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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쟁, 게임, 그리고 게임화라는 이름의 수치화

    전쟁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유명 게임 프랜차이즈의 대사도 있지만, 좀 더 현실에 가까운 영역에서 전쟁은 진화를 거듭해왔다. 그러한 진화는 ‘전쟁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의 답이 특정 방향으로 발전해 온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전쟁은 내 이웃과 친구들의 비극 혹은 그걸 막기 위한 결단인가, 아니면 권력을 잡거나 방어하기 위해 장기판의 말을 옮기는 것과 같은 형식의 게임에 불과한가? < Back 전쟁, 게임, 그리고 게임화라는 이름의 수치화 25 GG Vol. 25. 8. 10. 전쟁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유명 게임 프랜차이즈의 대사도 있지만, 좀 더 현실에 가까운 영역에서 전쟁은 진화를 거듭해왔다. 그러한 진화는 ‘전쟁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의 답이 특정 방향으로 발전해 온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전쟁은 내 이웃과 친구들의 비극 혹은 그걸 막기 위한 결단인가, 아니면 권력을 잡거나 방어하기 위해 장기판의 말을 옮기는 것과 같은 형식의 게임에 불과한가? 전자라면 전쟁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 태도는 최대한 그것을 막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후자라면? 전쟁은 불가피한 것이며 따라서 게임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효율적으로 찾는 게 가장 중요한 것이 된다. 우리의 현실은 어디에 있는가? 이는 게임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워게임’은 현대 전쟁의 중요 요소 중 하나이다. 워게임의 시초는 ‘크릭스슈필(Kriegsspiel)’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보드 게임이다. 1800년경 프로이센의 퇴역 장교 등을 중심으로 개발된 이 게임은 곧 프로이센군의 공식 훈련 교재가 되었다. 또 ‘크릭스슈필’은 민간의 상업용 보드게임의 조상 중 하나로도 간주된다. 전쟁을 상징과 규칙으로 환원하고 이에 근거한 판단과 결정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군용의 ‘워게임’과 오늘날 우리가 가정에서 즐기는 전쟁 소재의 게임은 공통지반을 갖고 있다. 양자는 비슷한 경로를 따라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게임으로 발전했다. 수많은 측면에서 다른 점을 갖고 있지만 본질이라는 측면에선 사실상 같은 것인 셈이다. ‘워게임’의 본질을 사실 우리는 그간 수많은 전략 게임을 플레이 하면서 간파해왔다. 우리가 익히 알듯, 힘이 없는 개인의 입장에서 전쟁은 각 개인의 겪는 비극의 총합이다. 그러나 ‘워게임’은 제 기능에 충실하기 위해 전쟁을 제3자적 입장, 그러니까 전지적 시점에서 상징화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비극’과 같은 서사적 요소들은 게임 시스템 그 자체와 일단 분리된다. 가정용 게임에서도 우리는 늘상 이러한 일을 겪는다. 가령 리얼타임전략시뮬레이션(RTS)을 떠올려 보자. 현실에서 병사는 총알 한 개에 목숨을 잃는다. 현대전을 소재로 한 어떤 RTS 게임에서 병사 유닛은 수십 발의 총알을 맞아야 비로소 죽는다. 총알을 운 좋게 피한 것일까? 게임의 화면으로 표현되지 않는 은폐 엄폐 동작이 있었던 것일까? 그러나 우리는 공격을 당한 횟수에 비례해 유닛의 체력이 감소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병사는 분명 피격당했다. 치명적 부상을 입지 않은 것 뿐일까? 이 경우는 체력이 탄환이 몸에 명중할 때마다 비균등하게 감소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체력은 입은 피해에 따라 균등하게,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정해진 산식에 의거한 계산에 따라 감소한다. 이런 방식으로 총을 맞는 것이냐 피하는 것이냐의 문제, 즉 총을 맞는 순간 이 병사가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은 어떻게 되느냐와 같은 개인의 실존과 관련한 문제는 게임 시스템 안에서 소거된다. 전쟁을 주제로 한 게임의 이런 측면은 전쟁 규모의 재현과 관련해서도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는 때가 종종 있다.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와 같은 전략롤플레잉(SRPG) 게임의 경우 전쟁에 준하는 세력의 대립 등을 묘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정작 하나의 스테이지에 등장하는 아군은 아무리 많아야 십수명의 캐릭터가 전부이다. 하나의 캐릭터는 하나의 사람이 아닌 한 무리의 부대를 상징하는 것일까? 그러나 무기의 장비, 체력 회복, 사망 등의 요소는 명백하게 개인화 되어 있다. <랑그릿사>의 경우 지휘관 외 병사 유닛을 따로 배치할 수 있도록 해 현실감을 높였지만 그래봐야 한 스테이지에 등장하는 유닛 수는 수십 명 정도이다. 전쟁이 아닌 패싸움 수준이다. 그렇다면 사태는 좀 더 간단한 논리로 해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고작 몇십 명의 병사를 휘하에 거느리고 뽐내는 황제가 꼭 세상을 지배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까? 그러나 우리는 이를 게임적 맥락에서 전쟁의 이야기로서 수용한다. 시적 허용이 아닌 게임적 허용, 좀 더 나아간 개념으로 한다면 ‘게임화’의 단면이다. 이러한 게임들이 대개 턴 방식을 규칙으로 취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 있다. 당연히 실제의 전쟁이 ‘너 한 번 나 한 번’식의 턴제로 진행되지는 않는다(물론 턴제의 형식은 동시턴 방식 등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 턴 방식을 강제하는 것은 두 가지 조건이다. 첫째는 전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다양한 변수에 대한 실시간 대응을 재현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간을 일정 기준에 따라 정지시킨 상태에서 게이머에게 충분한 시간을 들여 순차적 결정을 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둘째는 ‘게임’이 ‘겨루기’라는 형식을 어느 정도는 전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려면 양측에 똑같은 공정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이 두 가지 점을 고려한 ‘게임화’의 결과물이 턴제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게임화’는 현실을 상징화 하는 과정에 반영되는 일종의 편집 기술에 비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편집을 통해 전쟁의 무엇을 덜어내고 게이머에게 무엇을 경험하도록 할 것인가? 패러독스 인터랙티브 사의 <하츠 오브 아이언> 시리즈는 전략에 충실한 쪽으로 기운다. 이 게임에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같은 감성은 없다. 게이머는 철저히 이해타산에 맞춰 결정을 내리는 냉혹한 전쟁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실제 현대의 전쟁 지도자에게 실제 전장에서 특정 병사의 영웅적 활약상이나 동료애에 기반한 미담 같은 것은 본질이 아니다. 그에게 전쟁은 지도와 숫자로 이루어진 ‘게임’일 뿐이다. <하츠 오브 아이언> 시리즈가 그리는 전쟁은 그러한 세계에 존재한다. 전투 역시 상당 부분은 숫자로만 표현된다. 전장의 실제 모습을 재현하는데 집중하는 것은 주로 1인칭 슈팅(FPS) 게임이다. 가령 유명 영화의 장면을 오마주한 <콜 오브 듀티> 초기작의 경우 누구에겐 총알만 주고 누구에겐 총만 주는 방식으로 부족한 물자 문제를 때웠던 소비에트군의 부조리를 경험할 수 있다. 이 장면에서 게이머는 죽은 아군의 시체에서 소총을 확보해 자신이 받은 실탄을 장착해 사용해야 된다. 만일 전선에서 후퇴해 도망가려고 하면 바로 뒤에서 독전을 하는 정치장교의 총에 맞아 사망하게 된다. 이런 형식의 FPS에서 게이머는 전쟁 지도부의 전략과 전체 전쟁의 양상을 잘 알 수 없지만 전쟁터에서 어떻게든 작전을 수행하고 살아 남아야 하는 병사의 처지를 실감할 수 있다. 크리에이티브 어셈블리사의 <토탈 워> 시리즈는 그 이름답게 전쟁의 모든 면을 보여주기 위한 총력전을 펼치는 시도처럼 느껴진다. <토탈 워>에는 전쟁 지도자의 냉혹한 계산과 전장의 스펙터클이 함께 공존한다. 물론 무게추는 전략 전술을 경험하는 것에 쏠려 있다. <토탈 워>의 의의는 다른 전쟁 게임과 비교해 실제 전장에서의 상징화 수준을 현실에 가깝게 내린 것에 둘 수 있다. 이런 방식을 통해 전략 수준의 결정이 실제 전장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시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전략 전술을 잘못 짠 영향으로 떼죽음을 당하는 중세 병사들을 보고 있으면 현장 지휘관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마련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시도를 통해 게이머가 전장의 비극이라는 서사적 측면을 대리 체험하는 면이 분명히 있지만, 결과적으로 익숙해지는 것은 전쟁의 기술적 측면이라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령 <콜 오브 듀티>가 영화였다면 관객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투입된 등장 인물이 전우의 시체에서 획득하는 소총의 종류 같은 것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게이머는 게임 속에서 바로 자신이 획득한 장비이기에 그것이 모신나강 라이플임을 인식하게 된다. 이제 관심의 초점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내 소총이 모신나강이라면 적군이 쓰는 총은 무엇인가? 각각 어떤 특징이 있는가? 발사음은 어떻게 다른가?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게이머는 전쟁의 비극을 그린 서사 안에서도 적군과의 교전을 직접 수행하는 과정을 통해 전투의 기술적 측면을 간접 학습하게 된다. 가령 총격전을 벌이기 전에 은폐 엄폐를 하기 좋은 지형을 찾는다든가, 교전 중에 실탄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확인한다든가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게이머는 자연스럽게 전쟁을 내면화 할 수 있다. 실제 FPS를 모병 홍보 또는 훈련 과정의 일부에 활용하려고 한 시도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주장이 억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시리즈는 미 육군이 직접 개발한 홍보용 FPS 게임이다. 는 미국과 영연방 및 나토 국가 등의 훈련 소프트웨어로 등을 기반으로 했다. 더 이전으로 올라가면 전술 훈련을 목표로 한 실험적 시도로서 의 MOD였던 의 존재도 있다. 수준은 높지 않았지만 말이다. ‘게임을 하면 살인에 둔감해진다’와 같은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가령 ‘살인’은 사회적으로 금지된 행위이다. 대다수 게임이 살인을 소재로 한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엄하게 금지된 행위에 대한 게이머의 경각심이 희미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만일 그렇다면 벌써 세상은 살인과 절도의 천국이 되었을 것이다. 시리즈의 인기를 생각해보자. 시리즈의 성공으로 세상이 ‘자동차 도둑놈’들의 세상이 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사회가 허용하거나 나아가서는 권장하는 분야에 대한 게임의 영향이라면 어떨까? 게임은 게이머의 사회에 대한 인식 및 태도에 분명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전쟁은 비극이지만, 오늘날 게임이 전쟁의 준비에 이미 활용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나? 우리 사회는 전쟁을 이미 ‘불가피한 게임’으로 받아들이고 전쟁의 본질을 ‘효율적으로 이기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효율적으로 이기는 방법을 찾는 것’은 사회적으로 허용되며, 심지어 권장된다. 그렇기에 거기에 게임이 기여할 수 있고, 기여하고 있는 거다. 실제 ‘워게임’의 일반화는 전쟁의 양상을 바꿨다. 두 가지 면에서다. 첫째, ‘워게임’으로 통칭되는 시뮬레이션은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 위험을 낮추는 요인으로 기능한다. 실제 전쟁을 치르기 전에 서로 간의 치열한 시뮬레이션 및 계산에 따른 ‘장군-멍군’식 대비 대책으로 미리 충돌을 방지할 수 있다. 둘째, 그럼에도 결국 군사적 충돌을 감행하게 된다면? ‘워게임’은 효율적이고 유연한 전략 수립을 가능하게 해 승리의 가능성을 높인다. 최근 강대국이 개입한 전쟁의 양상은 어떤 형태로든 이런 양상을 띄고 있다. 이러한 일이 가능한 가장 본질적 이유는 게임이 ‘숫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게임도 숫자, 전쟁도 숫자, 세상도 숫자이다. 모두가 숫자를 향할 때 효율과 최대 이익이라는 공통분모가 만들어진다. ‘게임에 사상을 담지 말라’는 구호가 게이머들 사이에서 종종 나오지만, 이렇게 게임에는 이미 지배이데올로기라는 형태로 사상(ideology)이 반영되어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란을 공습하고 가자 지구에서 인종학살을 지속하는 이스라엘의 사례를 보며, 그리고 그러한 전쟁의 구실이 되는 정치, 그 정치를 떠받치는 대중적 동력의 실재를 확인하며 다시 한 번 느끼는 것은, 우리의 삶은 숫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늘 숫자로 상징화 되지만, 언제나 잔여물이 남으며 그것은 무시되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전쟁을 반대한다는 것은 앞에서 쓴 전쟁의 또다른 의미, 즉 전쟁의 본질은 우리 삶의 비극이라는 진실을 상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러한 일은 곧 전쟁이 숫자가 아니라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시작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숫자가 아닌 게임이 존재할 수 있을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여기서 제기하는 의문이 ‘반전 메시지’를 담은 게임의 가능성에 대한 건 아니라는 거다. 과 같은 게임은 반전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결국 게이머가 주되게 수용하는 것은 ‘효율적 관리 및 생존’이라는 장르적 요소다. 게임을 바라보고 수용하는 관점의 경로의존성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므로, 오히려 여기서 필요한 건 그러한 경로의존성을 벗어날 수 있는 이정표를 제시하는 것, 즉 해석이며 비평이다. 숫자의 세계에서 숫자가 될 수 없는 것들에 주목하고 그런 것들을 짚어 내줘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게임과 우리의 삶 모두에 죽음이 아닌 생명을 불어 넣을 수 있다. Tags: 수치화, 워게임, 재현윤리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시사평론가) 김민하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시사평론가로 활동하지만 게임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게이머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냉소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돼지의 왕』이 있고,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우파의 불만』, 『트위터, 그 140자 평등주의』 등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최근작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가 있다.

  • 어린이를 위한 게임은 없다

    도발적인 제목을 들고 왔지만, 놀랍게도 필자는 어린이가 아니다. 더 놀랍게도 필자는 아직 2세가 없다. 당사자성이 없는 사람이 어린이와 게임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대단히 조심스러웠다. 게임제너레이션(GG) 편집장으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가정에 어린이가 있는 필자를 새로 구해보시는 게 어떠냐'라고 완곡하게 돌려 말했다. 편집장은 '어린이가 없는 입장이 보다 객관적'이라고 답했다. GG 편집진의 고약한 취미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Back 어린이를 위한 게임은 없다 18 GG Vol. 24. 6. 10. 도발적인 제목을 들고 왔지만, 놀랍게도 필자는 어린이가 아니다. 더 놀랍게도 필자는 아직 2세가 없다. 당사자성이 없는 사람이 어린이와 게임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대단히 조심스러웠다. 게임제너레이션(GG) 편집장으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가정에 어린이가 있는 필자를 새로 구해보시는 게 어떠냐'라고 완곡하게 돌려 말했다. 편집장은 '어린이가 없는 입장이 보다 객관적'이라고 답했다. GG 편집진의 고약한 취미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필자는 과거에 어린이였던 적이 있다. 필자는 그 유명한 PC방의 초글링 출신이다. <카트라이더>가 국민게임이던 시절, '놀토'만 되면 기자는 같은 반 친구들과 PC방으로 달려갔다. 매캐한 담배 연기 속에서 시프트(드리프트) 버튼을 열심히 눌렀던 기억은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무렵 PC방에는 <리니지>라든가 <뮤> 같은 게임이 인기가 있었지만, <메이플스토리>, <큐플레이>, <마비노기> 등등 어린이들이 즐길 만한 게임도 대단히 많았다. 개중에는 FPS나 '성인풍' MMORPG로 월반한 친구들도 있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모두가 <카트라이더>를 플레이할 줄 알았다는 것이다. * 한때 <카트라이더>는 명실상부 국민게임이었다. 그리고 그 인기의 중심에는 어린이들이 있었다. <카트라이더>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당대 단순 영화 잡지를 넘어 문화비평지의 기능을 수행하던 주간지 <씨네 21>은 "국민 배우 안성기에 국민 간식 떡볶이에 국민 여동생 문근영까지, 조금이라도 인기 있는 상품에는 ‘국민’이라는 딱지가 붙는다"며 "요즈음 국민 게임 칭호는 <카트라이더>에 돌아간 모양"이라고 썼다. [1] 그리고 그 인기의 비결을 "유아적 놀이 경험"이라고 분석했다. 이 "유아적 놀이 경험"이란, 만화적 캐릭터들을 통해 기존의 레이싱게임보다 간편한 게임플레이를 담은 것을 의미한다. 일각에서는 꾸준히 이 게임과 닌텐도 <마리오카트>와의 유사성 문제를 지적했다. 하지만, 당대 이용자들에게 <마리오카트>와 <카트라이더>를 둘러싼 시비는 그다지 중요한 이슈가 아니었다. 어린이 시절의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카트라이더>는 최고 동시접속자 20만 명, PC방 점유율 1위, 출시 1년 만의 등록회원 1,000만 명의 금자탑을 쌓으며 넥슨의 역사를 썼다. <카트라이더>는 2023년 출시 18년 만에 서비스를 종료했고, 후속작 <카트라이더: 드리프트>을 출시됐다. 하지만 새 게임은 국민게임이었던 전작의 아성을 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넥슨의 창업자인 고 김정주 회장은 "아이들과 부모들이 스스로 돈을 싸 들고 와서 한참 줄 서서 기다리며 디즈니 콘텐츠를 즐긴다"며 "디즈니가 부러운 건 아이들을 쥐어짜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2] 넥슨의 방향성을 아이들과 부모를 "쥐어짜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오게 만드는 것으로 제시했던 것이다. 넥슨이 2000년대 초중반 서비스했던 게임들은 실로 그런 면모를 보이고 있었고, 그 선두에는 <카트라이더>가 있었다. 이 쯤에 <카트라이더>의 옆자리에 설 게임은 단연 <메이플스토리>겠지만, 이 게임이 겪은 풍파에 대해서는 굳이 이 글에서는 구구절절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넥슨은 현재 <메이플스토리>의 블록체인게임 버전을 연구개발 중이다. [3] 아무튼 국민OO의 시절은 지났다. 국민OO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존재는 국민OO가 먹히던 시절에 그 지위를 획득한 이들에게 한정된다. 2020년대의 국민MC는 아직 우리 머릿속에 있는 그 사람이다. 이렇게 취향의 파편화가 세분화가 이루어지면서 서로가 무엇을 좋아하고 사는지 알기 어렵다. 새로운 국민배우, 국민간식, 국민여동생은 없다. 할머니는 빠니보틀과 곽튜브를 모르고, 손자는 종편방송에 쏟아지는 트로트 예능을 모른다. 독자 여러분께도 퀴즈 하나. 이 중에 혹시 '흔남'을 아는 사람이 있는가? 혹시 구글링을 시도하려고 했나? 흔한남매는 구독자 277만 명을 보유한 유튜브 채널이다. 요즘 어린이에게 압도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흔남의 존재를 모르는 초등학생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전 세대를 아우르는 '매스'미디어는 사라졌다고 해도 무방하다. 특정 드라마를 보기 위해서 일찌감치 집에 들어가는 시대는 지났다. 더구나 인구절벽으로 가파르게 줄어들고 있는 어린이를 위한 콘텐츠가 어떤 것이 있는지는 더욱 알기 어렵다. 어린이와 함께 살고 있거나, 어린이와 교류하지 않는 이상 어린이의 취향을 진단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다행히 필자에겐 조카가 있다. 조카를 '취재'한 결과, 필자와 조카 사이에 그나마 말이 통했던 것은 <포켓몬스터> 정도였다. 조카가 '1세대 포켓몬'을 알고 있다고 대답할 때, 필자는 왠지 모를 희열을 느꼈다. 하지만 그 외의 콘텐츠로 조카들과 대화를 시도해보았을 때 필자는 좌절했다. 한 번 시도해보라. "삼촌 <신비아파트> 옛날 건데요", "<뽀로로>는 애들(네 녀석도 애면서!)이나 보는 건데요"와 같은 답변을 들을 것이다. 어린이를 위한 게임을 찾는 일은 더 어렵다. 가장 참고할 만한 데이터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간한 '2023 아동청소년 게임행동 종합 실태조사'다. 아동청소년의 65.2%는 이미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다. 가장 많이 하는 게임은 <마인크래프트>, <로블록스>와 같은 샌드박스 게임(23.7%)으로 나타났다. 그 뒤는 <브롤스타즈>, <발로란트>, <서든어택>과 같은 슈팅게임(23.5%)이 차지했다. [4] * 청소년이 가장 많이 즐기는 게임 장르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샌드박스 게임은 정의 그대로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세계를 창조하는 모래상자와 같다. 매달 1억 5천만 명 이상의 어린이가 접속하는 <로블록스>는 플랫폼이다. 즉, 그 플랫폼에 접속해 직접 관찰하지 않으면, 무엇이 인기를 끌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유튜브를 들여다 보지 않으면 요즘 뜨는 '인급동'(인기 급상승 동영상)을 모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린이들은 <로블록스> 플랫폼 안에서 이 게임 저 게임을 탐험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로블록스>가 곧 게임과 같을 수 있다. 참고로 조카의 날카로운 분석에 의하면 <로블록스> 안에서 가장 인기있는 게임은 <입양하세요!>다. 본인은 <입양하세요!>에 '애들'이 너무 많아서 슈팅경쟁 게임 <머더>를 즐기고 있다고 한다. 그 말을 옆에서 같이 들은 조카의 친권자는 <머더>의 폭력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고, 필자는 대뜸 게임의 폭력성에 대한 심판관이 되었지만, 취재원 보호를 위해서 '에이, 이 정도는 괜찮아'라고 답했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즐기는 게임에 <서든어택>이 이름을 올린 것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이들은 더이상 TV나 잡지로부터 게임에 대한 정보를 얻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구독 중인 인플루언서가 특정 게임을 플레이하고, 학교 같은 내집단에서 두루 공감대를 얻었을 때 그 게임을 즐기는 것으로 관찰된다. 재미만 있어 보인다면, 2005년에 나온 FPS도 서슴없이 즐기는 것이다. 필자의 유일한 취재원인 조카는 15세 미만이기 때문에 <서든어택>을 즐길 수 없었다. 주변에서도 <서든어택>을 하지 않기 때문에 꼭 그 게임을 플레이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이뿐 아니라 각 게임 포털은 2차 인증 과정을 강화했기 때문에 예전에 필자가 그러했듯이 부모의 주민등록번호로 게임을 즐기는 것이 쉽지 않아진 모양이다. 한국갤럽 발표에 따르면, 10대 남성의 44%, 여성의 13%가 게임을 가장 즐겨하는 취미로 꼽았다. [5] 어린이들은 여전히 게임을 즐기고 있지만, 그 자리에 한국 신작 게임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인용한 표의 예시에 올라온 한국 게임 신작은 3년 전에 나온 <쿠키런 킹덤> 뿐이다. 고객의 모수 자체가 줄어드는 만큼 어린이 취향의 게임을 만드는 것이 수지타산이 안 맞는 일이 되는 듯하다. 임원을 설득하기 좋은 기획은 '10대들이 즐기는 게임'보다는 '40대 직장인들이 즐기는 게임'일 것이다. 한때 게임은 '어린이들이나' 즐기는 매체로 여겨졌다. 오락실에나 PC방에나 어린이들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을 찾아보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게 됐다. 애초에 그들의 인구가 감소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케이드와 PC방 산업의 규모가 줄어들었을 수도 있다. 스마트폰으로 가보자. 앱스토어의 게임 - 어린이 탭으로 가면 인기 차트의 1위는 <유튜브 키즈>가 차지하고 있다. 2위는 색칠놀이 게임 <퀴버>, 3위는 샌드박스 게임 <토카보카 월드>, 4위와 5위는 <밴드 키즈>와 <아이들나라>이다. 온전한 의미의 게임은 2번과 3번이고, 4번은 학교 모임, 5번은 '학습'을 위한 앱이다. 구글 플레이스토어 '키즈' 란의 '삶이 풍성해지는 게임' 코너에서도 <유투브 키즈>가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스마트폰 양대 마켓의 상위 차트는 보호자가 어린이로 하여금 건전하고 학습적인 콘텐츠를 학습시키려는 의도가 담겨있는 듯하다. 정작 어린이에게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로블록스>가 순위에는 빠져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로블록스>는 로블록스 코퍼레이션이 제공하고 있지만, 그 안의 게임들은 비슷한 또래의 창작자들이 직접 만들고 있다. 그리하여 필자는 가정의 달의 그믐에 생각한다. 어린이를 위한 게임은 더이상 만들어지지 않는 걸까? * 5월 31일 앱스토어 게임 분야의 ‘어린이’ 코너 인기 순위. 게임이 거의 없다. [1] 박상우, 「<카트라이더>는 어떻게 국민 게임이 되었나」, 씨네21, 2005.09.16. [2] 김재훈, 신기주, 「플레이: 게임 키드들이 모여 글로벌 기업을 만들기까지, 넥슨 사람들 이야기」, 민음사, 2015.12.7. [3] 김재석, 「넥슨이 그리는 블록체인 메이플스토리의 꿈」, 디스이즈게임, 2024.03.23. [4] 「2023 아동청소년 게임행동 종합 실태조사」, 한국콘텐츠진흥원, 2024.03.05. [5] 「한국인이 좋아하는 50가지 [문화편]」, 한국갤럽, 2024.05.22. Tags: 게임이용자, 유소년, PC방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김재석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 하이파이러시: 같은 뿌리의 리듬과 액션 사이에서

    리듬은 사전적 정의에서 ‘일정한 박자나 규칙에 따라 장단과 강약이 반복될 때의 규칙적인 음의 흐름’을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음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것에 있다. 박자에 따라서 음이 일정하게 반복될 때. 음의 덩어리를 리듬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게임에서 리듬 게임이라 부르는 장르 자체는 연주하는 행위. 혹은 건반을 정확한 타이밍에 수행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 리듬 그 자체보다는 음악 연주를 모사하는 것에서 시작하므로 날아오는 노트를 처리하는 형태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 Back 하이파이러시: 같은 뿌리의 리듬과 액션 사이에서 11 GG Vol. 23. 4. 10. 리듬은 사전적 정의에서 ‘일정한 박자나 규칙에 따라 장단과 강약이 반복될 때의 규칙적인 음의 흐름’을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음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것에 있다. 박자에 따라서 음이 일정하게 반복될 때. 음의 덩어리를 리듬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게임에서 리듬 게임이라 부르는 장르 자체는 연주하는 행위. 혹은 건반을 정확한 타이밍에 수행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 리듬 그 자체보다는 음악 연주를 모사하는 것에서 시작하므로 날아오는 노트를 처리하는 형태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리듬 게임 장르의 대부분이 노트를 처리하는 메커닉으로 구성되기는 했지만, 여기에 다른 시각을 더한 타이틀도 있다. 리듬 천국의 개발자 ‘층쿠’ PD가 ‘리듬 천국 골드’ 발매 시점에 진행했던 인터뷰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이와타 사토루 사장과의 대담을 통해 “최근 소위 음악 게임(리듬 게임)이란 것이 유행했었잖아요. 조금 해보고 있습니다만, 음악을 하는 입장에서는 좌절을 느끼게 됩니다. 리듬보다는 눈으로 보고 누르는 것을 강요하는 것을 강요하는 거죠”라고 이야기를 전한 바 있다. 층쿠 PD가 갖는 의문은 결국, 음악에서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는 리듬이라는 존재를 타이밍에 맞춰 노트를 누르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한 물음이었다. 그렇기에 층쿠가 제작한 ‘리듬 세상’이라는 타이틀은 플레이어들이 박자와 규칙을 ‘느끼고’ 조작하는 형태로 시리즈가 이어졌다. 그간 공포 게임을 만들었던 ‘탱고 게임웍스’가 갑작스레 선보인 타이틀, ‘하이파이 러쉬’도 비슷한 측면에서 접근한다. 보고 정확한 타이밍에 버튼을 입력하는 것. 그리고 거기서 액션이 시작되는 형태가 아니라, 플레이어인 사람 안에 자리한 박자에 집중하고 이를 메커닉 측면에서 액션으로 구성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이파이 러쉬는 액션 게임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리듬 그 자체를 드러낸다. 그렇기에 ‘리듬 액션’이라는 장르적인 측면에서의 정리보다는 액션이라는 행위가 가지고 있는 가치와 박자에 주목했다는 표현이 옳을 듯하다. 즉, 동작이 가지고 있는 리듬이 더욱 두드러지도록 게임 메커닉을 구성한다는 아이디어가 더해진 것이며, 이는 모든 액션 장르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극대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게임에 있어서 음악을 의미하는 ‘리듬’이 아니라, 박자와 규칙의 반복이라는 사전적 정의의 리듬이 앞선다. 잠시 예를 들어보자. 어떠한 동작에서 ‘리듬’이라는 것은 중요하게 다뤄진다. 축구에서 공을 차는 데에도 선수 개인마다 동작에 리듬을 찾아볼 수 있다. 어디서 어떤 타이밍에 공을 슈팅할 것인지. 어떤 템포와 타이밍에 행위를 진행하고 결과를 얻어나가는 것이다. 야구 또한 마찬가지다. 투수가 던지는 공을 타자가 때릴 때에는 모든 동작이 하나의 리듬을 보여준다. 타격을 위해 발을 들어 올리는 동작부터 무게중심의 이동. 배트를 휘두르기까지 이어지는 흐름 자체가 하나의 리듬이 된다. 액션 장르에 있어서 이 ‘리듬’은 플레이어 캐릭터의 동작을 버튼으로 치환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동작과 동작을 이어나가는 과정은 단발성 공격에서 시작해 하나의 콤보와 새로운 액션으로 파생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버튼을 누르는 것은 캐릭터가 보여주는 동작을 통해 표현되며, 전체적으로 보면 리듬을 구성하는 요소로 자리한다. 하이파이 러쉬는 이 부분에 주목했다. 액션 게임은 결국 버튼으로 플레이어 캐릭터가 동작을 수행하고 이를 통해서 적을 제압하는 플레이로 귀결된다. 따라서 버튼을 어떻게 누르느냐. 언제 누르느냐의 플레이 형태를 보이기 마련이다. 타악기를 연주하듯이 버튼을 누르는 것 -이는 버튼 입력형 리듬 게임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에서 착안한 메커닉이다. 리듬을 구성하는 요소는 ‘비트’와 ‘템포’로 다시금 나눌 수 있다. 이에 비추어보면 액션 장르에서의 비트는 버튼의 연속적인 입력과 동작의 반복이 되고 플레이어 캐릭터가 버튼 입력을 수행하는 액션의 속도와 템포가 되는 셈이다. 이 비트와 템포는 하이파이 러쉬가 아닌 그간의 액션 타이틀도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부분이다. 특히, 빠른 공격의 속도감과 콤보를 테마로 삼은 타이틀에서 두드러진다. 하이파이 러쉬는 액션 장르에서 표면에 에 드러나지 않았던 이 ‘리듬’이라는 개념을 가장 위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이를 중심으로 게임 내의 모든 요소가 구성되도록 했다. 버튼을 누르는 과정 전반이 리듬을 구성할 수 있도록 플레이어를 유도하는 형태다. 이를 위해서 비트에 플레이어 캐릭터의 액션을 접목하고 속도감인 템포를 더하는 것으로 특유의 리듬이 느껴지도록 플레이어를 이끈다. 말 그대로 타격한다는 의미의 비트(beat)는 플레이어 캐릭터의 공격 액션이 되며, 비트와 비트의 조합이 콤보 그리고 액션으로 이어진다. 게임 시스템적으로는 공격을 쉬는 ‘레스트’ 버튼을 길게 누르는 것으로 약간의 변주를 가한다. 버튼을 누르는 행위 자체가 변경되기는 하지만, 누르는 것을 쉬거나 장시간 누르는 것도 비트를 기반으로 실행되도록 구성했다. 잘 살펴보면, 하이파이 러쉬의 플레이 자체는 드럼을 연주하는 것과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타격이라는 점에서도 정체성이 맞물리지만, 플레이어의 박자감을 유도하는 것이 베이스 드럼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의도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공격 시에 나오는 효과음 등이 하이햇과 스네어라는 점을 생각하면, 개발진의 의도는 분명해진다. 동시에 하이파이 러쉬의 메커닉은 플레이어들이 ‘같은 간격으로 버튼을 입력하는 것’을 유도한다. 즉, 해당 타이틀은 일정한 템포(BPM)의 틀 안에서 게임 플레이가 이루어지도록 했다. 이는 액션 장르의 문법에서 보자면 이질적이며 쉽지 않은 결정이다. 속도감을 내세우는 타이틀을 몇 가지 떠올려보자. 이들의 경우 다양한 패턴을 가진 적들을 선보이는 것이 일반이다. 이를 통해서 플레이어가 서로 다른 리듬을 가진 적들을 상대하고 파훼하며 극복하는 재미를 이끌어낸다. 하지만 하이파이 러쉬는 게임 플레이를 구성하는 모든 것을 같은 박자로 구성하는 결정을 내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이파이 러쉬가 보여주는 공격의 템포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나마 변화가 있는 것은 배경음악인데, 배경음악의 템포가 130~160 정도로 설정되어 있고 그 안에서도 베이스 드럼이 보여주는 연주의 템포는 변화가 없다. 플레이어가 수행하는 액션. 그리고 적들의 모든 공격은 바로 이 고정된 템포 위에서 진행된다. 비슷한 속도와 비슷한 간격. 이 두 가지를 통해 적들의 패턴이 구성되며, 일정한 템포는 독특한 플레이를 만들어낸다. 플레이어의 액션과 적의 패턴 모두를 하나의 리듬으로 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하이파이 러쉬에는 엇박자 패턴을 사용하는 적이나 플레이어가 유지 중인 리듬을 뒤흔들 수 있는 적의 패턴이 존재하지 않는다. 적의 종류도 많지 않으며 대응 방식도 큰 틀에서는 변화가 적용되어 있지 않다. 일부 적들의 QTE 상황을 제외하면 상황에 따라서 누르는 버튼 조합이 달라질 뿐, 비트와 템포는 같은 악보 위에서 연주되는 셈이다. 따라서 서로 다른 속도 / 프레임으로 구성된 액션을 조합하고 적을 파훼하는 것이 아니라, 시기적절하게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액션을 즐기는 것에 무게가 실린다. 일정한 속도로. 자신의 리듬을 잃지 않고 비트를 연주하는 것. 게임으로 치면, 일정한 속도로 버튼을 누르는 것과 같다. 이는 공격을 해도 마찬가지고 패링이나 잡기를 통해서 변주를 가할 때도 마찬가지다. 물론, 전투 도중 플레이어가 가지고 있는 본인의 리듬을 잊을 수도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개발진은 게임 내의 모든 오브젝트를 같은 템포로 만들어버리는 결단을 내렸다. 주인공인 ‘차이’가 활동하는 게임 내의 장소들. 배경음악. 효과음 모두가 같은 템포 위에서 함께 리듬을 맞춘다. 심지어 차이가 손가락을 튕기는 것도 일정한 속도와 박자를 따라가게 하기 위함이며, 걷는 동작까지 포함해 모든 액션이 개발진이 의도한 레일 위로 플레이어를 유도한다. 다른 모든 것들이 하나의 비트와 템포. 더 나아가 하나의 리듬을 구성하고 있으므로, 플레이어는 자연스레 여기에 따라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여기에 비트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보조 기능을 지원하는 한편, 박자를 놓치더라도 개발진이 의도한 속도감과 리듬 위로 올라탈 수 있도록 해뒀다. 적과 아군 모두 일정한 속도감과 리듬 위에서 진행되고 있는 만큼, 다소 단조로울 수 있다는 단점도 따라오기 마련이다. 개발진은 이를 액션을 구성하는 조합을 수를 늘리는 것. 그리고 플레이어가 비트를 따르지 않는(버튼을 입력하지 않는) 사이에 이용할 수 있는 것들로 채운다. 다양한 적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 적이 나왔을 때에는 동료를 불러 도움을 받거나 패링을 하는 것으로 대체한다. 이를 통해서 게임 초반부에 그저 버려야만 했던 비트들은 후반부에 들면서 정체성이 확립된다. 적들의 패턴에 익숙해지더라도 다수의 적이 조합을 이뤄 등장하기에 버려지는 비트가 점차 사라진다. 궁극적으로 모든 비트에 플레이어가 버튼 입력을 할 수 있게 되며 하이파이 러쉬의 메커닉은 개화한다. 연주라는 게임 플레이가 꽉 채워질 수 있도록 모든 비트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의미없이 버려지는 비트가 점차 사라지고 액션으로 연주되는 리듬이라는 개념이 점차 단단하게 자리를 잡는다. 그간 리듬에 다른 장르의 문법을 접목한 타이틀이 여럿 나왔음에도 하이파이 러쉬가 발상 측면에서 고평가를 받은 것은 이러한 이유다. 기존에 있던 장르의 문법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근본적인 부분까지 한 번 해체하는 것에서 개발을 시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해체를 통해 액션 게임이 가지고 있는 일면을 다시금 파악했고 이를 하나의 목적에 맞춰서 재조립하는 과정을 거쳤다. 여느 리듬 액션 타이틀처럼 리듬 장르 위에 액션 메커닉을 얹어두고 조율한 것이 아니라, 액션 게임이 가지고 있는 리듬 측면을 비트와 템포로 다시금 규정하는 과정을 거치고 이후에 재조립으로 하이파이 러쉬라는 작품을 완성한 셈이다. 그 결과, 하이파이 러쉬는 리듬 혹은 노트에 맞춰서 플레이어가 행동하는 것을 강제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액션이라는 장르가 함유하고 있던 리듬 그리고 플레이어의 조작에서 오는 반복적 리듬을 일깨우는 것에 있다. 게임 내에서 박자가 심장에서 시작되듯이, 노트가 아닌 박자 자체가 리듬의 시작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이를 통해서 액션 장르가 가지고 있었던 리듬이라는 측면은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됐다. 그리고 버튼을 누르는 것에서 나오는 리듬감을 강조하기 위해 게임 내의 모든 요소는 같은 비트와 템포에 맞췄다. 하나의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작품을 구성하는 세부적 요소들이 뻗어 나가면서 하이파이 러쉬는 일관되고 집중력이 있는 경험으로 맺어지기 시작한다. 리듬과 액션을 더했다고 일축할 수도 있을 테지만, 아이디어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구축할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 그리고 액션이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던 요소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임은 틀림없다. 액션의 버튼 입력을 비트로. 오브젝트와 배경음악을 포함한 액션 외적인 것 일체를 템포로 치환한 이들의 발상이 이채를 발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하이파이 러쉬는 발상하나가 얼마나 다른 느낌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타이틀과 같다. 게임이라는 매체가 작은 발상하나로 얼마나 큰 경험적 변화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증거이며, 장르 측면에서 내재적으로 가지고 있던 가치를 다르게 바라볼 기회를 제공하는 단초가 되지 않을까 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정필권 농부이자 제빵사이자 바리스타. 현재는 게임 기자로 글을 쓴 지 8년차 입니다. 한정된 시간 안에서 최대한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바라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 〈폴아웃〉의 미국, 오늘날의 미국

    중요한 것은 어떤 선택지를 고르더라도 그 결과는 앞서 본 것처럼 미국 역사의 어떤 장면을 재현하는 것에 그칠 거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같은 하늘 아래 있을 수 없는 듯 보이는 트럼프와 바이든의 미국 역시도 길게 보면 동일한 미국 역사의 반복에 불과하다. 바이든은 트럼프를 불러 들이고, 트럼프는 다시 바이든을 되살려 내며 끝도 없이 갈등한다. < Back 〈폴아웃〉의 미국, 오늘날의 미국 04 GG Vol. 22. 2. 10. 도널드 트럼프의 시대는 끝났는데도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선거에선 졌지만 그를 지지한 대중적 에너지는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 에너지는 어디서 온 것일까? 더 나아가서, 트럼프를 만든 동력은 미국다운 것일까, 아니면 미국답지 않은 것일까? 트럼프의 선거 구호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였다. 반-트럼프 캠페인으로 선거에서 승리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당선 직후 “미국이 돌아왔다”고 했다. 트럼프의 미국과 바이든의 미국, ‘진정한 미국’은 어느 쪽인가. 폴아웃 시리즈는 정확히 그것을 의도하고 만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미국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폴아웃 세계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NCR(New Califonia Republic)을 예로 들어보자. NCR은 미국인이 스스로 생각하는 미국 역사의 모사인 것처럼 보인다. NCR은 멸망한 세계에서 다시 일어난 인간이 국가의 형태까지 집단의 수준을 고도화 시킨 결과물이다. 이것은 과거 유럽인의 인식 속에서 ‘아무것도 없는 땅’이었을 신대륙에 국가를 건설한 미국의 모습을 재현한 듯 보인다. NCR은 문명 지향적이면서도 적당히 속물적이고, 팽창주의적이면서도 외부와의 과도한 갈등은 지양하는 모습을 보인다. 미국이 세계대전 이전까지 세계적 표준을 자처하면서도 상당기간 고립주의적 대외정책으로 일관했던 것과 겹치는 대목이다. 폴아웃 시리즈의 주인공은 대개 볼트 거주자인데, 폴아웃 1편과 2편에서 주인공은 NCR 또는 그 전신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조력하는 역할을 맡는다. 볼트에는 ‘구세계’ 문명이 보존돼있고, 그 일부였던 주인공은 볼트 밖으로 나오면서 멸망한 상태인 ‘신세계’와 처음 접촉하게 된다. 이건 유럽으로부터 건너온 ‘문명인’이 ‘야만’의 상태인 신대륙에 처음으로 발을 내딛고 식민지 건설을 시도했다는 역사적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NCR은 그 이름에서 보듯 주요 근거지가 서부이고 무주공산이 된 황무지로 진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부 개척’의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면도 있다. 서부 개척은 앤드류 잭슨 이래 고양된 국민주의의 영향 아래 이뤄진 팽창의 결과인데, 이 과정에서 원주민들과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이것은 ‘폴아웃 뉴베가스(이하 뉴베가스)’에서 후버 댐을 둘러싼 각 세력의 이전투구를 통해 게이머가 겪게 되는 바로 그 상황과 닮아 있다. 뉴베가스에 등장하는 악역 집단인 ‘시저의 군단’은 반문명적 행태로 일관하고 있다. 이는 서부 개척의 맥락에서 식민지인(colonist)의 눈에 비친 원주민을 재현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서부 진출의 과정에서 아메리카 원주민은 현지에 진출해있는 영국 또는 프랑스 군대와 동맹을 맺거나 군사적 지원을 받으며 저항했다. 동시에 현대 미국의 맥락에서 보면 ‘시저의 군단’은 명백히 중동의 이슬람국가(IS)를 모티프로 한 걸로 보인다. 그런데 익히 알려져 있듯 현대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냉전 당시 미국과 소련의 제국주의적 팽창으로부터 도움을 받거나 이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조직된 무장단체의 후신이다. ‘시저의 군단’을 이끄는 카이사르가 인도주의적 지식인-의료 단체인 ‘묵시록의 추종자’ 출신이라는 점은 이런 맥락을 반영한 듯 느껴진다. 즉, ‘시저의 군단’은 문명적 시도와 그 좌절이 초래한 반문명적 현상인 것이다. 이 점에서 게이머는 ‘시저의 군단’과 대립하는 경험을 통해 실제 미국이 겪은 또는 겪고 있는 역사적 아이러니와 마주하게 된다. 폴아웃 2편과 3편에 등장하는 악역 집단인 ‘엔클레이브’ 역시 ‘미국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묻게 되는 중요한 존재이다. ‘엔클레이브’는 황무지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구세계’ 권력이다. 그들은 지식과 무력을 독점하며 황무지인을 지배하려 하지만 본체는 저 멀리 어딘가에 숨겨져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엔클레이브’는 미국 독립전쟁 이전 대서양 건너편에서 식민지를 압박한 영국과 같은 존재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들과 문명을 공유하지만 황무지와의 공존을 선택하고 엔클레이브에 맞서는 볼트 거주자는 영국에 대항해 독립전쟁을 이끈 식민지 지식인 계층을 연상케 한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 또 하나 있다. 초창기 미국의 정치사회를 지배한 것은 구세계와 신대륙 간의 대립 구도였는데, 구세계는 종종 권력, 지식, 성직제도 등과 등치 되었다는 게 그것이다. 가령 현실의 역사에서 대각성운동을 통해 일반화된 복음주의 교회는 식민지 주류였던 성직자-지식인들과 대립했다. 평신도 역시 설교자로서의 자격을 가질 수 있다는 당시 복음주의의 교리는 ‘구세계’를 기원으로 하는 기성 교회의 상식으로 보면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이었다. 반면 복음주의자들이 볼 때 기성 교회는 지식과 권력, 신성을 독점한 기득권들일 뿐이다. 리처드 호프스태터는 미국의 반지성주의에서 이 갈등이 지식과 권력에 대한 대중적 반감의 근원적 체험 중 하나이며, 이게 반지성주의와 민주주의 간 교집합의 한 축이 돼왔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볼트 거주자는 황무지인들에 우호적일지언정 결코 황무지인이 될 수는 없다는 점에서 현실에 존재했던 식민지 기득권에 가깝다. 멸망 이후 세계에서 지식과 무력을 독점하려는 또 하나의 세력인 ‘브라더후드 오브 스틸’(이하 브라더후드)에 대해 플레이어가 양가적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브라더후드’는 황무지인의 입장에서 보면 결국 엘리트주의로 뭉친 선량한 착취자에 지나지 않는데, 이는 실제 역사에서 식민지인들이 지식인-성직자로 구성된 기득권을 보며 느낀 감정과 유사할 것이다. 볼트 거주자에 감정을 이입한 플레이어로서는 ’브라더후드’에 어떤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그들의 다소 무책임한 처사들에 반발할 수밖에 없는 입장인 것이다. 폴아웃 4편은 미국 역사에서 반복된 이러한 장면들을 압축적으로, 더 완성도 높게 재현하려 시도한 듯 보인다. 게임의 배경인 뉴잉글랜드 지역이라는 공간적 특성은 대전쟁 이전을 기억하고 있는 주인공의 처지와 맞물려 미국 역사의 시작을 가리키는 장치로 활용된다. 플레이어는 마치 신대륙에 처음 진출한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정착지를 건설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경험을 직접 할 수 있다. 주인공이 맨 처음 접촉하도록 돼있는 팩션인 ‘미닛맨’은 이런 맥락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다. 미국의 역사는 독립혁명을 위해 ‘애국자’들이 민병대를 조직하던 그 때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이게 폴아웃 4가 소규모 도시 건설 시뮬레이션의 색채를 띄게 된 이유이다. 폴아웃 4에 등장하는 ‘인스티튜트’는 반지성주의와 반공주의의 결합이 매카시즘으로 표출된 역사를 빗댄 듯 보인다. 사실 ‘폴아웃 코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1950년대 수준에 멈춰있는 사회문화적 코드는 매카시즘 시대를 묘사한 것이다. 미국 역사가들은 매카시즘의 등장 배경이 된 사건으로 소련의 핵실험 성공, 중국의 공산화, 한국전쟁의 장기화를 꼽는다.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 미국인들은 세계의 ‘외부’에 자신들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강대한 적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됐고, 이를 내부에서부터 맞서기 위한 시도로서 매카시즘을 선택하게 됐다는 것이다. 즉, 매카시즘은 앞서 논한대로 미국 역사에서 반복되는 권력, 구세계-기득권, 지식인에 대한 적대와 동일선상에 있다. 작중에서 ‘인스티튜트’를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바로 이것이다. 사람들은 ‘인스티튜트’가 만들어 낸 안드로이드인 ’신스’를 ‘도깨비’라 부르며 두려워하고 나아가서는 ‘신스’를 색출하기 위한 마녀사냥을 감행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이것은 매카시즘이 합리적 근거 없이 지식인과 관료, 예술가를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은 것과 본질적으로 유사한 일이다. 재미있는 것은 ‘신스’를 탄압받는 대상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구출하는 걸 목표로 하는 조직도 등장한다는 거다. 이들은 ‘레일로드’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데, 현실 역사에선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란 비밀결사가 남부의 흑인 노예들을 북부의 자유주로 탈출시키는 활동을 했던 걸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신스’는 매카시즘이란 맥락에선 ‘공산주의자’로 지목된 억울한 피해자인 동시에, 인종차별이란 측면에선 소수인종이 되는 셈이다. 반전은 ‘인스티튜트’가 ‘신스’를 동원해 이루려고 했던 목표가 결국 세계의 재건이었다는 점이다. ‘인스티튜트’가 매카시즘의 맥락에서 공산주의에 비견될 수 있다는 걸 다시 상기해보자. 공산주의는 현실에서 역사적 시행착오를 겪었고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공산주의가 지금의 상황을 보다 나아지게 하기 위한 시도의 하나였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면, 즉 오늘날의 미국에 어떤 공산주의적 시도가 필요하다는 점을 거부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또는 ‘신스’로 비유되는 이민자의 사회적 경제적 역할을 수용하는 것이 세계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 조건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신스’가 ‘공산주의자’이면서 동시에 ‘노예’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 질문은 완전히 정반대의 관점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던질 수 있다. 가령 트럼프주의의 발호나 부시 정권의 이라크 침공 또한 미국인들이 처한 현실의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선택한 어떤 시도였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가? 뉴베가스와 폴아웃4는 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란 대목에서 플레이어에게 선택권을 부여한다. 플레이어는 작중에 등장하는 특정 팩션에 가담해 상대에 타격을 입히거나 멸망시킬 수도 있고 독자적 세력을 만드는 걸 선택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상정할 수 있는 ‘트루 엔딩’은 주인공이 인간이 만들어 낼 새로운 미래에 기대를 걸며 자신만의 길을 가는 것일테지만 그게 최선의 선택인지는 여전히 확신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떤 선택지를 고르더라도 그 결과는 앞서 본 것처럼 미국 역사의 어떤 장면을 재현하는 것에 그칠 거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같은 하늘 아래 있을 수 없는 듯 보이는 트럼프와 바이든의 미국 역시도 길게 보면 동일한 미국 역사의 반복에 불과하다. 바이든은 트럼프를 불러 들이고, 트럼프는 다시 바이든을 되살려 내며 끝도 없이 갈등한다. 폴아웃의 세계는 이런 현실이 필연적으로 불러온 ‘리셋’의 결과이다. 이전의 세계는 전쟁과 멸망으로 귀결되었는데, ‘리셋’ 이후에도 인류는 여전히 전쟁을 통해 멸망으로 가는 길을 반복한다. 그러나 인간은 또 한 번의 무의미한 반복에 지나지 않게 될지라도 뉴베가스의 예스맨이나 4편의 미닛맨들처럼 가보지 않은 길을 선택할 수 있다. 미국 독립혁명이 그런 선택의 결과였던 것처럼, 이 모든 게 전부 미국의 일부인 것이다. “War never changes”라는 폴아웃 시리즈의 슬로건은 이런 의미로 볼 수 있지 않을까.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시사평론가) 김민하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시사평론가로 활동하지만 게임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게이머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냉소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돼지의 왕』이 있고,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우파의 불만』, 『트위터, 그 140자 평등주의』 등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최근작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가 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윤창환

    보드게임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보드게임을 만드는 재미를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항시 보드게임 게이머 모집 중입니다. @imakeboardgames 인스타그램 으로 연락주세요. 윤창환 윤창환 보드게임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보드게임을 만드는 재미를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항시 보드게임 게이머 모집 중입니다. @imakeboardgames 인스타그램 으로 연락주세요. Read More 버튼 읽기 온라인 시대의 살아있는 화석, 보드게임 이야기 1938년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되어 그 존재가 알려진 실러캔스라는 어류 개체가 있다. 실러캔스는 약 3억 7천 5백만년 전 지구상에 출현하여, 약 7천 5백만년 전 절멸했다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실러캔스는 살아있었다.

  • 소화 불량 커비의 사물 머금기

    커비는 왜 인간이 사물을 쓰던 방식과 다른 접근을 취할까? 커비가 사물과 상호 작용하게 된 배경에는 이번 〈디스커버리〉가 펼쳐지는 무대에 있다. 〈디스커버리〉에서 커비가 도착한 곳은 커비의 세계와 인간 세계가 충돌한 곳이다. 이제까지 커비의 모험이 주로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우주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별 모양의 행성 팝스타에서 이루어졌다면, 〈디스커버리〉에서 커비가 종횡무진하는 이 세계는 플레이어에게 어딘가 익숙하다. < Back 소화 불량 커비의 사물 머금기 06 GG Vol. 22. 6. 10. 신세계에서 발견한 물건을 베어 물면 커비가 변형! 다양한 액션으로 대모험! 1) * 커비의 다양한 머금기 변형 종류 〈별의 커비 디스커버리〉는 2022년 3월 25일 커비 시리즈의 30주년을 맞이하여 발매된 게임으로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커비를 소개한다. 횡스크롤 게임 플레이에서 벗어난 첫 번째 전방향 3D 액션 게임으로 큰 화제가 된 〈디스커버리〉는 출시 2주만에 210만 장이 판매되는 등 현 시점까지도 인기를 끌고 있다. 난이도를 고려하여 섬세하게 개발된 플레이 시점, 이전과는 차별화된 스테이지 디자인 등 여러 요소들이 이목을 끌고 있으나 그중에서도 괄목할 만한 것은 이번 게임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커비의 머금기 변형이다. 영어로는 ‘마우스풀 모드(Mouthful Mode)’, 한국어로는 ‘머금기’라고 불리는 상호 작용은 커비가 사물을 빨아들이다 반 머금을 때 특정한 행동이 가능해지는 특수한 능력이다. * 물건을 반만 머금기 직전 자동차를 다 소화하려고 노력하는 커비의 모습 게임은 평화롭게 자신의 행성을 산책하던 커비가 하늘에 난 구멍이 만든 푸른색의 폭풍에 휘말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포털을 통해 미지의 세계에 도착한 커비는 스테이지를 활보하다가 길 한가운데에 뒹굴고 있는 사물을 만나게 된다. 다른 것과 달리 반짝이는 이 사물은 커비의 접근을 유도한다. 사물 앞에서 커비는 관성적으로 자신이 늘 하던 빨아들이기를 사용한다. 그런데 한 입에 모두 삼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커비는 이내 반 정도를 뱉어낸다. 자동차, 꼬깔콘, 고리, 전구, 계단, 지게차 등을 만나며, 우주와 같은 자신의 위장 속에 사물을 삼키지 못한 커비의 입과 몸은 사물의 형태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형된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고안되어 특정한 능력을 보유하지 않는 사물을 머금으면 그다음에는 무슨 일이 발생할까? 불, 물, 칼, 폭탄 던지기와 같은 명확한 정체성이 없는 사물이 커비와 접촉하면 커비는 이를 어떻게 사용하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사물과 커비가 맺는 특별한 관계가 생성된다. 이는 더 나아가 게임 내에 사물이 존재하는 양상에 대한 재고찰을 돕고 플레이어와 사물이 주체와 객체로 고착화되는 공식을 뒤집으면서 다른 상호 작용의 가능성을 제안한다. 머금기 변형이 등장한 배경에는 2D에서 3D로의 전환이 있다. 2020년, 닌텐도 스위치용으로 발매된 전작 〈커비 파이터즈 2〉만 해도 횡스크롤 스타일을 고수하였다. 개발진들은 2D 커비의 귀여운 특성을 살리면서도 이를 어떻게 3D 액션 플레이로 연계할 것인가 고민하였고, 이 과정에서 머금기 변형이 새로운 능력으로 등장하였다. 2) 다양한 것을 먹고 늘어났다 줄어드는 모습은 자유자재로 변화하는 기묘한 커비의 개성을 3D로 구현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3D에서는 2D와 달리 상하좌우의 부피감을 인지할 수 있기에 넘어지기, 가속하기, 늘어나기, 사방으로 움직이기 등 다양한 방식의 움직임을 플레이 요소에 더하는 것이 장려되며, 이러한 움직임을 가능하게 해 주는 장치로 사물이 사용된 것이다. 제작진의 의도와 다르게 머금기 변형은 단순히 3D 효과를 부각하는 것을 넘어 게임 내에서 사물의 위상을 바꾸었다. 사물은 커비의 능력을 경유하여 본래의 목적과는 다르게 번역되고, 주변 환경을 연결하기도, 또 해체하기도 한다. 이러한 특성을 자세히 들여다보기에 앞서 짚어야 할 것은, 커비의 머금기 변형은 변신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커비의 위장은 흔히 우주와 같이 무한하다고 알려져왔으나 이번 시리즈에서는 사물을 온전하게 흡수하지 못하며, 대상을 완전히 모방하고 변신하려는 커비의 시도는 실패한다. * 캡처 능력을 활용하여 굼바에 빙의한 마리오 〈디스커버리〉가 참고하여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와 비교하면 변신과 변형의 차이가 더 명확해진다. 커비의 3D 월드는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로부터 스테이지 구성 혹은 시점 변화 등의 요소를 계승하였다. 머금기 또한 마리오의 ‘캡처’ 능력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사물을 이용하여 퍼즐을 해결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캡처는 마리오가 자신의 모자인 캐피를 던져 특정한 대상에 맞추면 그 대상으로 빙의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나 이 기술은 주로 적에 빙의했을 뿐 아니라 마리오가 본래 지니고 있던 고유한 특성에서 기인한 움직임은 아니었다. 또한 완전한 빙의로 인해 마리오스러운 플레이를 운용하는 것에 실패한다. 실제로 이 캡처 능력은 마리오의 캐릭터성을 중시 여기는 이들에게는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반면 커비의 머금기는 커비의 정체성과도 같은 흡입하기와 뱉기를 활용하면서도 더 나아간다. 사물을 ‘머금었다’라는 제약은 커비의 사물-되기를 방지한다. 사물을 머금은 커비는 커비도 사물도 아닌, 커비-사물 혹은 사물-커비의 중간 상태를 계속해서 유지하게 된다. 애매모호한 존재가 되어 버린 커비의 상태는 커비 본래의 특성을 플레이어에게 이해시키면서도 오히려 역으로 플레이에 재미를 부여한다. 사물을 뱉고 나면 다시 탄력적으로 원래의 크기와 능력으로 돌아가는 커비를 통해 이 일시적인 결합은 사물과 관계 맺는 방식을 강조한다. 커비의 번역은 새로운 관계 맺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커비는 처음 보는 사물을 낯선 방식으로 쓴다.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사물의 용도에 새로운 쓰임을 부여하고 커비만의 방식으로 사물들을 번역한다. 이는 더 나아가 플레이어에게 새로운 쓰임을 익히게 하고 게임 내의 필수적인 요소로 이해하게 만든다. ‘플레이어 - 사물 - 커비’의 삼자관계는 플레이어가 커비를 조종하는 일방향적인 관계를 다각화한다. 커비는 왜 인간이 사물을 쓰던 방식과 다른 접근을 취할까? 커비가 사물과 상호 작용하게 된 배경에는 이번 〈디스커버리〉가 펼쳐지는 무대에 있다. 〈디스커버리〉에서 커비가 도착한 곳은 커비의 세계와 인간 세계가 충돌한 곳이다. 이제까지 커비의 모험이 주로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우주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별 모양의 행성 팝스타에서 이루어졌다면, 〈디스커버리〉에서 커비가 종횡무진하는 이 세계는 플레이어에게 어딘가 익숙하다. 커비가 마주치는 잔해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즉 인류 문명이 멸망한 뒤 자연이 울창해진 세계이기 때문이다. 곳곳에는 허름한 쇼핑몰, 놀이 기구만 살아남은 놀이공원, 폐공장, 빈 도심 등이 배경으로 펼쳐진다. 인류가 사라진 자리에는 자동차, 토관, 자판기 등 여러 사물만이 남아 있다. 커비의 세계에는 부재한 사물들이다. 따라서 커비는 본래의 용도를 모르는 상태에서 사물을 조우하며,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빨아들이기를 통해 이용한다. 사물은 정해진 능력이 없고 목적에 따라 달리 사용되기 때문에 커비가 사물을 빨아들이면 능력을 복사하는 대신 사물의 일부 특성이 소환된다. 커비는 이를 자신의 쓰임새에 맞게 용도를 전환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 머금기는 가속의 기능을 활용하여 막힌 곳을 뚫는 데에 사용하고, 삼각 머금기로는 파열된 수도관이나 금이 간 바닥에 구멍을 뚫고, 돔 머금기는 저수 탱크 열기, 로커 머금기는 버둥거려서 길 만들기, 고리 머금기는 풍력을 이용한 동력원으로 사용하거나 바람으로 적 날리기, 자판기 머금기는 캔을 뱉어 길을 뚫는다든지 적 물리치기, 계단 머금기는 옆 혹은 앞으로 넘어지기, 토관 머금기는 데굴데굴 구르기, 작업차 머금기는 높은 곳에 닿기, 아치 머금기는 글라이더로 변형하여 비행하기 등이 있다. * 간판에서 떨어진 철자 O를 고리로 머금기 위해 다가가는 커비 * 트래픽콘 외에도 삼각형 모양의 아이스크림 조각상 하단부도 삼각 머금기의 대상이다 본래 트래픽콘이 차량을 통제하거나 위험을 표시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것과 달리, 커비는 이를 원뿔로 인식하고 금이 간 바닥이나 수도관을 터트려 길을 만든다. 또한 커비는 트래픽콘을 도움닫기 삼아 높은 지형물에 올라가기 위해 활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높게 점프하는 커비의 본래 능력의 연장선상에서 새롭게 번역된 사물의 쓰임이다. 한편 고리 머금기의 경우에는 보다 다양한 사물로부터 비롯되는데 바닥에 떨어진 글자, 시계 또한 그 대상이 된다. 본래의 용도가 무엇이었든 커비는 고리 모양이라면 이를 머금어 바람을 불어 보트를 움직이거나 적을 날려버리며, 이러한 고리의 사용법은 커비의 내뱉는 능력에서 파생된다. 시계의 기능이나 철자 O로 읽는 것은 커비의 능력이나 필요와는 무관하기 때문에 무용지물이다. 마찬가지로 트래픽콘과 아이스크림 콘은 본래 사물의 목적, 기능과 관계없이 커비에게는 동일한 물체로 인식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의 언어로 이해되었던 사물은 커비의 언어로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지고 끝없이 새로운 질서를 만들며 역할을 부여받는다. 번역은 다른 체계의 대상을 같게 만드는 동시에 차이를 형성하는 과정이며 네트워크를 건설한다. 3) 기존의 연결 고리를 끊고 다른 요소들과 결합한다는 점에서 커비와 사물의 만남은 새로운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는 게임에서 사물로 변형된 커비가 도달할 수 있는 곳들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디스커버리〉에는 커비가 스테이지를 돌파하는 목적 외에도, 더 좋은 설계도를 획득하거나 실종된 웨이들 디를 구하는 미션 등이 주어진다. 숨겨진 보물을 찾기 위해서는 여러 장치들을 통과해야 하는데, 사물을 머금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는 길들이 여럿 있다. 사물을 머금을 때 비로소 위로 도달할 수 있고, 막혔던 길이 뚫리거나 숨겨졌던 길을 발견하는 등의 과정은 특정한 사물로 인해서 발생하는 네트워크를 가시화한다. 유니티의 매뉴얼에 따르면 게임 내 사물은 그 개체 자체로는 ‘아무것도 이루어 낼 수 없는’ 것이다. 4) 사물은 게임에서 항상 몰입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특히 사물과의 상호 작용성은 플레이어의 몰입을 이끄는 요소로 여겨졌다. 몰입을 더하기 위해 게임의 사물들은 주로 현실의 형태와 물리 엔진을 모사하는 방식으로 재현되어 왔다. 플레이어의 몰입과 관심을 계속해서 붙잡기 위해 최대한 우리 세계에 가까운 방식으로 작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직관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플레이어가 게임의 주요한 서사에서 이탈하지 않게 하고자 하는 위함도 있다. 따라서 게임 그래픽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사물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은 여전히 고전적인 측면이 있다. 한편 〈디스커버리〉에서 사물의 문법을 번역하고 비틀어 상이한 질서를 부여하는 방식은 우리로 하여금 사물을 중심으로 두고 어떻게 관계 맺을지를 고안하게 한다. 우연히 길을 걷다가 발견한 아이템을 인벤토리에 넣고 360도 돌려 글귀를 읽는 방식과는 상이하다. 이를 테면 게임에서 다양한 종류의 사물과의 상호작용은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 블랙박스(black-box)를 빗겨나갈 수 있게 해 준다. 블랙-박스는 사람들이 외부의 입-출력에만 의존하여 내부의 네트워크를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며 다종의 행위자들이 연루된 네트워크를 인식하지 못하게 되면서 네트워크에 점점 무관심해지는 것을 일컫는다. 5) * 머금기에 익숙해진 플레이어는 트래픽콘을 내려 찍는 감각으로 인식하게 된다 연결과 해체의 연속적인 과정을 통해 게임 내에서 사물은 단순히 퍼즐의 한 요소가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가능하게 하는 전체이자 요소로 등장한다. 게임이 기묘하게 비트는 현실의 규칙들은 오히려 사물과의 관계를 재고하고 이에 대한 새로운 사용법을 익히도록 한다. 이처럼 사물의 관계 맺기 양식을 다양화하는 게임들은 플레이어의 몰입을 창의적인 방식으로 이끈다. 특히 이번 커비 게임에서 사물의 지위는 단순히 부차적인 힌트나 아이템과 같은 보관의 용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머금어 창조적으로 이용하여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방식을 통해 재고찰된다. 계단이 높은 곳을 걸어서 올라가는 곳이 아니라 옆으로 쓰러져 눕는 사물이 되었을 때 계단 끝의 모서리, 딱딱함, 둔탁함은 다른 감각으로 찾아온다. 트래픽콘을 통행 금지의 표식이 아닌 뒤집은 모서리가 내리찍을 지면과 연결하여 인식하게 된다. 소화 불량 상태를 벗어난 커비의 모습이 괜히 아쉬워지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는 동료 멜트미러와의 대화 속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음을 밝힙니다. 1) “Kirby Speical Ability” 『星のカービィ』公式ポータルサイト, https://www.kirby.jp/ability/special/mouthful-mode.html. 2022년 5월 30일 접속. 2) “개발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닌텐도, 2022년 3월 24일. https://www.nintendo.co.kr/interview/arzga/03.php 2022년 5월 29일 접속. 3) 브뤼노 라투르, 『인간·사물·동맹』, 홍성욱 역 (서울: 이음, 2010), p. 25. 4) “Unity Manual: GameObjects”. Unity Documentation, 2021년 3월. https://docs.unity3d.com/Manual/GameObjects.html 2022년 5월 30일 접속. 5) 브뤼노 라투르, 『인간·사물·동맹』, 홍성욱 역 (서울: 이음, 2010), p. 24.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획자) 박유진 시각 문화의 경계 안과 밖에서 읽고, 쓰고, 상상한다. 다른 시간과 공간이 교차하는 방법론에 관심이 많으며 플랫폼을 만들고 매개자로부터 배우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자 한다. 현재는 상상력을 통해 현실에 균열을 내는 실천에 관심을 두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아레시보 Arecibo》를 기획했다. (@_ehpark)

  • ‘K-의 거짓’ : 으로 바라보는 스탠드 얼론 게임을 향한 갈망

    이라는 이례적인 작품의 사례는 그 플레이 경험이 어떻게 문화적으로 인식하는지 엿볼 수 있게 해준다. 한편으로는 대항 담론이라는 것이 어떠한 기준점에 부합함과 부합하지 않음으로 나뉘며 게이머 커뮤니티의 ‘진정성’을 강화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 Back ‘K-의 거짓’ : 으로 바라보는 스탠드 얼론 게임을 향한 갈망 15 GG Vol. 23. 12. 10. “난 바다 건너 아침의 나라 출신이야. 어떤 곳인지는 묻지 마. 그곳에 대해서는 나도 딱히 말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은 벨 에포크 시기의 가상 도시 크라트를 배경으로 한다. 그곳에서 등장하는 NPC 유제니는 거의 유일한 동양인 소녀다. 유제니는 그의 고향을 ‘아침의 나라’라고 직접 밝힌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줄곧 서구에 해설되던 1800년대의 조선을 인용하는 셈이다. 기술자로서의 열정을 감추지 않는 유제니는 작중에서 주인공의 장비를 강화하고 수리하는 역할을 도맡았다. 주인공이 여정을 진행하며 크라트라는 세계의 상을 완성해가는 동안, 유제니는 그 한 축이 된다. 그리하여 시계태엽과 기계장치로 맞물린 크라트의 테크놀로지가 스펙터클하게 펼쳐지는 동시에 아침의 나라는 아득한 온정의 저편으로 배치된다. 이러한 설정은 콘솔 게임 세계로의 진출을 열망하며 발현된 국내의 이야기 구도를 유비적으로 환기한다. , 자랑스러운 ‘국산 트리플 A’ 은 국내 게임사인 네오위즈 산하의 라운드8 스튜디오에서 개발되었다. 온라인이 아닌 싱글 플레이 게임을 표방한다는 점에서 스탠드 얼론 게임으로 분류된다. 장르는 일본의 개발사 프롬 소프트웨어에서 유래한 소울라이크다. 이는 한정된 자원을 활용해 전투를 치르고, 맵을 탐색하고 보스와 전투를 벌이는 것을 주축으로 한다. 일반적인 한국 게임이 ‘리니지라이크’로 요약되는 온라인과 모바일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점을 염두에 둔다면 확실히 이질적이다. "소울라이크 팬이라면 만족"과 같은 반응을 이끌어낸 은 ‘국산 트리플 A 게임’으로 자부심을 담아 호명된다. 국산이라는 호명 뒤로는 그간 한국 게임이 어떤 맥락에 놓여 있었는지에 대한 인식이 전제 된다. 2022년 기준으로 게임 이용자가 74.4%에 달할 정도로 게임을 향유하는 사람은 많고 1) , 문화예술진흥법의 대상으로 편성되었지만 정작 문화로서의 위상을 뒷받침할 만한 자국 게임이 부족하다는 절박함이 크게 자리한다. 수용자의 불만은 생산자들의 요구와도 크게 구분되지 않는다. “수익성 등의 현실적인 요소를 고려했다면 이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최지원 디렉터의 인터뷰 멘트 2) 는 자신을 개발자와 수용자 모두를 아우르는 재미-공동체의 일원으로 정의하는 경향을 드러낸다. 와중에 한국 게임계가 주력하던 온라인 분야에서도 중국의 선두가 이어지며 위기의식이 짙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뉴스 빅데이터 수집 및 분석 시스템인 빅카인즈에서 을 서치해보면 ‘MMORPG’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과 같이 반대 항으로 설정된 장르가 함께 인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같은 배경 속에서 출시된 은 한국 디지털 게임의 역사에서 특수한 좌표를 설정한 작품으로 위치 지어진다. 우선 콘솔 게임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도 성공적인 판매를 거두었다는 측면이 강한 인상을 남긴 듯하다. 10월 17일 기준으로 은 글로벌 누적 판매 100만 장을 달성함으로써 상업성을 입증했다. 판매의 90% 이상이 해외 시장에서 발생했다는 점을 들어 “침체된 한국 게임 시장의 새로운 활로”를 제시한 것으로 기대되기도 한다. 특히나 코로나 특수가 끝나며 전체 게임 이용자의 비율이 현저히 줄어든 시점이다 3) . 콘솔 게임은 드물게 이용률 증가를 경험한 영역으로 부각되었다. 이에 의 성공 경험에 비추어 포화된 모바일 게임 시장을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가 제시되기도 한다. 4) 그러는 한편, 다른 측면에서는 작품성에 관한 논의가 검토된다. 일반적으로 게임전문지가 기존의 소울라이크 게임과 문법을 인용하며 게임의 작품성을 평가한다. 즉 이 이미 형성된 문법으로서의 소울라이크를 얼마나 충실히 좇는지가 주로 서술된다. 그 안에서 게임의 독자성을 부각하는 요소로는 “최적화”와 “그래픽”이 꼽힌다 5) . “세계적인 개발사들도 PC 구동 환경 마련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시대에, 독보적으로 완벽한 최적화를 구현해 놀라움을 샀다” 6) , “시원한 타격감, 독특한 세계관, 사실적인 그래픽 등도 호평을 받았다”와 같은 기술이 대표적이다. 7) <폭스 레인저>와 으로 보는 스탠드 얼론 게임의 과거와 현재 이처럼 을 둘러싼 기사들을 읽다 보면, 이전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는지, 그와 관련해 당시에는 어떤 이야기가 오갔을지 불쑥 궁금증이 든다. 한국 게임의 역사를 죽 훑었을 때, 스탠드 얼론 패키지 게임의 시원은 1992년에 발매된 <폭스 레인저>에 닿는다. 이 작품은 소프트 액션 사에서 개발되었다. 한국에서 상업적으로 발매된 최초의 PC 패키지 게임으로 거론된다. 소프트 액션은 “PC 통신망을 통해 한 스테이지만 플레이할 수 있는 공개용 버전을 배포하는 마케팅 기법을 구사”하고, “‘고급 기술’이 구현되었다는 것에 맞춰” 게임을 홍보했다 8) . 이와 같은 지점은 정식 출시 이전에 데모판을 공개함으로써 플레이어를 유치하고 게임의 최적화 수준을 주요한 홍보 지점으로 세운 을 연상케 하는 측면이 있다. 당시의 언론 보도는 외국산 게임에 잠식된 한국을 위기로 진단한다. “일본·미국산이 90%이상을 차지하는 전자게임시장”이라는 문구를 통해 게임 선진국으로 어떤 나라가 상정되는지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일본은 게임의 개발과 게임 향유 문화의 측면에서 모범상으로 자주 거론된다. 그런 상황 속에서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게임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시작했다는 보도는 사뭇 비장하게 강조된다. 수출주도 경제를 추구하는 기조, 그리고 다가오는 정보화 시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필요는 인기 작품 <폭스 레인저>를 개발한 남상규를 “컴퓨터 산업 전사”로 일컫기도 한다 9) . 인터뷰에서 그는 “한글도 모르는 어린이들이 일본 가나 글자를 독해하며 게임에 몰두하는 현실은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바라보며 “어떤 소프트웨어보다도 게임 소프트웨어의 국적을 찾는 일이 급하다”고 모종의 사명감을 드러낸다 10) . 이때 게임에서 언어는 ‘우리 것’을 감지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남상규의 인터뷰를 염두에 두고서 2023년에 발매된 으로 다시 돌아와 보자. 이 게임이 별도의 한국어 음성 없이 영어만 녹음한 것은 흥미로운 지점이다. 게임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작중 인물인 소피아는 주인공에게 닿길 바라며 말을 건네고, 그리하여 “Can you hear me?”는 그를 어둠으로부터 깨워낸다. 이는 이 글로벌 게임 체인에 깊이 가닿고자 하는 열망과 겹쳐 보인다. 실제로 은 마이크로소프트와 파트너십을 체결하여 게임 패스에 입점했으며, 초국적 기업이 견인하는 거대 콘솔 플랫폼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하여 로컬과 글로벌 사이에서 경합하는 접두사 ‘K-’가 구현된다. 이 접두사는 한국을 환기하면서도 “국가 지리적 범주를 넘어” “원산지가 외국인 콘텐츠를 전유한 사례”로서 복잡한 의미항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11) . 즉 은 소울라이크라는 같은 장르를 즐겨 온 전 세계 게이머에게 호소한다. 그러는 동시에 국내의 게이머들에게는 양질의 게임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준다. 그 결과 게임 문화장에서 선진국으로 간주해온 국가와 상호 동등한 주체로 서고 싶다는 국내 게이머들의 기대가 충족된다. 이 같은 점은 을 리뷰하는 매체들에서 드러난다. 독특하게도 몇몇 기사들은 이전에 소울라이크 게임을 플레이한 경험이 없으며 이 첫 소울라이크 게임이라는 점을 밝히고 시작한다. “처음 플레이해보는 기자에게도 P의 거짓은 그야말로 ‘신세계’”와 같은 문장에서 “소울라이크 초심자가 즐겨본 P의 거짓은 ‘지인들에게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입문용 소울라이크 타이틀’”로 이어지는 흐름은 사뭇 모순적으로도 들린다 12) . 그러나 여기서 발생하는 결절점을 ‘초대 받음’의 감각으로 읽는다면 어떨까. 은 소울라이크로 상정된 글로벌 콘솔 게임 시장과 한국인 게이머 사이에 놓인 매개물이 되는 것이다. ‘진정한 게임’에 가닿고자 하는 열망 소울라이크 게임에 ‘초대 받음’으로써 느끼는 기대나 흥분이 작품이 제공하는 경험에서 비된다. 한편으로 ‘초대’는 안과 밖의 구분을 상정한다. 그렇다면 어디가 글로벌 콘솔 게임의 내부고 외부일까? 따라서 소울라이크 게임을 플레이함으로써 경험한 긍정적인 기분이 사회적 맥락과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는 일이 필요해진다. 미아 콘살보는 <애니팡>과 같은 캐주얼한 소셜 게임이 유행하던 시기, 기존의 게임 개발자 및 커뮤니티가 이를 두고서 ‘진정한 게임’이 아니라며 적대하던 현상에 주목한다. 이에 ‘진정한 게임’과 ‘그렇지 못한 게임’을 가르는 기준이 어떻게 활성화되는지 제시한다. 첫 번째는 과거에 어떤 ‘적통’ 게임을 만들었는지로 구분된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게임의 메커닉이다. 손가락 터치 몇 번 만으로 간편하게 수행되는 모바일 게임은 키보드·마우스 및 게임 패드와 같이 복잡하고 정교한 조작으로 구동하는 게임에 비해 일견 하찮게 느껴진다. 그 결과 모바일 게임은 진정한 게임이 아니라는 생각에 가닿게 된다. 이러한 기준들을 적용하여 만들어지는 상상의 ‘게이머’ 커뮤니티는 진정한 게임과 그렇지 않은 게임을 구분하는 룰을 영속화한다. 그러한 열망은 왜 한국에서 게임과 친숙한 이들이 에 환호하는지 엿볼 수 있게 해준다 13) . 물론 첫 번째 기준을 문자 그대로 적용할 경우, 의 위상은 다소 애매해진다. 한국 게임사는 일반적으로 온라인 게임을 중심으로 성장을 구가해왔다. 1990년대 후반부터 MMORPG 중심으로의 전환을 거치며 “아케이드 게임과 비디오 게임 위주의 세계 게임 시장의 표준적인 흐름과 뚜렷이 구별되며 철저하게 온라인 게임에 편향된 성장”을 이뤘다. 을 개발한 네오위즈의 경우 <맞고>와 같이 소셜 카지노게임이 매출이 가장 높은 비중으로 실적을 견인해왔다. 즉 ‘진정한 게임’과 거리가 먼 게임을 서비스 해 왔던 온라인 게임 회사들이 다시금 콘솔 게임의 주축이 되고 있다. 그들이 적극적인 행위자가 되어 게임 문화를 제고하기를 바라는 갈망은 “게임 강국 한국에서는 왜 GOTY수상작이 안 나오는 걸까?”와 같은 IT 기사의 제목에서 직접적으로 유추된다 14) . ‘게임 강국’이라는 말에서 전제되는 것은 온라인과 모바일을 바탕으로 수익성을 매끄럽게 구현한 한국의 거대 게임 산업 맥락이다. 물론 배틀 그라운드가 고티를 탄 사례가 있지만, 이 기사에서 비교항으로 설정되어 거론되는 작품은 ‘위쳐 시리즈’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와 같은 스탠드 얼론 게임이다. 그 같은 논리 설정은 온라인이 ‘진정한 게임’과 일정 부분의 거리가 있음을 드러내는 듯하다. 무엇보다도 을 ‘진정한 게임’으로 인식하게끔 하는 항은 소울라이크라는 장르에서 강하게 유래한다. ‘게임 캐릭터가 아니라 플레이어가 성장한다’는 구현함으로써 직관적인 호소력을 지닌다. 이는 많은 모바일 게임이 간단한 터치로 수행되며, 성장의 감각이 플레이어가 아닌 캐릭터에 축적되는 것과 대비된다. 플레이어의 성장은 그 신체나 인지에 귀속됨으로써 고유성을 확인할 수 있다. 복잡하고 정교한 메커닉을 신체적으로 습득하고 구현한다는 ‘진정한 게이머’ 판타지가 충족된다. 여태껏 게임 담론의 역사는 크게 규제 담론과 산업 담론으로 요약되었다. 중독의 대상이자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유해 오락물로서의 게임, 그리고 해외 수출을 견인하는 자랑스러운 국력으로서의 상품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게임 중독 담론에 위기감을 느낀 게임사들이 ‘한국 게임의 사망’을 부르짖으며 ‘게임은 문화’라는 선언을 방어적으로 되풀이하기도 했다. “오래되고 어색한 슬로건” 15) 이지만 동시에 문화가 품은 넓은 의미에 기대어 역량을 발굴할 가능성을 제시할 수도 있다. 게임이용의 문화사를 발굴하려는 시도가 대표적이다. 이라는 이례적인 작품의 사례는 그 플레이 경험이 어떻게 문화적으로 인식하는지 엿볼 수 있게 해준다. 한편으로는 대항 담론이라는 것이 어떠한 기준점에 부합함과 부합하지 않음으로 나뉘며 게이머 커뮤니티의 ‘진정성’을 강화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1) 한국콘텐츠진흥원, 「2022년 전체 게임 이용률」, 『2022 대한민국게임백서』, 2023, 6쪽. 2) 이시영, 네오위즈 'P의 거짓', "기괴하지만 아름다워야한다", 고집스러운 철학 녹여내다, 2021.11.30.등록, 게임조선,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2855993&memberNo=12478036 3) 한국콘텐츠진흥원, 2023 게임 이용자 실태조사, 2023.10.19. 4) 조충희, 네오위즈 'P의 거짓' 성공, 내년 쏟아지는 콘솔 게임에 대한 기대와 우려, 2023.10.22. 비즈니스 포스트, https://www.businesspost.co.kr/BP?command=article_view&num=330565 5) 김승주, [리뷰] "진실 혹은 거짓" P의 거짓은 재미있나요?, 디스이즈게임, 2023.09.14.등록. https://m.thisisgame.com/webzine/nboard/16/?n=176290#:~:text=%EC%B4%9D%ED%8F%89%ED%95%98%EC%9E%90%EB%A9%B4%20%3CP%EC%9D%98%20%EA%B1%B0%EC%A7%93,%EC%9D%98%20%EA%B1%B0%EC%A7%93%3E%EC%9D%80%20%EA%B2%B8%EC%86%90%ED%95%A9%EB%8B%88%EB%8B%A4 . 6) 길용찬, 프롬도 이건 배워야 한다, 'P의 거짓' 업계 최장점 2가지, 2023.10.19.등록, 게임플, https://www.gameple.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7420 7) 피노키오 마법 통했다...네오위즈 ‘P의 거짓’ 콘솔 3관왕 비결은, 2022.08.31.등록, 뉴시스, https://mobile.newsis.com/view.html?ar_id=NISX20220830_0001996358 8) 남영. "1990년대 한국 PC 게임 산업: PC 게임 개발자들의 도전과 응전." 한국과학사학회지 39, no. 1 (2017): 33-63. 9) 박종성, 新世代(신세대) 그들은 누구인가 (3) SW의 승부사들, 1993.04.16.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0) 김명환, "우리말로 게임" 국산개발 활기, 1993.01.15. 조선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1) 박소정. "확장하고 경합하는 K : 국내 언론 보도를 통해 본 K 담론에 대한 분석." 한국언론학보 66, no. 4 (2022): 146-147, 10.20879/kjjcs.2022.66.4.005 12) 차종관, 못 깨는데 어떻게 리뷰를 써요…‘P의 거짓’ 해봤더니 2023.09.27.등록, 쿠키뉴스, https://www.kukinews.com/newsView/kuk202309260243 13) Mia Consalvo·Christopher A. Paul, "Facebook Games Were Evil", Real Games: What's Legitimate and What's Not in Contemporary Videogames, 2019:The MIT Press. 14) 김혜지, 게임 강국 한국에서는 왜 GOTY수상작이 안 나오는 걸까?, 2020.05.15.등록, 앱스토리, https://news.appstory.co.kr/report13261 15) 최태섭, 모두를 위한 게임 취급 설명서, 한겨레출판: 2021, 18쪽.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김규리 자기 소개 :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데스티니2를 오래 즐겨왔고, 다음 작인 마라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익숙한 게임이 주는 재미와 낯선 경험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보려 고민하고 있습니다.

  • 필연적으로 실패하지만 계속되는 것,

    선택을 위해 제시되는 두 개의 분기점은 결국 실패하지 않는 삶, 매끈한 하나의 서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선택은 불가피하다. 오히려 굴절된 한 분면만을 인식할 수밖에 없다는 인간의 근본적인 한계가 그 선택이 충실한 것임을 간절하게 희구하게 만드는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 Back 필연적으로 실패하지만 계속되는 것, 21 GG Vol. 24. 12. 10. 모든 미디어는 동시대에 영향력을 미치는 다른 매체들을 상호 참조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게임 역시 마찬가지다. 초창기 아케이드 게임기를 통해 구현된 게임과 비교해본다면 콘솔이나 PC를 통해 플레이할 수 있는 지금의 어드벤처 게임은 동일한 영역에서 다루기 어려울 정도다. 하나의 사(史)를 기술할 수 있을 만큼 개별적인 영역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게임은 각각의 장르적 특성에 따라 게임 디자인을 비롯한 재현적 특징과 이에 따른 플레이 방식이 상이하게 분화됐다. 이 과정에서 게임은 다른 시각 중심의 미디어 기법을 적극적으로 재매개(remediation)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손쉽게 떠올릴 수 있는 시네마틱 트레일러에서 자주 활용되는 영화의 컷 분할이나 카메라 기법부터 드라마 시리즈를 차용한 에피소드식 전개를 서사를 구성하는 큰 축으로 사용하는 것까지 그 예시를 상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리고 앞서 거론된 미디어들보다는 드물지만 보다 이전부터 근대를 상징하는 기술이자 매체였던 대상, 바로 ‘사진’을 재매개하는 방식을 통해 주요 사건을 전개하는 게임도 존재한다. 돈노드의 대표작 가 그러하다. 블랙웰에 재학 중인 고등학생 맥스는 5년 만에 혼자 돌아온 고향에서 적응하는 일이 버겁게 느껴진다. 클로이와 재회하기 이전까지 그녀의 최대 관심사는 사진 공모전에 자신의 작품을 제출할 것인가 여부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살인 사건의 목격자가 되고 나서 맥스의 세계는 단절되었던 우정과 관계의 회복, 학교 내 커뮤니티에서 초래되는 약물을 포함한 폭력의 문제, 나아가 지역 내 실종사건까지 급속하게 확장된다. 지역 유지인 가문 덕분에 교내에서 권력자로 군림하지만 집에서는 무시당하는 네이선은 그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우발적으로 드러나는 폭력적인 성향을 통해 보여준다. 그 네이선이 총기로 위협하다 살해한 대상이 자신의 친구이자 이사하면서 관계가 단절된 클로이라는 것을 맥스는 시간을 돌려 그녀를 구한 뒤에서야 깨닫는다. *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는 특정한 관점과 초점을 맞출 대상을 선택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맥스가 찍은 파란 나비는 의 시발점이자 선택의 종결을 의미하는 중요한 상징으로 활용된다. 결정적 실수나 돌이킬 수 없는 비극적 사건을 동일한 시간선의 과거를 다시 불러오는 방식으로 수정하고자 하는 상상은 너무도 흔한 클리셰가 되었다. 다만 몇 번이고 반복해서 특정한 장소와 시간을 소환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세이브’, ‘로드’라는 게임 디자인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 일찍이 아즈마 히로키(東浩紀)부터 요시다 히로시(吉田寛)에 이르기까지 게임의 특수한 재현 양상이 다른 미디어에 미친 영향력에 대한 지적은 유구하다. 게임이 다른 미디어를 재매개하며 발전한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 웹소설, 애니메이션 역시 게임을 재매개하며 새로운 방식의 서사를 찾아냈다. 에서 시간을 조절하는 맥스의 능력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특정한 국면을 분절적으로 저장하고 다시 불러오거나 실패한 과거를 성공한 현재로 덮어쓴다는 게임의 독특한 시간 재현 방식을 가시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을 되돌리거나 정지시키고 특정한 국면의 시간선에 자신을 위치시킬 수 있음에도 맥스의 이능은 전능하지 않다. 그것은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붙들고자 하는 이능이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도 사진을 매개로 하고 있으며 사진이 갖는 매체적 특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맥스가 자신이 찍힌 사진을 통해 사진이 포착한 시간의 한정된 공간 일부에 위치한 자신의 행위를 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세 번째 에피소드인 ‘카오스 이론’ 중에서도 후반부다. 클로이는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대마를 피우며, 트레일러에 거주하는 마약상에게도 협박을 받는 문제적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이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정서적 결핍이라 생각한다. 맥스가 도달한 시간선은 바로 그 클로이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기 직전 집을 나설 때다. 사진이 포착한 좁은 공간 내에서 차키를 숨기는 일에 성공한 맥스는 클로이의 아버지가 사망하는 사건을 막는다. 그러나 13살의 맥스가 저지한 사고 이후 18살의 맥스가 되어 마주한 새로운 현재는 전신 마비로 움직이지 못하게 된 클로이와 대면하는 일이었다. 는 맥스의 시점에서 선택한 결과가 과거, 현재, 미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지문을 통해 지속적으로 환기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특정한 시간과 한정된 공간에 자리한 인간은 자신의 선택이 총체적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이것은 인간이 재현을 위한 도구로 캔버스가 아닌 사진기를 선택했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다. 사진은 결국 특정한 앵글을 통해 제한된 대상의 부분을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의 주체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 그것은 어떤 대상을 선택하고 무수한 상황 속에서 특정 국면만을 포착하는 하나의 시선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반영한다. 동시에 분절된 샷(shot)은 결코 인간이 전지적일 수 없으며 파편화된 특정 장면을 통해 이어놓은 느슨한 인과가 늘 그 밖의 다른 균열을 배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의 매체적 특성은 어드벤처 게임의 수색 혹은 탐사와도 맞물린다. 플레이어는 게임 내 서사가 진행되는 시간의 흐름과는 별도로 특정한 상황에서 정지된 시간과 공간에 위치한다. 다수의 선택지를 대면하기에 앞서 판단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탐색은 맥스의 이능과 게임이 디자인한 플레이어의 권력을 중첩시킨다. 플레이어 아울러 맥스는 판단을 지연하거나 혹은 선택을 번복하는 방식을 통해 더 나은 경로를 찾고 자신이 계획한 시간선에 도달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가능하지 않은 지향점이다. 특정한 국면에서 수행되는 서사와 탐사는 가능성의 다른 지점들의 내적 규모를 아우를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이 접한 유형을 통해서만 타인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을 모든 면모를 알 수 있는 일은 매우 어렵고 사실 불가능하다. 클로이가 실종자 몽타주를 붙여 가면서 애타게 찾고 있던 레이첼 역시 탐색을 거듭하다 보면 클로이가 진술한 친구 레이첼과는 다른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교사 제퍼슨과 내연 관계였다는 소문, 마약상 프랭크와 연인에 가까워 보이는 정서적 유대를 가졌던 과거는 클로이가 아는 레이첼과는 다른 단면을 보여주는 예다. 블랙웰을 다니는 누구라도 그를 싫어할 것이라 평가받는 클로이의 양부 데이빗은 암실에 감금된 맥스가 탈출하는 데 일조하는 결정적인 활약을 한다. 비록 그가 직업 군인이었던 시절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고압적인 인물이라 할지라도 클로이를 염려하던 마음만은 진심이었다는 사실은 오히려 그의 강박에 가까운 조사와 수집, 수사를 통해 뒤늦게 증명된다. 그렇기에 (플레이어와 맥스 모두를 포함한) ‘나’의 현재적 판단은 게임이 진행될수록 쉽지 않다. 불확실하게 알 수밖에 없는 한 인간의 선택과 번복이 계속될수록 시간선을 리셋하는 것에 대한 리스크는 커지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은 그럼에도 선택해야 한다는 불안감과 책임에 따라오는 무게를 동반한다. 의 탁월한 지점은 마지막 선택을 남겨둔 맥스의 ‘악몽’ 부분의 묘사에 있다. 게임은 이제 플레이 문법의 관성을 비튼 메타 게임도 그 수를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로 특정한 서사적 클리셰를 누적해왔다. 친구 혹은 연인, 부모님과 같이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막기 위한 선택과 분투는 익숙한 서사다. 그러나 대화가 단절되어 멀어졌다 5년 만에 재회한 친구를 위해 분투하는 맥스의 내면은 어떨까? 클로이와 만난 일주일 간의 맥스는 분명 이전의 자신과는 다른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관계는 누구 하나의 충실함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클로이는 질서와 권위를 무시하고 선택을 주저하지 않는 인간상이다. 동시에 몇 되지 않는 인간관계에 정서적으로 크게 의존하는 불안정한 청소년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악몽이 맥스에게 보여주는 클로이는 그녀의 미숙함을 조롱하고 맥스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맥스와의 관계 이상의 유대를 과시한다. 악몽은 자신의 충실성이 배반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인 셈이다. 우리는 결코 타인의 내면을 알 수 없다. 다만 짐작할 뿐이다. 거듭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간절하게 살리고 싶어 했던 클로이와의 관계가 아카디안 만을 떠나서도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반복되던 블랙웰에서의 일주일이 그들의 가장 예외적인 순간일 수도 있다. 선택을 위해 제시되는 두 개의 분기점은 결국 실패하지 않는 삶, 매끈한 하나의 서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선택은 불가피하다. 오히려 굴절된 한 분면만을 인식할 수밖에 없다는 인간의 근본적인 한계가 그 선택이 충실한 것임을 간절하게 희구하게 만드는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성균관대학교 강사) 홍현영 패미콤을 화목한 가족 구성원의 필수품으로 광고한 덕분에 게임의 세계에 입문했다. <저스트댄서> 꾸준러. 『81년생 마리오』, 『게임의 이론』, 『미디어와 젠더』 등을 함께 썼다.

  • 나는 아직까지도 현역 게이머 - 레트로게이머 꿀딴지곰 인터뷰

    네이버 지식인을 통해 기억에서 희미해진 4,000여 개의 고전 게임을 찾아주고 이제는 유튜브로 영역을 넓혀 꾸준히 활동을 이어온 그는 국내 몇 없는 ‘레트로 게이머’이자 ‘레트로 게임 컬렉터’다. 그를 만나 레트로 게임의 현주소와 그가 생각하는 과거, 현재 게임의 접점을 물었다. 쉼 없이 흘러나오는 전문용어와 자세한 게임의 예시들 그리고 이제 중년이 된 그가 회고한 어린 날의 추억 이야기로 현장엔 웃음이 마를 새가 없었다. 그날의 대화를 정리한다. < Back 나는 아직까지도 현역 게이머 - 레트로게이머 꿀딴지곰 인터뷰 02 GG Vol. 21. 8. 10. 세상에 게임은 많다. 또한 각자가 생각하는 게임의 종류 역시 다르다. 누군가는 스마트폰이 한창 보급화될 때 유행한 ‘후르츠 닌자’를 떠올릴 것이고 또 누군가는 ‘오버워치’, ‘서든어택’과 같은 온라인 총싸움을 제일 먼저 그릴 수도 있다. 9월 9일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오후, 지방의 한 카페에서 만난 레트로 게이머 꿀딴지곰은 “그럼에도 게임은 순환 한다”, 보다 자세히는 “다르지만 같다"라고 말했다. 네이버 지식인을 통해 기억에서 희미해진 4,000여 개의 고전 게임을 찾아주고 이제는 유튜브로 영역을 넓혀 꾸준히 활동을 이어온 그는 국내 몇 없는 ‘레트로 게이머’이자 ‘레트로 게임 컬렉터’다. 그를 만나 레트로 게임의 현주소와 그가 생각하는 과거, 현재 게임의 접점을 물었다. 쉼 없이 흘러나오는 전문용어와 자세한 게임의 예시들 그리고 이제 중년이 된 그가 회고한 어린 날의 추억 이야기로 현장엔 웃음이 마를 새가 없었다. 그날의 대화를 정리한다. * 꿀딴지곰의 활동 캐릭터. Q: 네이버 지식인에서 오랜 시간 활동한 걸로 안다. A: 지금은 유튜브로 넘어간 지 3년쯤 됐다. 지식인은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알게 된 서비스다. 인터넷을 하고 있었는데 누가 게임을 찾아 달라고 글을 올렸더라.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이건 답을 달아줄 수 있으니까 답을 해줬다. 상투적인 문구로 감사를 전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정말로 고마워하는 사람도 많았다. ‘내 인생을 찾아줬다’ ‘잃어버린 나의 무엇을 찾아줬다’ 하는 식으로 아주 고마워하는 마음에 감동을 먹었다. 그때부터 눈에 불을 켜고 답을 달기 시작했다. Q: 그렇게 찾아준 고전 게임이 4,000여 개가 넘는다고... A: 채택된 것만 4,000개가 넘는다. (웃음) 하면서 깨닫게 된 거는 질문하는 사람의 요지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다. 보면 질문이 굉장히 주관적이고 중구난방이다. 예를 들어 ‘저 어렸을 때예요’, ‘저 중학교 때예요’ 하는데 나는 그 사람들의 나이를 모르지 않나. 그게 많은 질문자들의 공통점이다. 내가 게임을 많이 안다고 해도 세상의 모든 게임을 알 수는 없다. 다만 머릿속에 어느 정도 정리된 게 있으니까 그 데이터베이스랑 비교해서 비슷한 건 빨리 찾아주고 아니면 구글링을 하고 거기에 여타 힌트들을 더해서 찾아준다. (탐정 같다고 하니) (웃으며) 내 유튜브 이름이 ‘꿀딴지곰의 게임 탐정사무소’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하하. Q: 레트로 게임을 많이 혹은 오래 했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걸 다 기억하는 게 더욱 신기하다. A: 다른 건 기억력이 좋지 않다. 그냥 내 관심사만 기억하는 것 같다. 사람마다 선택적 기억력이 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게임, 서브컬쳐, 애니메이션 이런 거에만 유독 기억력이 좋다. Q: 유튜브 얘기를 좀 해보자. 꽤 많은 영상이 쌓여 있던데. A: 일주일에 하나씩 그래도 100개까지는 올려보자 했고 얼마 전에 100개를 넘었다. 생업 때문에 시간이 좀 오래 걸렸다. 다루고 싶은 주제는 많은데 시간이 안 되다 보니까 자주 올리지 못한다. 유튜브가 또 업로드를 자주 안 하면 노출을 안 시켜준다. 그동안 꾸준히 하긴 했는데 너무 지쳐서 요즘은 살짝 슬럼프다. 충전 시간이 있으면 좋은데 그럴 새가 없었다. 자료조사도 하고 할 게 많으니까... 시간이 좀 필요하다. Q: ‘고전 게임 속 표절 특집’을 재밌게 봤다. 영상에 등장하는 예시들을 다 어떻게 찾았나? A: 게임 영상은 다 내가 직접 플레이해서 캡처 한다. 언급한 표절 특집은 사운드 효과음에 대한 표절을 다룬 건데 원본의 영화나 기타 등등의 영상 자료를 찾느라 시간이 꽤 걸렸다. 예를 들어 ‘골든 액스(Golden Axe)’라는 게임이 있다. 적을 때리면 적이 비명을 지른다. 어느 날 영화 <람보>를 우연하게 보다가 영화 속에서 게임에서 났던 소리와 똑같은 소리가 나더라. 듣고 깜짝 놀랐다. 누가 들어도 저건 골든 액스에서 졸개가 죽을 때 나는 소리였다. 관련 자료를 열심히 구글링을 했다. 그렇게 차츰 자료를 모아서 주제로 다루게 됐다. Q: 어려서부터 게임을 정말 열심히 한 것 같다. A: 기억하는 제일 처음의 게임은 ‘브레이크아웃(Breakout)’, ‘스피드 레이스(Speed Race)’ 그리고 퐁(Pong)의 아케이드 버전이다. 퐁은 스피너 두 개를 돌려서 서로 대전할 수 있는 대전 게임이다. 너무 어렵고 그래서 오래 할 수 없으니까 ‘돈 아깝다’고 생각했었다. (웃음) Q: 현역으로 퐁 오리지널로 실제로 플레이해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은데... A: 나는 내가 게임을 남들보다 많이 했는지도 몰랐다. 그냥 그만큼 세월이 흘러갔다. 나이가 어느 정도 있다 보니까 그 세월 동안 빠짐없이 게임이 채워졌다. 다만 게임에 대해 정리된 어떤 아카이빙이 없는 건 참 답답하다. 특히 학술적인 논문은 거의 없다. 있다 해도 그놈의 게임 중독 사례에 대한 게 대부분이다. 아니면 게임은 유해한 거다, 아니다 하는 뭐 그런 거랑... 게임의 기획적 측면이나 게임 자체의 분석에 대한 자료는 많이 부족하다. 게임을 인문학적으로 분석한 것도 적고. * 꿀딴지곰이 직접 아카이빙한 게임 자료들. 레트로 게임기부터 게임 CD까지 벽장 한 면이 가득 차 있다. Q: 게임 자료의 아카이빙 문제가 꽤 큰 거 같다. A: 국내에 아카이빙은 안타깝게도 없다. 오히려 국산 게임 아카이빙을 외국 사람들이 해놓은 게 있다. 그 자료가 전 세계에 유일무이할 거다. 왜냐하면 굉장히 귀찮은 일이고 자료가 태부족이기도 하고.. 한국 사람들이 정작 이 일을 안 한다. 물론 관심 있는 사람이 몇몇 있다. 언론사에도 있고 기자도 있고. 하지만 책을 쓰려 하지 않고 또 아카이빙까지는 엄두도 안 낸다. 여기저기서 하겠다는 생각은 많이 하지만 아직까지 결과물을 본 적은 없다. Q: 게임 아카이빙에 관한 펀딩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 않나? A: 심지어 대기업에서도 계속 이와 관련된 걸 진행하고 있는걸로 알고 있다. 게임 박물관을 만들겠다고 하는 곳도 있다. 근데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자사 내에 없는 게 문제다. 외부 인력을 고용해서 해야 하는데 전문가가 드물다. 결국 전문가라고 해서 게임 제작 전문가를 초빙하곤 하는데 오히려 이런 일은 게임 제작 전문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차라리 나와 같은 게이머이자 콜렉터가 이런 일을 잘 할 수 있을 거다. 근데 이쪽(콜렉터)으로 잘 접근을 하지 않으니까. Q: ‘마메(MAME, 오락실 게임을 PC에서 즐길 수 있게 만든 에뮬레이터 소프트웨어)’를 보면서 우리가 게임 아카이빙을 한다면 이런 방식이 가장 합리적이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A: 나도 디지털 아카이빙에 관심이 많다. 물론 아직까지 저작권자가 존재하는 게임들의 경우 저작권 문제까지 동시에 해결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아카이빙은 사실상 고전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최후의 보루처럼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나는 실기 유저지만, 실기는 무한하지 않다. 특히 실물 아케이드 자료 같은 경우는 다 망가지게 돼 있다. 기판이 녹슬고 부서져서 결국 못 하게 되는 날이 온다. 영원히 게임을 지속할 수 있도록 디지털로 복원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한때 기판을 모았는데 그러면서 ‘마메’ 같은 디지털 자료의 소중함을 더욱 느꼈다. 예전에는 (마메) 재현율이 약간 떨어졌지만 지금은 90% 이상 똑같다. 그게 너무 소중하다. 어렸을 때 기억에 들어있는 BGM이 똑같이 흘러나올 때의 추억 같은 거. 기판은 상태에 따라 화면이 아예 안 나오거나, 오류가 잦다. 어쩔 때는 갑자기 사운드가 안 나올 때도 있다. 일부 불법 복제 기판은 사운드를 아예 날리고 루프 사운드로 대체하기도 한다. 효과음도 한가지를 돌려 쓸 때도 있다. 모든 적이 같은 소리로 죽는 거지.(웃음) Q: 게임을 모은 건 아카이빙을 위해서였나? A: 아니다. 다 어려서부터 가지고 있던 게임들이다. 팩이나 게임기 일부는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거고 본격적으로 모을려고 맘 먹었을 땐 CD류부터 모았다. 처음에는 플레이스테이션1 게임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이터가 크니까 이걸 디지털로 아카이빙 하는 건 힘들지 않나. 그래서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레트로 자료가 점점 귀해지는 거다. 어느 날 내가 하고 싶은 게임을 못 할 수도 있겠다 싶어 자료를 다시 모으게 됐다. 대략 2000년 초반 즈음? Q: 어릴 땐 어떻게 다양한 게임들을 접했나? A: 미디어가 없을 때는 오락실을 돌아다녔다. 자기네 동네 오락실만 가는 사람은 진성 아케이드 게이머가 아니다. (웃음) 나는 자전거를 타고 다른 동네로 원정을 다녔다. 지나가다가 모르는 동네에 오락실이 보이면 무조건 들어간다. 안 들어가면 게이머가 아니다. 그래서 출시된 게임을 연도 별로 알고 있는 거다. 매년 오락실에 갔으니까. 지금은 대한민국의 오락실들이 다 사라지고 있는 시점이다. 대형 오락실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남았다. 부산에는 삼보 게임랜드, 여기는 아직 남아있다. 이런 곳도 없어지면 이제 결국 대한민국의 역사 깊은 오락실은 (거의 다) 사라지는 거다. 삼보가 어느 정도 대형이냐 하면 디스코 팡팡이 실내에 있다. 삼보 게임랜드에서 제일 유명한 게 디스코 팡팡이다. Q: 그렇다면 ‘진성 게이머’로서, 또 레트로 게이머로서 요즘 날의 게임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생각하나? A: 나는 약간 반반이다. 우리 세대랑 요즘 세대는 접하는 게임 자체가 다르다. 간단하게 우리는 동전을 넣으면 그 게임을 정말 잘하지 않고서는 반드시 끝이 있다. 너무 잘해서 엔딩을 보든 아니면 못해서 중간에 끝내든 동전이 떨어지면 집에 가야 한다. 한계가 있는 거다. 근데 요즘은 게임을 시작하면 엔딩이 없다. MMORPG 같은 것도 그렇고 ‘마인크래프트’는 오픈 월드에 샌드박스형 게임이라 끝이 없다. 계속 끝없이 즐기는 무한 콘텐츠. 이걸 초등학생이 즐기면 어떨 거 같은가. 우리 초등학교 때는 기껏해야 겔러그나 보글보글 이런 걸 했다. 해봤자 얼마 못하고... 중독될 새가 없었다. 가정용 게임기가 있다 하더라도 한계가 있고. 요즘은 핸드폰 한 개만 있으면 끝없이 즐길 수 있다. ‘브롤스타즈’, ‘어몽 어스’ 같이 게임으로 끝없이 대전한다. 가뜩이나 학교도 안 가는 코로나 시대에. 그래서 이거에 질린 부모들이 게임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어렸을 때 오픈 월드 게임을 만났다면 나도 중독됐을 거 같다. 아이들이 이런 무한한 콘텐츠를 접하게 되면 얼마나 신세계일까. 그래서 문제인거다. Q: 10대들의 경우 콘솔이나 피시 게임의 가격이 비싸니 쉽게 구매하지 못한다. 그래서 유튜브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걸 본다고 들었다. A: 게임을 하는 게 아니라 ‘보는 세대’가 된 거다. 내가 오락실에서 돈이 없을 때 뒤에서 손가락 빨면서 형들이 하는 게임을 봤던 것처럼. 그 형들이 이제는 유튜버가 되는 거다. 오락실 심리라고 보면 된다. 내가 하고 싶은데 형들은 이미 하고 있고 나는 동전이 없고. * 꿀딴지곰이 직접 모은 게임 슬롯 중 하나를 후후 불어 꽂자 각종 고전 게임들이 선명하게 플레이됐다. Q: 최신 게임도 좀 하는 편인가? A: 안타깝게도 내가 대중적인 게임을 안 좋아한다. 그거 말고도 즐길 게 많으니까... 나는 한 번 하면 승부욕이 많아서 가급적 이겨야 한다. 그래서 시작할 엄두가 안 난다. 마지막으로 했던 게임은 ‘스트리트 파이터2’, ‘킹오파(킹 오브 파이터즈)’ 정도였다. 그때 투자했던 시간을 기억해보면 (새 게임을 시작하면) 안 될 것 같다. 아마 유튜브도 포기해야 할 거다. 요새 하는 게임은 그냥 유튜브를 위한 게임이다. 그래서 일부러 유튜브 주제도 하고 싶은 게임 위주로 하고 있다. Q: 레트로 게이머로서 신작 게임을 보면 이건 어디서 가져왔다 하는 게 느껴지는지. A: 그건 모든 게임에서 느껴진다. 요즘 게임에서 사실 나는 참신함을 못 느낀다. 옛날 게임에 다 있던 거다. 단지 그래픽이 더 좋아지고 3D로 바뀌었을 뿐이다. 옛날 3D 게임에서 가져온 것도 아주 많고 그런 것들이 자기 카피가 되고 있다. 특히 일본이나 미국에서 나왔던 것에 독특하고 참신한 게 많았기 때문에 좋은 장점만 따와서 새롭게 런칭하는 게임들이 다수다. 결과적으로 게임이 주는 원초적인 재미는 옛날 게임 하고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단지 그래픽이 좀 더 좋아졌다는 거랑 인터페이스가 친절해졌다. 이 두 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을 거 같다. Q: 레트로 게임이라 말하기는 하지만. 음악, 영화 등에 클래식이라는 표현이 있지 않나. 레트로 게임의 클래식을 꼽아줄 수 있는가? A: 어디까지가 레트로인가 하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근데 그건 각자 다를 거 같다. 내 기준으로 얘기하자면 비디오 게임 기준으로 아케이드 게임을 일 순위로 봤을 때, 거기서부터 연도를 따지고 싶다. 오락실을 기준으로. 오락실이 대중화된 게 79, 80년 그때라고 보면 거기가 원년이고. 가정용 게임기 중에는 ‘패미컴’이 일 세대이고. 그 다음이 16비트 ‘슈퍼패미컴’, ‘메가드라이브’. 카트리지 문화 중에서도 슈퍼패미컴 까지가 레트로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CD부터는 그때 당시에도 32비트 이러면서 차세대 기종 느낌으로 나왔기 때문에. CD 기종이 나왔던 시기가 96~7년 이때니까, 80년부터 따지면 그 시기까지 대략 17년 정도 됐으니(오락실부터 CD가 대중화되기까지) 그 17년 동안을 나는 레트로 라고 부르고 싶다. 가정용 기준으로는 카트리지. 오락실 기준으로는 90년대까지고.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나오는 오락실 게임들은 약간 체감형 게임부터 리듬 게임 이런 것들 위주로 나왔기 때문에 그쪽은 레트로 게임이라는 느낌이 나한테는 없다. 단어를 좀 압축하면 클래식은 팩이 있으면 훅 불어서 딱 꽂는, 이것이 클래식이지 않을까. CD는 후 불지 않으니까. Q: 레트로 게임에 대한 걸 계속 수집하고 영상으로 만드는 이유나 목적이 있는지? A: 목적은 뚜렷하다. 내 기억을 남기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의 기억은 언젠가 휘발된다. 그래서 유튜브에 박제하기 시작했다. 처음 지식인을 열심히 했던 건 내 흔적을 남기고 아카이빙을 하려고 했던 거다. 어느 순간 네이버를 못 믿겠더라. 스크린 샷도 자꾸 날려 먹고 서버도 위태위태한 느낌? 영상은 움직이는 거니까 더 기억이 또렷하게 난다. 그래서 그런 것도 정리도 할 겸 내 얘기도 하고 싶고 내 기억을 남기고 싶어서 제작하는 것이다. Q: 남을 위한 게 아니라 나를 위한 활동으로 보면 될까? A: 내 영상의 특징은 내가 보고 내가 재미있어야 한다. 그래서 가끔 내 영상도 찾아본다. 어렸을 때 내가 다녔던 오락실을 그대로 만들고 싶은 게 가장 큰 목표였다. 근데 그러려면 공간도 필요하고 기판도 필요하고 관리도 필요하고.. 그래서 이거를 디지털로 아케이드 아카이빙을 해주면, 오락실을 구현해주면 어떨까 생각했다. 예를 들어 82년도 83년도 연도를 넣을 때마다 게임이 바뀌는 걸 상상을 하곤 했다. 실제로 이거랑 비슷한 아이디어를 구현해서 해외 제작사에서 만든 게임이 스팀(Steam, 전제 게임 유통망)에 있다.(New Retro Arcade: Neon) 근데 한국판은 없다. 한국 스타일의 8090 오락실을 구현한 것은 없으니까. Q: 끝으로 마지막 질문이다. 활동명이 ‘꿀딴지곰’인 이유가 무엇일까? A: 예전에 나우누리를 했었다.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가 3대 피시통신이었다. 원래 나우누리는 도스에서 운영되는 인터넷 서비스였다. 그래서 한글 ID를 지원 안 했고 영어만 됐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한글로 ID를 만들 수 있다는 거다. 그런데 4자까지만 됐다. 이것저것 해보다가 그때 내 별명이 ‘푸우’였다. 그래서 그냥 푸우를 한국말로 해볼까 하다가 ‘꿀딴지곰’이라고 정했다. 중요한 건 가운데가 ‘단’이 아니라 ‘딴’이다. ‘단지’가 아니라 ‘딴지’인 거지. 왜 그렇게 정했는지는 모르겠다. ‘꿀딴지곰’이나 ‘꿀단지곰’을 치면 어쨌든 내가 뜬다. 지금까지 닉네임을 한 번도 바꾸지 않았다. 하하하.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프리랜서) 박수진 ‘여성 인디 뮤지션’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음악에 관한 글을 주로 쓰며 현재는 대중음악 웹진 이즘의 필자로 활동 중이다.

  • 제4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 발표

    제 4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에 응모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공모전의 당선작과 수상자를 아래와 같이 공지합니다. < Back 제4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 발표 25 GG Vol. 25. 9. 22. 제 4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에 응모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공모전의 당선작과 수상자를 아래와 같이 공지합니다. 당선작: 게임은 어떻게 우리를 소외시키는가 - 류호준 서브컬처 모바일 게임 비평을 위한 시론 - 캐릭터 뽑기가 갖는 의의란 - 강현 당선작은 오는 10월 10일 오픈할 게임제너레이션 26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심사위원장의 심사평도 26호에 동시 게재될 예정입니다. 응모해주신 많은 분들께 다시한번 감사드리며, 수상자분들께 축하를 전합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게임비평공모전, 공모전, 수상작발표, 공지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Editor's View] AAA의 반대편을 향한 탐색

    이를 테면 B급 게임이라고 불리는 게임들이 그러합니다. 특유의 감성을 아예 하나의 코드로 삼아 발전하는 B급 장르는 영화나 만화 등에서의 감성을 이어가며 게임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 더 얹지만, 이른바 ‘똥겜’으로 불리는 그룹들 또한 존재합니다. 그저 못 만들었다고만 평가하기에는 그곳에도 나름의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 Back [Editor's View] AAA의 반대편을 향한 탐색 05 GG Vol. 22. 4. 10. 게임의 세계에도 늘 웰메이드 작품만이 넘쳐나는 것은 아닙니다. 화려한 그래픽과 웅장한 스케일 대신 어딘가 엉망진창인 것 같은 게임들이 아마 타이틀 수로만 따진다면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겠지요. 그런 게임들이라고 묶어 이야기하기엔 너무 많은 효과들이 일어납니다. 소자본이지만 빛나는 아이디어로 무장해 게이머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인디 게임들의 존재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또 게임 생태계를 이루는 매우 중요한 축이죠. 하지만 소자본이지만 뛰어난 아이디어를 가진 게임이 아닌 경우도 마찬가지로 나름의 의미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게임들을 주목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이를 테면 B급 게임이라고 불리는 게임들이 그러합니다. 특유의 감성을 아예 하나의 코드로 삼아 발전하는 B급 장르는 영화나 만화 등에서의 감성을 이어가며 게임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 더 얹지만, 이른바 ‘똥겜’으로 불리는 그룹들 또한 존재합니다. 그저 못 만들었다고만 평가하기에는 그곳에도 나름의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메이저로도 불리지 않고 인디라는 이름과도 걸맞지 않는 어딘가에 존재하는 B급, 혹은 ‘똥겜’이라 불리는 게임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B급과 똥겜의 정의는 모호합니다만, 적어도 웰메이드나 AAA의 반대편 어딘가쯤이라는 방향만큼은 명확해 보입니다. 개념을 정의하기보다는, 그 근처 어딘가에 존재하는 게임의 의미를 넓게 둘러볼 것입니다. B급 게임이 무엇인지, A급과는 무슨 차이일것인지를 검토하고, 심지어 한때 AAA의 대명사였던 한 게임에 ‘똥’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과정도 고찰해 보고자 합니다. ‘똥겜’이란 말의 원조격일 일본의 ‘쿠소게’에 대해서는 실제 일본의 게임연구자가 가진 목소리를 들어보고자 했습니다. Trends 섹션에서는 새롭게 들어설 준비를 하고 있는 차기 정부의 게임 관련 정책의 방향을 짚어보고, 최근 뜨겁게 상승하는 키워드인 NFT에 관한 엔지니어와 사회학자의 시선을 엮어보고자 했습니다. 더불어 북미 등의 서구권에서 한국 게임의 의미가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로스트아크’와 같은 사례를 통해 질문해봅니다. 게임과 미니맵의 관계,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에 관한 이야기, 게임을 다룬 소설과 미술에 관한 이야기 등으로 이번 호도 알차게 꾸몄습니다. 여러모로 신작들이 쏟아지는 4월, 게임 하기도 바쁜 시절이지만 GG를 찾아주시는 것도 잊지 말아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최태섭

    지은 책으로 《모두를 위한 게임 취급설명서》, 《한국, 남자》, 《잉여사회》 등이 있다. 최태섭 최태섭 지은 책으로 《모두를 위한 게임 취급설명서》, 《한국, 남자》, 《잉여사회》 등이 있다. Read More 버튼 읽기 기울어진 협곡에서 - <당신엄마가 당신보다 잘 하는 게임〉에 부쳐 사람들이 게임을 좋아하는 많은 이유 중 하나는 공평하다는 것이다. 게임은 모니터 건너편에 앉은 사람이 누구인지 판단할 방법이 없고, 오로지 그가 제때에 버튼을 누르고 있는지 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게임은 인종, 성별, 계급에 상관없이 오로지 실력과 그것을 위해 쏟는 노력만 있으면 누구든지 승자가 될 수 있다. 이는 인터넷이 보편화 되던 시절 즈음에 유행하던 “전자민주주의”라는 장밋빛 구상, 즉 익명성을 전제로 하는 온라인에서는 모두가 계급장을 떼고 의견 대 의견으로만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의 게임 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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