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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미통신] 트럼프 정부 출범과 함께 변화하는 북미 게임계의 DEI 기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하자마자 한 달안에 70개가 넘는 행정명령을 쏟아냈다. 그 중에서도 취임 첫 날 바로 서명하고 공포한 행정명령들은 향후 정책적 방향을 가늠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 중 하나가 백악관 행정명령 14151호다. 행정명령의 제목은 ‘급진적이고 낭비적인 정부 DEI 프로그램의 종료’다. < Back [북미통신] 트럼프 정부 출범과 함께 변화하는 북미 게임계의 DEI 기조 23 GG Vol. 25. 4. 1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하자마자 한 달안에 70개가 넘는 행정명령을 쏟아냈다. 그 중에서도 취임 첫 날 바로 서명하고 공포한 행정명령들은 향후 정책적 방향을 가늠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 중 하나가 백악관 행정명령 14151호다. 행정명령의 제목은 ‘급진적이고 낭비적인 정부 DEI 프로그램의 종료’다. DEI는 Diversity, Equity, Inclusion의 약자로 다양성, 평등, 포용을 이야기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성소수자나 소수인종과 같은 비주류 계층에 대한 차별하지 않고 나아가서 배려를 해주는 모든 정책을 의미한다. 행정명령은 정부기관 내에서 이 DEI 정책들을 폐기하는 방법에 대해서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다양성과 관련한 직책은 모조리 없애고 인종이나 성적 지향이 고려되서 지급되던 보조금 등은 다 폐지한다. 정부기관 채용을 할 때나 수의계약을 맺을 때도 인종이나 성적지향에 대한 고려를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사실 게임계에서도 DEI는 논쟁적인 주제 중 하나였다. 일부 게이머들은 게임 내용에 하등 상관없이 DEI적인 요소를 게임에 포함시키는 것에 대해서 비판을 하곤 했다. 게임 내 주요 캐릭터가 성적소수자이거나 소수인종인 경우에 격렬하게 반발하는 반응도 나오곤 했다. 심지어 게임 주요 캐릭터가 미형이 아니면 ‘또 PC(정치적 올바름) 묻었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게임계는 DEI 문제에 대한 첨예한 전쟁터였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해리 포터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게임 <호그와트 레거시>였다. 해리 포터 원작자인 J. K. 롤링이 트랜스젠더 혐오에 가까운 발언을 쏟아내고 게임의 주요 제작진 중 한 명이 소수자 혐오 발언으로 가득찬 유튜브를 운영해온 것이 밝혀지자 많은 사람들이 게임의 제작사 워너 브라더스를 비판하고 나섰다. 결국 완성된 게임을 보면 주요 NPC는 트랜스젠더거나 동성애자가 많았고 학교 내 캐릭터들도 ‘적절하게’ 인종적 분배가 되있었다. 플레이어 커스터마이제이션에는 트랜스젠더도 있었다. <어쌔신 크리드> 최신작을 끌고 들어오지 않더라도 대작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다. 북미의 경우 게임계에서는 DEI의 위세가 강한 편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주류 계층 모두를 고객으로 끌어들이고 싶기 때문이다. 백인 남성 위주였던 미국의 게이밍 커뮤니티의 외연을 확장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DEI였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임부문 한 임원은 ‘우리가 놓치고 있는 고객층을 끌어들이는 방법’ 중 하나가 DEI 측면의 부각이라고 밝힌 바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가 취임하면서 DEI 정책 자체가 공격받자 게임계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직장 내 변화 가장 가시적인 변화는 역시 직장 내에서의 변화다. 한 때는 DEI의 전도사처럼 나섰던 테크업계와 게임업계는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블룸버그에 따르면 S&P 지수에 편입돼 있는 기업 100군데 중 DEI 프로그램을 축소한 것은 20%를 넘는다. 메타, 구글, 아마존도 DEI에 소극적으로 변했다. 게임업계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마이크로소프트다. 엑스박스라는 플랫폼은 물론 액티비전블리자드킹의 모회사기도 한 마이크로소프트는 DEI 관련한 팀 자체를 폐지하기도 했다. 당연히 게임업계에서는 이에 대해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게임업계의 일터는 남성중심적이고 여성혐오적인 문화가 있다는 비판을 받아온 바 있어서 더욱 그렇다. 수유실이 없어서 회의실에서 수유를 하고 있는 여직원을 놀리려 남자 직원들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는 에피소드가 법정에서 명시된 블리자드의 케이스가 이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아직까지 현직의 이야기가 기사화 등을 통해서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개발자 커뮤니티 등에서 변화를 느꼈다는 목소리는 조금씩 나오고 있다. 커뮤니티의 변화 게이밍 커뮤니티에서는 그동안 DEI를 공격하는 움직임이나 비판하는 목소리가 꽤 있었지만 트럼프 당선 이후로는 강도가 한층 심해졌다는 인상이 크다. 이미 10여년 전 게이머게이트 사건으로 성차별적인 시각에서 비롯된 괴롭힘 논란이 있었던 것을 상기하면 우려스럽다는 의견이 많다. 최근에 가장 큰 사례는 스윗 베이비 INC 사건이었다. 스윗 베이비 INC는 캐나다에 있는 내러티브 컨설팅 회사다. 말 그대로 게임의 스토리에 대해서 자문을 하는 것이다. 게임 내 이야기 구성과 대사 작성 등을 전문으로 한다. <앨런 웨이크 2>와 <갓오브워 라그나로크> 등에 참여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 해부터 게이밍 커뮤니티 일부에서 스윗 베이비가 게임에 강제로 다양성을 주입한다는 음모론이 확산됐다. <앨런 웨이크 2>에 등장하는 사가 앤더슨이 흑인 여성인 것은 스윗 베이비 때문이라는 루머가 퍼졌다. <앨런 웨이크 2>의 디렉터가 직접 이를 부인했으나 소용 없었고 스윗 베이비가 참여한 게임은 불매하자는 스팀 그룹이 만들어져 가입자가 10만 명을 넘어섰다. 문제는 DEI가 마치 게임업계 전체의 적처럼 공격받는 현상에 대해서 플랫폼은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스팀은 스윗 베이비 안티 그룹에 대해서 활동을 제재하지 않았고 이 그룹을 움직이는 디스코드 서버 또한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스윗 베이비의 CEO 킴 벨에어는 “우리는 게임 속 문제를 상상해 쓰는 작가들일 뿐, 실제 괴롭힘을 막는 전문가는 아닙니다. 하지만 플랫폼은 분명 더 나은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게임 내 변화 일터와 팬 커뮤니티 양 쪽에서 DEI가 거세게 공격받고 있기 때문에 이는 게임 내부의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 특히나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서 미국에서는 이제 성별은 단 두 개라고 못을 박았기 때문에 성소수자들의 피해는 커질 것이다. 게임에서 등장했던 트랜스젠더 캐릭터들은 이제 갈 곳을 잃을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는 과장된 위협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해 공개돼서 파장을 일으켰던 ‘프로젝트 2025’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프로젝트 2025는 보수성향의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이 공개한 문서로 향후 미국 보수정치의 전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문서에서는 공공연하게 젠더나 인종과 관련된 ‘평등정책’을 축소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힌다. 헤리티지 재단 대표 케빈 로버츠는 이미 트랜스젠더의 권리 옹호를 포르노그래피로 규정하고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프로젝트 2025가 그대로 실행된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맥락을 같이 하는 ‘두 개의 성별’ 행정명령을 발표한 마당에 <사이버펑크 2077>과 <발더스 게이트 3>에 트랜스젠더 캐릭터가 있다는 이유로 포르노로 취급될 수 있다는 예상은 웃어넘기기 힘들다. 여기에 플랫폼이 콘텐츠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질 수는 없다는 플랫폼 책임 보호법도 폐지하자는 제안이 있어서 결국 게임사들의 자기검열은 더욱 심해지고 다양성과 관련한 콘텐츠는 보기 힘들어질 수 있다는 예측은 힘을 얻는 중이다. 게임이라는 전장 게임은 이제 어린 세대만 즐기는 문화가 아니고 모든 세대가 즐긴다. 따라서 게임만큼 폭넓은 세대에게 영향을 미치는 매체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업계가 이데올로기의 가장 치열한 전장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보인다. 상업적인 이유로 혹은 문화적 트렌드로 지금까지 DEI가 힘을 발휘했다면 이제는 백래시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신호는 곳곳에서 포착된다. 최소한 트럼프의 정책적 추진력이 약화될 것으로 보이는 2026년 중간선거 전까지는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을 만드는 쪽과 게임을 즐기는 쪽은 어떤 선택을 할까에 대해서 고민은 커져만 갈 것으로 보인다. Tags: DEI, 트럼프, 북미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나성인) 홍영훈 캘리포니아에서 살면서 게임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에 출연하고 매체에 기고를 하며 많은 분들에게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패션부터 게임까지 분야에 상관없이 재밌는 글을 평생 쓰고 싶습니다.
- 2023 국정감사의 게임 이슈 톺아보기
지난 10월 한 달 동안 21대 국회의 마지막 국정감사가 진행됐다. 이 기간 동안 국정감사장에서 거론된 게임 관련 이슈를 톺아본다. 공교롭게도 딱 10개 이슈가 나왔는데, 9개는 주무 위원회인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다뤄졌으며 하나는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다뤄졌다. < Back 2023 국정감사의 게임 이슈 톺아보기 15 GG Vol. 23. 12. 10. 지난 10월 한 달 동안 21대 국회의 마지막 국정감사가 진행됐다. 이 기간 동안 국정감사장에서 거론된 게임 관련 이슈를 톺아본다. 공교롭게도 딱 10개 이슈가 나왔는데, 9개는 주무 위원회인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다뤄졌으며 하나는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다뤄졌다. 앞서서 요약하자면 크게 무게감 있는 이슈는 적었다. 아니, 이렇게 서술할 수 없다. 모든 이슈는 중요하다. 특히 게임계 노동 이슈가 그렇다. 펄어비스의 공용 PC - 유형: 노동. 위원: 정의당 류호정 초과근무를 방지하기 위한 PC 오프 제도라는 것을 많은 회사에서 활용한다. 주당 최대 노동시간인 52시간을 채우면 컴퓨터를 더 쓰지 못하게 하는 시스템이다. 검은사막의 개발사 펄어비스 또한 이 제도를 채용하고 있고, 이런 노동 조건 개선의 많은 부분은 게임 노동자 출신인 류호정 의원이 2020년 펄어비스의 부당노동행위를 지적한 것에 힘입은 바가 있다. 반면 금년에 의원이 가져온 제보는 펄어비스에서 초과근무를 우회적으로 하기 위한 꼼수로 공용 PC를 쓴다는 내용이었다. ‘15층에 있는 잠금 제한 없는 PC’의 이미지로 대표되는 이 방법은, 야간 혹은 금요일 이후의 초과근무 상황에서 개인 업무용 PC가 아닌 서버 업데이트용 공용 PC로 이동시켜 노동을 시키는 방법이다. 이 경우는 초과근무 기록이 남지 않기 때문에 초과근무 수당 산정 근거가 아예 없어지므로 ‘공짜 야근’이 되어버린다. 허진영 펄어비스 대표는 자신도 제보를 통해 인지했다고 답변했는데, 즉 자신이 시킨 방법이 아니라는 어필이었고, 관리를 강화했다고 답변을 했다. 하지만 의원은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며 차라리 공용 PC를 다 없애버리는 방안을 제안했다. 유인촌 문화체육부 장관은 이 질의에 대해, 게임과 영상 업계는 집중적으로 일을 하는 특성이 있어서 주 52시간 제한을 지키려면 다른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말을 했다. 다른 계획이라는 것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 언급했던, 크런치 모드 때 몰아서 일하고 그 후에 쉬어서 ‘평균 주 52시간 이하’를 맞추는 방법이 아니길 바란다. * 류호정 의원실이 공개한, 펄어비스가 이미 조치한 노동 여건 개선 사항 * 류호정 의원실이 공개한, 펄어비스 공용PC에 대한 언급 페미니즘 사상검증 - 유형: 노동/평등. 의원: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림버스 컴퍼니를 서비스하는 프로젝트 문에서 터진 사건이 규모를 불려 나가더니 국정감사장에 올라왔다. 남성 캐릭터 싱클레어에는 수영복 일러스트가 있는데 여성 캐릭터 이스마엘은 수영복이 아닌 잠수복이라는 점에 불만을 가진 남성 유저들이 온오프라인 시위에 나섰다. 이들은 해당 일러스트를 작업한 사람이 여성일 것이라 보고 색출을 시작했으나, 남성인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다른 여성 일러스트레이터를 찾았다. 그의 과거 트위터 행적 중에서 현재는 지워진 리트윗 하나를 찾았으니 그것이 페미니즘 지지 트윗의 리트윗이었다. 이 여성이 작업한 일러스트에서 특정 손 모양도 찾아냈는데, 병을 눈 앞으로 올리기 위해 두 손가락으로 집은 모양이었다. 이렇게 비약과 망상에 찬 논리가 완성되어 ‘페미 잘라라’는 시위를 벌인 것이다. 직접 회사에 찾아가는 시위를 맞닥뜨린 프로젝트 문은 7월 25일, 자진 퇴사의 형태로 해당 여성 일러스트레이터를 내보냈다. 여기까지의 과정은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사이버불링과 사상검증. 여기에 지지 여론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날조 정보도 유포되었다. 회사는 사상검증 사유가 아니고, 계약직이라 해고가 아닌 계약 종료이며, 사규에 따른 적법한 절차라는 해명을 내놓았다. 하지만 사건 전개를 보면 누가 보아도 사상을 이유로 자진 퇴사를 권고한 것이며, 이는 사규 이전에 지켜야 하는 사내 노동자 보호 의무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인셀 진상고객 이슈가 노동 이슈로도 확장이 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한국게임소비자협회라는 단체가 조직되었고, 게임업계에 대한 근로감독 청원에 12,745명의 청원인이 모였다. 이 청원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제출되었고, 우원식 의원이 이를 질의한 것이다. 김설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국정감사장에 출석하여 이 사건과 유사하게 게임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사이버불링 사건을 67건 제보 받았다고 증언했다. ‘페미인지 답하라’며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식으로 SNS 계정을 스토킹하면서 인격 모독을 지속적으로 가하거나 하는 것이다. 피해 제보자의 90%가 2~30대 청년이며 88%는 여성이었다. 반면 회사의 보호를 받았다는 경우는 4건에 불과했고, 방치가 50%에, 자발적 퇴사의 형태를 한 사실상의 해고가 41.3%였다. 여기에 업계 내에 팽배한 성희롱 발언, 성차별적 승진 고과와 연봉 체계, 임신 및 출산에 대한 불이익, 면접 과정에서의 페미니즘 사상검증 등의 사례를 증언했다. 업계 상황이 이렇지만 2021년 10월 14일 사이버불링을 포함하도록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이후 현재까지 게임회사가 받은 산업안전보건법 근로감독은 단 1건에 불과하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의 하형소 청장은 그동안의 재해 발생은 주로 제조업과 건설업 중심이었으며, 감정노동 분야에서는 콜센터에 주력했음을 인정했다. 우원식 의원은 특별근로감독을 주문하는 한편 산업안전보건법의 추가 개정 필요를 역설했는데, 특히 제보자 중 11명이 프리랜서 신분이라서 법의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맹점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국정감사가 끝나고 한 달이 지난 현재, 프로젝트 문 사건과 거의 유사한 형태의 사건이 넥슨에서 일어나고 있다. * 프로젝트 문이 일러스트레이터를 해고한 당일에 외국 유저들이 만들어낸 밈 게임물 등급관리 시스템 정비 필요 - 유형: 행정. 의원: 정의당 류호정 게임물관리위원회는 게임의 등급 심사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정부 기관은 아니지만 정부 업무를 위탁받은 만큼 정보 공개가 기본 사항이고, 그래서 게임물관리위원회에 등급 심사를 넣은 게임에 대한 정보는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다. 원칙이라 함은 정보 공개 유예를 선택할 수 있는 행정 서비스, 블라인드 제도가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런 절차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국내 게임사와는 달리 외국 게임사는 이 제도의 존재를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공식 발매 발표 이전에 등급 분류 사실이 공개된 퀘이크 1, 2 리마스터를 비롯해 사일런트 힐, 콜 오브 듀티, 레드 데드 리뎀션 등의 신작이 미공개 대외비 상태에서 출시 대기 중이었다가, 한국의 게임물관리위원회의 등급 분류 정보 공개를 통해 강제적으로 출시 정보를 공개 당했다. 블라인드 제도가 외국 게임사에게 제대로 안내되지 않고, 이런 강제 정보 공개가 반복이 되면, 한국에서의 등급 분류 신청을 늦게 해서 한국 내의 출시가 늦어지는 결과를 갖고 올 것이 예상된다. 블라인드 제도에 대한 안내를 영어 혹은 다른 언어로도 서비스하면 해결되는, 간단한 행정 절차 정비에 대한 질의다. 그리고 비슷한 정비 소요가 또 있었다. 게임사가 게임의 내용을 수정할 때도 게임 등급 심사를 새로 받아야 한다. 사행성 시스템이나 선정성 수위의 변경 같은 것을 등급에 반영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시행규칙에 관련 기준이 확실히 공지되어 있지 않아서 게임사는 단순 스킬 이펙트 변경, 폰트 변경, 색상 변경 정도의 경미한 수정이 있어도 내용 수정 신고를 하고 있다. 그 결과 게임물관리위원회는 매년 3천 건이 넘는 수정 신고에 대해 일일이 등급 분류를 해야 해서 행정력이 낭비되는 실정이다. 이 또한 시행규칙이나 시행령 정비로 해결이 될 수 있는 문제이며, 설사 법 개정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버그 패치 수준의 경미한 개정 정도가 필요할 것이다. 실제로 현재 규제개혁위원회에서 이 부분을 개선과제로 제시했고, 이상헌 의원 등이 게임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이다. 게임물관리위원회 내의 비위 - 유형: 비위. 의원: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사실 게임물관리위원회의 등급 심사 시스템은 심각한 비위 사실이 감사원 감사에서 밝혀진 상태다. 게임위는 자체등급분류 통합관리시스템이라는 것을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전산망 구축 사업이 지지부진했다. 1단계 구축의 진도율이 50%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팀장 한 명은 ‘사업비를 집행해야 하니 준공계를 달라’고 했고, 업체는 허위 준공계를 제출했다. 이 허위 준공계를 근거로 해서 사업이 완료되지도 않았는데 사업비가 나갔고, 검수 보고서도 만들어졌고, 관련 정산보고서도 허위로 만들어서 문체부의 내년 보조금도 받았고, 사무국장은 이 과정 모두를 결재했다. 리베이트 의혹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팀장은 현재 조폐공사로 이직했고 사무국장은 정직 처분을 받은 후 게임위를 떠났다. 감사원 감사 결과 이런 정황이 모두 밝혀지자 이 사무국장은 게임위 이름으로 허위 보도자료와 해명자료를 배포했다. 이 자료의 허위성을, 자체등급분류 통합관리시스템의 법적 근거를 만든 사람인 이상헌 의원이 국정감사장에서 언급했고, 해당 자료는 국정감사 도중에 삭제됐다. 그런데 의외의 사실이 여기서 폭로되었다. 사무국장은 7월에 정직 2개월 처분을 받았고 임기가 8월까지였기에 이대로 게임위에서 사라지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정직당한 사람이 회사에 나타나더니 사내 전산망에 접속을 했다. 8월 출근일 22일 중 20일을 출근했고, 광복절도 마찬가지였다. 정직이 되어서 대외비 정보 같은 것에 접근할 수도 없을 터인데 말이다. 김규철 게임위원장은 사무국장이 자기방어를 위해 6년 동안 근무한 데이터를 수집할 것이라고 했고 이를 막을 근거가 없었다는 답변을 했다. 이런 말 같지도 않은 대답에 이상헌 의원은 조직 장악력이 없는 거 아니냐, 즉 ‘사무처장이 활개치고 다니는데 막지 못한 거 아니냐’는 추궁을 했다. 교육용 게임 플랫폼 - 유형: 비위.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윤덕 의원이 콘텐츠진흥원의 비위 사실로 의심되는 부분을 질의했지만 콘텐츠진흥원이 반박을 설득력 있게 해내면서 결론이 나지 못한 이슈도 있다. ‘잇다(It-Da)’라는 교육 콘텐츠 플랫폼에서 구동되는 교육용 게임을 한국콘텐츠진흥원이 58억의 예산으로 개발했다. 김윤덕 의원은 개발된 게임들이 잇다에서 구동되지 않는다고 지적했지만 조현래 콘진원장은 구동된다고 맞섰다. 잇다를 통해서만 3천여 건, 총 25만 건의 접속 건수가 발생했다고 한다. 이 사업으로 개발된 게임은 본래 인문/자연/창의/예체능 4분야로 기획이 되었는데, 예체능 분야의 게임이 불합격되었다. 이 심사 과정의 디테일들이 석연치 않다고 김윤덕 의원이 주장했고, 조현래 원장은 부정했다. 두 차례의 질의 끝에 김윤덕 의원은 ‘우리 보좌관들이 운용이 안 되는 것은 우리가 문제가 있는 것이냐’는 질문으로 후퇴하고 말았다. 게임인재원 - 유형: 사업. 의원: 국민의힘 이용 게임 인력을 양성하는 기관 중에는 2019년에 개원한 게임인재원이 있다. 현재 콘텐츠진흥원장인 조현래 원장이 콘텐츠국장이던 시절 시작되었다. 2년 동안 예산은 30억씩 증액되었고 내년에는 50억 이상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개원 이후 총 365명의 교육생 중 1기의 취업률은 75%, 2기의 취업률은 87%다. 곧 제2캠퍼스가 준공되면 정원도 2배로 확대될 예정이다. 반면 3기 졸업생부터는 13~22%p 가량 취업률 지표가 감소했다. 이용 의원의 추측성 진단은, 교육 커리큘럼을 위탁한 업체가 바뀌어서 아니냐는 것이다. 2020년부터 교육 용역을 따내 내년까지 예정된 현재 업체인 파이어랩스는 이전에는 수주 실적이 0이었다. 즉 게임인재원 용역이 첫 수주 사업인 것이다. 이용 의원은 파이어랩스의 설립자가 콘진원의 노조 지부장 출신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전직자 편의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조현래 원장은 평가위원들의 평가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그럴 리가 없다는 입장이었고, 이용 의원은 종합감사 때 구체적인 자료를 갖다달라고 말했지만 종합감사에서 이 이슈가 다시 다뤄지진 않았다. 게임 교육의 지역 제한 - 유형: 교육.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윤덕 본지의 편집장 이경혁 평론가는 ‘우리아이 게임 사용설명서’라는 교양 예능 프로에 출연하여 총 10회 동안 게임 리터러시 교육을 강연했다. 이런 역할을 하는 직종을 게임물 전문 지도사라고 부르며, 게임물관리위원회에서 양성한다. 이들은 학생, 학교밖 청소년, 학부모, 교원 등을 대상으로 적정등급의 게임물 이용, 불법 게임물 이용 예방 교육 등을 한다. 2018년에 3명을 배출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37명이 양성되었다. (편집자 주: 편집장은 게임물 전문 지도사가 아닙니다.) 김윤덕 의원은 이들이 특정 지역에 편중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수도권에 11명, 부산/경상에 23명, 충청에 3명이고, 강원-호남-제주에는 아무도 없었다. 커리큘럼 개설 또한 편중되었다. 이 강사들을 파견하는 지원사업은 서울/경기/대구/부산에만 존재했고, 학교밖 청소년 대상 강연 또한 수도권/부산/대전에만 있었다. 금년 사업계획서조차 청소년 만8천 명을 교육 대상으로 확장하겠다고 했는데, 서울/경기/부산/대구만 언급되어 있었다. 김윤덕 의원과, 농어촌 대표자라는 정체성을 내세운 이개호 의원은 이런 편중이 동등한 교육 권리라는 헌법 가치와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같은 지역 제한이 등급 분류 모니터링 요원 채용에도 있었다. 채용 요건에는 지역 제한이 없었지만 세부 항목에는 부산과 수도권 오프라인 행사에 참석 가능할 것, 장애인은 부산직업능력개발원을 통해서만 모집, 관리인력 채용은 부산 본사 인근 사무실에서 등등의 제한이 있었다. 김규철 게임물관리위원장은 “우선 변명 같습니다만 예산의 한계 때문에”로 운을 떼었다. 예산이 한정되어 있고 그래서 기존 조직이 있는 지역 위주로만 사업을 하다 보니 강원/호남/제주가 빠졌다는 것이다. 최대한 소외 지역으로 지도사가 갈 수 있도록 현재의 예산 규모에서 예산 구성을 다시 짜겠다는 약속은 나왔다. * 본지 편집장이 고정 출연한 OGN의 ‘우리아이 게임 사용설명서’ 게임 제작 지원 예산 - 유형: 예산. 의원: 정의당 류호정 매년 문화체육부에서 콘텐츠진흥원을 통해 집행하는 예산 중에는 게임 제작 지원 사업이 있다. 금년에는 총 41개 업체가 선정되어 교부금을 받을 예정인데, 2차에 나눠서 지급이 된다. 그리고 2차 지원금인 38억 8천만 원이 한 달 넘게 집행이 지연 되는 중이다. 유인촌 장관은, 이제 막 취임했기 때문인지, 아직 파악을 못했다는 답변을 했다. 한편 유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이상헌, 류호정 의원이 언급했던 ‘게임업계 청년 간담회’에 조현래 콘텐츠진흥원장을 참석시켰는데, 여기서 조현래 원장은 예산을 청구했지만 아직 입금되지 않아서 늦어지고 있다는 말을 했다. 추진사항 점검 - 유형: 행정. 의원: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위원장이기 때문에 심도 깊은 질의를 하기는 어려웠던 이상헌 의원은 26일 종합감사에서 유인촌 장관을 상대로 간단한 추진 사항을 점검하는 시간을 잠깐씩 가졌다. GG 지난 호에서 정리했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 여부 에 대한 연구 용역이 그런 시간에 언급됐다. 통계청 민관협의체가 결론을 내기 위해서 발주한 연구 용역 중 하나가 질적 기준을 만족하지 못했고 그래서 후속 연구 용역이 발주된 상태다. 바로 그 거부된 연구에 대해 이상헌 의원은 ‘게임 중독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연구해 연구 목적을 어겼다면서 질타했다. 게임이용장애 찬성측 이론과 진단도구만 반영했고, 반대측 근거에 대한 검토가 없으며, 핵심 로 데이터(Raw Data)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유인촌 장관이 판교에서 ‘게임업계 청년 간담회’를 연 것에 대해서는, 스타트업의 어려움 중 하나라는 서류작업 간소화도 살짝 당부를 했다. 이런 민원 해결 또한 국정감사의 기능 중 하나다. 좀 더 중요한 점검 사항은 확률형 아이템 규제 시행령이다. 게임산업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내년 3월부터 게임사들은 아이템과 관련된 확률을 상세하고 쉽게 공개하는 것이 의무가 된다. 핵심 내용은 ‘쉽게’에 있다. 이 의무를 감시하는 모니터링단도 설치된다. 답변에서 유인촌 장관은 제작사들과의 의견 교환을 언급했는데, 이는 국내 영세 업체에게 부담이 되는 규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업계의 우려를 반영한 발언이다. 게임산업협회를 째려보기 - 유형: 사업. 의원: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게임산업협회의 강신철 협회장이 국정감사장에 출석했는데, 딱 한 번의 질의에만 출연했다. 이상헌 위원장이 최근의 게임계 산업 이슈에 대해 게임산업협회의 주도적 역할 수행을 주문하는 질의였다. 이상헌 의원이 요구한 쟁점은 네 가지였다. 1) 게임사 간의 소송/고소/고발/저작권 도용을 중재하라. 강신철 협회장은 저작권 존중과 보편적 사용이 가능한 요소 사이에서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게임물의 저작권 개념’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답변을 했다. 2) 신림동 무차별 살인사건의 원인으로 게임을 지적한 검찰에 항의하라. 협회가 직접 소통에 나서지 않은 이유는, 일단 사건의 본질을 흐릴 수 있어서였다고 한다. 또한 게임은 이제 국민의 80% 가량이 즐기는 문화산업이 되었다는, 국민을 신뢰하는 발언으로 답변했다. 3) 게임사 내부 직원의 비위 적발 개선 방안을 마련하라. 이는 카카오게임즈의 오딘 업데이트 계획 유출 사건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강신철 협회장이 할 수 있는 답변은 회원사들과 긴밀히 대화하여 열심히 하겠다는 말 외엔 없다. 4) 확률형 아이템 규제 시행령에 대한 입장을 말하라. 번역하면 개정된 규제에 반항하지 말라는 의미다. 강신철 협회장은 의미를 잘 파악하여 시행령에서 정해진 바에 따른 법의 의무를 충실히 다하고 사회적 소통도 노력할 것이라는 모범 답안을 했다. 여기에 더해 한국 게임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말로 회원사들에 대한 의무 방어를 수행했다. 강신철 협회장이 이상의 답변을 한 후에 덧붙인 말은, 정황상 이상헌 의원과의 약속된 세트 플레이로 보이는데, 사용자와의 소통 문제였다. 게임이 이제 청년기에 접어들었으나 기업과 이용자 간의 대화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강신철 협회장의 문제 의식이었다. 따라서 이제부터 게임산업협회에 질문해야 하는 것은 ‘올바른 대화’를 무엇으로 보느냐 하는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 기억의 조작술: 사건의 컨벤션으로부터 벗어나기로서 인디게임
장르는 게이밍에서 오랜 논쟁의 주제 중 하나다. 디지털게임의 매커닉과 외형은 무궁무진하지만 소설이나 영화, TV쇼와 마찬가지로 어떤 약속된 경로들이나 재현의 양태가 축적되고 있음다. 컨벤션(convention)은 창작자와 텍스트, 그리고 수용자 사이에 형성되는 하나의 묵시적인 관습으로 우리는 무수히 많은 텍스트들이 생산되고 반복적으로 읽히는 과정에서 공통의 컨벤션을 체화한다. 장르가 계약을 통해 창작자-수용자 모두 텍스트의 진행 과정을 사전에 공식화한다면, 컨벤션은 비공식적으로 모두가 따르는 불문율이다. 장르는 헌법처럼 작동하지만 컨벤션은 그 안의 관습법 혹은 윤리처럼 흐른다. 장르는 끌어당기는 반면, 컨벤션은 대류한다. 장르는 포뮬러(정형화된 공식)와 컨벤션을 만들고, 스타일과 결합하는 과정에서 스테레오타입과 클리셰를 생산한다. < Back 기억의 조작술: 사건의 컨벤션으로부터 벗어나기로서 인디게임 11 GG Vol. 23. 4. 10. 게이밍의 컨벤션 장르는 게이밍에서 오랜 논쟁의 주제 중 하나다. 디지털게임의 매커닉과 외형은 무궁무진하지만 소설이나 영화, TV쇼와 마찬가지로 어떤 약속된 경로들이나 재현의 양태가 축적되고 있음다. 컨벤션(convention)은 창작자와 텍스트, 그리고 수용자 사이에 형성되는 하나의 묵시적인 관습으로 우리는 무수히 많은 텍스트들이 생산되고 반복적으로 읽히는 과정에서 공통의 컨벤션을 체화한다. 장르가 계약을 통해 창작자-수용자 모두 텍스트의 진행 과정을 사전에 공식화한다면, 컨벤션은 비공식적으로 모두가 따르는 불문율이다. 장르는 헌법처럼 작동하지만 컨벤션은 그 안의 관습법 혹은 윤리처럼 흐른다. 장르는 끌어당기는 반면, 컨벤션은 대류한다. 장르는 포뮬러(정형화된 공식)와 컨벤션을 만들고, 스타일과 결합하는 과정에서 스테레오타입과 클리셰를 생산한다. 이러한 과정은 추리물에서 특히 투명하게 나타난다. 화려하고 어두운 대도시, 연쇄 살인사건과 무능한 경찰, 괴팍한 성격에 방대한 지식과 촉을 가진 탐정, 사건의 추적 과정에서 드러나는 구조의 모순과 지적 유희는 관객에게 편안하고 즐거운 긴장을 선사한다. 트렌치코트와 모자를 쓴 인물들의 하드보일드한 묘사와 혈흔이 낭자하는 폭력은 복잡함이 아니라 스타일로서, 이는 느긋하게 목적지까지 타고 가는 교통수단처럼 느끼게 만든다. 망설이며 입고 나온 옷이 튀지 않고 길거리 군중의 패션에 녹아듦을 느낄 때 우리는 안도한다. 사람들은 이 탑승 경험에서 특별한 것들을 기대하게 되는데, 그 집합적인 요구들 속에서 컨벤션이 나온다. 영화와 TV쇼는 모두 편안한 컨벤션을 만들기 위해 공식화된 장치들을 사용한다. 필름누아르 영화에서 총격전이나 살인 장면, 로맨스물에서 주인공들이 사랑에 빠지는 장면 등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고속촬영 연출 등이 대표적인 예다. * 좌측부터 윈스턴 처칠, 필립 말로(빅슬립), 닉 발렌타인(폴아웃4), 릭 데커드(2019블레이드러너). 컨벤션은 무수한 스테레오타입과 스타일들 사이의 점들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지만 공유된 관습의 선분들이다. 검은 양복에 톰슨 기관총을 든 남자가 나타났을 때, 중절모에 트렌치코트를 입은 남자가 담배에 불을 붙일 때 우리는 그 뒤에 일어날 사건들을 기시감처럼 느낀다. 기관총 난사 장면은 교차 편집이나 고속촬영으로 연출되거나, 담배 연기가 자욱한 어둠 속에서 권총이 무심히 발사될 것이다. 그렇다면 게이밍에서 컨벤션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될까? 기존의 루돌로지(ludology)의 논의들은 디지털게임을 텍스트라고 부를 수 있는지부터 의심했다. 이는 서사가 게이밍의 토대가 아니라는 단호한 부정에서 출발한다. 그렇다. 테트리스나 팩맨 같은 게임에서 어떤 서사를 읽을 수 없으며, 때때로 방대한 서사를 갖춘 게임에서도 종종 서사가 부재한 플레이 행위성이 출현한다. 올셋(Espen Aarseth)이 지적하듯이 게이밍은 해석이 아니라 탐색이 근간이 되는 실천이다. 이는 플레이의 행위성이 서사와 플롯의 시학을 읽어나가는 과정이 아니라 공간을 탐험하고, 오브젝트를 만지면서 변화시키는 조형행위에 훨씬 기대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게이밍에서는 컨벤션이 포뮬라에 앞서고, 조작이 문법에 우선한다. 인터페이스, 매커닉, 조작 디자인이 생각보다 훨씬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경로들을 만들 뿐 아니라 행위성을 창조함으로써 게이밍을 생산한다. 영화나 TV쇼에서 장르가 형성되는 순간은 포뮬러가 우선한다. 탐정이 살인사건을 수사하면서 마주하는 공권력 사각지대와 현실의 모순, 카우보이가 방랑 중에 들린 마을에서 악당들을 혼내준 뒤 석양 너머로 떠나는 구조(포뮬러)는 광활한 황야의 풍광, 12시 정각 고독한 두 남자의 권총결투, 질주하는 열차 위에서의 아찔한 몸싸움, 톰슨 기관총을 난사하는 갱스터들의 폭력(컨벤션) 등을 자아낸다. 반면 게임에서는 이 도식이 변주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실시간 전술 시뮬레이션 게임이라는 공통의 플레이 암묵지가 있고, 플레이를 만들기 위한 요소들(자원, 생산, 유닛)을 덧붙이고, 그 위에 두 진영 간의 전쟁이라던가 외계인-지구인 간의 투쟁 같은 구조가 덧씌워진다. 똑같은 어드벤처 게임이라도 그것이 정지된 평면의 포인트앤클릭으로 이루어지는지 1인칭의 시점에서 공간을 탐험하는 방식인지에 따라 상반된 포뮬러가 형성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흐름에는 정형화된 항로가 따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인디아나 존스〉나 〈원숭이섬의 비밀〉은 포인트앤클릭 어드벤처의 대명사이지만, 〈검은방〉 시리즈처럼 하드보일드하고 어두운 미스터리물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횡스크롤 슈터는 〈던전앤 드래곤〉 이나 〈황금도끼〉, 〈너구리〉, 〈소닉〉, 〈록맨〉 같은 호쾌하고 캐주얼한 스테이지클리어 게임이이나 캐슬바니아 게임에 최적화된 것처럼 여겨지지만 〈반교: 디텐션〉처럼 역사적 트라우마를 다루거나, 〈림보〉가 보여주듯 그로테스크한 기억의 알레고리 공간이 되기도 한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는 화끈한 전쟁의 스펙터클을 선사하지만, 〈스펙옵스: 더 라인〉은 전쟁의 스펙터클을 해체해 전쟁의 모순을 재조립한다. 요컨대 게이밍에서 장르와 컨벤션의 관계는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하는 것이 아닌 상부구조가 토대에 협상을 제안하는 관계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사건의 역사화, 기억의 조작술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고도로 노동 집약적이고 창의의 분업이라는 성격을 띠는 문화산업 자장에서 장르는 익숙한 산책로가 되기도 하지만 종종 뻔한 보물찾기가 되기도 한다. 게이밍은 이런 난점이 특히 두드러지는 분야일 것이다. 수많은 1인칭 슈터 게임, 롤플레잉 게임, 시뮬레이션 게임들이 있지만 우리는 이 다양하게 획일적인 난립 가운데서 어떤 환멸을 느낀다. 체육관에 가서 매일 똑같은 무게로, 똑같은 회수로 정해진 세트만큼 운동하면서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처럼 아주 균질적인 작용 반작용이 유희감각을 소구시킨다. 이 지난한 컨벤션의 루프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다양한 시도들이 지금까지 있어왔지만 중요한 것은 크게 두 가지다. 나는 게이밍의 핵심을 절차적 수사학이나 에르고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조작술’로 보기를, 그리고 확고하기 짝이 없는 컨벤션으로부터 벗어나는 경로로서 ‘인디’의 이념을 다르게 전유하기를 제안한다. 보고스트(Ian Bogost)가 정의하듯 게이밍은 ‘절차적 수사학(procedural rhetoric)’에 크게 기대고 있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인터페이스와 컨트롤러에 연동시킨 자신의 신체를 움직여 게임속의 공간·오브젝트를 조작한다. 플레이어는 탐색하고, 탐험할 뿐 아니라 조형하면서 스케일된 게임 시공간의 점들에 선을 연결해 나간다. 이 프로세스는 과정 추론적이고, 로지컬한 사고를 동반하며, 다분히 공학적이다. 게임은 기본적으로 텍스트이기 이전에 행위성(혹은 텍스트)을 출력하는 무형의 기계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풋이 있고, 아웃풋이 있으며 반드시 피드백을 동반한다. 따라서 인터페이스를 조작해 게임 내 디자인과 조응하는 과정들, 이를 설계하는 방식을 절차적 수사학이라 부른다. 절차적 수사학은 영화에서 몽타주, 소설에서 서술기법과 같은 위상으로 게임만의 독특하게 담화 요소이기도 하다. * 〈소닉〉(좌상), 〈더블드래곤〉(우상), 〈반교:디텐션〉(좌하), 〈림보〉(우하). 인디 게임의 래디컬한 상상력은 사건의 시간으로부터 벗어나 기억의 시간들을 재배치하고자 하는 어셈블리지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동일한 매커닉, 축적된 컨벤션을 전유하면서 기억을 조작하고, 나아가 자율적인 역사 인식의 계기들을 생성하는 ‘기억의 조작술’은 게임이 존재론적 한계(에르고딕 또는 절차적 수사학이라 여겨지던)로부터 벗어나 자율적이고 실천적인 행위성의 순간과 조우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절차적’ 혹은 ‘에르고딕’ 이라는 수사는 다분히 결정론적으로 들린다. 디지털게임이 컴퓨터와 알고리즘의 산물이라고 해서 반드시 계량적인 측면만 그 본질로 정의될 이유는 없다. 역사의 지형은 언제나 불연속적이고 위상학적이다. 마르크스의 오랜 전통이 가르쳐주듯이, 역사는 물질대사의 과정이지 추상이나 관념의 구성물이 아니다. 아주 촘촘히 수학적으로 짜여진 사고야말로 번번히 이데올로기라는 기만적 재현계를 만들어왔음을 우리는 안다. 사회진화론이 제국의 팽창 과정에서 우생학이라는 결과물을 만든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게이밍이 우리 두뇌의 어떤 로지컬한 뉴런들을 자극하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로직이 어떤 역사를 상상하게끔 만드느냐다. 우리는 파블로프의 개나 꼭두각시 인형이 아니다. 디지털 게임이 데이터 처리의 절차들로 이뤄졌다고 해서 역사를 떠올리지 못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이는 마르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무의지적 기억의 의미를 비선형적인 의식 흐름 속에서 발견하는 과정과 연동된다. 절차적 수사학 또는 에르고딕의 개념은 게임이라는 유희공간 안에서 사건을 다루는 기술이라 할 수 있으며, 우리는 산업적 컨벤션으로 벗어나기 위해 사건 너머의 숭고를 다루는 조작술을 필요로 한다. * 〈언폴디드: 동백이야기〉(좌), 〈페치카〉(우) 즉 사건은 역사가 될 필요가 있는데, 이 과정을 나는 ‘인디’ 의 개념으로부터 재전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건의 연속에서 엔딩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닌 사건의 배치 속에서 어떤 역사를 획득하는 것이다. 대만의 반세기 철권통치기를 응시하는 〈반교:디텐션〉, 독립운동가들의 고난과 투쟁을 그리는 〈페치카〉, 제주 4.3 대량학살의 파편들을 퍼즐풀이로 재구성하는 〈언폴디드: 동백이야기〉 등은 대문자 역사를 그린다. 좌우의 공간이동만이 허용되는 이들 게임의 공간을 탐색하면서 플레이어는 지금까지 알았던 과거가 2차원적인 평면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물을 조작하고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스테이지들이 바뀌면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인물들의 상념과 의식을 가로지르며 우리는 2차원에 강탈당한 에피스테메의 복잡성을 되돌려 받는다. 여기서 역사는 반드시 대문자 역사일 필요는 없다. 역사는 오랜 시간 잊고 지냈지만 가끔 섬광처럼 떠오르는 얼굴들 속에서 그 윤곽을 드러낸다. 그것은 집합적인 기억일 수도, 개인의 소중한 일상일 수도 있다. 대문자와 소문자 역사 사이에서 기억의 조작술은 파편적인 무의지적 기억들을 별자리로 만든다. 개인적인 것은 한편으로 정치적인 것이며, 중요한 것은 단순히 사건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로 하여금 참여하고, 스스로의 로직 속에서 퍼즐풀이를 하도록 기억의 조작술을 고무하는 것이다. 기억의 조작술은 한계지워진 게임의 절차들과 에르고딕에서 벗어나 역사의 위상학적인 시공간으로 행위자를 승급시킨다. 기억의 조작술은 공허하고 선형적인 컨벤션의 진형을 해체하고 우리를 역사의 물질 대사로 초대하는 게이밍의 강력한 전략이 된다. 우리는 인디 게임의 탈주적이고 실험적인 상상력 속에서 이를 발굴하고, 하나의 숭고로 기록해야 함을 깨닫게 된다. * 잊혀진 과거의 기억들을 재조립하고, 지양된 현재를 환대하는 기억의 조작술. 〈A Memoir Blue〉(좌)는 대사나 이야기 대신 마임과 음악으로만 어머니와의 추억을 연출하며, 〈Lieve Oma〉(우)는 할머니와 함께 숲을 걸으며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만 게임이 진행된다. “가장 개인적인 것(the personal)들이 가장 역사적인 것(the historical)”이다. 방법이자 프레임워크로서의 ‘인디펜던트’ 대다수 게임의 천편일률적인 컨벤션은 사건을 단지 흘러갈 뿐인 연속적인 것으로 제시하며, 그 가운데 불구화된 행위성을 주조한다. 플레이어는 관성적으로 게임을 조작하고 예측 가능한 결말을 본 뒤 그것을 잊어버린다. 사건의 끝은 망각이다. ‘인디’ 는 사건들을 재배치해 우리의 기억을 오래 지속되는 미래로 인도하는 방법 중 하나다. 나는 인디 게임을 비상업적, 소규모 개발이라는 유형학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하나의 방법이자 프레임워크로 보기를 주장한다. 인디펜던트는 단순히 아마추어리즘이나 1인 개발, 크라우드펀딩 등으로만 정의될 수 없다. 대규모 자본으로부터 독립한다는 것은 경제적인 심급을 포함해 창작의 인습으로부터도 탈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스팀, 에픽게임즈 등 메이저 게임 플랫폼들과 대형 개발사들이 인디게임 개발과 판매를 지원하면서 게이밍 생태계에서 인디의 개념은 기술적으로 변해버린 감이 있다. 공고한 사회질서에 도전하는 반문화 정신, 문화 창조의 자율성과 현실 변혁을 촉구하는 메시지, 상업적 관습을 깨트리는 형식파괴 및 새로운 미학을 제시하는 작가주의는 역사의 어느지점에서나 인디펜던트의 덕목이었다. 불행히도 게이밍은 여전히 산업적 이해와 인디 사이의 어느 과도기적 지점에 있다. 물론 경제적 요인은 여기에 큰 영향을 미치기는 한다. 접근성이 뛰어난 유니티와 언리얼엔진, 오픈소스 제작환경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게임 개발은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적어도 현재의 상태를 본다면 아직 인디게임이 까이에 뒤 시네마나 펑크, 미학적 대중주의라는 특이점에 도달하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현재 인디게임의 환경은 사실상 산업예비군이나 스타트업, 혹은 포트폴리오 연습의 장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매년 관성적으로 열리는 인디 게임 전시나 비평은 개발자들로 하여금 산업의 컨벤션을 지양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동조되도록 강요한다. 이 틀을 깨야만 할 때다. ‘인디펜던트’는 자본의 출구전략이나 편리하게 부르는 콜택시가 아니다. 한정된 자원 속에서 경로와 로직 사이에 발걸음들을 만들어내는 인디의 급진적인 노력들을 사려 깊게 관찰하고, 그것들이 온연히 발휘될 수 있도록 고무할 필요가 있다. ‘인디펜던트’는 하나의 이념이고, 망설이는 조작 가운데 기억이 역사가 되는 과정이며, 그 안에서 우리는 다른 삶의 잠재태를 건져 올려 인기척으로 소묘한다. 발터 벤야민이 적었듯이, “인식의 진보는 결을 거슬러 역사를 솔질하는 행위에서부터 출발한다.” 인디 게임의 번득이는 아이디어들을 세계를 인식하는 한 프리즘으로서 주목해야만 하는 이유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디지털 문화연구/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신현우 문화연구자, 문화평론가이며 기술비판이론과 미디어 정치경제학을 전공했다. 게이밍, 인공지능, 플랫폼, 블록체인을 둘러싼 문화현상을 연구하며 서울과기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한다.
- 〈디아블로3〉는 왜 ‘똥3’, ‘수면제’가 되었는가?
누구든 이 글의 제목이 표시하고 있는 의문에 현혹되어 본문을 읽기 시작한 독자라면 그의 추억 속에서 디아블로가 스타크래프트와 마찬가지로 ‘민속놀이’에 준하는 반열에 올려져 있음직하다.1) 특정 게임을 민속놀이에 비유하는 표현은, 물론 오래도록 익숙해진 대상에 대한 게이머들의 애정에 기반을 두고 만들어진 밈 중 하나이다. 그러나 어느 로맨스도 항상 분홍빛으로만 채색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 애정은 옅어지고 힐난과 혐오의 감정이 찾아오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때마다 변하게 된 것은 ‘나’와 대상이거나 양자가 달라지면서 마땅히 뒤따른 관계의 양상이지 ‘사랑했다는 사실’이 아니다. < Back 〈디아블로3〉는 왜 ‘똥3’, ‘수면제’가 되었는가? 05 GG Vol. 22. 4. 10. 이 글은 〈게임과 공포 서사를 통해 살펴본 언어화와 공포의 비대칭적 상관관계에 대한 비교연구: 〈디아블로3〉, 현대 괴담, 고전 원귀서사를 중심으로〉(비교문학 86, 2022.2.)라는 표제로 공개된 논문을 웹진 형식에 맞추어 적절하게 개고한 글이다. 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815374 ‘갓겜’의 전락 누구든 이 글의 제목이 표시하고 있는 의문에 현혹되어 본문을 읽기 시작한 독자라면 그의 추억 속에서 디아블로가 스타크래프트와 마찬가지로 ‘민속놀이’에 준하는 반열에 올려져 있음직하다. 1) 특정 게임을 민속놀이에 비유하는 표현은, 물론 오래도록 익숙해진 대상에 대한 게이머들의 애정에 기반을 두고 만들어진 밈 중 하나이다. 그러나 어느 로맨스도 항상 분홍빛으로만 채색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 애정은 옅어지고 힐난과 혐오의 감정이 찾아오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때마다 변하게 된 것은 ‘나’와 대상이거나 양자가 달라지면서 마땅히 뒤따른 관계의 양상이지 ‘사랑했다는 사실’이 아니다. * 대명사가 된 ‘똥3’. Google을 이용하여 ‘똥3’를 표제어로 삼아 검색해보면 무려 3천만 건 이상의 〈디아블로3〉에 관한 페이지가 결과로 주어진다(2022년 3월 현재 기준). 여기서 검토 가능한 정보들 대다수가 ‘똥3’을 곧 〈디아블로3〉의 대명사로 쓰고 있다는 사실이 여실히 확인된다. 이 글이 일단 주목하고 있는 것도 그러한 변이의 순간이다. 2012년, 〈디아블로3〉가 발매되었다. 시리즈의 전작과 신작 사이에 놓인 십여 년의 격차는 팬들의 기대를 더욱 부풀렸다. 출시 직후부터 〈디아블로3〉는 블리자드 사의 다른 작품과 비교했을 때도 유례없이 많은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2) 그만큼 성공가도를 달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유저들 의 평가는 기존과 사뭇 달랐다. 일각에서는 “〈디아블로3〉를 하면 할수록 졸음이 쏟아진다”라고 호소했으며, 캐릭터가 죽었는데도 이미 유저는 태연히 잠든 사진들이 ‘유머 짤’로 퍼지기 시작했다. 한 웹진에서는 〈디아블로3〉를 비롯해 이른바 ‘수면제’라 불리는 게임들의 숙면 유도 효과를 검증하는 내용으로 아예 기사 한 꼭지를 채웠다. 3) 그 어떤 저예산의 아마추어 게임일지라도 지루함을 분명히 몰아내기만 한다면 이 점 하나만으로 그 게임은 자기의 탁월성을 증명한다. 기본 조건을 〈디아블로3〉가 어겼다고 여기는 일부 유저들은 게임 타이틀을 아예 ‘똥3’이라고 바꾸어 부르기도 서슴지 않았다. 이러한 흐름은 〈디아블로3〉가 잠을 부른다는 평에 대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공감하였음을 방증하면서도, 일종의 전락이라 이르기 충분한 낙폭을 또한 보여주고 있다. 상당한 기대감을 아우르면서 출시 직후까지 ‘갓겜’으로 불리던 상황이 어느새 ‘수면제’, ‘똥3’이라는 조롱 성격이 가득한 밈의 유행으로 대체된 것이다. * 죽었습니다. 4) 위 이미지들은 PC방에서 〈디아블로3〉 플레이 중에 잠들어버린 유저와 플레이 화면을 지켜보던 중에 잠들어 버린 고양이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중 캐릭터의 사망 상태를 알리는 문장은 게임 자체에 대한 은유로도 쓰인다. 공포의 공백: 무섭지 않다 〈디아블로3〉는 왜 ‘똥’이 되었는가? 지루함과 잠은 결과이지 원인일 수 없다. 사람들은 몇 가지 요인들을 꼽아보기도 한다. 시스템적으로 전보다 단순해진 레벨링, 한정된 배경의 던전을 계속 전전하는 파밍, 이 과정의 반복이 지나친 나머지 화면 연출이 암만 화려하고 맵이 아무리 임의로 생성되더라도 그것들을 단조롭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유저의 인지 상태 등이 그것이다. 반복 속에서 차이가 희소해질수록 지루함이 찾아드는 법이다. 그러나 반복은 전작들에도 포함되어 있던 요소였고 더욱이 반복으로 인해 결국 잠들고 말았다는 평은 전작들에 대해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주의해서 기억하도록 하자. 물론 예의 레벨링 및 파밍에서 일어난 어느 변화가 신작의 흥미를 한껏 줄여버린 원인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들만 고려할 때 쉽게 놓치고 마는 부분이 있다. 애초에 이 시리즈가 공포 요소를 상당히 강조하는 게임이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따라서 〈디아블로3〉가 전작에 비해 더 이상 플레이 중에 공포가 체험되지 않는다는 지적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여전히 있는 것들이 현재에는 달리 작동해서 가져온 결과에 대해 논하는 것보다, 있었던 것의 부재가 지금 가져온 결과에 대해 먼저 살피는 것이 사태의 중층성을 파헤치는 초석일 수 있다. 요컨대 1996년 마지막 날에 발매된 〈디아블로〉는 던전크롤링과 핵앤슬래시의 구현에 충실했다. 가공할 만한 몬스터, 과장된 유혈, 잔혹하게 도살된 인간들의 형상이 탐험 공간 곳곳에 비치되어 있어서 공포와 카타르시스를 체험하기에도 알맞았다. 이를테면 특유의 외침과 함께 등장하는 부쳐(butcher)와의 첫 맞대결에서 압살당한 경험은 여전히 유저들 사이에서 소름 끼치게 충격적이었다고 회자될 정도다. 2000년에 발표된 〈디아블로2〉는 여전히 신비를 잃지 않은 초월자들의 등장과 암흑에 가까운 공간 연출 등으로 유저의 긴장을 적절히 고조시키고 공포감을 부풀리는 데에 많은 신경을 썼다. 문제는 3편에서 이런 장점들이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는 것이다. 무엇이 과연 공포를 몰아냈을까? 이 자리에서는 다소 생경하게 들릴 수 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바로 ‘언어화’다. * 부쳐(도살자)와 그의 소굴(〈디아블로 1〉). 훼손된 시체가 즐비한 방에 들어서자마자 ‘ah, fresh meat!’라고 외치며 달려드는 막강한 적에 압도되어버렸던 그 순간을 유저들은 절대 잊지 않는다. 이미지출처: Steve Burke, “Most Memorable Moments of the Diablo Franchise.” Gamers Nexus, 2012.5.14. www.gamersnexus.net/gg/844-most-memorable-diablo-moments 공백의 공포: 호러 바쿠이 디아블로 시리즈가 후속편을 이어가면서 나타낸 변화의 방향은 어느 정도 일관성을 띤다. 바로 온갖 언설과 언어적 존재들이 서사의 빈자리에 들어서며 늘어난다는 점에서 그렇다. 1편은 ‘최하층에 다다라 거대한 악을 물리친다’라는 단순한 목적을 곧 서사의 골자로 삼았으며 게임 체험의 거개를 전투로 채웠다. 유저가 가야 할 곳, 해야 할 일 등의 정보가 NPC들에 의해 거의 최소한으로 주어지고, 악마의 출처나 살육의 목적도 모두 베일에 감춰져 있었다. 그리고 디아블로라는, 게임 타이틀이 가리키는 악마 자신이며 최대 숙적인 그는 마지막에 쓰러질 때까지 그 이름을 제외하고서 아예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정도로 비언어적이다. 1편에 비하여 2편은 세계관을 확대하고 세부적인 요소까지 규정했다. 선택 가능한 영웅 캐릭터들이 추가되었고 다변화된 지역을 배경으로 디아블로를 비롯해 그 형제들이 등장한다. 악마는 사실 오래전부터 천사와 대립하여 싸우고 있었으며, 더 강한 무력을 얻어 이 같은 쟁투에서 승리를 취하고자 인간 세계에 혼란을 몰고 왔다는 전사(前史)도 제시되었다. 이렇게 더 많은 사건과 내화(內話)를 배치하여 서사 구조를 복잡하게 만들면서도 다른 초월자의 존재, 세계의 기원 등 해명되지 않은 것들을 여럿 남겨놓음으로써 다음 편을 기대하도록 안배하기도 했다. 3편에서는 이야기의 구체성을 더하고 볼륨을 키우는 이러한 경향성이 굳어진다. 더 많은 캐릭터와 지역, 더 장구한 역사와 아티팩트, 다원화된 세계들 간의 더 깊은 갈등, 더 교묘한 음모, 더 복잡한 사연들이 새롭게 엮이고 관계를 형성한다. 작중 인물의 발화와 대화는 물론, 책자나 일지로 가장된 독백뿐만 아니라 시네마틱 영상, 내레이션을 통해, 이 이야기-언어는 인물 표현과 서사 부분에서 풍부함과 상세함을 더한다. 작중 해설가나 다를 바 없던 역을 담당한 캐릭터 케인이 죽음으로 퇴장한 이후에도 설명과 다변의 과잉상태는 달라지지 않는다. 살육과 폭력을 과묵하게 자행하던 악마도, 그런 악마를 저지하기 위해 분주하던 천사도, 모두가 자기에 대해 말을 (그것도 많이!) 하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한다. 그리하여 디아블로 세계관이 낱낱이 해명된다. 그런데 이렇게 추가된 언설들이 아무리 다양해지고 서로 교차하더라도 그것들 사이엔 공통된 특징이 있다. 설명이 없던 부분에는 이야기를, 말이 없던 존재에게는 육성을 부가하는 방식으로, 이전 작들이 남겨놓은 서사상의 공백을 모두 메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적인 두려움을 제작진들이 해소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는 점이다. 블리자드 사의 이 같은 행위 양상을 가리킬 수 있는 오랜 표현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호러 바쿠이’이다. 이 관용구는 언필칭 그대로 ‘공백(Vacui)에 대한 공포(Horror)’를 의미하며, 어떤 여백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모든 자리를 패턴으로 채우려고 하는 특정 시기의 예술 양식이나 기법을 지시하기도 한다. 문제는 빈자리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 채움의 강박이 과도한 언어화를 낳았으며 정작 게임이 전달할 수 있는 공포 정서를 축출해버렸다는 데 있다. 어째서 그러한가? 우선 이러한 현상이 게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여러 영역에서도 일반적으로 발견될 수 있다는 점을 일러두기로 한다. * 호러 바쿠이 혹은 채움의 강박. Jean Duvet, 〈The Fall of Babylon〉 이미지 출처: Mads Soegaard, “Horror Vacui: The Fear of Emptiness.” Interaction Design Foundation, 2020.9. interaction-design.org/literature/article/horror-vacui-the-fear-of-emptiness . 16세기에 활동한 뒤베의 판화는 도상의 모든 면을 특별하게 의도한 알레고리로서 의미를 갖추도록 만들고 있다. 언어화는 공포를 잠식한다 “공포는 총성(bang)이 아니라 그것의 예측(anticipation)에서만 일어난다”라고 진술한 것은 히치콕이었다. 공포의 감정은, 감각과 언어로서 인지되는 사태의 바깥에 인간의 상상력이 미쳤을 때라야 어떤 예기(豫期)와 함께 발생한다는 점에서 그는 진실을 말하고 있다. 그 어떤 규정성과 동질성 너머에 놓인 상상의 공간, 이 빈자리야말로 공포가 당당하게 차지하게 되는 자신만의 영토다. 이는 공포가 공백에서 발생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언어는 근본적으로 의미의 담지체로서 규정성을 발생시킨다. 어떤 사태를 포착한 단 한 장의 사진에 인과관계가 담긴 이야기를 덧붙이자 그것이 사태의 의미로 대체돼 버리는 경우를 우리는 경험한다. 또한 언어는 인간의 인식, 사고, 정서, 행동 등에 담긴 질서를 근본적으로 반영한다. 그래서 어떤 존재가 언어를 구사하는 언어적 존재로 재현된다는 것은 그 존재가 이미 인간적 질서를 공유하고 그것에 동참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언어화는 규정성을 부여하거나 이질적 거리를 단축함으로써(즉 동질성을 확보하게 함으로써) 빈자리를 채운다. 이러한 사실들은 〈디아블로3〉의 과잉된 언어화가 이미 잘 드러내주고 있기도 하다. 세계관, 전사(前史), 배경에 대한 다변들은 결국 게임 내 세계, 악마와 괴물, 천사에게서도 신비함을 탈각한다. 그들이 미지의 존재가 아니게 됨으로써 그들은 공포의 영역에서도 추방을 당한다.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구석을 찾아볼 수 없게 된 대상은 신비하고 공포스러운 존재가 아니라 성가시거나 혹은 친근한 존재가 될 뿐이다. 경외와 두려움은 동근원적이다. 그리고 미지의 존재와 세계는 그 정체가 밝혀짐과 동시에 경외와 두려움의 대상이기를 멈추고 우리에게 친숙해지고 만다. “ 그래서 떨어졌습니다. 내 의지로.” (〈디아블로3〉). 대천사 티리엘은 스스로 날개를 찢고 지상으로 떨어진다. 이 하강은 초월적이고 비의적 존재에서 인간적이고 탈신비화된 존재로의 변신이기도 하다. 미지의 대상이 설명됨으로써 정체가 폭로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언어적 존재로 변하여 묘사될 때도 마찬가지의 결과가 이어진다. 악마와 천사들은 〈디아블로3〉에 이르러 무척이나 수다스러운 존재로 나타났다. 그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꺼리는지, 무엇을 의심하는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무엇을 두려워하는지에 대해 그들은 말한다. 이와 동시에 악마와 천사는 공포를 일으키는 존재가 아니라 공포에 사로잡히기도 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게다가 악마들이 두려워하는 대상은 그 악마를 격퇴시키기 위해 진격하고 있는 유저 자신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유저가 공포를 느끼기를 기대하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이다. 우리는 공포에 떨고 있는 다른 누군가를, 심지어 우리 자신이 유발하는 공포에 의해 떨고 있는 그를,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민속놀이’의 부흥을 기대하며 지루함이나 잠은 공포와 대척점에 서 있다. 어떤 것이 충분히 음산하고 무섭다면, 그것은 우리를 잠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다. 공포를 다루는 많은 매체들이 ‘잠 못 드는 밤’을 강조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다른 요인들도 물론 고려해야 할 테지만 ‘수면제’나 ‘똥3’이라는 밈에는 〈디아블로3〉의 과도한 언어화로 인해 공포를 재현하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이 반영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공포는 공백과 짝을 이루어 실현되며, 언어화는 공백을 메움으로써 공포를 비워버린다. 이처럼 단순한 진실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수많은 괴담이나 호러 영화를 두고 의식적으로 연결하여 공통된 특성을 골라내 보지 않고 있었을 뿐이다. 해원(解冤)을 모티프로 삼은 고전적인 귀신이야기는 어떠한가? 사람을 사로잡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악귀는 그저 공포의 대상일 수 있지만, 그 악귀가 어떤 원한에 사로잡혀 있는지 스스로 호소하며 탄원하는 순간 우리의 두려움은 줄어들고 급기야 달아나버리기까지 한다.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는 ‘나폴리탄 괴담류’들은 어떠한가? 그중 성공적인 것들은 이야기-언어로 공포가 둥지를 틀 수 있는 인지상의 공백을 만드는 기교를 구사한다. 즉 규정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그것을 벗어난 상대적인 빈틈을 절묘하게 주조하면서, 그 빈틈에 어떤 경악할만한 것이 있을지 우리가 예감하도록 하여 심리를 불안하게 자극하다가 서서히 스며드는 공포 한가운데로 우리를 포획하고 마는 것이다. 공포 구현에 있어 놀라움과 즐거움을 선사했던 여타의 매체나 작품들이 후속편에 이르러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게 된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이를테면 〈둠〉은 호러 요소로 과거 큰 인기를 끌었고 세기를 넘어서도 리부트를 비롯하여 새로운 후속편들을 다수 이어갔다. 그러면서 서사의 연장ㆍ삽입, 세계관ㆍ인물ㆍ사물에 관한 설정과 관계망의 추가를 피할 수 없게 되었는데 공포가 발원하는 자리인 공백을 그러한 설명과 규정성의 과잉이 잠식해버린 결과에 대해 이 자리에서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편 지난 여름 〈디아블로2 레저렉션〉의 공개는 오랜 향수와 함께 신선한 열기를 불러왔다. 〈디아블로3〉가 출시된 지도 벌써 십수 년이 지난 상황에서 시리즈 후속작에 대한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제작진이 네 번째 작품을 더욱 어둡고 사실적으로 표현하겠다고 약속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5) 이것이 인상적인 까닭은 3편에서 공포의 부재를 가져온 그들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고 앞으로는 더 음산하고 공포스러운 작품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디아블로4〉가 그들의 계획대로 ‘갓겜’의 진면목을 이어가는 데 성공하려면 언어적 미니멀리즘은 불가결하다. 1) 특정 게임을 민속놀이로 일컫는 용례 가운데 하나는 다음 기사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삼대가 즐기는 한국 민속놀이 ‘스타크래프트’〉, 《게임톡》, 2019.1.29. gametoc.hankyung.com/news/articleView.html?idxno=50637; 리마스터 판 〈디아블로2: 레저렉션〉이 2021년 여름 공개된 후 일대 선풍이 한동안 일어 디아블로 역시 민속놀이에 비유하는 움직임도 없지 않았으나 대세를 이루지는 못했다. 2) 〈디아블로3〉는 출시 첫날 350만 장, 1주일 후 630만 장 판매량을 보였다. 발매가 이뤄진 2012년 한 해 동안의 글로벌 판매량은 약 1,200만 장으로 추산되었는데, 이는 계측이 이뤄진 2013년 당시 기준으로만 보아도 전작 〈디아블로〉와 〈디아블로2〉를 합친 것을 압도한 수치였으며, 〈스타크래프트〉의 기록마저 넘어선 것이라고 한다. 〈'디아블로3' 1200만 장 판매, 확장팩 발표 없었다〉, 《머니투데이》, 2013.2.8. news.mt.co.kr/mtview.php?no=2013020814008169621 3) 〈한 판만 해도 꿀잠…최고의 수면제 게임은?〉, 《데일리게임》, 2016.11.2. game.dailyesports.com/view.php?ud=2016110117545981392_26 4) 이미지들의 출처는 다음과 같은 웹페이지들이며, 오래전부터 이들 밈이 광범하게 유포되었기에 원출처를 확인하기가 매우 어렵다. 〈부작용 없는 완벽한 수면제〉(유머 게시판 사용자 콘텐츠), 《루리웹》, 2018.10.04. 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744/read/39367858, 〈죽었습니다〉(유머 게시판 사용자 콘텐츠); 《이토랜드》, 2019.9.12. etoland.co.kr/bbs/board.php?bo_table=etohumor02&wr_id=650119&mobile=1 5) Andy Chalk, “Blizzard is trying to make Diablo 4 characters look cool while keeping them ‘grounded in reality’.” PCGAMER, 2021.7.1. pcgamer.com/blizzard-is-trying-to-make-diablo-4-characters-look-cool-while-keeping-them-grounded-in-reality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장지영 한국어문학을 전공으로 삼아 주로 근대 비평과 문화사를 공부했으며 식민지 시기 및 해방기의 학술과 관련한 지성사 연구를 이어왔다. ‘게임보이’로서 지냈으나 게임을 잘/많이 하지/알지 못했음을 뒤늦게 안 게이머이다. (철학연구자) 최건 철학연구자로서의 정체성과 게임애호가 및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강의, 강연, 연구, 저술, 번역 활동에 임해왔으며, 현재는 인하대 등에서 학생들과 사유를 공유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 [공모전수상작] 크리퍼가 부수고 간 자리
마인크래프트(Minecraft)는 겉시늉의 세상이다. 엉성한 외피 이미지로 포장된 네모난 객체들이 생태계를 이룬다. 또한 현실과 비현실, 매끈함과 모서리, 플레이어와 데이브(주인공), 원형과 변형 등 양립 불가능한 것들이 공존한다.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는 데이브의 몸으로 젖지 않는 비를 피해 귀가한다. 그리고 온기 없는 모닥불을 피워 몸을 녹인다. 방 안이 따뜻한 빛으로 물들면, 솜 없는 침대에 누워 깨어 있는 채로 잠에 든다. < Back [공모전수상작] 크리퍼가 부수고 간 자리 20 GG Vol. 24. 10. 10. 마인크래프트(Minecraft)는 겉시늉의 세상이다. 엉성한 외피 이미지로 포장된 네모난 객체들이 생태계를 이룬다. 또한 현실과 비현실, 매끈함과 모서리, 플레이어와 데이브(주인공), 원형과 변형 등 양립 불가능한 것들이 공존한다.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는 데이브의 몸으로 젖지 않는 비를 피해 귀가한다. 그리고 온기 없는 모닥불을 피워 몸을 녹인다. 방 안이 따뜻한 빛으로 물들면, 솜 없는 침대에 누워 깨어 있는 채로 잠에 든다. 전술한 과정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맞닿아 있지만 엄연히 다르게 작동한다. 현실과 다른 인지 체계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또한 가상의 객체와 플레이어 사이에 생성되는 보이지 않는 관계망은 현존감(presence)을 발생시킨다. 그리고 이는 어느새 스크린 밖으로 나와 현실 위에 포개진다. 마인크래프트의 겉시늉은, 크리스마스트리에 걸린 장식용 선물 상자와 같다. 그저 작고 가볍게 포장된 이미지로서의 역할을 한다. 솜 없는 침대 현실 세계는 매끈한 표면의 사물로 가득하다. 그러나 마인크래프트 속 세상은 모두 블록 형태로 모서리를 갖고 있다. 입체의 면으로만 이루어진 객체들은 간신히 식별 가능한 범위 내에서 (비)현실적으로 단순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럼에도 이 부분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데 있어 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사물을 인지할 때 그다지 많은 정보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 속 사물은 물리적인 형상을 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 모든 사물은 형상과 관념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사물은 겉을 이루는 외형보다 관념으로서 존재하는 순간이 더 많은 듯하다. 그렇기에 마인크래프트의 단순한 묘사는 대상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인지함에 있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플레이어의 상상력이 부족한 부분을 알아서 채워 넣기 때문이다. 이렇듯 마인크래프트의 블록 세상에 들어서면, 우리의 인지는 저절로 전이된다. 누구도 네모난 고양이에 대해 이의제기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전이는 트랜스포메이션(transformation)이다 [1] . 우리가 기존에 알던 것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뒤바뀌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 부분이 맞닿은 상태로 변형되어 또 다른 형상을 갖게 되는 것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변형이 되어도 원형을 상기할 수 있다. 달리 말해 인지의 지평이 확장되는 것이다. 마인크래프트 속 세상을 거닐면, 기억 저편에 담긴 현실 세계의 이미지가 무수한 형태로 분절되어 떠오른다. 그리고 확장된 인지 체계 위에 포개진다. 무엇이 원본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일은 무의미해 진다. 사실 인지의 전이는 마인크래프트에만 해당된다기 보다 비디오게임 전반에서 일어난다. 상하좌우로만 이동하는 납작한 이차원 게임을 떠올려 보자. 이차원의 세계는 우리가 경험해 본 적 없는 곳이다. 그러나 비디오게임 안에서는 이러한 제약이 문제 되지 않는다. 또한 이차원 게임에서는 마인크래프트보다 고도로 압축된 형상의 객체들이 등장한다. 우리는 두 개의 네모난 픽셀만 보고도 인간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 이렇듯 비디오게임 내부에서는 고도로 압축된 묘사가 추상적인 레벨에서 소화 과정을 거친다. 인지의 전이는 우리가 가진 고정된 관념과 사고, 그리고 이미지로부터 해방을 선사하며 확장된 감각의 세계를 연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젖지 않는 비에 추위를 느끼고, 온기 없는 벽난로에서 몸을 녹이고, 솜 없는 침대에서 푹신함을 느낄 수 있다. * 마인크래프트의 침대 [2] 네모난 고양이의 골골송 [3] 비디오게임 속 객체들은 명백히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현존감을 기반으로 게임 속 가상의 객체들과 지각적으로 관계를 맺는다. 비디오게임에서의 현존감은 말 그대로 현실을 넘어 게임 안에 실제로 존재하는 듯한 상태를 경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경험은 가상 환경 내부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이는 물리적인 공간이 아닌, 플레이어가 주관적으로 감각하는 심리적인 공간에 가깝다 [4] . 눈앞에 펼쳐지는 세상은 데이터로 이루어진 가상의 우주로, 현실과 동일한 물리적 실체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존감은 비디오게임으로부터 느낄 수 있는 현실감 외에도, 플레이어와 가상의 객체 사이에 생성되는 사회적 관계를 포함한다. [5] 마인크래프트의 싱글 플레이 모드는 온 우주를 플레이어 혼자 쓴다. 플레이어를 제외한 다른 생명체는 모두 NPC(Non Player Character)다. 이러한 점이 플레이어에게 자유로움과 안락함을 주기도 하지만, 공허함과 외로움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마인크래프트에 등장하는 다양한 생물, (비)공격적인 몹(mob), 마을 주민은 매우 단순한 행동으로 프로그래밍된 NPC이긴 하지만, 플레이어에게 살아있다는 것을 감각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 마인크래프트의 고양이 [6] 플레이어는 여러 동물과 상호 작용할 수 있다. 어느 정도 신뢰를 쌓으면 반려동물처럼 함께 지내는 것도 가능하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마인크래프트의 고양이는 생선을 좋아한다. 플레이어가 바다에서 생선을 낚아 고양이에게 지속적으로 가져다주면 점차 마음을 열고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네모난 상자에 다리와 꼬리가 달린 투박한 고양이는 야옹 소리를 내며 사뿐하게 걷고 침대 위에서 시간을 보낸다. 긴 채집 끝에 집으로 돌아가 고양이를 마주하면, 보드라운 반려묘의 감촉이 떠오르며 골골송이 들려오는 듯한 착각이 든다. 이렇듯 마인크래프트 속 가상의 생명체와 플레이어 사이에 오가는 상호작용은 단순하고 때로는 단방향적이기도 하지만, 현실에 가까운 관계망을 피워내기도 한다. 홀로 숲이나 동굴에 들어가 재료를 채집하고, 외딴곳에 집을 짓고 살아갈 때는 알지 못했던 플레이어의 생기를 감지할 수 있다. 먹이를 구하기 위해 온종일 낚시만 해야 했던 고양이와 ‘나(플레이어)’ 사이의 결속은 사회적인 풍부함(Social Richness) [7] 으로 이어지는 현존감을 발생시키며 물리적 실체의 필요성을 허문다. 그들은 어떤 생물의 외피를 두르고 단순하게 움직이는 상자처럼 보일 수 있으나, 플레이어를 움직이게 하고 때로는 죽게 만드는 크고 작은 동기가 된다. 즉 가상 세계에서의 삶과 죽음은 이들이 관장한다. 내재적인 모서리 게임은 셀 수 없이 많은 요소로 구성된 하나의 무리다. 즉 게임은 시스템적이다. 여기에서 시스템은 광범위한 의미를 담아낸다. 우선 게임의 시스템은 사물과 사물, 사물과 사람, 사람과 사람으로 이어지는 가지와 같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가지는 끝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무수한 갈래로 뻗어 있다. 게임의 시스템은 구조적인 요소와 감각적인 요소를 포괄한다. 따라서 이를 텍스트로서 정의하거나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지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시스템을 구성하는 각 요소들이 상호작용적인 관계 안에서 복합체를 이룬다는 것이다 [8] . 이는 게임의 시스템에 대한 모호한 정의를 하나로 묶어 냄과 동시에 여러 가지 경우를 포함한다. 비디오게임의 시스템은 무수하게 얽힌 관계망을 기반으로 하나의 복합체를 이루며 내부에서 외부로 점차 뻗어 나간다 [9] . 이렇게 시스템은 또 다시 현실 위에 포개지고 또 다른 우주를 이루게 된다. 마인크래프트에 등장하는 크리퍼(Creeper)는 이름처럼 몰래 다가와 자폭하며 일대를 박살 내는 몹이다. 크리퍼는 일정 조도 이하로 내려가면 어디서든 생성된다. 특히 지하 동굴이나 깊은 숲, 비 오는 날에 자주 출몰한다. 크리퍼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폭발할 듯 빛을 내며 경고한다. 그리고 삽시간에 터져 버린다. 물론 크리퍼에게 위협을 가하지 않아도 스스로 폭발하기도 한다. 즉 크리퍼의 행보는 예측할 수 없다. 소리 없이 다가와 일상의 한 부분을 통째로 날려버리고는 흔적만 남기고 사라진다. * 크리퍼가 부수고 간 자리 [10] 그러나 크리퍼는 사실 현실 도처에 존재한다. 위기는 언제나 소리 없이, 예측 불가능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드러난 거친 모서리를 흉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모서리를 내재적인 관점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모서리가 생겨나기 위해서는 둘 이상의 면이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본 채로 맞닿아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또한 무수한 존재자들의 각으로 이루어진 모서리의 세계다.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지만, 어느 한 부분이 맞닿은 채로 커다란 시스템을 이룬다. 이처럼 크리퍼가 부수고 간 자리는 내재적인 현실의 모서리를 보는 눈과, 이를 매만질 수 있는 손으로 확장된다. 마인크래프트의 네모난 블록, 그리고 이를 감싸고 있는 외피는 이미지 너머로 연결되는 또 다른 차원의 경로를 연다. 다시 크리스마스트리에 걸린 장식용 선물 상자를 떠올려 보자. 이는 분명 선물 같은 외양을 하고 있지만 선물로 기능할 수 없다. 그렇기는 해도 우리는 이 작고 가벼운 상자에 담을 수 없는 따뜻한 온기와 안락한 공간을 떠올리고 감각할 수 있다. 온 세상의 모서리와 외피를 매만지며, 지난 겨울 공원에서 우연히 찍은 한 장의 사진으로 늦더위를 달래 본다. * 지난 겨울의 공원 [1] 곤살로 프라스카,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비디오게임”, 김겸섭 역, 커뮤니케이션북스, 2008, p.18. [2] 이미지 출처: https://minecraft.fandom.com/wiki/Bed [3] 고양이가 기분이 좋을 때 내는 소리를 노래하는 것에 비유해 일컫는 말이다. [4] 김영욱, “VR 영상 콘텐츠의 현황과 프레즌스(presence) 향상을 위한 과제”, 문화영토연구 Vol. 4 No.2, 2023, pp14-17. [5] 조수선, 이숙정 외 3명, “뉴미디어 뉴커뮤니케이션”, 이화출판, 2014, pp.107-109. [6] 이미지 출처: https://www.digitaltrends.com/gaming/how-to-tame-cat-minecraft/ [7] 조수선, 이숙정 외 3명, “뉴미디어 뉴커뮤니케이션”, 이화출판, 2014, pp.111-112. [8] 케이티 세일런, 에릭 짐머만, “게임디자인원론Ⅰ”, 권용만, 윤형섭 역, 지코사이언스, 2010, p.113. [9] 위의 책, pp.117-118. [10] 이미지 출처: https://modbay.org/mods/1756-creeper-spores.html 참고문헌 곤살로 프라스카,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비디오게임”, 김겸섭 역, 커뮤니케이션북스, 2008. 김영욱, “VR 영상 콘텐츠의 현황과 프레즌스(presence) 향상을 위한 과제”, 문화영토연구 Vol. 4 No.2, 2023. 조수선, 이숙정 외 3명, “뉴미디어 뉴커뮤니케이션”, 이화출판, 2014. 케이티 세일런, 에릭 짐머만, “게임디자인원론Ⅰ”, 권용만, 윤형섭 역, 지코사이언스, 20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큐레이터) 박정서 미술이론을 공부하고 시각예술 분야에서 전시, 비평, 워크숍을 한다. (비)과학에 관심을 두고 뉴미디어 아트와 비디오게임을 탐구한다. 최근 참여한 프로젝트로는 연구 <기이한 게임과 으스스한 게임>(2024, 서울문화재단 RE:SEARCH), 전시 (2024, WWW SPACE), 워크숍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게임 비평>(2024, 아트코리아랩 아트랩클럽), 전시•워크숍 (2024, 하자센터 미디어아트 작업장) 등이 있다.
- 놀이하는 전정기관에의 상상 - 멀미 너머의 게임
매클루언의 아이디어를 빌리자면, 이 감각기관이 우리에게 잘 인지되지 않는 것은 이 기관은 다른 감각기관들에 비해 그다지 기술에 의해 확장된 시도가 없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지구의 보편중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운 인간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마치 우리를 둘러싼 공기처럼 너무나 보편적인 감각으로 받아들여지기에 ‘특별한’ 감각적 자극을 일으키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 Back 놀이하는 전정기관에의 상상 - 멀미 너머의 게임 22 GG Vol. 25. 2. 10. 미디어의 시대, 멀미의 시대 매클루언은 미디어를 신체의 확장, 좀더 구체적으로는 감각의 확장으로 이해했다. 기술 발전에 힘입어 인간은 신체 기능의 한계를 넘어서는 영역까지 감각이 가 닿을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내며 발전해 왔다. 청각만으로는 가 닿을 수 없는 거리의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고, 시야를 벗어난 먼 거리에서 일어난 일들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기술은 인간의 감각 확장을 단지 동시대의 것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과거에 벌어졌던 사건들까지도 지금 당장 우리의 감각 앞에 고스란히 옮겨놓을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한편으로는 감각의 확장이지만 다른 의미로는 감각의 과잉 시대인 미디어 시대에 인간은 지나치게 쏟아지는 새로운 자극들 앞에서 간혹 일시정지 상태에 이르기도 한다. 멀미라는 증상이 대표적이다. 현재까지의 의학적 연구 결과들은 멀미를 여러 감각 정보들이 서로 다른 정보를 뇌에 전달할 때 생기는 문제를 뇌가 위험 신호로 받아들여 신체를 일시적으로 주저앉히려는 기제로 이해한다. 눈으로 보는 상황과 전정기관이 인지하는 신체의 평형 상태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뇌로 전달할 때, 뇌는 이를 신체의 이상이라고 인식하고 신체 기능을 저하시켜 일단 정지 후 휴식을 취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멀미에 관한 기록들은 고대 그리스의 뱃멀미로부터 시작된다. 매클루언의 이야기를 따라간다면 배 또한 신체의 확장이며 마찬가지로 미디어의 일종이며, 배를 탄 상태에서 전정기관이 느끼는 출렁임의 평형감각은 눈으로 보는 시각정보와 불일치하기에 멀미를 유발한다. 뱃멀미도 결국 미디어 멀미의 일종이며, 신체의 한계를 넘어선 새로운 정보 앞에 인간의 신체는 위험 상황을 인식하고 셧다운을 건다는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특히 시각정보에 크게 기대는 인간에게 있어 멀미는 주로 새로운 미디어가 시각에 관련된 정보로 확장할 때 발생하곤 했다. 인류에게 기계적 스펙터클을 처음 제공한 시점 중 하나로 자주 거론되는, 마차와 기차의 네모난 창문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고속의 이미지는 평행하게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지만 마차와 기차가 만드는 진동은 전정기관으로 하여금 이 시각정보가 결코 평탄한 횡스크롤이 아님을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상황이었다. 마차 멀미, 기차 멀미에 이어 초창기 영화 스크린을 보며 멀미를 경험했음을 이야기한 많은 기록들은 뱃멀미로로부터 이어지는 동일한 맥락에 서 있다. 감각정보의 불일치가 만드는 게임 속의 불화들 디지털게임은 현대의 여러 미디어 중 멀미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매체일 것이다. 인간이 영상매체에 익숙해지면서 영화 멀미는 몇몇 특수한 시점의 카메라 상황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없어진 것과 같이 거론되지 않는데 비해 게임에서는 적지 않은 멀미 호소가 이어지곤 한다. 물론 <심시티>같은 조감 시야에서 멀미를 호소하는 경우는 없다. 대부분의 멀미는 1인칭, 혹은 3인칭 시점의 3D 기반 게임에서 나타난다. 영화에서도 1인칭 카메라를 통해 핸드헬드 기법으로 촬영되는 경우에 멀미 이야기가 나오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이 때의 멀미들은 어느 정도 영상매체 속 화자의 위치, 다시말해 카메라의 시점에 의해 나타난다. 상당수의 영화들에서 카메라가 위치하는 곳이 3인칭 시점인 것과 달리,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직접 조작하는 많은 현대의 액션 어드벤처 게임들은 카메라가 언제나 주인공을 향해 맞춰진, 그것도 주인공의 위치와 운동이 연출자로서의 게임 제작자가 아닌 플레이하는 플레이어의 의도에 의해 변화하는 주인공을 향하고 있다. 이 때 플레이어는 컨트롤러를 잡고 있는 손과 같은 신체를 통해 가상공간인 게임 속 세계로 자아의 위치를 이전한다. 전후좌우로 뛰고 구르는 행위는 단지 스틱을 기울이고 마우스를 돌리는 문제가 아니라 마치 실제로 자신의 신체를 굴리고 기울이는 행위처럼 여겨진다. FPS게임에서 벽 뒤에 엄폐를 끼고 내다볼 때 자신도 모르게 신체를 기울이는 행위가 나오는 것이 이런 점에서다. 현재까지의 디지털게임들이 가상공간 안의 세계를 구현하는 방식은 상당부분 시청각 데이터를 통해서인데, 멀미는 이 때 정직한(?) 전정기관의 항의로부터 비롯된다. 눈과 귀는 플레이어가 2층에서 뛰어내렸다고 보고하는데, 전정기관은 가상공간으로부터 아무런 정보를 받지 못하기에 플레이어의 뇌에 “아닌데요? 자리에 앉아있는데요?”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게임에서의 멀미는 감각정보로 치면 이런 과정을 거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VR과 같은 좀더 몰입적인 환경을 시청각 정보를 통해 제공하는 상황에 더욱 강렬해진다. 나는 <유로트럭> 같은 자동차 운전 게임을 VR로 플레이해본 적이 있는데, 운전하는 자세가 게임하는 자세와 크게 다르지 않아 멀미를 거의 못 느끼던 와중에 게임 속에서 도시 도로의 과속방지턱을 넘어가는 순간 멀미감이 확 쏟아짐을 느꼈다. HUD 속 디스플레이에서는 방지턱을 넘는 트럭의 시각 정보를 고스란히 제공했지만, 나의 전정기관은 아무런 정보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VR은 HUD착용자의 머리 움직임을 계산해 그 궤적만큼의 변화를 3D그래픽으로 표현하며 스크린의 시야를 사실상 360도에 가깝게 재현한다. 고개를 돌리면 돌린 방향만큼의 변화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이 장치에 대해 사람들은 “와, 진짜같다!”고 환호하지만, 이는 정확히 표현하자면 시청각 정보에 국한된 감탄에 머문다. 현재까지의 VR기술은 우리의 평형과 운동을 감지하는 전정기관에는 아무런 정보도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정기관의 평형감각은 영원히 인류 놀이의 적이기만 할 것인가? 생각이 여기에 이르면 우리는 전정기관이라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오감이라고 부르는 시, 청, 후, 미, 촉의 다섯 감각이 아니면서도 사실은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하고 많은 감각정보를 제공하던 감각기관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운동과 평형을 측정하고 그 정보를 뇌에 전달해 주는 이 기관은 그 중요성과 정보량에 비해 우리에게서 ‘감각’이라고 인식된 바가 거의 없었다. 매클루언의 아이디어를 빌리자면, 이 감각기관이 우리에게 잘 인지되지 않는 것은 이 기관은 다른 감각기관들에 비해 그다지 기술에 의해 확장된 시도가 없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지구의 보편중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운 인간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마치 우리를 둘러싼 공기처럼 너무나 보편적인 감각으로 받아들여지기에 ‘특별한’ 감각적 자극을 일으키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만 치부하기에는 우리는 전정기관을 가지고 논 적이 있다. 놀이공원의 바이킹과 롤러코스터가 대표적이다. 여러 안전장치를 통해 절대 떨어져 죽거나 다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이로드롭에서 떨어지는 그 순간의 아찔함을 놀이로 승화한다. 공포에 질려 눈을 질끈 감아도 여전히 바이킹이 최대 고도에서 떨어지기 시작하는 그 순간의 하강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놀이공원의 여러 탈것들은 아마도 전정기관이라는 숨겨진 감각을 발굴해 내 놀이의 미디어로 만든 몇 안되는 사례일 것이다. 전정기관의 운동감각을 다른 감각과 동일한 수준에서 바라본다면, 우리는 놀이매체로서의 게임이 가지고 있는 멀미라는 극복점에 대해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볼 여지도 갖게 된다. 조금 더 기술이 발전할 수 있다면, 놀이매체에 대한 새로운 시도로서 전정기관의 평형감각을 가상으로 재현할 수 있는 어떤 기술이 놀이로서 출현하는 순간을 상상해보는 것도 무리한 일은 아닐 것이다. 아케이드 오락실에 가면 간혹 레이싱 게임 같은 경우에는 가상의 유압 서스펜션을 활용해 어느 정도 재현된 평형감각을 놀이에 활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직까지의 기술은 전정기관의 감각이 놀이에 도움된다는 사실까지를 확인했을 뿐, 이를 실제로 재현하는 방식은 가상의 재현이 아니라 실재적 재현에 가깝다. 말 그대로 플레이어의 몸을 기계에 싣고 흔드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전정기관의 감각을 통제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론이 개발될 수 있다면, 아직까지 모든 다른 감각에 비해 정직한 정보를 흘리는 통에 멀미를 유발한다는 눈총을 받고, 때로는 3D 게임 멀미 극복을 위해 멀미약을 통해 평형감각을 마비시킬 정도로 홀대받은 이 감각기관의 의미가 놀이매체에서 다시 재조명받을 순간이 올 지도 모를 일이다. 지나친 상상이라고 지적받을 수 있는 발상이긴 하겠지만, 애초에 우리가 지금 누리는 많은 놀이 기술들은 처음부터 진지한 실현을 생각한 발상이라기보다는 판타지에 가까운 상상이었음 또한 기억해야 한다. 현재까지의 3D게임에서는 멀미 극복을 위한 기술 개발에 많은 자원을 쓰고 있지만, 먼 훗날에는 지금 이 시대를 역사 속에서 읽으며 한때 방해되는 감각으로 받아들여졌던 전정기관의 평형감각이 이제는 놀이의 주역이 된 감각이라고 이야기하는 날이 올 지도 모르겠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Visually Impaired and Gaming: Overcoming the wall of prejudice
I sometimes have had chances to discuss about "game accessibility" ever since I started working for Banjiha Games (Korean word for "Semi-basement") as a writer, while representing people with visual impairment like me. Sure, I do like games. But I'm not good at it. And frankly speaking, my current work also has to do little with the game. So I must admit that I try to talk cautiously whenever such a topic arises < Back Visually Impaired and Gaming: Overcoming the wall of prejudice 12 GG Vol. 23. 6. 10. You can see This article's Korean version in below URL: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pageNum=1&match=id:80 I sometimes have had chances to discuss about "game accessibility" ever since I started working for Banjiha Games (Korean word for "Semi-basement") as a writer, while representing people with visual impairment like me. Sure, I do like games. But I'm not good at it. And frankly speaking, my current work also has to do little with the game. So I must admit that I try to talk cautiously whenever such a topic arises. But in this article I will go ahead and talk about how I personally experienced gaming as an ordinary gamer. And perhaps point out a few remarks on how to make games more accessible and inclusive to visually impaired people. It is said that human rely most heavily on visual inputs from the eyes out of all the five primary senses of our body. Perhaps that is the reason why the inquiries and constructive discourse on game accessibility for the visually impaired still remain a challenging area – and are slow in progress even compared to games accessibility for other disabilities. Nevertheless, visual impaired like me have always been enjoying playing games. In the mid-1990s, when I was in elementary school, computers were expensive household items – far more than what is perceived nowadays. Therefore, I first learned the basics of how to use computers from a teacher. Here, one might wonder, 'How can visually impaired people use computers and smartphones?' A simple answer: Computers can read what is printed on the screen for you. Of course, there are several differences in how it works depending on each operating system – they might have slightly different functionalities or the name of the software, etc. But still, in principle, it works pretty similarly to each other. Returning to my childhood story, the teacher introduced me to a simple computer game. I think they wanted me to have fun while learning to use the new device. And that simple game became the first video game in my life. Back in the 1990s (in Korea), most games played by visually impaired people were sound-oriented. Memory games could be played while listening to voices, digital baseball games with matching numbers, or "Blue Flag and White Flag" games but on a computer. Those who knew how to deal with dial-up internet back then also enjoyed text-based MUDs (Multi-User Dungeon games), a predecessor of MMOs that we now know today. While the Korean game industry moved on from MUDs once the high-speed internet became common, these text-based adventures are still highly favored by people with blindness. I also used to enjoy various other digitally adapted board games such as computer chess, Yutnori , trump cards, etc. However, as the Windows operating system became more common and now the digital environment heavily leans towards mobile devices, things have become more difficult for the visually impaired to enjoy games. Apple later released the VoiceOver function on their iPhone series, which helped people with visual impairment to finally step into the world of the smart(phone)-era. However, we couldn't easily dive into the sea of mobile games as there were only very few mobile games that we could enjoy. Since the 2010s, most digital games that we get to play are still limited to audio-based games designed for those with difficulties with their vision. There are several different genres of games in this category, from action fighting games or RPGs in which you hear sounds to locate and defeat the enemy characters to trading card games, puzzle games, rhythm games, and simulations. But there were several challenges in playing these specially designed games. First and foremost, many only supported English language as they are imported games developed by foreign studios. At some point, I would wonder, "Am I playing a video game or taking an English test?" In addition, since these games were only targeting blind people as their main audience – which are already a niche market compared to the mainstream game market – and require familiarity with PC and mobile, inevitably the market size is small. Hence, not many studios target this market and thus limited choices on what you could play. Then what about games other than audio-based games? Well, there aren't that many. There are some text-based browser-based games and some mobile games, but many are, obviously, in English. There are very few – almost none – (text-based) games that offer at least a bare-minimum computer-assisted translation in Korean. In fact, as of 2022, there are only a handful of games that visually impaired Koreans can enjoy in their own language. The situation is the same even if we count text-based MUDs even if their game servers are still active. I'm not just trying to rant here. I'm not trying to say that we need more games for blind people because there are not enough games. It's not about making games that are functionally playable to people with visual impairment. It's more fundamental than that. As I mentioned earlier, audio-based games are (somewhat) functional for the visually impaired. But they are bad because they are bound to have limited market scalability with various practical challenges. So how do we resolve this? I suggest we should approach it from two perspectives: First, the implication for legal and institutional support. Frankly speaking, games are not the most burning issue for most visually impaired people in South Korea. We are still struggling to survive, to fight for our lives and work. In such a situation, the game accessibility discourse struggles to reach its first step. In 2021, the South Korean National Assembly proposed a bill for game accessibility – but there is still a long way to go. [Rep. Tae-kyung Ha: "Time is now to include game accessibility in the Game Promotion Act, and to build implication guidelines". – Interview from Thisisgame.com (online game news). https://m.thisisgame.com/webzine/nboard/4/?n=123269 (20 April 2021)] Some might say that solving the issue of game accessibility is not urgent right now. But we must acknowledge the fact that games are already a cultural phenomenon. For instance, the recent hype on the "metaverse" is in part also in line with the way how games are designed and played. Game accessibility is, therefore, more and more becoming closer to the issue of our livelihood. There are so many instances where people with visual impairment have to do things in the 'gray area' to play games. So many occasions I had to juggle around somewhere in between the terrain between lawful and unlawful just to play video games. I have mentioned earlier that there are only a handful of games that can be played in Korean to people like us. Well, if you count games that offer the Korean language "officially" then the number becomes even more dismal. In such cases, one must play using an unauthorized accessible mode of the game – for instance, hacking into the game using admin (developer's) mode. There are some cases the game offers some accessibility, but not all. Let's say the game did offer a (or worked with the device’s) screen-to-audio function up to a certain level, but not completely, then that visually impaired gamer is now stuck – they cannot progress any further, wasting their in-app purchases if there were any. There are some audio-based games that are basically a copy-and-paste version of some of the famous games. While such productions clearly violate some market ethics, to be honest, I can't just blame those studios. Because those copied games are the only ways for us to play some of those famous games that we can otherwise only hear of – and as a gamer myself, that is undeniably a tempting opportunity. Furthermore, it is also quite interesting to play (hack) the game in unauthorized accessible mode, as it gives you a glimpse of how feasible it is to add accessibility functions to the game. Things can be done. Cases like these can be enforced by law upon bringing the discussion on game accessibility to the surface – to discuss and implement appropriate laws. Of course, regulations themselves wouldn't be able to solve the issue entirely, as it also requires the industry's awareness and will. I think one of the major issues behind the short list of games accessible for the visually impaired is not because of the technical problems. Rather it is the issue of perceptions, coming from misassumptions of the game industry thinking that games must be made entirely from scratch to accommodate the needs of visually impaired gamers. What we need, therefore, is a change in people's views. Games shouldn't be only for blind gamers. Games should be for all games – those that are visually fit or impaired alike. In fact, there are – few working – cases. One of those examples is the game Seoul 2033(서울 2033), a mobile game currently in development by Banjiha Games. The development of Seoul 2033 originally began without considering accessibility for players with visual impairment. Some brave visually impaired gamers, including myself, first tried the game and noticed that the game was inconvenient to play as some of the important stats in the game were not supported by screen-to-audio functions. It was somewhat playable though. Nevertheless, we left a review on the App Store – without expecting much in return. We were surprised that the developing team actively stepped up and responded to our needs. Since then, we are working closely with these passionate game developers, gradually updating the game's accessibility-related features. There are other text-based mobile games by Banjiha Games now that also work with iPhone's VoiceOver and Android's TalkBack features. [SBS News (news). Seoul 2033: An indie game that can also be played by people with visual impairment.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230699 (video, 20 April 2019)] I would say the development of VoiceOver functionality for Seoul 2033 was initiated by a bit of luck. Seoul 2033 is a text-based game in which the story changes depending on the player's choices as the game progresses. That being said, the game has fairly easy mechanics. They were also not based on regular game engines, so it was somewhat playable with the VoiceOver functionality on the smartphone. This allowed us to at least play enough of it to think of suggestions on how to improve it through the App Store review. But what ultimately made this idea turn into reality was how much the developers were devoted to making this happen. If the team at Bangiha Games just neglected our suggestion, if they thought people like us were not able to play games in the first place, this continuous effort of making a game also available to those with visual impairment wouldn't have happened. I also wouldn't have been able to join them as a game writer. Of course, even now, the game's VoiceOver compatibility is not perfect – with new issues popping up upon each update. Still, the developer's constant effort to communicate and resolve those issues is what matters to us. The game Seoul 2033 is, therefore, still being actively played among visually impaired gamers in Korea. * Demo of Seoul 2033 with VoiceOver Another example is The Lord and the Knight (성주와 기사), a mobile game developed by XYRALITY. It is a strategy game that reminds us of a browser-based Tribal War by InnoGames back in those days, in which the player can build their own fortress and conquer the surrounding area. The player can also form alliances with – or compete against – other players. One might wonder how people with blindness are able to play this game as it is a strategy game with maps. But that's not much of an issue. The game can present the direction and distances of the objects relative to my current coordinates. The case The Lord and the Knight is a prime example that games for visually impaired gamers are not solely in the genre of text-based games. With some change of thoughts and dedication, other various types of games can also become enjoyable. How about adding a coordinate feature in the game's map system so that the system can tell the players the key locations and NPCs on the map? How about buttons that are readable via the VoiceOver function on the device? This simple function is something that I often find lacking in many games out there. Hearing all those 'gray area' tricks that visually impaired gamers do just to make a game work is heartbreaking. And it is mainly because of the games' system and design that were built without even a slight consideration for accessibility for blind people. Therefore, I cannot express how much it is important to change people's views – breaking the wall of prejudice as a pathway for more accessible game worlds. Does technological advancement enrich our livelihood? People with disabilities have more chances to engage with the world thanks to some of the crucial technical improvements. Even at this right moment, I'm using a screen-to-voice program to write this article. But on the other hand, we must acknowledge the potential danger of advancing technologies in our lives too rapidly. We often hear stories of people with disabilities – including elderly people – struggling to order simple takeout foods because of high-tech touch-screen kiosk machines now taking over every corner of our world. I remember those times when people played MUD games because computers back then did not have the computational power to run advanced graphics. And those were the time when visually impaired gamers like us were more able to engage also with gamers without visual impairment. I believe lowering the curb height of the pedestrian road is far more pragmatically helpful than a set of supercomputers somewhere in the world to a person with a wheelchair. The cases like Seoul 2033 and The Lord and the Knight evidently show us the importance of overcoming the wall called prejudice. Surely, technical development and large-scale capital investments are important. But overcoming the prejudiced view that remains within ourselves is, I think, the most vital aspect needed to be further encouraged to improve game accessibility – and the inclusivity of our society as a whole. Perhaps this is the main reason why I like games. There are no prejudices or restrictions in the virtual game world. There, whatever the wall blocking me in the game is a wall that I can climb up and overcome. For about a year, with Banjiha Games, I was able to engage in the actual game-making process. I realized how much the game development process involves creative energy. “Disabilities and games”. One may think these two words don't add up that well for now. But I truly believe with game developers' passion and innovative ideas, one day, the combination of those two words will be felt as natural as it should be. Tags: english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Writer of Banjiha Games) ShinHye Kang I am a blind person who is very interested in games. Currently, I am working as a Korean language teacher in a middle school and participating in the game story work of Banjiha Games. (Doctoral researcher at Aalto University, Finland) Solip Park Born and raised in Korea and now in Finland, Solip’s current research interest focused on immigrant and expatriates in the video game industry and game development cultures around the world. She is also the author and artist of "Game Expats Story" comic series. www.parksolip.com
- 공포와 액션의 사이에서: 바이오하자드 시리즈
공포 게임의 공포는 반드시 옅어지고, 무뎌지고, 희석되고, 탈각된다. 바이오하자드/레지던트 이블이 9개의 넘버링과 3개의 외전과 3개의 리메이크, 그 외 다수의 서브 작품을 진행하면서 얻은 결론은 이 태생적 모순을 피하거나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이다. 7편의 방향성을 2~4편의 리메이크작과 8편 또한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긍정하고 활용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 Back 공포와 액션의 사이에서: 바이오하자드 시리즈 19 GG Vol. 24. 8. 10. * 어떤 공포 게임의 차기작 이미지이지만 팬메이드인, 가짜. ‘공포’ 게임 공포는 흥미로운 감정이다. 감정 중에서도 생존과 직결되었기에 가장 강렬한 반응을 이끌어내는데, 동시에 유희의 방법으로도 활용이 되는 모순된 감정이다. 이 특징 때문에 공포 장르는 흥행이 어렵다. 무서우면 재밌지만, 무서우면 꺼려진다. 이 모순의 균형을 해결하는 것이 모든 공포 장르의 숙제다. * 반복되는 공포는 학습이 되어 무뎌진다. 이 친구는 이제 더는 무섭지 않다. 문학, 연극, 만화, 영화, 게임 등에서 구현된 모든 공포 장르의 기본 구도는 같다. 가장 중요한 극중 갈등은 인물과 인물 외부의 세계 혹은 ‘무언가’다. 인물 외부에는 불가해한 무엇이 존재하고 그 무엇은 인물의 생존을 위협한다. 인물은 이 위협에서 도망치거나 위협을 극복해야만 한다. 하지만 방법은 알 수가 없고, 위협의 근원이 주는 공포로 인해 갈등 극복은 어려워진다. 마침내 인물은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위협을 물리치거나, 위협에서 도망치거나, 가끔은 이겨내지 못하고 위협에게 잡힌다. 이런 구조 속에서 나오는 서사가 공포 장르의 서사, 생존 투쟁의 서사다. 수용자는 이런 일련의 서사를 유희의 도구로서 감상한다. 체험이 특징인 게임만은 다르지만. 아무튼 그래서 공포 장르의 진입 장벽은 높다. 수용자는 생존 투쟁의 스트레스를 유희로서 받아들일 만큼 심리적 거리를 만들어야 하지만, 동시에 유희로서의 몰입을 할 정도로는 가까워야 한다. 유희로서의 공포에 관해서 윤장원은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로제 카이와(Roger Caillois)의 놀이이론을 공포 게임에 적용한 연구를 발표했는데, 여기서 윤장원 교수의 가장 중요한 문장은 이렇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로제 카이와는 놀이의 속성을 네 가지로 나누었는데, 그 중 일링크스(ilinx)는 ‘현기증’으로 대표되는 감각 자극의 속성이다. 윤장원은 공포 감정이 일링크스 영역에 주로 해당한다고 하면서, “이것들은 흥분의 즐거움, 환상의 즐거움, 합의된 혼란의 즐거움, 약한 충격의 즐거움, 안전한 충격의 즐거움들이다.”( 윤장원, “공포게임속 유희적 공포를 중심으로”, 2008.05, 조형미디어학 제11권 제2호 )라고 썼다. 즉, 공포 장르의 공포는 ‘언제든 피할 수 있는 공포’이기 때문에 유희가 된다. * 작중에서 아무리 피할 수 없는 공포가 등장한다 해도, 작품 바깥은 내 생존에는 영향이 없다. 공포 ‘게임’ 다른 공포 장르에서의 공포는 관람하는 유희지만, 게임은 체험의 양식이다. 그래서 ‘돌파하여 극복하는’ 구도를 수용자가 직접 수행해야 하는 게임은 앞선 모순점의 숙제를 훨씬 더 민감하게 다뤄야 한다. 여기서 민감하다는 의미는 모순의 저울이 하나가 아니라는 의미다. 공포와 안전이 1번 저울의 쌍이라면, 2번 저울의 쌍은 신선한 공포와 무뎌진 공포다. 게임에서 위협적인 대상을 만나면, 플레이어는 게임의 특성에 따라 교전이나 도망을 수행한다. 그리고 숙련도가 쌓이게 되면서 점점 더 익숙해진다. 공포란 낯설고 생경한 것에서부터 오는 것이 기본이다. 익숙해진 공포는 더 이상 공포가 아니고, 공포 게임에서 공포가 옅어지면 큰 재미 요소를 잃는 것이다. 공포의 수위 문제인 1번 저울의 경우엔 작품의 완성도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해결이 가능하지만, 공포의 희석이라는 2번 저울의 모순은 게임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만나게 된다. 아무리 컨텐츠의 수행 패턴을 바꾸면서 낯설음을 유지하려고 해도, 플레이어는 점차 적의 행동 패턴을 연구하고 공간을 학습하고 기괴한 디자인에 적응한다. 그렇게 자신을 쫓아오는 괴물을 두려워하지 않고 대응 방법을 손쉽게 수행하기 시작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2회차 플레이부터는 공포 요소의 위치가 익숙해지게 되면서 공포 게임이 아닌 기억력 퍼즐 같은 플레이가 되기도 한다. 가장 질 좋은 공포는 최초 탐험인지라, 공포 게임은 장르의 시작부터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을 예언 받은 셈이다. 그래서 게임에서 공포 장르는 생존 공포라는 특징이 대세가 된다. 1989년 일본의 영화 ‘스위트홈’의 게임판에서부터 시작된 생존 공포라는 세부 장르 명칭은 중복 형용인 것 같지만, 운명적 모순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묻어나는 이름이다. 이 장르에서 플레이어는 대항 행위에 쓸 자원을 제한적으로만 받게 된다. * 게임 스위트홈에는 한정된 공간, 치명적 함정, 초자연적인 적 등의 생존 공포 요소가 구현되어 있었다. 바이오하자드 1편은 이 게임을 리메이크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했다는 설이 있다. 공포 장르의 요소 중에는 제한적 공포 요소가 있다. 활동의 제약을 주는 공간적 제한, 정보의 제약을 주는 시각적 제한에 이어 능력의 제한 요소는 공포 게임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리고 공포 게임은 이 능력 제한 요소에 ‘대응 수단’을 집어넣으면서 생존을 가장 중요한 위치로 끌어왔다. 그리하여 모자란 자원 때문에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적도 도망쳐야 할 대상이 되었다. 대응 자원은 아끼고 아껴서 가장 필요한 순간, 예컨대 보스전 같은 때에 써야 한다. 다른 적들은 왠만해서는 상대하지 않고 피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보스전에서 전투를 수행할 숙련도와 캐릭터 업그레이드는 필요하니 완전히 안 싸울 수는 없다. 결국 어느 적은 피하고 어느 적은 싸울지를 정하면서 이 모순을 헤쳐간다. * 이 장면 앞에서 도망치는 자는 공포 게이머, 싸우는 자는 액션 게이머. 결과적으로, 조우하는 모든 요소가 나를 공격하는 생존 위협의 상황이자 집단 광기의 상황이 손쉽게 만들어진다. 이는 2번 저울의 모순점을 최대한 뒤로 미루는 영리한 방법이다. 그리고 자원 제한이라는 이 능력 제한 요소를 가장 잘 사용하였고 그것이 시리즈의 특징 중 하나가 된 장수 시리즈가 바이오하자드/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다. ‘공포’ 액션 바이오하자드를 요약하면, 좁은 공간에서 총으로 좀비를 쏘는 게임이다. 그리고 초기작인 1~3편에서는 제한된 탄약으로 인해 쏘는 행위보다 피하는 행위가 더 많았다. 시작점인 1996년작인 1편의 경우에는 3D 기술을 연습하자는 제작사의 의도가 있었다는 일설도 있는 바, 기술적 완성도는 약간 떨어졌지만 오히려 능력 제한 요소로 받아들여지면서 생존 공포를 공포 게임의 주류로 만드는 첫 빗방울이 되었다. 동시에 이 일설에 의해 3D 액션으로 형식이 정해지면서, 바이오하자드는 액션으로 공포를 피하고 극복하는 게임이 되었다. * 경찰 특수부대가 외딴 집에서 좀비들과 조우하는 내용의 1편. ‘Wow, What a mansion!’이 먼저 떠오른다면 밈적 사고화를 주의하자.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제한적 공포 요소는 매우 충실하다. 0편에선 고립된 기차 안, 1편에선 외딴 저택 안, 2/3편에선 폐허가 된 도시라는 식으로 공간 제한이 있다. 시야 또한 0/1편은 문으로 나뉘어진 방이라는 식으로 제한이 되는데, 당시 기술의 한계로 인해 로딩 시간을 문이 열리는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한 것이 또한 공포 요소로 작용했다. 2/3편은 광원이 많은 도시가 공간이지만 폐허가 된지라 어두운 골목이나 수풀 같은 시야 제한 요소를 활용했다. 또한 2/3편에는 특정 시점 전까지는 절대 죽일 수 없는 거대한 적이 쫓아오는 요소도 있었다. 이런 구성에 자원 제한까지 더해지면서 탄약 소모를 최소한으로 하여 위험 지역을 돌파하고 안전 지역에서 정비한 후 다음 위험 지역의 공포로 뛰어드는 플레이 패턴이 정립되었다. 공포 ‘액션’ 제한된 실내 공간 혹은 좁은 폐허 공간이었던 0~3편과 달리 4편부터는 야외 공간이 조금씩 넓어지고 많아지기 시작했다. 2편의 경우, 도시가 배경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대부분의 플레이는 무인 상태의 경찰서 건물이었고, 그나마 야외로 나간 3편은 소개(疏開)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폐허가 된 도시라 넓은 공간도 많지 않았다. 반면 4편부터는 실내라도 넓은 공간이 생겨났고, 벌판이나 마을 내지는 도시 공간도 활용되었다. * 이런 공간에서의 조우는 결국 전투, 필연적으로 액션 요소가 된다. 그만큼 다양한 교전 상황이 만들어지긴 했다. 그런 상황에 대응할 수 있게 ‘체술’이라는 형태의 액션 공격-반격-회피가 도입되었다. 조금씩 자원 제한이 해제되고 있던 것이다. 다양한 대응 방법이 지급되면서, 이 게임의 좀비와 괴물은 ‘도망칠 수 있는 공포’에서 ‘쳐부술 수 있는 공포’로 바뀌어갔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시리즈의 인기와 흥행이 올라가면서 외전작들과 다양한 트랜스미디어 작품들이 쌓여갔다. 이러면서 작중 세계에 대한 정보가 누적되었다. 잘 설명되는 것은 익숙한 것이지 공포가 아니다. 최건과 장지영은 디아블로 3의 공포 요소가 실패한 원인을 지나친 언어화에서 찾았다. ( 게임과 공포 서사를 통해 살펴본 언어화와 공포의 비대칭적 상관관계에 대한 비교연구, 최건, 장지영, 2022.02, 비교문학 제86호 )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에서도 마찬가지다. 게임 속에서 만나는 공포 상황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게임 안팎에서 여럿 제시가 되면 상황을 공포가 아니라 전투로 인식하게 된다. 서사와 설정의 측면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작중에서 등장하는 좀비와 괴물은 모두 바이러스나 기생생물로 인해 변이한 인간이다. 작중의 정식 명칭도 그래서 ‘생물 병기’이고 좀비 아웃브레이크 상황은 ‘생물 재해’다. 이런 생물 재해를 일으키는 방법은 당연히 테러고, 그래서 4~6편은 테러에 대응하는 액션 장르에 가깝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숙달을 통과하면서 공포가 희석되는 과정이 시리즈 전체 진행에서도 발생한 것이다. 공포, 모순 활용법 2017년의 7편, “바이오하자드 7 레지던트 이블”부터는 1편의 컨셉으로 돌아가는 것 이상이었다. 공간은 다시 좁은 실내 위주로 바뀌었고, 주인공도 새로운 인물이며, 등장하는 적은 기존의 바이러스와 기생충이 아닌 새로운 생물 병기였으며, 2/3편의 저항할 수 없는 적 요소도 돌아왔고, 아예 시점마저 제한성이 높은 1인칭 시점이 되었다. 역대 변화에 쉼표를 찍은 소프트 리셋의 느낌이었다. 반면 다양한 무기와 액션으로 대응 방법을 다각화하는 요소는 4~6편의 방향을 계승했다. ‘무뎌진’ 후의 액션 장르로의 해석 또한 긍정하는 방향이었다. * 7편의 플레이에서, 4~6편의 넓은 공간과 다양한 대응 요소는 후반부에 가야 제시된다. 그전까지는 이런 상황에서 회피 위주의 전투라는 1/2편의 요소를 해결해야 한다. 전작의 두 줄기, 공포와 액션의 요소를 둘 다 계승하는 것은 모순을 해소하는 방법이 아니다. 공포 게임은 그 개념의 시작부터 모순을 내재하고 있다. 공포라는 광의의 장르부터 모순의 장르이며, 공포 게임은 그 모순이 극대화되는데, 생존 공포 장르에 액션을 도입한 것부터가 모순적인 시도다. 어차피 게임은 경험의 매체이고, 경험은 사람을 바꾼다. 경험 진행에 따라 수용자가 변화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쩌면 이런 태도가 이 시리즈의 생명력의 근간에 있을지도 모른다. 태생적 모순을 전제하고 세계를 펼쳐냈으니, 그 세계의 비극미는 강조된다. 거기서 피어낸 인물들은 매력적이고, 그들과 그들의 세계는 영화, 만화, 연극으로 확장했을 때도 매력을 가진다. 수용자의 성장을 전제하는 모순이니, 이 모순을 인정한다는 것은 수용자를 신뢰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공포 게임의 공포는 반드시 옅어지고, 무뎌지고, 희석되고, 탈각된다. 바이오하자드/레지던트 이블이 9개의 넘버링과 3개의 외전과 3개의 리메이크, 그 외 다수의 서브 작품을 진행하면서 얻은 결론은 이 태생적 모순을 피하거나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이다. 7편의 방향성을 2~4편의 리메이크작과 8편 또한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긍정하고 활용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 물론 가끔 실수는 나온다. 8편의 인형제작소 구간은 1번 저울, 공포의 정도 조절 모순을 실패한 측면이 있다. 너무 무서워서 플레이를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속출했지만, 그래도 그 공포의 질은 매우 높았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 [북리뷰] 게임콘솔 2.0: 현대 게임기의 계보와 궤적을, 사진으로 읽다
어린 시절을 비디오 게임을 벗 삼아 왔기에 게임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그는, 2000년대 중반쯤 위키백과를 뒤적거리다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위키백과 문서에 실린 고전 게임기들의 사진 퀄리티가 너무 조악했다는 점이었다. 지금의 웹도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당시 웹 문서들의 사진자료는 디지털카메라 보급 초기이기도 해서 개인이 형편 되는 대로 찍어 자가 제공한 사진들 일색이었으므로, 그때 눈으로 봐도 거개가 저해상도 저퀄이기 일쑤였다. 물론 하드웨어 제작사가 말끔하게 찍은 공식 사진자료가 있기는 하나, 당연히 제작사에 저작권이 있는데다 언론사 등에나 한정적으로 제공되기에, 공공자료로 개방되어 인용용으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고퀄리티 사진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 Back [북리뷰] 게임콘솔 2.0: 현대 게임기의 계보와 궤적을, 사진으로 읽다 11 GG Vol. 23. 4. 10. 한 남자의 자원봉사에서 시작된 ‘디지털 박물관’ 에반 아모스(Evan Amos)라는, (북미 게임기 시장 대붕괴 시기로 유명한) 1983년에 태어난 한 미국인 남자가 있다. 어린 시절을 비디오 게임을 벗 삼아 왔기에 게임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그는, 2000년대 중반쯤 위키백과를 뒤적거리다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위키백과 문서에 실린 고전 게임기들의 사진 퀄리티가 너무 조악했다 는 점이었다. 지금의 웹도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당시 웹 문서들의 사진자료는 디지털카메라 보급 초기이기도 해서 개인이 형편 되는 대로 찍어 자가 제공한 사진들 일색이었으므로, 그때 눈으로 봐도 거개가 저해상도 저퀄이기 일쑤였다. 물론 하드웨어 제작사가 말끔하게 찍은 공식 사진자료가 있기는 하나, 당연히 제작사에 저작권이 있는데다 언론사 등에나 한정적으로 제공되기에, 공공자료로 개방되어 인용용으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고퀄리티 사진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이건 내가 기여할 수 있겠다’라는 점에 눈뜬 아모스는, 독학으로 사진기술을 배운 후 자신의 Wii를 피사체로 삼아 DSLR과 전문장비로 깔끔하게 고화질 사진을 찍어 2010년 8월 28일 영어 위키백과에 공공재(public domain) 형태로 공개 했다. 그의 첫 ‘기여’였다. 이 ‘무료봉사’는 점점 가속도가 붙어, 온라인 중고장터에 공고를 내기도 하고 사설 수집가들에게서 기기를 제공받기도 하고 뜻있는 사람의 기부까지도 받아가며 일종의 ‘사회활동’으로까지 발전해, 2015년이 되자 위키백과 산하의 디지털 자료 아카이브 사이트인 위키미디어 공용 에 자신의 사진이 모인 대규모 저장소인 바나모 온라인 게임 박물관 을 만들기에 이른다. 현재 영어판을 포함한 각국 위키백과의 고전 게임기·컴퓨터 본체 사진은 거의 전부가 이 아모스의 자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심지어 모든 사진의 라이선스가 공공재라 마음껏 갖다 써도 문제없다. 서양권 및 일본에 공식 발매된 어지간한 게임기·컴퓨터라면, 여기에서 아모스가 찍은 인쇄물 퀄리티의 초고화질 사진자료(유명 기기라면 내부구조와 기판 사진까지 있다)를 손쉽게 다운로드받아 상용·비상용을 막론하고 자유롭게 가공하거나 인용·사용할 수 있다. 고전 게임기나 컴퓨터에 관련된 정보글이나 기사, 책 등을 (특히 직업적으로) 만들어온 사람이라면, 많은 경우 아마도 직간접적으로 아모스의 사진자료 신세를 졌을 것이다. 심지어는 아모스의 이름조차 여태껏 몰랐더라도. 10년 이상에 걸쳐 구축된 아모스의 귀중한 사진 라이브러리는 이제 전 세계의 수많은 박물관·출판사·저작자·웹사이트 등에서 절찬리에 활용되고 있으며, 필자 역시 다년간 비디오 게임 관련 기사·특집·컬럼 등을 저작하는 과정에서 ‘기기 사진이 필요할’ 때마다 방문하여 애용해 왔다. 이 계열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의 저작물에 필요할 때마다 자유롭게 인용하거나 가져다쓸 수 있는 사진자료 라이브러리가 존재한다 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잘 알 것이다. 그래서, 아모스에게는 오랫동안 갚을 수 없는 빚을 진 느낌을 항상 갖는다. 그 ‘디지털 박물관’의 공식(?) 도록 지난 12월 29일 한국어판이 출간된 「게임 콘솔 2.0 : 사진으로 보는 가정용 게임기의 역사」는 이 아모스가 자신이 그간 찍어온 사진들을 소재로 삼아 2018년 북미에서 첫 출간한, 말하자면 바나모 온라인 게임 박물관의 공식 도록 에 가까운 느낌의 책이다(‘2.0’이 붙은 이유는, 기기 및 내용을 증보하여 2021년 재출간한 개정판을 번역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모스는 사진가 겸 비디오 게임 아키비스트로 활동하면서 2013년 킥스타터 크라우드펀딩을 열어 1,018명의 투자자와 $17,493의 자금을 모아 신규 기기들(덕분에 일본 게임기·PC 상당수가 추가될 수 있었다)을 확충했는데, 「게임 콘솔」은 그 크라우드펀딩 덕분에 탄생한 결과물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단순한 사진자료집에 그치지 않고 ‘1970년대 초창기부터 현 시점(2021년 기준)에 이르기까지, 비디오 게임의 역사를 하드웨어 사진 중심으로 훑는 가벼운 역사서’처럼 꾸민 것이 이 책의 최대 특징으로서, 기기마다 기본적인 발매시기, 하드웨어 사양, 간단한 소개글, 발매 당시의 의의와 시대상황 등을 정리해 깔끔한 사진과 함께 넣었고, 중요한 기기의 경우 분해하여 내부 기판 및 구조까지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1972년의 마그나복스 오디세이부터 2020년의 Xbox Series S/X와 플레이스테이션 5에 이르기까지 근 40년 9세대에 걸친 하드웨어 발전사의 온퍼레이드로서, 패미컴이나 메가 드라이브처럼 충분히 유명한 기기들뿐만 아니라 페어차일드 채널 F나 벡트렉스처럼 북미 비디오 게임 역사에 관심을 가진 독자여야 알까 말까한 마이너한 게임기까지 풍부하게 소개하고 있다. 말미에는 일종의 부록으로서, 지금 시대에 고전 게임을 즐기는 데 있어 발생하는 애로사항 및 대처법에 대한 간단한 안내와, 지면·자료 관계성 등의 문제로 누락됐지만 언급할 가치가 있는 마이너 기종ㆍ파생기종들에 대한 사진 및 소개문도 실려 있다. 꾸준히 개정판이 나올 수 있기를 바라며 기본적으로는 사진 위주의 도록 컨셉이고 방향성 자체도 워낙 확고하고 유니크한 책인지라 장점과 의의가 압도적이고, 고전 비디오 게임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모든 독자에게 일독을 추천할 만한 훌륭한 입문서라 할 수 있다. ‘사진으로 보는 가정용 게임기의 역사’라는 부제부터가, 이 책의 구성과 내용을 잘 압축해낸 문장인 셈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일단 (미국 책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한계이겠으나) 서술의 중점이 결국 미국 및 영미권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게임 콘솔의 역사에서 미국만큼이나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일본의 하드웨어 및 그 사회상·사정이라, 영미권 중심의 서술로는 아무래도 한계가 보인다는 것은 분명한 한계점이다(비단 이 책뿐만이 아니라 서양 저자가 쓴 일본 게임 역사서나, 반대로 일본 저자가 쓴 서양 게임 역사서에서 흔히 보이는 빈틈이기도 하다). 특히 일본 등 비영미권의 하드웨어 중 누락된 것이 제법 있어(예를 들어, MSX는 일본은 물론 유럽권에서도 수많은 기종이 발매되었으나 책에는 단 한 기종만 수록했다) 아쉬움을 더한다. 또한, 비디오 게임의 역사에서 ‘게임기’만큼이나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컴퓨터’ 쪽의 누락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도 아쉽다. 코모도어 64나 ZX 스펙트럼처럼 서양권 8비트 컴퓨터 계보 초기의 인기 기종들이 실려 있긴 하나 비중이 크지는 않으며, 애플 Ⅱ나 IBM PC처럼 빼놓고 지나가면 안될 법한 기종의 누락도 있다. 저자의 서문에는 ‘책 내의 세대 구분에 제대로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컴퓨터를 포함시키기 어려웠다’라는 대목이 있고, 바나모 온라인 게임 박물관의 라이브러리 내에서도 레트로 컴퓨터 쪽은 상대적으로 구색이 불충분한 편이라, 이쪽은 고전 컴퓨터 쪽을 다루는 별도의 책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일단 책 제목이 ‘게임 콘솔’이기도 하니까). 소소하게는 영미권 외 국가의 오리지널 기종들의 빈자리가 큰 것도 단점이라면 단점인데, 예를 들어 한국 오리지널 기종의 경우 이 책에서는 유이하게 GP32와 삼성 엑스티바(‘누온’ 제하로 실려 있다)가 들어가 있다. 모두 북미에 시판된 적이 있는 기종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같이 의의만큼이나 한계점도 큰 책이라는 점은 짚어두지 않을 수 없겠으나, 고전 컴퓨터·게임기를 다루는 외서가 예나 지금이나 한국어판으로 원활히 번역 소개되는 경우가 드문 현실을 고려하면 이 책의 한국어판 정식 발간은 큰 의미가 있다. 아모스의 활동이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지기를 기원하며, 혹시 후일의 「게임 콘솔」 개정판에 한국의 오리지널 하드웨어가 추가될 수 있다면 전 세계의 애호가들에게도 새로운 발견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가져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월간 GAMER'Z 수석기자) 조기현 ‘국민학교’ 때 친구 집에서 금성 FC-150과 패미컴을 처음 접했고, APPLE II+ 호환기종으로 컴퓨터에 입문했다. 중·고교 시절을 16비트 PC 게이머로 보낸 후 플레이스테이션을 접하며 가정용 게임기 유저로 전향, 게임으로 영어와 일본어 독해법을 익혔다. 이후 2002년부터 현재까지 (주)게임문화의 월간 GAMER'Z 수석기자로 재직중이다. 8~90년대 한국 게임 초창기의 궤적을 텍스트로 복각해보고 싶어 한다. 저서로는 〈한국 게임의 역사〉·〈우리가 사랑한 한국 PC 게임〉(모두 공저), 감수로는 〈페르시아의 왕자 : 개발일지〉와 〈여신전생 페르소나 3·4 공식설정자료집〉 등이 있으며, 2019년부터 레트로 게임기의 하드웨어·소프트웨어를 해설하는 무크집 〈퍼펙트 카탈로그〉 시리즈 연작의 한국어판을 번역·감수하고 있다. 최신간은 〈패미컴 퍼펙트 카탈로그〉와 〈세가 초기 게임기+겜보이 퍼펙트 카탈로그〉(근간 예정)다.
- 하이파이 러쉬: 2023년의 깜짝 락스타를 놓치지 마시라
기라성 같은 게임이 대단히 많았기에 게임 업계 종사자들은 으레 올해를 풍년이라고 부르곤 했다. 올해는 한국에서도 과 <데이브 더 다이버>가 '쌍백만'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새로운 희망을 보여줬다. 대한민국 게임대상을 두고 두 게임이 경쟁했던 일화는 훗날에도 오래 기억될 만하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올해의 게임을 고르기 어렵다'라는 이야기가 나왔던 2023년. 리듬+액션 게임 <하이파이 러쉬>(Hi-Fi Rush) 또한 빠져서는 안 될 수작이다. < Back 하이파이 러쉬: 2023년의 깜짝 락스타를 놓치지 마시라 15 GG Vol. 23. 12. 10. 2023년은 풍년이었다. 기라성 같은 게임이 대단히 많았기에 게임 업계 종사자들은 으레 올해를 풍년이라고 부르곤 했다. 올해는 한국에서도 과 <데이브 더 다이버>가 '쌍백만'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새로운 희망을 보여줬다. 대한민국 게임대상을 두고 두 게임이 경쟁했던 일화는 훗날에도 오래 기억될 만하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올해의 게임을 고르기 어렵다'라는 이야기가 나왔던 2023년. 리듬+액션 게임 <하이파이 러쉬>(Hi-Fi Rush) 또한 빠져서는 안 될 수작이다. <하이파이 러쉬>는 '디 이블 위딘' 시리즈와 <고스트와이어: 도쿄> 등을 내놓으며 호러 게임의 일가를 이룬 탱고 게임웍스가 만들고, 모회사 베데스다 소프트웍스가 유통한 게임이다. 그간 개발사의 이력과는 결을 달리 하는, 보여주지 않은 플랫포머가 가미된 3D 리듬 액션 게임이다. 2023년 1월 26일에 벼락 같이 출시되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 게임을 수식하는 데 있어 가장 먼저 따라오는 말은 바로 '벼락같은 출시'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1월 26일(한국 시간) '엑스박스 & 베데스다 개발자 다이렉트'라는 이름의 온라인 쇼케이스를 열었다. 엑스박스과 제니맥스가 한 몸이 되면서 덩치가 커진 이 쇼케이스는 이른바 '엑스박스' 진영의 퍼스트파티 게임들에 대한 정보가 발표되는 자리이다. 이곳에서 탱고 게임웍스는 "게임패스에서 바로 지금 <하이파이 러쉬>를 플레이할 수 있다"는 도발적인 홍보 전략을 날렸고, 실제로 발표와 함께 게임패스에는 <하이파이 러쉬>가 추가되었다. MS, 베데스다는 물론 개발사까지 이 게임의 정체에 대해서 철저히 감춰왔기 때문에 그 전까지 <하이파이 러쉬>의 존재를 알던 외부인은 아무도 없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현장 행사의 중량감이 줄어들며서 많은 개발사들이 온라인 쇼케이스나 론칭 트레일러, 온라인 유통망 페이지의 '찜하기' 등으로 자사 타이틀을 홍보해왔지만, 탱고 게임웍스는 '궁금하면 지금 가서 해보시라'는 놀라운 방법을 선택했다. 훗날 독일의 데브컴(devcom)과 한국의 지스타 컨퍼런스(GCON) 등에서 존 요하네스 디렉터가 술회한 바에 따르면, <하이파이 러쉬>는 회사에서도 소수 인원이 조용히 만들던 작은 규모의 프로젝트로 디렉터 자신이 기획, 스토리, 스크립트, 보스 디자인 등을 모두 책임지는 대신 프로젝트의 전권을 가져가는 형태로 개발되었다. 게임을 만들던 요하네스 디렉터와 개발진은 '이만하면 바로 선보여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라는 판단을 내리고, 그 어떠한 사전 마케팅 없이 게임을 '벼락같이' 출시한 것이다. * 독일 쾰른에서 열린 데브컴에서 게임의 개발기를 소개한 존 요하나스 <하이파이 러쉬> 디렉터 (출처: 디스이즈게임) '게임을 지금 바로 해보라'는 도발적인 마케팅은 리스폰 엔터테인먼트와 EA가 2019년 <에이펙스 레전드>를 내놓을 때도 펼쳐진 바 있다. 리스폰은 "전통적인 '타이탄폴' 후속작을 기대할 거라 예상했기에 게임을 비밀리에 출시하여 발표하자마자 바로 플레이할 수 있게 했다"며 "게임에 대한 예상 없이 직접 플레이해 보면 좋아하실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기습 출시의 배경을 밝혔다. 탱고 게임웍스도 이러한 종류의 "자신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그러나 속된 말로 게임이 '노잼'이었다면, <에이펙스 레전드>도 <하이파이 러쉬>도 별 다른 임팩트를 주지 못하고 사라졌을 터. 2019년의 <에이펙스 레전드>가 전에 없던 진보한 핑 시스템과 역할 구분을 통한 협동을 강조한 F2P 게임이었다면(그때 <배틀그라운드>는 유료였기 때문에 비교 우위가 있었다), 2023년의 <하이파이 러쉬>는 다음과 같은 강점이 있었기에 300만 명의 게이머를 매료시켰다. * 지난 8월 16일, 탱고 게임웍스는 <하이파이 러쉬>의 플레이어가 300만 명을 돌파했다고 소개했다. ⓐ 리듬게임과 스타일리시 액션의 조화: 게이머와 미디어가 이 게임을 높이 사는 가장 주요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하이파이 러쉬>의 게임플레이는 매우 고도화되었다. '데빌 메이 크라이' 시리즈가 떠오르는 빠르고 화려한 스타일리시 액션을 음악의 비트에 정렬하면서 음악에 타이밍을 맞추는 액션을 선보였다. 리듬과 액션의 조화는 오랜 아이디어다. <젯 셋 라디오>(세가, 2000)에도 플레이어 캐릭터가 음악의 비트에 맞추어 도시를 달리며 그래피티를 그리는 모습이 나온다. 더 넓게는 모든 액션 게임은 어느 정도 리듬성을 띠는데, 게이머들은 패턴을 리듬으로 인식해 몬스터의 공격에 응수하곤 한다. 이른바 '소울'(다크소울) 류에도 플레이어들이 보스 몬스터를 상대할 때 '읏따읏따' 같은 리듬을 만들어 외우며 플레이하곤 한다. <하이파이 러쉬>는 한 발 더 나아가 게임의 거의 모든 요소를 음악에 조화시켰다. 차이의 움직임은 물론 맵의 조명, 조력자 808, 몬스터의 움직임까지 박자에 맞춰서 움직인다. 거의 모든 액션 파트에서, 챕터마다 보스마다 변화하는 BGM에 따라서 강력한 시청각(컨트롤러를 쓰면 촉각까지) 경험을 누릴 수 있다. 잘 설계된 레벨 디자인에 맞춰서 약 공격, 강 공격, 회피, 패링 등이 학습되고 진행에 따라서 게임이 요구하는 난도, 즉 음악의 빠르기와 복잡도 또한 올라간다. * 회피와 패링을 섞어 써야 하는 보스 페이즈. 역시 리듬에 따라 흘러간다. * 전반적으로 박자를 맞추는 재미가 있어서 ‘스타일리쉬’의 재미가 배가된다. 요하네스 디렉터는 강연에서 싱글 플레이 게임임에도 발생하는 필연적인 입력 지연 등의 문제로 플레이어의 액션을 게임 단에서 보정하는 '리듬 싱크로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설명한 적 있다. 그를 위해 음악을 하나하나 세부적으로 뜯어서 분석하고, 거기에 몬스터와 오브젝트를 모두 조율한 가운데, 플레이어의 움직임에 조금의 보정을 넣어주었다. 쾌도난마와 같은 직관적인 재미 속에는 잘 설계된 메커니즘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설령 리듬감이 좋지 않은 게이머라 하더라도 컨트롤러의 진동 반응이나 <크립토 오브 더 네크로댄서>에서 제공되는 것과 유사한 박자 노트의 도움을 받아 킥, 스네어, 심벌과 기타 연주를 즐길 수 있다. 심지어 리듬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도 클리어가 가능한 난이도가 있으니 박치라고 하더라도 도전할 가치가 충분하다. 게임에는 프로디지(The Prodigy)나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의 음악들이 수록됐다. 탱고 게임웍스가 만든 오리지널 BGM 또한 락에 대한 경의가 느껴지는 트랙들이 가득하다. 여담으로 필자는 아직도 <하이파이 러쉬>의 오피셜 사운드트랙을 즐겨 듣는다. https://youtu.be/f5H9S3JtBuo?si=JCfLG0StaSAF-8_w ⓑ 수준 높은 애니메이션 연출: <하이파이 러쉬>의 모든 리듬+액션은 미국 카툰 풍의 그래픽 위에서 작동한다. 개발진의 셀 셰이딩(Cel Shading) 결과물은 어떻게 했는지 궁금할 정도로 매끄럽고, 또 만화적이다. 색은 절제되지 않았지만 눈을 방해하지 않는다. 차이가 탐험하는 SF 월드 디자인 또한 탄성을 자아낸다. 보스를 처치할 때 나오는 '코믹스 장면'은 ‘내가 해결했어’ 같은 성취를 제공한다. 개인적인 평가를 조금 강하게 넣어 보자면, <하이파이 러쉬>의 컷씬을 그대로 잘라 붙이면 그대로 OTT에 실려도 될 정도이다. 필드에서 적을 찾을 때까지 플레이어는 맵 곳곳을 탐험하며 강화에 쓰일 아이템을 모으는데 이 파트 역시 즐길 거리로 꽉 차 있다. 역시 셀 셰이딩 처리가 된 로봇들이 돌아다니는 만화 같은 월드에서 주인공 차이는 레일을 타거나, 자석이 붙은 곳에 와이어를 발사하거나, 동료들을 소환해서 총을 쏘거나, 벽을 부수는 형태로 탐험을 이어 나간다. <하이파이 러쉬>는 3D 플랫포머 파트까지 촘촘하게 잘 구성됐다. * 만화적인 연출을 아낌 없이 넣었다 * 플랫포머 파트 역시 대단히 흥미롭다. * 눈이 번쩍 뜨이는 월드 연출. ⓒ 무난한 스토리라인과 유머 코드: 사실 <하이파이 러쉬>의 서사 구조가 대단히 독창적이지는 않다. 오른팔이 부러진 락스타 지망생 차이는 거대 기업 반델레이의 신체 개조 프로젝트에 참여해 로봇 팔을 얻고, 그 과정에서 우연히 뮤직 플레이어가 가슴에 장착된다. 이어 이들 기업이 세계를 지배하려는 악덕 기업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차이는 동료들과 함께 반델레이의 간부들을 무찌르거나 회유하면서 정의로 한 발짝씩 나아간다. 'SF 세계에서 거대 기업에 맞선다'라는 설정은 클리셰의 영역에 있을 정도이다. 그만큼 무난한 설정은 오히려 게임플레이에 잘 맞아떨어진다. 아울러 이러한 스토리라인은 앞서 설명한 셀 셰이딩 연출과 어우러지며 플레이어로 하여금 카툰네트워크의 만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뿐 아니라 여기에는 <하이파이 러쉬>까지 유머 코드 튀지 않게 어우러지는데, 차이는 스토리 내내 시종일관 기행을 벌이며 웃음을 자아낸다. '로봇과 대화를 시도'하거나 직접 대포알이 되어 적진의 심장에 날아가는 차이는 세상 천진난만하다가도 결말부에서는 '밴드 멤버'들과 함께 진정한 락스타로 거듭난다. 이 성장담은 훈훈한 맛이 있다. <죠죠의 기묘한 모험>이나 <제노기어스>, <둠 이터널>의 패러디도 곳곳에 빛나고 있다. 귀여운 로봇 고양이는 어떤가? 차이의 조력자로 출연하는 고양이 808은 "엑스박스(진영)의 새로운 마스코트"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그전까지 엑스박스의 마스코트는 마스터 치프(헤일로)나 마커스 피닉스(기어스 오브 워)처럼 귀여움과는 거리가 먼 강력한 이미지의 전투 요원 아니었던가! * 이른바 ‘죠죠러’라면 잔조 파트가 분명 즐거울 터 (출처: Kakuchopurei 유튜브) * 그렇다. 리듬 게임은 너무 어렵다. 하지만 <하이파이 러쉬>는 타이밍을 잘 맞추지 못해도 노멀 엔딩이 가능하다. 정리하자면, 2023년 탱고 게임웍스와 베데스다, MS 엑스박스는 그 흔한 사전 마케팅이나 얼리 억세스 없이 유저와 평단의 찬사를 받는 리듬+액션 게임을 만들어 냈다. 훌륭한 카툰 랜더링과 유머는 덤이다. 아직도 <하이파이 러쉬>의 세계를 경험하지 못했는가? 지금이라도 2023년의 깜짝 락스타를 놓치지 마시라. 유저들은 게임의 저렴한 가격 또한 <하이파이 러쉬>의 장점으로 꼽고 있다. 물론 엑스박스 게임패스 구독자라면 그냥 할 수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김재석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 마일즈 모랄레스의 정체성과 브루클린이라는 ‘장소’
마일즈의 불안은 인물(아마도 다른 시간선에서 스파이더맨이어야 했으나 프라울러가 되고 만 마일즈)의 형상을 취하다가 거미로 변모한다. 그의 공포는 스파이더맨이라는 자격과 정체성 그 자체에 대한 의구심이었던 셈이다. < Back 마일즈 모랄레스의 정체성과 브루클린이라는 ‘장소’ 17 GG Vol. 24. 4. 10. 2024년 3월 27일 소니 애니메이션은 이라는 7분 14초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공개했다. 최근 스파이더맨의 세계관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손쉽게 짐작할 수 있지만 현재 소니가 서사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스파이더맨은 1대인 피터 파커보다는 2대 마일즈 모랄레스다. 공개된 애니메이션도 스파이더버스를 잘 구현했다는 평을 받은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이후 시간선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마일즈의 불안한 심리를 악몽을 통해 보여준다. 파악할 수 없는, 즉 언어로 규정되어 특정한 국면으로 해석이 불가능한 것들은 확정된 표상을 갖지 않는다. 마일즈의 불안은 인물(아마도 다른 시간선에서 스파이더맨이어야 했으나 프라울러가 되고 만 마일즈)의 형상을 취하다가 거미로 변모한다. 그의 공포는 스파이더맨이라는 자격과 정체성 그 자체에 대한 의구심이었던 셈이다. 스파이더맨은 미성숙하고 심리적으로 불안한 청소년이라는 정체성과 결합된 히어로다. 마일즈의 악몽은 영웅으로서 의무와 자신과 연결된 세계만을 지키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한계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시간의 제약으로 인해 발생하는 시작과 끝이 전제된 서사에 기댄 선형적 방식은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의 다른 측면을 보여주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 스파이더맨은 뉴욕이라는 도시의 장소성에 기댄 히어로다. 그것은 웹스윙을 포함한 스파이더맨의 기술이 가진 매력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곳이 마천루의 숲, 맨해튼이라는 점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그를 수식한 다른 표현이 “친절한 이웃”이기 때문이다. 이 표현에는 특수한 그리고 출중한 능력을 가진 구원자로서 영웅이라는 정체성보다 내가 살고 있는 거리 나아가 도시와 관계 맺는 인간이라는 특성이 잘 드러난다. 그리고 스파이더맨의 정체성이 인간, 대상, 공간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라면 피터를 설명하는 요소는 뉴욕이라는 보다 공간에 가까운 이미지의 비중이 크다. 그에 비해 마일즈의 정체성은 브루클린이라는 구체적인 장소를 통해 만들어진다. ‘공간’과 구분되는 경험의 축적과 관계를 통해 의미가 부여된 ‘장소’를 구분해서 파악했던 것은 이 푸 투안의 접근법이다. 피터 파커는 퀸즈 출신이다. 그러나 퀸즈로 특정되는 장소보다는 스파이더맨이든 피터 파커라는 인간 개인이든 그의 정체성은 뉴욕이라는 냉혹한 자본주의의 정점에 서 있는 도시에서 좌절을 경험하고 의무감을 통해 각성하는 존재에 가깝다. 달리 말하면 피터 파커에게는 퀸즈가 그의 장소로 자리매김하는 사건이 부각되지 않는다. 이것은 1대 스파이더맨인 피터 파커가 너무 오랫동안 뉴욕의 히어로로 활약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와 달리 새로운 세대인 마일즈의 정체성은 동시대의 브루클린이라는 장소와 맞물려 있다. 브루클린은 경찰이었던 아버지의 사망 후에 국회의원이 된 어머니 리오 모랄레스의 장소인 할렘과는 다른 성격을 갖는다. 1930년대부터 1950년대 말까지 뉴욕 재즈의 중심지는 할렘이었다는 평가가 증명하는 것처럼 할렘은 재즈라는 새로운 음악 장르가 등장하면서 그 역동성과 흑인 공동체라는 정체성과 결합된 곳이었다. 도난당한 문화 박물관의 악기들을 찾아달라는 퀘스트는 흑인인 아버지와 히스패닉인 어머니 사이의 마일즈가 갖는 공동체적 정체성의 근간은 문화 박물관에 전시된 예술가와 그들의 악기를 통해 짐작할 수 있듯 문화적인 것을 포함한다. 마일즈 모랄레스라는 인물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인 힙합 역시 그는 의식하지 못하고 “옛날 음악”이라고 평가했지만 아버지가 좋아했던 재즈 색소폰 연주자 찰리 파커와 같은 인물들의 계승이기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마일즈의 표현대로 그것은 과거의 것이기에 새로운(그리고 젊은) 스파이더맨이라는 존재를 부각하기에 충분한 문화적 서사가 되기 어렵다. 오히려 청소년 마일즈의 주요한 인물 관계는 사이드킥 역할을 하는 강케와 여자친구 헤일리를 포함해 브루클린 비전이라는 학교를 중심으로 확장된 것들이다. <마블 스파이더맨2>에서 수행되는 퀘스트 중 상당수는 두 명의 스파이더맨 중 누구를 선택해 플레이해도 무관하지만 할렘과 브루클린에서 발생하는 퀘스트는 마일즈만 수행이 가능하다. 이 퀘스트들은 그야말로 “친절한 이웃”인 스파이더맨이자 브루클린 비전 재학생 마일즈를 연결하는 것들이다. 브루클린 비전의 라이벌인 미드타운이 훔쳐간 학교 마스코트인 사자 인형 랜스를 회수하기 위해 퀴즈를 푼다든지, 프롬파티에 파트너를 구하기 위해 썸남에게 고백하는 이벤트를 도와주는 일과 같은 퀘스트들은 재학생들에게는 너무나도 중요한 사건이다. 조력자로 활약하는 스파이더맨은 이들과 함께 브루클린을 경험하면서 영웅의 책임이라는 무거운 정체성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친절하고 (세대적으로도) 가까운 히어로의 표상을 획득한다. 앞서 거론한 퀘스트 중 랜스 찾기는 도시가 도로를 정비하고 건물을 건축하는 기획자들에 의해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퀘스트다. 마일즈는 도시 곳곳의 건물 옥상을 이동하면서 미드타운 학생들이 남긴 메시지를 통해 랜스를 숨긴 곳을 수색한다. 특정 각도로 거울을 움직여야 벽화에 투사되는 메시지는 그 내용보다는 도시에 산재한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벽화를 완상하기 위한 매개로 활용된다. 장소의 특수성은 그것을 인식하는 주체의 몸을 매개로 이루어진다. 마일즈가 이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조언을 구하는 이는 그래피티 활동가이자 개인 전시도 기획하는 도시미술가이자 그의 여자친구인 헤일리다. 마일즈라는 하나의 인물만으로는 포섭할 수 없는 문화적 기호를 헤일리와 같은 인물을 통해 분산해서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피티나 벽화와 같이 도시 계획과는 무관하게 거리를 수식하는 다양한 예술적 재현을 인식하는 일은 장소가 고립된 공간이 아닌 인간과 다른 인간, 다양한 사물과 연결되어 구축되는 역동적이고 상호의존적인 개념이라는 점을 상기하게 한다. <마블 스파이더맨2>은 튜토리얼은 맨하탄과 브루클린을 연결하는 브루클린 다리를 건너면서 시작된다. 이것은 이전 시리즈에 비해 브루클린과 퀸즈까지 확장된 맵을 보여주는 방식이기도 하다. 뉴욕에 편입된 이래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브루클린의 공간적 성격은 극적으로 변모했다. 1960년대 쇠락한 제조업의 상징이었고 실업자와 범죄자의 온상과도 같이 여겨졌던 브루클린은 현재는 현대 예술과 디자인의 요람이자 첨단 기술을 가진 신규 기업이 사옥을 건설할 공간으로 선택하는 곳이 됐다. 마일즈가 자신이 살던 브루클린을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곳”이라고 표현한 것은 과장은 아니었던 것이다. (아쉽게도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곳에 살던 마일즈는 어머니 때문에 할렘으로 이사했다.) 아울러 이곳은 1930년대 할렘에 거주했던 흑인들의 상당수가 브루클린 북부로 이주했다는 점에서 할렘의 장소성과 연장선상에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마일즈가 동시대적 현재를 보여주는 새로운 스파이더맨임을 알 수 있는 장치 중 그가 즐겨 착용하는 헤드셋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음악이다. <마블 스파이더맨2>의 아쉬운 점은 전작 <마블 스파이더맨: 마일스 모랄레스>에는 적절하게 활용됐던 힙합 중심의 OST가 이번 게임에서는 부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수자이자 방외자로서의 정체성에서 시작됐던 힙합이 대중성과 트렌드를 대표하는 장르가 된 것과 같이 마일즈는 그의 인종적 정체성의 비감에 고뇌하는 인물이기보다는 사교적인 성격의 캐주얼한 캐릭터로 그려진다. 음악, 나아가 사운드가 그를 견인하는 서사적 기법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상기하는 전략이다. OST 선정의 아쉬움에도 미스테리오가 운영하는 코니 아일랜드의 어트렉션 체험과 같은 에피소드는 실소를 짓게 만든다. 플레이어는 클럽 음악을 디제잉하는 마일즈를 통해 미스테리오발 미래 기술을 경험할 수 있다. 피터와 MJ, 해리가 코니 아일랜드를 추억의 놀이공원을 반추하는 것과는 상이한 체험이다. 마일즈의 브루클린 나아가 뉴욕이 그가 경험하는 사건과 관계 맺는 인물들을 통해 구성되는 것이라면 플레이어에게 뉴욕은 어떤 곳일까? 혹자는 실제 뉴욕을 경험해본 이들이 게임을 통해 재현한 공간을 어떻게 감각할 것인가를 궁금해 하기도 한다. 그것은 재현물이 얼마나 실재적인(느낌을 주는)가에 대한 궁금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게임을 플레이한 입장에서 개인적인 즐거움은 뉴욕이라는 로컬리티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기호, 이미지, 기술과 같은 매개체의 역할이 수행하는 바를 확인하는 과정에 있었다. 심비오트 둥지가 조형물처럼 서 있는 뉴욕 경관을 윙슈트를 입고 날아가면서 볼 수 있는 경험은 오직 이 게임만이 재현하는 스파이더 세계관에서의 뉴욕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역으로 게임으로 인해 플레이어는 뉴욕에 대한 궁금증과 미디어 이미지에 기반을 둔 향수를 경험하기도 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성균관대학교 강사) 홍현영 패미콤을 화목한 가족 구성원의 필수품으로 광고한 덕분에 게임의 세계에 입문했다. <저스트댄서> 꾸준러. 『81년생 마리오』, 『게임의 이론』, 『미디어와 젠더』 등을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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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14 장기, 바둑 두는 사람들의 수다에서부터도 우리는 이른바 어그로성을 발견한다. 프로 기사가 아닌 다음에야 언제나 바둑 장기도 조롱과 공격, 농담이 뒤섞인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이뤄진 바 있었고, 오늘날 우리는 온라인 멀티플레이 상황에서 이를 더욱 뼈저리게 받아들이곤 한다. 인 게임 커뮤니케이션이라지만, 사실 냉정하게 구분한다면 이들 커뮤니케이션은 인 게임이 아니라 아웃 게임이면서도 인 게임의 역할을 수행하는 무엇이다. 이에 관한 고찰을 다양한 각도에서 풀어보고자 한다. <폴아웃 3>로 보는 후쿠시마 오염수 사태 인간은 절멸을 앞둔 위기 속에서도 ‘프로젝트 퓨리티’가 가능하든 그렇지 않든, 계속 노력할 것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방사능 비가 내리게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상기에 서술한 문제가 실제로 발생하거나 그것이 우려될 때, 인류는 블레이드 러너의 그 장면을 다시 떠올리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인류는 살아갈 것이고 또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오늘의 결정을 신중히 하고 혹시 다른 대안이 없는지 좀 더 찾아보자는 주장은 보편타당성을 갖게 된다. 그렇기에 우려나 악몽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남의 발언을 선동으로 규정하는 선동이 더 위험한 세상 아닌가? Read More Pings, Parley, and Pictures - How Players Communicate Games are inherently social. In the wake of MUDs (Multi-User Dungeons) in the late 1970s to MMORPGs in the early 90s, playing games has been heralded as an opportunity to socialise and be social - antithetical to the usual “loner” gamer stereotype that is so pervasive in popular media. More recently, during the COVID-19 pandemic, games offered a pre-existing framework for keeping in touch and hanging out with friends when regions in Canada and the U.S. were facing mandatory lockdowns and curfews to stem the infection rates. Many turned to their headsets and keyboards to play games and catch up with friends when they could not see them face-to-face. However, a caveat to being a social space, is the potential for anti-social behaviours. This is not formed in the lack of socialising, a typical tenant of being anti-social, but rather in the deploying of modes of communication to have a different kind of social “fun”. Read More USA in Fallout, USA today We once thought that the era of Donald Trump had come to an end, but it appears it hasn't. While Trump may have lost the election, his supporters' enthusiasm remains robust. What fuels this enduring energy? Moreover, is the driving force behind Trump's rise aligned with traditional 'American' values or does it run counter to them? It's worth recalling that Trump's campaign slogan was 'Make America Great Again'. Yet, years later, when President Joe Biden won the election after a vigorous anti-Trump campaign, he declared his presidential message as 'America is back.' So, which vision truly represents 'America' – Trump's or Biden's? Read More [editor's view] 댓글로 사람이 죽는 시대의 커뮤니케이션 <심 어스>라는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특정 생물군을 지능을 가진 사회적 군집체로 진화시킬 수 있는데, 이들이 기술발전만 급격하게 이루고 철학과 윤리 발전이 늦어지면 결국 핵전쟁으로 멸망하는 경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전쟁까지는 아니지만, 우리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사회에서 댓글로 사람이 죽는 시대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Read More [논문세미나] <하스스톤>에서 플레이어들은 왜 감정 표현을 오용하는가? 저자들은 위의 요소를 모두 고려해 비매너 상호작용의 다섯 가지 형태를 정리한다. 제시된 유형들은 가장 일반적으로 지적되는 것으로, 모든 플레이어가 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항복(concede)’은 여기서 가장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모순점인데, 항복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모두가 비매너 플레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Read More [인터뷰] 게임 내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만들어내는 게임 문화: PUBG UX 유닛 한수지 실장, UI 디자인팀 문휘준 팀장 그러나 오늘날 게임 내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단순하지 않다. 보이스 채팅이 생기고, 다양한 방식의 전술적 소통 방식이 도입되기도 하였다. 이런 변화는 게임 문화에 어떤 영향을 줄까? 게임 내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변화가 게임의 재미와 플레이 방식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이번 호에서는 이러한 질문을 가지고, PUBG의 UI 디자인팀 문휘준 팀장과 UX 유닛 한수지 실장을 만나고 왔다. Read More ‘병’의 은유 : 요코오 타로의 질병 서사 <니어> 시리즈와 <드래그 온 드라군> 시리즈에서 질병은 반복해서 절망의 폐쇄회로를 다룬다. 세계멸망의 꽃이 나타나 드래그 온 드라군 월드에 레드아이가 퍼지고, 카임은 레드 드래곤과 계약을 맺어 2003년 도쿄 신주쿠에 이르기까지 결전을 벌이며, 레드 드래곤의 몸속에 마소가 확산되어 니어 월드에 전파되고, 인간이 만든 로봇들은 마소를 다른 세계로 돌려보내 세계멸망의 꽃은 Zero의 눈에 탄생하게 된다. Read More “진보가 게임을 망친다?” <데스티니2>의 부침을 따라서 흔히 재난에 “‘별 혹은 행성의 불길한 국면’이라는 첫 번째 정의와 ‘갑작스럽거나 커다란 불행’이라는 두 번째 정의가 함께 관계”해 왔을 때, 일반적으로 <데스티니2>에서 묘사되는 재난은 전자의 의미를 조명하는 쪽에 가깝다. Read More 게임, 폭력, 범죄 연구의 타임라인 2023년 8월 11일, 검찰은 신림동에서 거리에서 서있던 20대 남자를 흉기로 공격하여 사망하게 하고 3명에게 상해를 입힌 사건에 대해 “현실과 괴리된 게임중독 상태에서 마치 컴퓨터 게임을 하듯이 젊은 남성을 공격하였다”라고 설명하며, 사건의 원인을 게임중독으로 지목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이런 논란에 대해서 각계에서 의견을 밝혔지만, 게임과 범죄 간의 연구들을 기반으로 한 의견들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은 것 같다. Read More 게임의 문화담론 정착을 위한 발걸음, ‘게임제너레이션’ 1998년 이후 한국은 스스로나 해외로부터의 평가로나 자타공인 게임 강국으로 불려 왔다. 그러나 게임 강국 한국이라는 단어의 이면에는 다소 불균등한 지점이 존재하는데, 여기서의 게임강국이라는 말은 말그대로 ‘플레이’의 강국이라는 점에만 집중되기 때문이다. Read More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의 타임라인 그래서 게임과 중독에 관한 글을 쓸 때 모든 식자들은 엘리트주의적 정서를 느낀다. 이 복잡한 맥락을 나는 잘 정리해서 이해했으니 알려주고 싶다! 실제로 이 글의 서두는 그렇게 쓰여졌고, 완성 후에 후회했다. 그런 정리는 이미 너무 많다. 현재에는 게임 중독, 혹은 게임이용장애에 대해 우리 한국 사회가 어떻게 대응과 준비를 하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 더 가치 있을 것이다. Read More 그 많던 '스타크래프트' 게이머들은 어디로 갔을까 자칫 우리는 게임과 게이밍을 생각할 때 그 대상을 고정된 무언가로 잠정하는 경향이 있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이 대상이 얼마나 역동적이며 다양한 변수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게이머라고 부르는 집단은 결코 과거의 그들이 고정되지 않은 채 새로 들어오는 이와 나가는 이로 진폭을 만들며, 그 개개인 또한 시간과 환경의 변화 속에 각자의 이유로 변해간다. Read More 비언어 커뮤니케이션과 트롤링 그런 점에서 긍정적이지 않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을, (게임이나 플레이어의 폭력성이나 가학성을 드러내는 것일 수 있지만, 그보다는) 게임 시스템 활용의 하나이자, 전체 플레이의 맥락 속에서 이뤄지는 하나의 실천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Read More 시뮬레이티드 셀프: 놀이하는 인간이 시뮬레이션을 작동시키는 방식에 대하여 세계는 불확정성으로 가득 차 있다. 인간은 생동하는 물리적 실재를 파악할 수 없으며, 단지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가정법에 따른 결과론, 혹은 결정론은 입자들의 불확정한 위치에 선형성을 부여하는 매력적인 시뮬레이션이다. ‘만약 ~라면 어땠을까?’ ‘만약 ~한다면 어떨까?’는 확률의 세계에서 확고한 인과관계를 부여할 뿐 아니라 대안적인 실재를 상상하도록 어떤 유희의 프레임을 제공한다. 만약 조선이 자생적 근대화에 성공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승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와 같은 질문을 통해 우리는 지적인 유희를 즐길 뿐 아니라 구체적인 시뮬레이션 절차들을 상정함으로써 확률의 시공간을 결과의 시공간으로 바꿔놓게 된다. Read More 인게임 커뮤니케이션과 현실의 가치: 의 사례 정확히 똑같은 현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이러한 돌봄의 위기는 유사한 형태로 게임 공간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인터뷰에 참여했던 여성 게이머들 대다수가 여성 게이머에 대한 편견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지원가 역할을 기피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Read More 트롤링 권하는 기술: 인게임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에 대한 소고 기술은 매 순간 우리의 기대를 넘어서는 발전 속도를 보여주지만, 결국 그 기술이 그려내고자 하는 것은 과거 우리가 맨몸으로 겪었던 어떤 순간이다. 반드시 한 자리에 모여야만 가능했던 게임을 디지털기술은 원거리에서도 게임 규칙이 제시하는 승부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무언가로 탈바꿈시켰고, 이제는 그 게임의 바깥에 존재하던 음성언어마저도 구현가능한 상황에 우리를 올려놓았다. Read More 핑, 협상, 그리고 그림 - 플레이어들은 어떻게 소통하는가? 게임은 본질적으로 소셜입니다. 1970년대 후반의 MUD게임에서부터 90년대 초반의 MMORPG에 이르기까지, 게임을 하는 것은 사회성을 기르고 사회적 교류를 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겨져 왔습니다. 미디어에서 만연한 ‘외톨이’ 게이머의 스테레오 타입과는 정반대입니다. Read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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