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게임 전시가 줄 수 있는 사회적 담론의 균열 : <게임 사회> 기획자 홍이지 학예연구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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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3. 6. 10.
게임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22년 10월에 방영했던 EBS 다큐멘터리 <게임에 진심인 편>을 기억할 것이다. 해당 다큐멘터리 3부에서는 ‘근데 이제 예술을 곁들인’이라는 제목으로, ‘게임을 예술로 볼 수 있을 것인지 아닌지’에 관한 담론들을 다루었다. 비단, <게임에 진심인 편>뿐만 아니라 게임과 예술의 경계를 어디로 둘 것인지에 관한 질문들은 훨씬 이전부터, 다양한 경로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이 간단한 질문에 결론을 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 쌓여왔던 담론의 두께만큼 다양한 관점이 혼재해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오늘날에는 게임과 예술의 경계를 구획하려 하는 시도 자체가 구태의연하다는 인식까지 존재한다.
그런데 실제로 게임과 예술의 경계가 무너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엄숙한 미술관, 그것도 한국 미술계에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이 23년 5월 12일부터 9월 10일까지 게임을 주제로 한 <게임 사회> 전시를 연 것이다. 이는 단순히 한국에서 게임의 문화적 지위가 변화했음을 나타내는 것뿐만 아니라, 미술 전시로의 게임이 어떤 이야기들을 만들 수 있는지, 게임으로의 예술이 가지는 특수성은 무엇인지 등 우리 사회에 새로운 질문들을 던졌다. 이에 해당 전시에 자문위원으로도 참여했던 편집장은 <게임 사회>를 기획한 홍이지 학예연구사와 만나 게임과 예술의 관계를 더 깊게 고찰하고자 하였다. 다만, 전반적인 전시에 관한 소개는 국립현대미술관 콘텐츠(https://www.youtube.com/watch?v=_mZEphegRDc)에도 잘 나와 있기에, 인터뷰에서는 게임을 전시하는 것의 의의와 한계, 또 앞으로의 가능성들을 사유하고자 하였다.
이경혁 편집장: 안녕하세요. 학예연구사님. 먼저 자기소개를 간단히 부탁드릴게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저는 대학에서는 조각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는 이제 전시 기획을 전공을 한 뒤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일을 하다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근무한 지 3년 되었습니다. 홍이지라고 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전시가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전시에 대한 반응들이 뜨겁더라구요. 인터넷에서도 많은 여론이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게임 관계자들과 미술 관계자들이 이번 전시를 보는 시각은 조금 다를 것 같은데, 현장에서는 어떻게 느끼시나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비단 미술계와 게임계로 나뉘는 것뿐 아니라, 게임계 안에서도 게이머가 보는 전시가 다르고, 게임 업계에 계시는 분이 보는 전시가 다르고, 게임을 콘텐츠로 기획하시는 기획자분이 보는 관점도 다른 것 같아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오히려 그렇기때문에 저희가 할 수 있는 얘기가 많은 것이 저는 재밌어요. 이 전시 하나만으로도 저희가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아서, 대화를 할 때마다 너무 흥미로워요.
이경혁 편집장: 사실 게임 전시라는 것이 리터러시의 문제가 있죠. 전시에서 애초에 게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알아볼 수 있는 지점들도 있고요. 사실은 일반적인 미술관도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는 분들이 있는 상황인데, 미술 전문가로서 게임에 관한 전시가 다른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것과 다른 특이점이 있을까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사실 처음 기획 때부터 모든 사람들이 이 전시의 기획 의도를 한 방향으로 읽으시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각자의 리터러시가 다르니까요. 그래서 더욱 피드백이 궁금한 전시이기도 했어요. 일반적으로는 미술관에서 전시를 올려도 피드백은 거의 없거든요. 개인의 호불호나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코멘트 정도는 있지만, 전시 전반의 경험에 관한 피드백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이 전시는 오픈한 지 일주일 됐는데도 피드백이 너무 적극적이어서 굉장히 놀라워요. 그게 게임 전시의 특이점이기도 한 것 같아요.
이전에 우리 미술관에서 비슷하게 피드백을 받았던 전시는 ‘개를 위한 미술관’ 전시였어요. 강아지들이 들어왔을 때, 미술관이 가지고 있는 모종의 엄숙주의나 결계가 해제되면서 이 공간을 다르게 점유하고 경험했을 때 확실히 훨씬 더 적극적인 피드백이 있었던 것 같고, 또 그거를 염두하고 만들었던 전시이기도 해요. 왜냐하면 코로나 때, 저희 미술관이 몇 개월 동안 문을 닫았었거든요. 그런데 사실 얼마나 장소가 좋아요? 위치도 훌륭하고. 코로나 때 병상이 없을 때에도 여기를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많았거든요. 저희도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는 미술관이 기능을 하지 못할 게 뻔한데 이 공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미술관에 대한 경험과 이용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죠. 이번 기획도 이런 맥락에서 기획한 지점이 있어요.
다만, 피드백 중에는 기획자가 누구이며, 얼마나 게임을 해봤는지 묻는 질문들도 있어요. (웃음) 물론, 제가 게임을 하기는 하지만, 모든 게임을 섭렵하고 그런 것은 전혀 아니에요. 그러나 외부 기획자가 미술관에 와서 하는 전시와 여기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공공성을 주제로 해서 만드는 전시는 분명히 접근이 되게 다를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그 층위를 보는 것도 중요하기는 한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공공미술로의 기획이 가질 수 있는 특수성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는데요. 아무래도 디지털 게임 전시도 있다보니 기계들이 많잖아요? 그 지점에서도 공공미술에서의 의의나 어려움들이 만들어질 것 같은데, 기계들은 괜찮나요? 잘 돌아가나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네. 괜찮아요. 저희가 우려했던 것보다 그래도 안정화는 빨리 됐고, 생각보다 안정적으로 전시되고 있어요. 저희 오픈하고 그다음 날 단체 관람객이 900명이었거든요. 그때가 진짜 위기였긴 했어요. 관람객분들이 개별로 혹은 두 세분씩 오실 때는 미술관의 분위기나 문법을 인지하고 오세요. 그런데 900명의 학생들이 한꺼번에 오니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기계들은 별 탈 없이 잘 돌아가고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이 전시의 기획의도 이면에 있던 고민들에 대해서도 좀 여쭤보고 싶은데요. 미디어 아트 작품이 굉장히 많던데, 전시가 끝나면 이 작품들은 어떻게 되나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사라져요. 실체로 남아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고요. 처음부터 저희가 작품들을 파일 형태로 받았는데, 어차피 전시가 끝나면 파일을 바로 폐기하고 그걸 사진을 찍어서, 소장품 대여처에 보내줘야 돼요. 김희천 작가님의 작품에 쓰인 큰 LED 이런 거는 패널도 그냥 다 해체해 버리는 거예요. 렌트기 때문에. 저희는 자산 취득을 할 수가 없어서 장비가 비싸도 렌트를 해야 돼요. 이 현장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면.
이경혁 편집장: 그러면 아카이빙을 한다 해도 사실상 ‘전시의 재현’이라는 건 불가능한 형태군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그렇죠.
이경혁 편집장: 음. 게임 매체가 원래 그렇긴 하죠. 게임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원래 애초부터 재연이 불가능한 거니까요. 그래도 파일을 가지고 계신거면, 나중에 오페라처럼 다른 무대에서 다른 연출로 재현할 수는 있는 거겠네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네. 그런데 그것도 조금 문제가 있긴 해요. 제가 이번에 MoMA(Museum of Modern Art: 미국의 유명 근현대 미술관)랑 스미스소니언(미국 정부가 예산을 지원해주는 박물관)에서 각각 작품을 빌렸는데, 최종 협약서에 사인할 때까지 1년 가까이 걸렸거든요. 애초에 MoMA와 스미스소니언이 2010년 초반에 게임을 소장하기로 했는데, 당시에는 지금이랑 문법이 많이 달랐던 거죠. 지금의 관점에서 당시 계약서는 명확한 규정이 만들어지기 전에 체결된 거였거든요. 게다가 당시의 판단으로는 (게임 관련 전시물을) 어디까지 소장해야 되는지에 관한 연구가 너무 미비했기 때문에, 누구의 권한을 어디까지 일임받아서 관리할지에 대한 부분도 각각 다 달랐던 거죠. 어떤 게임사는 ‘전시할 때마다 허락을 받아야 한다’, 어떤 곳은 ‘전권을 다 준다’ 대중이 없었어요. 그렇지만 오늘날에는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너무 달라졌고, 또 담당자들도 다 바뀌어서 판단을 유보했기 때문에, 저희가 이번에 전시할 때에는 MoMA에게 먼저 허락을 받고, MoMA의 모든 리스트를 보면서 게임 회사들에게 다시 또 허락을 받았어요. 그때 어떤 게임사는 알아보고 연락 준다고 하고 두 달, 여름 휴가라고 한 달, 어떤 곳은 ‘우리가 MoMA랑 계약을 했다고요?’ 하는 곳도 있고,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게다가 MoMA가 2010년에 전시를 하고 그 이후로는 아무도 전시를 안 했기 때문에, 저작권의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컨디션이 많이 바뀐 거예요. 그 사이에 데이터 파일도 굉장히 압축이 많이 되고, 전시물을 상영하는 방식도 달라졌고... 그래서 나중에 다시 재연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에요.
이경혁 편집장: 한편으로 MoMA에서 전시된 작품들도 실제 상용 작품들이고, 사실은 직접 컨택을 해서 전시해도 상관없지 않나요? 그런데 MoMA와 계약한 작품들을 빌려왔던 의도가 따로 있으셨을지 궁금해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저희도 그 지점에 대해서 고민을 했어요. 그런데 게임을 미술사로 편입시키는 과정에서 필요했던 지점이었어요. 포스트 디지털 미술사의 맥락에서, 그러니까 89년 인터넷이 발달한 이후를 디지털 미술사로 정립을 하고 있는 와중인데, 이 디지털 미술사의 맥락에서 게임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거든요. 그런데 지금까지 미술사에서는 게임을 거의 다루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 지금이라도 우리가 연구하고 있던 맥락 안에 게임을 긴급하고 진중하게 다룰 필요가 있었는데, 이러한 필요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MoMA의 사례가 주효했어요. 애초에 게임을 접해본 적이 없으신 분들에게도 ‘MoMA도 게임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이 설득에 도움이 되는 것이죠.
이경혁 편집장: 그렇다면 역사적 맥락 외에도 ‘미술 전시로서의 게임’이 가지는 특수성이 있을까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물론 있지만, 그걸 구현하는 데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어요. 단순한 체험으로 제공되는 것 외에, 저희가 미술관에서 감상하는 미디어 작품처럼 뭔가 감상의 여지가 생기고, 이걸 통해서 특정한 순간을 경험하고 그러기에는 미술관에서의 공간이 한정적이고, 너무 찰나인 거죠. 경험의 시간 자체가.
이경혁 편집장: 그렇죠. 사실 이번 전시 중에서 특히 심시티 같은 경우는 어떤 감각을 느끼는 체험을 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들죠. 결국, 전시장의 한계라는 것은 공연 공간에서, 줄을 서서 공연 기기를 잠깐 대여하는 방식에서부터 나올 것 같은데요. 오락실 게임은 이런 논리가 가능하겠지만, 심시티나 마인 크래프트가 공적 공간에 올라왔을 때는 또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시연 외에도 미술 작품과는 다르게 게임은 일반적으로 협업해서 만들어지잖아요? 그러면 아티스트가 누구인지 특정하기가 좀 어려운 부분도 있지 않니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맞아요. MoMA도 게임 전시는 항상 디자인 분과에서만 하는데, 시연이 어렵다는 점과 크레딧의 문제가 닿아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게임 전시의 형태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한 지점도 있고, 아직은 예술로서 게임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관한 관점의 차이들도 큰 것 같아요. 저희가 빌릴 때도 게임사의 반응에 따라서 그 게임사가 게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거든요. 가령, 제노바 첸(Sky : 빛의 아이들, Flower, Journey 제작자)은 확실히 스스로를 예술가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희가 뭔가를 요구했을 때, 모든 걸 조건 없이, 질문을 하지도 않고, 무상으로 전부 제공해줬는데요. 확실히 게임이 예술로 보여줄 수 있는 자리라는 거에 대해서 굉장히 예민하게 받아들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저희가 지금 헤일로 2600을 보여주고 있는데, 스미스소니언 미술관을 통해 에드 프라이즈(Ed Fries, 헤일로 2600 개발자)의 연락을 받았어요. 저희는 모든 전시품을 똑같은 컨디션으로, 너무 향수를 불러일으키려고 하지 않는 방향에서, 관람객들에게 중립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에드 프라이즈는 자신의 작업이 아트이기 때문에, 전시할 때 게임이 이용되었던 당시의 CRT 모니터로 바꿔 달라는 연락이 온 거예요. “접근성 확장을 위해서 전시에 버튼과 조이스틱을 쓴 것은 알겠지만, 내 작업은 이미 종결된 그 시기의 ‘작품’이기 때문에 다시 번역된 상태로 제공이 되는 형태는 반대한다.” 그런 거죠. 이런 지점에서는 게임과 전시에 대해서 고민들이 더 필요한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어떻게 보면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생각나기도 하는데요. 처음에는 이게 무슨 예술이냐고 하다가 지금은 백남준 류의 비디오 아트가 미술계에 자리가 생겼잖아요? 게임도 그런 게 가능할까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저는 어떤 측면에서는 (게임이) 이미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만큼 자리 잡혔다고 생각해요. 싱글 채널 비디오 아트에서 옛날에는 작가가 선형적인 타임라인 안에서 촬영을 해서 편집을 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CGI가 안 들어가는 작업을 찾기가 힘든데, 그 CGI 작업 자체가 유니티 아니면 언리얼을 너무 많이 쓰기 때문에, 이미 게임의 문법으로 영상 언어를 만들고 있고, 그 과정에서 메타버스나 NFT를 경험해 본 작가들이 너무 많이 늘어났기 때문에, 게임의 작법을 어떻게 적용시키고 잘 만들지에 있어 기술력에 대한 갈구가 큰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작가들도 고민하는 게, 그런 기술력을 써서 작업을 만들면 1, 2년 사이에 빠르게 낡아버린다는 감각을 느끼게 되는거죠. 이제는 딱 보면 ‘이거는 심즈 미감, 이거는 플레이스테이션 1 미감, 이거는 언리얼 엔진 5 미감’ 이런 걸 바로바로 알 수 있기 때문에 너무 금방 낡아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이번에 김희천 작가가 개발을 할 때도 큰 화면에 굉장히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만들 수 있었지만,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거는 풀레이스테이션 1 미감에 로우 폴리곤을 써서, 시간대를 흐트러뜨리고 싶은 의도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작가님이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https://www.esquirekorea.co.kr/article/77220)에서 언급한 예시 중에 라라 크로프트가 있었는데요. 옛날에, 기술이 발전하지 못했을 때에는 게이머들 각자의 라라가 있었던 거예요. 자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라라. 그런데 기술이 발달해서 실사화가 되니까 모두가 실망했다는 거죠. 자기의 라라가 아니라서. 그런 상상의 여지를 열어두고 게임을 하던 그 시기가 현대 미술과도 닿아있는 것이, 예술을 감상하고 체화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딱 그 부분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요.
이경혁 편집장: 확실히 게임계에서는 그런 기술적 맥락들이 중요하죠. 사실 초창기 레트로 게임들은 지금처럼 폴리곤 방식으로 안 만들고, 도트로 이제 디자인을 했잖아요. 근데 도트디자인에서는 박모라고 하죠? CRT 특유의 번짐을 포함해서 디자인을 한 게 있었죠. 그런 미감들은 시대적인 맥락에서 감상되고, 이해되는 지점들이 있지요. 그런 맥락에서 생각나는 것이 이번 전시에서 <슈퍼 마리오 무비>는 다양하게 감상될 것 같은데, 이전 게이머들에게는 그 화면이 익숙하거든요. 게임팩을 처음 꽂았을 때, 뭔가 지직거리면서 나오는, 그래서 다시 훅훅 불고 게임팩을 꽂는 익숙한 화면인데, 그 경험이 없거나 그 시절을 안 겪은 요즘 게이머들은 무슨 화면인지 모르는 거죠. 그런건 도록에 아무리 써도 잘 알 수가 없죠.
홍이지 학예연구사: 그런 지점이 현대 미술과 게임의 접점이기도 한 것 같아요. 제가 브로셔에 쓴 글이 있어요. 게임을 하는 것과 현대 미술을 감상하는 과정이 되게 비슷하다고 써놓은 게 있거든요. 저는 실제로 그랬던 것이, 제가 게임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면 미술계에 계신 많은 분들은 제임을 잘 모르시거든요. 그런데 반대로 외부에서 ‘저 미술관에서 일해요’라고 하면 ‘저는 현대 미술은 하나도 모르겠어요’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은 거죠. 이렇게 서로 문법이 다르고, 시간을 들여서 익히지 않으면 온전히 즐길 수 없는 두 대상을 공공미술관에서 다룬다는 점에 있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어떻게 보면 이번 전시에 ‘접근성’을 무게감 있게 다룬 것도 연장선 상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경혁 편집장: 말씀해주신 접근성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데요. 이번 작업을 하시면서 접근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보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게임계의 바깥에 계신 입장에서 게임 접근성의 현재를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저희가 전시를 기획할 때, 컨트롤러를 이용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Xbox Adaptive Controller (Xbox 접근성 컨트롤러: 국립재활원의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에서도 소개되었던, 장애인의 게임 접근을 돕기 위한 컨트롤러)로 전시할 수 있는 게임이 거의 없는 거예요. 특히 국내 게임은 하나도 없었죠. 그런데 지스타가 열렸을 때, 넥슨에서 ‘카트라이더: 드리프트’가 나오니까 그거를 이 컨트롤러로 쓸 수 있게 기술적으로 검토를 해달라는 이야기가 국립재활원에서 있었고, 국립재활원 연구에 참여했던 가족들에게도 ‘단 하나라도 집에서 할 수 있는 국내 게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서 마지막에 ‘카트라이더: 드리프트’를 넣은 지점도 있어요. 그런데 사실 엑스박스 컨트롤러는 국내에서 팔지도 않고, 접근성이 많이 떨어지죠. 그리고 우리나라 게임 시장에서 게임에 대한 (장애인과 여러 소수자의) 접근성을 확장해야 한다는 논의는 많이 있었지만, 여전히 게임은 산업으로 분류되고 게임에 대한 평가도 이용자가 얼마인지 등 가시적인 숫자로 평가되기 때문에, 접근성에 관한 논의가 떨어지는 거예요.
이경혁 편집장: 그런 지점에서 한편으로는 이번 전시 이후에도 게임의 접근성에 관한 논의가 더 잘 드러날 수 있는 전시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사실 미술관과 접근성은 게임보다 먼저 논의들을 거쳤잖아요? 이제는 미술관이, ‘한국에서 장애인이 갈 수 있는, 가장 접근성이 높은 공간’ 중 하나로 꼽히는데, 거기에서 접근성에 관한 논의가 부족한 ‘게임’이 이야기된다는 지점이 유의미한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가 더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그런데 저는 매일 내려가서 Xbox Adaptive Controller를 쓰시는 분들을 보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금방 익숙하게 잘하세요. 저희 딸이 11살인데, 저희 딸한테 마인 크래프트를 이 컨트롤러로도 시켜봤는데, 자기만의 방법을 만들어서 하긴 하더라고요. 확실히 접근성에 관한 논의들은 실제로 경험해보면서 느끼는 지점들이 있는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그렇죠. 어떤 컨트롤러에 익숙한지에 대한 문제를 확장하면 장애인 접근성에 관한 논의와 같은 맥락이에요. 그러니까 사실 접근성 관련 논의가 비단 장애인으로만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 보편성에 관한 논의이고, 오히려 메이저를 향해 가는 지점들이 분명히 있지요. 그래서 이러한 고민들을 손쉽게 ‘돈 안되는’, ‘착한 일’로 인식할 수 없는 것 같아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맞아요. 사람들이 접근성을 자꾸 소수자의 문제라고 쉽게 인식하지만, 크게 보면 사실 키오스크의 사례도 같은 맥락이죠. 만약 키오스크에서 에러가 떴을 때, 핸드폰을 많이 쓰는 세대는 직관적으로 초기 화면으로 넘어갈 수 있는 문해력이 있는데, 그게 전혀 없는 사람들은 그냥 손 놓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죠. 그래서 문해력이 없는 사람도 배려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 거죠.
*김희천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동시에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상호작용의 현장
이경혁 편집장: 앞서 게임계의 다양한 반응과 그 지점에서 공공미술로의 특수성 같은 말씀들을 해주셨는데, 미술계의 반응은 좀 어떤가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미술계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긴 한데요. 먼저 제가 예전에 <유령팔>이라는 전시를 했던 걸 많이들 아시니까, 연장선에서 봐주시는 분들은 포스트 디지털 미술사 맥락에서 읽어주시는 분들도 있고요. 또 어떤 분들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게임 전시를 해서 카타르시스가 있다고 봐주시는 분들도 있고요. 또 어떤 분들은 새로운 세대가 (미술계로) 진입해서, 경험이 확장되는 것을 의미있다고 봐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게임과 미술이라는 콜라보가 참 쉽지 않은 영역이었는데, 이후에는 어떻게 관계를 가져갈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좀 해야 할 시기 같아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그래서 미술 쪽에 비평하시는 분들 중에선 게임의 미감과 질감이 다음 세대의 미디어 아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왜냐하면 언리얼 풍이나 유니티 풍의 미감이나 마감이 단순히 작업물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작업 방식이나 사고 방식에도 영향을 주잖아요. 재미있는 사례로, 최근에는 실제 공간을 인식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온 것을 느끼는데요. 저는 실제 전시 장소에서 물리적인 양감과 구조를 이해하며 작품을 감상하고 설치하는데, 어떤 작가분들은 실제 전시장에 와서도 사진을 찍은 다음, 사진으로 보는 거예요. 그래서 ‘실제로 보는 것이 낫지 않나?’고 했더니, 자기는 핸드폰 스크린으로 보는 게 훨씬 이해가 빠르다고 말하는 거죠. 이처럼 프로그램이나 기술이나 게임의 문법이 여러 변화를 만든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재미있는 말씀이네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이런 논의들이 게임이라는 매체를 시각적인 대상으로 볼 때 한정되는 문제이기도 한데요. 어떻게 보면 게임의 또 다른 정체성이자 특징인 규칙, 그리고 그 규칙과 상호작용하면서 겪게 되는 어떤 감정의 변화라는 것을 어떻게 다룰지도 고민할 수 있는 영역인 것 같아요. 미술이 게임의 방법론을 가져간다면 사실 이 고민이 필요할 것 같은데, 전시라는 방식으로 우리가 이런 영역을 다룰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세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좋은 예시가 김희천 작가 작업인 것 같아요. 김희천 작가 작업은 앞 부분에서 유니티로 만든, 모바일 게임을 하는 주인공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 게임의 아바타 같은 사람이 미술관을 돌아다니는데, 이후 실제 인물이 연기를 하는 파트가 끝나면 전시장에 구현된 35대의 CCTV가 이미지를 수집하고, 수집된 이미지가 실시간으로 변환되어서 출력되는 파트가 있거든요. 실제 게임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건 이 부분이죠. 우리는 보통 앞부분을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뒷부분을 게임으로 보지 않는데, 작가님에게는 이 부분이 게임인 거고, 내러티브가 있는 기존의 미디어 작품의 문법으로 해석했을 때 실시간 반영이 작품에 즉흥적으로 개입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이 이전의 영상 작품과는 다르게 볼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이경혁 편집장: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게임의 문법 쪽으로 가지를 뻗어간다면, 어차피 집에서도 경험을 할 수 있는데, 전시장에 가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요? (웃음)
홍이지 학예연구사: 그렇죠. (웃음) 다만, 전시장이 어떤 풍경을 만들었는지가 너무 중요한 것 같아요. 실제적으로 어떤 콘텐츠가 상영되는 지보다, 사람들의 행동 양식, 반응, 상호작용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보는 것이 유효한 지점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전시장에 와서 보는 미디어 작업이 어떤 경험의 차이를 만드느냐에 대한 문제인데, 우리가 예술을 통해서 온당하게 다뤄야 할 내용에 대해서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것. 사회적 주제에 대해서 모두가 드나드는 공간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가 굳어질 수 있는 사회 문법에 균열을 줄 수 있어요. 그런 균열을 만드는 공간이 미술관인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맞습니다. 게임 자체로는 이미 예술을 하고 있어요. 다만, 그중에 전시될 수 있는 방식이 미술관에서 전시된다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지, 모든 게임이 미술관을 가야하는 것도 아니며, 의미가 생기는 것도 아니지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작업 계획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홍이지 학예연구사: 저는 81년생인데, 어렸을 때 게임을 하고 싶었지만, 엄마가 ‘여자애가 무슨 게임이야? 오락실에 가 있는 오빠나 빨리 데려와서 저녁 먹으라고 해.’ 라는 말을 듣고 자랐거든요. 그래서 오빠를 데리러 가면, 오빠는 친구들이랑 ‘스트리트 파이터’ 하고 있고, 오빠가 저한테 200원 주면 테트리스하고, 보글보글했던 기억이 있어요. 이것처럼 저는 어릴 적부터 게임을 접했지만, 동시에 사회적으로 남성적 문화라는 점에서 게임 문법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적 경험을 해왔어요. 그러다 보니까 지금도 게임에 몰입하지 못하고, 미끄러지는 경험들을 하게 되고, 그런 경험들 때문에 이런 전시를 하게 된 것 같아요. <유령팔>도, 85년 이후 세대들이 포스트 미디엄을 다루고 있는 특성과 달라진 창작 환경에 대해서 짚어보고자 기획했어요. 물리적인 감각이나 스케일 감이나 물질에 대한 감각을 인지하는 세대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 현대미술에도 그런 맥락에서 게임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의 전시도 이런 고민들을 담는 지점에서 세대적 경험에 균열을 만들어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