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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공모전 4년을 거쳐 온 편집장의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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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5. 10. 10.

크래프톤, 게임문화재단과 게임비평잡지를 창간하면서 반드시 함께 하겠다고 넣은 아이템이 게임비평공모전이었다. 게임비평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의하기보다, 비평임을 자처하는 글들을 뭉쳐 가면서 천천히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고, 그 과정이 있어야만 편집장이 가진 특정한 비평에의 고집이 좀더 다양한 지평에 선 비평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게임비평공모전을 네 번째 거쳐오는 동안 나에게도 적지 않은 경험이 쌓였고, 어쩌면 게임비평을 보는 시각도 바뀌었을 듯 싶다. 이 글은 어찌 됐건 2020년대 이후 꾸준하게 게임비평의 새로운 자원을 발굴하고자 뛰어 왔던 한 개인의 회고록일 것이지만, 그 경험은 단지 개인 혼자 되새기는 것 이상의 의미가 될 것이라 생각해 지면 한 켠을 빌어 이야기를 새겨두고자 한다.



모든 종류의 사고와 글쓰기에 뛰어들기 시작한 AI에 대한 고민


4회 공모전 응모작에서 뚜렷하게 나타난 트렌드가 AI의 개입이었다. 절반은 의심이고 절반은 확신이다. 응모작들은 예년에 비해 기초적인 글쓰기의 기술적 측면에서 큰 폭의 질적 향상을 이루었다. ‘글을 못 썼다’라는 이유로 예심을 통과하지 못하는 사례가 크게 줄었다는 측면에서 확실히 오늘날의 글쓰기, 특히 공모전과 같이 심사가 곁들여지는 형식의 글쓰기에는 AI의 강한 개입이 나타난다.


나는 글쓰기에 있어 도구로서의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것에 반대하는 원론적 입장은 아니다. 두 가지 이유로부터인데, 첫 번째는 더 나은 정보와 전달력을 위해 향상된 효율의 도구를 활용하는 것에는 오히려 적극적일 필요도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설령 인공지능과의 협업에 의한 글쓰기를 반대하더라도 이를 공모전과 같은 심사 체계에서 완벽하게 필터링할 방법도 없다는 점이다.


다만 말그대로 심사가 이뤄지는 공모전이기에 이는 단순히 합격 – 불합격의 문제를 떠나 애초에 이 공모전을 시작했던 이유까지를 거슬러 되짚어야 할 순간을 만들어낸다. 게임비평웹진에서 개최하는 공모전의 목적은 당연하게도 신진 필자 발굴과 육성이다. 그런데 이는 단지 주최측의 목적일 뿐, 응모자 입장에서도 반드시 ‘내가 게임비평을 쓰겠어!’라는 동일한 목적을 지향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누군가는 그저 상금과 스펙을 위해, 누군가는 연습삼아 참가할 수 있는 것이고 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 AI가 개입할 경우 주최측의 고민은 조금 더 깊어진다. 우리가 찾는 것은 게임에 대한 비평적 관심을 꾸준하게 가져갈 수 있는 필자이지만, 그 꾸준한 관심과 통찰을 AI라는 도구를 통해 충분히 가장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우수한 작품을 선정하고 시상할 수는 있지만, 이것이 반드시 해당 필자를 지속적으로 게임비평 담론을 생산해내는 사람이라고 짚어내기는 어려워진다.


이런 고민은 비단 게임비평 뿐 아니라 아마도 다른 모든 류의 글쓰기 공모전에서 공통적으로 떠안게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GG 공모전은 적어도 GG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계속 지속될 예정인데, 앞으로 모든 심사에서 AI가 던진 이 새로운 고민인 지속가능한 게임비평 필자의 발굴이라는 고민은 더욱 심사를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한 응모자 집단


4년째 비평공모전을 이어 오면서 확인한 또 하나의 변화는 헛스윙이 줄어들고 있다는 흐름이다. 1회 공모전에서는 상당수의 응모작이 GG의 정체성과 잘 맞지 않거나, 혹은 아예 게임비평과 무관한 글들이었다. 이를테면 가장 많이 나온 주제는 “게임을 마약으로 치부하는 한국사회”, “확률도박이나 만드는 한국게임”, “페미가 게임을 망친다” 였다. 이런 주제들은 주최자의 기운을 빼곤 한다. 애초에 GG가 뭐하는 곳인지 글 하나도 보지 않고 응모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4회째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주제의 응모가 거의 없는 정도에 이르렀다. 나름 길다면 긴 역사에 탑승해 흘러온 결과일 것이다. 적어도 게임제너레이션이라는 웹진이 어떤 글을 쓰고 있고, 어디를 지향하는지를 더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음을 어느 정도 짐작케 해 주는 변화로 보인다. 일반적인 리뷰가 아니라 비평이라는 관점을 견지한다는 점에서 비평웹진의 독자 수는 아무래도 대중적이기는 어려우며, 이런 경우 독자층은 상당부분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 혹은 의지를 가진 집단과 겹치기도 한다. 그런 이들에게 GG는 과거보다는 좀더 올라간 인지도를 갖게 되었고, GG의 방향에 맞춰 글을 쓰거나, 혹은 GG와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 아예 응모를 피하는 흐름이 나타난 것이 이번 4회 공모전의 결과다.


아직 시작했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수준의 게임비평의 문제를 넘어 모든 종류의 비평 자체가 과거보다 허약한 대중성으로 인해 사그라드는 추세 속에서 이러한 흐름이 나타난다는 것은 나름 긍정적인 신호다. 아직 사회적으로 다수는 아니지만 적어도 이러한 흐름에 공감하고 게임비평의 필요성에 동의하며 같은 방향을 지향하고자 하는 일련의 그룹이 존재하고, 그 존재감이 다소 뭉툭하지만 하나의 덩어리로 만져지기 시작한다는 것은 지난 4년의 작업이 무의미하지는 않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당장의 게임비평이 활성화되고, 대중문화 담론에서 갑작스럽게 높은 비중을 차지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지금 당장 비평의 필요성을 말하는 입장에서 추구해야 할 과제는 큰 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작은 불씨 하나를 죽이지 않고 살려 나가는 일이다. 언젠가 시기가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왔을 때, 지금 살려낸 불씨 하나로 비로소 유의미한 불을 지펴낼 수 있는 불지킴이로서의 역할이 비평 전반이 죽어가는 시대에 비평을 생각하는 이들이 첫 손으로 꼽아야 할 일일 것이다.



과도한 무거움


언제가 될 지 모를 시기를 위해 비평의 불씨를 살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지만, 현재까지의 게임제너레이션과 게임비평공모전에 남는 다소간의 아쉬움은 필요보다 과하게 무겁다는 점에 있다. 이는 좀더 엄밀하게 이야기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그냥 무겁다는 것이 아니라 ‘필요보다 과하게’에 방점을 찍은 무거움이다.


나는 어떤 현상이나 사건을 설명하는 데 있어 간혹 불필요하게 두꺼운 학술의 옷을 걸치려 하는 일련의 글쓰기 습관을 경계하곤 한다. 그러나 생각보다 이 학술의 옷이라는 건 말그대로 옷처럼 대중 앞에 설 때 쉽게 발가벗기 어려운 일종의 습관이 함께 따라붙는다. 비평이라는 글쓰기가 상당부분 학술적 글쓰기가 일반적인 학계를 통해 학습되는 문제도 있고, 애초에 ‘진지하게 글쓰기’라는 방식에 묻은 스타일 자체가 그러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비평이 꼭 학술적이어야 할까?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GG와 공모전의 글들은 학술적인 글이라기보다는 학술적인 스타일의 글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대중성과 학술성의 가운데를 자임한다고 늘 이야기하는 웹진이지만 막상 거기 실리는 글들의 논지에 대한 근거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어떤 학자의 주장을 각주로 다는 것으로 갈음하곤 한다. 특정한 게임이 우리에게 주는 일련의 메시지와 감정들을 재해석하고 설명하는 데 반드시 다른 ‘학자’의 주장이 동반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저 손쉽게 남들의 동의를 얻기 위해, 일종의 잘 갖춰진 우상을 등 뒤에 두고 자신의 해석을 풀어가는 것은 아닐지 경계해야 한다.


필요 이상으로 무거운 글의 문제는 앞서 이야기한 ‘불씨를 살리는’ 일과 맞닿는다. 정작 게임비평의 확산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순간이 왔을 때, 대중적으로 퍼져나가기 어려운 그들만의 리그 같은 글들만이 쌓여 있다면 우리는 그 순간에 필요한 일을 해 나갈 수 있을까? 그것이 정말 적절한 순간을 위해 대비해 온 결과가 맞을까? 이론과 근거를 쌓아나가는 일은 솔직히 말하면 GG같은 웹진이 할 일이 아니라, 별도의 재정과 인력을 굴리며 그런 일을 하도록 사회적으로 자리매겨진 ‘학계’가 해야 할 일이다. GG는 아카데미가 아니며, 아카데미어야 할 이유도 없고, 아니 더 나아가 아카데미가 되어서도 안 된다.



모든 비평은 결국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아주 단순하고 과감하게 요약하자면 결국 모든 비평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지금 세상의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이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며, 더 나은 세상으로 나갈 방안을 찾아낸 뒤 이를 세상 모두에게 알리며 공감을 얻어가는 과정이다. 비평은 때로는 텍스트를, 때로는 수용자를, 때로는 씬 전반을 주목하지만, 그 주목의 대상이 무엇이건간에 원론적 의미에서의 목적인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이라는 속성 자체는 달라지지 않는다.


디지털게임에 대한 비평도 같은 맥락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게임이라는 매체가 등장하고 나름의 영향력을 확보하는 과정을 겪으며 인간과 사회는 게임을 통해 소통하고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몇몇 사례들을 통해 게임이 인간을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나 변화시킨 과정을 목격했고, 반대로 인간이 게임을 새롭게 만들며 더 나은 세계, 혹은 더 어두운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 또한 동시에 목격했다.


게임비평의 근본적 목적이라면 이 변화가 보다 인간과 사회 전반을 위한 방향으로 향할 수 있는 방향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있을 것이다. 고작 게임 비평 가지고 무슨 거창한 이야기냐고 할 사람들이 있겠지만, 본래 모든 비평의 목적은 그리로 향하는 법이다. GG가 지향한다고 늘 말하는, 학술성과 대중성 사이라는 지향은 사실 이 근본적인 목적을 향하는 일종의 방법론이다.


깊은 성찰을 요하면서도 그 결과가 단지 소수의 그룹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모두에게 향할 수 있는, 깊이와 넓이를 모두 갖춘 통찰이 게임, 그리고 게임을 넘은 세상 전반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것이 GG 창간의 목적이었고, 아마도 이런 입장에 공감하는 많은 필진들의 목적과도 유사할 것이며, 이런 작업들과 함께 나아가는 비평공모전의 지향과도 총론의 입장에서는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내년에 열릴 제 5회 공모전에서도 이런 지향이 좀더 많은 동지들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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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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