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 Back

축소 지향 헌터들 연대기:<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어떻게 손 안에 축소되었다가 혼종적으로 변모하려고 하는가

25

GG Vol. 

25. 8. 10.


1. 단기지향적인 헌터 파티: 로컬 멀티플레이 액션 게임으로서 정체성

 

작년에 20주년을 맞이하게 된 캡콤 제작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2000년대 초부터 대두되고 있던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이라는 새로운 형식에 대한 일본 게임계의 대답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게임이 처음 등장했던 2004년 일본 게임업계는 2002년 성공적으로 MMORPG를 콘솔 게임에 이식한 <파이널 판타지 XI>를 제외하면 마땅한 청사진이 없었다. 가장 큰 문제로는 당시 대세였던 콘솔인 플레이스테이션2 (이하 PS2)의 한계가 있었다. 이론적으로 PS2는 인터넷 대응이 되었지만, 인터넷 보급 문제와 더불어 <파이널 판타지 XI>나 <몬스터 헌터> 시리즈를 제외한 몇몇 게임을 제외하면 사실상 없는 기능이나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인기를 끈 <파이널 판타지 XI>조차도 외장 하드를 달아야 플레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장벽이 좀 있었다. 플레이스테이션이 본격적으로 인터넷 대응이 된 건 사실상 PS3 시절부터다.

 

콘솔 위주로 흘러갔던 일본 게임업계 입장에서는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 만들기에 상당한 제약이 걸린 셈이다. 그래서인지 2000년대 초 일본 게임계에는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을 오프라인으로 옮겨놓고 상상하게 하는 부류의 유사 온라인 게임이 더러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파이널 판타지 XI>와 엇비슷한 시기에 인기를 끌었던 프랜차이즈 <닷핵> 시리즈가 있다. 이 프랜차이즈는 실제 알맹이는 전형적인 일본 싱글 플레이 RPG 게임이었지만, 일본 게임 유저들에게 온라인 (RPG) 게임이 무엇인지 알려주려고 기획되었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당시 일본 게임업계에서 온라인 멀티플레이라는 개념이 일종의 괴리감이 있었다는 현상인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1999년부터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을 준비해 왔던 캡콤으로서도 MMORPG나 멀티플레이 게임을 내놓는데 조심스러웠다. 캡콤 멀티플레이 게임 프로젝트의 초기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그 점에서 온라인 멀티플레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아예 헌팅 액션 게임이라 불리는 장르로) 토착화되고 발전해 갔는지를 보여주는 게임이다. 기본적으로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삼인칭 액션 게임 기반으로 하되, 규모를 늘린 중후기 일부 토벌 퀘스트를 제외하면 4인 위주의 소규모 파티 경향이 강했던 게임이었다. 정확히는 MMORPG의 보스몹 레이드 개념을 싱글 플레이 기반 액션 어드벤처 게임의 보스전과 합치고 재해석한 후, 플레이어 혼자 또는 소수의 헌터 동료와 우직하게 보스 몬스터를 파고들고 대응해 가며 진행하는 게임이었다.

 

이렇기에 초창기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그 점에서 시작부터 제법 인기를 얻었지만, 코어한 경향이 강했다. 게임 디자인 자체의 불친절함과 더불어 상술한 온라인 플레이의 한계로 실상 솔로 플레이를 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초기 <몬스터 헌터>는 온라인 플레이를 하기 위해 KDDI 멀티 매칭 BB라는 유료 온라인 서비스에 가입해야 했다. 시리즈가 지향했던 소규모 멀티플레이 환경은 어울리지 않는 거치형 콘솔이라는 옷을 입고 있었던 셈이다. 여기다 명확한 레벨링 시스템 없이 (간단히 말해 헌터 랭킹이 캐릭터 능력치랑 바로 연결되지 않는다) 장비와 전투 숙련도로 플레이어의 실력을 가늠하는 게임 디자인과 더불어 ‘물욕 센서’로 지칭되곤 했던, 2(DOS)부터 도입된 지난한 채집 요소들도 이런 문턱에 한몫했다. 그렇기에 2부터 몬스터 헌터는 반복되는 수렵과 채집으로 장비를 만들고 개별 몬스터 파훼법을 감각으로 익혀야 다음 진행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게임이 되었다. 이를 종합해서 보면 극 초기작들은 입문자에게는 상당한 부담이었다는 건 유추할 수 있다.

 

1편 프로젝트가 끝날 무렵, 캡콤은 1편을 PSP로 이식하기로 결정한다. 플레이스테이션 포터블 (이하 PSP)이 게임보이 어드밴스드나 원더스완으로 대표되던 휴대용 게임기에 완전히 새로운 판도를 열였기 때문이다. PSP는 비슷한 시기에 발매되었던 닌텐도 DS보다도 전체적인 성능도 훨씬 나았던데다 네트워크 기술이나 지원이 좋았던 편이었기에 <몬스터 헌터> 시리즈로서는 충분히 승산있는 시장이었다. 다만 <몬스터 헌터 포터블> 당시에도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온전한 온라인 게임이라 보긴 힘들었다. <포터블> 시절에도 무선랜 환경은 아직 초창기 단계였기에 지금과 같은 인터넷 환경을 지원하기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이런저런 고려 끝에 포터블 시리즈는 애드 혹이라는 단말기 간 직접 통신을 이용한 소규모 로컬 멀티플레이 시스템만을 공식 지원했고, 온라인 플레이를 하려면 우회적인 편법을 동원해야 했다. 그렇기에 <몬스터 헌터> 제작진이 포터블 시리즈를 발매하면서 처음 노렸던 것은 다소 축소된 PS2 게임을 손에 들고 사람들과 만나 기기들끼리 로컬 멀티플레이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실상 TRPG나 보드게임을 즐기는 방식하고 크게 떨어져 있지 않은 셈이다.

 

이렇듯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당시 일본 콘솔 온라인 환경의 한계 속에서 처음 등장한 게임이기에, MMORPG와 동떨어진 방향으로 발전해 왔으며 온라인 게임을 추구했음에도, 내실은 로컬 멀티플레이 액션 게임에 가깝게 정립되었다. 심지어 <월드> 이전까지는 싱글 플레이 퀘스트와 멀티플레이 퀘스트가 분리되어 있을 정도로 제작 단계에서부터 싱글 플레이 게임 관점에서 멀티플레이와 온라인을 접근했다는 흔적들을 찾을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가장 크게 주목할 부분이 있다. 바로 이 시리즈가 멀티플레이 유저 간 상호작용에 상당히 제약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몬스터 헌터> 시리즈에는 MMORPG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레이어 간 물물 교환이라는 개념이 없다.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모든 재화나 장비는 플레이어 본인이 직접 채집하거나, 제작해야 하며 플레이어 간에 교환하는 방법은 없다.

 

전반적으로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멀티플레이 유저들을 NPC 파티원을 대신하는 존재에 가깝게 정립하고 있으며 (물론 여전히 한계가 있는 NPC AI 동료에 비하면 강력하고 유용한 존재이긴 하다), 복잡한 유저 간 관계 구축에는 큰 관심이 없는 게임이다. 어찌 보면 상당히 폐쇄적인 관계라 할 수 있는데 실제로도 <월드> 이전까지는 다른 유저의 퀘스트 난입할 수 없었다. 다른 유저를 만날 수 있는 장소는 필드 이외에는 퀘스트를 수주받고 정비하는 마을 내 한정된 공간 정도였고, 게임 내 길드 설립이나, 대항전 같은 시스템은 당연히 없었다. 모든 파티는 퀘스트를 위해 일시적으로 성립하고 종료 후 해체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나마 <월드>부터 이런 개념들이 조금씩 확장되는 추세다.

 

전반적으로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플레이하다가 다른 유저를 만난다는 개념 자체가 오랫동안 없었고, 혼자서 즐기거나 (오프라인이든 인터넷 커뮤니티든) 사전에 알게 된 사람들끼리 네트워크로 모여서 레이드를 뛴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렇기에 <몬스터 헌터> 내에서 처음 만난 헌터랑 교류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길드 카드를 서로 확인하고 등록한다는, 지극히 일본 명함 문화를 떠올리게 하는 시스템을 쓰고 있다.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그 점에서 어떤 끊임없이 돌아가는 유저 생태계를 구현한다기보다는, 혼자서 즐기는 싱글 플레이 게임에 멀티플레이 요소를 도입해 일시적으로 모였다 퀘스트 클리어 후 해체하고 초면인 사람은 길드 카드로 교환해 교류를 이어간다는, 단기지향적인 부족/길드적인 감각으로 확장해 온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여러모로 기존 MMORPG나 MMOFPS하고는 완전히 다른 폐쇄적인 경향이 짙었지만, <몬스터 헌터>는 포터블 시리즈를 통해 <퀘이크>로 대표되던 랜파티 게임의 진화를 상징하는 게임 중 하나가 되었다. 다시 말해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정통적인 삼인칭 액션 게임을 휴대용에 맞게 ‘축소’한 후 네트워크 멀티플레이 영역을 기술적 발전과 맞춰 확장해 성공한, 꽤 독특한 방식으로 성공가도를 달려왔던 게임이다. 상술한 단기지향적인 부족/길드적 감각과 연계해 보면 게임 자체의 엔드 콘텐츠 지향적인 요소를 제외한다면 부담 없이 서로 연결하고 끊어질 수 있는 동료 관계를 지향해온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몬스터 헌터> 시리즈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멀티플레이 게임들을 기점으로 랜파티 게임은 단순히 한 장소에 고정된 컴퓨터/콘솔과 인터넷이 아닌, 휴대용 게임기 간의 무선 통신, (나아가 무선랜)을 통해 언제든지 모일 수 있게 변했다. 어찌 보면 2000년대 중후반 이후 흔해진 집 바깥에서 게임기나 스마트폰을 맞대고 대전하거나 파티 플레이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대중적으로 끌어낸 게임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다.

 


2. 축소 지향에서, 확장 지향으로: <4>와 <월드>의 급변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2편인 DOS 시리즈가 종료될 무렵, 두 가지 방향으로 나눠진다. 우선 스기우라 카즈노리를 주축으로 DOS 디자인을 들고 PC 쪽으로 분가해 본격적인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이 되려고 도전한 <프론티어> 시리즈가 있다. <프론티어>도 설왕설래가 있긴 해도 장기 서비스했을 정도로 성공한 편이지만, 게임계는 본가 쪽에 훨씬 더 주목했다. 왜냐하면 본가 쪽은 상술했던 축소 지향을 심화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나갔기 때문이다. 그래도 <트라이>까지는 선 거치형 콘솔, 후 휴대용 콘솔이라는 원칙을 지켰지만 <몬스터 헌터 4>부터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아예 휴대용 콘솔인 3DS로 이적해 자신을 훨씬 더 축소하기에 이른다. 콘솔 세대가 교체될 무렵, 거치형 콘솔을 버린다는 과감한 선택을 한 셈인데 오히려 이 시기부터 휴대용으로는 최초로 온라인 환경을 공식적으로 대응하는 등 멀티플레이 환경 개선에 주력하는 등 손안에서 즐길 수 있는 소규모 멀티플레이 액션 게임이라는 장점을 극대화하려고 했다.

 

다만 좋은 변화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몬스터 헌터 4>부터 게임 그래픽이나 기타 요소는 사실상 정체되게 된다. 물론 그대로 사용하지만은 않고, 새 게임이 나올 때마다 새 몬스터와 배경이 추가되고 큼직한 변화가 있긴 했지만, 사실상 이 시절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PS2~Wii 시절 게임 디자인이나 에셋을 대다수 재활용하면서 휴대용 게임기의 성능에 맞춰가는 방식으로 수명을 연장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인기의 큰 원동력인 휴대용 멀티플레이 액션 게임이라는 개념은 잘 지켜냈으니, 대다수의 유저들은 별말 없이 따라왔고 신규 유입도 수월히 이뤄졌다. 하지만 반대로 이걸 ‘우려먹기’나 한계에 갇혔다고 여기는 불만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몬스터 헌터 4>가 이적한 닌텐도 콘솔들은 성능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부류였기에 <몬스터 헌터> 시리즈가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고 있다는 비판 의견도 강해져 갔다.

 

3DS 후기/말기에 발매된 <몬스터 헌터 크로스> 시리즈는 그 점에서 ‘축소 지향의 헌터’ 시절이 끝났음을 선언하는 시기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크로스>가 발매될 당시 혜성같이 등장한 스마트폰 시장이 점점 몸집을 키워가면서 휴대용 게임기라는 개념 자체가 다시 격변을 겪고 있었다는 점이다. 휴대용 게임기를 샀던 구매층은 대다수 스마트폰 쪽으로 이동했고, 이제 휴대용 게임기는 스마트폰과 차별화를 해야 했다. 닌텐도도 이를 염두에 둬 스마트폰 도입 초창기 발매된 3DS에서 3D 기능을 내세워 차별화를 시도했지만, 콘솔 자체의 성공과 반대로 막상 3D 게임은 정착에 실패했다. 당시 Wii U도 실패한 상태라 닌텐도는 차기작으로는 휴대용/거치용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고, 스위치라는 휴대용과 거치용이 결합한 혼종 콘솔을 내세우게 된다. 즉 중간급 성능의 거치형 콘솔과 휴대용 게임기 콘셉트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성능과 단가 간의 줄타기를 시도했다.

 

세대 교체된 현시점에서 보자면 닌텐도 스위치는 8세대 콘솔 초창기 사양(PS4/Xbox One)으로, FHD 수준을 온전히 구현할 여력을 실현한 첫 닌텐도 콘솔이자 거치형 게임기와 휴대용 게임기 간의 경계를 무너트린 최초의 콘솔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고사양을 지향하는 플레이스테이션이나 엑스박스 간의 괴리는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지만, 그렇기에 저 둘이나 스마트폰이 갈 수 없었던 영역을 갔다는 점에서 스위치는 게임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콘솔이다. 스팀 덱을 비롯한 혼종적인 핸드헬드 게임용 PC들의 물꼬를 터준 게임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캡콤도 그 혼종적인 가능성을 주목했다. 2017년 닌텐도 스위치 발매가 이뤄졌고, 동시에 <더블 크로스> 스위치판 발매와 거치형 콘솔 복귀작 <몬스터 헌터 월드>가 발표되었다. 이는 <몬스터 헌터> 시리즈를 지배해왔던 축소 지향적인 헤게모니가 완전히 막을 내렸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더블 크로스> 스위치판은 단순히 확장판 이상으로, 스위치의 휴대용/거치용 콘솔 간 혼종적 성향을 따라가겠다는 천명이었다. <몬스터 헌터> 시리즈 제작진이 다시 거치형 콘솔로 돌아가기로 한 것은, 지금까지 휴대용 게임기에 맞춰왔던 <몬스터 헌터> 시리즈의 방향성을 재정립하고 확장하기 위해서라 봐야 한다.

 

그렇게 <월드>는 새로운 <몬스터 헌터> 청사진을 제시하는 게임이 되었다. 우선 <월드>는 기존의 멀티플레이 환경을 그동안 발전한 인터넷 환경에 맞게 확장했다. <월드>는 상시 온라인 연결을 요구할 정도로 온라인 비중이 높아진 첫 <몬스터 헌터> 시리즈였다. 후술하겠지만 이는 토쿠다 유야가 제작한 몬스터 헌터 시리즈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온라인과 멀티플레이 간의 결합을 고려한 듯한 디자인이 대거 도입되었다. 싱글 플레이와 멀티플레이 퀘스트가 하나로 합쳐졌고, 구조신호라는 개념을 통해 다른 플레이어의 개입을 허용하게 조처했다. 플레이어는 퀘스트를 진행하다가 도무지 어렵겠다 싶으면, 베이스캠프에서 구조신호를 쏴 올릴 수 있다. 이 구조신호는 집회소에 있는 퀘스트 게시판에서 등록되어 다른 헌터들이 확인하고 중도 참여할 수 있다. 한번 퀘스트를 시작하면 타인의 접근이 차단되는, 어떤 소규모 부족 내지는 길드적인 멀티플레이를 지향해왔던 <몬스터 헌터> 시리즈가 처음으로 완라인으로 연결된 타인의 개입을 허락했다는 점에서 꽤 중요한 변화라 할 수 있다.

 

<월드>가 한창 진행되던 시절에 더 큰 결단이 하나 일어났다. 2019년 상술했던 <프론티어> 서비스를 정리한 것이다. 의도는 명확했다. <몬스터 헌터>가 그동안 취해왔던 이원화 멀티플레이 노선을 폐기하고 하나의 게임으로 합치겠다는 의도였다. 실제로 <프론티어> 서비스 종료 당시, DOS 기반 디자인이 2010년대에 들어서서 너무 낡았기에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프론티어>의 서비스 종료는 <더블 크로스> 스위치판과 더불어, DOS 시절 디자인과 노선이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며 <몬스터 헌터> 시리즈가 앞으로 어떤 방향성으로 나아갈지 보여주는 실마리기도 했다. 바로 혼종적인 것들을 배합하면서 새로운 정체성을 창출하려는 방향성이다.

 


3. 혼종적 세계화의 성공과 위험: <라이즈>와 <와일즈> 시대의 명암

 

<월드>를 마무리한 뒤,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라이즈>를 발매해 다시 스위치에서 시작했다. <라이즈>는 <월드>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다소 사양이 떨어지는 스위치로 개발되었기에 기기 특성상 <더블 크로스> 시절의 게임 디자인과 비주얼로 회귀한 구석도 있었지만, 이 회귀엔 의미는 달라졌다. 자신을 정체시키는 방식으로 축소해 왔던 <4>랑 달리, <라이즈>는 <월드>에서 시작된 변화와 풀 스케일적인 게임의 지향성을 고려하면서도, 휴대용 게임기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증명했기 때문이다. 이는 상술했던 닌텐도 스위치의 혼종적인 특성에서 기반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PSP에서 3DS로 넘어가면서, <몬스터 헌터>는 콘텐츠 축소 이상으로 구세대 게임이라는 오명을 쓸 각오하면서 자기의 정체성을 지켜갔다. 하지만 상술했듯이 이런 선택은 정체를 의미했고, 거치형 콘솔과 휴대용 콘솔 간에는 명백한 계급 의식 내지는 상하관계가 당시엔 강하게 있었기에, 시대에 뒤처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스위치는 그 계급 의식을 상당히 없애버렸고 그 결과 <라이즈>는 <월드>보다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구세대 게임이라는 오명을 쓸 정도는 아니었다. 실제로도 <라이즈>는 이후 다른 거치형 콘솔과 PC로도 이식되었다. <라이즈>는 그 점에서 좀 더 고전 <몬스터 헌터>로 회귀하면서도 휴대용과 거치형, 온라인과 오프라인, 싱글 플레이와 멀티플레이 간의 혼종을 염두에 두는 2010년대 후반 이후 <몬스터 헌터> 시리즈의 방향성을 선언하는 포부였다. 이후 다시 거치형 콘솔로만 발매된 <와일즈>가 나왔기에 <라이즈>를 잇는 휴대-거치 혼종적 콘솔 지향 <몬스터 헌터> 게임이 다시 나올지는 조금 기다려야 하겠지만, 적어도 <몬스터 헌터> 시리즈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양방향 노선을 짜고 있다는 것은 명확하다.

 

간단히 말해 캡콤은 <월드>, <라이즈>와 <와일즈>를 통해 축소 지향 시절 다져놓았던 소규모-단기적 멀티플레이 게임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유행을 쫓아가고 싶어 한다. 그 점에서 <월드>와 <라이즈>는 휴대용 콘솔의 혼종적 변화라는 사건을 두고 이뤄진 변증법적인 관계를 형성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월드>와 <와일즈> 같은 거치용 콘솔 전용 <몬스터 헌터>를 통해 공격적으로 외양을 확장하고, 이때 받은 피드백을 <라이즈> 같은 휴대용 게임기 중심 혼종 지향 <몬스터 헌터>로 적용해 내실을 꾀하는 것이다.

 

다만 올해 발매된 <와일즈>가 겪고 있는 위기는 캡콤이 새로이 내세우고 있는 지향성이 자칫하면 위험해질 수 있는 방향성이라는 걸 보여주고 있다. 이 문제는 역설적으로 온라인의 비중을 늘려 지금까지 단단하게 유지해 왔던 경계를 무너트리고 공간을 확장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다. 사실 <월드>부터 온라인 서비스로서 정체성을 강화하고 필드 세계를 풍부하게 하려는 토쿠다 유야의 노선과 이에 반발하며 싱글 플레이/소규모 멀티플레이 콘텐츠에도 신경 써 주라고 요구한 유저들 간의 대립이 암암리에 이어왔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몇몇 문제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줄타기에 성공했던 <월드>랑 달리 <와일즈>는 괜찮은 싱글 플레이 콘텐츠와 정반대로 부족한 멀티플레이 엔드 콘텐츠 문제와 더불어 온라인 환경을 강제하는 방향성과 디자인상 여러 문제로 많은 반발을 샀고 대량 유저 이탈로까지 이어졌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와일즈>는 세미 오픈 월드 도입과 더불어 파티원 이외 필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른 헌터들을 볼 수 있는 첫 번째 <몬스터 헌터> 게임이라는 것이다. 설정상으로 <와일즈>의 헌터들은 개척자에 가까운지라 베이스캠프가 집회소 역할을 맡게 되었으며, 필드에서도 파티원 이외 헌터들을 계속 볼 수 있게 되었다. 여기다 기존 퀘스트 수주 시스템에다 자율 탐사 도중 필드에 돌아다니는 몬스터를 공격해 퀘스트를 시작하는 시스템을 추가하면서 수렵을 바로 시작할 수 있도록 변했다. 이렇게 필드에서 몬스터를 공격하면 퀘스트를 발동하면 여러 추가 보상이 주어진다는 이점으로 헌터가 세미 오픈 월드 시스템을 거쳐 가도록 유도하고 있다.

 

<와일즈>에서 확실해진 점이 있다면 토쿠다 유야 체제 <몬스터 헌터>는 시리즈가 암암리에 지켜져 왔던 폐쇄적으로 구분된 공간과 헌터 간 관계망, 퀘스트 구조를 실제 수렵 과정 내지는 온라인 게임처럼 ‘열려있게’ 변하는 방식으로 게임의 외연을 확장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상술한 <프론티어> 서비스 종료와 연계해서 보면, <월드>와 <와일즈>는 여러모로 온라인 (세미) 오픈 월드 헌팅 액션 게임으로서 <몬스터 헌터> 시리즈를 유도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단순히 기종뿐만이 아니라 게임 디자인에서도 혼종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세미 오픈월드적인 시도들에 대한 반응은 그리 좋지 못하며 <와일즈>에 이르면 콘텐츠 강요라는 비난까지 나올 정도로 많은 반발을 사고 있다. 이런 반발은 지금까지 정체성과 신규 요소가 잘 조화되지 못했던 부분도 있다.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퀘스트를 하기 전 거점에서 준비한 뒤 출발하고, 퀘스트 종료 후 거점에서 재정비하는 절차가 강한 게임이다. 그렇기에 거점과 몬스터가 있는 필드 사이의 경계를 흐릿하게 하고 자유롭게 다니게 하는 세미 오픈 월드 구성을 취할 거면 완전히 새로운 방법론을 택해야 했다. 즉 헌터가 거점과 필드 간의 전환을 해야 할 강한 동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와일즈>는 다소 안이한 절충주의를 택했다. 그 결과 세계의 밀도는 높아졌는데, 정작 그 높아진 밀도가 핵심 콘텐츠인 헌팅/채집에 포만감보다 피로감을 더한다는 <월드> 당시의 지적이 오히려 심화하여 나타나게 되었다. 자율 탐사 도중 수렵 퀘스트 돌입 시 추가 보상 역시 일부러 헌터가 세미 오픈 월드 형식을 따라가야 할 강력한 동기 유발이 되지는 못했다는 게 발매 후 중론이다.

 

결국 <와일즈>의 반쯤 열린 세계는 중간이 희박하고, 그 중간에 들어간 요소들은 헌터 입장에서는 지극히 미시적 것들이라 지금까지의 싱글 플레이 기반으로 칼같이 구분된 공간과 관계망에서 진행되는 부족적이고 단기지향적 멀티플레이에서는 오히려 불편한 요소가 되어버렸다. <월드> 시절부터 거의 반 강제화된 온라인 환경이 정작 여전히 불안정하다는 사실 역시 피로감을 가중하는 결과만 나왔다. 즉 <와일즈>는 시리즈 기준으로 과감하게 세계의 경계를 허물었고 그 지점에서만 한정해서 보면 어느 정도 성취를 거뒀지만, 정작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게임 디자인과는 잘 조화되지 않고 어색하게 동거하는 모양새가 되어 자기 발목을 잡은 셈이다. 이외 <와일즈>가 겪고 있는 다른 문제들도 있으나, 이 글 방향성에서는 다소 일탈하기에 생략한다.

 

<와일즈>가 지금 겪는 진통은 거치형 콘솔 <몬스터 헌터>로 복귀 후 생긴 과도기 현상의 지나친 지속/개악과 더불어 유저들과 개발진의 성향 차와 알력이 맞물려 벌어진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월드> 이후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싱글 플레이 액션 게임을 확장한 소규모 멀티플레이 게임이라는 기존 정체성과 세미 오픈 월드-온라인 게임이라는 새로운 정체성 간의 혼종을 꾀하려 하나, <와일즈>에서는 계산 실패로 걸려 넘어졌고 그 결과 헌터들은 이탈했다. 그렇기에 <와일즈>의 진통은 역설적으로 싱글 플레이와 멀티플레이 간의 경계가 아직도 견고하며, <몬스터 헌터> 시리즈가 <월드>부터 내세우는 기종적, 게임 디자인적 혼종이 여전히 난제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몬스터 헌터> 시리즈가 완전히 끝장났다고 보긴 힘들다. 일단 시리즈 전통으로 확장판을 내놓아 타이틀의 수명을 늘리는 전략이 있었고, 2010년대부터 서비스로서 게임 개념이 강해지면서 당장의 곤란만으로 게임 전체의 수명을 판단하기엔 힘들어졌다. 물론 <와일즈>가 이렇게 되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여기다 <몬스터 헌터> 시리즈엔 <와일즈>가 완전히 망하더라도 혼종적 휴대용 게임기라는 성과를 이어가려는 스위치 2라는 와일드카드가 있다. 지금 당장은 스위치 2로 나올 <몬스터 헌터> 신작이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힘들지만, 적어도 <라이즈>에서 그들은 휴대용 게임기의 새로운 가능성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야심을 보였다. 그렇기에 다시 살짝 축소한 뒤 소규모 멀티플레이의 재미를 내세우는 고전적이지만 시류도 잘 따르는 <라이즈> 스타일의 <몬스터 헌터>로 성난 헌터들을 유혹하려는 건 시간 문제리라 본다. 그렇기에 <몬스터 헌터> 시리즈가 축소 지향 및 휴대용 게임기 지향으로 획득한 정체성은 유령처럼 사라지지 않고 끈질기게 프랜차이즈를 맴돌고 있으며, 캡콤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한동안 계속될 것이다.

Tags:

몬스터헌터, 프랜차이즈, 액션롤플레잉, 일본게임, 헌팅액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이경혁.jpg

(비평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전문사 졸업 후 영화•게임 비평 기고 활동중. 어드벤처 게임 좋아함. (antistar23@gmail.com)

이경혁.jpg

크래프톤로고

​게임세대의 문화담론 플랫폼 게임제너레이션은 크래프톤의 후원으로 게임문화재단이 만들고 있습니다.

gg로고
게임문화재단
드래곤랩 로고

Powered by 

발행처 : (재)게임문화재단  I  발행인 : 유병한  I  편집인 : 조수현

주소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로 114, 2층(방배동)  I  등록번호 : 서초마00115호  I  등록일 : 2021.6.28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