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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영과 몰락과 애도의 이야기, <33원정대>

26

GG Vol. 

25. 10. 10.

***이 글은 해당 게임의 강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게임을 아직 플레이하지 않으신 분들의 주의를 요합니다.***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이하 <33원정대>)>라는 인상적인 게임의 제목에서 미술이라는 매체를 활용하는 방식을 담은 ‘클레르 옵스퀴르’에 대해서는 이미 GG에서 한 차례 다룬 바 있다. 그러나 부제처럼 따라온 뒷부분의 ’33 원정대’라는 의미는 얼마나 다뤄졌을까? 이 글은 <33원정대> 전반에 담겨 있는 설정과 서사를 되짚으며 게임이 보여주고자 했던 희생과 애도의 메시지를 곱씹어보고자 한다.



벨 에포크: 빛과 어둠의 교차


<33원정대>의 배경이 되는 가상세계 속 도시 뤼미에르는 누가 봐도 프랑스 파리를 모티프로 삼은 도시다.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에펠 탑만으로도 쉽게 알아챌 수 있는 이 도시의 근원은 공간적으로만 프랑스 파리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에펠 탑이 존재하는 파리라는 것은 산업혁명 이후 근대적 도시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19세기 후반 이후의 파리가 이 게임의 기본적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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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뤼미에르 세계에는 휘어진 에펠탑이 상징처럼 등장한다. 근대의 기술과 번영을 상징하는 철탑은 시작부터 끝까지 휘어진 채 남아 있다.

이 무렵의 서구 유럽을 가리키는 용어인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절)는 인류의 문명 번영에 대한 찬사를 담은 말이다. 전에 없었던 막대한 부가 집중되고 기술은 인류의 상상을 넘어서는 생산력을 달성해 냈고, 그 가속도는 앞으로 남은 인류의 미래마저도 온통 장밋빛일 수 밖에 없는 전망을 동시대인들에게 남겼다.


그러나 정작 벨 에포크 이후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에게 이 말은 게임 제목의 ‘클레르 옵스퀴르’처럼 빛과 어둠을 동시에 품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애니메이션 <푸른 바다의 나디아>에서 파리 만국박람회는 미래와 과학에 대한 예찬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1889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는 흑인을 가둬놓고 전시한 인간 동물원이 함께 존재했었다. 서구 유럽이 달성한 막대한 부와 번영은 명백하게 식민지 착취를 통해 이끌어낸 결과물임을 <소공녀>와 같은 소설, <라지의 챔피언>같은 게임들을 보여주고 있다. 산업혁명과 제국주의 시절을 거치며 달성한 서구의 번영은 찬란한 미래가 아닌 두 번의 세계대전이라는 전례없는 암흑기로 이어지며 벨 에포크라는 말에 빛과 어둠의 두 가지 의미를 시간축으로 담아내는 결과를 맞았다.


클레르 옵스퀴르, 명암 대비라는 제목을 단 게임의 배경이 벨 에포크라는 것은 번영과 몰락이 서로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게임의 설정을 드러낸다. 무한히 진보하고 발전할 것이라는 단선적인 시간관이 아니라 번영과 몰락은 순환하며, 하나의 빛이 도리어 그림자를 내포하고 있음을 게임은 드러낸다. 게임 시작부에 펼쳐지는 한때 분명 화려했으나 몰락해버림을 숨기지 않는 도시 뤼미에르에서 열리는 죽음을 기리는 축제 ‘고마주’는 죽음을 축제로 바꿔버리는 행사다. 번영이 몰락을 이끈 벨 에포크와는 반대로 죽음을 축제로 만드는 이 행위는 빛과 어둠이 순서없이 순환하며 공존한다고 인식하는 게임 전반의 뼈대를 이루는 세계 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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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멸은 예정되어 있고, 카운트다운은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 벨 에포크를 벨 에포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그 이후 몰락이 이어지며 그 시기가 유일한 정점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원정대, expedition


Expedition의 어원은 라틴어 expeditio이며, 이 말에는 군사 원정, 해방, 준비와 같은 의미가 들어 있다. 묶은 발을 풀어 자유롭게 함으로써 원정을 준비한다는 의미의 이 말은 알려지지 않은 세계를 향해 떠나는 도전적인 원정, 혹은 정벌을 위한 군사적인 원정으로 쓰이며, 게임 속에서 원정대는 실제로 어느 정도 탐험적이고 어느 정도 군사적인 의미로 꾸려진다.


어원은 고대 로마에서 비롯되었지만, 오늘날 우리가 쓰는 원정대라는 말의 의미에 가까운 형식은 앞서 언급한 벨 에포크 시대에 확립된 바 있었다. 아마도 가장 유명한 대외 원정이었을 로알 아문센과 로버트 스콧의 남극점 원정은 1차 세계대전 직전인 1910년대에 이루어졌고, 아프리카 대륙 횡단의 주인공인 데이비드 리빙스턴의 원정은 1850년대에 이루어졌다. 대외 원정의 시작점이라 볼 수 있을 지리상의 발견과 대항해시대의 탐험들이 있지만, <33원정대>가 참고한 원정은 보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한다는 점에서 벨 에포크 시대의 원정에 좀더 가까운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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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서구를 만든 것은 원정이었다. 근대적 시계의 발명은 항해를 위해 이루어졌고, 서구 열강은 식민지 개척과 착취를 통해 전례없는 번영을 이뤘다.

클레르 옵스퀴르라는 말이 가진 양면성은 게임 속 원정대의 의미에서도 두드러진다. 스토리를 밀고 나가 보면 이 원정의 의미 또한 결국 양면적이라는 사실을 만나게 된다. 세계는 현실세계가 아닌 한 예술가 집안에 의해 캔버스 안에 창작된 세계였으며,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것 같았던 페인트리스의 행동은 오히려 그림 속 세계인들에게 세계 멸망의 위기를 알리는 경고였음이 드러난다. 자신들이 존재하는 세계의 본질에 한발 더 다가섰지만 그런 발견과는 다르게 세계는 멸망의 위기를 맞으며 원정대는 이를 극복할 수 없다. 00부터 시작해 역순으로 33에 이른 원정대 파견은 모두 실패하고 대원들은 사망했으며, 최장수 인원이 33세가 된 사회는 붕괴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33


그 수많은 원정대 중 왜 게임은 33번 원정대를 이야기의 중심으로 택했을까? 33이라는 숫자는 서구권에서는 꽤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데, 서구 점성술에서 태양과 상승궁의 순환이 맞아떨어지는 시기로 33년을 주기로 삼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널리 알려진 33의 서구적 의미는 예수의 생애다.


예수가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나이를 보통 30세로 추정하며, 이때부터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까지 약 3년간을 공생애라는 시기로 활동한다. 따라서 33년은 그리스도의 일생을 가리키는 의미를 내포한다. “나 예수 나이가 되었어!”라는 말은 프랑스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관용적 표현으로 성년이 된 시기, 완성 혹은 전환기를 가리키는 의미로도 쓰인다.


33이라는 숫자에 담긴 의미 중 <33원정대>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라는 부분에도 방점을 찍은 듯 싶다. 원정대는 사실상 가망이 없는 이 원정의 결말을 어느정도 예측하고 있으며, 원정을 떠나지 않아도 어차피 고마주의 대상이니 삶에 있어서는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인지를 기반으로 꾸려진다. 벨 에포크의 화려한 전면 장식이 걷혀진 뒤에 몰려온 멸망의 어둠 앞에서 33세, 이제 막 인생의 본격적인 시기를 맞게 된 이들은 화려한 번영이 아니라 몰락의 전조 앞에 서며, 과학과 기술이 만들어낸 원정대라는 방법론을 사용해 화려한 미래를 향한 장밋빛 길이 아닌 딱히 자청한 바 없는 희생을 향한 골고다 언덕길을 오르게 된다.



애도


세계의 진실이 드러나는 게임 중반 이후부터 이야기는 캔버스 속 인물들로부터 캔버스 밖의 실존인물들로 중심을 옮겨가며, 이 때부터 이야기는 세계에서 개인으로 화제를 돌린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중심에는 애도라는 감정과 행위가 있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애도라는 감정과 행위를 설명하고자 한 프로이트의 개념을 재해석하면서 “성공적인 애도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프로이트는 사랑하던 대상을 상실한 인간이 겪게 되는 일반적인 과정으로 애도를 이해하며, 성공적으로 애도를 끝내기 위해서는 상실된 대상을 향한 집착을 벗어나는, 쉽게 말해 떠난 이를 비로소 가슴에서 떠나보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러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데리다가 말한 ‘성공적 애도는 불가능하다’는 이러한 프로이트의 입장에 대한 재해석이다. 데리다는 애도 과정 속에서 우리는 상실한 타자를 각자의 마음속에 내면화하는데, 이 때 우리는 상실한 대상의 본질 그 자체를 그대로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표상과 해석을 통해 재해석된 형태로 간직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오히려 애도의 과정은 타자로서의 대상이 가지고 있었던 타자성을 잃게 되며, 프로이트가 말한 성공적 애도는 도리어 상실한 대상이 가지고 있는 고유성을 없애버리는 결과일 수 밖에 없으며 결국 성공적인 애도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짧게 정리했지만 결국 프로이트와 데리다가 애도 개념을 두고 보여준 차이는 사랑하던 대상이 떠난 빈 자리와 그 흔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혹은 어떻게 떠나보낼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대목까지 글을 읽은 <33원정대> 플레이어들은 이 논쟁이 실제 게임 안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것이다.


게임 최후반부에 플레이어가 만나게 되는 두 가지 엔딩은 각각 베르소와 마엘의 입장 중 하나를 선택하여 따라가는 방식으로 결정된다. 게임에 등장하는 베르소는 현실에서는 이미 죽은 인물이며, 어머니 알린이 캔버스 속 세계에 죽은 아들의 기억을 담아 창조해 낸 가상 캐릭터다. 캔버스 속 베르소는 자신의 본체가 이미 죽었음을 알고 있으며, 그는 자신과 자신을 포함한 어머니가 그려낸 이 가상 세계가 소멸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좋은 결과일 것이라 믿고 행동해 나간다.


반면 실존했던 베르소의 동생인 마엘은 어머니가 점차 자신이 창조한 캔버스 속 가상세계에 빨려들며 무너져가는 현실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직접 캔버스 안으로 뛰어들었지만, 아직 능력이 약해 캔버스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잃어버린 채 16년을 살아 온 인물이다. 그런 마엘에게 캔버스 속 세계는 가상세계가 아닌 자신이 직접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온 실제 세계였고, 마엘은 베르소가 원하는 캔버스 속 세계의 소멸이 곧 자신에게는 전 세계의 멸망이라며 베르소와 대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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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난 이를 어떻게 기억하고 애도할 것인가? <33원정대>의 엔딩은 서로 다른 애도를 향한 선택의 길을 제시하지만, 어느 길도 완벽한 것은 아니다.

최종전에서 서로 부딪히는 이 두 결말은 정확히 세상을 떠난 인물인 베르소를 어떻게 애도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상반된 대답이다. 세상을 떠난 베르소의 남겨진 기억은 프로이트적 애도, 상실을 인정하고 슬픔을 받아들이며 이를 가슴에 묻고 남겨진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로 나타난다. 베르소 엔딩을 선택해 진행했을 때 등장하는 실제 죽은 베르소의 묘비 앞에서 슬퍼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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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도의 상징으로 기능하는 묘지와 묘비는 전통적인 애도의 가능성을 드러내는 베르소 엔딩에서 볼 수 있다.

마엘 엔딩은 데리다가 말한 불가능한 애도의 사례를 재현한다. 베르소는 마엘과의 대결에서 패배한 뒤 캔버스 세계에서 자신을 소멸해 달라고 애원하지만 마엘은 이를 거부하고 베르소를 포함한 캔버스 속의 소멸된 모든 사람들을 되살리는 선택을 한다. 그러나 데리다의 말처럼 ‘성공적 애도’는 불가능하다. 결국 캔버스에 남은 베르소는 베르소 그 자신이 아니라 어머니와 마엘의 기억과 표상에 의해 재현된 존재이며, 페인트리스로서 재현된 베르소를 계속 살려낼 수 있는 마엘의 능력 안에서 베르소는 자신의 고유성을 잃고 소멸한다. 애도는 근본적으로 실패하며, 끝없이 지속될 뿐이다.


사랑했던 이를 떠나 보내고 남은 이들의 삶을 완벽히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33원정대>는 굳이 어느 방법이 옳다는 평가를 내리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데리다가 프로이트의 애도 개념을 전유한 것은 애도 그 자체를 보기보다는 애도라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윤리적 긴장을 발견하고자 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데리다에게 애도는 완결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라 끝없이 실패하면서도 지속되는 과정이며, 남은 자가 짊어저야 할 윤리적 숙명을 드러내 보이는 관찰의 대상이었다. 그렇기에 마엘 엔딩도 데리다가 이야기한 진정한 애도를 재현하기보다는 끝없이 자신에게 남은 표상으로 떠난 이를 재현하며 실패를 연속하는 현상으로서의 애도를 그려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두터운 베이스로 쌓아올린 탄탄한 판타지


<33원정대>는 턴 베이스 롤플레잉 게임으로, 제작진도 언급했고 플레이어들도 직관적으로 느끼듯 일본의 턴제 RPG, 특히 <페르소나>시리즈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은 게임이다. 두 게임의 연관점으로 많은 사람들이 턴제 RPG라는 형식, 캐릭터 파티의 구성과 호감도가 전투에 작용하는 방식과 같은 메커닉 요소를 거론하지만, 오히려 <페르소나>로부터 가장 크게 영향받은 부분은 게임 세계의 설정 요소들이다. 멸망을 눈앞에 둔 세계 속에서 청년들이 팀을 이뤄 세계의 멸망에 맞서는 이야기는 <페르소나>가 일본 사회의 여러 맹점들을 게임 속에서 우화로 그려낸 것과 같이 <33원정대>에서도 새롭게 변주되어 그려진다. 서구의 오늘을 만든 근대의 번영 신화와 그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대절멸의 서사, 강력해진 미디어를 통해 더욱 실제같아진 재현된 표상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의 문제, 그리고 떠난 이를 애도하는 개념에 이르기까지 <33원정대>의 판타지 세계는 현실의 문제를 페인터라는 개념을 통해 다시 그려낸 결과물에 가깝다.


특히 이야기의 결론부에서 집중적으로 다룬 애도에 관한 고민들은 게임이 딱히 어떤 정답을 내놓는 것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사회적 참사와 그로부터 비롯된 사회적 애도, 그리고 그 애도를 조롱하는 것이 일련의 문화 코드가 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플레이어들에게는 상당히 무겁고 곱씹어볼 만한 주제를 던진다. 살아남은 자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떠난 이들로부터 넘겨받은 그들의 표상들은 남겨진 우리와 어떻게 관계맺으며 가야 할 것인가? 빛과 어둠, 번영과 몰락, 소멸과 보존이 동전의 양면처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이 관계성 속에서 사고하고 빚어지며 살아가는 사람의 삶을 되새겨볼 수 있는 다양한 계기들이 <33원정대>의 메인 퀘스트와 다양한 서브 스토리에서 툭툭 튀어나온다. 아마도 당분간 ‘교양으로서의 게임’을 이야기한다면, <33원정대>는 두터운 레퍼런스를 기반으로 멋지게 판타지를 구성해 낸 좋은 사례로 꽤 오랫동안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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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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