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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국회의원선거 공약이 말하는 대한민국과 디지털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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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4. 4. 10.

민주주의 국가의 운영은 행정부만큼이나 입법부도 중요하다. 입법부를 구성하는 선거가, 쓰는 입장에서는 한창 진행중이고 읽는 입장에서는 투표 직전이거나 끝났을 것이다. 그리고 게임 또한 문화이자 산업으로서, 정치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비단 단속이나 규제의 의미만이 아니고 진흥과 지원의 의미로도 그렇다. 그리하여 윤석열 대통령의 게임 공약을 분석했던 시도에 이어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등장한 게임 관련 공약을 살펴본다.


하지만 현재의 정국은 윤석열 행정부에 대한 중간 판단이라는 중대한 이슈가 중심에 있다. 영부인과 그 가족의 비위 의혹, 헌정사상 최초의 R&D 예산 대폭 삭감, 각종 복지와 지원 사업의 축소, 생활 물가 급속 상승 등의 다양한 문제가 의제로 올라오고 있으니 게임이 중요한 정책 공약의 대상이 되기가 힘들다. 그래서인지 거대 양당 외의 정당에서는 정당 정책으로 제시된 게임 공약이 없다. 기껏해야 개혁신당이 스포츠토토의 종목에 e스포츠를 넣겠다는 정도다. 이 말을 뒤집으면, 즉, 거대 양당은 게임 정책을 중앙당 공약에 끼워넣었다. 그리고 그 정책 공약은 e스포츠의 산업적 측면에 치중돼 있다.



여당, 국민의힘


국민의힘은 중앙당 공약과 지역당 공약 모두에 게임을 언급하고 있다. 방향성도 구체적이다. 가장 앞에 있는 것은 게이머의 공정한 게임 경험이다. 핵 사용자에 대한 처벌을 실효적으로 제정하겠다 하는데 어떤 법을 개정할 생각인지는 몰라도 상당히 구체적인 부분을 언급하고 있다. 게이머의 경험에 공정 담론을 합한 첫 번째 초점은 국민의힘이 몇 년째 주력하는 담론의 적용이고, 다음은 e스포츠다.


* 국민의힘의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중앙 공약집’ 중에서.

글로벌 대회의 국내 개최라거나 지역 균형 발전 같은 내용은 정상적인 정치 세력이라면 내세우는 내용인데다 추상적이니 일단은 넘어가자. 제도권 교육을 통해 게임과 e스포츠의 전문 인력을 양성한다는 내용은 구체적 내용은 없으나 국가 자격증 신설로도 읽힐 수 있는 내용이다. 어떻든 간에 교육 기관을 만들거나 지정해야 할 것이고, 강사 인력과 커리큘럼 제작이 필요할 것이다. 예산 근거가 되는 법과 주관하는 위원회도 만들어야 한다. 이런 내용이 없으니 중요도가 높은 공약은 아니다.


같은 현상이 지역 공약에서도 일어났다. 부산은 G-STAR의 개최 도시인지라 게임 도시 브랜드를 노리는 지자체인데, 부산 공약에서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딱 한 문장이다. 부산에서 어떤 신산업을 육성할지에 대한 언급에서 윤석열 행정부가 관심을 갖고 있는 블록체인과 원전이 나올 때 함께 나온다. 다소 당황스러운 열거인데, 블록체인은 가상자산 열풍 속에서 투기 상품을 개발하는 기술에 갇혀있는 상태고, 원전은 글로벌 스탠다드에서 탄소 감축 방안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논란이 상당한 분야다. 게임이 ICT 산업 분야라는 이유로 이런 애매한 분야와 함께 묶이고 있다.


* 국민의힘의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시도 공약집’ 중에서.


야당, 더불어민주당


더불어민주당의 시각도 산업 위주이고 e스포츠 위주이긴 하지만, 분류가 약간 다르다. 콘텐츠 산업의 성장 유지를 위한 정책에서는 음악 공연 등의 행사 산업에 세액 공제를 신설하겠다고 하는데, 여기에 e스포츠 대회 운영도 들어 있다. 그리고 이 공약은 다른 정책과 연결이 된다. 더불어민주당의 부산 지역 공약이다.


부산을 e스포츠 성지로 만들기 위해 국제대회 유치 같은 내용은 여당과 동일하지만 세액 공제와 연계되므로 조금 더 구체화된다. 또한 일시적 이벤트인 대회만이 아니라 기관과 관광 스팟을 만들 생각이다. e스포츠진흥재단 설립이라는 아이디어는 지원 창구를 일원화 최소한 체계화하겠다는 말이다. 여기에 레전드 선수 기념관 및 박물관, 즉 e스포츠 명예의 전당을 건립한다. e스포츠에게 역사의 권위를 주겠다는 구체적 발상이고, 장소 또한 윤곽을 제시했다. 부산 서부권이다. 이런 내용이 콘텐츠 산업과 관광 산업의 분류에 들어가 있으니, ICT 산업으로 바라보는 여당의 시각과는 약간 맥락이 다르다.


* ‘제22대 총선 더불어민주당 온라인 정책공약집’ 중에서.

이 공약은 더불어민주당의 지역구 출마자의 공약이 중앙당 공약으로 들어온 경우다. 그 후보는 부산 사하구 을의 이재성 후보다.


부산 사하을 더불어민주당 이재성



이번 선거 2호 영입인재인 이재성 후보는 넷마블 이사와 NC소프트 전무를 거친 게임 기업인 속성을 갖고 있다. 특히 2009년, G-STAR가 벡스코로 이전할 당시의 게임산업협회 운영위원장이기도 했다. 당시의 이전 이유 중 하나는 e스포츠 경기의 기적적 성공인 2004년의 소위 ‘광안리 대첩’이었는데, 이재성 후보는 그 명맥이 끊겼음을 아쉬워하고 있다.


그래서 중앙당 공약에는 국제대회 유치라고만 적혀 있던 것이 후보의 공약에서는 다대포 해수욕장이라는 구체적 장소로 바뀐다. 이 공약은 다른 언론에서는 다대동을 아예 e스포츠 테마 시티로 조성한다는 단계로 발전하기도 한다. 또한 진흥재단 아이디어에 더하여 후보는 e스포츠 기술, 아마도 행정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연구소도 설립하겠다고 한다. 명예의 전당 공약과 세제 지원 공약도 있으니 중앙당의 e스포츠 공약을 디자인한 주체가 이재성 후보와 그 캠프임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이상의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서 입법 노동자인 국회의원이 할 일은 당연히 입법인데, ‘e스포츠 진흥에 관한 법률’을 개정할 것이라 한다. 전면 개정이라고 표현했으니 이미 밑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의미다.


반면 이렇게 밑그림과 구체적인 요소를 상정하고 있는 후보는 별로 없다. 이재성 후보와 비견될 후보는 서울 동작구 갑의 새로운미래 전병헌 후보다.



서울 동작갑 새로운미래 전병헌



3선 의원이자 청와대 정무수석이었던 전병헌 후보는 과거 KESPA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하지만 회장직 수행 중에 롯데홈쇼핑으로부터 후원금을 받는 과정이 석연치 않았고, 뇌물로 보이는 상품권을 가족 전체가 받았으며, 해외 출장비 횡령 혐의도 있는 등 복잡하고 커다란 비위 사실로 기소되었다.


판결은 일부만 유죄였지만, 그 일부로도 굉장히 무거운 형을 받았다. 뇌물 수수로 벌금 2천만 원,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업무상 횡령으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피선거권을 잃었고, 2022년 윤석열 대통령의 사면으로 피선거권이 회복되어 이번 선거에 출마했다. 후보 본인은 자신의 전과에 대해 많은 억울함이 있다고 말하고 그 말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해도, 일단 중형이 내려진 것은 사실이며, 게임계를 대변하는 대표 아이콘으로 통했던 그의 정치 커리어가 끝난 것도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반면 그런 약점과는 별개로, 과거 아이콘이었던 전병헌 후보의 게임 공약은 실하다. 후보가 제시하는 공략 시장은 중국과 신남방 국가인데, 이는 지난 문재인 정권에서 아세안 정상 회의를 서울에서 열어 한-아세안 정상 회의의 형태로 만들면서, 신흥 경제 성장국들인 동남아시아로의 진출을 모색했던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전략을 세우고 진출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제도와 정책을 개발하는 용도로 e스포츠 연구기관을 설립해 씽크탱크로 사용한다. 이 부분은 이재성 후보와 발상이 같은데, 국제대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공약도 그렇다.


여러 가지 외부 요소까지 염두에 둔 것이 분명한 공약의 끝에는 지역 e스포츠 활성화라는 짤막한 언급도 있다. 현 윤석열 정권의 공약인 지역연고제를 떠올리게 한다. 전병헌 후보는 이렇게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이재성 후보의 그림과는 맥락이 다소 다르다. 어쨌든 이런 구상이 실현된다면 몇몇 지역에는 e스포츠 경기장이 필요해진다. 자기 지역구에 e스포츠센터나 경기장을 건설하는 공약을 한 후보들도 있지만 이재성, 전병헌 후보와 발을 맞추는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다양하지만 납작한 지역 공약


국민의힘으로 경기도 용인시 병 지역구에 출마한 고석 후보는 고등군사법원장을 했던 육군 준장, 즉 판사 장군이다. 현 정권의 공약을 염두에 뒀을 것이 분명한 용인 연고의 e스포츠 구단 창설을 공약했다.


같은 당으로 경기도 수원시 정 지역구의 이수정 후보는 유명한 범죄심리학자인데, e스포츠센터와 특성화 교육기관 설립을 공약했다. 센터에서 정확히 어떤 기능을 기대하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교육기관 설립은 국민의힘 중앙당 공약의 내용이다. 센터 건립 공약은 3선 의원인 충주시의 국민의힘 이종배 후보 또한 공약했다. 국민의힘 경기도 평택시 갑의 한무경 후보는 글로벌 게임도시 조성을 공약했는데 추상적이기만 하여 가치 있는 공약이 되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 후보들도 비슷한 공약을 낸 후보들이 있다. 인천의 중구/강화군/옹진군 조택상 후보는 ‘2030 마린스카이 메가시티’라는 거대한 구상을 내놓으면서 생활스포츠타운과 게임복합문화영상 단지 조성을 끼워넣었다. 게임과 영상을 다루는 단지(complex)라고만 하여 전시 기능인지 경기장 기능인지 지원 센터 기능인지 알 수 없는 것은 이수정, 이종배 후보와 마찬가지다.


반면 고석 후보와 똑같이 고등군사법원장으로 육군 준장 예편한 3선 의원의 민홍철 의원은 경상남도 김해시 갑 후보인데, 지역 대학과 연계한 e스포츠 체육관 건립을 공약했다. 일단 체육관이니 경기가 가능하며, 대학과 연계한다는 것은 e스포츠 교육 기관을 인근 대학으로 지정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일정이 없을 때는 그 체육관을 대학의 실습 공간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추상성과 구체성이 동시에 만족된, 괜찮은 공약이다. 그러나 개발의 형태라는 점은 식상하기도 하다.


인천 계양구 을 후보이자 당대표이며 정부와 여당의 십자포화를 견뎌내고 있는 정국의 핵심, 이재명 후보 또한 얼마 전(심지어 원고를 마감한 후에!) 게임 공약을 발표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별 민심을 접수해 만들었다는 형식을 한 이 추가 공약들은, 예를 들면 자동차 커뮤니티인 보배드림에서 자동차 관련 정책 제안을 받았다는 식이었다. 게임 공약을 제안한 커뮤니티는 인벤닷컴.


이 공약의 제일 앞에는 게임 중독 근거법 개정이 있다. 통계법 22조를 개정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현재 질병코드 등재를 심사중인 민관협의체가 공회전하고 있는 것이 불안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행정 진행에 관해서는 분석을 한 적이 있다.)


인디게임을 취급하는 공공플랫폼을 활성화하는 것이 두 번째 공약이다. 인디게임의 판매와 제작 지원을 하려면 심사를 해야 하고, 그러자면 기준이 필요하므로 평가지표를 개발해야 하니 이것 또한 공약에 들어와 있다. 불공정한 게임 환경 철폐라는 공약은 얼핏 봐서는 내용을 알 수 없지만, 뒷광고 규제라고는 하지만 인터넷 방송인과의 프로모션 콘텐츠까지 영향을 받을 것으로도 읽힌다. 일련의 이 공약들은 민심 청취라는 점에는 긍정적이지만 동시에 커뮤니티의 여론, 거기서도 일부 여론이 게임 정책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는 과대표의 우려도 존재한다.



게임이 산업일 뿐?


누군가는 충실하게, 누군가는 허술하게 게임 공약을 준비했으나 아쉬움이 큰 것은 어쩔 수 없다. 중앙당 공약은 거대 양당에만 그치고 있고, 공약을 낸 모두가 e스포츠, 그것도 산업의 측면만 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어쩔 수 없는 현실 정치의 속성이다. 당장 이재성 후보나 전병헌 후보가 산업 외 측면의 게임에 대해 어떤 비전을 갖고 있더라도 지역구 후보로 나온 이상은 그 비전을 노출하기가 어렵다. 지역구 국회의원은 중앙 정치인이지만 지역에서 당선되어야 하는, 사소하지만 중대한 모순 때문에 이들은 중앙 입법 공약보다 지역 개발 공약을 먼저 내놓아야만 당선 확률이 높아진다. 따라서 선거 공약에는 개발, 관광, 교육, 수출의 측면만 강조될 수밖에 없고 중앙당의 중앙 공약 또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유권자인 우리는 정치인이 공약으로 내놓는 한두 개의 단어를 보고 그 정치인의 방향성을 엿봐야 하는 어려운 게임을 하고 있다. 광안리 대첩을 재현하려는 이재성 후보나 한국 게임이 동아시아 시장 전체로 진출하는 꿈을 꾸는 전병헌 후보의 산업적 비전은 엿보았고, 노력한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지만 그 이상 혹은 그 외를 기대하는 것은 정말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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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인)

프리랜서 기자.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라고 확신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 커리어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애써 뺀 살이 다시 돌아온 것에 자신을 탓하지만 어차피 인생은 돌고 도는 윤회의 쳇바퀴 아니겠냐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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