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노동자들은 왜 노조를 만드는가? - 북미 게임 산업의 노동운동단체 GWU Montréal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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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5. 10. 10.

2025년 6월, 나는 캐나다 몬트리올을 여행 중이었다.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한 장의 강렬한 포스터를 발견했는데, “Take the Controls”라는 온라인 정기 토론회를 홍보하는 포스터였다. 게임 업계의 고용 불안과 불투명한 보상 체계 등 산재한 여러 문제에 대해 업계 종사자라면 누구든 모여 생각을 나눠보자는 초대의 말도 함께 적혀 있었다. 여행 중 마주한 풍경쯤으로 넘길 수도 있었지만 오랫동안 그 포스터에 눈길이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게임 회사에 재직했을 때 사내 노조의 조합원이기도 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행사를 주최하는 단체는 GWU Montréal라는 곳이었다. 이 단체에 대해 알아보니, Game Workers Unite(GWU)로서 “게임 업계에 노동조합 설립을 돕는다”는 사명을 갖고 여러 지원 활동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캐나다 몬트리올은 유비소프트와 같은 대형 게임 회사들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자, 북미 최대의 게임 산업 허브로도 알려져 있다. 막연히 생각했을 때, 먼저 캐나다라는 선진국의 이미지가 떠올랐고, 프랑스와 문화적으로 연결된 퀘벡이란 지역의 맥락이 연상되었기 때문에, 이곳의 노동환경은 한국보다 훨씬 잘 보장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민주노총 같은 거대한 노동총연맹이나 기업별 노동조합이 아닌, 제 3자로서 게임 업계만을 지원하는 단체가 활동하고 있는 사실이 다소 의외였다. 새로운 층위를 보여주는 듯한 모습 같아서, 흥미로운 마음을 가지고 포스터에 적힌 링크를 통해 참여 의사를 전달했다.
행사 시간에 맞춰 토론장에 접속해보니, 게임 업계 종사자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서로 다른 게임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고, 온라인 밋업임에도 불구하고 게임 업계의 노동 문제에 관해서 모두가 솔직하게 현장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캐나다는 프랑스어와 영어가 함께 쓰이기 때문에, 참여자들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실시간 번역이 재빠르게 진행되는 모습도 굉장히 인상 깊었던 순간이었다.
GWU Montréal은 독특한 입지를 갖고 있는 단체다. 귀국 후에도 그날의 기억은 오랫동안 남아있었기에, 이들의 활동과 관련한 상세한 이야기를 인터뷰를 통해서 들어보기로 했다.

한국 독자들을 위해, GWU Montréal의 소개 부탁한다.
GWU Montréal은 게임 노동자들의 민주적 단체로, 게임 산업의 노동조합 설립을 촉진하고 지원하기 위해 존재한다. 우리의 목표는 노동자들이 직장에서 더 강한 목소리를 내고 정당한 권리와 보호를 보장받는 노동조합화된 게임 산업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직장에서 노동조합 캠페인을 벌이고, 서로를 지원하며, 업계 전반 차원으로는 조직화를 촉진할 수 있도록 교육 자료를 제작한다.
우리 단체는 2018년 GDC에서 있었던 집단행동을 계기로 시작된 ‘Game Workers Unite’ 글로벌 운동의 한 단위로서 설립되었다. GDC가 열리기 몇 주 전, 행사 중 하나로 노동조합과 관련된 라운드테이블이 열린다는 계획이 몇몇 게임 업계 종사자들에게 알려졌다. 그러나 라운드테이블이 전개될 방식에 우려되는 지점들이 있었고, 자칫 그 자리가 노동조합 파괴(union-busting)의 장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행사장에서 친노동조합적 존재가 되기 위해 조직화를 하게 되었다.
우리는 GDC에서 배포할 텍스트 자료(zine)와 버튼 뱃지를 제작했고, 사람들이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하도록 했다. 행사장은 결국 노동조합화가 업계의 미래라고 믿는 사람들로 가득 찼는데, 이미 몇 년 전부터 스스로를 노동조합화하고 있었던 북미의 저널리스트들이 특히 크게 주목했다. 이렇게 해서 GWU 운동이 탄생했고, 그때 참여했던 일부가 모여 이후 GWU Montréal을 설립했다.
북미 게임 산업에 노동조합이 필요한 배경에는 무엇이 있는가?
북미의 게임 노동자들은 크런치와 같은 장시간 노동, 과로로 인한 번아웃, 직장내 괴롭힘과 차별, 고용 불안과 잦은 해고, 창의적 자유나 중요한 의사결정 참여권의 부재, 그리고 유사한 일을 하는 다른 산업군보다 비교적 낮은 임금 수준 등 수많은 구조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런 문제들은 수십 년간 “열정(passion)”이라는 말로 정당화되어 왔다. 우리가 일에 애정을 가진다면 열악한 노동 조건도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업계 현실에 지쳐가는 많은 게임 업계 노동자들에게 더 이상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으며, 이들은 의사 결정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이 요구해온 주요 사항으로는 해고로부터 보호하는 장치, 노동시간 단축과 일관된 초과근무 수당 지급, 투명한 급여 체계·승진·채용 절차, 임금 인상(특히 QA 같은 저임금 직군),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복리후생 개선, 생성형 AI 같은 신기술 도입과 활용에 대한 노동자의 통제권 등이 있다.

노동조합, 노동자 권리에 관한 다양한 메시지가 담긴 핀버튼 뱃지들
현재 북미 게임 산업 노동자들은 얼마만큼 서로 연대하고 있는가?
북미의 게임 노동자들 대다수는 노동조합 결성에 찬성하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 업계에 대규모 해고 사태가 잇따르면서, 더 많은 노동자들이 조직화에 참여하고 자신의 권리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다.
연대를 구축하고 조직화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할 일이 많지만, 이미 많은 비공식 네트워크 또는 집단 행동 사례들이 존재한다. 특히 미국에서는 해고와 직장내 괴롭힘에 항의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집단 퇴근하거나 파업하는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다.
최근에는 성공적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성과도 나오고 있다. 2025년에는 *제니맥스노동자연합(ZeniMax Workers United-CWA)이 파업 승인 투표에서 94% 이상의 찬성률을 보였고, 그 결과로 모회사 마이크로소프트와 첫 번째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제니맥스노동자연합은 300명 이상의 QA 노동자를 대표하여 2023년 1월,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임 스튜디오로는 첫 번째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그리고 2년 이상의 기나긴 협상 끝에 첫 번째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GWU Montréal은 2018년 GDC 사건을 계기로 탄생한 글로벌 운동 'Game Workers Unite'의 몬트리올 지부로, 북미 게임 산업의 주요 거점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GWU Montréal은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펼치고 있을까?
GWU Montréal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우리 자체는 노동조합이 아니지만, 조직화를 원하는 노동자들을 지원한다. 이들에게 조직화를 위한 지식과 자원을 공유하고, 서로가 서로에게서 배우는 공동체가 만들어지도록 한다. 활동가들은 게임 업계의 다양한 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인 동시에 지원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는 노동법이나 노동조합 파괴 전술과 같은 주제를 다루는 조직화 교육과 공개 워크숍을 운영하고, 피크닉이나 토론의 밤, 버튼 뱃지 제작 모임 같은 사회적 행사도 개최한다. 아울러, 각종 배포 자료를 제작해서 노동조합에 관한 지식과 인식을 확산시키고, 직장 문제를 겪고 도움을 요청하는 노동자들을 지원한다. 법률 자원이나 지역 단체와 연결해주고 조언과 심리적 지지도 제공한다.
또한 우리는 지역 노동조합 연맹이나 전국 단위 노동조합들, 예를 들어 캐나다 전국노동조합총연맹(CSN)이나 미국통신노동조합(CWA)와 같은 조직들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고 있다.
GWU Montréal의 활동이 직접적으로 노동조합 결성에 기여한 사례로는 어떤 것이 있나?
2021년에 우리 단체의 회원 일부는, 미국통신노동조합(CWA)과 함께 노동조합을 조직하는데 참여했다. 게임 업계로서는 북미 최초로 공식 인증을 받은 보데오 게임즈(Vodeo Games)사의 노동조합이다. 조합원들은 모두 GWU Montréal 활동을 통해 노동조합에 대해 배우고 교육을 받았다. 미국통신노동조합(CWA)의 전문 조직자들과 함께 게임 업계의 노동조합 설립을 성사시킨 것이다.
또한 비디오게임노동자연합(United Videogame Workers, UVW-CWA)이라는 ‘직접 가입(direct-join)’ 노동조합의 조직화에도 참여했다. 북미 대부분의 노동조합은, 한 직장의 종사자들만이 가입할 수 있고 정부 노동위원회 인증을 필요로 한다. 반면에, 직접 가입 노동조합은 이러한 법적 구조 밖에서 운영된다. 게임 업계에서 일하는 정규직, 프리랜서, 심지어 실직자까지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UVW-CWA는 북미 게임 산업 최초의 직접 가입 노동조합으로, 2025년 5월에 출범했다.
우리는 이외에도 여러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지난 해에는 캐나다 전국노동조합총연맹(CSN)과 함께 퀘벡주 게임 산업 전체를 아우르는 주(州)단위 노동조합 설립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도 했다.

GWU Montréal은 노동자의 권리를 알리는 다양한 자료들을 제작해 배포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최근 넥슨코리아의 자회사 네오플이 업계 최초로 대규모 파업에 돌입했다. 노동자의 권리와 파업의 정당성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나는 북미에서는 파업이 어떤 법적 조건과 문화적 환경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북미 게임 산업에서 ‘파업’을 둘러싼 법적·문화적 환경은 어떤가?
북미에서 파업은 법적으로는 허용되어 있지만, 캐나다에서는 언제/어떻게 파업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많은 제한이 있다. 이른바 ‘랜드 공식(Rand formula)’이라는 규율에 따라, 단체협약이 체결되지 않았거나 협상 기간 중 협약이 만료된 경우에만 파업이 가능하다.
다행히 퀘벡 주에는 스캐빙(scabbing: 파업 등 노동쟁의시 회사가 대체 인력을 고용하는 행위)을 금지하는 법이 있어 노동자들의 파업권이 일정 부분 보호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노동자들은 여전히 파업이나 집단 행동이 경영진의 보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인식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고 본다. 2023년 할리우드 배우와 작가들의 파업과 최근 캐나다 승무원 파업은 게임 업계를 포함한 대중적 지지를 받으며 파업에 대한 인식을 제고시켰다.
반면에, 최근 몇 년 동안 정부는 파업권을 더 제한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파업이 경제적 영향을 미칠 경우 노동부 장관이 임의로 파업 중단을 명령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제적 영향이야말로 파업이 노동자들에게 제공하는 협상력의 핵심 원천이다.
노동조합들은 이에 맞서 싸워오고 있고, 올해 여름에는 파업 승무원들이 복귀 명령을 거부하며 파업을 계속 이어갔다. 이는 다시금 노동운동이 활기를 되찾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현재 북미 게임 산업은 어떤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가?
현재 북미 게임 업계는 “trash fire(쓰레기 더미에 불이 붙은 상황)”라고 흔히 묘사된다. 지난 몇 년간 이어진 대규모 해고와 스튜디오 폐쇄는 노동 인력을 초토화시켰고, 업계가 운영되는 방식에 많은 이들이 환멸을 느끼고 있다. 우리의 희망은, 지금은 암울해 보일지라도 노동자들이 힘을 합친다면 더 나은, 더 지속 가능한 산업 모델을 구축함으로써 끊임없는 두려움과 불확실성 속에서 살지 않아도 되는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해고가 모두의 최대 관심사이긴 하지만, 최근 DEI 프로그램(다양성·형평성·포용성)의 빠른 탄압은 이른바 “진보적”이라 자처하던 기업들의 노동자들조차 불안정한 상황에 있다는 것을 드러냈다. 노동자들은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점점 더 조직화에 나서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재택 근무, 주당 노동 시간, 차별 문제, 그리고 프로젝트에 대한 창작 통제권(특히 업무 과정에 AI 기술이 강제로 도입되는 문제에 맞서기 위해)을 중심으로 조직화가 활발해지고 있다.

GWU Montréal의 활동 모습
한국 및 글로벌 게임 산업의 노동 문제에 대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과 캐나다 모두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려는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상황이 펼쳐지는 ‘반노동적인 환경’을 가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2018년이라는 이른 시기에 넥슨코리아 노동자들이 업계 최초로 법적으로 노동조합 지위를 획득한 것은 큰 영감을 주었다.
게임 산업은 국제적인 산업이며, 조직화 또한 반드시 국제적 노력이어야 한다. 서로 다른 법체계나 언어적 장벽이 국경을 넘어 연대를 구축하는 데 장애물이 되지만, 노동조합과 노동자 권력의 핵심은 어디에서나 동일하고 전 세계 노동자들은 같은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노동자연대(Game Workers Coalition: 게임 산업 노동자 주도 노동 단체 및 노동조합을 위한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 GWU Montréal도 네트워크 중 하나로 포함되어 있다.)와 같은 단체는 각지의 노동자들을 이어주기 위해 활동하고 있고, 전 세계적인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GWU Montréal의 목소리는 한국 게임 업계에도 중요한 울림을 준다. 캐나다와 한국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각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게임 노동자들이 직면한 본질적 문제는 다르지 않다. 고용 불안, 크런치, 괴롭힘, 임금 인상과 공정한 보상,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배제. 이 문제들은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에 맞서는 방법 역시 마찬가지다.
더 나은 게임 산업을 향한 길은 노동자들의 연대에서 시작된다. GWU Montréal의 활동가들이 그랬듯, 넥슨코리아와 네오플의 조합원들이 그랬듯, 변화는 누군가 대신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같은 문제를 겪는 동료들과 대화하고, 작은 모임을 만들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것. 그 작은 실천들이 모여 산업 전체를 바꾸는 힘이 된다. 몬트리올 거리의 포스터가 그랬듯, 변화의 시작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