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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 불량 커비의 사물 머금기

06

GG Vol. 

22. 6. 10.

신세계에서 발견한 물건을 베어 물면 

커비가 변형! 

다양한 액션으로 대모험! 1)


* 커비의 다양한 머금기 변형 종류 

〈별의 커비 디스커버리〉는 2022년 3월 25일 커비 시리즈의 30주년을 맞이하여 발매된 게임으로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커비를 소개한다. 횡스크롤 게임 플레이에서 벗어난 첫 번째 전방향 3D 액션 게임으로 큰 화제가 된 〈디스커버리〉는 출시 2주만에 210만 장이 판매되는 등 현 시점까지도 인기를 끌고 있다. 난이도를 고려하여 섬세하게 개발된 플레이 시점, 이전과는 차별화된 스테이지 디자인 등 여러 요소들이 이목을 끌고 있으나 그중에서도 괄목할 만한 것은 이번 게임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커비의 머금기 변형이다. 영어로는 ‘마우스풀 모드(Mouthful Mode)’, 한국어로는 ‘머금기’라고 불리는 상호 작용은 커비가 사물을 빨아들이다 반 머금을 때 특정한 행동이 가능해지는 특수한 능력이다.


* 물건을 반만 머금기 직전 자동차를 다 소화하려고 노력하는 커비의 모습

게임은 평화롭게 자신의 행성을 산책하던 커비가 하늘에 난 구멍이 만든 푸른색의 폭풍에 휘말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포털을 통해 미지의 세계에 도착한 커비는 스테이지를 활보하다가 길 한가운데에 뒹굴고 있는 사물을 만나게 된다. 다른 것과 달리 반짝이는 이 사물은 커비의 접근을 유도한다. 사물 앞에서 커비는 관성적으로 자신이 늘 하던 빨아들이기를 사용한다. 그런데 한 입에 모두 삼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커비는 이내 반 정도를 뱉어낸다. 자동차, 꼬깔콘, 고리, 전구, 계단, 지게차 등을 만나며, 우주와 같은 자신의 위장 속에 사물을 삼키지 못한 커비의 입과 몸은 사물의 형태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형된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고안되어 특정한 능력을 보유하지 않는 사물을 머금으면 그다음에는 무슨 일이 발생할까? 불, 물, 칼, 폭탄 던지기와 같은 명확한 정체성이 없는 사물이 커비와 접촉하면 커비는 이를 어떻게 사용하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사물과 커비가 맺는 특별한 관계가 생성된다. 이는 더 나아가 게임 내에 사물이 존재하는 양상에 대한 재고찰을 돕고 플레이어와 사물이 주체와 객체로 고착화되는 공식을 뒤집으면서 다른 상호 작용의 가능성을 제안한다.  


머금기 변형이 등장한 배경에는 2D에서 3D로의 전환이 있다. 2020년, 닌텐도 스위치용으로 발매된 전작 〈커비 파이터즈 2〉만 해도 횡스크롤 스타일을 고수하였다. 개발진들은 2D 커비의 귀여운 특성을 살리면서도 이를 어떻게 3D 액션 플레이로 연계할 것인가 고민하였고, 이 과정에서 머금기 변형이 새로운 능력으로 등장하였다.2)  다양한 것을 먹고 늘어났다 줄어드는 모습은 자유자재로 변화하는 기묘한 커비의 개성을 3D로 구현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3D에서는 2D와 달리 상하좌우의 부피감을 인지할 수 있기에 넘어지기, 가속하기, 늘어나기, 사방으로 움직이기 등 다양한 방식의 움직임을 플레이 요소에 더하는 것이 장려되며, 이러한 움직임을 가능하게 해 주는 장치로 사물이 사용된 것이다. 


제작진의 의도와 다르게 머금기 변형은 단순히 3D 효과를 부각하는 것을 넘어 게임 내에서 사물의 위상을 바꾸었다. 사물은 커비의 능력을 경유하여 본래의 목적과는 다르게 번역되고, 주변 환경을 연결하기도, 또 해체하기도 한다. 이러한 특성을 자세히 들여다보기에 앞서 짚어야 할 것은, 커비의 머금기 변형은 변신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커비의 위장은 흔히 우주와 같이 무한하다고 알려져왔으나 이번 시리즈에서는 사물을 온전하게 흡수하지 못하며, 대상을 완전히 모방하고 변신하려는 커비의 시도는 실패한다. 


* 캡처 능력을 활용하여 굼바에 빙의한 마리오

〈디스커버리〉가 참고하여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와 비교하면 변신과 변형의 차이가 더 명확해진다. 커비의 3D 월드는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로부터 스테이지 구성 혹은 시점 변화 등의 요소를 계승하였다. 머금기 또한 마리오의 ‘캡처’ 능력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사물을 이용하여 퍼즐을 해결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캡처는 마리오가 자신의 모자인 캐피를 던져 특정한 대상에 맞추면 그 대상으로 빙의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나 이 기술은 주로 적에 빙의했을 뿐 아니라 마리오가 본래 지니고 있던 고유한 특성에서 기인한 움직임은 아니었다. 또한 완전한 빙의로 인해 마리오스러운 플레이를 운용하는 것에 실패한다. 실제로 이 캡처 능력은 마리오의 캐릭터성을 중시 여기는 이들에게는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반면 커비의 머금기는 커비의 정체성과도 같은 흡입하기와 뱉기를 활용하면서도 더 나아간다. 사물을 ‘머금었다’라는 제약은 커비의 사물-되기를 방지한다. 사물을 머금은 커비는 커비도 사물도 아닌,  커비-사물 혹은 사물-커비의 중간 상태를 계속해서 유지하게 된다. 애매모호한 존재가 되어 버린 커비의 상태는 커비 본래의 특성을 플레이어에게 이해시키면서도 오히려 역으로 플레이에 재미를 부여한다. 사물을 뱉고 나면 다시 탄력적으로 원래의 크기와 능력으로 돌아가는 커비를 통해 이 일시적인 결합은 사물과 관계 맺는 방식을 강조한다. 


커비의 번역은 새로운 관계 맺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커비는 처음 보는 사물을 낯선 방식으로 쓴다.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사물의 용도에 새로운 쓰임을 부여하고 커비만의 방식으로 사물들을 번역한다. 이는 더 나아가 플레이어에게 새로운 쓰임을 익히게 하고 게임 내의 필수적인 요소로 이해하게 만든다. ‘플레이어 - 사물 - 커비’의 삼자관계는 플레이어가 커비를 조종하는 일방향적인 관계를 다각화한다. 


커비는 왜 인간이 사물을 쓰던 방식과 다른 접근을 취할까? 커비가 사물과 상호 작용하게 된 배경에는 이번 〈디스커버리〉가 펼쳐지는 무대에 있다. 〈디스커버리〉에서 커비가 도착한 곳은 커비의 세계와 인간 세계가 충돌한 곳이다. 이제까지 커비의 모험이 주로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우주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별 모양의 행성 팝스타에서 이루어졌다면, 〈디스커버리〉에서 커비가 종횡무진하는 이 세계는 플레이어에게 어딘가 익숙하다. 커비가 마주치는 잔해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즉 인류 문명이 멸망한 뒤 자연이 울창해진 세계이기 때문이다. 곳곳에는 허름한 쇼핑몰, 놀이 기구만 살아남은 놀이공원, 폐공장, 빈 도심 등이 배경으로 펼쳐진다. 인류가 사라진 자리에는 자동차, 토관, 자판기 등 여러 사물만이 남아 있다. 커비의 세계에는 부재한 사물들이다.


따라서 커비는 본래의 용도를 모르는 상태에서 사물을 조우하며,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빨아들이기를 통해 이용한다. 사물은 정해진 능력이 없고 목적에 따라 달리 사용되기 때문에 커비가 사물을 빨아들이면 능력을 복사하는 대신 사물의 일부 특성이 소환된다. 커비는 이를 자신의 쓰임새에 맞게 용도를 전환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 머금기는 가속의 기능을 활용하여 막힌 곳을 뚫는 데에 사용하고, 삼각 머금기로는 파열된 수도관이나 금이 간 바닥에 구멍을 뚫고, 돔 머금기는 저수 탱크 열기, 로커 머금기는 버둥거려서 길 만들기, 고리 머금기는 풍력을 이용한 동력원으로 사용하거나 바람으로 적 날리기, 자판기 머금기는 캔을 뱉어 길을 뚫는다든지 적 물리치기, 계단 머금기는 옆 혹은 앞으로 넘어지기, 토관 머금기는 데굴데굴 구르기, 작업차 머금기는 높은 곳에 닿기, 아치 머금기는 글라이더로 변형하여 비행하기 등이 있다.


* 간판에서 떨어진 철자 O를 고리로 머금기 위해 다가가는 커비  

* 트래픽콘 외에도 삼각형 모양의 아이스크림 조각상 하단부도 삼각 머금기의 대상이다

본래 트래픽콘이 차량을 통제하거나 위험을 표시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것과 달리, 커비는 이를 원뿔로 인식하고 금이 간 바닥이나 수도관을 터트려 길을 만든다. 또한 커비는 트래픽콘을 도움닫기 삼아 높은 지형물에 올라가기 위해 활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높게 점프하는 커비의 본래 능력의 연장선상에서 새롭게 번역된 사물의 쓰임이다. 한편 고리 머금기의 경우에는 보다 다양한 사물로부터 비롯되는데 바닥에 떨어진 글자, 시계 또한 그 대상이 된다. 본래의 용도가 무엇이었든 커비는 고리 모양이라면 이를 머금어 바람을 불어 보트를 움직이거나 적을 날려버리며, 이러한 고리의 사용법은 커비의 내뱉는 능력에서 파생된다. 시계의 기능이나 철자 O로 읽는 것은 커비의 능력이나 필요와는 무관하기 때문에 무용지물이다. 마찬가지로 트래픽콘과 아이스크림 콘은 본래 사물의 목적, 기능과 관계없이 커비에게는 동일한 물체로 인식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의 언어로 이해되었던 사물은 커비의 언어로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지고 끝없이 새로운 질서를 만들며 역할을 부여받는다.


번역은 다른 체계의 대상을 같게 만드는 동시에 차이를 형성하는 과정이며 네트워크를 건설한다.3)  기존의 연결 고리를 끊고 다른 요소들과 결합한다는 점에서 커비와 사물의 만남은 새로운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는 게임에서 사물로 변형된 커비가 도달할 수 있는 곳들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디스커버리〉에는 커비가 스테이지를 돌파하는 목적 외에도, 더 좋은 설계도를 획득하거나 실종된 웨이들 디를 구하는 미션 등이 주어진다. 숨겨진 보물을 찾기 위해서는 여러 장치들을 통과해야 하는데, 사물을 머금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는 길들이 여럿 있다. 사물을 머금을 때 비로소 위로 도달할 수 있고, 막혔던 길이 뚫리거나 숨겨졌던 길을 발견하는 등의 과정은 특정한 사물로 인해서 발생하는 네트워크를 가시화한다.


유니티의 매뉴얼에 따르면 게임 내 사물은 그 개체 자체로는 ‘아무것도 이루어 낼 수 없는’ 것이다.4)  사물은 게임에서 항상 몰입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특히 사물과의 상호 작용성은 플레이어의 몰입을 이끄는 요소로 여겨졌다. 몰입을 더하기 위해 게임의 사물들은 주로 현실의 형태와 물리 엔진을 모사하는 방식으로 재현되어 왔다. 플레이어의 몰입과 관심을 계속해서 붙잡기 위해 최대한 우리 세계에 가까운 방식으로 작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직관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플레이어가 게임의 주요한 서사에서 이탈하지 않게 하고자 하는 위함도 있다. 따라서 게임 그래픽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사물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은 여전히 고전적인 측면이 있다. 


한편 〈디스커버리〉에서 사물의 문법을 번역하고 비틀어 상이한 질서를 부여하는 방식은 우리로 하여금 사물을 중심으로 두고 어떻게 관계 맺을지를 고안하게 한다. 우연히 길을 걷다가 발견한 아이템을 인벤토리에 넣고 360도 돌려 글귀를 읽는 방식과는 상이하다. 이를 테면 게임에서 다양한 종류의 사물과의 상호작용은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 블랙박스(black-box)를 빗겨나갈 수 있게 해 준다. 블랙-박스는 사람들이 외부의 입-출력에만 의존하여 내부의 네트워크를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며 다종의 행위자들이 연루된 네트워크를 인식하지 못하게 되면서 네트워크에 점점 무관심해지는 것을 일컫는다.5)


* 머금기에 익숙해진 플레이어는 트래픽콘을 내려 찍는 감각으로 인식하게 된다

연결과 해체의 연속적인 과정을 통해 게임 내에서 사물은 단순히 퍼즐의 한 요소가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가능하게 하는 전체이자 요소로 등장한다. 게임이 기묘하게 비트는 현실의 규칙들은 오히려 사물과의 관계를 재고하고 이에 대한 새로운 사용법을 익히도록 한다. 이처럼 사물의 관계 맺기 양식을 다양화하는 게임들은 플레이어의 몰입을 창의적인 방식으로 이끈다. 


특히 이번 커비 게임에서 사물의 지위는 단순히 부차적인 힌트나 아이템과 같은 보관의 용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머금어 창조적으로 이용하여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방식을 통해 재고찰된다. 계단이 높은 곳을 걸어서 올라가는 곳이 아니라 옆으로 쓰러져 눕는 사물이 되었을 때 계단 끝의 모서리, 딱딱함, 둔탁함은 다른 감각으로 찾아온다. 트래픽콘을 통행 금지의 표식이 아닌 뒤집은 모서리가 내리찍을 지면과 연결하여 인식하게 된다. 소화 불량 상태를 벗어난 커비의 모습이 괜히 아쉬워지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는 동료 멜트미러와의 대화 속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음을 밝힙니다.


1) “Kirby Speical Ability” 『星のカービィ』公式ポータルサイト, https://www.kirby.jp/ability/special/mouthful-mode.html. 2022년 5월 30일 접속. 
2) “개발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닌텐도, 2022년 3월 24일. https://www.nintendo.co.kr/interview/arzga/03.php 2022년 5월 29일 접속.
3) 브뤼노 라투르, 『인간·사물·동맹』, 홍성욱 역 (서울: 이음, 2010), p. 25.
4) “Unity Manual: GameObjects”. Unity Documentation, 2021년 3월. https://docs.unity3d.com/Manual/GameObjects.html 2022년 5월 30일 접속.
5) 브뤼노 라투르, 『인간·사물·동맹』, 홍성욱 역 (서울: 이음, 2010), p.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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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자)

시각 문화의 경계 안과 밖에서 읽고, 쓰고, 상상한다. 다른 시간과 공간이 교차하는 방법론에 관심이 많으며 플랫폼을 만들고 매개자로부터 배우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자 한다. 현재는 상상력을 통해 현실에 균열을 내는 실천에 관심을 두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아레시보 Arecibo》를 기획했다. (@_eh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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