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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깊이 읽기

    이 글은 이번 게임백서에서 주목할 만한 데이터들과 놓치면 안 될 흐름들을 소개한다. 백서가 더 널리 활용되기 위해 고려할 지점들에 대해서는 지난 10호에서 살핀 바 있고, 그 내용들이 여전히 유효한 상황이므로 이 글에서 반복하지는 않도록 한다. 물론 그 중에는 현실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음도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 Back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깊이 읽기 17 GG Vol. 24. 4. 10. 2024년 3월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이하 ‘백서’ 혹은 ‘게임백서’)>가 발간됐다. 백서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매년 발행하는 정기간행물로, 1년 간의 국내 게임산업 현황(산업 규모, 업종별 현황, e스포츠 동향, 산업 전망, 교육기간 현황 등), 게임이용 동향(플랫폼별 이용 현황 및 특성, 게임에 대한 인식 및 태도 등), 해외 게임산업 현황(플랫폼별·국가별) 등을 다룬다. 국내외 산업규모와 이용행태를 파악하고 경제적 가치를 분석해, 정책수립 또는 연구조사를 위한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백서 발행의 목적이다. 공공과 민간 영역을 막론하고 게임산업이나 이용에 대한 다른 광범위한 조사가 없는 데다, 다른 콘텐츠산업(출판, 만화, 음악, 영화, 애니메이션, 방송, 광고, 캐릭터, 지식정보, 콘텐츠 솔루션) 현황과의 비교 속에서 이뤄지는 조사인 만큼 그 데이터가 갖는 의미는 크다 하겠다. 주로 수치 중심의 데이터를 다루지만, 수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산업·이용 양상과 관련 이슈, 트렌드들에 대해서는 질적으로도 분석함으로써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즉, 게임백서는 게임산업과 이용에 관한 한 해 동안의 양적·질적 데이터가 망라돼 있는 결과물인 셈이다. 이 글은 이번 게임백서에서 주목할 만한 데이터들과 놓치면 안 될 흐름들을 소개한다. 백서가 더 널리 활용되기 위해 고려할 지점들에 대해서는 지난 10호에서 살핀 바 있고, 그 내용들이 여전히 유효한 상황이므로 이 글에서 반복하지는 않도록 한다. 물론 그 중에는 현실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음도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중요한 데이터와 흐름들에는 약간의 해석을 덧붙이고자 한다. 2022년 한 해 동안(2024년 초에 발간된 2023 백서이지만, 기준 데이터는 2022년의 것이다)의 게임산업과 이용을 둘러싼 양상, 이슈, 트렌드를 살피고, 그것들이 갖는 의미를 짚어본다. 한국 게임시장 규모: 22조원 돌파, 성장률 둔화, 플랫폼별 균형 있는 성장 2022년 한국 게임시장은 22조 2,149억 원 규모로, 2021년(20조 9,913억 원) 대비 5.8% 성장했다. 2020년 21.3%, 2021년 11.2% 성장했음을 감안하면, 성장률이 조금씩 둔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플랫폼별 시장에서 두드러지는 지점들을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모바일 게임시장의 굳건한 강세다. 그간 모바일 게임시장 규모는 빠르게, 큰 폭으로 팽창해왔다. 다만 전체 시장에서 모바일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49.7%, 2020년 57.4%, 2021년 57.9%, 2022년 58.8%로, 최근 들어 아주 크게 늘고 있지는 않다. 모바일 게임시장 비중의 확장세 둔화가 앞으로도 계속될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다른 플랫폼들의 비중 역시 아주 크게 달라지고 있지는 않아, 당분간 아주 큰 폭으로 비중이 늘지는 않을 확률이 높아 보인다. 비중이 크게 늘지는 않았음에도 매출액 13조 720억 원으로 전년(12조 1,483억 원) 대비 8.9%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는 게임 제작 및 배급업 중 아케이드게임(8.9%) 다음으로 높은 수치다. 둘째, 아케이드와 PC 게임시장의 성장세가 아주 크지는 않은 가운데, 콘솔 게임시장이 1년 만에 마이너스에서 플러스 성장으로 전환됐다. 아케이드 게임시장은 전년 대비 8.9% 성장해 2,976억 원 규모를, PC 게임시장은 3.0% 성장해 5조 8,053억 원 규모를 나타냈다. 하지만 2019년 전년 대비 31.4%, 2020년 57.3% 성장하다가 2021년 –3.7%의 성장률을 보였던 콘솔 게임시장은 1조 1,196억 원 규모로, 전년(1조 520억 원) 대비 성장률 6.4%를 기록했다. 아케이드 게임시장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해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던 해당 게임시장이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와 오프라인 활동 수요 폭증으로 대폭 증가했다가 회복세에 접어들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 4.3% 감소했던 PC 게임시장은,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선호경향의 혜택으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플러스 성장을 보였다. 하지만 전체 게임시장 내 점유율은 26%대로 성장에 있어 한계가 드러났다. 콘솔 게임시장의 경유 성장률은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전환됐다 해도, PC 게임시장과 유사하게 점유율이 2021년과 비슷한 5% 초반이다. 2022년 콘솔 게임기기나 타이틀 관련해 시장의 변화를 주도할 흐름이 발견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큰 폭의 하락을 보여 왔던 PC방 및 아케이드 게임장 매출액이 2021년에 이어 소폭 증가했다. PC방 매출은 2019년 2조 409억 원에서 2020년 1조 7,970억 원으로 큰 역성장(-11.9%)을 기록했고, 아케이드 게임장은 2019년 703억 원에서 2020년 365억 원으로 시장이 거의 반토막(-48.1%) 났었다. 이는 물론 코로나19만이 아니라 PC 게임시장의 성장 정체와 모바일게임으로의 이용 집중, 가정에서 플레이되는 콘솔게임의 인기 폭증 등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게임 유통시장 매출은 정부의 아케이드 게임산업 활성화 정책, PC 및 아케이드 게임시장의 성장, 그리고 야외 활동 본격화 등과 맞물려 반등했다. 종합적으로, 2022년 한국 게임시장은 지난 4년, 그러니까 코로나19 전후를 비교해봤을 때 아주 크게 확대됐다고는 할 수 없지만(2019년 9.0%, 2020년 21.3%, 2021년 11.2%, 2022년 5.8%), 플랫폼별로 비교적 균형 있게 성장해온 듯 보인다. 그동안 ① 크게 성장하는 플랫폼시장(모바일게임, 콘솔게임), ② 성장이 정체된 플랫폼시장(PC게임, 아케이드게임), ③ 크게 역성장하는 유통시장(아케이드게임장, PC방)의 양상으로 전개되던 흐름이, ① 여전히 성장 중이나 조금씩 안정화되는 플랫폼시장(모바일게임), ② 성장세 둔화와 뚜렷한 플랫폼시장(PC게임), ③ 하락세 혹은 보합세에서 다시 성장세로 전환된 플랫폼시장(콘솔게임, 아케이드게임) 및 유통시장(아케이드게임장, PC방)의 양상으로 전환된 것이다. * 그림 1. 한국 게임시장의 규모 및 성장률(2013~2023년). (단위: 억 원, %).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2024).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28쪽. * 표 1. 한국 게임시장의 플랫폼별 매출액 및 성장률(2019~2022년). 단위: 억 원, %.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2024).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30쪽. 세계 게임시장 내 한국의 위상: 세계 4위로 3위인 일본을 바짝 추격 2022년 세계 게임시장 규모는 2021년 대비 0.9% 증가한 2,082억 4,900만 달러로 집계됐다. 2021년 성장률이 5.9%였음을 감안하면, 성장률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볼 수 있다. 엔데믹 이후 세계 게임시장은 가시적으로 어려워지고 있다. 세계 경제위기, 전염병, 전쟁 등 외부 악재와도 맞물려 불확실성도 심화되는 상황이다. 전체 게임시장의 성장을 견인해왔던 모바일게임이 마이너스 성장(-0.5%)했고, PC게임의 성장률도 0.1%에 그쳤다. 콘솔게임이 2021년과 비슷한 수준인 2.6%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아케이드게임도 2021년(9.5%)에 비하면 크게 성장했다 보기는 어렵다(4.1%). 2016년 이후 세계 게임시장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해온 모바일게임은 2022년에도 916억 8,100만 달러 규모로, 점유율 44.0%를 기록했다. 그 뒤는 콘솔게임(591억 4,100만 달러, 28.4%), PC게임(363억 5,200만 달러, 점유율 17.5%), 아케이드게임(210억 7,600만 달러, 10.1%) 순이다. 표 2. 세계 게임시장의 플랫폼별 매출액(2020~2025년). (단위: 백만 달러, %). 출처: PwC(2023), Enterbrain(2023), JOGA(2023), iResearch(2023), Play meter(2016); NPD(2023); 한국콘텐츠진흥원(2024).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742~743쪽. 2022년 세계 게임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7.8%다. 2019년 점유율이 6.2%, 2020년이 6.9%, 2021년 7.6%였음을 감안하면 비슷한 수준으로 비중이 아주 조금씩 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순위도 2020년 5위에서 2021년 4위로 한 순위 올라간 후, 2022년에도 마찬가지로 4위를 유지했다. 2020년 0.8%, 2021년 1.4% 차이였던 5위 영국과의 거리도 2.2%로 더 크게 벌렸다. 3위인 일본과의 차이는 1.8%로 영국과의 차이보다 적다. 2021년 2.7% 차이에서 0.9%나 좁힌 것을 감안하면, 향후 몇 년 간 한국이 일본을 앞지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1위인 미국(22.8%)과 2위 중국(22.4%)의 차이도 0.4%밖에 나지 않아, 둘의 순위가 바뀔지도 관건이다. * 표 3. 세계 게임 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과 위상(2022년). * 출처: PWC(2023), Enterbrain(2023), JOGA(2023), iResearch(2023), Playmeter(2016), NPD(2023); 한국콘텐츠진흥원(2024b).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767쪽에서 재인용. 한국게임 수출·입 규모: 수출 3.6% 증가, 수입 16.7% 감소, 아케이드게임만 수출 감소 2022년 한국게임 수출액은 89억 8,175만 달러(약 11조 6,040억 원, * 한국은행 2022년 연평균 매매기준율 적용)로 집계됐다. 전년(86억 7,287만 달러)과 비교했을 때 3.6% 증가한 수치다. 2017년 증가율 80.7%를 기록한 이후 2018년 8.2%, 2019년 3.8%로 수출성장세가 주춤하다가, 2020년만 23.1%로 반짝 높은 수치를 보이고 2021년 5.8%, 2022년 3.6%로 다시 이전 증가율 수준이 된 셈이다. 플랫폼별로는 역시 모바일게임의 수출규모가 55억 6,300만 달러(2021년 53억 3,030만 달러)로 가장 컸고, PC게임이 31억 9,467만 달러(2021년 31억 4,562만 달러)로 뒤를 이었다. 콘솔게임 수출규모는 1억 8,651만 달러(2021년 1억 5,674만 달러), 아케이드게임 수출규모는 3,757만 달러(2021년 4,021만 달러)로 나타났다. 전년대비 수출규모를 비교하면, 대부분 플랫폼에서 증가세를 보인 가운데 아케이드게임만이 전년대비 6.6% 감소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표 4. 한국 게임 수출·입 현황(2016~2022년). (단위: 천 달러, %).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2024b).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31쪽의 표를 재구성. 수입은 전년대비 16.7% 감소한 2억 6,016만 달러(약 3,361억 원)를 기록했다. 2017년 이후 계속 감소해왔던 수입 증가율이 4년 만인 2021년 잠깐 반등했다가 다시 큰 폭으로 감소한 것이다. 2016년부터 7년 간 수입액 증가율이 수출액보다 높았던 건 2018년과 2021년뿐이었고, 나머지 해에는 수출액 증가율이 수입액 증가율보다 높게 나타났다. 다른 모든 플랫폼의 수입액 규모에서 감소세가 나타나는 가운데(아케이드게임 –66.3%, 콘솔게임 –48.3%, 모바일게임 –13.4%), PC게임만이 5.4% 증가했다. 2021년 완전히 반대로 모든 플랫폼 수입액이 전년대비 크게 증가하고 PC게임만이 감소했던 것을 감안하면 특기할 변화라 하겠다. * 표 5. 한국 게임 플랫폼별 수출·입 규모 비교(2021년 vs. 2022년). 단위: 천 달러, %.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2024b).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32쪽의 그림을 재구성. 게임 이용현황: 전체의 62.9%가 이용, 이용률 11.5% 감소, 모바일게임 이용률이 최고 만 10~65세의 일반인(n=10,000)을 대상으로 2022년 6월 이후 게임 이용여부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2.9%가 게임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게임 이용률은 2020년 이후 증가세를 보이다가(2019년 65.7% → 2020년 70.5% → 2021년 71.3% → 2022년 74.4%), 다시 2019년 수준으로 하락한 셈이다. 게임을 이용한 경험이 있는 사람(n=6,292)들에게 있어 이용률이 가장 높은 플랫폼은 모바일게임(84.6%)이었다. PC게임(61.0%), 콘솔게임(24.1%), 아케이드게임(11.8%)이 뒤를 이었다. 또, 게임 이용경험이 있는 응답자(n=6,292)의 99.4%가 평소에 인터넷을 이용한다고 응답했다(전년 대비 0.4%p 증가). 업무/학업 외 목적으로 인터넷에 접속할 때 사용하는 기기를 조사한 결과 스마트폰이 93.2%로 가장 높았고, 데스크톱PC가 60.1%, 노트북이 56.4%, 태블릿PC가 42.8%였다. PC방 이용현황에 대한 조사결과는 다음과 같다. 게임 이용자들(n=6,292)의 56.8%가 2022년 6월 이후 1년 간 PC방을 이용한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18.3%가 월 1회 이상 PC방을 이용하고 있었다. 성별로는 여성보다 남성이, 연령별로는 20대가 이용률이 가장 높았다. 게임 이용자의 1회 평균 PC방 이용시간은 169.2분, 미이용자는 126.5분이었다(42.7분 차이). PC방에서 게임을 한다고 응답한 사람(n=3,229)에게 PC방에서 게임하는 이유를 질문했을 때, 1+2순위 응답을 기준으로 ‘친구/동료와 어울리기 위해’(56.7%)와 ‘여가 시간을 보내기 위해’(55.7%)를 꼽은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특히, 연령대가 낮을수록 ‘친구/동료와 어울리기 위해’를 응답한 비율이 높았다. 게임업계 노동환경: 코로나19 이후 사업체 규모별 격차 심화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며 게임업계 생산환경은 신기술 기반으로 급격하게 변화를 맞았다. 메타버스, 블록체인, P2E(play to earn), 인공지능과 관련된 신기술 개발·도입이 활발히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관련기술 보유 인재에 대한 주요 게임사들의 확보 경쟁도 심화됐다. 이에 따라 주요 게임사들의 인력과 인건비 지출이 함께 증가했는데, 특히 개발직군의 임금이 전체적으로 상향 평준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022년 2분기 이후 10대 상장 게임사의 정규직 인력은 오히려 소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코로나19 특수의 종료, 인건비 급등에 따른 비용 부담, 신작 미출시 혹은 실적 미흡 등의 원인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외적 환경도 긍정적이지 않다. 엔데믹이 본격화되는 국면에서 글로벌 금융시장 악화, 전쟁, 중국의 게임규제 강화 흐름들도 한국 게임업계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쳤다. 단기간 내 인력상황이 급변한다는 것은, 그만큼 게임시장의 노동환경이 불안정해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상대적으로 큰 회사들까지 그렇다면, 작은 회사들은 말할 것도 없다. 주 52시간 근무제의 유연화를 둘러싼 논쟁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새 정부 출범 후인 2022년 6월 고용노동부는 연장근로 관리 단위 및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 기간 확대 등을 포함하는 유연근로제 활성화 계획을 발표했다. 게임업계에 주 52시간 근무제가 단계적으로 적용되고 안착화되어 가는 분위기에서, 이러한 계획은 사측과 노조를 중심으로 한 종사자측 입장을 다시 한 번 갈라놓는 계기로 작용했다. 노동시간 유연화를 찬성하는 사측의 논거는 주 52시간제 자체가 게임업계 현실과 맞지 않다는 것, 중국 등 글로벌 게임사와의 경쟁에서 뒤처지게 될 우려가 커진다는 것, 현장에서 유연근로제의 활용률이 떨어진다는 것 등이었다. 반면 노조측은 노동시간이 유연화될 경우 그간 게임업계 노동의 고질적 문제 중 하나로 지적되었던 크런치 모드가 다시 활성화될 우려가 크며, 과로사 등 여러 문제가 되풀이될 것이라며 반발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이 결국 노동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라 우려한다. 그에 따르면 일부 기업들이 시행 중인 휴양지 워케이션, 주 4일 근무제 도입 등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과 삶의 균형을 보장하는 흐름으로 가고 있고, 그나마 상대적으로 큰 기업에서 노조에 가입해 있는 종사자들은 교섭권을 바탕으로 처우와 복지 등에 있어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기회를 만들 수 있다. 반면, 노조가 부재하고 포괄임금제를 유지하고 있는 중소게임사 종사자들의 경우 노동환경 악화의 위험성이 더 커질 수 있다. 이처럼 2022년 국내 게임업계 노동환경은 안팎으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속에서, 일부 긍정적인 변화, 그리고 고용, 노동시간, 처우 등에 있어 대체로 불안정한 요소들이 공존하는 양상을 보였다. 바로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국내 게임시장이 쇠퇴기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당분간 노동환경은 더욱 안 좋아질 확률이 높다. 한국 게임시장 전망: 안정기에서 쇠퇴기로, 그리고 불확실성의 증대 한국의 게임들이 질적·양적으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고, 전세계 게임시장에서 한국 게임시장이 차지하는 비중도 커지고 있지만, 시장규모가 갈수록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게임백서에 따르면 2023년 한국 게임시장 규모는 2022년 대비 10.9% 감소한 19조 7,900억 원을 형성할 전망이다. 2013년 전후로 마이너스 성장한 적 없던 한국 게임시장이, 그리고 이제 20조 규모에 안정적으로 접어든 듯 보였던 한국 게임시장이 이처럼 위축될 것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엔데믹으로 향유 가능한 여러 엔터테인먼트와 야외 활동이 많아진 때문이자, 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부진이 현실화되고 있는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현재 게임시장의 주축인 모바일 게임시장은 꾸준히 전체 시장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유지는 하겠지만, 그 성장률은 한국 경제 전반의 움직임에 크고 작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PC 게임시장은 멀티 플랫폼화와 충성도 높은 플레이어들의 존재에 힘입어 현상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콘솔 게임시장 역시 멀티 플랫폼화, 니치마켓을 추구하는 게임 개발사들의 진입 등 성장에 긍정적인 요소들을 갖고 있지만, 차세대 콘솔기기가 언제 출시돼 얼마나 인기를 끌지에 따라 큰 영향을 받게 될 듯하다.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크지 않은 아케이드 게임과 게임장은 특별한 전기 없이 아케이드 게임을 즐기는 세대들의 엔터테인먼트 트렌드에 영향을 받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가정 보유 PC의 고사양화가 상당히 진행되고 PC방을 찾을 유인이 낮은 상황에서 PC방의 인기는 갈수록 성장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인건비, 개발비, 간접비 등 제반비용의 상승은 게임업계의 영업이익에 긍정적이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무엇보다, 불경기가 심화되고 사람들의 전반적인 가처분소득도 감소 중이다. 글로벌 게임시장도 마찬가지지만, 한국 게임시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예측이 어려운 상황으로 진입하고 있다. 시장규모의 축소가 예상된다면 그 규모는 얼마나 될지, 또 얼마나 계속될지, 그것에 정부, 업계, 그리고 플레이어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구체적이면서도 다양한 논의가 조속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강신규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게임, 방송, 만화, 팬덤 등 미디어/문화에 대해 연구한다. 저서로 <흔들리는 팬덤: 놀이에서 노동으로, 현실에서 가상으로>(2024), <서브컬처 비평>(2020), <아이피, 모든 이야기의 시작>(2021, 공저), <서드 라이프: 기술혁명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2020, 공저), <게임의 이론: 놀이에서 디지털게임까지>(2019, 공저) 등이, 논문으로 ‘이기지 않아도 재미있다: 부모-자녀 게임 플레이의 사회성과 행위성, 그리고 분투형 플레이’(2024), ‘커뮤니케이션을 소비하는 팬덤: 아이돌 팬 플랫폼과 팬덤의 재구성’(2022), ‘‘현질’은 어떻게 플레이가 되는가: 핵납금 게임 플레이어 심층인터뷰를 중심으로’(2022, 공저), ‘게임화하는 방송: 생산자적 텍스트에서 플레이어적 텍스트로’(2019) 등이 있다.

  • 도시 밖도 자본의 바깥은 아니다 - 〈동물의 숲〉과 자본주의

    ‘문명 6’에 등장하는 ‘쇼핑몰’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상업지구가 아닌 주거지역에 지을 수 있는 건물로 등장한다. 건물의 효과 또한 쇼핑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과 조금 다른데, 단순히 상업수익이 나는 곳이 아니라 거주민의 쾌적도와 지역의 관광을 크게 올려주는 효과가 핵심이다. 우리의 여가는 시스템 밖을 꿈꾸지만, 그 밖을 향하는 경로까지도 자본주의 시스템은 상품화한다. 설령 무인도에서의 고요한 삶을 꿈꾸더라도 그조차도 Inc. 가 붙은 기업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숲〉의 설정은 애초에 그런 삶을 생각하며 게임 시스템에 접속하게 되는 시대에 대한 거친 스케치로도 읽힌다. < Back 도시 밖도 자본의 바깥은 아니다 - 〈동물의 숲〉과 자본주의 04 GG Vol. 22. 2. 10.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하 〈동숲〉)은 여러 모로 게임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다. 새로운 콘솔 플랫폼이었던 ‘스위치’의 흥행에 일조했으며, AAA급 게임들이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전통적인 게이머 타겟층과는 사뭇 다른 지점에서 붐을 일으켜 한편으로는 게이머의 범주 확장도 만들어냈다. 무엇보다도 한국에서 ‘〈동숲〉 현상’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붐을 일으키며 게이머가 아닌 이들의 입에도 오르내릴 수 있는 수준의 흥행을 가져왔다는 점은 이 게임의 영향력이 결코 적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널리 퍼져나가는 게임은 그만큼 사회와 관계맺는 영향력의 면적 또한 넓을 수 밖에 없다. 하나의 게임이 만들어낸 세계와 그 세계의 법칙은 내적 완결성을 갖추고 아름답게 작동한다는 점에서 게임이용자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다. 〈리그 오브 레전드〉가 사람들로 하여금 무작위 팀 매칭 기반의 협업 플레이라는, 마치 대학교 조별과제 같은 협업의 방식을 일상화시킨 것과 비슷하게 〈동숲〉의 게임 구조 또한 플레이어에게는 일련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물론 그 메시지가 대단히 강력한가, 별다른 영향력이 없는가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부분이 많지만, 한 게임이 제시하는 완결된 세계가 주는 메시지의 의미 자체를 살펴보는 일은 그리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모든 게임은 깊게든 얕게든 어떤 식으로든 우리가 사는 세계 혹은 우리가 상상하는 세상에 대한 해석과 재현으로 이루어진다. 〈동숲〉의 게임규칙 또한 이러한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인도에 정착해 여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진 구조는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는가? 휴양의 섬은 누구의 것인가? 〈동숲〉은 기본적으로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강렬하게 무엇을 추구해야 한다는 요구를 밀어붙이지는 않는다. 플레이어는 휴양과도 같은 목적으로 준비된 무인도에 입도하며, 거기서 간단한 텐트를 치면서 이런저런 활동을 시작한다. 무엇을 하건, 언제까지 하건 딱히 게임은 급하게 달성해야 할 무언가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매우 느리고 담담한 템포가 게임 전반을 지배한다. 그러나 느린 템포가 곧 게임이 완전한 샌드박스임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동숲〉은 천천히, 그러나 꼼꼼하게 플레이어로 하여금 도전해야 할 다음 과제를 은근하게 제시하며 게임의 진행에 일련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텐트로 만들어진 집은 조금씩 튼튼하고 넓은 집의 모양으로 발전해 나가며, 낚시와 수집의 결과물들은 박물관과 수족관 안에서 빈 자리를 채워나가며 쌓여간다. 게임이 제시하는 이 모든 과제들은 제한시간 내에 해결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사실 반드시 해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게임을 진행시키기 위해 거쳐야 할 요소들로 제시된다. 도전을 요구하는 갈등을 제시하는 게임의 방식은 조금 색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를테면 집 구매를 위한 대출의 방식이 대표적이다. 일반적인 플레이 결과로는 〈동숲〉에서 플레이어는 집 건축의 시기가 도래했을 때 충분한 금액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태에 놓인다. 매우 자연스럽게도 너구리는 플레이어에게 ‘그래서 대출이 준비되어 있습니다’를 제시하고, 플레이어 또한 자연스럽게 이 대출을 받아들이며 집의 개축이 시작된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표면적인 방식은 동일하지만, 이때부터 〈동숲〉의 플레이는 조금 달라진다. 기존의 방식이 되는대로 플레이하며 돈을 모으는 식이었다면, 대출 이후부터는 원금상환을 위한 플레이로 변화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상환이 돈으로만 이뤄지지는 않는다. 게임 안에서는 딱히 돈을 크게 벌 만한 요소들이 직접적으로 제시되지는 않으며(단 하나의 예외는 후술한다) 오히려 여러 활동으로 쌓는 마일리지 포인트가 주요 대출상환의 방법으로 이용된다. 상환의 압박은 현실처럼 거세지 않고 다양한 방법, 무기한에 가까운 상환기한처럼 유연하게 제시되지만 그렇다고 근본적인 구조인 대출 – 상환 시스템이 사라지는 것 또한 아니다. 대출이라는 방식을 통해 부동산(집)을 구매하고 개축하는 것은 우리에게 이제는 보편적인 일로 다가오긴 하지만, 게임에서의 방식은 흔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다른 방식, 돈을 모아 집을 사는 일과 비교해볼 때 그 효과가 잘 드러난다. 더 넓고 많은 장식물과 비품을 갖춰둘 수 있는 좋은 집을 갖기 위해 먼저 막대한 자금을 열매 주워팔기와 물건만들어 팔기로 시도한다고 생각해 보자. 집의 효용을 맛보기 전까지 이런저런 활동으로 푼돈을 모으는 시간은 길고 지루해진다. 그러나 자금이 충당되기 전에 먼저 집 공사가 시작되고 대출장부에 이름만 올라가는 〈동숲〉의 방식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대출자금의 긴 상환을 잊게 만들 만큼의 효용을 제시한다. 이는 게임 디자인의 일환이지만 동시에 오늘날 부동산과 같은 고가의 거래물이 대출을 끼고 돌아가는 매우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어차피 장기간에 걸친 축적으로만 살 수 있는 물건이라면, 적절한 신용보증이 되는 상황이라면 효용을 먼저 누리고 천천히 자금을 갚아 나가는 편이 더 효율적이다. 먼저 누리고 나중에 내되, 선불과 후불만큼의 시간차는 금리로 계산되어 상환액에 포함되는 것이 오늘날의 대출 구매 방식이다. 〈동숲〉은 표면적으로는 대자연 속의 힐링, 복잡한 도시를 떠난 무인도에서의 맑고 아름다운 삶을 제시하지만 그런 삶의 중심을 이루는 주택구매라는 포인트는 자연속의 힐링이라는 주제와는 사뭇 다른, 현대 금융자본주의의 핵심이 뼈대에 자리한 대출구조를 통해 연출된다. 비슷하게 무인도의 삶을 소재로 삼았던 게임 〈심즈 2: 캐스트 어웨이〉는 (물론 여기는 조난에 가까운 상황이지만) 섬에서의 삶을 구현할 때 별도의 화폐경제나 대출 같은 방식이 포함되지 않는다. 같은 무인도의 자연 속 삶이지만 〈동숲〉은 여기가 현대 문명과 완전히 동떨어져있지 않은 곳임을 건축회사와 대출구조, 상점 등을 통해 끊임없이 플레이어에게 주지시킨다. 많은 이들의 탄식과 환호성을 불러왔던 게임 속 시스템인 ‘무 상인’의 존재도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다. 일요일마다 방문하는 행상 ‘무파니’의 무는 딱히 다른 용도가 주목받지 않는, 말그대로 투자수익을 위한 미니게임의 용도로 게임 안에 의미지어진다. 막대한 채무를 손쉽게 돌파할 수 있는 루트로서의 무 투자는 마일리지 도전과제가 있을 만큼 추천되는 플레이인데, 무 값의 변동은 게임 내 다른 요소들과 완전히 무관하며 오직 매수가와 매매가의 차이만이 중요하게 다뤄질 뿐이다. 평화로운 섬에서의 휴양 중에 그것도 매주 일요일마다 찾아오는 ‘무파니’의 존재 또한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연에서의 휴양이라는 컨셉과 어딘가 모르게 이질적이다. 〈동숲〉, 사이버공간에 만들어진 또 하나의 '스타필드'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하는 평화로운 풍광에서의 휴양이라고는 하지만 〈동숲〉이 보여주는 그 힐링의 현장은 우리의 이상과는 다르게 매우 자본주의적인 과정에 의해 만들어진 힐링공간이다. 플레이어가 전입해 온 이 평화로운 섬에 먼저 와 기다리는 것은 너굴 주식회사의 인프라임을 게임 도입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곤충채집과 조개줍기, 낚시와 정원가꾸기는 모두 너굴 주식회사가 제공하는 휴양 프로그램의 일환임을 게임은 시작부터 끝까지 여러 가지 요소들을 통해 강조한다. 휴양을 위해 도시는 벗어났지만, 플레이어는 여전히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를 벗어나지는 못한 것이다. 복잡한 도시를 벗어날 수 있는 출구로서의 무인도 또한 주식회사라는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경로이며, 낭만적인 휴양도 거대 자본에 의해 만들어진 인프라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동숲〉은 시사한다. 심지어 그 시스템이 부과한 채무를 손쉽게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되는 것 또한 일종의 투자 게임인 무 투매라는 점에서 〈동숲〉이 제시하는 휴양의 세계는 한편으로는 섬뜩하다. 우리가 늘 동경하고 욕망하는, 세계의 짜여진 틀을 벗어나고자 하는 것조차도 결국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그 욕망을 포착하고 만들어낸 상품일 뿐이라는 점에서다. 〈동숲〉이 드러낸 현대인의 여가와 휴양에 관한 단면은 실제 현실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다. 대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주말의 여가를 위해 이른바 ‘교외’로 불리는 곳을 향해 나들이를 떠난다. 실제로 도시의 삭막한 환경을 벗어나 산과 강을 찾기도 하지만, 그 교외에 위치한 복합 엔터테인먼트 쇼핑몰들의 존재는 〈동숲〉이 보여준 상품으로서의 휴양을 현실에서 만나볼 수 있는 좋은 예시들이다. ‘스타필드’와 같은 브랜드 쇼핑몰들은 도시의 번화가에 자리한 백화점과 달리 ‘교외’를 중심으로 자리잡으며, 방문객들로 하여금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쇼핑’이라는, 소비와 여가를 결합시킨 활동을 통해 소비자들로 하여금 상품관계 속의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문명 6’에 등장하는 ‘쇼핑몰’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상업지구가 아닌 주거지역에 지을 수 있는 건물로 등장한다. 건물의 효과 또한 쇼핑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과 조금 다른데, 단순히 상업수익이 나는 곳이 아니라 거주민의 쾌적도와 지역의 관광을 크게 올려주는 효과가 핵심이다. 우리의 여가는 시스템 밖을 꿈꾸지만, 그 밖을 향하는 경로까지도 자본주의 시스템은 상품화한다. 설령 무인도에서의 고요한 삶을 꿈꾸더라도 그조차도 Inc. 가 붙은 기업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숲〉의 설정은 애초에 그런 삶을 생각하며 게임 시스템에 접속하게 되는 시대에 대한 거친 스케치로도 읽힌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비언어 커뮤니케이션과 트롤링

    그런 점에서 긍정적이지 않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을, (게임이나 플레이어의 폭력성이나 가학성을 드러내는 것일 수 있지만, 그보다는) 게임 시스템 활용의 하나이자, 전체 플레이의 맥락 속에서 이뤄지는 하나의 실천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Back 비언어 커뮤니케이션과 트롤링 14 GG Vol. 23. 10. 10. 게임과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다른 플레이어(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은 게임하는 과정 내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행위다. 특히 갈수록 많은 게임들이 혼자서는 플레이하기 어려운 형태를 취하는 상황에서, 많은 플레이어들이 게임 안과 밖을 오가며 자유롭고 활발하게 커뮤니케이션한다. 플레이어들은 멀티 플레이어 게임 플레이를 통해 게임 시스템이 부여하거나 스스로 설정한 목표를 달성할 뿐 아니라, 언어 대화와 비언어 표현을 통해 흥미롭고 창의적인 상호작용을 경험한다. 이제 대부분의 멀티 플레이어 게임들에는 플레이어들 간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정보(내적) 인터페이스가 기본적으로 포함된다. 플레이어들은 그러한 인터페이스를 활용해 게임 관련 정보를 교환하고, 전술·전략을 세우며, 때로는 사적인 일상을 나누기도 한다. 보다 원활하고 재미있는 게임 플레이, 그리고 새로운 게임 플레이 커뮤니티의 형성에 있어 (정보 인터페이스를 경유한) 플레이어(들) 간 커뮤니케이션은 필수적인 요소다. 그렇게 커뮤니케이션은, 게임 플레이의 일부가 된다. 하지만 플레이어들 간에 이뤄지는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꼭 게임 플레이를 원활하고 재미있게 만들거나, 새로운 커뮤니티의 형성으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당 비중의 커뮤니케이션이 그 반대의 상황을 가능케 하는 방식으로 행해진다. 다른 플레이어(들)을 조롱·모욕·비방하거나, 게임 플레이의 흐름을 막거나 뒤엎고 의미 없게 만드는 커뮤니케이션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질 때, 플레이어(들)은 모든 게임 내 정보 인터페이스를 활용해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거나 괴롭히는 등 반사회적 행동의 여지를 남기는 데 전념한다. 반사회적 행동의 여지를 남기는 커뮤니케이션은 (일부 발화자에게는 재미나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줄지 모르나) 대개 게임에 참여하는 플레이어(들)을 불편하게 하거나, 그들로 하여금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대응을 하게 만들며, 때론 게임 바깥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행위(현피, 고소 등)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 때문에 대부분의 멀티 플레이어 게임들은 시스템적으로 대비책을 마련해놓고 있다. 채팅창에 아예 욕설을 입력할 수 없게 하거나, 긍정적이지 못한 커뮤니케이션을 한 플레이어에 대한 다른 플레이어들의 신고가 누적되면 제재(채팅 금지, 접속 금지 등)를 가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물론 시스템으로 강제하는 법칙이 아니라 해도,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매너를 지키는 것은 일종의 약속된 규칙이다. 하지만 게임 내 많은 상황에서 특정 플레이어들은 참지 못한다. 일부 플레이어들은 고의로 긍정적이지 못한 커뮤니케이션을 남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언어 커뮤니케이션뿐 아니라,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도 빈번하게 이뤄진다. 심지어 시스템적으로 언어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하게끔 설계된 게임, 그리고 조롱·모욕·비방을 위한 표현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위주의 게임에서조차 반사회적 행동의 여지를 남기는 커뮤니케이션은 행해진다. 어떤 상황에서든 플레이어들은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기 위한 방법을 찾아낸다. 그리고 기가 막히게도 그 방법은 상대에게 먹히고, 곧 게임 내에서 통용된다. 명시적인 언어 커뮤니케이션에 비해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은 단번에 이해하기 어렵고 맥락적이다. 그렇기에 잘 발견되지 않고, 시스템적 제재도 덜 받거나 받지 않는다. 하지만 특정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이 게임 내에서 통용되고 문법화된다는 것은, 그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이 언어 커뮤니케이션만큼이나 명시적인 트롤링(trolling) 기법이 됨을 의미한다. 트롤링이란 게임에서 다른 플레이어들이 불편하거나 화를 낼만한 행동을 의도적으로 해서 반응을 이끌어내려는 행위를 말한다.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특히 그 중에서도 상대방을 조롱하거나 모욕하거나 비방하는 등 긍정적이지 않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살피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이 왜 그리고 언제 이뤄지는지, 트롤링과의 연관 속에서 발생하는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게임 안과 밖에서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논의하고자 한다.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은 왜 그리고 언제 이뤄지는가 게임에서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는 경우는 세 가지 정도다. 미리 이야기하자면, 세 경우는 상호배타적이지 않으며, 특정 상황에서 연결되거나 둘 이상의 유형이 함께 나타날 수 있다. 첫째, 언어 커뮤니케이션과 함께 이뤄지는 경우다. 많은 멀티 플레이어 게임들이 문자·음성 채팅과 같은 언어 커뮤니케이션뿐 아니라, 짧은 감정 표현, 이모티콘 등의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수단을 제공한다. 이 때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은 언어 커뮤니케이션까지는 필요 없거나 언어 커뮤니케이션만으로는 특정 감정이나 정보를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에 주로 사용된다. 둘째, 언어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어려운 경우다. 긴박한 상황이거나, 양손과 온 신경을 항상 써야 하는 상황에서 짧은 감정 표현, 인장, 스마트 핑(packet internet groper: ping)은 (비언어 커뮤니케이션보다는) 긴 메시지를 함축해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전달할 수 있게끔 돕는다. FPS(first person shooter)나 AoS(aeon of strife) 같은 게임류, 그리고 MMORPG(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의 레이드(raid)와 같은 특정 게임 상황에서 언어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어려운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물론 이 때 게임 안에서는 비언어 커뮤니케이션만을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게임 바깥으로는 음성 채팅을 활용한 언어 커뮤니케이션을 병행하는 일 또한 가능하다. 첫째 경우가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이 언어 커뮤니케이션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냄으로써 게임 커뮤니케이션 전반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라면, 둘째 경우는 언어 커뮤니케이션의 빈 곳을 메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셋째, 플레이어 간 언어 커뮤니케이션을 의도적으로 제한하는 경우다. 시스템적으로 언어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데 특정 상황에 의해 하지 못하는 것과, 애초에 시스템적으로 언어 커뮤니케이션이 막혀 있고 비언어 커뮤니케이션만이 허용되는 것에는 차이가 있으며 이는 후자에 한한 이야기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구현하기 위한 작업과는 반대 축에서, 게임 디자이너들은 플레이어(들) 간 커뮤니케이션을 제한하기 위한 작업에도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노력은 대체로 플레이어 간에 언어 커뮤니케이션을 사용하거나 커뮤니케이션을 활발하게 하는 일이, 서사 진행에 방해가 되거나 플레이에 적합하지 않거나 플레이어(들) 기분에 악영향을 줄 확률이 높은 게임들을 위한 것이었다. 가령 MMORPG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에서 플레이어는 얼라이언스와 호드라는 적대적인 두 진영 중 하나를 선택해 캐릭터를 만들게 되는데, 각기 다른 진영 플레이어 간에는 언어로 의사소통하는 것이 시스템적으로 불가능하다. 오직 제스처를 통해서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다. 이러한 시스템 디자인은 두 진영 사이에 서사적 긴장을 조성하는 데 효과적이다.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의 방식 하지만 전술한 바와 같이 플레이어(들) 간 언어 커뮤니케이션을 제한하는 게임을 할 때조차도, 플레이어들은 부정적인 메시지 전달을 위한 방법을 찾아낸다. 대표적인 방법이 ‘감정 표현’을 활용하는 것이다. TCG(trading card game) <하스스톤(Hearth Stone)>에서 플레이어는 본인이 선택한 영웅을 클릭(PC로 플레이하는 경우)하거나 터치(모바일로 플레이하는 경우)함으로써 간단한 감정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 그 자세한 메시지는 영웅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지만, 기본적으로 메시지는 ① 감사, ② 칭찬, ③ 인사, ④ 감탄, ⑤ 이런!, ⑥ 위협의 6가지 감정 표현을 담아낸다. 혹자는 그 메시지 자체가 언어적 커뮤니케이션에 가까운 것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겠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그 메시지는 플레이어가 직접 입력하는 것이 아니며, 세부 내용을 고르거나 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클릭/터치 한 번으로 발화자가 기재하지 않은 메시지를, 그것도 특정 감정에 대한 것만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하스스톤>의 인스턴트 감정 표현은 한 단어로 적은 이모티콘이자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의 일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6개의 감정 표현에는 사실상 ‘⑥ 위협’ 정도를 제외하고는 부정적 메시지가 존재한다 보기 어렵다. 하지만 특정 맥락에서 플레이어는 6개 중 한 개 이상의 감정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상대방을 조롱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상대 플레이어 턴에서 시간이 지연될 때 ‘③ 인사’를 연타하면, 그것은 상대에 대한 재촉을 나타낸다. 상대가 실수하거나 상대에게 큰 피해를 준 후 ‘① 감사’ 표현을 하는 일은 누가 봐도 조롱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전사 캐릭터 중 하나인 ‘정신 나간 천재 박사 붐(이하 ‘붐’)’은 반말은 기본이고 특유의 길면서도 도발적인 어휘(예를 들어, ① 감사: “고마워! 넌 마지막에 처리해줄게”)와 (심지어) 억양으로 인해 그 어떤 다른 캐릭터들보다도 상대 플레이어의 짜증을 유발한다. (앞선 두 번째 사례를 붐이 한다고 생각해보자...) AoS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 이하 ‘LoL’)>에서도 챔피언들 감정 표현이 존재한다. 컨트롤(Ctrl) 버튼 1부터 4까지를 누름으로써 각각 농담, 도발, 춤, 웃음을 사용할 수 있다. 동작이 큰 챔피언은 감정 표현을 하지 않을 곳에서 감정 표현을 (연타)함으로써 상대방에게 소위 ‘인성질(게임 플레이에서 나쁜 매너를 보이는 행위)’을 할 수 있다. 게임이 안 풀리는 상대방을 향해 시끄럽게 웃어대거나 촐싹대는 움직임을 반복하는 행위는 상대 플레이어(들) 기분에 아주 큰 타격을 주기도 한다. 이유는 알기 어렵지만 에서 시스템적으로 상대의 감정 표현을 차단할 수 있게끔 해놓기는 했다. ‘인장’을 통한 인성질도 빼놓을 수 없다. 인장은 게임 내 승패에 직접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상대 플레이어를 도발하고 조롱하는 데에는 유용하게 쓰인다. 라인전 시작 전 머리 위에 숙련도 인장을 띄우며 선전포고하는 것부터 시작해, 죽은 상대 챔피언 앞에서 인장을 연속으로 펼치는 행위, 심지어 e스포츠(e-Sports) 대회에서 상대 플레이어의 전 소속팀이나 승리 팀의 인장을 사용하는 행위 등이 이에 속한다. 특히 AoS 장르 게임들에서 자유 사용되는 ‘스마트 핑’을 반복적으로 날림으로써 특정의 긍정적이지 못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도 있다. 스마트 핑이란 팀원에게 특정 메시지(공격, 수비, 경고, 지원 요청 등)와 관련된 신호를 보내 플레이를 원활하게 해주는 기능을 말한다. 핑을 날리면 모든 파티원들이 그 신호를 보고 들을 수 있기 때문에, 핑 남발을 막기 위한 회수 제한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Heroes of the Storm>에서는 플레이나 커뮤니케이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같은 편 플레이어(들)에게 반복적으로 핑을 찍음으로써, 해당 플레이어(들)의 부족한 실력이나 그(들)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고자 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나타난다. 플레이 방식을 바꿈으로써 같은 편이나 상대 편 플레이어(들)에게 부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가능하다. 일부러 대충 플레이하거나, (특히 턴제 게임에서) 천천히 플레이하거나, 진행 중인 게임을 중간에 종료하거나(물론 멀티 플레이어 게임에서 이 경우에는 대체로 시스템적 제재가 가해진다), (특히 RTS(real-time strategy)에서) 동일 진영을 공격하는 행위 등이, 굳이 언어 커뮤니케이션을 사용하지 않고도 상대 플레이어(들)을 자극하는 방법들이라 하겠다. 비언어 커뮤니케이션만 사용 가능한 게임들에서, 경기가 끝난 후 상대방에게 친구 요청을 보내 (상대방이 요청을 받으면) 본격적(?)인 언어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하는 플레이어들도 있다. 그 밖에도 부정적 의미의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그야말로 기상천외하며, 끝없이 새롭게 개발되고 통용된다. 비언어 커뮤니케이션과 트롤링, 그 의미 그렇다면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트롤링은 게임 안과 밖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며,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첫째,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트롤링은 게임의 시스템적 디자인과 플레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상호작용이 어떻게 서로 얽히고 충돌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사례다. 멀티 플레이어 게임에서는 시스템적으로 허용되든 그렇지 않든,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이 허용되기만 한다면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사용함으로써 상대방에게 부정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이 가능하다. 이는 커뮤니케이션 자체를 대폭 제한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친근하고 편안한 커뮤니케이션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게임 디자이너들의 목표와는 노골적으로 배치된다. 메시지 내용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떠나 생각해본다면,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을 새로운 맥락이나 용도로 바꿔 쓰는 일은 플레이 차원에서 게임 내 커뮤니케이션의 진화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준다. 물론 이러한 진화는 안 되는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상대에게 부정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마려는 플레이어(들)의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상대에게 받아들여지고 게임 내에서 통용되는지의 과정을 고찰할 수 있게끔 해준다는 것이다. 둘째, 부정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보내는 플레이어와 그것을 받는 플레이어를 보다 입체적으로 상상할 필요가 있다. 맥락 바깥의 플레이어(들)에게 있어서는 감정 표현이나 스마트 핑을 반복하는 행위가 아무 것도 아닌 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특정 게임 내에서만 작동하는 관습과 코드에 익숙하지 않거나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은 언어 커뮤니케이션처럼 명시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플레이어에 따라 특정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민감도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범위가 다를 수 있음은 물론이다. 보내는 플레이어의 의도도 다양하다. 어떤 플레이어(들)은 상대 플레이어(들) 앞에서 자신을 과시하려 한다. 또 다른 플레이어(들)은 상대 플레이어(들)을 조롱·모욕·비방하는 데서 재미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플레이어는 극소수이거나, 아주 특정한 맥락에서만 그런 느낌을 갖게 될 것이라 믿는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부정적 커뮤니케이션의 책임을 상대에게 돌리고, 플레이 과정에서 느낀 상대방에 대한 긍정적이지 못한 감정을 풀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은 얼핏 언어 커뮤니케이션만큼 노골적이고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특정 맥락에서는 언어 커뮤니케이션이 할 수 없는 표현을 가능케 함으로써 더 큰 효과를 획득하게 될 수 있다. 플레이어(들)에 따라, 그들이 처한 상황과 맥락에 따라, 그와 관련되는 의도와 수용도에 따라 보내는 메시지와 받는 메시지의 효과와 의미가 더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이다. 마지막으로,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상대 플레이어(들)을 조롱하거나 모욕하거나 비방하는 등 긍정적이지 않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행위를 ‘트롤링’으로 규정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재고가 요구된다. 글 말미에 어울리지 않는 말일 수 있겠다. 트롤링은 게임에서 다른 플레이어들이 불편하거나 화를 낼만한 행동을 의도적으로 해서 반응을 이끌어내려는 행위를 총칭할 뿐이며, 그 범위가 당연히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부정적 커뮤니케이션을 보내는 플레이와 그것을 받는 플레이어 간 메시지에 대한 이해가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점은 차치하고)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은 언어 커뮤니케이션보다 모호한 만큼, 그 커뮤니케이션의 자장 안에 있는 플레이어(들) 간 관습과 코드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하며, 기본적으로 중의적이다. 의도는 있을지언정, 그 반응은 의도와 같지 않을 수도 있다. 항상 반응을 의도하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커뮤니케이션을 발신하는 일 자체가 목적일 수도 있다. 게임에서의 트롤은 놀이로서의 플레이 진행을 방해하는 존재들인데, 그러한 커뮤니케이션이 언제나 게임 플레이를 게임 플레이 답지 않게 만든다고도 보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을 트롤링으로 칭하는 일이 적절하든 그렇지 않든, 그리고 앞으로 계속 그렇게 칭해지든 그렇지 않든,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은 앞으로도 게임 내에서 죽 이어지거나 어쩌면 더욱 활발하게 가시화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글에서 살펴본 류의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은 게임의 시스템적 디자인과 플레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상호작용 사이의 충돌, 커뮤니케이션이 제한적으로만 이뤄질 수 있는 게임에서 발생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역동성 혹은 진화,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이 낳는 메시지 의미에 관한 플레이어 간의 합의 또는 협상 문제 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풍부한 커뮤니케이션이 반드시 풍부한 시스템적 설계나 정보 인터페이스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이 글에서는 ‘긍정적이지 않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에 논의의 초점을 맞췄지만, 사실 이는 긍정적인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나아가 언어 커뮤니케이션과의 조화 속에서 언제나 함께 일어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긍정적이지 않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을, (게임이나 플레이어의 폭력성이나 가학성을 드러내는 것일 수 있지만, 그보다는) 게임 시스템 활용의 하나이자, 전체 플레이의 맥락 속에서 이뤄지는 하나의 실천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플레이어(들)이 허용하는 적정선 하에서, 이런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은 게임 커뮤니케이션의 일부이자 플레이의 일부다. Tags: 하스스톤, 핑, 스마트핑, 트롤링,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강신규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게임, 방송, 만화, 팬덤 등 미디어/문화에 대해 연구한다. 저서로 <흔들리는 팬덤: 놀이에서 노동으로, 현실에서 가상으로>(2024), <서브컬처 비평>(2020), <아이피, 모든 이야기의 시작>(2021, 공저), <서드 라이프: 기술혁명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2020, 공저), <게임의 이론: 놀이에서 디지털게임까지>(2019, 공저) 등이, 논문으로 ‘이기지 않아도 재미있다: 부모-자녀 게임 플레이의 사회성과 행위성, 그리고 분투형 플레이’(2024), ‘커뮤니케이션을 소비하는 팬덤: 아이돌 팬 플랫폼과 팬덤의 재구성’(2022), ‘‘현질’은 어떻게 플레이가 되는가: 핵납금 게임 플레이어 심층인터뷰를 중심으로’(2022, 공저), ‘게임화하는 방송: 생산자적 텍스트에서 플레이어적 텍스트로’(2019) 등이 있다.

  • 유럽 속의 타자, 게임 속의 동유럽

    서구, 오늘날 세계 문화의 중심이라 불리는 이 말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북미와 유럽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근대를 이루는 많은 기술적, 정치적, 문화적 배경들의 원산지로서 서구는 일종의 기원으로 여겨지며, 그 중에서도 특히 근대적 의미로서의 북미가 사실상 유럽으로부터의 문명 이주를 통해 만들어졌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현대 세계의 많은 부분은 유럽으로부터 나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 Back 유럽 속의 타자, 게임 속의 동유럽 06 GG Vol. 22. 6. 10. 서구, 오늘날 세계 문화의 중심이라 불리는 이 말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북미와 유럽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근대를 이루는 많은 기술적, 정치적, 문화적 배경들의 원산지로서 서구는 일종의 기원으로 여겨지며, 그 중에서도 특히 근대적 의미로서의 북미가 사실상 유럽으로부터의 문명 이주를 통해 만들어졌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현대 세계의 많은 부분은 유럽으로부터 나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동아시아에 위치한 우리에게도 유럽에 관한 지식과 관심은 상당한 비중으로 다가온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청소년 필독서로 오르내리고, 세계사에의 접근 또한 상당부분 유럽의 변화를 중심으로 기술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그 유럽이라는 말도 사실은 서유럽이라는 좀더 좁은 범주를 가리키는 말임을 떠올리게 된다. 이를테면 동유럽이라고 불리는 지역은 유럽이라는 말로부터 조금은 동떨어져 있다. 이는 디지털게임에서 이루어지는 어떤 재현과 묘사에서도 자주 드러난다. 동유럽을 다룬 두 개의 게임 출입국관리소에서의 여권 심사라는 독특한 소재를 게임화한 루카스 포프의 작품 〈페이퍼스, 플리즈〉(2013)는 그 지리적 배경으로 아스토츠카라는 가상의 국가를 설정하지만, 우리는 현실에서 아스토츠카가 동유럽 어디쯤을 가리키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깨닫는다.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이름이나 국가명, 국가 상징이나 경직된 관료제로 드러나는 보수화한 공산주의 체제 등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이 게임이 한창 분쟁을 겪고 있던 시기의 동유럽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어수선한 한 장면임을 떠올리게 한다. 11비트 스튜디오의 화제작 〈디스 워 오브 마인〉(2014)은 내전 상황 속에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에서 휴전의 날까지를 버티는 과정을 윤리와 생존의 딜레마로 풀어내며 큰 화제를 모은 바 있었다. 이 게임 또한 가상의 국가인 그라츠나비아의 도시 포고렌을 배경으로 삼는데, 같은 국가를 구성한 두 민족의 갈등과 분리주의 움직임이 내전으로 격화된 상황 또한 동유럽 어딘가에서 벌어진 내전을 모티프로 삼고 있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애초에 개발사가 폴란드인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 〈페이퍼스, 플리즈〉와 〈디스 워 오브 마인〉은 각기 다른 주제를 다루지만, 전쟁과 같은 문제로 사회가 어수선한 동유럽이라는 유사한 배경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두 게임은 모두 현실적인 주제로부터 아이디어를 가져와 게임화한 사례다. 〈페이퍼스, 플리즈〉는 이상과는 달리 현실에서 관료제가 더욱 고착화하면서 기이한 독재 체제로 바뀌어버린 공산주의 사회가 만드는 모순으로부터 플레이어가 넘어서야 할 역경을 이끌어낸다. 국가로부터 배정받은 공동주택에 대가족이 모여살지만, 플레이어의 낮은 연봉으로는 난방과 식비조차 해결하기 쉽지 않은 상황은 출입국 사무에서의 부정부패를 자연스럽게 촉발한다. 이로부터 벌어지는 온갖 밀입국은 경우에 따라 국가의 존립을 흔들기도 할 정도의 여파를 갖는다. 〈페이퍼스, 플리즈〉의 플레이를 간단히 요약한다면 ‘실패한 현실공산주의를 향한 개인적, 사회적 차원에서의 도전’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디스 워 오브 마인〉 또한 플레이어가 넘어서야 할 과제들은 현실적인 배경으로부터 시작된다. 국가의 거대한 분열이 갈등으로 치닫고, 이로 인해 벌어진 내전은 사회 전반의 질서를 흔들며 물리적, 제도적인 모든 안전망을 무력화했다. 수도와 전기마저도 끊어지는 상황에서 생존을 요구받은 플레이어의 분투 또한 동유럽 – 내전이라는 의미 연결을 통해 현실의 뉴스를 차지하던 동유럽 내전에서의 생존기라는 현실적인 주제로 게임의 이야기를 맞춰나간다. 실패한 공산주의에서 파생한 독재, 민족과 인종대립에 의한 내전상태는 그런데 사실 꼭 동유럽이어야만 하는 이유는 없다. 이런 사회적 이슈들이 벌어지는 곳은 따지고 본다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문제다. 아프리카의 앙골라에서 벌어진 공산주의 독재 장기화에 의한 부패나 내전 문제, 르완다 학살과 같은 민족, 인종간의 갈등과 내전처럼 오히려 같은 이슈라면 아프리카 쪽이 더 크고 위험하며 극단적인 경우들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게임에서 아프리카 내전이나 독재 문제 등은 잘 다뤄지지 않는다. 〈파크라이〉 시리즈처럼 마약밀매나 독재, 사이비 종교 같은 이슈를 다루는 게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럴 때 게임의 자세는 그 이름만큼이나 ‘먼’ 스탠스를 취한다. 게임 안에서 벌어지는 잔악무도한 양상들은 그 무대가 ‘우리’의 세계가 아닌 ‘머나먼’ 세계로 그려진다. 여기서 ‘우리’의 범주는 상당히 좁아 보인다. 〈파크라이 5〉가 다룬 사이비 종교의 세계에서 플레이어의 관점은 ‘도시민’이다. 이 이상한 일들은 ‘머나먼 시골’로 그려진다. 도심에서의 범죄를 다루는 〈GTA〉같은 시리즈가 있긴 하지만, 여기는 사회적 이슈를 접근하는 방식이 〈페이퍼스, 플리즈〉나 〈디스 워 오브 마인〉과는 아예 다른 방향이라 함께 묶이기는 어렵다. 아프리카의 독재 문제는 〈재기드 얼라이언스〉 처럼 플레이어를 외부인이자 제3자 개입의 시점으로 게임에서 다뤄지곤 한다. 반면 경우에 따라 유럽, 서구라는 범주 안에 포함되면서도 서유럽 중심의 선진국과 달리 정치적 불안요소를 높게 가지고 있는 동유럽은 한편으로는 서구라는 동질선상에 놓이면서도 사회적 불안이라는 요소 측면에서는 좁은 서구의 바깥 범주에 놓이는 독특한 위치다. 플레이어가 게임 내에서 발생한 사건에 직접 휘말리고 그로부터 여파를 받아 넘어서야 할 과제들 앞에 놓이는 〈페이퍼스, 플리즈〉 류의 게임에서 제3자적인 접근은 오히려 난이도 – 숙련도 간의 길항을 약화시키게 될 것이다. 아프리카처럼 머나먼 곳의 이야기도 아닌, 같은 유럽이라는 의식 안에서 발생한 문제에 개입해야 하는 상황은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많은 게임들로 하여금 동유럽의 불안한 정치상황이라는 소재를 택하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서구'라는 시점의 문제 ‘왜 동유럽인가?’ 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그래서 ‘플레이어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이 선행되어야 한다. 디지털게임은 다른 매체에 비해 접근에 필요한 인프라에의 요구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게이밍 PC라고 불리는 쾌적한 게이밍을 위한 장비는 범용 PC에 비해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며, 사용하는 전력도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콘솔게임기도 만만한 가격은 아니며, 특히 온라인 시대 이후로는 쾌적한 게임을 위해서는 플레이 뿐 아니라 게임소프트웨어의 구매와 패치 등에도 충분한 속도와 용량의 네트워크 인프라가 요구된다. 안정적인 전력과 인터넷이 공급되고 고가의 디지털장비를 구하는 일이 어렵지 않은, 디지털게임 플레이어의 위치는 어쩔 수 없이 서구를 포함하는 선진국에 자리하게 된다. 현실의 문제를 게임 플레이를 통해 플레이어에게 전달하기 위한 게임 디자인들은 디지털게임 플레이어의 보편적 위치가 ‘서구’라는 전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입장에 선다. 같은 이슈라도 유럽권에 가까운 곳을 배경으로 삼을 때 이 문제는 비로소 플레이어의 문제로 좀더 받아들여지게 된다는 것이다. 외양도 문화도 ‘먼 타자’일 수 밖에 없는 지역보다 ‘서구’라는 시선의 위치에 가깝게 자리하는 듯한 동유럽의 사례가 성공적인 메시징을 수행한 게임으로 거론되는 배경은 플레이어와 재현된 세계가 갖는 그 거리감으로부터 무관하지 않다. 현실사회의 문제를 다루는 게임에 있어 동유럽은 유럽이면서도 ‘서구’로부터 타자화된 대상이 된다. 그리고 ‘서구’가 아님에도 선진국의 범주 안에 들어가기 시작한 한국 게이밍 문화는 플레이어의 물리적 시점 면에서는 ‘서구’의 범주와 겹치는 부분들을 갖는다. 디지털게임들이 현실사회의 문제를 좀더 많이, 더 다양하게 다루는 시대가 온다면, 이 시선과 대상의 거리감은 좀더 중요한 문제로 작동할 수도 있다. 영화의 카메라와는 또다른 게임매체의 접근방식이 만드는 재현대상과의 거리감 문제를 좀더 고민해 볼 이유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기억의 조작술: 사건의 컨벤션으로부터 벗어나기로서 인디게임

    장르는 게이밍에서 오랜 논쟁의 주제 중 하나다. 디지털게임의 매커닉과 외형은 무궁무진하지만 소설이나 영화, TV쇼와 마찬가지로 어떤 약속된 경로들이나 재현의 양태가 축적되고 있음다. 컨벤션(convention)은 창작자와 텍스트, 그리고 수용자 사이에 형성되는 하나의 묵시적인 관습으로 우리는 무수히 많은 텍스트들이 생산되고 반복적으로 읽히는 과정에서 공통의 컨벤션을 체화한다. 장르가 계약을 통해 창작자-수용자 모두 텍스트의 진행 과정을 사전에 공식화한다면, 컨벤션은 비공식적으로 모두가 따르는 불문율이다. 장르는 헌법처럼 작동하지만 컨벤션은 그 안의 관습법 혹은 윤리처럼 흐른다. 장르는 끌어당기는 반면, 컨벤션은 대류한다. 장르는 포뮬러(정형화된 공식)와 컨벤션을 만들고, 스타일과 결합하는 과정에서 스테레오타입과 클리셰를 생산한다.  < Back 기억의 조작술: 사건의 컨벤션으로부터 벗어나기로서 인디게임 11 GG Vol. 23. 4. 10. 게이밍의 컨벤션 장르는 게이밍에서 오랜 논쟁의 주제 중 하나다. 디지털게임의 매커닉과 외형은 무궁무진하지만 소설이나 영화, TV쇼와 마찬가지로 어떤 약속된 경로들이나 재현의 양태가 축적되고 있음다. 컨벤션(convention)은 창작자와 텍스트, 그리고 수용자 사이에 형성되는 하나의 묵시적인 관습으로 우리는 무수히 많은 텍스트들이 생산되고 반복적으로 읽히는 과정에서 공통의 컨벤션을 체화한다. 장르가 계약을 통해 창작자-수용자 모두 텍스트의 진행 과정을 사전에 공식화한다면, 컨벤션은 비공식적으로 모두가 따르는 불문율이다. 장르는 헌법처럼 작동하지만 컨벤션은 그 안의 관습법 혹은 윤리처럼 흐른다. 장르는 끌어당기는 반면, 컨벤션은 대류한다. 장르는 포뮬러(정형화된 공식)와 컨벤션을 만들고, 스타일과 결합하는 과정에서 스테레오타입과 클리셰를 생산한다. 이러한 과정은 추리물에서 특히 투명하게 나타난다. 화려하고 어두운 대도시, 연쇄 살인사건과 무능한 경찰, 괴팍한 성격에 방대한 지식과 촉을 가진 탐정, 사건의 추적 과정에서 드러나는 구조의 모순과 지적 유희는 관객에게 편안하고 즐거운 긴장을 선사한다. 트렌치코트와 모자를 쓴 인물들의 하드보일드한 묘사와 혈흔이 낭자하는 폭력은 복잡함이 아니라 스타일로서, 이는 느긋하게 목적지까지 타고 가는 교통수단처럼 느끼게 만든다. 망설이며 입고 나온 옷이 튀지 않고 길거리 군중의 패션에 녹아듦을 느낄 때 우리는 안도한다. 사람들은 이 탑승 경험에서 특별한 것들을 기대하게 되는데, 그 집합적인 요구들 속에서 컨벤션이 나온다. 영화와 TV쇼는 모두 편안한 컨벤션을 만들기 위해 공식화된 장치들을 사용한다. 필름누아르 영화에서 총격전이나 살인 장면, 로맨스물에서 주인공들이 사랑에 빠지는 장면 등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고속촬영 연출 등이 대표적인 예다. * 좌측부터 윈스턴 처칠, 필립 말로(빅슬립), 닉 발렌타인(폴아웃4), 릭 데커드(2019블레이드러너). 컨벤션은 무수한 스테레오타입과 스타일들 사이의 점들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지만 공유된 관습의 선분들이다. 검은 양복에 톰슨 기관총을 든 남자가 나타났을 때, 중절모에 트렌치코트를 입은 남자가 담배에 불을 붙일 때 우리는 그 뒤에 일어날 사건들을 기시감처럼 느낀다. 기관총 난사 장면은 교차 편집이나 고속촬영으로 연출되거나, 담배 연기가 자욱한 어둠 속에서 권총이 무심히 발사될 것이다. 그렇다면 게이밍에서 컨벤션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될까? 기존의 루돌로지(ludology)의 논의들은 디지털게임을 텍스트라고 부를 수 있는지부터 의심했다. 이는 서사가 게이밍의 토대가 아니라는 단호한 부정에서 출발한다. 그렇다. 테트리스나 팩맨 같은 게임에서 어떤 서사를 읽을 수 없으며, 때때로 방대한 서사를 갖춘 게임에서도 종종 서사가 부재한 플레이 행위성이 출현한다. 올셋(Espen Aarseth)이 지적하듯이 게이밍은 해석이 아니라 탐색이 근간이 되는 실천이다. 이는 플레이의 행위성이 서사와 플롯의 시학을 읽어나가는 과정이 아니라 공간을 탐험하고, 오브젝트를 만지면서 변화시키는 조형행위에 훨씬 기대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게이밍에서는 컨벤션이 포뮬라에 앞서고, 조작이 문법에 우선한다. 인터페이스, 매커닉, 조작 디자인이 생각보다 훨씬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경로들을 만들 뿐 아니라 행위성을 창조함으로써 게이밍을 생산한다. 영화나 TV쇼에서 장르가 형성되는 순간은 포뮬러가 우선한다. 탐정이 살인사건을 수사하면서 마주하는 공권력 사각지대와 현실의 모순, 카우보이가 방랑 중에 들린 마을에서 악당들을 혼내준 뒤 석양 너머로 떠나는 구조(포뮬러)는 광활한 황야의 풍광, 12시 정각 고독한 두 남자의 권총결투, 질주하는 열차 위에서의 아찔한 몸싸움, 톰슨 기관총을 난사하는 갱스터들의 폭력(컨벤션) 등을 자아낸다. 반면 게임에서는 이 도식이 변주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실시간 전술 시뮬레이션 게임이라는 공통의 플레이 암묵지가 있고, 플레이를 만들기 위한 요소들(자원, 생산, 유닛)을 덧붙이고, 그 위에 두 진영 간의 전쟁이라던가 외계인-지구인 간의 투쟁 같은 구조가 덧씌워진다. 똑같은 어드벤처 게임이라도 그것이 정지된 평면의 포인트앤클릭으로 이루어지는지 1인칭의 시점에서 공간을 탐험하는 방식인지에 따라 상반된 포뮬러가 형성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흐름에는 정형화된 항로가 따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인디아나 존스〉나 〈원숭이섬의 비밀〉은 포인트앤클릭 어드벤처의 대명사이지만, 〈검은방〉 시리즈처럼 하드보일드하고 어두운 미스터리물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횡스크롤 슈터는 〈던전앤 드래곤〉 이나 〈황금도끼〉, 〈너구리〉, 〈소닉〉, 〈록맨〉 같은 호쾌하고 캐주얼한 스테이지클리어 게임이이나 캐슬바니아 게임에 최적화된 것처럼 여겨지지만 〈반교: 디텐션〉처럼 역사적 트라우마를 다루거나, 〈림보〉가 보여주듯 그로테스크한 기억의 알레고리 공간이 되기도 한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는 화끈한 전쟁의 스펙터클을 선사하지만, 〈스펙옵스: 더 라인〉은 전쟁의 스펙터클을 해체해 전쟁의 모순을 재조립한다. 요컨대 게이밍에서 장르와 컨벤션의 관계는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하는 것이 아닌 상부구조가 토대에 협상을 제안하는 관계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사건의 역사화, 기억의 조작술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고도로 노동 집약적이고 창의의 분업이라는 성격을 띠는 문화산업 자장에서 장르는 익숙한 산책로가 되기도 하지만 종종 뻔한 보물찾기가 되기도 한다. 게이밍은 이런 난점이 특히 두드러지는 분야일 것이다. 수많은 1인칭 슈터 게임, 롤플레잉 게임, 시뮬레이션 게임들이 있지만 우리는 이 다양하게 획일적인 난립 가운데서 어떤 환멸을 느낀다. 체육관에 가서 매일 똑같은 무게로, 똑같은 회수로 정해진 세트만큼 운동하면서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처럼 아주 균질적인 작용 반작용이 유희감각을 소구시킨다. 이 지난한 컨벤션의 루프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다양한 시도들이 지금까지 있어왔지만 중요한 것은 크게 두 가지다. 나는 게이밍의 핵심을 절차적 수사학이나 에르고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조작술’로 보기를, 그리고 확고하기 짝이 없는 컨벤션으로부터 벗어나는 경로로서 ‘인디’의 이념을 다르게 전유하기를 제안한다. 보고스트(Ian Bogost)가 정의하듯 게이밍은 ‘절차적 수사학(procedural rhetoric)’에 크게 기대고 있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인터페이스와 컨트롤러에 연동시킨 자신의 신체를 움직여 게임속의 공간·오브젝트를 조작한다. 플레이어는 탐색하고, 탐험할 뿐 아니라 조형하면서 스케일된 게임 시공간의 점들에 선을 연결해 나간다. 이 프로세스는 과정 추론적이고, 로지컬한 사고를 동반하며, 다분히 공학적이다. 게임은 기본적으로 텍스트이기 이전에 행위성(혹은 텍스트)을 출력하는 무형의 기계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풋이 있고, 아웃풋이 있으며 반드시 피드백을 동반한다. 따라서 인터페이스를 조작해 게임 내 디자인과 조응하는 과정들, 이를 설계하는 방식을 절차적 수사학이라 부른다. 절차적 수사학은 영화에서 몽타주, 소설에서 서술기법과 같은 위상으로 게임만의 독특하게 담화 요소이기도 하다. * 〈소닉〉(좌상), 〈더블드래곤〉(우상), 〈반교:디텐션〉(좌하), 〈림보〉(우하). 인디 게임의 래디컬한 상상력은 사건의 시간으로부터 벗어나 기억의 시간들을 재배치하고자 하는 어셈블리지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동일한 매커닉, 축적된 컨벤션을 전유하면서 기억을 조작하고, 나아가 자율적인 역사 인식의 계기들을 생성하는 ‘기억의 조작술’은 게임이 존재론적 한계(에르고딕 또는 절차적 수사학이라 여겨지던)로부터 벗어나 자율적이고 실천적인 행위성의 순간과 조우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절차적’ 혹은 ‘에르고딕’ 이라는 수사는 다분히 결정론적으로 들린다. 디지털게임이 컴퓨터와 알고리즘의 산물이라고 해서 반드시 계량적인 측면만 그 본질로 정의될 이유는 없다. 역사의 지형은 언제나 불연속적이고 위상학적이다. 마르크스의 오랜 전통이 가르쳐주듯이, 역사는 물질대사의 과정이지 추상이나 관념의 구성물이 아니다. 아주 촘촘히 수학적으로 짜여진 사고야말로 번번히 이데올로기라는 기만적 재현계를 만들어왔음을 우리는 안다. 사회진화론이 제국의 팽창 과정에서 우생학이라는 결과물을 만든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게이밍이 우리 두뇌의 어떤 로지컬한 뉴런들을 자극하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로직이 어떤 역사를 상상하게끔 만드느냐다. 우리는 파블로프의 개나 꼭두각시 인형이 아니다. 디지털 게임이 데이터 처리의 절차들로 이뤄졌다고 해서 역사를 떠올리지 못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이는 마르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무의지적 기억의 의미를 비선형적인 의식 흐름 속에서 발견하는 과정과 연동된다. 절차적 수사학 또는 에르고딕의 개념은 게임이라는 유희공간 안에서 사건을 다루는 기술이라 할 수 있으며, 우리는 산업적 컨벤션으로 벗어나기 위해 사건 너머의 숭고를 다루는 조작술을 필요로 한다. * 〈언폴디드: 동백이야기〉(좌), 〈페치카〉(우) 즉 사건은 역사가 될 필요가 있는데, 이 과정을 나는 ‘인디’ 의 개념으로부터 재전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건의 연속에서 엔딩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닌 사건의 배치 속에서 어떤 역사를 획득하는 것이다. 대만의 반세기 철권통치기를 응시하는 〈반교:디텐션〉, 독립운동가들의 고난과 투쟁을 그리는 〈페치카〉, 제주 4.3 대량학살의 파편들을 퍼즐풀이로 재구성하는 〈언폴디드: 동백이야기〉 등은 대문자 역사를 그린다. 좌우의 공간이동만이 허용되는 이들 게임의 공간을 탐색하면서 플레이어는 지금까지 알았던 과거가 2차원적인 평면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물을 조작하고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스테이지들이 바뀌면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인물들의 상념과 의식을 가로지르며 우리는 2차원에 강탈당한 에피스테메의 복잡성을 되돌려 받는다. 여기서 역사는 반드시 대문자 역사일 필요는 없다. 역사는 오랜 시간 잊고 지냈지만 가끔 섬광처럼 떠오르는 얼굴들 속에서 그 윤곽을 드러낸다. 그것은 집합적인 기억일 수도, 개인의 소중한 일상일 수도 있다. 대문자와 소문자 역사 사이에서 기억의 조작술은 파편적인 무의지적 기억들을 별자리로 만든다. 개인적인 것은 한편으로 정치적인 것이며, 중요한 것은 단순히 사건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로 하여금 참여하고, 스스로의 로직 속에서 퍼즐풀이를 하도록 기억의 조작술을 고무하는 것이다. 기억의 조작술은 한계지워진 게임의 절차들과 에르고딕에서 벗어나 역사의 위상학적인 시공간으로 행위자를 승급시킨다. 기억의 조작술은 공허하고 선형적인 컨벤션의 진형을 해체하고 우리를 역사의 물질 대사로 초대하는 게이밍의 강력한 전략이 된다. 우리는 인디 게임의 탈주적이고 실험적인 상상력 속에서 이를 발굴하고, 하나의 숭고로 기록해야 함을 깨닫게 된다. * 잊혀진 과거의 기억들을 재조립하고, 지양된 현재를 환대하는 기억의 조작술. 〈A Memoir Blue〉(좌)는 대사나 이야기 대신 마임과 음악으로만 어머니와의 추억을 연출하며, 〈Lieve Oma〉(우)는 할머니와 함께 숲을 걸으며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만 게임이 진행된다. “가장 개인적인 것(the personal)들이 가장 역사적인 것(the historical)”이다. 방법이자 프레임워크로서의 ‘인디펜던트’ 대다수 게임의 천편일률적인 컨벤션은 사건을 단지 흘러갈 뿐인 연속적인 것으로 제시하며, 그 가운데 불구화된 행위성을 주조한다. 플레이어는 관성적으로 게임을 조작하고 예측 가능한 결말을 본 뒤 그것을 잊어버린다. 사건의 끝은 망각이다. ‘인디’ 는 사건들을 재배치해 우리의 기억을 오래 지속되는 미래로 인도하는 방법 중 하나다. 나는 인디 게임을 비상업적, 소규모 개발이라는 유형학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하나의 방법이자 프레임워크로 보기를 주장한다. 인디펜던트는 단순히 아마추어리즘이나 1인 개발, 크라우드펀딩 등으로만 정의될 수 없다. 대규모 자본으로부터 독립한다는 것은 경제적인 심급을 포함해 창작의 인습으로부터도 탈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스팀, 에픽게임즈 등 메이저 게임 플랫폼들과 대형 개발사들이 인디게임 개발과 판매를 지원하면서 게이밍 생태계에서 인디의 개념은 기술적으로 변해버린 감이 있다. 공고한 사회질서에 도전하는 반문화 정신, 문화 창조의 자율성과 현실 변혁을 촉구하는 메시지, 상업적 관습을 깨트리는 형식파괴 및 새로운 미학을 제시하는 작가주의는 역사의 어느지점에서나 인디펜던트의 덕목이었다. 불행히도 게이밍은 여전히 산업적 이해와 인디 사이의 어느 과도기적 지점에 있다. 물론 경제적 요인은 여기에 큰 영향을 미치기는 한다. 접근성이 뛰어난 유니티와 언리얼엔진, 오픈소스 제작환경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게임 개발은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적어도 현재의 상태를 본다면 아직 인디게임이 까이에 뒤 시네마나 펑크, 미학적 대중주의라는 특이점에 도달하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현재 인디게임의 환경은 사실상 산업예비군이나 스타트업, 혹은 포트폴리오 연습의 장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매년 관성적으로 열리는 인디 게임 전시나 비평은 개발자들로 하여금 산업의 컨벤션을 지양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동조되도록 강요한다. 이 틀을 깨야만 할 때다. ‘인디펜던트’는 자본의 출구전략이나 편리하게 부르는 콜택시가 아니다. 한정된 자원 속에서 경로와 로직 사이에 발걸음들을 만들어내는 인디의 급진적인 노력들을 사려 깊게 관찰하고, 그것들이 온연히 발휘될 수 있도록 고무할 필요가 있다. ‘인디펜던트’는 하나의 이념이고, 망설이는 조작 가운데 기억이 역사가 되는 과정이며, 그 안에서 우리는 다른 삶의 잠재태를 건져 올려 인기척으로 소묘한다. 발터 벤야민이 적었듯이, “인식의 진보는 결을 거슬러 역사를 솔질하는 행위에서부터 출발한다.” 인디 게임의 번득이는 아이디어들을 세계를 인식하는 한 프리즘으로서 주목해야만 하는 이유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디지털 문화연구/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신현우 문화연구자, 문화평론가이며 기술비판이론과 미디어 정치경제학을 전공했다. 게이밍, 인공지능, 플랫폼, 블록체인을 둘러싼 문화현상을 연구하며 서울과기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한다.

  • 북미에 불고 있는 게임업계 해고와 노조 설립 붐의 현장 스케치

    2025년의 게임업계는 단순한 고용환경 변화가 아니라,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의 권리’에 대한 재정립이 시작된 해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 더는 개발자가 익명의 톱니바퀴처럼 쓰이고 버려지는 구조를 당연시하지 않는 시대다. 그리고 그 변화는 현장 구성원들의 단호한 목소리에서 시작됐다. < Back 북미에 불고 있는 게임업계 해고와 노조 설립 붐의 현장 스케치 25 GG Vol. 25. 8. 10. “정리해고 통보는 메신저로 왔고, 회사는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어요. 그 순간, 우리 팀은 단단히 결심했죠. 이제 우리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요.” 2025년 초,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산하 ‘오버워치’ 개발팀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품질 관리(QA). 부서 수십 명이 예고 없이 해고되자, 남은 직원들은 단체 행동에 나섰다. 그리고 곧바로 ‘전 부서 대상(wall-to-wall)’ 노동조합 결성을 선언했다. 이는 미국 게임업계에서도 드문 일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프로젝트가 끝나면 가장 먼저 잘리는 존재였죠. 이젠 바꿀 때입니다.” 한 QA 테스터는 Polygo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2025년 현재, 미국 게임업계에는 이 같은 노동조합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 산하 스튜디오들이 중심에 있다. ‘엘더스크롤스’, ‘폴아웃’ 등으로 잘 알려진 제니멕스 미디어의 QA팀 300여 명은 이미 2023년 노조를 결성했고, 올해 6월 마침내 첫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는 정당한 사유 없는 해고 금지, 연봉 인상, 원격근무 보장, AI 남용 금지 등의 조항이 포함됐다. 합의에 이르기까지 무려 2년에 걸친 교섭이 있었다. 이처럼 조직화 움직임이 활발해진 데는 뚜렷한 맥락이 있다. 2023년 이후, 테크와 게임업계 전반에서 진행된 대규모 구조조정이 방아쇠 역할을 했다. 일렉트로닉 아츠(EA), 유비소프트, 액티비전 블리자드 등 거의 모든 대형 퍼블리셔가 수백 명에서 수천 명을 정리해고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한 개발자는 “코로나 초기 정도만 해도 게임 업계는 최고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었고 그 누구나 게임업계에서 일한다고 하면 부러워했다”며 “당시 집에서 게임을 즐기던 사람들이 올려준 매출이 영원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고 매일 매일 불안감을 느낄 정도로 수없이 많은 동료다 잘려 나갔다”고 말했다. 이직 시장도 급격히 얼어붙었다. 게임업계에 꽤 긴시간 몸 담았던 필자의 링크드인에는 아직도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 글이 있다. 1년 이상 구직을 하고 있고 이제는 실업수당도, 저축해놓은 돈도 떨어져서 정말로 절박하다는 글이다. 미시적인 체험을 일반화 할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전에 없이 재취업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고 호소하는 모습을 많이 보고 있다. 이렇다 보니 당연히 노동조건에 대한 생각이 게임 노동자 사이에서 화두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다만 노조가 생겨도 활동은 쉽지 않았다. 회사가 교섭에 지연 전술을 쓰며 기본적인 요구에도 몇 달씩 답변하지 않았다고 밝힌 노조도 있었다. 심지어 단체협약을 맺은 직후, 마이크로소프트는 제니멕스를 포함한 게임 부문에서 1900명을 정리해고하며 노조에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위에서 설명한 블리자드 노조 역시 여러 노력을 했다. 노조 결성 이후 회사 측은 단체협약 교섭은 인정했지만, 교섭 대상자 범위를 제한하려 하거나, 회사 소속 변호사를 통해 위협적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목소리를 냈고, 실제로 성과도 얻었다. 제니멕스의 단체협약은 “게임업계 최초의 진정한 노사 합의”라는 평가를 받는다. 블리자드도 2025년 여름, QA 팀 일부와의 조건부 합의에 도달했고, AI 도구 사용에 대한 사전 동의 조항을 삽입하기로 했다. 여기에 AI라는 거대한 파도가 게임업계를 덮치고 있고 노동운동의 주요 갈등요소로 자리잡고 있다.음성 데이터 수십 시간을 학습시켜 만든 ‘AI 성우’나, QA 테스트를 자동화하는 툴들이 실제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는 불안이 커졌다. SAG-AFTRA(배우조합)는 2025년 초 게임 성우 부문에서 파업을 예고했고, 결국 AI를 이용한 목소리 복제는 배우의 서면 동의 없이는 금지하는 조항을 계약에 포함시켰다. 회사의 대응은 제각각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겉으로는 “노조 결성에 중립적 입장”을 밝혔지만, 실제 교섭 과정에서는 지연 전술과 부분적인 협조만 보여주며 이중적 태도를 취했다. 세가 오브 아메리카는 2024년 자발적으로 노조를 인정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했지만, 직후 계약직 직원 61명을 해고해 거센 항의를 받았다. 반면, 일부 중소 개발사들은 “노조와의 협력은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며 적극적인 교섭에 나서는 경우도 있었다. 2025년의 게임업계는 단순한 고용환경 변화가 아니라,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의 권리’에 대한 재정립이 시작된 해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 더는 개발자가 익명의 톱니바퀴처럼 쓰이고 버려지는 구조를 당연시하지 않는 시대다. 그리고 그 변화는 현장 구성원들의 단호한 목소리에서 시작됐다. Tags: 게임산업, 노동조합, 해고, 북미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나성인) 홍영훈 캘리포니아에서 살면서 게임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에 출연하고 매체에 기고를 하며 많은 분들에게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패션부터 게임까지 분야에 상관없이 재밌는 글을 평생 쓰고 싶습니다.

  • 기억을 구성하는 다양한 방법 : 게임에서 기억을 다루는 이유 - When The Past Was Around

    이별은 사랑이 지나간 자리다. 어떤 이는 이별 후 그 사랑의 기억을 영원히 지우고 싶어 하지만, 어떤 이는 기억 속에서 그 사랑이 어땠는지를 끊임없이 되짚는다. 신기하게도 그 기억들은 언제나 정서와 함께 남는다. 그래서 명확하지 않고, 사실과 다를 수도 있다. 어쩌면 모든 기억은 '데이터화되지 않았기에' 살아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감정과 기억이 늘 함께 떠오르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기억은 데이터가 아니고, 명확하지 않으며, 감정과 함께이기에 비로소 추억이 된다. < Back 기억을 구성하는 다양한 방법 : 게임에서 기억을 다루는 이유 - When The Past Was Around 31 GG Vol. 26. 8. 10. 전 세계적으로 가장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이야기의 주제는 무엇일까. 아마도 지금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 바로 '사랑'일 것이다. 사랑은 이야기의 가장 흔한 주제인 만큼 그 형태도 다양하다. 그리고 사랑을 다루는 이야기가 많은 만큼, 사랑이 끝난 자리에 대한 이야기 또한 대중적이고 보편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것을 흔히 헤어짐 혹은 이별이라 부른다. 이별은 사랑이 지나간 자리다. 어떤 이는 이별 후 그 사랑의 기억을 영원히 지우고 싶어 하지만, 어떤 이는 기억 속에서 그 사랑이 어땠는지를 끊임없이 되짚는다. 신기하게도 그 기억들은 언제나 정서와 함께 남는다. 그래서 명확하지 않고, 사실과 다를 수도 있다. 어쩌면 모든 기억은 '데이터화되지 않았기에' 살아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감정과 기억이 늘 함께 떠오르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기억은 데이터가 아니고, 명확하지 않으며, 감정과 함께이기에 비로소 추억이 된다. 이런 기억과 감정을 게임으로 만들면 어떻게 될까. 기획자의 의도와는 별개로, 사랑과 이별을 기억으로 구조화한 게임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상상해본 적 있는가. 2020년 모지켄 스튜디오(Mojiken Studio)가 만든 《When the Past Was Around》는 기억과 감정을 중심으로, 플레이어가 주인공이 되어 사랑과 이별의 흔적을 찾아가는 게임이다. 게임 플레이는 단순하고 대사 한 줄 없는 이스케이프룸 스타일의 퍼즐로 진행되지만, 관계의 결정적 순간들을 떠올리며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 형식은 감정과 기억, 관계의 얽힘을 섬세하게 풀어낸 수秀작이다. 이 게임은 단순히 기억을 게임화한 것이 아니라, 기억이 어떻게 디지털로 구체화되고, 그것이 다시 플레이어 각자의 기억과 추억으로 되돌아가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게임으로 따라가는 기억의 재구조화 이 게임은 주인공 에다(Eda)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게임은 독특하게 대사가 없고 음악의 선율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특징을 갖는데, 황금 새장에 갇힌 그림자 같은 존재를 만나는 장면에서 본격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다. 새장 안에 갇힌 그를 해방시키면 문이 열리고, 퍼즐을 풀면서 수집하는 깃털들이 점차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다. 다시 말해 에다가 숨겨둔 기억과 감정을 플레이어들이 마주하게 하고, 그 기억을 어떻게 추억할 것인지를 플레이하게 되는 것이다. 게임은 짧은 플레이타임(약 2시간)과 열쇠 찾기·암호해독 위주의 단순한 퍼즐 구조 덕분에 크게 어렵지 않다. 사실 이 게임은 연인의 죽음 이후, 에다가 이별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사랑과 이별의 기억을 되짚는 이야기이다. 플레이어는 에다의 기억을 공간을 통해 경험하게 된다. 퍼즐을 풀면 깃털이 모이는데, 이를 통해 에다의 죽은 연인인 올빼미(Owl)와 에다가 마주치고, 함께 외출하며, 음악가로서 서로 공감하고 기억을 되새기는 모습이 드러난다. 둘이 음악가라는 설정 때문인지 대부분 음악이 게임의 중심 서사를 꿰어준다. 음악 상자를 수리하기도 하고, 올바른 순서로 음표를 연주하는 등, 퍼즐의 대부분이 음악과 연결되어 있다. 이렇게 음악으로 이어지던 서사 속에서, 정작 황금 새장에 갇힌 사랑했던 사람인 올빼미는 어딘가 좀 이상하다. 초반에 나오는 방들은 밝고 아늑하고, 퍼즐을 푸는 방법도 아주 쉽지만, 점점 다른 공간으로 옮겨가면서, 즉 현재와 가까워질수록 게임 자체도 어두워진다. 실제로 플레이 방식도 물건들을 내동댕이치거나 화분을 부수는 등, 슬픔과 고통의 플레이가 지속된다. 결국 연인의 죽음으로써 플레이어는 비로소 사랑의 기억이 이별이었음과 마주하게 된다. 그제서야 플레이어들은 왜 에다가 올빼미(연인)를 황금 새장에 가두어두었는지를 알게 된다. 고통과 슬픔을 회피하기 위해 가두었던 기억을, 이 게임은 직접 목도하게 하고, 그 기억을 다시 재구성하며 마주하게 한다. 그래야만 다음 페이지를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억을 플레이하는 이유 앙리 베르그송은 기억을 과거 전체가 잠재적으로 보존된 것과 현재의 필요에 의해 호출되는 이미지-기억으로 구분했다. 이별은 대상을 점진적으로 (자신에게서) 떠나보내야만 하는 과정이다. 이것을 프로이트의 언어로 정상적 애도라 하는데, 이 과정을 거치지 못하면 대상을 자아 안으로 합체시켜 놓아주지 못하는 상태, 즉 우울증에 갇히게 된다. 이 게임은 상실을 상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플레이를 통해 알게 한다. 어쩌면 이것은 상실한 사람에 대한 위로이자, 어떻게 자신으로부터 상실된 대상을 분리해낼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가이드북일 수도 있다. 잊힘은 '기억'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임을 에다는 조용히 알려준다. 플레이어들은 에다의 기억을 하나씩 '떠올리며' 떠나보내게 되고, 결국 에다는 자신과 합치되었던 애도의 대상인 올빼미를 자신에게서 떼어내 온전한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사랑과 이별이라는 보편 서사로 시작한 게임이, 플레이를 통해 개인적 애도의 과정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사적 기억을 들여다보고 플레이를 통해 애도를 진행한다는 컨셉은 상실을 받아들이는 일이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님을 게이머로 하여금 인지하게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애도는 시간이 흐르는 것을 견디는, 대단히 수동적인 과정으로 여겨져 왔다. 상실의 아픔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고, 그러니 이 시간을 견디는 것이 중요하다는 식의 해결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 게임에서 상실과 애도는 플레이를 통해서 '수행'된다. 애도도 하나의 작업이고 실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상실은 결코 자연스럽게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이고 반복적인 작업을 요구한다. 게이머들은 게임에서 자물쇠를 풀고 서랍을 열고, 깃털을 모아 기억과 마주한다. 그 기억을 마주하는 에다는 과거를 붙들어 새장 속에 가둬두는 것만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에다는 자신의 동반자이자 사랑했던 연인이 죽고 나서 음악도 포기한 상태였다. 챕터 4에서는 에다가 혼자 연인과의 기억이 담긴 곡을 연주하려 하지만 음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악기를 바닥에 내던지기도 한다. 마지막 장에서 에다는 단순히 과거를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왜 슬픔에 잠식당했는지, 연인이 죽고 나서 그뿐만 아니라 자신을 어떻게 잃었는지, 그리고 과거에 집착함으로써 현재의 삶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에다의 개인적인 기억은, 플레이를 통해 공동의 기억이 되고 애도의 과정을 대리 경험하게 하며, 보편적 슬픔에 대한 공동체적 위로의 기능을 하게 된다. 디지털화된 정보, 기억하기의 행위 게임이 제공하는 건 데이터화된 조각이지만 그 조각을 보고 사랑이나 상실을 떠올리는 건 전적으로 플레이어의 몫이다. 마찬가지로 에다의 기억을 클리어했다고 해서 에다의 애도가 끝난 것이지 플레이어의 애도가 끝난 것 또한 아니다. 오히려 그 순간 플레이어의 기억과 애도의 과정이 시작될 수도 있다. 어쩌면 크레딧이 끝나고 화면이 꺼진 뒤에, 우리는 의외로 자신의 마음에 남겨둔 황금 새장의 기억을 다시 상기할 수도 있다. 역설적으로 게임의 기억구조가 완결되는 순간 진짜 기억하기는 화면 밖 인간의 머릿속에서 시작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대체로 많은 기억들을 디지털화한다. 수많은 소셜 미디어 안의 기억들은 사진이나 비디오, 오디오 레코딩을 통해 축적되고 있다. 그러나 그 수많은 데이터화된 사진과 영상들을 다시금 자발적으로, 혹은 감정적으로 떠올리기는 오히려 어려워졌다. 이미 디지털 속에 기억이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당시를 떠올리는 과정이 무감각해진 탓이다. 디지털은 기억을 무한히 정확하게 저장할 수 있지만 그건 정보일 뿐 추억은 아니다. 인간의 경험은 완결되지 않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일 수 있다. 사실 에다의 기억 속에 연인이 이 게임에서 올빼미로 기억되는 것은 그가 저장된 사진이나 데이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에게 올빼미는 연인이자, 밤을 지켜주는 아름다운 새였다. When the Past Was around가 건네는 기억하기의 미학은 과거의 기억은 언제나 사람의 주체적인 ‘감정’과 함께 소구된다는 점일 수 있다. 우리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행위는 단순히 디지털화된 게임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것뿐만 아니라 플레이를 통해 만들어가는 인간 고유의 행위가 무엇인지를 되짚는 일이다. 정밀하게 설계된 픽셀과 코드 안에서 플레이어(인간)는 코드화될 수 없는 자신만의 감정을 소환한다. 게임하기는 어쩌면 기억하기이며, 기억하기는 끝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Tags: 애도와 상실, 웬 더 패스트 워즈 어라운드, 이스케이프룸 게임, 인디 게임, 앙리 베르그송, 프로이트, When the Past Was Around, Mojiken Studio, Grief in Games, Indie Game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조교수) 장민지 덕후 진화론(덕후는 정신적/육체적/기술적으로 진화한다)을 믿는 팬-미디어 연구자.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상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5년 박사논문〈유동하는 세계에서 거주하는 삶 : 20~30대 여성청년 이주민들의 집의 의미와 장소화 과정〉으로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 학회 학술상, 2016년 〈비인간 캐릭터에 대한 대중의 환상〉으로 한국방송작가협회 한국방송평론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 Why Farming Games Became “Healing”: Between Pixel Farming and Real Fields

    In farming simulation games such as Stardew Valley and Story of Seasons, players are given the chance to become farmers living in idyllic rural settings. These games share a similar narrative premise: leaving the city behind, inheriting a family farm, and beginning a new life. What the player first encounters is usually a long-abandoned plot of land overrun with weeds, rocks, and dead trees. The core experience of these games lies in gradually clearing the neglected farm, cultivating the soil, planting crops, tending livestock, and ultimately enjoying the rewards of steady daily labor. Along the way, interactions with the townspeople offer moments of warmth and community. < Back Why Farming Games Became “Healing”: Between Pixel Farming and Real Fields 30 GG Vol. 26. 6. 10. *You can see the original Korean version of this article at: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48a73207-79db-4c1a-9ab9-a2608d59b435 In farming simulation games such as Stardew Valley and Story of Seasons , players are given the chance to become farmers living in idyllic rural settings. These games share a similar narrative premise: leaving the city behind, inheriting a family farm, and beginning a new life. What the player first encounters is usually a long-abandoned plot of land overrun with weeds, rocks, and dead trees. The core experience of these games lies in gradually clearing the neglected farm, cultivating the soil, planting crops, tending livestock, and ultimately enjoying the rewards of steady daily labor. Along the way, interactions with the townspeople offer moments of warmth and community. Farming games are often categorized as “healing games.” Unlike competitive or combat-oriented games that demand tension and urgency, managing a farm offers a peaceful and modest rhythm of life—quite literally, a pastoral existence. Neither the corn growing in the fields nor the cows grazing in the pasture pose any threat to the player. They simply grow under the player’s care, while the player remains an observer of that growth. Before I experienced farming firsthand, I too consumed farming games as part of the “healing” genre. However, after leaving the city to live in a remote mountain village, experiencing rural society, and cultivating crops myself, I came to realize that the gap between farming in games and farming in reality was far greater than I had imagined. Of course, some distance between games and reality is inevitable. Yet through actual farming, I began to notice which aspects of agricultural labor had been removed, simplified, or rearranged in order to become game mechanics. In doing so, I came to better understand how the sense of “healing” in farming games is constructed in the first place. Learning Farming Through Games What follows is a story drawn from my own experience with farming. After leaving city life behind and moving to a remote mountain village, I was given access to a small vegetable garden near my home. When I dug into the soil, I found several earthworms wriggling beneath the surface, a sign that the earth was fertile and alive. It seemed too good a plot of land to leave untouched, so I decided to try farming for myself. In games, I had already spent dozens of virtual seasons cultivating vast fields as a seasoned farmer. In reality, however, I was a complete beginner who had never properly grown a plant before. In Stardew Valley , the farmer’s first task is to clear and prepare the land. I found myself doing much the same thing, almost as if I were following an in-game tutorial. Squatting in the field, I picked out stones by hand, removed weeds with a hoe, and loosened the soil with a shovel. Every so often, when the sharp edge of the hoe struck the earth, an earthworm living beneath the soil would suddenly spring upward. In those moments, I felt vividly that the land itself was alive. Once the groundwork had been laid, it was time to plant something. Ordinarily, I should have started with seeds, but instead I chose what felt like a kind of “boost item”: seedlings. Since seedlings have already passed the vulnerable seed stage, they are less likely to fail and grow more quickly once planted. The owner of the seedling shop advised me that beginners should start with leafy vegetables. I treated fruit-bearing crops like cucumbers and strawberries as though they were “high-difficulty crops” that had not yet been unlocked, and returned home carrying fifteen lettuce seedlings instead. April, with spring fully settled in, was the perfect season for planting lettuce. * In Stardew Valley, the player begins their first season by planting fifteen parsnips. Planting in Pixels vs. Making Ridges and Furrows After returning to the field, I wondered how I should arrange the fifteen seedlings. In Stardew Valley , one of the first tasks given to the player is to plant fifteen parsnip(a type of radish) seeds, a spring crop. The player equips a tool and transforms the “state” of each tile of land into arable soil, planting one seed per tile until all fifteen seeds have been sown. Most players tend to arrange their fields in symmetrical patterns such as 5×3 or 3×5 grids. They perceive this balanced pattern as a stable structure. Having spent so much time playing Stardew Valley , I had unconsciously internalized the habit of planting crops in neat, geometric patterns. So in my real vegetable garden, I arranged the lettuce seedlings in much the same way. The lettuce, too, was planted in a tidy 3×5 formation. Yet after only a few days, the garden began to resist the logic of the game. The lettuces lacked sufficient room for their leaves to spread. As the leaves pressed against one another, airflow became restricted, creating favorable conditions for pests and disease. Packed too closely together, the lettuces entered into a quiet struggle for survival, pushing against one another as they grew. To make matters worse, the lettuces planted in the middle row became almost impossible to manage because there was no space to reach them by hand. In the game, the player character can easily walk through crops, but in reality a farmer requires physical pathways to move through the field. Eventually, I realized that the logic of “one crop per tile” belonged to the grammar of games. In actual farming, the concepts of raised rows for planting and furrows left open for movement and drainage are more appropriate than the abstract grid of the game world. A single head of lettuce does not merely occupy one square of space; it requires a much larger ecological area that includes airflow, drainage, and accessibility for care. The simple grid-based rules presented by the game transformed, in reality, into a far more complex problem of ecological arrangement. * A lettuce field planted with sufficient spacing for growth. Source: Dragon Byeolbat Atelier blog Real Farming Treats Crop Damage as the Default Condition Even in such cramped conditions, the lettuces managed to grow surprisingly well. I carefully harvested a few leaves at a time and was able to enjoy the first yield. Wrapping rice and meat in freshly picked lettuce or making generous salads from the harvest, I found myself thinking that, in at least one respect, I had surpassed the farmers of farming games: actual cooking and eating. No matter how much lettuce I picked, it seemed to grow back endlessly, almost like an inexhaustible spring. But the joy of harvest did not last long. Only a few days later, when I stepped outside to water the garden, the field was empty. The places where the lettuces had stood had simply vanished. The lettuce had been there, and then it was gone. For a moment, it felt so strange that I wondered whether I had somehow walked into the wrong field. The culprit turned out to be roe deer. In retrospect, it must have looked irresistible to them. Compared to the tough wild grasses growing elsewhere, my garden was a perfect buffet filled with tender, soft lettuce leaves. In most farming games, fences function either as decorative elements or as optional structures. In Stardew Valley , crop damage occurs only as a minor event. If crops are planted outside the area protected by a scarecrow, one or two may disappear overnight after being eaten by crows. Farming Simulator does not meaningfully simulate pests or wild animals at all; weeds merely reduce crop yield slightly. Meanwhile, Sakuna: Of Rice and Ruin portrays insects, plant diseases, and weeds affecting rice cultivation in much greater detail. Yet even there, failure usually results only in lower quality or reduced harvests—the entire crop rarely dies outright. Reality, unlike these peaceful games, proved far harsher. Because I had not installed proper deer fencing, the lettuce patch disappeared almost overnight. In real farming, uncontrollable variables—wild animals, heat waves, monsoon rains, pests—can invade at any moment. Diseases and insects are capable of destroying an entire crop within weeks. Excessive heat or humidity quickly spoils plants, while a single heavy rainfall can rot their roots. Farmers therefore approach these threats not as rare accidents but as default conditions of agriculture. Farmers must treat these risks as the “default” and maintain their crops by mobilizing every possible countermeasure—fences, pesticides, fertilizers, and drainage systems—as a matter of course. Healing Becomes Possible Only When the Laboring Body Disappears After my lettuce patch was devastated by wild animals, I regrouped by planting several asak-i pepper plants, a crop suited for summer. Energized by the warmth of early summer, the peppers steadily extended their stems, bloomed, and seemed ready to bear fruit in abundance. Then one day, the green stems had turned black. Looking closer, I discovered dozens of stink bugs clinging tightly to the plants and sucking out their sap. Stink bugs do not immediately destroy the fruit, but they steal nutrients from the plant, weakening its growth and leaving the peppers stunted and unhealthy. I could have used pesticides, but many environmentally conscious farmers discouraged it. Instead, they advised me to remove the insects by hand. I filled half of a cut plastic bottle with water, held it beneath the pepper stems, and shook the clusters of bugs loose with my fingers so they would fall into the container. This had to be repeated every single day. Once the war against stink bugs subsided, slugs appeared in the humid summer weather and began gnawing at the peppers instead. Through this process, I confronted the physical pain of farming in a way games had never prepared me for. Standing outdoors for only a few minutes in midsummer was enough to leave my entire body drenched in sweat. Mosquitoes are inseparable from the farmer’s life. Summer fields are ideal environments for swarms of wild mosquitoes, and merely brushing against plants can leave ticks attached to one’s skin, feeding unnoticed on blood. The farmer in Stardew Valley wears a romantic outfit of straw hat and overalls; the real farmer dresses instead in survival gear—wide-brimmed hats, masks, arm sleeves, and scarves. In Stardew Valley , the player’s body is represented only through a “stamina gauge” tucked into the corner of the screen. Swinging a pickaxe or watering crops gradually depletes the gauge, and when it reaches zero, the character collapses from exhaustion. Yet after a single night’s sleep, their energy returns as though nothing had happened. Because labor in games is mediated through control devices, the player never experiences sweat running down their body, the sharp pain of an aching back, or the misery of insect bites. The “healing” offered by the game is made possible, paradoxically, by erasing the physical body of the laboring subject. Real farming does not end with a few clicks, nor does accumulated exhaustion disappear after a night’s sleep. These bodily limitations inevitably require external assistance. It is no coincidence that Farming Simulator derives much of its appeal from operating enormous tractors and combine harvesters. Modern agriculture has long depended on machines to shoulder workloads that the human body alone cannot endure. Looking at the reality of rural Korea, the machines that replace human bodies in aging farming communities are agricultural vehicles worth tens or even hundreds of thousands of dollars. The operation of these machines—and much of the difficult manual labor that machines cannot perform—is largely carried out by migrant workers. The polished vegetables sold in supermarkets are produced amid the noise of machinery and the sweat of migrant laborers, realities absent from healing games. Even the recently celebrated “smart farm” model moves toward eliminating unpredictable and painful forms of human labor in nature by entrusting temperature, humidity, and nutrient control to artificial intelligence and automated systems. Ultimately, the tranquility offered by farming games emerges through the removal of the painful physicality and labor structures that real farming inevitably entails. What remains is a carefully distilled experience that preserves only the satisfaction of harvest. The Farmer in Games Is Healed, While the Real Farmer Struggles to Survive We need to reconsider what we mean by the feeling of “healing.” Farming becomes healing in games not simply because of their pastoral settings, but because they remove and transform the complexity of real agriculture, reconstructing uncertain labor into “certain labor.” Real farming is a complex and unpredictable activity shaped by countless variables: climate, pests, labor conditions, market fluctuations, and more. The effort required to bring crops to harvest is physically demanding, painful, prolonged, and often accompanied by failure. Games, by contrast, are designed as a medium that minimizes discomfort and maximizes pleasure. If they were to reproduce the uncertainty and suffering of real farming in full, they would lose the core engine of “fun.” For this reason, games about agriculture inevitably simplify reality through processes of selection, omission, and exaggeration, reconstructing farming into a form that can be played. From this perspective, one might criticize farming games for concealing reality. Yet what matters is not whether reality is concealed, but rather how farming is structurally reorganized into an experience of healing. Once we become aware of this gap, the healing produced by farming games no longer appears as mere fantasy. Instead, it becomes an analytical point from which to rethink the conditions surrounding real agricultural labor. Paradoxically, perhaps modern people find healing in farming games precisely because their everyday lives are far more uncontrollable and unpredictable than the farming depicted in games. In contemporary labor environments—where effort often goes unrecognized and results remain uncertain no matter how hard one works—farming games offer a fair world in which labor reliably produces rewards. Plant seeds and water them, and crops will always grow. Harvest them, and money will always follow. The predictability and controllability created through this clean cycle of repetition may in fact constitute the true essence of the healing these games provide. But why, among so many possible forms, does this healing so often take the form of “farming”? Agriculture, humanity’s earliest productive activity, originally involved negotiation with nature and coexistence with uncertainty. Games, however, remove this uncertainty and remake agriculture into a controllable system. In this sense, farming games may reflect a modern fantasy—the desire to fully quantify, manage, and domesticate nature itself. At the same time, farming games evoke nostalgia for something we have lost: touching soil with our hands, planting seeds, and watching life grow. In urbanized modern life, most people no longer know where or how their food is produced. Farming games imaginatively restore this severed relationship. Ultimately, the healing offered by farming games is double-edged. On the one hand, it is a safe fantasy that erases the pain of real farming. On the other hand, it provides a fundamental sense of satisfaction through the direct connection between labor and reward—something many people rarely experience in everyday life. The experience of becoming a farmer in a game poses difficult questions to us: Why do we seek in games a satisfaction we cannot attain in reality? Why is our labor not connected to clear rewards in the way farming games promise? And might genuine healing arise not from eliminating uncertainty and suffering, but from learning to live with them? Such questions encourage us to move beyond simply consuming farming games and instead reflect on the desires for labor, nature, and healing that define our era. The gap between farming in games and farming in reality ultimately reveals both the world we currently inhabit and the world we long for.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이선 사회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연구합니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결국 인간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문화연구자) 김지수 문화와 지식, 공간과 학술 장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합니다. 게임의 역사와 게이머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레트로 시대 한국 게임비평의 흔적들

    지금의 한국에서 게임 평론 시도들은 일부 웹진의 기자들을 통해 이루어지거나, 일부 게임평론가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꾸준히 평론을 지면에 생산하는 게임평론가는 매우 적다. 이렇다 보니 국내에 게임 평론계는 의미 있게 존재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25년 동안 한국 게임계는 대체 무얼 한 걸까. 이렇다 보니 실제 게임평론을 생산하지 않는 자칭 평론가들은 자신들이 최초의 게임평론가라고 이야기하는 웃지 못할 상황들도 벌어지고는 한다. 이런 점을 정리하려면 먼저 과거에 있었던 게임비평에의 시도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 Back 레트로 시대 한국 게임비평의 흔적들 02 GG Vol. 21. 8. 10. 한국에서 게임의 역사는 길지 않다. 길다 짧다는 것이 주관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길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은 한국 게임의 역사가 길지 않다고 한다. 다른 매체에 비하면 그 탄생이 늦어서 짧다. 미국, 일본보다도 짧은 편이다. 주변부의 다른 국가에 비하면 길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게임의 역사를 몇 년으로 봐야 할까. 어떤 사람들은 온라인게임 〈바람의 나라〉나 〈리니지〉가 한국 게임 역사의 시작이라고 하기도하고. 어떤 사람들은 1987년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 시행 시기와 함께 출시된 〈신검의 전설〉을 그 시작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1983년 컴퓨터 보급과 컴퓨터 잡지의 발간 시작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그에 앞서 아케이드용 전자 오락기들이 막 수입되고, 가정용 오락기들이 수출용으로 제작되던 때를 시작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 짧게 잡는다면 25년 정도가 될 것이다. 가장 길게 잡는다면 50년이 될 수 있는 이 역사는 길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80년대 〈갤러그〉를 하던 오락실 어린이들이 지금은 성인이 되어 비슷한 연배의 자녀를 둔 학부모가 된 사람이 있을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 그런데도 게임이란 매체가 다른 매체만큼 우리 사회에서 자리 잡았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될 것이다. 다만 우리 안에서 문화로서의 게임의 위치가 산업적으로의 게임의 위치만큼은 아니라는 것은 어느 정도 동의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한 이유로 여러 가지를 지목할 수 있겠지만 다른 매체처럼 충분한 평론 등이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것을 지목하는 사람들도 있다. 게임 평론이란 분야는 다른 매체만큼 활성화되어있지 못하다는 것 역시 대부분 동의할 것으로 생각한다. 극단적으로 국내에서 게임 평론은 존재하지 않으며 해외의 평론만을 수입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흥미로운 점은 게임 평론이 필요하다고 하는 견해만큼이나 게임평론가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도 많은 부분일 것이다. 지금의 한국에서 게임 평론 시도들은 일부 웹진의 기자들을 통해 이루어지거나, 일부 게임평론가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꾸준히 평론을 지면에 생산하는 게임평론가는 매우 적다. 이렇다 보니 국내에 게임 평론계는 의미 있게 존재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25년 동안 한국 게임계는 대체 무얼 한 걸까. 이렇다 보니 실제 게임평론을 생산하지 않는 자칭 평론가들은 자신들이 최초의 게임평론가라고 이야기하는 웃지 못할 상황들도 벌어지고는 한다. 이런 점을 정리하려면 먼저 과거에 있었던 게임비평에의 시도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게임잡지를 통해 나타난 초창기의 게임평론 시도들 한국에서 최초의 게임잡지를 꼽으라면 1990년에 창간된 〈게임월드〉일 것이다. 그 무렵 컴퓨터 게임을 복사해주거나 판매하는 소프트하우스 중심으로 동인지 등이 만들어지기도 했으나, 공식적으로 출판된 게임잡지는 〈게임월드〉가 가장 먼저였다. 이후 〈게임뉴스〉, 〈게임챔프〉, 〈게임정보〉 등 다양한 가정용 게임기를 다루는 게임잡지들이 출간되고 이후 컴퓨터 게임을 다루는 컴퓨터 게임 전문지들이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잡지들은 국내에서 게임 문화가 자리 잡는 데 큰 영향을 끼쳤지만, 시기상 게임의 유입보다는 늦었다. 흔히 한국 게임개발 원년으로 다뤄지는 1987년보다 4년 이른 1983년 창간된 〈컴퓨터학습〉과 〈마이크로소프트웨어〉에서는 이미 컴퓨터와 게임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 각 컴퓨터 제작사별로 제공되는 게임들을 비교하기도 했다. 이 무렵의 게임에 대한 소개를 평론이나 공략이라고 보기는 무리가 있었다. 〈컴퓨터학습〉 1984년 1월부터 3월까지 3차례에 걸쳐 실린 〈제비우스 1,000만점 돌파의 비밀〉은 일본 컴퓨터 잡지에 있는 공략을 그대로 옮겼으나, 국내 최초의 게임공략으로 인지되며, 〈컴퓨터학습〉이 이후 게임을 좀 더 본격적으로 다루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 〈제비우스〉 공략이 실린 컴퓨터학습 1984년 1월호와 2월호. 컴퓨터 전문 잡지들의 게임 필자들은 학생들이 주로 맡은 경우가 있었는데, 대부분 투고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 게임 초기에 게임평론가로 활동했던 박병호는 학생 때 〈컴퓨터학습〉에 게임공략을 투고하여 잡지에 게재된 것을 인연으로 〈컴퓨터학습〉에 MSX 게임공략을 꾸준히 연재하였다. 상당히 많은 필자가 게임공략으로 활동하였으나 이 중 게임평론가로 활동을 한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박병호는 이후 〈PC매니아〉 등에서 만화, 애니메이션 평론가로 활동하며 나중에 〈게임피아〉 등의 잡지와 〈경향신문〉에서 종합지 최초로 게임 관련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 〈컴퓨터학습〉 86년 3월호에 실린 〈헬기대작전〉의 공략. 〈헬기대작전〉은 윌라이트가 제작했던 〈번겔링만의 습격〉 MSX판의 국내 유통 제목이다. 1990년대 초 게임잡지들의 창간은 이러한 컴퓨터 잡지들의 게임 코너의 영향들을 받았다. 초기 게임잡지 중 특히 주요한 영향을 꼽은 잡지라면 〈게임월드〉, 〈게임챔프〉, 〈게임채널〉 등이 있으며, 게임잡지들은 대부분 창간과 함께 필자들을 모집하며 기술 중에 게임 평론을 요구하기도 했다. 93년 추가로 〈게임정보>를 창간한 미래시대는 "나도 게임평론가"라는 코너로 독자들의 게임에 대한 평가를 연재하기도 했다. * 〈게임정보〉에 실렸던 독자마당 '나도 게임 평론가' 코너. 93년에 창간된 〈게임챔프〉는 기자들을 명인으로 지칭하며 신작들을 모아 평가를 했다. 평론이라고 부르기는 힘들지만, 평점과 함께 기자의 이름을 걸고 평가를 하는 시스템은 이후 창간되는 〈PC챔프〉-〈PC파워진〉으로도 이어져 기자의 이름과 함께 게임뿐만 아니라 게임 업계를 평론하는 연재하는 지면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게임챔프〉에 실린 명인의 게임평가. 초기의 게임잡지들이 일본의 것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면 게임 유통사였던 동서게임채널에서 발행한 〈게임채널〉은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미국 유학을 계기로 게임산업에 진출하게 된 대표의 영향도 있겠다. 〈게임채널〉은 창간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미국의 〈컴퓨터게이밍월드지〉의 칼럼이나 게임에 대한 평가를 국내에 소개했으며 바이라인과 함께 기자 사진이 같이 소개되기도 했다. 한국 게임 시장이 컴퓨터 게임을 중심으로 형성되면서 컴퓨터 게임 전문지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기존 게임잡지들의 부록으로 시작해서 자매지로 창간되는 경우부터 방송사에서 직접 창간하는 경우까지 다양한 잡지들이 창간되었으며 비디오 게임 잡지의 편집 형태가 일본 게임잡지를 따라가는 그것과 달리 좀 더 미국의 게임잡지에 가깝지만 고유한 형태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 무렵부터 기자들의 이름을 걸고 게임 자체를 깊게 평가한다던가, 게임뿐만 아니라 업계나 문화 자체에 대한 칼럼을 기자의 이름을 건 코너 등 평론을 싣기도 했다. 1993년 12월 정보문화센터에서 주최한 게임 시나리오 공모전에서는 여러 수상작이 나오며 실제 게임으로 발매되는 단계까지도 갔는데, 당시 인식으로 게임 시나리오 공모전 수상자는 게임전문가라는 인식이 있어, 이 수상자들이 게임 칼럼니스트들로 활동하는 예도 있었다. 이 중에서도 이문영 씨의 경우 다양한 기고와 함께 게임피아에서 울티마 온라인 여행기 등을 연재하기도 했다. * 〈피씨파워진〉에 실렸던 기자들의 평론이나 칼럼들. 〈게임월드〉와 〈게임챔프〉가 시작한 가정용 게임 잡지들은 〈게임매거진〉, 〈게임라인〉 등 후속 잡지들이 출현하면서 좀 더 다양하게 바뀌었다. 모두 다른 잡지들과의 차별화를 위해 노력했는데, 가능한 일본의 최신 정보를 가져오려고 노력한 부분과 함께 깊이 콘텐츠를 만들려는 노력이 함께 했다. 〈게임매거진〉의 경우는 TRPG를 국내에 소개하기 시작했으며 〈게임라인〉은 좀 더 자신의 색이 강한 콘텐츠가 강점이었다. 이중 게임라인에서 연재했던 'B급 게임의 심오한 세계'는 게임에 대해 좀 더 깊게 접근하면서 좋은 반응을 이끌었다. * 〈게임라인〉에 실린 B급 게임의 심오한 세계 코너. 게임잡지의 인기가 좋다 보니 그동안 〈게임채널〉이나 〈PC챔프〉에서 기사 협약을 통해 단신으로만 소개되던 〈컴퓨터게이밍월드〉를 〈마이크로소프트웨어〉를 출간하던 잡지사인 정보시대에서 직접 라이선스를 가져와서 창간하는 예도 있었다. 다만 이러한 시도는 게임잡지들의 과다한 경쟁으로 인해 길게 가지는 못하였다. 〈게이머즈〉를 발행하던 게임문화는 일본의 잡지 〈게임비평〉의 라이선스를 얻어 일본의 잡지 내용에 한국에서 제작한 원고를 추가하여 같은 이름으로 〈게임비평〉을 격월로 출간하였다. 일본의 〈게임비평〉처럼 광고를 전혀 받지 않아 독립적인 편집을 보장한다는 기조는 격월로 좀 더 깊은 주제의 이야기들이 실렸으며, 국내 실정에 대한 분석, 평론이나 당시 〈악튜러스〉를 개발했던 김학규가 〈악튜러스〉의 개발 철학과 다루는 주제에 대해 기고를 하는 등 인상적인 시도가 많았으나, 3년 정도 이어지고 휴간하였다. * 〈게임비평〉 표지. 한국에서 90년대 게임 평론에 대한 시도의 한 축이 잡지라면, 다른 한 축은 PC통신일 것이다. PC통신이 등장하기 전에는 게이머들의 교류는 각 지방 소프트하우스를 중심으로 매우 작게 일어났으며, 잡지에 기고하던 필자들 역시 이렇다 할만한 교류가 있지 않았다. KETEL이 등장하고 개오동이 등장하고서야 게이머들이 장소를 초월해서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곳에서는 활발하게 이야기가 오갔는데, 이러한 PC통신 동호회의 특징이라면 게시판에 대한 강한 규칙이라 양식이나 내용을 구분할 수 있는 제목의 말머리 등을 강하게 통제하였다. 초반에는 게임의 공략 질문 친목 위주로 운영되었다. 처음엔 PC통신 서비스가 KETEL이 이름을 바꾼 하이텔뿐이었지만 이후 PC-Serve가 이름을 바꾼 천리안과 나우누리 등의 서비스가 늘어나고 게임을 다루는 동호회도 늘어났다. 이러한 동호회에서는 게임에 대한 소감, 평가에 대한 수요가 있어 한곳에 모아놓기 시작했으며 당시의 컴퓨터 자원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제한된 게시판 숫자, 글, 자료실 용량으로 기존 게시판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90년대 후반에서는 동호회들마다 평론, 평가 게시판들이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렇다 보니 게임의 홍보에 게임평론가란 호칭과 함께 이름과 하이텔 아이디 등을 사용하기도 했다. * 하이텔 시뮬동의 소개/평론 게시판.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걸쳐 게임 평론에 대한 시도들은 게임전문지뿐만 아니라 그 밖에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초기 게임평론가로 활동하던 박병호는 1996년부터 5개월에 걸쳐 경향신문에 "다시 보는 컴퓨터 게임"을 매주 연재하였으며, 이는 알려진 종합지에 연재된 최초의 게임칼럼이다. 1999년에는 문화연구로 게임에 접근한 박상우가 〈씨네21〉에 게임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무가지로 시작한 잡지 〈페이퍼〉에서도 “박정선의 게임스테이션”이란 제목으로 게임칼럼이 연재되었다. 2000년대 초 게임의 중심이 PC게임에서 온라인게임으로 넘어가고,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종이 잡지의 영향력이 줄어가면서 2010년에 이르러선 대부분의 게임 잡지들이 폐간하였다. 이후 게임비평 공모상 등의 시도와 함께 저술 활동을 한 게임평론가들이 등장하고 사라져왔다. 가끔 왜 한국에 게임 평론이 뿌리내리지 못하는가에 대해서 주변과 여러 이야기를 나눠왔다. 그중 한 가지는 시장이 게임 평론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90년대에서 2010년에 이르러서 게임 평론에 대한 요구가 없었을까. 90년대 당시의 독자 코너들을 살펴보면 미국의 게임 평론을 찬양하고 한국의 게임 평론은 수준이 낮으니 노력해야 한다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각 게임잡지의 구인코너에서 요구하는 능력에 게임 평론은 빠지지 않으며, 1998년에 호서대학교에서 게임공학과가 개설되면서 진행한 인터뷰에서는 게임평론가와 매니저 양성이 목표라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국내 게임 잡지들이 사라진 이후에는 관에서 진행하는 행사나 지면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이 역시 수요 덕분일 것이다. 2008년부터 진행된 게임비평 상이나 월간 〈게임문화〉지 같은 것은 기존의 게임잡지에서 시도되었던 평론의 외연을 넓히는 데 성공하였으나, 재정의 영향을 크게 받아 시행사나 주관사의 의지 때문에 지속되지 못하고 없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국내 게임잡지, PC통신의 게임 평론의 특징이라면 그 특징이 외국의 것을 흉내를 내거나, 자신만의 이론으로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초기의 게임잡지들에서는 게임 평론보다도 게임음악 평론들이 먼저 등장하며, 초기 게임 평론 역시 평론이란 호칭을 단 원고는 고전 게임 평론 등을 먼저 살펴볼 수 있었다. 이렇다 보니 일반적으로 다른 매체의 비평에서 사용되는 접근들보다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다른 게임들과의 비교들이 평가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평가를 작성하던 사람들이 대부분 미성년자라는 점. 그리고 매체 중에서도 주로 게임을 접했다는 것 역시 당시 평론이 게임의 바깥을 다루지 못한 이유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흐르면서 이러한 평론 경험을 했던 학생들이 성장하여 계속 게임 평론을 생산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러기엔 시장이 너무 척박하였다. 앞서 게임 비평에 대한 수요가 있었다고는 하였으나, 그것이 금전적으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수요라고는 이야기할 수 없겠다. 〈게임챔프〉에서 “명작에세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칼럼은 필자를 공개하지 않고 1년에 걸쳐 연재되었는데, 독자들에게 평론으로의 반응 역시 좋았다. 나중에 가서야 필자를 공개하였는데, 당시 막 창세기전을 출시한 소프트맥스의 최연규였다. 이처럼 게임평론가 등으로 활동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게임개발자를 겸업하거나, 게임지 기자, 필자로 일하는 상황이었다. 게임 평론을 할 수 있는 게임전문가들이 대부분 게임업계 내에서 게임 지식이 있는 사람 외에는 힘든 상황이었고, 게임 평론의 원고료만으로는 충분한 수입이라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했다. 피씨게임잡지 등에서 소개되는 어떻게 하면 게임 필자가 될 수 있나요.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도. 필자들은 대부분 생업이 따로 있다고 언급하며 고정적인 수입이 없어 매우 힘들다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박상우 역시 2000년 피씨피워진에서 실린 게임평론가란 직업에 대한 인터뷰에서 영화평론가도 먹고살기 힘든데, 게임으로 돈을 벌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언급할 정도였다. 게임평론가와 하드코어 게이머의 관계 역시 평론이 계속되기 힘든 환경이라 지목된다. 〈라스트 오브 어스 2〉가 평단과 하드코어 게이머의 골을 크게 부각해 이러한 거리감이 최근에 생겼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2000년 〈피씨파워진〉의 기자 칼럼에서 게임 평론 부진의 원인을 맹목적인 팬덤 문화로 지적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역시 20년 전에도 존재하는 전통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인터뷰에 나왔던 것처럼 게임 평론에 대한 반응은 자신의 게임 지식을 자랑하는 형태로 흐르거나, 자신의 느낌과 다르다며 “겜알못”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임 평론을 지속하기 힘든 환경이다 보니 박병호의 경우는 1999년 미국 유학으로 더는 게임 평론 활동을 하지 않았으며 박상우 역시 일반 문화지와 게임전문지에서 집필활동을 하였으나 지면의 부족으로 지속되지 못하기도 했다. 평론가나 전문 필자 호칭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 중 상당수는 게임개발사로 직장을 옮기기도 했다. 비단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에 이르러서도 지면과 인식의 부족으로 게임 평론 활동이 지속되는 경우는 찾기가 힘들다. 이렇다 보니 이러한 시도들이 대부분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새로 등장하는 게임평론가들은 대부분 앞선 평론의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해외의 칼럼이나 다른 매체 평론의 방법론을 통해 혼자 고민을 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들의 활동이 다른 평론가들에 영향을 주었는지 파악하기는 매우 힘들다. 각 평론가가 저술한 평론의 숫자 역시 많지 않다 보니 각자의 개성을 정의하기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존재를 알기조차 쉽지 않다. 2000년 박상우가 게임평론가란 직업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게임은 산업이 아닌 문화"라고 이야기했다. 2021년에도 우리는 똑같은 이야기를 공허하게 외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21년 동안의 시도들이 쌓아나갈 수 있었다면 좀 덜 공허할 수 있었을까. 2000년의 평론에서 다루는 게임과 2021년에 평론을 다루는 게임은 다르다. 게임 평론에 대한 시도를 더 찾아보기 힘든 것은 2010년 이후의 게임들이 단발적인 작품이 아니라 대부분 서비스 형태의 게임이 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이야기하기 더욱 힘들어진 영향도 존재할 것이다. 가정용 게임의 보급과 스팀 같은 서비스들이 일반적으로 늘어나면서 인디게임을 비롯한 싱글 플레이게임 운신의 폭이 늘어나, 이러한 게임에 대한 평론은 지금은 게임웹진 등에서도 어느 정도 찾아볼 수 있게 되었지만, 한국 게임에서 주요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온라인게임에 대한 평론은 시도할 방법조차 찾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심지어 커뮤니티 중심으로 재편된 게임웹진의 온라인게임 사이트들은 이제 공략조차 기자가 작성하지 않고 이용자가 작성하는 상황에 이르러 전문가가 더는 전문성을 확보하기 힘든 상황이기도 하다. 최근 5년간은 게임산업 바깥의 지면에서 게임평론들을 찾아보기 쉬워졌다. 케이블은 물론 공중파 라디오에서도 게임 전문 코너가 생겼던 적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평론들에서 지금 까지의 한국 게임에서 있었던 평론의 영향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2030년에 연구자나 산업관계자들이 "한국에 게임 평론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확언할 수 있을까. “옛날에 게임잡지들이 있었고, 게임문화재단의 〈게임문화〉나 〈게임제너레이션〉 같은 시도가 있었다.” 정도만 언급될 수도 있다. 그조차 언급되지 않을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게임비평 잡지나 게임문화재단의 〈게임문화〉는 현재는 볼 수 있는 수단이 없다. 〈게임비평〉 등의 과거 게임을 다루던 잡지들은 이제 레트로 게임 아이템이 되어 수집가들에 의해 비싸게 거래되는 것이 보통이고, 게임문화재단의 〈게임문화〉는 분명히 당시에는 pdf로 배포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은 구할 방법이 없다. 책이 아닌 인터넷의 자료들은 더욱더 쉽게 휘발된다. 한국엔 게임 비평에 대한 시도들이 있었다. 끊임없이 있었다. 모든 시도가 무의미하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쌓는 데는 실패했다. 어떻게든 부스러기를 모으다 보면 계속 손가락 사이로 흘러가는 느낌을 받는다. 게임 평론 문화를 탑처럼 이야기했다. 이것이 탑이고 재료를 쌓는 데 실패했다면 탑을 세우는 데는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탑이 아니라 화학작용이라면 어떨까. 수많은 재료가 쌓여왔고 무언가 촉매로 인해 화학작용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게임제너레이션-GG〉가 그것이길 희망해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개발자, 연구자) 오영욱 게임애호가, 게임프로그래머, 게임역사 연구가. 한국게임에 관심이 가지다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것에 취미를 붙이고 2006년부터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있다. 〈한국게임의 역사〉, 〈81년생 마리오〉등의 책에 공저로 참여했으며, 〈던전 앤 파이터〉, 〈아크로폴리스〉, 〈포니타운〉, 〈타임라인던전〉 등의 게임에 개발로 참여했다.

  • 보더랜드4 - 변방의 수렵채집

    탐험가들의 후예로서 우리 인간은 미지의 땅을 향해 나아가는 것에 대한 낭만을 갖고 있다. 황무지, 너른 들판, 혹은 저 산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풍부한 사냥감을 품은 목초지? 다양한 과일과 채소를 담은 숲? 농사 짓기 딱 좋은 비옥한 강변? 식량원이 바닥나서, 종교적 열망에 들떠서, 단순한 호기심에서 등등 여러 이유로 호모 사피엔스는 터전을 걷고 일어나 지도의 바깥으로 행진했다. < Back 보더랜드4 - 변방의 수렵채집 27 GG Vol. 25. 12. 10. 탐험가들의 후예로서 우리 인간은 미지의 땅을 향해 나아가는 것에 대한 낭만을 갖고 있다. 황무지, 너른 들판, 혹은 저 산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풍부한 사냥감을 품은 목초지? 다양한 과일과 채소를 담은 숲? 농사 짓기 딱 좋은 비옥한 강변? 식량원이 바닥나서, 종교적 열망에 들떠서, 단순한 호기심에서 등등 여러 이유로 호모 사피엔스는 터전을 걷고 일어나 지도의 바깥으로 행진했다. 지도는 내 삶의 터전이 있는 지역을 가운데에 놓고 그리게 된다. 지도의 끄트머리는 세계의 끄트머리고, 그 바깥은 다른 세계다. 그 경계를 넘어가면 다른 천하가 펼쳐진다. 천하통일은 그 경계 안에서만 성립하는 개념이다. 그 경계 지역은 변방이다. 변방의 개념은 중심 지역이 성립해야 생겨난다. 생존과 공동체 존립에 중요한 자원, 물과 식량과 재료가 많은 곳에 인구가 몰려 중심이 되고, 변방은 그런 중요도가 떨어지는 먼 곳이기에 인구 밀도도 낮다. 권력도 중앙 권력과 결을 달리하는 경우가 있었다. 게다가 두 세계가 맞닿는 지역이기에 보통 방패 역할을 수행한다. 그래서 변방의 인상은 혹독한 환경 혹은 강인한 거주민이다. 신성로마제국의 변경백 작위, 중국의 만리장성은 그런 방어의 맥락이 낳은 결과물이다. 경계의 땅. 영어로 직역하면 보더랜드 정도가 될 것이고, 이는 루트 슈터라는 하위 장르를 정립시킨 슈팅 게임의 명작 시리즈의 제목이기도 하다. 보더랜드 시리즈의 무대인 행성들은 인간이 거주하는 행성의 지도에서 변방에 속한다. 자원이 있긴 하지만 많지는 않고, 환경은 딱 거주만 가능할 정도로 혹독하다. 멸망한 옛 문명이 남김 유적인 ‘볼트’가 있긴 하지만 이 행성에만 있는 유적도 아니니 중요한 행성이 아니다. 그래서 권력화한 기업들이 채굴과 전쟁을 위해 온 적은 있다. 그들이 데려온 인력은 노예 노동을 맡은 죄수 혹은 용병들이었고, 이들은 기업이 떠난 후에도 남았다. 자원과 유적을 놓고 만인이 만인을 적대하는 세계가 되었다. 공동체가 만들어지긴 했으나 마을 혹은 용병단 정도의 규모다. 방어의 맥락은 없지만 폭력으로 다져진 사람들이 사는 ‘변방’이다. 보더랜드 시리즈의 오프닝은 이런 변방 공간의 덧없는 폭력성을 보여준다. 처음 카메라가 잡는 대상은 10초 안에 허무하게 죽는다. 그 인물을 죽인 인물들도 몇 초 후에 죽는다. 생명의 존엄 같은 개념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세계라는 것을 빠르게 보여준다. 이 정도면 변방을 넘어 세계 바깥이다. 보더랜드를 비롯한 황무지 서사의 특징은 서사의 무대가 되는 지역을 다스리는 권력 구조, 더 정확히는 제도화된 권력 구조가 없거나 매우 약하다는 점이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공동체를 만드는 사회적 종족이고, 공동체의 작동을 위해 권력 구조를 만들고, 권력의 작동을 통해 생존 구조가 안정적으로 작동하면 인구가 늘어나 공동체가 확장한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문명이 등장한다. 반대로 말하면 권력 기구 따위 없는 세계는 문명의 세계가 아니다. 야생의 법칙 중 하나인 폭력의 법칙이 제1규칙의 자리에 있게 된다. 자원도 많지 않은데 이를 제도적으로 가공 생산품으로 바꿔낼 문명도 존재가 희박하다 보니, 대부분의 자원과 도구 – 무기는 서로를 죽이고 뺏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다. * 토마스 홉스는 만인이 만인을 상대로 투쟁하는 자연 상태를 상정하고 여기에서 모든 인간의 평등권 개념을 끌어냈다. 완벽한 자연 상태의 자유에서는 오히려 개인의 생존이 위험하기에 인간은 자유를 일부 포기하면서 공동체 권력이라는 개념을 만들게 된다는 논리였다. 물론 잘 죽이고 잘 뺏으려면 협동이 필요하다 그래서 마을 단위나 도적단 단위 정도의 공동체는 만들어지지만 그 이상의 권력은 쉽게 등장하지 않는다. 그나마 등장하면 행성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이라 할 수 있는 유적, 볼트를 여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면 볼트를 열고 싶은 다른 사람들의 욕망과 충돌한다. 그렇게 갈등이 끊이지 않고, 플레이어는 그 갈등 한가운데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상대를 총으로 쏴 그의 자원과 무기를 탈취한다. 쏘고 줍는, 루트 슈터 장르가 보더랜드 시리즈에서 정립되었다. * 상자를 열고 적을 죽여서 전리품을 얻는 것은 전투를 컨텐츠로 삼는 거의 모든 장르에 있는 자원 수급 방법이지만, 보더랜드 시리즈와 같은 루트 슈터 장르에서는 의미가 약간 달라진다. 루트 슈터 장르를 지탱하는 두 행동, 쏘는 행위 슈팅과 줍는 행위 루팅은 이 장르에서 가치 있는 재화와 장비를 획득하는 주된 방법이다. 구매와 보상으로도 얻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그리고 가치가 가장 높은 방법은 적에게서의 루팅이다. 보통의 MMORPG에서도 루팅은 주요한 획득 방법이지만, 제작이나 퀘스트 보상이라는 다른 주요 획득처가 존재한다. 같은 전리품 맥락의 획득이지만 루트 슈터에서는 다른 획득처가 중요하지 않거나 없다. 그리하여 루트 슈터에서의 루팅은 약탈 혹은 채집에 가깝고, 시뮬레이션으로의 게임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면 수렵 채집의 시뮬레이션이라고 정의할 수 있게 된다. 마침 변방, 세계 바깥이라는 작중 세계의 황량함은 수렵 채집 시대를 떠오르게 한다. 부족 규모의 공동체, 황무지에서 벌이는 적대적인 개체들과의 전투, 약탈, 문명 이전의 서사다. 보더랜드 시리즈를 수렵 채집 시대에 SF 스킨을 씌워 문명 바깥을 구현한 작품으로 본다면, 최근작인 4편의 서사적 맥락이 독특해진다. 이전작들의 무대인 판도라 행성은 변방 내지는 세계 바깥이라고 요약하기 딱 좋은 시공간이었다. 4편의 카이로스 행성은 겉보기에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여기에는 타임키퍼의 교단이라는 지배 권력이 존재한다. 타임키퍼의 지배 수단은 볼트(Bolt)라는 장치다. 이를 사람의 신체에 심어 모든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 여기에 자신의 우주적 사명이라는 것을 교리화하여 세뇌하다시피 한 신도들을 조직화해 교단을 꾸렸다. 이 세력이 카이로스를 지배하면서 외부에서의 관찰에 잡히지 않도록 행성 전체를 가려놓기도 했다. 그래서 카이로스는 지도에 없는 행성이었고, 운 나쁘게 불시착한 용병이나 해적들이 토착민과 함께 경쟁하며 살고 있다. 즉 카이로스는 중심 성계에서 변방에 위치한 것이 아니다. 단지 강력한 독재 권력이 지도에서 지워놨기에 변방이 된 것이다. 게임 플레이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플레이어는 볼트(Vault)를 열기 위한 경쟁을 하는 볼트 헌터고, 카이로스의 볼트를 독점하려는 타임키퍼와 그의 교단을 상대로 전투와 약탈을 한다. 이전작에서의 회사, 용병단 등의 적과 형태는 다르지 않다. 반면 설정된 반동 세력의 규모와 성격은 정반대다. 카이로스에는 교조적 독재 문명이라는 제도 권력이 존재한다. 전제를 다시 정리해보자. 변방은 각 세계의 끝이기에 문명이 없거나 옅다. 방어 전담 지역이기 때문에 혹은 중요하지 않아 무관심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변방/바깥은 만인 투쟁 상태의 무법 지대로 그려진 것이며, 그래서 보더랜드 시리즈의 수렵 채집 시뮬레이션을 펼쳐놓기 좋은 무대다. 반면 카이로스는 명백히 문명화된 설정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수렵 채집 시뮬레이션, 문명 바깥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지역 중에선 아웃랜드, 크아레쉬처럼 이미 문명이 멸망한 지역이 등장한다. 이런 지역은 열리기 이전, 정보가 거의 없을 때는 황무지처럼 묘사되었다. 그러나 플레이어들이 진입하여 스토리를 접하게 되면 각 세부 지역에 존재하는 일정 규모 이상의 공동체를 만나고, 그들에게서 퀘스트를 받거나 그들과 적대해 싸우면서 아직 문명의 잔재가 남아있음을 접하게 된다. 이는 카이로스에서의 서사와 유사하다. 이건 수렵 채집이 아니라 전쟁의 서사다. 그렇다면 카이로스를 무대로 한 보더랜드4의 이면에 독재는 문명이 아니라는 함의가 있는 걸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전쟁과 대립이 다시 시대의 테마로 떠오르고 있는 현재의 지구 정세와 연결해 사유할 지점이 생긴다. 변방의 황무지 행성이라는 무대를 홉스의 자연 상태에 가깝게 포장하는 데에는 보더랜드의 설정에 존재하는 기업들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플레이어가 사용하는 총기와 장비는 제조사마다 독특한 특수 효과를 지닌다. 이 제조사들은 여러 행성을 실질 지배하는 지배 권력이기도 한데, 작중의 은하계는 이미 정치 권력이 기업 권력에 무력으로 패배한 상태로 기업 간의 경쟁이 곧 전쟁을 포함하는 세계다. * 국가가 사라지고 기업이 정치 권력을 대체하는 세계는 SF에서 보통 디스토피아로 묘사된다. 보더랜드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기업들은 적으로 등장하는 서넛을 제외하고는 묵직한 배경으로서의 기능만을 수행한다. 이들이 벌이는 경쟁 내지는 기업 전쟁은 플레이어의 스토리와는 거리가 있다. 그 서사는 변방이 아닌 저기 중심부에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기업 중에서 플레이어의 스토리 수행에 의해 사세가 기우는 경우는 있어도 사라지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이런 배경 설정에서 다른 해석을 뽑아낼 수 있다. 홉스가 상상했던 자연 상태에 가까운 상태는 문명 바깥의 상태다. 독재 치하에서 폭력이 제1수단인 카이로스 또한 문명 외의 상태라면, 기업 전쟁이 횡행하는 은하계 또한 문명 외라고 간주할 수도 있다. 약간의 비약은 섞여있지만 말이다. 지도 밖으로의 행진은 개척의 서사다. 우리가 겪은 마지막 개척 경험은 미국 서부 개척을 마지막으로 현실에서는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보더랜드의 수렵 채집 시뮬레이션은 개척이 아닌 생존 서사에 가깝다. 문명은 생존 문제를 해결하고 그 이상의 가치를 추구하게 만드는 기능이 있는 바, 생존 서사는 곧 문명의 농도가 옅거나 없는 상태의 서사다. 더군다나 수렵 채집 행위를 매개로 하니 이는 전쟁의 생존 서사와 또 다른, 문명 유무의 맥락에서 읽히는 서사가 된다. 이런 사유의 끝에서, 폭력이 만성화되고 생존이 우선인 상태는 문명 외의 상태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리고 어쩌면 기업 전쟁이 만연한 보더랜드의 은하계처럼 겉보기에는 문명 사회로 보이는 상태도 문명이 옅어진 것일 수 있다. 서부 개척 시대의 무법자 인생이 마지막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수렵 채집의 세계에서 문명 국가의 세계까지의 거리는 생각보다 가까울 수도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 [논문세미나] <에이지 오브 원더스 4>의 다양성 이면에 있는 위계적 구조

    이러한 논의는 게임의 특성에 대해 도발적인 질문을 남긴다.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설령 게임의 내용이 아무리 진보적인 가치를 담으려 해도 게임 메커니즘이 보수적 가치를 재생산한다면 사실상 게임은 대안우파적 속성을 내재한 것이 아닌가?’하는 질문으로 연결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 Back [논문세미나] <에이지 오브 원더스 4>의 다양성 이면에 있는 위계적 구조 31 GG Vol. 26. 8. 10. 2023년에 나왔지만 DLC가 발매될 때마다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는 패러독스의 <에이지 오브 원더스 4>(이하 AoW4)는 <문명> 시리즈와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의 장점을 잘 녹인 게임으로 한국 게이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AoW4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라고 볼 수 있는 시스템은 게임 내에서 종족을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게임에선 일반적인 판타지 세계관에 등장하는 종족인 엘프, 드워프, 오크, 고블린뿐 아니라, 개구리 모습의 토드족, 산양이나 염소를 닮은 고트킨, 영화 아바타의 나비족을 닮은 사이런 등 각기 다른 문화와 종족 특성을 가지고 있는 다양한 종족이 등장한다. 게다가 이들의 문화(야만, 봉건, 원시, 강탈, 산업, 어둠 등)와 종족 특성까지도 커스텀할 수 있는 자유도를 제공한다. 이러한 게임의 특징은 세계관에 대한 몰입을 극대화하고, 전략과 전술에 깊이를 더한다고 평가받는다. 종족을 재구성할 수 있다는 자유도는 또 한 가지 특성을 가지게 하는데, 게임에서 인종적 폭력이 어떻게 재현되는지에 대한 비판적 담론을 피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4X 장르(eXplore, eXpand, eXploit, eXterminate)의 게임 메커니즘은 인구/종족을 관리 가능한 자원 단위로 수치화하는 걸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일방적이고 권위적인 인종 개념을 재현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가령, <문명> 시리즈를 하면서 ‘역사와 특정 영웅에 기반을 둔 것이니 반박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은 기술, 일본은 전쟁 특화 민족이라고 보는 것은 뭔가 좀...’하며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것처럼, 인종과 인종 특성에 관한 재현은 본질주의적이고 위계적인 인종 개념 위에서 만들어졌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AoW4는 이러한 비판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데, 첫째로는 현실에서의 인종과 판타지 게임에서의 종족 개념을 직접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설령 게임 플레이에서 특정한 인종적 고정관념이 드러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자유로운 시스템 속에서 게이머의 폭력성이 드러난 것이지 게임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종족의 외형과 특성을 분리해서 자유롭게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는 게임 시스템은 판타지 세상에서 반복된 고정관념을 뒤집을 수도 있고, 더 나아가 현실에서 인종과 인종적 특징을 연결시키는 차별적 관점에 대한 의심을 싹틔울 수도 있다. 그런데 켄터키 대학의 마크 하인스(Mark Hines)는 이러한 인식에 대해 반기를 든다. 게임에서의 재현을 단순히 텍스트로 바라보지 않고, 플레이와 연결시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하인즈의 논의는 고전적인 인종주의적 비판을 넘어서면서도 한편으로는 게임의 특수성이라는 것이 정치적 함의와 어떻게 가닿을지 고민하게 만든다. 이번 논문세미나에서는 진보적이게 보이는 판타지 게임의 종족 시스템이 현실의 인종주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펴보자. 부유하는 기표와 강화되는 인종적 질서 앞서 언급한 것처럼 AoW4는 판타지 매체에서 인종을 본질주의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에 대한 미묘한 도전이다. 이 게임은 플레이어들이 판타지 속 인종적 미학과 문화, 기술, 도덕성의 상호작용을 고찰하도록 유도한다. 즉, 게임에서의 인종주의가 본질주의적으로 위계화되어 있어서 플레이어가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문화적 요인들과 함께 플레이어가 만들어나가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하인스는 AoW4가 본질주의적 인종주의 묘사를 회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묘하면서도 해로운 인종적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때 활용되는 개념이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의 ‘부유하는 기표’인데, 이는 어떤 단어나 상징이 하나의 고정된 뜻을 갖지 않고 시대와 맥락에 따라 계속 다른 의미로 채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하인스는 여기에 라클라우(Ernesto Laclau)와 무페(Chantal Mouffe)의 인식을 더해서, 부유하는 기표가 단순히 의미가 유동적이라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유동성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집단이 주도권을 잡으려 경쟁하는 정치적 다툼의 장이라는 점을 짚고자 한다. AoW4가 플레이어에게 종족의 의미를 자유롭게 구성하도록 허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여전히 고정된 무언가가 남아 있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AoW4는 어떻게 유해한 인종적 세계관을 구축하는 것일까? 응우옌이 이야기한 것처럼, 게임은 현실의 복잡성과 모호성을 평면화할 수 있기 때문에 강력한 힘을 가진다. '내 인생의 성공은 무엇인지', '다른 사람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와 같이 복잡한 질문들을 게임은 체계화하고 수치화해서, 명료하고 일관적인 목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AoW4의 목표들을 살펴보면 백인 남성중심의 환원주의적인 인종적 세계관이 드러난다. 가령, 제국 전체는 여러 종족으로 이루어질 수 있지만, 개별 도시는 반드시 하나의 종족으로만 구성되어야 한다. 서로 다른 종족이 한 도시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그림 자체가 게임 안에는 없는 셈이다. 또, 어떤 종족을 가장 많이 보유한 플레이어는 그 종족 전체를(심지어 적의 편에 속한 구성원까지) 마법으로 한꺼번에 바꿔버릴 수 있다. 이는 종족이 각자의 정치적 소속과 상관없이 하나의 몸처럼 묶여 있다는 인식을 은연중에 심어준다. 영웅 시스템도 비슷하다. 플레이어는 다른 문명 출신의 영웅을 데려와 자기 편으로 쓸 수 있지만, 그 영웅이 타고난 마법 능력만큼은 원래 종족의 것을 그대로 유지한다. 즉 새로운 문화에 녹아드는 게 아니라, 마치 그 능력이 태초부터 정해진 우주의 법칙인 것처럼 계속 따라다니는 것이다. 이런 설정은 결국 인종을 '원래 그렇게 타고나는 것'으로 못 박는 효과를 낳는다. 4X 장르와 백인 남성 주체성의 결합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순히 비유적으로 게임이 백인 민족주의 논리를 답습한다는 점이 아니다. 게임의 단순화는 백인 남성 중심의 게이머가 자기 현실 경험을 게임 세계와 분리시켜, 인종과 젠더적 차별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게 만든다. 그리고 현실과 게임의 경계를 넘어 초월적인 인종적 법칙을 내재화한다. 예를 들어, 무수한 평행우주라는 공간적 배경에서 다른 종족과의 전투는 '서로 다른 존재들은 언제나 차이를 발견하고 그것을 폭력의 명분으로 삼는다'는 명제를 보편적 법칙으로 만들고, 반복 플레이라는 순환적 시간은 게임 속 통치와 전쟁 원리를 '상식'이나 '영원한 진리'처럼 보이게 만든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이 게임은 종족의 형질을 마음대로 뜯어고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실리콘밸리의 TESCREAL(테크노-유토피아적 우생학 사고) 담론과 그대로 맞닿는다. 플레이어는 마법으로 자신의 백성을 원하는 방향으로 개조하고, 여러 종족이 뒤섞인 제국보다는 단일 종족으로 밀고 나가는 쪽이 전략적으로 유리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하인스의 표현을 빌리면 이는 사실상 '우생학 놀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적 문제가 있다면 인구 집단을 기술적으로 개량하고 수치적으로 체계화해서 세상을 재편하면 되지 않나?'하는 엘리트주의적 논리가, 재미있는 게임 시스템의 얼굴을 하고 답습되는 것이다. 물론, 모든 게임이 플레이어의 행위로 이루어지기에 일견 과한 비판이 아닐까 싶지만, 메타적으로 결정 주체인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권한이 가치중립적이게끔 느껴지게 한다는 점에서 '영원한 객관성'의 원칙을 내재화하는 효과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러한 비판은 백인 남성인 게이머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하인스 비판의 핵심은 인간을 '완전한 인간 / 반쯤 인간 / 비인간'으로 나누어 규율하는 사회정치적 과정 자체에 있다. AoW4의 진짜 매력은 신체·정신·문화·이념 등을 자유롭게 조합해 종족을 설계하는 이 인종화 과정에 있고, 그 위계를 부여하는 것은 플레이어 자신이다. 얼핏 보면 AoW4는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을 전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탈인종적인 시대 분위기에 맞춰 인종 형성 과정을 좀 더 유연하고 세련되게 포장했을 뿐, 플레이어를 중심으로 위계화하고 타자화하는 근본 틀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플레이어는 자신의 실제 인종과 상관없이 누구나 냉철하게 판단하고 전략적 위험을 감수하며 더 큰 이득을 위해 인내할 수 있는 백인 남성의 가치를 부여받게 된다. 위계적 구조를 답습하는 게임의 특성 결국 하인스가 논문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은 하나다. AoW4에서 종족의 겉모습과 문화는 얼마든지 흔들리고 재조합될 수 있지만, '차이는 곧 적대의 근거가 된다'는 전제만큼은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 종족은 부유하는 기표처럼 자유롭게 떠다니는 듯 보여도, 그 아래에는 모든 의미가 들러붙는 하나의 고정된 축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하인스가 이 문제를 AoW4라는 개별 게임의 결함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가 진짜로 겨냥하는 건 4X 장르, 나아가 게임이라는 매체 자체가 가진 속성이다. 복잡한 사회적 판단을 명료한 숫자와 위계로 환원하는 능력, 완벽한 정보를 손에 쥔 플레이어에게 세계를 재설계할 권한을 쥐여주는 구조. 하인스는 이 속성이 우파적 세계관과 이상하리만치 잘 들어맞는다고 말한다. 게임이라는 형식 자체가 그런 세계관을 유독 편안하고 재미있게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는 게임의 약속은 현실의 위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자체를 꺼내기 어렵게 만든다. "이건 그냥 게임일 뿐"이라는 감각이야말로 플레이어를 정치적 판단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뜨려 놓는 장치이다. 이러한 논의는 게임의 특성에 대해 도발적인 질문을 남긴다.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설령 게임의 내용이 아무리 진보적인 가치를 담으려 해도 게임 메커니즘이 보수적 가치를 재생산한다면 사실상 게임은 대안우파적 속성을 내재한 것이 아닌가?’하는 질문으로 연결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위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이면 4X 게임뿐만 아니라 전략 시뮬레이션 전반, 자동화 시뮬레이션, 덱빌딩 게임, 빌드 최적화 중심의 RPG, 심지어 방치형 게임까지도 체계화하고 효율화하는 신자유주의적 가치를 재생산하는 기제로 읽힐 수 있다(가령 시민을 행복도·세수 같은 지표로 환원하는 도시 시뮬레이션, 인구를 투입-산출 함수로 다루는 공장 자동화 게임처럼). 다만 이 지점에서 하인스의 논증이 완전히 매듭지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는 "게임에서의 수치화가 곧 우파적 사고로 이어진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스스로 선을 긋지만, 정작 글 전체는 그 수치화·위계화 자체를 우파적 세계관의 증거처럼 다룬다. 이 둘 사이의 거리를 어떻게 메울 것인가는 논문이 답하지 않고 남겨둔 질문이다. 인종차별과 '탈인종적 인종주의'를 가르는 선도 마찬가지다. 하인스는 후자를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그 차이 사이의 적대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남겨두는 태도"로 정의하지만, 어디까지가 판타지 장르 특유의 서사적 관습(종족 간 갈등은 이야기를 굴러가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이고 어디부터가 정치적 세계관의 침투인지는 여전히 모호하다. 이 모호함이야말로 이 논문이 완전한 논증이라기보다 하나의 도발적인 질문에 가까운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 질문 자체는 곱씹어볼 가치가 있다. 우리가 게임에서 반복적으로 마주치는 '자유로운 설계'와 '필연적인 적대'의 조합이, 정말 우연의 산물일 뿐일까? 아니면 게임이라는 매체가 애초에 그런 조합을 편애하도록 만들어져 있는 걸까? 하인스의 논문은 이 물음에 완결된 답을 주기보다, 우리가 즐기는 게임의 재미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한 번 더 의심해 보게끔 만든다. 참고문헌 Hines, M. (2026). Racecraft à la carte: Fantasy assemblages in Age of Wonders 4. Game Studies, 26(2). https://gamestudies.org/2602/articles/hines Tags: 인종주의, 기호론, 4X, 제국주의, 우생학, 에이지 오브 원더스 4, 4X 전략게임, 게임과 인종주의, 판타지 종족, 부유하는 기표, 논문세미나, Age of Wonders 4, 4X Strategy Games, Race in Video Games, Game Studies, Stuart Hall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 <앨런 웨이크2> - 화려하게 돌아온 고전 컬트작의 속편

    앨런이 갇혀있는 어둠의 장소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에 앞서, 앨런 웨이크 시리즈의 개발사인 레메디 엔터테인먼트(Remedy Entertainment, 이하 ‘레메디’) 및 이 개발사가 핀란드 게임업계 미친 영향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한다. < Back <앨런 웨이크2> - 화려하게 돌아온 고전 컬트작의 속편 15 GG Vol. 23. 12. 10. **본 기사의 영문 원문은 아래 URL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00359dad-c657-476c-a5fd-39a27a875ff3 <앨런 웨이크2>는 범죄 소설 베스트셀러 작가 앨런 웨이크를 주인공으로 하는 2010년작 게임이 오랜만에 돌아온 후속작이다. 첫편은 슬럼프로 고통 받던 앨런이 아내 앨리스와 함께 미국 북서부에 위치한 가상의 도시 브라이트폴즈(Bright Falls)로 휴가를 떠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부부는 호수 한 중간에 있는 작은 섬에 위치한 오두막에 머물기로 하는데, 아내와 싸우고 악몽 같은 저녁시간을 보낸 앨런이 자신이 운전했는지 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로 차 안에서 깨어난다. 브라이트폴즈의 주민들은 앨런에게 그 호수에 오두막 같은 것은 수십년간 존재한 적이 없다고 알려주는데, 그러한 가운데 앨런이 절박하게 아내를 찾아나서면서 복잡하게 소용돌이 치는 스토리가 전개된다. 자신이 쓴 기억이 없는 책 속의 사건들이 앨런의 주변에서 현실로 나타나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앨런 웨이크2>에서는 십년이 넘는 세월동안 다른 차원에 갇혀 뒤틀린 버전의 뉴욕을 헤매고 있는 작가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앨런은 게임의 두번째 주인공인 사가 앤더슨(Saga Anderson)이라는 FBI 요원이 개입하는 스토리를 만들어서 현실로 돌아오려 한다. 사가의 스토리 또한 브라이트 폴즈에서 시작되는데, 앨런의 또 다른 자아들이 앨런과 대적하면서 상황이 악화된다. 현실세계에 너무 많은 피해가 가기 전에 그들을 파괴해야 하는데, 이는 작가에게 달려있다. 3인칭 슈팅과 서바이벌 호러 장르에 속하는 이 게임은 그 템포나 액션장면의 페이스로 볼 때 <레지던트 이블>과 <사일런트 힐> 사이의 어디쯤 위치한다고 할 수 있다. 앨런이 갇혀있는 어둠의 장소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에 앞서, 앨런 웨이크 시리즈의 개발사인 레메디 엔터테인먼트(Remedy Entertainment, 이하 ‘레메디’) 및 이 개발사가 핀란드 게임업계 미친 영향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한다. 레메디 엔터테인먼트 - 데스 랠리서부터 앨런 웨이크 첫편까지 레메디는 인기 프랜차이즈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핀란드의 개발사다. 1996년 처음으로 <데스 랠리>를 출시한 이래 레메디는 핀란드를 넘어 글로벌하게 이름이 알려진 개발사가 되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어느 정도 운이 작용한 덕도 없진 않았지만, 게임의 플레이 경험 뿐 아니라 게임 디자인에 있어 스스로의 한계에 도전했던 레메디의 야망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레메디의 발전에 있어 행운이 있었다면, <데스 랠리>가 비슷한 시기 <듀크 뉴켐 3D(Duke Nukem 3D)>를 출시했던 아포지(Apogee, 후에 3D realms가 된다)를 통해 출시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듀크 뉴켐 3D>의 인기가 레메디의 거대 퍼블리셔의 일원으로서 미래를 보장받는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데스랠리>는 1990년대 후반 10만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는데, 이 성공은 레메디가 후속편 <맥스 페인(Max Payne)> 개발에 뛰어들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2001년 출시된 <맥스 페인>은 핀란드 개발사로서는 처음으로 글로벌 규모로 큰 성공을 거둔 사례였으며, 게임 개발업이 “너드나 하는 일”로부터 “진지한 커리어”로 이동하게 된 바탕이 되었다. <맥스 페인>은 필름누아르 스타일의 스토리텔링과 배경으로도 유명하지만, 무엇보다도 플레이어가 시간을 늦춰서 적보다 빠르게 조준할 수 있게 해주는 “불렛 타임”이라는 메카닉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2002년 레메디는 <맥스 페인> 시리즈에 대한 판권을 천만 달러에 테이크투 인터랙티브(Take-Two Interactive)에 팔았고, 락스타 게임즈(Rockstar Games)는 2003년 후속작 <맥스 페인의 몰락(The Fall of Max Payne)>을 출시했다. 이 게임은 8백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로써 레메디와 맥스 페인은 핀란드 게임업계에 있어 중요한 사건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비디오게임에 대한 인식에 변화가 생기자 게임에 대한 연구 및 개발작업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가 생겨난다. 2003년경부터 핀란드의 고등교육기관(HEI)에서 비디오게임을 강의나 수업 주제로 삼기 시작했고, 다수의 교육기관에서 학사 및 석사, 나아가 박사 과정까지 게임에 초점을 맞춘 학위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레메디의 성공은 비디오게임 부문이 핀란드 내 일상에 스며들게 한 촉매였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상당한 주목을 받게 한 최초의 사례이기도 했다. 핀란드의 게임산업 역사는 프로그래밍 및 게임 콘솔에 대한 취미가들의 관심이 증가했던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후 90년대에 들어가서는 PC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오늘날까지 유효한 “데모씬(Demoscene)” - 일종의 컴퓨터 예술 하위문화 - 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프로그래머들은 데모씬 영역에서 일궈온 자신의 경험을 비즈니스로 만들었는데, 성공한 게임으로 데모씬을 만들면서 출발했던 최초의 개발자 집단으로는 <스타더스트(Stardust)> 및 <슈퍼 스타더스트(Super Stardust)>로 잘 알려진 블러드하우스(Bloodhouse)나 나중에 하우스마크(Housemarque)로 합쳐지게 되는 테라마크(Terramarque) 등이 있다. 하우스마크는 최근작 <리터널(Returnal, 2021)>이 상업적 성공을 거두는 등 여전히 잘 나가고 있다. 레메디나 하우스마크 같은 게임사들이 성공을 이어가면서 게임 산업과 교육, 취미, 데모씬, 그리고 커리어로서의 게임이 여전히 굳건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맥스 페인 이후 레메디는 새로운 아이디어 구상에 돌입했고 2년 뒤인 2005년 <앨런 웨이크>가 탄생한다. 마이크로소프트 게임 스튜디오가 협업 대상으로 선정되면서 <앨런 웨이크>는 2010년 XBOX 360용으로, 2012년에는 윈도우즈 PC용으로 출시되었다. 처음에는 기대했던 수준의 판매고를 올리지는 못했지만 이후 4백만장의 판매고를 달성하면서 이 게임은 서바이벌 호러 장르의 컬트작으로 자리매김한다. <앨런 웨이크>는 많은 부분에 있어 <맥스 페인>과 상반되게 만들어졌다. 레메디가 액션보다는 내러티브와 분위기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자 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맥스 페인이 액션에 걸맞는 직업인 경찰이었던 것에 반해 앨런이 작가로 설정된 것도 다소 특이한 설정이었다. 나아가 <앨런 웨이크>는 에피소드식 구성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같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레메디에 따르면 <앨런 웨이크>가 게임의 결말 이후 일종의 브릿지로서 연결될 DLC의 첫 시즌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다고 한다. 앨런 웨이크 이후 - 2010년부터 2023년까지 현 시점에서 돌이켜 본다면 2010년 출시 후 <앨런 웨이크>가 일으킨 파장은 곧장 후속편이 나올 수 있었을 정도라 볼 수 있겠지만, 퍼블리셔 입장에서 당시의 매출은 곧장 후속편 출시를 결정하기엔 충분하지 못했다. 이에 더해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IP를 원했기 때문에, 레메디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모든 것을 시작해야 했다. 2013년 레메디는 <퀀텀브레이크(Quantum Break)>의 2015년 출시를 공표하였으나 Xbox One 독점판매 게임들과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 출시가 연기된다. <퀀텀브레이크>에서 초점은 어둡고 거친 환경으로부터 벗어나 201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깔끔한 SF로 옮겨간다. <퀀텀브레이크>는 시간 여행이 잘못되면서 시간상 균열이 점점 커지는 와중에 세계의 종말을 위협하는 존재가 등장한다는 내용인데, 주인공은 시간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이용해서 이를 막아야 한다. 레메디가 만들었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이 게임 또한 <앨런 웨이크>에 비해 액션성을 추구하는 3인칭 슈터 게임이다. 레메디는 <퀀텀브레이크>를 "엔터테인먼트 경험"과 "트랜스미디어 액션 슈팅 게임과 텔레비전의 하이브리드"라고 홍보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게임 내 "정션 포인트"라고 불리는 구간에 보게 되는 라이브 액션 텔레비전쇼와 게임간의 통합이다. 이 텔레비전쇼는 플레이어의 선택/결정을 반영하며 다음 에피소드의 진행을 위한 스테이지를 구축한다. 이처럼 하나의 작품 내에 2개의 장치를 병치한 것은 스토리와 게임플레이, 비주얼, 배우들의 연기 모두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면서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텔레비전쇼를 게임과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도록 한 것에 대해서는 반응이 복합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측면은 창의성을 제대로 밀어부칠 때 지불해야 하는 비용과 같은 것이고, 레메디는 그러한 시도로 유명한 개발사다. <퀀텀브레이크>는 Xbox One세대의 새 IP 중 <씨 오브 씨브즈(Sea of Thieves)>가 출시되기 전까지 가장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퀀텀브레이크> 이후 레메디는 마이크로소프트와 결별하고 2017년 기업공개(또는 주식 발행)을 진행했다. <퀀텀브레이크>의 퍼블리싱 판권은 여전히 마이크로소프트의 소유인 가운데 2019년 레메디는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앨런 웨이크>의 퍼블리싱 판권을 인수했다. 십여년에 이르는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오랜 제휴관계 이후 처음으로 구상한 신규 IP는 P7이라 불리는 프로젝트였다. 동시에 레메디는 스마일게이트의 <크로스파이어(Crossfire)> 후속편의 스토리모드를 개발하고 있다고 공표했다. 제휴를 통해 운영 해온 기업으로부터 공개 기업으로의 전환은, P7프로젝트 작업이 보다 효율적으로 이루어져서 개발 지연에 의한 비용의 상승을 방지해야 함을 의미했다. <앨런 웨이크>는 출시되기까지 7년이 걸렸고 <퀀텀브레이크>는 5년이 걸렸다. 레메디는 P7프로젝트를 3년만에 해내면서 또 다시 성공을 일궈냈다. <컨트롤(Control, 2019)>로 알려진 이 프로젝트에서는 다시 한 번 초점이 변화했는데, 이번에 그 초점은 스토리텔링에 있어서의 변화 보다는 플레이어 주변에서 게임 세계가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맞춰졌다. <컨트롤>에서 주인공 제시 페이든(Jesse Faden)은 미국의 비밀 기관 연방통제국(FBC)의 초자연 현상 전담기구인 올디스트하우스(Oldest House)>를 탐험한다. 연방통제국의 새로운 국장으로서 제시는 현실에 침투해서 오염시키는 히스(the Hiss)라 불리는 적을 해치우기 위해 다양한 능력을 활용해서 환경과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 게임은 제시가 어렸을 적 남동생이 납치되었던 사건 및 FBC가 확보한 힘이 깃든 물체(Object of Power)와 관련된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본부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히스가 올디스트하우스 바깥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으면서 히스의 목적은 무엇이며 남동생은 어디에 있는지를 밝혀내는 것이 제시에게 달려있다. 어렸을 적 그녀가 남동생과 살던 동네는 오디너리(ordinary)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컨트롤>은 레메디가 제작했던 이전의 작품들이 그렇듯 스토리텔링과 세계관, 시청각적 재현 및 캐릭터에 대한 호평 등으로 상업적 성공과 비평단에서의 성공을 모두 거머쥐었다. <컨트롤>이 말 그대로 여러가지 방식으로 스토리를 담고 있기는 하지만, 그 세계는 결국 자신의 고유한 어둠의 장소에 갇힌 어떤 작가와 공유된 것이었다. 크로스파이어X 사태 <앨런 웨이크2>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큰 성공을 거두기 전 레메디가 배워야 했던 아주 중요한 교훈이 하나있었다. 2016년 이후 레메디가 <컨트롤>과 함께 작업을 병행한 프로젝트였던 <크로스파이어X(2022)>의 스토리 모드 개발이다. 간단히 말해서 레메디는 오랜 작업기간에도 불구하고 스토리모드의 시간과 템포가 느리고 캐릭터가 얄팍하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스토리 모드 작업에서 실패했다. 여타의 개발사들도 레메디가 한 것과 다를 바 없이 할 수 있을 작업이었다. 즉 “레메디의 표식”이 그 스토리 작업에 없었던 것이다. 레메디가 이 경험으로 배운 교훈이란, 다른 이의 눈치를 보기보다는 개발사로서 자신의 장점을 살리고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라 생각된다. <크로스파이어X>는 2022년 2월에 출시된 후 16개월만인 2023년 5월에 서비스가 종료되었다. 이 게임은 형편없는 콘트롤, 지루한 스토리모드, 클리셰로 가득한 멀티플레이 경험 등으로 인해 서구 시장의 소비자를 겨냥하는데 크게 실패했다. 서구에서 1인칭 슈팅 게임은 <콜오브듀티(Call of Duty)>, <헤일로(Halo)>, <오버워치(Overwatch)>, <배틀필드(Battlefield)>가 지배하고 있으며, 이 시장에서 어느 정도 비중을 키우려면 레메디가 만든 근사한 스토리 이상의 어떤 것이 필요한 것이다. 앨런 웨이크를 위해 다시 한 번, 모든 힘을 모으다 레메디가 만든 게임의 역사를 살펴봤으니, 이제는 현 시점 우리의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다. <앨런 웨이크>의 후속편과 위에 언급했던 것들이 중요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베데스다(Bethesda)가 특유의 스타일이 있듯 레메디도 마찬가지다. <앨런 웨이크2>에서 레메디는 기존 개발 작업으로부터 얻은 교훈과 게임이 줄 수 있는 경험의 한계를 밀어부치고자 하는 열정을 성공적으로 통합시켰다. 레메디 특유의 에피소드식 게임플레이, 타임라인과 캐릭터 스토리의 교차 등이 그에 해당한다. 나아가 플레이어는 스토리상에 개입하는 순서를 선택할 수 있으며 어둠의 시간동안 벌어지는 현실의 변화를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다. <앨런 웨이크2>는 어둠의 공간에 13년간 갇힌 작가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앨런은 현실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게임 첫 편에서 사건이 벌어졌던 브라이트폴즈에서 벌어지는 호러스토리를 쓰는 것이라 느낀다. 게임은 서바이벌 호러 장르 및 범죄물과 늘상 불안한 분위기를 풍기는 환경 속에서 디테일과 스토리텔링에 초점을 맞추는 레메디 특유의 스타일을 통합시켰다. 레메디가 에피소드식으로 재현되는 게임의 한계를 더욱 밀어부치는 방식 중 하나는, 게임의 스토리를 플레이어가 원하는 순서대로 완결지을 수 있도록 부여해준 자유다. 최초의 시작과 마지막의 엔딩은 사가 앤더슨과 앨런 각각의 관점에서 강제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두 인물의 개별적 스토리는 약 20여 시간동안 게임이 진행되면서 점차 서로 얽혀간다. <앨런 웨이크>의 성공은 레메디가 <앨런 웨이크2>를 통해 자신들이 배웠던 교훈 및 강점을 제대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또 다른 성취를 이룬 것이라 평할 수 있다. 다양한 퍼즐의 시도 및 향후 이어질 속편 작업을 위해 구축한 특정한 경험 등 <앨런 웨이크2>의 수준 높은 게임플레이와 스토리텔링에서 나타나는 양질의 엔터테인먼트 경험 제공을 향한 개발자들의 열정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2023년은 다른 해였다면 여러번 상을 받았을 법한 놀라운 게임들이 대거 등장한 해였다. <앨런 웨이크2>는 2023년 후반기에 출시되었음에도 2023 Game Awards ceremony의 8개 분문에 노미네이트되었으며 올해 이미 Golden Joystick Awards 2023에서 the Critic’s Choice를 수상했다. 이 어마어마한 해에 <앨런 웨이크2>에 대적할 수 있는 게임으로는 <발더스 게이트3(Baldur’s Gate 3)>가 유일해 보인다. 레메디가 <앨런 웨이크2>에 모든 것을 걸었다는 것을 자명한 것이었고 그 결과물은 매우 훌륭했다. 레메디는 이 후속편을 통해 미래의 트렌드를 세웠고 고품질의 서바이벌 호러 장르를 전면으로 이끌어 냈다. 이는 레메디와 핀란드 게임업계에 좋은 소식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레메디가 일궈낸 연속적인 성공은 개발 환경이 갖춰지고 자원이 적절히 활용되면 놀라운 일이 벌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엉터리 수익화 관행만이 판치는 세상에서 레메디는 게임에 대한 열정과 애정에 시간과 공간이 확보되면 확실히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레메디는 라이브 서비스로부터 완결된 패키지 및 완성된 엔터테인먼트 경험으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주요 기업 중 하나다. 게이머들은 60달러 - 요즘은 70달러 - 의 절반이 넘는 가격이 매겨진 반짝이는 말 스킨 따위보다는, 하나의 완결작으로서의 게임을 더 원하고 또 중시할 것이다. 미래, 현재 그리고 과거 - 레메디 커넥티드 유니버스 마침내, 혹은 또 다른 시작이다. 레메디 게임의 스토리텔링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친애하는 작가 앨런 웨이크와 어둠의 존재가 <컨트롤>의 두번째 확장판 “컨트롤:이계사(Control: AWE)”에서 등장함으로써 확인된 레메디 커넥티드 유니버스(Remedy Connected Universe, RCU)라는 세계관이다. <컨트롤>에서 플레이어는 FBC가 앨런 웨이크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문서들을 찾을 수 있었다. 레메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샘 레이크(Sam Lake)는 <컨트롤>과 <앨런 웨이크>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으며 <컨트롤: 이계사>는 그 첫번째 크로스오버 작품임을 확실히했다. 샘 레이크는 전에 레메디가 수년간 커넥티드 유니버스에 대한 아이디어를 보유해왔다고 언급한 적 있는데, 마침내 <컨트롤>과 <앨런 웨이크>를 통해 그러한 측면을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앨런 웨이크2>는 FBC 및 브라이트폴즈에서 벌어진 일들과 완전한 연결고리를 구축했다. FBI 요원으로서의 경력이 사가 앤더슨이 주목을 끌면서 브라이트 폴즈에서의 살인 사건을 조사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이 유니버스를 통합시키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안전할 것이다. 이 세계들은 보다 연결되어 있으며 그러한 연결성은 스핀오프작인 <앨런 웨이크의 아메리칸 나이트메어>에도 등장하는데, 오디너리라고 불리는 마을(앞서 제시의 과거를 언급한 부분 참조)과 꽤 다루기 힘든 또 다른 캐릭터가 그것이다. 아, 그리고 브라이트폴즈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FBC의 청소부 아티도 잊지 말길. 레메디의 <컨트롤> 후속편 작업이 확정된 가운데, FBC와 제시의 이야기가 사가와 앨런의 이야기와 통합될 것임도 확실하다.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지는 현 시점에서는 알 수 없지만, 이 시점에 당신은 앨런 웨이크와 사가 앤더슨이 되어 손을 놓을 수 없는 환상적인 서바이벌 호러 게임 속으로 몰입할 수 있다. 준비하고 대비하되 빛을 너무 빨리 소진하지 말 것. 지난 수년을 통털어 최고인 호러게임이 여기에 있으며, 이 게임은 레메디가 지난 날 배운 교훈들을 통해 자신의 강점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Postdoctoral Researcher) Henry Korkeila PhD, MSc, is postdoctoral researcher whose recent work has focused on the avatarization of our analog cultures as they inevitably turn into digital cultures. Special focus has been on avatars themselves, usage of avatars in their different contexts including multiple online video game genres. He has approached avatars through the types of capital, or resources, they have. His recent works in progress continue to explore the cultures of MMOs, and game accessibility and inclusivity at large.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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