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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마음의 퍼즐 상자: 〈애니멀 웰〉과 〈리프 이어〉의 세계에 대해

    이 글은 《게임제너레이션》 20호에 실린 「기계장치의 우주: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의 불능감에 대해」의 후속편으로, 지난 글의 결론부에서 언급만 하고 넘어갔던 장르명인 ‘메트로브레이니아(metroidbrainia)’에 대한 논지를 심화해 〈애니멀 웰 (Animal Well, 2024)〉과 〈리프 이어 (Leap Year, 2024)〉를 뜯어보는 것이 목표다. 그러므로 우선 곧장, 메트로브레이니아가 무엇인지를 정리하며 글을 열겠다. < Back 내 마음의 퍼즐 상자: 〈애니멀 웰〉과 〈리프 이어〉의 세계에 대해 24 GG Vol. 25. 6. 10. 다시 들어가며 이 글은 《게임제너레이션》 20호에 실린 「 기계장치의 우주: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의 불능감에 대해 」의 후속편으로, 지난 글의 결론부에서 언급만 하고 넘어갔던 장르명인 ‘메트로브레이니아(metroidbrainia)’에 대한 논지를 심화해 〈애니멀 웰 (Animal Well, 2024)〉과 〈리프 이어 (Leap Year, 2024)〉를 뜯어보는 것이 목표다. 그러므로 우선 곧장, 메트로브레이니아가 무엇인지를 정리하며 글을 열겠다. 지난번에 잠시 언급했듯, 이 단어는 선구적인 《슈퍼 메트로이드 (Super Metroid, 1994)》와 그 영향을 받은 《악마성 드라큘라 X 월하의 야상곡 (Castlevania: Symphony of the Night, 1997)》의 합성어인 ‘메트로배니아(metroidvania)’에 ‘브레인(brain)’을 집어넣은 말장난이다. 일종의 내부자용 농담 같은 이 단어에 대해 게임 저널리스트 케이트 그레이는 「대관절 메트로브레이니아가 뭐야?」라고 물어보는 글 [1] 에서 《메트로이드》가 뭐고 《캐슬배니아》란 또 무엇인지부터 구구절절 설명해야 하는 이런 작명이 “기이할 정도로 도움이 되지 않고, 기계적이고 자기 참조적”이라고 비판한다. 대신에, 그는 자신과 동료가 고안한 ‘지식 노드 퍼즐(knowledge node puzzle)’과 ‘정보 게임(information game)’이라는 훨씬 직관적인 표현을 통해 “정보의 획득이 목표고, 이미 얻은 정보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이를 해내”며 그를 위해 “정보를 흥미로운 방식으로 감춰서, 세계와 그 구조에 대한 플레이어 본인의 이해력을 통해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내는” 유형의 게임들을 묶고자 한다. 이렇게 지식·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레이의 접근에서 흥미로운 점은 그가 이런 유형을 정의 내리며 플레이어의 경험과 그에 딸려 오는 (고고학자나 탐정 같은) 어떠한 기분 또한 중대하게 언급한다는 것이다: “게임은 (마치 역사처럼) 당신보다 앞서서 펼쳐져 있고, 당신은 정말 무엇도 바꿀 수 없을 뿐, 그저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밖에는 없다.” 이런 설명을 지난 글과 연결 짓자면, 〈아우터 와일즈〉와 〈레인 월드〉는 각각 태양계와 생태계의 법칙을 그 임의성까지도 어느 정도 포함해 모의하며 플레이어에게 “우리-없는-세계” [2] 한복판에 떨어진 기분을 제공했을 테다. 비밀스러운 세계와 그 벽들 [3] : 메트로배니아와 메트로브레이니아에 대해 그렇지만, 나는 메트로브레이니아에서 플레이어가 숨겨진 지식·정보를 차근차근 연결 짓고 이해하도록 하는 진행이 중요한 만큼 메트로배니아적인 특성을 아예 무시할 수도 없다고 주장하고 싶다. 그레이의 문장대로 “게임이 거의 마치 당신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당신은 그저 이를 발견했을 뿐”인, 세계에 대한 플레이어의 불능(감)을 고전적인 메트로배니아 장르를 활용하면서도 충분히 추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메트로배니아의 ‘불변하는 매력’이 대관절 무엇인지를 여러 게임 제작자에게 물어보는 인터뷰 [4] 에서, 많은 이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진 맵 속에서 필요한 아이템을 찾거나 역추적을 해야만 극복할 수 있는 방해물로 이뤄진 사이드 스크롤링 액션-어드벤처”의 구조가 특정한 플레이 경험을 생성한다고 밝힌다. 이 경험은 대개 새로운 이동기나 공격기를 얻으며 성장하는 플레이어의 주체적인 행위성과 관련되어 있다. 플레이어가 주어진 세계를 익혀나가고 그에 익숙해지는 분투가 그 세계를 무대 삼은 서사로 이어지는 진행 과정의 등치를 통해 “그저 사건들의 정해진 순서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 그 사건들을 (어떤 경우에는 항상 같은 순서도 아니게) 일으키는 기분”과 “다수의 방식으로 탐험 준비를 마친 거대한 맥락 속에 플레이어가 들어간 인상을 (심지어 그 인상이 거짓일지라도) 선사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상술한 메트로배니아 고전들의 주동 인물이자 플레이어 캐릭터인 사무스와 알루카드부터 플레이어의 숙련에 따라 각종 파워 업을 얻고 장비 세트를 되찾으며 강해지고, 결국엔 제베스 행성에서 마더 브레인을 또 악마성에서 드라큘라를 물리친다. 그러니 아무리 거대한 맵을 헤매거나 크고 작은 전투에서 밀리더라도, 끝에 가면 이들을 제어하는 플레이어가 작중 서사의 중심이 된 기분이 드는 것은 당연할 테다 [5] . 다시 말해, 메트로배니아는 거대하게 연결된 세계를 탐험하며 성장하는 플레이를 작중 서사의 전반적인 진행과 일치시켜, 플레이어가 주어진 사건과 맥락 속에서 인과나 행위력을 출중히 발휘하는 전능(감)을 고양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메트로배니아의 전제에서 출발해, 플레이어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세계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비인격적이고 무심한 우리-없는-세계에 직면하려는 시도” [6] 를 상상해 본다면 어떨까? 이를테면 플레이어가 세계의 구조나 비밀을 알아가는 과정이 그 상위의 맥락이나 사건에 직접적인 인과를 발휘하지 않으면서 등치가 어긋나는 식으로 말이다. (다시 지난 글을 되짚자면, 〈아우터 와일즈〉의 결말은 화로인의 ‘관측’이 가히 우주적인 힘을 발휘하도록 인과를 극적으로 연결 짓는 한편, 〈레인 월드〉의 결말은 슬러그캣의 귀결이 그가 뒤로 한 세계에 큰 인과를 끼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스킬 및 아이템의 해금이나 레벨·파워 업 같은 중대한 게임적 요소를 그보다 덜 게임적일 지식·정보의 획득 및 연결로 치환할 때, 플레이어가 경험하는 진행의 감각은 모호하게 흐트러지면서 전능(감)에 불능(감)이 흘러 들어올 수 있는 여지를 열어놓는다. 그렇다면, 메트로브레이니아를 규칙이 고정된 장르보다는 플레이어가 지식·정보를 매개로 게임 속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으로 이해해 보자. 주어진 지식과 정보를 알맞은 방식으로 연결 짓자 “필연적으로 설명할 수 없고, 측량할 수 없으며, 숨겨지고 은닉된 채 남겨진” [7] 듯한 세계의 비밀이 드러나는 메트로브레이니아적인 작동법은 플레이어의 진행을 쉽게 수량화하거나 가시화할 수 없도록 하며, 세계의 인과가 오로지 플레이어의 행위성에만 연동되지 않는다는 점도 드러낼 수 있다. 따라서 메트로브레이니아 유형의 게임들은 다른 경우들보다 불능(감)이 우선 두드러질 수도 있겠지만, 바로 거기서부터 출발해 플레이어에게 모르는 의미나 숨은 비밀을 알아차릴 때의 짜릿한 전능(감)을 효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 메트로브레이니아를 메트로배니아에서 구분 짓는 특성이 바로 이것이라고 둘 수도 있겠고 말이다. 이와 더불어, 앞서 인용한 메트로배니아의 정의에서 특히나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연속적으로 이어진 맵’이라는 특성이다. 유기적으로 짜여 역추적과 그를 통한 새로운 지역의 개방이 가능한 메트로배니아의 세계가 여타의 2D 플랫포머가 제시하는 세계와 구별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성훈의 논의 [8] 를 빌려오자면, 각 스테이지가 선형적으로 진행되고 스테이지끼리도 선형적으로 연계되곤 하는 2D 플랫포머들은 “이차원적인 움직임으로서의 전진에 대한 비평을 게임 내적인 논리에서 마련한다. 그 비평은 특히 게임이 제공하는 최후의 조우와 최후의 공간을 중첩하는 방식에 따라서 특유의 완결된 형식미를 갖춘다.” 곧 일반적인 2D 플랫포머에서 제시되는 세계란 시작에서 끝으로 향하는 경로 자체로, 그 일직선 구조를 반영하듯 “명쾌하고 명료하며 직선적인 이야기는 한편으로 스테이지 간의 근원적인 단절을 숨기고, 좌우로 길게 봉합된 스테이지의 연쇄를 통과하며 전진하고 있단 환상을 유지한다.” 이러한 2D 플랫포머의 세계에서 일직선 공간의 끄트머리는 ‘최종장’이라 비유되듯 플레이 전반의 마무리와도 자연스레 겹친다. 선형적인 경로의 마지막 칸에 닿으면, 그 세계는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완결이 나는 셈이다. 이에 비해 메트로배니아가 제시하는 세계는 플레이어의 방문 순서가 느슨하게 짜이는 등 다른 2D 플랫포머에 비해 훨씬 비선형적이고, 그런 만큼 주어진 세계의 ‘최종장’이 아니라 중심부에서부터 훨씬 더 멀리 떨어진 ‘변방’을 향해 탐험하며 이동의 범위를 조금씩 넓혀나가는 플레이를 제공한다. 따라서 플레이어가 주어진 세계의 끄트머리에 닿더라도, 이는 서사 전반의 마무리로 직결되며 플레이의 공간과 시간을 겹치지는 않는다. 이런 특성을 통해 다른 2D 플랫포머에 비해 메트로배니아에서는 세계가 자기 완결적으로 닫혀 있다는 사실을 더욱 실감할 수가 있다. 「 최종장과 변방 」에서 3D 오픈 월드의 세계로 설명하듯, “이곳이 곧 끝이지만, 게임 내적으로 이곳이 곧 끝이라고 선언되어서는 안 된다는 역설. 경계 부근은 열린 세계의 닫힌 지역이라는 점에서 오픈 월드의 모순이 격화되는 장소다.” 이러한 관점에 따라 본론에서는 기본적으론 2D 플랫포머인 〈애니멀 웰〉과 〈리프 이어〉를 중심으로, 퍼즐 상자 같은 세계가 제 비밀을 드러내는 메트로배니아적인 동시에 메트로브레이니아적인 특성을 짚겠다. 닫힌 세계와 그 겹들: 〈애니멀 웰〉에 대해 〈애니멀 웰〉의 1인 제작자 빌리 배쏘(Billy Basso)는 비밀이 겹겹(layer)으로 숨겨져 있다는 단골 문구로 이 게임을 소개하곤 하는데, 이 겹겹의 비밀은 크고 작은 플랫포밍 퍼즐과 얼기설기 엮인 채 가로세로 16칸씩으로 이뤄진 세계의 전반적인 형상과 함께 차차 밝혀지도록 짜여있다. 첫 겹에서는 평범한 2D 플랫포머에 가깝게 진행하며 결말을 보았다면, 두 번째 겹에서는 세계 곳곳에 숨어 있는 듯한 달걀들을 전부 찾아내고, 심지어 그보다도 더 숨겨진 겹을 향해 토끼 굴을 파고 내려가는 식으로. 이 세계를 돌아다니는 자그마한 덩어리인 플레이어 캐릭터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얻은 장난감들을 통해 이 세계에 주어진 다양한 퍼즐 및 겹겹의 비밀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익혀나간다. 〈애니멀 웰〉의 핵심이라 할만한 이 장난감들은 거의 다 둘 이상의 쓰임새를 가지는데, 이는 종종 플레이어가 세계를 좀 더 능숙히 이동하도록 돕는 동시에 각종 지식·정보를 제시하며 전능(감)의 조건들을 짜맞춘다. 이를테면 원반으로 개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한편 원거리에서 날려 레버를 조작하거나 몇 오브젝트를 부술 수도 있고, 심지어는 플레이어 캐릭터가 올라타 방을 가로질러 날아갈 수도 있는 식으로. 이런 유용한 장난감들을 도구 삼아 세계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방식이 늘어날수록, 플레이어가 돌아다닐 수 있는 스테이지의 범위 또한 넓어진다. 중앙에서부터 출발하는 지도를 (첫 번째 겹의 공략 목표인 네 개의 불빛이 위치한) 변방으로 밝혀가면서 이 세계를 구석구석 탐험하는 진행은 방마다 주어진 플랫포밍 퍼즐 외에도 더 큰 규모의 퍼즐로 향하는 단서나 그보다도 훨씬 깊숙하게 숨겨진 비밀의 존재를 알아차려 가는 공략 전반과 자연스레 겹친다. 그렇게 자신이 획득한 지식·정보가 장난감들이 그렇듯 복수의 의미와 용도를 지닌다는 점을 깨달은 플레이어는 단서들을 알맞게 연결하며 이 퍼즐 상자 같은 세계의 조작법을 익히고 그에 익숙해지는 전능감을 얻는다. (배경에 서 있는 동상이나 측면으로 난 동물 머리 같은 시각적 요소에서도 〈슈퍼 메트로이드〉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있듯) 메트로배니아의 기본 공식에 꽤 충실한 만큼, 〈애니멀 웰〉은 관습적인 장르 공식을 뒤틀어 제 나름의 메트로브레이니아적인 특성들을 덧붙이기도 한다. 이를테면 게임의 또 다른 홍보 문구인 ‘전투 없는 메트로배니아’가 지시하듯 플레이어 캐릭터에게 공격기 자체를 제거했다는 점이 그렇다. 플레이어에게 기초적인 행위성과 그에 따른 전능(감)을 부여하곤 하는 전투가 없다는 점에서 〈애니멀 웰〉은 무시무시한 타조나 캥거루 등에 맞서지 못하는 불능(감)을 키우는 편이며, 그외에도 우물 곳곳에 거주하는 수많은 동물이 이 자그마한 덩어리에 종종 호전적이거나 대개 무심하다는 점 또한 다시금 이 세계가 플레이어 당신만을 위한 곳이 아니라는 ‘우리-없는-세계’의 기분을 가중한다. 그러나 〈애니멀 웰〉의 세계는 (〈아우터 와일즈〉의 태양계나 〈레인 월드〉의 생태계가 시험하는 만큼의)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그가 온갖 지식·정보와 비밀을 수집해 해결하도록 만들어진 퍼즐 상자에 가까운 만큼, 여전히 어느 정도는 대개의 게임이 그런 만큼 “우리에-대한-세계” [9] 이기도 하다. 플레이어가 세계에 관한 일정한 지식·정보를 획득하고 이해하면 충분히 퍼즐을 풀고 비밀을 찾을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면 막막하고 이해 불가능하게 느껴지듯이, 메트로브레이니아의 플레이에 잠재된 전능함은 플레이어가 겪는 불능감과 늘 충돌하며 그렇게 플레이어 ‘당신’과 세계 사이에 당연한 듯 싶었던 인과는 어긋난다.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아먹을 때야, 플레이어는 비로소 전능(감)과 행위성을 얻을 수 있고 어쩌면 그제야 세계에 나름의 인과를 발휘할 수도 있다. 바로 이것이 메트로배니아의 불능한 이면을 적극 활용하는 메트로브레이니아의 역설적인 작동법일 테다. 메트로배니아가 생경한 세계에 익숙해지는 플레이어의 행위성을 변방까지 지도를 구석구석 밝히는 탐험이나 플레이어 캐릭터의 인과에 반응하는 서사 등으로 반영해 ‘우리에-대한-세계’를 제작할 때, 메트로브레이니아는 그러한 세계에 대한 지식·정보만을 전략적으로 숨겨 플레이어가 마치 ‘우리-없는-세계’에 떨어진 것만 기분이 들게끔 한다. 앞서 인용한 메트로배니아 인터뷰에서 “제가 플레이 중인 게임의 세계가 제 존재와 무관한 척을 하고 싶었습니다. 마치 제가 이 세계의 손님일 뿐이고, 게임이 제가 발을 딛거나 말거나 계속 거기서 존재하고 있을 것처럼 느껴지도록 하고 싶었어요.”라는 발언을 끌어오자면, 여기서 중요한 건 플레이어에게 실제로 지극히 무심하거나 그와 완전히 무관한 세계를 만드는 게 아니라 그러한 ‘척을 하는’ 것이다. 아무리 화면 밖에서 입력을 집어넣는 당신이 그리 중요치 않다고 떵떵대더라도, 게임은 결국 플레이어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이 묘한 인력 관계 속에서, 〈애니멀 웰〉과 같은 메트로브레이니아 유형의 게임들은 전략적이고 효과적으로 무관하거나 무심한 ‘척’을 하다가 자신의 불능을 받아들이고 이 세계의 지식·정보를 파고드는 플레이어에게 비밀과 전능을 향한 길목을 열어 보인다. 이 넓고 낯선 세계 속 네 귀퉁이에서 얻은 불빛으로 중앙 허브의 기둥들을 밝히자, 우물 속의 우물이 어둑한 아가리를 의미심장하게 벌리는 것처럼. 자그마한 세계와 그 점프들: 〈리프 이어〉에 대해 「기계장치의 우주」를 작성할 때만 하더라도 메트로브레이니아 유형 게임으로 자주 호명되던 〈튜닉 (TUNIC, 2023)〉을 내정하고 있다가, 그보다 덜 알려지고 더 조그만 게임인 다니엘 린센(Daniel Linssen)의 〈리프 이어〉를 선택한 이유는 어느 정도 『폴리곤』에 올라온 글 [10] 때문이다. 이 게임이 “메트로브레이니아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메트로브레이니아”라는 제목을 단 그레이슨 몰리의 리뷰는 자신이 퍼즐 상자를 뜯어 볼 끈기가 없어 〈애니멀 웰〉을 그리 좋아하지 못했던 것에 비해 〈리프 이어〉가 “〈애니멀 웰〉을 알아먹은 사람들이 느낀 기분을 상상하게 해준 작은 모사품”이라고 밝힌다. 이때 그가 말하는 ‘기분’이 앞서 다뤘듯 불능감과 전능감의 오묘한 조합이라 한다면, 〈리프 이어〉는 정말로 그저 가벼운 메트로브레이니아의 경험만을 제공하는 것일까? 〈애니멀 웰〉의 빽빽한 256칸에 비해 〈리프 이어〉는 2024년의 본편과 올 초 발매된 DLC 모두 약간 헐렁한 40~50칸짜리 세계를 제시하기에 상대적으로는 작다고 둘 순 있겠지만, 〈리프 이어〉가 2D 플랫포머의 문법을 통해 제시하는 메트로브레이니아적인 특성과 기분은 〈애니멀 웰〉의 축소판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와 사뭇 다르기도 하다. 〈애니멀 웰〉에 숨겨진 겹겹의 비밀이 배쏘가 공언한 대로 어둑하고 깊숙하게 숨겨진 여러 지식·정보의 배치라면, 〈리프 이어〉에 숨겨진 겹겹의 비밀이란 다름 아니라 플레이어 캐릭터가 이 세계를 돌아다니며 상호작용하는 이동법 자체와 연관되어 있다. 린센이 게임을 ‘서투른(clumsy)’ 플랫포머라고 소개하듯, 플레이어는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자신의 캐릭터가 점프하고 땅바닥에 닿으면 바로 시뻘겋게 바뀌며 죽어버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렇게 플랫포머에서 가장 중요한 움직임일 점프에 굉장한 제약을 걸면서, 〈리프 이어〉는 우선적으론 플레이어의 이동 자체를 퍼즐로 만들어버리는 플랫포머가 된다. 다른 게임이라면 간단한 점프 한 방으로 이동할 수 있을 만한 곳들마저도 이런 규칙의 세계에서는 위험천만할 뿐이며, 이에 따라 게임의 메트로배니아적인 특성은 플레이어 캐릭터가 지금의 점프력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공간들을 여럿 제시하는 데에서 나타난다. 〈리프 이어〉의 겹겹의 비밀은 바로 이러한 제약 덕에 비로소 빛날 수가 있는데, 플레이어 캐릭터가 점프해 떨어지는 높이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세계와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차차 밝혀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저 두세 칸 높이로 떨어져 죽지 않게 주의해야만 했던 점프가, 그보다 더 깊게 너덧 칸 높이로 떨어지면 플레이어 캐릭터를 빨강이 아닌 분홍으로 바꾸며 다시 튕겨 오르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프란 일반적인 메트로배니아에서처럼 플레이어가 진행 과정에서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메트로브레이니아에 가깝게 게임 속에서 언제나 실행할 수 있고 단지 플레이어가 모르고 있었을 뿐인 능력이기도 하다. 이렇게 〈리프 이어〉는 플랫포머로서 플레이의 핵심인 점프를 중심으로 이동 자체를 퍼즐로 만들어 둘을 합쳤을 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된 지식·정보마저도 일종의 비밀로 숨겨두며 여기에 또 다른 겹을 덧붙인다. 까다로운 플랫포밍 자체를 아예 메트로배니아이자 메트로브레이니아적인 경험으로 바꿔버린 셈이다. 〈애니멀 웰〉의 장난감들이 어떠한 의미에서는 파워 업을 위한 아이템으로서 전통적인 메트로배니아의 구성 요소에 더욱 가깝다면, 〈리프 이어〉는 이보다 좀 더 대담하게 그 어떤 아이템도 없이 오로지 플레이어가 이미 ‘파워 업’이 된 점프의 비밀을 언제 알아차리고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시험하도록 이끌며 메트로브레이니아에 훨씬 더 가까워진다. 플레이어가 28개의 달력 조각을 찾으러 조심스레 돌아다니는 이 세계는 화면에 한 칸씩 들어오는 스테이지를 어떠한 유형의 점프로 접근할 수 있는지에 따라 작더라도 꽤 유기적인 플랫포밍으로 짜여있고, 이런 구성은 자연스레 메트로배니아적인 진행처럼 새로운 점프 활용법을 익히기 전까지는 갈 수 없었던 곳들에 도달할 수 있도록 플레이어를 유도한다. 새롭게 알아차린 점프의 비밀을 어떻게 익혀서 적용할 수 있을지를 궁리하며 이 자그마한 세계를 몇 번씩이고 돌고 도는 동안, 플레이어는 자연스레 〈리프 이어〉의 플랫포밍 퍼즐 상자 같은 세계에 익숙해진다. 겹겹의 비밀로 이뤄진 점프에 전능하게 익숙해질수록 그와 상호작용하는 세계 또한 마치 비밀 통로처럼 드러나는 듯한 지름길들 또한, 점프와 마찬가지로 게임에서 가장 처음부터 완결된 상태로 주어져 있었기도 하고 말이다. 다만 자신보다 ‘앞서서 펼쳐진’ 퍼즐 상자 안으로 들어온 플레이어가 이를 풀어내는 방법만 알아차리면 될 뿐. 그런 의미에서 〈리프 이어〉는 〈애니멀 웰〉보다 훨씬 작게 압축된 세계임에도 어쩌면 그보다 능숙하게 메트로배니아의 기본적인 전제와 공식을 메트로브레이니아적으로 변환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떨어지는 높이를 더욱 키워서 점프하면 무엇이 가능할지를 파고들수록, 〈리프 이어〉의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방법은 더욱 뒤집히며, 이곳 또한 마침내 숨겨져 있던 변방을 드러내 보인다. 다시 나가며 그렇다면 이제 두 게임의 마지막 구간들을 얘기해 볼 수 있겠는데, 흥미롭게도 양쪽 모두 주어진 세계의 밖으로 나가버리는 순간을 제공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애니멀 웰〉에서는 두 번째 맨티코어를 타고 (그 자체도 새로운 겹의 퍼즐이긴 한) 공중을 날아다니는 엔딩에서, 〈리프 이어〉에서는 (올 초에 나온 DLC까지 포함해) 외벽이나 외곽이라 부를 수 있을 만한 지역으로 빠져나오는 후반부에서. 이런 공간적인 비약은 게임 내 지도에 표시마저 되지 않은 바깥을 향하는 만큼 플레이어에게 무척 강렬한 감흥을 전달하는 한편, 다시금 메트로배니아에서 종종 실감할 수 있는 ‘자기 완결적으로 닫힌’ 느낌 또한 넘어선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먼저 〈애니멀 웰〉의 자기 완결적으로 닫힌 성질은 플레이어가 상하좌우 중 한 방향으로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반대쪽으로 나오는 순환적이고 폐쇄적인 구조에서 나타난다. 곧 이 세계에서는 아무리 각종 장난감 도구를 활용하며 전능하게 이동하더라도 그저 거대한 퍼즐 상자의 폐쇄적인 안쪽만을 뱅뱅 돌 뿐이지 아예 밖으로 나가는 출구는 없다. 게다가 그 구조가 순환적인 만큼 적어도 경계 너머의 바깥을 암시하기라도 하는 ‘변방’마저도 없다. 그런 만큼 철저하게 닫힌 세계의 바깥으로 나가버리는 결말은 게임에서 가장 깊숙이 숨겨진 비밀까지는 아닐지라도, 플레이어에게 가장 해방적으로 전능한 기분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런 지라 개인적으로는 그 이후에 한두 겹의 비밀이 남아 있더라도 이 엔딩을 〈애니멀 웰〉이 제공하는 일종의 ‘최종장’으로서 의미화할 수 있겠다. 그와 동시에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사항이란, 게임의 거의 모든 퍼즐과 겹겹의 비밀이 ARG에 혈안이 된 플레이어 집단의 협동 덕에 사나흘 만에 거의 다 해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도에는 아무리 애를 쓰더라도 닿을 수 없는 채 새까맣게 남은 영역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게임 내에서 제공되는 도구나 경로, 방법 등으로는 절대 갈 수 없고 오직 치트 키나 개발자 도구로 이동해야지만 확인할 수 있는 이 공간들은 공식적이거나 적법한 플레이에서는 아예 완벽하게 은폐된 ‘비밀’로서 숨어 있다. 그럴싸하게 말이 되지 조차 않는 이 ‘비밀’들은 게임이 제공하는 무대 너머를 어떻게든 엿보려는 이들을 골려 먹기 위한 이스터 에그일까, 아니면 여태까지의 대규모 보물찾기에서마저도 플레이어들이 찾아내지 못한 더욱 깊은 겹으로 향하는 단서인 걸까? 어쩌면 〈애니멀 웰〉의 세계 안팎으로 여전히 숨겨진 채 남아 있는 이런 비밀들은 비디오 게임의 세계가 아무리 전능(감)이 뚜렷한 ‘우리에-대한-세계’처럼 느껴지더라도, 어느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불능(감)이 도사리는 ‘우리-없는-세계’가 언제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편, 〈리프 이어〉의 바깥이란 맵 최하단에 위치해 바닥이 없는 채로 바람이 몰아치는 지역일 테다. 여기서 게임은 다시금 점프의 변주를 통해 플레이어 캐릭터가 이 변방과 상호작용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공한다. 플레이어의 점프가 두세 칸이나 너덧 칸 높이도 심지어 (파란색이 되어 말 그대로 땅을 뚫고 들어가게 해주는) 예닐곱 칸 높이까지도 지나서 떨어지면, 캐릭터가 노란색으로 뒤집히며 바닥이 아닌 천장에 붙어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점프는 곧 〈애니멀 웰〉의 장난감과 유사하게 점프 높이만으로도 세계와 다양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 복수의 용도를 제시하며, 플레이어는 다시금 메트로브레이니아적인 플레이로 익힌 몇 유형의 점프를 다양하게 짜맞추는 플랫포밍을 통해 메트로배니아적인 세계를 이동할 수가 있다. 이렇게 점프 하나에 겹친 다양한 플레이를 반영하듯, 게임은 반전된 상태로 최하단 변방으로 이동했을 때 지도에서 숨겨져 있던 마지막 퍼즐 지역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플레이어가 시작 위치로 되돌아가게끔 이끌며 여태까지 익숙해졌던 자그마한 세계를 반전된 관점으로 제법 낯설게 재맥락화하기까지 한다. 이런 식으로 〈리프 이어〉가 자그마한 세계 속에서의 점프 안에 비밀을 가득 숨겨 넣으며 풍부한 플레이 경험을 만들어 냈다면, 올 초 발매된 DLC인 〈리프 이어: 3월 (Leap Year: March)〉은 본편에서 점프와 얽힌 비밀들을 플레이어가 이미 꿰차고 있다는 전제하에 플랫포밍 자체부터 맵의 유기성과 퍼즐의 유형과 난이도까지 고루 보강된 세계를 제시한다. 이번에는 밖에 위치한 해변에서 시작되는 게임은 본격적인 플레이가 벌어지는 안쪽으로 들어가도록 플레이어를 이끈 뒤 후반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 세계를 뛰어넘도록 한다. 플랫폼을 켰다 끄는 버튼이 새로운 규칙으로 추가되고 뒤집어진 상태로 닿을 수 있는 최하단 변방의 플랫포밍 퍼즐들을 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달력 조각을 전부 얻었을 때 개방되는 세계의 옆구리에서는 플랫포머의 점프 관습을 일찌감치 비튼 〈VVVVVV (2010)〉의 악명 높은 스테이지 (이른바 ‘고통을 즐기는 자’)와 유사한 도약을 선보이기도 한다. 전례 없는 높이로 점프하고 떨어지며 세계의 변방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플레이어 캐릭터는 마침내 빨강에서 분홍, 파랑, 노랑을 지나 초록색이 되며 땅바닥에 닿는데… 그 이후의 마지막 구간은 나마저도 이 글에서만큼은 좀 치사하게 숨겨두고 싶다. 퍼즐 상자 속의 모든 걸 밖으로 꺼내 보일 수는 없는 법이니까. [1] Kate Gray, “What The Heck Is A ‘MetroidBrainia’? Introducing The Newest Genre On The Block”, Nintendo Life, 2022.05.21. [2] 유진 새커, 『이 행성의 먼지 속에서』, 김태한 옮김, 필로소픽, 2022, 13쪽. [3] 이후 소제목들은 한나 렌,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 이영미 옮김, 엘리, 2020의 제목을 변형. [4] Christian Nutt, “The undying allure of the Metroidvania”, Game Designer, 2015.02.13. ( https://www.gamedeveloper.com/design/the-undying-allure-of-the-metroidvania ) [5] 제작자들 또한 이를 인지하듯, 여러 발언에서 행위 주체로서의 플레이어인 ‘당신’을 강조한다: “당신이 이야기고, 당신이 바로 모험입니다. 어디로 갈지를 발견하고 당신이 갇힌 세계의 미스터리를 밝혀내는 건 당신에게 달려 있어요.”, “당신 스스로 자신만의 플레이 방식을 생각하고, 느끼고, 탐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6] 새커, 같은 책, 18쪽. [7] 새커, 같은 책, 15쪽. [8] 성훈, “최종장과 변방_비디오 게임 속 공간적 한계의 실감”, 『게임 제너레이션』 13호, 2023.08.10. (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2783c2df-7cc1-45bf-bbed-4b34c153d7e3 ) [9] 새커, 같은 책, 18쪽. [10] Grayson Morley, “Leap Year is a Metroidbrainia for people who hate Metroidbrainias”, Polygon, 2024.09.21. ( https://www.polygon.com/gaming/453137/leap-year-metroidbrainia-you-jump-you-die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나원영 2016년에 웹진 [weiv]를 통해 대중음악 비평을 시작했고, 2022년 웹진 ma-te-ri-al을 통해 <대체 현실 유령>을 출간했다. 아무래도 작은 게임을 랩톱에서 짧게 하는 편이다. 계속됩니다.

  • [Editor's View] Ways of Seeing

    아이템을 기획하는 내내 편집위원들과 편집장은 보는 게임이라는 개념의 모호함에 대해 토로했다. 어디까지가 게임일 것인가? 어디부터가 게임의 변화인 것인가? 인간의 역사가 늘 그래왔듯이 우리는 동시대에 대해 스스로 답을 내리기는 어렵다. 시대를 이끌어가는 것은 즉시성있는 답변보다 늘 우직하게 본질을 바라보는 질문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보는 게임’의 시대에 감히 어떤 정답을 내리기보다는, 다양한 질문과 사유를 통해 이 시대 게임의 변화를 사유하는 계기로 ‘GG’3호가 자리잡을 수 있었으면 한다. < Back [Editor's View] Ways of Seeing 03 GG Vol. 21. 12. 10. 이제는 고전이 된 존 버거의 ‘본다는 것의 의미Ways of Seeing’라는 책을 기억한다. 본다는 행위는 결코 영원히 고정된 의미로 남아있는 것은 아니며, 시대와 맥락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지며 변화해 왔다. 그리고 그 변화는 심지어 ‘보는 것으로는 완성되지 않는’ 게임이라는 매체에까지도 닥쳐온 듯 하다. 오랫동안 디지털게임은 그 중심에 직접적인 상호작용성이 있다고 이야기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의 현실에서는 이러한 개념만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현상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플레이어의 개입이 줄어든 방치형 게임, 타인의 게임플레이를 보며 즐기는 e스포츠나 게임스트리밍 등은 게임에 대한 관점을 보다 새롭게, 혹은 보다 폭넓게 정립하기를 요구한다. ‘게임제너레이션’ 3호는 바로 그 ‘보는 게임’ 현상에 주목했다. 플레이어의 개입이 줄어든 오늘날의 게임을 게임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부터 이 변화한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게임의 대중화에 대한 해석까지 우리는 적지 않은 과제를 받아안는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다양한 시선의 다채로운 고민을 담고자 했다. ‘보는 게임’에 대한 두 접근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도 사뭇 다른 관점을 취한다. 윤태진과 이상우는 각각 ‘본다’는 행위가 만들어내는 변화와, 그 변화로부터 나타나는 공백에 주목한다. ‘보는 게임’이라는 변화의 중심에 있는 방치형 게임이 만들어내는 플레이를 관찰하는 박이선의 글은 플레이어라는 주체의 위치와 자세를 되묻는다. 홍영훈은 e스포츠팀 속 개인으로서의 게이머라는 존재가 갖는 정체성을 되물으며, 가깝지만 쉽게 접하기 어려운 일본의 게임문화 속 ‘보는 게임’의 의미는 신주형의 추적 끝에 우리 앞에 되살아난다. ‘트렌드’에서는 세 가지 테마를 관찰한다. 2021년 국감에 등장한 게임 접근성 문제는 어느새 대형 게임에서는 조금씩 적용되고 있는 트렌드다. 오랫동안 우리 곁을 맴도는 질문, 왜 한국의 콘솔게임 점유율이 낮은지에 대한 소고는 최근 들어 늘어나기 시작한 한국 게임제작사들의 콘솔 도전과 맞물린다. 인기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가 보여준 전체채팅 금지라는 정책의 도입과 재철회 이슈는 그 원인인 온라인게임 채팅의 문제를 다시금 상기시킨다. 아티클 부문은 ‘보는 게임’의 또다른 반대편인 ‘듣는 게임’에 관한 임태훈의 글로 서두를 연다. 12월 개최되는 실험게임축제 ‘아웃오브인덱스’의 주최자인 박선용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서울 합정역 인근에서 열린 미술전시 ‘로우스코어 걸’은 게임의 방법론을 활용하고자 하는 미술의 도전을 보여주며, ‘메탈기어’ 시리즈와 주인공 스네이크의 통시적 변화를 다룬다. ‘데스루프’ 가 보여주는 회귀와 게임이라는 텍스트 자체가 가지고 있는 회귀성에 대한 영원회귀로의 접근, 실황중계를 통한 간접체험의 시대를 들여다보는 글들이 준비되어 있다. 인터뷰는 e스포츠, 유튜브, 방치형게임을 선택했다. 게임을 통해 교육을 준비하는 젠지 글로벌아카데미, 보는게임 시대의 중심에서 살아가는 게임유튜버 김성회, 대표적 방치형게임으로 거론되는 ‘어비스리움’의 운영진과 이야기를 나누며 오늘날의 보는게임에 관한 이야기를 품고자 애썼다. 아이템을 기획하는 내내 편집위원들과 편집장은 보는 게임이라는 개념의 모호함에 대해 토로했다. 어디까지가 게임일 것인가? 어디부터가 게임의 변화인 것인가? 인간의 역사가 늘 그래왔듯이 우리는 동시대에 대해 스스로 답을 내리기는 어렵다. 시대를 이끌어가는 것은 즉시성있는 답변보다 늘 우직하게 본질을 바라보는 질문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보는 게임’의 시대에 감히 어떤 정답을 내리기보다는, 다양한 질문과 사유를 통해 이 시대 게임의 변화를 사유하는 계기로 ‘GG’3호가 자리잡을 수 있었으면 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혼례-귀신-사랑 : <종이혼례복> 시리즈와 ‘중국식 공포’의 유행

    최근 중국 내 추리 게임에는 ‘중국식 공포’가 유행하고 있다. <페이퍼돌스>(纸人; 리치컬쳐, 2019)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回门; 핀치게임즈, 2021)은 청나라 말기와 중화민국 초기의 오래된 저택에 들어가 결혼과 장례, 장례용 종이인형, 풍수 등 민속을 바탕으로 스릴 넘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 Back 혼례-귀신-사랑 : <종이혼례복> 시리즈와 ‘중국식 공포’의 유행 15 GG Vol. 23. 12. 10. ※ 역자 설명 : 이 글에서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 안 역주로 부기했다. 미주는 필자가 참고한 텍스트 출처이다. 최근 중국 내 추리 게임에는 ‘중국식 공포’가 유행하고 있다. <페이퍼돌스>(纸人; 리치컬쳐, 2019)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回门; 핀치게임즈, 2021)은 청나라 말기와 중화민국 초기의 오래된 저택에 들어가 결혼과 장례, 장례용 종이인형, 풍수 등 민속을 바탕으로 스릴 넘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음양항아리>(阴阳锅; 폴레스타게임즈, 2022)와 <누나의 북>(阿姐鼓; 폴레스타게임즈, 2023)은 지역 특색이 담긴 민간설화를 선정해 플레이어가 탐험할 수 있는 공포 공간을 설정한다. 도시의 기이한 현상과 춘절 [역주: 중국의 설 연휴] 의 귀신을 연결한 <홍콩실록>(港詭實錄; GHOSTPIE, 2020)과 산속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가족 멸종 사건을 조사하는 <파이어워크>(烟火; Shiying Studio, 2020)는 올해 처음 출시되는 게임이다. 세기말의 ‘초자연적 열풍’을 다룬 <삼복>(三伏; Shiying Studio, 2020) 역시 이 카테고리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중국식 공포’는 새로운 하위 장르 또는 미학이 된 듯 하다. 이러한 유형의 게임들에 대한 플레이어들의 높은 평가 중 하나는 의심할 여지없이 “중국인을 겁주는 방법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중국인이다”일 것이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하트비트플러스가 개발한 <종이혼례복> 시리즈는 2021년 첫 출시 이후 <종이혼례복2: 장령촌>(纸嫁衣2奘铃村), <종이혼례복3: 원앙의 빚>(纸嫁衣3鸳鸯债), <종이혼례복4: 붉은실의 엉킴>(纸嫁衣4红丝缠), <지옥의 꿈: 사후세계 극장>(无间梦境:来生戏) 등의 속편을 6개월에 한 게임 간격으로 출시하며 큰 호평을 받고 있다. 이 게임들은 ‘혼제(婚祭)’를 테마로 하는데, 각각 한 커플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종이 신부’가 되는 운명에 맞서 싸우고, 최종적으로 공포를 이겨내 진정한 사랑의 승리를 완성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다섯 게임들은 서로 연결되어 세기에 걸친 스토리 라인을 형성하고 있으며, 전작인 <13호 병동>(13号病院)과 함께 독특한 ‘종이혼례복 유니버스’를 형성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종이혼례복> 시리즈는 성공적인 미니 추리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심플한 UI와 순수한 터치 플레이가 경이로운 걸작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종이혼례복> 케이스를 통해 ‘중국식 공포’의 핵심 요소인 “중국인을 겁주는 방법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중국인”의 핵심이 무엇인가에 대해 논해 보고자 한다. * 다섯 편의 시리즈, '종이 혼례본 유니버스'를 구성하다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공포(Unheimlichkeit) 개념은 독일어 heimlich에서 유래했다. ‘heimlich’는 친숙하고 친밀하다는 뜻인데, 여기에 부정 접두사를 붙인 ‘unheimlich’는 원래 뜻을 분명히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heimlich’의 특수한 경우인 ‘익숙했던 것이 갑자기 낯설어지다’는 의미로 해석돼 주체가 순수하게 두려움(fear)이 아닌 오싹(creepiness)한 느낌을 갖게 한다. [1] 따라서 ‘공포’는 통상적인 경험으로는 식별할 수 없는 이상, 기존 질서 내부의 어긋남 [원문의 핵심 개념 错置을 모두 ‘어긋남’으로 번역함] 이다. 예를 들어 공포장르 속에서 살아있지도 죽어있지도 않은 좀비, 조타수도 없이 파도를 헤쳐 나아가는 유령선 등이 그것이다. 영화 <샤이닝>(The Shining)에서 문틈으로 흘러넘치는 핏물, 복도 끝의 쌍둥이 역시 경험이나 질서를 뛰어넘는 어긋남으로 평범해 보이는 산꼭대기 호텔을 공포영화의 명장면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런 의미에서 <종이혼례복>은 ‘공포’라는 개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시각적인 이미지로, ‘인간’이라는 속성을 가진 장례용 종이인형을 소재로 삼는다. 이들은 외모는 비슷하지만 팔다리가 뻣뻣하고 표정이 이상하며, 종종 과장된 얼굴 화장을 한다. 무생물이었던 종이 인형은 어두운 게임 장면에서 번쩍이며 게이머들과 친근한 ‘점프 스케어(jump scare)를 한다. 이를 통해 제작진은 중국식의 특색을 살린 ‘유물(類物)’인 장례용 종이 인형을 세팅했다. 예를 들어 <종이혼례복 1>의 주인공 닝쯔푸(宁子服)가 저승 혼례식(冥婚) 현장에서 발견한 종이 요리는 정상 음식의 외관을 정교하게 모방하면서도 차갑고 무미건조해 화장 [원문에서 烧祭는 종이돈 태우기 같은 풍습보다는 화장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같은 오싹한 연상을 유발한다. * ‘유물’의 종이 묶음 제물 그러나 '공포'의 핵심은 잘못된 시각적 이미지보다는 상식과 이상, 경험과 어긋남의 관계에 있다. 거의 모든 ‘중국식 공포’ 게임에는 현대적 개체의 전근대적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s)’ [ 미셸 푸코가 정의한 개념으로, ‘다른’을 뜻하는 ‘heteros’와 ‘장소’를 의미하는 ‘topos’의 합성어. “사회 안에 존재하면서 유토피아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실제로 현실화된 유토피아인 장소들” ] 에서의 어긋남과 과학 패러다임에서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어긋남이 포함되어 있다. <종이혼례복> 시리즈에서 또 다른 높은 어긋남은 앞의 두 가지의 불안정 구조를 깨뜨린다. 그것은 로맨스 신화와 이성의 어긋남이다. 결혼: 형성되는 건 아무 것도 없고(无物之阵), 망령은 돌아온다 婚:无物之阵,幽灵复返 [루쉰은 자신의 '무물지진(无物之阵)' 개념이 권위주의 통치의 산물이자 민중의 열등감을 드러내는 것이라 여겼다.] <종이혼례복> 시리즈는 현대도시에 살던 주인공들이 갑자기 세상과 단절된 ‘산골마을’로 내동댕이쳐진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곳은 모든 마을 사람들이 ‘혼제’를 신봉하는 장령촌이나 봉건적 가부장이 점거한 말수촌(末水村)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살아남은 이가 아무도 없거나 귀신의 기운이 넘치는 익창진(益昌鎭)이 될 수도 있다. 이곳들은 현대사회와 거리가 멀고 교통이 불편하며 통신신호가 사라지고 역사의 흐름에서 벗어나 고집을 부리며 오래된 신앙과 의식을 이어가는 헤테로토피아이다. 플레이어는 주인공들의 시각을 통해 완전히 낯설기만한 스릴러 놀이터가 아니라 익숙한 듯하지만 마주하기 어려운 ‘무물지진(无物之阵)’—반복적으로 출현하는 죽음의 상징물들(관, 향초, 종이돈 등)]—이 정돈되지 않은 현대 이전의 역사, 틈만 있으면 파고드는 집단적 무의식을 가리킨다. 물론 조작해 현대적 공간을 하루아침에 이화시켜 ‘귀신을 불렀다’는 것이다.동네 입구 조화, 이웃집 할아버지의 혼백이 깃든 아파트, 길가의 장사용품점……현대적 공간을 떠도는 전근대적 자투리 조각은 ‘익숙한 물건의 낯설게 하기’라는 원칙에 더 부합하고, 오싹한 느낌을 더 잘 만들어낸다. 물론 이 게임은 때때로 역으로 작동해 현대성의 공간을 하룻밤 사이에 낯설게 하여(异化) "유령을 초대”한다. 주거단지(小区) 입구의 화단, 이웃의 영혼이 깃든 주거용 건물, 거리의 장례용품 가게 ......등등은 현대성의 공간에 떠다니는 전근대의 잔재이며, 이는 “익숙한 것의 낯설게 하기”의 원칙에 더 부합하고 소름 끼치는 느낌을 줄 가능성이 더 크다. * 모든 이야기의 근원지는 장령촌 <종이혼례복 2: 장령촌>에서는 이러한 무물지진의 구축 과정을 의도적으로 추적한다. 어려서부터 ‘종이 신부’로 발탁된 여주인공 타오멍옌(陶梦嫣)은 ‘혼제’의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홀로 장령촌으로 돌아와 지상의 궁궐에서 마을의 역사를 파헤친다. 이와 동시에 <종이혼례복> 시리즈를 관통하는 세계관은 당나라 현장 스님이 경을 취하여 장령촌을 지나다가 자신이 지은 구장진경(九藏真经) [아홉 편의 숨겨진 불교 경전] 가운데 육장(六藏)이 이교(异教) [주류적인 종교와는 다른 종교] 적인 컬트임을 발견하고, 작별 인사를 하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이를 소각해달라고 당부한다. 마을 사람들은 제멋대로 경전을 남기면서 ‘육장(六藏)’을 ‘육장(六葬)’ [여섯 번의 장례] 으로 왜곡한다. 이에 따라 마을 이장을 종교적인 리더로 삼아 정기적으로 의식을 주관하고 적령기 여성이 사신(适神)에 제사를 지내는 ‘혼제’ 의식이 탄생하게 된다. 희생된 여성에겐 종이로 묶인 제사물품과 같이 ‘종이 신부’란 별명이 붙었는데, 이것이 바로 게임 타이틀 ‘종이혼례복’의 유래다. 흥미롭게도 게임은 ‘육장보살(六葬菩萨)’ [게임 속 캐릭터] 신앙을 현장 취경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억지로 갖다붙인다. 심지어 당나라 적인걸(狄仁杰)이 악신에 제사를 지낸 걸 말끔히 제거했던 기록까지 그럴듯하게 가미하고 있다. 현장법사 캐릭터는 역사적 인물(실존하는 불교의 고승)과 전설적 캐릭터(신마소설의 주인공) [신마소설은 신, 귀신, 요괴 등을 주제로 한 한자문화권 고전 소설을 가리킨다] 의 이중적인 성격을 겸비하고 있기 때문에 출처를 추적하는 데 있어 진짜같기도 하고 가짜같기도 한 효과를 낸다. 당나라 때부터 천여 년간 이어져 온 오랜 관습은, 애써 시간의 깊이를 늘리고 거짓의 숭고함을 만들어, 기나긴 전현대 역사 속에서 공간 내부의 질서—원래 그랬다면 그게 맞는 것이라는—를 구축했다. 번잡한 의식(무엇을 해야 하는지)과 엄혹한 금기(무엇을 해선 안 되는지)가 질서의 하나된 양면을 이루고, 집단적 무의식의 ‘무물지진’을 점차 흔들기 어렵게 만든다. 의심할 여지 없이 철저한 상례로 굳어질 때까지 말이다. 그 사이에 잘못 들어가게 된 개인과 관행 하의 집단은 어긋남과 충돌을 만든다. 닝쯔푸나 양샤오핑 등 질서에 도전하는 외래자, 타오멍옌, 쭈샤오홍(祝小红) 등 반향식의 ‘종이 신부’는 역대 게임 주인공들이 관례에 편입되지 못하고 타자로 전락해 배척당하거나 교살당할 수밖에 없다. ‘중국식 공포’ 게임의 이질적 공간은 미래로 가지 않고 필연적으로 과거로 돌아간다. 주인공들은 에얼리언의 침입이나 터미네이터 사냥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육장보살 역시 크툴루(Cthulhu) 같은 냉혹한 우주의 신이 아니라, 아득한 별빛을 통해 인간의 생사를 굽어본다. ‘중국식 공포’의 귀신들은 제사상 위의 감실 상자[龛笼; 동양 사원에서 신령이나 부처 등의 상을 올려놓은 작은 상자] 안에 반듯하게 앉아, 감도는 향불을 사이에 두고 발원(發願)과 고충(诉苦)을 듣고, 평범한 사람들과 약간의 지전(纸钱)이나 억울하게 뒤집어 쓴 조금의 빚을 시시콜콜하게 따진다. 그렇게 무물지진 안 모든 이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모든 것을 마음에 두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반복적인 우화는 구체적인 서사 차원으로 정착되어 ‘혼제’ 의식의 세 요소인 귀신, 제물을 바치는 사람, 제물의 끌어당김과 격추 등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다. 일반적 격식에 따르면 귀신은 역사를 기원하고 집단적으로 추앙받는 이질적인 힘이며, 제사를 올리는 사람에게 공정한 거래를 약속하는 원칙이며, 제사를 올리는 자는 경전과 악당의 기능을 담당하여 제물을 박해하는 대가로 거래를 성사시킨다. 제사물품인 ‘종이 신부’와 그 애인은 이질적 공간을 벗어나 현대 문명으로 돌아와 자기 구원을 완수해야 한다. 하지만 돌아온 귀신들은 오히려 <종이혼례복>의 이야기가 이러한 격식을 벗어나게 한다. 최고신으로 여겨지는 ‘육장보살’은 “만물이 묻히면 모두 그의 관할이 된다”는 ‘거대한 능력’을 보여주기는커녕, 무물지진을 타파하기로 결심한 주인공들에 의해 여러 차례 목이 비틀어 끊어짐으로서 플레이어들의 입에서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시리즈 전체의 진정한 악역 캐릭터 네모리는 제사물품의 자리를 차지했던 ‘유령’이다. 마을 촌장으로부터 마을에 유해하다는 단언받고, 태어나자마자 버림받은 그녀는 현대 대학교육을 통해 작은 산골마을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었다. 그리곤 다시 돌아와 육장보살 신앙이 지배하는 공간에서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 되었고, 자신을 새로운 귀신으로 만들 때까지 계속해서 새로운 제사물품을 찾으며 의식을 완성해나간다. * 종이혼례복 시리즈의 진정한 악역 녜모리 이는 일찍이 ‘육장보살’ 역시 정전을 장악한 현장법사에 의해 추방되고 관가에 의해 토벌된 ‘유령’이었지만, 암암리에 천 년을 떠도는 악신이 된 것임을 일깨워준다. 그것은 그녀와 같이, 혹은 전현대의 파편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끊임없이 되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무물지진’이 완전히 깨질 때까지 그들은 끊임없이 실패하지만, 영원히 계속해서 그 실패를 반복할 것이다. 귀신: 말로도 안 되고, 배척해서도 안 된다 鬼:不可言说,不可摈弃 우리가 ‘중국식 공포’ 게임의 첫번째 어긋남으로 현대적 개체와 전근대적 이질적 공간의 어긋남을 지목한다면, 중국에서 공포 장르 서사는 전근대적인 문예작품 속에서 대응물을 찾기 힘들다는 역설적인 사실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요재지이>(聊斋志异)[청나라 시대 포송령이 지은 8권 491편의 지괴소설집으로, 신선과 요괴의 이야기를 기술하고 있음] 등의 지괴서사(志怪故事) [위진남북조 시대에 유행한 기괴한 이야기 소설집] 속 꽃요괴는 기본적으로 “깜짝 놀라게 하는” 기능을 갖고 있지 않으며, <서유기> 같은 신마소설 속 삼계 체계 [불교에서 삼계란 윤회의 세계를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으로 구분한 것을 가리킨다] 는 권력사회의 복사판으로, 사람 마음이 귀신보다 무섭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그밖에 신선과 요괴 이야기 등 설화집이나 필담집 역시 보통 현대 독자들에게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을 주진 않는다. 다시 말해 ‘중국식 공포’는 직접적으로 인용할 수 있는 ‘중국식’ 텍스트도 없고, 전현대사의 완벽한 이식도 아니다. ‘공포’는 현대화의 산물이며, 주류이데올로기—어쩌면 ‘과학’—에서 주변화되어 남은 잉여이다. 토마스 쿤(Thomas Samuel Kuhn)은 <과학혁명의 구조> 에서 현대과학의 진로는 본질적으로 낡은 패러다임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체하는 혁명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른바 ‘패러다임(paradigm)’은 과학 연구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따르는 어떤 패턴으로, 이 분야의 합리적인 문제(무엇을 연구할 것인가)와 방법(어떻게 연구할 것인가)을 규정하여 법칙, 이론, 기구 등을 포함해 정립한 일관된 과학 전통을 형성한다. 과학이 물질 세계에 대한 수수께끼 풀기 게임이라면, 패러다임은 게임의 규칙과 무엇이 ‘미스터리’가 될 자격이 있는지를 창안한다. 이에 대해 쿤은 ‘상자’라는 비유를 제시한 바 있다. “이런 활동은 패러다임이 제공하는 미리 만들어놓은 경직된 상자에 자연을 처넣으려는 것 같습니다. 기존 과학의 목적은 새로운 유형의 현상을 발견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상자에 채워지지 않은 현상은 종종 완전히 무시되고 새로운 이론을 발명하는 것도 아니며, 다른 사람이 새로운 이론을 발명하는 것도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 하지만 이러한 신앙 패러다임으로 인한 제약은 과학 발전에 꼭 필수적입니다.” [2] 현대 과학은 수백 년의 발전을 거쳐 ‘신화’로 분류되는 다른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새로운 ‘신화’가 됐다. 새로운 신화의 서사 공간이 매우 넓고, 말과 전망이 유달리 아름다워 현대적인 개인이 상자의 사면 장벽을 쉽게 홀시할 수 있다. 하지만 상자 밖의 사물은 여전히 존재하며,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다. 패러다임에 포함될 수 없는 현상은 언어구조에서 '도깨비', '풍습', '전통' 또는 그밖에 다른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것과 가리키는 것 사이의 어긋남에 무관하게 무엇이라 말할 수 없게 만든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정리 또는 판별할 수 없으므로 배제할 수 없다. <종이혼례복4: 붉은실의 엉킴>에서 장천루이의 민속학 전공이라는 배경은 고등교육과 과학은 상자 안의 모든 것을 해결하지만 공포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자조적인 자기 인식이다. * 민속학 연구생 장천루이(张辰瑞)의 자조 하지만 <종이혼례복> 제작진은 그런 자조에 만족하지 않고 상자의 경계를 반복적으로 넘나들었다. 과학적 패러다임과 전근대의 뒤얽힘은 엉뚱한 효과를 낳았다. 화재경보기로 인해 연소된 지전 더미, 복사기로 복사된 부적…… 각종 ‘물리적 귀신 퇴치’ 수단은 플레이어들로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시리즈 전체에서 가장 인상적인 ‘뒤얽힘’은 음과 양을 통하게 하는 두 개의 매개인 불과 핸드폰이다. 둘은 겉으로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인다. 전자는 제물을 태우는 풍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양에서 음으로 옮겨지는 것은 본질적으로 상징적인 투사이며, 제사물품은 화염 속에서 재로 변하지만 다른 가치 영역에서는 오랫동안 지속된다. <종이혼례복>의 주인공들은 흔한 지전이나 종이인형은 물론, 귀신과 통화할 수 있는 종이로 만든 핸드폰까지 불태운다. 현대 과학기술 장비가 버젓이 제사물품의 대열에 오르자 플레이어들은 “원래 현지에 사업자가 있나? 그럼 누구에게 전화요금을 내야 하지?”라며 경탄을 금치 못했다. 후자는 다음과 같은 설정을 기반으로 육안으로 귀신에 쉽게 속고 무심한 기계만이 위장을 간파할 수 있다. 그 때문에 휴대폰 카메라는 주인공이 귀신을 정확하게 잡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과학기술의 눈으로 상자 밖의 공간을 응시하는 것 역시 일종의 어긋남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익숙한 것의 낯설게 하기”는 오싹함을 유발하지는 않는다. 두 매개 모두 통일된 전제를 숨기고 있기 때문인데, 그것은 바로 현대적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과학은 궁극적으로 불가해한 것을 해명하고 정복하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 음양을 소통하는 두 가지 매개체: 불과 휴대전화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이리저리 뛰어도, <종이혼례복>의 결말은 패러다임 속으로 돌아온다. 헤테로토피아의 모든 요괴들은 진기한 꽃(奇花) 명타란(冥陀兰)이 일으키는 환각이다. ‘작은 산골마을’은 필연적으로 현대 문명에 의해 재발견되고 청산되며 수용된다. 무고한 사람은 구출되고, 악한 자는 법의 처벌을 받게 된다. 주인공들은 탈출에 성공하거나, 일시적으로 (귀신을) 격퇴하지만 실제 ‘공포’—‘중국식 공포’는 결코 핏대를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를 이겨본 적은 없다. 아무리 무서운 괴물이라도 핏대를 세우면 공격할 수 있고 소멸할 수 있는 대상이며 이때 두려움은 화력 부족에서 비롯된다. ‘중국식 공포’는 피와 살이 없는 몸이라 애석하게도 <무간몽경: 내생희>의 마지막 예고편에서 역대 주인공들이 힘을 합쳐 ‘무물지진’이 아닌 악역 녜모리를 물리치려 한다. 상자 안에서 주인공들은 잠시나마 자신이 무적이라고 믿지만, 이중으로 엇갈린 위치는 오직 사랑의 신화에 의해서만 메워지게 된다. 사랑: 로맨스 신화,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다 情:浪漫神话,至死不渝 “사랑이 죽었다”는 요즘, <종이혼례복>의 역대 주인공들은 희귀한 사랑 신화의 독실한 신도들로, 플레이어들은 이들을 ‘로맨티스트 싸움꾼’이라며 농담삼아 부른다. 백중날[음력 7월 15일] 귀신문을 뚫고 아내를 구한 닝쯔푸, “정 때문에 목숨까지 버리는” 량샤오핑(梁少平), ‘원앙 빚(鸳鸯债)’을 대신 갚고 악당과 함께 죽은 왕자오통(王娇彤), 서로를 위해 목숨을 바친 장천루이와 추이완잉(崔婉莺), 그리고 전생과 현생, 재연과 인연을 이어온 쉰위앙펑(荀元丰)과 타오멍옌 등이 그들이다. 여기서 각 커플의 성이나 이름은 모두 고전문학 속 고전적인 애정 텍스트인 <요재지이의 섭소천>(聊斋志异之聂小倩), 양축전설(梁祝故事) [중국 동진시대부터 1,700여 년 동안 민담으로 전해져 온 4대 애정소설 중 하나] , <교홍기>(娇红记) [명나라 맹잔순(孟称舜)이 쓴 희곡] , <서상기>(崔莺莺待月西厢记) [원나라 왕실보(王实甫)가 1295~1307년 무렵에 쓴 허구 잡문] , <요재지이: 소취>(聊斋志异之小翠) [청대 소설가 포송령이 여우 귀신의 이미지를 빌어 쓴 소설] 등에 대응한다. 혼의 이탈과 나비가 되는 것, 치료 등 줄거리 역시 위 고전작품들에 오마주를 뉘앙스가 뚜렷하다. 이 텍스트들의 공통점은 사랑이란 하나하나의 개인이 만들어낸 낭만적 기적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에 있다. “산 자는 죽을 수 있고, 죽은 자는 살 수도 있다”(<모란정 牡丹亭>에서 인용)는 말처럼, 사랑이 깊어지면 인간과 귀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가문의 편견을 산산조각낼 수 있다는 것은 논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개인은 현대 주체의 사유에 가까운 방식으로 봉건적인 예법과 도덕에 선전포고를 한다. 설령 선전포고가 항상 무기력하더라도, 설령 최종 결말은 두 집안의 사회 지위·경제 형편이 걸맞아[门当户对] 함께 살게 되거나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함께 화를 입어[玉石俱焚] 함께 죽는 것으로 끝날지라도, 설령 과도하게 낭만적이어서 실현되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전근대적인 배경에서 그들은 여전히 경전 말씀에서 벗어나 도리를 위반하는 해로운 서적으로 폄하받으며, 올바른 사람이라면 읽어선 안 되는 것으로 취급받는다. * 《무간몽경: 내생희》(无间梦境:来生戏)의 주인공 커플 애정 신화의 합법화는 지난 2세기에 걸친 현대화 과정의 산물이기도 하다. “애정 신화는 사실 하나의 배다리처럼 유럽 문화를 현대와 개인으로 건너가 개인주의 담론의 중요한 초석 중 하나가 됐다. 하지만 동시에 애정 신화는 낭만주의의 테마 중 하나로서 시종일관 광기나 비이성/반이성적 함의를 항상 담고 있다. 따라서 일종의 파괴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일대일로 이뤄지는 현대의 배타적 사랑은 ‘개체’와 ‘여성’의 탄생을 전제로 성과 사랑, 육체와 정신의 통합과 순결을 원칙으로 한다. 즉, 약수가 삼천리를 뻗어 흘러도[弱水三千; 아무리 많은 상대가 있어도], 그/그녀가 아니면 안 된다. 녜모리가 쌍둥이 동생 녜모치(聂莫琪)를 훔쳐서 기둥을 바꾼 후, 닝쯔푸는 절대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 했고, 그녀가 아니면 안됐기에 수많은 난관을 거쳐 녜모치의 영혼을 죽음에서 구해야 했다. 량샤오핑의 아무것도 따지지 않는 사랑은 어린 시절부터 장령촌에서 자란 쭈샤오홍을 일깨웠다. 같은 죽음이라고 하더라도 제사물품대 위에 놓인 ‘종이 신부’가 되는 것보다는 족쇄를 풀고 나비가 되어 추락하는 것이 낫다. 낭만 신화가 신화인 이유는 사랑이 이성적 계산의 범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개인이 계급, 이익, 나아가 생사를 초월하도록 재촉한다. 높은 사람은 ‘고귀한 배신’을 결심하고, 낮은 사람은 무릎을 치켜들어 ‘나는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한다’를 단호히 던져버리고, ‘나는 어떻게 하겠다’고 함성을 지른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사랑은 ‘공포’와 같은 구조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것들은 모두 상자 바깥에 있다. 사랑은 <종이혼례복>의 주인공들이 행동하는 최대 동인이다. 게임은 첫 작품에서 ‘순애보에 빠진 싸움꾼’이 약혼녀를 구한다는 단일한 시점에서 남녀 주인공들이 서로를 구한다는 두 가지 시점으로 바뀌어 고정된다. 그리고 오마주를 표하는 고전 텍스트들처럼 두 개체의 기적을 짙게 그려낸다. 과학과 자본이 만연하고 개인의 감정이 함께 시들어가는 시대에 현대 이성에 대한 최고의 어긋남으로 충족되는 사랑의 신화만 남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 안에 담긴 전복적 역량은 무물지진을 돌파하고 우리에게 절대 사로잡히지 말라고 격려한다. 왜냐하면 죽어서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공포’는 싸워서 이길 수 없지만, 진정한 사랑은 결국 충분하다. 죄를 지으면 사랑에 빠지게 되고, 남녀가 치정에 빠지게 한다. ‘중국식 공포’의 핵심적인 어긋남은 현대 개인의 두 눈으로 응시하면서도 직시할 수 없는 전근대적 잔재다. 사후 결혼, 종이인형, 오래된 신앙, 잔혹한 의식, 우매한 마을 사람들…… 죽음의 기호들이 널려 있는 헤테로토피아에서, 집단 무의식이 굳어져 무물지진을 만들고, 과학상자 밖의 침묵은 익숙했던 일상의 흉악한 틈새를 드러내며 '중국인이 중국인을 놀라게 하는' 이기(利器)로 변모한다. <종이혼례복> 플레이어들이 공포게임에서 사랑을 감상하는 데 열중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도 일찍이 낯선 신화로 전락한 지 오래됐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부디 오호(五湖) [오월지방의 호수] 의 밝은 달과 인내심이 원앙의 빚을 갚게 하기를.” [4] [1] 탕메이신(唐梅欣)의 《恐惑概念的演变——从弗洛伊德、海德格尔到拉康 프로이드와 하이데거에서 라캉으로의 공포 개념의 변화》, 2021년 우한대학(武汉大学) 석사학위논문 참고. [2] 토마스 쿤 저, 진우룬(金吾伦)·후신허(胡新和) 역, <과학혁명의 구조>, 베이징대학출판사, 2003년 [3] 다이진화(戴锦华), <电影批评(第二版)>, 베이징대학출판사, 2015년 [4] <종이혼례복 3: 원앙의 빚>의 서문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Researcher) 徐佳(서가) (활동가, 작가) 홍명교 활동가, 작가.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에서 동아시아 국제연대와 사회운동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를 썼고, <신장위구르 디스토피아>와 <아이폰을 위해 죽다>(공역) 등을 번역했다.

  • [북리뷰] 추억의 게임들을 지탱하는 기술들을 찾아서

    책에서 다루는 게임들은 1989년까지이다. 1989년은 일본의 연호가 쇼와에서 헤이세이로 바뀌기도 하기 때문에 일본에서 1989년이란 해는 1990년과 그 이전을 나누기도 하고 1990년대와 그 전을 나누기도 하는 적절한 분기점일수도 있겠다. 당연히 그 이후로도 게임은 개발되고 있고 여전히 개발자들은 하드웨어의 한계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예전보다 하드웨어에 대한 제약이 줄어든 것은 사실지만 렌즈의 왜곡을 이용하여 화면크기에 대한 한계를 극복한 VR헤드셋들이라던가 기기한계를 정해놓고 한계 안에서 게임을 만들려고 시도하는 인디게임들도 존재한다. < Back [북리뷰] 추억의 게임들을 지탱하는 기술들을 찾아서 06 GG Vol. 22. 6. 10. 광속과 인터넷 속도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흥미 있는 글을 좋아하는 분이 계시다면 500마일 문제( https://edykim.com/ko/post/500-mile-email-problem/ )를 들어보셨을 지도 모르겠다. 아직 읽지 못한 분들에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학내 이메일 관리를 하는 직원이 교수에게 500마일(800km) 혹은 그보다 약간 먼거리를 넘어가는 장소에 이메일을 보내면 실패한다는 연락을 받으면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몹시 흥미롭지만 이 곳에 다 소개하기에는 분량이 충분하지 않으니 직접 찾아보시는 것도 좋을 것이다. 다만 미리 결말을 이야기하자면 서버설정에 문제가 생겨서 0.003초 안에 답을 받지 못하면 에러가 나는 상황이었다. 여기서도 좀 더 드라마틱하게 답을 이야기 하자면 광속 * 0.003초 는 899km 이다. 우리는 인터넷이 세계을 연결한다고 생각하고 그 연결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신호는 빛이고 빛의 속도는 분명히 정해져있기도 하다. 현대의 게임들은 대부분 서버와 클라이언트로 이루어져 있는데 회사들마다 약간씩 다르긴 하겠지만 나는 적어도 클라이언트가 서버와 통신을 할때는 기본적으로 500ms 의 지연이 발생한다고 가정하고 설계하는 것이 좋다고 배웠다. 이러한 물리적인 한계는 게임의 기획이나 구현 과정에 영향을 주고, 게임개발자들은 이러한 물리적한계를 속이기위해 여러가지 트릭을 사용하기도 한다. 게임디자인이 이러한 물리적 한계에 영향을 받는 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게임 연구에서 많이 놓치는 부분이기도 했다. 2010년쯤 되서야 MIT 출판사의 플랫폼스터디즈 시리즈 같은데서 이러한 하드웨어의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접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아타리2600을 다룬 “Racing the Beam” 에서는 아타리2600에서 다루는 7개의 게임이 아타리 2600 게임기의 기술적인 한계를 게임이 어떻게 극복해냈는지에 대해 분석하고 다루고 있다. 〈팩맨〉에 등장하는 네가지 유령의 색들이 아타리가 한번에 출력할수 있는 색상의 한계보다 더 많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회한 방법들을 살펴보면 단순히 아타리 2600용 〈팩맨〉을 망겜으로만 치부하기 힘들 수도 있을 것이다. * 아타리 2600의 팩맨 게임 플레이 화면 (옛날) 게임을 지탱하는 기술 추억속 아케이드 게임을 이끌어온 기술의 저자는 마쓰우라 겐이치로와 쓰카사 유키로 이들의 저서 중 “슈팅게임 알고리즘 매니악스”나 “탄막” 같은 게임매니악스 시리즈는 게임개발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고, 언급한 두 책은 슈팅게임에서 등장하는 각종 패턴들을 수식으로 풀어내어서 해당 장르를 개발하는 사람들에게 필수도서로 알려져 있다. 책의 원제를 직역하면 “전설의 아케이드게임을 지탱하는 기술” 로 일본에서는 이미 “~~~를 지탱하는 기술”이라는 기술서적이 상당수 나오기도 했고 국내에도 번역된 책이 많아 익숙한 제목이기도 하다. 이러한 제목들의 책은 서비스나 게임이 어떻게 동작하는지 이해를 돕고 최신 기술을 다룬다면 “추억속 아케이드 게임을 이끌어온 기술”은 과거의 게임과 기술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 일 것이다. 이 책은 1971년부터 1989년까지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주요 게임들을 소개하며 게임이 가진 의미와 게임에서 사용되는 기술을 소개하는 구성으로 아무래도 게임들 역시 최신 게임이 아니다보니 게임에 대한 소개도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고 있기도 하다. 브라운관 TV 같은 옛날 기술을 다루고 있다보니 텔레비전 역시 구현부터 설명하고 있다. 지금은 대부분의 텔레비전이 평면TV로 PDP를 넘어 OLED나 LCD 중심으로 제품들이 전개되고 있지만 여기서는 브라운관의 원리부터 설명하고 있다. 뒤가 불룩한 옛날 TV가 익숙하지 않은 세대라면 이런 브라운관에 대한 설명은 생소할 것이다. CRT라고 부르는 음극선관은 지금은 거의 사용되지 않지만 레트로게임을 즐기려는 사람들이나 예술작품등 일부 특수한 경우에는 계속 사용되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큰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의 튜브가 CRT(Cathode-Ray Tube)의 튜브에서 기원한 텔레비전을 지칭하는 단어라는 사실은 의외로 잘 알려져있지 않다. 브라운관은 화면 뒤에 광선총이 위에서 순차적으로 화면을 한줄씩 쏘면서 화면을 만드는 것이고 책에서는 〈퐁〉부터 브라운관의 원리를 설명한다. 이러한 브라운관의 원리는 이후 등장하는 다양한 게임들에서 그래픽 효과를 나타내기 위한 방법들로 사용되기도 하고 한번에 출력할수 있는 스프라이트의 숫자에 제한이 생기는 등 한계로 작용하기도 한다. 다리우스가 화면을 붙이는 방법 지금의 텔레비전은 베젤이 너무 얇아 거의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브라운관 TV의 실물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들이라면 그 거대함에 놀라고는 한다. 흔히 다라이어스라고 알려진 다리우스는 오락실에서 압도적으로 넓은 화면을 쓰는 것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화면은 모니터 3개를 붙임으로써 가능했는데 화면이 거의 자연스럽게 이어져있다는 것도 놀라운 부분이다. 큰 브라운관 TV로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했냐면 사실은 거울을 이용하여 반사를 시켜 보여주면서 화면을 연결하는 트릭을 사용한 것이다. 언뜻보면 간단한 해결책으로 보이지만 이러한 물리적 제약을 어떻게 해결해나갔는지 보여주는 사례이기도하다. * 다라이어스 캐비넷에서 거울을 이용하여 화면을 반사시키는 기술 (위키피디아) 건 컨트롤러가 화면을 인식하는 방법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오락실의 건 슈팅 게임에 대해서 언급한다. 이미 1984년에 닌텐도 패미콤에서 〈오리사냥〉이 대히트를 쳤고 비단 비디오게임이 아니더라도 총을 이용한 유희는 아케이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놀이이기도 했다. 레트로게임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느정도 알려져있긴 하지만 이러한 브라운관을 사용하는 건컨트롤러는 현대의 브라운관TV가 아닌 텔레비전에서는 동작을 하지 않는다. 건 컨트롤러가 어떻게 총이 화면을 가리키고 있는지를 체크하는 방식이 브라운관 TV의 특성을 사용하기 때문인데 덕분에 현대의 텔레비전에서 이러한 총 형태의 입력을 구현하기 위해 Wii의 센서바가 소개되는 것이 아마 이 책에서 소개하는 가장 최신 기술이 아닐까 싶다. 현실의 게임 개발 책에서는 브라운관 이외에도 게임에 사용된 다양한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다리우스〉에서는 언급한 거울을 이용한 트릭 외에도 연사에 대한 설명이나 마지막에는 트랙볼의 원리를 설명하기도 한다. 언급되는 게임 중에 한국에서 가장 크게 히트한 흔히 갤러그로 알려진 갤러가에 대해서는 멀티코어에 대해 간단하게 언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을 지탱하는 기술"에 대하 책들이 당장 개발에 필요한 지식을 다룬다면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기술은 어떻다고 해야할까. 1989년. 그러니까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게임을 제작하는데는 물리적인 한계가 많았고 이를 극복하는 것이 개발자들의 실력이자 회시의 기술력이었다. 컴퓨터 칩 성능이 2년에 두배씩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을 생각하면 1990년의 성능은 2020년에는 32768배는 좋아졌다. 책에서 가장 처음에 언급하는 1970년과 비교하자면 33554432 배는 좋아졌다. 예전에는 컴퓨터의 시간이 사람의 시간보다 비쌌지만 이제는 아니게 되면서 컴퓨터의 자원을 크게 아껴서 개발하는 것보다는 사람이 좀 더 편하게 개발하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쪽으로 개발 트렌드가 변화하였다. 그러다보니 지금은 대부분 게임엔진을 통해 개발하며 하드웨어의 성능을 극한까지 올려야 하는 경우는 임베디드나 휴대용 게임 같이 아주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그다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 스마트폰 플랫폼마저 요즘은 게임 엔진 제작사가 대응을 해줘서 게임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에서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텔레비전 역시 이제는 LCD가 주류를 차지하며 주사선등 약점을 가지는 CRT모니터의 한계는 게임을 개발하면서 굳이 신경쓸 필요가 없어졌다. 오히려 레트로게임을 당시 화면으로 즐기기 위해 소프트웨어적으로 에뮬레이션을 어떻게 할지 연구가 되고 있다. 이렇다보니 여기에서 소개가 되는 기술들은 대부분 지금은 필요없거나 잊혀진 기술들이다. 지금와서 게임개발자들이 〈퐁〉과 〈컴퓨터스페이스〉 처럼 트랜지스터와 다이오드를 직접 회로로 연결해가면서 게임을 만들지는 않기 때문에 당시의 기술에 대한 이야기는 어쩌면 호사가를 위한 것들일 수도 있다. 선배들을 따라가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물리적 제약을 극복하는 게임디자인들에게 우리는 지금도 영향을 받고 있다. 경로의존성이라는게 있다. 남들이 앞서 간 길을 이미 따라가는 것인데 우리 근처에서 가장 가까운 예라면 두벌식과 QWERTY자판이 있을 것이다. 세벌식이 두벌식보다는 좀 더 좋은 점이 많고, QWERTY 자판의 경우는 드보락이 더 빠르다고 알려져있긴 하지만 대부분이 이미 익숙한 두벌식과 QWERTY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이미 간길을 따라가기 쉬웠던 것 처럼 하드웨어의 한계 위에서 줄타기를 하며 만들어진 첫 번 째 시도들은 이후의 게임들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별 생각없이 사용하고 있는 디자인 문법들의 뿌리를 찾아가면 이러한 시도들의 뒤를 따라가며 자리 잡은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뿌리를 짚어보는 점은 더 새로운 시도나 이제는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수 있고, 우리가 좀 더 게임디자인에 대해 납득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전설이 되지 못한 게임들 다만 아쉬운 점은 이 책의 번역된 제목이 “추억 속 아케이드 게임을 이끌어 온 기술” 인 것처럼 다루는 게임들은 대부분 일본의 아케이드 게임환경에서 익숙한 게임들이 대부분이다. 제목이 전설의 게임에서 추억의 게임으로 바뀐 것도 흥미로운 지점인데 특히 게임이 선정된 기준이 게임에서 새로운 기술을 사용했느냐 아니냐이다 보니 추억 속 아케이드 게임이라고 하기에도 1990년 이전 국내 오락실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게임들이 많은 편이다. 전설이라고 하기에는 국내 인지도가 너무 낮은 게임들이 많아서 선택한 고육지책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그나마 가정용 게임들은 정식루트가 아니더라도 국내에 들어오거나 잡지를 통해 소개되거나 하는 경우도 많지만 중간에 게임소프트와 게임기만 있으면 즐길 수 있는 게임들과는 달리 아케이드 게임들은 따로 표준이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책에서 언급되기도 하지만 같은 기판을 활용하는 게임들이 아닌 한은 게임을 변경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물며 책에서 다루는 게임들의 경우 기술을 사용하기 위한 독특한 접근이 많다보니 그것만을 위해 국내에서 들어오는 경우는 적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90년 이후라면 게임잡지 등을 통해서 이름이라도 들어볼 수 있는 경우가 많겠지만 국내에서 게임전문지가 1990년에 창간된 것을 감안하면 여기 소개되는 게임들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접하게 된 경우가 많지 않을까 짐작된다. 하물며 대부분의 게임에 대한 소개들이 사진이나 실제 스크린샷이 아닌 그림이라는 점은 혹시 봤던 게임이더라도 어떤 게임인지 바로 알아보기 힘들게 만드는 단점도 존재한다. 이러한 그림들은 기술을 설명할 때는 유리하긴 하지만 한국에 일본의 아케이드 게임이 소개되면서 이름이 바뀐 경우도 상당수 존재하기 때문에 다른 문화권에서 게임을 해온 사람들에게는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 추억 속 아케이드 게임을 이끌어온 기술 쇼와시대의 아케이드 게임을 넘어서 책에서 다루는 게임들은 1989년까지이다. 1989년은 일본의 연호가 쇼와에서 헤이세이로 바뀌기도 하기 때문에 일본에서 1989년이란 해는 1990년과 그 이전을 나누기도 하고 1990년대와 그 전을 나누기도 하는 적절한 분기점일수도 있겠다. 당연히 그 이후로도 게임은 개발되고 있고 여전히 개발자들은 하드웨어의 한계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예전보다 하드웨어에 대한 제약이 줄어든 것은 사실지만 렌즈의 왜곡을 이용하여 화면크기에 대한 한계를 극복한 VR헤드셋들이라던가 기기한계를 정해놓고 한계 안에서 게임을 만들려고 시도하는 인디게임들도 존재한다. 여전히 기술과 컨트롤러 등의 물성은 게임 디자인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이런 영향을 탐구해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한국의 게임은 미국이나 일본의 상황과는 달리 여전히 게임기보다는 컴퓨터 게임을 중심으로 발전해왔고 컴퓨터는 게임을 하라고 만들어진 시스템이 아니다 보니 이 곳에서 언급되어있는 하드웨어에서 지원해서 쓸 수 있는 상당수 기술들은 컴퓨터에서 사용할 수 없었다. 컴퓨터에서 게임을 개발하는 사람들도 스프라이트라고 부르긴 했지만 컴퓨터에서는 스프라이트를 사용할 수 있는 하드웨어 가속은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id소프트의 〈커맨더킨〉이, 한국에서는 〈리크니스〉등이 컴퓨터의 한계를 극복하고 게임기처럼 부드러운 스크롤을 구현해냈다고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직 우리에게는 탐구해볼만한 환경과 게임들이 많다. 척박한 국내 도서 시장에서 아케이드 게임을 시작으로 가정용 게임과 컴퓨터게임들을 지탱하는 기술들을 보고 싶은 것이 나 뿐만은 아닐 것이라고 믿고 싶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개발자, 연구자) 오영욱 게임애호가, 게임프로그래머, 게임역사 연구가. 한국게임에 관심이 가지다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것에 취미를 붙이고 2006년부터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있다. 〈한국게임의 역사〉, 〈81년생 마리오〉등의 책에 공저로 참여했으며, 〈던전 앤 파이터〉, 〈아크로폴리스〉, 〈포니타운〉, 〈타임라인던전〉 등의 게임에 개발로 참여했다.

  • [공모전수상작] 기계장치의 우주: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의 불능감에 대해

    2022년 만우절 주간, 레딧의 거대한 땅따먹기 픽셀아트 프로젝트인 r/place에서 <레인 월드 (Rain World, 2017)>와 <아우터 와일즈 (Outer Wilds, 2019)>의 서브 레딧끼리 자그마한 동맹을 맺었다. ‘아우터 와일즈 원정대’의 로고를 중앙에 두고 양 게임인 플레이어 캐릭터인 슬러그캣과 화로인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으로 예쁘게 공유된 캔버스를 보고 있자면, 임시적이거나 느슨하게 맺어졌을 몇몇 r/place 동맹들에 비해 두 게임 간의 연합이 제법 어울리게 느껴졌다. 어쩌면, 필연적일지도 모를 만큼? < Back 20 GG Vol. 24.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나원영 2016년에 웹진 [weiv]를 통해 대중음악 비평을 시작했고, 2022년 웹진 ma-te-ri-al을 통해 <대체 현실 유령>을 출간했다. 아무래도 작은 게임을 랩톱에서 짧게 하는 편이다. 계속됩니다.

  • 상상된 공간의 지도화: 가상공간의 전시와 도식화

    “지도는 영토보다 흥미롭다.”1) 프랑스 소설가 미셸 우엘백(Michel Houellebecq)의 문장이다. 영토가 위상학적 차원에서 물리적인 땅과 장소를 가리킨다면 지도는 그 땅을 표상하는 이미지다. 지도는 왜 영토보다 흥미로운가?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의 평면으로 기호화 하는 작업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지도는 신체와 물리적인 공간을 서로 마주하게 만드는 일종의 ‘인터페이스’(inter-face)로 기능하며, 현상학적 맥락에서 분리할 수 없는 공간적 경험을 하나의 대상으로 삼게 만드는 매개가 된다. 아마도 우엘백이 말한 ‘흥미’는, 실재 세계를 매핑(mapping)하는 인식론적 태도와 세계를 이미지로 상상하는 형식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Back 상상된 공간의 지도화: 가상공간의 전시와 도식화 11 GG Vol. 23. 4. 10. “지도는 영토보다 흥미롭다.” 1) 프랑스 소설가 미셸 우엘백(Michel Houellebecq)의 문장이다. 영토가 위상학적 차원에서 물리적인 땅과 장소를 가리킨다면 지도는 그 땅을 표상하는 이미지다. 지도는 왜 영토보다 흥미로운가?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의 평면으로 기호화 하는 작업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지도는 신체와 물리적인 공간을 서로 마주하게 만드는 일종의 ‘인터페이스’(inter-face)로 기능하며, 현상학적 맥락에서 분리할 수 없는 공간적 경험을 하나의 대상으로 삼게 만드는 매개가 된다. 아마도 우엘백이 말한 ‘흥미’는, 실재 세계를 매핑(mapping)하는 인식론적 태도와 세계를 이미지로 상상하는 형식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항상 지도를 만든다. 그것은 미지의 세계를 발굴하는 모험적 가능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지배와 통치의 욕망이 투사된 이미지다. 게임에서 지도는 게임의 배경과 레벨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도, 즉 맵(map)은 플레이어의 무대가 되며 스토리 전개를 구성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게임맵은 플레이어의 행위와 게임 시스템 사이의 인터페이스로서 작동하며 플레이어의 움직임을 안내하는 이미지다. 미술의 영역에서도 맵은 전시의 맥락에서 중요한 위상을 가진다. ‘전시 도면’으로 불리는 미술에서의 맵은 공간에서 목적지를 찾거나, 단순히 관객에게 동선을 안내하는 기능 역할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전시 이전부터 이후를 관장하는 시공간적 설계이며 공간과 작품의 관계, 그리고 작품을 향한 관객의 운동성까지 설정하는 또 다른 인터페이스다. 2) 인터페이스는 사전적 정의에서 ‘서로 다른 두 시스템을 접속’하게 하는 장치를 말한다. 상호작용을 기본 조건으로 하며 이질적인 대상을 어떻게 만나게 할 것인지에 관여하는 것이다. 사이를 매개하는 표면인 인터페이스 개념을 두고 던져야 할 질문은 다음과 같다. 인터페이스는 무엇과 무엇 사이에 놓여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그것들을 연결하는가? 게임에서 인터페이스는 인간의 행위를 소프트웨어와 연결시키는 과정에서 작동된다. 정보의 송수신을 넘어서 상호적으로 반응하는 체계를 드러내는 조건인 것이다. 오늘날 게임은 콘솔게임 같이 컴퓨터 모니터 시스템을 넘어 3차원의 가상현실, 증강현실, 혼합현실 등 메타버스의 세계에서 구성되고 있다. 그리고 메타버스는 게임뿐 아니라 미술 영역까지 깊숙하게 진입하는 중이다. 메타버스의 경제 안에서 현실과 가상이 경계 없이 혼합되고 있다면 우리는 두 장소가 어떤 방식으로 겹쳐지고 있는지 짚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글은 공간과 인간의 행위가 어떤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는지 살피기 위해 게임의 문법을 빌려오는 당대 미술의 형식을 살펴본다. 특히 공간이 하나의 이미지로서 작동하는 메타버스 전시에서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의 이미지로 펼쳐낸 지도/도면 이미지를 어떻게 그릴 수 있을지 상상해본다. 지도가 일종의 접속면으로서 공간과 신체 행위를 매개하는 대상물이 된다면, 게임에서 공간은 어떤 방식으로 플레이어의 경험을 유도하는가? 게임과 미술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우리의 관심을 방향 짓고 경험을 구조화 하기 위해 규칙들을 사용한다. 게임의 디자이너는 특정 종류의 규정적 활동을 조형하고 안정화된 경험에 관한 규정을 세운다. 3) 이 규정은 게임 맵을 통해 구성되곤 하는데, 특히 2000년대 이후 어드벤처(adventure)류 게임은 하나의 스토리를 기반으로 주인공이 겪는 모험을 구성해왔다. 주인공은 몇몇 한정된 장소들을 돌아다니거나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챌린지를 넘어서는 방식으로 게임을 진행한다. 이때 게임맵은 게임의 배경을 설명하는 주요한 이미지로서 주인공의 모험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요한 역할을 하곤 했다. 한편, 오늘의 대다수 게임 공간은 3차원의 이미지로 나타나는 추세다. 현실의 모습을 본 따오거나, 도시의 랜드 마크, 도로 등 풍경을 그대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플레이어의 경험을 사실적이고 정교하게 설계하는 것이다. 과거 게임맵이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길을 잃지 않도록 주인공의 여정을 기록하고 안내하는 기능을 했다면, 오늘날 3D 애니메이션으로 시뮬레이션 된 게임은 게임의 공간을 단번에 파악 수 있는 맵을 제공하기보다 플레이어가 직접 공간을 탐색하면서 방향과 장소를 찾도록 설정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당대 게임맵은 플레이어가 공간을 스스로 탐험하면서 게임의 단계를 파악하게끔 유도한다. 이러한 방식은 게임 플레이어에게 게임의 목표 설정과 스테이지를 직접 설정할 수 있도록 방향키를 건네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게임이 ‘의사소통의 기술’이라고 할 때, 게임의 형식은 모종의 규칙과 규정을 필수조건으로 둔다. 4) 플레이는 행위성의 양상 및 활동의 형식을 서로 상호 참조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구조화 되는 것이다. 즉 마치 빽빽한 나무 사이로 길을 잃게 만드는 숲처럼, 게임은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운 낯선 공간을 구축하지만, 게임의 정해진 규칙과 방향성은 결코 플레이어를 방황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물론 룰을 따를지 말지는 플레이어의 몫으로 남겨둔다. 하지만 게임은 질서화 된 공간이 안내하는 특정 서사를 통해 플레이어의 몰입을 유도한다. 그곳에서 설명되지 않는 공간은 없다. 버그가 아닌 이상. 미술에서 지도에 준할만한 것은 전시 도면이다. 게임맵이 플레이어에게 따라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한다면, 전시 도면은 구체적이거나 단일한 지시성을 드러내지 않는다. 도면은 마치 여러 악보를 한데 모아 전체 곡의 구성을 파악할 수 있게끔 그려놓은 스코어(score)처럼 기능한다. 5) 말하자면 그것은, 개별 작품의 위치로부터 전시라는 하나의 풍경을 상상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이미지다. 하지만 2차원으로 펼쳐진 전시 공간에 개별 좌표를 기입해두는 방식의 전시 도면은 ‘대상 중심적’(object-centered)이었던 전통적인 예술 작품 형식에 적합하다. 특히 전시 도면이 단순히 작품의 위치를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면, 인터랙티브 아트(Interactive art), VR 등 관객의 포지션이 중요한 작품을 하나의 좌표값으로 환원하기는 까다로워 보인다. 관객의 참여까지 작품의 일부로 확장한 까닭에 작품의 공간적인 범위와 기준이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기술 기반의 작품이 예술의 큰 조류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다양한 입력 센서와 인터페이스의 발전에 따라 작품은 더 이상 완결된 형태로 관객에게 다가서지 않으며,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와 개입을 유도하기 시작했다. 작품의 의미 생산과 ‘출력’값은 관객의 ‘입력’으로부터 산출되는 것이다. 관객의 움직임이라는 물리적인 행위는 카메라 기술과 이미지 처리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컴퓨터 시스템과 상호 작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예술의 형식은 게임의 덕목을 닮아있다.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어떤 경험(gamer experience)을 부여하느냐에 집중하는 것처럼 인터랙티브 형식의 작품 역시 관객과 어떻게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내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터랙티브 아트는 전시라는 특수한 맥락 안에서 관객의 물리적 경험을 현상학적 차원에서 다루기보다 단편적인 행위만을 포착하고 투사하는 방식으로 반복되곤 한다. 이러한 반복은 작품에 대한 이미지적인 경험이라기보다 이미지 출력을 바라보게 하는 체험 수준에 머문다. 경험에 대한 예술의 갈망은 이후 여러 인터페이스의 발달과 함께 VR 기술을 예술의 형식으로 확장시키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이용한 상호작용과 달리 VR 기술은 현상학적인 차원에서 관객의 공간적 경험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작품과 물리적 행위의 상호성을 구성한다. HMD(Head Mount Display)를 착용한 관객은 자신의 신체로 실제 공간을 수행하는 동시에 이미지가 구축해놓은 가상공간을 활보한다. 3D 컴퓨팅 기술의 발전과 HMD의 상용화 및 보급으로 더욱 정교화 되고 있는 VR 경험은 가상공간에서 작품에 관한 몰입적 환경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새로운 기술 경험에 대한 가능성이 아니라, 관객이 공간과 관계 맺는 방식이다. 역사적으로 미술은 관객이 작품으로부터 거리를 어떻게 유지하는지를 탐구해왔다.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 어떤 형식이건 간에 전시라는 특수한 시공간에 작품을 위치시키는 것은 관념적 이미지를 어떻게 물질적인 차원에서 다룰 것인지에 관한 실험이다. 하지만 VR 기술이 작품의 형식으로 도입되면서 전시는 물리적인 공간에 가상의 이미지 공간을 겹쳐놓기 시작한다. 공간을 그려낸 전시 도면이 포착하지 못한 또 다른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공간 안에 중층된 새공간. VR 작품을 표기하고 있는 도면은 실상 작품의 위치를 알리는 것이 아니라 작품으로 진입하는 장치 혹은 출발점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관객은 물리적인 공간과 이미지 공간 사이를 거닐며 자신의 행위를 기입한다. 이러한 형식은, 게임 디자이너가 어떻게 인간 경험의 일부를 공간에 기입하고 기록할 것인지 고민하는 지점에서 게임의 방법론과 닮아있다. 6) 특수한 물리적 행위가 어떻게 게임의 특정 규칙 및 목표와 상호작용하는지 질문하면서 공간을 디자인하는 게임의 특징과 유사한 것이다. 이때 특정한 서사를 기반으로 구체적인 목표가 설정되는 게임 형식과 달리 VR 작품으로 기획된 전시 형식은 관객으로 하여금 따라갈 서사를 제공하지 않는다. 이미지 혹은 작품을 파편적으로 흩뿌리며 관객으로 하여금 새로운 서사를 조합하고 구축하기를 제안한다. 이쯤에서 작년 하반기에 개최된 《닷과 대쉬의 모험》(2022, 엘리펀트스페이스)을 살펴보자. ‘버추얼 멀티플레이’라는 수식을 단 전시는 ‘규칙’과 ‘플레이’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가상현실에서 예술 작품을 경험하도록 기획되었다. 버추얼 소셜 플랫폼 ‘Figro’와 물리적인 공간에서 두 달간 진행된 전시는 어드벤처류 게임의 구성을 따라간다. “가상현실의 접속자는 단순 이용자를 넘어 미래의 현실을 탐색하는 탐험자로서 다양한 관계 맺음을 시도”한다는 기조를 내세웠다. 7) 네트워크로 연결된 현실에서 작품을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는 것이다. 전시는 2인이 참여하는 구성이며, 플랫폼에는 세 개의 작품이 있다는 안내원의 설명과 함께 시작한다. HMD를 착용하고 플랫폼에 들어서면 푸른 초원이 보인다. 저 멀리 작품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빛이 있다. 소목장세미의 〈환대의 재개장〉, 이해강의 〈느영나영〉, 임영주의 〈빙〉. 총 3인의 작가의 작업이 숲 속의 오두막처럼 위치한다. 이들은 하나의 메타버스에서 각자의 시나리오를 구축하고 있는데, 관객은 HMD 기기를 착용한 채 작품의 서사를 따라간다. 작품이 개별적으로 서사를 구축하는 한편, 전시에서 규칙과 서사를 발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전시가 개별 작품의 나열이 아라 작품 간의 충돌로 인해 발생한 하나의 사건이라 할 때, ‘모험’을 표방하는 전시는 관객/플레이어로 하여금 어떤 방식으로 챌린지를 던져주는가? 개별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서, 전시가 가공한 세계에서 사건의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작품은 지도에 없는 섬처럼 표류하며, 그사이를 오가는 관객의 어지러운 방황이 시작된다. 전시에서 지도, 즉 전시 도면이 공간 속에서 관객의 포지션을 이해하게 하는 일종의 인터페이스라고 한다면, 메타버스 전시에서 도면은 어떤 방식으로 그려져야 할까? 아니, 애초에 이미지로 표현된 공간을 설명하는 또 다른 이미지가 필요한 걸까? 이 질문은 우리가 가닿을 수 없는 공간을 표기해야 한다는 지배 욕망에 기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메타버스라는 가상의 세계에서 관객의 자리와 위상에 관한 물음이다. 메타버스는 단순히 기술적으로 구현된 가상세계가 아니다. 이 세계는 디지털 디스플레이 안에서 시간과 공간의 개념적 확장을 실험한다. 메타버스를 정처 없이 배회하는 관객을 위해 지도가 필요하다면, 메타버스 공간은 어떤 방식으로 이미지화 되어야 하는가? 밀도 높은 이미지, 점점 더 리얼해지는 이미지가 공간에 자꾸만 레이어를 쌓고 있다. 이 중층의 이미지들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이미지를 공간화 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공간이 이미지화 되는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말하자면 공간을 무한하게 확장하기에 앞서 우리가 그곳을 상상하는 방식을 살펴볼 때다. 무섭게 선명해지는 이미지, 증식하는 레이어, 시뮬레이션 되는 세계. 다시 우엘백의 문장으로 돌아가 본다. “지도는 영토보다 흥미롭다.” 지도가 실재하는 영토에 관한 상상으로부터 그려진 이미지라면, 우리를 흥분시키는 것은 언제나 현실 혹은 실재 자체가 아니라 그로부터 상상된 세계다. 1) 미셸 우엘백, 『지도와 영토』(서울: 문학동네, 2011), 270쪽. 2) 현시원은 당대 미술에서 단순히 정보적인 수단으로서 인식되어오던 전시 도면에 새로운 위상을 부여한다. 오늘의 전시 도면이 일종의 드로잉/이미지와 스코어로서 전시에 대한 사고와 실현을 매개하는 독립적인 형식임을 주장하고 있다. 더 자세한 연구 내용은 다음을 참고할 것. 현시원, “전시 만들기와 기록으로서의 ‘전시 도면’ 연구 -큐레이터의 실험적 실천으로서의 전시 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22. 3) C. 티 응우옌, 이동휘 번역 『게임: 행위성의 예술』(서울: 워크룸, 2022), 190-191쪽 4) C. 티 응우옌, 이동휘 번역, 위의 책, 190쪽 5) 현시원, 위 논문, 135쪽. 6) C. 티 응우옌, 이동휘 번역, 위의 책, 36쪽 7) 뉴스와이어, “버추얼 멀티플레이 전시 ‘닷과 대쉬의 모험’, 온·오프라인 동시 개최”(2022. 10. 19.), https://www.newswire.co.kr/newsRead.php?no=953653 (최근접속일: 2023. 3. 25.)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술비평) 이민주 이민주는 서양화와 미술이론을 전공했다. 글 쓰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꾸린다. 퍼포먼스와 퍼포먼스 도큐멘테이션의 관계를 짚은 《동물성 루프》(공-원, 2019, 공동 기획), 다큐멘터리 이미지의 미학성과 정치성을 조명한 《논캡션 인터뷰》(의외의조합, 2021, 기획), 연극의 형식을 빌어 전시의 사건성을 모색한 《#2》(두산갤러리, 2023, 공동 기획)를 기획했다. 이미지가 만드는 사건과 수행적 성질에 주목하며 비평적 글쓰기를 고민하고,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의 번역 관계를 연구한다.

  • USA in Fallout, USA today

    We once thought that the era of Donald Trump had come to an end, but it appears it hasn't. While Trump may have lost the election, his supporters' enthusiasm remains robust. What fuels this enduring energy? Moreover, is the driving force behind Trump's rise aligned with traditional 'American' values or does it run counter to them? It's worth recalling that Trump's campaign slogan was 'Make America Great Again'. Yet, years later, when President Joe Biden won the election after a vigorous anti-Trump campaign, he declared his presidential message as 'America is back.' So, which vision truly represents 'America' – Trump's or Biden's? < Back USA in Fallout, USA today 14 GG Vol. 23. 10. 10. We once thought that the era of Donald Trump had come to an end, but it appears it hasn't. While Trump may have lost the election, his supporters' enthusiasm remains robust. What fuels this enduring energy? Moreover, is the driving force behind Trump's rise aligned with traditional 'American' values or does it run counter to them? It's worth recalling that Trump's campaign slogan was 'Make America Great Again'. Yet, years later, when President Joe Biden won the election after a vigorous anti-Trump campaign, he declared his presidential message as 'America is back.' So, which vision truly represents 'America' – Trump's or Biden's? The Fallout game series also raises questions about 'what is the USA', although it's unclear whether this was the developers' precise intention. Let's consider the New California Republic (NCR) as an example, the epicentre of the Fallout world. NCR is a nation rebuilt by the power of its people from the ashes of destruction and appears to serves as a metaphor for how Americans perceive their nation's founding narrative – the USA that was built by the people, on the lands that European settlers deemed as 'uninhabited'. Furthermore, NCR represents a highly advanced civilisation with a touch of snobbism and expansionism, yet an attempt to avoid excessive conflicts with the outside world. This mirrors the historical fact that the USA, while aspiring to become a global power/player, maintained an isolationist foreign policy for a significant period before World War II. The protagonists in the Fallout series are typically residents of the vaults . For instance, in Fallout 1 and Fallout 2 , the protagonists have close ties to and support the NCR or its preceeding entities. These protagonists emerge from the vault that preserves remnants of the 'old world' and in the game, for the first time, encounter the 'new world' outside in a state of ruin. This reminds me of historical events when the European settlers from the 'civilised' world initially set foot in the 'barbaric' new world in ruin, seeking to establish colonies. As its name suggests, the New California Republic (NCR) establishes itself in the west, pushing into the wasteland, which notably evokes memories of the 'Western frontier'. America's westward expansion was driven by heightened nationalism under the leadership of Andrew Jackson and, in the process, resulted in significant conflicts and the destruction of native peoples and their cultures. This parallels the situations that gamers encounter through the various factions' conflict for control of the Hoover Dam in Fallout: New Vegas . Caesar’s Legion, an antagonistic faction in Fallout: New Vegas , consistently asserts authoritarian control over its territory. This reflects how colonist might have appeared from the perspective of indigenous people during the westward expansion. Historical accounts reveal that Native Americans resisted this expansion by forming alliances with or receiving military support from, British or French troops stationed in the region. In the context of the modern-day United States, Caesar’s Legion seems to draw inspiration from extremist groups like the Islamic State (IS) – also known as the Islamic State of Iraq and Syria (ISIS). However, it's a well-known fact that modern Islamic extremists have their roots in military groups formed during the Cold War, in response to the imperialistic expansion of both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This parallel is mirrored in the game Fallout , where Caesar, the leader of Caesar’s Legion, was formerly associated with the 'Followers of the Apocalypse', a humanitarian and intellectual medical group. In a way, Caesar’s Legion can be seen as an anti-civilisational phenomenon born out of the frustrations with a failing civilisation. When players confront Caesar’s Legion in the game, they are also confronted with the historical ironies that the USA faces in its own history. The Enclave, a villainous group that appears in both Fallout 2 and Fallout 3 , serves as a significant element prompting questions about the ‘truly American'. To settlers, the Enclave represents an 'old world' power aiming to dominate the wasteland by controlling knowledge and employing force, with their actual power centre concealed in a distant location. This scenario bears resemblance to how historical Great Britain might have been perceived by the colonists in America across the Atlantic before the American Revolutionary War. Interestingly, the vault residents, despite sharing similar cultural and societal norms, opt to coexist with the wasteland and resist the Enclave. This mirrors the stance of the colonial intellectual class that led the War of Independence against Britain. Yet, there’s one crucial factor that I must point out. Historically, the dominant conflict within American political society during westward expansion revolved around the clash between the ‘old world’ and the ‘new world’, with the old world associated with power, knowledge, and the clerical system. For instance, America's evangelical church, which gained popularity during the Great Awakening, found itself in conflict with the established colonial clergy and intellectual elite. The evangelical doctrine of the time, which permitted ordinary worshipers to serve as preachers, obviously challenged the traditional churches of the 'old world'. From the evangelical perspective, these established churches were perceived as mere institutions that monopolised knowledge, power, and divinity. Coming from this historical trace, Richard Hofstadter once noted that American anti-intellectualism can trace its roots to a deep-seated antipathy toward knowledge and power, creating a point of convergence between anti-intellectualism and democracy. Within this context, we can interpret the vault residents as symbolic representations of colonial elites who have a favourable disposition towards the wasteland but can never truly become a part of the wasteland. This dynamic helps explain the ambivalent feelings that Fallout players have towards the Brotherhood of Steel (Brotherhood), another faction aiming to monopolise intellectual and military resources in the post-apocalyptic new world. From the perspective of the wasteland's inhabitants, the Brotherhood appears as nothing more than elite exploiters who make oaths of 'good faith', reminiscent of how settler communities may have perceived colonial intellectuals and clergy that misuse power. This narrative framework forces the players, empathising with the vault residents, to feel both sympathetic and rebellious against the Brotherhood. Fallout 4 sought to encapsulate these recurrent historical themes within the USA more condensedly and comprehensively. The game leveraged the spatial characteristics of the game’s New England region as a narrative instrument to reincarnate the early US history. The game's protagonist, who retains memories of the era preceding the Great War (translator's note: a fictional conflict in the Fallout series, posited to have occurred between the USA and China, culminating in a nuclear apocalypse), also serves as a bridge for players to engage with the game's narrative and the history. In Fallout 4 , players can construct and establish settlements, akin to the initial settlers who migrated to the American continent. Here, the Commonwealth Minutemen, one of the in-game factions that the protagonist first encounters in the game, play a pivotal role in bridging the historical context. Within this framework, the history of the US is portrayed as having begun sometime when patriots organised a militia for the nation’s independence. It is this thematic backdrop that explains the game design elements of small-scale city-building simulations in Fallout 4 . Moreover, in Fallout 4 , the Institute (translator’s note: one of the factions in Fallout 4) appears to allude to a period in history marked by the confluence of anti-intellectualism and anti-communism, known as McCarthyism in the US. The game's aesthetics are notably influenced by the country's post-war culture of the 1950s – the very essence of the Fallout universe aesthetics – which vividly encapsulates the era of McCarthyism. US scholars have attributed that rise of McCarthyism in the US to a series of political events, including the Soviet Union's successful nuclear test, China's expansion of communism, and the stalemate situation of the Korean War. These incidents compelled Americans to perceive a formidable ‘outside threats’ beyond their reach, subsequently prompting the US populace to embrace McCarthyism as a means of countering this perceived menace from within. In essence, McCarthyism aligns with a recurring historical pattern in the US, characterised by public apprehension in the face of power struggles, conflicts between old-world and new-world elites, and tensions involving intellectuals. This explains the in-game characters' reactions to the Institute in Fallout 4 . For example, we can observe the hostile responses of Fallout 4 characters toward "synths", the artificial humanoids produced by the Institute. They exhibit a deep-seated fear of synths, often calling them the 'boogeyman', and engage in witch hunts to locate and expose these synths. This behaviour fundamentally mirrors the way McCarthyism indiscriminately labelled intellectuals, government officials, and artists as 'communists' without any substantiated rationale. Another intriguing aspect of the story is the presence of a counteracting faction in the game, an underground movement that defines synths as oppressed beings and strives to liberate sentient synths from their creators. This faction, known as The Railroad, strikingly resembles a historical phenomenon, a covert network called the Underground Railroad, which aided the escape of black slaves from the South to free states in the North. By contextualising the game's narrative within the historical backdrop of the US, the synths first mirror the unjustly accused victims who were branded as 'communists' during McCarthyism. Simultaneously, they symbolise the oppressed history of ethnic minorities facing racial discrimination. The plot takes an intriguing turn as it becomes clear that the Institute's objective, mobilising synths, was ultimately aimed at the reconstruction of the world. It's worth revisiting that the Institute bears resemblances to communism in the historical context of McCarthyism. Throughout history communism underwent significant trial and error, resulting in substantial civilian casualties. However, even if one is compelled to acknowledge that communism represented an effort to address prevailing issues, the question arises: What might occur if the US were to embrace certain elements of communist ideology in the present day? Or, what if the US society were to recognise the social and economic value of immigrants (the synths) as an essential component for global stability? Furthermore, these same questions can be posed from an entirely opposite perspective, considering the metaphorical resemblance of synths to both 'communists' and 'slaves'. For instance, if we were to perceive the rise of Trumpism and the Bush administration's invasion of Iraq as attempts to resolve inherent prevailing issues in America, and strive for a better world, where do we go from there? Fallout: New Vegas and Fallout 4 give players multiple decision-making scenarios in this ‘where do we go from there?’ situation. Players can either opt to align themselves with a particular faction introduced in the storyline, aiming to undermine or annihilate their adversaries, or they can forge their own group. The commonly perceived 'true ending' of the game unfolds when the protagonist embarks on a journey, envisioning a new future shaped by human hands. Nevertheless, whether this path truly represents the best choice among the available options remains a matter of uncertainty. But regardless of the option the player decides to choose, the game's outcome often serves as a reflection of certain episodes from US history, as previously discussed. The ongoing political struggle in the US, exemplified by the conflict between the Trump and Biden administrations, therefore, can be seen as another iteration of the US’s historical pattern. Biden brings Trump, and Trump brings Biden – a cycle of perpetual conflict. The fictional world of Fallout emerges as a consequence of ‘resetting’ these recurring conflicts followed by the massive destruction. Yet, the humanity still hurtling down to the path of self-destruction through warfare. However, even within what may appear to be an endless cycle, one can choose to explore uncharted territories, akin to the Yes Men in Fallout: New Vegas or the Commonwealth Minutemen in Fallout 4 . Just as the American Revolutionary War once emerged, all these elements contribute to the complex tapestry of the US as what it is. Perhaps it is the reminiscent of Fallout 's timeless slogan, "War never changes". Tags: fallout3, projectpurity, GECK, fukushima, radioactive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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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ow far can the ‘economics of crowdfunding’ go?: The comparative case of and

    If we were to choose two of the most talked-about RPG games in 2023, many would agree to pick (Bethesda Game Studios, 2023) and (Larian Studios, 2023). It appears that gamers generally favor over due to disappointing elements in its game design, despite it still managing to achieve good sales records thanks to the developers’ publicity. The game seems to have demonstrated the limitations of the so-called Bethesda-style RPG games, whereas was praised for its rich interactivity and engaging role-playing elements. Some claim that this Belgium-made game has made a new mark in the RPG genre, listing it as one of the most critically acclaimed RPGs of 2023 alongside The Legend of Zelda: Tears of the Kingdom (Nintendo, 2023). < Back How far can the ‘economics of crowdfunding’ go?: The comparative case of and 16 GG Vol. 24. 2. 10. You can see the Korean version of this article at this URL: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0f0eb392-efdb-48bc-96d5-044351c3f618 If we were to choose two of the most talked-about RPG games in 2023, many would agree to pick (Bethesda Game Studios, 2023) and (Larian Studios, 2023). It appears that gamers generally favor over due to disappointing elements in its game design, despite it still managing to achieve good sales records thanks to the developers’ publicity. The game seems to have demonstrated the limitations of the so-called Bethesda-style RPG games, whereas was praised for its rich interactivity and engaging role-playing elements. Some claim that this Belgium-made game has made a new mark in the RPG genre, listing it as one of the most critically acclaimed RPGs of 2023 alongside The Legend of Zelda: Tears of the Kingdom (Nintendo, 2023). However, this article is not going to address the games themselves but rather the economic discourse of the gaming industry surrounding the production of these titles. First, the high-budget AAA games industry that sustains itself through the 'conventional (form of) capital'. Second, the contrasting mid- to low-budget games based on 'crowdfunding economics' (e.g., Kickstarter and Early Access). Looking at various gaming communities on the internet, it appears that many Korean gamers are actively comparing with other AAA games, including , while labeling them as if they were developed in a similar game production process. To be more specific, while gamers praise for its creativity and rich details, they also, in contrast, criticize and other AAA games for lacking something despite being developed in a similar environment. The criticism is about the negligence of craftsmanship of AAA game developers – such as those in – for not being able to deliver richly crafted games despite having a similar amount of resources. One could argue that such criticism is coming from gamers' expectations for good quality games and the failure of anticipation that the game they've highly expected 'could have been better'. And I'm not completely against that argument. Instead, what I would argue is the binary labeling and comparing of these two game titles that is far from reality. Aside from the fact that both and belong to the similar game genre and received wide public attention upon their release, the two games only have marginal similarities when it comes to how they were developed. Their game design elements are also vastly different, and you cannot just do a direct 1:1 comparison with each other. While is a mass-produced product built with an efficient and stable production direction backed by large investment capitals, is closer to a craft product targeting a much niche target audience grounded from crowd-sourced funding. Of course, I'm not here to discuss the superiority or inferiority between manufactured mass-products and crafted products. What is a more important factor here to discuss is the possible impact that crowdfunding economy, backed by a niche target audience, has on the games that we get to play. can be regarded as a typical AAA game with a strong tendency to create a massive product with concentrated large-scale capital investment. In a number of interviews, Todd Howard, the director of Bethesda Game Studio, highlighted as their well-established studio’s first new IP in 25 years. The studio's mass-scale promotions worldwide, including game trailers and demo showcases in various game shows, clearly demonstrated the massive scale of Microsoft’s capital resources. It also showed what product value has to Bethesda Game Studio, Zenimax Media, and Microsoft, which clearly would have excited the investors on Wall Street. At the same time, the developer was extremely cautious about disclosing its information throughout the production process. We can speculate this from Todd Howard's interview at the Develop: Brighton conference 2020, in which he mentioned that the team "(would) like to do it as much as possible when we can really be able to show it – to show what the final product looks like and feels like, closer to the release" instead of stringing the gamers' "fatigue of wanting something." To put this another way, this demonstrates 's closed production environment with lesser public feedback. And this is not just 's story: as we may all know, the majority of AAA games do not disclose their development process to the public, and the process of receiving feedback is limited to internal QA or public trials and demos, keeping its exclusiveness and prestigiousness from its fans. This further engages the gamers closer to the game’s release date, amplifying their curiosity and expectations of the game – to the point they will gladly open up their wallet and purchase the game. On the other hand, such AAA game’s one-sided strategy also imposes its own risk; to gamers’ misled expectations to disappointment. Gamers’ critical comments towards followed by the game’s release indicate that Bethesda’s internal predictions (perhaps their developers, or executives and shareholders) did not align with their target audiences’ expectations. The game just did not meet people’s expectations towards a well-made game combining space exploration filled with rich and detailed in-game interactive elements – on how they expect Bethesda Game Studio's own unique and long-established RPG design style. Instead, Bethesda appears to have taken more of a simplistic approach with fewer rich and detailed in-game elements as a payback for going big. Perhaps creating a fully immersive virtual space world was impossible in their AAA game production system. We can see this from one of the game’s primary and yet controversial features of space exploration, where the developers have made a vast scale of fully functioning virtual space but with procedural generation of planetary terrain and simplification of spaceship take-off and landing processes, which resulted in limiting the player’s ability to actually explore and do things in the in-game world. Unfortunately, what could have been a valid strategy from the company’s standpoint was not the game design direction that Bethesda’s long-time fans have hoped for. This gap between expectations versus the delivered product, amplified by the company’s recent business strategy, backfired into gamer’s satire and ridiculed remarks towards the game and its developers. is not Bethesda Game Studio's first and only failure. The company has once received strong criticism when they initially released (Bethesda Game Studios, 2018) without being able to deliver its promised immersive open-world game experience. It had underperforming online gaming systems that failed to synergize with the existing Bethesda Game Studio’s unique RPG style, which was clearly a mismanagement of its business strategy. Sure, has better quality than as the studio was able to spend more time in production, which allowed developers to put a significant amount of effort into launching the game. But nevertheless, the case of exposes how a one-sided and efficiency-hungry AAA game production pipeline can further solidify the gap between gamers’ (and the market’s) expectations. It also shows the fundamental downside of this rigid pipeline game production model. Perhaps now is the time, upon learning from , when Bethesda Game Studio should consider a fundamental shift in its pipeline. < Baldur’s Gate 3 > , on the other hand, is a game that was developed simultaneously as the developers share the development process. The game was available for early access for three years until the game’s official release and frequently disclosed its production process to Baldur’s Gate series fans. Such strategy resembles the lively production cycle of crowdfunding economics, despite the game was not directly funded by crowdfunding channels (e.g., Kickstarter). (Because Larian Studio has never adopted the crowdfunding method to finance their games since their successful (Larian Studios, 2014).) Already in the beta testing phase, gamers were able to deliver their feedback for the game to the developers via the game’s official community on the internet. The developers also disclosed their progress upon such feedback and change through community updates, which wouldn’t have been possible without the trust of the developers in their games’ community. Larian Studio has also implemented the abundant openness and freedom of TRPG as much as possible into the game during its three years of early access. I don’t need to delve into further details of ’s high degree of freedom, as it has been widely acclaimed in numerous game reviews and demo play videos on the internet. What is important to mention here, though, is the fact that was produced in a way to accommodate as many demands coming from its fans. I consider this consensus-building with the fans to be what eventually leads the game to an overwhelmingly positive response upon its release. This is obviously not an easy direction for the company, which makes the development story of so much more interesting. While the game design that guarantees maximum openness and freedom to gamers does sound appealing to players, it also adds complexity to the game for those who create it. Also accommodating every demand could just end up making the game that is too complex for people to even play. Being a top-down RPG (with the possibility for gamers to adjust the camera angle), unlike other mainstream CRPGs like , is not also the most favorable choice from the perspective of large capital investors. also needed to provide a vast-scale world setting, story, and significantly more cut scenes than any other of Larian Studio's previous works. So we can imagine increased the level of complexity in its production that its prequels. As such, Bethesda Game Studio and Larian Studio developed their games with clearly different directives. In addition to that, they have different pathways in history of their businesses. Bethesda Game Studio, as shown in their solid pipeline process, is a company rooted in the conventional forms of game production studio systems in the 1990s. The company gradually scaled up with mergers and acquisitions backed by large-scale capital investments – like those in large-scale software sectors. During this time, in the early to mid-1990s, when Bethesda started as an RPG production studio, the online game community was immature. It didn’t have its own logic of ‘economy’ per se, with only a handful of alternative publishing channels available at the time. Such as shareware or small game retail stores. Due to the technical limitations of the internet environment at the time, the shareware phenomenon did not grow significantly, rather only regarded as a sort of pre-showcase method to share parts of the game to lure gamers to purchase the ‘full version’. At that time, only small-scale game developers, such as hobbyists, were able to receive direct feedback from their potential gamers for games in development. Such direct feedback mostly relied on an immediate network and thus clearly was not possible for mass-scale game production. Furthermore, the growth of Bethesda Game Studio was driven by its CEO, Robert Altman, who formerly worked at Zenimax Media and had expertise in company management and finances. Fast forward to today, we also cannot separate Bethesda Game Studio from the influence of large corporations, such as Microsoft, and investment firms on Wall Street. On the contrary, Larian Studio is a company established without a pre-existing business entity and therefore operates without existing company management or shareholder’s interest. As Jason Schreier, an American game journalist, mentioned in his article in Bloomberg, Larian Studios is a private company with its majority shareholder privately owned by Swen Vincke, Larian’s chief executive officer, alongside his wife. This allows Larian Studio to take its initiatives without trying to meet Wall Street’s expectations. However, Schreier also pointed out that such a company structure also comes with “full of risks”. As a matter of fact, Larian Studio struggled after the company failed to retrieve its share of profit from their moderate success of (Larian Studio, 2002), the first of the Divinity game series. The company had to run with only three individuals at some point while working on its sequel, (Larian Studio, 2004). Despite this risk in finances, Larian continued to operate in a private company structure maintaining its focus on a specific game genre, even after the success of (Larian Studio, 2014). For me, this resembles Nihon Falcom, one of the mid-size Japanese game studios that is consistently producing its own unique style of JRPGs. But of course, the main difference is that Nihon Falcom is now a public company, while Larian Studio leveraged its pivotal growth from crowdfunding economics. So what aspects of crowdfunding economics benefited the studio’s growth? Larian Studio’s supporters were comprised of people who gathered through word of mouth, fan-based, a niche group of enthusiasts. They were different from the AAA fan base, those that are often loyal to past franchises and rooting for their past glory’s comeback. In contrast, Larian Studio’s early Divinity series reached moderate success in the sense that it did not draw a solid fan base like in those massive-scale game corporations. Their recorded a positive response in the mid-2010s when various crowdfunding projects emerged all across the game development scene – with the rise of the Kickstarter platform. However, even the studio’s Kickstarter project did not draw much attention, even less spotlighted than the Kickstarter projects from the former-Interplay Entertainment veterans – the publisher of Baldur’s Gates franchise since the late 1990s. Nevertheless, made a success by satisfying the fans of classic RPGs, managing to establish the studio’s first fan base after sourcing its finances partially through crowdfunding. What is interesting here is that, unlike other successful Kickstarter game projects, including the projects from the industry-acclaimed AAA game industry veterans, the team of had not many track records to present at that time. But perhaps this allowed Larian developers to go more boldly – instead of following a safe track. Ironically to say, they didn’t have much – nothing much to lose, therefore were able to leverage greatly from this new trend of crowdfunding economics. Now, is a product developed after Larian Studio’s growth in scale since its boost from the crowdfunding economics. The game involved an estimated 200 people in development, without counting the workforce in their newly established overseas branches. Size-wise, the studio is nothing like their early days of . As journalist Schreier and the industry veteran Xavier Nelson Jr., pointed out, perhaps the production of was a lucky move in the first place – as Schreier said in his article on Bloomberg, “most other video-game developers are either part of publicly traded companies or too small to make games as ambitious as .” Established game companies like Bethesda Game Studio may be able to deploy larger manpower and greater capital investment, but wouldn’t have been able to mediate the risk of developing a game with complex rules, turn-based combat system, with countless branching paths that require countless resources on content that may go mostly unappreciated. It is even remarkable that Wizards of the Coast, the publisher of “Dungeons & Dragons”, allowed Larian Studio to go with three years of early access of as it might have risked the reputation of its brand with an unfinished game. It is also a drastic contrast with the early access of that was done primarily for just refining and supplementing a near-to-complete game. In comparison, 's early access was recklessly long and was disclosing its production process to the potential players. Of course, there were traces of some promised coming-soon contents being deleted upon the game’s release as if the early access schedule could not be extended indefinitely. But still, the trust and openness of Wizards of the Coast towards Larian Studio of letting them to continue with 3-years long early access is surely an interesting element to look into. The success of ’s open game production, rooted in crowdfunding economics, is perhaps the most intriguing phenomenon that we’ve come across in the world of games in the year 2023. Those who actively participated in the early access of were either niche, too old-fashioned, or outside the mainstream target audiences – at least, that’s how it has been seen by cool-headed market analysts in large investment capital firms. But such a niche and active fan base is not just limited to the classic RPG genre. There are numerous devoted communities in point-and-click adventures, hyper FPS, 2D platformers, dinosaur simulators, and so on. On top of that, with the growth of ESD (Electronic Software Distribution), early access, and crowdfunding since the 2000s, the world’s indie game market is more robust than ever before. This enables a scalable fandom market, which was once neglected by the logic of large capital, can now unite and establish alternative means of the games market. And this is not just an isolated case of – there are other cases like by Frontier Dev. demonstrates that fans are no longer remaining as passive consumers. It shows the impact of crowdfunding economics on the indie game scene, where niche fans' trust and devotion towards the game (i.e., towards the game that they would like to play) actually becomes powerful enough to affect the mainstream market. This contrasts with , the mass-scale production backed by large investments with a veteran production team but decided to go a safer and proven pathway towards revenue. It could be that gamers are getting fed up with the industry giant’s overemphasis on satisfying their shareholders' interest to maximize revenue and minimize risk. What backers of crowdfunding economics are doing to the game developers somewhat resembles how aristocrats during the Renaissance era used to order custom-made handicrafts from artists and craftsmen – backing the creators to make the game that fits their specific taste. While the Renaissance aristocratic patrons were a tool for monopolizing arts and crafts with their power of class and wealth, the contemporary patronage of games is more like a collective action of anonymous consumers. Here, their primary aim is to regain their access to niche crafts (of games) that were once alienated from the mainstream capital market. Of course, nothing is perfect. There’s also a downside to crowdfunding economics – that it's not always a happy ending, and the development of was perhaps a rare experiment and one-of-a-kind incident that will be remembered in the history of the game industry. It is also yet unknown whether Larian Studios will continue onward with this experiment in their future projects. Vincke has already commented in his interview with Bloomberg that he doesn't want to spend another six years working on one game and was unsure about what Larian Studios' next game is going to be. It could be that their next project may not follow the exact pathway of , and the moment may be remembered as one lucky happy moment. But nevertheless, the success of showed the world how far crowdfunding economics could go; the economics of people’s crowdfunded desire, of wanting to see the product they want to consume. For that, it was indeed the most remarkable incident in games of 2023. That’s not to say all gaming industry to follow the same path as – which is impossible – but the story certainly could inspire future innovators to come.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ctoral researcher at Aalto University, Finland) Solip Park Born and raised in Korea and now in Finland, Solip’s current research interest focused on immigrant and expatriates in the video game industry and game development cultures around the world. She is also the author and artist of "Game Expats Story" comic series. www.parksolip.com (비평가) 이이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전문사 졸업 후 영화•게임 비평 기고 활동중. 어드벤처 게임 좋아함. (antistar23@gmail.com )

  • 소수자들의 게임에 대한 세 가지 소고

    디지털게임은 한때 ‘소수자’들의 매체이기도 했다. 소수자라는 개념이 단순히 적은 숫자를 가진 집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디지털게임 초창기에 한국에서 게이머는 소수자에 가까웠다. 전자오락실은 불량한 이들이나 다니는 곳으로 낙인찍혔고,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엄연한 자영업장인 오락실에 학교 교사들이 들이닥쳐 ‘손님’인 학생 게이머들을 강제로 끌고나가는 영업방해 행위도 자연스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뉴스와 신문에서는 연일 불량한 오락실과 게임 때문에 망가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쏟아냈고(이 부분은 아직도 유지되는 바 또한 있다) 게임은 눈치보면서 해야 하는, 말그대로 여가오락 문화 부문에서의 소수자 포지션이었다. < Back 04 GG Vol. 22.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확률형 아이템 확률공개 법제화 : 진정한 이용자 보호를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

    지난 대선에서 유력 후보들의 공약이기도 했던, 확률형 아이템 확률공개 법제화가 2023년 2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위 법은 1년 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4년 3월 1일부터 시행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잘 알 것으로 예상되지만, 확률형 아이템은 구입 당시에는 그 종류나 효과가 명확하지 않고, 일정한 행위 (요컨데 뽑기를 한다거나, 특정 장비를 강화를 하는 등의 행위) 를 할때 확률에 따라 그 종류나 효과가 정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 Back 확률형 아이템 확률공개 법제화 : 진정한 이용자 보호를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 11 GG Vol. 23. 4. 10. 지난 대선에서 유력 후보들의 공약이기도 했던, 확률형 아이템 확률공개 법제화가 2023년 2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위 법은 1년 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4년 3월 1일부터 시행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잘 알 것으로 예상되지만, 확률형 아이템은 구입 당시에는 그 종류나 효과가 명확하지 않고, 일정한 행위 (요컨데 뽑기를 한다거나, 특정 장비를 강화를 하는 등의 행위) 를 할때 확률에 따라 그 종류나 효과가 정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확률형 아이템은 온라인 게임이 정액제에서 부분 유료화 모델로 이동하기 시작할 때 등장하였고, 현재 다수의 부분 유료화 게임이 채택하고 있는 수익구조에 해당하기도 한다. 확률형 아이템은 확률을 통해 최종 결과물을 획득하므로, 특정 플레이어가 원하는 아이템을 바로 획득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용자는 특정 아이템(보통 희귀한 아이템)을 획득하기 위해 유료로 확률형 아이템을 여러 번 구입해야 할 수 있다. 이러한 로직상 확률형 아이템은 과소비와 사행심을 불러일으킨다는 비판이 있어왔다. 특히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공개가 전혀 되지 않을 경우, 합리적으로 원하는 아이템을 획득할 때 까지의 비용을 예측할 수 없어 과소비를 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이에 해외에서는 확률형 아이템을 도박의 일종으로 보아 아예 판매를 금지하거나(네덜란드 등), 청소년에게 팔지 못하게 하는 경우(독일 등)으로 규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1.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의 역사 및 한계 이러한 비판을 고려하여 한국 게임산업계는 2015년부터 자율규제를 통해 확률형 아이템 확률공개를 수행해왔다. 2015년의 자율규제는 청소년 이용가능 게임에 대해 단순히 등급별 확률공개를 하는 단순한 수준이었다면 2021년 12월부터 시행중인 자율규제는 모든 등급 게임에 대해 개별 아이템에 대한 확률공개를 넘어, 강화, 합성 등 유료 요소가 있는 다양한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 확률공개를 할 것을 요구하였다. 또한 우리나라의 자율규제는 단순히 사업자에게 자율규제를 준수할 것을 요청하는 것을 넘어 최초부터 게임물이 확률공개를 수행하고 있는지 모니터링을 수행했으며, 특히 2018년 부터는 협회가 아닌 독립적인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를 통해 상위권 게임에 대해 확률공개가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매월 모니터링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고 있다. 이러한 자율규제가 어느정도 안착되어 확률공개가 높은 수준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국내게임의 경우 90%이상이 자율규제에 따라 단순한 캡슐형(뽑기형) 확률형 아이템 뿐만이 아니라, 강화, 합성 확률까지 모두 공개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율규제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도 많았다. 특히 게임 이용자는 크게 두 가지를 자율규제의 한계로 지적하였다. 우선은 ‘공개 된 확률을 믿을 수 있는가?’ 에 대한 비판이었고, 두 번째는 ‘확률을 공개하지 않을 경우 실질적으로 강제할 방법이 있는가?’ 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 두 가지 쟁점 모두가 자율규제의 한계에 해당하는 사안이다. 이러한 비판이 이용자가 법제화에 찬성하게 하는 이유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우선, 두번째 확률 공개 강제 수단과 관련하여 자율규제는 3달 연속 확률공개를 하지 않을 때, 게임물과 제작사 유통사 정보를 언론을 통해 공개하는 방식으로 자율규제 준수율을 유지해왔다. 이는 이용자에게 확률공개하고 있지 않는 게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장기적으로 확률을 공개하지 않는 게임사 및 게임에 대한 평판을 낮춰 확률공개를 준수하도록 간접적으로 강제하는 방식이다. 실제 국내 개발, 유통사에게는 이것이 이용자의 여론 등에 영향을 주어 패널티로 동작했다. 이에 국내 게임사를 대상으로는 높은 자율규제 준수율을 기록할 수 있었다. 다만, 해외 게임회사, 특히 국내 매출 비중이 높지 않은 게임회사에게는 이러한 자율규제의 패널티가 실제적으로 큰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확률 공개의 정확성 역시 기존 자율규제에서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다. 우선, 확률 공개의 정확성을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부터가 문제가 된다. 확률공개의 정확성을 검증하려면 모니터링 단계에서 실제로 확률형 아이템을 구입해서 결과물을 확인하거나, 사업자의 협력을 통해 로그 등을 활용하여 실제확률과 공시된 확률의 차이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게임이 하나의 확률형 아이템을 파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하고, 또한 하나의 확률형 아이템에서 많게는 수백 가지의 최종 아이템을 뽑을 수 있는데 이를 민간에서 일일이 모니터링하고 확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더 나아가 실제로 아이템을 뽑은 기록, 상품별 판매량 등은 사업자의 핵심 영업비밀로 이를 공개하는 회사는 없으므로 이 역시 불가능하다. 다만, 확률을 거짓 공시하는 것은 ‘표시광고법’ 혹은 ‘전자상거래법’ 상 거짓 · 과장 · 기만적 방법으로 소비자를 유인하는 불법 행위를 구성한다. 필요시 공정거래위원회와 같은 조사 권한을 가진 정부기관에서 조사 등을 통해 확률의 적정성을 현재도 판단할 수 있다. 이번 2월 27일에 통과된 게임산업법 개정안 역시 확률공개의 미기재 뿐만 아니라 확률정보의 오표시도 시정명령과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이를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시행령에 모두 위임하고 있다. 이용자들의 요청을 고려하면 확률 정보의 정확성을 판단할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 확률형 아이템 확률규제 법제화 이후 고려사항 확률형 아이템의 모니터링을 맡아 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살펴보면 확률형 아이템 역시 지난 몇 년간 다양한 변화를 겪고 있다. 초기에는 캐릭터 뽑기, 아이템 뽑기와 같은 단순 뽑기형, 즉 캡슐형 아이템이 다수였다. 그 이후 유료로 강화 재료를 사서 확률적으로 유상 혹은 무료로 획득한 아이템을 강화하는 유료 확률형 강화 콘텐츠가 등장하고, 유상 혹은 일부 유상으로 획득한 아이템 등을 이용해 새로운 아이템을 얻는 유료 확률형 합성 콘텐츠가 등장했다. 하지만, 특히 최근에는 이러한 틀로는 명확히 정의되지 않는 다양한 방식의 유료 콘텐츠가 개발되고 또 활용되고 있기 때문에, 확률형 아이템의 경계를 명확히 하기 어려운 경우가 점차 많아지고 있다. 개정된 게임산업법은 제2조(정의) 제11호에서 “확률형 아이템”이란 직ㆍ간접적으로 게임이용자가 유상으로 구매하는 게임아이템(유상으로 구매한 게임아이템과 무상으로 구매한 게임아이템을 결합하는 경우도 포함하며, 무상으로 구매한 게임아이템 간 결합은 제외한다) 중 구체적 종류, 효과 및 성능 등이 우연적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말한다. ”고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정의에도 공개대상이 되는 “확률형 아이템”의 범위를 확정하기는 쉽지 않다. 우선 ‘유상으로 구매한 게임아이템’ 이 무엇인가에 대한 판단과, ‘우연적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유상으로 구매한 게임아이템은 유상 재화(요컨대 “다이아”) 로 구매한 확률형 아이템이 포함되는가? 혹은 직접 현금을 주고 산 패키지만 포함이 되는 것인가? 혹은 유상으로 구매한 다이아를 일정한 과정을 거쳐 다른 재화로 변경할 경우 해당 재화도 유상 재화로 보아야 하는가? 와 같은 부분이다. 유상의 범위를 지나치게 넓힐 경우. 단순히 기회 제공형 유료 아이템의 결과물도 대상으로 볼 우려가 있다. 반대로 지나치게 유상의 범위를 좁힌다면, 실제 현금을 주고 산 경우를 제외한 유상 재화로 산 아이템 역시 유료가 아니라고 판단할 것이다. 다만 실제 게임 내에서는 유료와 무료가 다양하게 섞여 있어 게임을 실제 일일이 확인하고 판단하기 전까지는 유료성을 판단하기 쉽지 않다. 특히 최근 MMORPG 등 일부 게임은 재화의 종류를 다양하게 마련하는 경우가 많다. 원칙적으로 다수는 게임플레이에서 활동을 통해 재화를 얻을 수 있지만, 유상 재화로 구입이 가능한 경우도 많아 유상의 범위를 확정하기가 쉽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한 우연적 요소가 언제 결정되는지에 대한 판단도 쉽지 않다. 과거 뽑기형 아이템의 경우에는 구매하자마자 바로 우연적 요소에 의해 최종 아이템이 확정된다. 최근에 제작된 일부 게임은 단순히 바로 우연적 요소에 의해 최종 아이템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유료로 특정 버프(Buff)등을 얻어 특정 던전 등을 플레이하고 그 결과로 아이템 등을 얻게 설계되어 있는 경우, 특정 몹을 소환하는 아이템을 유상 판매하는 경우 등 다양한 변형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게임은 확률형 공개의 대상으로 볼 것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앞으로도 게임의 특성을 고려한 새로운 확률형 아이템 혹은 유사 확률형 아이템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랜덤성이 과소비 등을 지나치게 부추기지 않으면 일정부분 랜덤이 주는 재미를 통해 이용자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법적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이러한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면 법적 규제의 취지를 몰각할 수 있다. 기존 자율규제는 GSOK 하의 ‘자율규제평가위원회’의 논의를 통해 새로운 유형을 빠르게 규제안으로 도입해왔다. 다만 이는 엄격한 법적 절차에 따르지 않는 자율규제이기 때문에 가능한 측면이 있다. 행정 처분과 처벌이 가능한 법적 제재는 명확성이 중요 원칙이므로 새로운 양상에 빠르게 대응하기 어려운 단점은 분명히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법적 규제를 회피하려는 새로운 방식의 아이템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에 대해 정부, 이용자와 업계가 최대한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 3. 마치며 확률형 아이템 확률공개의 법제화를 규정한 게임산업법은 그간 자율규제를 운영해 오고 다양한 기준을 내부적으로 만들어 온 게임정책자율기구 입장에서 자율규제의 장점이 잘 전달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운 측면이 있다. 법적 규제가 내년 3월부터 시행됨에도, 우선 자율규제는 법적 규제가 시행되기 전까지 기존 규칙에 맞춰 모니터링 등을 수행하여 지속적으로 이용자의 알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자율규제로 진행되는 확률형 아이템 확률공개가 법제화로 진행되게 된 것에 대해 그간 자율규제를 수행해 온 기구 입장에서는 일견 아쉬운 부분이 있다. 그러나, 법제화가 된 만큼 법제화로 오히려 후퇴하는 결과로 나타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해당 법안은 다수의 이용자의 강한 요청에 의해 만들어진 만큼, 그간 자율규제에서 수행하지 못한 영역에 대한 부분도 수행하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 자율규제는 현재 PC 및 모바일 상위 100개의 게임에 대해서만 모니터링을 진행하지만, 공적규제는 다수의 게임물로 그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고, 모든 이용자들이 요청하는 확률 정확성에 대한 부분도 판단할 방안을 마련하고 수행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정책자율기구 사무국장) 나현수

  • [인터뷰] 인도 게임 문화의 태동기: 크래프톤 인도 퍼블리싱실 이민우 실장

    그렇게 대회를 열었더니, 참가 수뿐만 아니라 동시 시청수도 엄청났어요. 최고 동시시청자 수가 40만 명을 넘겼고요. 총 시청 수는 2억 5천만을 넘었었어요. 그정도로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e-스포츠가 인도에서는 지금 엄청나게 인기를 끌고 있고, 지금 에코 시스템( 누구나 e-스포츠를 즐기고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도 이미 구축이 되어 있습니다. 'Nodwin Gaming','Tesseract Esports' 같은 토너먼트를 진행하는 실력있는 업체들이 이미 이스포츠 에코시스템에 참여하고 있고요. < Back 06 GG Vol. 22.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 <폴아웃 3>로 보는 후쿠시마 오염수 사태

    인간은 절멸을 앞둔 위기 속에서도 ‘프로젝트 퓨리티’가 가능하든 그렇지 않든, 계속 노력할 것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방사능 비가 내리게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상기에 서술한 문제가 실제로 발생하거나 그것이 우려될 때, 인류는 블레이드 러너의 그 장면을 다시 떠올리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인류는 살아갈 것이고 또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오늘의 결정을 신중히 하고 혹시 다른 대안이 없는지 좀 더 찾아보자는 주장은 보편타당성을 갖게 된다. 그렇기에 우려나 악몽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남의 발언을 선동으로 규정하는 선동이 더 위험한 세상 아닌가? < Back 14 GG Vol. 23. 10. 10. Tags: 후쿠시마, 오염수, 폴아웃3, 프로젝트퓨리티, GECK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시사평론가) 김민하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시사평론가로 활동하지만 게임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게이머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냉소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돼지의 왕』이 있고,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우파의 불만』, 『트위터, 그 140자 평등주의』 등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최근작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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