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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게임 커뮤니케이션과 현실의 가치: 의 사례
정확히 똑같은 현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이러한 돌봄의 위기는 유사한 형태로 게임 공간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인터뷰에 참여했던 여성 게이머들 대다수가 여성 게이머에 대한 편견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지원가 역할을 기피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 Back 인게임 커뮤니케이션과 현실의 가치: 의 사례 14 GG Vol. 23. 10. 10. Staying with the Trolls 나의 책 <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와 관련한 여러 반응 중에 다음과 같은 의견이 있었다. 온라인 게임에서 상대방에게 욕설을 하는 것은 ‘현실에서 벗어나 일탈적인 행동을 하는 게임문화의 일환’이며, 그 과정에서 여성 비하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그저 ‘상대의 특징 중 하나를 짚어내는 것’일 뿐이다. 더욱이 게임에서는 여성만 욕을 먹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 같은 비하적인 용어나 욕설이 여성 차별의식의 발로라고 말할 수 없지 않느냐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누군가를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를 지칭하여 멸칭으로 부른다면 그것이 어떻게 차별이 아니라 말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나는 상대방에게 욕설을 함으로써 일탈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발상이 조금 부럽기도 했다. 왜냐하면 멀티플레이 게임의 텍스트/보이스 채팅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욕설은 여성들을 현실의 고민에서 벗어나게 해주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이 처한 사회적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다짜고짜 욕을 하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과연 소통하면서 하나의 팀을 이룰 수 있을지를 회의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고민한다. “나 그냥 이 게임(헬조선)에서 탈주하면 안 될까?” 그렇다고 게임과 소수자를 주제로 다루면서 여성을 차별받는 피해자로만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물론 여성 게이머들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입은 피해나 상처들을 꺼내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문제적인 게임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를 더 이야기해보고 싶다. 이 문제를 회피하고 게임에서 계속 탈주해봤자 내 경쟁전 실력등급만 점점 떨어질 뿐이니까! 차별의 논리들 내가 석사논문을 위해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트롤들에게도 나름의 논리가 있다는 점이었다. 트롤들은 당신을 욕하는 것이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여성성을 내세워 다른 팀원들의 기여에 무임승차하려는 여왕벌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인터뷰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 역시 이와 유사한 논리를 경험했다고 이야기한다. 게임 <오버워치>의 예를 들어보자. 이 게임에서 여성 플레이어들은 “지원가,” “서포터,” 혹은 “힐러”라고 일컬어지는 게임 내 직군을 맡기를 강요당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여성 게이머들은 그러한 지원가 역할을 기피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의 중심에는 트롤들의 논리가 구조화되어 있으며, 다음과 같은 전제와 가치판단들이 중층적으로 엮여 있다. 우선, <오버워치> 게임 커뮤니티에서 공격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공격군에 비해 서포터 역할은 수동적이고 여성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여성 게이머들은 “서포터를 해야 한다,” 혹은 “여성이기 때문에 서포터가 아닌 다른 역할은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압력을 받는다. 하지만 설령 여성이 그러한 압력에 못 이겨 서포터 역할을 한다고 해도 또 다른 편견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서포터라는 역할 자체가 수동적이고, 팀에 기여하는 것이 별로 없는 직업군이기 때문에 여성 게이머는 여전히 다른 팀원들의 성과에 업혀가는 무임 승차자, 민폐녀로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게임공간과 현실은 별개가 아니다 정치 철학자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은 남자를 보조하는 인력으로 취급받거나, 혹은 남성이 바깥일을 할 수 있도록 청소와 빨래를 하고 밥을 짓고 육아를 하는 “돌봄 노동”을 강요당한다고 지적한다. 이런 일들은 자본주의 사회를 유지하는 데에 필수적이지만, 경제적인 이득을 직접 창출해내지는 않기에 하찮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 지점에서 프레이저가 결국 가장 지적하고 싶은 문제가 시작된다. 여성들이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 이러한 돌봄 노동을 거부하기 시작하면서 “돌봄의 위기”가 나타나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드러내며 사회를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프레이저의 진단이었다. 정확히 똑같은 현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이러한 돌봄의 위기는 유사한 형태로 게임 공간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인터뷰에 참여했던 여성 게이머들 대다수가 여성 게이머에 대한 편견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지원가 역할을 기피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버워치>의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지원가를 플레이하는 유저가 부족해 게임 매칭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불평하는 유저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이것은 단순히 지원가를 플레이하는 여성 게이머들을 모욕하지 않음으로써 해결 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치료, 돌봄, 유지와 보수 같은 가치들이 지금의 사회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처럼, 그런 의식이 게임 커뮤니티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원가를 플레이하는 유저들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면 결국에는 게임의 밸런스가 붕괴하여 서포터가 아닌 유저들도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게임과 같은 온라인 스페이스는 현실 사회와 분리된 일탈의 공간이라기보다, 이처럼 현실을 다른 각도에서 보여주는 사회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게임공간에서 나타난 돌봄의 위기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출처: 디씨인사이드 One hour One Life 는 제이슨 로허(Jason Roher)가 제작한 온라인 멀티플레이어 서바이벌 게임이다. 제목이 말해주듯이 플레이어의 캐릭터는 1시간 동안만 살아가는데, 1분이 지날 때마다 나이를 먹고 60분이 지나 60살이 되는 순간 사망한다. 60분이라는 제한된 시간 동안 살아있을 수 있지만, 그 시간 내에 필요한 아이템을 만들어 내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플레이어 캐릭터는 최대한 생존하면서 다음 세대를 위해 마을을 일구어 문명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게임을 하게 된다. 이 게임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게임을 시작한 직후인 초반 3분이다. 게임을 시작하면 플레이어는 아기로서 엄마인 다른 여성 캐릭터의 곁에 스폰(spawn)된다. 이 아기는 3살이 되기 전, 즉 현실 시간으로 3분이 지나기 전까지 걸어 다니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나를 낳은 엄마 역할인 다른 플레이어가 젖을 주지 않으면 굶어죽는다. 채팅 역시 알파벳 한 글자 밖에 칠 수 없기에, 배고픔 상태가 될 때 마다 밥(Food)을 달라는 뜻의 "F"를 쳐서 엄마와 소통해야 한다. 새로운 아기들이 태어나면 엄마들은 그들을 모닥불과 곰 깔개가 깔린 따뜻한 방으로 데려와 옷을 입히고, 음식이 들어있는 가방을 등에 매준다. 이 곳 아기방에는 여자들이 상주하며 서로의 아기를 번갈아 안아주며 공동육아를 하기도 한다. (남자 캐릭터는 아기에게 옷을 입혀줄 수는 있지만 젖을 줄 수는 없다.) 이 모든 과정에서 텍스트 채팅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 엄마는 “너는 [이름]이야”라고 말함으로써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줄 수 있다. 갓 태어난 아기들은 처음에는 알파벳 한 글자 밖에 말할 수 없지만, 나이가 들수록 입력할 수 있는 글자가 늘어난다. 스크린샷 출처: https://saveorquit.com/2018/12/27/review-one-hour-one-life/) 에서는 남을 돌보는 행위가 재미의 핵심이 된다. 이 게임에서 느낄 수 있는 성취감은 6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다음 세대를 위해 내가 무엇을 남길 수 있는지에 따라 달려있기 때문이다. 가령, 스웨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토끼 뼈를 구워 만든 바늘, 양털으로 만든 실 등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누군가 사냥을 해야 하고, 농사를 지어야 하고, 양 목장을 관리해야 한다. 사냥을 하려면 누군가가 활을 만들어 주어야 하며, 농사를 지으려고 해도 누군가 우물에서 물을 떠오고 비료를 만들어 놓았어야 한다. 양을 가둘 울타리가 있어야 하고 철을 캐와 가위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노력해 스웨터를 만들더라도, 재화 시스템이나 창고가 없기 때문에 플레이어 캐릭터들은 죽기 전에 옷을 다 벗어서 다음에 태어날 아기들에게 넘겨주고 갈 수밖에 없다. 필요한 아이템을 만들기 위한 과정은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마을에서 그 아이템을 본 적이 있는지, 혹은 만들어 줄 수 있는지를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아야 게임을 진행하기 용이하다. 플레이어들은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이야기하며 서로를 돕는다. 가령, 이 게임의 플레이어로서 나는 파이를 굽거나, 스웨터를 만들거나, 비료를 만드는 법은 알지만, 삽을 만들고 바늘을 만드는 법은 모른다. 일을 하다가 삽이 부러지면 나는 대장장이 일을 하고 있는 다른 플레이어에게 삽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그렇게 짧은 시간이지만 서로 우정을 쌓고, 다른 캐릭터가 노인이 되어 죽기 전에는 서로 “사랑한다(ILY)”고 이야기해 주기도 한다. 남아 있는 문제들 의 사회 속에서 생산성과 돌봄은 서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행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생존과 마을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대체로 많은 플레이어들은 다른 사람들의 역할을 폄하하지 않는다. 서로를 존중하며 남이 불쾌할 만한 말을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실제 우리 사회도 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협업과 돌봄을 바탕으로 작동한다. 아이를 낳고 먹이고, 청소와 요리를 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집을 수리하는 일들은 우리의 생활과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결과적으로 사회를 지탱케 하는 일들이다. 다만 우리 사회는 그것을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해졌지만, 이 게임에서는 그것을 가장 원시적이고 간단한 형태로 가시화 시켜놓았을 뿐이다. 이 글은 멀티 플레이어 게임 <오버워치>에서 여성 차별적인 채팅들이 현실에서의 돌봄에 대한 가치 폄하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게임 채팅에서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차별적 언사들은 반향실(혹은 에코 챔버) 효과를 통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강화되는 측면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현실의 구조와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여성을 혐오하고 육아와 돌봄을 폄하하면 신규 유저가 점점 줄어드는 게임처럼 우리 현실도 태어나는 자 없는 죽음만이 가득한 땅이 될 것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와 같이 돌봄의 가치를 재정의 하는 게임이 혹시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게임이 불합리한 현실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현실을 바꾸는 시발점이 될 수 있을까? Tags: 원아워원라이프, 여성게이머, 상호작용, 프레이저, 오버워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김지윤 연세대학교에서 언론홍보영상학과 인류학을 공부하고,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했다. 부족한 실력으로 게임을 하다가 게임의 신체적 퍼포먼스에 관심을 갖게 되어 게임 연구를 시작했다. 여성 게이머의 게임 플레이 경험을 분석한 석사학위 논문을 써서 2020년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우수 학위논문상을 받았다. 현재 미국 시카고대학 영화·미디어학과 (Cinema and Media Studies) 박사 과정에서 게임문화를 전공하고 있다.
- [논문 세미나] Emitexts and Paratexts: Propaganda in Eve Online
〈이브 온라인(Eve Online)〉은 현재 ‘펄어비스’가 인수한 아이슬란드의 게임 제작사인 ‘CCP 게임즈(CCP Games)’가 2003년 출시한 SF 샌드박스 MMORPG이다. 가상의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브 온라인〉은 오픈 월드 시스템을 통해 광활한 맵을 제공하며, 이곳에서 일어나는 유저의 다양한 행위들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높은 자유도를 제공한다. RPG이지만 이 게임에는 캐릭터의 직업이 없다. < Back [논문 세미나] Emitexts and Paratexts: Propaganda in Eve Online 12 GG Vol. 23. 6. 10. 1. 들어가며 〈이브 온라인(Eve Online)〉은 현재 ‘펄어비스’가 인수한 아이슬란드의 게임 제작사인 ‘CCP 게임즈(CCP Games)’가 2003년 출시한 SF 샌드박스 MMORPG이다. 가상의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브 온라인〉은 오픈 월드 시스템을 통해 광활한 맵을 제공하며, 이곳에서 일어나는 유저의 다양한 행위들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높은 자유도를 제공한다. RPG이지만 이 게임에는 캐릭터의 직업이 없다. 자신이 하고 싶은 콘텐츠를 하면서(혹은 파고 들면서) 직업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PVP, 탐험, 채굴, 운송 등 게임 내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자신만의 플레이 스타일을 구축하여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또 게임 내 자체적인 경제가 형성되어 있다. 유저들 간의 거래를 통해 만들어지는 경제는 〈이브 온라인〉만의 독특한 자유도이기도 하다. 〈이브 온라인〉의 유저 사이의 역학 관계는 게임의 자유도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지금의 〈이브 온라인〉이 있기까지, 가장 중요한 것은 유저들의 옴니버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논문 세미나에서 리뷰할 논문인 〈Emitexts and Paratexts: Propaganda in Eve Online〉는 2015년 ‘Games and Culture’ 저널에 게재된 논문이다. 저자인 마커스 카터(Marcus Carter)는 시드니 대학에서 HCI, AR, VR 등과 함께 게임을 연구하는 연구자이다. 그는 평소 대규모 멀티플레이어 유저 활동에 대해 초점을 두고 연구를 해왔다. 〈이브 온라인〉이나 〈DayZ〉와 같은 온라인 게임에서 유저 사이의 관계를 통해 만들어지는 사회적 플레이 연구를 진행해왔다. 해당 논문은 〈이브 온라인〉의 PVP 콘텐츠에서 이루어지는 유저 활동에 주목하고 있다. 〈이브 온라인〉의 PVP 콘텐츠 중 독특한 하나는 바로 대규모 PVP이다. 전쟁으로 표현되는 대규모 PVP는 게임 내 서버가 단일 서버라는 특징에서 비롯된다. 일반적인 MMORPG의 경우, 여러 서버로 나누어져서 각 서버만의 길드는 유저들을 묶는 그룹이 된다. 길드가 대체로 큰 규모라고 해도 200명 내외에 그친다. 그러나 〈이브 온라인〉의 경우는 다르다. 게임 내 길드와 같은 시스템인 코퍼레이션(Corporation)과 얼라이언스(Alliance) 기능과 함께 비공식적으로 존재하는 세력 단위인 코얼리전(Coalition)이 타 게임의 채널이나 서버와 같은 인원수로 구성된다. 수천~만 명으로 구성된 코얼리전은 게임 내에 많은 영향력을 미친다. 이러한 그룹 사이의 분쟁은 실제 전쟁과 같이 다양한 전술과 전략이 동원되는데, 이 중 ‘프로파간다’에 주목하고 있다. 2. 〈이브 온라인〉의 전쟁 〈이브 온라인〉의 우주는 ‘하이섹(High-sec)’, ‘로우섹(Low-sec)’, ‘널섹(Null-sec)’의 세 가지 유형의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는 보안 정도에 따라 구분된다. 〈이브 온라인〉의 보안은 NPC 팩션인 ‘콩코드(CONCORD)’를 통해 이루어진다. 적대 행위(PVP 등과 같은)나 자신의 보안 정도가 지역의 보안 정도보다 낮다면 콩코드에게 공격받게 된다. 이는 게임이 제공하는 어느 정도의 유저 보호 안전장치이다. 그러나 이 지역 중 널섹은 완전한 무법 지대이다. 여기서는 콩코드의 보호 기능이 제공되지 않고, 유저는 완전히 혼자만의 경쟁이 된다. 이러한 점에서 유저들은 코퍼레이션과 얼라이언스 등의 그룹화를 통해 널섹에서의 활동에서 안전을 확보한다. 널섹은 아직 유저에 의해 개발되지 않은 지역이다. 이에 자신들의 공간으로 확보하게 되면, 게임 내 자원이나 그 소유권을 주장하여 통제할 수 있는 지역이다. 이는 마치 자신들만의 서버를 얻게 되는 것과 유사하다. 즉, 결과적으로 게임 내 부와 권력에 접근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공간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코퍼레이션 규모의 그룹으로는 통제하기 어렵다. 이러한 점에서 얼라이언스나 이들이 모여 코얼리전을 구성하기도 한다. 얼라이언스나 코얼리전 간의 소유권 분쟁이 〈이브 온라인〉의 전쟁 양상이다. 유저 간의 전쟁은 수천~만 명의 유저가 참여하여, 몇 주 동안 이루어지는 전쟁은 수차례의 전투를 포함하기도 한다. 게임 내 전쟁은 군사 지휘 구조를 수립하기도 하고 광범위한 전략과 전장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룹 사이의 외교적 노력을 통해 다른 코얼리전의 그룹을 전쟁에 참여하도록 독려하거나, 자신의 코얼리전으로 들어오도록 회유하고, 위협하는 등의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일들이 동반된다. 〈이브 온라인〉의 전쟁은 지역을 확보하여 자원을 독점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함선을 구축하는 것은 자신들의 게임 플레이와 함께 이후의 다른 지역을 점령하기 위한 전쟁을 위해서도 필요한 행위가 된다. 3. 패러텍스트(paratext) 여기서 저자는 〈이브 온라인〉의 전쟁 속 복잡한 계략과 전술의 중심에 이데올로기를 생산하는 커뮤니케이션으로 유저가 만들어내는 텍스트나, 비디오 및 이미지인 프로파간다가 있다고 본다. 인터넷 밈을 활용한 비유나 농담, 게임의 역사, 인종, 문화,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자극하는 프로파간다 미디어는 자신 세력의 지지를 강화하거나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고, 전쟁 캠페인에서 승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브 온라인〉에서 프로파간다가 취하는 다양한 형태를 개괄하고 이러한 비디오, 텍스트 및 이미지가 새로운 형태의 패러텍스트로 개념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패러텍스트는 제라르 주네트(Gerard Genette)의 문학 이론에서 파생된 것으로 제목, 리뷰, 목차 또는 책 표지와 같이 문학 텍스트를 둘러싼 자료를 의미한다. 주네트는 이러한 패러텍스트가 문학 텍스트의 수용 및 소비를 보장하는 주변을 구성한다고 주장한다. 패러텍스트 개념은 미아 콘살보(Consalvo, 2007)에 의해 게임 연구에 도입되었다. 게임 산업에서 콘살보의 패러텍스트 개념 적용은 게임 잡지, 전략 가이드 등과 같이 게임을 둘러싼 주변 산업을 의미한다. 이러한 미디어가 특정한 방식으로 게임 플레이 경험을 형성하기 위해 작동하고 있고, 이를 구조화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보았다. 제네트의 패러텍스트는 유동적인 텍스트의 가능성과 현대 게임과 패러텍스트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역동성을 고려하진 않았다. 콘살보 또한 “게임은 플레이가 한 가지 방법뿐이며 불변하지 않고, 주변 담론보다 더 정적이고 고정적일 수 있으며, 그러한 담론은 컴퓨터 게임의 패치(즉 패러텍스트 그 자체)보다 훨씬 쉽게 변화, 수정, 업데이트 또는 철회될 수 있다”고 보았다(Consalvo, 2007: p.12). 그러나 저자는 〈이브 온라인〉의 경우, 기존 패러텍스트 양상이 적용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이브 온라인〉은 샌드박스 게임으로, 유저에게 다양한 어포던스(affordance)를 제공하기 때문에, 그 안에서 종종 예상치 못한 방식의 플레이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는 일반적으로 유저가 게임 세계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다른 가상 세계 게임과는 대조적이다. 〈이브 온라인〉에서 대부분의 게임 플레이 방식은 유저 주도로 만들어진다. 또한 이와 함께 계속해서 업데이트, 패치 및 지속적인 개발을 통해 게임 내 세계와 콘텐츠가 변화하고 있다. 이에 〈이브 온라인〉은 단순히 프로파간다 미디어가 존재하고 영향을 미치는 정적인 텍스트가 아닌 그 자체로 역동적인 텍스트라고 보았다. 4. 〈이브 온라인〉 속 얼라이언스 ‘GSF’와 ‘TEST’의 전쟁 TEST는 소셜 커뮤니티 ‘레딧(Reddit)’과 비공식적으로 연관된 ‘디레딧(Dreddit)’의 상위 얼라이언스이다. 디레딧의 회원이 되기 위한 요건은 레딧에서 3개월 동안 활성 상태인 계정이거나 기존 멤버의 추천이다. 대부분의 코퍼레이션에서는 기존 멤버의 추천이나 최소한의 스킬이나 재산을 요구하기 때문에 다른 그룹과는 다른 지점이 있다. 이에 TEST의 멤버는 〈이브 온라인〉에 서툴다는 평판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오히려 전쟁이나 전투에서 패배한 상대를 당황케 하기도 하고, TEST 그 자체의 손실을 줄이는 역할을 했다. 이 특징은 동질감을 가진 다수의 멤버를 확보할 수 있는 강점이기도 했다. 저자가 디레딧과 TEST에 합류하여 연구를 시작했을 때, 가장 가까운 얼라이언스 중 하나는 TEST와 비슷한 구조인 GSF(GoonSwarm Federation)이었다. 이들은 게임 내 트롤링과 비방을 일삼으면 독특한 문화와 명성을 얻고 있는 온라인 게시판인 ‘ SomethingAwful.com ’ 포럼과 비공식적 관계를 맺고 있는 ‘GoonWaffe’의 상위 얼라이언스였다. TEST의 창설 이후 이들과의 충돌이 있었는데, 이때 당시 GSF가 승리를 거두었지만, GSF는 TEST에게 ‘뉴비’ 얼라이언스라는 점에 조언, 보호 같은 지원과 함께 비 침략 협정을 제안하여 몇 년 동안 거대한 연합을 구성했다. 이들 사이의 관계는 “Space bros.”라고 지칭될 정도였다. * TEST Alliance 로고(왼쪽) – 출처: https://pleaseignore.com/. GSF 로고(오른쪽) – 출처: https://evemaps.dotlan.net/alliance/Goonswarm_Federation 이들 사이의 전쟁은 TEST가 독립적으로 거대한 규모가 된 시점에서 시작된다. TEST는 GSF의 적이었던 NC(Northern Coalition)과 PL(Pandemic Legion)과 함께 새로운 코얼리전인 HBC(Honey Badger Coalition)을 결성하여 한때 3만 명 이상의 유저를 연합하여 GSF와 그 코얼리전인 CFC(ClusterFuck Coalition)에 대항하는 그룹을 형성했다. HBC와 TEST의 리더였던 몬톨리오(Montolio)는 〈이브 온라인〉에서 모든 얼라이언스의 동맹화하려 했다. 그러나 TEST와 GSF 주축의 HBC와 CFC 코얼리전 사이에서 이루어진 냉전은 게임 내 많은 정치적 사건들을 동반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하게 작용한 것이 프로파간다였다. GSF와 CFC의 리더인 더 미타니(The Mittani)는 자신의 〈이브 온라인〉 뉴스 웹사이트인 ‘ themittani.com ’에서 프로파간다 공세를 통해 몬톨리오를 게임 내 전쟁 발발 이전에 정치적으로 리더 자리에서 사임시킬 수 있었다. 1) TEST 얼라이언스와 Rebel 얼라이언스 TEST의 새로운 리더였던 소트 드래곤(Sort Dragon)은 능력 부족으로 인해, TEST의 새로운 지도부 멤버였던 부다부다(BoodaBooda)가 TEST가 HBC로부터 독립했다. 그는 몬톨리오가 만들어왔던 것을 허물고 다시 HBC의 얼라이언스들과의 연합을 끊고 CFC와의 대립을 위해 반란(Rebel)을 선언했다. 이와 함께 ‘Rebel Command’라는 새로운 비공개 포럼이 만들어지고 Rebel 얼라이언스에 대한 프로파간다 주제가 포럼을 장악했다. Rebel 얼라이언스를 지지하는 TEST의 멤버들은 이 주제에 뛰어들어 여러 새로운 프로파간다를 제작했다. 이들은 소트 드래곤과 CFC를 ‘악의 제국’으로 간주하며, TEST 얼라이언스를 반란군으로 선전했다. 반란 프로파간다 이미지와 수사법은 〈이브 온라인〉 포럼이나 레딧, 게임 내 채팅, TEST 채팅 등을 통해 널리 공유되어, 부다부다에 동조할 수 있도록 하는 내러티브를 제공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특히 반란군이라는 약자 포지셔닝은 〈이브 온라인〉 내에서 TEST에 대한 약자 인식과도 관련되어 있어서 레딧을 통해 신규 멤버를 모집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 Rebel 얼라이언스의 프로파간다 이미지(Carter, 2015) * 부다부다의 프로파간다 이미지(Carter, 2015) 2) The Great Fountain 전쟁(대분수 전쟁) 〈이브 온라인〉의 새로운 확장팩은 널섹에서 특정한 광물을 찾을 수 있는 위치에 대한 변화를 가져 왔다. 이러한 변화는 CFC에 대한 자원의 절대적인 통제권과 이러한 지역을 지키는 얼라인어스의 보호를 무력화하기에 이른다. 결과적으로 동맹이 아닌 TEST 얼라이언스가 점령한 공간이 순식간에 게임 내에서 가장 가치 있는 지역이 되었다. 이에 CFC와 GSF의 리더 더 미타니는 GSF가 가난해졌다고 주장하면서 거대한 프로파간다 활동을 전개했다. 이에 CFC는 확장팩 업데이트 이후 며칠 만에 Fountain(이하 파운틴)으로 알려진 이 지역에 대한 침공을 발표했다. TEST, PL, N3(HBC 이후 새로이 결성된 코얼리전)의 연합군은 거의 일주일 동안 파운틴에서 CFC에 대항하여 전선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전쟁에서 또한 다양한 프로파간다 이미지가 동원되었다. * 전쟁 프로파간다(Carter, 2015) 대분수 전쟁은 냉전 시대처럼 주로 군사적, 전투적 승리가 아닌 전략과 첩보에 기반한 승리를 거두었다. 일반적인 온라인 게임에서는 비난받는 행위이지만, 배신과 배반과 같은 행위는 〈이브 온라인〉이 유저에게 어필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이다. TEST 얼라이언스가 파운틴 내 시스템을 CFC에게 빼앗긴 첫 번째 배신은 TEST의 전 리더였던 소트 드래곤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는 CFC와 협력하여 자신이 갖고 있던 시스템 통제권을 넘겼고, CFC가 이를 장악했다. 이후 더 큰 배신은 잠입한 N3 코퍼레이션이 연합군과의 합의에 따라 해체되면서 재산을 약탈당하는 사건이었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TEST의 군사 책임자는 TEST 내 멤버들에게 전투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TEST의 정체성에 대한 프로파간다를 하기도 했다. 그의 프로파간다는 다른 얼라이언스에게 “죽음이 보장된 상황에서도 TEST는 단결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프로파간다였다(BoodaBooda, 2013; Carter, 2015 재인용). 대분수 전쟁의 마지막 전투에서 동원된 프로파간다는 상대방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봉사자인 멤버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3) TEST 강탈 전쟁 패배 후 부다부다는 사임하고 TEST는 통제권을 포기하며, 새로운 리더 스키어X(SkierX)의 아래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PVE 활동을 하는 유저들을 사냥하고 지불 협상을 위해 대기하여 현금을 받는 대가로 동맹이 될 것이라는 계획을 통해 적 연합군이 소유한 4개 지역에서 강도 저직을 운영하며 소규모 얼라이언스 및 코퍼레이션에게 임대하는 조직범죄 집단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TEST의 행보에 따른 프로파간다 테마는 마피아에 기반하며 미국-이탈리아 범죄 조직에 대한 대중문화적 비유를 불러일으키고, 〈대부〉나 〈스카페이스〉와 같은 상징적인 영화의 장면을 변용했다. 스키어X는 이 프로파간다 이미지가 레딧 유저의 관심을 끌기 위해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했다. 멤버를 늘리기 위한 강력한 선전은 레딧에서 TEST의 관심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TEST가 시도한 강탈은 대규모 그룹에서 시도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참신함은 새로운 유저를 유치하고 기존 기반을 활성화하는 방법으로서 TEST 운영진에게 어필할 수 있는 측면도 있었다. TEST는 이후 다시 결속력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 TEST 얼라이언스의 강탈(Carter, 2015) 5. 에미텍스트(emitext)로서의 프로파간다 저자는 〈이브 온라인〉 속 전쟁 전후로 전개된 프로파간다가 게임을 둘러싼 주변부 산업이 아닌 게임 내에서 게임 플레이의 일부로 나타나는 패러텍스트의 한 형태인 에미텍스트라고 주장한다. 주네트의 문학 텍스트와는 달리 현대 디지털 게임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태에 놓여 있다.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게임 세계의 환경과 어포던스는 게이머 행동의 결과로 변경되기도 하고 변형될 수 있다. 특히 〈이브 온라인〉의 샌드박스 특징은 이를 더욱 잘 보여준다. 1) 플레이로서의 프로파간다 프로파간다를 에미텍스트로 이해하는 핵심은 〈이브 온라인〉의 게임 플레이의 일부로 제작되는 방식이다. 〈이브 온라인〉 유저의 일부만이 대분수 전쟁에 직접 참여했고, 그 대부분은 보병에 불과했다. 이들은 특정 시간에 〈이브 온라인〉에 접속하여 아군과 함께 비행하고 대규모 함대전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몇몇 소규모의 유저 그룹은 자신들의 얼라이언스를 이끌고, 전략과 전술을 개발하고, 자원을 관리하며 전쟁의 병참을 조율하는 워게임(wargaming)을 했다. 프로파간다는 이러한 보병 지원자를 모집하고 참여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얼라이언스 지도자들은 프로파간다가 대규모 콘텐츠 제작 경험을 주도하는 데 도움이 되면서, 멤버들에게 맥락, 내러티브, 소속감을 부여하는 데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프로파간다의 이 효과는 저자가 살펴본 바로는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프로파간다가 강조하는 것은 어떤 전술과 전략을 사용할지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프로파간다 제작자들은 얼라이언스의 승리나 전쟁과 같은 유형의 플레이 자체보다 얼라이언스 멤버를 위한 콘텐츠 제작에 더 큰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즉, 가장 중요한 것은 유저들이 어떤 목적이든 함께 플레이하고 싶게 만들고, 함께 즐기도록 장려하는 것이다. 〈이브 온라인〉은 결국 게임의 맥락에서 전쟁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프로파간다 이미지 그자체는 결국 〈이브 온라인〉 내에서 일어나는 전쟁의 전략적인 전쟁 게임의 일부이자 그 자체로 플레이가 된다. 2) 〈이브 온라인〉 프로파간다와 역사, 문화비유로서 프로파간다. 〈이브 온라인〉에서 프로파간다는 얼라이언스 지도부가 자신의 구성원 또는 상대 얼라이언스에 대해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로 역할을 한다. 여기서 제시되는 프로파간다 사례의 주제는 각각 게임 내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중심으로 유저를 특정한 내러티브로 설득하려는 시도이다. 〈이브 온라인〉 프로파간다 제작의 경향성은 실제 역사적 프로파간다 이미지와 효과를 재사용하는 것이다. 프로파간다에서 역사적 프로파간다를 활용하는 방식은 사회, 역사, 문화적 맥락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대의 패러텍스트가 존재하는 방식을 반영한다. 프로파간다 제작자는 역사적 이미지를 모방하면서 프로파간다로 이용하여 더 효과적으로 홍보할 수 있다. 프로파간다 이미지에는 영화나 TV 드라마에 대한 패러디와 참조가 곳곳에 존재한다. 이와 같은 프로파간다는 유저들이 공유하는 너드(Nerd) 문화에 대한 이해도를 활용하여 더욱 효과적으로 프로파간다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즉, 이를 통해 〈이브 온라인〉 얼라이언스의 문화적 정체성을 정치화한다. 이러한 프로파간다는 유저에게 명확한 너드 문화적 내러티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주변부의 대중 매체와 문화를 연결하여 〈이브 온라인〉 전쟁의 정치적, 배신, 첩보 활동의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이브 온라인〉은 이미 게임 속 역사가 있고, 게임 내 이벤트와 플레이에 대한 수용 및 의미 부여에 영향을 미친다. 게임사가 주도하여 관리하는 역사 위키 프로젝트는 〈이브 온라인〉 내의 다양한 역사를 기록하여 의미 부여하여 문화적 유물로 기능하게 한다. 이러한 역사와 마찬가지로 프로파간다는 유저의 역사로서 〈이브 온라인〉의 문화적 유물이 된다. 〈이브 온라인〉의 프로파간다는 게임의 역사와 얼라이언스의 역사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역할을 하며, 유저는 플레이로서의 프로파간다를 통해 게임에 의미를 가져다주며 게임 내 영향을 미친다. 프로파간다는 게임 내 공유된 관심사와 역사를 바탕으로 유저들이 상상하는 커뮤니티의 모습을 동질화하여 커뮤니티의 결속을 강화한다. 3) 에미텍스트로서의 프로파간다 프로파간다 이미지의 차원은 유저의 게임 경험을 형성하고 플레이 행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패러텍스트로서의 성격을 보여준다. 게임 가이드나 개발 일지와 마찬가지로 프로파간다는 게임이 수용되고 경험되는 방식을 구성하여 게임의 존재를 정의하고 보장한다. 그러나 여전히 패러텍스트의 논의는 고정적인 텍스트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브 온라인〉과 같은 온라인 멀티플레이어 게임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새로운 게이머 문화 및 전략이 생겨나고 이를 통해 게임과 게임 플레이 방식, 게이머 경험이 만들어지고 이에 게이머의 경험에 의미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멀티플레이어 게임은 새로운 전술이나 유저 유입 및 이탈 등, 자체적인 규범과 비공식적인 규칙을 변화시키고, 게임 플레이의 집단적인 형태를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게임 플레이의 경계는 게임 내부에서 포럼, 채팅방, SNS 등과 같이 끊임없이 유동하는 장소로 확장된다. 이러한 점에서 게임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패러텍스트의 분석과 더불어 게임 플레이로서 나타나는 게임 내 프로파간다는 게임과 엄격한 공간적 관계가 없는 새로운 패러텍스트인 에미텍스트가 된다. 5. 결론을 대신하여 나가며 이번 논문에서는 〈이브 온라인〉에서 이루어진 거대한 전쟁인 대분수 전쟁 속 프로파간다를 게임 플레이의 일부로 보는 관점을 살펴보았다. 사실 〈이브 온라인〉뿐만 아니라 게임 내부로 반영되어 자신들만의 즐거움을 창출하기 위한 행위들은 여러 게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게임을 수정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모딩이나 온라인 게임의 메타를 만드는 행위 등은 게임, 게이머, 게임사로 하여금 많은 영향을 미치는 직접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이는 게임 그 자체를 즐기는 것뿐만 아니라 이로부터 얻게 되는 즐거움을 위해서 이루어지기도 한다. 게임 플레이 행위는 게임을 구성하는 중요한 행위이다. 지금의 게임 플레이 개념은 게임 텍스트뿐만 아니라 게임 텍스트 밖에서 이루어지는 온라인 커뮤니티 참여나 SNS 등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콘살보의 패러텍스트 논의 또한 게임을 둘러싼 외부 산업을 게임과 함께 바라보고자 제시되었다. 그러나 게임 텍스트 밖에서 일어나는 행위가 정말로 단순히 게임과 공간적(개념적)으로부터 떨어진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이 논의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게임 내에서 발생하는 프로파간다를 통해 살펴보고 있다. 프로파간다를 제작하는 것은 분명하게 게임 텍스트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제작을 위해 동원되는 자원 또한 말이다. 이것이 활용되는 것은 게임 내부이기도 하다. 이는 마치 게임 내에 여러 자원을 가져오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의 관점은 단순히 게임 너머에서 발생하는 외부적인 행위를 포괄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게임의 내부라고 볼 수 있는 그 경계를 좀 더 확장하는 것에 가까웠다. 이 논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게임이라고 부르는 것은 과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이라 생각한다. 이는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 게임의 정의에서부터 게임 플레이, 메타게임 등과 같은 개념까지 논의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게임과 이와 연관된 플레이 행위의 경계가 단순히 게임 텍스트로만 구성되지 않는다는 점은 본 논문의 유의미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우리가 ‘게임을 한다’라고 했을 때, 한 번쯤 ‘게임은 무엇일까?’, ‘게임을 하는 건 어디까지일까?’를 사색해보는 것은 게임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다. 참고문헌 Consalvo, M. (2007). Cheating: Gaining advantage in videogames. MIT Press. Carter, M. (2015). Emitexts and Paratexts: Propaganda in EVE Online. Games and Culture, 10(4), 311–342. Tags: 이브온라인, 논문, 패러텍스트, 에미텍스트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수진 게임연구에 발을 들인 대학원생입니다. 지금은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첨단종합학술연구과에서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최근엔 게임을 매개로 한 다양한 게임 경험과 일본 내 서브컬처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글 쓰는 건 여전히 어렵습니다.
- 게임 노동자들은 왜 노조를 만드는가? - 북미 게임 산업의 노동운동단체 GWU Montréal 인터뷰
그런데 민주노총 같은 거대한 노동총연맹이나 기업별 노동조합이 아닌, 제 3자로서 게임 업계만을 지원하는 단체가 활동하고 있는 사실이 다소 의외였다. 새로운 층위를 보여주는 듯한 모습 같아서, 흥미로운 마음을 가지고 포스터에 적힌 링크를 통해 참여 의사를 전달했다. < Back 게임 노동자들은 왜 노조를 만드는가? - 북미 게임 산업의 노동운동단체 GWU Montréal 인터뷰 26 GG Vol. 25. 10. 10. 2025년 6월, 나는 캐나다 몬트리올을 여행 중이었다.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한 장의 강렬한 포스터를 발견했는데, “Take the Controls”라는 온라인 정기 토론회를 홍보하는 포스터였다. 게임 업계의 고용 불안과 불투명한 보상 체계 등 산재한 여러 문제에 대해 업계 종사자라면 누구든 모여 생각을 나눠보자는 초대의 말도 함께 적혀 있었다. 여행 중 마주한 풍경쯤으로 넘길 수도 있었지만 오랫동안 그 포스터에 눈길이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게임 회사에 재직했을 때 사내 노조의 조합원이기도 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행사를 주최하는 단체는 GWU Montréal 라는 곳이었다. 이 단체에 대해 알아보니, Game Workers Unite(GWU)로서 “게임 업계에 노동조합 설립을 돕는다”는 사명을 갖고 여러 지원 활동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캐나다 몬트리올은 유비소프트와 같은 대형 게임 회사들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자, 북미 최대의 게임 산업 허브로도 알려져 있다. 막연히 생각했을 때, 먼저 캐나다라는 선진국의 이미지가 떠올랐고, 프랑스와 문화적으로 연결된 퀘벡이란 지역의 맥락이 연상되었기 때문에, 이곳의 노동환경은 한국보다 훨씬 잘 보장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민주노총 같은 거대한 노동총연맹이나 기업별 노동조합이 아닌, 제 3자로서 게임 업계만을 지원하는 단체가 활동하고 있는 사실이 다소 의외였다. 새로운 층위를 보여주는 듯한 모습 같아서, 흥미로운 마음을 가지고 포스터에 적힌 링크를 통해 참여 의사를 전달했다. 행사 시간에 맞춰 토론장에 접속해보니, 게임 업계 종사자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서로 다른 게임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고, 온라인 밋업임에도 불구하고 게임 업계의 노동 문제에 관해서 모두가 솔직하게 현장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캐나다는 프랑스어와 영어가 함께 쓰이기 때문에, 참여자들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실시간 번역이 재빠르게 진행되는 모습도 굉장히 인상 깊었던 순간이었다. GWU Montréal은 독특한 입지를 갖고 있는 단체다. 귀국 후에도 그날의 기억은 오랫동안 남아있었기에, 이들의 활동과 관련한 상세한 이야기를 인터뷰를 통해서 들어보기로 했다. 한국 독자들을 위해, GWU Montréal의 소개 부탁한다. GWU Montréal은 게임 노동자들의 민주적 단체로, 게임 산업의 노동조합 설립을 촉진하고 지원하기 위해 존재한다. 우리의 목표는 노동자들이 직장에서 더 강한 목소리를 내고 정당한 권리와 보호를 보장받는 노동조합화된 게임 산업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직장에서 노동조합 캠페인을 벌이고, 서로를 지원하며, 업계 전반 차원으로는 조직화를 촉진할 수 있도록 교육 자료를 제작한다. 우리 단체는 2018년 GDC에서 있었던 집단행동을 계기로 시작된 ‘Game Workers Unite’ 글로벌 운동의 한 단위로서 설립되었다. GDC가 열리기 몇 주 전, 행사 중 하나로 노동조합과 관련된 라운드테이블이 열린다는 계획이 몇몇 게임 업계 종사자들에게 알려졌다. 그러나 라운드테이블이 전개될 방식에 우려되는 지점들이 있었고, 자칫 그 자리가 노동조합 파괴(union-busting)의 장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행사장에서 친노동조합적 존재가 되기 위해 조직화를 하게 되었다. 우리는 GDC에서 배포할 텍스트 자료(zine)와 버튼 뱃지를 제작했고, 사람들이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하도록 했다. 행사장은 결국 노동조합화가 업계의 미래라고 믿는 사람들로 가득 찼는데, 이미 몇 년 전부터 스스로를 노동조합화하고 있었던 북미의 저널리스트들이 특히 크게 주목했다. 이렇게 해서 GWU 운동이 탄생했고, 그때 참여했던 일부가 모여 이후 GWU Montréal을 설립했다. 북미 게임 산업에 노동조합이 필요한 배경에는 무엇이 있는가? 북미의 게임 노동자들은 크런치와 같은 장시간 노동, 과로로 인한 번아웃, 직장내 괴롭힘과 차별, 고용 불안과 잦은 해고, 창의적 자유나 중요한 의사결정 참여권의 부재, 그리고 유사한 일을 하는 다른 산업군보다 비교적 낮은 임금 수준 등 수많은 구조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런 문제들은 수십 년간 “열정(passion)”이라는 말로 정당화되어 왔다. 우리가 일에 애정을 가진다면 열악한 노동 조건도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업계 현실에 지쳐가는 많은 게임 업계 노동자들에게 더 이상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으며, 이들은 의사 결정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이 요구해온 주요 사항으로는 해고로부터 보호하는 장치, 노동시간 단축과 일관된 초과근무 수당 지급, 투명한 급여 체계·승진·채용 절차, 임금 인상(특히 QA 같은 저임금 직군),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복리후생 개선, 생성형 AI 같은 신기술 도입과 활용에 대한 노동자의 통제권 등이 있다. 노동조합, 노동자 권리에 관한 다양한 메시지가 담긴 핀버튼 뱃지들 현재 북미 게임 산업 노동자들은 얼마만큼 서로 연대하고 있는가? 북미의 게임 노동자들 대다수는 노동조합 결성에 찬성하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 업계에 대규모 해고 사태가 잇따르면서, 더 많은 노동자들이 조직화에 참여하고 자신의 권리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다. 연대를 구축하고 조직화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할 일이 많지만, 이미 많은 비공식 네트워크 또는 집단 행동 사례들이 존재한다. 특히 미국에서는 해고와 직장내 괴롭힘에 항의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집단 퇴근하거나 파업하는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다. 최근에는 성공적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성과도 나오고 있다. 2025년에는 *제니맥스노동자연합(ZeniMax Workers United-CWA)이 파업 승인 투표에서 94% 이상의 찬성률을 보였고, 그 결과로 모회사 마이크로소프트와 첫 번째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 제니맥스노동자연합은 300명 이상의 QA 노동자를 대표하여 2023년 1월,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임 스튜디오로는 첫 번째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그리고 2년 이상의 기나긴 협상 끝에 첫 번째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GWU Montréal은 2018년 GDC 사건을 계기로 탄생한 글로벌 운동 'Game Workers Unite'의 몬트리올 지부로, 북미 게임 산업의 주요 거점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GWU Montréal은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펼치고 있을까? GWU Montréal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우리 자체는 노동조합이 아니지만, 조직화를 원하는 노동자들을 지원한다. 이들에게 조직화를 위한 지식과 자원을 공유하고, 서로가 서로에게서 배우는 공동체가 만들어지도록 한다. 활동가들은 게임 업계의 다양한 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인 동시에 지원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는 노동법이나 노동조합 파괴 전술과 같은 주제를 다루는 조직화 교육과 공개 워크숍을 운영하고, 피크닉이나 토론의 밤, 버튼 뱃지 제작 모임 같은 사회적 행사도 개최한다. 아울러, 각종 배포 자료를 제작해서 노동조합에 관한 지식과 인식을 확산시키고, 직장 문제를 겪고 도움을 요청하는 노동자들을 지원한다. 법률 자원이나 지역 단체와 연결해주고 조언과 심리적 지지도 제공한다. 또한 우리는 지역 노동조합 연맹이나 전국 단위 노동조합들, 예를 들어 캐나다 전국노동조합총연맹(CSN)이나 미국통신노동조합(CWA)와 같은 조직들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고 있다. GWU Montréal의 활동이 직접적으로 노동조합 결성에 기여한 사례로는 어떤 것이 있나? 2021년에 우리 단체의 회원 일부는, 미국통신노동조합(CWA)과 함께 노동조합을 조직하는데 참여했다. 게임 업계로서는 북미 최초로 공식 인증을 받은 보데오 게임즈(Vodeo Games)사의 노동조합이다. 조합원들은 모두 GWU Montréal 활동을 통해 노동조합에 대해 배우고 교육을 받았다. 미국통신노동조합(CWA)의 전문 조직자들과 함께 게임 업계의 노동조합 설립을 성사시킨 것이다. 또한 비디오게임노동자연합(United Videogame Workers, UVW-CWA)이라는 ‘직접 가입(direct-join)’ 노동조합의 조직화에도 참여했다. 북미 대부분의 노동조합은, 한 직장의 종사자들만이 가입할 수 있고 정부 노동위원회 인증을 필요로 한다. 반면에, 직접 가입 노동조합은 이러한 법적 구조 밖에서 운영된다. 게임 업계에서 일하는 정규직, 프리랜서, 심지어 실직자까지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UVW-CWA는 북미 게임 산업 최초의 직접 가입 노동조합으로, 2025년 5월에 출범했다. 우리는 이외에도 여러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지난 해에는 캐나다 전국노동조합총연맹(CSN)과 함께 퀘벡주 게임 산업 전체를 아우르는 주(州)단위 노동조합 설립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도 했다. GWU Montréal은 노동자의 권리를 알리는 다양한 자료들을 제작해 배포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최근 넥슨코리아의 자회사 네오플이 업계 최초로 대규모 파업에 돌입했다. 노동자의 권리와 파업의 정당성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나는 북미에서는 파업이 어떤 법적 조건과 문화적 환경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북미 게임 산업에서 ‘파업’을 둘러싼 법적·문화적 환경은 어떤가? 북미에서 파업은 법적으로는 허용되어 있지만, 캐나다에서는 언제/어떻게 파업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많은 제한이 있다. 이른바 ‘랜드 공식(Rand formula)’이라는 규율에 따라, 단체협약이 체결되지 않았거나 협상 기간 중 협약이 만료된 경우에만 파업이 가능하다. 다행히 퀘벡 주에는 스캐빙(scabbing: 파업 등 노동쟁의시 회사가 대체 인력을 고용하는 행위)을 금지하는 법이 있어 노동자들의 파업권이 일정 부분 보호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노동자들은 여전히 파업이나 집단 행동이 경영진의 보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인식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고 본다. 2023년 할리우드 배우와 작가들의 파업과 최근 캐나다 승무원 파업은 게임 업계를 포함한 대중적 지지를 받으며 파업에 대한 인식을 제고시켰다. 반면에, 최근 몇 년 동안 정부는 파업권을 더 제한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파업이 경제적 영향을 미칠 경우 노동부 장관이 임의로 파업 중단을 명령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제적 영향이야말로 파업이 노동자들에게 제공하는 협상력의 핵심 원천이다. 노동조합들은 이에 맞서 싸워오고 있고, 올해 여름에는 파업 승무원들이 복귀 명령을 거부하며 파업을 계속 이어갔다. 이는 다시금 노동운동이 활기를 되찾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현재 북미 게임 산업은 어떤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가? 현재 북미 게임 업계는 “trash fire(쓰레기 더미에 불이 붙은 상황)”라고 흔히 묘사된다. 지난 몇 년간 이어진 대규모 해고와 스튜디오 폐쇄는 노동 인력을 초토화시켰고, 업계가 운영되는 방식에 많은 이들이 환멸을 느끼고 있다. 우리의 희망은, 지금은 암울해 보일지라도 노동자들이 힘을 합친다면 더 나은, 더 지속 가능한 산업 모델을 구축함으로써 끊임없는 두려움과 불확실성 속에서 살지 않아도 되는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해고가 모두의 최대 관심사이긴 하지만, 최근 DEI 프로그램(다양성·형평성·포용성)의 빠른 탄압은 이른바 “진보적”이라 자처하던 기업들의 노동자들조차 불안정한 상황에 있다는 것을 드러냈다. 노동자들은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점점 더 조직화에 나서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재택 근무, 주당 노동 시간, 차별 문제, 그리고 프로젝트에 대한 창작 통제권(특히 업무 과정에 AI 기술이 강제로 도입되는 문제에 맞서기 위해)을 중심으로 조직화가 활발해지고 있다. GWU Montréal의 활동 모습 한국 및 글로벌 게임 산업의 노동 문제에 대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과 캐나다 모두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려는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상황이 펼쳐지는 ‘반노동적인 환경’을 가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2018년이라는 이른 시기에 넥슨코리아 노동자들이 업계 최초로 법적으로 노동조합 지위를 획득한 것은 큰 영감을 주었다. 게임 산업은 국제적인 산업이며, 조직화 또한 반드시 국제적 노력이어야 한다. 서로 다른 법체계나 언어적 장벽이 국경을 넘어 연대를 구축하는 데 장애물이 되지만, 노동조합과 노동자 권력의 핵심은 어디에서나 동일하고 전 세계 노동자들은 같은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노동자연대(Game Workers Coalition: 게임 산업 노동자 주도 노동 단체 및 노동조합을 위한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 GWU Montréal도 네트워크 중 하나로 포함되어 있다. )와 같은 단체는 각지의 노동자들을 이어주기 위해 활동하고 있고, 전 세계적인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GWU Montréal의 목소리는 한국 게임 업계에도 중요한 울림을 준다. 캐나다와 한국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각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게임 노동자들이 직면한 본질적 문제는 다르지 않다. 고용 불안, 크런치, 괴롭힘, 임금 인상과 공정한 보상,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배제. 이 문제들은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에 맞서는 방법 역시 마찬가지다. 더 나은 게임 산업을 향한 길은 노동자들의 연대에서 시작된다. GWU Montréal의 활동가들이 그랬듯, 넥슨코리아와 네오플의 조합원들이 그랬듯, 변화는 누군가 대신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같은 문제를 겪는 동료들과 대화하고, 작은 모임을 만들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것. 그 작은 실천들이 모여 산업 전체를 바꾸는 힘이 된다. 몬트리올 거리의 포스터가 그랬듯, 변화의 시작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이선 사회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연구합니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결국 인간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 유능함만으로 정말 충분할 수 있을까 - 디스이즈 더 폴리스 2
숙련-발전-번영이라는 전반적 흐름은 플레이어에게 미래의 상승곡선을 약속한다. 점차 일을 잘하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상황이 나아질 것이고, 이에 따라 보람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디스 이즈 더 폴리스This is the Police>는 여기에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작품이다. ‘일을 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될 것인가? < Back 유능함만으로 정말 충분할 수 있을까 - 디스이즈 더 폴리스 2 27 GG Vol. 25. 12. 10. 유능함만으로 정말 충분할 수 있을까 아주 오래전, 노동이 진정 인간의 것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의 우리는 창조력과 주체성을 가지고 우리를 둘러싼 세계로부터 노동이라는 행위를 스스로 찾아내곤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 손을 떠나게 된 노동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그저 먹고살기 위해 피치 못하게 행하는, 지루하고 소모적인 근로로 전락했다. 게임, 특히 시뮬레이션 게임의 가장 큰 위업은, 마르크스가 말하는 노동 소외의 좌절을 벗어나 인간에게 다시금 창조력과 주체성을 가진 노동의 유희를 되찾아줬다는 것이다. 호모 루덴스는 온갖 분야를 망라하는 노동의 과정을 (심지어 본인의 돈을 주고) 쾌락으로 치환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이를 가능케하는 주된 요인은 아무래도 성취감이다. 나의 노력과 노동을 통해 실제로 무언가가 이뤄진다는 감각.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가 덕담으로 쓰이는 우리의 현실은, 헌신이 보상받는다는 확신이 없는 사회,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보상이 결국 자본뿐인 사회다. 그러나 게임 속에서는 다르다. 잘 설계된 안정적인 시스템은 우리가 노력한 만큼 보상으로 돌려준다. 자본일 수도, 사람과의 관계일 수도, 자원일 수도, 아니면 그저 만족감일 수도 있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근심 없이 살 수 있고,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게임 속 현실에서는 예기치 못한 재난과 위기도 감당할 만한, 언젠가는 회복할 수 있다는 기대가 가능한 해프닝으로 만든다. 이 합리적이고 친절한 세계에서 우리는 성장의 기쁨을 맛본다. 게임이 제공하는 규칙에 익숙해지고, 능숙해진다. 가게를 경영하는 법, 농작물을 재배하는 법, 자동차를 조립하는 법, 화물을 국경 너머로 운송하는 법...... 규칙에 능숙하면 능숙할수록 달콤한 과실은 더욱 늘어난다. 숙련-발전-번영이라는 전반적 흐름은 플레이어에게 미래의 상승곡선을 약속한다. 점차 일을 잘하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상황이 나아질 것이고, 이에 따라 보람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디스 이즈 더 폴리스This is the Police>는 여기에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작품이다. ‘일을 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될 것인가? 어떤 배반적인 시뮬레이션 사실 시뮬레이션 게임에는 대단한 내러티브가 필요치 않다. 으레 (얼굴도 본 적 없는) 삼촌의 편지 한 통에서 시작하는 초보 사장의 하루하루는 그 자체로 게임의 내러티브가 된다. 어느 날은 매출이 좋을 수도 있고, 어느 날은 좋지 않을 수도 있다. 운이 좋거나 실수를 연발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소한 기복을 견딘 끝에 결국 폐업 직전의 허름한 가게가 크고 화려하게 변해가는 모습이야말로 드라마 자체다. 그러니 <디스 이즈 더 폴리스>를 시작할 때는 어떤 드라마를 기대해야겠는가? 부패한 시장에게 탄압을 받으며 6개월 뒤 해직을 앞둔 끈 떨어진 경찰서장의 이야기를 시작할 때는? * 주인공 잭이 자신의 퇴임을 직접 발표하는 기자회견이 작품의 첫 장면이다. 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잭 보이드의 스완 송이다. 그(플레이어)는 앞으로 180일간 헌신적으로 일한 뒤 해고될 것이고, 그 자리는 시장의 낙하산 친인척으로 채워질 것이다. 일에 애착을 가진 잭에게 이는 노후를 위한 즐거운 은퇴가 아니라, 정치적 패배이자 사회적 죽음이다. 직장부터 가정까지 노골적이고 적대적인 환경으로 둘러싸인 채 이러한 상황을 맞이한 잭에게, 많은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볼 수 있는 발전적인 미래와 약속된 보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잭의 미래는 이미 내리막을 걷고 있고, 플레이어는 그의 ‘마지막 180일’을 함께하는 여정에 던져지며, 이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점진적인 성취와 번영이라는 확실성보다, 180일이 다 지났을 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이 더욱 강력한 동인으로 작용한다. 180일이라는 시간 동안에는 많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매일매일이 규칙적인 일상의 연속성은 플레이 도중 여러 차례 고의로 깨진다. 다양한 사고로 수십일씩 공백을 겪은 뒤 돌아오면, 성실하게 꾸려왔던 경찰서가 또다시 엉망이 되어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이런 불연속성 속에서 꾸준한 성과와 보상의 축적을 경험하긴 힘들다. 플레이어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시스템에 대한 자기 자신의 이해와 숙련도 뿐이며, 이 위기를 마치 새로운 캠페인을 플레이하는 경험처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디스 이즈 더 폴리스>가 보여주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반복적인 불연속성은 꾸준하게 발전적인 미래를 그리며 나아가는 여타 시뮬레이션 게임의 내러티브에서는 잘 드러내지 않는 특성들이다. 그러나 이 특성들은 종국엔 <디스 이즈 더 폴리스>가 던지는 질문에 더욱 힘을 실어준다. 불필요한 요소를 최대한 제거한 뒤, 오직 믿을 구석이 플레이어 본인의 숙련도뿐이라고 했을 때, 이 숙련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유능하게 무너지다 50만 달러. 180일 뒤 경찰서를 떠날 때 50만 달러를 들고나가는 것이 잭의 유일한 목표다. 하지만 그것도 생존해있을 때의 이야기다. 180일간 살아남아 50만 달러를 모으고 은퇴하기. 프리버그는 위험한 도시다. 세력을 다투는 마피아들과 제멋대로 구는 시장, 테러를 꿈꾸는 반정부 인사가 자의식을 마음껏 뽐내는 이곳에서, 처신을 잘못했다가는 부엌 창문을 뚫고 날아오는 총알에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이러한 역경 속에서 50만 달러를 모으기 위해서는, 주어지는 봉급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디스 이스 더 폴리스>의 플레이는 근본적으로 경영 시뮬레이션에 가깝다. 인력을 관리하고, 재정과 자원을 관리하고, 신고가 접수되면 경관을 파견하고, 사건이 발생하면 형사를 파견해 수사를 진두지휘한다. 아마 이렇게 하루를 열흘 정도 반복하다 보면, 이러한 ‘경영’이 대강 손에 익게 될 것이다. 새로 발생할 신고에 몇 명을 파견할지, 살인사건 형사 교대조를 어떻게 편성할지, 출동 타이밍을 어느 정도 잡아야 할지. 그러나 경영할 사업장이 ‘경찰서’요, 경영자가 ‘경찰서장’이라는 요소는, 이러한 경영 행위를 판단할 새로운 관점을 더해준다. 플레이어가 익숙해지는 또 다른 일상에는 부두에서 벌어지는 마피아 총격 신고를 고의로 무시하고, 압수한 장물을 처분해 현금을 빼돌리고, 특정 세력과 결탁해 새로운 자원을 확보하는 일이 포함된다. * 신고뿐 아니라 다양한 세력의 요청에도 응답하는 것이 필수적인 업무가 된다. 경찰서장 시뮬레이터라는 이유로 플레이를 하면서 나의 양심과 공익성을 성찰할만하다는 이야기는 다소 고리타분한 지적이 아닐까? 그러나 한 도시의 치안과 시민들의 안전을 보호해야 할 책무를 지녔다는 롤플레잉의 관점에서 봤을 때도 이 미묘한 아이러니는 분명 흥미로운 요소다. 사실상 이러한 (직업) 윤리적 해이가 선택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끔씩이라도 마피아의 범죄를 눈감아주지 않으면 사망해 게임이 끝날 수도 있다. 평화적인 시위를 ‘진압’하라는 시장의 명령을 거절하면 봉급이 깎이고 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직원을 해고해야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잭의 생명과 서의 자원을 보호하며 슬기롭게 경찰서를 운영한다는 것은, 어느샌가 플레이어의 책상 위에서 마피아들은 협력업체, 시청은 끊임없이 비위를 맞춰야 하는 까탈스러운 후원자, 휘하 경관들은 사설 용역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잭은 모두에게 존경받는 인물이다. 사람들은 그가 신뢰할만하며 정직한 경찰이라고 생각하고, 이 위험한 도시에 안전을 가져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모든 시민의 사랑을 받는 경찰서장 잭 보이드는, 이 180일 동안 경력에서뿐 아니라 윤리적으로도 불가역적인 타락을 겪게 된다. 플레이어가 이 시스템에 적응할수록, 규칙을 잘 다루게 될수록, 효율적이고 능률적으로 일할수록 잭은 종국에는 청산되어야 할 부패의 엄연한 일부가 된다. 플레이어가 일을 잘하면 잘 할수록 작품의 내러티브는 필연적인 쇠락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부재로써 비로소 감각되는 것들 어떤 형태로든 노동을 경험해 봤거나 경험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일잘러’를 꿈꾼다. 센스 있고, 스마트하고, 능률적이고, 빠르고, 그리고 어쩌면 융통성 있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런 현대인의 미덕은 무엇이든 간에 ‘원칙’이라는 단어와는 다소 어색한 관계가 된다. 센스 있게 원칙을 지킨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원칙을 지키는데에 센스가 필요한가? 융통성 있게 원칙을 지킨다는 문장은 성립 가능한가? * 마지막 근무일의 잭은 하루동안 자신 없이 굴러가는 현장을 지켜볼 뿐이다. 작품의 규칙에 익숙해지고 능숙해지는 동안, 플레이어(잭)는 센스 있고, 스마트하고, 능률적이고, 빠르고, 융통성 있게 일을 해낸다. 그렇게 점차 ‘일잘러’가 되어갈수록, 잭(플레이어)은 경찰서장으로서의 원칙으로부터 눈을 감는 것에도 익숙해지고 능숙해진다. 그렇게 지위를 잃는 것도 모자라 도시의 가장 부패한 인물 중 하나가 되어, 젊고 신념 있는 신임 검사장의 타깃이 된다. 플레이어는 이 시뮬레이터를 플레이하면서 점차 성취를 쌓아가고 목표를 이뤄내는 여정이 아닌, 잭이 모든 것을 잃고 혼자 남겨질 때까지 삶의 내리막길을 걷는 여정을 함께한다. 시뮬레이션을 플레이하며 쌓아가는 노력을 배반하다 못해 거역하는 이 쇠락의 과정을 플레이어는 왜 즐기는가? 만약 잭이 영광스러운 승리의 결말을 맞더라도 지금과 같은 즐거움이 남을 수 있었을까? 마피아나 시청이 단순히 적대관계가 아닌 복잡한 이해관계로 설정된 정치적 지형의 형성은 시뮬레이션의 규칙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유용한 선택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때문에 이 규칙에 동의하고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발로 이 윤리적 타락의 구렁텅이에 걸어 들어가고 있음을 이해하며, 그 길의 끝에 점차 선명해지는 최후를 어느 정도 짐작해가고, 그 비릿함을 즐긴다. 그러니까 역설적으로, 플레이어는 원칙에서 멀어질 것을 요구받으면서 오히려 스스로에게 원칙이 있음을 감각해가는 기회를 얻는다. 그리고 여기서 이러한 질문이 유효해진다. ‘일을 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될 것인가?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이머) 박해인 게임에서 삶의 영감을 탐색하는 게이머. 게임의 의도와 컨셉을 전달하는 방식들을 분석하는 데에 관심이 많습니다.
- 〈세계건설〉, 게임 방법론의 새로운 예술적 적용
무한한 가짓수를 만들어내는 작품과 함께 영화의 스토리텔링 기법을 활용해 수많은 이야기 중 단 하나, 찰리스라는 소녀가 겪은 이야기 한 줄기를 최적경로로 뽑아낸 애니메이션 작품이 놓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게임이었다면 무언가 관객의 상호작용을 유도했을 법한 장치를 동원했으리라고 여겼을 진부함을 넘는 도발적인 태도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들 속에 단 한줄기로 이어진 세계선으로서의 애니메이션이 놓인 의미는 인류가 오랫동안 탐구해 왔지만 여전히 미답의 경지에 놓여있는 그 카르마와 다르마의 문제에 대한 작가의 새로운 접근경로에의 제시로 읽힌다. < Back 〈세계건설〉, 게임 방법론의 새로운 예술적 적용 06 GG Vol. 22. 6. 10. 게임 뒷면, NPC들의 세계 웹소설, 웹툰과 같은 분야에서 디지털게임을 소재로 삼는 경우를 자주 만난다. 주인공이 게임 속에 들어가 전형적인 성장 서사를 풀어내기도 하고, 이른바 ‘먼치킨’이 되어 게임 속이라는 이세계이자 가상세계를 평정해 나가는 카타르시스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콘텐츠 중에서는 주인공이 아닌 게임 세계의 다른 측면에 포커스를 맞추는 사례들도 적지 않은데, 이른바 NPC에 초점을 맞춘 경우들이다. 플레이어가 떠나면 한숨을 돌리며 몬스터 연기를 접고 자기 삶으로 돌아가는 NPC의 일상을 다루는 작품들이 보여주는 주인공의 시점에서 펼쳐져 왔던 오늘날까지의 여러 시도들과는 사뭇 다른 무언가를 보여주는데, 이런 흐름은 계속 확장되는 추세다. * 영화, 웹툰, 웹소설 등 전반에서 게임적 세계관, 나아가 게임 속 대상으로만 그려졌던 NPC의 시점을 중심에 두는 흐름은 이제 꽤나 대중적이다. 리움미술관에서 2022년 7월까지 전시중인 이안 쳉의 작품 〈세계건설〉에서 가장 주요한 구성요소는 인간의 개입 없이 스스로 주변과 상호작용하는 오브젝트들이다. 작품에 달린 설명처럼 이들은 시작시각과 종료시각을 갖고 동일한 내용을 반복해서 재생하는 영상물이 아닌, 서로 얽히고 부딪히며 각자의 속성을 유지한 채 다른 객체들과 네트워크를 이루는 과정 자체를 무한히 반복한다. 대본과 스크립트로 구성되는 영상물과 달리 이 전시는 각자의 속성을 부여받아 행동하는 개별 객체들이 상상된 세계 안에서 상호작용하는 과정 전체를 그려낸다. 영화로 대표되는, 서사 중심으로 이어지는 작품들과의 차이는 단지 이러한 작동의 기전에 머무르지 않는데, 애초에 서사라는 방식 자체가 존재하는 현실을 압축적으로 추상해 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두 시간 남짓의 상영시간으로 10년의 이야기를 다룰 때 영화는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건 대신 서사에 필요한 사건과 순간들을 발췌하여 편집하는 방식을 취한다. 무한대에 이르는 사건의 개수 중에서 이 서사에 연관된 사건만을 추려내는 영화의 방식과 이안 쳉의 작품은 기초부터 다른 입장에 선다. 영화에서는 이미 현실이 존재하고 그로부터 가상의 서사 재료를 뽑아내는 반면 이안 쳉의 작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발췌와 추상으로서의 ‘서사’다. 그저 가상의 세계를 상상하고, 그 상상을 각각의 객체가 알아서 작동하고 상호작용하게끔 설계할 뿐이다. 이런 면에서 이안 쳉의 작품은 영상을 기반으로 하지만 영화보다는 디지털 게임과 닮아 있다. 플레이어의 개입이 없는, 객체들만의 세계 초창기 게임과 달리 요즘의 게임은 오로지 알고리즘에 의한 상호작용만으로 모든 텍스트가 구성되지는 않는다. 모든 매체가 그 이전 매체의 재현이듯, 게임 또한 순수한 연산 과정에 머물지 않고 영화와 텔레비전, 만화와 소설 같은 그 이전의 모든 매체를 참고하고 재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매체에는 존재하지 않는 게임만의 특유한 방식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게임적인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게임적인 방식은 이안 쳉의 작품이 세계를 재구성하는 방식과 무척 닮아 있다. 이를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례가 ‘문명’ 시리즈다. ‘문명’ 에는 관전모드가 존재한다. 플레이어가 개입하지 않고 이번 게임에 참가한 모든 문명의 조종을 AI에게 맡겨버린 채 역사의 진행 과정을 그저 구경만 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각 문명의 AI들은 각자 주어진 행동양식에 맞게 주변 지형과 자원, 타 문명과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역사를 이어 나가고, 이 과정은 별도의 대본이 없기에 같은 조건으로 플레이해도 매번 다른 양상과 결과로 이어진다. 앞서 말한 것처럼, NPC 간의 상호작용이 디스플레이 너머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플레이어의 개입을 통한 상호작용은 누락되었지만, 여전히 가상세계 안에서는 각자의 의미를 부여 받은 오브젝트들이 알아서 주변과 관계 맺으며 디지털 연산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작동하는 무언가로 만들어낸다. 〈세계건설〉 전시에 등장한 〈사절〉 삼부작이 모두 이와 동일한 방식을 통해 각자의 디스플레이에 오브젝트 간의 합의되지 않은 상호작용을 별도의 서사를 위한 압축 없이 날 것 그대로 펼쳐낸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전시에 녹아있는 디지털 게임의 방법론을 체감한다. 스스로 존재하는 오토마타들의 온전하게 닫힌 계 시작도 끝도 짐작하기 어려운 이 무한한 시간을 향한 관조는 그러나 여러 면에서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는 아니다. 이를테면, 네모난 프레임 안에서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세계를 향한 관찰의 시선은 아이들의 교구로 많이 알려진 개미집 관찰 도구를 연상케 한다. 투명한 아크릴판 안에 채워진 흙 속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개미들의 모습은 네모난 아크릴 프레임을 통해 관찰자에게 그대로 전시된다. 먹이를 주는 정도의 개입은 할 수 있지만(이번 전시 출품작 중 〈BOB(신념이 담긴 가방)〉 을 보라!) 근본적으로 관찰자의 개입은 배제된 상태다. 비슷한 맥락으로 우리는 수족관이나, 동물원을 상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개미집, 동물원의 예시가 이미 현존하는 ‘작동하는 세계’에 대한 관찰이라면 의외로 디지털을 통해 창조된 관찰도 오랫동안 우리의 일상에 자리한 적도 있는데, 바로 PC의 화면보호기다. 이 프로그램에도 내부의 객체가 알아서 화면에 이미지를 렌더링하여 무한하게 랜덤한 결과물을 생성하고, 사용자는 그 생성에 개입하지 못한 채 관조하게 되는 과정을 향한 의도가 담겨 있다. 전시작들처럼 세부적인 관계의 네트워크까지는 아니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윈도우 화면보호기 속의 3차원 파이프와, 계속 개체수를 늘려나가며 굴을 파고 방을 만들며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개미집과, 어딘지 알 수 없는 세계 속에서 신을 찾아 떠나는 것 같은 〈사절〉 삼부작에는 스토리텔링을 위한 압축과 추상이 없고, 관찰자의 개입이 없는 대신 내부의 객체들이 정해지지 않은 상호작용으로 세계를 완성해 나간다는 공통점이 자리한다. * 어린이들의 자연학습용으로 활용되는 교구인 개미집은 투명한 아크릴로 완전히 닫힌 계 너머에서 관찰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스스로 움직이는 대상의 모습을 관조하게끔 한다. 사용자, 플레이어로서의 인간이 개입하지 않는, 그러면서도 내부의 객체들이 알아서 끊임없이 작동하며 움직이는 가상의 세계는 말 그대로 객체들의 세계다. 프로그래밍이라는 공학적 측면에서는 객체지향프로그래밍이라는 이름으로 기존의 절차적 프로그래밍과 궤를 달리하고, 철학적으로는 객체지향 존재론을 통해 주체 혹은 인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사고의 틀을 바꾸는 흐름을 만들어낸다. 분명 디지털 게임을 구성하는 방법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세계건설〉의 출품작은 한편으로는 이것이 정말 게임스러운가? 라는 질문 앞에 마주 선다. 적지 않은 게이머들은 아마도 플레이어 개입이 불가능한 작품을 두고 존재론적 논쟁을 벌일 것이다. 이를테면, 오락실의 오락기기는 동전을 넣지 않은 상태에선 데모 플레이로 캐릭터들이 알아서 전투를 벌이는 장면을 무료로 선보인다. 하지만 이때 플레이는 동전을 넣고 스틱을 직접 조작해 난관을 돌파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며, 앞의 데모 플레이는 ‘본게임’이 아닌 것으로 간주된다. 데모 플레이는 게임 텍스트의 일부이지만, 사람들이 이를 가리켜 게임이 아니라고,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플레이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의 의미는 데모 플레이와 게임의 연관성을 부정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플레이라는 상호작용의 이면에 존재하는, 플레이어의 개입 없는 객체들만의 상호작용을 플레이로 부르지 않는 것에 있다. 달리 말하면 이안 쳉의 ‘세계건설Worlding’ 개념은 게임 그 자체라기보다는 게임이라는 매체 형식의 이면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고 건설하는 방식이라는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게임에서 비롯된, 각각의 객체들이 자신의 속성대로 움직이고 상호작용하며 맞물리는 일종의 프로그램화된 오토마타Automata가 인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지는 플레이를 위한 전제로서의 세계를 구성하는 방식으로부터 플레이어를 떼어냄으로써 비로소 게임을 구성하는 각각의 객체만으로 구성된 온전히 닫힌 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존재 자체가 인간에 대한 상호작용을 위해 만들어졌던 객체들이 인간의 손을 떠나 스스로 동작하는 개미집으로 온전하게 독립할 수 있음이 이 과정을 통해 드러난다. 카르마와 다르마, 전시와 애니메이션의 질문들 인간으로부터 독립된, 닫힌 계로서 각각의 작품은 진행의 결과에서 무한한 경우의 수를 갖는다. 어느 누구도 이 작품을 바라보면서 똑같은 전개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작가의 관심은 여기서 한 갈래를 더 뻗어 각각의 결과들이 구성해 온 경로들이 비교가 가능해지는 평행우주 속 시간을 향한다. 이른바 세계선이라고 부를 수 있을, 상대성이론과 연관된 개념보다는 게임 ‘슈타인즈 게이트’에서 사용된 시간여행을 통해 분기되며 달라지는 미래에 대한 개념이다.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전시된 〈BOB 이후의 삶: 찰리스 연구〉가 이를 드러낸다. 〈BOB 이후의 삶〉에서 중심적으로 다뤄지는 개념인 ‘최적경로’는 BOB이라는 생체 결합형 인공지능을 통해 개인의 삶이 특정한 루트에 도달하기 위한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삶의 경로를 가리킨다. 마치 내비게이션의 그것처럼, BOB은 자신과 하나가 된 인간의 삶과 행동을 통제하여 목표한 삶에 이를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루트를 제시하는 것으로 이야기된다. 그러나 정작 이 인공지능을 만든 회사의 설립자인 Z는 무한한 삶의 경로에서 최적의 루트를 찾아내어 인간을 인도하는 BOB의 최적경로와 동시에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영원의 시간 속을 무의미하게 유영하는 ‘신의 시간’을 거론한다. Z가 와불의 얼굴에 비춰진 프로젝트 맵핑으로 등장하는 부분은 다분히 최적경로의 문제가 불교적인 모티프와 무관하지 않음을 드러낸다. 최적경로는 불변하는 숙명으로서의 카르마로, 그 모든 숙명적 경로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선택으로 채워나가는 시간으로서의 최적경로 바깥은 다르마로 이어진다. 현대 디지털 기술의 극의極意라고 불릴 수 있을 인공지능을 통해 마침내 찾아낸 인간 삶의 최적경로는 한편으로는 인간해방의 기술이면서 동시에 정해진 시간선을 따라가며 벗어날 수 없는 일종의 카르마로 기능한다. BOB에 의해 주어진 삶을 사는 것은 목표 달성에 있어 부인할 수 없는 최적경로이겠지만, 그렇게 사는 것은 동시에 자신의 삶이 아닌 것이 된다. 인공지능 BOB은 무한대의 인생경로 중 최적의 경로를 뽑아내 제시하지만, 삶의 경로가 애초에 수학 기반의 가치판단이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물음 또한 동시에 드러난다. * 〈BOB 이후의 삶〉 은 수학적으로 계산가능한 최적경로를 따르는 삶과, 그 차원을 넘어서서 무위하게 시간 속을 유영하는 삶을 대비시킨다. 이는 스크립트 없는 전시작과 대본에 의해 기승전결로 달려나가는 애니메이션의 방법론적 대비이기도 하다. 〈BOB 이후의 삶〉은 그래서 다른 출품작과 함께 놓이며 그 질문을 전시 전체로 확장해 낸다. 각각의 작품이 구축한, 각각의 닫힌 계들 안에서 객체들이 무한히 상호작용하며 만들어가는 무량대수의 경로는 〈BOB 이후의 삶〉이 제시하는 질문과 만나며 하모니를 이룬다. 무한한 가짓수를 만들어내는 작품과 함께 영화의 스토리텔링 기법을 활용해 수많은 이야기 중 단 하나, 찰리스라는 소녀가 겪은 이야기 한 줄기를 최적경로로 뽑아낸 애니메이션 작품이 놓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게임이었다면 무언가 관객의 상호작용을 유도했을 법한 장치를 동원했으리라고 여겼을 진부함을 넘는 도발적인 태도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들 속에 단 한줄기로 이어진 세계선으로서의 애니메이션이 놓인 의미는 인류가 오랫동안 탐구해 왔지만 여전히 미답의 경지에 놓여있는 그 카르마와 다르마의 문제에 대한 작가의 새로운 접근경로에의 제시로 읽힌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표절이라는 확고부동하지 않은 선
요 몇 년 부쩍 게임기자라는 부담스러운 직함을 달고서 듣기에 더더욱 부담이 가는 질문들이 있다. “이 게임이 저 게임을 베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건 표절이 맞지 않나요?” 마치 녹음기를 켠 채 내 커리어를 끝장내고 싶어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질문들인데, 그때마다 대처하는 방법은 같다. ‘예/아니오’ 로 답하는게 아닌, 상대방과 열띤 토론을 시작하는 것이다. < Back 표절이라는 확고부동하지 않은 선 24 GG Vol. 25. 6. 10. 요 몇 년 부쩍 게임기자라는 부담스러운 직함을 달고서 듣기에 더더욱 부담이 가는 질문들이 있다. “이 게임이 저 게임을 베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건 표절이 맞지 않나요?” 마치 녹음기를 켠 채 내 커리어를 끝장내고 싶어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질문들인데, 그때마다 대처하는 방법은 같다. ‘예/아니오’ 로 답하는게 아닌, 상대방과 열띤 토론을 시작하는 것이다. 게임과 게임 사이의 표절 시비는 하루이틀 일이 아니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더더욱 자주 마주하게 되는 것 같다. 또 이전보다 게임사들이 보다 직접적으로 보호를 위해서 나서는 것도 눈에 띈다. 표절을 직접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법은 저작권과 관련된 법이지만, 최근 불거진 몇가지 대표적인 사례들을 보면, 결국 제기된 소의 내용은 저작권이 아니라 특허권이나 부정경쟁방지 위반, 영업기밀 침해 등으로 구성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선택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이유는 현재의 상황에서 저작권은 각사의 이익을 보호할 수 없지만 특허권 침해나 부정경쟁방지 위반 등은 그들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거나 최소한 협상카드로서의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물론 이는 저작권이 보호하는 영역이 명확하기 때문에도 있지만, 게임이라는 미디어에서 유독 그 한계가 두드러진다.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다 근본적으로 질문을 바꿔보자면, 게이머들이 보기엔 아무리봐도 표절인 게임들이 어째서 법적으로는 그러한 판단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 게이머들이 확증편향에 물들어 잘못된 생각을 하는걸까? 물론 이는 기본적으로는 법과 수용자가 각 작품 또는 결과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법이라면 특허권을 침해했거나 또는 제조법을 도용했는지를 판단하려면 제작 과정을 살펴볼 것이고, 저작권처럼 어떤 발상을 침해했거나 타인의 아이디어로 부정한 성과를 얻으려고 한다면 아이디어를 직접적으로 표절했는지, 정도는 어느정도인지 살펴볼 것이다. 이들 법은 이미 게임 밖 다른 미디어에서는 여러 사례들을 낳았고, 물론 다른 미디어에서도 그 한계 또는 부작용에 대해 이야기가 많지만 어느정도 성과를 내왔다. 하지만 유독 게임에서는 표절과 오마주, 벤치마킹에 대한 구분이 옅고 항상 격론이 오가는 주제가 되곤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법알못으로서, 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보다는 우리가 겪는 괴리감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모든 창작물은 정반합을 거듭하며 발전하고, 때문에 미메시스(Mimesis)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유사한 발상 자체를 원천 차단하는 것은 더 나은 발전을 아예 가로막아버리는 일이 되기 쉽다. 다른 창작물만큼이나 게임의 제작은 레퍼런스에서부터 시작하며, 창작과 발상은 수렴과 변용으로 시작한다. 그 때문에 이러한 행위 자체를 일종의 리버스 엔지니어링이나 카피로 판단할 수는 없다. 실제로 표절은 게임계에서 매우 민감한 주제이지만, 그만큼이나 어떤 게임을 설명할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 역시 “이 게임은 XXX한 OOO임.” 이라며 비슷한 다른 게임에 빗대어 표현하는게 일반화되어 있을 정도이니. 그만큼 대부분의 디지털 게임들은 그 원류가 비교적 명확하며 장르적 정반합에서 언제나 비교당하기 일쑤다. 때문에, “이 게임은 어느 게임을 닮았죠?” 또는 더 나아가 “이거 XXX 베낀거 아닌가요?” 라는 말을 들을 때면, 한마디로 쉽게 답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일단 게임 자체가 너무 복합적인 미디어이기 때문에 아무리 간단한 게임이라도 그를 구성하는 요소가 수백 수천가지라고 하기에도 부족할 정도이고, 또 대체 그 중에서 어느것이 같거나 비슷할 때 표절이라 할 수 있는가, 어느정도 비율이 넘어서야 표절이라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까지 같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즉, 게임에서의 표절 논쟁은 그 정의에서부터 갈림길에 서있다. 비교적 그 정의를 내리기 쉬운 다른 미디어에 비하면 말이다. 물론 다른 미디어들이 가진 표절 논쟁에서도 항상 “어디까지가 표절인가?” 라는 이야기는 나오곤 하지만 게임만큼 이 문제가 골치 아픈 것도 없다. 같은 그래픽 스타일을 가졌지만 게임 플레이는 판이하게 다른 케이스는 흔해 빠졌고, 플레이 구성요소가 비슷하다고 해도 이를 어떻게 배치하냐에 따라 언급조차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같은 플레이 메커니즘을 가지고 다른 그래픽 요소와 플레이 도구, 구성으로 바꾸어 만들어내는 것이 게임적 변용의 기본이다. 아무리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건 없다는 말도 있지만, ‘미메시스’ 라는 말로 포장하기에는 애매한 선에 걸친 것도 참 많다. 즉, 이처럼 어떤 게임의 표절 여부를 판단하는데 있어 법적인 부분을 떠나 게이머 입장에서도 판단하기 쉽지 않은 이유는 일차적으로는 게임 자체가 워낙 복합적이고 종합적인 창작물이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표절 또는 벤치마킹한 요소가 분량 면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더라도 플레이 측면에서는 오히려 다른 요소가 부각되고 중심이 된다면 그건 부차적인 문제가 되어버릴 수 있고, 역으로 아주 사소한 부분이지만 그게 게임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면, ‘베꼈다’ 라는 반응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근래에 있었던 가장 큰, 그리고 유명한 사례라고 한다면 미호요의 ‘원신’ 과 닌텐도의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법적인 표절의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원신’ 은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의 표절이 되기는 어렵다. 명칭을 그대로 가져다 쓰거나, 디자인 요소를 트레이싱하거나, 당연하게도 미호요가 닌텐도를 해킹이라도 한게 아닌 이상 제작과정이나 그 소스코드가 동일할리는 없다. 그러나 이 게임은 많은 부분에서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를 닮아있으며, 개발사인 미호요도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가 준 영향력을 부정하지 않는다. 좋은 참고가 되었다는 말은 결국 ‘원신’ 의 레퍼런스에는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가 들어가있었다는 말이 되며 그 누구도 이를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플레이어 입장에서도 두 게임을 할 때의 경험이 거의 비슷한 순간이 종종 찾아온다. 게임의 전반적인 그래픽 스타일 지향점이나 스태미나 아이콘 같은 시각요소의 차용에서부터, 넓게보면 퍼즐 중심의 오픈월드 탐색이라는 게임 경험 자체도 유사성을 드러낸다. 글라이더 활공에서부터 벽타기, 맵의 구성과 몬스터 배치까지 단순히 유사한 정도를 넘어서는 부분도 있다. 최소한 ‘원신’ 의 어드벤처 파트는 그 근원이 ‘젤다의 전설: 브레드 오브 더 와일드’ 있다는데에 모두가 동의한다. 따라서 ‘원신’ 이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를 표절했음을 주장하는 쪽은 주로 이러한 부분을 인용한다. 게임 내 콘텐츠와 메커니즘의 구성과 더불어 조작감, 타격감 같은 상당히 개인적으로 심리적인 요인들까지도 언급된다. 그러한 이유는 결국 게임이란 경험에 의해 정의되는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대리 체험할 때의 경험보다도 내가 직접 플레이어로서 게임을 플레이할 때, 그로써 얻어지는 성취감, 순간적인 피드백, 감각들이 비슷하다면, 이유와 근거를 명확하게 들 수는 없어도 이들이 닮았다고 말할 수 있는 셈이다. 그래서 문제는 이것이다. 그래서 이 게임은 표절작인가? 레퍼런스를 참고해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는 관행은 오랫동안 이어져왔고 당연한 행위이지만, 이 자체를 리버스 엔지니어링과 동일한 행위로 단정지을 수 있을까? 재미있는 부분은 바로 이 질문을 던질 때 나온다. 표절이라고 하는 측과, 그렇지 않다고 하는 측이 제기하는 근거가 게임의 서로 다른 부분이라서다. 어떤 요소를 차용했다고 볼 수는 있지만, 게임 전체가 어느 게임의 표절인가 하는 결론에 다다랐을 때에는 결국 전체 게임의 종합적인 부분을 살펴보게 되기 때문이다. ‘원신’ 과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의 경우 어드벤처 파트는 굉장히 높은 유사성을 보이지만, 전투는 액션이라는 공통 분모를 빼면 그 근간 자체가 다르다고 볼 수 있으며, 플랫폼과 BM에서 발생하는 플레이 특성 자체도 완전히 다르다. ‘원신’ 은 기본적으로 캐릭터 수집 및 육성이 주요 콘텐츠이기 때문에 이 캐릭터를 가챠로 뽑고, 육성 재화와 장비를 수집해 일정 이상의 완성도로 캐릭터를 빚고 깎아내는 과정이 핵심이다. 물론 이 또한 완전히 전에 없던, 다른 게임에 없던 ‘발명’ 은 아니지만 최소한 ‘젤다의 전설’ 에서는 크게 거리가 있으며 독자적인 발전을 가장 많이 꾀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4개 캐릭터와 원소 반응을 통한 파티 빌딩, 하나의 핵심 장비를 중심으로 여러 부품 단위로 세부 스펙을 쪼개어 조합하고 빌딩할 수 있는 장비 성장은 ‘원신’ 의 핵심이고, 이미 여러 갈래로 발전해온 빌드깎기 게임의 ‘원신’ 적인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나아가 7신과 국가와 여러 캐릭터가 등장하는 원신만의 세계관과 그 안에서 피어나는 감성적인 만족감은 오롯이 ‘원신’ 이 이루어낸 성과다. 물론 이들 요소도 비슷한 사례를 찾으라면 못할 건 없지만, 유사성보다는 오리지널리티가 더 돋보이는건 부정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 게임으로서 ‘원신’ 이 가진 독자적인 영역도 결코 적고 좁다고 할 수 없다. 게임은 그 자체로 굉장히 많은 레이어를 가지고 있으며, 그중 몇몇 레이어가 겹친다고 해서 완전히 동일한 총합으로 보기는 도저히 어려운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벤치마킹한 부분이 지배적이라면 또 상황에 따라 다르게 판단될 수 있지만, ‘원신’ 에 있어서는 모사한 레이어 만큼이나 직접 고민하고 그려낸 레이어가 많고 그것이 게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비록 논쟁의 여지가 있어도 사람들이 ‘원신’ 을 무조건적인 표절작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이는 단순히 수학적인 비율 산정을 말하고자 하는건 아니다. 게임의 경험은 매우 미시적인 체험들의 총합으로 하나의 거대한 경험이 된다. 때문에 아무리 같은 재료를 썼다 하더라도 곁들이는 음식이나 조리법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음식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벤치마킹한 부분 외의 레이어가 충분히 두터울 때 전체 경험의 성격이 바뀌는” 현상을 이루어낸다면 단순한 표절작이 아닌 새로운 갈래의 발산이 될 수 있다. ‘원신’ 은 분명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의 어드벤처 파트를 토대로 하지만, 그 위에 자신만의 요소들을 쌓아올림으로서 다른 형태의 게임을 빚어냈다. 그래서 이제 ‘원신’ 은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를 표절했는가 라고 묻는다면, 간단하게 예, 아니오로 답할 수는 없다. 필자라면, “게임의 핵심적인 요소 일부를 본땄지만, 그만큼의 독자적인 영역을 가지고 있다.” 라고 답하겠다. 결국 표절을 판단하는 기준은 정량적일 수 없으며, 우리는 각각의 게임에 대해 저마다 들어맞는 고민과 판단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원론적인 이야기이다. 근래 ‘소울 시리즈’ 의 대성공 이후 우후죽순처럼 쏟아졌던 소위 소울라이크 게임들 역시 어떤 정량적인 기준을 가지고 소울라이크다, 이건 소울을 계승했다, 이건 소울라이크가 아니다 라는 이야기를 들은 건 아니었다. 대부분, 모두가 어떠한 정성적인 감각들, 경험들의 총합으로서 여러 플레이어의 논의를 거쳐 일종의 합의를 이루어낸 것에 가깝다. 이 일련의 이야기는 왜 저작권을 판단하는데 있어 법이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는지 증명하는 셈이다. 법이라는 정량적인 판단으로는 선을 명확히 긋는게 불가능하며, 결국 재판관이나 배심원 같은 심리를 진행하는 권한자들의 재량이 개입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마저도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서는 안된다. 법이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법에게 그 이상의 것을 바란다면 그만큼의 부작용도 각오해야 한다. 하지만 법리적인 판단과는 별개로, 이러한 게임의 독창성과 특별함들은 지금보다 더 보호받아야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게임이 새로운 방향으로 계속 발산하고 발전하고 정반합의 과정을 반복하는걸 방해하여서는 안된다. 얼핏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그 사이에 매우 미세한 틈이 있다고 믿는다. 결국 어떤 일에서도 어떤 선을 긋고 경계를 정의하는 건 반복적인 조정과 다시긋기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 글조차도 그러한 과정 중 하나이며, 그때그때 우리는 엄격한 선을 조금씩 이동시킨다는 얼핏보면 모순적인 일을 해야 한다. 법이 그 역할을 완벽하게 해낼 수 없다면, 누가 그 역할을 해내야 할까? 이에 대한 답 또한 간단하고 원론적이다. 결국은 게이머다. 소비자이자 독자이자 애정자인 게이머들이 표절이 아닌 독창성을 높게 판단하고, 가치를 발굴하고 그런 게임을 플레이하며 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공유하는 것. 점차적으로 시장에, 게임이라는 넓은 세계에 그러한 ‘스스로 추구하는’ 게임들이 지배적으로 남도록 하는 것. 일종의 시장논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좀더 넓은 범위의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단순한 소비자주의가 아니라 어떤 문화의 향유자로서, 명확한 가치관으로서 자신이 즐기는 문화에 대해 고민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 그런 행위들이야 말로 무분별한 표절작을 근절하고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추구를 치하할 수 있는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플레이어에 대한 존중과 함께 절대적인 선(線)이 있다고 믿기보다는 항상 새롭게 판단하고 스스로가 엄격한 기준이 될 자신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다들 자기 나름대로의 선 안에서 옥석을 가려가며 치밀하게 소비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조금은 지루하고 현학적이라도, 단정적일 수 만은 없으니까.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이명규 게임 기자(2014~), 글쓴이(2006~), 게이머(1996~)
- 완벽히 이해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들 - <잇 테이크 투>로 본 게임 플레이어의 조건
2021년 상반기의 최대 화제작이자, 신데렐라를 뽑자면 첫번째로 나올 게임은 바로 <잇 테이크 투> 다. 아직도 영화 <깝스>에서 사타구니에 총을 끼우고 발사하던 장면을 연출한 장본인이라는 사실부터 떠오르는 영화 감독이자, 배우이자, 게임 제작자인 요제프 파레스의 이 최신작은 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결과물이다. < Back 완벽히 이해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들 - <잇 테이크 투>로 본 게임 플레이어의 조건 01 GG Vol. 21. 6. 10. 2021년 상반기의 최대 화제작이자, 신데렐라를 뽑자면 첫번째로 나올 게임은 바로 <잇 테이크 투> 다. 아직도 영화 <깝스>에서 사타구니에 총을 끼우고 발사하던 장면을 연출한 장본인이라는 사실부터 떠오르는 영화 감독이자, 배우이자, 게임 제작자인 요제프 파레스의 이 최신작은 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결과물이다. <잇 테이크 투>는 그 특유의 보편성이 빛나는 게임이다. 이 게임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자면 ‘보편적 플레이의 집합체’ 라고 할 수 있다. 어느하나 완전히 새롭거나 원전을 찾기 어렵게 변용된 것이 없으며, 새로움 보다는 잘 편집되고 조율된 플레이의 연결이 빛이 나는 게임이다. 마치 순서대로 차려지는 가정식 백반 같다고나 할까. 이 게임에서 가장 탁월한 부분은 역시 다채로운 레거시 게임 플레이의 끝없는 연결이다. 이 게임은 2인 협동 게임이면서도, 기존 게임들의 장르적 메커니즘을 하나씩 따와 채워넣었다. 전체적으로는 2인 협동 퍼즐이라는 구도를 유지하면서도 TPS, 비행 슈팅, 대전 격투, 리듬 액션, 플랫포머 등 수많은 클래식 메커니즘을 도구로 삼았다.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지만, 이 기존의 플레이 메카닉을 자유자재로 섞어넣은 탁월한 감각이 돋보인다. 이는 또한 게임의 한계점을 교묘히 가리는 효과도 낳는데, 앞서 말했듯 이 게임의 플레이 메카닉은 대부분 이미 있었던 클래식한 요소이기 때문에 반복하면서 피로를 느끼거나 자루함을 느끼기 쉽다. 그러나 이 게임은 그런 시기가 오기 직전에 새로운 플레이 메카닉으로 갈아치운다. 즉 잘 편집된 게임 플레이의 나열은, 익숙함을 신선함으로 전환하는 역설적 효과를 가져다 준다. 즉, 이 게임의 플레이는 계속해서 ‘적응->숙련->응용’ 의 반복이다. 보통 하나의 핵심 메카닉을 추구하는 게임은 해당 플레이 메카닉에 플레이어가 충분히 익숙해지면 플레이 하기 위한 문턱, 허들을 높이는 식으로 대응한다. ‘레벨’ 로 대표되는 RPG적 성장 요소가 대표적이다. 이는 닌텐도 스위치로 나온 최근작 <페이퍼 마리오 종이접기 킹>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때문에 이 게임은 기존의 게이머들, 특히 대중 게이머들에게 폭넓게 받아들여질만 하지만, <잇 테이크 투>는 반대로 플레이에 걸림돌이 되는 특징 또한 가지고 있다. 플레이 자체에 이런 저런 조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임을 빛나게 하는 보편성, 하지만 반대로 그 보편성을 가로막는 플레이의 조건’ 의 대조는 다소 아이러니하다. <잇 테이크 투>를 플레이하는 와중에 든 생각은 이 게임이 왜 대단하고, 얼마나 천재적인가 하는 것이었지만, 플레이를 마무리짓고 나서 든 생각은 ‘이렇게 훌륭한데도 왜 국내에서는 폭넓게 플레이되고, 널리 알려지지 못했나?’ 하는 의문이었다. 그리고 그 원인을 ‘플레이의 조건’ 에서 찾아보게 됐다. 지난해 직접 올해의 게임으로 뽑았던 게임, <하프라이프: 알릭스> 는 이런 맥락의 논란을 몰고 다녔다. 즉, VR이라는 기기가 필요한 게임이 어떻게 올해의 게임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게임의 평가는 대중성 혹은 범용성을 꼭 포함해야 하는 것은 아니기에 쉽게 반박이 가능한 것이었지만, 어찌되었건 플레이의 ‘조건’, 그것이 하드웨어이든, 아니면 플레이어가 갖춘 다른 어떤 여건이든 그 조건이 다소 높다면 과연 그 게임은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은 남겼다. 비록 VR이라는 특수한 사례를 제쳐두고서라도, 모든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게임을 플레이 하기 위한 조건을 요구한다. 사소하게는 기기 스펙에서부터, 나아가서는 플레이어의 실력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하여 몇몇 게임들은 특유의 게임 플레이나 감각적 요소를 이해하고 향유하기 위한 문화적 기반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 조건이 필수적일 수도, 그저 더해지면 좋은 요소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잇 테이크 투>는 다른 게임에 비해 이례적으로 그 요구 선이 독특하다. 이는 ‘카우치 코옵(Couch Co-Op)’ 이라는 특성과 제작자의 전작과 달리 ‘가족’ 을 다루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 게임은 기본적으로 카우치 코옵 문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카우치 코옵은 아직 가정 인터넷이 보급 되지 않은 2000년대 이전 가정용 콘솔 기기 중심으로 형성된 문화로서, 콘솔 게이밍 기반이 2000년대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한국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2000년대 이후부터 콘솔 게이밍 기기는 네트워크 기능을 막 탑재하고 네트워크를 통한 코옵을 확장하였기에, 한국에서는 하나의 기기 앞에 여럿이 모여 분할 화면과 여러 개의 컨트롤러로 함께 플레이하는 문화가 흔치 않았던 것. 있더라도 <위닝 일레븐> 같은 스포츠 대결 게임 위주의 경험이 고작일 것이다. 한국에서 카우치 코옵과 가장 비슷한 문화를 찾아 보자면 한대의 PC로 다자가 한 게임을 공유하며 플레이하던 경험, 또는 오락실의 클래식 아케이드를 찾을 수 있다. 다행히도 21세기 들어 카우치 코옵을 중시하는 콘솔 게이밍 기기인 닌텐도의 Wii, 스위치 등이 저변을 넓히면서 오히려 한국에서는 Wii 방, 그리고 이후 닌텐도 스위치 커뮤니티를 통해 ‘추억의로서의 카우치 코옵’ 이라는 감각을 간접적으로 조립하여 이해할 수 있는 인식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즉, 한국인에게 ‘카우치 코옵’ 은 내가 스스로 겪고 자란 문화라기 보다는, 수입된 문화에 가깝다. 이 카우치 코옵의 감성은 <잇 테이크 투> 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동서를 막론하고 카우치 코옵의 경험은 주로 청소년기에 형성되며, 일종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기재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한 경험이 청소년기에 부재한 한국 게이머들에게는 훨씬 덜 개인적으로 다가온다. 이와 더불어, 게이밍 문화에 아직 짙게 남아있는 남성 중심적 기조는 <잇 테이크 투> 를 온전하게 창작자의 주제의식 그대로 받아들여 체험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들게 한다. 아직까지도 한국, 그리고 세계에서 청년-청소년이 아닌 기성세대에게 게임은 남성의 문화라는 인식이 뿌리깊게 박혀있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가 들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 게임이 2인 협동 게임일 뿐만 아니라 ‘자식을 가진 부부’ 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 게임은 각각 이혼 위기를 맞이한 아내와 남편을 플레이하도록 한다. 또한 감정적으로 매우 풍부한 과정을 플레이에 담아두었다. 즉 대리체험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그래서 이 게임의 가장 이상적인 플레이어 구성은 역시 ‘부부’ 게이머가 함께 플레이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잇 테이크 투> 는 생각보다 일정 수준 이상의 게이머 경력을 요구한다. 각종 기존 게임들의 레거시 플레이가 순간적으로 교체되고, 즉각적인 적응이 이 게임의 미덕이다. 비행 슈팅, 대전 격투, TPS 슈팅, 클래식 RPG 등 이 게임이 계속해서 변환하는 게임 메카닉은 코어 게이밍의 영역이며, 캐주얼 게임에 익숙한 게이머는 재미를 느끼기 전에 여러 자잘한 장벽으로 방해받을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코어 게이머였던 여성을 찾기 힘든 현재 한국의 기혼 세대에게는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 자체가 또다른 분란의 원인(?)이 될 가능성도 있다. 즉, 여성들이 게임을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수많은 레거시 게임에 대한 선험적인 경험이 필요한 이 게임에서 ‘코어 게이머로서의 경력’ 이 부족하거나 없다는 것은 상당히 치명적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주변에서 부부가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례는 많이 찾아볼 수 없었다. 아직까지 현재 부모 세대(40대 이상)에게 게이밍이란 전적으로 남성의 문화, 또는 남성적 게임과 여성적 게임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는 인식, 그리고 행동 양식이 깊게 베어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지만, 훨씬 그 빈도가 높아보였다. 실제로 부부가 함께 플레이 했다는 감상, 후기의 절대적인 수가 해외가 더 높았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여성들도 어렸을 때부터 비디오 게임을 접하는 기회가 남성만큼이나 많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세대를 불문하고 ‘여성 게이머’ 에 대한 멸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에 불거진 특정 여성 스트리머의 <리그 오브 레전드> 챌린저 논란이 대표적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 <오버워치>, 등 대중적 게이머층을 형성한 경쟁 게임을 중심으로 게이밍은 점점 더 보편적인 문화가 되어가고 있는데도, 여전히 대부분의 코어 게이밍 문화는 여전히 남성 중심적이다. 그나마 닌텐도 스위치를 위시로 한 보다 대중적이고 보다 보편적인 게임들을 중심으로 점점 더 여성 코어 게이머 층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 희망적이다. 이 자리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나 적극적인 문제 해결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말하고 싶은 부분은 결국 그런 게이머 성별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우리 모두에게 불이익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이다. 게이밍이 어떤 기본 교양, 소양으로 여겨지는 문화였다면 훨씬 더 많은 이들이 카우치 코옵이라는 장벽에 가로 막히지도 않고, 또는 부부 사이에 좋은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로서 이 게임을 플레이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카우치 코옵이라는 플레이 방식이 주는 노스탤지어, 그리고 ‘부부의 갈등 해소’ 라는 중심 사건이 플레이어에게 깊이 천착하는 감성은 역으로 한국의 게이머들에게는 거리감을 두게 만든다. 이 두가지가 이 게임의 가장 큰 장점임을 고려할 때, 게임의 완성도에 비하여 그에 상응하는 대중적 인기를 얻지 못한 요인이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잇 테이크 투>가 올해의 최고의 게임이 될만한 가장 강력한 후보라는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올해 상반기 출시작 중 이만큼 강렬한 게임 플레이를 보인 사례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의의는 순수하게 ‘게임 플레이’, 즉 직관적인 놀이로서의 재미를 극대화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게임 플레이라는 핵심이 아닌 캐릭터의 외관, 이야기에 삽입된 전형적 요소, 마케팅 같은 외적 요인에 기댄 게임들에게 ‘본질적으로 재미있는 게임이란 이런 것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결론적으로, 지금까지 논한 ‘플레이의 조건’ 은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 태초의 게임 ‘퐁’ 역시 2인이 아니면 플레이 할 수 없는 게임이었다. 물론 어떤 한 문화의 시작점이 수십년이 지나도 절대적인 잣대로 남아있을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한편으론 꾸준히 요제프 파레스는 2인 플레이 게임을 만들어왔고, 때문에 전작과 동일한 플레이 저변의 한계를 지니고 있음에도 <잇 테이크 투>가 전작과 달리 널리 화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대중적 접근 덕분이라고 할 수도 있다. 비록 다른 대중적 게임에 비해서는 후퇴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전작에 비해서는 훨씬 진일보했다는 이야기다. 결국 우리가 자리잡은 게이밍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또는 그 변화가 충분히 급격하지 못하다면, 여기서 필요한 덕목은 폭넓은 이해의 관점이다. 협소한 사건 그 자체나 자신의 1차적 경험에만 의존한 해석이 아니라 좀더 광의에서의 이해, 근본적으로 그 감정이 내게는 어떤 식으로 치환될 수 있는지 찾아보는 수용의 자세 말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불완전 연소한 게임의 가치를 곱씹을 수 있다면 된게 아닐까. 아마 올해 내내, <잇 테이크 투>가 고평가를 받는데 있어서 이 플레이의 조건은 내내 발목을 붙잡을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또한 이 게임은 카우치 코옵, 그리고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었기 때문에 얻은 것이 더 많다고 보기 때문에 충분히 가치있는 시도였다고 평하겠다. 더불어, 게임을 평가할 때마다 하는 말로 마무리 하고자 한다. “세상에는 완벽히 이해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이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이명규 게임 기자(2014~), 글쓴이(2006~), 게이머(1996~)
- <용과 같이>, 관광게임 속의 정치적 맥락들
그러나 현실의 우리에게도 용과 같이 시리즈의 주인공 처럼 행동할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휴가를 내서 관광지로 여행을 떠난 경우가 그렇다. 일상으로 돌아가 해결해야 할 여러 복잡한 난제를 머리 속에 넣고 있는 상태에서도 우리는 도쿄 신주쿠, 오사카 도톤보리, 오키나와, 후쿠오카, 삿포로, 나고야, 요코하마 등의 거리를 거닐고 지역 음식 등 문화를 경험하면서 하루종일 즐길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용과 같이 시리즈를 플레이하는 우리는 코로나19 시대에 일본 관광을 즐기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게 이 시리즈가 본질적으로 관광 게임인 이유이다. < Back <용과 같이>, 관광게임 속의 정치적 맥락들 01 GG Vol. 21. 6. 10. ‘용과 같이 ’ 시리즈는 전직 야쿠자가 등장하는 느와르물을 표방하고 있다 . 리메이크를 포함해 따지면 국내에 시리즈 전체의 내용이 한글화 돼 소개됐다고 볼 수 있는데 유독 6 편은 정식 발매가 이뤄지지 않았다 . 그러나 스팀을 통해 PC 판이 구매 가능해진 걸 계기로 유저 한글패치가 나와 한국인도 게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길이 열렸다 . ‘용과 같이 ’ 시리즈는 ‘ 느와르 ’ 다운 스토리를 선보여 왔다 . 폭력조직 내외의 항쟁과 정치적 음모가 교차하는 가운데 사건에 휘말린 등장인물들의 비극적 운명 , 그리고 그것에 맞서는 의지를 강조하는 패턴이다 . 그런데 이러한 스토리에도 불구 ‘ 용과 같이 ’ 는 본질적으로 ‘ 관광 게임 ’ 이라는 생각이다 . 코로나 19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바로 그 관광이다 . 어째서인가 ? 지금부터 따져보자 . 먼저 시사평론가의 눈길을 끄는 것은 역대 시리즈가 선택한 주제가 일본의 현실 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 가령 1, 2 편의 소재인 폭력 조직 간의 대립구도나 정치인의 돈세탁은 ‘ 클리셰 ’ 인데 , 3 편의 미군 기지 이전과 부지 개발 문제는 여기서 더 나아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실제로 민주당 정권 당시의 중요한 정치적 논쟁거리였기 때문이다 . 민주당 정권은 2009 년 후텐마 기지 이전을 공약하고 집권했다 . 미군 기지 이전은 오키나와 주민들의 오랜 숙원이다 . 애초에 ‘ 류큐왕국 ’ 으로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다 일본 제국에 병합된 역사가 있는데다 , 2 차대전 당시 본토를 향해 진격해온 미군과 이를 막으려는 일본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여 민간인 학살 등 큰 피해를 감수해야 했던 아픔이 지금까지 남아있다 . 게다가 전후 오키나와 미군기지를 동아시아 전략의 중요한 거점으로 활용하려는 미국의 계획이 개발의 걸림돌로 작용하면서 오키나와 주민들은 이중 삼중의 피해를 감수하는 처지가 된 상태였다 . 이 점에서 민주당의 공약은 상당한 기대를 모았다 .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 최소한 오키나와현 밖으로의 이전 ’ 을 거듭 거론했으나 문제는 미국의 입장이었다 . 미국은 이미 후텐마 기지 반환과 대체 시설의 오키나와 내 건립에 대한 협상을 이전 자민당 정권과 진행한 바 있기 때문이다 . 이런 상황에서 기지 이전을 주장하는 민주당 정권은 미국의 이익을 훼손할 우려가 있었다 . 이러한 상황이 미일관계의 근본적 불안으로 이어지자 하토야마 정권은 결국 2010 년 후텐마 기지의 현외 이전을 포기했고 지지율은 폭락했다 . 용과 같이 3 편이 출시된 2009 년 3 월은 민주당이 집권하기 5 개월 전이다 . 자민당 정권의 미국과의 합의가 2006 년에 1 차로 이뤄졌고 민주당은 야당 시절부터 이에 지속적으로 반대해왔다는 점을 볼 때 관련한 논란이 제작에 반영됐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 작중에 오키나와 기지 이전 문제가 건설자본과 정치권의 유착을 넘어 CIA 와 국제 무기 밀매 조직의 등장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앞서의 구도가 게임적으로 과장돼 표현된 결과일 것이다 . 용과 같이 6 편에도 정치적 맥락을 떠올릴 수 있는 소재가 등장하는데 초야마토급의 전함과 전비횡령 , 이를 근거로 한 정경유착의 묘사가 그것이다 . 일본 사회는 오랫동안 족의원 - 관료 - 자본의 삼각동맹에 의한 정경유착을 대표적인 정치적 문제로 다뤄왔다 . 일본의 정치개혁 논의는 정경유착과 이를 뒷받침하는 자민당 내 파벌 구도를 깨는 것에 집중돼왔다고 볼 수 있다 . 이를 상징하는 인물은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인데 그를 중심으로 한 금권정치의 실상을 1974 년 고발한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가 지난 4 월 사망했다는 소식이 최근 전해지기도 했다 . 다치바나 다카시의 보도는 다나카 가쿠에이가 록히드 사건에 연루돼있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계기가 됐는데 , 다나카 가쿠에이는 총리직에서 물러나 수사를 받게 된 이후에도 상당 기간 막후에서 돈과 인맥으로 일본 정치를 주물러 ‘ 어둠의 쇼군 ’ 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 용과 같이 6 편에 묘사된 흑막은 특정 인물을 그대로 모델로 옮겨 놓았다기 보다는 일본 정치의 이러한 현실이 오래 전 전쟁을 야기한 정치와 자본의 욕망으로부터 시작됐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볼 수 있다 . 그런 점에서 용과 같이 6 편의 메인 스토리 구도는 그 자체의 완결성과는 별개로 명확한 자기 주장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그런데 용과 같이 7 편의 경우는 일본 사회가 직면한 정치적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조명하고 있다 . 가령 앞서의 정경유착 구도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그것과 맞서 싸울 ‘ 힘 ’ 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강력한 지도자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근거로 쓰여왔다 . 선출되지 않은 ‘ 관료 ’ 와 그와 연합한 정치 파벌이 정경유착의 주범이라는 점에서 순수한 의미로의 ‘ 정치 ’ 를 강조하는 경향이 강화되기도 했다 . 그러나 ‘ 대통령형 총리 ’ 로 불린 나카소네 야스히로 이후 총리 관저의 권한이 ‘ 개혁 ’ 이라는 명분 하에 지속적으로 확대돼 온 결과는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신자유주의 전면 도입과 아베 신조의 유례없는 장기집권 및 극우화로 치달았다 . 용과 같이 7 편에 등장하는 도쿄도지사 역시 ‘ 선출된 권력 ’ 으로서 총리보다도 막강한 힘을 휘두를 수 있는 존재로 묘사된다 . 그는 ‘3K 작전 ’ 등으로 조직폭력배와의 전쟁을 벌이며 급진화 된 지지층을 동원하는 방식 등으로 ‘ 개혁 ’ 을 내세우지만 그 실상은 자신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구태정치 그 자체이다 . 이는 최근까지 세계적 문제로 다뤄졌던 극우포퓰리즘을 떠올리게 하는데 , 이게 아마 제작진이 아베 신조 , 이시하라 신타로 , 하시모토 도루 등을 보는 시각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 그런데 용과 같이 시리즈 스토리의 핵심은 주인공이 이러한 사회 문제가 야기하는 현실적 갈등으로부터 자신과 주변의 삶을 지키기 위해 도망치다 결국 맞서게 된다는 것이다 . 즉 , 정치사회적 문제는 이렇든 저렇든 주인공의 일상을 위협하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 행복을 지키기 위해선 결국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 이 점에서 ‘ 메인 스토리 ’ 를 중심에 놓고 생각하면 제작진은 유저에게 상당히 비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 그런데 게임에서 유저가 실체 ‘ 체험 ’ 하는 것은 이러한 비장함과는 사뭇 다른 감각이다 . 용과 같이 시리즈에서 등장인물들의 인생이 걸린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는 도중 ‘ 서브 스토리 ’ 나 ‘ 미니게임 ’ 등의 삼천포로 빠지는 일은 비일비재이다 . 특히 이 요소들은 메인 스토리의 비장함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상적 소재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다소의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이다 .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 서브 스토리 ’ 와 ‘ 미니게임 ’ 이 오히려 ‘ 메인스토리 ’ 를 압도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 즉 , 용과 같이 시리즈의 게임적 본질은 영화와 같은 메인스토리를 감상하면서 동시에 소소한 일상을 경험하는 것에 있다고 볼 수 있다 . 그런데 사실은 이것이야 말로 우리 일상 그 자체이다 . 실제 삶에서 우리는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뭔가 고민해야만 하는 순간을 만나게 돼있다 . 하지만 그러면서도 , 설혹 대통령이더라도 라면을 맛있게 끓이기 위해 물을 얼마나 넣을 것인지 , 면과 스프 중 무엇을 먼저 넣을 것인지 등의 사소한 일상적 고민을 외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 그런 점에서 ‘ 메인스토리 ’ 의 기준으로 보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요소들을 가득 넣어 놓은 현실은 울티마 7 이후 ‘ 상호작용 ’ 의 구현 , 모로윈드식의 자기 서사 구성 등과는 별개의 , ’ 자유도 구현 ’ 의 한 방식으로 볼 수 있다 . 그런데 용과 같이 시리즈를 통한 체험과 우리의 일상이 갖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 그것은 직업을 갖고 있는 현실의 우리는 ‘ 서브스토리 ’ 와 ‘ 미니게임 ’ 을 오직 여가시간에만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 반면 용과 같이 시리즈의 주인공인 전직 야쿠자는 무직자이기에 반복되는 ‘ 루틴 ’ 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 앞서의 ‘ 자유도 ’ 는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구현이 불가능하다 . 그러나 현실의 우리에게도 용과 같이 시리즈의 주인공 처럼 행동할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 휴가를 내서 관광지로 여행을 떠난 경우가 그렇다 . 일상으로 돌아가 해결해야 할 여러 복잡한 난제를 머리 속에 넣고 있는 상태에서도 우리는 도쿄 신주쿠 , 오사카 도톤보리 , 오키나와 , 후쿠오카 , 삿포로 , 나고야 , 요코하마 등의 거리를 거닐고 지역 음식 등 문화를 경험하면서 하루종일 즐길 수 있다 . 그런 점에서 , 용과 같이 시리즈를 플레이하는 우리는 코로나 19 시대에 일본 관광을 즐기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 이게 이 시리즈가 본질적으로 관광 게임인 이유이다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시사평론가) 김민하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시사평론가로 활동하지만 게임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게이머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냉소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돼지의 왕』이 있고,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우파의 불만』, 『트위터, 그 140자 평등주의』 등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최근작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가 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나현수
나현수 나현수 Read More 버튼 읽기 확률형 아이 템 확률공개 법제화 : 진정한 이용자 보호를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 지난 대선에서 유력 후보들의 공약이기도 했던, 확률형 아이템 확률공개 법제화가 2023년 2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위 법은 1년 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4년 3월 1일부터 시행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잘 알 것으로 예상되지만, 확률형 아이템은 구입 당시에는 그 종류나 효과가 명확하지 않고, 일정한 행위 (요컨데 뽑기를 한다거나, 특정 장비를 강화를 하는 등의 행위) 를 할때 확률에 따라 그 종류나 효과가 정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량청린 梁成林
량청린 梁成林 량청린 梁成林 Read More 버튼 읽기 <오웰> - ‘감시자본주의' 시대의 정치 불안 많은 누리꾼들은 검색엔진에서 막 검색한 키워드가 곧바로 온라인 쇼핑몰의 추천상품이 되고, 방금 전 친구들과 나눈 잡담의 소재가 갑자기 모바일 웹브라우저에 광고로 뜨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이러한 ‘사려깊은’ 서비스는 사람들이 상념과 공포에 빠뜨리고 그 때문에 지난 몇 년 동안 인터넷상의 개인정보 보호 및 데이터 수집은 주목할 만한 이슈였다.
- [Interview] Bringing the sense of presence into esports – what and how: Yeong-seung Ham, Program Director at Riot Games.
The feeling of being part of the crowd is a powerful experience. In traditional sports, this empowering moment is known as "hyeonjang-gam," which can be translated as the "feeling of presence." Despite technological advancements and high-speed internet that allow us to watch sports matches remotely from home, many fans still choose to visit the on-site venue to immerse themselves in the passion, sweat, tears, cheers, and chanting that cannot be fully transmitted through a screen. Some become fans of a sports team after experiencing an engaging moment at the stadium, chanting alongside a group of people. Even in esports, numerous fans have missed spectating digital game matches at physical on-site stadiums during the Covid-19 pandemic. < Back [Interview] Bringing the sense of presence into esports – what and how: Yeong-seung Ham, Program Director at Riot Games. 13 GG Vol. 23. 8. 10. Translator’s note: The original title of this article is "Where Does the Hyeonjang-gam (현장감) Come From in Esports?" Hyeonjang-gam is a compound word in Korean, combining 'site (현장)' and 'feeling/sense (-감)'. It primarily refers to the immersive experience or the feeling of being fully engaged and present in a specific physical space, commonly observed in sports, concerts, events, and esports. It encompasses the physical presence and the ability to perceive the atmosphere and energy of a particular environment. To ensure clarity in this English translation, the term "Hyeonjang-gam" has been interpreted as "the feeling of presence.” Editor’s note: The feeling of being part of the crowd is a powerful experience. In traditional sports, this empowering moment is known as "hyeonjang-gam," which can be translated as the "feeling of presence." Despite technological advancements and high-speed internet that allow us to watch sports matches remotely from home, many fans still choose to visit the on-site venue to immerse themselves in the passion, sweat, tears, cheers, and chanting that cannot be fully transmitted through a screen. Some become fans of a sports team after experiencing an engaging moment at the stadium, chanting alongside a group of people. Even in esports, numerous fans have missed spectating digital game matches at physical on-site stadiums during the Covid-19 pandemic. This situation is somewhat ironic when you think about it. When we say, "It doesn't feel real when watching an esports match at home" or "I wish I could watch the match at a real stadium," it implies that we are not fully satisfied with esports existing in the virtual world, despite the inherent online nature of the games themselves. So, let's delve deeper into what is the "feeling of presence" in esports—the feeling, the sensation, the bonding, and the moments of realism that exist in the physical world. When there's no physical Summoner's Rift (a map in League of Legends) at the esports stadium, what else creates that sense of authenticity and engagement for esports fans on-site? What are the similarities between the feeling of presence in traditional sports and esports? To gain insights, let's turn to Yeong-seung Ham, Program Director at Riot Games, who has extensive experience in broadcasting production from conventional sports scenes at MBC (Munhwa Broadcasting Corporation), one of the leading South Korean television and radio broadcasters, and currently leads the broadcasting at LCK (League of Legends Champions Korea). Interviewer, Do-won Seo: Hello! Please give our readers a brief introduction of yourself. Yeong-seung Ham, Program Director at Riot Games: Hello, my name is Yeong-seung Ham, and I am in charge of the broadcasting division at Riot Games. I have been working there for roughly four and a half years now. Previously, I used to work at MBC in their sports broadcasting division where I was involved in various sports programs and content. Seo: What were your most memorable experiences when you used to broadcast (conventional) sports during your time at MBC? Were you involved in many types of sports or just one particular? Ham: I had the opportunity to handle basketball programs at the 2014 Asian Games, which were held in Incheon, South Korea. One of the most memorable moments was witnessing the Korean men's basketball team win the gold medal, marking the first victory since the 2002 Asian Games. It was definitely a significant highlight in my sports broadcasting career. The PyeongChang 2018 Winter Olympics Games were also truly mesmerizing. I was also once involved in motor racing broadcasting, which is considered a niche sports genre in Korea. Due to its limited recognition among the general public, we had to put in extra effort to produce various side-content such as documentaries and entertainment programs about motor racing, in order to build up the storyline for those races. Seo: Then you moved to the esports scene. What makes esports broadcasting unique compared to transmitting (conventional) sports matches? Ham: I believe esports broadcasting is perhaps the most real-time and responsive genre of broadcasting. The level of active engagement and feedback from esports viewers surpasses that of any other broadcasting shows in Korea. And that's where its beauty lies. We can quickly identify what we may have missed during the transmission, or what the esports viewers might have overlooked in the match. This allows us to iterate and address any issues promptly. Of course, there are certain aspects that cannot be immediately corrected. For example, when we released the first (LCK) opening video, if fans claim that it looks bad, there's very little we can do about it. Scheduling with the teams is not always flexible, as we have only a few days set aside for recording sessions. Even if we realize that the video didn't fully meet the fans' expectations, we still have to proceed with it until the next season. We have also received criticism regarding our recent (LCK) visual graphics, such as "there's too much purple." So, yeah, we hope to make improvements in the next season, and that's the mindset we have. If there's something we can fix immediately, we do so as soon as possible. This is where esports differs the most from regular sports broadcasting. Seo: But I do remember that during basketball broadcasting on major Korean TV channels they often displayed text messages from viewers while the match was live. How does receiving feedback through this type of viewer participation system differ between conventional sports and esports? Ham: Yes, that reminds me of when I used to lead the broadcasting of Major League Baseball on MBC regularly on weekends. That was the time when some of the most well-known Korean baseball players, such as Hyun-jin Ryu, Shin-soo Choo, Byung-ho Park, Hyun-soo Kim, Seung-hwan Oh, and Jeong-ho Kang, were active in the US Major League. We broadcast their matches simultaneously in real-time. It wasn't just core baseball fans who were watching, but also many Korean baseball fans who specifically wanted to see those Korean players in action instead of watching an entire 9-inning match on television. However, due to limited channels, it was not possible to show all the Korean players' matches at the same time on separate channels. So we conducted an experiment where we dedicated one program solely to Korean players. It was similar to broadcasting the Olympic Games, where we focus on specific matches among the many sports events happening simultaneously during the Olympics when Korean players were performing. So we received every feeds of the baseball matches involving Major League teams with Korean players and selectively aired them when the Korean players were at bat or pitching. Even when Byung-ho Park was sent down to the minor leagues, we captured the Minor League's online live stream (as those matches were not televised) and included it in our Korean-player-specific baseball program. And during that time, MBC had a TV show called "My Little Television," which took inspiration from real-time streaming services like Twitch. It was sensational all across Korea at the time. So, we decided to take inspiration from it and introduce a real-time chat system to our live sports broadcasts. This allowed viewers to see how people were reacting to the match and find out what they liked or didn't like about the program. But, I think the major difference between the esports and conventional sports scenes is that the latter is often player(/athlete)-centric. Fans focus on an athlete's performance, cheering for their impressive plays and such. In esports, they not only discuss an athlete's performance but also talk about the game itself. When you think about baseball or football, people don't usually talk about the game mechanics. But in the case of League of Legends (LoL), the entire sports genre per-se is developed by a single company. So, let's say there's a bug in the game or a certain champion in LoL is considered OP (overpowered). Then fans might start trolling the game and Riot Games on live-chat. In this situation, we find ourselves in an ironic position. We are not just random TV staff broadcasting sports matches; we are part of the company that developed and operates the game, as we are affiliated with Riot Korea. So if there's something wrong with the game then fans may direct their frustration towards our company. If there is a conflict with a referee's decision that is also the responsibility of Riot Korea. If we, the production team made a mistake during live stream then it also becomes the company's problem. This adds a layer of complexity that I have to endure in a more active manner. I am aware that we are not perfect and have sometimes disappointed our esports audience. But I also want to address that even the most well-prepared cable channels have made mistakes in their early days of operation, and eventually settle down and learn from their mistakes. We are also collecting our viewers' valuable opinions and gradually expand our workforce and improve our infrastructure. We sincerely hope for our fans' continuous support and feedback as we move forward. Seo: I'd like to ask about the on-site venues of esports. We now have physical esports stadiums despite the game happening virtually online. From a production standpoint, how would you compare the esports on-site scene with other conventional sports? Ham: There are similarities in terms of the vibrant atmosphere and the feeling of presence that you experience in a particular physical setting. Even though the game is happening virtually online, you can witness the professional esports athletes in action right before your eyes. Moreover, in LCK, we have an open stage where audiences can hear the urgent communication between players, such as "go here" or "attack now," unlike the closed-booth stage. I think the major difference between esports and conventional sports lies in the audio experience at the venue. In esports venues, the audience can hear the live voices of casters and commentators. If you imagine attending a baseball or football stadium, you'll hear various sounds made by athletes and the cheering of fans, but the voices of casters and commentators are typically muted in the physical venue and only televised. In esports, the game itself is online, but it is displayed on a large physical screen with the echoes of casters and commentators resonating throughout the physical venue. This creates a more spectacular atmosphere for on-site esports spectating compared to physical conventional sports. And to further enhance fan engagement during the match, we even incorporate audiovisual elements into the scene. For example, when a team defeats one of the elemental drakes (NPCs in LoL that provide buffs), we illuminate the audience with lights that match the drake’s color. If a team defeats Baron Nashor, we then also switch the lights to the corresponding color. These added elements make the overall experience more immersive, more lively for fans. But I think it all comes down to the role of casters and commentators. They are the most distinctive features of esports, enhancing fan engagement and adding excitement throughout the show. Unlike baseball, football, or basketball casters, esports casters are able to maintain high tension throughout the program, injecting bursts of energy into every solo-kill and team fight, as if there were home runs happening every minute. They truly play multiple roles in creating an unforgettable experience. Seo: So the exciting voices of casters and commentators broadcasted on-site are major factors that enhance the feeling of presence in esports. Then what about the players on the stage? What if there’s no players on the stage? Would the fans still enjoys the feeling of presence there? Ham: I believe we're already making progress in that aspect. As you may be aware, CGV Cinema (one of the largest multiplex cinema theater and IMAX franchises in South Korea) recently screened the LCK summer finals. With 90% of the tickets sold, approximately 8,000 fans watched the LCK finals in movie theaters nationwide. [One of the posters of LCK Summer Finals 2022 in CGV theater. Fans had the opportunity to watch the final match on August 28, 2022, starting from 13:40, at one of the 32 CGV cinema theaters nationwide. The ticket price was 20,000 KRW (approximately 15 USD).] Seo: Yes, I was also there, and I was truly amazed. Ham: Exactly. Apparently a lot of people are enjoying esports in this way. Even though the esports players were not physically present at CGV, fans were still able to connect through the spectacularity of the big screen, the immersive sound, and the shared experience of cheering with fellow audience members. I'm not aware of any other sports genre (in Korea), where fans actively participate in these kinds of "viewing parties" as much as they do in esports. During the recent LCK playoffs, there were many fans who couldn't enter the stadium because the tickets were sold out. But there were still fans gathered around here at LoL Park (League of Legends Park, an esports stadium in Seoul run by Riot Games), using this physical space as a communal gathering place for people who love LoL and LCK to come together and enjoy the event. Because you could hear chants and cheers emanating from the inside even outside the stadium. That's why people showed up, even without tickets, to watch the match together on small screens in the lobby area, where we also broadcast LCK matches. I was pleasantly surprised to see so many people gathered in those areas outside the stadium, spectating and cheering together. Seo: That sounds like a mix between attending a live sports event and watching sports at a bar. Would you say it's similar to the sports bar culture where people gather in pubs to watch the Premier League together? Ham: Or the street gatherings of fans during the World Cup. Because it is obviously more fun watching sports together. Sometimes I think, "Wouldn't it be amazing if the LoL esports scene becomes more developed, and we can have a massive fan gathering during the LoL finals at a place like Gwanghwamun Square?" (One of the largest public squares in Seoul.) After attending the LCS (League of Legends Championship) finals, one thing that left a lasting impression on me was that their LoL matches took place at an American football stadium. The one I saw was NRG Stadium, a large stadium in Houston with a retractable dome structure. Only half of the stadium was covered by the dome where they had sort of like a fan festival event setup. There was also a sponsor zone and various events inside. Even though the area under the dome was quite dark due to the lack of natural light, people were there from morning to evening, immersing themselves in the esports culture. It strongly reminded me of what we, as Riot Games, are striving for - why we develop and provide live services for the game LoL, organize esports events, and create additional content like Arcane. It's because we want to create meaningful experiences for our users, even in the offline world, through the game. So at that LCS finals, fans were enjoying the event together, cheer for their favorite players and teams, while having fun with various activities on a physical setting, which creates a deeper sense of belonging and solidarity with the "League of Legends" culture. This later became our inspiration for the “Fan Festa” that we recently did in Gangneung (in Korea) in August 2022. We thought, "How about a one-day event with a festival-like atmosphere?" and that's how it became a reality. Of course, there's always some risk in trying something new. Two of our project leads for Fan Festa were worried so much, saying ‘what if people don’t show up?’ They even joked about the potential scenario of only the two of them standing in a massive stadium, imagining how awkward it would be. Fortunately, that didn't happen. We had nearly 7,000 people attend our Fan Festa. It was a valuable learning experience for us, as we ventured into organizing not just broadcasting programs but also other forms of cultural events and festivals. I believe such endeavors are what bridges the gap between the online and offline worlds, even though the game is an online medium. It’s the physical setting that fosters a sense of closeness among people. Seo: That’s true. While we refer to it as e(lectronic)-sports, there has always been a consensus that the final matches, the grand finals, should take place in a physical venue. As you mentioned, this might be because of the feeling of closeness and bonding that arises when tens of thousands of fans come together to cheer. Despite the era of constant online connectivity, there are still many things that cannot be achieved in the virtual world. Let's delve deeper into this topic. You first discussed the important role of casters and commentators, and then the importance of on-site engagement of fans that creates a lively atmosphere and a sense of bonding. Is there anything else you would like to add? Ham: I want to add about the interactions with the players (esports athletes). During the Covid-19 pandemic, we fully online streamed all our matches. Although it went reasonably well, there was always something missing. And it wasn't just the staff and the fans who felt that way; the players felt it too. Several esports athletes expressed how much they missed playing at the on-site venue. They shared sentiments like, 'I want to play at LoL Park again,' 'I want to compete in a place with an audience,' 'I want to feel the enthusiasm and vibrant energy of the crowd.' This is because, even though players are mostly isolated from what the crowd is saying during gameplay, they can still hear or feel the eruption of cheers when they achieve something remarkable. They also feel the crowd's presence. That resonance, that energy, fuels their adrenaline. For instance, FPS games like Valorant are a good example because the game has immediate feedback. When a player gets a kill, the crowd's cheers erupt instantly. I think this also leads FPS players to have more pronounced reactions compared to other more subtle game genres. And it's this immediate burst of energy that prompts fans to start chanting. Seo: Oh, so the player's performance not only generates further engagement from fans – such as chanting – but it also elicits reactions from the players themselves. Sounds like a feedback effect in the physical venue. That's a good point. Ham: Yes, exactly. And there’s the moment when players enter — the awe-inspiring moment when they come onto the stage. I know what that feels like too. I've attended many on-site matches as a fan myself, and the energy that emanates from a packed crowd is completely different from being in an empty venue. It can make your heart race even if you're just standing still. Such energy is what brings the joy of spectating sports. So it's not just about players and audiences physically being in the same space; it's more about how they interact, how players and audiences engage with each other. That's what makes the scene livelier and more exciting. For example, many people missed the chanting of "1-2-3, OOO fighting!" (Translator’s note: A Korean esports fan chanting culture where fans chant in an organized manner with '1-2-3, (player or team's name) fighting' at the beginning of a match to cheer for their favorite player/team.) We even pre-recorded that chant, along with a bunch of Riot Game staff, production teams, and agency people, "1-2-3, XXX fighting!" and "1-2-3, YYY fighting!", and played it at the beginning of the match when the entire audience seating was empty due to the pandemic. Some fans said that was cringy but there were still others who said, 'Yeah, I missed that.' In a way, we all wanted to experience the thrill of being part of a large audience, that sense of solidarity with the culture we love. There's also this unique fan meeting culture in esports, where players come to the front of the stage to say hi to the fans before the game starts. And after the game ends, there's always a brief fan meeting, similar to K-Pop fandom. Conventional sports may have moments where fans can take pictures or get autographs near the exit after a game, but I've never seen this type of dedicated fan meeting procedure as normalized as in esports. I think that's also unique to esports. Seo: You mentioned the engagement between players and audiences, which reminds me of what happens when a pause occurs in esports. In other sports, for example, when a rainstorm temporarily pauses a match, the atmosphere cools down. But in the LCK broadcast, there were many moments when casters and commentators interacted with the audiences during the pause situation. Ham: I feel really bad about the frequent pauses that happened during this LCK season, especially as they often occurred due to technical game issues. In the case of interactions during a pause situation, yes, the casters and commentators play a big role. We monitor the viewers' reactions in real-time, and the casters are able to respond to them during the pause. For example, Caster Seong (Seung-heon Seong, one of the LCK casters) and commentators seem to feel an obligation to shake up the mood again during the pause situation. I can see that this could be a psychological burden for casters and commentators. But we work hard to check the fans' real-time comments and respond as energetically as possible during those awkward pause moments. Thanks to the efforts of many people, we also have content around us that we can utilize, such as pointing the camera to cheer signs (cheer placards) from fans or videos that we can play during long pauses. Seo: It's difficult to define the essence of "hyeonjang-gam (feeling of presence)," but I think we are getting closer to understanding it. Now, for the last and final question. As an esports content creator, how do you feel about the empty moment after the stage? Ham: During the pandemic, it was only us, the staff, at the site. The players were playing games at their facility, while the audiences were all watching the match from home. It was just us on the empty and hollow stage. We felt somewhat depressed and down during that time. Every day when we commuted to work, being the only ones maintaining the scene, we couldn't shake off this feeling of emptiness in our minds. We felt like janitors taking care of a forgotten building. I still feel that way when I see an empty stage, after the game is over. It’s sort of similar to the feeling of seeing an empty theater after a performance. You know, there's a subtle excitement around the stadium before the show, like when you go to the cinema and waiting for the movie to start while munching on freshly cooked popcorn. Such excitement from the audience is what makes us, the production staff, feel excited too. We sense it. And the players feel it too. And then the game ends, after the fan meeting, suddenly the buzz stops. The lively energy just disappears. So I would say that LoL Park after the match is pretty scary, like a ghost town (laughs). [The empty LoL Park after the LCK season. Like Ham said, it feels empty and lonely without the audience and players.] Seo: Okay, then one extra question, which could be a difficult one. How do you see yourself? Are you a broadcasting production manager? Or do you see yourself as an esports event manager? Because you are involved in both the broadcasting (streaming) and on-site aspects of LCK. Ham: I would say my job is more involved in the broadcasting side of things. So, production. Seo: But you also mentioned a lot about fan engagement on-site, the atmosphere, and the feeling of excitement in the physical venues of esports, which, as you said, is something unique compared to the conventional sports scene. Ham: Perhaps that's the main reason why I decided to move here and join the esports scene, choosing a career in esports broadcasting. We (Riot Games) have a stadium, a physical space. And that's a big deal. Since we have a physical venue, we can experience things live on-site while also broadcasting and streaming, closely monitoring what is happening inside the stadium. In the past, with conventional sports, we would travel around South Korea with a broadcast truck, capturing footage of every single match across the country, but it never felt like the show was ‘ours’. Those stadiums were not ours; we were just there capturing the footage. But here, with LoL Park, it is us who must prepare everything. It's like how we say it in Korean, "we have to set our own food table". We have to brainstorm how we can better convey the story to our audience, design events to engage with our fans, work closely together with other teams – such as event teams, league management teams, game product teams, etc. In a sense, we are like the KBO (baseball league in South Korea), a sports cable channel, and Olympic baseball stadium operation in one set. We are a combination of these three. That's why I moved to the esports scene and still remain here, as there's no other scene in sports where I can be involved in such a comprehensive experience. Seo: It was insightful to hear your role as a program director in broadcasting division while also being closely on-site. Thank you for sharing your precious time for the interview.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Media Culture Researcher Dowon Seo I study culture for the fun of life. I have curiousity in all sorts of things like games, religion, and films. (Doctoral researcher at Aalto University, Finland) Solip Park Born and raised in Korea and now in Finland, Solip’s current research interest focused on immigrant and expatriates in the video game industry and game development cultures around the world. She is also the author and artist of "Game Expats Story" comic series. www.parksolip.com
- 두려움, 공포 그리고 폴아웃: 게임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공포의 양상
내가 지금까지 게임을 플레이해오면서 기억하고 있는 공포의 유형으로는 2가지가 있다. 게임을 하면서 처음으로 겁을 먹은 것은 <레지던트 이블(Resident Evil)>의 악명 높은 장면을 플레이했을 때였다. 당시 <레지던트 이블>은 호러 게임이라기 보다는 속도가 느린 액션 게임쪽에 가까웠는데, 게임 내에서 복도를 걷고 있을 때 갑자기 개 한 마리가, 뒤이어 또 다른 한 마리가 창문을 뚫고 들어왔을 때 두려움과 혼란, 공포를 느꼈다. < Back 두려움, 공포 그리고 폴아웃: 게임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공포의 양상 19 GG Vol. 24. 8. 10. 들어가는 말: 공포에도 종류가 있다 내가 지금까지 게임을 플레이해오면서 기억하고 있는 공포의 유형으로는 2가지가 있다. 게임을 하면서 처음으로 겁을 먹은 것은 <레지던트 이블(Resident Evil)> [1] 의 악명 높은 장면을 플레이했을 때였다. 당시 <레지던트 이블>은 호러 게임이라기 보다는 속도가 느린 액션 게임쪽에 가까웠는데, 게임 내에서 복도를 걷고 있을 때 갑자기 개 한 마리가, 뒤이어 또 다른 한 마리가 창문을 뚫고 들어왔을 때 두려움과 혼란, 공포를 느꼈다. 이는 게임(및 여타 매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준적인 점프 스케어(역주: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연출 기법)였다. 당시 이 장면으로 겁을 먹긴 했지만, 스펜서 저택의 복도를 돌아다닐 때 약간 불안해진 것 말고는 그 개들 또는 그 개들이 상징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지는 않았다. 게임을 하면서 겁에 질렸던 두번째 - 그리고 보다 오래 지속되고 있는 - 기억은 <폴아웃3(Fallout 3)> [2] 에서 였다. 게임 초반 플레이어는 캐피탈 웨이스트랜드를 돌아다니면서 포스트-아포칼립스적인 약탈자들이 점유하고 있는 어둡고 칙칙한 식료품점 수퍼-두퍼 마트(the Super-Duper Mart)를 발견하게 된다. <레지던트 이블>의 개들과 다른 점은, 무슨 일이 일어날 것임을 내가 이미 알고 있으며 이 곳에서 약탈자들이 나타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 약탈자들의 모습은 가시적이기까지 한데, 한 때 식료품점이었던 이 황폐한 장소의 복도를 초록빛 형광등이 희미하게 비추면서 생기는 그림자로 인해 약탈자들의 실루엣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멀리서 희미하게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른 종류의 고기가 천장에 걸려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는 바로 시체고기인데, 인간 신체의 부속물들이 천장의 쇠사슬로 연결되어 늘어져 있는 이 모습은 플레이어도 만약 발각된다면 그렇게 될 운명임을 알려주는 지표다. 게임 초반에 이 장소에 도달했었기 때문에 자원이 별로 없어 이 상황에서 싸울 수 있는 힘이 부족한 상태였으나, <폴아웃3>의 포스트-아포칼립스적인 웨이스트랜드에서 살아남으려면 그 약탈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 필요할 것임은 분명했다. 적들과 마주치지 않고 필요한 것을 찾아내기 위해 조심스럽게 돌아다니는 동안 내 심장박동은 점점 빨라졌고, 예상치 못하게 모퉁이에서 발소리를 듣거나 약탈자를 발견하게 되면 순간 공포에 휩싸였다. 수퍼-퍼 마트에서는 단 하나의 점프 스케어도 없었지만, <폴아웃3>의 이 시퀀스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정말 무서웠던 기억으로 내게 남아있다. * <폴아웃 3>의 수퍼두퍼 마트와 레이더들.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내가 겪었던 이와 같은 두 종류의 공포 경험은, 두려움과 공포에는 다양한 유형이 있으며 그에 대한 우리의 반응도 상이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글에서는 점프 스케어 및 깜짝 놀라게 되는 공포(sudden frights)와 일상적인 공포간 차이, 그리고 스토리텔링, 게임 메커닉, 환경, 분위기에 대한 특정한 접근 방식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장기적 형태의 공포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Sudden Frights 깜짝 놀래키기 깜짝 놀래키는 것, 즉 "점프스케어"는 많은 호러 게임에서 사용되어왔다. 우리는 호러 게임을 플레이할 때 긴장과 불안, 충격과 공포로 가득한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다. 플레이어들은 기꺼이 겁에 질리는 것을 기대한다. 갑작스러운 공포(sudden frights)에는 특정한 즐거움이 있으며, 그래서 놀이공원의 귀신의 집에서부터 호러 영화에 이르기까지 어떤 (놀래키는) 공포가 다가올 것인가에 대한 기대는 늘 엔터테인먼트의 일부가 된다. 밤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아웃라스트(Outlast)> [3] 와 <암네시아: 다크 디센트(Amnesia: The Dark Descent)> [4] 의 게임 디자인이 어떤 식으로 플레이어들을 깜짝 놀래키면서 공포를 주는지를 알아보자. 스포일러 주의 <아웃라스트(Outlast)>는 1인칭 서바이벌 호러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마운트 매시브 정신병원(Mount Massive Asylum)에서 수상쩍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취재를 가는 기자 마일즈 업셔(Miles Upshur)가 되어 게임을 플레이한다. 마일즈는 캠코더를 들고 정신병원 내부를 돌아다니면서 거기에 있던 모두가 a) 죽었거나, b) 임상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c) 임상적으로 문제가 있는 살인자들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마일즈는 “마틴 신부(Father Martin)”와 마주치게 되는데, 이 인물은 자칭 “월라이더(Walrider)”의 수행자로서 후에 정신병원 깊숙한 곳에 감금되어있던 어떤 환자가 조종하는 나노머신의 환영인 것으로 밝혀진다. <암네시아(Amnesia)> 또한 비슷한 1인칭 서바이벌 호러 게임인데, 다만 퍼즐적 요소가 좀 더 복잡하다. 이 게임은 플레이어가 어떤 성 안의 방에서 깨어나면서 시작하는데, 자신이 다니엘(Daniel)로 불린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기억이 없다. 게임은 성 깊숙한 곳에 있는 알렉산더(Alexander)라는 남자를 죽이라는 예전의 자신(다니엘)이 쓴 편지에 따라 진행되는데, 성 안에는 각 구역마다 끔찍하게 변형된 모습의 괴물들과 다니엘을 죽이려는 “섀도우”들이 도사리고 있다. 이 두 게임 및 유사한 유형의 호러 게임들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플레이어에게 두려움을 자아내기 위해 미지의 것(the unknown)을 활용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혹은 알 수 없는 대상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암네시아>에서 이는 다니엘이 자초한 기억상실증의 결과로서 발생한 말 그대로의 무지(알지 못함)의 형태로 나타나며, <아웃라스트>에서는 취재하는 기자로서의 마일즈라는 인물 설정에서 나타나는데,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생소한 장소를 별 다른 단서 없이 돌아다니는 두 명의 주인공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러한 부분은 게임 내 환경 디자인에도 반영되어 있다. <암네시아>의 성과 <아웃라스트>의 정신병원에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어둠 속에 도사리고 있을 무언가를 계속 추측하게 만드는 미로 같은 복도와 그림자 진 어두운 코너가 디자인되어 있다. 연구자 매즈 할(Mads Haahr)은 호러 게임에서 두려움과 불안의 감정을 고조시키기 위해 플레이어의 시각을 변형시키는 다양한 방식들을 분석한 바 있는데, 흐릿하게 만들기(그림자와 안개), 왜곡(플레이어의 시각을 워핑(warp)하는 것), 그리고 매개(<아웃라스트>의 캠코더처럼 2차 렌즈로 세상을 보도록 하는 것) 등은 두 게임 모두에서 발견된다 [5] . 두 게임의 1인칭 시점 또한 플레이어의 가시 범주를 제한하는데, 이는 내 눈에 보이는 주변부에 무엇인가가 있다는 느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아웃라스트>에서 마일즈가 코너를 빠르게 살필 수 있는 "엿보기(peeking)" 메커닉은 플레이어가 자신을 발견한 적과 갑자기 맞닥뜨리게 만들기도 한다. 하나의 효과로서 공포는 우리가 모르는 어떤 것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 있다고 예측될 때 고조된다 [6] . 이와 같은 시각의 변형과 함께, 시간이 흐르면서 긴장이 점점 고조되는데 이 모든 과정의 목적은 그 긴장을 깨뜨리는 것이 된다. * <암네시아: 다크 디센트>의 복도. [7] 한편 청각 디자인은 플레이어에게 시야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나무가 삐꺽거리고 바람이 부는 소리가 플레이어로 하여금 바짝 긴장하도록 하는 한편, 특정한 소리는 어떤 적이나 위협이 근처에 있음을 알려준다. <암네시아>에서 몬스터들의 으르렁 거리는 소리는 그들이 다니엘 근처에 있음을 의미하며, <아웃라스트>에서 체인이 쩔그렁거리는 소리나 무거운 발자국 소리는 마일즈를 잡으러 특정 구역의 보스들이 왔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청각 신호들이 플레이어에게 지침을 주지만, 이 적들은 여전히 "들을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8] 존재로서 플레이어에게 시각적으로 드러나지 않아 공포감을 더한다. 한동안 플레이어의 뒤를 쫓는 소리가 들리다가 마침내 괴물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은 점프 스케어 같은 느낌을 배가시킨다. 일반적인 환경음과 달리, 적에게 추격당할 때의 소리는 강렬한 음악과 함께 헐떡이는 숨소리로 빠르게 바뀐다. 플레이어가 적에게 발견되는 이 시나리오는 갑작스럽게 추격전이 벌어지면서 당연히 공포와 패닉을 유발시키지만, 플레이어는 이러한 추격전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비하고 있다. 하지만 그림자가 드리워진 주변을 부지런하게 살피고 청각 신호를 주의 깊게 듣고 있던 플레이어의 뒤에서 적이 나타나면 점프 스케어는 크게 성공한다. 언제 어디서 위협이 발생할 수 있을지 알 수 있는 모든 도구를 갖추고도 예측하지 못한 적의 등장은 플레이어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드러낸다 [9] . 무력함은 깜짝 놀라는 공포(sudden frights)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요소다. 두 게임의 오프닝에서 플레이어는 자신이 달리거나 숨거나 혹은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에 대한 위협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옵션이 없는 것이다. 이는 권능에 대한 판타지를 제공해왔던 비디오게임의 전형에 대한 완전한 전복이다. 플레이어는 마법과 힘으로 무장한 용감한 전사가 아니라 단지 지옥같은 공간에서 도망치려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 갑자기 나타난 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방법이 없으며, 이는 완벽히 위협적인 상황이다. 이에 더해 <레지던트 이블>이라는 장르를 정의할 수 있는 메커닉인 자원 관리(resource management) 또한 플레이어의 무력감을 배가시킨다. <암네시아>와 <아웃라스트>의 경우 자원은 플레이어의 구역을 좀 더 밝게 유지하는 것과 연관되는데, <암네시아>에서의 틴더박스나 기름, <아웃라스트>의 캠코더용 배터리가 이에 해당한다. <암네시아>에서는 어둠에 노출되면 죽을 때까지 정신이 쇠약해지고, <아웃라스트>에서는 캠코더의 나이트비전으로 어둠 속의 적들을 좀 더 명확하게 볼 수 있다. 이러한 나이트 비전이 없다면 정신병원 안을 돌아다니는 일이 훨씬 더 위험해질 것이다. 플레이어는 (모든 자원의 위치를 아는 것이 아닌 한) 대개 게임하는 내내 자원 부족의 위기를 겪게 되는데, 이러한 상황은 플레이어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다. 일부 구역은 적의 경로와 가까운 곳에 있어 플레이어는 종종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스스로를 무서운 상황에 노출시키기도 한다. 자원을 확보하되 잡힐 위험을 감수할 것인지, 아니면 그 구역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안전을 도모할 것인지는 서바이벌 호러 게임을 플레이하는 내내 플레이어들에게 던져지는 전략의 문제다. * <아웃라스트>의 야간투시경 화면. [10] 깜짝 놀래키는 유형의 게임에서는 안전을 확보하는 것마저 불안할 수 있다. <레지던트 이블>의 경우 플레이어가 게임을 저장할 수 있는 세이프룸이 있지만, <암네시아>와 <아웃라스트>에는 그러한 메커닉이 없다. <아웃라스트>의 경우 마일즈가 게임의 목표에 맞춰 진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스토리 장면이나 컷신 - 열쇠를 찾은 것, 경비실로 가는 것 등 - 있다. 게임 초반에 플레이어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데 성공했음을 보여주는 이러한 컷신들이 긴장을 잠시 풀 수 있는 비디오게임의 "체크포인트"와 같은 것이라 여기게 된다. 하지만 마일즈가 보안실에 도달하자마자 마틴 신부에게 붙잡혀 마취된 후 정신병원 깊숙한 곳에 갇히게 되는데, 이 부분은 게임 내 주요 점프 스케어 중 하나다. 무력함과 마찬가지로 '그리 안전하지 못한 체크포인트'는 전형적인 비디오게임의 흐름을 뒤집으면서 플레이어를 깜짝 놀래키는데 기여한다. 깜짝 놀래키는 공포와 관련하여 언급할 마지막 부분은 지금까지 논의한 두 게임을 넘어 게임 내 플레이어의 죽음에 관한 것이다. <에일리언(Alien)> [11] 이나 <툼레이더(Tomb Raider)> [12] 같은 게임에서 리플리(Ripley)나 라라 크로프트(Lara Croft)는 (갑작스러워) 깜짝 놀래키는 방식으로 죽는다. 리플리가 제노모프(Xenomorph)에게 잡히는 장면이나 라라가 빠르게 진행되는 사건 속에서 손을 놓치는 장면 등은 플레이어를 깜짝 놀래키면서 그녀들이 죽거나 또는 어둠 속으로 추락할 것임을 예상하게 하는데, 이 모든 시퀀스에는 잔인한 유혈이 등장한다. 이러한 다양한 죽음의 시퀀스는 실패를 예감한 플레이어가 이번에는 어떤 끔찍한 방법으로 리플리나 라라를 죽게 한 것인지를 숨 죽인 채 온갖 애니메이션들을 봐야 함을 의미한다. 갑작스럽게 놀래키는 유형의 공포는 두려움에 대한 기대감, 겁을 먹으면서 얻게 되는 즐거움, 잘 디자인 된 게임플레이 경험에 대한 보상이다. 우리는 그것들이 실제로 우리를 다치게 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 다음의 점프 스케어를 기대하고 비명을 지르다가 웃어제끼면서 플레이를 이어간다. 갑작스러운 공포를 제공하는 호러 게임들이 초기 유튜버들의 커리어를 띄워준 데에는 이유가 있다. 갑작스러운 공포/놀래킴은 즐겁고 기억에 남으며 다른 누군가가 겁을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은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공포/놀래킴은 호러 게임 장르의 기준과 기대치를 충족할 때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Persistent Motivating Fears 지속적으로 동기를 유발하는 공포 비디오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안 특정한 행동을 취할 때 우리의 감정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설명하면서, 넬 반 데 모셀러(Nele Van De Mosselaer)는 허구적 게임 플레이어 찰스의 경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여기서 찰스는 공포 게임에서 슬라임과 맞닥뜨리는 등 비디오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을 대표한다: “화면 속에서 갑자기 초록색 슬라임 괴물이 자신을 향해 기어오자 찰스는 깜짝 놀랐다. 공포로 몸이 움츠러든 그는 콘트롤러의 스틱을 급하게 움직이면서 슬라임으로부터 도망쳤다. 자신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이는 괴물을 보자 목숨이 위태로워진 찰스는 몸을 돌려 주먹으로 괴물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괴물은 고통스럽게 으르렁 거리면서도 찰스를 죽일 수 있었다 [13] ” 모셀러는 처음에는 도망치던 찰스가 몸을 돌랴 슬라임을 죽이려는 행동을 취하게 된 동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는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괴물에 대한 찰스의 두려움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가 느낀 공포가 그로 하여금 괴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콘트롤 스틱을 급하게 움직이도록 만들었고, 또한 괴물이 너무 가까이 왔을 때는 공격 버튼을 눌러대도록 만든 것이다. 슬라임 괴물을 두려워 하지 않는 또 다른 찰스를 상상해보자. 그는 이미 세번이나 죽임을 당해서 괴물에 대해 (공포보다는) 분노를 느끼고 있다. 이 찰스는 괴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콘트롤 스틱을 사용하기 보다는, 괴물을 향해 가기 위해 스틱을 움직일 것이며 공격 버튼을 보다 열심히 눌러댈 것이다 [14] .” 모셀러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바란, 사소한 수준의 두려움일지라도 다양한 장르와 메커닉에 걸쳐 우리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방식에 동기를 부여하는데 큰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공포(fear)는 놀람을 유발하는 순수한 정서적 반응을 넘어 오늘날의 게임 디자인에서 게임 내 행동과 메타게임적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호러 게임 속에서 평범한 적 대신 끔찍한 좀비가 등장한다면 적에 대한 공격적 대응이 도피하는 반응으로 바뀔 것이다. 하지만 공포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을 방정식에서 제외한다면 공포의 역할은 무엇일까? 인간은 다양한 것(어둠, 거미, 유령 등)에 대한 공포증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것들은 호러 게임이나 호러 관련 장르에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매일같이 다양한 공포(실직하면 어쩌지, 내 파트너가 나를 떠나면 어쩌지, 아프고 싶지 않아 등)를 접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이는 우리의 일상적인 행동을 주도한다. 한정 시간 이벤트를 제공하는 호요버스의 인기 가챠 게임들이나 <로스트 아크> [15]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16] 등 인게임 머니를 벌기 위해 매일 플레이하도록 유도하는 지속형 게임의 플레이 패턴에 대해 생각해보자.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는 이러한 유형의 게임 모델에 있어 핵심적인 원동력이다. 한정된 기회를 놓치거나 다른 플레이어들보다 뒤쳐질 수 있다는 생각은 이러한 유형의 게임들에 있어 플레이어들이 강박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도록 만드는 합법적인 두려움이다. 이러한 게임들은 종종 중독적인 플레이 패턴과 더 연계되지만, 플레이어 집단 내에서 사회적 지위가 떨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은 슬렌더맨이나 좀비보다는 덜 폭력적으로 보일지라도 플레이어로 하여금 더 자주 게임을 플레이하고 행동을 취하게 만드는 동기가 된다. 게임에서 캐릭터가 죽어 플레이어가 실패하는 경우는 매우 흔하게 일어난다. 이는 죽음에 대한 인간의 광범위한 두려움을 활용하는 것인 한편, 그럼에도 플레이어들은 게임 내 죽음과 현실에서의 죽음이 동일한 위험성을 지니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게임에서 죽는 것은 이미 우리 안에 정립되어있는 상실 및 그것을 피하려는 욕구를 자극한다. 게임은 상실을 어느 정도 영구적인 것으로 만듦으로써 어느 정도 조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디아블로(Diablo)>나 <파이어엠블렘(Fire Emblem)> 같은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게임을 시작할 때 '하드코어' 캐릭터를 만들거나 '영구 사망(permadeath)' 모드를 선택할 수 있다. 이는 게임 내에서 캐릭터가 한 번 사망하면 재시도를 하거나 체크포인트 같은 데서 부활할 수 없어 영원히 캐릭터가 삭제됨을 의미한다. 이러한 스타일의 게임플레이는 꽤 인기가 있으며 게임 플레이에 긴장감과 흥분도를 높린다. 사람들은 상실에 대한 두려움, 심지어 그것이 허구적인 것일지라도 자신이 캐릭터에 대해 내리는 모든 결정에 새로운 감정적 이해 관계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Nuclear Anxiety and Lingering Terror 핵에 대한 불안과 지속되는 두려움 브라이언 마수미(Brian Massumi)의 책 의 도입부를 보면 버디 홀리(Buddy Holly)나 제임스 딘(James Dean) 같은 유명인 사고 희생자들이나 체르노빌이나 보팔 등의 유명한 재앙, 그리고 결핵이나 에이즈 같은 악명 높은 질병의 이름들이 챕터 내에 크고 굵은 글씨로 눈에 띄게 표기되어 있다 [17] . 이러한 단어들은 우리 내면에 지속적인 공포와 불안을 일으키는 상징적 힘이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그러한 것들은 과거의 비극적이고 끔찍한 사건에 대한 기억들을 우리의 마음 속에 집어넣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공포 - 과거에 대한 지식으로 인해 예상하게 되는 미래의 공포 - 를 각인시키기도 한다. 이와 같은 두려운 예측은 겁에 질리도록 하는 공포(terror)로서 잘 알려져 있으며, 이 공포 안에서 미래의 공포가 우리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우리는 불안을 경험하게 된다 [18] . 다시 <레지던트 이블>과 <폴아웃3>로 돌아오자. 이제 나는 <레지던트 이블>의 개들이 촉발시켰던 점프 스케어보다 수퍼-두퍼 마트의 약탈자들이 나를 더 힘들게 했던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포스트-아포칼립스적인 미국의 풍경을 담은 웨이스트랜드 내에서 약탈자들이 상징적으로 의미하는 바가 그들과의 첫 조우 이래 지속적으로 환기되었기 때문이다. 폴아웃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가 인간이 얼마나 절박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폴아웃3>를 플레이하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이었고, 이후 이 시리즈를 플레이하는 내내 그런 느낌을 반복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전체 시리즈를 관통하는 거대한 두려움 - 여전히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핵 분쟁 및 그에 따른 두려움과 같은 [19] - 속에는 우리 사회가 갈수록 지속가능성을 잃어감에 따라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폭력적으로 돌변할 수 있고 나와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그에 따른 공포로 인해 고통을 받을 수도 있다는 훨씬 더 단순하고 작은 가능성을 제시한다. 데이비드 페캠(David Peckham)은 "불안은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에 대해 우리가 치르는 대가" [20] 라고 말한 신경과학자 조셉 르두(Joseph LeDoux)의 연구를 언급한 바 있다. 폴아웃과 같은 시리즈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존재하는 역사적인 그리고 지금도 발생하고 있는 공포를 바탕으로 다가올 수 있는 미래들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해준다. <레지던트 이블>의 개들처럼 점프 스케어를 통해 단순히 사람이 깜짝 놀라는 반응을 일으키는 것 보다는, 수퍼-두퍼 마트에 잠입을 시도하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지는 여러 겹의 공포를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호러, 공포, 패닉, 그리고 불안이 한데 아우러져 공포의 완전한 패키지로서 함께 제공되는 것이다. 그 공간의 분위기와 매달려있는 사체들은 내가 내 캐릭터에 가할 수 있는 끔찍한 결과를 예측하게 하는 공포를 야기한다. 발자국 소리를 듣거나 발각될 것 같다는 생각은 약간의 패닉을 느끼게 한다. 궁극적으로 폴아웃 세계의 약탈자들이 지닌 함의 및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지닌 끔찍한 가능성을 표상하고 있는 방식이야말로 게임 그 자체의 경계를 넘어 우리와 우리의 세계가 어떻게 될 수 있을지에 대해 나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기억하게 만든다는 점이 제일 중요하다. 게임은 그 어떤 매체보다도 우리가 공포스러운 상황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하지만 의미있고 강력한 공포를 만들어내는데 있어 몰입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진정한 공포는 갑작스러운 소리나 끔찍한 괴물에 대한 우리의 반응에서 발생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및 그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우리라는 존재가 지닌 끔찍한 의미가 그러한 놀램과 함께 고조될 때 발생한다. 만약 게임이 이런 종류의 위협을 - 그것이 아무리 먼 곳에 있는 것일지라도 - 야기하기 위해 겁주기/놀래키기(scare)를 활용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움을 느낄 때다. 갑작스럽게 놀래키는 공포(sudden frights)은 그 원천이 일상적인 것이든 초자연적인 것이든 간에 예상치 못했을 때 발생한다. 반대로 지속적인 공포와 불안은 '만약에(what if)?'로부터 야기된다. 폴아웃의 경우 너무나 현실적으로 무너진 사회의 모습을 '만약에?'으로 다루었다. 진짜가 아님을 알면서도 겁을 먹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즐거움과 위안도 분명 있겠지만, 우리 자신이 지닌 위험의 가능성 보다 더 불안한 것이 과연 있을까? [1] Capcom, 1996. [2] Bethesda Softworks, 2008. [3] Red Barrels, 2013. [4] Frictional Games, 2010. [5] Mads Haahr, ‘Playing with Vision: Sight and Seeing as Narrative and Game Mechanics in Survival Horror’, in Interactive Storytelling, ed. Rebecca Rouse, Hartmut Koenitz, and Mads Haahr (Cham: Springer International Publishing, 2018), 193–205, https://doi.org/10.1007/978-3-030-04028-4_20 . [6] Sara Ahmed, ‘The Affective Politics of Fear’, in The Cultural Politics of Emotion (Edinburgh, UNITED KINGDOM: Edinburgh University Press, 2014), 62–81, http://ebookcentral.proquest.com/lib/concordia-ebooks/detail.action?docID=1767554 . [7] Amnesia: The Dark Descent Full HD 1080p/60fps GTX1070 Longplay Walkthrough Gameplay No Commentary, 2016, https://www.youtube.com/watch?v=hyUf3Ctx-Ck . [8] Rebecca Roberts, ‘Fear of the Unknown: Music and Sound Design in Psychological Horror Games’, in Music In Video Games (Routledge, 2014). [9] Tanya Krzywinska, ‘Hands-on Horror’, Spectator 22, no. 2 (2002): 12–23. [10] OUTLAST | Full HD 1080p/60fps Longplay Walkthrough Gameplay No Commentary, 2017, https://www.youtube.com/watch?v=zZNfd04GO-U . [11] Creative Assembly, 2014. [12] Crystal Dynamics, 2013. [13] Nele Van De Mosselaer, “How Can We be Moved to Shoot Zombies? A Paradox of Fictional Emotions and Actions in Interactive Fiction.” Journal of Literary Theory 12(2), 2018: 286. [14] Ibid., 286-287. [15] Smilegate, 2019. [16] Blizzard Entertainment, 2004. [17] Brian Massumi. “Everywhere You Want to Be: Introduction to Fear.” The Politics of Everyday Fear.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93; 3-38. [18] Joseph LeDoux. Anxious: Using the Brain to Understand and Treat Fear and Anxiety. New York: Penguin Books, 2015. [19] Ryan Scheiding. “War Never Changes? Creating an American Victimology in Fallout 4.” Representing Conflicts in Games: Antagonism, Rivalry, and Competition. Edited by Björn Sjöblom, Jonas Linderoth, and Anders Frank. London: Routledge, 2023; 135-152. [20] Joseph LeDoux, Lecture, New York State Writers Institute 2016. Cited in David Peckham, Fear: An Alternative History of the World. London: Profile Books, 2023, 7.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마크 라제네스, Marc Lajeunesse 캐나다 몬트리올 콩코디아대학 커뮤니케이션학과 박사과정에 재학중. 온라인 게임의 독성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삼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더 공평하고 즐거운 놀이 경험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으로 게임 내에서 더 많은 긍정적인 조건을 들어내기 위한 독성 현상에의 이해를 추구한다. 스팀 마켓플레이스와 DOTA 2에 관한 논문을 작성한 바 있고 곧 출시될 '트위치 마이크로스트리밍'의 공동 저자이다.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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