세인, 「로우스코어 걸: (Not Really) Full Game Walkthrough」, GG vol.3.
2) 유명 유투버나 위키, 개발자들이 정리한 바로는 ‘몰입가능한 거대 가상세계를 배경’으로 ‘제시된 시스템과 규칙을 활용하여 창발적 플레이가 가능한 물리엔진과 인공지능’을 갖춘 ‘선택과 결과에 방점이 찍힌 비선형적 디자인(을 지향하는 형식)’의 게임을 말한다. [Immersive Sim]https://www.giantbomb.com/immersive-sim/3015-5700/ [The Comeback of the Immersive Sim] ]https://www.youtube.com/watch?v=kbyTOAlhRHk 
3) 작가노트 참고.
4) 수잔 손택, 「침묵의 미학」,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현대미학사, 2004), pp.11-16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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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 게임 동호회 ‘Mods’ 멤버)

유미주의자이지만 항상 카니발적 그로테스크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타이쿤류의 게임들을 좋아해서 척추가 망가졌다. 게임이든 뭐든 궁금한건 못 참아서 빠르게 엔딩을 보고 자주 새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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