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구성하는 다양한 방법 : 게임에서 기억을 다루는 이유 - When The Past Was A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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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6. 8. 10.
전 세계적으로 가장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이야기의 주제는 무엇일까. 아마도 지금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 바로 '사랑'일 것이다. 사랑은 이야기의 가장 흔한 주제인 만큼 그 형태도 다양하다. 그리고 사랑을 다루는 이야기가 많은 만큼, 사랑이 끝난 자리에 대한 이야기 또한 대중적이고 보편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것을 흔히 헤어짐 혹은 이별이라 부른다.
이별은 사랑이 지나간 자리다. 어떤 이는 이별 후 그 사랑의 기억을 영원히 지우고 싶어 하지만, 어떤 이는 기억 속에서 그 사랑이 어땠는지를 끊임없이 되짚는다. 신기하게도 그 기억들은 언제나 정서와 함께 남는다. 그래서 명확하지 않고, 사실과 다를 수도 있다. 어쩌면 모든 기억은 '데이터화되지 않았기에' 살아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감정과 기억이 늘 함께 떠오르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기억은 데이터가 아니고, 명확하지 않으며, 감정과 함께이기에 비로소 추억이 된다.
이런 기억과 감정을 게임으로 만들면 어떻게 될까. 기획자의 의도와는 별개로, 사랑과 이별을 기억으로 구조화한 게임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상상해본 적 있는가. 2020년 모지켄 스튜디오(Mojiken Studio)가 만든 《When the Past Was Around》는 기억과 감정을 중심으로, 플레이어가 주인공이 되어 사랑과 이별의 흔적을 찾아가는 게임이다. 게임 플레이는 단순하고 대사 한 줄 없는 이스케이프룸 스타일의 퍼즐로 진행되지만, 관계의 결정적 순간들을 떠올리며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 형식은 감정과 기억, 관계의 얽힘을 섬세하게 풀어낸 수秀작이다. 이 게임은 단순히 기억을 게임화한 것이 아니라, 기억이 어떻게 디지털로 구체화되고, 그것이 다시 플레이어 각자의 기억과 추억으로 되돌아가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게임으로 따라가는 기억의 재구조화
이 게임은 주인공 에다(Eda)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게임은 독특하게 대사가 없고 음악의 선율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특징을 갖는데, 황금 새장에 갇힌 그림자 같은 존재를 만나는 장면에서 본격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다. 새장 안에 갇힌 그를 해방시키면 문이 열리고, 퍼즐을 풀면서 수집하는 깃털들이 점차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다. 다시 말해 에다가 숨겨둔 기억과 감정을 플레이어들이 마주하게 하고, 그 기억을 어떻게 추억할 것인지를 플레이하게 되는 것이다. 게임은 짧은 플레이타임(약 2시간)과 열쇠 찾기·암호해독 위주의 단순한 퍼즐 구조 덕분에 크게 어렵지 않다. 사실 이 게임은 연인의 죽음 이후, 에다가 이별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사랑과 이별의 기억을 되짚는 이야기이다.
플레이어는 에다의 기억을 공간을 통해 경험하게 된다. 퍼즐을 풀면 깃털이 모이는데, 이를 통해 에다의 죽은 연인인 올빼미(Owl)와 에다가 마주치고, 함께 외출하며, 음악가로서 서로 공감하고 기억을 되새기는 모습이 드러난다. 둘이 음악가라는 설정 때문인지 대부분 음악이 게임의 중심 서사를 꿰어준다. 음악 상자를 수리하기도 하고, 올바른 순서로 음표를 연주하는 등, 퍼즐의 대부분이 음악과 연결되어 있다.
이렇게 음악으로 이어지던 서사 속에서, 정작 황금 새장에 갇힌 사랑했던 사람인 올빼미는 어딘가 좀 이상하다. 초반에 나오는 방들은 밝고 아늑하고, 퍼즐을 푸는 방법도 아주 쉽지만, 점점 다른 공간으로 옮겨가면서, 즉 현재와 가까워질수록 게임 자체도 어두워진다. 실제로 플레이 방식도 물건들을 내동댕이치거나 화분을 부수는 등, 슬픔과 고통의 플레이가 지속된다. 결국 연인의 죽음으로써 플레이어는 비로소 사랑의 기억이 이별이었음과 마주하게 된다. 그제서야 플레이어들은 왜 에다가 올빼미(연인)를 황금 새장에 가두어두었는지를 알게 된다. 고통과 슬픔을 회피하기 위해 가두었던 기억을, 이 게임은 직접 목도하게 하고, 그 기억을 다시 재구성하며 마주하게 한다. 그래야만 다음 페이지를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억을 플레이하는 이유
앙리 베르그송은 기억을 과거 전체가 잠재적으로 보존된 것과 현재의 필요에 의해 호출되는 이미지-기억으로 구분했다. 이별은 대상을 점진적으로 (자신에게서) 떠나보내야만 하는 과정이다. 이것을 프로이트의 언어로 정상적 애도라 하는데, 이 과정을 거치지 못하면 대상을 자아 안으로 합체시켜 놓아주지 못하는 상태, 즉 우울증에 갇히게 된다.
이 게임은 상실을 상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플레이를 통해 알게 한다. 어쩌면 이것은 상실한 사람에 대한 위로이자, 어떻게 자신으로부터 상실된 대상을 분리해낼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가이드북일 수도 있다. 잊힘은 '기억'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임을 에다는 조용히 알려준다.
플레이어들은 에다의 기억을 하나씩 '떠올리며' 떠나보내게 되고, 결국 에다는 자신과 합치되었던 애도의 대상인 올빼미를 자신에게서 떼어내 온전한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사랑과 이별이라는 보편 서사로 시작한 게임이, 플레이를 통해 개인적 애도의 과정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사적 기억을 들여다보고 플레이를 통해 애도를 진행한다는 컨셉은 상실을 받아들이는 일이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님을 게이머로 하여금 인지하게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애도는 시간이 흐르는 것을 견디는, 대단히 수동적인 과정으로 여겨져 왔다. 상실의 아픔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고, 그러니 이 시간을 견디는 것이 중요하다는 식의 해결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 게임에서 상실과 애도는 플레이를 통해서 '수행'된다. 애도도 하나의 작업이고 실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상실은 결코 자연스럽게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이고 반복적인 작업을 요구한다.
게이머들은 게임에서 자물쇠를 풀고 서랍을 열고, 깃털을 모아 기억과 마주한다. 그 기억을 마주하는 에다는 과거를 붙들어 새장 속에 가둬두는 것만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에다는 자신의 동반자이자 사랑했던 연인이 죽고 나서 음악도 포기한 상태였다. 챕터 4에서는 에다가 혼자 연인과의 기억이 담긴 곡을 연주하려 하지만 음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악기를 바닥에 내던지기도 한다. 마지막 장에서 에다는 단순히 과거를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왜 슬픔에 잠식당했는지, 연인이 죽고 나서 그뿐만 아니라 자신을 어떻게 잃었는지, 그리고 과거에 집착함으로써 현재의 삶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에다의 개인적인 기억은, 플레이를 통해 공동의 기억이 되고 애도의 과정을 대리 경험하게 하며, 보편적 슬픔에 대한 공동체적 위로의 기능을 하게 된다.
디지털화된 정보, 기억하기의 행위
게임이 제공하는 건 데이터화된 조각이지만 그 조각을 보고 사랑이나 상실을 떠올리는 건 전적으로 플레이어의 몫이다. 마찬가지로 에다의 기억을 클리어했다고 해서 에다의 애도가 끝난 것이지 플레이어의 애도가 끝난 것 또한 아니다. 오히려 그 순간 플레이어의 기억과 애도의 과정이 시작될 수도 있다. 어쩌면 크레딧이 끝나고 화면이 꺼진 뒤에, 우리는 의외로 자신의 마음에 남겨둔 황금 새장의 기억을 다시 상기할 수도 있다. 역설적으로 게임의 기억구조가 완결되는 순간 진짜 기억하기는 화면 밖 인간의 머릿속에서 시작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대체로 많은 기억들을 디지털화한다. 수많은 소셜 미디어 안의 기억들은 사진이나 비디오, 오디오 레코딩을 통해 축적되고 있다. 그러나 그 수많은 데이터화된 사진과 영상들을 다시금 자발적으로, 혹은 감정적으로 떠올리기는 오히려 어려워졌다. 이미 디지털 속에 기억이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당시를 떠올리는 과정이 무감각해진 탓이다. 디지털은 기억을 무한히 정확하게 저장할 수 있지만 그건 정보일 뿐 추억은 아니다. 인간의 경험은 완결되지 않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일 수 있다.
사실 에다의 기억 속에 연인이 이 게임에서 올빼미로 기억되는 것은 그가 저장된 사진이나 데이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에게 올빼미는 연인이자, 밤을 지켜주는 아름다운 새였다. When the Past Was around가 건네는 기억하기의 미학은 과거의 기억은 언제나 사람의 주체적인 ‘감정’과 함께 소구된다는 점일 수 있다. 우리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행위는 단순히 디지털화된 게임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것뿐만 아니라 플레이를 통해 만들어가는 인간 고유의 행위가 무엇인지를 되짚는 일이다. 정밀하게 설계된 픽셀과 코드 안에서 플레이어(인간)는 코드화될 수 없는 자신만의 감정을 소환한다. 게임하기는 어쩌면 기억하기이며, 기억하기는 끝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