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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오락, 게이머, 인터페이스의 공진화

02

GG Vol. 

21. 8. 10.

* 이 글은 2019년 8월 한국언론정보학회에 게재된 “조이스틱-아케이드 게임 문화의 생산자”를 보완하여 재구성하였습니다.


레트로 게임으로서의 전자오락기 


레트로 게임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오래된 고전 게임을 말한다. 최근 레트로 게임 열풍이 불면서 과거 전자오락의 모습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게 되었다. 1970년대 등장해 엄청난 인기를 끈 이후로 현재까지 이어지는 전자오락은 최초의 디지털 대중문화라는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학계에서는) 잊힌 미디어에 가깝다. 그 이유는 아마도 전자오락이 대중들의 문화이고, 특히 그 대중들이 아동이나 청소년 중심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일 것이다. 청년문화이자, 대중들의 하위문화로 여겨진 전자오락 문화는 언제나 일탈과 저항의 관점에서 얼마나 파괴적이고 반사회적인 영향을 청소년에게 미치는가에 주된 관심이 있어왔지만, 전자오락은 ‘1990년대부터 디지털 게임에 흡수되고 대체되면서 소멸했다’는 관점에 따라 이런 관심마저 사라진다. 


그런데 전자오락을 흡수하고 대체한 것이라고 여겨지는 디지털 게임이란 무엇일까? 곤살로 프라스카(2008)1) 는 “모든 형식의 컴퓨터 기반의 오락 소프트웨어, 즉 텍스트 게임이나 이미지 기반의 게임 모두를 포괄한다. 퍼스널 컴퓨터나 콘솔과 같은 전자적(electronic) 플랫폼을 사용하는 게임들을 포함한다. 그리고 육체적 게임이나 네트워크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게임들도 포괄한다.”고 정의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전자’ 오락은 말 그대로 디지털 게임이라는 정의에 정확하게 부합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소멸되었다고 여겨지는 전자오락이란 것은 무엇일까? 


사실 아케이드 게임장(전자오락실)들은 현재도 성업 중에 있다. 현재의 아케이드 게임장들을 구성하는 요소들과 조건들이 다를 뿐이다. 음습한 소규모의 오락실들은 대형화되었으며, 오락실을 구성하는 게임들이 모방적 인터페이스를 이용하는 가상현실게임, 리듬액션게임, 체험형 게임들이 주로 공간을 채우고 있다. 


소멸되었다고 여겨지는 전자오락은 아마도 현재의 아케이드 게임장과는 다른 형태일 것이다. 우리는 전자오락에 대한 추억을 한 두 개쯤은 가지고 있는 전자오락실 세대이다. 문제는 사람들의 추억 속 ‘전자오락실’에서 구동되고 있는 오락들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누구에게 전자오락실은 〈스페이스인베이더〉나 〈갤러그〉와 같은 슈팅게임으로 구성되어있고, 누군가에게는 인형이나 상품을 뽑는 크레인 게임으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고, 〈스트리트 파이터〉시리즈나 〈철권〉시리즈와 같은 대전격투게임일수도 있고 〈DDR〉이나 〈PUMP IT UP〉과 같은 리듬액션게임일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오락실 한편에 놓인 코인노래방에서 스트레스를 풀던 기억일 수도 있다. 이렇든 전자오락실은 하나의 단어로 표현되지만 각각의 사람들에게는 모두 다른 물리적 공간이다. 

 

흥미로운 것은 미디어에 노출되어 레트로 게임으로 소개되는 전자오락은 구동되고 있는 특정 오락이라기보다는 전자오락기 캐비닛 그 자체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레트로 게임으로 인지되고 있는 전자오락이란 특정한 장르의 게임이나 시기의 게임이 아니라 조이스틱이라는 특별한 인터페이스를 통해 게임과 상호작용하는 ‘게임 체험의 형식 그 자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 제2롯데월드 내에 위치한 아케이드 게임장 ‘퓨처핸즈업’의 내부 (출처: 필자 직접 촬영)


게임인터페이스에 대한 오해


게임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무엇이 있을까? 지오프 하울랜드(1998)2)는 게임을 구성하는 요소를 1) 디스플레이 되는 어떤 이미지, 그리고 그것들 위에서 실행되는 효과들 등 플레이어가 볼 수 있는 ‘그래픽’ 2) 게임을 하는 동안 재생되는 음악이나 음향효과 등을 포함하는 ‘사운드’, 3) 플레이어가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 사용하거나 접촉하는 것들과 같은 게임 컨트롤 시스템을 포함한 ‘인터페이스’, 4) 게임에 얼마나 몰입하게 만드는 재미가 있는지와 같은 ‘게임플레이’, 5) 게임의 배경스토리나, 게임을 진행하면서 습득하게 되는 정보들을 포함한 ‘스토리’로 구분한다.


게임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인터페이스라는 것은 게임을 논할 때 쉽게 망각되곤 한다. 게임이라는 것이 게이머와 상호작용을 할 때 언제나 신체(대체로 손)와의 매개 속에서 이뤄지는데도 말이다. 그 어떤 게임도 신체와 연결된 조작 장치들에 의해서 연결되지 않는다면, 게임은 비활성화된 코드들의 집합에 지나지 않는다. 조작 장치를 통해 이뤄지는 화면 속의 움직임은 신체의 경험과 조화를 이루며 게이머들의 신체에 각인되는 총체적 감성과 지성이 작동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게임과 게이머의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인터페이스는 단순히 신호를 전달하는 것을 뛰어넘는다. 다시 말해 인터페이스는 게임의 소프트웨어가 제공하는 경험들을 게이머가 체험하게 해주는 하드웨어면서 동시에 게이머에겐 ‘확장된 신체’이다.   


따라서 인터페이스도 게임이 변화하는 과정 안에서 계속해서 변해왔다. 그런데 인터페이스에 대한 그릇된 상상이 존재한다. 단적으로 제임스 뉴먼(2008, 260쪽)은 “변화, 진보 그리고 기술적 발전에만 집중한다면, 고전 게임을 고려함으로써 드러나는 게임의 지속성을 간과하게 될 우려가 있다. 대체로 바뀌지 않고 남아있게 될 요소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마 조종기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즉, 게임 인터페이스는 1980년대의 낡은 콘솔에 부착된 것과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으며, 조금 더 편한 그립감을 제공하거나 배열이 조금 변했을 뿐 본질적으로 변한 것이 없고, 입력을 조금 더 정확하게 할 수 있게끔 진보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아래에서는 전자오락기의 조이스틱을 예로 들어 인터페이스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다는 그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과 설계가 요구하는 것처럼 입력을 조금 더 정확하게 할 수 있게끔 기술이 발전한 것도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보일 것이다.



수입된 기술의 사회적 재구성


조이스틱이란 인터페이스는 무엇을 위해 발전해왔는가는 현재 어떤 게임을 즐기기 위해 사용되는지 살펴보면 알기 쉽다. 현재 마우스와 키보드나 패드가 지배적인 게임의 인터페이스로 사용되지만, 아직도 대전격투게임이나 슈팅게임 등을 위해서는 조이스틱이 주로 사용되고 있다. 조이스틱은 상하좌우를 입력하도록 만들어 놓은 십자키를 주로 사용하는 패드와 같은 입력장치들과 다르게 360° 방향입력을 위해, 특히 위나 아래의 방향키 중 하나와 좌, 우의 방향키 중 하나를 동시에 입력시키는 이른바 대각선 입력을 위해 주로 사용된다. 따라서 우리나라를 제외한 거의 모든 전자오락의 조이스틱은 대각선 입력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레버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사각의 가이드가 부착되어 있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만 다른 형태의 조이스틱이 사용되고 있다. 통칭 무각 레버라고 부르는 원형 가이드가 부착된 조이스틱은 한국에서만 사용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는 조이스틱이라는 기술이 일본에서 수입되어 한국에서 사용될 때 한국의 기술적 환경에 의해서 다시 새롭게 재구성되었기 때문이다. 

 

현재에 들어 게임이 각광받는 산업의 하나가 되었지만, 전자오락은 정부가 진흥하거나 대기업의 주도로 들어온 산업이 아니었다.3) 따라서 전자오락을 제조, 수입, 유통하는 것은 전자산업의 주변부에 있던 청계천 전자상가의 영세업체들이었다. 그들은 전자오락기를 일본에서 수입해 올 때 관세를 줄이기 위해 완제품이 아닌 부속으로 분리해서 개별적으로 수입을 했고, 그 부속들은 청계천 일대에서 재조립되어 유통되었다. 이때 국산화가 가능한 제품들은 국내에서 제조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게임기 관련 부품시장의 생산자들에게 각 부속의 형태가 왜 그렇게 설계되었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대각선입력을 위한 설계는 그렇게 무시되었고, 상하좌우 구동 값이 좋은 제품들을 생산해서 재조립하여 유통하였다. 일본의 조이스틱은 커맨드 입력 후 중립으로 되돌려주는 장치 역시 스프링의 탄성을 이용하는 것이었지만, 한국에서는 이것을 고무로 대체하였다. 균일한 탄성을 지닌 스프링의 생산에는 높은 기술력이 필요하기도 했고 생산 단가도 높았기 때문이다. 



재구성된 조이스틱에 적응된 게이머들 

  

조이스틱이란 인터페이스는 이렇게 한국이라는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기술적 환경에 의해서도 변화했지만, 전자오락실이라는 물리적 환경에 의해서도 변화했다. 사실 조이스틱은 소모품이기에 주기적으로 관리하고 교체해주어야만 한다. 하지만 현재는 폐업한 서울 대림동의 그린오락실 점주에 따르면 오락실 초기에는 이런 것을 숙지하고 있는 업장 점주가 드물었다고 한다.  



게임장 초기에는 전문점이라는 개념이 없었어. 입력 값이 얼마나 정확하게 들어가는지 관심도 없었어. 기억해봐요. 옛날 업주들 방에 앉아서 돈만 바꿔줬지. 
(윤경식, 남, 68세, 아케이드 게임장 운영) 

게임 제공을 하는 업주나 부품업체나 그런데서 소모품은 수명이 있거든. 근데 그걸 안지켜줬다는 거야. 소모품인데 내구성이 그렇게 강하지도 않은 제품들이 수명을 넘겨 쓰다보니깐 어떤 증상들이 나오느냐 하면 유격이 심해진 거야. 그런데 그런 걸로 게임을 배운거야 한국사람들은. 그러니깐 커맨드 영역이 클 수밖에 없지. 손이 많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거지. 
(윤경식, 남, 68세, 아케이드 게임장 운영)  

               


부실한 관리로 유격이 심한 조이스틱을 이용하는 한국의 전자오락실 이용자들은 헐렁헐렁한 조이스틱에 적응하게 되었다. 손가락만을 이용해서 입력을 하는 다른 나라의 게이머들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게이머들은 손목은 물론이고 팔 전체를 움직이며 조이스틱을 조작하는 방식에 익숙해졌다. 기계적 대상물인 조이스틱은 그것을 도구로 이용하는 게이머들에 의해 변형되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 자신이 자신을 이용하는 게이머를 변화시키고 자신에게 적응하게 만들었다. 


변화된 인터페이스와 그 인터페이스에 적응한 게이머들은 같은 게임도 다르게 즐겼다. 정확한 대각선 입력을 통한 기술을 사용하기보단 원형의 가이드를 이용해 스틱을 회전시키는 기술을 사용하는 플레이를 즐기기도 하고, 동체시력을 활용한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하는 플레이보다 헐렁헐렁한 조이스틱을 빠르게 조작하여 심리전을 이용하는 플레이를 즐기기도 하였다. 특히나 철권 같은 대전격투게임에서 다른 나라 이용자들과는 다른 게임플레이 형식이 나타난 것은 조이스틱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조이스틱의 진화 


한국에서 조이스틱은 얼마나 더 미세하고 정확하게 입력 값을 게임 상에 재현해낼 것인지가 아니라 자신이 적응시킨 게이머와의 관계 안에서 진화해 나갔다. 


한국에서는 조금 레버가 살짝 멍청하게 만들어져야 해. 왜 그러냐면 민감하면 못한다고. 조금조금 움직였을 때 동작을 하면 커맨드 실수를 해. 오차범위를 줘서 어느 정도는 움직여도 동작을 안 하게 만들어 줘야해. 그걸 안 해주면 그 레버 못 쓴다해. 전자장치는 거짓말을 안하자나요. 근데 레버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안 해. 오차 범위 값을 얼마를 줘야한다는 걸 생각을 안 하니깐 자꾸 민감하게만 만들어.
(윤경식, 남, 68세, 아케이드 게임장 운영)


한국의 맥락에 의해서 형성된 원형의 가이드와 유지 보수가 되지 않아 헐렁한 조이스틱에 익숙해진 한국의 게이머들과 연결된 조이스틱은 대각선 입력을 정확하게 하거나 더 민감하게 입력 값을 전달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화하기 보다는 일정한 수준의 오차 값을 지니면서도, 더 적은 유지보수를 요구하는 형태로 계속해서 변화해왔다. 과격하게 손을 움직이며 크게 커맨드를 입력하는 한국게이머들에게 미세하고 정확한 입력을 가능하게 해주는 조이스틱은 자신들의 실수를 고스란히 재현하기 때문에 못 쓰는 조이스틱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 정확한 입력보다는 어느 정도의 ‘멍청함을 얼마나 꾸준하게 유지하는가’의 방식으로 변화해 갔다. 구리 접점을 통해서 입력 값을 전달하던 것은 구리 접점이 휘거나 눌어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구리와 구리 사이에 고무를 덧대는 형태로 변했다가 최근 스위치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변형되었고, 조이스틱을 중립으로 복귀시켜주는 탄성고무는 내구성이 조금 더 뛰어난 실리콘으로 바뀌었다. (그림 2. 그림3 그림 4 참조.)

 

* 초기 조이스틱 (출처: 필자 직접 촬영)

* 중기 조이스틱 (출처: 필자 직접 촬영)

* 최신 조이스틱 (출처: 필자 직접 촬영) 

그렇다고 해서 조이스틱이 초기의 조이스틱에 비해서 최신의 조이스틱으로 선형적으로 진보되고 개선되면서 완성되었다는 관점으로도 볼 수 없다. 게임을 하는 물리적 장소가 전자오락실에서 게이머의 사적인 공간으로 변화되는 등과 같이 게임과 게이머를 둘러싼 요소들의 변화에 따라 인터페이스는 언제든지 변화할 가능성에 놓여 있다. 예를 들어 구리 접점을 이용하는 초기의 조이스틱은 명맥이 끊어지지 않고 현재까지도 꾸준히 생산되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도 가격이지만, 스위치가 만들어내는 소음을 기피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소음으로 가득 찬 전자오락실이 아닌 집에서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들이 늘어나면서 초기 조이스틱의 수요는 꾸준하게 존재하고 있다. 만약 게이머들이 더욱 마니아화 되고 ‘확장된 신체’로써의 인터페이스를 꾸준히 관리하는 문화가 형성되고 확산된다면, 유지보수를 자주 해주더라도 소음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장점을 가진 구리접점 조이스틱이 주된 형식이 되어 진화를 시작할 것이다. 


이처럼 인터페이스는 설계에 투영된 이상을 정확히 구사하기 위해 발전할 수도 있지만, 우연한 계기들에 의해 손쉽게 그 설계가 변형되기도 한다. 변형된 인터페이스는 게이머들의 게임 실천 자체를 변형시키기도 하며, 이런 변화된 게임실천은 게임이 제공하는 경험의 변형을 가져오고, 게임성 그 자체를 다르게 느끼게 하는 효과도 가져온다. 이처럼 인터페이스는 단순한 입력장치이고,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 없는 게임의 요소라기보다는 게임을 구성하고 있는 하드웨어이면서 동시에 게이머와 연결되어 신체화된 기계적 대상물이다. 인터페이스는 게임의 설계에 따라 발전하거나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과 게이머는 물론이고 자신과 연결된 모든 환경과 함께 상호작용하며 변화무쌍하게 공진화(co-evolution)하는 과정 안에 놓여있다.  




1) 곤살로 프라스카(2008).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비디오 게임〉, 김겸섭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2) Howland, G. (1998) Game Desine: the Essence of Computer Games. 제임스 뉴먼(2008), 〈비디오게임〉, 14쪽에서 재인용. 
3) 조동원 (2019), “디지털문화 초기사 연구: 동아시아 지역횡단의 전자오락기·개인용 컴퓨터 복제를 중심으로”, 한국언론정보학보, 98, 153-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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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문화연구자)

문화인류학과 문화연구를 전공하고, 현재 청계천기술문화연구실과 한양대학교글로벌다문화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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