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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이라는 확고부동하지 않은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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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5. 6. 10.

요 몇 년 부쩍 게임기자라는 부담스러운 직함을 달고서 듣기에 더더욱 부담이 가는 질문들이 있다. “이 게임이 저 게임을 베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건 표절이 맞지 않나요?” 마치 녹음기를 켠 채 내 커리어를 끝장내고 싶어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질문들인데, 그때마다 대처하는 방법은 같다. ‘예/아니오’ 로 답하는게 아닌, 상대방과 열띤 토론을 시작하는 것이다.



게임과 게임 사이의 표절 시비는 하루이틀 일이 아니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더더욱 자주 마주하게 되는 것 같다. 또 이전보다 게임사들이 보다 직접적으로 보호를 위해서 나서는 것도 눈에 띈다. 표절을 직접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법은 저작권과 관련된 법이지만, 최근 불거진 몇가지 대표적인 사례들을 보면, 결국 제기된 소의 내용은 저작권이 아니라 특허권이나 부정경쟁방지 위반, 영업기밀 침해 등으로 구성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선택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이유는 현재의 상황에서 저작권은 각사의 이익을 보호할 수 없지만 특허권 침해나 부정경쟁방지 위반 등은 그들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거나 최소한 협상카드로서의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물론 이는 저작권이 보호하는 영역이 명확하기 때문에도 있지만, 게임이라는 미디어에서 유독 그 한계가 두드러진다.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다 근본적으로 질문을 바꿔보자면, 게이머들이 보기엔 아무리봐도 표절인 게임들이 어째서 법적으로는 그러한 판단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 게이머들이 확증편향에 물들어 잘못된 생각을 하는걸까?


물론 이는 기본적으로는 법과 수용자가 각 작품 또는 결과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법이라면 특허권을 침해했거나 또는 제조법을 도용했는지를 판단하려면 제작 과정을 살펴볼 것이고, 저작권처럼 어떤 발상을 침해했거나 타인의 아이디어로 부정한 성과를 얻으려고 한다면 아이디어를 직접적으로 표절했는지, 정도는 어느정도인지 살펴볼 것이다.


이들 법은 이미 게임 밖 다른 미디어에서는 여러 사례들을 낳았고, 물론 다른 미디어에서도 그 한계 또는 부작용에 대해 이야기가 많지만 어느정도 성과를 내왔다. 하지만 유독 게임에서는 표절과 오마주, 벤치마킹에 대한 구분이 옅고 항상 격론이 오가는 주제가 되곤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법알못으로서, 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보다는 우리가 겪는 괴리감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모든 창작물은 정반합을 거듭하며 발전하고, 때문에 미메시스(Mimesis)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유사한 발상 자체를 원천 차단하는 것은 더 나은 발전을 아예 가로막아버리는 일이 되기 쉽다. 다른 창작물만큼이나 게임의 제작은 레퍼런스에서부터 시작하며, 창작과 발상은 수렴과 변용으로 시작한다. 그 때문에 이러한 행위 자체를 일종의 리버스 엔지니어링이나 카피로 판단할 수는 없다.


실제로 표절은 게임계에서 매우 민감한 주제이지만, 그만큼이나 어떤 게임을 설명할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 역시 “이 게임은 XXX한 OOO임.” 이라며 비슷한 다른 게임에 빗대어 표현하는게 일반화되어 있을 정도이니. 그만큼 대부분의 디지털 게임들은 그 원류가 비교적 명확하며 장르적 정반합에서 언제나 비교당하기 일쑤다.


때문에, “이 게임은 어느 게임을 닮았죠?” 또는 더 나아가 “이거 XXX 베낀거 아닌가요?” 라는 말을 들을 때면, 한마디로 쉽게 답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일단 게임 자체가 너무 복합적인 미디어이기 때문에 아무리 간단한 게임이라도 그를 구성하는 요소가 수백 수천가지라고 하기에도 부족할 정도이고, 또 대체 그 중에서 어느것이 같거나 비슷할 때 표절이라 할 수 있는가, 어느정도 비율이 넘어서야 표절이라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까지 같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즉, 게임에서의 표절 논쟁은 그 정의에서부터 갈림길에 서있다. 비교적 그 정의를 내리기 쉬운 다른 미디어에 비하면 말이다. 물론 다른 미디어들이 가진 표절 논쟁에서도 항상 “어디까지가 표절인가?” 라는 이야기는 나오곤 하지만 게임만큼 이 문제가 골치 아픈 것도 없다.


같은 그래픽 스타일을 가졌지만 게임 플레이는 판이하게 다른 케이스는 흔해 빠졌고, 플레이 구성요소가 비슷하다고 해도 이를 어떻게 배치하냐에 따라 언급조차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같은 플레이 메커니즘을 가지고 다른 그래픽 요소와 플레이 도구, 구성으로 바꾸어 만들어내는 것이 게임적 변용의 기본이다. 아무리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건 없다는 말도 있지만, ‘미메시스’ 라는 말로 포장하기에는 애매한 선에 걸친 것도 참 많다.


즉, 이처럼 어떤 게임의 표절 여부를 판단하는데 있어 법적인 부분을 떠나 게이머 입장에서도 판단하기 쉽지 않은 이유는 일차적으로는 게임 자체가 워낙 복합적이고 종합적인 창작물이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표절 또는 벤치마킹한 요소가 분량 면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더라도 플레이 측면에서는 오히려 다른 요소가 부각되고 중심이 된다면 그건 부차적인 문제가 되어버릴 수 있고, 역으로 아주 사소한 부분이지만 그게 게임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면, ‘베꼈다’ 라는 반응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근래에 있었던 가장 큰, 그리고 유명한 사례라고 한다면 미호요의 ‘원신’ 과 닌텐도의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법적인 표절의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원신’ 은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의 표절이 되기는 어렵다. 명칭을 그대로 가져다 쓰거나, 디자인 요소를 트레이싱하거나, 당연하게도 미호요가 닌텐도를 해킹이라도 한게 아닌 이상 제작과정이나 그 소스코드가 동일할리는 없다.


그러나 이 게임은 많은 부분에서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를 닮아있으며, 개발사인 미호요도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가 준 영향력을 부정하지 않는다. 좋은 참고가 되었다는 말은 결국 ‘원신’ 의 레퍼런스에는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가 들어가있었다는 말이 되며 그 누구도 이를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플레이어 입장에서도 두 게임을 할 때의 경험이 거의 비슷한 순간이 종종 찾아온다. 게임의 전반적인 그래픽 스타일 지향점이나 스태미나 아이콘 같은 시각요소의 차용에서부터, 넓게보면 퍼즐 중심의 오픈월드 탐색이라는 게임 경험 자체도 유사성을 드러낸다. 글라이더 활공에서부터 벽타기, 맵의 구성과 몬스터 배치까지 단순히 유사한 정도를 넘어서는 부분도 있다. 최소한 ‘원신’ 의 어드벤처 파트는 그 근원이 ‘젤다의 전설: 브레드 오브 더 와일드’ 있다는데에 모두가 동의한다.


따라서 ‘원신’ 이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를 표절했음을 주장하는 쪽은 주로 이러한 부분을 인용한다. 게임 내 콘텐츠와 메커니즘의 구성과 더불어 조작감, 타격감 같은 상당히 개인적으로 심리적인 요인들까지도 언급된다. 그러한 이유는 결국 게임이란 경험에 의해 정의되는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대리 체험할 때의 경험보다도 내가 직접 플레이어로서 게임을 플레이할 때, 그로써 얻어지는 성취감, 순간적인 피드백, 감각들이 비슷하다면, 이유와 근거를 명확하게 들 수는 없어도 이들이 닮았다고 말할 수 있는 셈이다.


그래서 문제는 이것이다. 그래서 이 게임은 표절작인가? 레퍼런스를 참고해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는 관행은 오랫동안 이어져왔고 당연한 행위이지만, 이 자체를 리버스 엔지니어링과 동일한 행위로 단정지을 수 있을까?


재미있는 부분은 바로 이 질문을 던질 때 나온다. 표절이라고 하는 측과, 그렇지 않다고 하는 측이 제기하는 근거가 게임의 서로 다른 부분이라서다. 어떤 요소를 차용했다고 볼 수는 있지만, 게임 전체가 어느 게임의 표절인가 하는 결론에 다다랐을 때에는 결국 전체 게임의 종합적인 부분을 살펴보게 되기 때문이다.



‘원신’ 과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의 경우 어드벤처 파트는 굉장히 높은 유사성을 보이지만, 전투는 액션이라는 공통 분모를 빼면 그 근간 자체가 다르다고 볼 수 있으며, 플랫폼과 BM에서 발생하는 플레이 특성 자체도 완전히 다르다. ‘원신’ 은 기본적으로 캐릭터 수집 및 육성이 주요 콘텐츠이기 때문에 이 캐릭터를 가챠로 뽑고, 육성 재화와 장비를 수집해 일정 이상의 완성도로 캐릭터를 빚고 깎아내는 과정이 핵심이다. 물론 이 또한 완전히 전에 없던, 다른 게임에 없던 ‘발명’ 은 아니지만 최소한 ‘젤다의 전설’ 에서는 크게 거리가 있으며 독자적인 발전을 가장 많이 꾀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4개 캐릭터와 원소 반응을 통한 파티 빌딩, 하나의 핵심 장비를 중심으로 여러 부품 단위로 세부 스펙을 쪼개어 조합하고 빌딩할 수 있는 장비 성장은 ‘원신’ 의 핵심이고, 이미 여러 갈래로 발전해온 빌드깎기 게임의 ‘원신’ 적인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나아가 7신과 국가와 여러 캐릭터가 등장하는 원신만의 세계관과 그 안에서 피어나는 감성적인 만족감은 오롯이 ‘원신’ 이 이루어낸 성과다. 물론 이들 요소도 비슷한 사례를 찾으라면 못할 건 없지만, 유사성보다는 오리지널리티가 더 돋보이는건 부정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 게임으로서 ‘원신’ 이 가진 독자적인 영역도 결코 적고 좁다고 할 수 없다. 게임은 그 자체로 굉장히 많은 레이어를 가지고 있으며, 그중 몇몇 레이어가 겹친다고 해서 완전히 동일한 총합으로 보기는 도저히 어려운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벤치마킹한 부분이 지배적이라면 또 상황에 따라 다르게 판단될 수 있지만, ‘원신’ 에 있어서는 모사한 레이어 만큼이나 직접 고민하고 그려낸 레이어가 많고 그것이 게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비록 논쟁의 여지가 있어도 사람들이 ‘원신’ 을 무조건적인 표절작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이는 단순히 수학적인 비율 산정을 말하고자 하는건 아니다. 게임의 경험은 매우 미시적인 체험들의 총합으로 하나의 거대한 경험이 된다. 때문에 아무리 같은 재료를 썼다 하더라도 곁들이는 음식이나 조리법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음식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벤치마킹한 부분 외의 레이어가 충분히 두터울 때 전체 경험의 성격이 바뀌는” 현상을 이루어낸다면 단순한 표절작이 아닌 새로운 갈래의 발산이 될 수 있다.


‘원신’ 은 분명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의 어드벤처 파트를 토대로 하지만, 그 위에 자신만의 요소들을 쌓아올림으로서 다른 형태의 게임을 빚어냈다. 그래서 이제 ‘원신’ 은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를 표절했는가 라고 묻는다면, 간단하게 예, 아니오로 답할 수는 없다. 필자라면, “게임의 핵심적인 요소 일부를 본땄지만, 그만큼의 독자적인 영역을 가지고 있다.” 라고 답하겠다.


결국 표절을 판단하는 기준은 정량적일 수 없으며, 우리는 각각의 게임에 대해 저마다 들어맞는 고민과 판단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원론적인 이야기이다.



근래 ‘소울 시리즈’ 의 대성공 이후 우후죽순처럼 쏟아졌던 소위 소울라이크 게임들 역시 어떤 정량적인 기준을 가지고 소울라이크다, 이건 소울을 계승했다, 이건 소울라이크가 아니다 라는 이야기를 들은 건 아니었다. 대부분, 모두가 어떠한 정성적인 감각들, 경험들의 총합으로서 여러 플레이어의 논의를 거쳐 일종의 합의를 이루어낸 것에 가깝다.


이 일련의 이야기는 왜 저작권을 판단하는데 있어 법이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는지 증명하는 셈이다. 법이라는 정량적인 판단으로는 선을 명확히 긋는게 불가능하며, 결국 재판관이나 배심원 같은 심리를 진행하는 권한자들의 재량이 개입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마저도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서는 안된다. 법이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법에게 그 이상의 것을 바란다면 그만큼의 부작용도 각오해야 한다.


하지만 법리적인 판단과는 별개로, 이러한 게임의 독창성과 특별함들은 지금보다 더 보호받아야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게임이 새로운 방향으로 계속 발산하고 발전하고 정반합의 과정을 반복하는걸 방해하여서는 안된다. 얼핏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그 사이에 매우 미세한 틈이 있다고 믿는다. 결국 어떤 일에서도 어떤 선을 긋고 경계를 정의하는 건 반복적인 조정과 다시긋기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 글조차도 그러한 과정 중 하나이며, 그때그때 우리는 엄격한 선을 조금씩 이동시킨다는 얼핏보면 모순적인 일을 해야 한다.


법이 그 역할을 완벽하게 해낼 수 없다면, 누가 그 역할을 해내야 할까? 이에 대한 답 또한 간단하고 원론적이다. 결국은 게이머다. 소비자이자 독자이자 애정자인 게이머들이 표절이 아닌 독창성을 높게 판단하고, 가치를 발굴하고 그런 게임을 플레이하며 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공유하는 것. 점차적으로 시장에, 게임이라는 넓은 세계에 그러한 ‘스스로 추구하는’ 게임들이 지배적으로 남도록 하는 것.


일종의 시장논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좀더 넓은 범위의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단순한 소비자주의가 아니라 어떤 문화의 향유자로서, 명확한 가치관으로서 자신이 즐기는 문화에 대해 고민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 그런 행위들이야 말로 무분별한 표절작을 근절하고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추구를 치하할 수 있는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플레이어에 대한 존중과 함께 절대적인 선(線)이 있다고 믿기보다는 항상 새롭게 판단하고 스스로가 엄격한 기준이 될 자신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다들 자기 나름대로의 선 안에서 옥석을 가려가며 치밀하게 소비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조금은 지루하고 현학적이라도, 단정적일 수 만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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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게임 기자(2014~), 글쓴이(2006~), 게이머(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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