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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모던 워페어nonmodern warfare
당연한 이야기지만 매개자의 증식이 전쟁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다만 현대의 일상적인 세계는 때때로 전쟁보다도 불투명하다. 물류와 인프라가 점점 고도화되면서 모든 것들이 상시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착각이 팽배하지만, 역설적으로 매개자들의 네트워크는 (아이패드처럼) 이음새 없이 매끈하게 빛나는 표면 아래서 가시성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알고리즘의 지배로부터 팬데믹을 거쳐 급격한 기후 변동까지, 2020년대의 우리는 마치 이 모든 비인간 행위자들이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세상에 등장하기라도 한 듯이 우왕좌왕하고 있다. < Back 09 GG Vol. 22.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Wombat A freelancer who does odd jobs of all kinds. Interested, fittingly, in all kinds of odds and ends. With games, the interest runs especially deep.
- 어린이를 위한 게임은 없다
도발적인 제목을 들고 왔지만, 놀랍게도 필자는 어린이가 아니다. 더 놀랍게도 필자는 아직 2세가 없다. 당사자성이 없는 사람이 어린이와 게임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대단히 조심스러웠다. 게임제너레이션(GG) 편집장으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가정에 어린이가 있는 필자를 새로 구해보시는 게 어떠냐'라고 완곡하게 돌려 말했다. 편집장은 '어린이가 없는 입장이 보다 객관적'이라고 답했다. GG 편집진의 고약한 취미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Back 어린이를 위한 게임은 없다 18 GG Vol. 24. 6. 10. 도발적인 제목을 들고 왔지만, 놀랍게도 필자는 어린이가 아니다. 더 놀랍게도 필자는 아직 2세가 없다. 당사자성이 없는 사람이 어린이와 게임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대단히 조심스러웠다. 게임제너레이션(GG) 편집장으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가정에 어린이가 있는 필자를 새로 구해보시는 게 어떠냐'라고 완곡하게 돌려 말했다. 편집장은 '어린이가 없는 입장이 보다 객관적'이라고 답했다. GG 편집진의 고약한 취미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필자는 과거에 어린이였던 적이 있다. 필자는 그 유명한 PC방의 초글링 출신이다. <카트라이더>가 국민게임이던 시절, '놀토'만 되면 기자는 같은 반 친구들과 PC방으로 달려갔다. 매캐한 담배 연기 속에서 시프트(드리프트) 버튼을 열심히 눌렀던 기억은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무렵 PC방에는 <리니지>라든가 <뮤> 같은 게임이 인기가 있었지만, <메이플스토리>, <큐플레이>, <마비노기> 등등 어린이들이 즐길 만한 게임도 대단히 많았다. 개중에는 FPS나 '성인풍' MMORPG로 월반한 친구들도 있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모두가 <카트라이더>를 플레이할 줄 알았다는 것이다. * 한때 <카트라이더>는 명실상부 국민게임이었다. 그리고 그 인기의 중심에는 어린이들이 있었다. <카트라이더>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당대 단순 영화 잡지를 넘어 문화비평지의 기능을 수행하던 주간지 <씨네 21>은 "국민 배우 안성기에 국민 간식 떡볶이에 국민 여동생 문근영까지, 조금이라도 인기 있는 상품에는 ‘국민’이라는 딱지가 붙는다"며 "요즈음 국민 게임 칭호는 <카트라이더>에 돌아간 모양"이라고 썼다. [1] 그리고 그 인기의 비결을 "유아적 놀이 경험"이라고 분석했다. 이 "유아적 놀이 경험"이란, 만화적 캐릭터들을 통해 기존의 레이싱게임보다 간편한 게임플레이를 담은 것을 의미한다. 일각에서는 꾸준히 이 게임과 닌텐도 <마리오카트>와의 유사성 문제를 지적했다. 하지만, 당대 이용자들에게 <마리오카트>와 <카트라이더>를 둘러싼 시비는 그다지 중요한 이슈가 아니었다. 어린이 시절의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카트라이더>는 최고 동시접속자 20만 명, PC방 점유율 1위, 출시 1년 만의 등록회원 1,000만 명의 금자탑을 쌓으며 넥슨의 역사를 썼다. <카트라이더>는 2023년 출시 18년 만에 서비스를 종료했고, 후속작 <카트라이더: 드리프트>을 출시됐다. 하지만 새 게임은 국민게임이었던 전작의 아성을 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넥슨의 창업자인 고 김정주 회장은 "아이들과 부모들이 스스로 돈을 싸 들고 와서 한참 줄 서서 기다리며 디즈니 콘텐츠를 즐긴다"며 "디즈니가 부러운 건 아이들을 쥐어짜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2] 넥슨의 방향성을 아이들과 부모를 "쥐어짜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오게 만드는 것으로 제시했던 것이다. 넥슨이 2000년대 초중반 서비스했던 게임들은 실로 그런 면모를 보이고 있었고, 그 선두에는 <카트라이더>가 있었다. 이 쯤에 <카트라이더>의 옆자리에 설 게임은 단연 <메이플스토리>겠지만, 이 게임이 겪은 풍파에 대해서는 굳이 이 글에서는 구구절절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넥슨은 현재 <메이플스토리>의 블록체인게임 버전을 연구개발 중이다. [3] 아무튼 국민OO의 시절은 지났다. 국민OO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존재는 국민OO가 먹히던 시절에 그 지위를 획득한 이들에게 한정된다. 2020년대의 국민MC는 아직 우리 머릿속에 있는 그 사람이다. 이렇게 취향의 파편화가 세분화가 이루어지면서 서로가 무엇을 좋아하고 사는지 알기 어렵다. 새로운 국민배우, 국민간식, 국민여동생은 없다. 할머니는 빠니보틀과 곽튜브를 모르고, 손자는 종편방송에 쏟아지는 트로트 예능을 모른다. 독자 여러분께도 퀴즈 하나. 이 중에 혹시 '흔남'을 아는 사람이 있는가? 혹시 구글링을 시도하려고 했나? 흔한남매는 구독자 277만 명을 보유한 유튜브 채널이다. 요즘 어린이에게 압도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흔남의 존재를 모르는 초등학생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전 세대를 아우르는 '매스'미디어는 사라졌다고 해도 무방하다. 특정 드라마를 보기 위해서 일찌감치 집에 들어가는 시대는 지났다. 더구나 인구절벽으로 가파르게 줄어들고 있는 어린이를 위한 콘텐츠가 어떤 것이 있는지는 더욱 알기 어렵다. 어린이와 함께 살고 있거나, 어린이와 교류하지 않는 이상 어린이의 취향을 진단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다행히 필자에겐 조카가 있다. 조카를 '취재'한 결과, 필자와 조카 사이에 그나마 말이 통했던 것은 <포켓몬스터> 정도였다. 조카가 '1세대 포켓몬'을 알고 있다고 대답할 때, 필자는 왠지 모를 희열을 느꼈다. 하지만 그 외의 콘텐츠로 조카들과 대화를 시도해보았을 때 필자는 좌절했다. 한 번 시도해보라. "삼촌 <신비아파트> 옛날 건데요", "<뽀로로>는 애들(네 녀석도 애면서!)이나 보는 건데요"와 같은 답변을 들을 것이다. 어린이를 위한 게임을 찾는 일은 더 어렵다. 가장 참고할 만한 데이터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간한 '2023 아동청소년 게임행동 종합 실태조사'다. 아동청소년의 65.2%는 이미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다. 가장 많이 하는 게임은 <마인크래프트>, <로블록스>와 같은 샌드박스 게임(23.7%)으로 나타났다. 그 뒤는 <브롤스타즈>, <발로란트>, <서든어택>과 같은 슈팅게임(23.5%)이 차지했다. [4] * 청소년이 가장 많이 즐기는 게임 장르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샌드박스 게임은 정의 그대로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세계를 창조하는 모래상자와 같다. 매달 1억 5천만 명 이상의 어린이가 접속하는 <로블록스>는 플랫폼이다. 즉, 그 플랫폼에 접속해 직접 관찰하지 않으면, 무엇이 인기를 끌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유튜브를 들여다 보지 않으면 요즘 뜨는 '인급동'(인기 급상승 동영상)을 모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린이들은 <로블록스> 플랫폼 안에서 이 게임 저 게임을 탐험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로블록스>가 곧 게임과 같을 수 있다. 참고로 조카의 날카로운 분석에 의하면 <로블록스> 안에서 가장 인기있는 게임은 <입양하세요!>다. 본인은 <입양하세요!>에 '애들'이 너무 많아서 슈팅경쟁 게임 <머더>를 즐기고 있다고 한다. 그 말을 옆에서 같이 들은 조카의 친권자는 <머더>의 폭력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고, 필자는 대뜸 게임의 폭력성에 대한 심판관이 되었지만, 취재원 보호를 위해서 '에이, 이 정도는 괜찮아'라고 답했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즐기는 게임에 <서든어택>이 이름을 올린 것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이들은 더이상 TV나 잡지로부터 게임에 대한 정보를 얻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구독 중인 인플루언서가 특정 게임을 플레이하고, 학교 같은 내집단에서 두루 공감대를 얻었을 때 그 게임을 즐기는 것으로 관찰된다. 재미만 있어 보인다면, 2005년에 나온 FPS도 서슴없이 즐기는 것이다. 필자의 유일한 취재원인 조카는 15세 미만이기 때문에 <서든어택>을 즐길 수 없었다. 주변에서도 <서든어택>을 하지 않기 때문에 꼭 그 게임을 플레이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이뿐 아니라 각 게임 포털은 2차 인증 과정을 강화했기 때문에 예전에 필자가 그러했듯이 부모의 주민등록번호로 게임을 즐기는 것이 쉽지 않아진 모양이다. 한국갤럽 발표에 따르면, 10대 남성의 44%, 여성의 13%가 게임을 가장 즐겨하는 취미로 꼽았다. [5] 어린이들은 여전히 게임을 즐기고 있지만, 그 자리에 한국 신작 게임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인용한 표의 예시에 올라온 한국 게임 신작은 3년 전에 나온 <쿠키런 킹덤> 뿐이다. 고객의 모수 자체가 줄어드는 만큼 어린이 취향의 게임을 만드는 것이 수지타산이 안 맞는 일이 되는 듯하다. 임원을 설득하기 좋은 기획은 '10대들이 즐기는 게임'보다는 '40대 직장인들이 즐기는 게임'일 것이다. 한때 게임은 '어린이들이나' 즐기는 매체로 여겨졌다. 오락실에나 PC방에나 어린이들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을 찾아보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게 됐다. 애초에 그들의 인구가 감소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케이드와 PC방 산업의 규모가 줄어들었을 수도 있다. 스마트폰으로 가보자. 앱스토어의 게임 - 어린이 탭으로 가면 인기 차트의 1위는 <유튜브 키즈>가 차지하고 있다. 2위는 색칠놀이 게임 <퀴버>, 3위는 샌드박스 게임 <토카보카 월드>, 4위와 5위는 <밴드 키즈>와 <아이들나라>이다. 온전한 의미의 게임은 2번과 3번이고, 4번은 학교 모임, 5번은 '학습'을 위한 앱이다. 구글 플레이스토어 '키즈' 란의 '삶이 풍성해지는 게임' 코너에서도 <유투브 키즈>가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스마트폰 양대 마켓의 상위 차트는 보호자가 어린이로 하여금 건전하고 학습적인 콘텐츠를 학습시키려는 의도가 담겨있는 듯하다. 정작 어린이에게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로블록스>가 순위에는 빠져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로블록스>는 로블록스 코퍼레이션이 제공하고 있지만, 그 안의 게임들은 비슷한 또래의 창작자들이 직접 만들고 있다. 그리하여 필자는 가정의 달의 그믐에 생각한다. 어린이를 위한 게임은 더이상 만들어지지 않는 걸까? * 5월 31일 앱스토어 게임 분야의 ‘어린이’ 코너 인기 순위. 게임이 거의 없다. [1] 박상우, 「<카트라이더>는 어떻게 국민 게임이 되었나」, 씨네21, 2005.09.16. [2] 김재훈, 신기주, 「플레이: 게임 키드들이 모여 글로벌 기업을 만들기까지, 넥슨 사람들 이야기」, 민음사, 2015.12.7. [3] 김재석, 「넥슨이 그리는 블록체인 메이플스토리의 꿈」, 디스이즈게임, 2024.03.23. [4] 「2023 아동청소년 게임행동 종합 실태조사」, 한국콘텐츠진흥원, 2024.03.05. [5] 「한국인이 좋아하는 50가지 [문화편]」, 한국갤럽, 2024.05.22. Tags: 게임이용자, 유소년, PC방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김재석 8년 동안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서브컬처 스타트업에서 대외협력을 맡고 있다.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 시각장애인과 게임: 편견이라는 경계를 넘어
반지하게임즈의 스토리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이후, 시각장애인의 게임 접근성에 대하여 당사자로서 이야기할 기회가 가끔 생기고 있다. 나는 게임을 좋아하지만 잘 하지 못하고, 현재 가지고 있는 직업도 게임과는 무관한 것이라서 사실 이런 기회가 생길 때마다 늘 조심스럽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평범한 시각장애인으로서 내가 경험한 게임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시각장애인들이 더 폭넓게 게임을 즐기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역시 한 게이머의 입장으로 말해 보고자 한다. < Back 시각장애인과 게임: 편견이라는 경계를 넘어 04 GG Vol. 22. 2. 10. 반지하게임즈의 스토리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이후, 시각장애인의 게임 접근성에 대하여 당사자로서 이야기할 기회가 가끔 생기고 있다. 나는 게임을 좋아하지만 잘 하지 못하고, 현재 가지고 있는 직업도 게임과는 무관한 것이라서 사실 이런 기회가 생길 때마다 늘 조심스럽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평범한 시각장애인으로서 내가 경험한 게임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시각장애인들이 더 폭넓게 게임을 즐기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역시 한 게이머의 입장으로 말해 보고자 한다. 인간이 오감 중 시각에 의존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고들 한다. 그래서인지 시각장애인의 게임 접근성에 대해서는 다른 장애 영역에 비해서도 그 논의가 더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90년대부터 시각장애인들도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90년대 중반에는 컴퓨터가 지금보다 훨씬 고가의 물건이었고, 컴퓨터의 기본적인 사용법부터 따로 강사 선생님에게 배웠었다.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쓰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기본적으로 화면에 출력되는 내용을 읽어 주는 기능을 활용한다고 보면 된다. 운영 체제에 따라 그 이름과 기능은 달라져 왔지만 기본 틀은 같다. 다시 컴퓨터를 배우던 초등학교 당시로 돌아와서, 그 당시 선생님께서 컴퓨터에 재미를 붙이고 익숙해지라는 의미에서 가르쳐 주신 간단한 게임이 내 인생 첫 게임이었다. 90년대에 시각장애인들이 주로 했던 게임들을 생각해 보면 음성을 들으며 할 수 있는 기억력 테스트 게임이나 숫자를 맞춰서 판정하는 야구 게임, 청기 백기 게임 같은 것들이었다. 그 외에 PC 통신을 다룰 줄 알던 사람들은 현재의 MMORPG 게임의 원형 중 하나가 되는 텍스트 머드 게임을 즐기기도 했는데, 초고속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비시각장애인들이 화려한 그래픽과 더 다양한 기능이 지원되는 다른 게임으로 떠나간 뒤에도 시각장애인들은 여전히 머드 게임을 활발히 즐기고 있다. 그 외에도 체스나 윷놀이, 트럼프 등 보드 게임이나 카드 게임을 PC로 이식한 게임들을 즐기기도 했는데, 오히려 윈도우즈 운영체제가 보편화되고, 모바일로 환경이 바뀌어 가는 과정에서 이러한 게임을 시각장애인들이 즐기기에는 더더욱 어려워진 것이 안타깝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고, 애플에서 자사의 스마트폰인 아이폰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 낭독 기능인 보이스오버 기능을 기본으로 탑재하면서 시각장애인들도 스마트 시대에 발을 들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수많은 모바일 게임이 범람하는 가운데서도 시각장애인들이 즐길 수 있는 게임은 거의 없었다. 2010년대 이후에 시각장애인들이 즐길 수 있는 게임들은 대부분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개발된 오디오 게임이 주류를 이루었다. 소리를 듣고 적의 위치를 파악해 물리치는 대전 액션 게임이나 RPG부터 TCG 게임, 퍼즐 게임, 리듬 게임, 시뮬레이션 게임 등 그 장르도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이 게임들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외국 제작사에서 만드는 게임들이라 영어 정도만 지원할 뿐이라 플레이를 하다 보면 게임을 하고 있는지 듣기 평가를 하고 있는지 헷갈릴 지경이다. 게다가 시각장애인, 그 중에서도 PC 및 모바일에 익숙한 일부 사람들을 고객층으로 하다 보니 시장 규모가 작고, 그래서 만들어지는 게임들은 대부분 소규모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도 있다. 오디오 게임 외에 즐길 수 있는 게임들을 돌아보아도 그렇게 많지는 않다. 텍스트 위주로 플레이할 수 있는 웹게임이나 일부 모바일 게임인데 이마저도 대부분 영어 게임들이다. 번역기 돌린 수준이라도 한국어 지원을 해 주는 게임마저도 드문 실정이다. 사실상 2022년 현재 한국어로 시각장애인이 제대로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다. 현재 서버가 살아 있는 텍스트 머드 게임들을 합쳐 보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놓은 이유는 시각장애인이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이 적으니까 플레이 가능한 게임을 더 많이 만들어 달라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오디오 게임 등은 여러 현실적 제약으로 인해 그 규모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답은 무엇일까? 나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법적,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현재 장애인들은 게임보다도 당장의 생존에 더 밀접한 생존권 문제와 씨름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게임 접근성 관련 논의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2021년도에 국회에서 장애인의 게임 접근성 관련 법안이 발의되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하태경 의원 "게임법에 장애인 접근성 향상 넣고 가이드라인 개발하자“ - 디스이즈게임 https://m.thisisgame.com/webzine/nboard/4/?n=123269 ) 장애인의 게임 접근성 문제가 당장 급한 건 아니지 않냐고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게임은 이미 하나의 문화 현상이다. 게다가 최근 떠오르고 있는 메타버스 또한 게임의 방식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장애인의 게임 접근성은 이미 생활의 문제가 되어 가고 있는 셈이다. 또한 다양한 게임들을 거쳐 오며 시각장애인들이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불법과 탈법의 경계선을 줄타기해야 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절감하곤 했다. 앞서 시각장애인이 한국어로 플레이 가능한 게임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적다고 언급했는데, 거기서 ‘정식으로’라는 말을 앞에 붙인다면 그 개수는 더더욱 줄어들게 된다. 정식으로 플레이를 할 수 없어 개인 개발자가 개발하는 비인가 접근성 모드를 활용하여 플레이하거나, 우연히 어느 정도 플레이는 가능하지만 일부 기능은 화면 낭독 기능으로 제대로 접근조차 되지 않아 현금 결제를 하고도 혜택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기도 한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개발되는 오디오 게임들 중에서도 다른 유명 게임의 게임 방식 등을 거의 그대로 베껴 오는 경우들이 있다. 그런데 마냥 탓할 수만도 없는 것이 그런 방식으로라도 명성만 들어 보았던 유명 게임을 체험해 볼 수 있다는 게 게임을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강한 유혹이다. 또한 일부 게임의 비인가 접근성 모드를 플레이하다 보면 제작사 차원에서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답답한 마음이 들 때가 많기도 하다. 이러한 여러 문제들의 상당 부분은 장애인의 게임 접근성에 대한 논의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고, 적절한 법을 만드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법을 만들어 강제한다고 해서 상황이 바로 좋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게임 업계의 인식이다. 현재 시각장애인이 플레이 가능한 게임이 극단적으로 적은 이유는 물론 기술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시각장애인이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새로운 게임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법적, 제도적 장치 마련과 함께 뒤따라야 할 것은 인식의 변화이다. 시각장애인이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니라, 시각장애인‘도’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소수이지만 그런 사례들이 존재하고 있다. 먼저 반지하게임즈에서 제작하고 있는 모바일 게임 〈서울 2033〉의 예를 들고 싶다. 〈서울 2033〉은 출시 당시에는 시각장애인의 플레이를 상정하지 않고 만들어졌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일부 용감한 시각장애인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플레이를 시도해 본 결과 관리해야 할 중요한 수치를 읽어 주지 않아 불편한 점이 있기는 했으나 어쨌든 기본적인 플레이 자체는 가능했다. 그래서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앱스토어에 리뷰를 남겼는데 제작사에서 적극적으로 나서 주셔서 지금까지도 접근성 관련 업데이트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반지하게임즈의 다른 텍스트 게임에도 아이폰의 보이스오버와 안드로이드의 토크백 접근성이 반영되고 있다. 사운드도 없고, 글도 많은데 시각장애인도 할 수 있는 모바일 인디게임서울2033 - 스브스뉴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230699 〈서울 2033〉의 보이스오버 접근성 관련 개발은 우연에서 시작되었다. 〈서울 2033〉은 텍스트 기반으로 선택지를 고르면 그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는 방식의 게임이다. 즉, 복잡한 조작이 필요 없다. 개발 엔진도 일반적인 게임 엔진이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보이스오버로 어설프게나마 플레이가 가능해 개발사에 건의라도 해 볼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건의에 응답해 준 것은 결국 개발사의 의지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만약 반지하게임즈에서 시각장애인이 무슨 게임이냐며 무시했다면 지속적인 시각장애인 유저들의 플레이는 불가능했을 것이고, 나 또한 공모전에 참여해 스토리 작가로 활동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서울 2033〉의 보이스오버 접근성은 완벽하지 않고, 업데이트를 할 때마다 종종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관련 건의를 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개선하려는 모습을 꾸준히 보이고 있기 때문에 시각장애인 유저들 사이에서 〈서울 2033〉은 여전히 활발하게 플레이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1f-GYco-VE * 〈서울 2033〉에 적용된 보이스오버 접근성 시연 영상. 또 한 가지 사례로 XYRALITY에서 개발한 모바일 게임 〈성주와 기사〉를 들 수 있다. 〈성주와 기사〉는 예전에 유명했던 웹게임인 〈부족전쟁〉과 비슷한 방식의 게임으로 자신의 성채를 키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주변 지역을 평정해 나가는 게임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다른 유저들과 동맹을 맺기도 하며 경쟁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런 방식의 게임은 지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니 시각장애인이 플레이하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재 나의 위치를 중심으로 거리를 제시하고, 좌표 개념도 있기 때문에 충분히 플레이가 가능하다. 〈성주와 기사〉의 사례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서울 2033〉과 같이 소설과 비슷한 형식의 스토리 중심 게임 뿐 아니라 다른 방식의 게임들도 발상을 조금만 전환한다면 충분히 시각장애인들도 플레이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도에 좌표 기능을 도입하고, 주요 지점이나 NPC의 위치를 알려 주는 것만으로도 할 수 있는 게임의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 이 게임은 방식이 간단해 보이는데 버튼에 보이스오버로 접근만 되어도 플레이가 가능할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한두 번 들었던 게 아니다. 실제로 시각장애인의 플레이를 상정하지 않고 만들어진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 동원되는 온갖 꼼수들을 보고 있자면 편견을 깨고 인식을 전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기술 발전이 언제나 사람들을 풍요롭게 하는 것일까? 실제로 장애인들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이전 시대보다 활발하게 사회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만 하더라도 지금 이 글을 쓰기 위해 화면 낭독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 반대급부로 너무나 빠른 기술 발전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약자들을 도태시키기도 한다. 무인 키오스크 앞에서 난감해하는 노인이나 장애인의 이야기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화려한 그래픽이 게임에 도입되기 이전, 텍스트 머드 게임이 주류이던 시절에 시각장애인 게이머들이 오히려 다른 비시각장애인 게이머들과 공감대를 더 많이 형성할 수 있었다. 엄청나게 비싼 슈퍼 컴퓨터 한 대보다 도로의 턱 높이를 낮추는 것이 휠체어를 탄 사람의 활동에는 훨씬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서울 2033〉이나 〈성주와 기사〉 같은 사례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바는 명확하다. 시각장애인, 나아가 장애인의 게임 접근성, 그보다 한 차원 더 나아간 장애인의 각종 권리를 신장하기 위해서는 기술 발전과 대규모 자본 투자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편견이라는 이름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 또한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가 게임을 좋아하는 건지도 모른다. 게임 속 세계에는 편견도 제약도 없다. 어떤 역경이라도 게임의 규칙 안에서는 넘어설 수 있는 난관일 뿐이다. 지난 1년 동안 아주 조금이지만 게임을 만드는 현장을 엿보면서 게임을 만든다는 일은 굉장히 창조적인 에너지를 요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과 게임. 지금 당장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느껴지지만, 게임을 만드는 분들의 열정과 아이디어가 모인다면 언젠가 그 두 단어의 조합도 자연스러워지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반지하게임즈 스토리 작가) 강신혜 게임에 관심이 많은 시각장애인입니다. 현재 중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근무하는 동시에 반지하게임즈의 게임 스토리 작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 게임플레이의 영화화에서 게임-보기의 영화화로
“치킨 조키!” 주인공 스티브가 외치자 영화관의 관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팝콘을 집어 던진다. 영화 <마인크래프트 무비>(2025)가 개봉한 미국 영화관의 풍경이다. 틱톡 등 숏폼 플랫폼을 타고 바이럴된 컬트적 현상은 지난해 예고편이 공개되자 거센 조롱이 뒤따랐던 것에서 출발한다. 스티브역의 잭 블랙은 게임 팬들이 생각하던 이미지와 큰 괴리가 있었고, CGI로 ‘실사화’된 마인크래프트 특유의 네모난 이미지가 언캐니 밸리를 자극했다. < Back 게임플레이의 영화화에서 게임-보기의 영화화로 24 GG Vol. 25. 6. 10. “치킨 조키!” 주인공 스티브가 외치자 영화관의 관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팝콘을 집어 던진다. 영화 <마인크래프트 무비>(2025)가 개봉한 미국 영화관의 풍경이다. 틱톡 등 숏폼 플랫폼을 타고 바이럴된 컬트적 현상은 지난해 예고편이 공개되자 거센 조롱이 뒤따랐던 것에서 출발한다. 스티브역의 잭 블랙은 게임 팬들이 생각하던 이미지와 큰 괴리가 있었고, CGI로 ‘실사화’된 마인크래프트 특유의 네모난 이미지가 언캐니 밸리를 자극했다. 2019년 <수퍼 소닉>(2020)의 예고편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어글리 소닉’의 모습에 충격받은 게임 팬들과 같은 상황이었달까. 소닉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마인크래프트 무비> 예고편은 정식 개봉 전부터 다양한 짤로 분해된 밈이되었다. 전혀 스티브 같지 않은 모습의 잭 블랙이 “나는 스티브야!”라고 말하거나, 컬트적 밈의 대상이 된 ‘치킨 조키’처럼 말이다. * <마인크래프트 무비>(2025) 속 ‘치킨 조키’ 어쩌면 이 현상은 원작 게임은 물론 영화 자체와도 관련이 없을지도 모른다. 영화관에서 소리 지르고 팝콘을 던지며 날뛰는 관객들은 단지 그 순간을 즐길 뿐, 영화의 나머지 장면을 즐기지 않는다. 원작의 이미지를 실사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어색함과 불쾌함에서 출발한 조롱이 밈의 근원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밈을 생산하고 즐기는 이들이 모두 게임의 팬이라 볼 수도 없다. 아이코닉한 게임의 이미지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불일치가 이들의 향유 대상이다. 게임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들의 계보에서 이 불일치를 살펴보는 것은 꽤나 흥미롭다. 불일치를 먼저 이야기했지만, 사실 이미지의 측면에서 게임과 영화는 점차 닮아가고 있다. 게임엔진이 영화의 VFX 작업에 활용된 역사는 사실상 CGI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그뿐 아니라 게임과 영화는 대중문화라는 큰 맥락 속에서 상호참조의 대상이다. <레이더스>(1981)를 모티프 삼아 제작된 게임 [툼 레이더](1996)는 그것의 영화판인 <툼 레이더>(2001)의 개봉 이후 게임 속 라라 크로프트의 모델링이 안젤리나 졸리의 모습과 유사하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 제작되어 인기를 끈 ‘트레저 헌트’ 장르의 어드벤쳐 영화들, 이를테면 <미이라>(1999)나 <내셔널 트레져>(2004) 또한 툼 레이더의 자장 안에 있다. [툼 레이더]의 성공은 [언챠티드]라는 새로운 게임 프랜차이즈 탄생에 영향을 주었고, [언차티드 3: 황금 사막의 아틀란티스](2011)에서는 아예 해리슨 포드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광고가 등장하기에 이른다. 다른 한편으로,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2023)의 후반부 추락하는 기차를 기어오르는 톰 크루즈의 액션은 [언차티드 2: 황금도와 사라진 함대](2009)의 초반부를 오마주한다. 영화사의 맥락에서 톰 크루즈와 기차를 보고 버스터 키튼의 <제네럴>(1927)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물건들을 붙잡고 등반하듯 추락하는 기차에 매달려 있는 모습은 [언차티드 2]를 명백한 레퍼런스로 삼고 있다. *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1993)의 포스터(위), 영화 속 쿠파와 굼바(아래) 다만 이러한 일치와 상호참조는 게임과 영화 사이의 관계가 역사적으로 누적됨으로써 성립된 것이다. 1993년 개봉한 최초의 게임 원작 영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에서는 원작 게임과 영화 사이의 불일치를 강력하게 보여준다. 영화는 “This Ain’t No Game”이라는 문구를 포스터에 내세운만큼 게임과 전혀 다른 이미지를 보여준다. 브루클린에 거주하는 이탈리아계 이민자 마리오 형제는 배관공으로 일하던 중, 도시 한 가운데 유적지를 조사하던 데이지가 쿠파에 의해 잡혀간 것을 목격하고 뒤쫓는다. 그들은 숨겨져 있던 지하도시 ‘디노하탄’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데이지를 구하기 위한 모험을 택한다. 영화의 줄거리는 “쿠파에게 납치된 공주를 구한다”라는 원작의 큰 맥락을 그대로 따라간다. 하지만 영화가 구현하는 이미지는 게임과 영 딴판이다. 버섯왕국은 브루클린 지하의 공룡도시로 바뀌었고, 거북이를 모티프 삼았던 쿠파는 인간화된 티라노사우루스가 되었으며, 버섯 몬스터 굼바는 퇴화한 공룡인간이라는 기묘한 설명으로 바뀌었고, 요시는 작은 벨로시랩터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버섯이나 꽃을 먹고 파워업된다는 설정은 남아 있으나, 게임에서의 파워업보다는 각성제에 가깝게 묘사된다. 마리오와 루이지의 의상과 직업 정도를 제외한다면 원작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당연하게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혹평과 함께 흥행 참패를 겪었다. 연출자들은 본래 원작과 유사한 동화풍의 비주얼로 영화를 제작하고자 하였으나, 제작비의 문제로 1980~90년대 유행하던 디스토피아 풍의 비주얼로 변경되었다. 그 과정에서 원작 게임의 요소들이 큰 변화를 겪은 것이다. 여기에는 원작 게임이 가진 세계를 영화로 옮겨오는 것, 마리오와 루이지가 아이템을 먹고 파워업하거나 점프로 벽돌을 부수는 등의 행위들을 곧장 실사영화로 옮겨왔을 때의 문제점도 동반될 것이다. 2023년 닌텐도와 일루미네이션 스튜디오의 합작으로 제작된 극장판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애니메이션 혹은 TV판 애니메이션에서는 어색하지 않았을 행위들이 ‘실사’라는 맥락에서 구현되기엔 무리가 있다. 나아가 1993년의 시점까지 출시된 [슈퍼 마리오] 게임들에는 “쿠파에게 납치된 공주를 구한다”라는 이야기의 뼈대만 존재할 뿐 디테일한 서사가 없다. 그러한 상황에서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으로 각색된 실사영화의 실패는 필연적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어쩌면 이 영화는 원작 게임을 철저하게 배반했기에 컬트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기도 하다. 극장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디스토피아적 세계관과 제멋대로 변형된 캐릭터들은 (물론 퀄리티의 조악함은 있으나) 컬트적 인기를 끌었다. 또한 이후의 작품들, 이를테면 브루클린에 거주하는 마리오 형제와 그곳을 침공한 쿠파 일당을 격퇴한다는 설정이 2023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애니메이션에서 반복되고,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2017)의 ‘도시 왕국’ 스테이지 또한 이 영화의 영향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원작 게임과 영화 사이의 불일치는 기묘한 상호참조로 이어지기도 함을 보여준다. *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2023, 위)와 <명탐정 피카츄>(2019, 아래) 스틸컷. 극장용 장편영화에 어울리는 내러티브가 결여된 ‘슈퍼 마리오’이니 다른 게임 원작 영화의 예시를 들어보자. <명탐정 피카츄>(2019)는 포켓몬 IP를 활용한 동명의 추리게임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에서 중후한 탐정의 목소리였던 피카츄의 목소리를 영화에서는 라이언 레이놀즈가 맡으며 캐릭터 성격의 변화가 발생하지만.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찾기 위해 라임시티에 온 주인공, 우연히 피카츄와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는 설정, 이상행동을 보이며 난폭하게 폭주하는 포켓몬 등 주요 설정과 이야기 전개는 동일하다. 다만 포켓몬 세계의 영화화에서 중점이 되는 것은 이야기의 문제가 아니다. <명탐정 피카츄>는 포켓몬 팬들이 상상하던 포켓몬과 공존하는 도시의 이미지를 구현하는 데 전력을 다한다. 비슷한 시기 공개된 <슈퍼 소닉> 예고편의 ‘어글리 소닉’에 쏟아진 혹평과 반대로, 영화 속 포켓몬의 모습은 (다소 과하게 리얼하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팬들이 상상하던 ‘실사화된’ 포켓몬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구현했고, 게임 속 평면적인 도시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다른 포켓몬 게임이 아닌 명확한 내러티브를 지닌 [명탐정 피카츄](2016)을 경유하여, 충분한 핍진성을 가진 세계로서 이를 구현했기에 가능하다. 동시에 ‘포켓몬’이라는 대상이 지닌 환상성과 가상성은 현실 세계를 베이스 삼은 게임들의 영화화와 다른 방향의 영화화를 가능케 한다. 이를테면 영화판 <히트맨>(2007), <맥스 페인>(2008), <언차티드>(2022) 등은 게임플레이나 게임이 그려낸 세계가 지닌 가상성을 소거한 채 전형적인 ‘액션영화’, ‘범죄영화’, ‘어드벤쳐 영화’가 되었을 뿐이다. * 왼쪽부터 <모탈 컴뱃>(1995), <레지던트 이블>(2002), <수퍼 소닉>(2020), <더 라스트 오브 어스>(2024) 내러티브의 차원에서 원작 게임을 영화로 충실히 번역하는 것만이 정답인 것만은 아니다. 원작의 방대한 세계관을 열심히 옮겨온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2016)이나 <어쌔신 크리드>(2016)는 그것의 일부만을 부족하게 옮겨왔을 뿐이다. <사일런트 힐>(2006) 같은 소수의 사례를 제외하면, 폴 W. S. 앤더슨의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2002~2016)나 <슈퍼 소닉>처럼 원작의 몇몇 설정만을 따오고, 오리지널 캐릭터를 추가하며, 원작의 캐릭터가 지닌 성격을 팝콘무비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재구성한 사례가 더욱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HBO 드라마 <더 라스트 오브 어스>(2024)의 첫 시즌에서 가장 호평받은 에피소드는 게임에서 그저 우연히 습득할 수 있는 편지를 읽어야 캐치할 수 있는 ‘로어’를 서브플롯으로 확장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영화들에서도 원작 팬들의 플레이 경험을 자극할 수 있는 요소는 필수적이다. <레지던트 이블> 1편에는 [바이오하자드](1996)의 주요 무대인 아크레이 저택이 등장한다. <둠>(2005)은 내러티브상의 설정에선 원작과 큰 차이가 있지만, 1인칭 시점의 롱테이크 액션 시퀀스를 삽입함으로써 FPS 게임의 감각을 가져온다. <수퍼 소닉>의 속도감은 슈퍼히어로 영화 속 스피드스터의 액션과 별반 다르지 않게 연출되지만, 게임의 시그니처 같은 몸통박치기를 액션에 추가한다. 이러한 방식은 원작의 일부만을 가져와 장편영화의 내러티브로 각색했음에도 게임플레이를 연상시킴으로써 게임과의 연결고리를 유지한다. 영화평론가 V. F. 퍼킨스는 영화가 그려내는 세계를 관객이 수용하는 것은 그것이 현실을 그대로 복제한 리얼리즘에 기반하기 때문이 아니라, 관객에게 영화 속 세계의 존재에 대한 신뢰를 줄 수 있는 연출로 인해 가능하다고 말한다 [1] . 게임이 영화로 각색되는 과정에서 원작과의 불일치가 발생하지만, 게임플레이의 영화적 구현을 시도함으로써 게임의 가상성을 영화의 핍진성 속에 기입하는, 지난 30여 년간의 게임 원작 영화가 누적되며 형성된 하나의 전략이랄까. 이들 영화는 관객이 이미 알고 있는 세계가 영화 안에서도 존재하고 작동한다는 신뢰성을 얻어내기 위한 전략을 개발하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액션, 호러, 어드벤쳐 등 익숙한 장르영화의 문법에 게임플레이적 순간을 기입하는 전략은, 비록 장르적 전형성 속에서 비평가들의 호평을 얻진 못해도 게임을 즐겨온 대중의 호응을 얻는 데는 성공한다. 1990년대의 <스트리트 파이터>(1994)와 <모탈 컴뱃>(1995)이 그랬고, <사일런트 힐>이나 <명탐정 피카츄>가 그랬으며, 2023년의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성공한 전략이다. <마인크래프트 무비> 또한 이 같은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특히 “납치된 공주를 구한다” 수준의 단순한 로그라인조차 존재하지 않는 [마인크래프트]의 영화화는 이러한 전략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다. 드라마 <더 라스트 오브 어스>나 <반교: 디텐션>(2019) 같은 스토리텔링은 불가능하거니와, 게임 내적으로 부재한 내러티브를 그 바깥의 사건으로 대신한 <그란 투리스모>(2023)나 <테트리스>(2023)와 같은 방식 또한 불가능하다. [팩맨]이나 [갤러그](1981), [테트리스](1985)의 형상을 한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한다는 이야기의 <픽셀>(2015) 같은 방식을 도입하기에도 어렵다. 물론 ‘스토리 모드’가 존재하지만, 별도의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제작되거나 유튜브의 무수한 팬 무비의 영역에 놓일 뿐이다. 사실 가장 히트한 샌드박스 게임으로서 [마인크래프트]는 머시니마(machinima) 팬 무비의 대표적인 재료가 된다. 이 게임 안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며, <마인크래프트 무비>에서도 강조되듯 ‘창의성’이 게임플레이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 ‘오버월드’가 관객에게 신뢰받는 세계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의 이미지뿐 아니라 창의성이라는 키워드가 하나의 세계로서 작동하는 방식을 그려내야 한다. * <마인크래프트 무비> 속 스티브(좌)와 마을(우) 하지만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창의성과 거리가 멀다. 익숙한 ‘이세계’ 판타지물의 배경이 ‘오버월드’와 ‘네더’로 바뀌었으며, 스티브 일행을 제외한 모든 것이 네모난 큐브 혹은 픽셀 형태의 그래픽으로 표현될 뿐이다. 게임적 가상세계를 배경삼은 최초의 영화 <트론>(1982)부터 스필버그의 야심작 <레디 플레이어 원>(2016)에 이르는 게임 배경의 영화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게임의 가상세계와 현실 사이의 이분법을 고스란히 따른다. 영화 속 ‘마인크래프트’ 세계는 현실과 다른 세계일 뿐 게임이 내세웠던 ‘자유로운 창의성의 세계’가 아니다. 그저 현실과 다른 규칙이 적용되고 다른 존재들이 살아가는 어딘가일 뿐이다. 이는 <마인크래프트 무비>가 택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였을 것이다. 때문에 영화는 게임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장면들을 영화 속에 욱여넣는다. 투병생활 중 세상을 떠난 [마인크래프트] 유튜버 ‘테크노블레이드’를 등장시키며 “저건 전설이야”라고 언급하고, 추락 도중 물 블록을 까는 ‘물 낙법’, 레드스톤의 힘으로 움직이는 광차 트랙, 앤더맨으로 가득한 저택 등의 순간을 영화 내내 선보인다. ‘치킨 조키’ 장면도 이러한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게임플레이적 순간을 영화에 기입하는 것을 넘어, 그것이 숏폼으로 전파되는 밈으로 빠르게 자리 잡길 잠재적으로 요청한다. (실제 제작과정이 그러하진 않았겠지만) 영화의 1차 예고편에서 “나는 스티브야!”라는 대사가 흘러나오는 순간,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한편의 영화라기보단 산산히 분해되고 밈으로 재생산되는 콘텐츠로서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마치 게임 유튜버들이 10~20분짜리 본영상의 하이라이트를 다시금 숏츠로 뽑아내듯이. 2023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와 같은 작품이 관객 개인의 게임플레이 경험을 연상시킨다면,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타인의 게임플레이를 시청하던 경험을 연상시킨다. 내러티브가 부재한 게임의 내러티브는 게임의 디렉터나 디자이너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들의 경험이 누적되며 생성된다. 출시로부터 어느덧 16년이 흐른 [마인크래프트]는 그 시간만큼 많은 플레이가 누적되어 있고, 각각의 플레이는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유튜브나 트위치의 시청자들은 그 내러티브를 게임의 내러티브로서 수용한다. 게임이 내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게임을 매개로 펼쳐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마인크래프트] 뿐 아니라 [시티즈: 스카이라인](2015)이나 [플래닛 코스터](2016) 같은 건설·경영 시뮬레이션 게임, [심즈](2000~2014) 등의 라이프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내러티브 없는 게임의 스트리머·유튜버들이 플레이 과정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에서도 관찰할 수 있다. * <마인크래프트 무비> 상영 당시 팝콘을 던지지 말라는 극장 안내문 이러한 맥락에서, 서두에 언급한 ‘불일치’는 게임플레이를 통해 형성된 내러티브와 그것의 영화화 사이의 간극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그것의 향유는 ‘게임’의 향유와 ‘영화’의 향유 사이에 놓인 틈새, 플레이와 시청 사이에 놓인 게임 소비 패턴의 연장선상에 있다. 사실 우리는 10년 전 장난감 원작의 영화 한 편이 ‘놀이’를 영화에 기입함으로써 성공한 바 있음을 알고 있다. <레고 무비>(2014)는 그저 평범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그의 모험이 사실은 레고를 가지고 노는 어린이에 의한 것이었음을 영화 후반부에 드러낸다. 디지털 게임을 원작 삼은 영화에서도 그것이 가능할까?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그것을 정교한 영화적 내러티브 속 메타적 장치로 활용하진 못한다. 다만 이 영화의 관객들은 영화관에 방문하지만, 그들이 관람하길 바라는 것은 정교한 세계가 아니라 자신들이 게임과 가진 경험 속에서 기억하는 이야기와 순간들의 재현이다.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하나의 완성된 영화로 만들어지는데 실패했지만, 원작과의 불일치 속에서 의도치 않게 지금의 게임 소비 환경을 영화 외적인 방식으로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원작 게임을 멀찍이 벗어나 괴상망측한 장르영화로 향했던 우베 볼의 영화들이나 내러티브의 부재를 게임 바깥의 사건으로 대리한 <그란 투리스모>, <테트리스>와도 다르다. 제작이 예정된 무수한 게임 원작 영화들이 방대한 세계관의 영화화를 예고하고 있을 때,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게임의 세계관이나 게임플레이가 아니라 게임-보기의 영화화가 하나의 방식일 수 있음을 예측할 수 없던 방식으로 보여준다. [1] V. F. 퍼킨스. 『영화로서의 영화』. 임재철 옮김. 서울: 이모션북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박동수 학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했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하고 있다. 영화에 관한 글을 주로 쓰고, 미술, 게임, 방송 등 시각문화 전반에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 영화평론가, 팟캐스트 [카페 크리틱] 진행자, 공동체상영 기획자이기도 하다.
- 여름은 언제 시작할까 - 북미 최대의 게임쇼, E3가 맞이한 변화와 도전
미국에는 100일간의 여름(100 days of summer)라는 개념이 있다. 5월의 마지막 월요일에 자리잡고 있는 공휴일인 메모리얼 데이를 여름의 시작으로 본다. 한국으로 치면 현충일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 메모리얼 데이는 가진 의미와는 상관 없이 그렇게 한국의 절기로 치면 입하같은 날이다. 그리고 여름의 끝은 9월의 첫째 월요일인 레이버 데이다. 노동절 연휴가 되면 이제 여름이 끝났음을 실감한다. 대략 이 기간이 100일이기 때문에 이 때를 100일간의 여름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도 소소한 인기를 끈 영화 500일의 썸머 또한 이런 개념에서 제목을 빌려온 것이다. 여름에 특별한 시작과 끝이 있다는 개념. 이 개념에 입각해서 보자면 게이머들에게 여름의 시작과 끝은 뭘까? 게이머들에게 여름의 시작은 E3고 끝은 게임스컴이다. < Back 여름은 언제 시작할까 - 북미 최대의 게임쇼, E3가 맞이한 변화와 도전 01 GG Vol. 21. 6. 10. 여름은 언제 시작할까? 한국에는 입하라는 날이 있기 때문에 이 날이 공식적으로 여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이런 절기상 여름 말고 사람들은 누구나 본인의 문화적 배경이나 취향에 따라서 서로 다른 날을 여름의 시작으로 생각할 것이다. 미국에는 100 일간의 여름 (100 days of summer) 라는 개념이 있다 . 5 월의 마지막 월요일에 자리잡고 있는 공휴일인 메모리얼 데이를 여름의 시작으로 본다 . 한국으로 치면 현충일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 메모리얼 데이는 가진 의미와는 상관 없이 그렇게 한국의 절기로 치면 입하같은 날이다 . 그리고 여름의 끝은 9 월의 첫째 월요일인 레이버 데이다 . 노동절 연휴가 되면 이제 여름이 끝났음을 실감한다 . 대략 이 기간이 100 일이기 때문에 이 때를 100 일간의 여름이라고 부른다 . 한국에서도 소소한 인기를 끈 영화 500 일의 썸머 또한 이런 개념에서 제목을 빌려온 것이다 . 여름에 특별한 시작과 끝이 있다는 개념 . 이 개념에 입각해서 보자면 게이머들에게 여름의 시작과 끝은 뭘까 ? 게이머들에게 여름의 시작은 E3 고 끝은 게임스컴이다 . 매년 E3 가 열리던 6 월은 게이머들에게 올해 대작들은 뭐가 나오는지 볼 수 있고 더운 여름 집 안에 혹은 사무실에서 ‘돌릴’ 게임이 뭔지 생각해 보는 시기였다 . 화려한 부스들이 가득한 E3 의 행사장에 가지 못하면 무척 아쉽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 역사적으로 봐도 E3 는 ‘산업종사자들을 위한 행사’였던 기간도 꽤 길다 . 일반적인 게이머들은 행사장에 들어갈 수 없었을 때도 많았다는 이야기 . 하지만 E3 는 언제나 일반 게이머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 대형 게임사들이 발표하는 뉴스만으로 많은 사람들을 설레게 했기 때문이다 . 그래서 북미의 게이머들에게 E3 는 ‘게임의 여름’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 코로나는 모든 것을 바꿔 놓는다 . 게임의 여름도 . 하지만 2020 년에는 게임의 여름이 없었다 . 코로나가 여름이란 존재를 삭제해버렸다 . E3 뿐만 아니라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오프라인 이벤트들이 취소됐다 . 미국 내에서 2020 년에 가장 크게 유행을 탔던 말을 하나 꼽자면 ‘취소’ (cancel) 였을 정도 . 취소를 망설이면서 시간을 끄는 행사들은 온라인에서 ‘책임감없이 행동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 E3 의 오프라인 이벤트 취소는 너무 당연한 수순이었다 . E3는 아주 전형적인 공룡이었다 . 기업은 생산성을 떨어뜨리지 않고 재택 근무로 전환해야 하며 이런 유연성이 바로 기업의 경쟁력이라는인식에 기초해 볼 때 E3 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경직된 회사였다 . 온라인 이벤트로 재빠르게 전향해서 브랜드를 살릴 기회가 없던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 이벤트를 취소한 뒤에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 . 온라인 행사를 기획하고 실행할 능력이 없었다 . 게임의 여름은 신호탄 없이 표류하기 시작했다 . 그리고 진공상태가 된 이 자리를 누가 채울까 하냐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 온라인 이벤트로 E3 에 모일 시선을 잡아 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 그리고 그 자리를 치고 들어가서 가장 눈 길을 끈 것은 제프 킬리였다 . 진공상태를 채우려던 제프 킬리 제프 킬리는 캐나다 출신의 게임 저널리스트이자 게임 행사의 사회자이며 프로듀서다 .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E3 의 메인 행사들을 진행했었다 . 게임계 최대의 이벤트마다 호스트로서 함께 할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거대했다 . 본인이 주관하고 프로듀싱하는 ‘아카데미 스타일’의 게임 시상식인 The Game Awards(TGA) 를 시작한 2014 년 경부터 그의 영향력은 더 커졌다 . 보통 매체에서 선정을 하고 리스트만을 발표하던 기존의 게임 시상식과는 달리 TGA 는 화려한 쇼를 동반했고 그 중심에는 호스트인 제프 킬리가 있었다 . TGA 는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GOTY 를 정할 때 메이저로 거론되는 행사에 꼽힐 정도로 급성장을 했다 . 그렇게 본인 자신의 브랜드가 그 어떤 게임계의 인사보다 커져감을 느낀 그는 사실 2020 년에 본인의 야망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오랫동안 해오던 E3 호스트 역할을 고사했다 . 본인이 떠남으로서 무게감이 떨어진 E3 를 대체할 무엇인가를 기획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인들의 예상이었다 . 타이밍 또한 절묘했는데 그 동안 영향력이 꾸준히 하락해 온 E3 는 2020 년에 치명타를 맞을 것으로 보였다 . 제프 킬리 외에도 행사장의 디자인을 책임지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역할을 하기로 했던 에이전시 iam8bit 또한 e3 에서 손을 떼겠다고 밝히면서 행사에 대한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 그런데 코로나는 이런 계획에 도움도 아니고 타격도 아닌 이상한 상황을 만들었다 . E3 가 없어진 진공상태를 만들었지만 제프 킬리 조차 이런 갑작스런 상황에 완벽히 대비됐을리가 없다 . 그는 업계인들에게 Summer Game Fest(SGF) 라는 행사를 조직할 것이며 원하는 게임제작사나 퍼블리셔들은 누구나 무료로 참여가능하다고 덱을 만들어 돌리기 시작했다 . 딱 봐도 허술한 느낌이 들었지만 급하게 만들어진 것 치고는 나쁘지 않다는 반응도 있었다 . 급조된 100% 온라인 이벤트긴 했지만 제프 킬리 개인의 브랜드를 통해 꽤 많은 게임사들의 참여를 이끌어 냈다 . E3 가 없어진 공간은 누구도 제대로 채우진 못했지만 그나마 제프 킬리가 앞서가고 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었다 . 승부의 해 2021 년 2021년에는 자연스럽게 대결구도가 형성됐다 . 2020 년을 통채로 날려버린 E3 측은 이번에야 말로 100% 온라인 이벤트를 진행하겠다고 하면서 2 월부터 계획을 발표해나갔다 . 버추얼 부스와 온라인 컨퍼런스를 혼합한 형식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 공식적으로 게임의 여름이 돌아왔음을 알린 것이다 . 지난해 SGF 는 물론 TGA 까지 100% 온라인 이벤트로 진행하면서 경험을 쌓은 제프 킬리는 2021 년을 E3 타도 원년의 해로 정한 것같이 매우 공격적으로 행사를 준비했다 . E3 의 개최날짜가 발표되자 거의 비슷한 시기를 골라서 SGF 를 개최했다 . 정면승부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 행사가 조금씩 가까워 오자 양측은 게임의 여름을 준비하는 퍼블리셔들에게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내기 시작했다 . 닌텐도 , 마이크로소프트 , 유비소프트 , 소니와 같은 초대형 퍼블리셔들이 어떤 행사에 참가하는지가 이벤트의 성패를 가르기 때문이다 . 주목도가 높은 이벤트에 마케팅 예산을 쏟아부어 자신의 게임을 알려야 하는 중소 퍼블리셔들은 치열한 눈치게임에 들어갔다 . 게임의 여름에서 살아남은 승자는 SGF 일지 E3 일지에 많은 이목이 쏠렸다 . E3와 SGF 누가 이겼을까 ?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무승부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 E3 는 전통의 강자답게 많은 퍼블리셔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 닌텐도 , 유비소프트 , 스퀘어 에닉스 , 엑스박스와 베데스다 등이 E3 의 브랜딩 아래 자신들의 행사를 진행했다 . 하지만 E3 의 버추얼 부스 및 행사의 진행은 최악이라는 평을 면하지 못했다 . 특히나 시스템 오작동으로 버추얼 부스를 운영해야 하는 벤더들이 접속조차 하지 못하는 사고가 기사화 되기도 했다 . 코타쿠가 쓴 ‘ E3 는 매우 실망스럽다’는 직설에 가까운 기사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기도 했다 . SGF가 완승이냐고 하면 그렇게 말하긴 힘들다 . 많은 퍼블리셔들이 SGF 의 브랜드 아래서 행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 하지만 최소한 제프 킬리는 현재 게임계에서 가장 많이 기대를 받는 게임 엘든링을 본인의 행사를 통해서 공개하면서 이른바 ‘대세감’을 보여줬다 . 최소한 SGF 가 E3 와 ‘맞짱’을 뜰만하다는 인식을 심는데 성공했다 . 물론 엘든링을 제외하면 쇼 자체는 AAA 급 타이틀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실망스럽단 의견도 많았다 . 게임쇼의 미래 사실 그렇다면 SGF 와 E3 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 미국에서 격돌을 한 두개의 행사는 게임쇼의 미래를 가늠하게 한다 . 100% 온라인으로 진행된 이번 이벤트는 과연 우리에게 게임쇼라는 것이 필요한가 되묻게 한다 . 일주일 동안 벌어진 게임계의 축제는 E3 나 SGF 라는 ‘행사의 브랜드 네임’보다는 거대한 게임을 보유하고 언제 어떻게 이를 공개할지 칼자루를 쥐고 있는 퍼블리셔들에게 좌우됐다 . 이 기간 동안 가장 많은 동시시청자수를 기록한 것은 닌텐도의 이벤트였다 . 엘든링이 나온 SGF 를 아주 근소한 차이로 제쳤다 . 엄청난 기대를 받고 있는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 후속편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 닌텐도의 행사 자체는 닌텐도의 중역들이 어설픈 스피치를 하는 최악의 것이었지만 IP 의 힘으로 310 만명이 넘는 시청자를 끌어모은 것이다 . 그렇다면 닌텐도의 발표가 E3 라는 브랜딩 아래 이뤄지지 않았다면 과연 주목도가 떨어졌을까 ?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 따라서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 과연 게임쇼라는 커다란 우산을 필요할까 ? 퍼블리셔들이 그 우산 밑으로 들어가야 하는가 ? 이것에 대한 답은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오프라인 행사를 개최하기로 결정한 PAX 웨스트 때 다시 한 번 떠오를 것이다 . 코로나는 모든 것을 바꿨지만 가장 크게 바꾼 것은 게임쇼라는 개념 자체일지도 모른다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나성인) 홍영훈 캘리포니아에서 살면서 게임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에 출연하고 매체에 기고를 하며 많은 분들에게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패션부터 게임까지 분야에 상관없이 재밌는 글을 평생 쓰고 싶습니다.
- 프리 포 올에서 협력을 유도하기 – 아크 레이더스
멀티플레이어 게임이라는 틀 안에서도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은 정말이지 천차만별의 형태를 보인다. 게임이 추구하는 바에 따라 서로 적대적인가, 우호적인가, 규모는 얼마나 되는가, 실시간인가 비동기인가 같은 각종 요소에 따라 어떤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가의 큰 틀이 정해지곤 한다. < Back 28 GG Vol. 26. 2. 10. Tags: 익스트랙션슈터, 코옵, 슈터, 1인칭, FFA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MyungKyu Lee Game journalist (2014–), writer (2006–), gamer (1996–).
- 프레임의 너머를 위한 프레이밍 : 「The Star Named EOS 별을 향한 여정」
C. 티 응위옌은 ‘게임은 여러 행위성 형식을 저장하고 주고받기 위한 하나의 매체’라는 흥미로운 주장을 펼친 바 있다. 게임이란 하나의 도전적 고투를 통해 일시적 몰입을 발생시키는 기입적 매체이며, 그 기입의 중심에는 특정한 행위agency가 있다는 의미이다. 물론 티 응위옌이 다루는 ‘게임’이라는 범주는 비디오 게임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따라서 이 ‘행위’의 범주를 조금 복잡하게 바라볼 필요는 있다. < Back 22 GG Vol. 25.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unin Lee Writes and lectures freely across comics, games, and film. A lifework: clearing every Final Fantasy title except the MMORPGs. Mainly plays on the Steam Deck.
- 오래된 코옵에 관한 소고
맥락의 큰 단절이라 할만한 흐름은 스마트폰, SNS, 유튜브 시대에 이르러 왔다. 이 시기 인터넷은 초연결의 시대에 도달한 후 마치 압력이 가득한 풍선이 뻥 터지는 것처럼 되었다. 원심력이 강화되면서 개별화, 파편화, 탈맥락화가 인터넷 문화의 핵심이 되었다. < Back 28 GG Vol. 26.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aeSeok Kim Kim is known for his activities as a critical expert on current affairs in various press media. But he is also an active gamer who never let go of games. Some of his publications includes 『a cynical society』, 『Otaku Loved Lenin』, as well as a co-author of 『Now, Here, Far-Rightism』, 『right-wing discontent』, 『Twitter, that 140-character egalitarianism』. His latest publication is 『Democracy where you vote because you don't like that side』.
- 대중문화의 변화 위에서 게임의 미래를 묻다: GXG2025 컨퍼런스 GG 세션, <시각예술콘텐츠의 오늘과 미래>
<시각예술콘텐츠의 오늘과 미래>라는 제목은 게임 행사에서 게임 비평 잡지가 기획한 자리의 이름이라고 보기에 너무나 방대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문화로서의 게임을 이해하려면 현실의 대중문화를 만들어내는 매체들과 게임이 어떻게 협응하는지, 또 대중문화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살펴야 한다. < Back 26 GG Vol. 25.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won Seo Studies culture in pursuit of a more interesting life. Curious about a wide range of cultural domains, including games, religion, and film.
- [Editor's View] 연결되고 재현되는 신체, 그리고 비평과 대중 사이를 잇는 가교로서
사람으로 태어난 게이머에게 몸은 필요조건입니다. 게임 소프트웨어는 상호작용을 요구하며, 이에 대해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신체의 기능을 사용해 응답해야 합니다. 사람이 게임 안쪽에 재현되는 경우라면 신체의 중요성은 더 무거워집니다. 게임 속에 그려진 신체는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사람에 의해 조작되는 신체이며, 이 결과물들은 결국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신체를 사고하는 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 Back 22 GG Vol. 25.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게임결제문화의 25년 변화가 드러내는 온라인게임의 특이점
디지털게임의 결제수단과 결제방식은 오늘날 게임계 이슈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단순히 신작 타이틀과 DLC, 시즌패스의 가격과 가성비 논란부터 시작해 최근에는 인게임 아이템의 가성비 문제, 이용자간 거래 문제, 그리고 확률형아이템 문제에 이르기까지 게임 분야의 핫 이슈 상당수는 게임의 결제와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있다. < Back 23 GG Vol. 25. 4. 10. Tags: 플랫폼, 산업, 결제, 정치경제학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번영과 몰락과 애도의 이야기, <33원정대>
특히 이야기의 결론부에서 집중적으로 다룬 애도에 관한 고민들은 게임이 딱히 어떤 정답을 내놓는 것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사회적 참사와 그로부터 비롯된 사회적 애도, 그리고 그 애도를 조롱하는 것이 일련의 문화 코드가 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플레이어들에게는 상당히 무겁고 곱씹어볼 만한 주제를 던진다. 살아남은 자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떠난 이들로부터 넘겨받은 그들의 표상들은 남겨진 우리와 어떻게 관계맺으며 가야 할 것인가? < Back 26 GG Vol. 25.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Editor's View] 연결되고 재현되는 신체, 그리고 비평과 대중 사이를 잇는 가교로서](https://static.wixstatic.com/media/d03518_d7b2758a51c7467cb550da0d64068a8f~mv2.png/v1/fit/w_176,h_124,q_85,usm_0.66_1.00_0.01,blur_3,enc_auto/d03518_d7b2758a51c7467cb550da0d64068a8f~mv2.p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