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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게임 리버스-엔지니어링하기: 지적 재산권, 소액결제, 그리고 검열을 중심으로

06

GG Vol. 

22. 6. 10.

***편집자 주: 
유사한 지리적, 언어적, 문화적 환경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북한은 아주 머나먼 곳이며, 특히 디지털게임에 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는 곳이기도 합니다. 농담처럼 평양의 유일한 스팀 IP를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 우리는 북한의 디지털게임에 대해 궁금해해야 합니다. 이 글은 게임연구 전문 저널인 gamestudies.org에 익명으로 게재된 북한의 게임에 관한 논문을 번역한 글입니다. 원문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으며, gamestudies 관리자를 통해 원저자로부터 한글번역 허가를 구하여 게임제너레이션에 게재하였습니다. 참고문헌 등은 원문 사이트에서 보다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원문보기 링크:
http://gamestudies.org/2201/articles/anonymous 

 

초록:

이 글은 북한 게임 산업의 역사 및 그 불법복제 의존성에 대해 살펴본다. 오늘날 북한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비디오게임은 해외의 유명 게임을 개조한 것으로, 여기서는 리버스-엔지니어링 방법론을 통해 북한의 개조판 게임에 대한 분석을 수행했다. 이를 통해 그와 같은 개조의 목적이 소액결제 같은 시스템을 북한의 상황에 맞게 수정하여 들여오는 것, 그리고 콘텐츠의 민감한 요소들을 검열해서 민족주의적으로 또는 사회주의적으로 수정하는 것에 있음을 밝힐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불법복제 게임은 민족주의적이고 포스트-식민주의적인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옹호하면서도 자본주의적 소비 진작과 수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상반된 이데올로기적 지향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들어가는 말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아케이드용 해적선 전투 게임기 앞에 놓인 전투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를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장치의 밑바닥에는 'No Step!'이라는 영어로 쓰여진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다른 아케이드 게임기들도 살펴본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노동자들을 향해 'Do not step'과 'Caution' 등 게임기에 영어로 쓰여있는 지시문을 우리말로 바꿀 것을 지시했다(Han, 2020, p. 146)"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은 게임 산업보다는 자급자족식 민족주의와 주체사상 이데올로기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난 십여 년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같은 휴대용 디지털 기기 보급이 증가하고(Yoon, 2020) 여가활동에 대한 공적인 지원이 더해지면서(Evans, 2018), 북한 도시 중상류층의 일상적인 여가로서 게임이 떠오르고 있다. 교육용 소프트웨어와 더불어 게임은 현재 북한 IT 유통업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1). 완전히 국산으로 만들어진 게임도 몇몇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게임은 필자가 "현지화 수입(localized imports)"이라 부르는 방식  - 해외의 게임을 국가 승인 개발사가 북한의 디지털 환경에 적합하도록 다양한 수준에서 번역하고 개조하는 방식 - 을 거쳐 공급되고 있다.


이러한 개조는 엄밀히 말해 북한이 최근에 정립한 저작권법 위반이자 그 자신도 가입 되어있는 국제 저작권 협약 위반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자체는 특별할 것이 없는데, 저작권법은 반-제국주의적 또는 민족주의적 차원에서 종종 불법복제가 장려되곤 하는 개발도상국에서 느슨하게 적용되어왔기 때문이다(Wang, 2003).


북한에서도 이와 같은 합리화 - 게임 내 외래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검열해서 제거해야 할 필요성에서부터 지적재산권의 불공정성에 대한 경제학적 비판에 이르는 - 가 확인되는 한편, 이와 같은 합리화는 저작권 보호를 위해 게임의 불법복제를 "공식적으로" 금지하는 굉장히 엄격한 기술 및 법 체계와 공존하고 있다. 


북한 내에서 유통되는 모든 소프트웨어는 국가의 "중앙 소프트웨어산업 지도 기관(Central Guidance Organ of Software Industry)"에 등록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모든 디지털 기기는 중앙기관에서 암호화 방식으로 승인을 받지 않은 경우 애플리케이션의 실행이 OS차원에서 금지 되어있다. 반면 저작권법은 사회주의 경제 체제 하에서 예상하기 힘든 모습을 보여주는데2), 즉 플레이어를 자본주의적 소비자로 "호명"해서 디지털 아이템에 돈을 쓰게 만드는 인-게임 결제 전략을 위한 기반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북한의 게임산업에 대한 분석을 통해 기술적 인공물에 있어 이데올로기적 적응성과 탄력성에 대한 연구를 제공할 것이다. 게임은, 여타의 기술적 인공물들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발현되는 맥락(Bijker, Hughes & Pinch, 1987)이나 수입되는 맥락(Choi, 2017)이 이데올로기적이고 경제적인 사회적 구성물이다. 그런데 만약 게임이 수입된 이데올로기적 환경이 그것이 원래 생산되었던 곳과 다르다면, 심지어 적대적이라면 어떻게 될까?


북한에서 게임은 리버스-엔지니어링(게임의 속성들을 이해하거나 변경, 또는 비활성화하기 위해 프로그램의 컴파일 바이너리를 분석하는 작업)을 통해 그것이 원래 기원한 국가의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저항의 도구가 된다. 다른 문화적 수입품들과 마찬가지로, 게임은 북한에서 문화적 침투를 통해 (특히 미국) 제국주의에 복종하게 만든다는 비판을 받아왔다(Ra, 2005, Kim, 2009). 해외 기업의 국내 시장 침투나 북한 수입업자들의 로열티 지불 또한 제국주의에 부역하는 행위라는 비난을 받아왔다(Hwang, 2017). 북한식 불법 복제는 외래 문화 요소를 제거하고, 자국의 프로파간다를 주입하고, 개조된 소프트웨어에 대해 완전한 소유권을 주장함으로써 그와 같은 제국주의적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그러나 현지화 된 북한 버전일지라도 원본 게임에 내재된 이데올로기적 요소들은 부분적으로 여전히 발견된다. 게임 내 소액결제 시스템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소비가 지속적으로 유발되는 패턴은 북한의 사회적 기반에서 벗어난 것이다. 또한 북한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 하 여러 거대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게임을 비롯한 여러 문화 상품에 대한 이용권한(license) 시스템을 수용하여(Stallman, 1997) 디지털 기기를 통해 전송되는 콘텐츠에 대한 감시와 통제에 활용하고 있다. 



해적 행위(Piracy), 게임의 역사 그리고 리버스 엔지니어링


게임에 있어 해적 행위는 단순히 파일을 무허가로 복제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보호장치를 "크래킹cracking"하는 것, 크로스-플랫폼 호환을 위한 에뮬레이션 제작, 속성을 바꾸거나 추가하여 게임을 "모딩"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주의 행위자, 실천, 그리고 테크놀로지를 아우른다. 이와 같은 해적 행위는 상업용 비디오게임의 발전과 병행되어 왔으며, 업계(International Intellectuall Property Alliance, 2021)와 게임학 연구자들(Postigo, 2003; Kretzschmar & Stanfill, 2019)로부터 상당한 관심을 받아왔다. 


게임 해적 행위에 대한 초기 연구들은 해적 행위자의 자유주의적인 혹은 반체제적인 에토스를 강조했다(McCandless, 1997; Tetzlaff, 2000; Goldman, 2005; Coleman, S., & Dyer-Witheford, 2007). "디지털 졸리 로저(역주: 해골이 그려진 해적기로 해적 행위자들을 상징한다)들의 조용한 전복 행위"(Kline et al., 2003, p. 217)를 글로벌 자본주의나 초국가적 거대기업 또는 저작권을 통한 지적 공유재산의 불공정한 점유 등에 대해 저항하는 반체제적인 또는 반식민주의적 입장으로서 읽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해석은 지하 네트워크와 불법적인 경제를 지나치게 낭만화(Nicoll, 2019)하고, 북미와 서구의 중산층 출신 남성 해적들이라는 특정한 소수 집단의 자기-특성화를 무비판적으로 반복해왔다는 비판(Wasiak, 2012)을 받았다.


예를 들어 냉전시대 후반 체코슬로바키아(Švelch, 2018)와 폴란드(Wasiak, 2014)에서 저작권은 생소한 개념이었고, 그에 따라 그에 대한 이해도, 법적인 집행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중부 유럽의 공산당이 초기 비디오게임 시장에 대한 검열이나 규제에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이들 지역에서 해적 행위는 그에 대항하는 기업이나 정부의 검열 없이 번성할 수 있었다. 1980년대 남한(Nicoll, 2019; Jo, 2020)이나 홍콩(Ng, 2019), 또는 1990년대 중국(Liao, 2016)에서 그랬듯, 제한 없는 소프트웨어 복제행위는 은밀한 행위였다기 보다는, 정부의 간섭이 윤리적 차원에서 그치고 국제적인 저작권 협약이 강제되지 않는 일종의 (일상적) 규범에 가까운 행위였던 것이다.


학술 영역에 있어 이와 같은 변화는 해적 행위에 대한 연구를 기존에 한정되고 양극화된 것 - 범죄 행위 또는 반자본주의적/자유주의적인 저항으로 보는 - 으로부터 벗어나 이용자 중심적으로 게임의 역사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전환되도록 이끌었다. 야로슬로프 스벨치(Švelch, 2018, p. 152)는 "국제적인 유통 인프라가 구축되기 전의 1980년대 그리고 이후 디지털 유통이 자리잡은 이후에도 주변부는 중심보다 거대했으며, 소형 컴퓨터들의 상당수는 해적판 게임의 실행에 활용됐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해적 행위의 일상성을 인정하는 것은 게임의 역사가 몇몇 소수의 거대 기업들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게이머 커뮤니티와 공유의 네트워크, 창의적인 개조자들(modders), 그리고 모험적인 거래자들의 역사이기도 함을 인정하는 것이다(O'Donnell, 2013). 


그 활용과 이용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전세계 게이머들이 외래의 테크놀로지와 콘텐츠를 전유하고 자국용으로 순화하는(domesticate) 방식을 강조함으로써 "주변부"를 실험과 혁신이 벌어지는 독특한 다수의 장소들로서 재평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유(appropriation)에 대한 분석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질문을 회피하면서 현지화와 혼종화의 과정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일본 게임의 현지화를 다뤘던 콘살보의 작업(Consalvo, 2016)은 일본 외부에서 이루어지는 일본 게임에 대한 언어·문화적 각색을 매우 상세하게 다루었지만, 그 초점이 선진 시장 경제를 가진 국가들에 한정되어 있어 일본 게임이 문제가 되거나 금지되어 있는 국가에서 일본 게임에 깔린 정치적 담론과 전제가 어떻게 현지화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사회주의 국가의 경우 1980년대 폴란드의 해커들이 사회주의적인 것보다 "서구적인" 것들을 선호했음을 기술했던 바시악(Wasiak, 2014)도 사회주의 경제 내 새롭게 부상했던 소비주체들에 대해 서구 유럽이 끼친 문화적 영향력이나 상업적인 행위의 확산이 지닌 함의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중국 시장 내 해적판 일본 게임의 확산을 다뤘던 랴오(Liao, 2016)는 중국 정부의 "테크노-민족주의"에 대해서는 기술하면서도 아시아권 내 일본 제국주의 문제나 중국에 시장의 논리가 유입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해적 행위를 통한 현지화의 그와 같은 과정이 기술적인(technological) 만큼이나 이데올로기적이라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해적 행위를 저항 행위로 퉁쳐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해적판 테크놀로지가 특정한 이데올로기 프레임 내에서 작동하면서도 동시에 그에 대항해서 작동하는 방식들을 다룬 최근의 연구들과 궤를 함께 한다. 예를 들어 남한의 게임 해적 행위가 "신식민주의" 내에서 작동하면서도 동시에 그에 대항해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다룬 니콜(Nicoll, 2019)의 작업3)이나 해적판 영화시장에 대한 분석(Lobato, 2012, pp. 74-74) - 해적 행위가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한 실천적인 비판인 동시에 "자유 기업 체제의 전형적인 형태"로서 읽힐 수 있다는 - 이 있다. 나는 북한 게임 산업의 해적 행위가 글로벌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것인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자본주의의 많은 측면들을 재생산하고 있음을 주장할 것이다. 국가 검열을 통해 자본주의적 상징들을 제거하고 문화 보존이라는 명목 하에 외래적인 콘텐츠를 국내식으로 수정한 다른 한편으로, 북한의 (해적판) 게임은 자본주의 세계에서 만들어진 지적 재산 모델이 도입되고, 그 플레이어들을 소비주의적으로 충동질하며, 디지털 플랫폼을 이용자 감시에 활용하는 것을 도모하고 있다.


북한 내에서 게임 해적 행위는 과거 일본의 식민지배 및 현대 미국 중심의 신제국주의에 대한 대응으로서 강력하게 진화된 민족주의로 나타나고 있다(Shin, 2006). 한편 저작권과 지적재산권 개념 그 자체는 지속적으로 북한의 경제학자들에 의해 "제국주의적 독점"의 "차별적인 특성"의 사례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Hwang, 2017, p 62). 저작권 무시가 해외 자본에 대한 저항 행위가 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 따른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모딩(modding)을 통한 복제 게임의 재전유는 종종 강렬한 민족주의적인 담론으로 가득 차 있는데, 때에 따라 반-일본 또는 반-미국적인 요소로 가득 차 있다. 따라서 이렇게 수복된 게임은 외부의 위협에 대항하는 이데올로기 무기로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급진적인 입지를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지배와 복종이라는 오래된 식민주의 관계를 극복하려는 탈식민국의 공식적인 노력은 종종 바로 그 관계를 다른 모습으로 재생산하고 고착화하는 것을 가장(disguise)하는데 그치곤 한다(Mbembe, 2011, p. 45). 마찬가지로, 탈식민화와 반-제국주의의 어휘들은 대중의 해방과 자주보다는, 권위주의 체제와 글로벌 기업들, 그리고 스스로를 상품화하는 "기업가들"의 경제·정치적 지배를 위해 활용되고 있다(Comaroff & Comaroff, 2009). 


북한의 해적판 게임 산업은 글로벌 시장 논리에 대항하는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자국의 경제가 자본주의적으로 시장화되는 것을 고양시키고 있으며, 그러한 가운데서 외국의 지배에 대한 저항은 내부적인 종속을 도모한다. 이 글은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집해 온 북한에서 판매 중인 불법복제 모바일 게임에 대해 맥락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그와 같은 현상을 탐구한다. 게임의 외부적인 특성에 대한 관찰만으로는 충분치 않았기에, 필요한 경우 소스코드의 수준에서 분석할 수 있는 리버스-엔지니어링 방법론을 활용했다. 게임 역사에서 해적 행위가 주요 연구 주제였다면 리버스-엔지니어링을 통해 어떤 방식의 해적 행위가 게임에 대해 이루어졌는지를 알 수 있는 주요 분석 방법이었을 것이지만, 아직까지 리버스-엔지니어링이 해적판 게임 연구, 나아가 보다 일반적인 게임에 대한 학문적 연구에 활용된 적은 없다4). 그러나, 앞으로 살펴보게 될 것처럼, 이 방법론은 해적 행위에 의해 게임의 바이너리에 가해진 수정과 개조에 대한 명확한 맵을 제공할 수 있으며, 이데올로기가 컴퓨터 코드상에서 어떻게 번역될 수 있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북한의 게임 역사와 현재의 게임 생태계


북한의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전자 및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다룬 것은 1960년대 초반부터였다. 북한이 최초로 생산한 디지털 컴퓨터는 1961년 국립과학원(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서 소련제 디자인을 기반으로 만든 것이었다(Hŏ, 1961). 냉전 시기에는 불가리아나 폴란드, 루마니아 등 사회주의 국가와 일본, 프랑스, 서독 등 자본주의 국가 양쪽 모두로부터 컴퓨터를 수입했다(Berthelier, 2019). 하지만 이 컴퓨터들의 용도는 경제 계획의 수립이나 과학적 연구, 또는 산업적인 활용 등에 한정되었다(Orlowski, 1985). 당시 컴퓨터에 대한 접근은 매우 엄격히 통제되었으며, 따라서 유희적 활용을 위한 여지는 거의 없었다.


북한에 최초로 소개된 게임은 범용 컴퓨터가 아니라 게임에 특화된 아케이드 장치에서 실행되는 게임이었다. 1980년 평양 호텔의 로비에 타이토의 아케이드용 〈스페이스 인베이더〉 게임기가 설치됐는데, 이는 2년 전 일본에서 들여온 것이었다. 평양 호텔처럼 이 게임도 외국방문객들만 접할 수 있었으며, 플레이하려면 100엔 동전을 투입해야 했다. 이후 남은 80년대 동안 다른 게임기는 수입되지 않았다. 


1990년에 들어오면서 바뀌는 당의 정책 그리고 일본 아케이드 게임산업의 발전상은 북한의 첫 오락실 개장으로 이어진다. 그 전부터 김일성과 김정일은 10여년 간 이어져온 생산성 하락 극복을 위해 북한 경제를 "계산기화(computerize)"할 것을 주문했는데(Kim, 1995; Kim, 1990), 그에 따라 1987년 3차 7개년 계획 때부터 북한 산업의 디지털화 계획이 수립되었다. 새로운 디지털 지식층의 육성은 과학 교육을 강조하면서 어린 세대가 컴퓨터와 친숙해져야 함을 의미했다. 따라서 김일성이 1991년 북한 최초의 오락실 개장 - 평양 만경대 지역에 700평방미터 공간에 100여대의 오락기를 갖춘 - 을 지원했던 것은 "세계의 최신 과학 트렌드에 맞춰 능숙하게 현 시대의 과학과 테크놀로지를 다룰 줄 아는 자립적이고 다재다능한 젊은 혁명 인재의 양성"(Chosŏn Ilbo, 1991)이라는 목표에서 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당이 새롭게 품기 시작한 디지털을 향한 야망이 북한에 게임이 도입된 유일한 요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락실의 게임기들 - 그 중 일부는 오늘날 평양에서도 여전히 작동 중이다 - 은 〈웨스턴건(Western Gun, Taito, 1975)〉이나 〈서브마린(Submarine, Bandai, 1978)〉 등의 1세대 게임으로, 이는 재일 한국인들로 구성된 "애국적 무역상(Patriotic traders)"이 보낸 것이었다(North Korean Central Communication Agency, 1992, p. 205). 1980년대 중반 하드웨어의 성능이 향상되고 신작 게임들이 등장하면서 일본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기 시작한 게임기들이 한국전쟁 이후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온 재일 한국인 내 조직 - ‘청년’ - 을 통해 평양에 도입되었던 것이다(Ryang, 2016). 1990년대엔 더 많은 아케이드 게임기들이 평양의 놀이공원이나 상점, 식당 등에 도입됐는데(Kyunghyang Sinmun, 1992), 게임기 외부에 적힌 제목이나 기호들은 종종 한글로 번역되어 표기됐지만, 게임 화면에서는 원래 언어가 그대로 사용됐다.


한편 북한의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게임을 개조하거나 만드는 것에 대해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북한의 주류 소프트웨어 기업으로는 조선콤퓨터센터와 평양정보센터를 들 수 있는데, 두 기업 모두 경제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산업 구축 및 산업적 활용을 위해 1990년에 세워졌다. 주요 업무로는 레이더 신호 처리 시스템, 오피스 작업, CAD 소프트웨어, 전문가 시스템, 처리 자동화 등이 있다(Department of Defense, 1996; 1995). 이러한 전략적 영역들 가운데 딱히 게임 개발 작업을 수행한 분야는 없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모두 인공지능(AI)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알렌 뉴웰이 언급했던 것처럼 "게임을 플레이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은 언제나 인공지능 분야에서 선호되는 영역"이었는데(Newell, Shaw & Simon, 1963, p. 37), 조선콤퓨터센터의 엔지니어들은 실제로 1990년대 후반 자신들의 인공지능 연구를 바탕으로 바둑 기반의 〈은별바둑(1997)〉과 한국 전통의 체스 게임(역주: 장기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반의 〈평양체스(1997)〉라는 게임 두 편을 제작했다. 이 두 게임은 여러 국제 게임 AI 컨퍼런스에서 수상했으며 남한과 일본에서 성공적으로 상업화되어 오늘날까지 판매 중에 있다5)(Nam, 2002).


* 평양정보센터가 2005년 상용화한 〈소년 장군〉 게임.

이어지는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주로 해외의 소비자를 겨냥한 게임을 개발했는데, 이는 북한의 여타 소프트웨어 산업 전략과 맞춘 것이었다. 컴퓨터가 많지 않은데다 내수 소비는 더 기대하기 어려운 북한의 상황에서 수출 시장은 외화 획득의 기회와 함께 좀 더 많은 수익을 제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시아 지역에 합작투자 연결망을 연 조선콤퓨터센터는 2002년 자사의 온라인 바둑 게임(〈My Baduk〉)을 상용화하였고, 이를 시작으로 남한의 사업가와 파트너십을 맺고 온라인 카지노(DK Lotto, DK Casino & Jupae)를 구축했다6). 포커와 슬롯머신, 블랙잭, 복권 등을 제공하는 이 카지노는 2005년 남한에서 도박 방지 입법화 관련 이슈가 불거지기 전까지 남한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다(Choe, 2004). 같은 해 평양정보센터는 싱가폴에 위치한 지사를 통해 〈소년 장군〉을 출시했는데([그림1]참조), 이 게임은 전세계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모바일용 영어 게임으로, 원작은 일본과 중국의 침략자들로부터 한국을 지키는 고려 시대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유명 만화/애니메이션 시리즈다. 2008년에 이르러 북한은 독일과 합작으로 만든 기업 노소텍(Nosotek)을 통해 플래시 및 모바일 게임을 외주 개발하기 시작한다(Williams, 2010; Campbell & Lim, 2010).


상업용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임들에는 북한의 문화 상품에서 흔히 발견되는 이데올로기적 내용이 거의 없다. 그러나 2013년부터 북한의 지원을 받는 웹 포털 〈우리민족끼리〉에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플래시 게임([그림2])이 올라오면서 북한 이데올로기의 게임화(gamification)가 시작된다. 브라우저에서 플레이 가능한 이 시리즈는 조지 W.부시와 아베 신조를 파리로 등장시킨 일종의 두더지 잡기 게임과 남한의 보수적인 이명박 대통령을 패러디한 "이명쥐" 대통령에게 펀치를 날리는 게임 등을 포함하고 있다. 한글로만 만들어진 이 게임들이 겨냥한 것은, 웹에 접속할 기회가 거의 없는 북한의 주민들이라기 보다는, 남한의 주민들 그리고 세계에 퍼져있는 한국 이주민이라 할 수 있다.


* 우리민족끼리 포털에 출시된 정치적 플래시게임들.

2010년대 들어와 북한의 휴대폰 이용자 수가 크게 증가한 가운데, 2013년부터 5.11 공장에서 중국 모델을 기반으로 한 내수용 안드로이드 휴대폰을 생산하기 시작한다(Political Reporting Team, 2013). 이러한 휴대폰은 개인용 PC보다 쉽게 구할 수 있었는데, 그에 따라 게임용 플랫폼으로서 휴대폰이 빠르게 부상한다. 모바일 게임이 대중화되고 많은 인기를 모으면서 이제는 공공연하게 게임 중독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 방송이 등장할 정도가 되었다(Zwirko, 2021). 그러나 북한의 휴대폰들이 세계 여타의 폰들과 동일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기반하고 있음에도, 북한의 모바일 게임은 인프라 구조의 한계 그리고 국가의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통제에 맞춰 독특한 생태계를 구축하게 된다.


1990년대 후반부터 DVD나 MP3 플레이어 같은 장치들이 보급되고 모든 유형의 미디어(해외의 콘텐츠 포함)를 대량으로 저렴하게 복제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북한 당국은 문화적 -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 생산에 대한 독점을 유지하면서 북한 주민들이 소비할 콘텐츠를 더욱 강력하게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한다. 전통적인 감시와 통제 방식이 빠르게 그 한계를 드러내면서 보다 기술적인 솔루션을 도입하는데, 현재 북한에 유통되는 대부분의 디지털 장치 내 OS에는 암호화 서명 기반의 시스템이 내재되어 있어 비승인 프로그램의 설치와 장치 간 미디어 파일 공유가 금지되어 있다(Schiess, 2018). 즉 북한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 설치되는 게임은 검열을 통과한 뒤 국가 기관의 암호화 서명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국가적 통제에 더해, 게임의 유통 또한 휴대폰 이용자들의 제한된 연결성에 맞춰져 있다. 북한에서 휴대폰 이용자들의 인터넷 접속은 드물지만 WiFi나 셀룰러 데이터를 통한 인트라넷 접속은 가능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인트라넷을 사용하는데 드는 비용이나 데이터 비용 등은 평균적인 소비자 입장에서 여전히 비싸며, 공공 WiFi 같은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온라인 앱 스토어 같은 일반적인 유통 경로는 솔루션이 될 수 없다. 일부 특정한 앱의 경우 인트라넷 연결을 통해 라이센스나 인-게임 아이템을 구매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하다. 그러나 그 앱들은 우선 오프라인에서 설치되어야 하며, 일단 실행되면 그 이용자는 지불 기록 증명과 이용권한 파일만 처리되는 구매 과정 - 따라서 앱 전체를 다운로드 받는 비용을 피하는 - 을 거치게 된다.


이러한 문제들 - 국가적 통제와 연결성 - 에 대한 솔루션이 제공되는 곳은 "정보기술 교류실" 또는 "정보기술 봉사"라는 이름이 붙은 물리적 상점이다. 국가로부터 승인받은 앱의 유통 및 설치에 대한 허가를 받아 운영하면서 휴대폰이나 컴퓨터 수리 같은 서비스도 제공하는 이 상점들이 바로 북한의 주요 게임 제공업자다. 상점 벽에는 신작 포스터가 붙어있으며 소비자들은 카탈로그를 통해 여러 게임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상점들은 평양 내에서는 흔히 볼 수 있으며, 그보다 드물긴 하지만 지방 도시에서도 볼 수 있다.


* 평양의 정보기술교류실(2018). 


리버스-엔지니어링 된 게임을 리버스-엔지니어링하기: 방법론


북한의 상점에서 볼 수 있는 게임들은 전세계 여느 온라인 샵들에서 볼 수 있는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판매되고 있는 게임 대다수는 〈팜빌(Farmville)〉, 〈캔디크러쉬(Candy Crush)〉, 〈앵그리버드(Angry Birds)〉 같은 해외 게임들과 매우 유사한데, 그 이유는 그 게임들이 실제로 해외의 게임들이기 때문이다. 즉 북한측이 마치 북한산 게임인 것처럼 보이도록 해외의 게임들을 번역 및 개조하고 리패키징한 것이다. 예를 들어 〈피버 포 스피드(Fever for Speed, Agame, 2017)〉의 개조판 홍보 포스터를 보면, 제목이 〈만리차경주〉로 바뀌어 있고7) 평양 컴퓨터스튜디오의 신제품인 것으로 홍보되고 있다. 또한 붉은색 공산당 스카프를 맨 어린이 캐릭터가 관객을 바라보는 모습의 배경에는 "우리의 힘, 우리의 기술, 우리의 자원"이라는 북한의 유명한 국가 슬로건이 적혀 있다. 오리지널 국산 게임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 대부분은 교육용 게임이나 전통적인 아날로그 게임들(체스나 바둑, 체커 등)의 전자식 버전에 한정되어 있다.


* 평양의 한 IT 상점에 걸려있는 〈피버 포 스피드 3D〉의 현지화된 개조판 게임 홍보 포스터.

지금부터는 이데올로기와 게임, 검열 간의 관계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평양에서 구매할 수 있는 현지화된 수입 게임 7편을 살펴볼 것이다. 북한이 접근하기 어렵기로 유명한 - 그래서 현지 작업이나 데이터 수집을 더욱 어려운 - 국가이긴 하지만, 그 유명세는 상당히 과장된 부분이 없지 않다. 앙드레 슈미트(Schmid, 2021)가 "북한 연구는 결국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언급했듯이, 남한, 중국, 러시아, 미국, 일본, 유럽에는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아카이브와 자료들이 존재한다(상당 부분 디지털화 되어 온라인상에서 무료로 접근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북한에서의 현장조사도 완전히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예를 들어 이 연구에 사용된 게임들은 여행 비자를 지닌 외국인들이라면 북한 내 어느 도시에서나 구입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하드웨어 구입은 좀 더 제한적이긴 하지만, 게임과 소프트웨어는 안드로이드 버전이 돌아가는 기기라면 어느 가게에서나 설치할 수 있다. 진짜로 어려운 일은 실제로 게임이 제작되는 과정에 대해 알아내는 것이다. 정보가 대단히 부족하고, 게임 개발사 방문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러한 개발사들이 자사의 게임 상당수가 해외에서 유래한 것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평양 같은 도시에서 게임의 소비자들과 대화하는 것은 (자주 접할 수 있기에) 어렵지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본 게임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으며 시장 진입 전에 모든 게임들은 수정/개조 작업을 거치게 되어 있다.


게임의 원본과 북한의 개조 버전을 비교함으로써 어떤 요소들이 검열되는지, 어떤 개발사들이 지워지고 수정되고 또는 강조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인데, 이 글에서는 보다 알아채기 쉬운 외양상의 변화들부터 시작해서 게임 내 소스코드에 보다 깊숙이 내재된 수정/변화상을 살펴볼 것이다.


원본과 현지화 버전을 나란히 실행시키면서 화면상에서 나타나는 변화들을 확인하면, 게임 에셋이나 번역 또는 게임의 흐름 상의 변화들을 표면적으로 비교해볼 수 있다. 그러나 나름의 가치있는 통찰을 제공할 수 있음에도, 이 방법은 두 게임 간 차이를 부분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개조 버전의 어떤 속성이 (연구자가) 재현할 수 없는 특정한 조건 - 예컨대 북한의 인트라넷에 연결되어야 한다든가 - 에서만 활성화된다면, 그러한 부분은 간과되기 쉬울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림5]는 광흥 스튜디오가 만든 게임의 디컴파일 자바소스 코드의 조각들인데, 이는 게임의 이용권한 및 인-게임 아이템의 온라인 구매에 관한 것이자 통합권한관리 라이브러리다. 그러나 (북한의) 게임들은 그러한 속성의 일부만 사용하거나 또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즉 코드를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게임의 권한체크 과정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북한의 게임들은 결제를 위해 인트라넷과 QR코드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에 더해 우리는 권한관리 라이브러리가 원본 게임 위에 덧입혀진 북한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코딩 스타일 상의 차이나 패키지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다), 소프트웨어 프로텍션과 결제 모듈 같은 것들이 일반적임(새 게임을 쉽게 추가할 수 있도록 재사용 라이브러리가 생성되므로)을 알 수 있다. 또한 여기에 활용된 이용권 프로텍션의 수준이나 강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게임 내 모든 단어가 한글로 굉장히 주의 깊게 번역된 것과는 달리, 변수나 함수, 클라이언트 서버 메시지 등의 이름을 짓는 데는 영어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 이용권한 라이브러리의 코드 조각들. 이 앱은 해당 사이트 이용자의 남은 "포인트"를 확인하고 게임이나 인-게임 아이템 구매를 위해 http를 경유하여 인트라넷에 연결해준다.

따라서 스크린상에 보이는 것만으로는 어떤 개조가 있었는지, 그 내부의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다. "워크스루 방법론"(Light, Burgess & Duguay, 2016) 같은 기존의 분석 방법론은 바로 그와 같은 한계를 지닌다. 코드 기반 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유물(relic)들 - 미사용된 속성이나 기능 또는 애셋들, 개발자 코멘트 등 - 뿐만 아니라 "후드 아래(under the hood)"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호하게 남겨둔 채 "앱의 스크린이나 속성 그리고 활동의 흐름"만을 기록하는데 그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유저 인터페이스를 중심으로 앱을 분석함으로써 분석자가 놓칠 수 있는 사항들 - 예컨대 특정 속성을 활성화할 수 있는 조건이 맞지 않았던 것인지 여부 같은 - 을 확인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비디오게임이라는 기술적 인공물의 "블랙박스"를 제대로 들여다보려면 소스 코드와 대면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북한 게임 개발사들이 원본 게임의 원 바이너리를 활용하기 위해 사용했던 것과 동일한 디지털 포렌식 및 리버스-엔지니어링 기술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게임은 컴파일된 실행파일로서 유통되는데, 다시 말해 원본의 소스 코드가 기계어로 번역되어 데이터 파일이 포함된 애플리케이션 패키지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기계어는 비트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어 인간 관찰자가 해석하기 어려운데, 이를 보다 인간 친화적인 프로그래밍 언어로 원본의 소스 코드를 바꾸어주는 툴이 여럿 있다. 디컴파일러는 원본 개발자가 썼던 본래의 코드에 가깝게 실행 파일들을 추출하는 것을 가능케 해 준다. 하지만 모든 프로그래밍 언어가 쉽게 디컴파일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보다 낮은 수준의 어셈블리 언어로 기계어를 좀 더 쉽게 해독해주는 역어셈블러를 사용해야 할 때도 있다. 북한에서도 게임 제작은 자바 프로그래밍언어로 코딩된 안드로이드 응용프로그램 패키지(APK), 유니티 게임 엔진으로 개발된 게임을 위한 라이브러리, 원래 C나 C++로 쓰여진 네이티브 코드 라이브러리 등 여느 모바일 게임들과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Shim et al. 2018).


각 게임에 대한 분석을 위해 우선 압축 유틸리티를 사용해서 각 게임의 실행 파일, 라이브러리 파일, 에셋 파일을 애플리케이션 패키지로부터 추출했다. .obb나 .assetbundle 등 다른 파일 포맷으로 저장된 에셋인 경우 DevX의 유니티 언패커 툴을 사용했다. 그러고 나서 에셋들을 살펴보았는데, 이는 원본과 현지화된 게임을 종합적으로 비교하기 위해서다. 어떤 경우 애플리케이션 내 제거되거나 교체된 에셋 파일이 나오기도 했는데, 그럴 땐 Java와 C# 코드용 디컴파일러를 써서(각각 Jad-X와 ndSPY) 코드에 접근했다. 디컴파일이 불가한 네이티브 코드 라이브러리는 NSA가 개발한 리버스-엔지니어링 툴인 기드라(Ghidra)를 사용해서 역어셈블 작업을 수행했다. 이 연구에서 수행한 분석 방법은 실제로 실행하지 않고도 애플리케이션을 제어하고 데이터 플로우를 재구축할 수 있는 정적 분석(static analysis)인데, 이는 특정한 실행 환경에 구애받지 않으면서도 프로그램의 모든 기능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가능한 분석방법이다. 애플리케이션의 엔트리 포인트를 추적하고 나서는 "후드 아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게임이 로딩되면서 코드 상의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확인하면서 코드의 로직을 따랐다. 기술적으로 원본과 현지화 버전 간의 차이를 확인하는 과정을 부분적으로 자동화하는 것도 가능했겠지만,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상당한 차이 및 작은 코드 뭉치들의 구조적인 변경으로 인해 기존의 솔루션에 의존하거나 새로운 실용적 솔루션을 개발해야 했다. 또한 사용자 인증 모듈 같이 관심이 있는 특정 속성들을 설치하고 디컴파일 및 역어셈블된 코드로부터 그 로직을 재구축하였다8). 정적 분석을 통해 비활성화되거나 활성화가 요구되는 흥미로운 속성들이 발견되었을 때는 일시적으로 그 실행파일들을 수정하여 최종 이용자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확인하였다.  



연구 결과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이 5개 카테고리로 구분했다: "재전유" 카테고리에서는 용어 그대로 법적 소유권 및 저작권 표기가 어떤 식으로 바뀌었는지 살펴본 결과이고, "현지화"와 "이데올로기적 각색" 카테고리는 모두 게임의 외양을 해독하고 원본과 현지 버전의 애셋을 비교한 결과인데, 두 카테고리가 가끔 교차되는 지점이 없진 않지만, "현지화" 카테고리는 좀 더 문화적 번역에, "이데올로기적 각색"은 게임 내에 변형(transformation)되거나 추가 혹은 제거된 이데올로기적 콘텐츠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액결제"와 "게임 이용권한 및 프로텍션 모듈"은 대부분 디컴파일된 코드에 대한 해석으로, 이는 게임 바이너리에 새로운 결제 방식이 삽입된 방식을 분석하기 위한 것이다. 



재전유: 

북한 게임을 실행할 때 가장 먼저 화면에 뜨는 것은 북한의 컴퓨터 소프트웨어법에 따른 저작권 보호 메시지와 게임에 대한 크레딧을 소유한 개발사의 이름이다. 유저 인터페이스 상의 원본 게임 개발사나 퍼블리셔를 지칭하는 모든 언급은 전부 지워져 있지만, 바이너리상에는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요소들이 남아있어 원래 타이틀을 확인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원본 게임 개발사에 문의해보니 자사의 게임이 북한에서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업체는 하나도 없었다. 



현지화: 

북한에서는 유럽, 미국, 러시아, 호주, 남한 등 세계 여러 나라의 게임들이 출신이 모호한 상태로 유통되고 있다(중국산 게임 또한 있을 수 있겠지만 이번 연구에선 확인되지 않았다). 영어만 사용한 게임은 한국어로 번역되었고, 한글 제공 게임일지라도 남한식 철자법과 표현, 폰트를 사용한 경우 번역을 거쳤다. 남한의 언어는 영어에서 차용한 단어가 많아 북한 이용자들에게 낯설기 때문이다. 텍스트 말고도 과도하게 외래적이라 여겨지는 것들도 바뀌었다. 예를 들어 페더웨이트 게임즈(Featherweight Games)의 〈로데오 스탬피드(Rodeo Stampede, 2016)〉는 "할로윈이나 크리스마스, 구정 등의 시즌에 맞춘 음악뿐 아니라 서부 아프리카와 라틴, 네팔 등지의 분위기가 섞인" 사운드 트랙을 제공하는데, 현지화 버전인 〈날으는 동물원(Pyongyang Morning Star Technical Development Center, 2018)〉에서는(역주: 원문에서는 〈Flying Zoo〉로 나와있으며 실제 북한에서 사용하는 한글 제목은 확인불가) 북한의 유명한 연주곡으로 바꾸었다. 이러한 수정은 단순히 소비자 취향에 맞춘 것이 아니라, 국가적으로 "국가 혁명에 이바지하고 인민의 사고와 감정에 맞춘" 음악을 선호하는 공식 정책에 따른 것이다(Kim, 1991, p. 19).


원본과 현지화 버전 간 스프라이트 시트(sprite sheets) 비교는 [그림 6-1]과 [그림 6-2]를 통해 〈게임 오브 워리어즈(Game of Warriors, G-Station Studio, 2016; Kwanghung, 2018)〉 내 다양한 요소들의 다양한 수정과 변형 사례를 제시해보았다. 캐릭터 머리는 좀 더 아시아적인 얼굴의 2D 그래픽으로 바뀌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한국의 전통적인 장비를 쓰고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여기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캐릭터 중에는 한국의 전통 군사복을 입은 경우도 있었다). 바뀐 의상과 그림체는 북한의 SEK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만든 고려 시대 배경의 〈소년 장군〉 같은 인기 역사 만화/애니메이션과 유사하다. 영어 원본에는 "invading forces"로 표기된 적은 한국어 "오랑캐"로 바뀌었는데, 이는 역사적으로 한반도의 침략자였던 만주족을 멸시할 때 사용하는 명칭이다.


이처럼 의상의 변형을 통해 게임을 한국의 역사 내 재배치시키는 가운데, 이는 다른 한편으로 콘텐츠의 노골성에 대한 점잖은 정도(modesty)과 민감도(sensitivity)의 상이한 기준을 보여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원작 게임에서 말을 타고 등장하는 붉은 머리의 바바리안 캐릭터의 드러난 맨살은 북한 버전에서 어두운 푸른색 셔츠로 덮였다. 이와 같은 커버업은 학교에서 배우고 주변에서 강제되는 행동 규칙인 "사회주의 도덕"에 맞춘 것이다. 이러한 도덕은 북한인들이 지녀야 할 매너나 예의범절 그리고 적절한 복장 등을 규율하는데, 북한에서는 군인, 나아가 남성들이 팔꿈치 윗부분이나 무릎 아래를 노출하는 것이 올바르지 못한 복장으로 여겨진다. 게임에서 졌을 때 나타나는 해골 스프라이트의 경우 북한판에서는 두개골이 두 개의 칼 뒤에 숨겨지고 해골의 팔은 지워지는 등 덜 적나라하게 표현된 것을 알 수 있다. (레드 몬스터의 두드러지는 이빨이나 뿔 달린 헬멧 등의) 다른 요소들과 더불어 (바바리안 캐릭터의 벨트와 오른쪽 위에 위치한 헬멧 같은) 다른 곳에 나타난 두개골 또한 제거되거나 수정되었는데, 이는 그러한 모티브들이 일부 이용자들에게 부적절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으로 보인다. 


* 〈게임 오브 워리어즈〉 스프라이트의 원본 버전(왼쪽)과 현지화 버전(오른쪽).   


이데올로기적 각색:


지금까지 살펴본 현지화 양상은 대개 게임을 현지 문화 등에 맞추는 것에 초점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그와 같은 문화적 측면에는 언제나 정치적 차원이 동반되어 있다. 예를 들어 남한의 것들이 체계적으로 누락되고 북한의 언어로 재번역되는 이유는 단순히 상호이해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외래어를 다수 차용한 남한의 언어가 북한의 언어에 비해 열등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한 남한의 외래어 남용이 언어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외래 권력에 복종하는 것임을 반영한다는 것이다(Chong, 2019). 


뿐만 아니라, 남한의 경우 영어 원어를 말 그대로 번역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북한의 번역은 훨씬 더 주의 깊게 콘텐츠에 접근한다. 예를 들어 〈게임 오브 워리어즈〉에서 플레이어는 팽창주의 정복자의 역할을 맡아 적의 도시를 "정복"한 후 그것을 "식민지"로 바꾼다[그림 7]. 남한은 역사적으로 식민지 문제에 민감함에도 불구하고 "식민지"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판에서 정복된 도시들은 해방된 마을과 성으로 표현된다. 원본에서 깃발의 문장들은 정복된 적 도시를 표현하지만 북한판에서 이는 "해방"과 "강점"으로 대체되는데, 이 두 용어는 직접적으로 한국의 (일제)강점기와 북한의 전(前)지도자 김일성에 의한 해방을 의미한다. 북한식으로 현지화된 이 게임은 한국의 고대 역사를 참조한 동시에, 원본의 정복과 팽창의 로직을 북한의 역사 기술에 있어 가장 많이 반복되어온 - 외래 침략자들로부터 한국의 해방이라는 - 내러티브로 재구성되었다.    

 

* 원본 〈게임 오브 워리어즈〉의 도시 정복 튜토리얼 화면(왼쪽)과 북한판 화면(오른쪽). 북한판에서는 "마을 해방 --- 마을을 해방하였습니다. 더 많은 자원을 얻으려면 성을 갱신하십시오"라고 쓰여있다. 

몇몇 수정사항들이 북한의 민족주의나 주체사상을 반영하거나 강화한다면, 다른 것들은 문제가 될 수 있는 상징들을 중화(neutralize)시킨다. 북한판 게임에서 다양한 형태의 돈(지폐, 동전, 보물 등)이 변형되는 방식은 이러한 점을 잘 보여준다. 그림의 검 양쪽으로 쌓여있는 달러가 그려진 골드 코인은 북한판 그림에서 완전히 사라져 있으며, 게임 내에서 달러 코인은 금색 별로 대체되었다. 시리어슬리(Seriously)의 게임 〈베스트 프렌즈(Best Friends, 2014)〉의 북한 버전인 〈멍청한 달팽이(Kwanghung, 2018)〉의 경우(역주: 원문에는 〈Stupid Snail〉이라 표기되어있으며 실제 북한에서의 한글판 제목은 확인불가) 원본 게임에서 주류 통화로 사용되는 골드바(gold bar)가 노란 보석으로 대체되었다. 한편 〈시티 아일랜드 2(City Island 2, Sparkling Society, 2014)〉의 북한 버전의 경우, 골드바는 남았지만 게임 내 통화를 상징하는 미국 달러처럼 생긴 초록 지폐는 "유희 점수"를 의미하는 회색 종이로 대체되었다. 〈날으는 동물원〉의 경우 원본에서 Z에 두 개의 세로로 된 선이 관통한 모양의 코인이 북한판에서 삭제되었다. 이처럼 인-게임 통화의 재현 형태에 대해 일관된 처리 방식은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북한 개발자들의 지속적인 수정과 변형 작업은 그것들이 의미하는 바 - 부와 돈 - 가 문제점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변형된 코인, 골드바, 지폐 등은 화폐로서의 기능을 유지했지만, 역설적이게도 돈의 단위로서 자신들의 기능은 빼앗긴 것이다.   


이처럼 통화 상징들이 중화된 가운데, 목표가 수익의 극대화에 있는 게임들은 그 로직을 유지했다. 〈날으는 동물원〉에서 게임의 목표는 여전히 희귀 동물을 포획해서 주인공의 동물원을 발전시키고 보다 많은 관객들을 유입시킴으로써 수입을 증대시키는 것에 있으며, 〈시티 아일랜드 2〉의 경우 요령 있는 부동산 투자를 통한 수익의 극대화를 추구한다. 



소액결제:


이처럼 돈에 대한 재현을 순화시키려는 노력은 북한판 게임의 인-게임 통화가 실제 돈으로 구매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매우 역설적이다. 현지화된 게임에서 원본 게임에 딸린 광고나 구글 플레이 같은 결제 플랫폼 링크는 제거되는데, 여기서 인-앱 결제 방식은 제거되지 않고 남은 채 북한의 인프라에 맞도록 변형된다. 즉 북한 게임 산업의 행위자들에게 그 수익이 재배치되도록 수정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과정은 한눈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게임의 소스코드를 확인하면 새로운 소액결제 시스템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게 되어있는지 알 수 있다.


대개 게임의 소액결제 시스템은 시리얼 넘버 시스템이나 암호화 키 파일을 통해 오프라인에서 작동한다. 아이템 구매는 해당 아이템을 해제할 수 있는 시리얼 넘버와 게임에서 생성되어 - 오프라인 상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 텍스트 키나 QR코드를 교환함으로써 이루어진다. 텍스트 키 또는 QR 코드는 암호화 해시 함수(cryptographic hash function)를 이용자의 기기(모바일기기식별코드나 시간, OS 빌드의 식별자 등)의 다양한 식별자에 적용함으로써 생성된다. 이는 이용자들이 동일한 시리얼 넘버로 여러 기기에서 아이템을 해제하는 것을 방지해주며, 무엇보다도 시리얼 넘버를 제3자에게 증여하거나 재판매하는 것을 막는다. 따라서 이 시스템은 최종 이용자가 자신이 구매한 것에 대해 소유권을 취득하는 것을 제한함으로써 (물리적 앱 상점이) 상품의 유통권 독점을 확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또한, 2차 시장을 통한 이용자 간의 수평적인 흐름이 아닌, 이용자로부터 유통사와 개발사로 흐르는 수익의 흐름에 대한 소유권을 확고히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광흥 스튜디오가 유통 중인 게임에 대한 리버스 엔지니어링 작업을 통해, 이용자의 기기가 국가의 인트라넷에 연결되어 있을 경우 온라인 소액결제가 일부 게임에서 가능함을 확인했다. 결제는, 전자식 지불카드가 아니라, 이용자 계좌와 게임이 개발사의 인트라넷 사이트상에서 연결되어 구매한 사람의 계좌에서 포인트가 차감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짐작컨데 계좌상의 포인트는 전자식 결제로 또는 더욱 높은 확률로 오프라인 상점에서 현금으로 구매하게 되어있을 것이다. 오프라인에서의 구매와 마찬가지로, 공유나 재판매를 방지하기 위해 이용자의 계좌가 기기 고유의 식별자와 묶여있는 것이다.  

 


게임 이용권한 및 프로텍션 모듈:


게임 내 소액결제 시스템과 더불어, 게임 그 자체의 결제도 오프라인 IT 상점에서 구매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무단 복제와 유통을 방지하기 위해 게임들은 강력한 암호화 방식(4096 bits RSA)으로 보안된 라이선스 키 파일에 의존하고 있으며, 라이선스 시스템은 종종 (사용권 파일 체크를 우회하기 위한 리버스 엔지니어링이나 바이너리 수정을 방지하는) 파일 무결성 검사나 (디컴파일 또는 디어셈블된 소스 코드를 해독 불가하게 만들어 바이너리에 대한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방지하는) 코드 난독화 같은 소프트웨어 프로텍션 방식을 이용해서 추가적인 보안을 하기도 한다.  


게임 프로텍션 모듈의 환경설정이나 강도는 개발사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전부 불법복제를 방지하기 위해 고도화된 방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 국가가 승인한 스튜디오에 의한 해외 게임의 불법복제 뿐 아니라 - 스튜디오가 만든 현지화된 불법복제 게임에 대한 무단 불법복제가 그처럼 고도의 방지책을 사용해야 할 정도로 만연한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북한 게임의 결제 및 라이선스 시스템 내에서, 물리적 앱 상점은 게임 개발자와 이용자가 상호작용하는 플랫폼으로서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이와 같은 경제적 중간층(economic middle layer)는 흥미롭게도 디지털 앱 스토어와 비슷하게 - 생태계를 둘러싸는 울타리 쳐진 정원(walled garden)이나 유저 락-인(lock-in) 테크닉, 독점 유지, 그리고 게이트 키핑 전략을 통한 콘텐츠와 자본의 흐름 통제 등의 - "플랫폼 자본주의"(Srnicek, 2017)적 특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게임 개발사나 앱 상점들이 이용자 데이터 수집 및 게임을 통한 수익 창출을 하지 않고 인-앱 구매가 유일한 수익 원천이라는 점은 플랫폼 자본주의와 다른 부분이다. 디지털 기기들이 여전히 거대한 규모로 데이터를 수집하지만, 이는 전부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저작권, 감시, 그리고 소비   


북한의 게임산업은 저작권에 대해 상반된 두 가지 태도를 보여준다. 여러 국제 저작권 조약에 가입했고 세계 지식재산권 기구의 오랜 멤버였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게임 개발사들은 해외 게임의 저작권을 무시하면서 리버스-엔지니어링을 수행하고 게임을 개조하면서 현지 시장에서 재판매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소비자에게는 자사의 게임들이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받고 있음을 명확히 밝히는 한편, 불법복제를 방지하고 지적 재산을 수익화하기 위한 복잡한 테크닉을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중성이 게임 산업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50여년 간의 북한 법학 학술저널과 경제학 저널을 살펴보면 지적 재산에 대한 경제적, 법적 담론들이 넘쳐난다9).


북한의 학자들은 저작권 보호가 보다 빈곤하고 기술적 발전이 떨어지는 국가들을 희생시켜 선진국의 부를 불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불공정한 행위라고 오랫동안 주장해왔다(Hwang, 2017). 예를 들어 1980년대 말 남한이 국제 저작권 규제를 따르기로 한 결정은 "미 제국주의"가 남한의 "괴뢰 정권"을 통해 강제한 또 하나의 강탈 책략이라는 비판을 받았다(Chon, 1988, p. 82). 어떤 경제학자는 저작권, 특허, 지적 재산 연관 법률에 대해 "제2의 인클로저 운동"이라고 기술했는데, 자본주의 국가들에 의해 그것들이 지속적으로 "오용"되고 있다는 것이다(An, 2005, pp. 139-140). 국제 저작권법 또한 강국들이 자국의 규율을 독립적인 해외 영토에 강제하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국가의 주권을 위협한다며 비판한다(Chon, 1998; Chong, 2004; Lee, 2013).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저작권과 지적 재산에 대해 훨씬 긍정적인 평가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지식 경제의 구축"과 보다 체계적인 입법의 추구가 필수라는 것이다(Kim, 2014). 이러한 변화는 저작권을 인정한 1998년의 개헌, 2001년 북한의 첫 저작권 법 및 2003년의 컴퓨터 소프트웨어 보호법 추인과 더불어 진행되었다. 같은 해 북한은 베른 협약에 가입하기도 했다. 저작권 보호를 향한 이와 같은 갑작스러운 입법상 변화는, 일반적으로 1990년대 국가 경제의 붕괴를 경험한 뒤 재산권에 대한 법적 정의가 개정되면서 진행된 것이자 남한과 북한간 상호 화해를 추구하는 소위 햇볕 정책과 함께 강화된 것으로 생각된다(Shin, 2005). 이와 같은 새로운 접근은 북한 문화상품의 남한 내 상품화 증대 및 그에 따른 로열티 수익 증대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2005년에는 북한의 소설을 출판한 남한의 출판사가 로열티 미지급으로 저작권 소유자들에게 피소되기도 했다(Lee, 2005). 


하지만 이와 같은 두 개의 입장에 있어, 특히 국가적 이익과 주권을 우선시하는 북한의 이데올로기적 입장에서 볼 때, 근본적인 모순은 없다. 북한 경제학자들과 법학자들은 지적재산권 법을 "입법적 식민화"라고 보았던 리처드 스톨만(Richard Stallman)의 주장(Stallman, 2006, p. 335)을 반복했으며, 그러한 비판은 부유한 국가들이 상대적으로 덜 부유한 국가들에 대해 저작권을 행사하는 것을 겨냥한 것이었다. 따라서 북한은 그러한 비판의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 반대로, 보다 선진화된 자본주의 국가들에 대해서는 북한의 권리 소유자들이 해외에서의 저작권을 주장하면서 국가적 이익을 수호하고 있다. 


보다 주목할만한 부분은 북한의 - 국외에서보다 - 국내에서의 저작권 활용 양상이다. 선진국의 저작권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국의 저작권 권리를 해외에서 추구하는 것은, 경제 및 문화적 제국주의를 향한 저항이나 반항으로서 볼 여지가 없지 않다. 하지만 북한 내 저작권 적용에 대해서는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없다. 북한의 국내 저작권 시행은, 창작자에 대한 보상이라기 보다는, 통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2003년 컴퓨터 소프트웨어 보호법 통과는 국내외의 모든 소프트웨어를 국가 기관 - 중앙 소프트웨어산업 지도 기관 - 에 등록하는 것이 소프트웨어의 "과학성, 객관성, 적시성(timeliness)"을 확보하는 것이자 개발자의 저작권에 대한 권리를 보증하기 위한 전제조건임을 규정한 것이었다. 이러한 등록 과정은 해당 소프트웨어의 오리지널리티와 보안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제시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앙의 국가 조직이 효과적으로 소프트웨어의 유통을 통제하고 "국가의 방식과 관습에 어긋나는" 것으로 보이는 모든 작업물을 검열할 수 있는(Computer Software Protection Law, 2003, p. 6) 권력을 부여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저작권은 소프트웨어의 흐름을 감시하고 파일 공유를 방지하는데 사용되는 암호화 서명 체계를 뒷받침하는 법·제도적 장치가 되는 셈이다. 지적 재산의 보호가 대량 감시 및 디지털 기기를 통해 국가가 승인한 것 외 다른 콘텐츠에 접근하는 것을 방지하는 시스템을 위한 근거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북한의 저작권은 노동 가치로부터 가격이 결정되는 경제 체제 하에서 인-게임 소액결제가 지닌 자본주의적 로직을 정당화하고 있다. 디지털 상품은 한계 생산 비용이 없기 때문에, 소프트웨어와 게임은 언제나 북한 경제학자들에게 문제적으로 인식되어왔다(Lee, 1998). 하지만 소프트웨어를 고정된 노동량과 연결시키는데 있어서의 그 어려움은 역으로 훨씬 유연한 가격 모델을 가능케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게임의 경우 이를 통해 소액 결제 기반의 수익화 시스템이 번성할 수 있었다. 이 수익화 시스템은 현지화 과정에서 이데올로기적으로 문제가 있는 대상으로서 제거되는 대신, 북한 시장에 맞게 각색되었다. 이러한 측면은 북한의 문화적 환경 내에서 게임이 독특해지는 지점인데, 게임이 이용자를 (현지화된 특성이나 이데올로기적 표현을 통해) 시민으로서 호명하면서 동시에 소비자로서도 호명하기 때문이다.


소비(consumerism)가 사회주의 경제 체제에서 완전히 생소한 것은 아니지만(Betts, 2014; Gerth, 2020), 중앙 계획식 생산 및 사치나 불필요한 지출에 대한 멸시, 계층적 구별이 없는 세상에 대한 이상, 소비상품의 부족 등은 사회주의 내에서 소비를 드문 현상으로 만들었다(Stitzel, 2005; Tsipursky, 2016). 특히 북한의 경우 소비상품은 인민의 실질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것으로, 수익 창출을 위해 "인공적으로 구매 욕구를 촉진"하는 시도는 "물질적 문화의 삶을 망치는" 자본주의적 행태라는 비판을 받았다(Kim, 2015, p. 32). 소비는,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목적이 있는 행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학자 문청완은 소니(Sony) 등 자본주의 기업이 컴퓨터나 게임을 생산하는 것을 그 상품의 "실제적인 쓸모"와는 무관한 생산이라 보았다. 북한이었다면 동일한 상품(컴퓨터)이 교육이나 생산적인 활동을 관리한다는 목적을 표명하며 기획되었을 것이다(Mun, 2009). 이러한 형태의 소비를 보여주는 흔적들은 북한의 역사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Schmid, 2017), 예를 들어 국가 선전 포스터, 잡지, 상점 등은 상품과 소유의 미학을 활용하면서 소비자들의 시각적 즐거움을 위해 상품을 꾸미고 전시하였다10). 이러한 형태의 소비는 일상적이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국가의 사회주의식 생산 방식이 성취한 물질적 풍요를 보여주는데 활용되고 있다(Dobrenko, 2007, p. 282). 의심스러운 소비 또한 - 비공식적으로나마 - 흔했고, 희귀하거나 비싼 소비 상품들이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이 되는 다양한 사례들을 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Choi, 1991).


하지만 이상의 기존 소비 양상과 게임의 소액결제 모델은 상당히 다르다. 주지하다시피 인-게임 구매는 지속적인 소비 패턴을 도모하고 플랫폼 자본주의의 지대 추구 시장을 유지하도록 진화해왔다(Nieborg, 2015; Almaguer, 2018; Joseph, 2021). 소액 결제 시스템의 이와 같은 수익 극대화 로직은 북한에서도 그대로 작동하고 있는데, "타임 랩스"나 잠긴 레벨, 구매해야 하는 보너스 등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유료화 장벽을 북한의 플레이어들이 돈을 써서 우회하는 방식이 장려되고 있다(Burroghs, 2014). 자본주의 세계의 플랫폼이 북한 소프트웨어 산업 중앙 지도 기관의 독점적 오프라인 플랫폼으로 대체되었을 뿐인 것이다. 


기존의 소비 양식은 언제나 물리적 자원의 결핍/부족이라는 현실 그리고 계획 경제를 통한 물질적 풍요와 공정한 배분에의 약속 사이에서 협상해야 했다. 그러나 소액결제에서는 결핍/부족이 적용되지 않는다. 추가적인 저장소나 연산 작용 없는 아이템의 무한 증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이템들은 또한 이미 원본 게임에 코딩되어 있고, 해적판에서는 추가적인 개발이나 디자인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는 이용자의 구매가 현지화 된 지불 시스템을 만든 노동에만 지불됨을 의미한다. 지불할 권리에다 지불하는 셈이다. 따라서 게임에 엮인 소비 형태는 목적이 있는 소비나 게임 개발에 투입된 노동으로부터 분리된다. 대신 그것이 초점을 맞추는 것은 재정적 수익의 추출이다.


북한의 불법복제를 통한 해외 게임의 현지화는, 지정학적,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는 작고 빈곤한 후기-식민 국가의 관점에서 볼 때, 해외로부터의 영향을 제한하고 불공정한 지적 재산 규제에 저항하는 시도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수익화에 기반한 소액결제가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은, 게임이 북한이 국가적으로 주장해온 가치에 반하는 소비주의적인 수익 추구 행위를 도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북한과 같이 폐쇄적인 사회주의 국가 내에서 이러한 행위의 발생은 일종의 해방 신호로서 환영할만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수익화를 추구하는 게임의 부상이란 그 이용자와 생산자가 소련의 2차 경제를 연상시키는 "비사회주의적" 행위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 주체성의 증대를 보여주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루딕(ludic) 경제는 전복과는 거리가 멀다. 그 경제 체계가 단일한 주체에 의해 엄격한 감시 시스템 하에서 국가의 수익을 극대화하는데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북한 당국이 지적 재산 체제 및 그와 연관되는 수익화 시스템을 빠르게 수용해서 활용하는 양상을 보면, 그것이 대량 감시와 소비자 착취와 엮여있음을 알 수 있다.  


수익 극대화, 자본 축적, 독점 등의 자본주의 경제 논리를 고스란히 반영한 메카닉을 지닌 채 기존의 수익화 시스템과 통합된 게임의 북한 내 인기는, 나아가 놀이(ludicity)의 문화적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속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자유화된 시장의 경쟁적 속성에서부터 로빈후드(Robinhood)앱에서 나타난 게미피케이션화된 주식과 옵션 거래, 그리고 암호화폐 기반의 P2E 게임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인 게임과 탈중앙화된 금융 간의 혼합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이미 게임과 유사한 자본주의의 속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Giddings and Harvey, 2018). 그렇다면 그러한 게임에 대한 북한 이용자들의 열정은 자본주의에 내재된 놀이적인(ludic) 속성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본주의의 게미피케이션이 그러한 것을 - 북한의 검열 체계 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그 이데올로기적 속성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 좀 더 보편화하고 있는 것일까.



1) 2019년과 2020년에 평양에서 6군데 IT 상점에서 접했던 소프트웨어 카탈로그들을 비공식적으로 살펴본 것에 기반한 판단이다. 알렉 시글리의 기사(Sigley, 2019)를 참조할 것.  
2) 여기서 사용한 사회주의 경제체제라는 용어는, 상품의 가격이 민간 주체에 의해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간 평등을 표명하는 정치적 목표에 맞춰 (그러나 그러한 목표가 실현되거나 실질적으로 추구될 필요는 없는) 중앙 계획 당국에 의해서 가격이 결정되는 체제를 가리킨다. 여기서는 북한이나 소련, 중국을 위시한 여러 사회주의 국가들이 시행했던 사회주의 경제 체제가 마르크스 등 여러 학자들이 말했던 사회주의를 제대로 실현한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나 생산 수단의 소유(및 국가가 노동자의 대리로서 생산 수단을 소유하는 것 등)에 대한 문제 등은 논외로 배제한다. 또한 공산주의라는 용어는, 사회주의 국가 내의 특정 조직이나 기관에서 사용한 경우(예컨대 공산당이라든가 청년 공산당 조직 등)를 제외하고 사용하지 않았다. 사회주의에 대해 널리 퍼져 있는 대중적인 정의는 여러 사회주의 국가들이 중앙 계획 경제체제를 운영하는데 있어 나타나는 다양한 차이라든지 여러 문화적 요인들이 사회주의라는 개념에 대해 끼친 영향 같은 것 등 다양한 입장들을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한다. 나아가 각 국의 경제체제가 거쳐온 역사적 변화과정에 대해서도 충분한 설명력을 지니지 못한데, 예컨대 김정은의 경제 정책은 조부인 김일성 시대의 정책과 상이하며, 둘 다 상이한 시점에 상이한 정책을 펼쳤다. 이러한 이유로, 국가 주권이나 소비, 사적 소유 등과 관련해서 북한 사회주의의 특성을 논할 때는 부가적으로 역사적 맥락과 사례를 제공할 것이다. 
3) 니콜은 조영찬(Cho, 2016)의 논의를 빌어 남한에 비디오게임 및 야구가 유입된 것이 일본과 미국의 "신식민주의"에 따른 결과라고 기술한다. 문화 제국주의적인 요소(Mohammadi, 1995)들과 미국과 일본의 기업들이 점령하다시피한 국내외 게임 시장을 통해 들어온 전(前)지배세력이자 경제적 제국주의 국가(즉 미국과 일본)의 게임들에 담긴 가치나 상징, 미학적 요소들이 결합되어있다는 것이다. 니콜은 나아가 불법복제로부터 성장한 한국의 게임산업이 국가적 - 그리고 민족주의적 - 상징으로 게임을 재전유함으로써 그 과정을 전복시키면서도 그러한 과정에 여전히 참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4) 한편 리버스-엔지니어링 분석은 학계 외의 게임 보존가들 사이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다. 
5) https://www.silverstar.co.jp/
6) 해당 게임의 웹사이트는 www.mybaduk.com, www.dklotto.com, www.dkcasino.com, www.jupae.com을 통해 호스팅되었으며 지금도 the Internet Archive에서 접할 수 있다. 
7) '리'란 동아시아권에서 400미터 정도되는 거리를 지칭하는 전통 단위다. 
8) 사용된 방법론이나 툴에 대한 정보를 더 알고 싶다면, 다음의 링크를 통해 리버스-엔지니어링된 북한 게임들의 소스 코드 변경사항과 암호화 방식을 살펴볼 것: https://digitalnk.com/blog/2019/04/21/reverse-engineering-a-north-korean-sim-city-game/
9) 여기에 해당하는 저널로는 〈경제연구〉, 〈정치법률연구〉, 〈김일성 종합 대학 학보〉가 있다. 
10) 예를 들어 1970년대에 북한이 발행한 〈Korea Today〉 잡지(nos. 914(1972), 201(1973), 203(1973), 12(1974) 등)에 실린 백화점이나 산업박람회, 농산물박람회 사진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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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연구자)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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