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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수상작] 〈Ib〉: 미술관이라는 공포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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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4. 10. 10.

“어서오세요 게르테나의 세계에”: 미술관 나라의 이브

 

2022년은 〈Ib〉의 공개로부터 10주년이 되는 해였다. 제작자kouri는 스팀을 통해 기존 〈Ib〉에 새로운 기능이나 디테일을 더한 리메이크판을 공개했다. 이듬해 2023년에는 닌텐도 Switch 용 〈Ib〉의 발매 소식이 공개되었고, 게임 홍보를 목적으로 게임의 전시를 재현한 ‘게르테나전’이 도쿄 시부야에서 열리기도 했다.

 

〈Ib〉는 여러 가지 장르로 설명될 수 있다. RPG 만들기 툴(RPG Maker)로 만들어진 롤플레잉 어드벤처 게임이기도 하고, “프리호러게임”[1]에 들어가기도 하고, 캐릭터 간의 대화 횟수나 대사 선택지에 의해 엔딩이 갈린다는 점이나 캐릭터의 매력을 살린 2차 창작으로 입소문을 탔다는 점에서는 미소녀 게임의 일종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개념미술가 다니엘 뷔랑은 “전시회의 주제가 더 이상 전시된 미술 작품들이 아닌, 미술 작품의 전시 그 자체로 바뀌는 추세”라고 주장했다.[2] 이러한 주장에 따른다면, 〈Ib〉에 등장하는 미술 작품들은 대부분 배경 소품이나 ‘모브 캐릭터' 정도로 등장하는 데에 그치더라도 ‘게르테나전’이라는 전시회 자체가 〈Ib〉의 주제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전시회 체험’으로서의 〈Ib〉에 주목한다.

 

〈Ib〉에서 ‘게르테나전'은 크게 서너가지 시공간을 가리킨다. 첫번째로 이브가 처음에 부모님과 함께 도착한 미술관이자 비일상적인 호러 세계를 빠져나와 돌아가야 할 장소인 작중 일상 세계의 “게르테나전”이다. 두 번째는 이브가 홀로 뛰어들어 게리와 메리와 함께 탐험하게 되는 위험천만한 “상상화의 세계”이다. 그 안에서도 메리의 세계인 “스케치북의 세계"는 나머지 “상상화의 세계"와는 다소 궤를 달리하는, 어느정도 독자적인 공간으로서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Ib〉의 세계에 등장하는 모든 작품을 포함하는, 제작자 kouri의 전시라고도 할 수 있을 2022년판 〈Ib〉의 “진 게르테나전”이 있다.

 

다양한 ‘게르테나전’을 탐험하는 〈Ib〉라는 어드벤처 게임에서, 플레이어 캐릭터는 ‘이브’인 동시에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 자신의 분신이다. 게임 도중 특수한 조건을 만족시키면 일정 부분을 다른 캐릭터의 시점에서 플레이할 수 있기는 하지만, 플레이어는 대체로는 이브를 통해, 이브가 되어 ‘게르테나전’을 경험한다.

 

플레이어/이브에게 있어서 ‘게르테나전’이 어떤 식으로 ‘신비롭고도あやしくも 아름다운’ 경험이 되는가 살펴보자.

 

* 이미지 1: “게르테나가 생전에 그린 신비롭고도 아름다운 작품들을 부디 마음껏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일본어로 あやしい는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것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수상하고 불길한 것을 가리키는 형용사이기도 하다.

 

 

“작품에 손을 대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게르테나전이라는 ‘화이트 큐브’

 

〈Ib〉에서 새 게임을 시작한 플레이어는 부모님과 함께 미술관에 가는 장면 속에 놓인다. 플레이어의 분신이자 게임의 주인공인 ‘이브’는 미술관을 처음 경험하는 아홉 살 소녀이다. 블라우스에 붉은 치마와 리본, 구두 차림에 “진짜 레이스"와 자수로 장식된 손수건을 가지고 있다. 미술관에 도착한 플레이어/이브는 티켓 접수에 시간이 걸리고 있는 부모님에게 먼저 들어가서 전시를 보고 싶다고 표현한다. 게임의 진행을 위해서라도 ‘엄마'는 허락하면서도, 다른 관람객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조용히 관람해야만 한다며 거듭 주의를 준다. 아무튼 잔소리를 다 들었다면, 비로소 플레이어는 자유롭게 이브를 움직일 수 있게 된다.

 

게르테나전에 발을 들이는 순간 가장 의식하게 되는 세 가지는 흰 벽, 액자 그림, 그리고 BGM ‘코렐리 라 폴리아'다. 테이트 미술관 홈페이지는 “화이트 큐브"란 “사각형 공간, 희게 칠한 벽, 그리고 천장에서 내려오는 광원으로 대표되는 전시회들의 특정한 미적 형식"이라고 요약한다. 바로크 클래식 음악과 관객으로부터 동떨어져(야만 하는) 흰 배경에 놓인 값비싼 예술품들은 ‘화이트 큐브’를 구성하는 요소들 그 자체이다. “게르테나전”과 같은 ‘화이트 큐브’는 지금도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익숙한 미술 전시의 형태일 것이다.

 

이브/플레이어는 전시장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관람객에게 말을 걸 수 있다. 대뜸 작품에 대한 감상을 물어봤으면서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면 어린애라고 무시하는 관람객이 있으면, 작품의 일부를 먹어보고 싶다는 식욕 왕성한 관람객도 있고, 조각 작품이 조금만 건드려도 무너질 것 같다며 배상금을 상상하며 두려워하는 관람객이 있기도 하다. 그런 관람객들이 넌지시 드러내는 공통된 두려움에 끄떡이듯, 조각상 근처의 벽에는 “작품에 손을 대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하는 경고문이 걸려있다.

 

게임의 도입부의 “게르테나전”은 플레이어에게 달려드는 초상화나 접촉하면 ‘게임 오버’가 되는 조각품 같은 것들이 등장하지 않는 ‘안전한’ 공간이다. 그러나 아홉 살 어린이 이브에게 있어서, 어쩌면 ‘호러 게임’ 〈Ib〉의 ‘호러’는 이미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느껴졌다.

 

전시장은 여자 어린이 이브에게 있어서, 그리고 아홉 살 소녀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면에서 이브와 비슷한 면이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결코 편안한 장소가 아니다. 미술관이란 손을 대면 때가 탈 것만 같은 새하얀 벽에 둘러싸여 있고, 실수로라도 만졌다가는 무시무시한 금액을 물어내야 할 성스러운 미술품들이 걸려있는 데다, 기침이라도 했다가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엄격한 공간이다. “게르테나전” 2층에는 “고양이다-! 엄마아-! 고양이 그림이 있어-!” 하며 작품에 대한 열의를 공유하려고 했으나 “알겠으니까 조용히 하렴! 큰 소리 내면 안돼!”하고 꾸중만 듣고 마는, 이브보다 어려 보이는 (작은 도트로 표현되는) 어린이 관람객이 있다. 같은 층의 다른 관람객의 말(“으…… 역시 너 같은 아이한테는 아직 이해하기 어려우려나……”)처럼, 미술관은 때로는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술적 조예’나 ‘똑똑한 머리’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어려운 곳이기도 하다. 이브는 한자로 표기된 작품 라벨을 거의 읽지 못한다. 이브가 혼자서 읽을 수 없는 어려운 한자는 모두 물음표로 표현되고, 라벨이 물음표로 표시되는 작품의 제목을 알기 위해서는 어른 동료와 동행해야만 한다. 미술관에서 실수하기는 너무나 쉽고 미술을 이해하기는 너무 어렵다.

 

 

“상상화의 세계": 미증유의 ‘그레이 존'에 뛰어들기

 

이런 게르테나전을 헤매던 이브 앞에 불현듯 나타난, 읽기 쉬운 히라가나로 된 “이 리 오 렴 이 브”는 ‘화이트 큐브’에서 꺼내주겠다고 하는 유혹과 같았을지도 모른다.


불가항력처럼 뛰어든 “상상화의 세계”는 원래 세계의 게르테나전과는 사뭇 다른 미술관의 모습을 보여준다. 벽은 붉고 푸르고 초록색이며, 미술 작품은 자유롭게 만질 수 있고 가격이 매겨져 있지도 않다. 라벨이 없는 작품도 여러 점 있으며, 작품은 반드시 벽에 걸려있지도 않고, 심지어 자아를 가지고 자유롭게 돌아다니기도 한다.


* 이미지 2: 먼 곳의 높은 벽에 걸려있는 자신의 초상화에 접근할 수 없는 개미를 위해 액자를 벽에서 떼어 들고 가서 보여줄 수도 있다. 눈높이에서 보고 싶은 작품을 마음대로 떼어서 볼 수 있는 초록색 전시관은, 하얗고 고요한 “게르테나전”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이러한 점에서는 “상상화의 세계”는 원래 세계의 게르테나전에 대한 대안의 상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디지털 문화 이론가 레브 마노비치는 20세기부터 미술관과 극장theatre은 반대되는 개념이었으며, ‘화이트 큐브’인 미술관은 고급문화로, 그리고 ‘블랙 박스’인 극장은 저급문화로 여겨졌다고 설명했다.[3] 한편, 현대예술에서는 공연의 거처가 ‘블랙 박스’에서 ‘화이트 큐브’로 옮겨진 경우도 있다. 극장에서와 달리, 미술관에서의 공연은 유동적인 관객을 상정하기에 관객이 없어도 계속될 수 있으며, 동시에 극장 공연에 비해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기에 용이하다는 특징을 가졌다. 클레어 비숍은 이와 같이 ‘블랙 박스’와 ‘화이트 큐브’의 특성이 혼재된 공간을 ‘그레이 존’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4] 이브나 게리가 뛰어들기 전부터 존재했던 듯이 보이며, 작품이 자아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관람객/플레이어와 교류하는 “상상화의 세계”는 ‘그레이존’이라는 설명에 딱 들어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상화의 세계”는 안전하지 않다. RPG 게임 〈Ib〉에서, “상상화의 세계”에서 자아를 가진 작품들은 플레이어를 향해 달려들며 목숨을 노리고, 그러면서도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지 말고 영원히 남으라고 종용한다. 이것은 확실히 호러다. 그렇다면 작중 서사에서 “상상화의 세계”가 공포스럽게 작용하는 방식을 배제하고, 하나의 전시로서의 “상상화의 세계”는 어떨까?

 

안타깝게도 “상상화의 세계”라고 해서 “게르테나전”보다 모두에게 안전하고 재미있는 전시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들은 흰 벽에 불안과 강박을 느끼지만, 대안으로써 알록달록한 벽을 채택한다면 과잉된 시각적 자극에 감각 과민을 경험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관람객이 미술품을 만질 수 있게 하면 시각장애인이나 신경다양인 등이 다양한 방법으로 전시를 즐길 수 있게 되지만, 감염의 위험이 커져서 면역이 취약한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안전하지 못한 공간이 될 수도 있다.[5] 


전통을 거스르는 대안적 시도는 필연적으로 다면적인 복잡함과 어려움을 마주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상상화의 세계”는 ‘화이트 큐브’를 벗어나려고 하는 시도의 불확실성, 그리고 실패 가능성에 대한 불안의 은유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상상화의 세계”는 “게르테나전”의 한계를 타파하고 극복한 결과라기보다는, 오히려 “게르테나전”에서 느낀 공포의 연장선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 예시로, 작중 이브가 꾸는 악몽에서는 “게르테나전”의 공포와 “상상화의 세계”의 공포가 하나로 합쳐지기도 한다.

 

* 이미지 3: 이브가 “상상화의 세계”에서 정신력이 다해 쓰러졌을 때 꾼 악몽.

 

“상상화의 세계”에 비해 “게르테나전”은 안전하다. 비록 부모님이 데리러 오지 않으면 떠날 수 없고, 큰소리도 내면 혼나고, 쉽게 이해할 수도 없는 데다, 전시품을 건드리면 변상해야 하지만 목숨이 간당간당한 “상상화의 세계”보다는 무한히 안전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상상화의 세계”에 비해서 안전하다고 해서, “게르테나전”이 모두에게 있어서 가장 안전하다는 주장은 ‘화이트 큐브’가 내세우는 이데올로기 그 자체 같다. 미술관에 ‘화이트 큐브’를 처음 적용하기 시작한 데 스틸과 바우하우스와 같은 예술가 그룹들은 ‘화이트 큐브’에 둘러싸여 있을 때 미술이 가장 돋보이고, 방해받을 여지 없이 안전하게 관람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6] 정말 그럴까? 만약 그렇다면, ‘화이트 큐브’에서 ‘안전하게’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브는 거기에 포함될 수 있을까?

 

 

“스케치북의 세계”: ‘화이트 큐브’에 대한 메리의 도전

 

큐레이팅이란 무엇일까? 폴 오닐은 저서 『동시대 큐레이팅의 역사』를 통해 큐레이터가 단순히 작품을 관리하고 요구에 따라 꺼내어 전시하는 위치에 있었던 과거와 달리, 현대의 큐레이터는 전시라는 예술적 경험을 총괄하는 비평가이자 일종의 메타적인 예술가라고 주장한다.

 

‘게르테나전’이 크게 서너 가지 존재하는 것과 짝을 맞추어, 〈Ib〉에는 크게 서너명의 큐레이터가 존재한다. 이브와 부모님이 사는 세계의 ‘게르테나전’을 만든 작중에 등장하지 않는 가상의 큐레이터, “상상화의 세계”의 근본에 있는 바이스 게르테나 (그는 의식적으로는 존재할 수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스케치북”의 세계를 만들어낸 메리, 그리고 물론 ‘진 게르테나전’은 〈Ib〉를 제작한 kouri와 〈Ib〉를 플레이해서 완성하는 플레이어의 합작이다.

 

* 이미지 4: 미술관이 어린이를 환대하는 공간이 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할까?

 

“상상화의 세계” 안에서도 “스케치북”은 메리가 직접 그리거나 모은 오브제들로 구성된 맵이다. 메리가 즐겨 쓰는 그림 도구인 크레용으로 그려진 세계에는 집, 사람, 나무 외에도 백조가 있는 호수, 나비들의 공간, 커다란 푸딩 등이 그려져 있다. 검은 공간은 여백이기에 만지거나 걸을 수 없으며, 색이 칠해져 있는 부분만 물성을 지닌다는 자체적인 물리법칙도 있다. “스케치북 안에는 “장난감 상자”가 있고, “장난감 상자”에는 스토리의 진행에 필요한 열쇠 외에도 그림, 인형, 조각 등… 요컨대 메리의 ‘친구들’이 흩어져 있다.


뉴욕 브루클린의 미술재단 Recess에서 발행한 미술관 접근성 가이드 “Accessibility in the Arts: A Promise and a Practice”에서는 아이들을 동반한 관람객을 위해 미술관에서 놀이방이나 장난감과 그림 도구로 채운 상자를 마련할 것을 제안한다.[7] 이 제안의 모습과 유사한 메리의 “스케치북"은 꼭 어린이 관람객을 위한 놀이공간 같다.

 

* 이미지 5: “스케치북” 속 “장난감 상자”

 

“스케치북” 세계는 그림은 액자 안에 존재해야 하며 액자는 미술관에 걸려 있어야 한다는 전제 자체를 무시한다. 밟고 있는 길, 들어갈 수 있는 집, 호수와 백조와 나무와 과일은 모두 캔버스 바깥에 존재하는 물체인 동시에 그림으로 인식된다. 이런 자유로움은 어린 시절 바닥에 분필로 그림을 그려서 즐겼던 땅따먹기 놀이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평면에 그린 그림을 컴퓨터나 스마트 기기의 카메라로 인식해 3D 영상으로 렌더링하던 초기 AR(증강현실) 애플리케이션들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미술관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화이트 큐브’를 벗어나 놀이 공간에 가까워지려고 더 자주 시도한다면, 메리와 같이 에너지가 많고 집중력이 짧은 어린이 관람객에게도 덜 무섭거나 지루한, 심지어 신나는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억의 미술관

 

이브의 다사다난한 미술관 경험에서도 비추어지듯, ‘화이트 큐브'로 대표되는 미술관은 어린이 혹은 그 밖에도 신경다양인, 장애인, 티켓을 살 돈이 없는 사람들, 조용하게 걸을 수 있는 신발이 없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썩 환대의 공간은 아니다.


그러나 이미 너무나 오랫동안 미술관의 전통으로 굳어져 온 ‘화이트 큐브'의 대안을 고안하고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새로운 방식의 전시는 저마다 모두 나름의 의의와 한계들이 있고, 때로 전시의 한계는 상업성과 자본이라는 맥락에 의해 결정되기도 한다.

 

‘게르테나전’은 지난 2023년, 닌텐도 Switch 판 〈Ib〉의 발매를 기념해 현실로 옮겨오기도 했다. 2023년의 게르테나전은 시부야 PARCO백화점 지하 1층의 전시공간인 GALLERY X BY PARCO에서 열렸다.[8] 150점이나 되는 게르테나의 작품이 모두 전시되지는 못했지만, 특히 조각 작품은 제작과 운반에 투자할 여력이 없었는지 한 점도 전시되지 못했다. 흰 사각형 벽에 액자가 걸려있는 모습은 전형적인 ‘화이트 큐브’였지만, 그러면서도 프로젝션 매핑을 통해 그림의 ‘움직이는’ 요소를 재현하고 흰 벽을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VR헤드셋을 쓰고 ‘파란 인형의 방’을 체험할 수 있는 ‘블랙 큐브’도 있었다.


그렇지만 프로젝션 매핑이나 VR 등의 기술적인 시도보다도, 가장 기억에 남은 체험은 ‘세이브 포인트’였다. 〈Ib〉 작중 세이브 포인트인 노트와 펜을 재현한 방명록에는 노트를 전부 채우고도 앞, 뒤표지까지 흘러넘칠 정도로 빽빽한 ‘세이브’가 기록되어 있었다. 전시를 관람했을 뿐만 아니라, 게르테나의 세계에 참여했다는 경험의 기록을 남기고자 한 사람들의 열망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 흔적은 방명록뿐만아니라 수많은 관람객의 휴대폰의 카메라 롤과 SNS의 미디어함에도 기록되었다. ‘그레이 존’ 개념을 제안한 클레어 비숍은 관객이 동원할 수 있는 모바일 기기와 네트워크 기술이 늘어나, 기존에는 촬영을 금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미술관에서 SNS를 통한 전시의 공유와 확산을 권장하게 된 현상이 ‘그레이 존’의 예시라고 보았다[9]. 그렇다면 ‘화이트 큐브’, ‘블랙 박스’와 ‘그레이 존’의 요소가 모두 존재한 현실의 게르테나전은 아홉 살 이브에게 조금은 더 친절하고 마음 놓이는 공간이 될 수 있었을까?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미술관이 그저 무섭고 끔찍한 공간일 뿐이라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를 ‘호러’라고 정의한다고 해서 그것이 즐거움이나 다른 의미를 줄 수 있는 여지가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Ib〉라는 게임도 그렇다.


어쩌면 이브/〈Ib〉가 그렇듯이, 어린 시절의 ‘호러’의 경험은 곧잘 ‘모험’과 연결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 〈스탠 바이 미〉는 사이가 좋은 어린 소년들이 함께 철길을 따라 걸으며 자라는 성장 영화라고 요약되곤 하지만, 호러적인 위험이 가득한 모험을 통해 묻혀있는 시체를 찾는다는 시놉시스는 영락없는 공포 영화이기도 하다. 이러한 〈스탠 바이 미〉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비디오 게임 〈MOTHER〉 역시 어드벤처 RPG의 교과서적인 고전 작품이지만, 최종 보스 ‘기그’의 공포성은 〈MOTHER〉에서 인상깊은 부분으로 손꼽히는 구성요소 중 하나이다. 첫 〈포켓몬스터〉 게임들 역시 유령이 등장하는 ‘보라타운’이나, 엔딩 후 동굴 깊은 곳에서 플레이어를 기다리는 강력한 ‘뮤츠’는 많은 게이머들의 어린 시절 강렬한 공포 경험으로 남아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오즈의 마법사』도, 『피터 팬』도…… 어린이가 훗날에는 마치 꿈과 같은 기억으로만 남게 되는 흥미진진한 모험을 떠나는 내용의 명작들은 모두 어딘가 공포스러운 면이 있다. 이브의 미술관 모험 역시 공포스러운 동시에 흥미진진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화이트 큐브’는 분명 무서운 공간이고, 특히 이브와 같은 어린이 관람객을 환대하는 것에는 아직 실패하고 있음도 분명하다. 그러한 사실은 ‘화이트 큐브’의 변화를 재촉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 대부분의 미술관이 ‘화이트 큐브’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브가 흥미진진한 미술의 세계를 즐길 여지는 언제든 있다고 믿고 싶다.





[1] 〈유메닛키〉, 〈아오오니〉 등 RPG 만들기 툴로 제작된 호러게임 중 제작자의 개인 홈페이지 등을 통해 무료로 배포된 게임 전반을 이르는 장르명으로,  〈Ib〉의 유행 시기를 중심으로 2010년대 초 한국 인터넷에서 자주 사용되었다.
[2] “Écrits - Conférences / Les Écrits : Quelques Textes    Daniel Buren,” 1972. https://danielburen.com/bibliographies/2/8.
[3] Lev Manovich, “The Poetics of Augmented Space,” Visual Communication 5, no. 2 (June 1, 2006): 219–40, https://doi.org/10.1177/1470357206065527.
[4] Dancing Museums, “Black Box / White Cube - Dancing Museums,” April 16, 2022, https://www.dancingmuseums.com/artefacts/black-box-white-cube/.
[5] Carolyn Lazard, Accessibility in the Arts: A Promise and a Practice (Reading PA: The Standard Group, 2019), 28.
[6]  Tate, “White Cube | Tate,” n.d., https://www.tate.org.uk/art/art-terms/w/white-cube.
[7] Lazard, Accessibility in the Arts, 27.
[8] “Nintendo Switch版『Ib』 発売記念​『ゲルテナ展』 | GALLERY X BY PARCO | PARCO ART,” PARCO ART, 2023, https://art.parco.jp/galleryx/detail/?id=1160.
[9] Dancing Museums, “Black Box / White Cube - Dancing Museums,” April 1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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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스터 시리즈의 대사(?) "햇살이 강해졌다!"가 삶의 모토. 여섯 살 때 위키위키를 보고 다마고치 캐릭터를 따라 그린 것을 시작으로 줄곧 게임 팬아트를 그리고 있으며, 종종 '룬츠'라는 닉네임으로 동인지를 쓰고 그린다. 최근 관심사는 3DS로 사진 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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