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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세미나] <에이지 오브 원더스 4>의 다양성 이면에 있는 위계적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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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6. 8. 10.

2023년에 나왔지만 DLC가 발매될 때마다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는 패러독스의 <에이지 오브 원더스 4>(이하 AoW4)는 <문명> 시리즈와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의 장점을 잘 녹인 게임으로 한국 게이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AoW4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라고 볼 수 있는 시스템은 게임 내에서 종족을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게임에선 일반적인 판타지 세계관에 등장하는 종족인 엘프, 드워프, 오크, 고블린뿐 아니라, 개구리 모습의 토드족, 산양이나 염소를 닮은 고트킨, 영화 아바타의 나비족을 닮은 사이런 등 각기 다른 문화와 종족 특성을 가지고 있는 다양한 종족이 등장한다. 게다가 이들의 문화(야만, 봉건, 원시, 강탈, 산업, 어둠 등)와 종족 특성까지도 커스텀할 수 있는 자유도를 제공한다. 이러한 게임의 특징은 세계관에 대한 몰입을 극대화하고, 전략과 전술에 깊이를 더한다고 평가받는다.


     

종족을 재구성할 수 있다는 자유도는 또 한 가지 특성을 가지게 하는데, 게임에서 인종적 폭력이 어떻게 재현되는지에 대한 비판적 담론을 피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4X 장르(eXplore, eXpand, eXploit, eXterminate)의 게임 메커니즘은 인구/종족을 관리 가능한 자원 단위로 수치화하는 걸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일방적이고 권위적인 인종 개념을 재현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가령, <문명> 시리즈를 하면서 ‘역사와 특정 영웅에 기반을 둔 것이니 반박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은 기술, 일본은 전쟁 특화 민족이라고 보는 것은 뭔가 좀...’하며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것처럼, 인종과 인종 특성에 관한 재현은 본질주의적이고 위계적인 인종 개념 위에서 만들어졌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AoW4는 이러한 비판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데, 첫째로는 현실에서의 인종과 판타지 게임에서의 종족 개념을 직접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설령 게임 플레이에서 특정한 인종적 고정관념이 드러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자유로운 시스템 속에서 게이머의 폭력성이 드러난 것이지 게임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종족의 외형과 특성을 분리해서 자유롭게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는 게임 시스템은 판타지 세상에서 반복된 고정관념을 뒤집을 수도 있고, 더 나아가 현실에서 인종과 인종적 특징을 연결시키는 차별적 관점에 대한 의심을 싹틔울 수도 있다.


그런데 켄터키 대학의 마크 하인스(Mark Hines)는 이러한 인식에 대해 반기를 든다. 게임에서의 재현을 단순히 텍스트로 바라보지 않고, 플레이와 연결시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하인즈의 논의는 고전적인 인종주의적 비판을 넘어서면서도 한편으로는 게임의 특수성이라는 것이 정치적 함의와 어떻게 가닿을지 고민하게 만든다. 이번 논문세미나에서는 진보적이게 보이는 판타지 게임의 종족 시스템이 현실의 인종주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펴보자.

     


부유하는 기표와 강화되는 인종적 질서


앞서 언급한 것처럼 AoW4는 판타지 매체에서 인종을 본질주의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에 대한 미묘한 도전이다. 이 게임은 플레이어들이 판타지 속 인종적 미학과 문화, 기술, 도덕성의 상호작용을 고찰하도록 유도한다. 즉, 게임에서의 인종주의가 본질주의적으로 위계화되어 있어서 플레이어가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문화적 요인들과 함께 플레이어가 만들어나가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하인스는 AoW4가 본질주의적 인종주의 묘사를 회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묘하면서도 해로운 인종적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때 활용되는 개념이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의 ‘부유하는 기표’인데, 이는 어떤 단어나 상징이 하나의 고정된 뜻을 갖지 않고 시대와 맥락에 따라 계속 다른 의미로 채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하인스는 여기에 라클라우(Ernesto Laclau)와 무페(Chantal Mouffe)의 인식을 더해서, 부유하는 기표가 단순히 의미가 유동적이라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유동성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집단이 주도권을 잡으려 경쟁하는 정치적 다툼의 장이라는 점을 짚고자 한다. AoW4가 플레이어에게 종족의 의미를 자유롭게 구성하도록 허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여전히 고정된 무언가가 남아 있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AoW4는 어떻게 유해한 인종적 세계관을 구축하는 것일까? 응우옌이 이야기한 것처럼, 게임은 현실의 복잡성과 모호성을 평면화할 수 있기 때문에 강력한 힘을 가진다. '내 인생의 성공은 무엇인지', '다른 사람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와 같이 복잡한 질문들을 게임은 체계화하고 수치화해서, 명료하고 일관적인 목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AoW4의 목표들을 살펴보면 백인 남성중심의 환원주의적인 인종적 세계관이 드러난다. 가령, 제국 전체는 여러 종족으로 이루어질 수 있지만, 개별 도시는 반드시 하나의 종족으로만 구성되어야 한다. 서로 다른 종족이 한 도시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그림 자체가 게임 안에는 없는 셈이다. 또, 어떤 종족을 가장 많이 보유한 플레이어는 그 종족 전체를(심지어 적의 편에 속한 구성원까지) 마법으로 한꺼번에 바꿔버릴 수 있다.


이는 종족이 각자의 정치적 소속과 상관없이 하나의 몸처럼 묶여 있다는 인식을 은연중에 심어준다. 영웅 시스템도 비슷하다. 플레이어는 다른 문명 출신의 영웅을 데려와 자기 편으로 쓸 수 있지만, 그 영웅이 타고난 마법 능력만큼은 원래 종족의 것을 그대로 유지한다. 즉 새로운 문화에 녹아드는 게 아니라, 마치 그 능력이 태초부터 정해진 우주의 법칙인 것처럼 계속 따라다니는 것이다. 이런 설정은 결국 인종을 '원래 그렇게 타고나는 것'으로 못 박는 효과를 낳는다.

     


4X 장르와 백인 남성 주체성의 결합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순히 비유적으로 게임이 백인 민족주의 논리를 답습한다는 점이 아니다. 게임의 단순화는 백인 남성 중심의 게이머가 자기 현실 경험을 게임 세계와 분리시켜, 인종과 젠더적 차별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게 만든다. 그리고 현실과 게임의 경계를 넘어 초월적인 인종적 법칙을 내재화한다. 예를 들어, 무수한 평행우주라는 공간적 배경에서 다른 종족과의 전투는 '서로 다른 존재들은 언제나 차이를 발견하고 그것을 폭력의 명분으로 삼는다'는 명제를 보편적 법칙으로 만들고, 반복 플레이라는 순환적 시간은 게임 속 통치와 전쟁 원리를 '상식'이나 '영원한 진리'처럼 보이게 만든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이 게임은 종족의 형질을 마음대로 뜯어고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실리콘밸리의 TESCREAL(테크노-유토피아적 우생학 사고) 담론과 그대로 맞닿는다. 플레이어는 마법으로 자신의 백성을 원하는 방향으로 개조하고, 여러 종족이 뒤섞인 제국보다는 단일 종족으로 밀고 나가는 쪽이 전략적으로 유리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하인스의 표현을 빌리면 이는 사실상 '우생학 놀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적 문제가 있다면 인구 집단을 기술적으로 개량하고 수치적으로 체계화해서 세상을 재편하면 되지 않나?'하는 엘리트주의적 논리가, 재미있는 게임 시스템의 얼굴을 하고 답습되는 것이다.


물론, 모든 게임이 플레이어의 행위로 이루어지기에 일견 과한 비판이 아닐까 싶지만, 메타적으로 결정 주체인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권한이 가치중립적이게끔 느껴지게 한다는 점에서 '영원한 객관성'의 원칙을 내재화하는 효과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러한 비판은 백인 남성인 게이머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하인스 비판의 핵심은 인간을 '완전한 인간 / 반쯤 인간 / 비인간'으로 나누어 규율하는 사회정치적 과정 자체에 있다. AoW4의 진짜 매력은 신체·정신·문화·이념 등을 자유롭게 조합해 종족을 설계하는 이 인종화 과정에 있고, 그 위계를 부여하는 것은 플레이어 자신이다.


얼핏 보면 AoW4는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을 전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탈인종적인 시대 분위기에 맞춰 인종 형성 과정을 좀 더 유연하고 세련되게 포장했을 뿐, 플레이어를 중심으로 위계화하고 타자화하는 근본 틀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플레이어는 자신의 실제 인종과 상관없이 누구나 냉철하게 판단하고 전략적 위험을 감수하며 더 큰 이득을 위해 인내할 수 있는 백인 남성의 가치를 부여받게 된다.

     


위계적 구조를 답습하는 게임의 특성


결국 하인스가 논문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은 하나다. AoW4에서 종족의 겉모습과 문화는 얼마든지 흔들리고 재조합될 수 있지만, '차이는 곧 적대의 근거가 된다'는 전제만큼은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 종족은 부유하는 기표처럼 자유롭게 떠다니는 듯 보여도, 그 아래에는 모든 의미가 들러붙는 하나의 고정된 축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하인스가 이 문제를 AoW4라는 개별 게임의 결함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가 진짜로 겨냥하는 건 4X 장르, 나아가 게임이라는 매체 자체가 가진 속성이다. 복잡한 사회적 판단을 명료한 숫자와 위계로 환원하는 능력, 완벽한 정보를 손에 쥔 플레이어에게 세계를 재설계할 권한을 쥐여주는 구조. 하인스는 이 속성이 우파적 세계관과 이상하리만치 잘 들어맞는다고 말한다. 게임이라는 형식 자체가 그런 세계관을 유독 편안하고 재미있게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는 게임의 약속은 현실의 위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자체를 꺼내기 어렵게 만든다. "이건 그냥 게임일 뿐"이라는 감각이야말로 플레이어를 정치적 판단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뜨려 놓는 장치이다.


이러한 논의는 게임의 특성에 대해 도발적인 질문을 남긴다.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설령 게임의 내용이 아무리 진보적인 가치를 담으려 해도 게임 메커니즘이 보수적 가치를 재생산한다면 사실상 게임은 대안우파적 속성을 내재한 것이 아닌가?’하는 질문으로 연결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위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이면 4X 게임뿐만 아니라 전략 시뮬레이션 전반, 자동화 시뮬레이션, 덱빌딩 게임, 빌드 최적화 중심의 RPG, 심지어 방치형 게임까지도 체계화하고 효율화하는 신자유주의적 가치를 재생산하는 기제로 읽힐 수 있다(가령 시민을 행복도·세수 같은 지표로 환원하는 도시 시뮬레이션, 인구를 투입-산출 함수로 다루는 공장 자동화 게임처럼).


다만 이 지점에서 하인스의 논증이 완전히 매듭지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는 "게임에서의 수치화가 곧 우파적 사고로 이어진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스스로 선을 긋지만, 정작 글 전체는 그 수치화·위계화 자체를 우파적 세계관의 증거처럼 다룬다. 이 둘 사이의 거리를 어떻게 메울 것인가는 논문이 답하지 않고 남겨둔 질문이다. 인종차별과 '탈인종적 인종주의'를 가르는 선도 마찬가지다. 하인스는 후자를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그 차이 사이의 적대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남겨두는 태도"로 정의하지만, 어디까지가 판타지 장르 특유의 서사적 관습(종족 간 갈등은 이야기를 굴러가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이고 어디부터가 정치적 세계관의 침투인지는 여전히 모호하다. 이 모호함이야말로 이 논문이 완전한 논증이라기보다 하나의 도발적인 질문에 가까운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 질문 자체는 곱씹어볼 가치가 있다. 우리가 게임에서 반복적으로 마주치는 '자유로운 설계'와 '필연적인 적대'의 조합이, 정말 우연의 산물일 뿐일까? 아니면 게임이라는 매체가 애초에 그런 조합을 편애하도록 만들어져 있는 걸까? 하인스의 논문은 이 물음에 완결된 답을 주기보다, 우리가 즐기는 게임의 재미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한 번 더 의심해 보게끔 만든다.

     

     


참고문헌
Hines, M. (2026). Racecraft à la carte: Fantasy assemblages in Age of Wonders 4. Game Studies, 26(2). https://gamestudies.org/2602/articles/hines

Tags:

인종주의, 기호론, 4X, 제국주의, 우생학, 에이지 오브 원더스 4, 4X 전략게임, 게임과 인종주의, 판타지 종족, 부유하는 기표, 논문세미나, Age of Wonders 4, 4X Strategy Games, Race in Video Games, Game Studies, Stuart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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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문화연구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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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세대의 문화담론 플랫폼 게임제너레이션은 크래프톤의 후원으로 게임문화재단이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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