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밖도 자본의 바깥은 아니다 - 〈동물의 숲〉과 자본주의
04
GG Vol.
22. 2. 10.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하 〈동숲〉)은 여러 모로 게임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다. 새로운 콘솔 플랫폼이었던 ‘스위치’의 흥행에 일조했으며, AAA급 게임들이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전통적인 게이머 타겟층과는 사뭇 다른 지점에서 붐을 일으켜 한편으로는 게이머의 범주 확장도 만들어냈다. 무엇보다도 한국에서 ‘〈동숲〉 현상’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붐을 일으키며 게이머가 아닌 이들의 입에도 오르내릴 수 있는 수준의 흥행을 가져왔다는 점은 이 게임의 영향력이 결코 적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널리 퍼져나가는 게임은 그만큼 사회와 관계맺는 영향력의 면적 또한 넓을 수 밖에 없다. 하나의 게임이 만들어낸 세계와 그 세계의 법칙은 내적 완결성을 갖추고 아름답게 작동한다는 점에서 게임이용자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다. 〈리그 오브 레전드〉가 사람들로 하여금 무작위 팀 매칭 기반의 협업 플레이라는, 마치 대학교 조별과제 같은 협업의 방식을 일상화시킨 것과 비슷하게 〈동숲〉의 게임 구조 또한 플레이어에게는 일련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물론 그 메시지가 대단히 강력한가, 별다른 영향력이 없는가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부분이 많지만, 한 게임이 제시하는 완결된 세계가 주는 메시지의 의미 자체를 살펴보는 일은 그리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모든 게임은 깊게든 얕게든 어떤 식으로든 우리가 사는 세계 혹은 우리가 상상하는 세상에 대한 해석과 재현으로 이루어진다. 〈동숲〉의 게임규칙 또한 이러한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인도에 정착해 여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진 구조는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는가?
휴양의 섬은 누구의 것인가?
〈동숲〉은 기본적으로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강렬하게 무엇을 추구해야 한다는 요구를 밀어붙이지는 않는다. 플레이어는 휴양과도 같은 목적으로 준비된 무인도에 입도하며, 거기서 간단한 텐트를 치면서 이런저런 활동을 시작한다. 무엇을 하건, 언제까지 하건 딱히 게임은 급하게 달성해야 할 무언가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매우 느리고 담담한 템포가 게임 전반을 지배한다.
그러나 느린 템포가 곧 게임이 완전한 샌드박스임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동숲〉은 천천히, 그러나 꼼꼼하게 플레이어로 하여금 도전해야 할 다음 과제를 은근하게 제시하며 게임의 진행에 일련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텐트로 만들어진 집은 조금씩 튼튼하고 넓은 집의 모양으로 발전해 나가며, 낚시와 수집의 결과물들은 박물관과 수족관 안에서 빈 자리를 채워나가며 쌓여간다. 게임이 제시하는 이 모든 과제들은 제한시간 내에 해결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사실 반드시 해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게임을 진행시키기 위해 거쳐야 할 요소들로 제시된다.
도전을 요구하는 갈등을 제시하는 게임의 방식은 조금 색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를테면 집 구매를 위한 대출의 방식이 대표적이다. 일반적인 플레이 결과로는 〈동숲〉에서 플레이어는 집 건축의 시기가 도래했을 때 충분한 금액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태에 놓인다. 매우 자연스럽게도 너구리는 플레이어에게 ‘그래서 대출이 준비되어 있습니다’를 제시하고, 플레이어 또한 자연스럽게 이 대출을 받아들이며 집의 개축이 시작된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표면적인 방식은 동일하지만, 이때부터 〈동숲〉의 플레이는 조금 달라진다. 기존의 방식이 되는대로 플레이하며 돈을 모으는 식이었다면, 대출 이후부터는 원금상환을 위한 플레이로 변화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상환이 돈으로만 이뤄지지는 않는다. 게임 안에서는 딱히 돈을 크게 벌 만한 요소들이 직접적으로 제시되지는 않으며(단 하나의 예외는 후술한다) 오히려 여러 활동으로 쌓는 마일리지 포인트가 주요 대출상환의 방법으로 이용된다. 상환의 압박은 현실처럼 거세지 않고 다양한 방법, 무기한에 가까운 상환기한처럼 유연하게 제시되지만 그렇다고 근본적인 구조인 대출 – 상환 시스템이 사라지는 것 또한 아니다.
대출이라는 방식을 통해 부동산(집)을 구매하고 개축하는 것은 우리에게 이제는 보편적인 일로 다가오긴 하지만, 게임에서의 방식은 흔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다른 방식, 돈을 모아 집을 사는 일과 비교해볼 때 그 효과가 잘 드러난다. 더 넓고 많은 장식물과 비품을 갖춰둘 수 있는 좋은 집을 갖기 위해 먼저 막대한 자금을 열매 주워팔기와 물건만들어 팔기로 시도한다고 생각해 보자. 집의 효용을 맛보기 전까지 이런저런 활동으로 푼돈을 모으는 시간은 길고 지루해진다. 그러나 자금이 충당되기 전에 먼저 집 공사가 시작되고 대출장부에 이름만 올라가는 〈동숲〉의 방식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대출자금의 긴 상환을 잊게 만들 만큼의 효용을 제시한다.
이는 게임 디자인의 일환이지만 동시에 오늘날 부동산과 같은 고가의 거래물이 대출을 끼고 돌아가는 매우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어차피 장기간에 걸친 축적으로만 살 수 있는 물건이라면, 적절한 신용보증이 되는 상황이라면 효용을 먼저 누리고 천천히 자금을 갚아 나가는 편이 더 효율적이다. 먼저 누리고 나중에 내되, 선불과 후불만큼의 시간차는 금리로 계산되어 상환액에 포함되는 것이 오늘날의 대출 구매 방식이다.
〈동숲〉은 표면적으로는 대자연 속의 힐링, 복잡한 도시를 떠난 무인도에서의 맑고 아름다운 삶을 제시하지만 그런 삶의 중심을 이루는 주택구매라는 포인트는 자연속의 힐링이라는 주제와는 사뭇 다른, 현대 금융자본주의의 핵심이 뼈대에 자리한 대출구조를 통해 연출된다. 비슷하게 무인도의 삶을 소재로 삼았던 게임 〈심즈 2: 캐스트 어웨이〉는 (물론 여기는 조난에 가까운 상황이지만) 섬에서의 삶을 구현할 때 별도의 화폐경제나 대출 같은 방식이 포함되지 않는다. 같은 무인도의 자연 속 삶이지만 〈동숲〉은 여기가 현대 문명과 완전히 동떨어져있지 않은 곳임을 건축회사와 대출구조, 상점 등을 통해 끊임없이 플레이어에게 주지시킨다.
많은 이들의 탄식과 환호성을 불러왔던 게임 속 시스템인 ‘무 상인’의 존재도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다. 일요일마다 방문하는 행상 ‘무파니’의 무는 딱히 다른 용도가 주목받지 않는, 말그대로 투자수익을 위한 미니게임의 용도로 게임 안에 의미지어진다. 막대한 채무를 손쉽게 돌파할 수 있는 루트로서의 무 투자는 마일리지 도전과제가 있을 만큼 추천되는 플레이인데, 무 값의 변동은 게임 내 다른 요소들과 완전히 무관하며 오직 매수가와 매매가의 차이만이 중요하게 다뤄질 뿐이다. 평화로운 섬에서의 휴양 중에 그것도 매주 일요일마다 찾아오는 ‘무파니’의 존재 또한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연에서의 휴양이라는 컨셉과 어딘가 모르게 이질적이다.
〈동숲〉, 사이버공간에 만들어진 또 하나의 '스타필드'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하는 평화로운 풍광에서의 휴양이라고는 하지만 〈동숲〉이 보여주는 그 힐링의 현장은 우리의 이상과는 다르게 매우 자본주의적인 과정에 의해 만들어진 힐링공간이다. 플레이어가 전입해 온 이 평화로운 섬에 먼저 와 기다리는 것은 너굴 주식회사의 인프라임을 게임 도입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곤충채집과 조개줍기, 낚시와 정원가꾸기는 모두 너굴 주식회사가 제공하는 휴양 프로그램의 일환임을 게임은 시작부터 끝까지 여러 가지 요소들을 통해 강조한다. 휴양을 위해 도시는 벗어났지만, 플레이어는 여전히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를 벗어나지는 못한 것이다.
복잡한 도시를 벗어날 수 있는 출구로서의 무인도 또한 주식회사라는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경로이며, 낭만적인 휴양도 거대 자본에 의해 만들어진 인프라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동숲〉은 시사한다. 심지어 그 시스템이 부과한 채무를 손쉽게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되는 것 또한 일종의 투자 게임인 무 투매라는 점에서 〈동숲〉이 제시하는 휴양의 세계는 한편으로는 섬뜩하다. 우리가 늘 동경하고 욕망하는, 세계의 짜여진 틀을 벗어나고자 하는 것조차도 결국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그 욕망을 포착하고 만들어낸 상품일 뿐이라는 점에서다.
〈동숲〉이 드러낸 현대인의 여가와 휴양에 관한 단면은 실제 현실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다. 대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주말의 여가를 위해 이른바 ‘교외’로 불리는 곳을 향해 나들이를 떠난다. 실제로 도시의 삭막한 환경을 벗어나 산과 강을 찾기도 하지만, 그 교외에 위치한 복합 엔터테인먼트 쇼핑몰들의 존재는 〈동숲〉이 보여준 상품으로서의 휴양을 현실에서 만나볼 수 있는 좋은 예시들이다. ‘스타필드’와 같은 브랜드 쇼핑몰들은 도시의 번화가에 자리한 백화점과 달리 ‘교외’를 중심으로 자리잡으며, 방문객들로 하여금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쇼핑’이라는, 소비와 여가를 결합시킨 활동을 통해 소비자들로 하여금 상품관계 속의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문명 6’에 등장하는 ‘쇼핑몰’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상업지구가 아닌 주거지역에 지을 수 있는 건물로 등장한다. 건물의 효과 또한 쇼핑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과 조금 다른데, 단순히 상업수익이 나는 곳이 아니라 거주민의 쾌적도와 지역의 관광을 크게 올려주는 효과가 핵심이다. 우리의 여가는 시스템 밖을 꿈꾸지만, 그 밖을 향하는 경로까지도 자본주의 시스템은 상품화한다. 설령 무인도에서의 고요한 삶을 꿈꾸더라도 그조차도 Inc. 가 붙은 기업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숲〉의 설정은 애초에 그런 삶을 생각하며 게임 시스템에 접속하게 되는 시대에 대한 거친 스케치로도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