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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게임연구학회의 새로운 도전, DiGRA-K 윤태진 학회장
024년 3월, 세계 최대 게임 연구 단체인 '디그라(DiGRA; Digital Games Research Association)'의 한국지회(디그라 한국학회)가 설립되었다. 디그라 한국학회는 영미권과 유럽, 남미 등에 이어 18번째로 설립된 지회로서, 게임 연구의 학제적 접근과 현장과의 연결성을 지향하고 후속세대 지원, 국제교류 및 협력연구 등의 활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분과를 뛰어넘는 학술교류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상대적으로 미진했던 국내 게임 연구 분야에 있어, 다양한 업계 현장과 학계를 포괄하고자 하는 새로운 형태의 학회가 만들어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Back [인터뷰] 게임연구학회의 새로운 도전, DiGRA-K 윤태진 학회장 21 GG Vol. 24. 12. 10. 2024년 3월, 세계 최대 게임 연구 단체인 '디그라(DiGRA; Digital Games Research Association)'의 한국지회(디그라 한국학회)가 설립되었다. 디그라 한국학회는 영미권과 유럽, 남미 등에 이어 18번째로 설립된 지회로서, 게임 연구의 학제적 접근과 현장과의 연결성을 지향하고 후속세대 지원, 국제교류 및 협력연구 등의 활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분과를 뛰어넘는 학술교류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상대적으로 미진했던 국내 게임 연구 분야에 있어, 다양한 업계 현장과 학계를 포괄하고자 하는 새로운 형태의 학회가 만들어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호 GG에서는 디그라 한국학회(이하 디그라-K)의 초대 회장인 연세대학교 윤태진 교수를 만나 디그라 한국학회의 지향성과 중점 사업 및 한국의 게임문화에 대한 진단 등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강신규 편집위원: GG의 인터뷰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비평지를 읽는 사람들을 위한 인터뷰이기도 하기에, 오늘 인터뷰에서는 게임 관련 학계의 흐름과 함께 게임 문화나 산업에 대한 연구나 비평으로서 학회가 하는 시도들을 말씀해 주시면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우선, 회장님께서 디그라-K에 초대 학회장으로 출마하실 당시 취임 맥락과 포부를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사담이 될 수도 있지만 편히 얘기하자면, 개인적으로는 제가 귀차니스트라 조직의 요직 일을 하기 어려워하다 보니 나서서 회장을 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게임 학회의 경우 사실은 아주 성격이 다른 상황이었다고 생각을 해요. 기존 학회와 달리 게임계는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 같은 상황이라, 학회를 통해 조그마한 오두막이라도 하나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마침 주위에 도와주는 분들이 나이와 경력 상으로 주니어였기 때문에 내가 조금만 시작해놓으면 이분들이 굉장히 잘해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고. 겸손하게 하는 말이 아니라 ‘땅만 조금 파면 될 것 같다’라는 생각으로 학회를 시작했어요. 강신규 편집위원: 그렇다면 게임 관련하여 다른 여러 공동체의 유형이 있었을 텐데 왜 학회를 선택하셨는지 궁금하구요. 말씀하신 대로 새로운 학회를 만든다고 했을 때, 다른 국가에 여러 개의 지회가 있는 학회를 선택하여 한국에 지부를 만들기로 결정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이기도 한데, 제가 위와 같은 막연한 고민을 하던 차에 디그라 학회 쪽에서 먼저 제안이 왔습니다. 일단 한국은 문화, 경제, 산업, 정치 분야를 막론하고 게임 분야가 세계적으로 굉장히 앞서 나가는 나라이기도 한데요. 디그라 학회가 16개 나라에 지회를 가졌지만 한국 지회는 없는 상황이었고 한국 학자가 디그라 학회에 참석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보니 헤드쿼터 입장에서 고민이 많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이 게임과 관련한 학술영역 개척을 적극적으로 해줬으면 좋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 지회 제안과 함께 수년 내로 한국에서 정기학술대회를 개최해주면 어떻겠느냐는 오퍼가 있었고, 그게 계기가 되어 학회를 설립하게 됐어요. 강신규 편집위원: 기존에 국내에 있는 다른 여러 게임 관련 학회들이 있고, 최근에 생긴 곳도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기존의 학회들과 비교했을 때 디그라 학회가 어떻게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셨는지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우선 기존의 학회들은 몇 번 참여 경험이 있었지만 학문적인 입장이나 백그라운드가 제가 추구하는 바와 굉장히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연구 주제들이나 학회 진행 스타일 등이 낯설다 보니 내가 거기서 뭔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게 게임 연구 커뮤니티를 만들자라는 마음을 먹었을 때 제일 먼저 했던 생각이기도 해요. 컴퓨터나 정책 분야와 관련된 게임학회 같은 경우는 제가 만들자 하는 학회와 성격이 다르고 굉장히 특수한 분야를 하는 거라고 생각했구요. 물론 그런 곳에서 일을 맡고 계신 선생님들과는 오히려 학회 설립에 관해 자유롭게 이야기했었고, 학회 조직에 고문 등으로 모시기도 하면서 진행을 했습니다. 강신규 편집위원: 사실 저 또한 기존의 게임학회들이 경영 쪽이나 공학 쪽 베이스가 많이 들어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회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낯설었는데, 한편으로 그런 학회들이 일종의 모학회 같다는 느낌은 또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디그라-K에 대한 질문으로 다시 돌아오면, 디그라-K 역시 여러 분야의 이사진들이 있지만 밖에서 보면 신문방송학이나 문화연구로 치우쳐 있지 않냐고 질문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혹시 어떻게 생각을 하시는지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저는 학회의 성향 문제는 시간이 가면 자연스럽게 줄기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을 많이 해요. 오히려 설립 당시에 내가 특정한 방향을 정한다고 해서 그렇게 가지 않더라구요.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디그라-K 학회를 시작할 때 어떻게 보면 모순적인 두 가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법과 정책, 공학에 포커스를 맞춘 게임 학회가 있듯이 게임 문화에 포커스를 맞춘 좁고 깊은 학회를 만들면 색깔이 분명하고 추진력이 있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동시에 다른 하나는, 우리가 디그라 지회로서 세계 게임 학술대회 조직과 더불어 업계 사람들과 교류하며 현실 필드와의 관련성을 갖는 학회를 원하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게임 문화에만 집중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어요. 학회 운영에 있어 특별한 개성을 갖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더 제너럴리스트로 가는 게 좋을지에 대해 고민했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제가 논문 지도할 때 ‘깔때기’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깔때기 윗부분처럼 처음에 관심을 넓게 갖되 점점 좁혀 들어가며 자기만의 특별함을 가져야 된다고 얘기하거든요. 저는 우리 학회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학회가 시작 단계이기 때문에 포괄할 수 있는 분야가 넓어야 하고 게임 프로그래밍이나 디자인, 개발과 마케팅 관련 관계자들도 들어올 수 있는 영역을 만들어 놔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해서 아예 모든 걸 다루는 학회를 지향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학회에서 우리가 좀더 강점을 갖고 있거나 더 하고 싶은 부분에 무게가 실리는 건 불가피하고 또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봅니다. 이 상태에서 학회를 운영하다 보면 성격이 좀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을까, 그런데 성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자유도를 높여놓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강신규 편집위원: 사실 저도 최근엔 학회들이 누가 회장이 되든 변하지 않고 대부분 비슷하게 간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이를테면 윗부분에 다양한 사람들을 크게 담아놓고 깔때기를 모으는 방향이 각자 다른 분들이 회장을 하신다면, 그때그때 어떤 회장이 하느냐에 따라 보편성과 구체성을 다 가지고 갈 수 있는 학회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말씀하신 바에 동의하구요. 그럼 어쨌든 여러 모순적인 포지션을 유지하고 계시다고는 했지만 지금 디그라-K가 지난 3월 발족 후 조금씩 사업을 해나가고 있잖아요. 현재 학회에서 어떤 사업들을 하고 있으며, 그중에 특히 애정이 가거나 중점을 두고 있는 사업이 무엇인지를 여쭤봐도 될까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학회를 시작할 때부터 저는 그냥 터만 잘 파놓고 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터를 파는데 있어 몇 가지 강조점이 있었어요. 가장 중요한 두 개는 학문 후속세대와의 연결과 국제적인 학술 교류입니다. 그 다음엔 학회와 현장과의 연결성을 잊지 말고 계속 필드로부터 정보를 서로 주고받아야 한다는 걸 기본적인 자세로 지향하고자 했어요. 우선 우리가 디그라 세계학회의 지회라는 성격이 있다보니 국제적인 교류는 계속하고 싶어요. 우리나라 학계의 문제이기도 한데, 학회에서 많은 비용을 대어 해외 학자를 데려오고 언론 보도에 크게 소식을 내는 것이 국제 교류로 오도되는 경향이 있어요. 솔직히 말하면 게임 쪽도 그렇습니다. 그런 게 아니라, 국제교류를 일상적으로 했으면 좋겠어요. 지금 한국에 자비로 관광오는 사람도 많고, 제가 있는 대학의 경우 자비로 와서 연구를 하는데 소속만 빌려달라는 해외 학생들도 대단히 많아요. 그런 분들을 되도록이면 다 받고 싶고, 그들이 한국에 오면 혼자 연구만 하다 가는 게 아니라 이런 자리에서 사람들과 교류할 기회를 활성화시키고 싶어요. 디그라-K에서 진행했던 두 건의 국제 발표 또한 이런 취지에서 개최한 행사였어요. 학생들이나 업계 관련자, 연구자들이 뭔가 외국의 누군가가 와서 영어로 발표하고 그들과 교류하는 게 ‘대단한 일’이 아니고 매우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느끼게 했으면 좋겠다는 게 하나가 있구요. 그 다음 학문 후속세대 얘기는 당연히 연구하는 사람들이라면 학문 분야를 막론하고 후속세대 양성에 욕심을 갖지요. 그런데 강조하고 싶은 건 게임 연구 분야는 독립된 학제라 보기 어렵다 보니 연구자들이 대부분 이탈하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사회학이나 심리학에서 게임을 연구하던 분들이 시간이 지나면 취업이나 연구비를 위해 게임이 아닌 다른 분야를 하는 식으로 바뀐다는 거죠. 이런 걸 피하기 위해서는 게임에 관심 있는 연구자들을 위해 자리를 만들거나 지원하고 북돋아줘서 누군가가 그들의 작업에 계속 관심을 갖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어요. 강신규 편집위원: 말씀을 들으니 국제교류와 후속세대 양성 모두 거창한 형태로 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해야 되는 일로 연결하신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그런데 저는 게임 쪽은 후속세대 뿐 아니라 기성 연구자 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초반부터 게임을 다루던 미디어 연구자들 중 지금 게임 분야에 남아계신 분이 아마 회장님밖에 안 계실 거예요. 신진연구자든 기성연구자든 게임 연구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쉽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렇다면 회장님은 어떠신가요? 회장님은 대중문화 전반, 특히 TV쪽을 많이 하시다가 게임 분야로 관심을 구체화시켜 현재까지 계속 하고 계시는데요. 스스로를 어떤 연구자로 정체화하시나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저는 스스로를 대중문화 연구자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의 100분의 1만큼도 웹툰을 안 보는 사람이지만 웹툰 갖고도 연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잘 나가는 걸그룹 멤버의 얼굴과 이름 매치도 못하지만 케이팝에 대해서 연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게임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가 게임 전문 연구자라는 생각은 사실은 안 해요. 연구의 비중으로 보자면 제 연구는 2010년까지는 게임 연구의 비중이 컸고 그 이후에는 한류 연구를 오래 했고, 2017-18년부터 다시 게임 연구를 많이 한 셈입니다. 이제 은퇴가 얼마 안 남았다 보니 제 연구나 교육 생활 중 마지막 10년 정도는 게임 문화 연구를 주 전공으로 삼는다고 생각은 해요. 하지만 진짜 ‘게임 연구자’는 우리 후속 연구자들이 그 역할을 맡아줬으면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강신규 편집위원: 그런 말씀을 들으니 진짜 게임 연구를 하는 사람이 누구이며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라는 의문점이 듭니다. 이건 GG를 보는 사람들이 궁금해할 이슈일 수도 있는데, 사실 저도 대학의 게임 강의 등에서 ‘내가 너희보다 잘 하는 게임이 있다’고 해야 제 말을 좀 더 잘 들어줄 것 같다고 느끼곤 합니다. 게임이란 분야가 누구나 ‘자기가 잘하는 게임에 대해서는 자기가 제일 잘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강하다 보니, 게임 연구자들에 대해 게임 플레이어들이 던지는 좋지 않은 시선 같은 것도 있는 것 같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분들에게 이를테면 회장님이 플레이어에게 연구자로서 전하고 싶은 메세지가 있으실까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솔직히 굉장히 흔하고 보편적인 질문인데, 저는 그런 질문에 정면으로 대답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게임 연구자들의 교과서적인 답은 ‘게임 좋아하고 잘 한다고 좋은 학자는 아니다’, ‘내가 게임은 못 해도 학자로서 훈련과 트레이닝은 많이 받았다’ 이런 게 교과서적인 답일텐데. 저는 그걸로 그들을 설득시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비유처럼 얘기하는 건, 저는 제가 일종의 우리나라 70년대 텔레비전 연구자라고 생각을 해요. 제가 80년대 대학을 다닐 때, 당시 텔레비전에 관해 가르치던 강사들은 산업이나 제작과정을 잘 모르거나 실제로 TV프로그램을 많이 보지 않는데 우리한테 가르치는 경우가 많았기에 동료 교수나 지식인들에게도 비판을 듣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들의 강의가 아주 무의미했냐면 저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분들의 가장 큰 업적은 ‘텔레비전 드라마도 독립적인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해준 것이고, 그런 신념 하에 많은 제자들을 길러내고 그들이 조금 더 발전시킨 논문과 책을 쓰게 한 역할이 컸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젠킨스가 얘기한 대로 결국 팬들이 공부를 하는 것이 대중문화 연구에 옳은 방향이라고 봅니다. 학자가 팬이 되는 것보다 팬이 학자가 되는 게 더 정확한 학문의 발전 방향인 것이죠. 근데 이제 그러기에는 저는 늦었다고 생각하고요. 따라서 저는 그런 질문이 나온다면, ‘당신들이 훨씬 더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고 나는 당신들한테 길을 만들어 주겠다’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학회를 일종의 오두막처럼 만들고 그분들이 어떤 주인이 되는 때가 오면 훨씬 학술적으로도 성숙된 커뮤니티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강신규 편집위원: 해외에서도 조금 나이가 있고 학문에 익숙한 학자와, 젊지만 어떤 감각을 가지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만나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런 점에 있어 회장님께서 지도교수로서 게임을 좋아하는 학생들과 교류하고 코워킹을 하는 과정 또한 중요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런 학생들과의 만남이나 마주침이 학문적으로 회장님한테도 역으로 자극이 좀 되셨을까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그럼요. 너무 진부한 표현이지만 학생들에게 훨씬 실질적으로 많이 배웁니다. 학생들의 페이퍼를 내가 평가자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재미가 없는데 실은 제가 요즘 공부하는 것의 한 70%는 학생들 논문 읽으면서 배우는 것 같거든요. 학생들의 페이퍼를 보다가 재밌는 거 있으면 조금 더 찾아보고 이런 식으로 배우기 때문에 게임 연구도 사실은 저는 그런 식으로 해온 것 같아요. 강신규 편집위원: 비슷한 질문일 수 있겠는데요, 그렇다면 게임 연구가 게임 플레이어들한테 해줄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이 있을까요? 디그라-K 학회가 지향하고자 하는 것이 업계 및 연구자와의 교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플레이어와의 교류 또한 매우 중요한 최종 도달점 중의 하나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를테면 게임 연구자가 플레이어들에게는 어떻게 말을 건넬 수 있을까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저는 지금 질문을 듣자마자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영화 팬들이 생각났습니다. 지금은 아마 게임 평론가보다 영화 평론가가 훨씬 많겠지만, 조금 좁혀서 ‘시네필’들을 얘기한다면 그 많던 시네필들 중 일부는 감독이나 제작자가 된 사람도 있고 유학 가서 학자가 된 사람도 있죠. 만약 우리나라의 영화학이 당시 굉장히 풍성했더라면 그런 사람들을 굉장히 잘 소화할 수 있었을 거에요. 계속 인터랙션이나 학습이나 교류를 통해 보람을 주면서 영화에 대한 그들의 에너지를 결국 학계건 업계건 연결을 시켰을 겁니다. 저는 우리나라 게임 평론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성격과 규모는 좀 다르겠지만 게임과 관련해 그런 똑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GG의 게임 평론 공모전도 훌륭한 일이라 할 수 있는데 그렇게 자리를 만들고 교류하는 일을 학계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을 많이 알거나 막연하게 좋아하는 사람들이 꼭 학자가 되지 않더라도 게임에 대한 다른 시각이나 개념, 타국의 게임 현황을 배우면서 게임에 대한 애정이나 에너지가 더 커지면 당장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차츰 쌓여서 게임 업계나 학계에 굉장히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강신규 편집위원: 한편으로 저는 그간 대중문화나 영화를 연구하던 사람들이 게임 쪽을 자연스럽게 연구하고 비평하는 게 장르의 저변을 넓히고 경계가 사라진다는 의미에서 좋은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럼 게임만의 고유한 무엇이 남아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도 듭니다. 디그라-K의 지향점을 말씀해 주시기도 했지만 게임과 관련한 (고유한) 이론과 방법론이 없는 상황에서 게임이 어떻게 나아가야 될 것인가를 저희가 굉장히 오래 논의했었죠. 대중문화를 연구할 수 있는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상으로서 게임을 한 번쯤 이야기할 수 있다는 분위기인데, 한편으로 그게 약간 공허하다는 인상을 받기도 합니다. 혹시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이신지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그 부분은 저와 좀 생각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데, 저는 게임이 독립된 학문적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마찬가지로 독립적 정체성을 갖기 위해서 독립된 이론과 방법론이 꼭 필요하다는 의견에도 반대합니다. 질적 연구방법론을 예시로 들면, 분과별로 질방이 각자 있지만 주제와 소재만 바뀌고 내용이 크게 차이가 없죠. 분과적인 것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각자 방법론적 노력을 하는거라고 생각하고 이론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학회를 만든 것도 형식적이거나 제도적인 문제를 고려한 것이지 그 안의 내용물이 사회학회나 언론학회와 구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구요. 저는 오히려 우리 학회도 많은 사람들이 ‘잠깐 와보는 곳’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아요. 같은 이유로 아마추어 평론가나 업계에서 열심히 뛰는 현장 인력들도 학회에 한 번쯤 와서 기여도 잠깐 하고 그러다 재미없으면 가고 하는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해요. 사실 숏폼, 메타버스, VR, AR 등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현재 게임의 경계도 굉장히 애매해지고 있습니다. 이럴 땐, 그럼 빨리 게임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만들어 제도화시켜서 뿌리를 내리자는 의견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게임의 영역과 경계를 아주 흐릿한 채로 오히려 넓혀서 다양한 주제를 게임 연구에서 할 수 있고 또 게임 연구에서 그런 쪽에 기여도 할 수 있게 만들자는 의견이 있을 텐데요. 저는 그 둘 중에 압도적으로 후자로 가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강신규 편집위원: 학회의 방향과 관련된 질문을 좀더 드려보자면, 게임 산업이나 문화에 대해 학회가 실천적으로 참여나 개입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혹시 생각하고 계신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를테면 게임 관련 규제 개선이나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과 관련된 부분이라던지,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두 가지로 답변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저는 학회가 그런 의제를 적극적으로 전면에 내거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보고 있어요. 왜냐면 학회가 지향하는 것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토론을 하는 곳을 만드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어떤 게임이용장애의 질병화를 찬성하거나 반대한다던지,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을 어떻게 해야 된다던지에 대해 학회 이름을 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이건 대전제로 하는 얘기구요. 그렇지만 둘째로 개별적인 사안에서는 사실 기민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제가 말은 이렇게 했지만, 게임이용장애와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내년 초에 세미나 하나를 계획 중이에요. 외국 사례를 참조해 이게 정말 법령화가 되고 있는지,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를 그동안과는 좀 다른 시각에서 세미나를 해보면 어떨까 하고 추진 중에 있습니다. 즉 학회의 방향이 이를테면 산업 친화적이거나 정책 지향적으로 가야 한다는 것에는 반대하며 이건 저는 굉장히 분명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단지 산업이나 정치, 국제관계 등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특정 이슈가 있다면, 이와 관련한 자리를 학회가 기민하게 만들어서 전문가들이 토론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강신규 편집위원: 오늘 회장님이 학회와 관련하여 말씀해 주신 부분들, 여기저기 있는 사람들이 그런 부분들을 알고 학회에 와서 편히 들을 수 있도록 널리 알리는 일도 굉장히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인터뷰가 GG에 실린다고 하니, 질문과 무관하게 한 가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우선 이 글의 독자가 대학원생 등의 연구자가 아니라 그냥 게임을 좋아하는 아마추어 평론가나 게이머일 가능성이나 비율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체감상 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게임 관련 조직이 생기거나 책이 출판되고 행사가 만들어질 때 일종의 ‘정치적 판단’을 하려고 하는 것 같다는 우려가 들어요. 정치적 판단이라 함은, 진보와 보수의 얘기가 아니라, ‘이거는 업계가 돈 벌려고 하는 일이야’, ‘저 사람은 페미니스트니깐 이거는 개판일 거야’ ‘이거는 누가 특정한 의도로 뭘 해보려고 만든거야’ 등의 어떤 냉소적인 반응의 문화랄까요? GG의 비평 콘테스트에 나온 글에 대해서도 저 글은 잘못 알고 쓴 글이라는 방식의 비방도 많았구요. 이런 걸 보면 텔레비전이나 케이팝 등 다양한 여러 대중문화 영역 중에 게임 쪽이 어떻게 보면 가장 긍정적 리액션이 적은 곳 같고, 무언가를 지지하거나 기여하는 발전지향적 태도를 제일 발견하기 어려운 곳이 게임 판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문화가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있고, 그런 문화가 사라지는 건 어려워도 어떻게 완화될 수 있을까를 고민을 많이 하는데 사실 방법은 없거든요. 어떤 캠페인을 벌여서 될 것도 아니고 한편으로 이런 태도가 전세계적 트렌드이기도 하기에 어렵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기회가 될 때마다 이런 얘기는 해보고 싶어요. 게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매일 욕하고 냉소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조금은 긍정적으로, ‘게임을 사랑하는 만큼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있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어떤 특정 게임사가 분명히 누군가에게 잘못한 일도 많겠지만, 사실 게임 산업이 망하지 않고 잘 되어야 하는 거니까요. 저는 산업이나 정책, 경영에 참 관심이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게임 판이 쇠락하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생각을 하고, 이 부분은 학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계에 어떤 연구결과물이 나오면 많은 사람들이 냉소적으로 ‘교수들이 또 대학원생 시켜서 아무거나 쓰고 책이나 낸다’는 식의 반응이 많은데요. 거기서도 본인들이 재미있게 느낄 수 있는 것이나 자극이 되는 지점이 분명히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찾아 좀더 긍정적인 리액션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강신규 편집위원: 저희가 오늘 굉장히 많은 것을 여쭤봤고 좋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인데요, 편집장님께서 꼭 질문을 해달라고 하셔서 넣은 것입니다만 학회장으로서 ‘최애 게임’이 무엇이신지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우선 저는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온라인에서 싸우거나 협력하는 등 모르는 사람과 부딪혀야 하는 게임은 못하겠더라구요. 기본적으로는 제가 잘 못하는 걸 들키기 싫은 본능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웃음). 그러다 보니 네트워크가 없는 콘솔 게임이나, 혼자 할 수 있는 모바일 게임 위주로 하게 되네요. 그리고 저는 게임을 다른 일을 하다가 기분 전환용으로 잠깐 하는 것이기에 빨리 끝날 수 있는 아케이드류가 많아요. 보통은 간단한 크로스워드 퍼즐이나 3매치 류의 게임을 많이 해요. 참고로 제 게임 역사에서 제일 오래 했던 게임은 유학 초기에 했던 <동키콩>입니다. 유학 가서 말도 안 통하고 심심하고 해서 그거를 맨날 하다보니 잘하게 돼서 오락실에 제가 들어가면 사람들이 길을 열어주기도 했어요. 집에 아이가 좀 크고 나서는 <크레이지 아케이드>나 <위닝>도 많이 했구요. 최근엔 <대항해시대>나 <우마무스메> 등이 워낙 많이들 하니까 의무감에서 했었는데 <대항해시대>는 좀 재밌게 했었네요. 원하는 장르가 아니지만 사람들이 말이 많으면 맛이나 보자는 마음에 플레이하는 게임도 꽤 많은 편이에요. 이상입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수 문화와 지식, 공간과 학술 장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합니다. 게임의 역사와 게이머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역사적 트라우마와 유령의 소환술: 〈반교: 디텐션〉의 역사주의
이처럼 애매하고, 역설적이고, 공백으로 가득 찬 대안적 역사인식의 상징극장(학교)을 탐색하며 퍼즐 열쇠들을 수집하는 플레이어는, 유령이 된 채 부재하는 현재의 표식들을 이어붙이고, 역사의 버려진 시신을 가르는 부검의가 된다. “너는 나고, 나는 너다” 며 자신의 그림자에게 읊조리는 주인공의 대사처럼, 파편화된 상흔들은 수집과 탐색행위로 이뤄진 이 부검에 의해 점차 진혼된다. 플레이어의 부검은 사망 원인 추적에 그치지 않고, 망자의 부릅뜬 눈을 감기는 의식으로 연동되는 것이다. < Back 역사적 트라우마와 유령의 소환술: 〈반교: 디텐션〉의 역사주의 02 GG Vol. 21. 8. 10. 유령의 소환술과 ‘유령되기’ 유령은 만져지지 않지만 눈에는 보이는 존재다. 유령은 가상인 동시에 실재에 현상하며, 현재에 머무르면서도 현재에 부재한다. 유령은 형이상학에 속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때때로 인식과 경험에 영역에도 걸쳐져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유령은 공포를 불러일으키면서도 언제나 뭔가를 암시하고 일깨우는 존재다. 고뇌에 빠진 햄릿 왕자의 앞에 나타난 왕의 유령은 자신이 독사에 물려 죽은 것이 아니라 동생 클로디어스에게 독살당했음을 알리고, 햄릿은 복수를 위해 일부러 미친 척을 하기 시작한다. 거란과의 전투에서 패해 포로가 된 고려의 무장 강조는 자신이 살해한 왕(목종)의 혼령을 마주하고 나서야 비로소 업보를 깨닫고 주저앉게 된다. 역사의 무수한 협잡의 순간마다 유령은 언어화되지 않은 목소리들과 더불어 되돌아오는데, 때론 ‘배회’하면서 혁명적 순환의 계기를 만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필연적으로 좌절을 겪지 않을 수 없는 운동 속으로 민중을 휘몰리게 만든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무수한 좌절과 분노의 비극적 순간들이 희극으로 소급되면서 역사가 진전되어 왔다는 것이다. ‘유령’은 역사가 비극의 플롯으로 치달을 때마다 한 세대를 구원하고자 천을 뒤집어쓰고 돌아오는 기계신이자, 부재하는 현재를 실재에 표시하는 인기척인 셈이다. “유령은 근본적으로 장래이며, 항상 도래할 것으로 남아있고, 도래하거나 다시 도래할 수 있는 것으로서만 자신을 제시한다.”1) 유령은 부르면 달려오는 시종이나 램프의 요정이 아니다. 유령은 태어나지도, 길들여지지도 않으며 단지 출몰할 뿐인 존재이다. 그것은 등재된 공식역사나 승자들의 후일담을 받들지 않는다. 유령은 숨죽인 채 우리 곁을 맴돌면서 패배의 순간, 비명이 질러지는 소리들을 엿듣는다. 잊혀진 이야기, 침묵 속에서 억눌러진 단말마들이 유령의 인기척에 새겨진다. 그런 점에서 유령이 보여주는 이미지와 목소리들을 받아 적는 우리는 역사가인 동시에 소환술사라 할 수 있다. ‘유령의 소환술’은 역사의 가장 희미한 빛을 점화한다는 점에서 순수한 아름다움이나 경외감만을 추구하는 유미주의와 다른 길을 간다. 수많은 예술이 유령의 흔적을 좇아 미사여구를 창조하지만, 유령 자체를 소환하려는 시도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과거로부터 이어진 비극을 현재의 희극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미래의 필연적인 비극 또한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소환의식은 모두가 알고는 있지만 실재하지 않는다고 애써 부인하는 비밀을 마주하는 용기로부터 출발한다. 대만의 어드벤처 게임 <반교: 디텐션>은 역사를 다룬다. 그러나 단순한 역사가 아니다. 패퇴한 장제스와 국민당이 대만에서 국부천대를 시작한 후 40여 년 간 지속된 백색테러 시기, 비참하게 생매장된 민중사가 주 무대다. 수많은 시네마와 게임이 역사를 상업적 소재거리로 삼아왔고, 승리의 시간들, 번영과 영화의 시기가 말초적 유흥 및 장르 문법으로 소비되어 왔다. 그러나 전체주의 권력에 의한 폭력과 광기의 날들은 상업 문법으로 접합되기 어렵다. 감각적 만족을 이용자 상호작용의 제1요소로 삼는 게임에서 아픔이라는 감각은 일반적인 고려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교>가 역사를 다루는 방식은 서가에 기대서서 책을 읽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신체에 유령을 빙의시켜 스스로 입을 여는 유령되기, 즉 유령의 소환술에 가깝다. <반교>의 시공간에 들어선 사람들은 유령이 되어 떠도는 여고생 방예흔(方芮欣, 팡 레이신)을 움직여 학교에 은폐된 비밀들을 풀어 나가야만 한다. 플레이어가 유령이 되어 스스로에게 암시를 던지고 진실을 좇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게이밍을 활용한 <반교>의 소환술은 매우 탁월하다. 유령의 기척을 느끼고 따라가 이야기를 엿들어야만 하는 기존의 서사 전개방식과 다르다. 플레이어는 평면과 횡으로만 구성된 폐교 공간을 헤매며 ‘유령되기’를 시도하는데, 이 유령되기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단단히 깨어 있는 상태로 만들어 자신(게임 속 인물과 자신이 연동된)에게 암시와 은유들을 던진다. 유령되기를 통해 플레이어는 스스로 배회하고, 암시하며, 진실을 좇도록 깨우치는 것이다. * 유령으로부터 은폐된 비밀의 단서들을 전달받는 것이 아닌 ‘유령되기’를 통해 스스로 일깨우고 진실의 조각들을 맞춰나간다. 〈반교〉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드러내기 위해 게임이라는 매체의 속성을 유령의 소환술로 매우 잘 전유한 예제다. 역사적 트라우마와 대면하기: 앰비규어티와 부검학 상실감, 우울, 원한 등과 달리, 마음과 뇌에 깊은 충격을 안기는 외상인 ‘트라우마’는 역사 중에서도 가장 다루기 어려운 문제다. 극심한 스트레스 장애를 유발하는 트라우마는 멜랑꼴리나 로맨스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상품화된 카타르시스 경로를 따라가는 장르문법과 이질적이란 뜻이다. 트라우마는 분명하게 현존하는 고통이지만 그 본원은 과거의 특정한 사건에 얽매여져 있고, 해소될 길이 없다. 트라우마가 개인적 경험이 아니라 집단의 역사적 경험과 맞물려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트라우마는 ‘애도’와 깊은 연관이 있다. 우리는 사자를 애도하기 위해 슬퍼하고 자발적으로 상처 입는다. “살아있지 않은 누군가에 대해 바쳐진 존중 속에서 생성되는, 법을 넘어서는 어떤 정의의 명령에 우리는 응답한다.”2) 만약 애도가 좌절된다면, 우리는 개인이 연결되어 있는 역사의 신체에 깊은 상처를 입을 것이다. ‘역사적 트라우마’는 한 세대와 공동체가 공유하는 집합적 고통의 기억이며, ‘모든 것이 변화하는 역사’라는 기관차가 마주하는 막다른 터널이다. 영화 <박하사탕>에서 외상을 극복하지 못한 ‘영호’가 선로에 뛰어들고, <택시운전사>의 ‘김사복’이 학살의 기억을 떨치지 못해 작고하게 되는 이유이다. 이 아픔은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어도 좀처럼 씻겨나갈 길이 없다. 신체를 절단한 사람이 수술 후에도 고통을 끊임없이 지각하듯이, 그 실체는 유령적이다. 본토 수복을 엿보며 대만을 장악한 국민당의 통치는 실로 끔찍했다. 명·청 시기에 대만으로 건너와 살고 있던 본성인(本省人)들을 지배하기 위해 국민당 정권은 2.28 사건3) 이후 계엄령을 강화하고, 40여년에 걸친 백색 테러가 이어졌다. 이 기간 동안 언론과 결사의 자유는 완전히 사라지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공산당 간첩으로 몰려 고문·처형되거나 실종됐다. 국민당은 계엄을 유지하기 위해 특히 학교 통제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 시기 대만에서 학교는 두 가지 방향으로 훈육되었다. 하나는 뒤쳐진 산업화를 이룰 일군을 양성하는 학교이고 다른 하나는 본토 수복을 위해 싸울 병력을 양성하는 학교이다. ‘군대식 교육’ 이 아니라 학교가 곧 군대였고, 청소년을 징집하는 창구였다. 이에 반발하는 교사들은 모두 간첩죄로 숙청되었으며, 지정되지 않은 책을 읽는 학생들도 모두 반역죄로 다스려졌다. 〈반교〉에 등장하는 군훈교관 백국봉(白國峰, 바이 궈 팡)은 학생과 교사들을 감시 훈육하는 정훈장교이다. 반면 학생들과 비밀독서회를 운영하는 장명휘(張明暉, 장밍후이) 선생과 은취함(殷翠涵, 인쯔이한) 선생은 타고르의 시를 읽어나가며 희망의 씨앗을 파종하려 한다. * 대만 시네마에서 끊임없이 배회하는 학교라는 유령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 좌 상) 〈말할 수 없는 비밀〉(2007, 우 상) 〈반교: 디텐션〉(2019, 좌 하) 〈내 마음에 새겨진 이름〉(2020, 우 하)에 이르기까지, 대만 시네마는 광범위한 시간대(계엄 이전과 이후)와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며 학교공간의 기억술을 펼친다. 긴 시간동안 군사주의의 억압과 독재가 학교에 집중적으로 투과한 결과, 학교는 문화적 상징투쟁의 장소로서 재현된다. 감시와 처벌이 이뤄지는 공간으로서의 학교와, 비밀과 약속이 지켜지거나 깨어지는 장소로서의 학교가 중의적인 역사적 긴장을 유지하는 것이다. <반교>가 게임 속 ‘유령되기’를 통해 소환하는 역사적 트라우마는 공식사에 쓰여져 있지 않는 부분들을 역사화 한다. “예술작품과의 만남뿐만 아니라 그 작품을 오늘날의 우리에게 전승시켜준 역사와의 만남 속에서 우리는 창작자의 영향을 수용한다.”4) 역사주의를 성취하기 위한 반교의 소환술은 크게 두 가지 접근으로 이뤄진다. 하나는 트라우마를 이루는 오브젝트(포대자루, 거꾸로 매달린 옷과 초상, 거울상 등)들을 전략적으로 배치해 억압의 기표들을 상징화하는 앰비규어티(ambiguity)의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이 상징물들을 퍼즐풀이의 대상으로 재배치함으로써 이용자가 트라우마를 재구성하게끔 만드는 부검학의 측면이다. <반교>는 시적 언어가 ‘낯설게하기’ 를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 비문법성의 세계-일상언어의 세계 간 대화를 게이밍의 독특한 방식으로 역설계했다. 낯선 상징과 메타포를 통해 모호화된 시를 읽어나가는 과정은 자동화된 세계(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행동, 표현, 감각들로 가득차 낯익고 익숙하기만 한 세계)에 대한 전혀 다른 독해를 요구하게 되는데, <반교>는 공동체의 상흔을 상기시키는 오브젝트들을 퍼즐풀이에 삽입함으로써 ‘낯설게하기’의 게이밍적 측면, 즉 역사적 트라우마의 ‘절차적 수사학(procedural rhetoric)’5) 을 부각시켰다. 이런 상징물로 가득찬 ‘학교’를 유령이 되어 탐색하는 과정 속에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혹은 잊어버리려 외면했던 과거의 상처가 되살아난다. * 포대가 씌워진 인형, 뽑힌 이빨로 된 주사위, 호롱불을 들고 주인공을 찾아다니는 차사 귀신 등 <반교>의 상징물들은 단순히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주는데서 그치지 않고 독재권력의 폭력을 암시하는 연상작용으로 이어진다. ‘낯선 느낌들’로 재배치된 공간의 탐색 경험은 트라우마의 공통감각을 직조하는 비문법성의 세계, 대안적 역사인식의 공간으로 플레이어를 스스로 등록시킨다. * 초현실주의적으로 재현되는 기억의 공간들. 〈반교〉는 2차원적 평면이라는 한계를 뒤집어 회화적 아이디어들을 의미심장하게 도입한다. 과거의 비밀들을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평면의 공백 투사하며 읽어나가는 방식이다. 아버지의 외도와 가정불화를 암시하는 추상화적 대목(좌 상), 흠모하는 장 선생과의 데이트를 떠올리는 총천연색 경로(우 상), 잊기 위해 스스로 파편화했던 밀고의 기억들이 미러이미지화 되는 방식들(하)은 상반된 색체 대비와 원근법으로 〈반교〉의 평면을 수놓는다. 〈반교〉의 ‘유령되기’는 대사가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행간의 독해를 통해 플레이어가 사건을 인식하도록 하는 독특한 미디어 매커닉이다. 대안적 역사인식 공간의 재구성: 새로운 재현양식과 미적 전술 이처럼 애매하고, 역설적이고, 공백으로 가득 찬 대안적 역사인식의 상징극장(학교)을 탐색하며 퍼즐 열쇠들을 수집하는 플레이어는, 유령이 된 채 부재하는 현재의 표식들을 이어붙이고, 역사의 버려진 시신을 가르는 부검의가 된다. “너는 나고, 나는 너다” 며 자신의 그림자에게 읊조리는 주인공의 대사처럼, 파편화된 상흔들은 수집과 탐색행위로 이뤄진 이 부검에 의해 점차 진혼된다. 플레이어의 부검은 사망 원인 추적에 그치지 않고, 망자의 부릅뜬 눈을 감기는 의식으로 연동되는 것이다. <반교>는 이 부검 프로세스를 세련된 플레이 실천으로 관철시키기 위해 회화적 앰비규어티를 더욱 부각한다. 연속성에 구속되려 하는 사건의 시간성을 탈주시키고, 과거-현재-미래를 자유롭게 오고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후반부에 이르면 방예흔은 라디오 주파수를 맞춰가며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대문자화되지 못한 역사적 트라우마는 비로소 ‘낯설게 된 비문법’의 법칙 하에 하나의 문장이자 산문으로 읽히게 된다. <반교>는 정교하고 변화무쌍한 시스템을 제공하지도, 화려한 시네마틱 스펙타클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방대하고 치밀한 드라마텔링보다는 절제된 시적 조작을 추구한다. 그러나 가장 단순하고 오래된(2차원 공간의 어드벤처 퍼즐풀이) 게이밍의 문법을 변주해 독창적인 미디어 매커닉을 제시한다. 이 매커닉은 기존의 재현양식이 시도한 것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역사를 재구성한다. ‘유령되기’라는 소환술을 통해 역사적 트라우마를 어루만지고, 난도질당한 과거의 신체-유령통을 앓는 현재의 부재하는 신체를 오고가는 경험 속에 과거의 얼굴들을 대면시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반교>는 방법을 넘어 하나의 미학적 전술을 정립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전술은 미디어가 장르라는 문법과 상업적 경계를 넘어서, 한 시대와 세대가 공유하는 ‘죽은’ 공통감각의 회로에 전류를 불어넣는 전술이자, 침묵의 시대를 뛰어넘어 시민적 언어가 보편어가 되는 순간들을 상상시키는 회로도이다. 자유와 해방을 위한 새로운 재현의 언어들을 재발명하기 위해, 이 회로도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난폭한 권력을 휘두른다 해도, 자유는 빼앗을 수도 억누를 수도 없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자유의 비가 이 섬에 고루 흩뿌려지길 원합니다.” -드라마 〈반교〉 中 1) 자크 데리다, 『마르크스의 유령들』, 진태원 역, EJB, 2007, 91쪽. 2) 자크 데리다, 『마르크스의 유령들』, 진태원 역, EJB, 2007, 194쪽. 3) 일왕 항복 이후 대만으로 건너온 국민당 지배세력과 외성인(外省人)들은 본성인들과 정체성이 달랐으며, 국민당은 해방군이 아닌 점령군 행세를 하며 대만과 본성인들을 식민 통치 하듯 다뤘다. 폭압적인 전시국가경제를 운영하며 민생이 파탄나는 가운데, 참다못한 본성인들은 계엄령 해제와 선거권을 요구하며 반정부투쟁을 벌였다. 이 기간 동안 전국적으로 전 연령에 걸쳐 14만 여명이 군사법원에 기소됐고, 2-3만 명의 시민들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4) 발터 벤야민,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폭력비판을 위하여 초현실주의 외』, 최성만 역, 길, 2008, 260. 5) 언어적인 기호계에서 예술작품은 고유한 수사를 통해 의미를 생성한다. 문학은 상징과 은유(문자적 수사학)를 통해, 시네마는 몽타주와 미장센(시각적 수사학)을 통해 수사를 실천한다면, 디지털 게임은 플레이어의 공간 탐색과 오브젝트 조형행위에 기반해 의미들을 구성해나가는 절차적 수사학(procedural rhetoric)을 현상한다. 절차적 수사학은 연산과 입출력을 바탕으로 하는 디지털 게임의 고유한 표현 방식이다. 이에 대해서는 Bogost, Ian. (2007). Persuasive Games: The Expressive Power of Video Games, Cambridge: The MIT Press를 참조.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디지털 문화연구/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신현우 문화연구자, 문화평론가이며 기술비판이론과 미디어 정치경제학을 전공했다. 게이밍, 인공지능, 플랫폼, 블록체인을 둘러싼 문화현상을 연구하며 서울과기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한다.
- [인터뷰] 근대에서 현대로의 궤적을 따르다, <더 파이어 노바디 스타티드> 아로코트 개발자
작년 8월 열린 부산인디게임페스티벌(BIC)에 출품된 <더 파이어 노바디 스타티드(The Fire Nobody Started)는 흔히 접할 수 있는 게임들과는 다른 내러티브와 아트의 독창성을 자랑하는 게임이다.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형식의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는 각각 특정 시대로 대변되는 기차 칸들을 오가며 유럽 근세사의 질곡을 체험하게 된다. 산업혁명기부터 베트남 전쟁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사회의 다양한 굵직한 사건들을 다루는 이 게임에는 인류로부터 비롯되는 발전과 폭력이라는 양가적 주제가 녹아나 있다. < Back [인터뷰] 근대에서 현대로의 궤적을 따르다, <더 파이어 노바디 스타티드> 아로코트 개발자 23 GG Vol. 25. 4. 10. 작년 8월 열린 부산인디게임페스티벌(BIC)에 출품된 <더 파이어 노바디 스타티드(The Fire Nobody Started)는 흔히 접할 수 있는 게임들과는 다른 내러티브와 아트의 독창성을 자랑하는 게임이다.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형식의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는 각각 특정 시대로 대변되는 기차 칸들을 오가며 유럽 근세사의 질곡을 체험하게 된다. 산업혁명기부터 베트남 전쟁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사회의 다양한 굵직한 사건들을 다루는 이 게임에는 인류로부터 비롯되는 발전과 폭력이라는 양가적 주제가 녹아나 있다. GG에서는 <더 파이어 노바디 스타티드(이하 <더 파이어>)>를 제작한 ‘팀 스핏파이어’의 개발자 아로코트를 만나 서양 근세사라는 게임의 테마와 작가로서 개발자가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들을 들어보고자 했다. 이경혁 편집장: GG의 인터뷰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더 파이어>를 만드시게 된 계기를 여쭙고 싶습니다. 아로코트: 원래 이 게임은 무한히 위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모티프였지만 아무래도 게임의 배경으로 쓰기에는 좁은 감이 있어 기차로 바꾸었어요. 어딘가를 향해서 끝없이 질주하는데 어딘가로 향하는지는 모르는 기차 안에서 대화하는 게임을 만들고 싶어서 친구랑 이야기를 했어요. 메타 판타지 느낌으로 우로보로스처럼 세상 밖을 도는 열차로서 다양한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임을 할까, 아니면 좀더 현실에 가까운 얘기를 할까 하다가 친구가 아무래도 기차라면 산업혁명이 떠오르니 산업혁명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를 하자고 제안했어요. 그렇게 친구와 얘기하며 한 2시간 만에 스토리 개요가 짜인 거죠. 이경혁 편집장: 기차로 시작할 수 있는 여러 맥락 중에 산업 혁명이라는 주제를 타고 가셨다는 거죠. 말씀하신 개발 동기로서의 기차가 이 콘텐츠의 외피라면 이 게임의 알맹이 자체는 근대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혹시 관련 전공자이신지도 궁금했습니다. 아로코트: 사실 저는 컴퓨터공학이 전공이라 역사 쪽 전공자는 전혀 아니에요. 다만 평소에 그 친구나 저희 아버지와 관련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그러면서 뭔가 제 안에서 관련 지식이나 고찰이 쌓여 갔던 거죠. 그렇게 쌓여왔던 것들이 그 날의 대화로 일종의 촉매가 되어서 게임으로서 형태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이경혁 편집장: <더 파이어>에서 하고 싶으셨던 이야기 자체는 그림이나 소설이나 시 같은 문학의 방식, 혹은 영화로도 만들어볼 수 있었을 텐데 여러 방식 중 게임을 고르셨습니다. 이 작품이 혹시 아로코트님께 첫 작품이신지요? 아로코트: 대중에 제 이름을 공개한 게임으로는 <더 파이어>가 처음입니다. 저는 정말 그냥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게임으로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어떤 사람은 영화로 만들고 어떤 사람은 소설을 쓰듯이 저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그게 게임의 형식으로 구체화되는 거죠. 이경혁 편집장: 첫 게임의 주제로 서구 근대사를 다루게 된 이유가 있으셨을까요? 게임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메세지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아로코트: 사실 대중에게 공개하는 첫 게임이긴 하지만, 제가 이제껏 기획해 왔던 게임의 성격이 굉장히 개인적인 수준에서의 심리적 고찰에 가까웠다 보니 <더 파이어>가 특이한 사례긴 해요. 학생 시절까지는 정말 저에 대해서만 집중했는데, 어른 되고 나서 보니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 조금 더 눈길이 가더라고요. 물론 다른 사람보다는 서구 근대사에 대한 관심이 좀더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에 아버지가 이런 얘기를 해주신 적이 있어요. '세상에서 모두를 만족시키는 선택이나 정책은 없다. 내가 무언가를 선택을 하면 누군가는 이득을 보고 또 누군가는 어떻게든 고통을 받는다. 그렇게 보면 인간이 사회를 만들고 선택을 해야 되는 사회구조 자체가 원죄처럼 느껴진다'. 그게 굉장히 뇌리에 남았어요. 사회 구조 자체가 아무에게도 상처 입히지 않거나 피해 주지 않는 삶을 만들 수 없게 한다. 자본주의 사회구조 속에서 어떤 행위 자체는 필연적으로 또 어떠한 착취로 이어지는 것 같다. 근데 그런 걸 인식을 해봐야 이 세상은 너무 거대하고 저는 너무나도 작잖아요. 제가 그렇다고 혁명을 할 인물상인가 하면 그렇지 않고. 그래서 저는 게임을 통해 어떤 대답 대신 이제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을 하고자 했어요. 이 세상의 구조와 그 안에서 맞닥뜨리는 부조리들이 우리에게 주어진 질문이라면, 사실 해답은 개개인의 삶과 경험이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절대로 하나로 정해질 수는 없고 개별적인 것이겠죠. 하지만 각자의 해답에 대해서 서로 논의하고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해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모두 한번 이 질문을 생각해 보자라는 느낌으로, 어떻게 보면 그게 이 게임을 만들게 된 동기인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저는 <더 파이어>에 실제로 사용된 문구나 글을 보면 피상적인 인용이 아니고 레퍼런스를 참조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어 마르크시즘에 대한 언설들도 나오는데 그것도 나름의 공부를 하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혹시 이 주제와 관련해 책이나 자료 같은 소위 말한 레퍼런스로 볼 만한 것들이 있으셨을까요? 아로코트: 사실 처음부터 특정한 레퍼런스를 잡고 진행했다기보다는 작업을 하면서 참고한 것들이 많다 보니 딱 어느 것이 레퍼런스라고 짚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마르크시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기본 지식이 있었긴 했지만 추가로 정보가 필요하면 그때그때 여러 가지 문헌들을 찾아봤어요.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에서 관련된 사항들을 읽고 가져올 수 있는 정보를 메모해두기도 했구요. 이경혁 편집장: 제작 과정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더 파이어>의 마지막 크레딧에 한 명이 더 들어가 있는 걸 보긴 했는데, 완전히 혼자 게임을 제작하신 것인지요? 전공은 개발자신데 그림도 그렇고 사실 글 쓰는 것도 굉장히 힘드셨을 것 같아요. 아로코트: 마지막 크레딧에 나온 분은 아까 말씀드렸던 제 친구입니다. 게임 자체는 사실상 1인 개발로 이루어졌지만, 내용적인 부분에서는 친구가 초반에 등장하는 1차 세계대전 시기까지의 고증 작업을 도와주었어요. 예를 들어 챕터 3에서는 막스 베버의 책을 어떤 노동자가 읽었다는 설정을 만들었다가 고증을 통해 그걸 수정한다던지. 챕터 5에서 대공황 시대에 나오는 볼스테드 법의 허점에 대해 알려준다던지. 고증이 세게 들어간 부분은 제 친구가 써준 것도 있고, 그걸 기반으로 제가 다듬은 것도 있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거의 다 제가 썼어요. 이경혁 편집장: 게임의 전체 플레이 타임이 1시간 정도로 그렇게 길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위 말하는 기존의 게임 팬들 사이에서 '이건 게임이 아니야'라는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되는데, 만약 이런 질문이 나오면 어떻게 답을 하시겠어요? 아로코트: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 같아요. 이건 사실 게임의 정의에 대한 문제이긴 한데, 흔히 게임도 예술이다라는 얘기를 하잖아요. 무엇이 게임이라는 매체를 예술로 만드는가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대중들이 그 매체를 예술로서 다룰 수 있어야 하고 가장 단순하게는 다른 예술들이 할 수 있는 걸 이 매체도 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게임이 예술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 안에서 정말 다양한 시도를 할 수도 있고 다른 매체들이 다룰 수 있는 주제를 게임도 다룰 수 있다고 생각을 해서요. 이 게임이 인기가 없을 거라는 건 짐작했어도 스스로 이 게임은 게임이 아니다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네요. 이경혁 편집장: 인디게임의 1인 개발자로서 BIC(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에 참석하시게 된 계기와 현장 부스의 분위기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아로코트: BIC는 처음에 게임 만들 때, 되든 안 되든 게임쇼 같은 데 작품을 내고 싶다는 제 로망이 있어서 직접 참여하게 됐어요. 현장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런 전시가 처음이었고 실은 돈이 없어서 장비도 못 빌렸거든요. 개발하던 걸 그대로 갖고 가서 동생 노트북과 제 노트북으로 전시를 했는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고 저는 그 정도면 만족이라고 생각해요. 또 현장에서는 그런 한계도 있었어요. 데모판 플레이 타임이 아무리 짧게 잡아도 한 10-15분은 걸리는데 저는 한 30분 정도로 상정했었으니까 게임쇼 내내 <더 파이어>를 돌린다고 해도 직접 경험시켜 드리는 데는 한계가 있더라구요. 이경혁 편집장: 저도 뒤쪽에서 봤습니다. 게임쇼의 안타까운 점이기도 하죠. <더 파이어>도 그렇지만 플레이타임이 긴 게임들은 사실상 거기서 시연이 어렵다 보니까요. 아로코트: 아무래도 게임 쇼에서는 뭔가 짧고 메커니즘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종류의 게임이 부스로서 사람들에게 강점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좀 많이 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국내에서 <더 파이어>와 비슷한 시도를 하는 분으로 저는 소미(SOMI) 님이 생각나기도 했어요. 혹시 소미님 작품은 플레이 해보셨을까요? 아로코트: 네, 소미님은 항상 존경하는 분이에요. 스토리랑 게임의 시스템을 잘 맞물리게 하는 방법을 잘 아시는 것 같고 사실 그게 그분의 강점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사실 그래서 저도 원래는 어느 정도 게임에 퍼즐 요소를 넣어서 인물들의 이야기가 퍼즐로 표현이 되었으면 했는데, 프로그래밍을 그렇게 잘 못했던 건 아쉬운 점이에요. 이경혁 편집장: <더 파이어> 중간에 알파벳 맞추기라던가 퍼즐을 시도하시는 것도 느껴졌는데 확실히 게임에서 퍼즐 요소가 적긴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로코트: 원래는 시대별로 보드 게임을 반영해서 첫 번째 챕터에서는 틱택토, 두 번째 챕터는 체스 이런 식으로 반영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제 경우에는 아트까지 다 담당을 하다 보니 무엇 하나는 포기를 해야만 했었어요. 아트는 약간 (이 게임의) 정체성 같은 거라서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림과 퍼즐 사이에서 퍼즐을 포기했던 거죠. 그래서 팀원을 되게 절실하게 원하긴 했어요. 저 스스로도 개인적으로 개발 쪽으로는 욕심이 많이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사소하게 작동하는 메카닉 하나도 굉장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투여된다는 걸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그러고 보니 <더 파이어>에서는 아트도 상당히 눈에 띄는데요. 아트에 비중을 많이 두고 싶으셨던 이유와 구성하기까지의 과정들이 궁금합니다. 아로코트: 전공자도 아니고 그림은 초등학생 때 이후로 배운 적은 없었지만, 게임과 관련된 퍼즐 요소에는 확신이 없어도 아트는 이걸 해내면 정말 대단할 것 같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원래는 <더 파이어>에서 아트를 칸마다 다양화할 생각이 없었는데, 아까 저를 어드바이스해준 친구와 얘기하면서 시대에 맞춰 아트를 각자 그리자는 얘기가 나와서 하게 됐어요. 결국 제가 제 무덤을 팠던 거지만요(웃음). 이경혁 편집장: 각 시대별로 예술 사조를 다 맞추신 거잖아요. 마지막엔 팝아트랑 컨템포러리까지 가셨던 것 같아요. 아로코트: 실은 후반으로 갈수록 각 시대에 아트 스타일이 명확하게 들어맞지는 않아요. 예를 들면 1950년대 매카시즘이 나오는 시대의 아트 스타일로 바우하우스를 선택했는데 사실 바우하우스는 1930년대거든요. 점차 사조들이 갈래가 다양해지기도 하고, 그보다 후반으로 가면 저작권 문제도 있습니다. 이전 시대까지는 각자 모티프로 삼은 작가들이 있었어요. 첫 챕터인 산업혁명 시대 같은 경우에는 신문에 나오는 단색 리소그래피 판화를 택했고, 두 번째 챕터에서는 구스타프 클림트, 세 번째 챕터에서는 툴루즈 로트랙, 네 번째 챕터에서는 몽고메리 플래그 이런 식으로 명확한 작가들을 정했어요. 그런데 후반부로 가니 그렇게 하면 법적인 문제에 걸릴 가능성이 있어 그보다는 시대별 분위기에 맞춰서 선정하고자 했어요. 개인적인 느낌인데 그래서 후반으로 갈수록 제 취향이나 경향성이 조금 더 많이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이경혁 편집장: 콘텐츠에 대한 질문으로 저는 이 얘기를 꼭 여쭤봐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제작자이자 창작자로서 인류의 근대라는 걸 어떻게 보시나요? 아로코트: 저희가 <더 파이어>를 만들 때 명확하게 합의하고 넘어간 게 있었어요. 우리가 볼 때 인류의 근대는 실패의 역사다. 지금도 보세요, 이 게임을 완성할 때까지만 해도 세상이 이렇게 돌아갈 줄은 몰랐지만 계엄령도 내려지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지금보다 조금 더 이전 시대 사람들은 그래도 자신만의 이상이나 최선을 상상하고 꿈꾸지 않았나 싶거든요. 근데 지금의 세상은 더 이상 최선을 생각할 겨를이 없이, 최악과 차악 사이에서 최악을 고르지 않기 위해서 애쓰고 있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작품에서 불이라는 모티브를 많이 사용하셨지요. 처음에는 남포등에 성냥으로 불을 붙이고, 그것이 나중에는 원자폭탄이 되고 최종에는 불이 타오르는 쪽으로 계속 걸어가면서, 마지막쯤에 ‘우리가 불이다’ 라는 선언을 하는 모습도 나오고요. 하지만 기술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도 사실이라는 이야기도 살짝 나오잖아요. 그래서 저는 <더 파이어>에서 불이 갖는 의미의 이중성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게 아닌가 했어요. 아로코트: 맞아요, 이중적이에요. ‘우리가 불이다’는 아까 말씀드린 인류의 사회와 구조 자체가 원죄라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피우지 않은 불에 의해서 고통받고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세상을 잘 살펴봤을 때 고통받고 있는 우리도 이 부조리의 일부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게임 후반부로 갔을 때 그렇게 산발적으로 그려놓은 불이라는 이미지와 상징을 하나하나 다 끌어모아서 하나로 통합하지는 않았어요. 이 게임을 대답이 아니라 질문으로 만들고자 했기 때문에, 그 상징들을 보면서 플레이어가 그 상징들과 제가 대략적으로 잡아놓은 형태를 보면서 플레이어가 불꽃이란 무언가에 대해서 스스로 결론을 내렸으면 했어요. 이경혁 편집장: 산업혁명이나 원자 폭탄 등으로부터 출발해 세계 대전과 베트남 전쟁 등의 서사를 보면, 물질적으로 생명이 죽어나가는 순간들을 포착하시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완전히 근현대까지는 안 오셨고 사실상 베트남 전쟁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로코트: 사실 후반에 소련 붕괴나 911, 서브프라임 사태 이런 것들이 짧게 짧게 지나가잖아요. 원래는 그 사이에 이라크 전쟁을 넣어서 그 문제를 부각하려 했어요. 그랬지만 저한테도 두려움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웃음)... 저는 그래서 사실 계엄령이 내려왔을 때 정말 무서웠거든요. 이성적으로는 게임 창작자로서 역사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할 수 있어야 하고, 이게 정치 사회적으로 짚고 넘어갈 만한 이야기인 것도 맞는데 왜 이런 부분에서 두려워해야 되나 생각하며 현타도 많이 오더라구요. 이경혁 편집장: <더 파이어>가 언어를 그래도 꽤 많이 지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번역은 어떻게 처리하셨을까요? 아로코트: 번역의 경우 제 친구가 영어 부분을 해줬고, 그걸 기반으로 BIC에서 마사케이라는 분을 만나서 그분이 일본어 번역해 주셨고 나머지는 itch.io (해외 인디게임 커뮤니티)에서 번역 자원봉사자 분들을 구해서 했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역시 개발자들은 itch.io에서 시작하시는군요. 게임의 판매수익은 얼마 정도 될까요? 그동안 들어간 공수가 있으니, 그와 대비해서 이 정도는 회수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기대가 있으셨을 것 같아요. 이런 물질적 기반이나 상업적 성과가 창작자가 다음 작품으로 가는 데 또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해서 여쭤봤습니다. 아로코트: 저는 이 게임에 정말 (상업적으로)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모르겠습니다. 돈을 벌면 좋으니까 최대한 게임을 알리기는 하는데, 이성적으로 따져보면 이 게임이 해외에서도 되게 마이너한 분야이고 얼마만큼의 수요를 낼지 장담할 수 없는데 한국에서는 어떻겠어요.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시장의 크기가 있다 보니 그만큼 마이너 장르도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걸 많이 느껴요. 그래도 그런 것 치고는 제 기대보다는 잘 됐다의 느낌이구요. 하지만 조금 더 잘 됐으면 좋겠다고 항상 느끼고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더 파이어>의 경우 국내보다도 해외 쪽 반응이 좀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해외 반응들은 좀 보신 게 있으세요? 아로코트: <더 파이어>도 사실 국내보다는 해외 쪽에서 뭔가 조금 이제 힘을 낼 수 있는 작품 같은데, 해외 반응을 살피기 전에 게임이 애초에 해외로 잘 퍼져 나가야 되는데 그러기가 사실 쉽지는 않아요. 인디 게임 홍보에 가장 난점이고 가장 필요한 부분이 네트워크인 것 같아요. 제가 그렇게 사회적인 인간이 아니기도 하지만 예전에 학생일 때는 그런 걸 모르고 살았다가 이제야 그것들을 체감하기 시작하니까, 이걸 앞으로 어떻게 홍보를 하고 알릴지가 정말 힘들더라구요. 우선은 비트 서밋(일본 국제 인디게임 페스티벌)에 내보긴 했습니다. 아무래도 <더 파이어>가 아트라는 명확한 장점이 있으니까 이걸로 어떤 수상을 하면 관심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요. 이경혁 편집장: 개발자 본인에 대해 좀더 이야기를 다가가 보면, 게이머로서는 또 어떤 분이신가 궁금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인상이 깊었던 게임들을 두세개 정도 꼽아주시면 어떤 건가요? 아로코트: 쯔꾸르 게임 중에서 08년도에 나온 <오프>라는 RPG 게임이 있어요. 서양권에서는 많이 유명한 메타픽션 게임의 계보에 있는데. <오프>는 RPG 쯔꾸르라고 하면 보통 생각하는 일반적인 이미지를 전혀 따르지 않는 게임이었어요. 이렇게 게임을 만들어도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저에게 있어 게임이란 시스템 이전에 이야기가 먼저 존재하고 게임은 그 이야기를 표현하는 수단인데요. 쯔꾸르 게임들, 특히 <헬로우 샤를로테>라는 게임을 하면서 그런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에반게리온 같은 느낌의 우울증 걸린 게임인데(웃음). 제가 고등학생 때 정말 힘들었고, 저한테 학교라는 공간은 단 한 번도 좋게 기억된 적이 없었는데 <헬로우 샤를로테>가 그러한 감성들을 정말 명확하게 풀어낸 거예요. 게임을 하면서 개발자가 겪었을 그 고통들이 정말 생생하게 느껴졌어요. 그 게임을 통해 저도 제가 가지고 있는 이 기억들을 언젠가 게임으로 다시 풀어내고 싶다, 자기 표현 욕구의 수단으로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 외에는 <이브>나 <마녀의 집> <원샷> 같은 이야기를 표현하는 게임과 메타적인 연출들을 많이 좋아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기획부터 완성까지 여러 고충이 있었습니다만, 결국 스스로 이 게임을 만들 때 재미있으셨을까요? 아로코트: 정말 솔직히 난점이 많았죠. 특히 아트 스타일을 만들 때는 진짜 미치는 줄 알았어요(웃음). 고쳐도 별로고 안 고쳐도 별로고, 진짜 내가 처음에 기대했던 거랑 너무 다르고. 그런데 재미있었냐라고 묻는다면 정말 재미있어요. 하는 시간만 놓고 봤을 때는 사실 힘들고 고민도 많이 해야 되고 특히 저는 주변에 아무도 없이 그냥 집에서 이것만 개발했거든요. 속으로는 내가 이렇게 시대별로 고생을 해봐야 누가 알아줄 거라는 보상도 확신도 없었어요. 그런데도 그게 재밌었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개발자로서 아로코트님의 향후 진로나 창업에 대한 생각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아로코트: 언젠가는 회사를 세워서 제가 생각한 이야기들을 더 만들고 싶은 게 목표고, 제가 생각하는 것들을 일종의 IP나 프랜차이즈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해요. 제가 원하는 게임을 만드는 것 외에도 어느 정도 수익성이 나는 그런 것들을 많이 고려하지만 특별히 현실에 타협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제 게임 스타일이 이런 걸로 고정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제 개발 능력의 모자람이기도 해서(웃음) 지금은 저보다 훨씬 더 능력이 있으신 분들과 협업을 할 기회가 생겼는데, 앞으로는 그럴 수 있다면 훨씬 더 적극적이고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고 싶어요. 이경혁 편집장: 마지막으로 후속작 계획을 좀 들을 수 있을까요? 간단한 컨셉트 같은 걸 공개해 주실 수 있으면 그것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로코트: 후속작으로는 지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어요. <더 파이어>를 보고 같이 작업하자고 연락 주신 분들이 계셔서 그분들과 하는게 있고 개인적으로도 기획 중인 게임들이 있습니다. 먼저 팀으로 제작중인 게임으로 한국 도깨비가 등장하는 뱀서가 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제작하는 스토리 게임 중에서는 우선 브로맨스 요소가 들어간 대화 형식의 게임을 만들고 있구요. 도시에서 괴물을 키우는 텍스트 어드벤처 계열 게임도 기획 중인데, 사이키델릭한 심리적 요소를 많이 곁들인 게임으로 계획하고 있어요. Tags: 근대, 인디게임, 역사, 1인개발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수 문화와 지식, 공간과 학술 장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합니다. 게임의 역사와 게이머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GDC 2023 탐방기: 기술과 트렌드의 변화로부터 일어난 흐름들
길었던 팬데믹의 터널이 끝나고 게임쇼에도 봄이 돌아왔다. 물론 모든 게임쇼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며칠 전 발표되었던 E3 2023의 취소 소식은 게임 업계에 충격을 던져주었다. 그러나 보스턴에서 3월 말에 열린 PAX EAST는 GDC 2023과 비슷한 시기에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B2C 부분에서 흥행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필자 역시 4년 만에 GDC를 찾았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2020년부터 2022년 GDC에 모두 등록했었다. 다만 온라인으로 열렸던 2020년과 2021년에는 참석이 불가능했고, 작년은 패스를 등록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온라인으로 관람할 수밖에 없었다. < Back GDC 2023 탐방기: 기술과 트렌드의 변화로부터 일어난 흐름들 11 GG Vol. 23. 4. 10. 길었던 팬데믹의 터널이 끝나고 게임쇼에도 봄이 돌아왔다. 물론 모든 게임쇼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며칠 전 발표되었던 E3 2023의 취소 소식은 게임 업계에 충격을 던져주었다. 그러나 보스턴에서 3월 말에 열린 PAX EAST는 GDC 2023과 비슷한 시기에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B2C 부분에서 흥행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필자 역시 4년 만에 GDC를 찾았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2020년부터 2022년 GDC에 모두 등록했었다. 다만 온라인으로 열렸던 2020년과 2021년에는 참석이 불가능했고, 작년은 패스를 등록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온라인으로 관람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 GDC 2023에서는 기존에 제공하던 온라인 중계를 막대한 비용 문제로 거의 중단하고 오프라인 중심으로 다시 돌아왔다. 공식 홈페이지 통계상으로는 28,000여명의 업계 관계자가 방문했다고 하는데, 이는 작년 GDC 2022의 12,000명가량과 비교하면 2배 이상을 기록한 셈이다. 이는 팬데믹 이전 2019년의 GDC 참가자 29,000명에 거의 근접한 수치이다. 실제 참가한 개발자들 얼굴에서는 Covid-19의 영향을 느끼기 어려웠다. 대다수의 참가자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았고, 즐겁게 서로를 대면하면서 식사하고 담소를 나누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다만 처음 패스를 받는 과정에서 백신 접종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가 추가되어 예년보다 매우 긴 패스 수령 줄이 이어졌다. * GDC 2023 기간 중 패스를 수령하기 위해 늘어선 긴 줄 팬데믹 기간과 그 이후의 GDC는 과연 무엇이 달라졌을까?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팬데믹 기간 중에 게임업계에서 일어났던 AI, Web3(메타버스, 블록체인 등) 등의 기술적인 변화와 흐름을 이해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GDC는 월요일과 화요일에 열리는 특정 주제 중심의 서밋과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열리는 메인 컨퍼런스로 양분되어 왔다. 그간 서밋은 인디게임, 내러티브, 게임 교육, 로컬라이제이션, 시리어스 게임, 스마트폰/태블릿 게임, 과금 제도, VR/AR 등 게임 디자인과 관련한 주제들을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올해 GDC 2023 서밋은 내러티브나 인디게임, 게임 교육 같은 전통적인 서밋이 어느 정도 남아있긴 했지만 많은 부분들이 기술 중심 서밋으로 대체되었다. AI, Web3, F2P, 퓨처 리얼리티(구 VR/AR), 온라인 게임 테크놀로지, 툴, 비주얼 이펙트 등 수많은 기술 중심 서밋들이 작년과 올해 새롭게 생겨났고, 이는 모두 팬데믹 이후 새롭게 부상한 게임 업계의 다양한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 중 AI 서밋이 가장 많은 개발자들을 불러 모았으며, 자연어처리, 행동 패턴 설계 같이 AI의 전문 영역을 넘어 게임 배급과 유통 부문까지 AI의 영향력이 확장될 수 있음을 확인한 해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과거에 비해 한국 게임 개발자들이 GDC를 많이 방문했으며, 발표 횟수도 늘었다. 이번 GDC에서 가장 적극적인 포지셔닝을 보여준 한국 게임회사는 위메이드였다. 작년에도 위메이드의 장현국 대표는 발표를 진행했으며, 올해는 아예 메인 스폰서 자격으로 Web3 서밋 키노트 스피치를 담당했다. 작년 GDC에서 장현국 대표는 위믹스 생태계에 100종 이상의 게임이 온보딩 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결과적으로 말해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올해까지 위믹스 플레이에는 25종의 게임이 각기 다른 토큰노믹스를 가진 채로 게임을 서비스 중이다. 아직 절반의 성공에도 이르지 못했지만, GDC 엑스포 장에는 엄청난 크기의 위메이드 부스가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그러나 메인 스폰서의 화려한 위용 뒤에 느껴지는 조급함을 감출 수는 없었던 것 같다. * GDC 2023 메인 스폰서로 이름을 올린 위메이드 최근 10여 년간 거의 매해 GDC에 참여하거나 최소한 온라인으로 컨퍼런스에 참가해 온 필자는 한국 게임 개발자가 한국 게임회사 소속으로 비즈니스 모델이나 로컬라이제이션을 제외한 게임 디자인 영역에서 GDC 발표를 진행한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예외가 있다면 2018년 〈PUBG〉의 사례 정도라고 할 수 있다. 2017년 말 스팀에 〈PUBG〉가 출시될 당시에는 한국 게임회사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가까운 비즈니스 모델로 PC 게임 플랫폼에서 판매 1위를 달성했다는 것이 정말 예외적인 사례로 취급받았던 시기였다. 물론 그 이후로도 이러한 사례가 자주 나온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처럼 GDC에서 한국 게임사들의 발표가 거의 예외없이 게임 비즈니스 모델로 귀결되고, 게임 디자인이나 내러티브, 창의성에 초점을 맞추지 못한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히 알려진 불편한 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 GDC 2015에서 〈룸(Loom)〉에 관한 클래식 게임 포스트모템을 진행하고 있는 브라이언 모리아티(Brian Moriarty) 한편으로 올해 GDC에서 느끼게 된 또 하나의 변화는 전통적인 게임 디자인 분야의 위상이 갈수록 축소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는 게임 업계 내에서 아이디어 발상과 메커닉 개발에 치중하는 컨셉 디자인의 분야가 점점 시스템 기획이나 레벨 디자인 등으로 축소되어 버린 것도 한몫 할 것이다. IGF 파이널리스트에 올라온 소수의 창의적인 게임 일부를 제외하면 인디게임으로 엑스포에 전시된 상당수는 익숙한 장르를 그대로 답습하거나 약간의 변주만을 거친 경우가 많았다. 컨퍼런스에서도 게임 디자이너들이 즐겨 찾았던 포스트모템(postmortem) 강연들이 대거 축소되어 아쉬움을 안겨주었다. 2010년대 GDC에서는 최소 4-5회 정도의 클래식 게임 포스트모템 강연이 진행되었다. 올해에는 단 하나 반다이 남코 사의 CTO인 노부히코 모모이가 진행하는 〈다마고치〉의 클래식 게임 포스트모템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컨퍼런스 1주일 정도를 남겨놓고 개발자의 개인 사정으로 취소되었다. 인디 게임 포스트모템도 서밋 기간 중 보통 4-5회, 메인 컨퍼런스 기간 중에 2-3회 정도 열리는 것이 관례였으나 올해에는 거의 열리지 않거나 기술 중심 세션으로 대체되었다. 때문에 정식 클래식 게임 포스트모템은 아니었지만 〈별의 커비〉 시리즈 30주년을 맞아 해당 시리즈의 여러 측면을 회고하는 “The Many Dimensions of Kirby” 강연이 반사적인 인기를 누렸다. HAL 연구소의 쿠마자키 신야와 카미야마 타츠야가 출연한 이 강연을 보기 위해 강연장을 몇 바퀴 돌 정도의 긴 줄이 늘어섰으며, 예정 시간을 30분 넘긴 이후에야 모두 입장이 가능할 정도로 큰 인기를 모았다. 커비 캐릭터의 비정형성과 공중 부양, 몬스터를 빨아들인 후 외양과 스킬이 변화하는 전통적인 메커닉의 고안 과정이 개발 과정에서 산출된 다양한 컨셉 아트와 함께 제시되어 눈길을 끌었다. 그 외에는 1인 개발자 제임스 와들(James Wardle)이 출연한 “‘Wordle’: One Year Later”의 포스트모템이 인기를 끈 강연이었다. 그는 이 게임을 뉴욕타임스에 매각하여 7자리 숫자의 달러 수익을 거두었지만, 수익을 위해 게임 개발을 했던 것은 아니라고 언급하여 큰 박수를 받았다. * 〈별의 커비〉 30주년을 기념한 GDC 2023 강연 이런 몇몇 예외적인 사례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전통적인 의미의 게임 디자인 강연과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가 GDC에서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는 점점 게임 개발이 분업화되어가고, 모바일 게임 중심으로 광고를 통한 수익화가 하나의 공식으로 자리잡으면서 게임 디자인이나 메커닉의 개선을 통한 컨셉 디자인의 영역이 갈수록 축소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인디 게임 개발사들 역시 이제는 대형 퍼블리셔나 VC로부터의 투자 과정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면서, 인디스러운 스타일만 유지한 채 인기 장르의 게임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내러티브와 비주얼만 바꾸어 기존 게임을 모방하는 케이스가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점점 자기복제가 만연화 되어가도 이를 합리화하기에만 급급한 인디 게임 분야의 돌파구를 찾아보기 위해 방문했던 올해의 GDC였지만, 미국 인디 게임 씬에서도 뾰족한 해답은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인디 게임 씬은 그간 외부에서 투입되는 자본의 단맛을 보면서 외연을 키워온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제는 AA급 게임과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인디 스타일 게임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어려워졌으며, 완성도가 높은 인디 게임들은 점점 스타일리시한 AA급 정도의 게임을 지향하고 있다. 올해 IGF를 심사하면서도 느낀 사실이지만, 많은 심사위원들이 거칠면서도 날것을 보여주는 저예산 인디보다는 세련된 스타일의 AA급 인디게임을 더 높은 위치로 보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올해 GDC는 여느 해보다 복잡한 심정을 안고 행사장을 떠나게 되었다. 이런 필자를 배신하지 않는 것은 샌프란시스코의 맛있는 클램 차우더와 샤도네이 와인 한 잔 뿐이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교수) 이정엽 순천향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게임 스토리텔링과 게임 디자인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인디게임 페스티벌인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 창설을 주도하고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인디게임 행사인 Independent Games Festival(IGF) 심사위원이기도 하다. 저서로 『디지털 스토리텔링』(공저, 2003), 『디지털 게임, 상상력의 새로운 영토』(2005), 『인디게임』(2015), 『이야기, 트랜스포머가 되다』(공저, 2015), 『81년생 마리오』(공저, 2017), 『게임의 이론』(공저, 2019), 『게임은 게임이다: 게임X생태계』(공저, 2021) 등이 있다.
- 포스트 코로나 시대, 게임쇼의 미래를 묻다
‘게임기자가 되면 뭐가 좋아요?’. 최근 술자리에서 진로를 고민하던 후배가 물었다. 쉽게 답하기 어려운 대답이었다. 필자는 게임기자를 대변할 깜냥도 없을뿐더러, 글밥을 벌어 먹고사는 것이 날로 어려워진다는 사실은 굳이 게임기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아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 Back 포스트 코로나 시대, 게임쇼의 미래를 묻다 20 GG Vol. 24. 10. 10. ‘게임기자가 되면 뭐가 좋아요?’. 최근 술자리에서 진로를 고민하던 후배가 물었다. 쉽게 답하기 어려운 대답이었다. 필자는 게임기자를 대변할 깜냥도 없을뿐더러, 글밥을 벌어 먹고사는 것이 날로 어려워진다는 사실은 굳이 게임기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아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목이 턱 막히는 질문이지만 이 답답함을 후배에게 전달하고 싶지 않았다. 가까스로 꺼낸 대답은 ‘게임기자는 게임쇼에 갈 수 있어’였다. 필자는 지금은 사라진 E3를 제외한 거의 모든 대형 게임쇼를 취재했다. 한국의 지스타, 플레이엑스포, BIC부터 중국의 차이나조이, 일본의 도쿄게임쇼, 대만의 타이베이게임쇼와 독일의 게임스컴, 미국의 GDC를 다녀왔다. 게임사들이 자체적으로 연 행사까지 포함한다면 필자가 다녀온 곳은 더 많다. 게임쇼는 여러 게임사가 신작을 발표하는 한편 개발 상황을 대중에 공유하는 쇼케이스이고, 사업적 기회를 찾는 기회의 장이며, 게임인들이 모이는 축제다. 게이머로서 게임쇼는 놓치기 아쉬운 현장이다. 필자가 이 원고를 탈고하는 지금 일본 지바현 마쿠하리 메쎄에선 도쿄게임쇼가 막을 내렸다. 오는 11월, 지스타는 행사 20주년을 맞이한다. * 오는 11월 개막하는 지스타는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한다. 사진은 2024년 지스타의 행사장 조감도 일부 사라진 E3, 점점 올라가는 비용… 높아지는 게임쇼 무용론 그러나 한편으로는 과연 디지털게임이 오프라인 쇼라는 형식을 통해 공유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코로나19를 경유하면서 온라인 쇼케이스 방식은 널리 퍼졌다. 신작 발표라면 소니의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나 제프 케일리의 초호화 발표회가 있고, 체험이라면 스팀의 얼리억세스가 있다. 북미를 대표하는 게임쇼는 E3는 사라진 게임쇼가 되었다. 단일 게임사 게임쇼로는 가장 유명한 블리즈컨은 개최와 미개최를 반복하고 있다. 요컨대 모든 사람이 코로나19를 지나며 비대면의 익숙함을 경험했지만, 디지털게임은 특별히 비대면 콘텐츠를 더 쉽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게임스탑이나 용산상가보다 온라인 유통망에서 게임을 구매하는 것이 익숙한 지금, 오프라인 게임쇼의 의미도 새로 생각해봐야 한다. 게임 CD와 CD-ROM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예전과는 달라진 것처럼 말이다. 최근 필자는 CD는 커녕 USB 저장장치를 한 번도 안 써본 사람이 대학생이 되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아무튼, 이미 많은 업계인들이 <헤일로> 신작을 공개하면서 팔에 <헤일로> 문신을 보여주는 것보다 게임스컴 오프닝 라이브나 더 게임 어워드에 쇼케이스 자리를 구매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선택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외신 에스콰이어에 폭로된 바에 따르면, 제프 케일리가 주최하는 각종 쇼케이스에 광고를 내려면 1분에 25만 달러, 약 3억 4,000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 기자가 그간 만난 많은 업계인들이 오프라인 게임쇼에 출전하는 것보다 온라인 쇼케이스에 트레일러를 보내는 것이 저렴하다고 토로했다. 오프라인 게임쇼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플레이 가능한 게임빌드가 있어야 하고, 그게 없다고 하더라도 손님들을 만족시킬 적당한 프로그램이 존재해야 하며, 코스프레 업체와 안내요원에게 인건비를 지불해야 하는 한편, 행사 주최측에게 부스 공간을 대여해야 한다. 철도로 운송이 가능한 경우가 아니라 아시아에서 항공편으로 물자와 인력을 대야 하는 경우라면, 그 비용이 대단히 올라간다. 즉, 온라인 쇼케이스에 트레일러를 보내는 것은 게임쇼 직접 출전보다 경제적으로 더 합리적인 결정일 수 있다. 더구나 지금처럼 게임 업계가 감축 국면으로 접어든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기자가 아는 모 게임사는 코로나19 이전까지 고용하고 있던 행사 관련 전담 인력을 대부분 내보냈다. *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MS의 옛 게임사업부 대표를 맡은 피터 무어는 <헤일로 2>의 출시일을 문신으로 새겨 현장에서 공개했다. 현장 분위기는 열광의 도가니였다고 한다. 신작 발표의 플랫폼이 옮겨 가면서 이런 충격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전에 비해 많이 줄어든 듯한 인상이다. 한껏 기대를 받은 상황에서 출시된 <헤일로 2>는 대박이 났다. (출처: E3) 그럼에도 살아남은 게임쇼는 역대 최다 관중 갱신 그래서 오프라인 게임쇼에는 파리만 날리느냐면 전혀 그렇지 않다. 각 게임쇼는 역대 최다 인원을 모객하고 있다. 지난 게임스컴과 올해 게임스컴은 소니와 닌텐도가 빠지고 그 자리를 한국과 중국의 게임사들이 채우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라인메쎄 사무국의 발표에 따르면, 2024년 게임스컴의 방문객 수는 총 120개국 출신의 33만 5,000여 명으로 역대 최고 관람객 수를 기록했다. 도쿄게임쇼의 방문객도 274,739명이 방문해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으며, 차이나조이도 338,000명의 집계를 올리며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누군가에게는 무용한 논의일 수 있겠으나, 오프라인 게임쇼의 성패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여하느냐’에 달려있다. 현장에 찾아서 돈과 시간을 쓴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서 그 해 행사를 점검하는 한편, 다음 해에 대한 예측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 게임쇼의 조직위원회가 꼬박꼬박 방문객 수를 집계하고 발표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반대로 특정 게임쇼가 관람객 발표를 주저한다면, 이는 내년도 행사에 적신호가 될지도 모른다. E3가 사라진 가운데 주요 게임쇼들이 역대 최다 관람객 수치를 매년 갱신하면서 한때 코로나19로 침체됐던 오프라인 게임쇼에 대한 심리가 분출된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기엔 일상을 찾은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듯하다. 오프라인 게임쇼는 여전히 폭발력 있는 마케팅 창구이고, 방문객으로 하여금 대체 불가능한 현장감을 선사한다. 그중 백미는 단연 미발매 게임을 먼저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게임스컴은 소니와 닌텐도가 빠졌음에도 크래프톤이 <인조이>, 펄어비스가 <붉은사막>을 선보이며 전 세계 게이머를 사로잡았다. 소위 ‘국뽕’ 요소를 제하더라도 두 게임에 대한 열기는 <몬스터 헌터 와일즈>나 MS 게임패스 부스 못지 않게 뜨거웠다. 관람객들은 캠핑 의자를 끌고 와 5시간에서 6시간을 앉아 두 게임의 시연을 기다렸다. 지난해에도 게임사이언스의 <검은 신화: 오공>을 즐기려는 장사진이 들어섰다. “대기시간 수백 분”은 “사전예약자 몇만 명”보다 센 파급력을 지닌 듯하다. 사전예약은 버튼 터치로 가능하지만, 대기시간은 순전히 그 앞에서 기다려야 하지 않은가? 일반 관람객을 위한 ‘매직패스’ 부류의 탑승 예약 시스템도 존재하지 않는다. * 지난 게임스컴에서 수백 분의 대기시간을 기록한 크래프톤의 <인조이>. (필자 촬영) 챔피언의 사정, 컨텐더의 사정 그러나 단일 기업이 충분한 플레이어를 보유하고 있을 때에는 굳이 오프라인 게임쇼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듯하다. 소니의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가 그렇고, 닌텐도의 ‘닌텐도 다이렉트’가 그러하며 블리자드의 ‘블리즈컨’이 그러하다.(혹자는 이 문장을 과거형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단일 게임쇼가 열리는 기간에 맞추어 자사 게임쇼를 열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2019년에는 EA가 E3를 앞두고 EA PLAY라는 이름의 자체 게임쇼를 열어 관객을 맞이했다. 앞으로도 세계 시장에서 주목도가 높은 게임사들은 자사의 마케팅 전략과 비용, 국가 내의 입지 등의 따라서 부스 출전을 결정할 것이다. 도쿄게임쇼에서는 찾을 수 없는 닌텐도 부스를 한국의 플레이엑스포에서 찾을 수 있다. ‘차이나 히어로 프로젝트’라는 개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소니는 올해도 차이나조이에서 대형 부스를 냈지만, 굳이 독일 게임스컴까지 출전하지는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반면에 단일 회사와 IP의 지명도가 개별 게임쇼보다 부족하다면 그 기업은 여건이 되는 한 적극적으로 출전을 고려할 것이다. 당장 크래프톤과 펄어비스는 <인조이>와 <붉은사막>을 알리기 위해 수천 km를 날아갔고, 좋은 성과를 얻은 듯하다. (공교롭게도 두 회사는 모두 상장사인데) 다가오는 실적 발표에서 이들 기업이 출전의 구색을 갖추기 위한 여러 비용이 어느 정도였는지 대략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전반적인 물가 인상 기조가 끝나지 않는 이상, 오프라인 게임쇼 출전을 위한 비용도 올라갈 것인데, 그렇다면 이들 게임사들은 자사가 벌어들이는 영업이익의 규모를 면밀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차이나조이에 참가했던 소니는 게임스컴을 결석하고, 안방의 도쿄게임쇼에 다시 참가했다. 사진은 2024년 차이나조이에서 촬영한 소니 부스. 비슷한 시기 중국에서 PS5는 품귀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오공>이 출시됐기 때문. (필자 촬영) 몰맥락적 ‘쇼걸’ 대신 코스프레, 그리고 굿즈의 향연 게임업계의 올드비들은 게임쇼에서 ‘쇼걸’이 도열해 현장을 찾은 손님의 팔짱을 끼면서 부스 방문을 영업했다는 이야기를 전설처럼 꺼내곤 한다. 이제 그런 모습은 전과 달리 많이 사라졌다. 지금도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 몇몇 곳은 ‘쇼걸’을 적극적으로 배치해 모객에 나서지만 이제는 대부분 찾아보기 어려운 문화가 됐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코스프레 모델로 보인다. 자사 IP와는 아무런 쇼걸보다는 맥락이 있는 전시로 평가되기 때문에 빠르게 쇼걸의 자리를 대체한 듯하다. 일각에서는 게임이 아닌 코스프레가 행사의 중심이 되는 것에 대해 경계심을 드러내곤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본다. 행사장에는 매년 눈에 띄게 코스프레 참가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매년 찾는 지스타에서도 코스프레 참가자가 늘어나는 것이 꾸준히 관측된다. 이런 개인 참가자 중 몇몇은 게임사에서 준비한 코스프레 모델을 뛰어넘는 수준의 분장을 보여주며 보는 사람의 혀를 내두르게 한다. 전 세계 어느 게임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자는 포스트모템과 강연 중심의 GDC에서도 코스어를 여럿 목격했다. 이렇듯 게임쇼에서 코스프레는 이미 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지도 오래다. 한국의 플레이엑스포는 코스프레 참가자를 위한 탈의실과 코스프레 가이드까지 안내하는 등 코스프레 친화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기자도 누가 ‘택일하라’고 한다면 코스프레 중심의 게임쇼보다는 시연 중심의 게임쇼를 선호하는 쪽이지만, 그것은 개인의 호불호 영역에 불과할 뿐, 둘은 앞으로도 완전히 분리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아시아권 게임쇼를 중심으로 코스프레 모델에게 과도한 촬영을 시도하는 몇몇 사진가들이 있어 유의가 필요할 듯하다. 여담이지만, 지난 게임스컴에서 필자는 한 업계 관계자로부터 ‘굿즈 배포의 관행’에 대한 사견을 들은 바 있다. 언젠가부터 게임 캐릭터나 게임사 로고 등으로 장식된 대형 비닐 백에 게임사에서 나눠주는 마우스패드, 휴대용 선풍기 등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게임쇼에서 보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이 관계자는 이러한 굿즈 살포가 근래 트렌드가 된 ESG 경영에 맞춘 행보가 아니라고 말했다. 사람은 언제나 작은 성의에 감동하기 때문에 굿즈 배포의 문화를 단박에 없애기는 어렵겠지만, 행사장 한편에 무더기로 버려지는 종이부채 쓰레기를 보면, 다른 방식의 ‘작은 성의’도 고려해 볼만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지스타 사진 중 기사에 쓰기 적합한 사진을 골랐다. 사진기사 본문에는 "부스에 미모의 여성들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라고 쓰여있다. (출처: 디스이즈게임) 오프라인 게임쇼의 미래는? 정리하자면, 게임업계는 코로나19 이후 비대면을 빠르게 학습했으며 지금도 비대면 행사와 마케팅이 자주 펼쳐지고 있다. 축소 국면에서 트레일러 마케팅은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쓰이고 있고, 이 기조는 한동안 계속될 듯하다. 제프 케일리의 아성에 균열을 낼 수 있는 플레이어는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 게임쇼의 현장감은 대체 불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에 각 기업의 영업활동이 허락하는 한 오프라인 게임쇼는 계속될 것이다. 사라진 E3의 빈자리는 게임스컴 등 타 게임쇼들이 성공적으로 대체하고 있다. 본문에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지만 SXSW(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 같은 예술 행사에서도 게임은 당당히 현장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 소니와 닌텐도 같은 빅 플레이어들이 게임쇼를 어떻게 대하는가를 지켜보는 것도 호사가들의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한국과 중국의 게임사들은 근래 바둑을 두듯 빈자리를 파고 들어가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올해 크래프톤과 펄어비스가 대표적이다. 지금으로서는 근거 없는 기자의 망상이지만, ‘퍼스트 펭귄’을 주시하는 업계의 특성상 이러한 시도는 당장 내년도부터 다른 한국 게임사들에 확대될 수 있다. 관람객들은 몇 시간씩 게임 시연에 줄을 서기도 하고, 자기 카드 덱을 들고 듀얼을 펼칠 수도 있고, 꼬리 달린 털옷을 입고 나와서 현장의 분위기를 돋울 수 있다. 오프라인 게임쇼의 성패는 언제나 얼마나 많은 관람객을 모았는지에 있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주최사와 게임업계에게 긍정적인 신호이고, 그들은 그 신호를 이어갈 수 있도록 운영의 묘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김재석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 “진보가 게임을 망친다?” <데스티니2>의 부침을 따라서
흔히 재난에 “‘별 혹은 행성의 불길한 국면’이라는 첫 번째 정의와 ‘갑작스럽거나 커다란 불행’이라는 두 번째 정의가 함께 관계”해 왔을 때, 일반적으로 <데스티니2>에서 묘사되는 재난은 전자의 의미를 조명하는 쪽에 가깝다. < Back “진보가 게임을 망친다?” <데스티니2>의 부침을 따라서 14 GG Vol. 23. 10. 10. 플레이어와 적(敵)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흔히 재난에 “‘별 혹은 행성의 불길한 국면’이라는 첫 번째 정의와 ‘갑작스럽거나 커다란 불행’이라는 두 번째 정의가 함께 관계”해 왔을 때, 일반적으로 <데스티니2>에서 묘사되는 재난은 전자의 의미를 조명하는 쪽에 가깝다. 1) 이 게임에서 조성되는 위기 국면은 언제나 ‘여행자’의 불능에 좌우되었기 때문이다. 여행자는 태양계 전역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자로서, 게임의 공간을 독특하고도 문제적으로 만드는 요인이다. 데스티니2는 여행자라는 초월적인 구체가 인류를 방문해 태양계를 테라포밍하여 황금기를 누리게 해주었다는 설정을 채택했다. 한편 게임을 플레이 하다 보면 여행자에 관한 이해는 어디까지나 부분적인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플레이어는 거점 베이스 맵인 탑을 계속 방문하게 되는 장소인데, 하늘에는 여행자가 흰 구체의 형상으로 떠 있다. 분명 시점을 위로 올려다 보며 여행자를 포착할 수는 있으나 그 이상으로 무언가를 행할 수는 없다. FPS 장르의 문법이 1인칭의 눈으로 대상을 감각하는 것을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으로 연결 지었다면, 여행자는 FPS의 문법에서 규정하는 인간적인 시각과 불화하는 존재라고도 설명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여행자의 위기는 마치 “인간이 막을 수 없는 하늘의 영역에” 속하는, “명명 불가능한” 재앙의 요소를 품고 있다. 그러나 게임은 플레이어의 자리를 만들어 두어야 한다. 전통적으로 게임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이루어진 환경으로, 인간 행위자가 개입해야 비로소 의미 항을 생성하는 매체로 상상되어 왔다. 따라서 데스티니2의 개발사인 번지(Bungie) 스튜디오는 “재앙에서 재난의 몫을 구별해내기 위해” 2) 여행자가 퍼뜨리는 긍정적인 영향을 일종의 자원으로 인식하고, 서로 다른 종족이 희소 자원을 둘러싸고 갈등한다는 정치의 내러티브로 위기를 빚어냈다. 여행자를 억류하고 그 힘을 탈취하려는 외계인 장군을 격퇴한 데스티니2의 첫 확장팩인 ‘붉은 전쟁’은 하나의 대명사가 되어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게임 세계관에서 타도해야 할 타자를 외계의 침략자로 일방적으로 구성하는 관행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이 방법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새로운 재난을 구성하고, 그에 대처하는 주체를 어떻게 연출할 것인가? 번지는 이전과 유사한 방식으로 적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채택한 듯하다. ‘목격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새로운 적은 여행자의 반대 선상에 배치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게임 내에서 여행자의 형태가 추상적인 구체로 제시되는 반면, 목격자의 외형은 캐릭터적으로 뚜렷하다. 두 눈과 코는 흰 얼굴 위에 선명히 놓여 있으며, 안면 뒤로는 무수한 얼굴이 증기처럼 피어오르는 두상을 갖췄다. 여러 사람의 음성이 겹친 목소리는 뚜렷한 응시와 함께 명확한 의도를 품고서 전달된다. 얼굴이 전통적으로 주권의 표상으로 기능할 때, 인격화된 초월체인 목격자는 깔끔하게 지목 가능한 적수다. 이 같은 설정은 그간 스튜디오가 행해 온 반성적 해석을 다소 무색하게 만든다. FPS 문법이 급진적으로 사유되지 못하고 다시 적과 아군의 구획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번지는 오랜 세월 ‘떡밥’을 던지며 조성한 적을 야심만만한 형상으로 빚어놓았지만, 그 기표는 어딘가 공허하게 다가온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윤리, 인간 게이머가 이길 수 없는 대상과 마주하기 이 같은 관성은 번지가 <헤일로> 대부터 매끄럽게 구축해 온 하이퍼 FPS의 문법과 연관이 깊다. 헤일로는 스튜디오에는 메이저한 스튜디오의 명성을 안겨준 타이틀이다. 플레이어는 강화 군인 ‘마스터 치프’가 되어 외계 종족 ‘코버넌트’의 쇄도로부터 인류를 수호해야 한다. 코버넌트는 이슬람 원리주의를 연상케 하는 종교를 믿고 모든 생명체를 잠재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 ‘헤일로’에 집착한다. 인류를 지키는 것은 곧 은하 전체를 지키는 것과 등치 되어 대립을 자연화하는 구성을 취한다. 3) 물론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슈팅을 연결한다는 발상이 그 자체로 특수한 정치적 돌출부를 형성하는 것은 아니다. 초창기 게임인 <스페이스 인베이더(1978)>가 외계인의 침략을 쏘아 막는다는 플레이를 기획한 게 대표적이다. 리자르디는 2000년대 초에 미국이 다른 세계와의 관계를 모색하는 동안 출시된 비디오 게임들이 “일반적인 유사성”을 형성했음을 지적한다. 4)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세계와 인간성이 겪는 위기, 이를 복원하기 위한 전투와 저항을 주요 요소로 삼은 게임들이 9·11 테러나 이라크 전쟁과 같은 특수하고 문제적인 맥락으로 재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데스티니 시리즈 역시 헤일로처럼 인류를 위협하는 외부의 적과 마주한다는 골조를 채택했다. 작중의 시점은 황금기가 저문 이후의 어수룩한 문명에 선 인류를 다룬다. 여행자로부터 선택 받아 특수한 힘을 쓸 수 있는 ‘수호자’는 온갖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탑을 세우고 인류를 견인한다.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를 구분하는 모일란의 논의를 따라, 페레즈-라토레는 주요 게임들이 어떻게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묘사하는지 분류하고 있다. 특히 디스토피아 내에서도 세상을 개선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소수의 유토피아적 근거지는 주로 세 가지 방식에 의해 묘사된다. (1)‘카우보이형’ 고독한 영웅 (2)자연으로의 회귀와 자급 자족적 생활 (3)공감과 연대를 통한 집단적 생존. 5) 이 입장들은 명확히 나눠떨어지기보다 중첩되며 개개의 효과를 자아낸다. 헤일로의 마스터 치프는 “까다로운 조건에서 개의치 않고 험준한 환경을 질주하는 동시에 자유와 정복이라는 가능성을 향하는 선구자로 낭만화”되는 영웅이기에 첫 번째 유형에 가깝게 읽힌다. 치프 개인이 공동체와 불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독보적인 역량을 가진 전사로 간주된다. 홀로 수행하도록 고안된 게임 내의 미션들은 아웃사이더의 뉘앙스를 강화한다. 이처럼 소수의 선각자를 부각하는 방식은 게임이 플레이어가 게임에 개입하여 활약할 만한 국면을 확보하는 데에 효과적이기도 하다. 뒤를 이은 데스티니 시리즈 역시 영웅을 만들어 내는 문법을 능숙하게 구사했다. 데스티니1에서 주인공 수호자는 단일한 몸으로 위대한 업적을 쌓은 위인으로 추앙받는다. 그러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묘사하는 지형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빛의 저편’ 확장팩 이후부터다. 혹한의 행성 ‘유로파’를 바탕으로 몰락자들이 거주하던 폐허를 묘사함으로써 황량한 풍경에서 비롯되는 애수와 정동이 인간의 감상으로만 독점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부연되었다. 스튜디오가 그간 행해온 작업에 대한 반성적 기획은 ‘사냥의 시즌’을 통해 본격적으로 개시되었다. 적이었던 ‘울드렌’을 우군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본래 그는 유머를 겸비한 총잡이로 인기가 많았던 인물 ‘케이드-6’를 살해함으로써 공분을 일으켰다. 케이드-6의 죽음이 감정적 방아쇠가 되어 확장팩의 성공을 가져왔을 때, 울드렌을 부활시킨다는 발상은 스튜디오가 그간 행해온 작업에 대한 반성적 기획으로 읽힌다. 개인의 층위에서 국한되었던 유토피아적 충동은 이제 (3) 공감과 연대를 통한 집단적 생존으로 이어진다. 원래라면 적으로 배치되었을 외계 종족은 기꺼이 장벽 안으로 수용되었다. 공동체는 이들을 포용하고 건전하고 든든한 토대를 구축함으로써 다가오는 재난에 대비하려 한다. 이를테면 ‘망령의 시즌’에서는 악몽이라는 소재를 활용해 인물들의 굴절된 과거를 눈앞으로 불러내 해소하는 작업을 펼친다. 이때 카타르시스를 겪는 인물은 인류에게만 특권적으로 한정되지 않고, 한때 적이었던 외계인에게도 배분됨으로써 동맹의 정서적 울타리를 단단하게 엮어 낸다. 또한 인류에 대한 주류적 상상-건강한 백인 남성-에서 소외되어 있던 소수자성 역시 공동체의 이름으로 수용된다. 게임에서는 장애인 비행기 조종사나 디스포리아를 겪는 기계 인간 등의 매력적인 메타포가 제시된다. 그러나 게임이 공감과 연대로의 방향을 모색하는 동안 커뮤니티 내에서는 불만이 커져 갔다. 주요한 비판 중 하나는 여러 인물이 탑으로 편입되고는 있지만 주인공은 그저 국면을 눈에 담는 목격자가 될 뿐, 개입자로서의 효능감을 크게 누리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즉 데스티니2가 게임 세계와 관계 맺어 온 플레이어에게 자리를 제공하는 방식을 재고하는 데에 혼란을 느끼는 것처럼 비친다. 이 점에 있어서 국내 데스티니2 온라인 커뮤니티가 ‘우주 해적의 시즌’에서 두 남성 인물의 키스에 부정적으로 반응한 것을 두고 오직 ‘PC’에 대한 역행적인 반발로만 읽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소수자성을 부각하는 텍스트가 곧 남성적 개입의 플레이 전반에 대한 위협으로 수용된 것은 아닐까. 파올로 루피노는 포스트휴먼 관점에서 게임을 검토하며 상호작용성과 도구주의에 대한 잘못된 신화와 “이 개념에 내재된 남성주의”에 도전한다 6) . 그에 따르면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는 인류세의 위기를 만능으로 타파할 수 있는 제품과 기술을 기대함으로써 “현재와 미래를 모두 통제하려는 자신감 과잉”을 드러내는데, 이는 인간과 기계를 이원적으로 바라보며 상상적 분리를 심화하는 기존의 게임 담론과 유비 관계를 가진다고 이해한다. 이때 게임은 인간이 도구성과 합리주의를 견지하여 풀어내야 할 문제 텍스트로 인식된다. 데스티니2는 인간이 개입하여 통제해야 할 대상의 기준을 뒤흔들면서도 전통적인 적수의 문법에 따라 목격자를 둠으로써 우왕좌왕하고 있다. 진보적 가치를 반영한 게임 개발과 플레이는 성공할 수 있을까? 데스티니2는 플레이어 이탈이 극심해 존폐를 걱정해야 했던 게임이다. 번지 스튜디오의 수석 개발자인 저스틴 트루먼은 2022년 지스타에서 이 문제에 관해 공개 강연을 했다. 위기 극복을 위한 서비스 개선 과정에서 라이브 스튜디오로서 ‘속도’를 유지하는 원칙이 얼마나 중요한 이슈인지 강조했다. 7) 데스티니2의 시즌 패스 콘텐츠는 번지가 추구하는 속도를 잘 보여준다. 일주일에 한 번씩 새로운 미션이 업데이트된다. 플레이어의 꾸준한 참여를 스토리와 컷씬 등을 통해 고무한다. 그리고 약 3개월 남짓의 짧은 기한 안에 한 시즌의 기승전결을 제공해야 한다. 번지는 매년 새롭게 출시한 확장팩으로 게임 전체의 윤곽을 그리고, 다시 그 안에 4개의 시즌을 배치한다. 이처럼 속도를 중점으로 두고 콘텐츠를 관리함으로써 데스티니2가 현재의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게 되었다는 것이 스튜디오 내부의 평가다. 같은 맥락에서 트루먼은 게임 발매 전 고강도의 야근을 일삼는 업계의 크런치 관행을 지양해야 할 것으로 언급했다. 스튜디오의 장기적인 수명을 깎아 먹기 때문이다. 이처럼 번지는 속도라는 개념으로 구체화된 시장성 및 장기적 신뢰로 비견된 윤리라는 두 축을 포괄하려 시도한다. 스튜디오의 이름을 걸고 다양한 정치적 이슈에 목소리를 높여왔는데, 2020년의 Black Lives Matter 캠페인과 관련해 공개한 입장문 등이 대표적이다. 8) 또한 UI 엔지니어인 데이비드 세처는 ‘Trans in Bungie’를 꾸리고 게임 내 콘텐츠로 트랜스젠더 플래그를 본뜬 엠블럼을 제작한 것과 같이 소수자 정체성을 연결하고 확대하려 한 기획이 고루 존재한다. 9) 그러한 방침 아래 제작된 게임 텍스트 역시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제스처를 취한다는 점에서 제법 인상적이다. 2021년 5월 12일에 출시된 ‘융합의 시즌’에서는 본래 적대 팩션이었던 외계 종족 ‘몰락자’에게 난민의 지위를 부여하여 인간 사회의 장벽 안으로 수용했다. 피난민을 배척한 강경파가 몰락한다는 결말은 포스트 트럼프 시대의 불안과 고통을 승화하려는 몸부림처럼 비친다. 데스티니2라는 게임 텍스트 내외에서 행적을 읊어 봤을 때, 이는 시장 질서 내에서 상상할 수 있는 최선의 진보로 읽히기도 한다. 이토록 야심 찬 청사진은 과연 얼마나 잘 작동하고 있을까. 2020년 도입한 ‘콘텐츠 금고’ 조치는 그들이 봉착한 어려움을 드러낸다. 오래된 콘텐츠를 따로 빼 두었다가, 훗날 다시 가져오겠다는 기획이다. 새로운 데이터가 더해질수록 용량의 부담이 심화 되고 관리에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레이어들은 구매한 콘텐츠가 삭제된다는 불만을 토로했으며, 더 나아가 스튜디오의 역량을 회의적으로 바라봤다. 기존의 콘텐츠를 유지·보수하는 것도 허덕인다면 매주 새 콘텐츠를 업데이트 한다고 해서 안정적인 운영을 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 소외된 정체성을 하나씩 끌어들여 태그를 붙인 후 연합에 끌어들이는 일련의 흐름은 텅 빈 구호로 흘러들어가는 주체의 무한한 자기 긍정처럼 보인다. 플레이어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자기 갱신이 요구된다. 매주 업데이트 되는 이야기의 흐름에 제대로 탑승하기 위해서는 전투력을 올려야 한다. 결국 목적은 갱신 그 자체가 되고 만다. 데스티니2 6년 차에 출시된 ‘빛의 추락’ 확장팩은 목격자를 전면에 내세웠으나, 무엇도 해소된 것 같지 않다는 원성을 자자하게 받으며 스팀에서 부정적인 평가에 놓였다. 비장한 제목 앞에서는 아무것도 새롭게 추락하지 않는다. 실은 모든 게 추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데스티니2는 광대한 재난을 인간 중심적인 시선으로 부각할 때 발생하는 균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텍스트다. 앞으로의 게임들이 어떻게 위기를 발굴하고 개입자를 위치 지을 것인지에 관해 고민을 던져준다. 1) 황호덕. (2022). 한국 재난 서사의 계보학 - 비인지적 낯익음에서 인지적 낯설게 하기까지. 현대소설연구, (88), 432쪽. 2) 윗글, 437쪽. 3) Voorhees, (2014) “Play and Possibility in the Rhetoric of the War on Terror: The Structure of Agency in Halo 2”, Game Studies, 14(1), https://gamestudies.org/1401/articles/gvoorhees 4) Lizardi, (2009) “Repelling the Invasion of the ‘Other’: Post-Apocalyptic Alien Shooter Videogames Addressing Contemporary Cultural Attitudes”, Eludamos: Journal for Computer Game Culture, 3(2), pp. 298. doi: 10.7557/23.6011. 5) Pérez-Latorre, (2019) “Post-apocalyptic Games, Heroism and the Great Recession”, Game Studies, 19(3), https://gamestudies.org/1903/articles/perezlatorre 6) Ruffino, P. (2020), "Nonhuman Games: Playing in the Post-Anthropocene", Coward-Gibbs, M. (Ed.) Death, Culture & Leisure: Playing Dead (Emerald Studies in Death and Culture), Emerald Publishing Limited, Bingley, pp. 11-25. https://doi.org/10.1108/978-1-83909-037-020201008 7) “[지스타 2022] 번지 CDO, "기존 게임 개발 공식을 바꿔야 한다"”, 김승주, 디스이즈게임, 2022.11.17.등록, 2023.09.29.접속, https://m.thisisgame.com/webzine/news/nboard/4/?n=162164 8)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Destiny Dev Team, Bungie, 2020.06.01.등록, 2023.09.27.접속, https://www.bungie.net/ko/Explore/Detail/News/49184 9) “Trans at Bungie”, Destiny Dev Team, Bungie, 2021.03.31.등록, 2023.09.27.접속, https://www.bungie.net/ko/Explore/Detail/News/50218 Tags: 데스티니, 재난서사, 포스트아포칼립스, 디스토피아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김규리 자기 소개 :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데스티니2를 오래 즐겨왔고, 다음 작인 마라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익숙한 게임이 주는 재미와 낯선 경험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보려 고민하고 있습니다.
- 〈폴아웃〉의 미국, 오늘날의 미국
중요한 것은 어떤 선택지를 고르더라도 그 결과는 앞서 본 것처럼 미국 역사의 어떤 장면을 재현하는 것에 그칠 거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같은 하늘 아래 있을 수 없는 듯 보이는 트럼프와 바이든의 미국 역시도 길게 보면 동일한 미국 역사의 반복에 불과하다. 바이든은 트럼프를 불러 들이고, 트럼프는 다시 바이든을 되살려 내며 끝도 없이 갈등한다. < Back 〈폴아웃〉의 미국, 오늘날의 미국 04 GG Vol. 22. 2. 10. 도널드 트럼프의 시대는 끝났는데도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선거에선 졌지만 그를 지지한 대중적 에너지는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 에너지는 어디서 온 것일까? 더 나아가서, 트럼프를 만든 동력은 미국다운 것일까, 아니면 미국답지 않은 것일까? 트럼프의 선거 구호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였다. 반-트럼프 캠페인으로 선거에서 승리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당선 직후 “미국이 돌아왔다”고 했다. 트럼프의 미국과 바이든의 미국, ‘진정한 미국’은 어느 쪽인가. 폴아웃 시리즈는 정확히 그것을 의도하고 만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미국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폴아웃 세계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NCR(New Califonia Republic)을 예로 들어보자. NCR은 미국인이 스스로 생각하는 미국 역사의 모사인 것처럼 보인다. NCR은 멸망한 세계에서 다시 일어난 인간이 국가의 형태까지 집단의 수준을 고도화 시킨 결과물이다. 이것은 과거 유럽인의 인식 속에서 ‘아무것도 없는 땅’이었을 신대륙에 국가를 건설한 미국의 모습을 재현한 듯 보인다. NCR은 문명 지향적이면서도 적당히 속물적이고, 팽창주의적이면서도 외부와의 과도한 갈등은 지양하는 모습을 보인다. 미국이 세계대전 이전까지 세계적 표준을 자처하면서도 상당기간 고립주의적 대외정책으로 일관했던 것과 겹치는 대목이다. 폴아웃 시리즈의 주인공은 대개 볼트 거주자인데, 폴아웃 1편과 2편에서 주인공은 NCR 또는 그 전신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조력하는 역할을 맡는다. 볼트에는 ‘구세계’ 문명이 보존돼있고, 그 일부였던 주인공은 볼트 밖으로 나오면서 멸망한 상태인 ‘신세계’와 처음 접촉하게 된다. 이건 유럽으로부터 건너온 ‘문명인’이 ‘야만’의 상태인 신대륙에 처음으로 발을 내딛고 식민지 건설을 시도했다는 역사적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NCR은 그 이름에서 보듯 주요 근거지가 서부이고 무주공산이 된 황무지로 진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부 개척’의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면도 있다. 서부 개척은 앤드류 잭슨 이래 고양된 국민주의의 영향 아래 이뤄진 팽창의 결과인데, 이 과정에서 원주민들과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이것은 ‘폴아웃 뉴베가스(이하 뉴베가스)’에서 후버 댐을 둘러싼 각 세력의 이전투구를 통해 게이머가 겪게 되는 바로 그 상황과 닮아 있다. 뉴베가스에 등장하는 악역 집단인 ‘시저의 군단’은 반문명적 행태로 일관하고 있다. 이는 서부 개척의 맥락에서 식민지인(colonist)의 눈에 비친 원주민을 재현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서부 진출의 과정에서 아메리카 원주민은 현지에 진출해있는 영국 또는 프랑스 군대와 동맹을 맺거나 군사적 지원을 받으며 저항했다. 동시에 현대 미국의 맥락에서 보면 ‘시저의 군단’은 명백히 중동의 이슬람국가(IS)를 모티프로 한 걸로 보인다. 그런데 익히 알려져 있듯 현대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냉전 당시 미국과 소련의 제국주의적 팽창으로부터 도움을 받거나 이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조직된 무장단체의 후신이다. ‘시저의 군단’을 이끄는 카이사르가 인도주의적 지식인-의료 단체인 ‘묵시록의 추종자’ 출신이라는 점은 이런 맥락을 반영한 듯 느껴진다. 즉, ‘시저의 군단’은 문명적 시도와 그 좌절이 초래한 반문명적 현상인 것이다. 이 점에서 게이머는 ‘시저의 군단’과 대립하는 경험을 통해 실제 미국이 겪은 또는 겪고 있는 역사적 아이러니와 마주하게 된다. 폴아웃 2편과 3편에 등장하는 악역 집단인 ‘엔클레이브’ 역시 ‘미국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묻게 되는 중요한 존재이다. ‘엔클레이브’는 황무지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구세계’ 권력이다. 그들은 지식과 무력을 독점하며 황무지인을 지배하려 하지만 본체는 저 멀리 어딘가에 숨겨져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엔클레이브’는 미국 독립전쟁 이전 대서양 건너편에서 식민지를 압박한 영국과 같은 존재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들과 문명을 공유하지만 황무지와의 공존을 선택하고 엔클레이브에 맞서는 볼트 거주자는 영국에 대항해 독립전쟁을 이끈 식민지 지식인 계층을 연상케 한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 또 하나 있다. 초창기 미국의 정치사회를 지배한 것은 구세계와 신대륙 간의 대립 구도였는데, 구세계는 종종 권력, 지식, 성직제도 등과 등치 되었다는 게 그것이다. 가령 현실의 역사에서 대각성운동을 통해 일반화된 복음주의 교회는 식민지 주류였던 성직자-지식인들과 대립했다. 평신도 역시 설교자로서의 자격을 가질 수 있다는 당시 복음주의의 교리는 ‘구세계’를 기원으로 하는 기성 교회의 상식으로 보면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이었다. 반면 복음주의자들이 볼 때 기성 교회는 지식과 권력, 신성을 독점한 기득권들일 뿐이다. 리처드 호프스태터는 미국의 반지성주의에서 이 갈등이 지식과 권력에 대한 대중적 반감의 근원적 체험 중 하나이며, 이게 반지성주의와 민주주의 간 교집합의 한 축이 돼왔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볼트 거주자는 황무지인들에 우호적일지언정 결코 황무지인이 될 수는 없다는 점에서 현실에 존재했던 식민지 기득권에 가깝다. 멸망 이후 세계에서 지식과 무력을 독점하려는 또 하나의 세력인 ‘브라더후드 오브 스틸’(이하 브라더후드)에 대해 플레이어가 양가적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브라더후드’는 황무지인의 입장에서 보면 결국 엘리트주의로 뭉친 선량한 착취자에 지나지 않는데, 이는 실제 역사에서 식민지인들이 지식인-성직자로 구성된 기득권을 보며 느낀 감정과 유사할 것이다. 볼트 거주자에 감정을 이입한 플레이어로서는 ’브라더후드’에 어떤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그들의 다소 무책임한 처사들에 반발할 수밖에 없는 입장인 것이다. 폴아웃 4편은 미국 역사에서 반복된 이러한 장면들을 압축적으로, 더 완성도 높게 재현하려 시도한 듯 보인다. 게임의 배경인 뉴잉글랜드 지역이라는 공간적 특성은 대전쟁 이전을 기억하고 있는 주인공의 처지와 맞물려 미국 역사의 시작을 가리키는 장치로 활용된다. 플레이어는 마치 신대륙에 처음 진출한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정착지를 건설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경험을 직접 할 수 있다. 주인공이 맨 처음 접촉하도록 돼있는 팩션인 ‘미닛맨’은 이런 맥락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다. 미국의 역사는 독립혁명을 위해 ‘애국자’들이 민병대를 조직하던 그 때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이게 폴아웃 4가 소규모 도시 건설 시뮬레이션의 색채를 띄게 된 이유이다. 폴아웃 4에 등장하는 ‘인스티튜트’는 반지성주의와 반공주의의 결합이 매카시즘으로 표출된 역사를 빗댄 듯 보인다. 사실 ‘폴아웃 코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1950년대 수준에 멈춰있는 사회문화적 코드는 매카시즘 시대를 묘사한 것이다. 미국 역사가들은 매카시즘의 등장 배경이 된 사건으로 소련의 핵실험 성공, 중국의 공산화, 한국전쟁의 장기화를 꼽는다.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 미국인들은 세계의 ‘외부’에 자신들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강대한 적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됐고, 이를 내부에서부터 맞서기 위한 시도로서 매카시즘을 선택하게 됐다는 것이다. 즉, 매카시즘은 앞서 논한대로 미국 역사에서 반복되는 권력, 구세계-기득권, 지식인에 대한 적대와 동일선상에 있다. 작중에서 ‘인스티튜트’를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바로 이것이다. 사람들은 ‘인스티튜트’가 만들어 낸 안드로이드인 ’신스’를 ‘도깨비’라 부르며 두려워하고 나아가서는 ‘신스’를 색출하기 위한 마녀사냥을 감행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이것은 매카시즘이 합리적 근거 없이 지식인과 관료, 예술가를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은 것과 본질적으로 유사한 일이다. 재미있는 것은 ‘신스’를 탄압받는 대상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구출하는 걸 목표로 하는 조직도 등장한다는 거다. 이들은 ‘레일로드’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데, 현실 역사에선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란 비밀결사가 남부의 흑인 노예들을 북부의 자유주로 탈출시키는 활동을 했던 걸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신스’는 매카시즘이란 맥락에선 ‘공산주의자’로 지목된 억울한 피해자인 동시에, 인종차별이란 측면에선 소수인종이 되는 셈이다. 반전은 ‘인스티튜트’가 ‘신스’를 동원해 이루려고 했던 목표가 결국 세계의 재건이었다는 점이다. ‘인스티튜트’가 매카시즘의 맥락에서 공산주의에 비견될 수 있다는 걸 다시 상기해보자. 공산주의는 현실에서 역사적 시행착오를 겪었고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공산주의가 지금의 상황을 보다 나아지게 하기 위한 시도의 하나였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면, 즉 오늘날의 미국에 어떤 공산주의적 시도가 필요하다는 점을 거부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또는 ‘신스’로 비유되는 이민자의 사회적 경제적 역할을 수용하는 것이 세계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 조건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신스’가 ‘공산주의자’이면서 동시에 ‘노예’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 질문은 완전히 정반대의 관점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던질 수 있다. 가령 트럼프주의의 발호나 부시 정권의 이라크 침공 또한 미국인들이 처한 현실의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선택한 어떤 시도였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가? 뉴베가스와 폴아웃4는 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란 대목에서 플레이어에게 선택권을 부여한다. 플레이어는 작중에 등장하는 특정 팩션에 가담해 상대에 타격을 입히거나 멸망시킬 수도 있고 독자적 세력을 만드는 걸 선택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상정할 수 있는 ‘트루 엔딩’은 주인공이 인간이 만들어 낼 새로운 미래에 기대를 걸며 자신만의 길을 가는 것일테지만 그게 최선의 선택인지는 여전히 확신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떤 선택지를 고르더라도 그 결과는 앞서 본 것처럼 미국 역사의 어떤 장면을 재현하는 것에 그칠 거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같은 하늘 아래 있을 수 없는 듯 보이는 트럼프와 바이든의 미국 역시도 길게 보면 동일한 미국 역사의 반복에 불과하다. 바이든은 트럼프를 불러 들이고, 트럼프는 다시 바이든을 되살려 내며 끝도 없이 갈등한다. 폴아웃의 세계는 이런 현실이 필연적으로 불러온 ‘리셋’의 결과이다. 이전의 세계는 전쟁과 멸망으로 귀결되었는데, ‘리셋’ 이후에도 인류는 여전히 전쟁을 통해 멸망으로 가는 길을 반복한다. 그러나 인간은 또 한 번의 무의미한 반복에 지나지 않게 될지라도 뉴베가스의 예스맨이나 4편의 미닛맨들처럼 가보지 않은 길을 선택할 수 있다. 미국 독립혁명이 그런 선택의 결과였던 것처럼, 이 모든 게 전부 미국의 일부인 것이다. “War never changes”라는 폴아웃 시리즈의 슬로건은 이런 의미로 볼 수 있지 않을까.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시사평론가) 김민하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시사평론가로 활동하지만 게임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게이머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냉소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돼지의 왕』이 있고,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우파의 불만』, 『트위터, 그 140자 평등주의』 등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최근작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가 있다.
- [공모전] 최종장과 변방_비디오 게임 속 공간적 한계의 실감
게임 세계의 종점에 도착할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이것은 어린이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무료 플래시 게임이 세상에 존재하는 비디오 게임의 전부인 줄 알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당시의 나는 커비와 똑 닮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플래시 게임에 빠져 있었다. 정식 게임판의 커비보다 이 안광 없는 가짜 “커비”와 먼저 면을 익혔다. 그때의 기준으로도 비춰봐도 결코 흥미진진한 게임은 아니었다. < Back [공모전] 최종장과 변방_비디오 게임 속 공간적 한계의 실감 13 GG Vol. 23. 8. 10. 1. 게임 세계의 종점에 도착할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이것은 어린이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무료 플래시 게임이 세상에 존재하는 비디오 게임의 전부인 줄 알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당시의 나는 커비와 똑 닮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플래시 게임에 빠져 있었다. 정식 게임판의 커비보다 이 안광 없는 가짜 “커비”와 먼저 면을 익혔다. 그때의 기준으로도 비춰봐도 결코 흥미진진한 게임은 아니었다. 이 “커비”도 정식 게임판의 커비처럼 적을 빨아들이거나 뱉으면서 납작한 2차원 세계를 전진해나갔다. 숨을 참으면 둥둥 뜰 줄도 알았다. 다만 이 “커비” 게임의 어떠한 장애물도 시간을 바쳐 극복할 가치가 없었다. 몬스터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의무라도 지키듯이 듬성듬성 떨어져 돌아다니며 내외했다. 모아봐야 아무런 효능이 없는 별들이 잘도 모였다. 탈출해야 하는 구덩이는 얕았고, 점프해 올라타야 하는 발판은 낮았다. 분량은 짧았다. 조물주는 이 세계를 완성하지 않고서 소피를 보러 떠난 것 같았다. 그렇게 떠나버리고서, 무언가를 미완으로 남겨두고 떠나왔다는 사실조차 영영 잊어버린 것이다. 십분 이상 잡고 있을 가치가 없는 조잡하고 공허한 게임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매혹되었다. "커비"는 무성의하게 마지막 발판에 도착해 승리의 깃발을 올린다.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면, 발판이 사라지고 발판 없는 바다가 이어졌다. "커비"는 이 바다 위로 날아갈 수 있었다. 키만 주의해서 누르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날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콜럼버스라고 상상하는 어린이 제국주의자는 이 바다에 매혹되었다. 언젠가 그 넓디넓은 바다를 횡단하고, 인내하는 자들을 위하여 마련된 히든 스테이지를 발견하리라 믿었다. 그렇게 수 시간 동안 같은 화면을 바라보며 키를 눌렀다. 숨을 참으며 둥둥 떠다니는 커비를 지켜보았다. 영원에 육박하는 시간이 더 지났다. 영원은 그 채도 높은 평면의 바다, 수면에 닿으면 바로 숨이 넘어가는 지옥의 바다, 파도 한 번 치지 않는 적막의 바다가 무한히 반복되는 병풍에 지나지 않았음을 이해하는데 걸린 시간이다. 사실을 이해하는 것과 인정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나는 분통을 터뜨렸고, 사기극에 휘말렸다고 믿었으며, 땅이 꺼지는 허무로 괴로워했다.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의 실존이란 무엇인지 자문하고 또 자문하고, 시대의 진리가 될 답변을 거의 얻을 뻔했다... 2. 게임 세계의 종점, 그것은 사실 신대륙일 필요도 없었다. 최소한 세계 끝자락의 상어라도, 상어의 지느러미라도, 이마를 찧어야 하는 벽이라도 발견하면 족했다. 더 나아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그 전진의 여지는 필연적인 근거를 갖고 생성된 것이라고 전제했다. 이제는 추억이 된 커비 플래시 게임을 제작한 익명의 인물은 진행을 가로막는 벽이나 끝이 존재하지 않는 편이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그러나 아바타의 공간적 이동의 여지를 마련한 게임에 있어서, 플레이어는 단순히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가 아니다. 출발선에서 시작해 결승선에 달하는 플레이어의 움직임은 제작자의 의도와 게임 장르의 오락적 규약의 다발들 사이의 교류를 통해서 그려지는 필연적 배치에 의한 것이다. 플레이어는 이 필연적 배치 안에서 자신이 예상치 못한 무언가와 조우를 강제당하기를 원한다. 정확히는 예상한 범위 내에서 예상치 못한 조우를 강제당하기를 원한다. 스테이지로 나뉜 플랫포머 게임에서, 그 최후의 대단원이 되어 줄 조우는 마지막 스테이지에 일어날 것으로 흔히 기대된다. 측면의 얼굴만 보여주는 수줍음 많은 플레이어의 아바타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혹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진행한다. 하나의 스테이지는 다른 스테이지로 향하기 위해 돌파해야 하는 이차원적 통로면서, 그 돌파를 방해하는 물리적 저항이기도 하다. 공중에 떠 있는 발판은 점프를 지시한다. 밧줄은 위로 올라가기를 지시한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발판은 타이밍에 맞는 점프를 지시한다. 구덩이 속 뾰족뾰족한 가시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점프를 지시한다. 스테이지라는 공간은 그 자체로 플레이어가 아바타를 특정한 방식으로 움직이도록 지시하는 추상들의 구문이기도 하다. 게임의 공간적 끝, 게임의 마지막 행위, 게임의 마지막 무대(stage)를 보고자 하는 소망은 그러므로 중첩되고, 혼재되며, 나뉘어 떨어지지 않는다. 플랫포머 게임에서 최후의 공간, 최후의 조우에 대한 소망은 더불어 충족된다. 가령 <슈퍼 마리오Super Mario> 시리즈는 쿠파와 같은 강대한 보스와 대결하고 납치된 피치 공주를 구조하는 스테이지를 항상 대단원의 스테이지로 삼는 전통을 갖고 있다. 반면 <슈퍼 마리오> 의 안티테제이고자 하는 게임 <브레이드Braid>는 플레이어가 마지막 스테이지에 이르러서야 여태까지의 여정과 전진의 전모를 이해할 수 있도록 무대를 배치한다. 주인공이 공주를 구하고자 달려온 게 아니라, 그 주인공으로부터 달아나는 공주를 쫓고 있었다는 진실 말이다. 스테이지 게임 저변에 깔린, 명쾌하고 명료하며 직선적인 이야기는 한편으로 스테이지 간의 근원적인 단절을 숨기고, 좌우로 길게 봉합된 스테이지의 연쇄를 통과하며 전진하고 있단 환상을 유지한다. 오르페우스 신화에의 변용인 게임 <돈룩백Don’t Look Back>은 공간적 연속성이란 환상을 선형의 이야기가 지탱하는 구조를 잘 보여준다. 말 없고 추상적인 픽셀의 세계에서 주인공은 케르베로스와 하데스를 상대하고, 붉은 용암을 뛰어넘으며, 에우리디케의 혼을 만나 함께 무사히 지하 세계를 빠져나온다. 그러나 주인공은 오르페우스 신화의 대안적이고 희망적인 결말이 아니라, 묘지를 떠난 적조차 없는 자기 자신의 뒷모습을 마주한다. 스테이지 구조의 수미상관은 이 아바타가 전진하는 게 아니라, 죽은 자가 구원되지 않고 단지 썩어갈 뿐이란 사실로부터 달아나고 있었음을 표명한다. 묘지를 애초에 떠난 적조차 없다는 진실은 스테이지 게임의 불안정한 틈새를 벌려 보인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진행하며 플레이어는 이전 스테이지와 이후 스테이지를 지나친다. 그 통로의 연속성은 시간적 선후 관계와 공간적 연결을 혼동하는 결과물로서만 담보될 수 있다. 이 연속성이 얼마나 믿음직스러운지, 혹은 순식간에 믿음직스럽지 못해질 수 있는지를 전진과 회귀의 구조를 통해 <돈룩백>은 보여준다. <돈룩백> 시작 화면 플랫 포머 게임들은 이처럼 이차원적인 움직임으로서의 전진에 대한 비평을 게임 내적인 논리에서 마련한다. 그 비평은 특히 게임이 제공하는 최후의 조우와 최후의 공간을 중첩하는 방식에 따라서 특유의 완결된 형식미를 갖춘다. 그러므로 가짜 커비 게임에서, 게임의 끝을 아직 마주하지 않았다는 감각이 마음을 부글부글 끓게 했고, 그 끝이 한참 전부터 반복 재생되고 있었음을 깨달았을 때 그 마음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형식미가 부재하며 의미화되지 않는 전진과 그 전진의 최종 국면이란 게임 세계에서 용납될 수 없어 보였다. 3. 게임 세계의 종점으로 향하는 선로가 증식한다. 무료 플래시 게임을 섭렵한 뒤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더 좋은 사양의 콘솔 기기, 게임에 온전히 몰두할 수 있는 공간, 대형 제작사의 게임을 구매할 돈 등을 통해 얻은 접근성으로, 나는 소위 "오픈 월드Open-World" 게임에 골몰하기 시작했다. 게임의 종점에 도달하고자 하는 소망은 "오픈 월드" 게임의 진화로 인해 더욱 복잡다단하게 변화한다. “자유롭게 배회하는Free-Roaming” 게임이라고도 불리는 “오픈 월드”는 형식미가 부재하며 의미화되지 않는 무한한 전진을 장려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실상 “오픈 월드”는 게임의 3차원적인 종점에 해당하는 경계 지대를 필연적으로 탐색할 필요는 없도록 공간을 구조화한다. 우선, “오픈 월드"는 게임 디자인 차원에서 엄밀히 정의된 개념이기보다는 사용자들이 특정 게임 경험을 유형화하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임을 밝혀야겠다. 게임 기술의 발전과 컴퓨터 사양에 크게 의존하는 ”오픈 월드“는 게임 기술의 발전에 발맞춰서 상대적으로 규정되기도 한다. 어떤 오픈 월드는 거짓 오픈 월드고, 어떤 오픈 월드는 진정한 오픈 월드란 식의 판정을 벌이는 토론은 포럼에서 아주 흔히 보이고, 이는 오픈 월드가 게임을 분류하는 항목인 동시에 가치의 척도로서 이해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풍경이다. 사용자들은 근 10년 이내에 발매된 동시대의 오픈 월드 게임을 말하며 함께 GTA, 젤다의 전설, 위쳐 3, 레드 데드 리뎀션 시리즈, 폴아웃 3 이후의 폴아웃 시리즈 등을 떠올린다. 내러티브를 가진 ”오픈 월드“로서 잘 알려진 이 대형 게임들에 대한 대체적 진술로서 ”오픈 월드“를 묘사하자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사용자들은 이동 제약의 제거를 기대하고, 이동 제약의 제거를 실감할 수 있도록, 오픈 월드 게임은 제작 단계에서 복수의 진로, 단 하나의 선택지가 아닌 선택지의 다발을 염두에 두게 된다. 오픈 월드 게임은 더불어 영영 멀어지는 지평선이 있는 광대한 풍경으로 플레이어를 초대한다. 1인칭 카메라를 통해 플레이어는 지평선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로 화하며, 3인칭 카메라의 경우, 지평선 앞에 자리한,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아바타의 뒷모습을 비춘다. 이 카메라는 360도로 돌아갈 수 있는 경우가 잦지만, 원근법상 현실적인 축적과 눈높이를 갖고서 게임 세계에 떨어진 플레이어의 아바타를 비춰야 한다. 플레이어는 지도를 켜거나 미니맵을 확인함으로써 자신의 실시간 위치를 식별한다. 또한, “오픈 월드”는 게임 스테이지(stage)에 의한 분단과 로딩을 최대한 제거하고자 한다. 그리고 변형의 가능성으로부터 닫혀 있는 방해물이었던 오브젝트(object)는 되도록 플레이어의 조작을 통해 이동 혹은 변형 가능한 원자재로서 나타나야 한다. 더불어 게임의 내러티브와 여러 가지 목표들은 플레이어가 직선적으로 움직이기보다는, 저마다의 진로를 개발해내고, 방사선과 같이 뻗쳐 나가는 확산적인 배회를 장려한다. <위쳐 3>의 전체 맵 스테이지 게임의 형식미는 방해물을 뛰어넘으면서 돌파해 가야 하는 진로이자 그 진로에 대한 저항력으로서 공간을 추상화한다. 그러므로 더는 전진할 수 없는 최후의 공간은 여정의 결말이 펼쳐지는 대단원의 무대와 동일시된다. 반면 “오픈 월드”에서, 맵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지역은 끝자락이라는 이유만으로 최후의 조우가 벌어지는 공간적 배경으로 배치될 필연성을 갖지는 않는다. 경향적으로 “오픈 월드”의 주요 이벤트는 전체 지도의 중심부에 밀집되어 있다. 게임의 여러 사건과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지점을 표시하는 지도의 마크가 얼마나 밀집되어 있는지를 통해 우리는 그 경향성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중심부는 플레이어가 게임의 중반 즈음에 진입하고, 그 이후 가장 자주 드나들게 되는 곳이며, 사방으로 “열려 있다”는 점에서 “오픈 월드”의 공간적 한계에서 오는 이질감을 가장 옅게 느끼는 장소이다. <위처 3>의 “노비그라드”나 <폴아웃 4>의 “다이아몬드 시티”에서 그러하듯이, 중심부는 자주 동시대인의 지리적 현실성에 대한 감각에 반응하여 상공업이 활발한 도시, 문명의 중심부, 서로에게 이방인인 자들이 모이고 자본이 축적되는 메트로폴리스로 나타난다. 사건과 갈등과 정치가 중심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플레이어는 이곳에서 수많은 사연을 지닌 NPC들을 마주친다. 축적해놓은 재물과 귀중품을 팔 상가를 찾을 수도 있다. 중심부는 게임의 엔딩을 보고자 하는 플레이어는 한 번은 반드시 발을 디뎌야 하는 장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정된 자원을 갖는 게임이 무한히 확장되며 무한한 자유를 갖고서 배회하고, 무한히 다양한 사건과 조우할 수 있는 공간을 플레이어에게 제공하기는 불가능하다. “자유로운 배회”도 복수의 다발을 가진 플레이어의 진로도 지향될지언정 결국에는 제한될 운명이다. 지도의 어느 경계에 이르러 플레이어는 한 발자국도 더 뻗어 나아갈 수 없는 종막에 도달한다. 경계 너머는 로딩되지 않는다. 경계 너머가 애당초 만들어진 바 없으며, 그러므로 두 영역을 나누는 경계조차 애초에 존재한 바 없기 때문이다. 경계 대신 항시 존재해왔던 건 벽이다. 하룬 파로키Harun Farocki의 영상 작업 <평행 1~4> 연작이 우스꽝스럽고 집요한 충돌을 통해 보여주듯이, 그래픽은 플레이어가 렌더링의 끝을 표지하는 투명한 벽에 가로막힌 게 아니라, 산맥, 강줄기, 절벽과 같은 자연적 지형지물에 의해 진행이 불가하다고 주장하고, 그 주장만으로 설득력 있게 다가가는 일은 실패하고 만다. 파로키의 <평행> 연작만을 보면 오픈 월드에 있어 경계 너머란 현실성을 자처하는 게임 세계의 가상성과 허위를 폭로하는 시각적 신기루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 신기루는 그 착시의 효과가 존속되어야만 하는 신기루다. 오픈 월드가 자청하는 현실주의의 설득력이 지탱되기 위하여 공간은 단절되어서는 안 되고 계속해서 연장되어야 한다. 이곳이 곧 끝이지만, 게임 내적으로 이곳이 곧 끝이라고 선언되어서는 안 된다는 역설. 경계 부근은 열린 세계의 닫힌 지역이라는 점에서 오픈 월드의 모순이 격화되는 장소다. 그리고 그 모순을 요철 없이 매끄럽게 만들기 위하여, 게임은 시각적인 요소만이 아니라 다양한 전략을 활용한다. 오픈 월드 게임은 활발하게 변방, 오지, 무인지대에 대한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상상력을 동원한다. 자주 변방은 천연자원의 제공처로서 나타난다. 오픈 월드 맵의 주변부는 상대적으로 NPC의 인적이 드물며, 사건이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황무지, 야생지, 원시림인 경우가 잦다. 자연물은 투명한 벽을 가리는 시각적인 눈속임의 기능으로만 머물지는 않는다. 오픈 월드의 경계지에 도달한 플레이어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하여 게임은 진귀한 광물 자원과 희귀한 동물 가죽을 찾는 등의 보상을 준비해둔다. 손상되지 않은 천연자원을 제공하는 변방을 그리는 가장 대표적인 게임 공간으로서,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북서쪽 산맥 부근을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로키 산맥을 본뜬 이 산맥은 되짚어 돌아갈 수 없는 서부 개척 시대와의 단절을 가파르게 물리적으로 표시하며 경외감을 일으킨다. 두꺼운 옷을 인벤토리에 챙기지 않으면 동상을 입게 되는 이 산맥 부근은 희귀한 알비노 물소와 백마가 서성거리며, 가죽이 손상되지 않아 가치가 높은 야생 동물들이 뛰노는 곳이기도 하다. 아트 디렉터 아론 갈버트는 한 인터뷰에서 램브란트와 같은 목가 화가에 덧붙여서 알버트 비어슈타트Albert Bierstadt와 같은 19세기 미국 풍경 화가로부터 <레드 데드 리뎀션 2>가 영감을 받았음을 밝힌다.1) 램브란트만큼 잘 알려져 있진 않은 알버트 비어슈타트는 미국의 자연을 발명하고자 하는 국가주의적 수요에 발맞춰서 문명의 발길이 닿지 않은 서부의 야생지를 그리며 명성을 얻은 자연주의 화가다. 그에 대한 당대의 논평 하나는 그의 풍경화를 “숭고한 자연의 형태와 무례한 야만인의 삶”을 담아낸 “순수히 미국의 풍경”이었노라고 상찬한다. 변방이 만들어진 제국의 자연으로서, 제국의 문명이 결국에 극복하고 정복해야 하는 대상으로서 재현되거나 혹은 해석되어 온 역사는 길고 강고하다. 그것은 변방을 변방으로 여기지 않으며 살아온 선주민의 역사를 망각하는 방식으로 강고해져 왔다. 자연에 대한 사실주의적 재현으로서 널리 알려진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풍경과 알버트 비어슈타트의 연결 고리는 형식 없는 자연이란 언제나 이미 형식으로서 현현함을 한 번 더 상기시킨다.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목가적 풍경과 대조적으로, <사이버펑크 2077> 세계의 최남단 변방은 동시대의 갱신된 중심부와 주변부의 관계를 반영하듯이 메트로폴리스가 토해낸 폐기물이 마천루만큼 드높게 쌓여가는 매립지로 상상된다. 최북단 변방은 가동을 멈춘 유정으로, 주인공의 인격에 빌붙어 사는 전직 로커이자 테러리스트 귀신인 조니의 시체가 유기된 곳이다. 실상 자본주의에 대한 은유 없는 논평일 때가 잦은 사이버 펑크 세계관에서, 변방은 중심부 도시의 폐기물이 어디로도 떠나지 못한 채 부표로서 매여 있는 토성의 고리이며, 과거의 산업 폐기물과 과거의 저항이 구분되지 않고 뒤섞여 폐기되는 곳이다. 또한 모두의 발길이 닿지는 않는 맵의 주변부는 그 게임의 서사적 필연성 외부를 맴도는 존재들을 끌어들여 플레이어를 위한 의외의 조우를 성기게 마련한다. <위쳐 3>은 <레드 데드 리뎀션 2>와 달리 비옥한 자연이 아니라 전란으로 황폐해진 늪지대 벨렌을 의미심장한 변방으로서 제시한다. <위쳐 3>의 세계는 중세에서 르네상스에 걸쳐있는 유럽 생활사와 민속 신앙 속 이물들이 동위에서 뒤얽힌 세계다. “노맨즈랜드”라는 별칭을 가진 벨렌은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하기 전의 게롤트가 초중반에 머물며 능력치를 올린 뒤 떠나는 출발점과 같은 장소다. 탈영병을 린치하는 것이 이 동네 오락의 전부고, 돼지와 사람이 뒤엉켜 자는 오두막 몇 개가 비스듬하게 기대선 게 마을의 전부다. 흙길은 가축 오물과 노상 방뇨한 오줌이 끊기지를 않는 장마 속에서 고여 매일 뻘과 다름없는 상태다. NPC에게 말을 걸어도 욕설을 하거나 가래침을 뱉을 뿐이다. 주인공 게롤트는 메인 스토리를 진행하며 중세 대학 도시, 부농들의 과수원과 농장, 르네상스 극단과 범죄 조직이 들끓는 대도시와 같은 흥미진진한 공간들을 통과한다. 그 과정에서 불쾌한 사람들과 불쾌한 공기만 넘치는 벨렌은 돌아갈 이유가 크게 없는 장소이자 변경지대가 된다. 푼돈을 받고서 역사보다 오래되고, 미신적으로 숭배받는 괴물들을 처단하고 다니는 걸 업 삼은 게롤트는 빈곤한 밭과 아이에 매여 돼지와 엉켜 잘 도리뿐인 NPC와 달리 자유로운 이동의 특권을 가지고, 괴수의 미신적인 힘을 조소할 수 있는 물리적 힘의 압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무적의 게롤트도 상대하지 못하는 여성 괴물들이 벨렌의 가장 가난한 경계 지대에서, 늪 지대의 가장 깊은 곳에서 군림한다. 운명의 여신처럼 세 자매인 그들을 게롤트는 스토리 상으로도 퀘스트로도 결코 완전히 죽이거나 이기지는 못한다. 거듭해서 성장하며 거듭해서 정복할 수 있는 플레이어의 특권이 닿는 영토 너머에서 그들은 존재한다. 게롤트는 잊혀진 세 자매의 영토로 돌아와서 그가 비웃던 미신적인 힘에 사로잡히기를 자처한 것처럼 죽은 자의 유품을 구한다.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는 무익한 싸움을 하고서 덫에 걸린 개처럼 무명의 죽음을 맞는다. 벨렌은 최악의 결말, 최악의 상실을 할당받은 변방, 중세인들 사이에서 근대인과 같이 자유롭고 합리적인 남성 주체이고자 했던 게롤트의 의외의 악몽이 펼쳐지는 공간으로 변모한다. 변방은 자주 지배적인 현실주의를 반영하는 것처럼도 보이지만, 현실주의와의 분절을 도리어 의도적으로 강조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데스스트랜딩>의 타르 강을 떠올려 보자. <데스스트랜딩> 세계에서는 죽은 자가 “BT”로 불리는 반물질 유령으로 변모하기 때문에 시체가 시한장치가 달린 핵탄두와 다름이 없다. 그렇기에 살육은 편리한 선택지가 되기 어렵다. 무기는 기본적으로 비살상으로 주어지지만, 어쩌다 사람을 죽이게 되면 언제나 트럭에 시체를 켜켜이 쌓는 동작을 진행하고, 안전한 방식으로 폐기하기 위해 달려 가야 한다. 소각로로, 혹은 타르로 가득한 호수와 강으로. <데스스트랜딩> 최북단 변방은 시체를 한 구 한 구 다시 옮겨서 소각해야 하는 소각로보다 편리하게 수장시킬 수 있는 폐기처다. 플레이어는 거대한 타르 강에 시체를 밀어 넣기 위하여 그곳을 찾게 된다. 그 강은 투명한 벽과 달리, 그 무엇도 가라앉은 뒤로 떠오를 수 없고 다가서는 무엇이든 먹어치우고자 하는, 입이 달린 경계로서 숨 쉰다. 시체는 느릿느릿하게 타르 아래로 가라앉는다. 이 경계는 벽이라기보다는 현세에 현신한 테티스 강과 같다. 강은 그러나 탐욕스럽거나 두렵기보다는 모든 더러운 육체와 녹슨 폐기물(두 가지는 다르지 않아 보인다)을 삼킬 수 있는 자애로운 구순으로서 상호작용한다. 오픈 월드의 변방은 공간의 차등화와 분절화에 대한 현실주의적인 논평인 동시에, 현실주의에 반하는 새로운 지리학을 체현하는 픽션의 가능성을 향해 나아갈 가능성을 지닌다. 오픈 월드의 모순이 집약되어 있다고 하는 변방은 도리어 서사적 필연성과의 느슨한 관계 속에서 그 “열린 세계”의 정체성을 축약해 표현하기도 하는 것이다. 1 )Gies, Arthur. “The Painted World of Red Dead Redemption 2.” Polygon, 26 Oct. 2018, www.polygon.com/red-dead-redemption/2018/10/26/18024982/red-dead-redemption-2-art-inspiration-landscape-paintings.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성훈 문학을 전공했다. 게임과 만화를 좋아한다. <심즈 4>는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 게임인데 1500시간 정도 했고 그게 수치스러운지 웃긴 건지 헷갈린다. 뚜이부치란 필명으로도 활동한다.
- <폴아웃 3>로 보는 후쿠시마 오염수 사태
인간은 절멸을 앞둔 위기 속에서도 ‘프로젝트 퓨리티’가 가능하든 그렇지 않든, 계속 노력할 것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방사능 비가 내리게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상기에 서술한 문제가 실제로 발생하거나 그것이 우려될 때, 인류는 블레이드 러너의 그 장면을 다시 떠올리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인류는 살아갈 것이고 또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오늘의 결정을 신중히 하고 혹시 다른 대안이 없는지 좀 더 찾아보자는 주장은 보편타당성을 갖게 된다. 그렇기에 우려나 악몽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남의 발언을 선동으로 규정하는 선동이 더 위험한 세상 아닌가? < Back <폴아웃 3>로 보는 후쿠시마 오염수 사태 14 GG Vol. 23. 10. 10. 한국의 대표적 록 밴드 자우림의 멤버인 김윤아가 트위터(지금은 엑스)에 한 마디 쓴 걸 가지고 정치권이 시비를 거는 것을 보면서 해도 너무한다 싶었다. 김윤아는 정확히 이렇게 썼다. “나는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블레이드러너> + 4년에 영화적 디스토피아가 현실이 되기 시작한다. 방사능 비가 그치지 않아 빛도 들지 않는 영화 속 LA의 풍경. 오늘 같은 날 지옥에 대해 생각한다.” 보시다시피,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해 앞으로 방사능 비가 내리게 될 거라는 ‘사실’을 얘기한 게 아니다. 아티스트로서의 감상을 말하고 있는 것 뿐이다. 로봇개가 대통령실 경비를 선다는 뉴스를 보면서 “<사이버펑크 2077>이 현실이 되고 있다”고 쓰면 안 되는 것인가 어떤 사람은 현실판 아라사카나 밀리테크와의 부적절한 커넥션을 의심할 수도 있을 거고, 그런 얘기를 소재로 한 시나리오를 쓰는 데에 이를 수도 있을 거다. 그런데, 그런 얘기를 공개적으로 했다는 이유로 여당 대표에게 비난받아야 한다면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런 사회는 어떤 기준으로도 ‘자유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없다. 영화든 게임이든 작품은 현실의 어떤 요소로부터 영감을 받아 태어난다. 그렇기에 작품은 늘 현실의 반영이다. 동시에, 작품은 현실을 정확하게 모사할 것을 강요받지 않는다. 가령 블레이드 러너 작중의 일본적 이미지는 1980년대 “도쿄를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다”고들 하던 시기 서구인들이 가졌던 어떤 불안감의 표현이다. 친일 혹은 반일 ‘선동’이 아니다. 록펠러센터가 미쓰비시에 팔리던 시대다. <블레이드 러너>를 보고 ‘서구의 미래는 일본 자본에 지배당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라고 생각할 게 아니라 그러한 불안감의 원인, 즉 버블경제는 미국과 일본의 시민에게 무엇이었나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게 바람직한 태도이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현실을 반영한 작품을 해석해 다시 현실을 돌아보는 기회를 얻게 된다. 핵전쟁과 방사능 등 다양한 이유로 인한 지구 멸망을 다룬 이야기는 다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최근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를 통해 볼 수 있듯, 인류 최초의 핵실험은 1950년대의 국제 정세를 지배할 정도였다. 역사학자 앨런 브링클리는 자신의 저서에서 매카시즘 발흥의 원인 세 가지 중 하나로 소련의 핵실험 성공을 꼽았다(나머지 두 개는 중국의 공산화와 한국전쟁의 장기화이다). 그만큼 인류에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던 거다. 핵과 방사능을 주제로 한 창작이 많을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이치다. 이러한 작품 중에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직접적으로 연상하게 되는 것도 있는데, 핵전쟁으로 멸망한 황무지에 깨끗한 물을 공급하겠다는 ’프로젝트 퓨리티’를 주요 소재로 한 <폴아웃3>가 대표적이다. <폴아웃3>의 주인공은 ‘프로젝트 퓨리티’ 가동을 가업으로 하는 집안에 태어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아버지와 생이별하는 것으로 모험을 시작해 결국은 물의 방사능을 정화하는데에 성공한다. 어찌보면 간단하게 감동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서사 구조지만 현실과 연결해보면 쉬운 얘기는 아니다. <폴아웃3>를 통해 현실을 돌아보도록 하자. 후쿠시마 원전의 현실에서 ‘프로젝트 퓨리티’는 가능할까? 도쿄전력은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통해 가능하다는 방식의 설명을 내놓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들의 설명이 이론적으로 맞다는 것을 인증했다. 물론 이론이 실제가 될 것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 따라서 IAEA는 장기간의 관찰에 나서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론이 실제가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예외적 상황을 만들 수 있는 변수를 최대한 줄이고 통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확률적으로 볼 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시행횟수, 즉 시간이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방류가 최소 30년간 진행되는 것을 전제로 폐로 계획을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데브리’라 불리는, 방사능 폐기물과 융합된 잔해물 제거에 여태까지 진척이 없으므로 폐로에 걸리는 기간은 더 길어질 수밖에 없다. 일본 언론은 70년 이상, 나아가서는 다음 세기까지도 방류가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렇게 시간이 길어지면 예외적 상황이 발생할 절대적 가능성도 늘어날 것이다. 여기서 예외적 상황이란 ALPS의 고장 또는 외적 요인에 의한 파괴 등이다. 원전도 처음에 설계할 때에는 다양한 시나리오에서 안전성을 유지하는 걸 전제로 한다. 미사일에 직격을 당해도 멀쩡하다는 식의 설명이 대표적이다. 이론적으로는 후쿠시마 원전도 완벽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진과 쓰나미, 이로 인한 비상전력 차단과 냉각장치의 무력화는 ‘상정 외’의 사태였고, 그 결과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원전을 만들 때에는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ALPS를 중심으로 한 오염수 방류 시스템에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있는가? 만일 ALPS에 문제가 생기고 상당 기간 이것이 방치될 경우 어떻게 되는가 찬성론자들은 과학을 믿으라며 ‘원자의 아이들 교단’과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다. 정화하기 전의 오염수를 마시는 것으로 안전성을 증명하겠다거나 ‘세슘 우럭’도 평생에 한 번 정도라면 먹어도 된다는 식이다. 반대론자들은 해양생태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방사성 물질에 영향을 받은 플랑크톤이나 소형 생물들이 먹이사슬의 상위를 차지하는 다른 생물의 방사능 농축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슘 우럭’의 존재는 이의 근거이다. 과학의 최대 장점이자 약점은 이 시점에서는 뭐라 단언할 수 없다, 즉 모른다는 점을 겸허하게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근거없는 우려라고 할지 모르지만, 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근거가 없다는 게 없다는 것의 근거는 될 수 없다. 인류는 지금 있을지 모를 희생을 감수하면서 핵문명에 안주하느냐, 아니면 당장 고통스럽더라도 희생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느냐의 갈림길에 서있다. 후자는 불가능할 것 같지 않지만, 전자를 주장하는 힘이 워낙 막강하다. 사고 원전의 성공적 수습은 친원전론자 입장에선 대반격의 기틀이다. ‘사고가 나면 수습할 길이 없다’는 원전의 최대 약점을 어떤 방식으로든 극복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핵무기를 적극적으로 운용하는 것에 방점을 찍는 사람의 입장에서 봐도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배출은 승인돼야 한다. 원전에서 배출된 핵연료 등의 재처리 등을 시행하는 군사시설에서도 오염수 배출을 둘러싼 같은 논란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폴아웃3>에서 묘사된 ‘프로젝트 퓨리티’는 오히려 그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암시한다는 점을 같이 보면 어떨까 이야기에는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기 위한 비현실적 장치가 종종 등장한다. 가령 <발더스 게이트 3>의 일리시드 올챙이는 어떤가 감염병의 공포를 연상케 하는 이 장치 덕분에 주인공들은 서로의 의도나 동기를 의심하지 않고 곧바로 신뢰관계를 쌓을 수 있다. 올챙이 자체는 원 설정에 있는 것이라 해도 주인공들이 서로 신뢰를 쌓게 되는 계기가 되는 ‘올챙이 타임’은 시점이 인위적이다. 만일 이 장치가 없었다면 주인공들이 파티를 구성하기까지 그야말로 한세월이 걸렸을 것이다. <폴아웃> 시리즈 에서는 G.E.C.K이 그 역할을 한다. G.E.C.K은 시리즈마다 설정이 조금씩 다르지만 방사능 오염이라는 장애물을 타파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로 등장한다. 3편에서 ‘프로젝트 퓨리티’가 가능한 핵심 근거이다. 주인공이 볼트87에서 찾아내지 못했다면 ‘프로젝트 퓨리티’는 가능하지 않았다. 그런데 G.E.C.K은 애초에 노골적으로 비현실적 존재를 상정한 결과물처럼 느껴진다. 그렇기에 설정이 일관되지 않은 부분이 있는 거다. 게임에서와는 달리 현실에 G.E.C.K은 존재하지 않는다. Rad-away 같은 약물의 복용으로 방사능 오염을 한순간에 되돌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때문에 ‘프로젝트 퓨리티’는 애초에 비현실적이라는 가정을 전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핵은 G.E.C.K도 없고 Rad-away도 없는 우리가 함부로 이용하기에 너무나 위험한 존재이다. 그렇다면 <폴아웃3>를 통해 우리는 미래의 어떤 모습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을까? 세계 멸망 이후에도 어떻게든 인간은 살아간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인간은 절멸을 앞둔 위기 속에서도 ‘프로젝트 퓨리티’가 가능하든 그렇지 않든, 계속 노력할 것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방사능 비가 내리게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상기에 서술한 문제가 실제로 발생하거나 그것이 우려될 때, 인류는 블레이드 러너의 그 장면을 다시 떠올리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인류는 살아갈 것이고 또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오늘의 결정을 신중히 하고 혹시 다른 대안이 없는지 좀 더 찾아보자는 주장은 보편타당성을 갖게 된다. 그렇기에 우려나 악몽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남의 발언을 선동으로 규정하는 선동이 더 위험한 세상 아닌가? Tags: 후쿠시마, 오염수, 폴아웃3, 프로젝트퓨리티, GECK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시사평론가) 김민하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시사평론가로 활동하지만 게임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게이머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냉소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돼지의 왕』이 있고,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우파의 불만』, 『트위터, 그 140자 평등주의』 등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최근작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가 있다.
- 제1회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 발표
안녕하십니까, 게임제너레이션입니다. 제1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을 아래와 같이 발표합니다. < Back 제1회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 발표 07 GG Vol. 22. 8. 10. 안녕하십니까, 게임제너레이션입니다. 제1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을 아래와 같이 발표합니다. 수상하신 모든 분들께 축하를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넷마블 게임 박물관에 느꼈던 게임의 과거와 미래
2025년 3월 넷마블 게임 박물관이 정식으로 일반 공개를 시작했다. 넷마블 게임 박물관은 아직 정확하게 공지는 되지 않았지만 현재(2025년)기준으로 한국에서 최초로 정부에 등록된 게임을 테마로 한 박물관이 될 가능성이 높다.(국내에서 이름에 컴퓨터가 들어간 등록박물관은 2023년 기준으로 넥슨 컴퓨터 박물관이 유일하다.) < Back 넷마블 게임 박물관에 느꼈던 게임의 과거와 미래 23 GG Vol. 25. 4. 10. 넷마블 게임 박물관 문을 열다. 2025년 3월 넷마블 게임 박물관이 정식으로 일반 공개를 시작했다. 넷마블 게임 박물관은 아직 정확하게 공지는 되지 않았지만 현재(2025년)기준으로 한국에서 최초로 정부에 등록된 게임을 테마로 한 박물관이 될 가능성이 높다.(국내에서 이름에 컴퓨터가 들어간 등록박물관은 2023년 기준으로 넥슨 컴퓨터 박물관이 유일하다.) 물론 이전에도 게임을 가지고 있는 박물관이 없지는 않았다. 레트로 게임 카페를 표방하는 개인이 운영하는 공간이나 제주도에 있는 컴퓨터 박물관, 지금은 없어졌던 제로하나 박물관에도 과거의 게임을 상당 수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럼에도 서울이라는 접근성과 게임 업계에서는 대기업에 속하는 넷마블이 운영한다는 지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넷마블의 게임 박물관에 기대하는 부분이 컸다. 필자는 게임 박물관이 일반 공개를 시작한 날과 두번째 주의 평일의 시간을 골라 방문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면서 박물관도 조금씩 개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 언급된 내용이나 정보가 방문 시점에는 다를수도 있다는 점을 미리 이야기하고 싶다. 또한 직접적으로는 아니지만 박물관 개관 준비의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완전히 객관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하고 싶다. * 넷마블 박물관 초입 (직접촬영) 넷마블 박물관 직접 가보다. 역사속에서 초기의 박물관은 여러 유산들을 모아서 대중에게 공개하는 형태였다. 넷마블의 게임 박물관도 이러한 형식은 충실히 지키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넷마블의 게임 박물관을 처음 방문하면 넓은 공간에서 “나 혼자만 레벨업”의 주인공이 이야기해주는 인류의 게임에 대한 역사를 짧게 훑는 영상을 보여준 후, 보이는 수장고로 넘어간다. 보이는 수장고는 초반의 수장고와 유물에 대한 전시 공간은 게임 관련 유물을 보여주는 주된 공간이며 특히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1980년대 이전의 기기들은 레플리카이긴 하지만 사진이 아니라 실제 기기를 볼 수 있다는 점은 넷마블 게임 박물관이 가지고 있는 큰 장점이다. 2배로 크기를 키운 둘을 위한 테니스나 PDP-1의 레플리카에서 재현한 스페이스워!(Spacewar!)의 동작화면은 국내에서는 쉽사리 보기 힘든 물건이며 전시 공간 마지막에 존재하는 실물 컴퓨터스페이스(ComputerSpace) 역시 마찬가지다. * 보이는 수장고 전경 (직접 촬영) 보이는 수장고 오른편에는 보기 힘든 수장품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보이는 수장고는 뒤에도 공간이 있어 수장품들의 뒷모습들도 확인할 수 있다. 90년대 대기업들에서 정식 발매된 가정용 게임기용 기기들이나 팩과 패키지 매뉴얼들의 실물은 지금은 대부분 수집가들의 손에 들어가있기 때문에 실물을 실제로 보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물건을 확인할 수 있는 보이는 수장고는 정말 좋은 경험을 제공하기도 한다. * 보이는 수장고 뒷편 보이는 수장고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소장품 인벤토리는 대형 스크린 5개로 이루어진 키오스크로 수장품들의 이미지가 계속 흘러가면서 이미지를 터치하면 수장품들의 정보를 확인 할 수 있다. 소장품들이 적지 않아서 흘러가는 소장품의 이미지를 보는 것도 즐거움을 준다. * 소장품 인벤토리 이렇게 보이는 수장고가 끝나면, 좀 더 어린 연령대의 관람객들을 위한 자신의 적성에 맞는 게임 개발자를 알아볼 수 있는 체험 키오스크나 게임 개발자들의 테이블과 실제 게임 개발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려주는 프로젝션 아트, 그리고 이어서 <제2의 나라>에서 게임 캐릭터 생성을 체험하는 코너가 나온다. 연령대에 따라 관심사가 갈리는 콘텐츠일 수 있겠지만 <제 2의 나라> 게임 개발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컴퓨터 모니터와 벽면을 넘나드는 캐릭터의 설명은 한번쯤 봐 둘만 하다. * 오른쪽 버튼을 꼭 눌러 보길 바란다. 게임의 사운드 트랙과 함께 박물관의 두번째 아카이브인 라이브러리가 나온다. * 도서 라이브러리 게임 박물관의 라이브러리는 다양한 책들이 존재한다. 해외서적과 함께 최신서적 중심으로 되어있긴 하지만 책은 점차적으로 늘려 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 아카이브 키오스크 한편 한 켠엔 1990년부터 2010년대의 한국의 게임 역사를 정리해놓은 디지털 아카이브를 제공하고 있다. 이 디지털 아카이브는 인터랙티브 키오스크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해당 기가 한국에서 있었던 주요 게임 사건과 함께 당시 자료들을 찾아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여기까지 지나면 게임에 등장하는 한국과 함께 마지막으로 올해 11월 30일까지 진행하는 한국 PC 게임 스테이지 특별전을 하고 있다. 보이는 수장고와 마찬가지로 한국 PC 게임 스테이지 역시 90년대 한국 PC 패키지 게임의 실물과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해서 보여주고 있으며, 지금은 실물을 보기 매우 힘들어진 당시 PC게임 패키지와 매뉴얼등의 실물이 실제 전시되어있다. * 게임 체험존 마지막으로는 누구에게나 인기가 있는 게임 체험 존이 존재한다. 고전 아케이드게임 중심의 체험존이긴 하지만 실제 이야기를 들어보면 넷마블 사내 카페인 'ㅋㅋ다방'은 외부인들도 이용 가능하다보니 어린이들은 자리를 안떠나려고 하고 있고, 보호자들이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며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게임을 좋아하는 데는 연령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보인다. 게임 박물관 VS 컴퓨터 박물관 한국에서도 컴퓨터 테마의 박물관은 몇 군데 존재하며, 게임 박물관을 표방하는 개인이 운영하는 곳들도 있지만 아무래도 비교를 해볼수 있는 곳이라면 정식으로 국가에 등록된 박물관들과 비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국내에서 현재 컴퓨터 등을 테마로 한 등록된 박물관은 넥슨 컴퓨터 박물관 정도이다. 시대가 흐르면서 컴퓨터 역시 수집 대상이 되었고 박물관의 전시품에 포함되고 있다. 넷마블 게임 박물관 옆에 있는 G밸리 산업 박물관에서도 90년대 국산 가정용 컴퓨터들이 전시되어있으며 국립 중앙 박물관의 어린이 박물관 등에는 PC통신 시절 사용하던 단말기가 통신의 역사를 설명하며 배치되어 있었던 적도 있다. 한양대 박물관에는 국내 초창기의 아날로그 컴퓨터가 존재하며, 한글 박물관 또한 다양한 한글 시대 컴퓨터 소프트웨어들을 소장하고 있기도 하다. 이와 함께 조금씩 게임들이 전시되어있는 부분도 찾아볼 수 있다. 넥슨 컴퓨터 박물관의 경우 주된 테마는 컴퓨터이기 때문에 게임 박물관과 바로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1층의 가정용 게임기의 발전과 실물 가정용 게임기의 전시라든가, 게임 사운드를 직접 들어볼 수 있는 체험 코너, 그리고 2층의 게임 체험 공간과 라이브러리, 3층의 교육코너와 함께 있는 오픈수장고들은 현재 디지털 기기 및 게임 박물관에서 어떤식으로 전시 및 체험을 진행하는지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 있음을 알수 있다. 오픈 수장고의 경우 넥슨 컴퓨터 박물관의 경우는 거리가 있고 살펴보기 힘들게 배치되어 있다면 넷마블의 그 것은 좀 더 보기 좋게 살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며, 라이브러리의 경우는 넥슨 컴퓨터 박물관이 좀 더 오래되었다 보니 과거 자료를 좀 더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번에 개관한 넷마블 게임 박물관의 경우는 매우 고가에 거래되는 수집품이 되어버려 그동안 찾아보기 힘들었던 국산 가정용 게임들의 실물을 오픈 수장고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한편 넥슨 컴퓨터 박물관이 가장 자랑하고 있는 콘텐츠인 복원된 바람의 나라나 PC통신 서비스 같은 국내의 환경을 재현한 게임환경들은 넷마블에서는 체험해보기 힘든 부분이기도 하다. * 넥슨 컴퓨터 박물관의 PC통신 체험코너 (2013년 직접 촬영) 조금 강하게 평가하자면 넷마블 게임 박물관에 대한 느낌이라면 보기 힘든 유물들이 잘 정리되어있는 유물 쇼룸이다. 어디서도 보기 힘든 우주 거북선 패키지 라든가, 실물을 보는 것조차 쉽지 않은 정식 발매된 국산 게임기들, 레플리카지만 테니스포투(Tennis For Two), MIT PDP-1, 거의 원본에 가깝게 복각해놓은 마지막 코너의 퐁 까지 다큐멘터리나 책에서나 볼 수 있는 기기들을 실제로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은 넷마블 게임 박물관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강점이며, 레트로 게임 마니아나 게임의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면 한번 쯤 눈으로 봐야하는 물건들이 정말 많다. 다만 박물관 운영 초기라 이러한 유물에 대한 정보가 부드럽게 전달되는 지는 아쉬움이 있다. 일반적으로 박물관이라면 유물 옆에 좀 길게 적어놓은 텍스트 패널을 둘 법 하지만 넷마블 게임 박물관의 경우 이러한 설명들을 모두 한 단계 아래에 숨겨놓은 경향이 강하다. 전체 디자인 철학이 그렇게 디자인되었다는 느낌인데, 이렇다보니 좀 거칠게는 쇼룸이라는 느낌을 주는 부분이 존재한다고 본다. 대부분의 설명을 QR코드로 들어갈수 있는 음성 안내 페이지나 인터렉티브 키오스를 통해 볼 수 있다는 점은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나 사람이 많이 몰릴 경우, 혹은 키오스크를 놓치는 사람이라면 유물에 대한 설명을 놓칠수 있다는 점은 박물관의 구성에서 특히 아쉬운 부분이었다. * 인터랙티브 키오스크 과거를 전시한 박물관과 게임 박물관의 미래 넷마블 게임 박물관에 대한 평가를 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다. 어떤 사람들은 소장품 구색의 아쉬움을 이야기 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도서관에 대한 자료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고, 공간의 크기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먼저 던져봐야 할 것 같다. 그래서 게임 박물관은 어떤 것을 전시해야 할 것인가. 앞서 말했듯이 넷마블 박물관은 희귀한 게임 관련 유물들이 정말 많다. 물론 게임 팩이나 가정용 게임기에 한정하면 더 많이 모은 수집가들이 존재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박물관의 전시는 대부분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넷마블 게임 박물관이 가지고 있는 한계가 명확해진다. “유물이 존재하지 않는 게임들은 어떻게 전시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은 대부분 구성품이 존재하지 않는 게임을 즐기고 있다. 가정용 콘솔이나 PC용으로는 패키지들이 나오고 있긴 하지만 게임 구매의 주된 흐름은 주문형 게임으로 넘어가고 있으며 게임 패키지의 구성품도 소장용으로 나오는 아주 소수로 찍어 프리미엄이 붙는 패키지 외에는 칩만 들어가있으며, 게임에 대한 설명등은 유튜브나 홈페이지로 대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편 과거의 게임들은 에뮬레이터나 어밴던웨어 등으로 현재의 기기에서 즐길수 있는 경우가 존재하긴 하지만, 당시 패키지의 물성이나 기기의 물성들을 직접 체험하기는 매우 힘들다. 그렇다보니 전문가라는 사람이 매뉴얼을 읽지 않고 기기와 게임의 특성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게임을 평가하는 경우도 발생하기 쉬운 상황이기도 하다. 이러한 게임을 위해서는 넷마블 게임 박물관이란 공간은 정말 필요한 부분이다. 대부분의 고전 게임 패키지들이 수집가들의 손에 들어가 빛을 보기 힘든 상황에서 연구자나 과거 게임의 구성품을 살펴 볼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한편 2000년대 들어서 이러한 물성이 거의 없이 소프트웨어로만 존재하는 게임들은 박물관에 전시하기 참 힘든 상황이 되었다. CD 등으로 나오기라도 했다면 CD 등을 전시하겠지만 USB 디스크등의 실물 조차 안나오고 다운로드로만 존재했던 게임이라면 어떤 것을 전시해야할 것인가. 한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고민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의문은 게임을 어떻게 아카이브할 것인가와도 연결된다. 특히 온라인 게임 중심의 시장이 진행되어온 한국에서는 이러한 문제는 더욱더 어려운 부분이 존재한다. 게임을 어떻게 아카이브 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들은 사실 전세계적으로도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다만 점차 이러한 논의들이 활발해져가면서 미국, 유럽, 일본등에서는 단체등이 생기면서 점차 연구나 토론이 늘어나고 있다. 한편 유물로서의 게임만 전시하다보니 당대의 게임 문화, 개발자, 환경들에 대한 전달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부분도 약점이다. 유물에 대한 설명들도 아쉬운 지점들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은 박물관의 준비 문제라기보다는 이러한 연구 자체가 부족한 한국 게임 학계의 토양에 대해 이야기해야할 것이다. 넷마블 게임 박물관이 게임의 미래도 보존하길 바라며 시작하면서 박물관의 역사에서 유물의 전시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현대의 박물관의 역할은 좀 더 다양해졌다. 앞서 말한 아카이브와 함께 연구, 교육 등이 전시와 함께 따라오는 박물관의 역할이다. 박물관의 입구에서는 청소년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습지들이 존재하며, 라이브러리에 존재하는 <배틀 가로세로> 풍의 퀴즈 게임들은 어린이들이 박물관에서 학습할 수 있는 좋은 체험 프로그램이지만, 이러한 체험활동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공간의 아쉬움은 있다. 첫번째 방의 게임 영상이나, 제2의 나라 체험관 같은 넓고 화려한 체험관도 좋지만 좀 더 박물관스러운 아날로그한 학습공간에 대한 아쉬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넷마블 게임 박물관의 개설이 반갑다. 지금까지의 한국에서는 게임 역사를 정리할 구심점이란 것이 부족했었고 이러한 박물관같은 구심점이 생겨나면 자석처럼 자료와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꾸준한 투자만 계속 된다면 박물관을 중심으로 새로운 유물들이 모이고 연구가 계속되며 네트워크가 생겨날 수 있다. 이렇게 모인 자료들과 사람들은 새로운 게임의 역사를 조명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현대의 박물관은 유물을 한번 배치하고 끝나는 고정된 공간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기획전과 교육 프로그램 업데이트 되는 지식들을 피드백하는 공간이 되었다. 넷마블 게임 박물관 역시 앞으로의 게임을 아카이브하며 새로운 역사를 정리해나가는 게임 역사를 전시하는 공간의 최전선이 되기를 희망한다. Tags: 넷마블, 아카이빙, 박물관, 학예연구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개발자, 연구자) 오영욱 게임애호가, 게임프로그래머, 게임역사 연구가. 한국게임에 관심이 가지다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것에 취미를 붙이고 2006년부터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있다. 〈한국게임의 역사〉, 〈81년생 마리오〉등의 책에 공저로 참여했으며, 〈던전 앤 파이터〉, 〈아크로폴리스〉, 〈포니타운〉, 〈타임라인던전〉 등의 게임에 개발로 참여했다.
- [공모전] 레벨 디자인을 넘어서
게임 관계자들에게는 상식적인 이야기겠지만, 게임에서 레벨 디자인은 게임이 담고자 하는 세계를 디자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유저가 어떻게 게임을 경험하고 반응할지 예측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세계가 어떤 주제를 담고 있는지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가령, 수많은 논쟁과 악습을 생산했음에도 <리니지2>(엔씨소프트, 2003~)의 레벨 디자인을 비난할 방법은 많지 않다. 물론 일부 플레이어로부터 <리지니2>의 레벨 디자인은 오늘날까지 게임업계의 악습으로 고착된 사행성 기반의 ‘착취적 BM’이 자라나는 초석을 제공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은 되려 엔씨소프트가 지난 10년간 ‘BM 연구’라는 그럴싸한 미명 아래에 범해온 운영 권력의 남용을 호도하는 지적에 가깝다. 그만큼 레벨 디자인은 게임 콘텐츠의 성패를 넘어, 게임 자체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결정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 Back [공모전] 레벨 디자인을 넘어서 13 GG Vol. 23. 8. 10. 게임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레벨 디자인’ 게임 관계자들에게는 상식적인 이야기겠지만, 게임에서 레벨 디자인은 게임이 담고자 하는 세계를 디자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유저가 어떻게 게임을 경험하고 반응할지 예측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세계가 어떤 주제를 담고 있는지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가령, 수많은 논쟁과 악습을 생산했음에도 <리니지2>(엔씨소프트, 2003~)의 레벨 디자인을 비난할 방법은 많지 않다. 물론 일부 플레이어로부터 <리지니2>의 레벨 디자인은 오늘날까지 게임업계의 악습으로 고착된 사행성 기반의 ‘착취적 BM’이 자라나는 초석을 제공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은 되려 엔씨소프트가 지난 10년간 ‘BM 연구’라는 그럴싸한 미명 아래에 범해온 운영 권력의 남용을 호도하는 지적에 가깝다. 그만큼 레벨 디자인은 게임 콘텐츠의 성패를 넘어, 게임 자체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결정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레벨 시스템이 게임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리니지>가 플레이어를 공성전까지 이끄는 경위를 간단하게 풀어보자. <리니지>를 기반하고 있는 바탕은 말 그대로 던전, 즉 맵이다. <리니지>는 로그라이크의 유산을 계승하며 ‘방’과 함께 콘텐츠들의 격리 수준을 꽤 높게 설정했다. 동시에 여기에 PvP 시스템을 함께 적용시켜 무작위성과 우연성을 겹쳐놓았다. 이렇게 급격히 상승한 무작위성과 우연성은 플레이어에게 행위의 결과에 대한 다양한 이유를 만들어준다. 다만, 그 이유는 ‘플레이어가 끼어드는 바람에 파밍을 망쳤다’와 같은 스트레스 요인으로 귀결된다. 이 스트레스들은 PvP 시스템과 얽혀있는 것으로서, “지면 복종해야 하고, 이기면 지배한다”는 강력한 행동 원리를 플레이어에게 쥐여준다. 이는 곧 <리니지>의 정체성이 된다. 예나 지금이나 <리니지>를 규정하는 건 공성전, 즉 “쟁”이다. <리니지>의 “쟁”은 단순한 부족 간의 전쟁이 아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나름의 사연을 쌓아온 플레이어가 플레이 내내 게임으로부터 부여받은 갈등과 스트레스를 폭발시키는 장에 가깝다. “쟁”의 레벨 디자인이야말로 <리니지>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결정 짓는 요소다. RPG로서 <리니지>에서 가장 유별나고 정체성이 강한 시스템은 캐릭터가 중첩되지 않는다는 현상이다. 이는 캐릭터가 픽셀을 잡아먹어 공간을 하나의 자원으로 삼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수백명의 플레이어가 한 공간에서 전략을 짜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이처럼 <리니지>의 레벨 디자인에는 ‘하나의 자원을 둔 플레이어의 갈등’을 테마로, 멜서스적 위기를 구체적으로 재현한다. 이는 오늘날 우리는 ‘리니지 라이크’라는 명사를 사용하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오픈 월드, 그리고 개입과 자기효능감 이처럼 레벨 디자인은 하나의 게임 장르를 탄생시킬 수도 있는 게임의 핵심 요소다. 레벨 디자인에 있어 최근 일어나고 있는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오픈 월드(Open World)의 적극적인 적용일 것이다. 말 그대로 ‘열린 세계’인 오픈 월드는 흔히 “플레이어가 갈 수 없는 곳이 없는 게임” 정도로 일컬어진다. 장소의 이동에 대한 자율성이 오픈 월드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불리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오픈 월드의 가장 큰 특징은 오브젝트(object)에 대한 접근(Enter) 권한이 절차적이지 않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더 쉽게 풀어서 설명하면 게임의 구성 요소에 접근하기 위해 게임의 허락을 구할 필요가 없는 상태를 구현한 것이 오픈 월드 게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여기에는 게임이 설정해놓은 다양한 미션 등을 통과해야 하는 과정들이 있지만, 오픈 월드를 적용하는 이유는 플레이어가 게임 내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며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을 만끽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자기효능감이란 자율도를 사회학습이론의 거장인 알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가 제시한 개념으로서, 어떤 상황에서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기대와 신념을 말한다. 한 마디로 많은 스튜디오가 오픈 월드를 게임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유는 플레이어가 게임이 결정해준 요소가 아닌 스스로 적절한 결정을 수행하고 있다는 믿음을 형성하기 위한 것이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있다. 게임의 구성 요소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플레이 권한은 스스로 결정한다는 믿음, 즉 자기효능감을 반드시 수반하는가? 얼핏 생각하면 이는 맞는 이야기다. 플레이어는 게임이 정한 규칙 등 다양한 구성 요소와 상호작용하며 상황들을 마주하고 그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선택을 한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상호작용을 거부하는 플레이를 통해 자기효능감을 충전하는 플레이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트롤링(Trolling)이다. 트롤링은 공적으로 혹은 암묵적으로 게임이 금지한 행동을 플레이함으로써 플레이어에게 부여된 사회적 역할을 무시하고 반사회적 행동을 수행하는 플레이를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트롤링 중 하나가 <리그 오브 레전드>(라이엇 게임즈, 2009~)에서 종종 일어나는 ‘그리핑’(Griefing)이다. 그리핑이란 고의로 팀의 승리에 이바지하지 않는 플레이로, 그리핑의 동기는 다양하나 궁극적인 목적은 게임이 정해놓은 협력 시스템을 고의로 어겨서 자기만족, 즉 자기효능감을 취하는 것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가장 대표적인 그리핑 유형으로 뽑히는 ‘피딩’(Feeding)은 고의로 상대에게 죽임을 당해 팀의 패배를 견인하는 것이다. 혹 <리그 오브 레전드>가 협력 플레이라는 것을 근거로 피딩이 시위의 일종이 아닌가 싶은 추측도 분명 있을 텐데, 피딩은 그런 숭고한 사례가 없진 않겠으나(?), 대게는 그러한 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플레이어가 피딩을 하는 경우는 단순하다. 레벨업 혹은 승급이 필요하지 않은 플레이어가 다른 플레이어의 성장을 막기 위해 이루어진다. 이를 통해 피더(Feeder)들은 다른 플레이어의 성장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전능감(Omnipotence)을 느끼게 되며, 이는 트롤링을 통해 자기효능감을 획득할 수 있는 직접적인 요인이 된다. 닷 말해, 협력 시스템을 활용해 왠만한 실력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타인의 게임 구성에 직접 개입(Access)하는 데에서 무언가를 결정하고 있다는 감각이 자기효능감의 중핵적 요소가 되는 것이다. 선형적 오픈 월드, 혹은 레벨 디자인을 넘어서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오픈 월드는 직접 게임 요소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듦으로써 플레이어에게 자기효능감을 수반시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플레이어가 게임 요소에 직접 진입(Enter)할 수 있게만 한다면, 게임 요소에 개입(Access)한 것인가? <엘든 링>(프롬 소프트웨어, 2022)은 이러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좋은 예다. <엘든 링>은 소울라이크 장르로서 튜토리얼부터 극악한 난이도의 미션을 부여하는 것 자체가 장르적 특징이다. 플레이어는 튜토리얼부터 차례대로 플레이 공략을 쌓아야만 엔딩에 이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난이도를 해결해나가는 성취감으로부터 자기효능감을 얻는다. 그러나 오픈 월드는 이러한 절차적 요소를 복잡하게 만들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된다면 플레이어는 고난이도 캐릭터를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마주쳐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절차적 요소의 핵심은 마디와 순서다. 어떤 진행에 있어 진행과 진행 사이가 구분되어 있고, 그 구분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순서를 만들 수 있다면 절차로 볼 수 있는 정황이 충분하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마디와 순서에서 플레이어가 얻는 것은 예측과 기대이며, 플레이어는 이 예측과 기대를 바탕으로 대응 방안을 모색한다. <엘든 링>이 오픈 월드로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소울 라이크 팬들이 기대했던 것은 바로 이 진행과 진행 사이의 절차 구조상의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특히 보스 콘텐츠까지 이르는 과정의 변화에 대한 기대가 컸다. 문제는 소울 라이크가 쌓아놓은 절차적 요소 자체가 워낙 단순하고, 그 단순함이 재미를 보장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는 점이다. 프롬 소프트웨어는 <엘든 링>에 있어 새로운 구조적 변화를 설계하기보단 비주얼 요소들에 집중했다. 그 결과, <엘든 링>은 충분히 잘 만든 게임임에도, 게임이 기획했던 바와 같이 오픈 월드를 플레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가 쉽지 않다. 물론, 보스까지 직통으로 연결되는 루트를 찾아 ‘길뚫 플레이’를 할 수 있지만, 이것이 게임 요소에 개입했다는 믿음을 주지는 않는다. 보스 콘텐츠라는 마디로 진입하는 것 자체가 <엘든 링>의 절차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마디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엘든 링>은 접근은 허락할지언정, 게임의 핵심적인 요소 자체에는 개입을 어느 정도 차단하는 일종의 절차적인 레벨 디자인을 꾸민 것과 같다. 이는 오픈 월드더라도 플레이어는 게임이 디자인한 특정한 순서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과 같다. 오픈 월드라고 하더라도 플레이어와 레벨 디자인의 적극적인 상호작용, 그리고 플레이어의 온전한 주체성을 통해 게임 요소에 개입하여 얻어지는 자기효능감은 약한 셈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플레이어에게 하지만 여기에는 강력한 장점이 있다. 오픈 월드이고,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플레이했기 때문에 체험을 통해 습득한 서사는 비선형적이지만 꽤 괜찮은 세계관을 완결적으로 경험했다는 감각이다. <엘든 링>이 가진 독특하고 진중한 아트 디자인과 비주얼, 스테이지 간의 통일감과 앙상블이 세계관에 대한 플레이어의 체험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엘든 링>이 오픈 월드인 척하는 ‘반쪽짜리 오픈 월드’를 구현해놓았음에도 수많은 평론가가 <엘든 링>을 고티(GOTY, Game Of The Year)의 영역에 올려놓는 이유이기도 하다. 복잡하고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는 이야기에서 하나의 완결된 세계관 체험을 통해 선형적인 서사로 경험되는 것은 흔치 않은 플레이다. 그리고 이러한 콘텐츠 체험은 무엇보다 소울 라이크 장르 팬이 아닌 장르 저관여 게이머도 유입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를 통해 <엘든 링>은 소울 라이크 장르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했다. 오픈 월드로서 선형적인 서사를 제공하는 <엘든 링>의 장점은 ‘디아블로’ 시리즈의 최신작 <디아블로 4>(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2023~)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디아블로 4>는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가장 큰 장기인 압도적인 시네마틱 시퀀스를 통해 적절한 지점에 일종의 랜드마크를 세워놓는 효과를 본다. <디아블로 4>가 게임 내에서 보여준 핵앤슬래시 요소의 미성숙한 기술적 완성도와 많은 단점을 가진 게임임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디아블로 4>의 시네마틱 시퀀스들은 레벨 디자인이 수행해야 하는 바로 그것, 게임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정당화할 수 있는 요인을 마련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디아블로 4>의 시네마틱 시퀀스들이 오픈 월드의 요소를 마모시켰더라도, 게임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지킨 것은 최소한 나에게는 <디아블로>를 속칭 ‘고인물 밭’으로 남겨두지 않겠다는 절치부심으로 느껴진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디아블로M>이 던져놓았던 <디아블로> 시리즈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들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다. 출시 5일 만에 글로벌 매출 6억6600만달러(약 8476억원)를 찍으며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역사상 최대 출시 판매액을 기록한 점은 그 반증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러한 사례들은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얻는 자기효능감이란 결국 반두라가 정의한 바와 같이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기대와 신념”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기대를 하게 한다. 게임의 레벨 디자인을 넘어서 게임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구하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어떤 특정한 요소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은 플레이어가 게임을 즐기게 만들기 위해 반드시 플레이어에게 모든 접근 혹은 개입 권한을 줄 필요가 없을 수 있다는 점을 일깨운다. 게임에 있어 자기효능감을 느끼게 만든다는 건 어쩌면 플레이어에게 스스로 결정한다는 믿음을 주기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완성도 있는 세계관과 그 세계관을 구현한 게임의 명확한 존재 이유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레벨 디자인 너머에 있는 것 글을 열며 <리니지>를 언급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리니지>의 레벨 디자인을 비판하는 건 대단히 복잡하고 힘든 일이다.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레벨 디자인은 게임사에서도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리니지 라이크’는 자기효능감과 거리가 먼, ‘착취적 BM’과 같은 악습으로 통한다. 나는 <리니지>의 레벨 디자인이 악습으로 받아들여 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더욱이 앞에서 밝혔든 <리니지>의 레벨 디자인을 평가절하하는 것은 엔씨소프트가 범해온 운영 권력의 남용을 호도하는 일에 가깝다. 그렇다면 우리는 되물어야 할 것이다. 높은 수준의 레벨 디자인을 구현하고, 대체 불가능한 재미를 통해 플레이어를 게임 안에 가두리(Lock-In) 시키는 일은 또 다른 ‘착취적 BM’을 양산하는 바탕이 되는 것일까? 나는 게임에는 죄가 없다고 믿는다. 악습을 결정하는 것은 스튜디오와 디플로이어들의 선택이며 태도라고 생각한다. <엘든 링>이 소울 라이크를 재탕하지 않고 반쪽짜리라도 오픈 월드를 선택한 점,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디아블로M>보다 시네마틱 시퀀스를 우선시 한 점은 모두 레벨 디자인을 넘어서는 일이다. 거기에는 게임을 사업 혹은 놀이 이상의 업(業)으로 대하는 태도가 있다. 이처럼 게임의 레벨 디자인을 완성하는 것은 레벨 디자인 그 자체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 레벨 디자인의 궁극적 목적, 즉 게임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결정하는 것은 오롯이 스튜디의 선택이자 태도다. 그리고 한편으로 게임의 명확한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구하는 일은 플레이어에게 최선의 재미를 서비스하는 기본적인 책무를 넘어, 게임을 통해 플레이어의 플레이를 책임지겠다는 게임 개발의 윤리적 태도이기도 하다. 게임과 재미는 진지한 비즈니스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원) 이현재 경희대학교 K컬쳐・스토리콘텐츠연구소, 리서치앤컨설팅그룹 STRABASE 뉴미디어・게이밍 섹터 연구원. 「한류 스토리콘텐츠의 캐릭터 유형 및 동기화 이론 연구」(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한국콘텐츠진흥원) 「저작권 기술 산업 동향 조사 분석」(한국저작권위원회) 등에 참여했다. 2020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부문, 2021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평론부문 신인평론상, 2023 게임제네레이션 비평상에 당선되어 다양한 분야에서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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