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결과
공란으로 664개 검색됨
- 부분유료결제는 영원할 것인가?
이처럼 2022년의 연말을 맞는 지금 게임 비즈니스 모델은 더 이상 게임 플레이의 외부에 존재하는 거래 행위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다. 이제 게임 비즈니스 모델은 게임 플레이와 밸런스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게임 산업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사업적인 요소가 되어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을 만드는 회사와 개발자의 입장은 늘 조심스럽다. 유저들의 눈치를 보는 것은 당연하며, 어떤 비즈니스 모델이 트렌드를 선도하는지 관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 Back 부분유료결제는 영원할 것인가? 09 GG Vol. 22. 12. 10. 1. 게임 중소기업 대표 M씨의 일상 경기도 판교에서 중소 게임 개발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M대표는 요즘 들어 자주 조급한 마음이 든다. 2년 전만 하더라도 코로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풀린 풍부한 시중 투자자금 덕분에 별로 특별할 것 없는 방치형 게임 하나만 가지고도 쉽게 VC로부터 투자도 받고 대기업 퍼블리셔도 구할 수 있었던 그였다. 그러나 이 축복받은 코로나가 서서히 끝나가자 사람들은 게임을 플레이 하는 대신 바깥으로 나가 스포츠를 즐기고 해외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람들의 집콕과 재택 근무가 서서히 끝나가고 있었다. 시중의 투자 자금 역시 게임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그는 작년 초부터 직감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작년 말부터 시중 금리가 올라가기 시작하자 투자사는 은근슬쩍 전화를 걸어와 투자 자금의 회수 가능성을 물어오기 시작했다. “3년 안에 우리 지분 엑싯할 수 있는거죠 형님? 형님만 믿습니다!” 투자사 P팀장의 능글맞은 농담을 그는 은근히 경멸하고 있었다. P는 8년 전 한 중견 게임개발 기업에서 M대표의 부사수로 일했던 후배 개발자였다, 아직 M대표가 세파에 시달리기 몇 해 전 지금보다는 조금 더 순수한 마음으로 인디 게임 회사를 처음 창업할 당시, P는 M대표 밑에서 기획팀 대리를 맡고 있던 30대 초반 청년이었다. M대표는 사업 감각이 남달랐던 그를 팀에서 빼내 같이 창업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회사에 남는 쪽을 택했고, 얼마 뒤 판교에서 가장 건물이 크다고 자부하는 큰 게임 회사의 사업팀으로 이직해버렸다. P가 이직한 뒤 2년쯤 지났을 무렵 그는 전화를 걸어와 M대표를 그 커다란 건물로 불러냈다. "형님, 이제 이상적인 게임 만들기는 이제 그만두고 시장이 호응하는 게임 좀 만드시죠. 밑의 직원들도 먹고 살아야죠.” 몇 년 전만 하더라도 M대표는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 창업을 선택한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지난 몇 년간 국내 인디게임 씬에서 제법 얼굴을 알린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스토리텔링이 뛰어난 섬마을 소녀의 탐험기를 소재로 한 플랫포머 게임으로 한 인디게임쇼에서 게임 디자인 상을 수상한 이후, 그는 이렇게 자기가 원하는 게임을 만들면서 외롭지 않을 수 있겠다고 처음으로 느꼈다. 이듬해 그는 상해임시정부의 요원의 암살 이야기를 바탕으로 잠입 액션 게임을 제작하여 평단과 게임 유저들 사이에서 동시에 호평을 얻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스팀(Steam)에서 M대표 회사의 게임은 평점은 매우 높았지만, 판매량은 시원찮았다. 퍼블리셔 없이 판매한 게임은 기껏해야 몇 만 카피 수준이었다. 그 매출로는 직원들 월급 주기에도 빠듯했던 것이다. 그는 지금 내년쯤 영남지방 어드메에 새로 들어선다는 글로벌 게임센터를 찾아가기 위해 기차에 몸을 실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지역이지만 본사 주소만 그 동네로 옮겨두고 알바생 두어 명을 현지에서 고용하여 출근하는 척 해놓으면, 1억 이상의 개발 지원금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그래, 기차로 2시간 반 정도면 하루만에도 출퇴근을 할 수 있네. 이만하면 주말 부부도 어떻게든 해볼 수 있을 것 같아.” M대표는 자신의 스마트폰에 깔린 2년 전 출시한 방치형 게임 앱을 실행시켜 보았다. 미소녀 캐릭터를 수집하여 성장시키는 방치형 게임이었다. 그는 메타버스 붐 때 이 게임의 미소녀 카드들을 NFT로 만들지 못한 것이 못내 후회스러웠다. 그래서 이 게임의 후속작으로 게임센터의 지원사업을 따고 후속 투자도 유치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M대표는 사실 태생이 그렇게 주도면밀한 캐릭터는 아니었다. 오히려 낭만파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디게임 씬에서는 이상론을 부르짓던 그였다. 게임업계의 사람들은 그가 술자리에서 대기업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 같은 비즈니스 모델을 경멸하듯 욕하는 것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M대표 역시 회사의 생존 앞에서는 자신의 고집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M대표가 만나본 투자사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플랫폼을 PC나 콘솔에서 모바일로 바꾸고, 장르도 최근 트렌드에 맞는 게임을 추종하라고 권했다. 더불어 확률형 아이템을 포함한 부분유료결제를 필수적으로 도입하고,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과 게임 밸런스를 조화시킬 라이브 인력을 확충할 것을 권했다. PC 플랫폼에서 패키지 다운로드 형태로 한 카피씩 게임을 파는 모델은 한물 간 구식이라고, 그런 방식으로는 절대 큰 돈을 만질 수 없다는 조언을 해왔던 것이다. 그 중 M대표가 가장 동의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게임을 절대 처음부터 재미있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조언이었다. 한국 유저들의 주머니를 열기 위해서는 아주 조금만 재미있게 게임을 만든 뒤, 돈을 더 내면 쉽게 게임을 이길 수 있다고 부추겨야 된다는 P팀장의 지론이었다. 페이 투 윈(Pay to win)”이라 불리는 그 방식을 M대표는 그간 게임도 아니라며 경멸해 왔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이전에 출시한 방치형 게임의 성공을 위해서는 페이 투 윈 뿐만 아니라 더 노골적인 비즈니스 모델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M대표는 올해 시도할 신작 게임에서는 미소녀 NFT를 활용한 게임으로 더 큰 투자를 받아 회사를 키울 야망에 부풀어 있었다. 게임센터 본부장 접대를 위해 해외 출장에서 사온 싱글몰트 위스키 케이스를 매만지며 그는 상념에 잠겼다. 2. 게임 비즈니스 모델의 종류와 변천 앞선 장에서 꽁트 형식으로 게임 중소기업 대표 M씨의 일상을 내세운 이유는 한국 게임시장의 화제거리가 대부분 게임 비즈니스 모델로 귀결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게임 관련 뉴스는 대체로 게임 디자인이라든가 게임 문화와 관련된 것보다 회사의 매출액 규모나 확률형 아이템이나 P2E 등과 같은 특정한 비즈니스 모델의 성패 여부에 관한 것이 주종을 이룬다. 이처럼 한국 게임시장의 비즈니스 모델은 다른 나라의 경우보다 종류도 다양하고 그 성격 또한 게임에 따라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게임 비즈니스 모델은 게임마다 다르고 다양한 종류가 존재하지만, 대략적으로 7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1) 결제가 없는 방식 2) 동전투입식 결제 3) 패키지 결제 4) 정액제 결제 5) 부분유료결제 6) 가상화폐 기반 P2E, NFT 방식 7) 정기구독(subscription) 결제 방식이 그것이다. 이 중 1)에서 3)번까지는 해외에서 선도했던 모델이었으나, 4)번에서 6)번까지는 한국 게임업계가 선두 그룹에 끼어 있는 모델이기도 하다. 최근 대부분의 부분유료결제는 모바일 플랫폼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나, 그 시작은 PC 온라인 게임이 기반이었다. 2000년대 초 NHN의 PC 게임 플랫폼 한게임에서 정액제 과금 방식 대신 아바타 장식용 아이템을 유료로 팔기 시작한 것이 그 출발이었다. 부분유료화를 해외에서는 ‘free to play’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게임은 무료로 제공하고 광고나 아이템 판매를 통해 개발비를 보충하는 방식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부분유료화로 판매하는 아이템이 단순한 장식용에 그치지 않고 게임 밸런스에 영향을 주게 되면서 부터였다. 통상적으로 게임의 결제 방식은 게임 플레이와는 상관없이 게임 외부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유료 아이템을 구매한 유저와 무료로 플레이하는 유저 사이에 게임 밸런스에 차이가 생기게 되면 결제 방식은 더 이상 게임 플레이의 외부에 있다고 보기 어렵게 된다. 특히 최근 모바일 MMORPG의 결제 방식은 확률형 아이템과 강화형 아이템을 조합하여 유저들이 지속적으로 결제를 유도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플레이어의 입장에서는 본인이 필요한 아이템만 결제하면 되기 때문에 실제로 게임은 무료라는 인상을 가지고 게임을 플레이하게 된다. 게임 회사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심리를 이용하여 무료로 플레이하는 유저가 결제 없이 넘어가기 어려운 구간을 설계하고 결제를 통해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라는 메시지를 던지게 된다. 일부 플레이어는 이와 같은 부분유료화 결제 방식을 활용하여 게임 시작부터 결제를 하면서 게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자 하였다. 국내 모바일 게임은 대부분 상위 5% 이내의 납금 유저들, 이른바 ‘고래’들이 하위 95%의 일반 유저들이 납금한 규모보다 더 많은 금액을 투입한다. 이 때문에 국내의 몇몇 게임들은 게임 밸런스의 절묘한 균형보다는 상한선 없는 결제를 유도하는 비즈니스 모델 주도의 게임 개발에 열을 올리게 되었던 것이다. 2020년 기준 한국 게임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6.9%이며, 매출 규모는 19조원 가량으로 세계 4위에 해당한다. 이러한 양적인 성장의 대부분은 부분유료화를 통해 달성된 것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이어져 온 부분유료화 제도는 확률형 아이템의 날개를 단 뒤 한국 게임시장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3. 부분유료화 제도의 균열과 새로운 결제 방식 영원토록 존속하여 한국 게임유저들의 마지막 한 푼까지 빨아먹을 것 같았던 확률형 아이템의 기세는 최근 몇 년 사이 상당한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게임 유저들이 투명하지 않은 확률형 아이템의 시스템에 환멸을 느끼고 조직적으로 대항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넷마블의 〈페이트 그랜드 오더〉에서 시작된 이용자들의 불만은 엔씨소프트의 〈프로야구 H2〉와 〈리니지M〉 문양 시스템 롤백 사건을 거쳐 넥슨의 〈마비노기〉, 〈메이플 스토리〉 확률 조작 사건으로 점차 확대되는 경향을 보였다. 트럭 시위 형태로 시작된 유저들의 조직적인 저항은 최근 대부분의 게임으로 확장되어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개발사의 무분별한 과금 요소를 지적하고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의 집단 행동으로 확장되고 있다. *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의 이용자들이 게임사에 항의하기 위해 벌인 마차시위. 이러한 사태 속에서 한국 게임업계가 대응했던 방식은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공개하는 자율 규제 방식이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한국게임산업협회는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GSOK)을 출범시켜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확률형 아이템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자율규제 방식은 국회로부터 확률형 아이템 공개, 더 나아가 확률형 아이템 규제의 입법화를 늦추기 위한 일종의 꼼수라고 볼 수 있다. 21대 국회부터 논의되기 시작한 확률형 아이템 규제 법안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되어 있으며, 소위와 본회의를 통과하기까지 긴 시간을 필요로 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확률형 아이템에 관한 문제는 입법을 통한 문제 해결보다 오히려 다른 방식으로 문제가 전환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젊은 세대들일수록 게임 밸런스에 영향을 미치는 과도한 과금 시스템에 저항이 심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확률형 아이템을 버리고 확정형 아이템 중심으로 게임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8월 라인게임즈가 출시한 〈대항해시대 오리진〉의 경우 확률형 아이템 대신 ‘특권’이라 이름 붙은 1만원에서 9만9천원 상당의 확정형 아이템을 판매하는 것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확정했다. 본래 〈대항해시대 오리진〉은 CBT 진행 당시 확률형 아이템을 중심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을 기획하였으나, 유저들의 반발이 심해지자 확정형 아이템 모델로 변경한 바 있다. * ‘특권’이라는 이름의 확정형 아이템만 판매하고 있는 〈대항해시대 오리진〉. 물론 이러한 확정형 아이템 역시 부분유료화 결제 방식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변화의 의미는 적지 않다. 게임 밸런스에 영향을 주지 않는 확률형 아이템 방식이나 확정형 아이템 비즈니스 모델은 전 세계 게임 시장에서도 충분히 통용되는 방식이다. 그러나 확률형 아이템 중심의 과금 모델은 중화권이나 일부 동남아 시장을 제외하면 게임을 유통하기 어려운 단점이 존재했다. 때마침 중국이 사드 사태 이후 한한령을 통해 한국 게임의 판호 발급을 극도로 제한하면서 한국 게임 신작이 중국에 출시되기 어려운 상황도 겹쳐서 발생했다. 국내 게임회사들로서는 비즈니스 모델을 변경하여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거나, 〈PUBG Mobile〉처럼 중국 회사와 합작하여 중국 게임의 마크를 달고 중화권 시장에 게임을 출시하는 어려운 방식을 택해야만 했었다. 그간 국내 게임회사들의 과도한 과금 유도 비즈니스 모델은 한국 게임의 세계화를 막는 주범이었다고 볼 수 있다. 창의적인 게임 디자인이나 세계관의 개발보다는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 개발에 열을 올리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재 국내 게임 대기업들은 과거 10년 전과 비교하면 개발 조직에 비해 사업부와 대외 조직이 큰 폭으로 확장되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부분유료화 결제 방식을 벗어나 새로운 결제 방식을 시도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메타버스와 가상화폐 붐을 타고 게임을 플레이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고 유혹하는 “플레이 투 언(Play to Earn, 이하 P2E)” 방식이다. 또 다른 하나는 여러 게임을 묶어 플랫폼에서 매달 혹은 매년 일정한 금액을 과금하는 정기구독 방식이다. P2E 방식은 국내의 경우 위메이드에서 개발한 〈미르4〉가 대표적이다. 〈미르4〉는 가상화폐 위믹스와 연계하여 게임 내 특정 아이템을 가상화폐로 환전할 수 있도록 했다. 현행 국내의 게임법 상 게임 머니나 게임 내 아이템은 현실의 화폐로 환전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국내 유저들은 VPN 등의 우회 방식을 거쳐야만 이러한 환전을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미르4〉는 국내 버전과 해외 버전이 빌드가 다른 글로벌 투 빌드 형태로 서비스되고 있다. 해외 버전에서는 캐릭터의 NFT도 판매되고 있는데, 이 역시 국내에서는 환전이 불가능하다. 문제는 국내에서 게임 아이템의 현금 환전이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많은 게임 회사들이 블록체인과 가상화폐를 이용한 P2E 모델의 게임을 다수 개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1차적으로는 〈미르4〉처럼 국내와 해외 버전을 다르게 출시하여 게임 아이템 환전이 합법화 된 해외에서만 해당 게임을 서비스하고자 하기 위함이다. 또한 상당수의 유저들은 VPN 등을 활용하여 해외 우회접속을 통해 환전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게임 회사 입장에서는 이를 묵인하고 방조하면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많은 게임회사들은 재작년부터 불기 시작한 메타버스의 붐에 편승하여 장기적으로는 메타버스가 규제가 심한 게임법을 우회하여 별도 입법 과정을 통해 아이템 환전을 할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게임 서비스 과정이 다소 번거롭더라도 이러한 P2E 모델을 채택한 게임사가 늘고 있다. * 〈미르4〉에서 게임 내 아이템 흑철을 DRACO로 교환하는 방법, DRACO는 해외 버전에서 위믹스로 교환이 가능하다. 그러나 최근 국내의 가상화폐 거래 사이트 연합체인 DAXA에서는 위메이드가 주관하는 위믹스가 유통량 고지 등에서 문제가 있다고 발표하여 연내에 상장폐지를 결정한 바 있다. 통상적으로 화폐의 유통 주체는 국가인데, 가상화폐는 탈중앙화라는 개념을 내세워 해당 화폐의 몇몇 오피니언 리더나 일부 조직, 혹은 회사가 이러한 화폐의 유통량과 방식을 결정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러한 토론 과정이 DAO 등의 조직을 통해 민주적이고 합리적으로 결정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탐욕에 눈이 먼 일부 회사나 조직이 가상화폐의 자전 거래나 유통량 허위 고지 등을 유발할 수도 있다. 위믹스 상폐 사태나 테라 폭락 사태 등은 가상 화폐가 소수의 의지에 따라 가격이 왜곡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P2E나 NFT 같은 가상화폐 기반의 결제 방식은 점점 유저들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작년 가을쯤 〈엑시 인피니티〉나 〈미르4〉처럼 P2E 기반의 게임들이 득세한 때도 있었으나, 지금은 전 세계에 걸쳐 통화 유통량 축소와 금리 인상을 통해 가상화폐 관련 산업이 극도로 축소된 상황이다. 작년 연말 3N을 위시한 대부분의 게임 회사들이 컨퍼런스 콜 등을 통해 대부분 P2E나 NFT 등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중 대다수는 자사의 주가 관리를 위해 원론적인 답변을 한 것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글로벌 경기가 다시 활황을 띄게 될 때 가상화폐 관련 비즈니스 모델은 언제든 다시 부상할 수 있다. 그 때까지 게임 회사들이 얼마나 신뢰할 수 있고 통제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과 통화 유통 시스템을 만들지 지켜볼 일이다. * 단돈 1천원에 가입 가능한 엑스박스 게임패스. 부분유료화 제도에 균열을 가져온 또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은 정기구독 결제 방식이다. 사실 이 모델은 최근에 부각되기는 하였지만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가졌다. 신문이나 잡지의 오래된 정기구독 모델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EA는 2014년부터 자사의 플랫폼 오리진의 게임을 일정 금액을 받고 무제한 플레이할 수 있는 “EA Play”라는 정기구독 시스템을 서비스 해왔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엑스박스 게임패스”라는 구독 모델을 통해 최근 콘솔 게임 판도를 바꾸기도 했다. 사실 바로 이전 세대인 8세대 게임기까지만 하더라도 엑스박스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을 따라잡기 버거워하는 언더독에 불과했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는 젊은 세대들이 더 이상 게임을 패키지 형태로 구매하지 않고, 세일 등을 활용하여 다운로드를 통해 저렴하게 구매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이를 활용하여 마이크로소프트는 엑스박스 게임 패스를 첫 달 1천원에 제공하는 프로모션을 제공하여 많은 게임 유저를 유치할 수 있었다. 첫 달만 이용하더라도 한 번에 수백 개의 게임을 동시에 제공받기 때문에 유저 입장에서는 스팀 등에 유통되던 PC 게임의 상당수를 거의 무료에 가깝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엑스박스의 성공에 영향을 받아 소니 역시 올해 6월 자사의 구독 모델을 개편하여 “PS 플러스 에센셜”이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기에 이르렀다. 특히 엑스박스 게임 패스는 인디게임 개발자들에게도 홍보의 기회를 줄 뿐만 아니라, 일종의 계약금까지 제공하고 있어 예전에 비해 많은 서드파티 게임사들을 확보하고 있다. PS 진영에 비해 독점작이 적다는 평가를 받았던 엑스박스 진형은 물리적인 패키지를 포기하고 자사의 하드웨어에서만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고정관념을 버리면서 새롭게 부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구독형 서비스는 여전히 패키지 다운로드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스팀이나 에픽 스토어에도 심각한 고민을 안겨줄 것으로 판단된다. 게임의 종류가 비교적 적은 편인 에픽의 경우는 필요할 경우 구독형 서비스를 병행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출시된 게임이 4만 종 이상인 스팀의 경우는 기존 게임 보유 유저의 반발이나 이익 배분 체계의 복잡함 때문에 구독 경제로 전환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4. 나가면서 이처럼 2022년의 연말을 맞는 지금 게임 비즈니스 모델은 더 이상 게임 플레이의 외부에 존재하는 거래 행위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다. 이제 게임 비즈니스 모델은 게임 플레이와 밸런스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게임 산업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사업적인 요소가 되어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을 만드는 회사와 개발자의 입장은 늘 조심스럽다. 유저들의 눈치를 보는 것은 당연하며, 어떤 비즈니스 모델이 트렌드를 선도하는지 관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여러분이 중소 게임회사를 운영하는 M대표의 입장이라면 어떠한 비즈니스 모델을 선택할 것인가? 게임의 본질은 재미이기 때문에 창의성이 뛰어난 인디게임을 만들어 고전적인 패키지 다운로드 방식을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유행하는 장르의 모바일 게임을 확률형 아이템으로 도배하여 수익성을 꾀할 것인가? 한 발 더 나아가 P2E 방식의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여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것인가?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교수) 이정엽 순천향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게임 스토리텔링과 게임 디자인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인디게임 페스티벌인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 창설을 주도하고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인디게임 행사인 Independent Games Festival(IGF) 심사위원이기도 하다. 저서로 『디지털 스토리텔링』(공저, 2003), 『디지털 게임, 상상력의 새로운 영토』(2005), 『인디게임』(2015), 『이야기, 트랜스포머가 되다』(공저, 2015), 『81년생 마리오』(공저, 2017), 『게임의 이론』(공저, 2019), 『게임은 게임이다: 게임X생태계』(공저, 2021) 등이 있다.
- 왜 한국 콘솔시장은 작을까? - 한국 콘솔게임에의 회상
8, 90년대에 성장한 게이머들은 아마 대부분 유사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결과 현재 한국 게임 시장에서 콘솔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다. 2020 게임백서에 따르면 4.5%인데, 사실상 명맥만 남았다고 볼 수 있는 아케이드 게임의 비율이 1.4%다. 북미의 38.4%와 유럽의 37.5%, 남미의 19.1%는 물론이고 2022년 세계 시장 비율인 25.2%와도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인다. 아시아 시장의 콘솔 게임 비율은 8.7%인데, 한국의 작은 콘솔 시장이 큰 몫을 했을 것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다. 반면 PC 게임과 모바일 게임은 아시아에서 각각 25.7%과 54.1%로 다른 권역에 비해 차이가 극명하다. < Back 왜 한국 콘솔시장은 작을까? - 한국 콘솔게임에의 회상 03 GG Vol. 21. 12. 10. 대충 초등학교 고학년 때인 90년대 초였던 것 같지만, 정확히 몇 년도였는지 불확실한 옛날 기억이 있다. 나에게 ‘게임기’가 생겼다. 아마 어떤 잡지에서 경품에 당첨되어 받았던 것 같다. 시대를 감안하면 어떤 기종인지 짐작할 수는 있지만, 짐작일 뿐이다. 기종 역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이 이렇게 흐릿한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그 게임기를 몇 번 만져보지 못했다. 롬팩도 게임 모음집 하나가 있었거나 아예 없어서 내장 롬의 미니게임뿐이었다. 이유는 당연히 부모님 때문이었다. 사용권을 빼앗긴 것은 아니었지만, 새 롬팩을 사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고, 집의 TV에 그 게임기를 연결하는 행위 자체로도 눈길이 곱지 않았다. 게다가 단자가 무엇인지, 선은 왜 이리 많은지, 아무런 개념조차 잡혀 있지 않았던 내게는 연결 방법을 알려줄 어른이 필요했지만, 부모님은 그런 역할을 적극적으로 거부했다. 내가 그 게임기를 돌려보려면 친구 집에 가야만 했고, 친구 부모님은 연결을 도와주긴 했으나 불편한 기색이었다. 할 만한 게임도 없는데 게임할 공간도 없으니 자연히 내 인생 최초의 게임 콘솔은 벽장과 망각 속으로 사라졌다. 8, 90년대에 성장한 게이머들은 아마 대부분 유사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결과 현재 한국 게임 시장에서 콘솔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다. 2020 게임백서에 따르면 4.5%인데, 사실상 명맥만 남았다고 볼 수 있는 아케이드 게임의 비율이 1.4%다. 북미의 38.4%와 유럽의 37.5%, 남미의 19.1%는 물론이고 2022년 세계 시장 비율인 25.2%와도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인다. 아시아 시장의 콘솔 게임 비율은 8.7%인데, 한국의 작은 콘솔 시장이 큰 몫을 했을 것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다. 반면 PC 게임과 모바일 게임은 아시아에서 각각 25.7%과 54.1%로 다른 권역에 비해 차이가 극명하다. * 2020 대한민국 게임백서, p. 668 그 이유는 8, 90년대의 미약한 시작에서 이어져 내려왔을 것이다. 작은 규모로 시작한 시장이, 단 한 번도 아케이드와 PC와 모바일에게서 헤게모니를 가져오는 모멘텀을 겪지 못한 채로 성장해왔다는 슬픈 스토리다. 그 슬픈 시절로 잠깐 가보자. 한국에서 처음 판매된 게임 콘솔은 오트론 텔레비전 스포츠다. 게임 내장형 콘솔로 미국의 ‘홈 퐁’과 똑같았으며, 최초 가격은 29500원, 이후 인하해서는 19800원이었다. 77년 기준으로 노동자 평균 월급이 69000원이던 시절이다. 시장 형성이나 대중화와는 거리가 먼 가격이었으니, 최초라는 점 외에는 큰 의미가 없다. 가격으로 인해 가정용 퐁과 아타리의 시대에는 한국의 콘솔 게임이 자라나지 못했고, 닌텐도를 필두로 한 80년대가 왔다. 하지만 강력한 반일 정서가 지배하는 한국에 닌텐도가 수입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어불성설이었다. 때문에 80년대 초반에는 8비트 MSX를 플랫폼으로 하는 PC 게임이 이를 대체하듯이 수입되었다. 그나마도 고가품이었으니, 82년 기준으로 국내 도입 대수는 천 대가 채 안 되었다고 한다. 8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한국은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을 유치하는 데 성공을 했고, 그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다. 자연히 일본에 대한 반감이 어느 정도 수그러들고, 85년에 대우가 재믹스라는 자체 콘솔을 출시하면서 게임이라는 신문물에 대한 낯설음도 많이 반감되었다. 그래도 일본 기업이 현지 법인을 만들어 진출하는 것은 대중의 정서상 어려웠기에, 국내 기업이 별도의 이름으로 콘솔을 수입했다. 이제야 의미 있는 게임 콘솔이 등장하는 것이다. 삼성이 세가의 세가 마스터 시스템을 ‘겜보이’라는 명칭으로 수입해 판매했고, 이게 히트를 거뒀다. 이에 현대는 닌텐도의 NES, 즉 북미판 패미컴을 수입해 ‘현대 컴보이’로 출시했다. 이로써 재믹스, 겜보이, 컴보이의 삼국지로 시장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이 시장의 규모는 대중적이라고 부를 정도로 크지는 못했다. 히트를 했고, 대중이 존재를 알 정도의 규모는 되었지만, 매니아 위주의 시장이 되었다. 각 콘솔의 가격만 봐도 그 결과가 자명하다. * 대우 재믹스 광고, 가격이 7만 원이다. * 삼성 겜보이 광고. 가격이 11만9천 원이다. * 현대 컴보이 광고. 13만9천 원이 가격이다. * 92년 하반기의 콘솔 게임 타이틀의 가격. 따라서 게임 콘솔에 더해 이 가격까지 감안해야만 콘솔 게임을 위해 부담해야 하는 금액이 나온다. 1990년을 기준으로 잡는다면, 중등 교원과 대기업 사원의 초봉이 60만 원이 안 되던 시절이다. 이 시기부터는 빈부 격차가 벌어지면서 노동자 평균 월급을 기준으로 삼기가 좀 어려워지는데, 그나마도 150만 원이었다. 따라서 게임 콘솔은, 10년 전의 오트론과는 달리, ‘구매는 가능하지만 조금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또한 게임 시장의 헤게모니는 느리지만 아주 조금씩 아케이드에서 PC로 옮겨가고 있었다. 게임 콘솔의 경쟁자는 사실 PC였던 셈인데, 당시 싸게는 100만 원에서 비싸게는 200만 원 이상을 호가하던 PC가 20만 원 이하의 게임 콘솔과 경쟁한다는 것은 가격 경쟁력에 있어 상대가 안 될 것처럼 보이긴 한다. 하지만 PC에게는 ‘다가올 미래를 준비’한다는 맥락이 있었고, ‘교육용’도 가능한 다용도라는 강점이 있었다. 이에 비하면 게임 기능 하나만 있는 콘솔은 상대적으로 싼 가격만큼이나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콘솔과 PC에는 가장 큰 차이, 공간적 차이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콘솔의 공간은 거실, PC의 공간은 방이다. 게임 콘솔은 TV와 연결해야 하는 조건이 있다. TV는 가족 공통의 미디어이니 거실에 있다. 거실 TV의 용도는 부모 세대가 결정하니, 당시의 자녀 세대가 콘솔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거실의 권력을 얻어내야만 했다. 또한 당시의 학생들은 야간 자율학습을 겪던 세대다. 따라서 거실에 존재할 시간 자체가 없는 경우도 꽤 많았으며, 설사 야자가 없더라도 퇴근한 부모를 상대로 거실 TV의 사용권을 협상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PC라면 공간이 방으로 바뀌면서 거실 권력에 대항할 필요가 없어진다. 야자를 끝내고 와서, 혹은 부모가 TV를 시청하고 있는 시간에, 자기 방으로 들어가면 된다. 당시 게임 소프트웨어의 복사 유통이 콘솔 롬팩의 복사보다 훨씬 손쉬웠다는 점도 PC 게임 확산에 한몫을 했을 것이다. 아케이드에서 게임을 하는 시대가 집에서 게임을 하는 시대로 바뀔 때의 서사에서, 북미나 유럽은 이와 달랐다. PC의 보급이 한국보다 빨랐으며, 따라서 PC에 대한 인식은 게임용보다 다용도에 가까웠다. 즉 PC는 이미 부모 세대의 것이었다. 자녀 세대들은 학원과 야자가 없으며, 부모 세대에게는 여가 생활 선택지에 PC가 추가된 구도다. 따라서 자녀들에게 거실 권력의 일부를 내주는 여유가 가능하다. 게다가 콘솔의 보모 기능을 부모들이 깨닫게 된다. 동네 아이들 몇 명을 거실에 모아놓고 피자 한 판과 게임 콘솔을 쥐어줄 경우, 부모 세대는 시내로 영화를 보러 잠시 외출할 수 있다는 식의 계산이다. 반면 한국의 부모에게 보모 역할은 조부모나 학부모나 야자가 해주었으니 게임까지 눈을 돌릴 이유가 없었다. 다만 유럽의 경우엔 북미보다 이런 경우가 덜했는데, 그 원인을 평균 거주 공간에서 찾는 해석이 가능하다. 주거면적이 월등히 넓은 북미의 경우엔, 거실에 콘솔을 구비해도 상관없는 주거면적이지만 유럽의 경우엔 고려를 한 번 거쳐야 하는 것이다. 특히 동유럽은 과거 공산권이어서 자본주의 진영의 상품인 게임 콘솔의 수입에 대한 문턱이 높기도 했고, 주거면적 또한 다른 유럽에 비해 좁은 편이어서인지 콘솔 점유율이 가장 낮다. 이 해석에서 유일한 예외는 영어가 모국어라서 미국 문화와의 심리적 거리가 가까운 영국이다. * 2014년의 자료이긴 하지만, 북미와 호주의 평균 거주 공간이 유럽(특히 동유럽인 러시아)보다 넓음을 알 수 있다. 1990년 당시 한국의 가구당 평균 주거 면적은 이 그래프의 덴마크와 비슷한 62.94였지만, 상기한 문화적 이유로 인해 이 공간의 이점을 사용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북미와 서유럽은 게임의 헤게모니가 아케이드에서 콘솔을 거쳐 PC로 옮겨갔지만, 한국과 동유럽은 아케이드에서 곧장 PC로 이동했다고 서술할 수 있겠다. 해당 국가에서 아케이드 게임장이 갖는 위상을 고려해서 공간 위주로 서술을 요약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북미와 서유럽의 경우엔 시내에서 거실로, 다시 거실에서 방으로. 한국과 동유럽의 경우엔 동네에서 방으로. 이 공간의 서사는 이제 모바일의 득세로 인해 ‘내 손’으로 바뀌어가고 있지만, 해당 공간이 함축하는 맥락은 그 이상이다. 아케이드는 북미와 유럽처럼 시내의 번쩍번쩍한 게임 센터이건, 한국의 우중충한 동네 오락실이건, 게임을 위해 만들어진 공적 공간이니 자연히 커뮤니티의 성격 또한 갖게 된다. 고수의 플레이를 구경하고, 다른 동네의 고수와 대전하기 위해 그 동네 오락실을 갔던 이야기를 떠올려 보자. 이를 ‘아케이드는 소셜 친화적 게임 공간이다’라고 서술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 공간이 거실이라는 사적 공간으로 바뀌면 소셜의 색채는 옅어지지만 사라지지는 않는다. 거실에서의 게이밍은 누군가가 구경할 수 있고, 그에 대해 대화할 수 있고, 함께 플레이할 수도 있다. 콘솔 게임은 1인 미디어이긴 하지만 오프라인 소셜 미디어로서도 활용이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방으로 게임 공간이 바뀌자 소셜의 비중은 극도로 줄어들어버렸다. 방은 철저하게 사적 공간이며,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부모들이 TV를 볼 동안 자녀가 PC 게임을 하는 구도가 가능했다. PC라는 단어 자체가 Personal Computer의 약자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온라인 게임의 등장 이전의 한국에서 게임은 1인 미디어의 이미지였다. ‘게임을 같이 한다’의 의미가 아케이드/콘솔에서 조이스틱/패드를 각각 하나씩 잡고 게임을 하는 의미였던 시절이었다. 이를 오프라인 안티소셜 + 온라인 소셜이라고 서술할 수도 있을 것이다. PC 게임 자체의 안티소셜적 성격은 인터넷의 보급으로 인해 콘솔 수준으로 희석되었다. PC방의 경우엔 방의 공간을 다시 아케이드로 되돌리는 흐름이었고, 특히 한국에서는 스타크래프트의 아케이드화가 굉장히 큰 역사적 방점이었다. 혹은 비록 친구들끼리 모여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하러 갔던 모습은 오프라인 소셜이긴 하지만, 온라인으로도 이 모습은 가능하다. 즉 한국의 PC방 문화는 PC 게임의 오프라인 안티소셜 성격을 옅게 만들긴 했지만, 인프라의 확장으로 인해 온라인 소셜의 성격이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현재 결과로는 보강의 의미 이상이 되지 못했다. MMORPG를 같이 하기 위해 오프라인에서 만날 필요까지는 없으니까. 그리하여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가 달라진다. 점유율 40%에 육박하는 북미와 유럽이라면 친구를 집으로 초대해 함께 헤일로를 하는, 게임의 오프라인 소셜적 이미지가 어느 정도 살아 있다. 미국식 영어에서 비디오 게임을 지칭하는 속어 중 하나가 nintendo game인 것은 닌텐도의 역사적 영향력을 증명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콘솔의 소셜적 측면이 영어권 사회가 갖고 있는 게임에 대한 이미지에 녹아들어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반면 한국은 아케이드를 빠져나온 후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 오프라인 소셜의 이미지는 없다시피 하다. 이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영화 속 두 캐릭터가 토르와 구경이다.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는 게임 폐인이 된 토르가 등장하는데, 그는 친구들과 함께 거실에서 포트나이트를 플레이하고 있다. 반면 드라마 ‘구경이’의 주인공 구경이는 마찬가지로 게임 폐인이지만, 자기 집에서 MMORPG를 플레이한다. 그는 게임을 통해 길드원들과 소통하고 있지만 게임 바깥에서는 은둔형 외톨이다. 토르의 거실과 포트나이트, 구경이의 집콕 MMORPG의 차이가 콘솔이 빠져있는 한국 게임의 특수성이다. * 토르는 사회와 단절한 상태지만 그의 게임은 여전히 친구들과 함께 플레이하는 게임이다. 콘솔이 가진 옅은 오프라인 소셜의 성격이 남아있는 형태로 볼 수 있다. * 구경이 또한 사회와 단절했지만 토르와 달리 그의 오프라인 공간에는 구경이 혼자만 존재한다. 온라인 소셜 위주인 PC게임의 사회적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게임 외부에서 바라보는 사회적 이미지, 게임 내부의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게이밍 경험의 차이가 이 역사적 맥락 혹은 경험의 차이에서 나오게 된다. 한국의 콘솔 게임이 극도로 적다는 의미는, 단순히 해당 플랫폼의 게임을 덜 만든다는 1차적 의미만이 아니라, 오프라인 소셜로도 활용이 가능한 게임을 덜 생산하고 덜 소비한다는 의미다. 달리 표현하면 한국에서 만들거나 유통되는 게임은 온라인 소셜을 기본으로, 혹은 아예 온라인 소셜만을 상정하고 만들어진다는 귀결도 가능하다. 그리고 시대는 이제 2022년을 바라보고 있다. 게임의 헤게모니는 아케이드-콘솔-PC 순으로 이어졌고, 그 다음인 모바일로의 이행이 진행 중이다. 모바일의 오프라인 공간은 ‘내 손’이니 매우 협소하며, PC 이상의 오프라인 안티소셜 성격을 보여준다. 이 이행 과정을 보면 오프라인 소셜의 성격은 계속 옅어지면서 온라인 소셜의 비중이 늘어나는 그래프를 상상할 수 있다. 그럼 이제 시대의 무게추는 온라인 소셜로 완전히 옮겨가는 것일까? 몇 년 전의 기억이다. 내 예전 애인 한 명은 증강현실 게임인 포켓몬고를 깊게 플레이했다. 그는 더 많은 포켓몬을 포획하고 교환하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야 했고, 비정기적으로 집 근처의 커뮤니티 사람들을 만나 함께 동네 여기저기로 몰려다녔다. 온라인 소셜이 오프라인 소셜로 바뀌는 지점이었다. 기존 온라인 게임의 ‘정모’와 비슷해 보이긴 했지만, 모여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거리의 모바일 아케이드나 모바일 PC방으로 해석할 여지가 충분했다. 그러고 보면 포켓몬고를 플레이하려고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는 유명인과 그를 쫓아가는 팬들의 모습도 기억이 난다. 닌텐도 스위치의 마케팅 포인트 중 하나도 이 부분이었다. 거치형인 동시에 휴대형인 콘솔이므로 오프라인에서 만난 두 플레이어가 서로의 콘솔을 연동해 동반 플레이가 가능한 것이다. 이는 모바일이 사실은 오프라인 소셜의 측면을 숨기고 있음을 증명한다. 휴대가 가능하기에 오프라인 접촉이 용이한 최초의 플랫폼이 되는 역설이다. 오프라인으로 동반 플레이를 하기 위해 게임 콘솔이나 PC를 싸들고 친구 집에 가는 것에 비하면 경이적으로 편하다. AR 게임의 가능성까지 고려했을 때 모바일 게임의 소셜적 측면은 확고한 영역을 확보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콘솔 게임이 빠진 탓에 아케이드 이후로 사라졌던 한국 게임의 오프라인 소셜적 측면이 극적인 부활을 할 수 있을까? 포켓몬고가 오프라인에서도 작동하는 소셜 활동을 만들어낸 것 이상의 무엇이 생겨날 수 있을까? 답은 개발자의 상상력과 유저의 활용력에 달려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 [인터뷰] 게임 전시가 줄 수 있는 사회적 담론의 균열 : <게임 사회> 기획자 홍이지 학예연구사 인터뷰
게임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22년 10월에 방영했던 EBS 다큐멘터리 <게임에 진심인 편>을 기억할 것이다. 해당 다큐멘터리 3부에서는 ‘근데 이제 예술을 곁들인’이라는 제목으로, ‘게임을 예술로 볼 수 있을 것인지 아닌지’에 관한 담론들을 다루었다. 비단, <게임에 진심인 편>뿐만 아니라 게임과 예술의 경계를 어디로 둘 것인지에 관한 질문들은 훨씬 이전부터, 다양한 경로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이 간단한 질문에 결론을 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 쌓여왔던 담론의 두께만큼 다양한 관점이 혼재해있기 때문이다. < Back [인터뷰] 게임 전시가 줄 수 있는 사회적 담론의 균열 : <게임 사회> 기획자 홍이지 학예연구사 인터뷰 12 GG Vol. 23. 6. 10. 게임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22년 10월에 방영했던 EBS 다큐멘터리 <게임에 진심인 편>을 기억할 것이다. 해당 다큐멘터리 3부에서는 ‘근데 이제 예술을 곁들인’이라는 제목으로, ‘게임을 예술로 볼 수 있을 것인지 아닌지’에 관한 담론들을 다루었다. 비단, <게임에 진심인 편>뿐만 아니라 게임과 예술의 경계를 어디로 둘 것인지에 관한 질문들은 훨씬 이전부터, 다양한 경로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이 간단한 질문에 결론을 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 쌓여왔던 담론의 두께만큼 다양한 관점이 혼재해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오늘날에는 게임과 예술의 경계를 구획하려 하는 시도 자체가 구태의연하다는 인식까지 존재한다. 그런데 실제로 게임과 예술의 경계가 무너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엄숙한 미술관, 그것도 한국 미술계에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이 23년 5월 12일부터 9월 10일까지 게임을 주제로 한 <게임 사회> 전시를 연 것이다. 이는 단순히 한국에서 게임의 문화적 지위가 변화했음을 나타내는 것뿐만 아니라, 미술 전시로의 게임이 어떤 이야기들을 만들 수 있는지, 게임으로의 예술이 가지는 특수성은 무엇인지 등 우리 사회에 새로운 질문들을 던졌다. 이에 해당 전시에 자문위원으로도 참여했던 편집장은 <게임 사회>를 기획한 홍이지 학예연구사와 만나 게임과 예술의 관계를 더 깊게 고찰하고자 하였다. 다만, 전반적인 전시에 관한 소개는 국립현대미술관 콘텐츠( https://www.youtube.com/watch?v=_mZEphegRDc) 에도 잘 나와 있기에, 인터뷰에서는 게임을 전시하는 것의 의의와 한계, 또 앞으로의 가능성들을 사유하고자 하였다. 이경혁 편집장: 안녕하세요. 학예연구사님. 먼저 자기소개를 간단히 부탁드릴게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저는 대학에서는 조각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는 이제 전시 기획을 전공을 한 뒤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일을 하다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근무한 지 3년 되었습니다. 홍이지라고 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전시가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전시에 대한 반응들이 뜨겁더라구요. 인터넷에서도 많은 여론이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게임 관계자들과 미술 관계자들이 이번 전시를 보는 시각은 조금 다를 것 같은데, 현장에서는 어떻게 느끼시나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비단 미술계와 게임계로 나뉘는 것뿐 아니라, 게임계 안에서도 게이머가 보는 전시가 다르고, 게임 업계에 계시는 분이 보는 전시가 다르고, 게임을 콘텐츠로 기획하시는 기획자분이 보는 관점도 다른 것 같아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오히려 그렇기때문에 저희가 할 수 있는 얘기가 많은 것이 저는 재밌어요. 이 전시 하나만으로도 저희가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아서, 대화를 할 때마다 너무 흥미로워요. 이경혁 편집장: 사실 게임 전시라는 것이 리터러시의 문제가 있죠. 전시에서 애초에 게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알아볼 수 있는 지점들도 있고요. 사실은 일반적인 미술관도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는 분들이 있는 상황인데, 미술 전문가로서 게임에 관한 전시가 다른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것과 다른 특이점이 있을까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사실 처음 기획 때부터 모든 사람들이 이 전시의 기획 의도를 한 방향으로 읽으시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각자의 리터러시가 다르니까요. 그래서 더욱 피드백이 궁금한 전시이기도 했어요. 일반적으로는 미술관에서 전시를 올려도 피드백은 거의 없거든요. 개인의 호불호나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코멘트 정도는 있지만, 전시 전반의 경험에 관한 피드백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이 전시는 오픈한 지 일주일 됐는데도 피드백이 너무 적극적이어서 굉장히 놀라워요. 그게 게임 전시의 특이점이기도 한 것 같아요. 이전에 우리 미술관에서 비슷하게 피드백을 받았던 전시는 ‘개를 위한 미술관’ 전시였어요. 강아지들이 들어왔을 때, 미술관이 가지고 있는 모종의 엄숙주의나 결계가 해제되면서 이 공간을 다르게 점유하고 경험했을 때 확실히 훨씬 더 적극적인 피드백이 있었던 것 같고, 또 그거를 염두하고 만들었던 전시이기도 해요. 왜냐하면 코로나 때, 저희 미술관이 몇 개월 동안 문을 닫았었거든요. 그런데 사실 얼마나 장소가 좋아요? 위치도 훌륭하고. 코로나 때 병상이 없을 때에도 여기를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많았거든요. 저희도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는 미술관이 기능을 하지 못할 게 뻔한데 이 공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미술관에 대한 경험과 이용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죠. 이번 기획도 이런 맥락에서 기획한 지점이 있어요. 다만, 피드백 중에는 기획자가 누구이며, 얼마나 게임을 해봤는지 묻는 질문들도 있어요. (웃음) 물론, 제가 게임을 하기는 하지만, 모든 게임을 섭렵하고 그런 것은 전혀 아니에요. 그러나 외부 기획자가 미술관에 와서 하는 전시와 여기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공공성을 주제로 해서 만드는 전시는 분명히 접근이 되게 다를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그 층위를 보는 것도 중요하기는 한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공공미술로의 기획이 가질 수 있는 특수성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는데요. 아무래도 디지털 게임 전시도 있다보니 기계들이 많잖아요? 그 지점에서도 공공미술에서의 의의나 어려움들이 만들어질 것 같은데, 기계들은 괜찮나요? 잘 돌아가나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네. 괜찮아요. 저희가 우려했던 것보다 그래도 안정화는 빨리 됐고, 생각보다 안정적으로 전시되고 있어요. 저희 오픈하고 그다음 날 단체 관람객이 900명이었거든요. 그때가 진짜 위기였긴 했어요. 관람객분들이 개별로 혹은 두 세분씩 오실 때는 미술관의 분위기나 문법을 인지하고 오세요. 그런데 900명의 학생들이 한꺼번에 오니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기계들은 별 탈 없이 잘 돌아가고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이 전시의 기획의도 이면에 있던 고민들에 대해서도 좀 여쭤보고 싶은데요. 미디어 아트 작품이 굉장히 많던데, 전시가 끝나면 이 작품들은 어떻게 되나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사라져요. 실체로 남아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고요. 처음부터 저희가 작품들을 파일 형태로 받았는데, 어차피 전시가 끝나면 파일을 바로 폐기하고 그걸 사진을 찍어서, 소장품 대여처에 보내줘야 돼요. 김희천 작가님의 작품에 쓰인 큰 LED 이런 거는 패널도 그냥 다 해체해 버리는 거예요. 렌트기 때문에. 저희는 자산 취득을 할 수가 없어서 장비가 비싸도 렌트를 해야 돼요. 이 현장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면. 이경혁 편집장: 그러면 아카이빙을 한다 해도 사실상 ‘전시의 재현’이라는 건 불가능한 형태군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그렇죠. 이경혁 편집장: 음. 게임 매체가 원래 그렇긴 하죠. 게임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원래 애초부터 재연이 불가능한 거니까요. 그래도 파일을 가지고 계신거면, 나중에 오페라처럼 다른 무대에서 다른 연출로 재현할 수는 있는 거겠네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네. 그런데 그것도 조금 문제가 있긴 해요. 제가 이번에 MoMA(Museum of Modern Art: 미국의 유명 근현대 미술관)랑 스미스소니언(미국 정부가 예산을 지원해주는 박물관)에서 각각 작품을 빌렸는데, 최종 협약서에 사인할 때까지 1년 가까이 걸렸거든요. 애초에 MoMA와 스미스소니언이 2010년 초반에 게임을 소장하기로 했는데, 당시에는 지금이랑 문법이 많이 달랐던 거죠. 지금의 관점에서 당시 계약서는 명확한 규정이 만들어지기 전에 체결된 거였거든요. 게다가 당시의 판단으로는 (게임 관련 전시물을) 어디까지 소장해야 되는지에 관한 연구가 너무 미비했기 때문에, 누구의 권한을 어디까지 일임받아서 관리할지에 대한 부분도 각각 다 달랐던 거죠. 어떤 게임사는 ‘전시할 때마다 허락을 받아야 한다’, 어떤 곳은 ‘전권을 다 준다’ 대중이 없었어요. 그렇지만 오늘날에는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너무 달라졌고, 또 담당자들도 다 바뀌어서 판단을 유보했기 때문에, 저희가 이번에 전시할 때에는 MoMA에게 먼저 허락을 받고, MoMA의 모든 리스트를 보면서 게임 회사들에게 다시 또 허락을 받았어요. 그때 어떤 게임사는 알아보고 연락 준다고 하고 두 달, 여름 휴가라고 한 달, 어떤 곳은 ‘우리가 MoMA랑 계약을 했다고요?’ 하는 곳도 있고,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게다가 MoMA가 2010년에 전시를 하고 그 이후로는 아무도 전시를 안 했기 때문에, 저작권의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컨디션이 많이 바뀐 거예요. 그 사이에 데이터 파일도 굉장히 압축이 많이 되고, 전시물을 상영하는 방식도 달라졌고... 그래서 나중에 다시 재연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에요. 이경혁 편집장: 한편으로 MoMA에서 전시된 작품들도 실제 상용 작품들이고, 사실은 직접 컨택을 해서 전시해도 상관없지 않나요? 그런데 MoMA와 계약한 작품들을 빌려왔던 의도가 따로 있으셨을지 궁금해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저희도 그 지점에 대해서 고민을 했어요. 그런데 게임을 미술사로 편입시키는 과정에서 필요했던 지점이었어요. 포스트 디지털 미술사의 맥락에서, 그러니까 89년 인터넷이 발달한 이후를 디지털 미술사로 정립을 하고 있는 와중인데, 이 디지털 미술사의 맥락에서 게임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거든요. 그런데 지금까지 미술사에서는 게임을 거의 다루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 지금이라도 우리가 연구하고 있던 맥락 안에 게임을 긴급하고 진중하게 다룰 필요가 있었는데, 이러한 필요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MoMA의 사례가 주효했어요. 애초에 게임을 접해본 적이 없으신 분들에게도 ‘MoMA도 게임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이 설득에 도움이 되는 것이죠. 이경혁 편집장: 그렇다면 역사적 맥락 외에도 ‘미술 전시로서의 게임’이 가지는 특수성이 있을까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물론 있지만, 그걸 구현하는 데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어요. 단순한 체험으로 제공되는 것 외에, 저희가 미술관에서 감상하는 미디어 작품처럼 뭔가 감상의 여지가 생기고, 이걸 통해서 특정한 순간을 경험하고 그러기에는 미술관에서의 공간이 한정적이고, 너무 찰나인 거죠. 경험의 시간 자체가. 이경혁 편집장: 그렇죠. 사실 이번 전시 중에서 특히 심시티 같은 경우는 어떤 감각을 느끼는 체험을 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들죠. 결국, 전시장의 한계라는 것은 공연 공간에서, 줄을 서서 공연 기기를 잠깐 대여하는 방식에서부터 나올 것 같은데요. 오락실 게임은 이런 논리가 가능하겠지만, 심시티나 마인 크래프트가 공적 공간에 올라왔을 때는 또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시연 외에도 미술 작품과는 다르게 게임은 일반적으로 협업해서 만들어지잖아요? 그러면 아티스트가 누구인지 특정하기가 좀 어려운 부분도 있지 않니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맞아요. MoMA도 게임 전시는 항상 디자인 분과에서만 하는데, 시연이 어렵다는 점과 크레딧의 문제가 닿아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게임 전시의 형태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한 지점도 있고, 아직은 예술로서 게임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관한 관점의 차이들도 큰 것 같아요. 저희가 빌릴 때도 게임사의 반응에 따라서 그 게임사가 게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거든요. 가령, 제노바 첸(Sky : 빛의 아이들, Flower, Journey 제작자)은 확실히 스스로를 예술가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희가 뭔가를 요구했을 때, 모든 걸 조건 없이, 질문을 하지도 않고, 무상으로 전부 제공해줬는데요. 확실히 게임이 예술로 보여줄 수 있는 자리라는 거에 대해서 굉장히 예민하게 받아들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저희가 지금 헤일로 2600을 보여주고 있는데, 스미스소니언 미술관을 통해 에드 프라이즈(Ed Fries, 헤일로 2600 개발자)의 연락을 받았어요. 저희는 모든 전시품을 똑같은 컨디션으로, 너무 향수를 불러일으키려고 하지 않는 방향에서, 관람객들에게 중립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에드 프라이즈는 자신의 작업이 아트이기 때문에, 전시할 때 게임이 이용되었던 당시의 CRT 모니터로 바꿔 달라는 연락이 온 거예요. “접근성 확장을 위해서 전시에 버튼과 조이스틱을 쓴 것은 알겠지만, 내 작업은 이미 종결된 그 시기의 ‘작품’이기 때문에 다시 번역된 상태로 제공이 되는 형태는 반대한다.” 그런 거죠. 이런 지점에서는 게임과 전시에 대해서 고민들이 더 필요한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어떻게 보면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생각나기도 하는데요. 처음에는 이게 무슨 예술이냐고 하다가 지금은 백남준 류의 비디오 아트가 미술계에 자리가 생겼잖아요? 게임도 그런 게 가능할까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저는 어떤 측면에서는 (게임이) 이미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만큼 자리 잡혔다고 생각해요. 싱글 채널 비디오 아트에서 옛날에는 작가가 선형적인 타임라인 안에서 촬영을 해서 편집을 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CGI가 안 들어가는 작업을 찾기가 힘든데, 그 CGI 작업 자체가 유니티 아니면 언리얼을 너무 많이 쓰기 때문에, 이미 게임의 문법으로 영상 언어를 만들고 있고, 그 과정에서 메타버스나 NFT를 경험해 본 작가들이 너무 많이 늘어났기 때문에, 게임의 작법을 어떻게 적용시키고 잘 만들지에 있어 기술력에 대한 갈구가 큰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작가들도 고민하는 게, 그런 기술력을 써서 작업을 만들면 1, 2년 사이에 빠르게 낡아버린다는 감각을 느끼게 되는거죠. 이제는 딱 보면 ‘이거는 심즈 미감, 이거는 플레이스테이션 1 미감, 이거는 언리얼 엔진 5 미감’ 이런 걸 바로바로 알 수 있기 때문에 너무 금방 낡아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이번에 김희천 작가가 개발을 할 때도 큰 화면에 굉장히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만들 수 있었지만,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거는 풀레이스테이션 1 미감에 로우 폴리곤을 써서, 시간대를 흐트러뜨리고 싶은 의도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작가님이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 https://www.esquirekorea.co.kr/article/77220)에서 언급한 예시 중에 라라 크로프트가 있었는데요. 옛날에, 기술이 발전하지 못했을 때에는 게이머들 각자의 라라가 있었던 거예요. 자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라라. 그런데 기술이 발달해서 실사화가 되니까 모두가 실망했다는 거죠. 자기의 라라가 아니라서. 그런 상상의 여지를 열어두고 게임을 하던 그 시기가 현대 미술과도 닿아있는 것이, 예술을 감상하고 체화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딱 그 부분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요. 이경혁 편집장: 확실히 게임계에서는 그런 기술적 맥락들이 중요하죠. 사실 초창기 레트로 게임들은 지금처럼 폴리곤 방식으로 안 만들고, 도트로 이제 디자인을 했잖아요. 근데 도트디자인에서는 박모라고 하죠? CRT 특유의 번짐을 포함해서 디자인을 한 게 있었죠. 그런 미감들은 시대적인 맥락에서 감상되고, 이해되는 지점들이 있지요. 그런 맥락에서 생각나는 것이 이번 전시에서 <슈퍼 마리오 무비>는 다양하게 감상될 것 같은데, 이전 게이머들에게는 그 화면이 익숙하거든요. 게임팩을 처음 꽂았을 때, 뭔가 지직거리면서 나오는, 그래서 다시 훅훅 불고 게임팩을 꽂는 익숙한 화면인데, 그 경험이 없거나 그 시절을 안 겪은 요즘 게이머들은 무슨 화면인지 모르는 거죠. 그런건 도록에 아무리 써도 잘 알 수가 없죠. 홍이지 학예연구사: 그런 지점이 현대 미술과 게임의 접점이기도 한 것 같아요. 제가 브로셔에 쓴 글이 있어요. 게임을 하는 것과 현대 미술을 감상하는 과정이 되게 비슷하다고 써놓은 게 있거든요. 저는 실제로 그랬던 것이, 제가 게임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면 미술계에 계신 많은 분들은 제임을 잘 모르시거든요. 그런데 반대로 외부에서 ‘저 미술관에서 일해요’라고 하면 ‘저는 현대 미술은 하나도 모르겠어요’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은 거죠. 이렇게 서로 문법이 다르고, 시간을 들여서 익히지 않으면 온전히 즐길 수 없는 두 대상을 공공미술관에서 다룬다는 점에 있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어떻게 보면 이번 전시에 ‘접근성’을 무게감 있게 다룬 것도 연장선 상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경혁 편집장: 말씀해주신 접근성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데요. 이번 작업을 하시면서 접근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보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게임계의 바깥에 계신 입장에서 게임 접근성의 현재를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저희가 전시를 기획할 때, 컨트롤러를 이용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Xbox Adaptive Controller (Xbox 접근성 컨트롤러: 국립재활원의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에서도 소개되었던, 장애인의 게임 접근을 돕기 위한 컨트롤러)로 전시할 수 있는 게임이 거의 없는 거예요. 특히 국내 게임은 하나도 없었죠. 그런데 지스타가 열렸을 때, 넥슨에서 ‘카트라이더: 드리프트’가 나오니까 그거를 이 컨트롤러로 쓸 수 있게 기술적으로 검토를 해달라는 이야기가 국립재활원에서 있었고, 국립재활원 연구에 참여했던 가족들에게도 ‘단 하나라도 집에서 할 수 있는 국내 게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서 마지막에 ‘카트라이더: 드리프트’를 넣은 지점도 있어요. 그런데 사실 엑스박스 컨트롤러는 국내에서 팔지도 않고, 접근성이 많이 떨어지죠. 그리고 우리나라 게임 시장에서 게임에 대한 (장애인과 여러 소수자의) 접근성을 확장해야 한다는 논의는 많이 있었지만, 여전히 게임은 산업으로 분류되고 게임에 대한 평가도 이용자가 얼마인지 등 가시적인 숫자로 평가되기 때문에, 접근성에 관한 논의가 떨어지는 거예요. 이경혁 편집장: 그런 지점에서 한편으로는 이번 전시 이후에도 게임의 접근성에 관한 논의가 더 잘 드러날 수 있는 전시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사실 미술관과 접근성은 게임보다 먼저 논의들을 거쳤잖아요? 이제는 미술관이, ‘한국에서 장애인이 갈 수 있는, 가장 접근성이 높은 공간’ 중 하나로 꼽히는데, 거기에서 접근성에 관한 논의가 부족한 ‘게임’이 이야기된다는 지점이 유의미한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가 더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그런데 저는 매일 내려가서 Xbox Adaptive Controller를 쓰시는 분들을 보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금방 익숙하게 잘하세요. 저희 딸이 11살인데, 저희 딸한테 마인 크래프트를 이 컨트롤러로도 시켜봤는데, 자기만의 방법을 만들어서 하긴 하더라고요. 확실히 접근성에 관한 논의들은 실제로 경험해보면서 느끼는 지점들이 있는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그렇죠. 어떤 컨트롤러에 익숙한지에 대한 문제를 확장하면 장애인 접근성에 관한 논의와 같은 맥락이에요. 그러니까 사실 접근성 관련 논의가 비단 장애인으로만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 보편성에 관한 논의이고, 오히려 메이저를 향해 가는 지점들이 분명히 있지요. 그래서 이러한 고민들을 손쉽게 ‘돈 안되는’, ‘착한 일’로 인식할 수 없는 것 같아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맞아요. 사람들이 접근성을 자꾸 소수자의 문제라고 쉽게 인식하지만, 크게 보면 사실 키오스크의 사례도 같은 맥락이죠. 만약 키오스크에서 에러가 떴을 때, 핸드폰을 많이 쓰는 세대는 직관적으로 초기 화면으로 넘어갈 수 있는 문해력이 있는데, 그게 전혀 없는 사람들은 그냥 손 놓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죠. 그래서 문해력이 없는 사람도 배려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 거죠. *김희천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동시에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상호작용의 현장 이경혁 편집장: 앞서 게임계의 다양한 반응과 그 지점에서 공공미술로의 특수성 같은 말씀들을 해주셨는데, 미술계의 반응은 좀 어떤가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미술계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긴 한데요. 먼저 제가 예전에 <유령팔>이라는 전시를 했던 걸 많이들 아시니까, 연장선에서 봐주시는 분들은 포스트 디지털 미술사 맥락에서 읽어주시는 분들도 있고요. 또 어떤 분들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게임 전시를 해서 카타르시스가 있다고 봐주시는 분들도 있고요. 또 어떤 분들은 새로운 세대가 (미술계로) 진입해서, 경험이 확장되는 것을 의미있다고 봐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게임과 미술이라는 콜라보가 참 쉽지 않은 영역이었는데, 이후에는 어떻게 관계를 가져갈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좀 해야 할 시기 같아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그래서 미술 쪽에 비평하시는 분들 중에선 게임의 미감과 질감이 다음 세대의 미디어 아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왜냐하면 언리얼 풍이나 유니티 풍의 미감이나 마감이 단순히 작업물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작업 방식이나 사고 방식에도 영향을 주잖아요. 재미있는 사례로, 최근에는 실제 공간을 인식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온 것을 느끼는데요. 저는 실제 전시 장소에서 물리적인 양감과 구조를 이해하며 작품을 감상하고 설치하는데, 어떤 작가분들은 실제 전시장에 와서도 사진을 찍은 다음, 사진으로 보는 거예요. 그래서 ‘실제로 보는 것이 낫지 않나?’고 했더니, 자기는 핸드폰 스크린으로 보는 게 훨씬 이해가 빠르다고 말하는 거죠. 이처럼 프로그램이나 기술이나 게임의 문법이 여러 변화를 만든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재미있는 말씀이네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이런 논의들이 게임이라는 매체를 시각적인 대상으로 볼 때 한정되는 문제이기도 한데요. 어떻게 보면 게임의 또 다른 정체성이자 특징인 규칙, 그리고 그 규칙과 상호작용하면서 겪게 되는 어떤 감정의 변화라는 것을 어떻게 다룰지도 고민할 수 있는 영역인 것 같아요. 미술이 게임의 방법론을 가져간다면 사실 이 고민이 필요할 것 같은데, 전시라는 방식으로 우리가 이런 영역을 다룰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세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좋은 예시가 김희천 작가 작업인 것 같아요. 김희천 작가 작업은 앞 부분에서 유니티로 만든, 모바일 게임을 하는 주인공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 게임의 아바타 같은 사람이 미술관을 돌아다니는데, 이후 실제 인물이 연기를 하는 파트가 끝나면 전시장에 구현된 35대의 CCTV가 이미지를 수집하고, 수집된 이미지가 실시간으로 변환되어서 출력되는 파트가 있거든요. 실제 게임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건 이 부분이죠. 우리는 보통 앞부분을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뒷부분을 게임으로 보지 않는데, 작가님에게는 이 부분이 게임인 거고, 내러티브가 있는 기존의 미디어 작품의 문법으로 해석했을 때 실시간 반영이 작품에 즉흥적으로 개입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이 이전의 영상 작품과는 다르게 볼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이경혁 편집장: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게임의 문법 쪽으로 가지를 뻗어간다면, 어차피 집에서도 경험을 할 수 있는데, 전시장에 가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요? (웃음) 홍이지 학예연구사: 그렇죠. (웃음) 다만, 전시장이 어떤 풍경을 만들었는지가 너무 중요한 것 같아요. 실제적으로 어떤 콘텐츠가 상영되는 지보다, 사람들의 행동 양식, 반응, 상호작용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보는 것이 유효한 지점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전시장에 와서 보는 미디어 작업이 어떤 경험의 차이를 만드느냐에 대한 문제인데, 우리가 예술을 통해서 온당하게 다뤄야 할 내용에 대해서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것. 사회적 주제에 대해서 모두가 드나드는 공간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가 굳어질 수 있는 사회 문법에 균열을 줄 수 있어요. 그런 균열을 만드는 공간이 미술관인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맞습니다. 게임 자체로는 이미 예술을 하고 있어요. 다만, 그중에 전시될 수 있는 방식이 미술관에서 전시된다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지, 모든 게임이 미술관을 가야하는 것도 아니며, 의미가 생기는 것도 아니지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작업 계획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홍이지 학예연구사: 저는 81년생인데, 어렸을 때 게임을 하고 싶었지만, 엄마가 ‘여자애가 무슨 게임이야? 오락실에 가 있는 오빠나 빨리 데려와서 저녁 먹으라고 해.’ 라는 말을 듣고 자랐거든요. 그래서 오빠를 데리러 가면, 오빠는 친구들이랑 ‘스트리트 파이터’ 하고 있고, 오빠가 저한테 200원 주면 테트리스하고, 보글보글했던 기억이 있어요. 이것처럼 저는 어릴 적부터 게임을 접했지만, 동시에 사회적으로 남성적 문화라는 점에서 게임 문법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적 경험을 해왔어요. 그러다 보니까 지금도 게임에 몰입하지 못하고, 미끄러지는 경험들을 하게 되고, 그런 경험들 때문에 이런 전시를 하게 된 것 같아요. <유령팔>도, 85년 이후 세대들이 포스트 미디엄을 다루고 있는 특성과 달라진 창작 환경에 대해서 짚어보고자 기획했어요. 물리적인 감각이나 스케일 감이나 물질에 대한 감각을 인지하는 세대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 현대미술에도 그런 맥락에서 게임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의 전시도 이런 고민들을 담는 지점에서 세대적 경험에 균열을 만들어갈 것 같습니다. Tags: 인터뷰,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 전시, 미술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 비언어 커뮤니케이션과 트롤링
그런 점에서 긍정적이지 않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을, (게임이나 플레이어의 폭력성이나 가학성을 드러내는 것일 수 있지만, 그보다는) 게임 시스템 활용의 하나이자, 전체 플레이의 맥락 속에서 이뤄지는 하나의 실천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Back 비언어 커뮤니케이션과 트롤링 14 GG Vol. 23. 10. 10. 게임과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다른 플레이어(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은 게임하는 과정 내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행위다. 특히 갈수록 많은 게임들이 혼자서는 플레이하기 어려운 형태를 취하는 상황에서, 많은 플레이어들이 게임 안과 밖을 오가며 자유롭고 활발하게 커뮤니케이션한다. 플레이어들은 멀티 플레이어 게임 플레이를 통해 게임 시스템이 부여하거나 스스로 설정한 목표를 달성할 뿐 아니라, 언어 대화와 비언어 표현을 통해 흥미롭고 창의적인 상호작용을 경험한다. 이제 대부분의 멀티 플레이어 게임들에는 플레이어들 간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정보(내적) 인터페이스가 기본적으로 포함된다. 플레이어들은 그러한 인터페이스를 활용해 게임 관련 정보를 교환하고, 전술·전략을 세우며, 때로는 사적인 일상을 나누기도 한다. 보다 원활하고 재미있는 게임 플레이, 그리고 새로운 게임 플레이 커뮤니티의 형성에 있어 (정보 인터페이스를 경유한) 플레이어(들) 간 커뮤니케이션은 필수적인 요소다. 그렇게 커뮤니케이션은, 게임 플레이의 일부가 된다. 하지만 플레이어들 간에 이뤄지는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꼭 게임 플레이를 원활하고 재미있게 만들거나, 새로운 커뮤니티의 형성으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당 비중의 커뮤니케이션이 그 반대의 상황을 가능케 하는 방식으로 행해진다. 다른 플레이어(들)을 조롱·모욕·비방하거나, 게임 플레이의 흐름을 막거나 뒤엎고 의미 없게 만드는 커뮤니케이션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질 때, 플레이어(들)은 모든 게임 내 정보 인터페이스를 활용해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거나 괴롭히는 등 반사회적 행동의 여지를 남기는 데 전념한다. 반사회적 행동의 여지를 남기는 커뮤니케이션은 (일부 발화자에게는 재미나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줄지 모르나) 대개 게임에 참여하는 플레이어(들)을 불편하게 하거나, 그들로 하여금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대응을 하게 만들며, 때론 게임 바깥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행위(현피, 고소 등)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 때문에 대부분의 멀티 플레이어 게임들은 시스템적으로 대비책을 마련해놓고 있다. 채팅창에 아예 욕설을 입력할 수 없게 하거나, 긍정적이지 못한 커뮤니케이션을 한 플레이어에 대한 다른 플레이어들의 신고가 누적되면 제재(채팅 금지, 접속 금지 등)를 가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물론 시스템으로 강제하는 법칙이 아니라 해도,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매너를 지키는 것은 일종의 약속된 규칙이다. 하지만 게임 내 많은 상황에서 특정 플레이어들은 참지 못한다. 일부 플레이어들은 고의로 긍정적이지 못한 커뮤니케이션을 남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언어 커뮤니케이션뿐 아니라,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도 빈번하게 이뤄진다. 심지어 시스템적으로 언어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하게끔 설계된 게임, 그리고 조롱·모욕·비방을 위한 표현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위주의 게임에서조차 반사회적 행동의 여지를 남기는 커뮤니케이션은 행해진다. 어떤 상황에서든 플레이어들은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기 위한 방법을 찾아낸다. 그리고 기가 막히게도 그 방법은 상대에게 먹히고, 곧 게임 내에서 통용된다. 명시적인 언어 커뮤니케이션에 비해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은 단번에 이해하기 어렵고 맥락적이다. 그렇기에 잘 발견되지 않고, 시스템적 제재도 덜 받거나 받지 않는다. 하지만 특정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이 게임 내에서 통용되고 문법화된다는 것은, 그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이 언어 커뮤니케이션만큼이나 명시적인 트롤링(trolling) 기법이 됨을 의미한다. 트롤링이란 게임에서 다른 플레이어들이 불편하거나 화를 낼만한 행동을 의도적으로 해서 반응을 이끌어내려는 행위를 말한다.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특히 그 중에서도 상대방을 조롱하거나 모욕하거나 비방하는 등 긍정적이지 않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살피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이 왜 그리고 언제 이뤄지는지, 트롤링과의 연관 속에서 발생하는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게임 안과 밖에서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논의하고자 한다.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은 왜 그리고 언제 이뤄지는가 게임에서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는 경우는 세 가지 정도다. 미리 이야기하자면, 세 경우는 상호배타적이지 않으며, 특정 상황에서 연결되거나 둘 이상의 유형이 함께 나타날 수 있다. 첫째, 언어 커뮤니케이션과 함께 이뤄지는 경우다. 많은 멀티 플레이어 게임들이 문자·음성 채팅과 같은 언어 커뮤니케이션뿐 아니라, 짧은 감정 표현, 이모티콘 등의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수단을 제공한다. 이 때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은 언어 커뮤니케이션까지는 필요 없거나 언어 커뮤니케이션만으로는 특정 감정이나 정보를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에 주로 사용된다. 둘째, 언어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어려운 경우다. 긴박한 상황이거나, 양손과 온 신경을 항상 써야 하는 상황에서 짧은 감정 표현, 인장, 스마트 핑(packet internet groper: ping)은 (비언어 커뮤니케이션보다는) 긴 메시지를 함축해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전달할 수 있게끔 돕는다. FPS(first person shooter)나 AoS(aeon of strife) 같은 게임류, 그리고 MMORPG(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의 레이드(raid)와 같은 특정 게임 상황에서 언어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어려운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물론 이 때 게임 안에서는 비언어 커뮤니케이션만을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게임 바깥으로는 음성 채팅을 활용한 언어 커뮤니케이션을 병행하는 일 또한 가능하다. 첫째 경우가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이 언어 커뮤니케이션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냄으로써 게임 커뮤니케이션 전반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라면, 둘째 경우는 언어 커뮤니케이션의 빈 곳을 메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셋째, 플레이어 간 언어 커뮤니케이션을 의도적으로 제한하는 경우다. 시스템적으로 언어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데 특정 상황에 의해 하지 못하는 것과, 애초에 시스템적으로 언어 커뮤니케이션이 막혀 있고 비언어 커뮤니케이션만이 허용되는 것에는 차이가 있으며 이는 후자에 한한 이야기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구현하기 위한 작업과는 반대 축에서, 게임 디자이너들은 플레이어(들) 간 커뮤니케이션을 제한하기 위한 작업에도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노력은 대체로 플레이어 간에 언어 커뮤니케이션을 사용하거나 커뮤니케이션을 활발하게 하는 일이, 서사 진행에 방해가 되거나 플레이에 적합하지 않거나 플레이어(들) 기분에 악영향을 줄 확률이 높은 게임들을 위한 것이었다. 가령 MMORPG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에서 플레이어는 얼라이언스와 호드라는 적대적인 두 진영 중 하나를 선택해 캐릭터를 만들게 되는데, 각기 다른 진영 플레이어 간에는 언어로 의사소통하는 것이 시스템적으로 불가능하다. 오직 제스처를 통해서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다. 이러한 시스템 디자인은 두 진영 사이에 서사적 긴장을 조성하는 데 효과적이다.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의 방식 하지만 전술한 바와 같이 플레이어(들) 간 언어 커뮤니케이션을 제한하는 게임을 할 때조차도, 플레이어들은 부정적인 메시지 전달을 위한 방법을 찾아낸다. 대표적인 방법이 ‘감정 표현’을 활용하는 것이다. TCG(trading card game) <하스스톤(Hearth Stone)>에서 플레이어는 본인이 선택한 영웅을 클릭(PC로 플레이하는 경우)하거나 터치(모바일로 플레이하는 경우)함으로써 간단한 감정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 그 자세한 메시지는 영웅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지만, 기본적으로 메시지는 ① 감사, ② 칭찬, ③ 인사, ④ 감탄, ⑤ 이런!, ⑥ 위협의 6가지 감정 표현을 담아낸다. 혹자는 그 메시지 자체가 언어적 커뮤니케이션에 가까운 것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겠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그 메시지는 플레이어가 직접 입력하는 것이 아니며, 세부 내용을 고르거나 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클릭/터치 한 번으로 발화자가 기재하지 않은 메시지를, 그것도 특정 감정에 대한 것만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하스스톤>의 인스턴트 감정 표현은 한 단어로 적은 이모티콘이자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의 일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6개의 감정 표현에는 사실상 ‘⑥ 위협’ 정도를 제외하고는 부정적 메시지가 존재한다 보기 어렵다. 하지만 특정 맥락에서 플레이어는 6개 중 한 개 이상의 감정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상대방을 조롱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상대 플레이어 턴에서 시간이 지연될 때 ‘③ 인사’를 연타하면, 그것은 상대에 대한 재촉을 나타낸다. 상대가 실수하거나 상대에게 큰 피해를 준 후 ‘① 감사’ 표현을 하는 일은 누가 봐도 조롱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전사 캐릭터 중 하나인 ‘정신 나간 천재 박사 붐(이하 ‘붐’)’은 반말은 기본이고 특유의 길면서도 도발적인 어휘(예를 들어, ① 감사: “고마워! 넌 마지막에 처리해줄게”)와 (심지어) 억양으로 인해 그 어떤 다른 캐릭터들보다도 상대 플레이어의 짜증을 유발한다. (앞선 두 번째 사례를 붐이 한다고 생각해보자...) AoS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 이하 ‘LoL’)>에서도 챔피언들 감정 표현이 존재한다. 컨트롤(Ctrl) 버튼 1부터 4까지를 누름으로써 각각 농담, 도발, 춤, 웃음을 사용할 수 있다. 동작이 큰 챔피언은 감정 표현을 하지 않을 곳에서 감정 표현을 (연타)함으로써 상대방에게 소위 ‘인성질(게임 플레이에서 나쁜 매너를 보이는 행위)’을 할 수 있다. 게임이 안 풀리는 상대방을 향해 시끄럽게 웃어대거나 촐싹대는 움직임을 반복하는 행위는 상대 플레이어(들) 기분에 아주 큰 타격을 주기도 한다. 이유는 알기 어렵지만 에서 시스템적으로 상대의 감정 표현을 차단할 수 있게끔 해놓기는 했다. ‘인장’을 통한 인성질도 빼놓을 수 없다. 인장은 게임 내 승패에 직접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상대 플레이어를 도발하고 조롱하는 데에는 유용하게 쓰인다. 라인전 시작 전 머리 위에 숙련도 인장을 띄우며 선전포고하는 것부터 시작해, 죽은 상대 챔피언 앞에서 인장을 연속으로 펼치는 행위, 심지어 e스포츠(e-Sports) 대회에서 상대 플레이어의 전 소속팀이나 승리 팀의 인장을 사용하는 행위 등이 이에 속한다. 특히 AoS 장르 게임들에서 자유 사용되는 ‘스마트 핑’을 반복적으로 날림으로써 특정의 긍정적이지 못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도 있다. 스마트 핑이란 팀원에게 특정 메시지(공격, 수비, 경고, 지원 요청 등)와 관련된 신호를 보내 플레이를 원활하게 해주는 기능을 말한다. 핑을 날리면 모든 파티원들이 그 신호를 보고 들을 수 있기 때문에, 핑 남발을 막기 위한 회수 제한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Heroes of the Storm>에서는 플레이나 커뮤니케이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같은 편 플레이어(들)에게 반복적으로 핑을 찍음으로써, 해당 플레이어(들)의 부족한 실력이나 그(들)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고자 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나타난다. 플레이 방식을 바꿈으로써 같은 편이나 상대 편 플레이어(들)에게 부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가능하다. 일부러 대충 플레이하거나, (특히 턴제 게임에서) 천천히 플레이하거나, 진행 중인 게임을 중간에 종료하거나(물론 멀티 플레이어 게임에서 이 경우에는 대체로 시스템적 제재가 가해진다), (특히 RTS(real-time strategy)에서) 동일 진영을 공격하는 행위 등이, 굳이 언어 커뮤니케이션을 사용하지 않고도 상대 플레이어(들)을 자극하는 방법들이라 하겠다. 비언어 커뮤니케이션만 사용 가능한 게임들에서, 경기가 끝난 후 상대방에게 친구 요청을 보내 (상대방이 요청을 받으면) 본격적(?)인 언어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하는 플레이어들도 있다. 그 밖에도 부정적 의미의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그야말로 기상천외하며, 끝없이 새롭게 개발되고 통용된다. 비언어 커뮤니케이션과 트롤링, 그 의미 그렇다면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트롤링은 게임 안과 밖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며,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첫째,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트롤링은 게임의 시스템적 디자인과 플레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상호작용이 어떻게 서로 얽히고 충돌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사례다. 멀티 플레이어 게임에서는 시스템적으로 허용되든 그렇지 않든,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이 허용되기만 한다면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사용함으로써 상대방에게 부정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이 가능하다. 이는 커뮤니케이션 자체를 대폭 제한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친근하고 편안한 커뮤니케이션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게임 디자이너들의 목표와는 노골적으로 배치된다. 메시지 내용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떠나 생각해본다면,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을 새로운 맥락이나 용도로 바꿔 쓰는 일은 플레이 차원에서 게임 내 커뮤니케이션의 진화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준다. 물론 이러한 진화는 안 되는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상대에게 부정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마려는 플레이어(들)의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상대에게 받아들여지고 게임 내에서 통용되는지의 과정을 고찰할 수 있게끔 해준다는 것이다. 둘째, 부정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보내는 플레이어와 그것을 받는 플레이어를 보다 입체적으로 상상할 필요가 있다. 맥락 바깥의 플레이어(들)에게 있어서는 감정 표현이나 스마트 핑을 반복하는 행위가 아무 것도 아닌 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특정 게임 내에서만 작동하는 관습과 코드에 익숙하지 않거나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은 언어 커뮤니케이션처럼 명시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플레이어에 따라 특정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민감도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범위가 다를 수 있음은 물론이다. 보내는 플레이어의 의도도 다양하다. 어떤 플레이어(들)은 상대 플레이어(들) 앞에서 자신을 과시하려 한다. 또 다른 플레이어(들)은 상대 플레이어(들)을 조롱·모욕·비방하는 데서 재미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플레이어는 극소수이거나, 아주 특정한 맥락에서만 그런 느낌을 갖게 될 것이라 믿는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부정적 커뮤니케이션의 책임을 상대에게 돌리고, 플레이 과정에서 느낀 상대방에 대한 긍정적이지 못한 감정을 풀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은 얼핏 언어 커뮤니케이션만큼 노골적이고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특정 맥락에서는 언어 커뮤니케이션이 할 수 없는 표현을 가능케 함으로써 더 큰 효과를 획득하게 될 수 있다. 플레이어(들)에 따라, 그들이 처한 상황과 맥락에 따라, 그와 관련되는 의도와 수용도에 따라 보내는 메시지와 받는 메시지의 효과와 의미가 더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이다. 마지막으로,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상대 플레이어(들)을 조롱하거나 모욕하거나 비방하는 등 긍정적이지 않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행위를 ‘트롤링’으로 규정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재고가 요구된다. 글 말미에 어울리지 않는 말일 수 있겠다. 트롤링은 게임에서 다른 플레이어들이 불편하거나 화를 낼만한 행동을 의도적으로 해서 반응을 이끌어내려는 행위를 총칭할 뿐이며, 그 범위가 당연히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부정적 커뮤니케이션을 보내는 플레이와 그것을 받는 플레이어 간 메시지에 대한 이해가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점은 차치하고)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은 언어 커뮤니케이션보다 모호한 만큼, 그 커뮤니케이션의 자장 안에 있는 플레이어(들) 간 관습과 코드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하며, 기본적으로 중의적이다. 의도는 있을지언정, 그 반응은 의도와 같지 않을 수도 있다. 항상 반응을 의도하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커뮤니케이션을 발신하는 일 자체가 목적일 수도 있다. 게임에서의 트롤은 놀이로서의 플레이 진행을 방해하는 존재들인데, 그러한 커뮤니케이션이 언제나 게임 플레이를 게임 플레이 답지 않게 만든다고도 보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을 트롤링으로 칭하는 일이 적절하든 그렇지 않든, 그리고 앞으로 계속 그렇게 칭해지든 그렇지 않든,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은 앞으로도 게임 내에서 죽 이어지거나 어쩌면 더욱 활발하게 가시화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글에서 살펴본 류의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은 게임의 시스템적 디자인과 플레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상호작용 사이의 충돌, 커뮤니케이션이 제한적으로만 이뤄질 수 있는 게임에서 발생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역동성 혹은 진화,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이 낳는 메시지 의미에 관한 플레이어 간의 합의 또는 협상 문제 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풍부한 커뮤니케이션이 반드시 풍부한 시스템적 설계나 정보 인터페이스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이 글에서는 ‘긍정적이지 않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에 논의의 초점을 맞췄지만, 사실 이는 긍정적인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나아가 언어 커뮤니케이션과의 조화 속에서 언제나 함께 일어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긍정적이지 않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을, (게임이나 플레이어의 폭력성이나 가학성을 드러내는 것일 수 있지만, 그보다는) 게임 시스템 활용의 하나이자, 전체 플레이의 맥락 속에서 이뤄지는 하나의 실천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플레이어(들)이 허용하는 적정선 하에서, 이런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은 게임 커뮤니케이션의 일부이자 플레이의 일부다. Tags: 하스스톤, 핑, 스마트핑, 트롤링,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강신규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게임, 방송, 만화, 팬덤 등 미디어/문화에 대해 연구한다. 저서로 <흔들리는 팬덤: 놀이에서 노동으로, 현실에서 가상으로>(2024), <서브컬처 비평>(2020), <아이피, 모든 이야기의 시작>(2021, 공저), <서드 라이프: 기술혁명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2020, 공저), <게임의 이론: 놀이에서 디지털게임까지>(2019, 공저) 등이, 논문으로 ‘이기지 않아도 재미있다: 부모-자녀 게임 플레이의 사회성과 행위성, 그리고 분투형 플레이’(2024), ‘커뮤니케이션을 소비하는 팬덤: 아이돌 팬 플랫폼과 팬덤의 재구성’(2022), ‘‘현질’은 어떻게 플레이가 되는가: 핵납금 게임 플레이어 심층인터뷰를 중심으로’(2022, 공저), ‘게임화하는 방송: 생산자적 텍스트에서 플레이어적 텍스트로’(2019) 등이 있다.
- 게임 to 현실, 현실 to 게임: <게임의 사회학> 서평
〈게임 사회학〉은 저자 스스로 그 빈칸을 채우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책이었다. 저자가 스스로 게이머들이 왜 이런 행동을 보였을지 이유를 추적하고 그 인과성을 검증하는 모델을 세우는 과정을 보였기 때문이다. 즉 정량적인 연구라도 연구 문제를 설계하고 모델에 어떤 변수를 채택하고 분석 결과를 해석하는 일은 다시 사람의 몫이다. 전통적인 사회과학이나 통계학 연구자들이 딥러닝을 학문으로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딥러닝 모델이 독립변수와 종속변수의 관계를 설명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설명 가능한 인공지능(eXplainable AI) 필요성이 부각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XAI는 알고리즘이 왜 이런 결과를 내놓았는지 추적해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정량적인 연구와 정성적인 연구가 연결되는 지점이며, 앞으로 게임과 그 관련 데이터를 활용한 사회과학 연구가 가야할 길이기도 하다. < Back 게임 to 현실, 현실 to 게임: <게임의 사회학> 서평 10 GG Vol. 23. 2. 10. * 필자는 〈게임의 사회학〉 저자처럼 데이터 사이언스 방법론을 기반으로 인문사회과학 연구를 하는 연구자이다. 따라서 저자의 접근법(연구방법)에 좀 더 친숙하기 때문에 편향이 있을 수밖에 없는 점을 미리 인지하고 이 글을 읽어주셨으면 한다. 1. 완벽히 통제된 전수 데이터의 꿈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에게(특히 사회과학) 꿈같은 일은 자신이 검증하고자 한 가설이나 연구 문제에 딱 맞는 데이터를 구하는 것이다. 예컨대 부모의 소득과 수능점수의 인과관계를 밝히고자 한다면, 수능점수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변수(체력, 지능, 인내력 등)를 ‘통제’하고 부모의 소득만 다른 수험생을 찾아야 한다. 쌍둥이를 찾아서 서로 다른 부모에게 입양 보내지 않는 이상 그런 데이터를 구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사회과학자들이 다루는 데이터는 늘 ‘표본’ 데이터이다. 데이터에는 늘 누락과 접근 불가능한 상황이 있으므로 전수 데이터는 만져볼 기회가 없다. 따라서 완벽히 통제된 전수 데이터는 꿈같은 말이다. 대신 사회과학자들은 늘 부족한(질적으로든 양적으로든) 데이터를 만회할 수 있는 여러 분석 방법론을 개발해왔다. 이른바 통계적 유의성(statistical significance)을 자신의 연구에서 목숨 걸고 사수하려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늘 부족한 데이터이지만 데이터에 맞는 분석 모형을 만들어 분석 결과의 유의함을 밝혀내는 일 말이다. 연구자들은 자신이 내놓은 분석 결과가 확률적으로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강건하게(robust) 지지하게 될 수 있게 부단히 노력한다. GPU 같은 컴퓨팅 파워의 대중화와 프로그래밍 언어와 각종 분석 소프트웨어의 발전으로 사회과학 연구자들은 지금까지 꿈이라고만 여겼던 초거대 데이터 세트를 연구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 서평에서 다룰 게임 파생 데이터가 아니더라도 소셜 미디어나 건강보험 공공데이터 등 수천만, 수억 건의 데이터를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다루기 시작했다. 빅데이터 기반의 사회과학 연구인 이른바 계산사회과학(Computational Social Science)의 출현도 이와 연관이 있다. 이런 제반 사항이 잘 갖춰졌는데도 사회과학 연구자들에게 게임 데이터는 여전히 낯선 영역으로 보인다. 〈게임의 사회학〉에서도 그 부분을 지적하며 논의를 시작한다. 2. 게임은 현실을 표상하는가? 현실이 게임을 표상하는가? 저자는 서문에서 게임 데이터 기반 사회과학연구가 이제 걸음마 단계임을 강조한다. 왜 아직 연구자들은 게임 파생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지 않은가? 게임 데이터 역시 통제가 필요하고 전수 데이터를 모으기 힘든 점이 있지만 현실에서 수집을 상상하기도 어려운 데이터를 가상공간에서는 구해볼 수 있는 장점이 충분히 있다. 1) 하지만 내 생각엔 다음 세 가지 이유로 연구자들이 활용하기를 꺼리는 듯하다. 1) 디지털 공간에 존재하는 게임 데이터의 수집과 핸들링을 위해서는 코딩 같은 추가 연구 역량이 필요하다. 2) 이전에 전통적으로 다루던 설문조사 등의 데이터보다 훨씬 더 많은 대량의 데이터를 다루기 힘든 측면. 3)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특징은 게임이 인간 현실사회를 반영하는 공간인지 연구자들이 의심한다는 점이다. ‘게임을 하는 사람’이라는 데이터 자체의 선택 편향을 의심하는 연구자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필자가 책의 전반부에서 ‘게임 -〉 현실’이라고 명명한 것은 이러한 측면에서 매우 적확하다. 게임이라는 렌즈를 통해 현실을 바라보는 연구가 ‘게임 사회학’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의 후반부를 ‘게임 〈-〉 현실’이라고 배분한 것도 이와 연결된다. 이제 게임은 단순히 인간 사회의 작동 원리나 특징을 바라보는 교보재가 아니라 사회 현실과 게임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형태 역시 연구자들이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가상 세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인터넷 검색 엔진에 검색되지 않으면 세상에 없는 것으로 인식하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볼 때, 필자의 말처럼 이제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을 위해서는 반드시 게임을 들여다봐야 하는 시점에 도래한 것은 아닌가? 특히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건 당일 리니지의 아이템 거래도 그 수가 매우 줄었다는 부분 2) 에서 나 역시 게임이 현실과 분리되지 않고 그 둘이 연동돼 있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3. 계산사회과학의 한계와 객관성이라는 신화 다음으로 이 책은 사회과학이 중요하게 다루는 인간과 사회의 ‘행위’, ‘조직’, ‘경제 활동’, ‘범죄’, ‘호혜성’ 등의 개념을 게임 데이터를 가져와 정량적인 방법으로 잘 설명해냈다. 통계와 네트워크 분석, 더 나아가 기계학습 기반의 의사결정나무까지 여러 방법론이 소개됐다. 이러한 정량적인 방법론에 대해 연구자를 포함한 시민들은 그 자체로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라고 평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계산사회과학 연구가 주목 받는 이유도 연구의 객관성과 과학성이 질적인 연구에 비해 우월하다는 데 있다. 하지만 (빅)데이터 방법론은 전가의 보도가 아니며 정량적인 모델이 객관적이라는 평가도 과대평가 된 신화이다. 특히 요즘 각광 받는 딥러닝 기반의 분석 방법론은 전통적인 통계 모형보다 매우 성능이 뛰어나지만, 해당 모델이 내놓은 결괏값을 설명해낼 수 없는 블랙박스인 경우가 많다. 또한 데이터 수집과 전처리 과정에서 여러 연구자의 의도가 들어갈 수밖에 없기에 정량적인 연구는 객관적일 거라 믿는 태도도 위험하다. 데이터에 내재하는 편향성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 인공지능에 내재한 여러 편향의 문제는 알고리즘 학습 때부터 내재한 것이다. 또한 계산사회과학이 내놓는 결과물은 해당 집단이나 개인의 가장 평균적인 면을 보여준다. 결국 분석과정에서 드러나지 않는 개인과 집단의 특이성은 배제되곤 한다. 4. 정량과 정성, 구별할 필요 없이 인문학은 거의 모든 사람이 기본적으로 정성적인 연구를 계속해왔기 때문에 구별이 거의 없지만 3) , 사회과학에서는 연구자를 구분할 때 ‘질방(질적인 방법)’ , ‘양방(양적인 방법)’으로 나누곤 했다. 나는 이제 이러한 구분은 의미가 희석될 것으로 생각한다. 〈게임의 사회학〉에서도 그 두 방법을 모두 활용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예컨대 게임 유저의 행동을 정량적인 방법으로 분석했을지라도 인터뷰나 민속지(Ethnography) 같은 전통적인 방법론으로 보완하였다. 결국 게임 데이터를 활용하는 연구자는 정량적인 분석을 시행하더라도 해당 게임에 참여하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이해는 모델링으로 채우지 못하는 빈칸을 채우게 할 것이다. 〈게임 사회학〉은 저자 스스로 그 빈칸을 채우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책이었다. 저자가 스스로 게이머들이 왜 이런 행동을 보였을지 이유를 추적하고 그 인과성을 검증하는 모델을 세우는 과정을 보였기 때문이다. 즉 정량적인 연구라도 연구 문제를 설계하고 모델에 어떤 변수를 채택하고 분석 결과를 해석하는 일은 다시 사람의 몫이다. 전통적인 사회과학이나 통계학 연구자들이 딥러닝을 학문으로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딥러닝 모델이 독립변수와 종속변수의 관계를 설명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설명 가능한 인공지능(eXplainable AI) 필요성이 부각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XAI는 알고리즘이 왜 이런 결과를 내놓았는지 추적해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정량적인 연구와 정성적인 연구가 연결되는 지점이며, 앞으로 게임과 그 관련 데이터를 활용한 사회과학 연구가 가야할 길이기도 하다. 1) 인간을 대상으로 삼는 학문이 윤리적 한계 때문에 부딪히는 여러 가지 예약을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48쪽). 2) 이 기간에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4월 16일이 포함되어 있다. 다소 무리한 추측일 수도 있지만, 하필 그 전후 기간에 비해 유독 큰 폭의 하락이 있어서 그래프를 처음 봤을 때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중략) 게임은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고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한 경험이었다 (168쪽) 3) 최근 디지털 인문학(Digital Humanities)의 출현은 정량적인 인문학 연구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디지털인문학 연구자) 김병준 KAIST 디지털 인문사회과학센터 연구교수. 학부에서 문학을 사랑한 문학청년으로 국문학 공부했지만, 대학원에서는 자연어처리와 데이터 사이언스를 전공했다. 대량의 데이터와 정량적인 방법론을 활용한 디지털 인문사회과학 연구를 주로 한다. 가장 좋아한 인생 게임은 워크래프트 3, 주종은 오크. 아쉽게도 요즘엔 직접 게임을 할 시간이 없다.
- <다키스트 던전>을 <다키스트 던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개발진이 어째서 전작과 후속작의 틀을 바꾸고자 했는지. 어떤 요소들이 이 결정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아야만 결정이 왜 내려졌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조금 더 나아가자면, ‘무엇이 다키스트 던전을 각별하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 Back <다키스트 던전>을 <다키스트 던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21 GG Vol. 24. 12. 10. 지난 2021년 10월. 에픽 게임 스토어를 통해서 얼리 액세스를 시작한 ‘다키스트 던전 2’는 전작을 즐겼던 팬들에게는조금 당혹스러운 모습과 같았다.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전작의 연장선에 자리한 작품이었음에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플레이 방식을 채택했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다키스트 던전 2의 플레이는 조금 더 로그라이트에 가깝게 변했으며, 전작의 핵심 시스템이라 할 수 있었던 영지 관리와 같은 매니지먼트 요소를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플레이어들의 기대감을 정면으로 반하는 것임과 동시에, ‘대체 왜 이렇게 바꿨는가?’하는 질문을 낳기에는 충분했다. 사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개발진이 그렇게 만들고 싶어서’라는 문장으로 방향성을 일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문장 만으로 모든 것이 정리되는 것은 아니다. 개발진이 어째서 전작과 후속작의 틀을 바꾸고자 했는지. 어떤 요소들이 이 결정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아야만 결정이 왜 내려졌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조금 더 나아가자면, ‘무엇이 다키스트 던전을 각별하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우선, 전작인 다키스트 던전 1의 플레이를 잠시 떠올려보자. 전작을 떠올렸을 때, 가장 앞에 자리하는 것은 역시나 무척이나 어려운. 난도 있는 게임 플레이가 될 것이다. 다키스트 던전 1은 플레이어의 결정이 무게감을 가지는 타이틀로 설계되어 있다. 한 번의 실수가 파티를 사망으로 인도하며, 여차하면 잘 육성된 파티를 잃고 키보드를 내려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나올 정도였다. 다키스트 던전 1이 가지고 있는 높은 난도는 ‘운’으로 대표되는 확률이 가장 중심에 자리한다. 운에 따라서 플레이는 극단적으로 갈린다. 한 대만 때리면 되는 상황에서 파티가 두 바퀴를 돌 때까지 빚맞춤이 뜬다거나. 어느 순간 갑작스레 데스 블로우를 맞아서 캐릭터가 상태 이상에 빠지는 등의 플레이를 마주한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운은 플레이어 뿐만 아니라 적에게도 적용된다. 적에게 운이 제대로 적용될 때에는 다른 타이틀에서 느끼기 어려운 각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단초로 작동한다. 위기의 상황에서 캐릭터인 영웅이 모든 스트레스와 부정적인 영향을 극복하고 적을 순식간에 제거할 때의 쾌감이 대표적이다. 운은 플레이어에게 있어서 부정적인 것으로도 작동하지만, 한편으로는 플레이에게 잊을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내는 요소임은 분명했다. 개발진이 말하는 ‘도전과 영웅적 승리’라는 지향점이 각별하게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운이라는 것은 플레이어가 실패와 시도를 누적하는 것을 통해서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는 영역으로 다뤄졌다. 던전에서 획득한 재화와 보상들을 이용해 영웅들을 육성하며, 조금 더 나아진 상태에서 다음 던전으로 출발할 수 있는 구조가 대표적이다. 마을 경영 콘텐츠들은 플레이어가 마주하는 ‘운’ 들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는 영역에 두도록 만들었다. 마치 처음에는 20면체 주사위를 굴리다가, 시간이 지나며 16면체로. 그 다음은 8면체로 조금씩 확률을 개선하는 방식이다. 여전히 운이라는 형태에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플레이어가 마주하는 결과물이 조금씩 제어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게임 플레이는 점차 통제 가능한 영역이 늘어나고 궁극적으로는 다키스트 던전 1의 끝에 도달하는 경험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마을 경영은 본질적으로는 타이쿤 장르와 같은 매니지먼트 형태를 가지게 됐다. 세부적인 수치를 조절하고 여분의 자원을 쌓고. 이를 적절하게 분배하는 플레이에 가깝다. 그렇기에 다키스트 던전 1은 후반부로 들어설수록 초반과는 다른 결의 정체성을 보여주게 된다. 통제 가능한 영역이 충분히 늘어나고. 플레이어가 게임 과정에 익숙해졌다면 다키스트 던전 1은 자원을 투입하고 거기서 보상을 얻는 플레이의 반복이다. 운을 어느 정도 감안해 전략을 세울 수 있는 시점부터 영웅과 파티는 하나의 캐릭터가 아니라 인적자원과 같이 다뤄진다. 이 즈음부터 효율적으로 자원을 파밍하고 변수를 교정하며 제어하는 과정은 주력 인적자원이 더 나아가기 위한 자산을 축적하는 과정인 셈이다. 이 즈음부터 플레이어의 선택과 실수. 그리고 변수를 통제하는 과정이 가장 앞에 자리하며 다키스트 던전 1이 추구하던 ‘도전과 영웅적 승리’라는 조금씩 희석된다. 플레이어는 게임에 익숙해져서 긴장감 보다는 일종의 루틴과 같은 게임 플레이를 하게 되며, 반복 플레이를 통한 자산의 누적으로 인하여 초기와 같은 경험이 유지되지는 않는다. 개발사인 레드훅 스튜디오는 다키스트 던전 1의 이와 같은 플레이를 일종의 한계라고 인식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 그리고 플레이 양상이 영향을 미쳤다. 초반부의 플레이가 각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좋았으나, 후반부로 들어설수록 변수가 통제되고 항상 옳은 결정을 내리는 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더불어 양날의 검과 같이 다뤄지는 변수들이 막대한 진입 장벽으로 작동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흥미로운 것은 맞지만, 플레이어 전략에 맞는 플레이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들어갔으며,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은 게임에서 이탈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전반적인 게임 플레이가 엔딩 까지의 플레이 타임을 가늠하기 힘들게 만들었으며, 꽤 많은 플레이어들은 중간 그라인딩 (파밍) 과정을 넘어서지 못한 상태에서 게임을 중단하기도 했다. 도전 과제를 보면, 이러한 양상은 꽤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초반부에서 중반부. 그리고 후반부로 갈수록 하나의 콘텐츠를 달성한 사람의 비율은 극단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전작의 문제점을 인식한 레드훅 스튜디오는 후속작인 다키스트 던전 2를 통해서 또 다른 형태의 모험을 기획하는 결정을 내렸다. 전작의 변수들이 가져다주는 장점과 단점을 답습하지 않고 형태와 플레이 양상을 완전히 바꾸는 결정을 말이다. 그러면서도 앞서 언급한 ‘도전과 영웅적인 승리’라는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방침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영웅적 승리. 즉, 고난을 넘어서는 행위를 어떻게 그리고 있는가. 그리고 플레이어가 이를 어떻게 극복하도록 할 것인가에 가장 많은 고민을 들였다는 점이다. 자연스레 고난을 마주하고 플레이어의 선택이 결과를 낳고. 이를 통해서 고난을 극복하는 플레이가 핵심이다. 따라서 다키스트 던전 2는 플레이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확률을 조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모든 공격은 변수 없이 확정적으로 적중하기 때문에 게임 플레이는 어느 정도는 플레이어가 예상한 형태로 진행된다. 사전에 수립한 전략이 중요하게 다뤄지는 한편, 토큰 시스템과 스킬 업그레이드의 조합을 통해서 플레이어의 전략 / 전술이 전작과 비교해 더 중요하게 다뤄진다. 확률적인 요소는 ‘지옥으로의 로드트립’이라는 컨셉에 맞춰서 조율이 이루어졌다. 다키스트 던전 2의 게임 플레이를 구성하는 변수들은 무작위 생성을 통해서 제공된다. 하나의 ‘런’으로 구성된 플레이가 자리하며, 플레이어들은 마차에 올라타고 무작위로 배치되는 이벤트와 적들을 마주하는 구조를 택했다. 이러한 점에서 보자면, 다키스트 던전 2는 확률과 변수를 다루는 데에 있어서 전작과는 다른 지향점을 가진다. 확률의 범위를 조금씩 좁혀나가는 것. 또는 반복 플레이를 통해서 통제하는 데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수립한 전략과 전술을 이용해 확률과 맞서는 데에 코어 게임 플레이를 집중한다. 다만, 전략과 전술이 수립되고. 육성이 완료된 상태에서는 전투 자체가 루틴을 갖기 마련이다. 토큰 시스템으로 변경이 되면서 전투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도 줄어들었고 스트레스 관리도 사라지며 전투 과정 자체는 어느 정도 고정되는 경향을 보인다. 모든 것이 통제 상황에 놓일 수 있는 것이다. 개발진은 여기서 캐릭터간의 관계를 플레이어가 제대로 통제하기 어려운 것으로 위치시켰다.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장치로 캐릭터 관계를 넣어두면서 전투와 이후의 플레이는 플레이어의 예상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다. 게임 플레이 과정에서 캐릭터들의 관계는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안정적인 상태에서 전투를 벌이기 어려운 고난으로 작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전작의 단점으로 지적되었던 가늠이 안되는 게임 플레이 시간 / 그라인딩 과정은 거리가 그리 길지 않은 ‘런’을 통해서 보완됐다. 전작 대비 한 번의 플레이 시간 자체는 짧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무작위로 구성된 요소들이 고난으로 제시되고 플레이어가 자신의 구상을 통해 극복하는 것이 핵심인 셈이다. 반복 플레이에서 누적되는 요소들은 마을이 아니라 ‘캐릭터’에게 집중한다. 이 또한 개발진의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전작이 대략적인 세계관이나 분위기에만 집중했다면, 후속작에서는 각 캐릭터들을 세부적으로 설정하고 활용한다는 의도이기도 하다. 플레이가 누적되면서 캐릭터의 능력이 강화되는 것과 함께, 캐릭터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제시되는 것이 대표적인 요소다. 전작의 영웅들은 이제 이름으로 불리며, 인적 자원이 아니라 고난을 극복하고 성취하는 히어로에 가깝게 다뤄진다. 런의 반복을 하는 과정에서 캐릭터들은 각자의 이야기와 관계를 플레이어에게 전달하며 캐릭터 자체의 매력과 설득력을 만드는 과정을 거친다. 인적 자원에서 어떠한 기원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 되는 과정과 같다. 이렇게 캐릭터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과 여기에 곁들여서 세계를 여행한다는 가치는 다키스트 던전 2의 변화에 영향을 미친 또 다른 지향점 중 하나이기도 하다. 마을 하나에서 이야기가 끝났던 전작과 다르게, 다키스트 던전의 세계를 한층 더 넓게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실제로 얼리 액세스 기간 동안 다키스트 던전 2가 지향했던 변화들은 제대로 적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흥행과는 별개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개발진이 구축했던 플레이들은 각 요소들이 제대로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캐릭터들의 이야기와 함께, 역경을 넘어 승리라는 쾌감을 제공하는 것에는 성공했다는 평가를 내릴 만하다. 결국, 게임 플레이가 바뀌었어도 ‘도전과 영웅적인 승리’라는 가치는 다키스트 던전 2에서도 고스란히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메커닉이나 실제 게임 플레이 양상이 크게 바뀌기는 했지만, 개발진이 제시하고자 했던 가치는 여전하다. 갑작스레 큰 성공을 거둔 인디 타이틀틀이 시리즈로 더 나아가기 위한 발판을 만들었고, 다방면으로 확장될 수 있는 여지를 명확하게 남기고 있다. 그리고 현재. 다키스트 던전 2는 현재 준비 중인 무료 업데이트를 통해서 전작과 비슷하지만 또 다른 결에 자리한 신규 게임 모드 ‘킹덤스’를 준비 중에 있다. 다키스트 던전 2의 원래 모드가 개발진의 의도에 부합하는 것이었다면, 킹덤스의 신규 모드는 전작을 플레이 했던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아들인 결과처럼 보인다. 전작의 영지 관리와 다키스트 던전 2의 플레이가 어느 정도 합쳐진 신규 모드는 다키스트 던전 2와는 다른 또 다른 변화이기도 하다. 2021년 에픽 게임즈에서 얼리 액세스를 출시한 이후 정식 발매까지 3년의 시간이 걸린 만큼, 이제 월드 전반을 더 확장한다는 의도에 맞춰 변화를 가미했다. 그간 쌓아온 것들을 바탕으로 세계와 캐릭터. 그리고 여러 게임 플레이를 동시에 잡겠다는 의도다. 전작의 코어 플레이였던 영지 관리는 그 개념을 변용해 킹덤스에 들어갔으며, 그간 런을 통해 이야기를 쌓은 캐릭터들은 해당 모드에서 전작과 마찬가지로 인적 자원과 같이 다뤄진다. 전작에서 아쉬웠던 점들을 기존 모드의 게임 플레이에서 보충했던 만큼, 이후에는 플레이어의 니즈에 맞춰 관리적인 측면을 늘리겠다는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정식 출시 이후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면, 다키스트 던전 2의 변화는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 다분히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결정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전작의 거대한 진입 장벽이 되었던 변수를 조율하는 한편, 한 번의 플레이 시간을 낮추는 결정. 그리고 형태가 크게 달라졌음에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고난을 극복하며 달성하는 영웅적 승리’를 유지하기 위한 수많은 고민이 들어가 있다. 그렇기에 다키스트 던전 2는 이 영웅적 승리가 게임 세계관 측면에서 보다 설득력을 갖도록 만들기 위한 과정인 것이며, 동시에 영웅적 승리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맛볼 수 있도록 장벽을 낮추기 위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두 작품에서 이 가치는 그대로 계승되어 있다. 단지 형태가 다를 뿐이다. 플레이어가 고난을 마주하고 극복하도록 만드는 게임 디자인 측면에서의 방법론. 고난을 극복하고 영웅적 승리를 달성했을 때의 경험. 이것이 같은 방향에서 자리하고 있기에, 다키스트 던전 2를 후속작이라 말할 수 있는 이유가 될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정필권 농부이자 제빵사이자 바리스타. 현재는 게임 기자로 글을 쓴 지 8년차 입니다. 한정된 시간 안에서 최대한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바라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 니체, 영원회귀, 아모르 파티, 그리고 ‘데스루프’
〈데스루프〉 는 과정을 즐기는 게임이다. 지금까지 어떤 선형 구조의 게임들은, 모두 그 과정의 가치가 결과에 종속되어 있었다. 결국 영원회귀가 가지는 긍정성은 결과에 의해 보장된다. 그리고 그 결실을 얻은 과정은 다시금 플레이 할 가치를 빠르게 잃는다. 그러나 〈데스루프〉 는 그 결말에 이르러 진정으로 모든 과정을 긍정해버리면서 다시금 그 루프로 뛰어들게 만든다. 물론 플레이 메카닉이나 콘텐츠 면에서 다시 이 게임의 파괴와 생성을 플레이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게임에서 퇴장한 후에도 이들이 계속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갈 거라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플레이한 과정보다 더 즐거운 유희가 될 거란 것도. 이 부분이 조금은 특별하다. < Back 니체, 영원회귀, 아모르 파티, 그리고 ‘데스루프’ 03 GG Vol. 21. 12. 10. 김연자 말고, 니체의 ‘아모르 파티’ 수년 전, 김연자의 노래 ‘아모르 파티’ 가 인터넷에서 크게 유행을 탄 적이 있었다. 특유의 비트와 김연자의 보컬로 곡 자체도 훌륭하지만 가사도 그렇고 후렴의 막강한 뽕짝 비트가 절묘했다. 사실 일종의 유머로서 소비되기는 했지만, 트로트 답게 좀 쌉쌀한 맛도 있는 노래였다. * 막상 생각해보면 이 노래만큼 아모르 파티를 잘 설명한 것도 없는듯. 이미지 출처 - TV조선 유튜브 채널 그렇다면 바로 이 곡의 제목 ‘아모르 파티(Amor Fati)’ 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말 자체는 라틴어이고, 대충 들으면 어디서 나온 유명한 경구 정도로 생각하겠지만, 이 단어의 출처는 저 멀리 프로이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로 간다. “신은 죽었다.” 는 패기 넘치는 한마디를 꺼냈던 이 철학자는 그 말마따나 인간의 운명을 긍정하고자 몇가지 화두를 세상에 던졌다. 물론 여기서 니체 이론을 구구절절하게 설명할 생각은 없다. 분량도 모자라거니와 애초에 필자도 관련 전공 또는 심도 있게 연구한 사람도 아니다. 단지 더할 나위 없이 니체가 어울리는 어떤 게임을 위해서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뿐이다. 니체가 제시한 개념 중 ‘아모르 파티’ 는 니체 사상에서 일종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개념이다. 풀어 쓰자면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운명이란 고대 그리스에서 말하는 신에 의해 정해진 운명과는 정반대로, 인간이 스스로 살아가고 결정하는 운명 그 자체를 말한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흥하거나 망하거나 즐겁거나 괴롭거나 자신의 운명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며 그를 긍정하라는 것. 이처럼 니체의 사상은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신은 죽었다’ 라고 말한 것처럼, 현실의 삶에 대한 긍정을 추구하며, 인간 개인이 그 자신의 운명의 주인이라는 관점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방법론이 바로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 라고 축약할 수 있다(미리 말했던 것처럼, 매우 간단하게 요약한 해석이다). 영원회귀란 파괴(실패, 좌절, 괴로움 등)와 생성(성공, 성취, 즐거움 등)의 동일한 과정을 무한 반복하여 마침내 긍정의 결론(내 운명-인생을 사랑-긍정하자)에 다다름으로서 마침내는 파괴의 과정 역시 긍정의 질(형식)로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말하는 삶에 대한 긍정이란 이뤄낸 성과, 성공, 원초적인 즐거움과 쾌락 같은 너무나 당연한 긍정의 질을 말하는게 아니다. 삶에서 필연적으로 얻고 겪게 되는 좌절과 실패, 괴로움과 불쾌함까지도 긍정하고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라는 의미다. 이 과정이 바로 영원회귀이며, 그 결과 이르게 되는 것이 아모르 파티이고, 또는 이 둘은 서로의 원인이자 서로의 결론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는 니체의 사상 전체를 상당히 짧고 편의적으로 해석한 것이지만, 큰 맥락은 같다. ‘영원회귀’ 라는 고통과 성취의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면서 마침내 얻어낸 결실은 그 모든 과정을 한순간에 긍정적인 여정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처럼 자신의 의지로 인해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자신의 운명의 결론을 긍정함으로서 그 과정도 값지고 긍정적인 질로 바꾸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인생의 자세가 바로 ‘아모르 파티’ 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자, 그럼 이제 〈데스루프〉 라는 영원회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게임의 기본 모델 ‘영원회귀’ 가 데스루프에서 특별한 이유 〈데스루프〉 는 그 이름에서부터 죽음으로 되풀이되는 루프를 넌지시 언급하고 있다. 흔히 ‘루프물’ 이라고 하는 장르 또는 특성은 여러 매체를 통해 이미 많이 선보여졌다. 수십년 전 TV에서 특선 영화로 보던 ‘사랑의 블랙홀’ 이나 최근으로 보면 영화 ‘엣지 오브 투머로우’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고, 만화나 애니메이션으로는 더더욱 많이 사용된 요소이기도 하다. * 데몬즈 소울 리메이크(Demon’s Souls, 2020). 이쪽 게임 디자인에선 워낙 유명한 소울 시리즈. 당연하게도 이는 게임에서도 흔히 활용되는 소재였다. 아니 오히려, 죽음과 부활로서 플레이어가 성장하는 논리는 플레이의 반복성을 부여해야만 하는 게임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기본 논리다. 여기서 나아가 아주 직접적인 ‘영원회귀’ 적인 과정을 노골적으로 활용하는 게임들은 많다. 오래 전부터 그 예시로 들어왔던 프롬 소프트웨어의 〈다크 소울〉 을 위시한 ‘소울 시리즈’가 그 예다. 참고로 최근에는 한국에서 이름 자체가 ‘영원회귀’ 인 게임도 나왔다. * 이터널 리턴(Eternal Return, 2020). 여기는 이름부터 영원회귀다. 사실 게임 내용은 크게 상관… 없나? 그리고 사실은 ‘소울 시리즈’ 까지 가지 않더라도 게임은 근원적으로 그 구조에서 영원회귀를 기본 구조로 채택하고 있다. 계속해 같은 시도를 하며 죽으면서 경험을 쌓고 강해지고, 마침내 극복해내고 한 번의 성공을 만들어 냄으로서 그전까지의 실패가 모두 이 성공을 위한 과정으로서 빛나게 되는 것. 그러나 〈데스루프〉 가 영원회귀 모델에서 독특한 점은 바로 플레이어의 성장 또는 변화를 직접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플레이어의 스킬 향상이나 명시적인 게임 내 각종 스테이터스, 기능의 향상이 아닌, 정보의 취득으로 표현한다는 부분이다. 보통 이러한 죽음(실패)과 부활(재도전), 그리고 이를 통한 성장을 핵심으로 하는 게임들은 그 성장을 명시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이는 게임 내의 수치나 변화보다는 플레이어 자신의 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장 노골적인 예시인 〈다크 소울〉 시리즈의 경우 거듭되는 싸움을 통해 상대의 패턴을 파악하고, 나 자신의 로직, 나 자신의 조작이 가장 크게 성장에 관여한다. 물론 거기에 최적화된 도구를 다시 고르거나 필요한 만큼의 스테이터스를 향상시키고 돌아오는 등의 선택도 가능하지만, 플레이어 자신이 가장 큰 성장의 매개체라는 점은 〈다크 소울〉 이나 〈몬스터 헌터〉 같은 부류의 게임에서는 당연한 이야기다. * 이 게임의 룰과 목표는 간단하다. 크게 세가지다. 1. 루프를 끊어라. 2. 하루 안에 8개의 타겟을 제거해라. 3. 같은 하루를 반복하며 방법을 찾아내라. 그러나 〈데스루프〉 는 이러한 노골적인 영원회귀의 방법론을 취하면서도 몇몇 부분에서 좀더 다른 방식으로 나아갔다. 게임은 하루의 루프가 반복되며, 하루는 4개의 시간대와 4개의 장소로 구분되고, 각 시간대 별 장소마다 얻을 수 있는 단서가 다르게 고정된다. 즉, 시간이 지나면 얻을 수 없게 되는 정보가 생긴다. 때문에 죽거나 하루를 넘겨 다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해야 놓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새로운 정보를 얻으면 그만큼 다른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고, 또 이것이 게임 내 퀘스트 로그의 변화로 직접 기록된다. 즉, 마치 탐정처럼 어떤 정보를 얻고 실마리에 접근하는 것이 성장이자 게임의 진척도를 상징한다. 플레이어의 자각이 바로 상승을 의미하며, 무력에 의한 극복이라기보다는 무수한 스무고개 끝에 정답을 찾아내는 식이므로 그 스무고개를 확인하기 위한 생성과 파괴가 반복되는 것이다. * 가지런히 정돈된 정보가 계속 쌓이고 중첩되면, 이러한 '정답' 이 나온다. 무엇보다 〈데스루프〉 가 보여주는 영원회귀 구조에서 다른 점은 바로 ‘죽음’ 을 보다 바른 성장을 위해 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게임에서 죽음이란 가급적 피해야만 하는, 어떤 심각한 패널티로서 존재한다. 어찌보면 징벌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데스루프의 죽음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또는 이미 지나친 부분을 다시 보기 위한 일종의 선택지로 기능한다. 마치 영화 ‘엣지 오브 투머로우’ 에서 주인공이 작전을 실행하다가 수틀리면 바로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어 다시 하루를 시작하듯 말이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매우 부정적인 의미이며 패널티였던 죽음이 하나의 선택지이자 상승의 원동력이 되면서, 즉 게임 자체를 직접적으로 죽음과 재탄생의 과정의 일부로 만들어 버리면서 보다 ‘아모르 파티에 가까운 파괴와 재생성으로 한걸음 다가간다. 이는 죽음과 재탄생의 과정이 얼마나 파괴적인가 하는 부분에서의 차이도 크지만, 무엇보다 플레이어가 취하는 모든 행동이 계획적이고 플레이어 주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걸 뜻한다. 예기치 못한 실패로 인해 맞이하는 죽음과 이를 잘근잘근 곱씹는 절치부심의 과정이 아닌, 거시적인 측면에서 세운 계획을 따라 하나하나 자신의 의도에 따라 스스로를 파괴하고 동시에 재생성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때문에 이 게임에서는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모두 계획대로야.” 또는 “이제는 이걸 하면 되겠군.” 하는 식으로, 플레이어가 죽음을 대하는 자세가 크게 달라진다. * 죽이고 죽고 정보를 모으고,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선택과 확인의 연속.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통상적으로 부정적인 질을 지니며 실패의 상징인 ‘죽음’ 은 그 자체로 긍정의 질을 가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게 바로 이 게임이 가장 니체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영원회귀와 아모르 파티의 기본은 행위자의 주체성, 그리고 결과에 대한 긍정과 확신을 통해 모든 과정마저 긍정해버리는 자세다. 즉, 이 게임의 플레이 로직 그 자체다. 긍정의 끝이 아닌, 긍정의 순환을 만드는 끝 게임의 결론은 마치 이런 해석을 부추기기라도 하는듯 크게 두가지 선택 중 하나를 고를 수 있게 되어있다. 섬에 걸려있는 루프를 끝내고 수십년이 지난 세계로 나가거나, 아니면 루프를 유지하고 주인공과 줄리아나의 끝나지 않는 놀이를 계속하는 것. 여기서 대부분은 지금까지 목표로 해왔던 루프의 파괴를 선택하지만, 오히려 어떤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 이게 끝인가? 정말로 이걸로 모든 지금까지의 과정이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 되었나? * 영원회귀적 관점을 떠나서도 너무나 훌륭한 게임이니 꼭. 그렇기 때문에 엔딩에 이르러서 이렇게 생각해보게 된다. 죽음과 탄생이 무한히 반복되는 하루를 긍정할 수 있다면? 그것이 줄리아나라는 존재 자체로 인해서 나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유희가 된다면? 이런 가정은 지금까지 루프를 깨기 위해서 달려왔던 플레이어들에게 정반대의 해석을 제시한다. 이 선택은 어쩌면 궁극적으로 아모르 파티를 실현하는 방법이기도 한 셈이다. 지금까지 반복한 루프가 영원히 반복되고 또 되풀이 되겠지만, 더 이상 고통과 결론을 위한 감내의 과정이 아닌 그 자체가 유희가 되어버리니 말이다. * 이 황야마저도, ‘내 행위의 결과’ 이기에 긍정할 수 있다면? 〈데스루프〉 는 과정을 즐기는 게임이다. 지금까지 어떤 선형 구조의 게임들은, 모두 그 과정의 가치가 결과에 종속되어 있었다. 결국 영원회귀가 가지는 긍정성은 결과에 의해 보장된다. 그리고 그 결실을 얻은 과정은 다시금 플레이 할 가치를 빠르게 잃는다. 그러나 〈데스루프〉 는 그 결말에 이르러 진정으로 모든 과정을 긍정해버리면서 다시금 그 루프로 뛰어들게 만든다. 물론 플레이 메카닉이나 콘텐츠 면에서 다시 이 게임의 파괴와 생성을 플레이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게임에서 퇴장한 후에도 이들이 계속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갈 거라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플레이한 과정보다 더 즐거운 유희가 될 거란 것도. 이 부분이 조금은 특별하다. 때문에 그동안의 역경을 모두 감내하고 오히려 루프 안에 갇히기를 선택하는 것이야 말로 ‘몰락하는 자신을 긍정하는 아모르 파티의 정신에 부합하며, 이것이 오히려 진짜로 이 게임에 어울리는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데스루프〉 는 좋은 게임이지만, 그 과정에 비해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들은 지금 다시 생각해본다면 어떤가.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이명규 게임 기자(2014~), 글쓴이(2006~), 게이머(1996~)
- [축사] 창간을 축하합니다
이렇듯 게임이 단순한 놀이가 아닌 하나의 산업이자 문화로서 많은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게임의 가능성과 가치를 계속 공유하고 논의해야 합니다. 이번에 창간하는 ‘게임 제너레이션’이 게임의 역사, 게임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게임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등을 되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는 담론의 장이 되어주길 바랍니다. 또한 정부와 게임업계, 이용자들이 소통하는 대표 창구로 성장하길 기대합니다. < Back [축사] 창간을 축하합니다 01 GG Vol. 21. 6. 10. 안녕하십니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황희입니다. 게임문화 웹진 ‘게임 제너레이션’의 창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이번 창간을 위해 애쓰신 관계자분들과 함께해주시는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게임은 전 세대를 아우르며 남녀노소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문화입니다. 특히 종합 예술로서 이야기와 캐릭터 디자인, 음악, 프로그래밍 등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 작업이 필요하고 발전 가능성이 무한한 고부가가치 산업입니다. 또한 대한민국은 우리 이스포츠 선수들의 뛰어난 실력과 관객들의 열정을 바탕으로 이스포츠 최강국으로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렇듯 게임이 단순한 놀이가 아닌 하나의 산업이자 문화로서 많은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게임의 가능성과 가치를 계속 공유하고 논의해야 합니다. 이번에 창간하는 ‘게임 제너레이션’이 게임의 역사, 게임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게임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등을 되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는 담론의 장이 되어주길 바랍니다. 또한 정부와 게임업계, 이용자들이 소통하는 대표 창구로 성장하길 기대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한국 게임산업의 발전과 한·중·일 이스포츠 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나아가 대한민국이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 문화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창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게임 제너레이션’의 무궁한 발전과 함께 한국 게임문화를 사랑해주시는 모든 분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황희
- 윤석열 정부의 게임 정책을 예견해 보다
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당선자가 윤석열 후보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고백하건대, 미래가 어떻게 될지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다. 공약을 열심히 들여다보면 집권 후 방향성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지만, 어느 정도일 뿐이다. 다이나믹 코리아는 본게임 이전, 프리게임 때부터 치열하고 예측 불가능이다. < Back 윤석열 정부의 게임 정책을 예견해 보다 05 GG Vol. 22. 4. 10. 0) 프리게임 : 다이나믹 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당선자가 윤석열 후보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고백하건대, 미래가 어떻게 될지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다. 공약을 열심히 들여다보면 집권 후 방향성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지만, 어느 정도일 뿐이다. 다이나믹 코리아는 본게임 이전, 프리게임 때부터 치열하고 예측 불가능이다. 때문에 게임 공약들이 폐기 혹은 수정의 대상이 될지, 그대로 정책으로 연결될지는 예측할 수가 없다. 공약에 대한 깊은 분석과 비평도 어렵다. 분석만으로 예측하기가 어려우니 연관된 ‘사람’을 함께 보자. 해당 공약과 정책을 누가 만들고 동력을 제공하는지를 함께 본다면 불확실성이 조금은 줄어들 것이다. 1) 본게임 맵 : 질병코드와 셧다운제 게임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기반은 당선인 자신이 갖고 있는 게임에 대한 태도다. 게임 장르를 어떤 성격으로 바라보는지는 곧 게임의 맵과 같다. 맵에 가득한 안개를 걷어내기 위해 제일 처음 만나볼 발언은 후보 시절 인벤닷컴과의 인터뷰다. 인터뷰어인 이두현 기자가 인터뷰 말미에 게임 중독의 질병코드화에 대해 물었을 때의 답변이다. “게임을 포함한 모든 문화콘텐츠들은 상품이기도 하지만 사용자들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진흥과 규제를 적절하게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중략) 청소년들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으므로 부모님들에게 게임에 관한 정확한 이해와 접근 방향, 게임을 즐기는 자녀와의 관계 설정 등을 도울 수 있는 ‘교육과 이해의 과정’ 제공 등도 필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호의적으로 해석하면, 질병코드화 인정이라기보다는 건강한 게임 이용을 교육하자는 태도이다. 또한 너무 짧은 답변이기에 태도 전반을 도출해내기엔 부족하다. 다만 “게임을 포함한 모든 문화콘텐츠”의 부정적 측면을 지적하면서 “정신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을 들었다는 점에 추측해볼 여지가 있긴 하다. 거칠게 바꿔보면 ‘이런 거 보고 자라서 뭐 되려고 그래?’라는 문장이며, 등급제도의 기반 논리이기도 하다. 딱히 문제가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이 지점에서 선을 잘못 넘어가면 사전검열제도의 기반 논리로 둔갑한다는 점은 늘 염두에 둬야 한다. 반면 호의적으로 해석하지 않을 경우엔 이 발언이 질병코드화를 긍정하는 쪽으로 읽힐 수가 있는데, 마침 당시 윤석열 캠프에 있었던 두 사람 때문에 우려가 증폭됐다. 여성특보로 있었던 손인춘 전 의원은 셧다운제 확장을 발의한 이력이 있고, 아동폭력예방특보로 있었던 신의진 전 의원은 게임 중독을 강력히 주장한 악명이 있다. 증폭된 우려에 오래 쌓인 분노가 첨가되면서 후보에게 ‘질병코드화 긍정이냐 부정이냐’ 하는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여론이 만들어졌다. 기실 그 사이의 회색지대 선택지가 여럿 존재하긴 하지만, 대선과 같은 뜨거운 전장에서 던져지는 정치적 질문이라면 그런 영역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결국 후보는 10여 일 후에 게임을 질병으로 보지 않는다고 진화를 시도해야 했다. 그리고 이 시점부터 윤석열 캠프에서 게임 공약을 얘기할 때 앞으로 나서는 인사가 게임특위위원장으로 막 임명된 하태경 의원으로 바뀌었다. 비약과 가정을 많이 섞어서 추측한다면 게임 공약에 영향력을 주는 인사가 손인춘/신의진에서 하태경으로 바뀐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리하여 현재는 손인춘/신의진의 이름을 인수위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추측에 힘을 실어주는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담당자가 여럿 바뀌는 캠프 내 혼란상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손인춘/신의진의 유산인 셧다운제에 대한 캠프의 태도는 어떨까. 현재 셧다운제는 청소년이 이용시간을 자율 선택하는 것으로 바뀌면서 강제성이 사라져 사실상 폐지된 상태다. 캠프가 게임 분야를 하태경 체제로 정리하면서 제일 처음 정리해서 낸 공약은 셧다운제 이슈와 연결되어 있는 공약인, 전체 이용가 게임의 본인인증 면제다. 게임의 본인인증 제도가 도입된 배경 논리는 게임 과몰입과 중독을 예방하기 위한 규제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를 전체이용가 게임에 한해서라도 해제하는 방향은 손인춘/신의진의 자장에서 국민의힘이 빠져나오고 있다는 정황일 수 있다. 다만 함정이 있으니, 이 공약은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서에 없다. 2) 공약 주무기 – 2Big : 확률형 아이템, e스포츠 지역연고제 그럼 이제 후보 시절 공약서에 있는 공약을 살펴보자. 게임 공약은 340쪽이 넘는 공약서 기준으로 한 페이지에 불과하다. 캠프는 그 한 페이지에서 4개 항목을 짚었는데, 2가지 큰 항목과 2가지 작은 항목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항목에서 하태경 의원의 흔적이 보인다. - 1Big: 확률형 아이템 공약서 252페이지는 게임 공약이고, 이 페이지의 제목은 이렇다. “게임산업의 불공정 문제를 해소하고 e스포츠를 대한민국 미래산업으로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초점이 불공정에 맞춰져 있다. 누구에 대한 불공정일까? 공약 내용에 따르면 게이머들이 겪는 불공정이다. 윤석열 당선인의 게임 공약 첫 번째 큰 줄기는 확률형 아이템 규제다. 아이템 확률 조작은 이미 국정감사에도 진출한 이슈다. 국회에서 실제 확률을 소비자에게 공개하라고 한 후에도 같은 문제가 발생해 자율 규제에 대한 회의론이 짙어졌다. 그래서 윤석열 캠프는 아예 게임이용자권익보호기구를 일정 규모 이상 게임사마다 설치하게 하고, 이용자가 직접 확률형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하겠다고 한다. 이슈 선정은 좋지만 불안감은 존재한다. 당선인 자신이 인터뷰 당시에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공개를 ‘영업비밀 공개’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업으로서 수용하기 어려운 영업비밀 공개 의무화 등의 강력한 규제도 무조건 능사가 아닙니다.” 감시 기구를 만드는 것은 좋은데 그게 꼭 게임사 내에 만드는 형태여야만 했냐는 반론도 가능하다. 또한 다중뽑기 같은 일부 형태는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징벌하는 형식의 규제 대신, 정보 공개와 감시 정도를 선호하는 우파 색채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 공약은 하태경 의원이 대표로 발의해 계류중인 게임산업법 개정안의 내용이기도 하다. 하태경 의원실은 이 개정안을 확률조작 국민감시법이라고 명명했다. 게임물이용자권익보호위원회라는 기구를 문체부 내에 만들어서 컨트롤 타워로 삼고, 게임사 내에는 이용자위원회를 두는 방안이다. 윤석열 공약과 거의 동일하니 하태경 발의안이 공약으로 들어온 것이라 봐도 좋을 것이다. 반면 경쟁 상대였던 이재명 캠프의 관련 공약은 조금 더 단호했다.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의 기능을 확대하는 정도로 규제를 갈음하지만, 동시에 컴플리트 가챠 등의 다중뽑기는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공약이었다. 즉 현재 규제를 강화하면서 금지 지역을 설정하는, 경쟁자의 공약에 비하면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은 어느 정도 게임사의 입장을 반영한 정책이다. 다르게는 자율 규제에 한 발을 담그고 있는 정책이라고 서술할 수도 있다. 아마 이 공약이 정책으로 실현되면, 몇몇 게임사는 사내의 보호기구를 무력화할 방안을 연구할 것이고 정부의 보호위원회는 이를 막으려 들면서 정책 전선이 만들어질 것이다. 즉 이런 전선이 안 만들어지면 이 제도가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기능을 제대로 할 경우에도 대기업의 회피 기동을 잡아내지 못하면 중소기업 차별 이슈가 불거질 수 있다. 사내의 소비자보호기구를 만들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야 할 것이고, 이들은 대기업처럼 무력화 시도를 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런 경우 중소기업이 할 말은 ‘왜 쟤들은 피해갈 수 있는데 우리는 안 되느냐’ 하는 볼멘소리다. 이 부분들이 향후 이 제도 시행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 2Big: e스포츠 지역연고제 e스포츠 지역 연고제가 두 번째 큰 공약이다. e스포츠 구단을 지역 사회에 뿌리내리게 하겠다는 포부가 돋보인다. 지역 사회마다 PC방이 있으니 이 네트워크를 이용해 아마추어 리그를 만들고, 이 리그를 프로 구단의 유망주 풀로 활용한다. 당연히 동네 PC방에서 게임 좀 하는 유소년들은 유소년 클럽 시스템으로 들어갈 수 있다. 유소년 클럽 – 아마추어 리그 – 프로 리그의 단계적 시스템이다. 이런 시스템이면 클럽이나 구단에서 선수들을 상대로 게임 교육을 할 때 게임 리터러시 교육을 할 수 있다. 이 커리큘럼을 통해 중독 혹은 온건한 용어를 써서 과몰입을 줄일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다. 지도자 또한 자격증을 신설해 체계적 배출이 가능하게 한다. 단계적 리그 체계는 모든 프로 스포츠의 꿈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그 꿈을 완벽하게 이룬 프로 스포츠는 야구 외에는 없다시피 하다. 야구조차도 그나마 완전히 이룬 상태는 아니며, 다른 3대 구기 종목은 아직 벽을 넘지 못하고 청소년 엘리트 체육 시스템에 기대어 버티는 중이다. 과연 e스포츠는 그 벽을 제대로 넘어갈 수 있을까? 이 공약 또한 하태경 의원이 추진 중인 정책이다. 대선 직전이던 지난 2월 8일, 하태경 의원실은 김승수/허은아 의원실과 함께 지역연고제 도입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 패널에는 샌드박스게이밍의 정인모 이사, 크래프톤 e스포츠팀의 김우진 팀장, 인벤의 이두현 기자, 전 프로게이머이자 국민의힘 청년 보좌역인 한우성 등이 참여했다. 지역 연고제 관철을 위한 성격인지라 긍정적인 입장 위주로 진행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두현 기자의 토론 내용은 부정적인 시각이 묻어난다. 이두현 기자는 e스포츠 산업의 특성이 팬 위주이기 때문에, 지역으로 인위적 재편을 시도하는 것은 산업을 망칠 우려가 있다는 논지를 폈다. 이두현 기자는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의 주장을 인용하기도 했다. 정인모 이사의 경우엔 지역연고제가 정착된 중국의 예를 들며 성공 가능성을 피력했는데, 이상헌 의원의 주장에 따르면 지역연고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인구가 필요하기에 중국에서 성공한 것이다. 각 지역에 지어진 경기장을 채울 수 있는 관객의 수가 담보되어야 하는데 한국은 그만큼의 인구가 되지 않는다. 또한 e스포츠는 팀 위주의 팬심이 아닌 선수 위주의 팬심으로 돌아가는 리그다. 선수가 구단을 이적하면 그 팬은 기존 구단에 남지 않고 선수와 함께 이동한다. 게다가 e스포츠는 오프라인 직관만이 가지는 메리트가 상대적으로 적다. 경기장의 물리적 위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니 지역연고제가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콘텐츠진흥원이 작년 12월에 발표한 ‘2021 e스포츠 정책연구’에서도 부정적인 연구 결과가 있다. 중국처럼 산업 초기에 지역연고제 기반으로 디자인이 되었다면 팬 문화가 그에 따라 만들어질 수 있지만, 한국은 이미 e스포츠 산업이 원숙기에 들어선 후라서 지역연고제를 강행하면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연구 결과다. 오히려 공약 내용에 있는 유소년 클럽과 아마추어 리그 확충은 지역연고제의 결과나 과정이 아니라 전제 조건에 더 가깝다. 이토록 다양한 형태의 비판 논거와 반대 연구가 존재하는 이유는 지역연고제가 스타 프로리그 시절부터 20년 동안 제시된 정책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제시된 만큼 오랫동안 논의가 되어 왔고, 적합하지 않거나 너무 어렵기 때문에 추진되지 못한 정책이다. 그럼 윤석열 캠프와 하태경 의원은 이렇게 오래된 주장을 왜 정책으로 내건 것일까? 추측해볼 단서는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e스포츠 구단을 유치해 지역연고제 구단을 만들면 운영 자본이 필요하다. 한국의 프로 스포츠 리그는 이렇게 필요한 자본을 대기업 자본에서 가져오는 것에 익숙하다. 그리고 스포츠 구단을 설립/운영하는 기업은 그 비용의 10%만큼 세금 감면 혹은 공제를 받는다. 작년 12월에는 이 조세특례 종목에 e스포츠가 추가되었다. 또한 윤석열 캠프의 공약에는 체육진흥투표권, 즉 스포츠토토에 e스포츠 종목을 추가해 자금을 끌어오겠다는 청사진이 있다. 사실 이 이슈 역시 작년 초에 이상헌 의원과 국민체육진흥공단이 합동으로 논의를 시작한 주제다. 그리하여 e스포츠 지역연고제 공약은 부자 구단주들과 토토의 자본을 리그로 끌어오겠다는 내용으로 치환할 수 있다. 다만 진정으로 지역연고제가 e스포츠의 미래라고 믿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런 사람이 지켜봐야 할 지표는 부산 리브샌드박스다. 게임 구단 최초로 지방자치단체와 연고 협약을 맺어 연고제를 실험하는 구단이다. 구단 프론트 인력을 지역에서 채용하고, 지역 경기장을 활용한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으며, 지역 내 아카데미를 만들어 인력 풀을 만들어가려는 중이다. 2) 공약 보조무기 - 2Small : 소액 사기 전담기구, 장애인 접근성 오프닝 공약과 2가지 큰 공약 줄기 사이에는 2가지 작은 공약도 있다. 디테일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생활밀착형이 될 수 있겠다. 작은 공약 첫째, 게임 내의 소액 사기를 전담하는 수사기구를 설치한다. 너무 작은 사안이긴 하지만, 캠프가 유권자의 적절한 목소리를 수신한 사안이다. 디테일한 공약의 크기만큼이나 잘 다뤄지지 않은 공약인데, 이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는 궁금하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예로 들면 몇백 몇천 골드 수준의 사기 피해를 당한 유저는 이를 구제 받으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피해를 산정하기 위해 유저간 거래 시세를 적용할까 아니면 해당 골드를 입수하기 위해 들어간 유저의 시간을 적용할까? 또한 소액 사건의 수사를 맡는 경찰은 사건이 접수되면 사이버수사국 요원으로 배정을 할까 혹은 전담기구 내에 전담 요원을 만들어서 배정할까? 후자라면 신규 채용 필요가 생기지만, 윤석열 당선인은 공무원 감축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검사는 이 사건을 어떤 형태로 기소할 것이며, 동시에 판결을 맡을 판사의 업무량 상승은 고려가 될까? 아직은 알 수 없다. 작은 공약 둘째, 장애인의 게임에 대한 접근성을 향상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게임접근성진흥위원회’를 설치한다. 대선 기간 동안 언론은 이 공약에 아무런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는데, 이 공약 역시 하태경 의원실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작년 4월 20일에 발의된 게임산업법 개정안에는 하태경 의원, 그리고 국민의힘 비례대표로서 장애인을 대표하는 김예지 의원, 진보의 정의당 류호정 의원 등이 참여한 법안으로 현재 계류 중이다. 이 법안은 정부에게 장애인의 게임 접근성 향상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도록 의무를 지우는 내용이다. 이런 내용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21세기 초입부터 제기가 되었고, 2004년에는 국제게임개발자협회(International Game Developers Association, IGDA)가 개념화하여 게임 개발 지침을 만들면서 조류(wave)가 시작되었다. 이후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접근성 지침, 장애인 플레이어 환경 가이드와 같은 가이드라인들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런 조류에 맞춰가는 법안인 것이며 공약으로 바뀌자 해당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권고를 내리는 기구로 위원회가 만들어지는 내용이 된 것이다. 장애인 게임 접근성에 관해서 잘 정리된 정보는 게임제너레이션 3호에 강신규 연구자의 글( 링크 )에 있으며, 장애인 게임 유저로서 강신혜 작가가 쓴 글( 링크 )은 게임제너레이션의 4호에 실려 있다. 이 분야를 연구자와 당사자가 쓴 저 두 편의 글보다 잘 설명할 자신이 없다. 이 공약에서 핵심이 될 부분은 게임접근성진흥위원회가 내릴 권고의 무게다. 현재 독립적 지위를 가진 위원회로서 권고의 무게가 가장 무거운 위원회는 국가인권위원회다. 하지만 그런 인권위 권고조차 정부 부처나 기업이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권고는 법적 강제성이 약하기 때문에 불수용 결정이라는 제도적 출동 사례가 생기는 것이다. 과연 게임접근성진흥위원회의 권고는 어느 정도의 권위를 지니게 될까? 3) 중요 NPC : 하태경 의원 윤석열 당선인의 게임 공약을 분석하기 위해 처음에 살펴봤던 것은 인벤닷컴과의 인터뷰였다. 하지만 서면으로 이루어진 이 인터뷰는 당선인의 실제 답변일 가능성이 별로 없다. 게임 공약을 정리해서 처음 발표하던 1월 12일, 윤석열 후보는 자신이 직접 인터뷰한 것이 아니고 선대위 내부에서 답변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 시기는 하태경 의원이 선대위 내에서 게임특위위원장이 되는 시기외 맞물린다. 12일의 공약 발표에서도 공약에 대한 질의 응답은 윤석열 후보 자신보다 하태경/원희룡 두 사람이 더 많이 했다. 따라서 향후 윤석열 정부의 게임 정책의 핵심은 하태경 의원이 될 것으로 예상해도 무방할 것이다. 하태경 의원은 현재 인수위에서 맡은 직책이 없다. 현직 국회의원이라 행정부 인수위에 들어가지 않았나 생각할 수는 있지만, 한국 정치에서 그런 이유의 인선은 없었다. 당장 배준영 의원은 인수위에서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에 들어가 있고, 추경호 의원은 기획조정분과의 간사로 들어가 있다. 이번 인수위 인선은 유독 문화체육 분야가 약하다고 평가받고 있는데, 특히 게임 분야는 한 명도 없다. 하태경 의원이 인수위 인선에서 빠졌다는 것은 당선인이 게임 공약의 우선순위를 앞에 놓고 있지 않다는 의미다. 공약 사항 외에 놓친 것을 찾아보기 위해 다시 인벤닷컴 인터뷰로 돌아가 보자. 인터뷰어인 이두현 기자는 국회에서 계류 중인 게임산업법 전부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질문했다. 이에 대한 당시 답변은 원칙적 찬성이었으나, 정작 법안 내용을 캠프가 모르고 있었다. “개정안 내용의 골자는 게임의 사행성과 사용자들의 게임중독에 관한 규제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다만, 앞서 말씀드린 대로 그동안 우리나라 온라인게임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고 수많은 일자리와 혁신도 주도했던 만큼 업계의 애로 사항도 충분히 감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우리 국민의힘은 온라인게임 본인인증 절차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이 대표 발의해 아직 계류 중인 게임산업법 전부개정안은 사행성/게임중독 규제에 대한 내용과는 맥락이 완전히 다르다. 이 전부개정안의 내용 중에서 중요한 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게임배급업을 명확히 규정하고 관련 요소의 법적 정의를 해서 구역을 명확히 구분한다. 2. 중소게임사에 문체부가 예산 지원을 할 법적 근거를 만든다. 3. 비영리 인디 게임에 등급 분류를 면제시켜 주고, 패치가 등급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경우 새로 등급 분류를 면제시켜 주는 등 등급분류제의 많은 부분을 손질한다. 이 내용 중 일부는 다른 개정안 통과로 인해 이루어졌다. 4. 등급 표시 외에도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정보 등을 명시하도록 의무화한다. 5. 국내 업장이 없는 외국 회사가 국내에서 게임 사업을 할 때 국내 대리인 지정, 지사 설립이나 운영대리회사 지정을 하게 만들어서 수익 일부가 국내 경제권에 남도록 한다. 이번 회기의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회기 시작 후 2년 동안, 게임산업법 관련한 입법 활동으로 등급분류제와 확률형 아이템 규제를 손질하는 작업을 주로 하는 중이다. 그런 활동 사이사이로 셧다운제 내용 완전 삭제, 장애인 접근성 등의 내용이 있다. 이상헌 의원의 전부개정안은 현재 문체위의 메인 퀘스트 중간 종합판이라 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위의 입법 활동 중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인데도, 이 내용을 캠프가 혹은 하태경 의원이 몰랐다는 것은 의아한 부분이다. 하태경 의원이 이 전부개정안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은 핑계가 되지 않는다. 인벤닷컴 인터뷰에서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P2E 게임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다. “국민 여론에서 사행성 논란이 있다면 건전한 놀이문화가 되기도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따라서 국민 대다수가 이해한다면 P2E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에서 최소한의 고려를 해 볼 수는 있겠지만, 환전성이 가능한 게임에 대해서는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됩니다. 사행성 논란이 없어져야 해당 시장도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부분은 지난 2월 28일에 내려진 사법부 결정과 궤가 같다. 환전을 하는 게임에 대해 이뤄진 헌법소원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환전업을 금지한 게임산업법의 해당 조항이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유저 간의 게임머니 거래는 묵인할 수 있지만, 게임사가 게임머니를 현금으로 환전해주는 형태는 불법이 맞다는 확언이었다. 이는 한국 P2E 게임의 선택지를 극도로 좁게 하는 판결이며, 1월 초에 나온 캠프의 태도와 부합하는 판결이다. 다시 0) 애프터게임 : out of focus 윤석열 당선인의 게임 공약은 전체적으로 봤을 때 장단점이 매우 뚜렷하다. 대부분은 결을 잘 잡았지만 의구심이 드는 지점의 공백이 너무 크다. 과연 당선인이 이 공약들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장담하기 어렵다. 반면 공약 작성 당사자로 보이는 하태경 의원을 중심으로 봤을 때, 국회와 연계하여 정책 전개를 해나갈 전망은 희망적이다. 그래도 여전히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 이유는, 정황상 게임 정책의 국정과제 우선순위가 매우 뒤쪽일 것 같기 때문이다. 어차피 국회와의 연계가 필요한데, 그 하태경 의원은 다른 문체위 의원들이 집중하는 초점에서 반쯤 벗어나 있다. 낙제점은 아니지만 미싱 링크가 볼수록 크게 보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장민지
덕후 진화론(덕후는 정신적/육체적/기술적으로 진화한다)을 믿는 팬-미디어 연구자.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상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5년 박사논문〈유동하는 세계에서 거주하는 삶 : 20~30대 여성청년 이주민들의 집의 의미와 장소화 과정〉으로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 학회 학술상, 2016년 〈비인간 캐릭터에 대한 대중의 환상〉으로 한국방송작가협회 한국방송평론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장민지 장민지 덕후 진화론(덕후는 정신적/육체적/기술적으로 진화한다)을 믿는 팬-미디어 연구자.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상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5년 박사논문〈유동하는 세계에서 거주하는 삶 : 20~30대 여성청년 이주민들의 집의 의미와 장소화 과정〉으로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 학회 학술상, 2016년 〈비인간 캐릭터에 대한 대중의 환상〉으로 한국방송작가협회 한국방송평론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Read More 버튼 읽기 게임과 데이팅 세계 사랑은 일상적인 곳에서 온다. 그리고 그 일상은 현재 ‘디지털화’되었다. 연애관계의 돌입과 사랑의 속삭임을 우리는 ‘가상적으로, 디지털로, 플랫폼을 통해’ 수행(play)하고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보이는 관심은 인스타그램의 DM으로, 페이스북의 댓글로, 카카오 톡의 메신저로 꾸준히 접속하여 수치화된다. 버튼 읽기 A급과 B급의 차이, 끊임없이 저항하고 결국은 차지하는 우리는 가끔 B급, 다시 말해 A급이 아닌 ‘것’을 하나의 영역으로 묶어 생각한다. 딱 집어서 이야기할 수 없지만 B급은 ‘A급이 아닌 무언가’로 정의된다. 그렇다면 B급을 인지하기 위해서 선행되어야하는 것은 A급에 대한 정의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A는 늘 우리에게 ‘보편’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B를 보고나서야 A가 A임을, 다시 말해 그것이 우리에게 보편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버튼 읽기 15년 만에 다시 돌아온 <어이쿠, 왕자님>, 게 섯거라 이놈아! 버틀러는 이러한 패러디적인 창조성을 원본이라는 것 자체도 원래 본질적으로 원본인 것이 아니라 원본이라고 가정되는 이상적 자질을 모방을 통해 보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원본이 동시에 모방본이라는 점에서 원본과 모방본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든다. 모방본도 원본도 원본의 상상적 특성들을 모방하는 것이고, 오히려 모방본이 원본의 모방적 자질을 드러내주는 것이라면 이제 오히려 모방본이 원본에 선행한다는 역설적인 생각까지 가능해진다. 이는 원본이 가진 창조성의 가치와 패러디의 모방본이 가진 창조성의 가치가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오히려 패러디 요소를 내재하고 있는 모방본이 원본에 선행하여 더 높은 창조적 위치를 점유한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 [Editor's View] Ways of Seeing
아이템을 기획하는 내내 편집위원들과 편집장은 보는 게임이라는 개념의 모호함에 대해 토로했다. 어디까지가 게임일 것인가? 어디부터가 게임의 변화인 것인가? 인간의 역사가 늘 그래왔듯이 우리는 동시대에 대해 스스로 답을 내리기는 어렵다. 시대를 이끌어가는 것은 즉시성있는 답변보다 늘 우직하게 본질을 바라보는 질문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보는 게임’의 시대에 감히 어떤 정답을 내리기보다는, 다양한 질문과 사유를 통해 이 시대 게임의 변화를 사유하는 계기로 ‘GG’3호가 자리잡을 수 있었으면 한다. < Back [Editor's View] Ways of Seeing 03 GG Vol. 21. 12. 10. 이제는 고전이 된 존 버거의 ‘본다는 것의 의미Ways of Seeing’라는 책을 기억한다. 본다는 행위는 결코 영원히 고정된 의미로 남아있는 것은 아니며, 시대와 맥락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지며 변화해 왔다. 그리고 그 변화는 심지어 ‘보는 것으로는 완성되지 않는’ 게임이라는 매체에까지도 닥쳐온 듯 하다. 오랫동안 디지털게임은 그 중심에 직접적인 상호작용성이 있다고 이야기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의 현실에서는 이러한 개념만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현상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플레이어의 개입이 줄어든 방치형 게임, 타인의 게임플레이를 보며 즐기는 e스포츠나 게임스트리밍 등은 게임에 대한 관점을 보다 새롭게, 혹은 보다 폭넓게 정립하기를 요구한다. ‘게임제너레이션’ 3호는 바로 그 ‘보는 게임’ 현상에 주목했다. 플레이어의 개입이 줄어든 오늘날의 게임을 게임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부터 이 변화한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게임의 대중화에 대한 해석까지 우리는 적지 않은 과제를 받아안는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다양한 시선의 다채로운 고민을 담고자 했다. ‘보는 게임’에 대한 두 접근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도 사뭇 다른 관점을 취한다. 윤태진과 이상우는 각각 ‘본다’는 행위가 만들어내는 변화와, 그 변화로부터 나타나는 공백에 주목한다. ‘보는 게임’이라는 변화의 중심에 있는 방치형 게임이 만들어내는 플레이를 관찰하는 박이선의 글은 플레이어라는 주체의 위치와 자세를 되묻는다. 홍영훈은 e스포츠팀 속 개인으로서의 게이머라는 존재가 갖는 정체성을 되물으며, 가깝지만 쉽게 접하기 어려운 일본의 게임문화 속 ‘보는 게임’의 의미는 신주형의 추적 끝에 우리 앞에 되살아난다. ‘트렌드’에서는 세 가지 테마를 관찰한다. 2021년 국감에 등장한 게임 접근성 문제는 어느새 대형 게임에서는 조금씩 적용되고 있는 트렌드다. 오랫동안 우리 곁을 맴도는 질문, 왜 한국의 콘솔게임 점유율이 낮은지에 대한 소고는 최근 들어 늘어나기 시작한 한국 게임제작사들의 콘솔 도전과 맞물린다. 인기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가 보여준 전체채팅 금지라는 정책의 도입과 재철회 이슈는 그 원인인 온라인게임 채팅의 문제를 다시금 상기시킨다. 아티클 부문은 ‘보는 게임’의 또다른 반대편인 ‘듣는 게임’에 관한 임태훈의 글로 서두를 연다. 12월 개최되는 실험게임축제 ‘아웃오브인덱스’의 주최자인 박선용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서울 합정역 인근에서 열린 미술전시 ‘로우스코어 걸’은 게임의 방법론을 활용하고자 하는 미술의 도전을 보여주며, ‘메탈기어’ 시리즈와 주인공 스네이크의 통시적 변화를 다룬다. ‘데스루프’ 가 보여주는 회귀와 게임이라는 텍스트 자체가 가지고 있는 회귀성에 대한 영원회귀로의 접근, 실황중계를 통한 간접체험의 시대를 들여다보는 글들이 준비되어 있다. 인터뷰는 e스포츠, 유튜브, 방치형게임을 선택했다. 게임을 통해 교육을 준비하는 젠지 글로벌아카데미, 보는게임 시대의 중심에서 살아가는 게임유튜버 김성회, 대표적 방치형게임으로 거론되는 ‘어비스리움’의 운영진과 이야기를 나누며 오늘날의 보는게임에 관한 이야기를 품고자 애썼다. 아이템을 기획하는 내내 편집위원들과 편집장은 보는 게임이라는 개념의 모호함에 대해 토로했다. 어디까지가 게임일 것인가? 어디부터가 게임의 변화인 것인가? 인간의 역사가 늘 그래왔듯이 우리는 동시대에 대해 스스로 답을 내리기는 어렵다. 시대를 이끌어가는 것은 즉시성있는 답변보다 늘 우직하게 본질을 바라보는 질문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보는 게임’의 시대에 감히 어떤 정답을 내리기보다는, 다양한 질문과 사유를 통해 이 시대 게임의 변화를 사유하는 계기로 ‘GG’3호가 자리잡을 수 있었으면 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필연적으로 실패하지만 계속되는 것,
선택을 위해 제시되는 두 개의 분기점은 결국 실패하지 않는 삶, 매끈한 하나의 서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선택은 불가피하다. 오히려 굴절된 한 분면만을 인식할 수밖에 없다는 인간의 근본적인 한계가 그 선택이 충실한 것임을 간절하게 희구하게 만드는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 Back 필연적으로 실패하지만 계속되는 것, 21 GG Vol. 24. 12. 10. 모든 미디어는 동시대에 영향력을 미치는 다른 매체들을 상호 참조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게임 역시 마찬가지다. 초창기 아케이드 게임기를 통해 구현된 게임과 비교해본다면 콘솔이나 PC를 통해 플레이할 수 있는 지금의 어드벤처 게임은 동일한 영역에서 다루기 어려울 정도다. 하나의 사(史)를 기술할 수 있을 만큼 개별적인 영역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게임은 각각의 장르적 특성에 따라 게임 디자인을 비롯한 재현적 특징과 이에 따른 플레이 방식이 상이하게 분화됐다. 이 과정에서 게임은 다른 시각 중심의 미디어 기법을 적극적으로 재매개(remediation)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손쉽게 떠올릴 수 있는 시네마틱 트레일러에서 자주 활용되는 영화의 컷 분할이나 카메라 기법부터 드라마 시리즈를 차용한 에피소드식 전개를 서사를 구성하는 큰 축으로 사용하는 것까지 그 예시를 상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리고 앞서 거론된 미디어들보다는 드물지만 보다 이전부터 근대를 상징하는 기술이자 매체였던 대상, 바로 ‘사진’을 재매개하는 방식을 통해 주요 사건을 전개하는 게임도 존재한다. 돈노드의 대표작 가 그러하다. 블랙웰에 재학 중인 고등학생 맥스는 5년 만에 혼자 돌아온 고향에서 적응하는 일이 버겁게 느껴진다. 클로이와 재회하기 이전까지 그녀의 최대 관심사는 사진 공모전에 자신의 작품을 제출할 것인가 여부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살인 사건의 목격자가 되고 나서 맥스의 세계는 단절되었던 우정과 관계의 회복, 학교 내 커뮤니티에서 초래되는 약물을 포함한 폭력의 문제, 나아가 지역 내 실종사건까지 급속하게 확장된다. 지역 유지인 가문 덕분에 교내에서 권력자로 군림하지만 집에서는 무시당하는 네이선은 그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우발적으로 드러나는 폭력적인 성향을 통해 보여준다. 그 네이선이 총기로 위협하다 살해한 대상이 자신의 친구이자 이사하면서 관계가 단절된 클로이라는 것을 맥스는 시간을 돌려 그녀를 구한 뒤에서야 깨닫는다. *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는 특정한 관점과 초점을 맞출 대상을 선택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맥스가 찍은 파란 나비는 의 시발점이자 선택의 종결을 의미하는 중요한 상징으로 활용된다. 결정적 실수나 돌이킬 수 없는 비극적 사건을 동일한 시간선의 과거를 다시 불러오는 방식으로 수정하고자 하는 상상은 너무도 흔한 클리셰가 되었다. 다만 몇 번이고 반복해서 특정한 장소와 시간을 소환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세이브’, ‘로드’라는 게임 디자인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 일찍이 아즈마 히로키(東浩紀)부터 요시다 히로시(吉田寛)에 이르기까지 게임의 특수한 재현 양상이 다른 미디어에 미친 영향력에 대한 지적은 유구하다. 게임이 다른 미디어를 재매개하며 발전한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 웹소설, 애니메이션 역시 게임을 재매개하며 새로운 방식의 서사를 찾아냈다. 에서 시간을 조절하는 맥스의 능력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특정한 국면을 분절적으로 저장하고 다시 불러오거나 실패한 과거를 성공한 현재로 덮어쓴다는 게임의 독특한 시간 재현 방식을 가시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을 되돌리거나 정지시키고 특정한 국면의 시간선에 자신을 위치시킬 수 있음에도 맥스의 이능은 전능하지 않다. 그것은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붙들고자 하는 이능이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도 사진을 매개로 하고 있으며 사진이 갖는 매체적 특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맥스가 자신이 찍힌 사진을 통해 사진이 포착한 시간의 한정된 공간 일부에 위치한 자신의 행위를 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세 번째 에피소드인 ‘카오스 이론’ 중에서도 후반부다. 클로이는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대마를 피우며, 트레일러에 거주하는 마약상에게도 협박을 받는 문제적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이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정서적 결핍이라 생각한다. 맥스가 도달한 시간선은 바로 그 클로이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기 직전 집을 나설 때다. 사진이 포착한 좁은 공간 내에서 차키를 숨기는 일에 성공한 맥스는 클로이의 아버지가 사망하는 사건을 막는다. 그러나 13살의 맥스가 저지한 사고 이후 18살의 맥스가 되어 마주한 새로운 현재는 전신 마비로 움직이지 못하게 된 클로이와 대면하는 일이었다. 는 맥스의 시점에서 선택한 결과가 과거, 현재, 미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지문을 통해 지속적으로 환기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특정한 시간과 한정된 공간에 자리한 인간은 자신의 선택이 총체적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이것은 인간이 재현을 위한 도구로 캔버스가 아닌 사진기를 선택했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다. 사진은 결국 특정한 앵글을 통해 제한된 대상의 부분을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의 주체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 그것은 어떤 대상을 선택하고 무수한 상황 속에서 특정 국면만을 포착하는 하나의 시선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반영한다. 동시에 분절된 샷(shot)은 결코 인간이 전지적일 수 없으며 파편화된 특정 장면을 통해 이어놓은 느슨한 인과가 늘 그 밖의 다른 균열을 배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의 매체적 특성은 어드벤처 게임의 수색 혹은 탐사와도 맞물린다. 플레이어는 게임 내 서사가 진행되는 시간의 흐름과는 별도로 특정한 상황에서 정지된 시간과 공간에 위치한다. 다수의 선택지를 대면하기에 앞서 판단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탐색은 맥스의 이능과 게임이 디자인한 플레이어의 권력을 중첩시킨다. 플레이어 아울러 맥스는 판단을 지연하거나 혹은 선택을 번복하는 방식을 통해 더 나은 경로를 찾고 자신이 계획한 시간선에 도달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가능하지 않은 지향점이다. 특정한 국면에서 수행되는 서사와 탐사는 가능성의 다른 지점들의 내적 규모를 아우를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이 접한 유형을 통해서만 타인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을 모든 면모를 알 수 있는 일은 매우 어렵고 사실 불가능하다. 클로이가 실종자 몽타주를 붙여 가면서 애타게 찾고 있던 레이첼 역시 탐색을 거듭하다 보면 클로이가 진술한 친구 레이첼과는 다른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교사 제퍼슨과 내연 관계였다는 소문, 마약상 프랭크와 연인에 가까워 보이는 정서적 유대를 가졌던 과거는 클로이가 아는 레이첼과는 다른 단면을 보여주는 예다. 블랙웰을 다니는 누구라도 그를 싫어할 것이라 평가받는 클로이의 양부 데이빗은 암실에 감금된 맥스가 탈출하는 데 일조하는 결정적인 활약을 한다. 비록 그가 직업 군인이었던 시절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고압적인 인물이라 할지라도 클로이를 염려하던 마음만은 진심이었다는 사실은 오히려 그의 강박에 가까운 조사와 수집, 수사를 통해 뒤늦게 증명된다. 그렇기에 (플레이어와 맥스 모두를 포함한) ‘나’의 현재적 판단은 게임이 진행될수록 쉽지 않다. 불확실하게 알 수밖에 없는 한 인간의 선택과 번복이 계속될수록 시간선을 리셋하는 것에 대한 리스크는 커지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은 그럼에도 선택해야 한다는 불안감과 책임에 따라오는 무게를 동반한다. 의 탁월한 지점은 마지막 선택을 남겨둔 맥스의 ‘악몽’ 부분의 묘사에 있다. 게임은 이제 플레이 문법의 관성을 비튼 메타 게임도 그 수를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로 특정한 서사적 클리셰를 누적해왔다. 친구 혹은 연인, 부모님과 같이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막기 위한 선택과 분투는 익숙한 서사다. 그러나 대화가 단절되어 멀어졌다 5년 만에 재회한 친구를 위해 분투하는 맥스의 내면은 어떨까? 클로이와 만난 일주일 간의 맥스는 분명 이전의 자신과는 다른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관계는 누구 하나의 충실함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클로이는 질서와 권위를 무시하고 선택을 주저하지 않는 인간상이다. 동시에 몇 되지 않는 인간관계에 정서적으로 크게 의존하는 불안정한 청소년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악몽이 맥스에게 보여주는 클로이는 그녀의 미숙함을 조롱하고 맥스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맥스와의 관계 이상의 유대를 과시한다. 악몽은 자신의 충실성이 배반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인 셈이다. 우리는 결코 타인의 내면을 알 수 없다. 다만 짐작할 뿐이다. 거듭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간절하게 살리고 싶어 했던 클로이와의 관계가 아카디안 만을 떠나서도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반복되던 블랙웰에서의 일주일이 그들의 가장 예외적인 순간일 수도 있다. 선택을 위해 제시되는 두 개의 분기점은 결국 실패하지 않는 삶, 매끈한 하나의 서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선택은 불가피하다. 오히려 굴절된 한 분면만을 인식할 수밖에 없다는 인간의 근본적인 한계가 그 선택이 충실한 것임을 간절하게 희구하게 만드는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성균관대학교 강사) 홍현영 패미콤을 화목한 가족 구성원의 필수품으로 광고한 덕분에 게임의 세계에 입문했다. <저스트댄서> 꾸준러. 『81년생 마리오』, 『게임의 이론』, 『미디어와 젠더』 등을 함께 썼다.



![[인터뷰] 게임 전시가 줄 수 있는 사회적 담론의 균열 : <게임 사회> 기획자 홍이지 학예연구사 인터뷰](https://static.wixstatic.com/media/d03518_125fae766b1e42339bf972de7a11e7a3~mv2.jpg/v1/fit/w_176,h_124,q_80,usm_0.66_1.00_0.01,blur_3,enc_auto/d03518_125fae766b1e42339bf972de7a11e7a3~mv2.jpg)




![[축사] 창간을 축하합니다](https://static.wixstatic.com/media/d03518_5241a82347ca4455814e9dc13f080bd5~mv2.jpg/v1/fit/w_176,h_124,q_80,usm_0.66_1.00_0.01,blur_3,enc_auto/d03518_5241a82347ca4455814e9dc13f080bd5~mv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