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결과
공란으로 656개 검색됨
- 게임제너레이션::필자::김민하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시사평론가로 활동하지만 게임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게이머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냉소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돼지의 왕』이 있고,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우파의 불만』, 『트위터, 그 140자 평등주의』 등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최근작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가 있다. 김민하 김민하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시사평론가로 활동하지만 게임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게이머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냉소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돼지의 왕』이 있고,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우파의 불만』, 『트위터, 그 140자 평등주의』 등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최근작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가 있다. Read More 버튼 읽기 전쟁, 게임, 그리고 게임화라는 이름의 수치화 전쟁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유명 게임 프랜차이즈의 대사도 있지만, 좀 더 현실에 가까운 영역에서 전쟁은 진화를 거듭해왔다. 그러한 진화는 ‘전쟁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의 답이 특정 방향으로 발전해 온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전쟁은 내 이웃과 친구들의 비극 혹은 그걸 막기 위한 결단인가, 아니면 권력을 잡거나 방어하기 위해 장기판의 말을 옮기는 것과 같은 형식의 게임에 불과한가? 버튼 읽기 <페르소나 3 리로드> 일본 정치와 함께 톺아보기 <페르소나 3>는 <페르소나 시리즈> 전체로 보면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여신전생 시리즈>의 외전 격으로 개발된 시리즈의 핵심 정체성을 확립한 타이틀이기 때문이다. <여신전생 시리즈>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던전RPG를 표방하는데, 던전 탐색에 악마 소환 및 합체를 결합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페르소나 시리즈>도 큰 틀에서는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고전 시절의 1인칭 시점을 고수하진 않지만, 게임의 핵심 축은 여전히 던전과 전투이다. 버튼 읽기 감염, AI, 그리고 <발더스 게이트> 적어도 분명한 것은, 앞에서도 강조한 것처럼 이제 인류는 이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다루든 피할 수 없는 위협으로 다루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가끔은 망상하듯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가령 고타쉬는 현실의 누구인가? 우리 곁의 ‘황제’는 누구 혹은 어떤 것이며, 어떤 모습으로 당신을 현혹하고 있는가? 버튼 읽기 <폴아웃 3>로 보는 후쿠시마 오염수 사태 인간은 절멸을 앞둔 위기 속에서도 ‘프로젝트 퓨리티’가 가능하든 그렇지 않든, 계속 노력할 것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방사능 비가 내리게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상기에 서술한 문제가 실제로 발생하거나 그것이 우려될 때, 인류는 블레이드 러너의 그 장면을 다시 떠올리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인류는 살아갈 것이고 또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오늘의 결정을 신중히 하고 혹시 다른 대안이 없는지 좀 더 찾아보자는 주장은 보편타당성을 갖게 된다. 그렇기에 우려나 악몽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남의 발언을 선동으로 규정하는 선동이 더 위험한 세상 아닌가? 버튼 읽기 〈폴아웃〉의 미국, 오늘날의 미국 중요한 것은 어떤 선택지를 고르더라도 그 결과는 앞서 본 것처럼 미국 역사의 어떤 장면을 재현하는 것에 그칠 거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같은 하늘 아래 있을 수 없는 듯 보이는 트럼프와 바이든의 미국 역시도 길게 보면 동일한 미국 역사의 반복에 불과하다. 바이든은 트럼프를 불러 들이고, 트럼프는 다시 바이든을 되살려 내며 끝도 없이 갈등한다. 버튼 읽기 <용과 같이>, 관광게임 속의 정치적 맥락들 그러나 현실의 우리에게도 용과 같이 시리즈의 주인공 처럼 행동할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휴가를 내서 관광지로 여행을 떠난 경우가 그렇다. 일상으로 돌아가 해결해야 할 여러 복잡한 난제를 머리 속에 넣고 있는 상태에서도 우리는 도쿄 신주쿠, 오사카 도톤보리, 오키나와, 후쿠오카, 삿포로, 나고야, 요코하마 등의 거리를 거닐고 지역 음식 등 문화를 경험하면서 하루종일 즐길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용과 같이 시리즈를 플레이하는 우리는 코로나19 시대에 일본 관광을 즐기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게 이 시리즈가 본질적으로 관광 게임인 이유이다. 버튼 읽기 되돌릴 수 있는가? - 13기병방위권, 호라이즌, 우크라이나 물론 게임은 현실과 다르다. 게임을 통해 얻은 이러한 통찰을 현실에 적용한다고 하면 어떤 일이 가능할까? 회고적 평가를 전제하는 슬로건을 거부하는 것이 시작이다. 과거의 정상적 상태를 회복하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원칙과 대안을 논하는 일이 필요하다. 과거 러시아가 지배한 영토가 어디든 우크라이나를 침공해도 되는 이유는 애초에 없다. 버튼 읽기 온라인게임, 멀티플레이, 그리고 경쟁 한때는 ‘온라인 게임’이 곧 새로운 미래가 될 거라 믿던 시기도 있었다. 코로나19라는 이벤트까지 거친 후 지금 돌아보면 어떤가? 부분적으로 온라인 시스템을 수용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게임은 여전히 오프라인이 중심인 느낌이다. 버튼 읽기 고전게임 리메이크에서 트리플 A를 고려하는 방식에 관하여 세간에서 말하는 트리플A 게임만의 매력은 뭘까? 아무래도 화려한 그래픽과 사운드를 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현세대의 가장 앞선 기술을 다각도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포기하기 어려운 요소이다. 특히 게임 장르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는 게임-문법은 이미 앞세대의 게임에서 대개 구현이 완성된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트리플A 게임은 그것을 어떻게 규정하든 비주얼과 사운드라는 면에 방점을 찍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은 생산비 증가와 개발 기간의 장기화라는 어려움으로 이어졌다. 그러다보니 일각에선 ‘트리플A 포기론’까지 나올 정도이다. 버튼 읽기 예술이 되기 전에, 현실의 주인이 될 각오를 해야 한다 오로지 게임애호가일 뿐인 입장에서 게임과 예술에 대해 생각하면 “게임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외침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다들 아는대로 이러한 클리셰적 항변은 예술과 게임의 본질이나 실제로 게임이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는 조건 등을 따지는 것과는 큰 관계가 없다. ‘게임을 하는 나’에 대한 정당화 시도가 핵심이다.
- 마일즈 모랄레스의 정체성과 브루클린이라는 ‘장소’
마일즈의 불안은 인물(아마도 다른 시간선에서 스파이더맨이어야 했으나 프라울러가 되고 만 마일즈)의 형상을 취하다가 거미로 변모한다. 그의 공포는 스파이더맨이라는 자격과 정체성 그 자체에 대한 의구심이었던 셈이다. < Back 마일즈 모랄레스의 정체성과 브루클린이라는 ‘장소’ 17 GG Vol. 24. 4. 10. 2024년 3월 27일 소니 애니메이션은 이라는 7분 14초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공개했다. 최근 스파이더맨의 세계관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손쉽게 짐작할 수 있지만 현재 소니가 서사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스파이더맨은 1대인 피터 파커보다는 2대 마일즈 모랄레스다. 공개된 애니메이션도 스파이더버스를 잘 구현했다는 평을 받은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이후 시간선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마일즈의 불안한 심리를 악몽을 통해 보여준다. 파악할 수 없는, 즉 언어로 규정되어 특정한 국면으로 해석이 불가능한 것들은 확정된 표상을 갖지 않는다. 마일즈의 불안은 인물(아마도 다른 시간선에서 스파이더맨이어야 했으나 프라울러가 되고 만 마일즈)의 형상을 취하다가 거미로 변모한다. 그의 공포는 스파이더맨이라는 자격과 정체성 그 자체에 대한 의구심이었던 셈이다. 스파이더맨은 미성숙하고 심리적으로 불안한 청소년이라는 정체성과 결합된 히어로다. 마일즈의 악몽은 영웅으로서 의무와 자신과 연결된 세계만을 지키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한계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시간의 제약으로 인해 발생하는 시작과 끝이 전제된 서사에 기댄 선형적 방식은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의 다른 측면을 보여주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 스파이더맨은 뉴욕이라는 도시의 장소성에 기댄 히어로다. 그것은 웹스윙을 포함한 스파이더맨의 기술이 가진 매력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곳이 마천루의 숲, 맨해튼이라는 점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그를 수식한 다른 표현이 “친절한 이웃”이기 때문이다. 이 표현에는 특수한 그리고 출중한 능력을 가진 구원자로서 영웅이라는 정체성보다 내가 살고 있는 거리 나아가 도시와 관계 맺는 인간이라는 특성이 잘 드러난다. 그리고 스파이더맨의 정체성이 인간, 대상, 공간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라면 피터를 설명하는 요소는 뉴욕이라는 보다 공간에 가까운 이미지의 비중이 크다. 그에 비해 마일즈의 정체성은 브루클린이라는 구체적인 장소를 통해 만들어진다. ‘공간’과 구분되는 경험의 축적과 관계를 통해 의미가 부여된 ‘장소’를 구분해서 파악했던 것은 이 푸 투안의 접근법이다. 피터 파커는 퀸즈 출신이다. 그러나 퀸즈로 특정되는 장소보다는 스파이더맨이든 피터 파커라는 인간 개인이든 그의 정체성은 뉴욕이라는 냉혹한 자본주의의 정점에 서 있는 도시에서 좌절을 경험하고 의무감을 통해 각성하는 존재에 가깝다. 달리 말하면 피터 파커에게는 퀸즈가 그의 장소로 자리매김하는 사건이 부각되지 않는다. 이것은 1대 스파이더맨인 피터 파커가 너무 오랫동안 뉴욕의 히어로로 활약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와 달리 새로운 세대인 마일즈의 정체성은 동시대의 브루클린이라는 장소와 맞물려 있다. 브루클린은 경찰이었던 아버지의 사망 후에 국회의원이 된 어머니 리오 모랄레스의 장소인 할렘과는 다른 성격을 갖는다. 1930년대부터 1950년대 말까지 뉴욕 재즈의 중심지는 할렘이었다는 평가가 증명하는 것처럼 할렘은 재즈라는 새로운 음악 장르가 등장하면서 그 역동성과 흑인 공동체라는 정체성과 결합된 곳이었다. 도난당한 문화 박물관의 악기들을 찾아달라는 퀘스트는 흑인인 아버지와 히스패닉인 어머니 사이의 마일즈가 갖는 공동체적 정체성의 근간은 문화 박물관에 전시된 예술가와 그들의 악기를 통해 짐작할 수 있듯 문화적인 것을 포함한다. 마일즈 모랄레스라는 인물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인 힙합 역시 그는 의식하지 못하고 “옛날 음악”이라고 평가했지만 아버지가 좋아했던 재즈 색소폰 연주자 찰리 파커와 같은 인물들의 계승이기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마일즈의 표현대로 그것은 과거의 것이기에 새로운(그리고 젊은) 스파이더맨이라는 존재를 부각하기에 충분한 문화적 서사가 되기 어렵다. 오히려 청소년 마일즈의 주요한 인물 관계는 사이드킥 역할을 하는 강케와 여자친구 헤일리를 포함해 브루클린 비전이라는 학교를 중심으로 확장된 것들이다. <마블 스파이더맨2>에서 수행되는 퀘스트 중 상당수는 두 명의 스파이더맨 중 누구를 선택해 플레이해도 무관하지만 할렘과 브루클린에서 발생하는 퀘스트는 마일즈만 수행이 가능하다. 이 퀘스트들은 그야말로 “친절한 이웃”인 스파이더맨이자 브루클린 비전 재학생 마일즈를 연결하는 것들이다. 브루클린 비전의 라이벌인 미드타운이 훔쳐간 학교 마스코트인 사자 인형 랜스를 회수하기 위해 퀴즈를 푼다든지, 프롬파티에 파트너를 구하기 위해 썸남에게 고백하는 이벤트를 도와주는 일과 같은 퀘스트들은 재학생들에게는 너무나도 중요한 사건이다. 조력자로 활약하는 스파이더맨은 이들과 함께 브루클린을 경험하면서 영웅의 책임이라는 무거운 정체성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친절하고 (세대적으로도) 가까운 히어로의 표상을 획득한다. 앞서 거론한 퀘스트 중 랜스 찾기는 도시가 도로를 정비하고 건물을 건축하는 기획자들에 의해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퀘스트다. 마일즈는 도시 곳곳의 건물 옥상을 이동하면서 미드타운 학생들이 남긴 메시지를 통해 랜스를 숨긴 곳을 수색한다. 특정 각도로 거울을 움직여야 벽화에 투사되는 메시지는 그 내용보다는 도시에 산재한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벽화를 완상하기 위한 매개로 활용된다. 장소의 특수성은 그것을 인식하는 주체의 몸을 매개로 이루어진다. 마일즈가 이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조언을 구하는 이는 그래피티 활동가이자 개인 전시도 기획하는 도시미술가이자 그의 여자친구인 헤일리다. 마일즈라는 하나의 인물만으로는 포섭할 수 없는 문화적 기호를 헤일리와 같은 인물을 통해 분산해서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피티나 벽화와 같이 도시 계획과는 무관하게 거리를 수식하는 다양한 예술적 재현을 인식하는 일은 장소가 고립된 공간이 아닌 인간과 다른 인간, 다양한 사물과 연결되어 구축되는 역동적이고 상호의존적인 개념이라는 점을 상기하게 한다. <마블 스파이더맨2>은 튜토리얼은 맨하탄과 브루클린을 연결하는 브루클린 다리를 건너면서 시작된다. 이것은 이전 시리즈에 비해 브루클린과 퀸즈까지 확장된 맵을 보여주는 방식이기도 하다. 뉴욕에 편입된 이래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브루클린의 공간적 성격은 극적으로 변모했다. 1960년대 쇠락한 제조업의 상징이었고 실업자와 범죄자의 온상과도 같이 여겨졌던 브루클린은 현재는 현대 예술과 디자인의 요람이자 첨단 기술을 가진 신규 기업이 사옥을 건설할 공간으로 선택하는 곳이 됐다. 마일즈가 자신이 살던 브루클린을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곳”이라고 표현한 것은 과장은 아니었던 것이다. (아쉽게도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곳에 살던 마일즈는 어머니 때문에 할렘으로 이사했다.) 아울러 이곳은 1930년대 할렘에 거주했던 흑인들의 상당수가 브루클린 북부로 이주했다는 점에서 할렘의 장소성과 연장선상에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마일즈가 동시대적 현재를 보여주는 새로운 스파이더맨임을 알 수 있는 장치 중 그가 즐겨 착용하는 헤드셋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음악이다. <마블 스파이더맨2>의 아쉬운 점은 전작 <마블 스파이더맨: 마일스 모랄레스>에는 적절하게 활용됐던 힙합 중심의 OST가 이번 게임에서는 부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수자이자 방외자로서의 정체성에서 시작됐던 힙합이 대중성과 트렌드를 대표하는 장르가 된 것과 같이 마일즈는 그의 인종적 정체성의 비감에 고뇌하는 인물이기보다는 사교적인 성격의 캐주얼한 캐릭터로 그려진다. 음악, 나아가 사운드가 그를 견인하는 서사적 기법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상기하는 전략이다. OST 선정의 아쉬움에도 미스테리오가 운영하는 코니 아일랜드의 어트렉션 체험과 같은 에피소드는 실소를 짓게 만든다. 플레이어는 클럽 음악을 디제잉하는 마일즈를 통해 미스테리오발 미래 기술을 경험할 수 있다. 피터와 MJ, 해리가 코니 아일랜드를 추억의 놀이공원을 반추하는 것과는 상이한 체험이다. 마일즈의 브루클린 나아가 뉴욕이 그가 경험하는 사건과 관계 맺는 인물들을 통해 구성되는 것이라면 플레이어에게 뉴욕은 어떤 곳일까? 혹자는 실제 뉴욕을 경험해본 이들이 게임을 통해 재현한 공간을 어떻게 감각할 것인가를 궁금해 하기도 한다. 그것은 재현물이 얼마나 실재적인(느낌을 주는)가에 대한 궁금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게임을 플레이한 입장에서 개인적인 즐거움은 뉴욕이라는 로컬리티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기호, 이미지, 기술과 같은 매개체의 역할이 수행하는 바를 확인하는 과정에 있었다. 심비오트 둥지가 조형물처럼 서 있는 뉴욕 경관을 윙슈트를 입고 날아가면서 볼 수 있는 경험은 오직 이 게임만이 재현하는 스파이더 세계관에서의 뉴욕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역으로 게임으로 인해 플레이어는 뉴욕에 대한 궁금증과 미디어 이미지에 기반을 둔 향수를 경험하기도 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성균관대학교 강사) 홍현영 패미콤을 화목한 가족 구성원의 필수품으로 광고한 덕분에 게임의 세계에 입문했다. <저스트댄서> 꾸준러. 『81년생 마리오』, 『게임의 이론』, 『미디어와 젠더』 등을 함께 썼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홍성화
큐레이터학과 예술학을 전공했다. 최근 레트로 게임에 대한 관심을 기반으로 전시들을 준비하고 있다. 홍성화 홍성화 큐레이터학과 예술학을 전공했다. 최근 레트로 게임에 대한 관심을 기반으로 전시들을 준비하고 있다. Read More 버튼 읽기 ‘아카트로닉스’라는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ies)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ies)’이라는 것이 있다. 호기심의 방은 말 그대로 호기심을 자아내는 진귀하고 이국적인 것들, 때로는 괴이한 것들로 가득찬 공간이었다. 주로 16-17세기 영국에서 개인 컬렉터들에 의해 만들어진 호기심의 방은 박물관의 기원 중 하나라고 여겨지기도 하는데, 이 공간이 단순히 수집품을 모아두는 곳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수집 공간’은 대중에게 공개되어 보여졌다. 당대에 가치있던 고미술품이나 유물, 또는 명망있는 화가의 작품이 아니었더라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형상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Editor's View] 손이 바쁜 공모전 특집호를 마무리하며
비록 한 해에 여섯 호 밖에 나오지 않는 것 같지만, GG의 발행은 꽤나 연속성이 있는 편입니다. 두 달에 한 번 발행하는 잡지를 위해 발행 전 달에 기획회의를 하고, 걸맞는 필자를 섭외한 뒤 각각의 필자들이 한 달간 원고를 준비합니다. < Back [Editor's View] 손이 바쁜 공모전 특집호를 마무리하며 26 GG Vol. 25. 10. 10. 비록 한 해에 여섯 호 밖에 나오지 않는 것 같지만, GG의 발행은 꽤나 연속성이 있는 편입니다. 두 달에 한 번 발행하는 잡지를 위해 발행 전 달에 기획회의를 하고, 걸맞는 필자를 섭외한 뒤 각각의 필자들이 한 달간 원고를 준비합니다. 수집된 원고가 편집을 거쳐 나오기까지의 두 달은 생각보다 빠듯합니다. 아직 직원 없이 혼자 일하는 편집장의 여건상 월간 발행은 무리인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달 한 번도 GG 업무는 멈춘 적 없이 4년이 흘렀습니다. 게임비평공모전은 어찌 보면 GG의 여러 농사 중 가장 큰 축제이기도 합니다. 게임비평의 새로운 얼굴들을 발굴해내는 것은 곧 씬을 키우고 게임비평담론을 대중화할 때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도 치열한 심사 토론을 거쳐 두 편의 수상작을 선정했고, 이번 26호에 소개할 수 있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일 년에 한 번 돌아오는 공모전 특집호는 항상 저로 하여금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돌아보게 만들곤 합니다. 정기적으로 매 년 한 번씩 초심을 되돌아볼 수 있기에, 그리고 그 시작으로부터 나는 얼마나 변화해 왔는지를 짚어볼 수 있기에 여러모로 소중한 행사입니다. 올해도 공모전에 80편이 넘는 많은 응모작들이 들어왔습니다. 심사위원장 심사평에서도 보실 수 있듯이, 응모작들의 수준은 점점 올라가고 있어 심사위원들의 고충 또한 함께 늘어가곤 합니다. GG가 더 많은 자원을 쓸 수 있다면 더 넓은 가능성으로 더 많은 필자들을 모실 수 있겠지만 현실이 녹록치 않은 터라 매년 응모해주신 많은 분들께 송구한 마음 감출 길이 없습니다. 공모전 특집호를 내다 보면 손이 바빠집니다. 공고를 내고 홍보하고 수집된 응모작을 정리하고 심사하는 과정은 일반적인 기획보다 손이 많이 가는 일입니다. 그래도 매 해마다 조금씩 양적으로, 질적으로 성장해감을 느낄 수 있는 공모전 특집호를 만드는 일은 게임비평 씬에 몸담고 있는 입장에서 무척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GG와 함께 해 주시는 많은 독자분들께서도 성장하는 GG를 보며 뿌듯해 하실 수 있도록, 내년에도 변함없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효율 같은 건 필요 없어: 느리고 답답하게 게임하기
효율성은 분명 중요한 요소일 수 있지만, 그것이 유일한 플레이 방식일 필요는 없다. 게임에서 비효율을 추구하는 것은 단순히 성공에 관심 없는 것이나 열등하거나 패배적인, 혹은 의도에서 벗어난 부적응적인 태도라고 보긴 힘들다. <월든>에서 소로가 자연 속에서 존재하는 고유한 삶의 속도를 발견했듯이, 무엇이 게임에서 ‘성공'인지 각자가 내리는 정의가 다를 뿐이며 플레이어 각각에게 존재하는 삶의 속도가 다를 뿐이다. 비효율적인 게임 플레이는 게임이 단순한 목표 달성의 도구가 아닌 복합적인 경험의 장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 Back 효율 같은 건 필요 없어: 느리고 답답하게 게임하기 18 GG Vol. 24. 6. 10. * 데이비드 소로의 원작 <월든>은 2017년 디지털게임으로 발매된 바 있다. 스팀 등을 통해 플레이할 수 있다. 월든에 대한 단상 <월든(Walden)>이라는 게임이 있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라는 인물이 되어 그의 삶을 체험한다. 소로는 1845년에 도시를 떠나 숲 속 외딴 오두막에서 몇 년간 거주했고, 그때 깨달은 점들을 책 <월든>으로 썼다. 책과 동명의 게임 <월든>에서 플레이어는 1845년의 소로가 되어 당시의 삶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 플레이어는 소로처럼 사계절 내내 매일 나무에 망치를 두드려 집을 수리하고,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옷을 기우며, 열매를 따서 병에 저장하고, 나룻배에 올라 노를 저어 호수를 이동한다. 실제 소로가 하던 일을 그대로 따라해보면서 여정을 하다보면 어느새 소로가 남긴 책 한 권, 월든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월든>에서 소로가 도시와의 오랜 분리 생활 끝에 알게된 것은 무엇이었을까? 책과 게임에서 모두 언급되듯, 모든 사물에게는 각자 고유한 삶의 속도가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게 되었다. 사과나무는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와 계절에 맞게 성숙할 필요가 없었고, 어디선가 북소리 장단이 들려온다면 발걸음을 맞추려고 애쓰기보다는 자신만의 음악을 듣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다른 사람의 목적, 시간, 가치판단 때문에 굳이 자신의 것을 바꿔야 할 필요가 없다는 <월든>의 통찰을 통해, 우리는 단지 소로의 삶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가 미덕으로 여기는 ‘효율’이라는 가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다. 자신만의 선택과 속도로 게임을 즐기기 현대사회의 보편적인 속성뿐 아니라, 많은 게임들이 효율성을 추구하도록 설계되고 있다. 플레이어들은 그에 맞춰 게임에서 최적의 선택을 찾아간다. 게임 문화에서 효율성을 추구하는 플레이는 많은 이들에게 이상적인 방식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게임은 단순히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전개 방식을 통해 플레이어들에게 폭넓은 경험과 즐거움을 제공하는 미디어이기도 하다. 일부 플레이어들은 의도적으로 비효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일부 제작자들은 비효율을 강요하기도 한다. 효율 떨어지더라도 감수할만한 다른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게임 <월든>의 철학을 게임 플레이에도 적용하면서, 게임 플레이에서 관찰되는 다양한 비효율의 사례와 그 배경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효율성보다 더 우선되는 가치에는 어떤 것이 있는 지를 알아보는 과정을 통해 게임 플레이의 다양성 또는 인간 플레이어의 다양성에 대해 짚어볼 것이다. 실력을 증명하기 위한 의도된 ‘비효율’ 게임에서 가장 효율적인 선택지를 찾는 과정은 마치 퍼즐을 푸는 것과도 같다. ‘A라는 상황에서 B라는 아이템을 선택하고 C라는 행동을 하면 최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해답을 얻기 위해 플레이어는 수많은 조합이나 계산을 해보거나 공략을 찾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보면서 퍼즐의 답을 찾아나간다. 하지만 어떤 플레이어들은 퍼즐의 해답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의도적으로 이용하지 않는다. 게임이 보장하는 정도(正道)를 무시하고 매우 비효율적인 방법을 고의적으로 행한다. 자신의 실력을 확인거나 과시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되는데, 예를 들면 초보자의 무기를 가지고 보스 몬스터까지 격파하는 문화가 바로 그것이다. 게임 <다크소울> 시리즈에서는 “SL1 Run”이라는 문화가 있는데, 이는 캐릭터의 레벨을 전혀 올리지 않고 소울 레벨 1로 게임의 끝까지 완주하는 챌린지를 뜻한다. 쉽게 말해 ‘노렙업 플레이’이다. 스트리밍 방송이나 유튜브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는 이러한 플레이는 극단적인 모습에 무모하다는 감상을 전달하다가도 동시에 경외감을 선사하는 모습이다. 공격력이 매우 약한 초심자의 무기로 강력한 보스를 격파하는 이러한 도전은 사실 굉장히 비효율적인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의도된 비효율적 플레이는 동시에 플레이어의 실력을 가장 쉽게 증명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 되기도 한다. 엄청난 시간의 플레이 타임이나 스피드런 기록의 수치가 의미하는 플레이어의 실력이 있듯, 알몸 상태의 막대기로 보스를 이기는 비효율적인 실황은 자신이 얼마나 실력자인지 알리고자 하는 플레이어의 선택에서 비롯된다.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서 생긴 ‘비효율’ 승리나 성공이 아닌 다른 것에 게임 플레이의 목적이 있는 경우에도 비효율의 상황은 발생한다. 단순히 멋지다는 이유로 선택되는 무기, 장비, 스킬이 바로 그것이다. 어떠한 플레이어들은 능력적인 효과와는 상관 없이, 방어력이 비교적 낮지만 자신의 캐릭터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는 보인다는 이유로 그 옷을 선택하거나, 노출된 몸이 더 아름답기 때문에 옷을 입히지 않기도 한다. 또는 냉기 마법보다 화염 마법이 덜 효과적인 상황임에도 불길이 이글거리는 모습이 시각적으로 더 강렬해보인다는 이유로 화염 마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취향의 문제에 캐릭터와의 관계로 비효율적인 선택이 배가되기도 한다. <포켓몬스터> 시리즈에서 플레이어는 포켓몬의 능력치를 따져 강력한 팀을 구성해 배틀을 진행해야 하지만, 자신과 게임 속에서 오랫동안 인연이 이어왔거나 더 귀엽다고 생각되는 포켓몬을 배정시키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비효율적인 선택은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비슷하다. 수납력이 떨어지는 불편한 지갑이라도 누군가와의 추억이 담긴 선물이라면 기꺼이 가지고 다니는 것과 같다. 스토리 전개를 위해 효율성을 과감히 포기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인간의 삶 자체를 시뮬레이션화한 게임 <심즈4>는 현실처럼 다양한 직업군을 제공한다. 플레이어가 만든 캐릭터 ‘심’이 성장해 성인이 되면 직업을 가질 수 있는데, 하루종일 글만 쓰는 작가부터 명망있는 사업가, 인스타 인플루언서까지 50개에 달하는 직업이 플레이어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도 그렇듯 각각 직업군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은 모두 다르고 근무시간, 출근 요일도 각양각색으로 나타난다. <심즈4>에서 효율적인 플레이 방식은 캐릭터가 오랫동안 고소득 직장에서 능력을 쌓아 승진하고 부를 축적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심에게 극적인 스토리라인을 만들어주기 위해 비효율적인 결정을 내린다. 다른 직업과 비교했을 때 시급이 적은 바텐더나 화가를 시켜 힘겨운 삶에 살게 하고, 다양한 일을 경험해보기 위해 승진 없이 여러 직업을 전전하고 낮은 보수의 직업을 이어나간다. 현실성을 강조해서 나타난 ‘비효율’ ‘탈것’이란 보통 게임에서 말, 자동차, 비행기처럼 캐릭터를 빠르게 이동시킬 수 있는 수단이다. 도보로 먼 거리를 이용해야하는 상황에서 이동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점에서 탈것은 게임에서 플레이의 효율을 증가시키는 대표적인 시스템이다. 근래에 들어서는 플레이어의 시간을 아껴주는 편의성 콘텐츠로 보편적으로 이해되고 있다. 반면 어떤 게임들은 일부러 탈것을 존재시키지 않는다. 개발자의 의도가 담겼다고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경우 개발자들은 게임의 현실감을 증가시키고 싶은 의도에서 플레이어가 두 다리로 직접 걸어서 이동하도록 한다. 또는 탈것이 게임 내에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이동속도에 현실감을 부여하는 비효율적인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플레이어가 탈것에게 기대하는 높은 속도의 이동이 아닌 실제로 그 수단이 현실에서 사용되는 시간의 그대로를 느끼게끔 하는 것이다. 현실성의 강조는 탈것뿐 아니라 게임 속 캐릭터의 생활 방식 자체에 적용될 수 있다. <레드 데드 리뎀션2>는 현실적인 연출을 묘사한 게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캐릭터가 직접 사냥하고, 가죽을 하나하나 벗기고, 요리를 하는 시간까지 상당한 시간을 소모한다. 이러한 게임의 표현 방식은 일각에서는 현실성이 높아 몰입을 가져다준다는 평가 받기도 했지만 상당수의 플레이어의 시간을 잡아먹고 답답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이들은 자신의 플레이타임 대비 얻은 게임 속 자원의 형편 없음을 지적했다.( 게임제너레이션 11호 글 참조) 혹자는 이런 상황을 보고 개발자들이 ‘낭만’을 추구한 결과라고 표현한다. ‘낭만’은 상대적인 가치다. 어떤 사람에게는 낭만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그저 답답함 뿐인 부정적 상황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소위 ‘개발자의 낭만’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게임의 평판에도 부정적인 평가를 가져오게 된다면 개발자는 뒤늦게 조치를 취하기도 하는데, 탈것을 유료 재화나 DLC로 추가 업데이트 하거나 불필요한 소요 시간을 단축하는 버튼 등의 시스템을 추가한다. 물론 현실성을 강조해서 나타난 비효율적 플레이는 개발자의 문제만이 아니라, 플레이어 자신에 의해 추구될 수도 있다. 탈 것이 있음에도 타지 않는 플레이어들에 해당되는 말이다. 필자의 경우 <용과 같이 8>에서 캐릭터를 빠르게 먼 장소까지 이동할 수 있는 택시라는 수단이 있었음에도 잘 이용하지 않았다. 평소 일본 요코하마로 여행을 떠나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선뜻 실현할 수 없었는데, 게임 속 배경인 요코하마의 거리 풍경이 너무 잘 표현되어있었기 때문에 굳이 도보를 통해 걸어가면서 여행의 정취를 느끼고 싶었다. 덕분에 플레이타임은 게임 공략에서 제시하는 수준보다 훨씬 초과하였지만, 주변 경관을 즐기기 위해 느릿느릿 도보를 선택하는 플레이어에게는 비효율적인 선택이 오히려 더 가치있는 플레이가 될 수 있었다. 시간의 가치가 달라서 만들어진 (상대적인) ‘비효율’ 마지막으로 언급하는 비효율의 사례는 플레이어의 삶 전반에 깔린 태도이자 시간에 대한 문제다. 게임을 즐기는 부류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공략을 보면서 빠르고 효율적인 선택으로 게임을 진행하는 부류와 공략 따윈 신경쓰지 않고 스스로 헤매고 깨닫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부류다. 두 타입의 플레이어 모두 각자의 만족감을 추구한다. 공략을 보지 않는 플레이어는 고행길을 스스로 헤쳐나가는 데에서 성취감을 얻는다. 반면 공략을 보는 타입의 플레이어는 불필요한 시간 낭비 없이 게임을 최적의 루트로 클리어 한다는 데에서 만족감을 얻게 된다. 이러한 플레이어의 태도는 각자의 시간의 가치가 달라서 나눠진다고도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스카이: 빛의 아이들>이라는 게임을 할 때의 일이었다. 게임에는 양초라는 상징적인 아이템이 있다. 이 양초는 스킬이나 캐릭터 커스텀 등을 구입할 때 사용되는 주요 재화로, 게임의 맵 전체에 걸쳐 분포 되어있었다. 플레이어들은 맵을 탐험하면서 양초를 수집해야만 했지만, 그래도 어차피 게임은 맵을 탐험하는 것이 주 콘텐츠였기 때문에 양초란 사실 수집을 목표로 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재화이기도 했다. 나는 한 플레이어와의 대화 중 어떤 이야기를 들었고, 그가 게임 커뮤니티에서 읽은 양초 획득 공략법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가 말하길, 전체 맵에는 총 00개의 양초가 분포되어 있고, 양초 위치를 외워서 최단 거리로 이동하면 이 게임은 하루 XX분만 해도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양초 위치가 표시된 맵 지도는 커뮤니티에 다 나와있으니 참고하라고 했다. 그의 이야기 뒤에 이어진 내 대답은 크게 부응하진 못했다. “아, 그렇구나. 고마워. 근데 왜 그래야 하지?” 효율을 극대화하는 플레이어와 그렇지 않는 플레이어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이었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타당한 이유도 있었던 것이, 그 플레이어는 “하루 중 게임에 접속할 수 있는 시간이 XX분밖에 안된다”라고 언급하면서 자신이 그렇게 소위 ‘효율충’이 되어버린 데에는 배경이 있음을 설명했다. 하루에 30분밖에 게임을 할 수 없는 사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적의 선택만을 추구해서 하루종일 느긋하게 할 수 있는 사람과 동등한 성취를 얻도록 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할 수 있다. 효율/비효율은 플레이어의 다양성의 문제 효율성은 분명 중요한 요소일 수 있지만, 그것이 유일한 플레이 방식일 필요는 없다. 게임에서 비효율을 추구하는 것은 단순히 성공에 관심 없는 것이나 열등하거나 패배적인, 혹은 의도에서 벗어난 부적응적인 태도라고 보긴 힘들다. <월든>에서 소로가 자연 속에서 존재하는 고유한 삶의 속도를 발견했듯이, 무엇이 게임에서 ‘성공'인지 각자가 내리는 정의가 다를 뿐이며 플레이어 각각에게 존재하는 삶의 속도가 다를 뿐이다. 비효율적인 게임 플레이는 게임이 단순한 목표 달성의 도구가 아닌 복합적인 경험의 장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선택을 통해 게임을 어떻게 접근하고 경험하는지를 드러낸다. 효율을 추구하는 플레이어들은 빠른 진행과 최적의 결과를 위해 게임 내의 모든 선택을 계산하지만, 그렇지 않은 플레이어들은 탐험과 발견, 그리고 감정적인 만족감을 중요시한다. 이는 마치 소로가 숲 속에서 자신의 리듬을 찾았듯이, 플레이어들이 게임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리듬을 찾는 과정과도 같다. Tags: 제노바첸, 효율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보라무 사회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연구합니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결국 인간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 The Resonant Samurai: Historical Accuracy versus Market Appeal
By now, the online backlash against the inclusion of Yasuke as one of two protagonists in the story has become somewhat infamous, if not tired, since outrage first erupted last year. Although the game had teased at the 2022 UbiForward as Codename Red, it wasn’t until the full reveal on May 15, 2024, with the cinematic trailer that the inclusion of Yasuke, as a co-protagonist, became clear. < Back The Resonant Samurai: Historical Accuracy versus Market Appeal 24 GG Vol. 25. 6. 10. ***이 글의 한국어 버전은 아래 URL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953c58c4-a26a-4e46-8aac-48c10227ca8b Introduction: Yasuke Enters the Franchise By now, the online backlash against the inclusion of Yasuke as one of two protagonists in the story has become somewhat infamous, if not tired, since outrage first erupted last year. Although the game had teased at the 2022 UbiForward as Codename Red [1] , it wasn’t until the full reveal on May 15, 2024, with the cinematic trailer that the inclusion of Yasuke, as a co-protagonist, became clear. [2] [3] For over two months, criticism swirled at design choices in both Western and Japanese circles, though the online discontent among segments of the more conservative Western audience specifically focused on the inclusion of Yasuke, [4] leading, among the many heated discussion threads, to harassment of members of the development team. On July 23rd, Ubisoft released a somewhat ambiguous statement about the context, backhandedly addressing global audiences by way of seemingly focusing on the Japanese Community, and reaffirming their commitment to overall authenticity . [5] * Figure 1: Yasuke as Protagonist This statement raises a number of concerns that articulate the controversy surrounding Yasuke, which taken at face value is about historical accuracy, but arguably has more to do with how this segment of the audience has been served by the franchise so far. As discussed by de Wildt and Aupers in a 2021 study focusing on the franchise overall and including dozens of interviews with former Ubisoft game directors and assorted senior developers, Assassin’s Creed overall privileges the marketability of any given setting. [6] That marketability is further contextualized by a audience that is disproportionately European and American (roughly 79% all of Ubisoft sales). [7] With that market in mind, Ubisoft has put to use a model they term the “marketing-brand-editorial burger,” where the core of the franchise must remain generally similar, while changing the sauce (the cultural setting) in order to draw in new or repeat clientele. [8] To that end, most of the franchise’s games have generally featured protagonists that are relatively uncomplicated to access for that core audience. For instance, Black Flag’ s Edward Kenway presents a European perspective into Nassau and Caribbean colonialism, while Assassin’s Creed II and Brotherhood engages with Ezio as a cultural insider in Renaissance Italy. [9] [10] [11] It also uses Ezio as a way to access the comparatively more distant Istanbul setting and culture in Revelations . [12] Even when protagonists are more complicated, as is the case for Connor Kenway in Assassin’s Creed III [13] and Adewale in Freedom Cry , [14] it is nonetheless the dominant European and American perspectives that orient the core structure of the games. [15] [16] So, why is that centering of the Western audience the case, and how does the controversy surrounding indicate breaks or continuities with this design trend? The answer, broadly, comes from a prioritizing of resonance, of expectations, above accuracy. The Question of Accuracy: Accuracy versus Expectations The question of historical accuracy in the Assassin’s Creed series, over its 18-year span, has been the subject of thousands of games journalism pieces, not to mention dozens of academic articles and book chapters. In early inroads, historical accuracy appears as a demand, essential for games to be taken seriously, as a pedagogical tool, an archaeological model or an account of events past. [17] This demand is draped over a number of design elements, such as the areas of the game included, in conjunction with the time period covered (along with the key events that the narrative focuses on). Perhaps most importantly, there is enduring concern and desire for the protagonists at the center of these games to match the historical period which audiences understand as a coherent whole. In other words, the setting, the story and the characters need to work in harmony, but whether that harmony adheres to historical truth is another matter altogether. [18] [19] When discussing historical accuracy, it would be useful to consider at what point is the media portrayal considered accurate. Is any deviation allowed? As Adam Chapman argues, there is a threshold where the game can be considered historically resonant, and that point is when individual players deem the historical aspects to match their pre-existing knowledge. [20] Evidently players tolerate deviation from historical fact as necessary to game adaptation in general, and especially in the context of Assassin’s Creed , where historical figures are repositioned as actors in secret conspiracies and ancient aliens plotlines. The fact that the franchise requires a genealogy of assassins and templars, in this case the Kakushiba Ikki (League of the Hidden) and the Shinbakufu (True Shogunate). The distortions necessary to make the armature of the franchise fit with the real persons that the game adapts are in most cases no more or less intensive than the depth provided to Yasuke. This level of adaptation or distortion is also in line with the degree of departure players can find in Odyssey [21] , for instance, with the portrayals of Sokrates and Aspasia of Miletus, [22] or Origins ’ Cleopatra. [23] The games are all, to put it bluntly, historical fiction, rather than history, an approach detailed by Ubisoft itself. [24] As they explain in their 2025 open letter, Yasuke presented an “ideal candidate” for the series formula that incorporates “fantasy elements” and that his “unique and mysterious life” is considered by the company to be a match for franchise patterns. [25] The idea of Yasuke as a candidate for cultural representation is in keeping with de Wildt and Aupers mentioned earlier, where marketing dominates broader choices, and where any narrative or representational choice “defers to the market and the largest possible audience.” [26] Franchise lead Jean Guesdon had previously spoken about tapping into popular zeitgeist to buttress franchise sales, so relying on Yasuke, a figure that has become increasingly visible in popular media over the past two decades makes sense. [27] Unlike Sucker Punch’s Ghost of Tsushima , [28] from which Shadows borrows much of its visual language and colour scheme, Assassin’s Creed provide Yasuke a proxy for audiences, not as a man of colour, but as an outsider to Japan.Yasuke is legitimate enough as a choice, given his historic presence, yet, like players, experience Japan as a foreigner becoming gradually integrated. [29] In other words, the game’s internal structure is positioned to open with, and favor an outsider perspective, over one of the other notable candidates audiences can imagine, including notable samurai like Musashi Miyamoto or Sasaki Kojiro. * Figure 2: Yasuke Criticized for Use of nanban (European) concepts in the context of Japanese warfare. This tension, between what a game company considers an ideal candidate, and what serves historical accuracy most, has been the subject of research over the past few years. [30] In my previous work on the subject, I locate this decision space as shaped by the tension between representation and identification. As film scholar Charles Acland notes, with respect to cinema, the work of identification is complicated and requires exiting one’s own reality to inhabit the specific circumstances of another person, in another place and time. [31] Identification, on the other hand, provides protagonists and perspectives ready-made for individuals to absorb into their experiential frame. This form of media production is positioned to produce the “that resonates with me” reaction, and has been the subject of academic critique concerning Assassin’s Creed for the better part of the last decade. So far, installments have been positioned to always provide that kind of easy identification, if not in main protagonists, then at least in circumstances and ideological positions. Yasuke, in that vein, presents a particular issue. His perspective provides an outside-in look at feudal Japan, but it also bucks against the generally empowering positions that series protagonists have enjoyed. Yasuke’s inclusion seems in itself revolutionary and novel, but as scholar Kishonna Gray noted in the case of Adéwalé in Haiti, there is an echo of white European and American social positions within the very framework of the game. [32] Even when the characters are non-white, their social positions in the game privilege the presumed Euro-American audience mentioned above. In Shadows , Yasuke is not gated from spaces any more than the game’s other protagonist, Naoe, is. The game’s fiction smooths out the creases in what would otherwise be a presumably more confronting experience. Then, if the game resonating with audiences is the primary goal, the game’s choice to platform Yasuke presents quite logically, with the exception that the audience being favored is not the same audience that has been favored in the past decade. To put it bluntly, the racial intolerance evident in Yasuke’s characterization as a “DEI hire” showcases as barrier in audiences identification with a man of colour, more than a rigorous analysis of whether that character’s story is accurate, which is already difficult to claim for any Assassin’s Creed protagonist in good faith. [33] The backlash, at least in the West, has clearly been centered on race and gender, while the Japanese response has certainly been more tempered, and focused on how players are allowed to damage holy sites. The subsequent question that arises is whether or not this entire outrage, as visible as it has been, represents the whole of the consumer base in the West, or rather a specific subset of consumers. The Payoff: Yasuke as Commodity Whether or not reception to Yasuke has been hot or cold is difficult to definitely weigh in on. How do we define success? Is it based on the sentiment of a vocal segment of the audience, or do we prioritize something closer to an international audience reception? Do we look at critical reception, and do we look in a vacuum or in the context of how recent installments have been received? Perhaps the most representative forum for critical and audience reception remains Metacritic, despite concerted efforts to review bomb the title. [34] In fact, when comparing the open-world installments, the pattern is relatively stable. Critics have Shadows at 81, compared to Valhalla ’s 80, Odyssey ’s 83, and Origins ’ 81. Audiences, even keeping in mind a greater proportion of disproportionately negative reviews, have Shadows at 62, compared to Valhalla ’s 60, Odyssey ’s 68, and Origins ’ 73. Critical consensus seems to be that the game is qualitatively in line with previous installments, and for audiences seems a slight improvement over the previous title. Where it does depart is in Shadows ’ higher proportion of extremely low scores, which may be indicative of review bombing. Metacritic, like any review aggregator, will overrepresent audiences that are already invested enough to log on and review, but the consistency in scores over time indicates relative stability between titles at a broader level. * Figure 3: Review Score Aggregates for all Open-World AC Titles (Mirage Omitted). Surely then, the outrage professed against Yasuke was equally felt in terms of sales, which would at least provide an industrial indication that the game was boycotted or sold less well. In actuality, Shadows boasts the second-highest day one sales for the franchise, behind Valhalla , which Ubisoft attributes to the “perfect storm” of conditions during the pandemic. [35] Longer tail analytics show a “modest” sales record of roughly 1.7M copies sold on Playstation 5 alone (Alinea, 2025). [36] So, the picture is somewhat murky, given that we won’t have the long-tail data for a while yet. Compared to Odyssey’s roughly 2M sales in the first month, as well as keeping in mind the pressures on discretionary expenses in the current economic climate, the game is not the historic success of yore, but it’s certainly still successful. Conclusion: It was Never about Accuracy The academic response, as always, will take a longer while to cement, as qualitative studies and criticism goes through the comparatively longer publication cycle. It is my sense, given the title’s consistency within franchise patterns, that academic consensus will broadly settle where it has for the past decade: that Shadows is a relatively safe market bet, with serviceable characters and the core formula unchanged. It is, in many ways, the same Assassin’s Creed we’ve come to know since 2007, and more specifically since the series’ open-world shift in 2017. Within that framework though, the Japanese governmental response to the game is novel, as critiques of desecration of ritual sites has generally been confined to academic critiques, rather than the state. [37] [38] In fact, the homage paid to the series at the Paris Olympics for Ubisoft’s assistance with the Notre Dame reconstruction signals a significant gap in how Western states interact with the company’s cultural products. Likewise, the Yasuke controversy, which seems to have lost steam since last year, has faded away into the series’ tenuous relationship with race and gender across many of its installments. It is nonetheless interesting to consider which way audience sentiment slices. Here, Yasuke was called out as corporate pandering to modern sensibilities and audience demand, yet that was not so much the case when Odyssey ’s Alexios was provided as a secondary protagonist for players to enjoy, or when company scandals revealed that Aya was intended as the main character of Origins , despite the release featuring almost exclusively Bayek. The audience’s rigidity regarding accuracy is always one that has been shaped by personal taste, and if the issue was really the accuracy of the character, we’d have had similarly caustic debates about many titles in the series. [1] Ubisoft, dir. 2022. Ubisoft Forward: Official Livestream - September 2022 | #UbiForward . https://www.youtube.com/watch?v=rvV4ZBx6_bo . [2] Ubisoft, dir. 2024. Assassin’s Creed Shadows: Official World Premiere Trailer. https://www.youtube.com/watch?v=vovkzbtYBC8 . [3] Ubisoft. 2024. “Assassin’s Creed Shadows Launches November 15, Features Dual Protagonists in Feudal Japan.” https://news.ubisoft.com/en-ca/article/2LH4Ael4X1TlNJY3B3aYg5/assassins-creed-shadows-launches-november-15-features-dual-protagonists-in-feudal-japan . [4] Walker, John. 2024. “Ubisoft Issues Weird Statement On Assassin’s Creed Shadows Controversies.” Kotaku, July 23, 2024. https://kotaku.com/assassins-creed-shadows-ubisoft-statement-yasuke-1851602337 . [5] Ubisoft. 2024. “Assassin’s Creed Shadows - An Update for the Japanese Community.” https://news.ubisoft.com/en-us/article/7dWPCtVQU7udC0KkPFOyXh/assassins-creed-shadows-an-update-for-the-japanese-community . [6] Wildt, Lars de, and Stef Aupers. 2019. “Playing the Other: Role-Playing Religion in Videogames.” European Journal of Cultural Studies 22 (5–6): 867–84. https://doi.org/10.1177/1367549418790454 . [7] Ibid, 4. [8] Ibid, 11-12. [9] Ubisoft. 2013. “Assassin’s Creed IV: Black Flag.” [10] Ubisoft. 2009. “Assassin’s Creed II.” 2009. Ubisoft. [11] Ubisoft. 2010. “Assassin’s Creed: Brotherhood.” [12] Ubisoft. 2011. “Assassin’s Creed: Revelations.” [13] Ubisoft. 2013. “Assassin’s Creed.” [14] Ubisoft. 2013. “Assassin’s Creed Freedom Cry.” [15] Shaw, Adrienne. 2015. “The Tyranny of Realism: Historical Accuracy and Politics of Representation in Assassin’s Creed III.” Loading... 9 (14). https://journals.sfu.ca/loading/index.php/loading/article/view/157 . [16] Zanescu, Andrei. 2023. “Blockbuster Resonance in Games: How Assassin’s Creed and Magic: The Gathering Simulate Classical Antiquity.” Phd, Concordia University. https://spectrum.library.concordia.ca/id/eprint/992024/ . [17] Ibid, 17-57. [18] de Wildt and Aupers, 2019. [19] Westin, Jonathan, and Ragnar Hedlund. 2016. “Polychronia – Negotiating the Popular Representation of a Common Past in Assassin’s Creed.” Journal of Gaming & Virtual Worlds 8 (March):3–20. https://doi.org/10.1386/jgvw.8.1.3_1 . [20] Chapman, Adam. 2016. Digital Games as History: How Videogames Represent the Past and Offer Access to Historical Practice. 1st ed. New York: Routledge. [21] Ubisoft. 2018. “Assassin’s Creed Odyssey.” [22] Ubisoft North America, dir. 2017. Assassin’s Creed Origins: Developer Q&A - History & Setting | Ubisoft [NA]. https://www.youtube.com/watch?v=FK43sE36rdo . [23] Ubisoft. 2017. “Assassin’s Creed Origins.” [24] Ubisoft. 2024. “Assassin’s Creed Shadows - An Update for the Japanese Community.” https://news.ubisoft.com/en-us/article/7dWPCtVQU7udC0KkPFOyXh/assassins-creed-shadows-an-update-for-the-japanese-community . [25] Ibidem. [26] De Wildt and Aupers, 13. [27] Zanescu, 2023. [28] Fox, Nate. 2020. “Ghost of Tsushima.” Sucker Punch Productions. [29] DJangi, Parissa. 2025. “The Real History of Yasuke, Japan’s First Black Samurai.” History. https://www.nationalgeographic.com/history/article/the-real-history-of-yasuke-japans-first-black-samurai . [30] Eklund, Lina, Björn Sjöblom, and Patrick Prax. 2019. “Lost in Translation: Video Games Becoming Cultural Heritage?” Cultural Sociology 13 (4): 444. [31] Acland, Charles R. 2020. American Blockbuster: Movies, Technology, and Wonder. 1 online resource (xi, 388 pages) : illustrations (black and white) vols. Sign, Storage, Transmission.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https://doi.org/10.1515/9781478012160 . [32] Gray, Kishonna L. 2018. “POWER IN THE VISUAL: EXAMINING NARRATIVES OF CONTROLLING BLACK BODIES IN CONTEMPORARY GAMING.” Velvet Light Trap, no. 81 (March), 62–67. [33] Mercante, Alyssa. 2024. “This Was Never About Anything Other Than Hate.” Kotaku. July 23, 2024. https://kotaku.com/this-was-never-about-anything-other-than-hate-1851602820 . [34] Wolens, Joshua. 2025. “Ubisoft Says Don’t Compare Assassin’s Creed Shadows’ Success to Valhalla: The Latter Launched in Covid’s ‘perfect Storm’ and Feedback on Platforms ‘Less Affected by Review Bombing’ Is Stellar.” PC Gamer, March 25, 2025. https://www.pcgamer.com/games/assassins-creed/ubisoft-says-dont-compare-assassins-creed-shadows-success-to-valhalla-the-latter-launched-in-covids-perfect-storm-and-feedback-on-platforms-less-affected-by-review-bombing-is-stellar/ . [35] Ibidem. [36] Alinea. 2025. “Xbox Dominated PlayStation’s Top 10 Games by Copies Sold in April, as Forza Horizon 5 Overtakes 1.4 Million Copies on PS5.” Alinea. https://alineaanalytics.com/blog/playstation_april_2025/ . [37] Small, Zachary. 2024. “The Fight Over a Black Samurai in Assassin’s Creed Shadows.” The New York Times, September 11, 2024, sec. Arts. https://www.nytimes.com/2024/09/11/arts/assassins-creed-shadows-yasuke-samurai-japan.html . [38] Murray, Conor. n.d. “New ‘Assassin’s Creed’ Releases To Strong Reviews—But Sparks Anti-’Woke’ Backlash And Roils Japanese Government.” Forbes. Accessed May 30, 2025. https://www.forbes.com/sites/conormurray/2025/03/21/new-assassins-creed-releases-to-strong-reviews-but-sparks-anti-woke-backlash-and-roils-japanese-government/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Researcher) Andrei Zanescu Andrei Zanescu is a postdoctoral fellow and part-time faculty member in Communication Studies, and Anthropology & Sociology, at Concordia University, in Montreal, Canada. He specializes in AAA studio cultural adaptation practices involving resonance as a corporate strategy, as well as the legitimation of games through the formation of awards bodies tied to film and television cultural capital. He regularly publishes game and platform studies concerning a range of games (Assassin's Creed, Magic the Gathering & DOTA 2) and awards bodies, and in New Media & Society (2021), Games & Culture (2024), The Journal of Consumer Culture (2021) and Convergence (Forthcoming). He is also a co-author of Streaming by the Rest of Us: Microstreaming Videogames on Twitch (MIT Press, 2025). 캐나다 몬트리올에 위치한 콩코르디아 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와 인류학·사회학과에서 박사후 연구원 및 시간강사로 재직 중이다. AAA 게임 스튜디오의 문화적 적응 관행에서 '공명(resonance)'을 기업 전략으로 활용하는 방식과, 영화 및 텔레비전의 문화 자본과 연결된 시상 기관 형성을 통한 게임의 정당화 과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Assassin’s Creed, Magic: The Gathering, DOTA 2 등 다양한 게임과 시상 기관에 관한 게임 및 플랫폼 연구를 활발히 발표하고 있으며, 《New Media & Society》(2021), 《Games & Culture》(2024), 《The Journal of Consumer Culture》(2021), 《Convergence》등에 논문을 발표한 바 있으며 또한 『Streaming by the Rest of Us: Microstreaming Videogames on Twitch』(MIT Press, 2025)의 공동 저자이기도 하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이연우
함께하는 게임에 관심을 가지고 게임의 관계성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게임으로 다함께 즐거워지길 바랍니다. 이연우 이연우 함께하는 게임에 관심을 가지고 게임의 관계성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게임으로 다함께 즐거워지길 바랍니다. Read More 버튼 읽기 서울을 걷는 작은 이유, 피크민 블룸 서울 투어 이 사람들의 정체는 바로 <피크민 블룸> 플레이어들이었다. 이들이 쓰고 있단 머리에 쓴 모자는 닌텐도의 유명 캐릭터인 ‘피크민’을 본뜬 것으로, ‘피크민 블룸 투어 2025: 서울’ 행사 참여자들을 나타내는 표식이었다. 각기 다른 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도심을 누비던 그들은, 사실 같은 게임 속에서 도시를 탐험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버튼 읽기 게임 역사 초창기의 기록들: 닌텐도 뮤지엄 방문기 2024년 10월 2일, 닌텐도 뮤지엄(Nintendo Museum)이 마침내 문을 열었다. 프로젝트 발표 이후 3년만의 소식이었다. 닌텐도의 역사와 유산을 기념하기 위해 설립된 이 박물관은 일본 교토부 우지시에 자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박물관은 1969년에 세워진 우지 오구라 공장(Uji Ogura Plant)을 개조한 것인데, 이 공장은 닌텐도가 일본 전통 카드 게임인 화투와 서양식 트럼프 카드를 제작하던 시절부터 비디오 게임 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까지 함께한 역사적인 공간이다. 닌텐도의 변천사를 상징하는 장소에서 다시금 과거와 현재를 모아놓은 셈이다. 버튼 읽기 [논문세미나] 우리 삶 속의 게임: : No Time to Dream 브랙스턴 소더만(Braxton Soderman)의 은 젠더화된 게임 취향을 ‘시간’의 관점에서 규명한 글이다. 그에 따르면 흔히 게이머는 ’하드코어(hardcore)’와 ‘캐주얼(casual)’ 집단으로 구분되고, 이중 하드코어 게이머는 ‘백인 청소년 남성’, 캐주얼 게이머는 ‘중년의 여성’ 집단으로 표상되곤 한다. 즉, 백인 청소년 남성들이 곧 ‘하드코어 게임’을 즐기는 ‘하드코어 게이머’이며, ‘캐주얼 게임’을 플레이하는 ‘캐주얼 게이머’는 곧 중년 여성들이라 인식되어왔다는 것이다. 버튼 읽기 타이쿤, 자유로운 세상을 생각하다 <돈스타브>를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농사의 중요성을 알고있을 것이다. 당장의 굶어 죽을 위기에서 안정적인 식량 보급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정처없이 돌아다니며 밥을 찾아 헤매는 일은 너무나도 고달프다. 따라서, 수렵과 채집을 하던 게이머들은 어느 순간부터 터를 잡고 작물들을 키워나간다. 더 ‘효율적’으로 작물을 수집하기 위함이다. 버튼 읽기 게임으로 사랑을 담아 내기 - <댓 드래곤 캔서>가 ‘게임’으로 제작된 이유는 무엇일까? <댓 드래곤 캔서>는 게임으로 제작되었지만, 당시의 조류에 있어서 일반적인 형식을 취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그것은 왜 반드시 게임이여야 했을까? 버튼 읽기 [논문세미나] <하스스톤>에서 플레이어들은 왜 감정 표현을 오용하는가? 저자들은 위의 요소를 모두 고려해 비매너 상호작용의 다섯 가지 형태를 정리한다. 제시된 유형들은 가장 일반적으로 지적되는 것으로, 모든 플레이어가 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항복(concede)’은 여기서 가장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모순점인데, 항복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모두가 비매너 플레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 곤잘로 프라스카, 공감과 공환의 매체를 꿈꾸다
앞으로 소개할 곤잘로 프라스카(Gonzalo Frasaca)는 참으로 특이한 이력을 지닌 사람이다. 게임 개발자이며 사업가이기도 한 그는 게임 규칙과 놀이 행위 자체를 중시하는 ‘게임론’(ludology)의 주요 이론가이다. 게임을 스토리텔링 미디어로 보며 서사로서의 게임 연구를 고수한 ‘서사론’(narratology)에 대립각을 세운 셈이다. ‘놀이냐 서사냐’를 둘러싸고 벌어진 이 논쟁도 이제는 옛일이 되었지만 프라스카는 게임 연구에 나름 중요한 족적을 남겼다. < Back 곤잘로 프라스카, 공감과 공환의 매체를 꿈꾸다 04 GG Vol. 22. 2. 10. 앞으로 소개할 곤잘로 프라스카(Gonzalo Frasaca)는 참으로 특이한 이력을 지닌 사람이다. 게임 개발자이며 사업가이기도 한 그는 게임 규칙과 놀이 행위 자체를 중시하는 ‘게임론’(ludology)의 주요 이론가이다. 게임을 스토리텔링 미디어로 보며 서사로서의 게임 연구를 고수한 ‘서사론’(narratology)에 대립각을 세운 셈이다. ‘놀이냐 서사냐’를 둘러싸고 벌어진 이 논쟁도 이제는 옛일이 되었지만 프라스카는 게임 연구에 나름 중요한 족적을 남겼다. 나아가 우르과이 출신 게임 개발자로서 그는 상업적인 게임과 실험적인 게임들을 넘나들면서 독창적인 게임들을 개발하기도 했다.『억압받는 자들의 비디오게임』이라는 학위논문을 쓰기도 한 그의 관심은 게임을 통해 억압과 폭력, 차별, 전쟁과 같은 사회의 현실 문제와 씨름하는 게임들을 만들어 왔다. 프라스카가 제안하고 실천한 ‘시리어스 게임 serious games’, ‘뉴스게이밍 newsgaming’, ‘교육적 게임 educational games’, ‘다큐게이밍 docugaming’ 같은 프로젝트들은 상업적 성공을 향한 오락 일변도의 주류 게임을 넘어 게임의 사회적 효용성과 실천적 잠재성을 확장하려는 시도들이다. 물론 게임이 교육과 사회적 인식이라는 목적을 강조하다 보면 재미라는 게임의 핵심 요인을 소홀히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나날이 다양해져온 게임의 장르와 콘텐츠, 그리고 게임 테크놀로지와 게이밍 환경의 꾸준한 진화 속에서 프라스카의 제안과 실험은 일정한 시의성을 갖는다. 우리는 누구나 게임을 만들고 누구나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의 민주화’에 값하는 ‘놀이 정보계’(ludic infosphere)의 도래를 맞이하고 있다. 그동안 게임생태계의 발전 과정을 돌아보면 사회적 억압과 차별에 대해 다시 생각하며 토론하고, 나아가 사회 인식과 공감의 상승을 시도하는 프라스카의 꿈은 ‘몽상’만이 아니게 된 것이다. 여전히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게임들만이 주로 기억되고 이야기되는 현실이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의미 있는 문제작들이 발표되고 있기도 하다. ‘재미’와 ‘인식’의 균형을 향해 아직 나아갈 길은 멀지만 말이다. 여기서는 ‘시리어스 게임’, ‘임팩트 게임’의 초기 제안자라 할 만한 프라스카의 게임관과 실험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정치적 에듀테인먼트와 시사 게임 프로젝트 프라스카의 게임 철학은 “비디오게임이 반드시 오락적일 필요는 없다”는 다분히 논쟁적인 선언에서 잘 나타난다. 사실 이러한 진술은 다분히 정치적인 발언이다. 프라스카 역시 게임의 오락성과 재미를 중시하고 그가 만든 게임들 역시 재미적 요소를 강화하고자 노력해왔다. 그렇기에 그의 게임인 는 1천 300만 카피를 팔 수 있었고 “역사상 가장 거대한 성공을 거둔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프라스카의 게임관과 실험은 세계적인 독일 극작가이자 연극이론가이며 실천가였던 브레히트(B. Brecht)와 그를 계승한 실험적 연출가 보알(Augusto Boal)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이들은 재미라는 것이 주류 대중문화와 오락산업의 관행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재미와 오락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며, 굳이 시끌벅적한 스펙터클 속에 순간적 쾌감이 아닌 주변 현실을 돌아보고 인식하는 가운데서도 재미와 오락을 찾을 수 있음을 모색하는 것이다. 브레히트가 말하는 ‘배움의 재미’ 혹은 ‘깨달음의 재미’는 프라스카에게도 이론적ㆍ실천적 화두였던 셈이다. 프라스카에 따르면 비디오게임은 원래 비오락적인 용도로 탄생했다. 군사훈련을 위해 도입된 각종 시뮬레이터들이나 명시적으로 교육적 목표를 표방하는 게임들이 그것을 입증한다. 오래전부터 ‘디지털 에듀테인먼트’(Digital Edutainment)라는 이름으로 불려온 교육용 게임들을 우리도 잘 알고 있다. ‘에듀테인먼트’는 ‘교육’(education)과 ‘오락’(entertainment)를 결합해서 만든 신조어로서 학생들의 참여와 흥미를 유발하는 새로운 교육 방식이나 수단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된 바 있다. 특히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가능해진 학습자의 능동적 상호작용과 참여 가능성은 주입식 교육의 대안으로까지 여겨졌다. 곤잘로 프라스카 역시 학습 플랫폼으로서 디지털 미디어가 갖는 요소들을 인정하며 이러한 장점들을 비디오게임의 사회적 기능전환에 유용한 장치로 활용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는 기존의-대체로 오늘날에도- 비디오게임의 교육적 활용이 순전히 수학이나 과학, 어학 교육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비판한다. 왜냐하면 프라스카의 관심은 유저들이 상호 토론과 공감을 통해 비판적 사고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비디오게임의 디자인에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가장 이상적인 비디오게임의 모델은 다음과 같은 사회심리학자 셰리 터클(Sherry Turkle)의 구상에 기반한 게임이다. “하지만 우리는 제3의 반응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는 더욱 복잡한 사회적 비평을 계발하기 위한 하나의 도전으로서 시뮬레이션의 문화적 파급력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비평이 모든 시뮬레이션들을 일괄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 사이의 차이를 식별할 수는 있다. 이는 모델 고유의 가정들에 대한 플레이어의 도전을 실질적으로 도와주는 시뮬레이션의 발전을 그 목표로 삼을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비평은 시뮬레이션을 의식-상승의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여기서 시뮬레이션은 비디오게임으로 바꾸어 읽어도 무방하다. 하지만 프라스카의 말처럼 그의 실험이 이루어지던 당시는 물론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게임들은 우리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혐의에서 완전 자유롭지는 못하다. 이는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괴물이나 몬스터, 트롤들 일색이거나 인간이 등장하더라도 일상인들과 거리가 먼 캐릭터라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심시티〉나 〈심즈〉 등 현실을 시뮬레이션하는 게임들의 등장하고 멜로, 역사물, 갱스터 등의 장르들로 게임의 소재와 주제가 다양해지면서 상황이 많이 변하기는 했다. 하지만 인간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현실을 재현하는 게임들 다수는 현실의 문제나 모순들을 회피하고 ‘디즈니랜드 같은 방식’으로 삶을 이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프라스카가 보기에 더 심각한 문제는 다수의 게임 연구자들에 의해 게임에 대한 무비판적 동일시를 의미하는 ‘에이전시’(agency)와 ‘몰입’(immersion)이 게임의 바람직한 효과들로 당연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플레이어-주체가 게임 규칙과 그 세계를 자신의 것으로 완벽하게 받아들이는 환경의 창조야말로 게임 개발자의의 미덕이라고 보는 사이 인종/젠더/민족(국민)/종교 등의 차별 의제들은 살며시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프라스카는 주류 게임들이 상업적 성공에 꽂혀 현실의 억압과 차별을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미지 재현과 플레잉 규칙을 통해 차별과 폭력의 구조를 고착화하는 점을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문제는 단순히 게임의 판타지적 설정이 아니라 게임 대상들과 게임 규칙에 담긴 차별과 억압에 대한 무감각 혹은 그에 대한 암묵적 동의이다. 우리는 비디오게임의 플레이가 연극이나 영화의 감상과 분명 다른 경험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게임 플레이어와 비디오게임 캐릭터 사이의 거리는 다른 예술의 수용자-캐릭터 사이보다 훨씬 더 밀접하다. 프라스카의 지적처럼 우리는 게임을 하면서 라라 크로프트가 혹 신장병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마리오가 편집증 증세를 지닌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하지 않는다. 이들 캐릭터나 게임상의 괴물들은 모두 수단이고 커서일 뿐이다. 게임의 캐릭터들은 대체로 평면적 캐릭터로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왜 그 캐릭터가 그런 식으로 행동했을까”가 아니라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슈퍼맨, 스파이더맨, 제임스 본드 등의 영웅이고 싶지만 게임의 경우 그런 욕망을 가질 필요가 없다. 게임에서 우리가 바로 그 영웅들이기 때문이다. 가령 게임에서 마리오는 영웅이 아니다. 내가 바로 영웅이고 마리오는 하나의 커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플레이어에게 자유도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게임의 캐릭터는 플레이어의 행위를 위한 커서가 되고 플레이어는 스스로를 게임의 영웅 혹은 신으로 자각한다. 게임의 자유도와 상호작용성에 따른 게임의 몰입은 게임 이면의 규칙에 묻어나는 차별과 억압의 이데올로기를 ‘자연화’(neutralization)하기 쉽게 만든다. 프라스카는 주류 컴퓨터게임들의 이러한 한계들을 비판하면서 플레이어에게 자신이 당면한 현실을 탐색하게끔 허용하는 캐릭터 중심의 비디오게임, 더 나아가 게임의 행동 규칙을 플레이어 스스로 변경할 수 있는 컴퓨터게임을 구상한다. 이를 위해 그는 아우구스또 보알이 연극을 통해 실험했던 것을 컴퓨터게임으로 전유하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에서 관건은 “재미 경험을 유지하는 가운데서도 이데올로기적 이슈들과 사회적 갈등들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강화하는 비디오게임”의 개발이다. 이러한 인식은 〈9ㆍ12〉나 〈마드리드 Madrid〉와 같은 프라스카 본인의 게임의 개발로도 이어진 바 있다. 하지만 프라스카의 작업에서 더 중요한 것은 게임 창작이 어려운 이들이 기존의 게임들을 비판적으로 ‘재매개’하여 자기 이야기를 만들도록 제안하는 것이다. 특히 그는 대중적으로 크게 인기를 끈 고전 게임들을 활용할 경우 유저들 사이에서 광범위한 참여와 대화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근에야 게임 창작 도구나 제작 엔진의 수준이나 직관성이 크게 향상되고 ‘로블록스’나 ‘디토랜드’ 등과 같은 양질의 플랫폼이 발표되어 프라스카의 실험 제안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무척 커졌다. 프라스카의 실험은 일종의 게임 모드(mod)에 대한 제안으로 볼 수 있는데 그 수준도 비약적으로 향상되기도 했다. 문제는 플레이어-주체들의 의지와 인식에 달린 셈이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게임들이 드문드문 인디 게임씬에서 발표되는 중이다. 게임 유저의 게임 모딩이나 창작의 환경이 지금보다 원활하지 않았던 시절 〈심즈〉를 이용하여 프라스카가 상상한 ‘억압받는 사람들의 비디오게임’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억압받는 자들의 비디오게임’ 프라스카의 ‘억압받는자들의 비디오게임’은 소설이나 영화처럼 억압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억압을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보알의 ‘억압받는 자들의 연극’이 그랬듯이 프라스카의 게임은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차별과 억압들에 대해 ‘쟁점들을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보알의 연극 실험처럼 ‘과정 속의 작업’(work-in-progress)으로서 비판적 사유와 논쟁을 위한 포럼(forum)의 역할만으로도 유의미하기 때문이다. 프라스카의 말처럼 모든 게임들은 늘 제한적이고 이념적으로 편향적일 수 있다. 그리고 게임들은 개발자들도 예견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고 플레이될 수도 있다. 프라스카는 문학이나 영화 못지않게 게임들도 훌륭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는 세리 터클의 주장에 동의한다. 터클에 따르면 게임과 시뮬레이션들에 있어 “시뮬레이션의 기저에 깔린 이데올로기적 가설들에 대한 이해는 정치권력의 핵심 요소이다. 시뮬레이션들에 강요된 왜곡들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더욱 직접적인 경제적ㆍ정치적 피드백과 새로운 종류의 재현, 더욱 많은 정보의 채널들을 요구할 만한 위치에 있다.” 프라스카는 이 정도로 게임 사용자들의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대안적인 게임 창작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개발자들이 한데 힘을 모으고 실천적인 사례들을 창안하고 확산시켜 나갈 것을 촉구한다. 이처럼 프라스카의 ‘억압당하는 자들의 비디오게임’은 브레히트의 영향을 받은 보알의 ‘억압당하는 자들의 연극’ 이념과 테크닉들을 비디오게임으로 전유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관객-배우’가 직접 경험한 억압적 상황을 무대에서 소개하고 그에 대해 배우와 동료 관객들이 참여하여 대안적 해결책들을 연기할 수 있는 것처럼, 이 게임은 플레이어들에게 자신의 게임들을 디자인하도록 허용함으로써 기존 게임의 이데올로기적 가정들에 도전할 수 있는 도구들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물론 당시로서는 주류 게임을 이용하여 그 게임의 이데올로기를 문제 삼는 게임을 디자인한다는 것이 비현실적인 일로 여겨질 수 있었다. 최근에야 소극적이나마 플레이어들 스스로 개작한 모드 게임들을 공유하고 플레이하는 일이 낯설지는 않다. 〈로블록스〉를 통해 게임들을 만들고 그것들을 직접 구매하여 플레이하며 동료 플레이어들 상호 간에 소통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하지만 프라스카는 대략 20여년 전의 기술적 조건과 환경 속에서 난해해 보이는 실험들을 제안한다.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는 그의 작업과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사례이다.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 프라스카의 첫 실험은 게임 역사상 매우 성공했고 중요한 게임이었던 윌 라이트(Will Wright)의 〈심즈〉를 기능전환하는 것이었다. 〈심시티〉의 개발자이기도 한 윌 라이트는 〈심즈〉에서 일상의 삶과 생활을 시뮬레이트함으로써 다양한 인간관계를 경험하도록 해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심(Sim)이라고 불리는 캐릭터를 만들어 삶을 살며 주변을 관찰하고 다양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원래 윌라이트는 이 게임의 아이디어를 버클리 대학 건축학과 교수인 크리스토퍼 알렉산더(Christopher Alexander)의 책『패턴 랭귀지』로부터 얻었다고 한다. 이것은 건축이 인간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256가지의 사례를 들어 설명한 책이라고 한다. 윌 라이트는 비디오게임을 통해 이러한 다양한 패턴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인간의 생활을 시뮬레이션하는 게임을 만든 것이다. 〈심즈〉에서 우리는 인간관계나 가족관계, 혹은 인간관계가 어떻게 상호반응하는지를 추체험할 수 있다. 플레이어들은 스스로 디자인한 ‘심’들을 통해 인생을 계획하고 인생의 의미를 만들어나간다. 우리가 원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캐릭터들을 보며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끼고 동일시에 가까운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는 게임이 바로 〈심즈〉인 것이다. 플레이어가 ‘스킨 Skin’ 기능을 통해 직접 캐릭터를 디자인할 수 있다는 사실, 벽지나 바닥재 등의 재료들로 집을 꾸미고 가족의 삶을 설계하는 일은 현실에 대한 시뮬레이션의 재미를 만끽하게 해주었다. 그중 단연 즐거운 것은 각종 게임 정보, 각 플레이어들의 캐릭터들과 심들의 삶 등에 대해 공유하고 토론할 수 있는 유저 커뮤니티가 있어 게임을 사회적 활동으로 승화시킬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커뮤니티 기능은 게임에 쉽게 싫증나지 않게 해주고 인간사의 여러 우발적인 사건들을 통해 색다른 재미를 주기도 한다. 회사가 계속해서 확장 팩을 내놓으면서 게임 세계와 행동 영역을 확장해나간 것도 게임의 주요 성공 요인이었다. 프라스카가 〈심즈〉를 시뮬레이션의 기반으로 삼은 것은 이 게임이 플레이어의 게임 변형, 즉 ‘모드’(mod, modification)의 자유를 허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에야 많은 게임들이 플레이어의 플레이 영상이나 그 경험물들을 게임의 일부로 수용하고 그것들을 집단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별로 신선하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심즈〉의 발표 당시 이는 매우 신선한 것이었다. 프라스카는 〈심즈〉의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 기능에 주목한다. 그는 플레이어들이 선호하는 영웅이나 스타, 혹은 자신들처럼 보이도록 캐릭터를 디자인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영감을 받아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를 구상한다. 물론 프라스카의 출발점은 원작 〈심즈〉의 규칙과 메커닉에 내재된 이데올로기에 대한 의문이다. 이 게임은 가족의 삶과 인간을 시뮬레이션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게임 산업에서 분명한 약진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소비주의적 원리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플레이어들의 소유가 늘면 늘수록 친구가 늘어나는 식의 규칙을 내장하고 있는 점은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이 게임은 도시 근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시뮬레이트하면서 전형적인 ‘와스프’(WASP, White Anglo-Saxon Protestant), 즉 백인중상층의 이데올로기를 바탕에 깔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플레이어들에게 캐릭터들의 겉모습만을 바꿀 수 있는 자유만 주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게임 개발자의 설정이나 규칙, 이미지 재현 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어찌해볼 도리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프라스카가 게임 규칙의 전폐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면 게임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심즈〉가 비판적 사유의 촉진을 위한 실험의 마중물이 되기 위해서는 게임 규칙들이 플레이어들의 다양한 접근을 허락하도록 충분히 개방적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는 캐릭터의 겉모습을 바꾸는 식의 변화가 아니라 시뮬레이션 자체의 이데올로기적 가설들에 대한 도전과 변형을 허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플레이어에게 게임의 자질구레한 규칙들을 변형하고 보태고 토론하는 것을 가능하기 위해서는 시중에 발매된 〈심즈〉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특히 캐릭터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규칙들에는 게임 혹은 게임을 만든 개발자의 이데올로기가 반영되기 마련이므로, 이러한 규칙에 대한 변경을 실험하도록 하는 것이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의 목적이다. 우선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외양 skins’ 다운로드 기능에 추가로 다양한 개성의 캐릭터 디자인과 이에 대한 플레이어 상호 공유 시스템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기존의 심즈는 6가지의 행동 스타일 혹은 인물 성향에 따라서만 게임을 진행하도록 제한함으로써 게임의 현실감을 떨어뜨렸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반면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는 동료 플레이어들이 어떤 플레이어가 디자인한 캐릭터들을 비판하고 이에 대해 그들 각각의 대안들을 디자인할 수 있다.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는 플레이어들 서로 서로에게 더욱 현실감 있는 캐릭터로의 개선을 요구하고 토론할 수 있는 ‘디자인 툴’을 제공할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는 보알의 연극 처럼 ‘과정 속의 작업’(work-in-progress)이다. 즉 어떤 억압적 상황에 대해 해답이 될 만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그 상황에 대한 훌륭한 논쟁과 토론을 얻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물론 〈심즈〉에 대한 기능전환이 비디오게임 자체의 위상을 바꾸지는 않는다. 다만 최대의 가능성들을 현실화하기 위해 기존의 캐릭터 커스터마이징보다 더 많은 변형의 자유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프라스카가 아그네스(Agnes)라는 가상의 소녀를 통해 소개하는 사례를 통해 그의 생각을 구체화해보자. 아그네스 Agnes는 지금 한 동안 〈심즈〉를 플레이해오고 있는 중이다. 그녀는 이 게임의 규칙과 기본 메커니즘을 알고 있고 그것을 즐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가족 관계가 보다 현실적이었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는 ‘캐릭터 교환 Character Exchange’ 사이트로 가서 다양한 캐릭터들을 검색한다. 그녀는 흥미 있어 보이는 한 캐릭터를 발견한다. 이것은 ‘데이브의 알콜 중독 어머니 버전 0.9 Dave's Alcholic Mother version 0.9’라고 이름 붙여져 있는데 그 게임을 설계한 플레이어는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이 어머니는 많은 시간을 일로 보내고 집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너무 피곤하다. 여전히 그녀는 저녁을 조리할 것이고 약간의 청소도 할 것이다. 그녀의 가혹한 삶에서 도피하기 위해 어머니는 많은 양의 위스키를 마신다. 그녀는 아이들과 애완동물 때문에 매우 화가 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래서 폭력적이 될 수도 있다.” 아그네스는 이 캐릭터를 시험해볼 생각을 하고 그녀가 이전에 플레이해왔던 집 안으로 그 캐릭터를 다운로드한다. 이 가정은 부부와 세 아이들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로 구성되어 있다. 다운로드 이후 어머니는 ‘데이브의 알콜중독 어머니 버전 0.9’로 대체된다. 이 캐릭터는 흥미롭다. 한동안 그 캐릭터를 가지고 플레이하고 난 후 아그네스는 그 캐릭터가 어느 정도의 피로에 도달하면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가 마시면 마실수록 가족에 대해서는 덜 관심을 가질 것이다. 아그네스는 이 캐릭터가 꽤 잘 묘사되어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녀가 동의할 수 없는 디테일들이 있음을 느낀다. 이를테면 이 캐릭터의 배경은 낮은 교육 수준을 가진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에 덧붙여 이 캐릭터의 직업은 형편없다. 그리고 일들을 더 나쁘게 만들기 위해 ‘알콜 중독 어머니’는 거실의 작은 바에서 계속해서 퍼마신다. 아그네스의 생각에 알콜 중독에 걸린 사람은 빈약한 교육을 받았고 형편없는 직업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아그네스는 일반적으로 알콜 중독자는 집 주위에 술병을 감추지 공개적으로 마시려 하지 않음을 안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 ‘캐릭터 교환’ 사이트로 가서 다른 알콜 중독 어머니를 찾아본다. 그녀는 유망해 보이는 ‘도로시의 알콜 중독 감리교도 어머니 버전 3.2 Dorothy's Alcholic Methodist Mother version 3.2’를 발견한다. 그것을 실험한 후 그녀는 이 캐릭터의 행동이 그녀가 그것에 대해 가졌던 생각보다 훨씬 더 적합함을 깨닫는다. 그녀는 엄마가 감리교도일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이 버전의 디자이너가 고집한 이유에 매료된다. 그 사실은 엄마의 알콜 중독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시 캐릭터 디자이너의 웹 페이지를 체크하고, 이 캐릭터가 감리교도였던 어떤 실제 인물의 실제 이야기에 근거해서 만들어 진 것임을 말해주는 짧은 내러티브를 발견한다. 아그네스는 이 스토리를 흥미롭게 생각하고 알콜 중독의 행동 부분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녀에게 감리교도 부분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캐릭터의 코드를 변경하기 위해 ‘에디터 editor’ 기능을 이용하고 종교와 관련된 언급들을 삭제한다. 그녀는 또한 몇몇 작은 디테일들을 추가한다. 가령 엄마가 어떤 브랜드의 위스키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덧붙이기도 한다. 그런 후 그녀는 그것을 ‘아그네스의 알콜 중독 어머니 1.0-도로시의 알콜 중독 감리교도 어머니 버전 3.0에 의거함 Agnes' Alcholic Mother 1.o-Based on Dorothy's Alcholic Methodist Mother version 3.2’이라는 제목으로 온라인에 탑재하고, 주요 행동 규칙에 대한 짧은 설명을 덧붙인다. 몇 주 후 아그네스는 알콜 중독 어머니의 플레이에 약간 싫증을 느끼고 그녀에게 약간 더 많은 개성을 부여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녀는 엄마가 생태론자 ecologist가 되면 더욱 좋아질 것이라고 판단한다. 아그네스는 ‘피터의 급진 그린피스 활동가 버전 9.1 Peter's Radical Greenpeace activist version 9.1’을 다운로드한다. 그녀는 자신의 알콜 중독 어머니에 약간의 부수적인 변형들과 더불어 피터 버전의 코드를 편집하고 그것을 카피하고 짜깁기한다. 이제 어머니는 식물들을 더욱 조심스럽게 다루고 술에 취했을 때도 고양이를 차거나 하지 않는다. 이렇게 여러 차례 변형을 거친 후 아그네스는 스스로 설계한 게임을 사이트에 탑재한다. 이 게임에 대해 다른 플레이어들의 비평과 토론이 이어지고, 어떤 이들은 이것을 변형하여 새로운 게임을 제작하고 탑재한다. 다른 플레이어도 아그네스나 다른 동료 플레이어들의 게임들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 변형 작업을 반복할 수 있다. 이처럼 누군가의 게임에 대해 크고 작은 규칙들을 변경하고 보태고 토론하는 과정은 보알의 ‘포럼연극’(forum theatre)처럼 어떤 억압적 상황에 대한 참여자들 각자의 생각들을 피력하는 가운데 다양한 대안을 모색하는 공감과 협력의 과정이다. 이는 전설적인 비디오게임 〈스페이스 워〉의 완성을 위해 서로 협력하고 품을 팔던 스티브 러셀(Steve Russell)과 그의 MIT 동료 해커들을 떠올리게 한다. 플레이어들은 크고 작은 정치적ㆍ사회적 억압들을 반영한 새로운 게임들을 디자인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의 게임에 비판적인 자기 의견을 반영하여 규칙이나 설정을 변경할 수도 있다. 어느 누군가의 게임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보태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업그레이드 버전들이 이어진다. 여기서 문제적 상황에 대한 해결책이나 합의 도출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각자의 생각들을 담아 스스로 만들고 보탠 게임들로 어떤 문제들을 공유하고 업그레이드하면서 서로의 생각들을 발전시켜 나가며 인식의 확장과 상승을 경험하는 것이 프라스카의 구상이기 때문이다. 프라스카는 이러한 창작 플랫폼을 ‘메타 시뮬레이션’(meta-simulat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는 적극적이건 소극적이건 다양한 사람들의 다채로운 참여와 소통을 도와주는 게임 창작 시스템을 가리킨다. 하지만 사실은 ‘너 자신의 행동을 디자인해라’라는 기능이 윌라이트의 〈심즈〉 원작 게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원작에서는 다만 캐릭터를 커스터마이징하는 것만 허용할 뿐이기 때문이다. 원래의 〈심즈〉에서는 플레이어들의 행동 폭 역시 무척 제한적인데, 그들 캐릭터는 ‘단정’, ‘사교적’, ‘활동적’, ‘쾌활’, ‘섬세한’이라는 주어진 성격 안에서만 활동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을 시뮬레이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복잡한 결들과 인간관계의 다층적 갈등들을 담아내고 있지 못하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프라스카가 보기에도 〈심즈〉는 다른 게임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자유도에도 불구하고 규칙의 제한에 갇혀 있는 게임이고, 부자가 더 많은 친구를 갖는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에 포획되어 있는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게임 개발자가 마련해둔 규칙과 행동 패턴에서 드러나는 이데올로기에 딴지를 걸 수 없다. 그래서 프라스카는 〈심즈〉에 캐릭터의 부분적인 변경 이외에 게임 규칙 혹은 행동 규칙의 변경의 자유를 플레이어에게 허용하게 될 때 생길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고 있다. ‘PMO’ 프로젝트: 나의 억압을 플레이하라! ‘억압받는 자들의 비디오게임’의 또 하나의 사례로 프라스카는 ‘나의 억압을 플레이하기’(Play my Oppression, PMO)를 제안한다. 이 프로젝트 역시 보알의 연극 테크닉인 ‘이미지 연극’(Image Theatre)에 바탕을 둔 실험이다. 이미지 연극에서 ‘관객-배우’들은 본인들의 억압적 상황이나 차별적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들이나 다른 사람들의 몸 혹은 간단한 소품들을 ‘빚고’ ‘조각하여’ 하나의 이미지로 표현해 볼 것을 요청받는다. 이 실험에서 ‘관객-배우’들은 절대로 말을 하면 안 된다. 그들은 다른 참가자들의 몸만을 이용하여 어떤 ‘이미지’를 조각해내야 한다. 어떤 이상적인 이미지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반복해서 이미지를 수정하는 ‘이미지 연극’의 작업은 ‘몸으로 하는 포럼연극’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극의 목표는 우리의 일상적이고 관습적인 행위와 몸짓들을 통해 억압과 차별이 재생산되고 있고 가장 기본적인 육체적 수준에서 우리의 편향적 정체성이 형성되어 왔음을 반성하는 것이다. 다른 인종, 종교, 젠더, 국적 등에 대한 우리의 (무)의식은 몸을 통해 드러난다. 그런데 보알의 ‘이미지 연극’을 통해 참여자들은 뿌리 깊은 차별의 원인이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사회구조와 제도 및 권력에서 비롯된 것임을 몸을 통해 체험하고 사유한다. 프라스카는 보알의 실험을 통해 처음 한 사람이 몸을 통해 제시한 자신의 ‘억압 이미지’에 대해 참여자들이 서로 그 이미지를 수정하며 일종의 ‘대안 이미지’를 형성하는 과정을 거쳐 상호 공감과 이해의 폭을 넓히고 참여자들 스스로 차별과 억압에 대한 인식의 개선을 이루어나가는 점에 주목한다. 프라스카의 말처럼 ‘PMO’ 비디오게임은 몸이 아니라 마우스와 자판, 조이스틱을 가지고 하는 작업이다. 그는 연극에서의 몸이 아니더라도 비디오게임의 특별한 기능을 활용하면 보알의 퍼포먼스와 동일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본다. 그는 다시 〈심즈〉의 ‘포토앨범’ 기능에서 그 해법을 찾는다. 물론 ‘포토앨범’ 기능이 게임 규칙의 설계를 허용하는 것은 아니고 플레이어 자신의 선형적인 내레이션의 창작만 허용한다. 이 기능을 이용하여 플레이어는 게임 플레이의 다양한 순간을 담은 스냅 사진들을 활용하여 그것에 설명을 달고 자기만의 ‘가족앨범’을 설계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스스로 재구성한 이 앨범은 인터넷에 마련된 사이트에 올릴 수 있고 다른 플레이어들과 공유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 기능을 자기만의 스토리를 구성하는 장치로 활용하고 있다. 물론 〈심즈〉를 플레이하는 주된 이유는 그래픽 이미지를 통해 게임 상황을 연출하기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주요한 장면을 캡쳐하고 거기에 주석을 붙임으로써 자기만의 이야기를 창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심즈〉의 디자이너 윌 라이트가 소개한 포토 앨범 중에는 폭력 남편과 살던 여성의 동생이 올린 글이 있었다. 인터넷 심즈 사이트에 올라온 이 콘텐츠에는 언니와 동생의 관계, 언니가 폭력 남편과 결혼하게 된 경위, 남편이 더욱 폭력적으로 되어가면서 파경에 이르게 된 사연 등을 실감나게 보고하고 있다. 물론 허구적일 수도 있는 이 스토리는 무척 현실감이 있는 것이었고 다른 플레이어들과 활발한 토론의 계기를 제공했다. 윌 라이트는 게임의 토론 유발과 공감대 형성 과정에 주목하면서 플레이어들의 스토리텔링 구성 기능을 강화하기도 한 바 있다. 하지만 프라스카가 생각하는 프로젝트의 이행을 위해서는 〈심즈〉의 ‘포토앨범’ 기능이 더욱 확장될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에게 중요한 것은 만화나 영화 같은 정적인 내러티브 시퀀스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플레이어들이 경험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즉 게임을 창조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즈〉의 원래 ‘포토앨범’ 기능에서 플레이어는 어떤 ‘완결적’ 사건을 묘사할 수밖에 없었다. 즉 그가 작성한 스토리는 고정된 것이고 닫힌 결말로 끝나기 때문에 다른 플레이어에 의한 이야기 변경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 스토리를 경험한 다른 플레이어들은 그저 이에 대해 댓글만 올릴 뿐 상황 자체의 변경을 통한 대안 제시로까지 나아가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프라스카는 ‘폭력남편’ 이야기를 올린 플레이어의 진짜 의도가 또 다른(‘대안적인’) 게임의 창조였다는 가정하에서 일종의 기능전환을 시도한다. 만일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다른 플레이어들은 다양한 관점에서 이 사건을 경험하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다른 행동 모델들을 실험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플레이어들은 다양한 인간 관계들과 물질적 상황들을 직접 체험할 수 있고 상호토론을 통해 인간과 현실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으며 자신들이 직면해 있는 억압적 현실에 대한 반성과 사회적 인식의 강화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는 것이 프라스카의 기대이다. ‘나의 억압을 플레이하라’, 즉 ‘PMO’의 실행을 위해서는 우선 한 참여자가 직접 겪거나 경험한 개인적 문제와 고민을 모델화한 게임을 창조할 수 있다. 이후 다른 참여자들은 그것을 플레이해보고 그에 대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으며, 심지어 어떤 플레이어들은 그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개인적 입장을 반영한 새로운 버전의 게임을 창조할 수도 있다. 이 시뮬레이션 게임에 대한 플레이와 토론, 수정은 모두에게 열려 있다. 이 과정에서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는 사회ㆍ정치적 대화의 차원으로까지 발전될 수 있다. 물론 플레이어들 스스로 시뮬레이션 게임을 만드는 것이 어려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많은 게임들이 플레이어의 참여를 위한 다양한 툴과 공간을 제공하고 있고, 그리고 비교적 쉽게 게임을 변경하거나 디자인할 수 있는 방편들이 주어지고 있다. 프라스카 역시 앞으로 컴퓨터게임이 더욱 대중화될수록 ‘시뮬레이션의 처리능력'(simulation literacy) 역시 더욱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실제로 오늘날의 시뮬레이션 창작 환경은 프라스카의 기대와 상상 그 이상으로 진화를 해오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 곤잘로 프라스카가 제시한 사례를 통해 ‘PMO’의 과정을 구체화해보자. 프라스카는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부모나 주변에 ‘커밍아웃’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터(Peter)라는 주인공을 가정하여 샘플 시나리오를 짠다. 일단 게임 커뮤니티에서 피터의 시나리오가 승인되고 나면 그는 이 문제를 토론하려고 하는 방에 게임을 만들어 놓는다. 프라스카는 이를 ‘옵 게임’(op-games, oppressive games), 즉 억압을 시뮬레이션 해놓은 게임으로 부른다. 이 게임에는 피터의 주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극복할 필요가 있는 특수한 문제들이 재현되어 있다. ‘옵-게임들’의 경우에도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보알의 연극처럼 성소수자 피터가 겪을 수 있을 문제들을 시뮬레이션으로 만드는 것이다. 피터의 경우에도 부모에게 자신의 동성애적 취향을 밝히는 데 있어서 겪는 어려움들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든다. 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지는 고전 게임의 레벨 디자인처럼 말이다. 여기서 피터는 자신이 대결해야 할 세 가지 과제, 혹은 꼭 극복해야 할 세 개의 난제를 비디오게임으로 시뮬레이션하고 각각의 게임에 〈모욕〉, 〈나는 누구인가?〉, 〈사회〉라는 제목을 달아주었다. 〈모욕〉은 이상한 놈 취급을 당하는 주인공 피터가 주변 사람들, 특히 학교 친구들에게 어떻게 집단 따돌림과 구타를 당하는지를 보여준다. 피터는 우선 이 문제의 시뮬레이션에 적당한 고전 비디오게임을 선택한다. 피터는 손수 제작한 그래픽을 업로드하거나 이전에 누군가 제작해놓은 것을 수정하여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비디오게임의 기능 향상을 위해 몇몇 기능들을 추가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일단 고전 게임들에 기반하여 다양한 모드들을 창조해보고 그중 피터의 사건을 재현하는 데 유용한 것들을 선별하여 게임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사건에 대해 다른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다양한 가능성들을 체험하도록 하는 것이고 보다 숙련된 플레이어들에게는 피터의 버전을 더욱 정교하게 개선하거나 수정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프라스카의 피터는 다음과 같은 일러스트로서 자신의 첫 번째 게임을 표현한다. 이 일러스트에서 알 수 있듯이 피터는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게임 모딩의 템플릿으로 선택했는데 외계인의 우주선 그래픽을 자신을 괴롭히는 동료 학생들의 모습으로 설정해 놓았다. 하지만 원작 게임에서와는 달리 피터의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총을 발사할 수 없다. 피터가 지금 겪고 있는 곤란은 동료학생들의 집단 이지매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른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스페이스 인베이더〉에서처럼 행동을 통해 사태를 해결해버린다면 다른 플레이어들은 그저 이 게임을 즐기면 그만일 뿐 그 이상의 토론과 작업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피터는 이 시뮬레이션에 첨부해 놓은 ‘디자인 노트’에 이러한 사정을 밝혀 놓았고, 이 문제에 대해 다른 플레이어들은 집단 토론과 참여를 통해 사태에 대한 해결책이나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물론 몇몇 플레이어들은 피터의 게임을 수정하여 다른 버전의 게임을 디자인함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다음 그림은 플레이어들이 제안한 또 다른 해결책을 보여주는 게임 그래픽들이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이 주제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을 촉진할 수 있는 예술작품(가령 노래나 시)을 창조하고 반 아이들과 이를 공유함으로써 진지하게 의견을 나누다보면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하고 있다. 또 다른 플레이어는 귀를 막고 있는 캐릭터를 통해 주변 학생들의 모욕스러운 공격들을 무시해버리라고 제안한다. 피터의 게임들에 대한 이러한 변형은 무척 간단한 것이지만 플레이어의 능력에 따라 다양한 수준의 변형이 가능하다. 플레이어들은 ‘다중 선택’(multiple-choice) 매뉴얼을 활용함으로써 원작 게임의 모든 그래픽을 변경할 수 있고 자신의 사진이나 UCC 그래픽들을 업로드할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탑재된 게임들을 매개로 오고 가는 다양한 의견들은 개인적 수준의 소박한 해결책부터 동성애나 소수자, 왕따 문제 등에 대한 사회ㆍ정치적 구조 분석과 원인 진단에 이르기까지 다양할 수 있을 것이다. 프라스카는 이 과정에 참여하면서 플레이어들의 사회적 인식이 상승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게임의 다음 모형은 대전게임의 고전 〈스트리트 파이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여기서 피터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반영하여 게임을 디자인해 놓았다. 그는 거울에 반사된 자기를 볼 때마다 ‘괴물’을 본다. 내면의 성적 성향과 이성애 중심적인 사회적 시선이 충돌하는 가운데 성적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모습이 기괴한 ‘괴물’의 모습으로 드러난 것이다. ‘디자인 노트’에 피터는 이러한 일이 가끔 일어나는 일이며 그때마다 ‘나는 전혀 다른 두 사람’이라는 분열적 감정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이 게임에서 승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한 사람 두 정체성’이 계속해서 치고 박는 싸움을 벌이는 일이 전부다. 여기서도 플레이어들은 이러한 피터의 문제를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도 궁극적인 해결책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문제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쟁점이기도 하고, 중요한 것은 게임들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해 치열한 토론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해답보다는 좋은 대화가 우리를 성장시키는 법이니 말이다. 마지막 게임인 〈사회〉의 실물 모형은 〈테트리스〉를 바탕으로 만든 게임이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소년과 소년, 소녀와 소녀 커플을 짝지을 수 있다. 만일 플레이어가 소녀-소년 커플로 짝을 지우면 그 커플은 계속 재생산되거나 복제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이 게임에서도 어떤 커플이 가장 이상적인 커플인지를 찾아내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에 대해서는 플레이어들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고 역시 게임의 목표는 엔딩을 맛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제시되는 게임들은 모두 ‘열린 게임’이고 이는 참여자들의 토론과 참여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플레이어는 성적 취향이라는 것이 지니는 다양한 사회적 의미들을 토론할 것이고, 모든 커플의 차이는 그저 차이에 불과한 것일 뿐 차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알지도 모를 일이다. 이른바 ‘정상가족’이라는 사회의 통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일단 세 게임이 모두 온라인에 탑재되고 난 후 모든 참여자들은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가운데 다양한 참여를 할 수 있다. 그저 게임만 플레이해 볼 수도 있고 자신의 게임 소감부터 피터의 상황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해결책들을 댓글의 형태로 올려놓을 수도 있다. 어떤 참여자들은 피터의 세 게임들에 자극을 받아 게임을 모딩함으로써 수정된 버전의 게임을 탑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그림은 〈팩맨〉에 기반하여 다른 플레이어(일명 ‘캐시’)가 디자인한 대안적 게임이다. 물론 ‘포럼’은 피터의 게임들을 중심으로 전개되겠지만 다른 플레이어들의 게임들이 토론의 대상으로 추가되면서 더욱 많은 크고 작은 토론들이 가능할 것이다. 캐시(Cathy)라는 여성은 〈사이먼이 말하기를〉이라는 게임을 이용하여 몬스터 게임을 디자인한다. 이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는 몬스터를 때려잡는 것이 아니라 그의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1등 따라하기〉 놀이처럼 말이다. 플레이어가 그것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그 이미지는 서서히 변할 것이다. 캐시는 예전에 피터와 동일한 경험을 했었고 스스로 감내하고 맞서야 했던 수많은 차별적 상황들을 게임에 담아놓았음을 밝혀둔다. 그리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난 후 그녀는 친구의 도움으로 이 문제에 대처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이를 자기 게임의 테마로 삼았다고 보고한다. 결국 게임의 플레이와 토론 과정을 통해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의 성적 소수자에 대한 연대의 마인드가 중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될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연대의 방안들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이 개진될 수 있을 것이다. 마치며 코로나 19의 상황을 거치며 우리의 삶이 무척이나 각박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중의 억압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종, 젠더, 민족, 종교, 장애 등의 이유로 차별을 당하고 있는 소수자들이 그들이다. 가진 자들과 힘 있는 자들은 이른바 정상과 비정상을 갈라치며 사적인 이익을 얻으려 혈안이 되어 있다. 하지만 역사는 억압과 차별의 철폐를 향한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최근의 경우처럼 퇴행적인 ‘갈라치기’의 흐름이 강고한 모습으로 나타나더라도 우리 사회도 결국에는 동료 시민들과 ‘같이 살며 같이 즐기는’ 공환(共歡, conviviality)의 공동체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물론 이러한 미래는 그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깨어 있는’ 시민들의 공감과 연대, 공동체의 미래를 걱정하는 ‘우리 아무개’들의 협력은 억압과 차별 없는 미래의 필요조건일 것이다. 게임에 앞서 문학과 연극, 영화, 만화 등은 소수자들의 고난과 상처를 감싸 안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오고 있다. 그렇다면 강력한 ‘상호작용’의 매체인 게임은 더욱 효과적으로 우리를 공감과 인식의 장으로 초대하며 연대의 매개자가 되어줄 것인가? 아직은 이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할 만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다른 매체들도 그랬던 것처럼 게임 역시 다양한 사회적 억압과 차별을 주제로 즐기며 배우는 기회들을 보다 많이 제공할 것이다. 이미 의미 있는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보알의 연극에 영감을 받은 곤잘로 프라스카는 비디오게임 역시 억압적 현실을 재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현실을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보알의 연극 테크닉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적극적인 연기자가 되게 함으로써 개인적ㆍ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과 해결책들을 표현하게 한다. 물론 그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는 ‘이상적 결론’이 아니다. 프라스카의 목표는 주류 비디오게임들의 당연시되는 규범들을 해체하고 게임을 사회적 의제(agenda)에 대한 토론의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개개인들에게 벌어지는 다양한 사태들을 게임에 담아내고 그 게임을 같이 플레이하며 토론하고 숙의하며 저마다의 대안들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프라스카의 게임 프로젝트는 구체적 실천의 필수적 전 단계인 반성과 인식의 과정을 의미한다. 개인적ㆍ사회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은 타자에 대한 공감과 현실 인식의 과정으로부터 시작된다. 아직 대세는 아니지만 게임은 그러한 가능성을 충분하게 가지고 있다. 물론 주류 게임산업이 주도하는 현실에서 프라스카의 비전들은 ‘몽상’에 가까운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점점 더 발전하고 있는 게임 창작 환경, 게임의 플레이를 넘어 ‘보기’와 ‘만들기’로 확장되고 있는 ‘게임하기’의 실천들은 게임의 다양성 환경 구축에 유리한 기회를 조성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주류 게임과 ‘다른’ 게임들에 대한 수요도 있다. 필요한 것은 게임 사용자들의 의지이며 전환적 사고이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게임의 다양한 사회적 실천들과 향유를 위한 발판이 되어줄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경상국립대학교 교수) 김겸섭 독일공연예술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마쳤다. 공연예술과 문화연구 관련 공부와 함께 공연 및 축제 연출과 기획일을 하였다. 이후 공연학 공부를 확장하려는 욕심으로 디지털게임 연구를 시작하였다. 『억압받는 사람들의 비디오게임』,『컴퓨터게임의 윤리』를 번역하였고 『모두를 위한 놀이 디지털게임의 재발견』,『노동사회에서 구상하는 놀이의 윤리』를 썼다. 지금은 독일공연예술과 문화콘텐츠 관련 강의와 연구를 하고 있다.
- 꿈으로서의 '쿠소게'
"패미컴을 통해 초능력을 개발한다"라는 테마로 개발된 게임이 있었다. 1980년대 당시 일본의 초능력 붐 속에서 초능력자로 알려졌던 키요타 마스아키(清田益章; 통칭, 에스퍼 키요타)씨가 감수한 〈마인드시커〉라는 작품이다. 플레이 과정에서 조언자 격으로 등장하는 키요타씨의 지시를 받아 가며 게임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구성된 이 작품의 핵심 컨셉은 "실제로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였다. < Back 꿈으로서의 '쿠소게' 05 GG Vol. 22. 4. 10. * 이 글의 일본어 원문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pageNum=1&match=id:108 초능력개발게임 〈마인드시커〉 "패미컴을 통해 초능력을 개발한다"라는 테마로 개발된 게임이 있었다. 1980년대 당시 일본의 초능력 붐 속에서 초능력자로 알려졌던 키요타 마스아키(清田益章; 통칭, 에스퍼 키요타)씨가 감수한 〈마인드시커〉라는 작품이다. 플레이 과정에서 조언자 격으로 등장하는 키요타씨의 지시를 받아 가며 게임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구성된 이 작품의 핵심 컨셉은 "실제로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였다. 필자도 이 게임을 옛날에 실제로 해본 적이 있다. 그렇지만 애초에 게임이 요구하는 과제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그럼, 우선 투시를 해 봅시다"라든지, "예지를 해 봅시다"라는 식의 과제가 차례차례 나온다. 유감스럽게도 희미한 초능력조차도 간직하지 않고 있던(?) 필자에게는 초기 과제부터 이미 달성하기 곤란했다. 결과적으로 초능력 따위는 얻지 못했다. 〈마인드시커〉는 제대로 클리어할 수 없고, 제대로 즐기기도 어렵고, (아마도) 초능력을 개발하는 것조차도 할 수 없는 게임이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어느 것 하나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어느 것 하나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에는 특기할 만한 것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건 제작자와 플레이어의 게임에 대한 '꿈'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너무나 직접적인 꿈의 존재 방식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는 의미에 관해 이 작품만큼 쉽게 알 수 있는 작품은 드물다. 이 글에서는 이 '꿈'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다. 꿈의 장치로서의 컴퓨터 게임 〈마인드시커〉가 개발됐을 당시, 컴퓨터 게임이라는 문화가 한 때 맡고 있던 재미의 일부는 이런 것이었다. 즉, 사람들의 무한한 꿈을 실현시켜주는 기계라는 것이었다. 컴퓨터 속 캐릭터와 대전할 수 있다라거나 등장인물과 대화할 수 있다, 혹은 모니터를 향해 총을 쏘면 반응한다, 목소리를 입력하는 것이 가능하다와 같은 방식들. 지금은 당연히 여겨지는 이러한 것들은 1980년대에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급속도로 일상에 나타난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존재 방식이었다. '컴퓨터가 진화하면 게임으로 뭐든지 할 수 있게 된다'라는 무책임한 꿈을 많은 아이들이 믿었고, 게임 제작자는 그 꿈을 점점 현실에 구현해 나갔다. 이것이 1980년대의 패미컴이 히트하면서 게임이라는 미디어 자체가 많은 사람들의 끝없는 꿈을 어떤 의미론 무책임하게 맡아버릴 수 있던 시대의 풍경이었다. 물론 테크놀로지가 사람들의 '꿈'을 무책임하게 짊어진다는 구도 그 자체는 컴퓨터 또는 게임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사토 토시키(佐藤俊樹)는 정보사회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정보사회론 담론이 여러 번 동일한 꿈을 반복해 왔다는 것을 1996년에 지적한다(『노이만의 꿈, 근대의 욕망』 1996, 고단샤선서 메치에). 1970년대에도 꿈은 이야기되고, 1980년대에도 꿈은 이야기되고, 반복적으로, 반복적으로 '정보기술이 사회를 바꾼다'는 '신화'가 이야기되어 왔다고 한다. 사토는 도서관 안에 쌓여 있는 정보사회론을 논의하는 구도가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랐다고 한다. '컴퓨터가 어떻게 사회를 바꿔가는가'라는 담론이 성인이 사회에서 꾸는 꿈을 끝없이 확대시키는 장치였다면, 1980년대의 컴퓨터 게임은 아이가 놀이에 꾸는 꿈을 끝없이 확대시키는 장치였다고 해도 좋다. 1980년대 세계는 그 꿈의 소박함이라는 점에서 2022년 현재와 동떨어진 면이 있다. 물론 2022년 현재에서도 사람들은 AI에 과잉된 꿈을 걸고 좀 더 본격적인 VR 게임의 실현을 고대하고 있다. 그러나 1980년대 꾸었던 꿈과는 아무래도 그 성격이 다르다. 누가 1980년대의 '쿠소게'의 담당자였는가? 무엇이 다른 것인가 하면, 터무니없는 꿈의 담당자가 도대체 누구였는가 하는 것이다. 1980년대의 전설적인 '쿠소게'를 만드는 것은 갓 올라온 신입이나 타업계의 아마추어에 한정되지 않았다. '쿠소게'의 담당자는 종종 게임업계의 중심 인물이었다. 〈마인드시커〉의 개발 프로듀서는 그 〈팩맨〉의 친부모라고 할 수 있을 이와타니 토오루(岩谷徹)가 담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개발의 중심에 있던 스즈키 코지(鈴木浩司)는 그 후 1997년에 RPG의 존재 방식에 큰 파장을 던진 의 개발에 관여하여, 요즘 말하는 인디게임 문화의 선구자가 되는 작품에 큰 기여를 한 인물이기도 하다. 게임업계의 핵심 인물이 '쿠소게'에 관여하는 구도는 드물지 않다. 미국의 가정용 게임기 시장의 붕괴(이른바 '아타리 쇼크')로 이어지는 원인의 일부가 된 '전설의 쿠소게'로서 이야기되는 』(Atrari 2600, 1982)의 개발 담당자 하워드 스콧 워쇼(Howard Scott Warshaw)도 당시 아타리 사의 스타 개발자였다. Atari 2600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는 〈야스 리벤지(Yar’s Revenge)〉라는 타이틀의 개발자이다. 하워드 스콧 워쇼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힘껏 도맡아 를 만들었다. 참고로 일본의 1980년대의 대표적인 '쿠소게'인 〈타케시의 도전장〉은 요즘 말하는 오픈월드의 실현을 꿈꾸다 화려하게 실패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건 게임업계 내부가 아니라 탤런트인 비트 타케시가 한 소박한 아이디어였다. 그들은 컴퓨터 게임에서 사람들이 꾸고 있던 '꿈'을 떠맡고, 그리고 실패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너무나도 어처구니없고 미숙하고 조잡한 것이었다. 그리고 시대의 총아들이 어이없는 실패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은 게임업계 전체가 젊은 시대 특유의 특권을 부여받은 상황이라는 배경으로부터도 가능한 이야기일 것이다. 어이없는 꿈을 가지고, 그것에 무모하게 도전하는 것이 허락되었던 것이다. 최종적으로 완성된 작품을 보면 이들의 시도와 결과는 불행한 프로젝트로 귀결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 2022년에서 보면 업계의 톱스타가 끔찍하게 어이없는 기획에 어이없는 예산을 들이며 어이없는 열정을 쏟는 것은 거의 볼 수 없는 풍경이 되었다. 물론 당치 않는 기획으로 흥행을 노리거나, 혹은 실패하는 프로젝트 자체는 지금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러한 기획에 톱 크리에이터가 처음부터 달라붙어서 거액의 예산이 들어간다는 것 자체는 게임개발 과정에서 리스크에 대한 인지가 과거보다 크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오늘날의 대규모 개발 프로세스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반복하지만 1980년대 '쿠소게'가 가진 '어리석음'은 개발자들의 무능함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미숙하고 유능한 사람들이 꿈을 쏟아붓은 프로젝트에 전력으로 임했던 흔적이 1980년대의 '쿠소게'이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장치로서의 '쿠소게' 이토록 소박한 욕망의 발로를 통해, 대작을 만들려는 의지가 이제는 오히려 눈부시기까지 하다. '초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게임' 등과 같이 어처구니없는 것에도 정도가 있고, 1980년대에 대규모 오픈월드 게임을 만드는 것과 같은 야망도 너무나 무리였다. 이후 컴퓨터 게임이라는 세계 속에 떠도는 '꿈'을 맡는 하나의 절정으로 태어난 작품은 1999년 〈쉔무〉』(DC, 1999)였을 것이다. 〈쉔무〉는 또 하나의 현실 세계를 게임 속에 구현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것 중 하나를 우직하게 실현하고자 했던 작품 중 하나다. 이 작품이 남긴 것은 적자뿐 아니라, 실패라고도 성공이라고도 말하기 어려운 강렬한 인상이었다. 지금의 오픈월드라고 불리는 작품의 상당수는 직간접적으로든 〈쉔무〉의 시행착오의 결과를 반영하여 만들어졌다. 컴퓨터에 사람들이 꾸는 '꿈'은 대부분 무책임한 것이다. 그건 종종 어리석거나 사기꾼의 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러한 어리석음은 종종 우스꽝스러운 것이 되기도 하고, 완성된 결과물이 웃음을 자아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람들이 무엇인가에 웃을 때는 어떤 인식의 틀을 외부에서 메타시점으로 세우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꿈은 그 내부에 깔려 있을 때에 귀중하고, 그 외부에 나오면 때때로 웃음을 자아낸다. '꿈'을 꾼다는 것은 그 의미에서 우스꽝스럽다는 것이 숙명이라고 해도 좋다. 게임업계가 성숙해질수록, 웃어넘겨질수록, 어리석은 작품을 만드는 것은 최고의 톱 크리에이터의 일로서는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 결과 1990년대 후반이 되면서 보다 작은 게임 개발사가 과감한 '쿠소게'도, 단순히 개발력 부족에 의한 '쿠소게'도 그 양쪽 모두를 담당하게 되었다. 현대에는 광대하게 펼쳐진 인디게임 시장이 그 주력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는 웃을 만큼 어리석은 것을 만드는 것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새로운 것을 보고 싶어 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욕망과 웃을 만큼 어리석은 작품을 만들어 버리는 것은 표리일체 현상이다. 〈마인드시커〉를 켜고 오랜만에 놀다 보니 거기에 묻어 있는 우스운 듯한 바보스러움을 만나게 된다. 확실히 게임 자체는 바보같다. 그러나 이 게임은 동시에 빛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그 바보스러움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를 배후에서 느끼기 때문이다. 꿈을 꾸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아이 같은 설렘이 이 작품의 뒷면에 가로놓여 있다.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야말로 세계의 다양함과 풍요로움의 본연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이노우에 아키토, 井上明人 게임 연구자. 현재 리츠메이칸 대학 교수. 국제 대학 GLOCOM 조교, 칸사이 대학 특임준교수등을 거쳐 현재에 이른다. '게임이란 무엇인가'라고 하는 물음을 중심으로 하면서, 게임의 아카이브나, 게임을 응용한 사회적 과제의 해결에 관련되는 프로젝트 등에도 임하고 있다. (게임문화연구자) 박수진 게임연구에 발을 들인 대학원생입니다. 지금은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첨단종합학술연구과에서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최근엔 게임을 매개로 한 다양한 게임 경험과 일본 내 서브컬처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글 쓰는 건 여전히 어렵습니다.
- <검은 신화: 오공>의 성취는 중국 문화권 바깥에서도 충분히 이해되는 것인가?
이를테면 많은 한국 게이머들은 매 챕터가 끝날 때 등장하는 ‘다음 회에서 알아보자’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 어려운데, 이는 회본 형태로 챕터가 정리되는 서유기 원전의 끝 문장을 그대로 차용해 온 부분이고 원전 ‘서유기’가 한국에서는 널리 읽히는 편은 아니라는 문제에서 기인한다. 그나마 친연성이 있는 한국에서도 이런 상황인데, 서구권까지 넘어가게 되면 사실상 <오공>을 이해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 < Back <검은 신화: 오공>의 성취는 중국 문화권 바깥에서도 충분히 이해되는 것인가? 21 GG Vol. 24. 12. 10. 오랜 시간 동안 동아시아 문화권의 중심을 차지해 온 지라, 중국의 디지털게임을 향한 도전에서 중국 고전은 언제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온 바 있었다. GG의 지난 칼럼(참조)에서처럼, 중국의 디지털게임 제작은 초창기부터 <봉신연의>, <료재지이> 같은 중국의 고전 소설들을 디지털게임으로 가져오는 작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서유기>는 매우 자주 디지털게임으로의 시도가 이어져 온 작품이다. 8비트 게임 시절부터 중국에서는 <대화서유>, <서유기>, <서전취경>과 같은 여러 회사에 의한 다양한 게임 장르로의 시도가 서유기를 딛고 이루어졌다. (관련내용은 GG 2호, " 중국의 레트로 게임: 8비트 시대의 흔적들 " 참조) 비단 중국에만 국한되었다기보다는 <서유기>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판타지성은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 전반에서 현대적 대중문화 콘텐츠로의 잦은 시도를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 이루어진 <손손>과 같은 아케이드 디지털게임화, <서유기>를 초기 모티프로 삼아 만들어졌지만 이제는 아예 서구권 전반에서 ‘손오공’이 아닌 ‘손 고쿠’를 고유명사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성공한 <드래곤볼>과 같은 사례와 함께 한국에서도 <날아라 슈퍼보드>를 기반으로 한 ‘사오정 시리즈’의 성공이나, <마법천자문>과 같은 사례들이 서유기라는 고전 판타지의 확장성을 증명한다. 동아시아 고전 판타지라는 강한 배경을 가진 게임 <검은 신화: 오공(이하 <오공>)의 제작 발표가 있은 뒤부터 이 게임에 대한 관심은 그래서 한편의 기대와 한편의 걱정을 동시에 이끌어냈다. 티저 트레일러에서 보여준 액션 어드벤처 게임으로서의 상당한 완성도가 오래도록 다시 익혀 내어 온 고전의 새로운 게임적 재해석에 빛나는 성과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그리고 ‘또 서유기?’라는, 다소 진부할 수 있는 주제에 안이하게 천착해버릴 지도 모르겠다는 우려는 시장 규모에 비해 오랫동안 이렇다 할 ‘문화적 업적’으로서의 대표작을 보여주지 못한 중국 게임제작 씬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한 배경이었다. 높은 장르적 완성도는 세계관과 결부되며 빛을 발한다 <오공>의 성과는 액션 어드벤처라는 장르적 측면에서도 상당하다. 곤술과 창술이라는 우슈에 기반한 무기 액션은 특유의 부드러운 초식 연격을 통해 매끄러운 전투 흐름을 완성했고, 사실상 전투 액션의 핵심이 되는 강공격은 천지를 울리는 과장법을 무리없이 연출해내내는 데 성공했다. 전투 액션에서의 성공은 게임 시작부터 이어지는 주인공 캐릭터의 완성도 이상으로 다채로운 기믹을 자랑하는 수많은 보스 몹들을 통해 이뤄지는데, 이른바 ‘복붙’으로 만들어지는 장면들 대신 풍성한 파훼법을 고민하게 만드는 다양한 전투 도전이 게임의 중심을 놓치지 않고 이끌어냈다. 난이도 설정이 별도로 없다는 점은 일부 게이머들에게는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이 또한 고전적인 방식인 ‘시간을 들이면 해결된다’는 기믹을 살려둠으로써 완화점을 두었다. 초반부는 소울라이크를 방불케 할 만큼 확실히 도전적인 난이도를 보여주지만, 특정 구간들을 지나면서 열리는 도술과 특성이 누적되면서 난이도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일정 수준 이상의 시간을 들이면 못 넘어설 것은 아니라는 일련의 안도감을 부여한다. 소울라이크 느낌을 내면서도 게임 오버에도 경험치를 흘리지 않게 만들어진 디자인은 난이도 설정이 없다는 점을 보완하는 디자인이었고, 게임은 전반적으로 쉽다고 말하기 어려운 느낌을 주지만 그렇다고 초심자를 완전히 내팽개친다고만은 볼 수 없는 타협점을 보여주었다. 디지털게임의 성취를 바라볼 때 메카닉만을 뚝 떼어 보는 것은 게임을 온전히 파악하기 어려운 방법이다. 단순히 막대기를 돌리고 휘두르는 공격 액션이 훌륭하다고 하면 굳이 ‘서유기’라는 배경과 이야기라는 스킨을 덧씌운 게임에서 우리가 받는 감상을 정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오공>의 성취 또한 상당히 공들인 전투 액션이 어떤 세계관 하에서 어떤 목적을 향하고 있는지와 결부될 때 비로소 본격적인 의미를 드러내는데, 기본적으로는 ‘서유기’의 세계관을 활용하되, 손오공의 서역 여정길 당시가 아닌 그 다음의 이야기라는 배경 설정을 통해 게임은 이 세계관을 21세기에 디지털게임으로 재현할 때 필요한 많은 자유로움을 끌어낸다. 신분제 시절의 판타지가 못다 한 이야기의 현대적 재구성 중국의 또다른 판타지 소설인 ‘봉신연의’와 마찬가지로 ‘서유기’ 또한 요괴라는 이름의 다양한 캐릭터들이 총출동한다. <오공>은 ‘서유기’에 등장한 수많은 요괴들 중 액션 어드벤처 게임에서 도드라지는 기믹이 될 수 있는 요괴들을 서유기 원작의 순서와 관계없이 적절하게 배치함으로써 고전 판타지 소설이 액션 어드벤처 게임으로 재구성될 때의 장점을 유감없이 발휘하고자 했는데, 이를 위해서 <오공>은 주인공인 손오공의 서역 행보를 되새기는 것이 아닌, 그가 죽은 뒤 그의 후계를 자임하는 주인공 ‘천명자’의 행보를 그려낸다. <오공>이 그려낸, 삼장법사 일행의 고행이 끝난 뒤의 세계는 원작이 그려내지는 않았지만, 원작의 상상력을 이어 간다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 어떤 세계의 후속담이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공>의 세계는 그렇지 않다. 서역에서 가져온 대승의 불경이 중국에 도착했다면 이 세계는 부처의 대자대비심으로 이전보다 나은 세계가 되었어야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오공>은 끊임없이 보여주고자 한다. 원작 소설에서 주인공 일행이 지났던 마을들은 폐허가 되었고, 아예 원작에서 투전승불의 지위에 올라 해탈에 이른 것으로 결론지어진 손오공은 게임 시작부터 죽었다고 나온다. 관세음보살이 현장법사에게 일러 주었던, 중생을 구제할 대승의 새 불경은 딱히 별다른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것이 <오공>이라는 게임의 출발점이다. 더욱 의뭉스러운 것은 세계의 남은 자들이 그런 세계를 구하기 위해 불경을 다시 가져온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죽어버린 손오공의 부활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주인공 천명자는 부처의 지위를 버리고 다시 원숭이 왕으로 살고자 했다 죽게 된 손오공이 세상에 남긴 육근을 모아 손오공의 부활을 시도한다. 세상을 더 낫게 만들 방법이 서역에서 가져온 불경이 아니라 손오공의 부활이라는 점은 언제나 다음에 이어질 세상을 보다 낫게 만드는 것을 암묵적 전제로 삼는 디지털게임의 구조 안에서 매우 중요한 변화다. 원전 ‘서유기’가 그려낸 세계는 신격 존재들과 인간들, 그리고 요괴들이라는 구분이 엄격한 세계였다. 일종의 신분제라고도 볼 수 있을 이 구분은 한편으로는 엄격하면서도 아예 고정불변인 것은 아닌데, 이를테면 원래 요괴 출신이었던 손오공이 천계의 부름을 받아 옥황상제와 겸상하거나 투전승불이 될 수도 있고, 천계의 군인이었던 천봉원수와 권렴대장이 잘못을 저질러 요괴로 환생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신분은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지만, 그 오름과 내림이 명확한 격차를 갖는다는 점에서 이 세계의 신분제는 태생적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상벌적 개념에 가깝다. <오공>의 시작부분에서 손오공은 천계로 부름받은 투전승불이라는 지위가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고 울부짖는다. 그리고 그 외침에 대해 천계는 군대를 보내 손오공의 목소리를 지우는 것으로 화답한다. 이는 고전 소설 ‘서유기’가 시대적 한계로 그려내지 못한 지점을 21세기의 디지털게임이 다시 가져올 때 살려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그리고 사실 이러한 고전 판타지의 게임을 통한 현대적 재해석은 이미 크게 시도된 바 있는데, <오공>의 제작진들이 직접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언급한 바 있는 <갓 오브 워> 리부트 시리즈다. 원작이 되는 북유럽 신화가 오딘과 토르라는 주신들의 관점에서 진행된 바 있다면, 게임으로 등장한 <갓 오브 워>의 북유럽 신화는 실제 신화 속에서 반영웅의 위치에 있었던 로키의 시각에서 신화를 풀어나가고자 했다. 시점을 바꾸면 이야기는 크게 달라지는데, 오딘의 지혜는 게임 안에서 교활함으로 재해석된다. 신들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세계 전체를 지배하려 들고, 그 신의 범주에 들지 못한 이들의 저항은 주신들의 관점에서는 세계의 멸망, 라그나뢰크인 것이다. 라그나뢰크가 예언한 세계의 종말은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결국 ‘그들만의 세계’에 찾아오는 종말이라는 해석은 고전적 신분제 사회를 벗어난 현대에 들어 신화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주요한 관점이다. 그리고 <오공>은 같은 맥락으로 ‘서유기’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에 나선다. 신분제가 명확했던 시절에는 자연스러웠을 신계가 인간계를 관리하고(혹은 보호하고) 있는 모습은 신분제가 사라진 현대에 들어서는 그 자체로 이미 억압적인 무언가가 된다. 로키라는 악신의 존재를 활용한 <갓 오브 워>의 방식 대신, <오공>은 원작의 주인공이었던, 요괴 출신이지만 천계의 명령에 순순히 복무했던 이가 받은 의심과 실망을 부각시킴으로써 고전적 신분제 하에서의 평화와 행복이 가진 모순을 정면으로 끌어내는 방식을 사용했다. 각론은 다르지만, 두 게임 모두 고전 사회에서 만들어진 신화와 판타지가 현대 관점에서는 여전히 모순일 어느 지점을 향해 이야기의 방향을 바꿔냈다는 점에서 신화의 현대적 해석이라는 평을 받을 만 하다. 중국 문화권 바깥에서 이 게임의 의미에 다가가는 어려움에 대해 고전 소설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이 성공적일 수 있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만큼 제작진들이 고전 소설로서의 ‘서유기’를 깊고 풍부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한국과 달리 중국에서 ‘서유기’는 원전 자체가 보편적 교양 소설로 취급받으며, 한국에 비해 폭넓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실제 <오공> 안에 등장하는 원작 출신의 많은 캐릭터들은 원작에서 보여줬던 성격과 캐릭터를 게임 특성에 맞게 변형한 상태로 등장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이러한 특성이 게임 메커닉과 강하게 결부되며 게임을 말그대로 살아움직이는 ‘서유기’로 만드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원작에 대한 깊은 이해로 만들어진 2차창작 콘텐츠로서의 <오공>은 이 점 때문에 오히려 ‘서유기’에 익숙하지 않은 중국 바깥의 게이머들에게는 미처 다 전달되지 않는 지점 또한 적지 않다. 이를테면 많은 한국 게이머들은 매 챕터가 끝날 때 등장하는 ‘다음 회에서 알아보자’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 어려운데, 이는 회본 형태로 챕터가 정리되는 서유기 원전의 끝 문장을 그대로 차용해 온 부분이고 원전 ‘서유기’가 한국에서는 널리 읽히는 편은 아니라는 문제에서 기인한다. 그나마 친연성이 있는 한국에서도 이런 상황인데, 서구권까지 넘어가게 되면 사실상 <오공>을 이해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 * 다음 회에서 풀어보자는 말의 의미는 중국 문화권이 아니면 이해가 어려울 것이다. 충분히 잘 만들어진 게임이지만 <오공>에 대한 아쉬움은 역으로 이 게임이 원전에 너무나 충실했다는 점에서 원전이 보편적이지 않은 이들에겐 미처 그 정교함이 다 드러나지 않는다는 문제 때문에 온다. 원전에 대한 세심한 재해석에 경탄하면서도 내내 이걸 서구권 게이머들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를 떠올린 것은, 게임의 기저에 흐르는 ‘서유기’라는 원전에 대한 추가적인 이해를 도울 수 있을 여러 서브 컨텐츠들이 충분히 갖춰지지는 않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 사천왕과의 전투라는 것도 아마 서양권 이용자들에겐 '멋진 거대 몬스터와의 박력있는 전투'까지만 전달될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게임 역사 초창기의 기록들: 닌텐도 뮤지엄 방문기
2024년 10월 2일, 닌텐도 뮤지엄(Nintendo Museum)이 마침내 문을 열었다. 프로젝트 발표 이후 3년만의 소식이었다. 닌텐도의 역사와 유산을 기념하기 위해 설립된 이 박물관은 일본 교토부 우지시에 자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박물관은 1969년에 세워진 우지 오구라 공장(Uji Ogura Plant)을 개조한 것인데, 이 공장은 닌텐도가 일본 전통 카드 게임인 화투와 서양식 트럼프 카드를 제작하던 시절부터 비디오 게임 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까지 함께한 역사적인 공간이다. 닌텐도의 변천사를 상징하는 장소에서 다시금 과거와 현재를 모아놓은 셈이다. < Back 게임 역사 초창기의 기록들: 닌텐도 뮤지엄 방문기 22 GG Vol. 25. 2. 10. 닌텐도 뮤지엄 개괄 2024년 10월 2일, 닌텐도 뮤지엄(Nintendo Museum)이 마침내 문을 열었다. 프로젝트 발표 이후 3년만의 소식이었다. 닌텐도의 역사와 유산을 기념하기 위해 설립된 이 박물관은 일본 교토부 우지시에 자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박물관은 1969년에 세워진 우지 오구라 공장(Uji Ogura Plant)을 개조한 것인데, 이 공장은 닌텐도가 일본 전통 카드 게임인 화투와 서양식 트럼프 카드를 제작하던 시절부터 비디오 게임 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까지 함께한 역사적인 공간이다. 닌텐도의 변천사를 상징하는 장소에서 다시금 과거와 현재를 모아놓은 셈이다. * (위) 우지 오구라 공장과 (아래) 닌텐도 뮤지엄의 모습 비교 미야모토 시게루에 따르면 닌텐도 뮤지엄은 그동안 닌텐도가 모아놓은 것들을 보존하고, 이를 바탕으로 회사 안팎의 사람들과 닌텐도에 대하여 소통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889년 화투 상점으로 시작한 닌텐도가 오늘날 비디오 게임 산업을 선도하는 세계적인 기업이 되기까지의 역사를 정리하여, ‘닌텐도’가 무엇이고 어떠한 방향성을 추구해왔는지, 또 어떠한 모습을 향해 갈지를 보여주는 것이 곧 박물관 설립의 의미일 테다. 입장 방법 닌텐도 뮤지엄에 가는 길은 마냥 쉽지만은 않다. 박물관은 사전 예약제(추첨제)로 운영되며, 입장을 원하는 사람들은 방문 희망일 3개월 전에 공식 홈페이지( https://museum-tickets.nintendo.com/en)에서 추첨을 넣거나, 취소표를 구매해야 한다. 모든 절차에는 무료로 생성할 수 있는 닌텐도 계정이 필요하다. 입장에 필요한 사전 정보는 다음과 같다. 입장료: 성인 3,300엔, 고등학생/중학생 2,200엔, 초등학생 1,100엔, 미취학 아동 무료 운영 시간: 오전 10시 ~ 오후 6시 휴관일: 매주 화요일, 연말연시 주소: 교토부 우지시 오구라초 카구라다 56번지 교통: ● ・긴테츠 교토선 "오구라역" 동쪽 출구에서 도보 5분 ● ・JR 나라선 "JR 오구라역" 북쪽 출구에서 도보 8분 ● ・JR 나라선 "우지역" 북쪽 출구에서 도보 22분 관람객들은 방문 희망일 기준 세 달 이전에 응모를 진행해야 한다. 만약 2025년 4월에 방문을 원한다면 2025년 1월 1일부터 1월 31일까지 응모를 넣어야 하며, 2025년 2월부터는 5월 분에 응모 가능하다. 각 날짜에는 10시부터 16시까지 총 13개 타임이 열리고, 관람 희망자들은 최대 3개까지 원하는 날짜/시간을 선택하여 신청할 수 있다. 응모에 대한 추첨 결과는 다음 달 1일 오후에 발표된다. 필자의 경우 18시 30분 경 닌텐도 뮤지엄 측으로부터 당첨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당선 및 당락 결과는 개별적으로 발송된 메일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으며, 이는 또한 닌텐도 뮤지엄 홈페이지에서도 가능하다. 당첨되었을 경우 홈페이지를 통하여 결제를 완료해야 티켓을 확정지을 수 있다. 결제를 완료하고 약간의 절차를 따르면 다음과 같은 QR코드를 얻을 수 있다. 해당 코드는 박물관 입장시 필요하며, 이후 관람객들은 표를 실물 카드로 교환하게 된다. 카드에는 8비트 그래픽 마리오 이미지 또는 본인의 Mii를 넣을 수 있다. 모두 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진행 가능하다. * 닌텐도 뮤지엄 QR코드 및 실물 카드 박물관 구성 박물관은 크게 세 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큰 부지를 차지하고 있는 뮤지엄, 그 옆의 기념품점, 마지막으로 체험과 간단한 요깃 거리를 할 수 있는 카페 및 워크숍 구역이다. 지도상 나누어져 있지만, 뮤지엄과 기념품점 구역은 바로 옆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 쉽게 오갈 수 있다. 뮤지엄과 기념품점 중앙에 표시되어 있는 것이 본관의 중앙 입구이다. * 닌텐도 뮤지엄 조감도 건물의 중앙 입구에 들어가면, 관람객들은 우측에서 안내 데스크를 마주할 수 있다. 여기에서 워크숍 예약을 진행할 수 있는데, 모두 한정된 인원을 시간 단위로 받는다. 신청할 수 있는 워크숍으로는 (1) 만들기 (2) 플레이 두 가지가 있다. 모두는 닌텐도 뮤지엄의 상징인 ‘화투’와 관련된 것으로, 화투 세트를 만들어 보거나 주어진 판에서 화투를 플레이해볼 수 있다. 만들기는 2,000엔(한화로 약 20,000원)으로 약 1시간이 소요되며, 플레이는 500엔(한화로 약 5,000원)으로 약 30분이 소요된다. 플레이의 경우 이미지 인식 및 프로젝션 기술이 사용되어 초보자 역시 쉽게 화투를 접할 수 있다. * 닌텐도 뮤지엄 내부 투시도 뮤지엄 동은 크게 두 구역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2층의 전시 구역과 1층의 체험 구역이 바로 그것이다. 먼저 관람객들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는데, 그곳에 대부분의 전시품들이 배치되어 있다. 이후 다른 통로를 통해 아래로 내려가면 다양한 게임을 플레이해볼 수 있는 체험 구역이 나타난다. 전시 구성 우리가 일반적으로 ‘전시’라 부를 법한 것들은 대부분 2층의 전시 구역에서 볼 수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리면 전시 공간의 중앙부로 나오게 된다. * 닌텐도 뮤지엄의 전시 구역. 표시된 구역은 관람 시작 부분이다. 중앙부를 중심으로 10개의 곡면 전시장이 설치되어 있으며, 각 장은 한 가지 종류의 콘솔을 다루고 있다. 자세히 다루고 있는 콘솔로는 패밀리컴퓨터/NES, 슈퍼패미컴/SNES, 닌텐도64, 게임보이, 게임보이 어드밴스, 게임큐브, 닌텐도 Wii, 닌텐도 DS, 닌텐도 2DS/3DS, 닌텐도 스위치가 있으며, 그 외에도 별도의 공간을 통해 기기별/주제별 전시가 마련되어 있다 - 게임앤워치를 위한 공간 역시 작게 만들어져 있다. * 닌텐도 뮤지엄 건축 모형. 간단하게나마 내부 공간 구성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의 콘솔을 다루는 각 전시장은 동일한 구성을 지니고 있다. 모두는 하드웨어를 배치해놓은 직사각형의 전시장을 거대한 곡면의 전시장이 감싸는 형태이다. 곡면의 전시장 위쪽에는 콘솔에 걸맞는 대형 컨트롤러가 있다. 내부에는 지역별 콘솔 판매 비율, 게임 플레이 영상, 소프트웨어 패키지, 주변기기가 전시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지역이나 시기에 따라 바뀌는 패키지의 변화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 전시장 전면부 전시장의 후면부에는 앞서 이야기되지 못한 각 콘솔의 특징과 의미가 전시되어 있다. 여기에는 광고 영상이나 특징적인 기기, 주변기기, 타이틀이 의미 단위로 배치되어 있다. 각각의 의미를 표현하기 위하여 매뉴얼, 인포그래픽, 패키지가 다양하게 등장하며, 그에 따라 동일한 규격의 전면부와는 달리 보다 자유로운 구성을 보인다. 후면부에는 세 가지의 동일한 표지가 등장한다. 첫째는 금색 원 테두리로 해당 콘솔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시리즈를 의미하고(ex: 젤다의 전설 - 패밀리컴퓨터 디스크시스템), 둘째는 은색 원 테두리로 해당 콘솔에서 나타난 의미 있는 변화/도전을 나타내며(ex: 게임큐브 - 게임보이 어드밴스와 연결), 마지막으로 금색 별 모양의 테두리는 해당 콘솔에서 이루어진 세계 최초의 시도를 뜻한다(ex: 닌텐도64 - 컨트롤 스틱). * 전시장 후면부 이 외에도 전시 구역에는 각종 프로토타입 등 다양한 볼거리가 남아 있다. 특히 닌텐도의 시도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가 테마별로 잘 정리되어 있는데, 화투 회사로부터 닌텐도가 확장되어가는 과정, ‘3D’나 ‘운동’이 닌텐도에서 어떻게 다루어져왔는지의 궤적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시리즈별로도 전시 되어있어 각 시리즈가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 - 이를테면 ‘마리오’ 시리즈엔 어떤 게임들이나 캐릭터들이 있는지 - 살펴볼 수 있다. 2층 전시구역의 관람을 마치고 내려가면 체험구역에 들어갈 수 있다. 체험구역의 중앙부는 전시 공간이기도 한데, 여기서 관람객들은 ‘컨트롤러의 비교’, ‘라이트닝건’, ‘아이디어의 연속성’ 등의 테마 전시를 볼 수 있다. 각종 카드 게임 팩들 역시 전시되어 있다. 여기서 관람객들은 총 8가지 종류의 놀이를 체험해볼 수 있다. 모든 관람객들에게는 체험에 쓸 수 있는 10개의 코인이 티켓을 통해 지급된다. 관람객들은 이 코인을 사용하여 체험에 참여할 수 있다. 각각의 체험 마다 드는 코인의 개수가 다르니 체험 동선을 잘 짜는 것이 필수적이다. 체험 전시 목록과 소모 코인은 아래의 사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체험형 전시 목록 필자의 경우 총 5개(Zapper & Scope SP, Ultra Hand SP, Love Tester SP, Nintendo Classics, Big Controller)를 체험했다. 기대 이상이었던 것은 러브 테스터(Love Tester SP)였다. 1969년 출시된 휴대용 콘솔을 크게 만들어놓은 이 체험형 전시는 러브 테스터가 무엇인지를 간단하고 재미있게 체험할 수 있게 했다. 체험이 마무리되면 스크린쪽에서 사진이 자동으로 촬영된다. 이는 닌텐도 뮤지엄 개인 페이지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 닌텐도 뮤지엄 개인 페이지. 체험한 활동의 결과와 사진을 확인할 수 있다. 1층의 체험구역까지 관람을 마치면 퇴장 구역을 통해 전시 동을 나가게 된다. 관람객들은 긴 통로를 따라 걷게 되는데, 벽면에는 그동안 출시된 닌텐도의 제품들이 역순으로 전시되어 있다. 즉, 닌텐도 스위치로부터 시작하여 화투로 끝이 난다. 통로 끝에는 닌텐도 뮤지엄에서 제일 오래된 화투 수납함(Nintendo Storage Shelf for Hanafuda Label)이 배치되어 있다. 전시 총평 닌텐도 뮤지엄의 전시는 관람자 스스로 의미를 발견하도록 유도한다. 일반적인 박물관들이 서문이나 설명을 통하여 의미를 전달한다면, 닌텐도 뮤지엄에서는 줄글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각 구역에는 간단한 키워드 정도만 쓰여져 있었으며, 전시품과 기호들 만이 배치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정해진 관람 동선이 없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대부분의 전시 공간은 한두 개의 동선을 바탕으로 설계되지만, 닌텐도 뮤지엄의 전시 공간은 중앙에서 출발해 원하는 방향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었다. 그 결과, 보다 자유로운 방식의 관람이 가능했는데, 관람 당시도 사람들이 관심사에 따라 뿔뿔이 흩어지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렇게 관람객이 스스로 생각하고 탐구하고, 행동하게 하는 전시 방식은 정말 닌텐도스럽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정보는 제공하되 독해 방식을 특정하지 않음으로써, 자유롭게 생각하고 탐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닌텐도가 그동안 추구해온 방향성과도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전시 방식에서부터 닌텐도스러움을 전달했다는 점에서 앞서 미야모토 시게루가 이야기한 목표 역시 상당수 달성된 것이 아닐까 싶다. 게임 아카이빙과 닌텐도 뮤지엄 닌텐도 뮤지엄은 ‘닌텐도’에 대한 박물관으로, 게임 자체에 대한 박물관이라 보긴 어렵다. 닌텐도 뮤지엄이 전시하는 것은 닌텐도의 족적이고, 이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닌텐도의 가치와 철학이다. 그러나 닌텐도라는 기업이 게임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고려한다면, 게임에 대한 전시를 논하는 데에 있어 닌텐도 뮤지엄은 좋은 사례가 되어준다. 그렇다면 게임을 전시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게임 아카이빙’이 어떤 것인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게임 아카이빙이란 게임과 관련된 자료들을 수집, 보존, 분류하는 일련의 과정을 뜻한다. 이는 게임을 단순히 보관하는 것을 넘어, 게임이 가진 문화적, 역사적, 학문적 가치를 보존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자료를 관리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게임기나 게임팩을 모으는 것만이 게임 아카이빙이 아니며, 게임을 모으고 전시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 방식이나 내용이 게임의 역사적 맥락과 문화적 중요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면 적절한 아카이빙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아카이빙의 핵심은 보존과 선별인데, 역사적 가치와 연구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원형에 가깝게 자료를 보존해야 하며, 결코 모든 자료를 모을 수 없기에 의미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적절히 수집해야 한다. 비디오 게임의 경우 보존 작업이 특히 문제가 된다. 게임이나 게임기의 물리적인 외형 뿐만 아니라 장치의 작동 기능, 소프트웨어 역시 보존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외형만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소프트웨어와 데이터를 온전히 유지해야 하는 것은 매우 힘든 작업이다. 게임 소프트웨어는 특정 하드웨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복잡한 기술적 문제가 수반되기도 한다. 더불어, 비디오 게임의 물질적 특성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게임을 보존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물성이 없는 대상을 어떻게 수집하고 보존할지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에 착안하여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기술이나 에뮬레이터(Emulator) 등이 사용되고 있으나, 이들 역시 게임의 원형이나 사용자 경험을 온전히 보존하지 못할 수 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수집을 넘어 전시를 진행하는 데 있어 사인은 더욱 복잡해진다. 게임은 ‘플레이’를 핵심으로 삼는 상호작용 매체이기 때문에, 단순히 누군가의 플레이 화면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게임을 ‘전시’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행위성을 전시하는 것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관람객이 전시품을 만지고 체험하게 하는 것은 그 자체로 대상의 원본성을 훼손할 수 있으며, 대개 한 번에 한두 명만 수용 가능한 비디오 게임의 특성상 플레이의 전 과정에 관람객들을 참여시키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하여 닌텐도 뮤지엄에서 제시한 해답은 게임의 플레이를 나머지 것들과 분리시켜 전시하는 것이었다. 닌텐도 뮤지엄의 전시는 크게 전시와 체험이라는 두 가지의 섹션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먼저 2층에는 게임기, 게임팩, 광고물, 매뉴얼 등이 의미 단위로 전시되어 있었고, 1층에는 게임과 게임기의 기능 및 특징을 강조한 체험 거리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플레이에 관한 부분은 원본을 그대로 보이기보다는 게임과 게임기의 기능 및 특징을 강조한 형태의 체험장을 새롭게 구성하였는데, 이를 통하여 관람객들이 게임 또는 게임기기가 어떠한 행위성을 지니는지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같은 전시 방식은 원본의 역사와 의미를 설명하면서도 관람객들에게 플레이 경험을 전달하는 데 유용하고, 또 원본을 잘 보존하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다만 닌텐도 뮤지엄의 방식에 역시 한계는 존재한다. 닌텐도 뮤지엄의 체험관은 원본의 플레이 경험을 그대로 제공해주기 어려우며, 더욱이 플레이 타임이 긴 경우나 MMO 등 다양한 사람들이 개입하는 플레이 경험은 충분히 전달하기 힘들다. 따라서, 게임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전시 방식과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게임 아카이빙과 게임을 다루는 전시에 대한 논의가 더 활발히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참고자료 강승진 (2024, 9, 25). [인터뷰] 닌텐도의 살아있는 역사, '미야모토 시게루'를 만나다. <인벤>. URL: https://www.inven.co.kr/webzine/news/?news=299543 (2025, 1, 3 열람) 닌텐도 뮤지엄 공식 홈페이지 ( https://museum.nintendo.com/en/index.html ) Nintendo Museum Direct ( https://youtu.be/JApUMBscKOc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이연우 함께하는 게임에 관심을 가지고 게임의 관계성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게임으로 다함께 즐거워지길 바랍니다.
- “진보가 게임을 망친다?” <데스티니2>의 부침을 따라서
흔히 재난에 “‘별 혹은 행성의 불길한 국면’이라는 첫 번째 정의와 ‘갑작스럽거나 커다란 불행’이라는 두 번째 정의가 함께 관계”해 왔을 때, 일반적으로 <데스티니2>에서 묘사되는 재난은 전자의 의미를 조명하는 쪽에 가깝다. < Back “진보가 게임을 망친다?” <데스티니2>의 부침을 따라서 14 GG Vol. 23. 10. 10. 플레이어와 적(敵)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흔히 재난에 “‘별 혹은 행성의 불길한 국면’이라는 첫 번째 정의와 ‘갑작스럽거나 커다란 불행’이라는 두 번째 정의가 함께 관계”해 왔을 때, 일반적으로 <데스티니2>에서 묘사되는 재난은 전자의 의미를 조명하는 쪽에 가깝다. 1) 이 게임에서 조성되는 위기 국면은 언제나 ‘여행자’의 불능에 좌우되었기 때문이다. 여행자는 태양계 전역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자로서, 게임의 공간을 독특하고도 문제적으로 만드는 요인이다. 데스티니2는 여행자라는 초월적인 구체가 인류를 방문해 태양계를 테라포밍하여 황금기를 누리게 해주었다는 설정을 채택했다. 한편 게임을 플레이 하다 보면 여행자에 관한 이해는 어디까지나 부분적인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플레이어는 거점 베이스 맵인 탑을 계속 방문하게 되는 장소인데, 하늘에는 여행자가 흰 구체의 형상으로 떠 있다. 분명 시점을 위로 올려다 보며 여행자를 포착할 수는 있으나 그 이상으로 무언가를 행할 수는 없다. FPS 장르의 문법이 1인칭의 눈으로 대상을 감각하는 것을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으로 연결 지었다면, 여행자는 FPS의 문법에서 규정하는 인간적인 시각과 불화하는 존재라고도 설명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여행자의 위기는 마치 “인간이 막을 수 없는 하늘의 영역에” 속하는, “명명 불가능한” 재앙의 요소를 품고 있다. 그러나 게임은 플레이어의 자리를 만들어 두어야 한다. 전통적으로 게임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이루어진 환경으로, 인간 행위자가 개입해야 비로소 의미 항을 생성하는 매체로 상상되어 왔다. 따라서 데스티니2의 개발사인 번지(Bungie) 스튜디오는 “재앙에서 재난의 몫을 구별해내기 위해” 2) 여행자가 퍼뜨리는 긍정적인 영향을 일종의 자원으로 인식하고, 서로 다른 종족이 희소 자원을 둘러싸고 갈등한다는 정치의 내러티브로 위기를 빚어냈다. 여행자를 억류하고 그 힘을 탈취하려는 외계인 장군을 격퇴한 데스티니2의 첫 확장팩인 ‘붉은 전쟁’은 하나의 대명사가 되어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게임 세계관에서 타도해야 할 타자를 외계의 침략자로 일방적으로 구성하는 관행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이 방법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새로운 재난을 구성하고, 그에 대처하는 주체를 어떻게 연출할 것인가? 번지는 이전과 유사한 방식으로 적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채택한 듯하다. ‘목격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새로운 적은 여행자의 반대 선상에 배치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게임 내에서 여행자의 형태가 추상적인 구체로 제시되는 반면, 목격자의 외형은 캐릭터적으로 뚜렷하다. 두 눈과 코는 흰 얼굴 위에 선명히 놓여 있으며, 안면 뒤로는 무수한 얼굴이 증기처럼 피어오르는 두상을 갖췄다. 여러 사람의 음성이 겹친 목소리는 뚜렷한 응시와 함께 명확한 의도를 품고서 전달된다. 얼굴이 전통적으로 주권의 표상으로 기능할 때, 인격화된 초월체인 목격자는 깔끔하게 지목 가능한 적수다. 이 같은 설정은 그간 스튜디오가 행해 온 반성적 해석을 다소 무색하게 만든다. FPS 문법이 급진적으로 사유되지 못하고 다시 적과 아군의 구획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번지는 오랜 세월 ‘떡밥’을 던지며 조성한 적을 야심만만한 형상으로 빚어놓았지만, 그 기표는 어딘가 공허하게 다가온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윤리, 인간 게이머가 이길 수 없는 대상과 마주하기 이 같은 관성은 번지가 <헤일로> 대부터 매끄럽게 구축해 온 하이퍼 FPS의 문법과 연관이 깊다. 헤일로는 스튜디오에는 메이저한 스튜디오의 명성을 안겨준 타이틀이다. 플레이어는 강화 군인 ‘마스터 치프’가 되어 외계 종족 ‘코버넌트’의 쇄도로부터 인류를 수호해야 한다. 코버넌트는 이슬람 원리주의를 연상케 하는 종교를 믿고 모든 생명체를 잠재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 ‘헤일로’에 집착한다. 인류를 지키는 것은 곧 은하 전체를 지키는 것과 등치 되어 대립을 자연화하는 구성을 취한다. 3) 물론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슈팅을 연결한다는 발상이 그 자체로 특수한 정치적 돌출부를 형성하는 것은 아니다. 초창기 게임인 <스페이스 인베이더(1978)>가 외계인의 침략을 쏘아 막는다는 플레이를 기획한 게 대표적이다. 리자르디는 2000년대 초에 미국이 다른 세계와의 관계를 모색하는 동안 출시된 비디오 게임들이 “일반적인 유사성”을 형성했음을 지적한다. 4)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세계와 인간성이 겪는 위기, 이를 복원하기 위한 전투와 저항을 주요 요소로 삼은 게임들이 9·11 테러나 이라크 전쟁과 같은 특수하고 문제적인 맥락으로 재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데스티니 시리즈 역시 헤일로처럼 인류를 위협하는 외부의 적과 마주한다는 골조를 채택했다. 작중의 시점은 황금기가 저문 이후의 어수룩한 문명에 선 인류를 다룬다. 여행자로부터 선택 받아 특수한 힘을 쓸 수 있는 ‘수호자’는 온갖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탑을 세우고 인류를 견인한다.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를 구분하는 모일란의 논의를 따라, 페레즈-라토레는 주요 게임들이 어떻게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묘사하는지 분류하고 있다. 특히 디스토피아 내에서도 세상을 개선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소수의 유토피아적 근거지는 주로 세 가지 방식에 의해 묘사된다. (1)‘카우보이형’ 고독한 영웅 (2)자연으로의 회귀와 자급 자족적 생활 (3)공감과 연대를 통한 집단적 생존. 5) 이 입장들은 명확히 나눠떨어지기보다 중첩되며 개개의 효과를 자아낸다. 헤일로의 마스터 치프는 “까다로운 조건에서 개의치 않고 험준한 환경을 질주하는 동시에 자유와 정복이라는 가능성을 향하는 선구자로 낭만화”되는 영웅이기에 첫 번째 유형에 가깝게 읽힌다. 치프 개인이 공동체와 불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독보적인 역량을 가진 전사로 간주된다. 홀로 수행하도록 고안된 게임 내의 미션들은 아웃사이더의 뉘앙스를 강화한다. 이처럼 소수의 선각자를 부각하는 방식은 게임이 플레이어가 게임에 개입하여 활약할 만한 국면을 확보하는 데에 효과적이기도 하다. 뒤를 이은 데스티니 시리즈 역시 영웅을 만들어 내는 문법을 능숙하게 구사했다. 데스티니1에서 주인공 수호자는 단일한 몸으로 위대한 업적을 쌓은 위인으로 추앙받는다. 그러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묘사하는 지형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빛의 저편’ 확장팩 이후부터다. 혹한의 행성 ‘유로파’를 바탕으로 몰락자들이 거주하던 폐허를 묘사함으로써 황량한 풍경에서 비롯되는 애수와 정동이 인간의 감상으로만 독점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부연되었다. 스튜디오가 그간 행해온 작업에 대한 반성적 기획은 ‘사냥의 시즌’을 통해 본격적으로 개시되었다. 적이었던 ‘울드렌’을 우군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본래 그는 유머를 겸비한 총잡이로 인기가 많았던 인물 ‘케이드-6’를 살해함으로써 공분을 일으켰다. 케이드-6의 죽음이 감정적 방아쇠가 되어 확장팩의 성공을 가져왔을 때, 울드렌을 부활시킨다는 발상은 스튜디오가 그간 행해온 작업에 대한 반성적 기획으로 읽힌다. 개인의 층위에서 국한되었던 유토피아적 충동은 이제 (3) 공감과 연대를 통한 집단적 생존으로 이어진다. 원래라면 적으로 배치되었을 외계 종족은 기꺼이 장벽 안으로 수용되었다. 공동체는 이들을 포용하고 건전하고 든든한 토대를 구축함으로써 다가오는 재난에 대비하려 한다. 이를테면 ‘망령의 시즌’에서는 악몽이라는 소재를 활용해 인물들의 굴절된 과거를 눈앞으로 불러내 해소하는 작업을 펼친다. 이때 카타르시스를 겪는 인물은 인류에게만 특권적으로 한정되지 않고, 한때 적이었던 외계인에게도 배분됨으로써 동맹의 정서적 울타리를 단단하게 엮어 낸다. 또한 인류에 대한 주류적 상상-건강한 백인 남성-에서 소외되어 있던 소수자성 역시 공동체의 이름으로 수용된다. 게임에서는 장애인 비행기 조종사나 디스포리아를 겪는 기계 인간 등의 매력적인 메타포가 제시된다. 그러나 게임이 공감과 연대로의 방향을 모색하는 동안 커뮤니티 내에서는 불만이 커져 갔다. 주요한 비판 중 하나는 여러 인물이 탑으로 편입되고는 있지만 주인공은 그저 국면을 눈에 담는 목격자가 될 뿐, 개입자로서의 효능감을 크게 누리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즉 데스티니2가 게임 세계와 관계 맺어 온 플레이어에게 자리를 제공하는 방식을 재고하는 데에 혼란을 느끼는 것처럼 비친다. 이 점에 있어서 국내 데스티니2 온라인 커뮤니티가 ‘우주 해적의 시즌’에서 두 남성 인물의 키스에 부정적으로 반응한 것을 두고 오직 ‘PC’에 대한 역행적인 반발로만 읽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소수자성을 부각하는 텍스트가 곧 남성적 개입의 플레이 전반에 대한 위협으로 수용된 것은 아닐까. 파올로 루피노는 포스트휴먼 관점에서 게임을 검토하며 상호작용성과 도구주의에 대한 잘못된 신화와 “이 개념에 내재된 남성주의”에 도전한다 6) . 그에 따르면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는 인류세의 위기를 만능으로 타파할 수 있는 제품과 기술을 기대함으로써 “현재와 미래를 모두 통제하려는 자신감 과잉”을 드러내는데, 이는 인간과 기계를 이원적으로 바라보며 상상적 분리를 심화하는 기존의 게임 담론과 유비 관계를 가진다고 이해한다. 이때 게임은 인간이 도구성과 합리주의를 견지하여 풀어내야 할 문제 텍스트로 인식된다. 데스티니2는 인간이 개입하여 통제해야 할 대상의 기준을 뒤흔들면서도 전통적인 적수의 문법에 따라 목격자를 둠으로써 우왕좌왕하고 있다. 진보적 가치를 반영한 게임 개발과 플레이는 성공할 수 있을까? 데스티니2는 플레이어 이탈이 극심해 존폐를 걱정해야 했던 게임이다. 번지 스튜디오의 수석 개발자인 저스틴 트루먼은 2022년 지스타에서 이 문제에 관해 공개 강연을 했다. 위기 극복을 위한 서비스 개선 과정에서 라이브 스튜디오로서 ‘속도’를 유지하는 원칙이 얼마나 중요한 이슈인지 강조했다. 7) 데스티니2의 시즌 패스 콘텐츠는 번지가 추구하는 속도를 잘 보여준다. 일주일에 한 번씩 새로운 미션이 업데이트된다. 플레이어의 꾸준한 참여를 스토리와 컷씬 등을 통해 고무한다. 그리고 약 3개월 남짓의 짧은 기한 안에 한 시즌의 기승전결을 제공해야 한다. 번지는 매년 새롭게 출시한 확장팩으로 게임 전체의 윤곽을 그리고, 다시 그 안에 4개의 시즌을 배치한다. 이처럼 속도를 중점으로 두고 콘텐츠를 관리함으로써 데스티니2가 현재의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게 되었다는 것이 스튜디오 내부의 평가다. 같은 맥락에서 트루먼은 게임 발매 전 고강도의 야근을 일삼는 업계의 크런치 관행을 지양해야 할 것으로 언급했다. 스튜디오의 장기적인 수명을 깎아 먹기 때문이다. 이처럼 번지는 속도라는 개념으로 구체화된 시장성 및 장기적 신뢰로 비견된 윤리라는 두 축을 포괄하려 시도한다. 스튜디오의 이름을 걸고 다양한 정치적 이슈에 목소리를 높여왔는데, 2020년의 Black Lives Matter 캠페인과 관련해 공개한 입장문 등이 대표적이다. 8) 또한 UI 엔지니어인 데이비드 세처는 ‘Trans in Bungie’를 꾸리고 게임 내 콘텐츠로 트랜스젠더 플래그를 본뜬 엠블럼을 제작한 것과 같이 소수자 정체성을 연결하고 확대하려 한 기획이 고루 존재한다. 9) 그러한 방침 아래 제작된 게임 텍스트 역시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제스처를 취한다는 점에서 제법 인상적이다. 2021년 5월 12일에 출시된 ‘융합의 시즌’에서는 본래 적대 팩션이었던 외계 종족 ‘몰락자’에게 난민의 지위를 부여하여 인간 사회의 장벽 안으로 수용했다. 피난민을 배척한 강경파가 몰락한다는 결말은 포스트 트럼프 시대의 불안과 고통을 승화하려는 몸부림처럼 비친다. 데스티니2라는 게임 텍스트 내외에서 행적을 읊어 봤을 때, 이는 시장 질서 내에서 상상할 수 있는 최선의 진보로 읽히기도 한다. 이토록 야심 찬 청사진은 과연 얼마나 잘 작동하고 있을까. 2020년 도입한 ‘콘텐츠 금고’ 조치는 그들이 봉착한 어려움을 드러낸다. 오래된 콘텐츠를 따로 빼 두었다가, 훗날 다시 가져오겠다는 기획이다. 새로운 데이터가 더해질수록 용량의 부담이 심화 되고 관리에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레이어들은 구매한 콘텐츠가 삭제된다는 불만을 토로했으며, 더 나아가 스튜디오의 역량을 회의적으로 바라봤다. 기존의 콘텐츠를 유지·보수하는 것도 허덕인다면 매주 새 콘텐츠를 업데이트 한다고 해서 안정적인 운영을 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 소외된 정체성을 하나씩 끌어들여 태그를 붙인 후 연합에 끌어들이는 일련의 흐름은 텅 빈 구호로 흘러들어가는 주체의 무한한 자기 긍정처럼 보인다. 플레이어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자기 갱신이 요구된다. 매주 업데이트 되는 이야기의 흐름에 제대로 탑승하기 위해서는 전투력을 올려야 한다. 결국 목적은 갱신 그 자체가 되고 만다. 데스티니2 6년 차에 출시된 ‘빛의 추락’ 확장팩은 목격자를 전면에 내세웠으나, 무엇도 해소된 것 같지 않다는 원성을 자자하게 받으며 스팀에서 부정적인 평가에 놓였다. 비장한 제목 앞에서는 아무것도 새롭게 추락하지 않는다. 실은 모든 게 추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데스티니2는 광대한 재난을 인간 중심적인 시선으로 부각할 때 발생하는 균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텍스트다. 앞으로의 게임들이 어떻게 위기를 발굴하고 개입자를 위치 지을 것인지에 관해 고민을 던져준다. 1) 황호덕. (2022). 한국 재난 서사의 계보학 - 비인지적 낯익음에서 인지적 낯설게 하기까지. 현대소설연구, (88), 432쪽. 2) 윗글, 437쪽. 3) Voorhees, (2014) “Play and Possibility in the Rhetoric of the War on Terror: The Structure of Agency in Halo 2”, Game Studies, 14(1), https://gamestudies.org/1401/articles/gvoorhees 4) Lizardi, (2009) “Repelling the Invasion of the ‘Other’: Post-Apocalyptic Alien Shooter Videogames Addressing Contemporary Cultural Attitudes”, Eludamos: Journal for Computer Game Culture, 3(2), pp. 298. doi: 10.7557/23.6011. 5) Pérez-Latorre, (2019) “Post-apocalyptic Games, Heroism and the Great Recession”, Game Studies, 19(3), https://gamestudies.org/1903/articles/perezlatorre 6) Ruffino, P. (2020), "Nonhuman Games: Playing in the Post-Anthropocene", Coward-Gibbs, M. (Ed.) Death, Culture & Leisure: Playing Dead (Emerald Studies in Death and Culture), Emerald Publishing Limited, Bingley, pp. 11-25. https://doi.org/10.1108/978-1-83909-037-020201008 7) “[지스타 2022] 번지 CDO, "기존 게임 개발 공식을 바꿔야 한다"”, 김승주, 디스이즈게임, 2022.11.17.등록, 2023.09.29.접속, https://m.thisisgame.com/webzine/news/nboard/4/?n=162164 8)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Destiny Dev Team, Bungie, 2020.06.01.등록, 2023.09.27.접속, https://www.bungie.net/ko/Explore/Detail/News/49184 9) “Trans at Bungie”, Destiny Dev Team, Bungie, 2021.03.31.등록, 2023.09.27.접속, https://www.bungie.net/ko/Explore/Detail/News/50218 Tags: 데스티니, 재난서사, 포스트아포칼립스, 디스토피아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김규리 자기 소개 :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데스티니2를 오래 즐겨왔고, 다음 작인 마라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익숙한 게임이 주는 재미와 낯선 경험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보려 고민하고 있습니다.




![[Editor's View] 손이 바쁜 공모전 특집호를 마무리하며](https://static.wixstatic.com/media/d03518_1a6ff7da957b4288accd1108f82669e7~mv2.jpg/v1/fit/w_176,h_124,q_80,usm_0.66_1.00_0.01,blur_3,enc_auto/d03518_1a6ff7da957b4288accd1108f82669e7~mv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