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와 액션의 사이에서: 바이오하자드 시리즈
19
GG Vol.
24. 8. 10.
* 어떤 공포 게임의 차기작 이미지이지만 팬메이드인, 가짜.
‘공포’ 게임
공포는 흥미로운 감정이다. 감정 중에서도 생존과 직결되었기에 가장 강렬한 반응을 이끌어내는데, 동시에 유희의 방법으로도 활용이 되는 모순된 감정이다. 이 특징 때문에 공포 장르는 흥행이 어렵다. 무서우면 재밌지만, 무서우면 꺼려진다. 이 모순의 균형을 해결하는 것이 모든 공포 장르의 숙제다.
* 반복되는 공포는 학습이 되어 무뎌진다. 이 친구는 이제 더는 무섭지 않다.
문학, 연극, 만화, 영화, 게임 등에서 구현된 모든 공포 장르의 기본 구도는 같다. 가장 중요한 극중 갈등은 인물과 인물 외부의 세계 혹은 ‘무언가’다. 인물 외부에는 불가해한 무엇이 존재하고 그 무엇은 인물의 생존을 위협한다. 인물은 이 위협에서 도망치거나 위협을 극복해야만 한다. 하지만 방법은 알 수가 없고, 위협의 근원이 주는 공포로 인해 갈등 극복은 어려워진다. 마침내 인물은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위협을 물리치거나, 위협에서 도망치거나, 가끔은 이겨내지 못하고 위협에게 잡힌다.
이런 구조 속에서 나오는 서사가 공포 장르의 서사, 생존 투쟁의 서사다. 수용자는 이런 일련의 서사를 유희의 도구로서 감상한다. 체험이 특징인 게임만은 다르지만. 아무튼 그래서 공포 장르의 진입 장벽은 높다. 수용자는 생존 투쟁의 스트레스를 유희로서 받아들일 만큼 심리적 거리를 만들어야 하지만, 동시에 유희로서의 몰입을 할 정도로는 가까워야 한다.
유희로서의 공포에 관해서 윤장원은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로제 카이와(Roger Caillois)의 놀이이론을 공포 게임에 적용한 연구를 발표했는데, 여기서 윤장원 교수의 가장 중요한 문장은 이렇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로제 카이와는 놀이의 속성을 네 가지로 나누었는데, 그 중 일링크스(ilinx)는 ‘현기증’으로 대표되는 감각 자극의 속성이다. 윤장원은 공포 감정이 일링크스 영역에 주로 해당한다고 하면서, “이것들은 흥분의 즐거움, 환상의 즐거움, 합의된 혼란의 즐거움, 약한 충격의 즐거움, 안전한 충격의 즐거움들이다.”(윤장원, “공포게임속 유희적 공포를 중심으로”, 2008.05, 조형미디어학 제11권 제2호)라고 썼다. 즉, 공포 장르의 공포는 ‘언제든 피할 수 있는 공포’이기 때문에 유희가 된다.
* 작중에서 아무리 피할 수 없는 공포가 등장한다 해도, 작품 바깥은 내 생존에는 영향이 없다.
공포 ‘게임’
다른 공포 장르에서의 공포는 관람하는 유희지만, 게임은 체험의 양식이다. 그래서 ‘돌파하여 극복하는’ 구도를 수용자가 직접 수행해야 하는 게임은 앞선 모순점의 숙제를 훨씬 더 민감하게 다뤄야 한다. 여기서 민감하다는 의미는 모순의 저울이 하나가 아니라는 의미다. 공포와 안전이 1번 저울의 쌍이라면, 2번 저울의 쌍은 신선한 공포와 무뎌진 공포다.
게임에서 위협적인 대상을 만나면, 플레이어는 게임의 특성에 따라 교전이나 도망을 수행한다. 그리고 숙련도가 쌓이게 되면서 점점 더 익숙해진다. 공포란 낯설고 생경한 것에서부터 오는 것이 기본이다. 익숙해진 공포는 더 이상 공포가 아니고, 공포 게임에서 공포가 옅어지면 큰 재미 요소를 잃는 것이다. 공포의 수위 문제인 1번 저울의 경우엔 작품의 완성도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해결이 가능하지만, 공포의 희석이라는 2번 저울의 모순은 게임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만나게 된다. 아무리 컨텐츠의 수행 패턴을 바꾸면서 낯설음을 유지하려고 해도, 플레이어는 점차 적의 행동 패턴을 연구하고 공간을 학습하고 기괴한 디자인에 적응한다. 그렇게 자신을 쫓아오는 괴물을 두려워하지 않고 대응 방법을 손쉽게 수행하기 시작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2회차 플레이부터는 공포 요소의 위치가 익숙해지게 되면서 공포 게임이 아닌 기억력 퍼즐 같은 플레이가 되기도 한다. 가장 질 좋은 공포는 최초 탐험인지라, 공포 게임은 장르의 시작부터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을 예언 받은 셈이다.
그래서 게임에서 공포 장르는 생존 공포라는 특징이 대세가 된다. 1989년 일본의 영화 ‘스위트홈’의 게임판에서부터 시작된 생존 공포라는 세부 장르 명칭은 중복 형용인 것 같지만, 운명적 모순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묻어나는 이름이다. 이 장르에서 플레이어는 대항 행위에 쓸 자원을 제한적으로만 받게 된다.
* 게임 스위트홈에는 한정된 공간, 치명적 함정, 초자연적인 적 등의 생존 공포 요소가 구현되어 있었다. 바이오하자드 1편은 이 게임을 리메이크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했다는 설이 있다.
공포 장르의 요소 중에는 제한적 공포 요소가 있다. 활동의 제약을 주는 공간적 제한, 정보의 제약을 주는 시각적 제한에 이어 능력의 제한 요소는 공포 게임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리고 공포 게임은 이 능력 제한 요소에 ‘대응 수단’을 집어넣으면서 생존을 가장 중요한 위치로 끌어왔다.
그리하여 모자란 자원 때문에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적도 도망쳐야 할 대상이 되었다. 대응 자원은 아끼고 아껴서 가장 필요한 순간, 예컨대 보스전 같은 때에 써야 한다. 다른 적들은 왠만해서는 상대하지 않고 피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보스전에서 전투를 수행할 숙련도와 캐릭터 업그레이드는 필요하니 완전히 안 싸울 수는 없다. 결국 어느 적은 피하고 어느 적은 싸울지를 정하면서 이 모순을 헤쳐간다.
* 이 장면 앞에서 도망치는 자는 공포 게이머, 싸우는 자는 액션 게이머.
결과적으로, 조우하는 모든 요소가 나를 공격하는 생존 위협의 상황이자 집단 광기의 상황이 손쉽게 만들어진다. 이는 2번 저울의 모순점을 최대한 뒤로 미루는 영리한 방법이다. 그리고 자원 제한이라는 이 능력 제한 요소를 가장 잘 사용하였고 그것이 시리즈의 특징 중 하나가 된 장수 시리즈가 바이오하자드/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다.
‘공포’ 액션
바이오하자드를 요약하면, 좁은 공간에서 총으로 좀비를 쏘는 게임이다. 그리고 초기작인 1~3편에서는 제한된 탄약으로 인해 쏘는 행위보다 피하는 행위가 더 많았다. 시작점인 1996년작인 1편의 경우에는 3D 기술을 연습하자는 제작사의 의도가 있었다는 일설도 있는 바, 기술적 완성도는 약간 떨어졌지만 오히려 능력 제한 요소로 받아들여지면서 생존 공포를 공포 게임의 주류로 만드는 첫 빗방울이 되었다. 동시에 이 일설에 의해 3D 액션으로 형식이 정해지면서, 바이오하자드는 액션으로 공포를 피하고 극복하는 게임이 되었다.
* 경찰 특수부대가 외딴 집에서 좀비들과 조우하는 내용의 1편. ‘Wow, What a mansion!’이 먼저 떠오른다면 밈적 사고화를 주의하자.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제한적 공포 요소는 매우 충실하다. 0편에선 고립된 기차 안, 1편에선 외딴 저택 안, 2/3편에선 폐허가 된 도시라는 식으로 공간 제한이 있다. 시야 또한 0/1편은 문으로 나뉘어진 방이라는 식으로 제한이 되는데, 당시 기술의 한계로 인해 로딩 시간을 문이 열리는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한 것이 또한 공포 요소로 작용했다. 2/3편은 광원이 많은 도시가 공간이지만 폐허가 된지라 어두운 골목이나 수풀 같은 시야 제한 요소를 활용했다. 또한 2/3편에는 특정 시점 전까지는 절대 죽일 수 없는 거대한 적이 쫓아오는 요소도 있었다. 이런 구성에 자원 제한까지 더해지면서 탄약 소모를 최소한으로 하여 위험 지역을 돌파하고 안전 지역에서 정비한 후 다음 위험 지역의 공포로 뛰어드는 플레이 패턴이 정립되었다.
공포 ‘액션’
제한된 실내 공간 혹은 좁은 폐허 공간이었던 0~3편과 달리 4편부터는 야외 공간이 조금씩 넓어지고 많아지기 시작했다. 2편의 경우, 도시가 배경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대부분의 플레이는 무인 상태의 경찰서 건물이었고, 그나마 야외로 나간 3편은 소개(疏開)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폐허가 된 도시라 넓은 공간도 많지 않았다. 반면 4편부터는 실내라도 넓은 공간이 생겨났고, 벌판이나 마을 내지는 도시 공간도 활용되었다.
* 이런 공간에서의 조우는 결국 전투, 필연적으로 액션 요소가 된다.
그만큼 다양한 교전 상황이 만들어지긴 했다. 그런 상황에 대응할 수 있게 ‘체술’이라는 형태의 액션 공격-반격-회피가 도입되었다. 조금씩 자원 제한이 해제되고 있던 것이다. 다양한 대응 방법이 지급되면서, 이 게임의 좀비와 괴물은 ‘도망칠 수 있는 공포’에서 ‘쳐부술 수 있는 공포’로 바뀌어갔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시리즈의 인기와 흥행이 올라가면서 외전작들과 다양한 트랜스미디어 작품들이 쌓여갔다. 이러면서 작중 세계에 대한 정보가 누적되었다. 잘 설명되는 것은 익숙한 것이지 공포가 아니다. 최건과 장지영은 디아블로 3의 공포 요소가 실패한 원인을 지나친 언어화에서 찾았다. (게임과 공포 서사를 통해 살펴본 언어화와 공포의 비대칭적 상관관계에 대한 비교연구, 최건, 장지영, 2022.02, 비교문학 제86호)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에서도 마찬가지다. 게임 속에서 만나는 공포 상황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게임 안팎에서 여럿 제시가 되면 상황을 공포가 아니라 전투로 인식하게 된다.
서사와 설정의 측면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작중에서 등장하는 좀비와 괴물은 모두 바이러스나 기생생물로 인해 변이한 인간이다. 작중의 정식 명칭도 그래서 ‘생물 병기’이고 좀비 아웃브레이크 상황은 ‘생물 재해’다. 이런 생물 재해를 일으키는 방법은 당연히 테러고, 그래서 4~6편은 테러에 대응하는 액션 장르에 가깝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숙달을 통과하면서 공포가 희석되는 과정이 시리즈 전체 진행에서도 발생한 것이다.
공포, 모순 활용법
2017년의 7편, “바이오하자드 7 레지던트 이블”부터는 1편의 컨셉으로 돌아가는 것 이상이었다. 공간은 다시 좁은 실내 위주로 바뀌었고, 주인공도 새로운 인물이며, 등장하는 적은 기존의 바이러스와 기생충이 아닌 새로운 생물 병기였으며, 2/3편의 저항할 수 없는 적 요소도 돌아왔고, 아예 시점마저 제한성이 높은 1인칭 시점이 되었다. 역대 변화에 쉼표를 찍은 소프트 리셋의 느낌이었다. 반면 다양한 무기와 액션으로 대응 방법을 다각화하는 요소는 4~6편의 방향을 계승했다. ‘무뎌진’ 후의 액션 장르로의 해석 또한 긍정하는 방향이었다.
* 7편의 플레이에서, 4~6편의 넓은 공간과 다양한 대응 요소는 후반부에 가야 제시된다. 그전까지는 이런 상황에서 회피 위주의 전투라는 1/2편의 요소를 해결해야 한다.
전작의 두 줄기, 공포와 액션의 요소를 둘 다 계승하는 것은 모순을 해소하는 방법이 아니다. 공포 게임은 그 개념의 시작부터 모순을 내재하고 있다. 공포라는 광의의 장르부터 모순의 장르이며, 공포 게임은 그 모순이 극대화되는데, 생존 공포 장르에 액션을 도입한 것부터가 모순적인 시도다. 어차피 게임은 경험의 매체이고, 경험은 사람을 바꾼다. 경험 진행에 따라 수용자가 변화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쩌면 이런 태도가 이 시리즈의 생명력의 근간에 있을지도 모른다. 태생적 모순을 전제하고 세계를 펼쳐냈으니, 그 세계의 비극미는 강조된다. 거기서 피어낸 인물들은 매력적이고, 그들과 그들의 세계는 영화, 만화, 연극으로 확장했을 때도 매력을 가진다. 수용자의 성장을 전제하는 모순이니, 이 모순을 인정한다는 것은 수용자를 신뢰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공포 게임의 공포는 반드시 옅어지고, 무뎌지고, 희석되고, 탈각된다. 바이오하자드/레지던트 이블이 9개의 넘버링과 3개의 외전과 3개의 리메이크, 그 외 다수의 서브 작품을 진행하면서 얻은 결론은 이 태생적 모순을 피하거나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이다. 7편의 방향성을 2~4편의 리메이크작과 8편 또한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긍정하고 활용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 물론 가끔 실수는 나온다. 8편의 인형제작소 구간은 1번 저울, 공포의 정도 조절 모순을 실패한 측면이 있다. 너무 무서워서 플레이를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속출했지만, 그래도 그 공포의 질은 매우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