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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게임콘솔 2.0: 현대 게임기의 계보와 궤적을, 사진으로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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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3. 4. 10.

한 남자의 자원봉사에서 시작된 ‘디지털 박물관’


에반 아모스(Evan Amos)라는, (북미 게임기 시장 대붕괴 시기로 유명한) 1983년에 태어난 한 미국인 남자가 있다.


어린 시절을 비디오 게임을 벗 삼아 왔기에 게임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그는, 2000년대 중반쯤 위키백과를 뒤적거리다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위키백과 문서에 실린 고전 게임기들의 사진 퀄리티가 너무 조악했다는 점이었다. 지금의 웹도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당시 웹 문서들의 사진자료는 디지털카메라 보급 초기이기도 해서 개인이 형편 되는 대로 찍어 자가 제공한 사진들 일색이었으므로, 그때 눈으로 봐도 거개가 저해상도 저퀄이기 일쑤였다. 물론 하드웨어 제작사가 말끔하게 찍은 공식 사진자료가 있기는 하나, 당연히 제작사에 저작권이 있는데다 언론사 등에나 한정적으로 제공되기에, 공공자료로 개방되어 인용용으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고퀄리티 사진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이건 내가 기여할 수 있겠다’라는 점에 눈뜬 아모스는, 독학으로 사진기술을 배운 후 자신의 Wii를 피사체로 삼아 DSLR과 전문장비로 깔끔하게 고화질 사진을 찍어 2010년 8월 28일 영어 위키백과에 공공재(public domain) 형태로 공개했다. 그의 첫 ‘기여’였다. 이 ‘무료봉사’는 점점 가속도가 붙어, 온라인 중고장터에 공고를 내기도 하고 사설 수집가들에게서 기기를 제공받기도 하고 뜻있는 사람의 기부까지도 받아가며 일종의 ‘사회활동’으로까지 발전해, 2015년이 되자 위키백과 산하의 디지털 자료 아카이브 사이트인 위키미디어 공용에 자신의 사진이 모인 대규모 저장소인 바나모 온라인 게임 박물관을 만들기에 이른다.


현재 영어판을 포함한 각국 위키백과의 고전 게임기·컴퓨터 본체 사진은 거의 전부가 이 아모스의 자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심지어 모든 사진의 라이선스가 공공재라 마음껏 갖다 써도 문제없다. 서양권 및 일본에 공식 발매된 어지간한 게임기·컴퓨터라면, 여기에서 아모스가 찍은 인쇄물 퀄리티의 초고화질 사진자료(유명 기기라면 내부구조와 기판 사진까지 있다)를 손쉽게 다운로드받아 상용·비상용을 막론하고 자유롭게 가공하거나 인용·사용할 수 있다. 고전 게임기나 컴퓨터에 관련된 정보글이나 기사, 책 등을 (특히 직업적으로) 만들어온 사람이라면, 많은 경우 아마도 직간접적으로 아모스의 사진자료 신세를 졌을 것이다. 심지어는 아모스의 이름조차 여태껏 몰랐더라도.


10년 이상에 걸쳐 구축된 아모스의 귀중한 사진 라이브러리는 이제 전 세계의 수많은 박물관·출판사·저작자·웹사이트 등에서 절찬리에 활용되고 있으며, 필자 역시 다년간 비디오 게임 관련 기사·특집·컬럼 등을 저작하는 과정에서 ‘기기 사진이 필요할’ 때마다 방문하여 애용해 왔다. 이 계열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의 저작물에 필요할 때마다 자유롭게 인용하거나 가져다쓸 수 있는 사진자료 라이브러리가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잘 알 것이다. 그래서, 아모스에게는 오랫동안 갚을 수 없는 빚을 진 느낌을 항상 갖는다.



그 ‘디지털 박물관’의 공식(?) 도록


지난 12월 29일 한국어판이 출간된 「게임 콘솔 2.0 : 사진으로 보는 가정용 게임기의 역사」는 이 아모스가 자신이 그간 찍어온 사진들을 소재로 삼아 2018년 북미에서 첫 출간한, 말하자면 바나모 온라인 게임 박물관의 공식 도록에 가까운 느낌의 책이다(‘2.0’이 붙은 이유는, 기기 및 내용을 증보하여 2021년 재출간한 개정판을 번역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모스는 사진가 겸 비디오 게임 아키비스트로 활동하면서 2013년 킥스타터 크라우드펀딩을 열어 1,018명의 투자자와 $17,493의 자금을 모아 신규 기기들(덕분에 일본 게임기·PC 상당수가 추가될 수 있었다)을 확충했는데, 「게임 콘솔」은 그 크라우드펀딩 덕분에 탄생한 결과물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단순한 사진자료집에 그치지 않고 ‘1970년대 초창기부터 현 시점(2021년 기준)에 이르기까지, 비디오 게임의 역사를 하드웨어 사진 중심으로 훑는 가벼운 역사서’처럼 꾸민 것이 이 책의 최대 특징으로서, 기기마다 기본적인 발매시기, 하드웨어 사양, 간단한 소개글, 발매 당시의 의의와 시대상황 등을 정리해 깔끔한 사진과 함께 넣었고, 중요한 기기의 경우 분해하여 내부 기판 및 구조까지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1972년의 마그나복스 오디세이부터 2020년의 Xbox Series S/X와 플레이스테이션 5에 이르기까지 근 40년 9세대에 걸친 하드웨어 발전사의 온퍼레이드로서, 패미컴이나 메가 드라이브처럼 충분히 유명한 기기들뿐만 아니라 페어차일드 채널 F나 벡트렉스처럼 북미 비디오 게임 역사에 관심을 가진 독자여야 알까 말까한 마이너한 게임기까지 풍부하게 소개하고 있다.


말미에는 일종의 부록으로서, 지금 시대에 고전 게임을 즐기는 데 있어 발생하는 애로사항 및 대처법에 대한 간단한 안내와, 지면·자료 관계성 등의 문제로 누락됐지만 언급할 가치가 있는 마이너 기종ㆍ파생기종들에 대한 사진 및 소개문도 실려 있다.



꾸준히 개정판이 나올 수 있기를 바라며


기본적으로는 사진 위주의 도록 컨셉이고 방향성 자체도 워낙 확고하고 유니크한 책인지라 장점과 의의가 압도적이고, 고전 비디오 게임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모든 독자에게 일독을 추천할 만한 훌륭한 입문서라 할 수 있다. ‘사진으로 보는 가정용 게임기의 역사’라는 부제부터가, 이 책의 구성과 내용을 잘 압축해낸 문장인 셈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일단 (미국 책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한계이겠으나) 서술의 중점이 결국 미국 및 영미권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게임 콘솔의 역사에서 미국만큼이나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일본의 하드웨어 및 그 사회상·사정이라, 영미권 중심의 서술로는 아무래도 한계가 보인다는 것은 분명한 한계점이다(비단 이 책뿐만이 아니라 서양 저자가 쓴 일본 게임 역사서나, 반대로 일본 저자가 쓴 서양 게임 역사서에서 흔히 보이는 빈틈이기도 하다). 특히 일본 등 비영미권의 하드웨어 중 누락된 것이 제법 있어(예를 들어, MSX는 일본은 물론 유럽권에서도 수많은 기종이 발매되었으나 책에는 단 한 기종만 수록했다) 아쉬움을 더한다.


또한, 비디오 게임의 역사에서 ‘게임기’만큼이나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컴퓨터’ 쪽의 누락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도 아쉽다. 코모도어 64나 ZX 스펙트럼처럼 서양권 8비트 컴퓨터 계보 초기의 인기 기종들이 실려 있긴 하나 비중이 크지는 않으며, 애플 Ⅱ나 IBM PC처럼 빼놓고 지나가면 안될 법한 기종의 누락도 있다. 저자의 서문에는 ‘책 내의 세대 구분에 제대로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컴퓨터를 포함시키기 어려웠다’라는 대목이 있고, 바나모 온라인 게임 박물관의 라이브러리 내에서도 레트로 컴퓨터 쪽은 상대적으로 구색이 불충분한 편이라, 이쪽은 고전 컴퓨터 쪽을 다루는 별도의 책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일단 책 제목이 ‘게임 콘솔’이기도 하니까).


소소하게는 영미권 외 국가의 오리지널 기종들의 빈자리가 큰 것도 단점이라면 단점인데, 예를 들어 한국 오리지널 기종의 경우 이 책에서는 유이하게 GP32와 삼성 엑스티바(‘누온’ 제하로 실려 있다)가 들어가 있다. 모두 북미에 시판된 적이 있는 기종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같이 의의만큼이나 한계점도 큰 책이라는 점은 짚어두지 않을 수 없겠으나, 고전 컴퓨터·게임기를 다루는 외서가 예나 지금이나 한국어판으로 원활히 번역 소개되는 경우가 드문 현실을 고려하면 이 책의 한국어판 정식 발간은 큰 의미가 있다. 아모스의 활동이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지기를 기원하며, 혹시 후일의 「게임 콘솔」 개정판에 한국의 오리지널 하드웨어가 추가될 수 있다면 전 세계의 애호가들에게도 새로운 발견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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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GAMER'Z 수석기자)

‘국민학교’ 때 친구 집에서 금성 FC-150과 패미컴을 처음 접했고, APPLE II+ 호환기종으로 컴퓨터에 입문했다. 중·고교 시절을 16비트 PC 게이머로 보낸 후 플레이스테이션을 접하며 가정용 게임기 유저로 전향, 게임으로 영어와 일본어 독해법을 익혔다. 이후 2002년부터 현재까지 (주)게임문화의 월간 GAMER'Z 수석기자로 재직중이다. 8~90년대 한국 게임 초창기의 궤적을 텍스트로 복각해보고 싶어 한다.

저서로는 〈한국 게임의 역사〉·〈우리가 사랑한 한국 PC 게임〉(모두 공저), 감수로는 〈페르시아의 왕자 : 개발일지〉와 〈여신전생 페르소나 3·4 공식설정자료집〉 등이 있으며, 2019년부터 레트로 게임기의 하드웨어·소프트웨어를 해설하는 무크집 〈퍼펙트 카탈로그〉 시리즈 연작의 한국어판을 번역·감수하고 있다. 최신간은 〈패미컴 퍼펙트 카탈로그〉와 〈세가 초기 게임기+겜보이 퍼펙트 카탈로그〉(근간 예정)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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