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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들만의 게임 바깥에서 서성거리기 : 다크소울3과 ‘프롬갤’의 ‘요르시카 살해 전통’ (장려상)

    다크소울3은 나의 첫 패키지 게임이었다. 유튜브를 돌아다니다 이 게임을 소개하는 영상을 우연히 접했다. 고딕 건물이 빛바랜 색감과 얽혀드는 게임 속 광경이 매력적이었고, 그렇게 난생처음으로 스팀 게임이라는 걸 구매해 봤다. 무턱대고 시작한 게임은 참 까다로웠다. 알고 보니 다크소울은 어려운 난이도로 이름이 높은 타이틀이었다. 이 게임의 디자인은 다양한 함정이나 어려운 전투를 활용해 플레이어에게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부각한다.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죽고 화면에 떠오르는 'You Died' 문구는 일종의 밈이 될 정도였다. < Back 그들만의 게임 바깥에서 서성거리기 : 다크소울3과 ‘프롬갤’의 ‘요르시카 살해 전통’ (장려상) 07 GG Vol. 22. 8. 10. 1. 암호 설정 fromgall, 그곳의 ‘전통’ 다크소울3은 나의 첫 패키지 게임이었다. 유튜브를 돌아다니다 이 게임을 소개하는 영상을 우연히 접했다. 고딕 건물이 빛바랜 색감과 얽혀드는 게임 속 광경이 매력적이었고, 그렇게 난생처음으로 스팀 게임이라는 걸 구매해 봤다. 무턱대고 시작한 게임은 참 까다로웠다. 알고 보니 다크소울은 어려운 난이도로 이름이 높은 타이틀이었다. 이 게임의 디자인은 다양한 함정이나 어려운 전투를 활용해 플레이어에게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부각한다.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죽고 화면에 떠오르는 'You Died' 문구는 일종의 밈이 될 정도였다. 튜토리얼 보스인 '군다'를 9번의 시도 끝에 잡았을 때, 나는 완전히 기진맥진해지고 말았다. 동시에 짜릿한 흥분이 온몸을 내달렸다. 거듭된 죽음 끝에 쟁취해낸 승리는 퍽 달콤했다. 그렇게 맵을 순차적으로 진행하기 시작했는데, 공략을 봐도 내 힘으로 온전히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했다. 그러던 와중 '프롬 소프트웨어 갤러리(이하 : 프롬갤)'라는 사이트를 방문했다 이곳에서는 프롬 소프트웨어 사가 발매한 다크소울3을 좋아하는 플레이어들이 머무르고 있었다. 이들은 fromgall이라는 통일된 서버 비밀번호를 설정해 까다로운 보스나 맵을 협력해줬고, ‘복지’와 같은 이름으로 이제 막 게임을 시작한 뉴비에게 각종 템을 지원했다. 별도의 가입 절차 없이 익명으로도 글을 업로드할 수 있다는 갤러리의 특성은 이제 막 게임이라는 걸 시작한 당시의 나에게 더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눈팅 끝에 익명으로 도움 요청 글을 작성하기도 했다. 댓글은 바로 달렸다. “그었음.” 나는 프롬갤의 게시글을 훑으며 게임 관련 새로운 정보를 발견하기도 하고, 타인의 기묘한 플레이를 보며 즐거움을 얻기도 했다. 그러는 한편, 특정한 게시글은 어떤 순간에서 내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오히려 분리감을 느끼게 했다. 프롬갤의 '전통'이었다. ‘어떤 한 집단에서 꾸준히 전해져 내려오는 행위’라는 전통의 사전적 의미를 환기하듯, 다양한 사람이 게임 내에서 유사한 행위를 수행하고 그것을 인증하는 형식으로 게시글을 작성했다. 많은 갤러들은 이에 긍정적으로 동조함으로써 긴 수명을 유지했다. 이 특정한 게시글은 일정한 포맷을 갖고 있다. 그 골자는 이러하다. 요르시카라는 이름의 NPC가 있다. 이 NPC는 '암월의 검'이라는 계약을 주관한다. 플레이어는 그와 계약을 맺고 특정 아이템을 모아 바쳐 보상을 얻는다. 아이템을 얻는 조건은 상당히 까다롭기 때문에 지난한 노가다를 요한다. 모든 노가다를 마쳐 보상을 다 얻은 플레이어는 요르시카를 (창의적으로) 죽인다. 2. “요르시카 야발련아 드뎌끝났다” 1) 프롬갤에 게시된 글을 바탕으로 이 온라인 커뮤니티의 전통 포맷을 한 번 살펴보자. “요르시카 야발련아 드뎌끝났다”는 글은 프롬갤의 전통의 요소를 모두 갖췄다. ‘드뎌(드디어) 끝났다’는 부사와 동사를 통해 작성자가 요르시카와 계약-서약자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장치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해준다. 작성자는 NPC의 이름 뒤로 디시인사이드에서 욕설 ‘시발’을 변용한 ‘야발년’을 결합하여 이 인물에게서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낸다. 캡쳐된 게임 화면에서 작성자의 캐릭터는 ‘탐욕의 낙인’이라는 머리 장비를 장착하고 있다. 이는 캐릭터의 발견력 스탯을 올려주는 장비로, 아이템 노가다 작업에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상자를 뒤집어 쓴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캐릭터의 모습은 그 자체로 노가다 행위를 증빙해준다. 다크소울3에서 발견력 스탯을 증가시키는 장비는 제한적으로 존재하므로 공물 노가다에 뛰어든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외관은 전형적인 구석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스크린샷 속 캐릭터의 모습은 작성자와 유사한 경험을 겪은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표상이 된다. 작성자는 이제 막 암월의 검 노가다를 끝냈다. 공물 아이템 30개를 모아왔을 때 요르시카가 이를 보상과 교환하며 출력하는 특수 대사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왼쪽 하단의 UI는 작성자의 캐릭터가 장착하고 있는 장비를 보여주는데, 윗칸은 주문 아이템이 할당된 자리이다. ‘암월의 빛의 검’이라고 적힌 흰 글씨는 스크린샷 속에서 캐릭터가 대검에 인챈트하고 있는 기적의 이름을 보여주고 있다. 이 기적은 암월의 검 계약의 최종 보상이다. 작성자는 대사를 확인했으며, 노가다의 보상을 획득했다. 따라서 프롬갤의 전통이란 곧 게임 내 성취를 인증하는 자리이기도 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요르시카라는 NPC가 인게임에서 제공할 수 있는 물리적(인벤토리에 기입되는) 인센티브를 모두 취득했다. 이제 다른 동기가 개입하지 않는 이상 그와의 관계를 지속할 이유가 없다. 이에 그는 요르시카로부터 받아낸 기적을 살해에 직접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요르시카 어금니 꽉 깨물어라..’는 문장은 막 행할 폭력을 예고한다. 그는 자기 캐릭터가 암월의 빛의 검 기적을 대검에 바르는 순간적인 모션을 포착함으로써 역동성을 강화하며 이미지를 끝맺는다. 한편으로 NPC를 어떻게 창의적으로 죽였는지는 글의 매력을 판가름하는 요소가 된다. 이 글에서 인용한 게시글의 작성자는 오른손에 로스릭 기사의 대검으로 요르시카를 가격하려 한다. 그런데 UI를 자세히 살펴보면 대검의 이미지 우측 상단에 빨간 X자가 표시되어 있다. 이는 작성자의 캐릭터가 대검 아이템을 장비하기 위한 최소한의 스탯을 갖지 않았다는 알림이자 경고다. 요구치를 충족하지 않은 장비는 제 성능을 낼 수 없으며 미진한 피해를 준다. ‘일부러 데미지 낮춰서 더 때릴꺼라는 생각은 안하십니까? 당신’이라는 타 갤러의 댓글은 일견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작성자의 행위에 개연성을 부여해준다. 타인이 내러티브를 붙여 해석해줌으로써 작성자의 게시글은 전통의 계보에 안착하는 데에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즉 전통이란 프롬갤이라는 온라인 커뮤니티 내에서 축적된 일정한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구성원들의 웃음을 유발하는 발화 형식이라고 바라볼 수 있다. 3. 게임에서의 죽음 문제 여기서 내가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살해 행위 그 자체가 아니다. 율이 게임 플레이를 두고 “플레이어가 게임 내부의 규칙과 상호작용 하면서 그 자신의 목표, 레퍼토리, 선호를 추구하는 것”이라 정의한 바 있듯, 게임은 플레이어의 직접적인 개입을 필요로 한다. 플레이어의 상호작용과 몰입을 강화하기 위한 요소로써 죽음은 적극적으로 활용되어 왔다. 죽음은 지속해오던 모든 상태 일체로부터 정지되는 것이며, 존재의 소멸을 의미하는 영원한 단절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게임 속 죽음은 플레이어가 규칙을 이해하게 해주는 수단이 된다. 특히나 RPG 게임과 같은 장르에서는 길을 막는 적을 제거하면서 특정한 장소에 도달하는 것을 가장 기본적인 게임 메커닉으로 차용해 왔다. 플레이어가 경험한 죽음은 내부 규칙을 이해할 단초가 되며, 피드백을 거쳐 적을 성공적으로 살해할 경우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역량을 높인다. 게임에서의 죽음은 바로 이 지점에서 플레이어 개인의 폭력성·사회성에 대한 우려와 만나기도 한다. 화면 속이지만 누군가를 찌르고, 때리고, 살해하는 행위는 규범과 법률 속에서 자란 교양 시민과는 반대 선상에 놓인 행위로 이해된다. 게리 영은 이를 STA(Symbolic Taboo Activity)로 설명한다. 이는 가상에서는 가능한 행위이나 현실에서는 법과 도덕에 의해 금지되는 행위들이라는 것이다 2) . 그러나 플레이어의 행동 범주를 설정하는 절대적인 배경으로 게임의 규칙이 존재한다. 특정한 행위를 유도하는 일련의 규칙이 있는 이상 이를 개인의 비도덕성 문제로 환원하기는 어렵다는 측면이 존재한다 3) . 실제로 요르시카를 죽여야만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인 '요르시카의 성령'은 강력한 살해 동기로 작동한다. 이렇게 바라보았을 때 단순히 요르시카를 죽이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주로 플레이어 개인이 그 게임 세계 내부에 시선을 두고 플레이를 수행하고 완결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특성을 갖기 때문이다. 이는 놀이가 일상생활과 분리된 그 고유의 질서를 갖는다는 ‘매직 서클’의 의미를 환기한다. 4. 여기 ‘나쁜 남자’가 있다 프롬갤 전통이 갖는 독특한 지점은 커뮤니티에 전시하여 공유하는 과정에 있다. 전시는 게임 밖의 세계에 위치한 청중을 동반한다. 독특한 플레이는 화제성을 갖기 마련이다.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의 인터페이스는 경우에는 ‘추천’을 받아 ‘개념글’로 올라가는 구조를 통해 화제성을 수치화한다. 존 스튜어트 밀의 위해 원칙과 같이 보편적인 범주로 규정된 것 이상으로 발휘된 폭력이 심저에서 불쾌감을 자극할 때, 게시글 아래에 달린 경악성의 댓글은 그가 수행한 괴멸적인 플레이에 대한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즐길 수 있다. 니스는 “부도덕한 것으로 여겨지는 행위에 참여한다는 사실 자체가 일종의 즐거움을 준다”고 이야기한다. 4) 이 ‘나쁜 남자’와 같이 규범을 위협하는 존재에 자기를 동일시할 수 있는 데서 즐거움은 증폭된다. 전시는 보다 많은 관객을 동원할수록 좋다. 그러한 목적성을 갖고 특정한 라인을 따라 행위를 수행하게 되면 갤러들은 익숙한 내용에 익숙한 반응과 익숙한 호의를 내비친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플레이가 따라가야 할 일종의 포맷이 생기는 셈이다. 그렇게 형성된 게시판 내의 놀이 형식에 맞추어 나의 플레이를 만드는, 게임의 매직 서클 내외부를 넘나드는 상호작용이 발생한다. 프롬갤이라는 공동체 내의 동력이 게임 내 플레이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요르시카 야발련아 드뎌끝났다”에서 작성자는 NPC를 폭행하기 위해 대검을 선택했다. 대검이라는 무기 종은 프롬갤 내부에서 특정한 상징성을 갖는데, ‘상남자’라면 마땅히 들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떤 무기로 플레이하는지에 따라 ‘게이’와 ‘진짜 남자’를 구분하는 발화를 프롬갤 내에서 목격할 수 있다. 게이와 상남자의 구분을 통해 프롬갤이라는 공동체가 공유하는 남성성에 대한 상상을 엿볼 수 있다. 이를테면 직검과 방패의 조합을 의미하는 ‘직방’은 이상적인 남성성을 갖추지 못한 ‘게이’와 동의어로 활용되는데, 이는 구르기를 통해 공격을 피하는 대신 방패로 막아내는 게 남자답지 못한 행위로 여겨지는 탓이다. 대검을 들기 위해서는 캐릭터가 양손으로 칼자루를 쥐어야 한다. 방패를 들지 않고서 자신의 체격을 훨씬 상회 하는 무기를 든 캐릭터는 그 자체로 공세적인 인상을 준다. 그는 비열하게 방패 뒤로 숨지 않는 ‘진정한 사나이’나 다름없다. 이는 수잔 제퍼드가 레이건 시대의 할리우드 남성 재현을 설명하기 위해 표현한 ‘하드 바디’를 떠올리게 한다. “지치지 않는, 근육질의, 무적의 남성 육체”에 대한 환상을 바탕으로 프롬갤은 “자신의 뜻을 남에게 강요하기 위해 강화된 몸”을 꿈꾼다. 5) 그러는 한편 암월의 검 계약은 플레이어를 노가다로 인도하며, 그는 희박한 확률이 그저 터지기만을 바라면서 주체성을 상실한다. 플레이어는 무력한 확률 앞에서 억울함을 환기한다. 프롬갤의 갤러들은 이를 남성 섹슈얼리티의 문제로 치환하여 요르시카를 정복함으로써 주체성을 되찾으려 한다. 게시글 작성자의 캐릭터는 대검을 들 수 없는 스탯임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소화하기 힘든 장비를 들기를 고수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프롬갤이라는 집단 내부에서 설정된 남성성의 환상을 입고서 요르시카를 살해한 셈이다. 5. 밈 앞에서 웃지 못할 때 이길호는 디시인사이드에서 발생하는 게시물이 끝없이 분화하고 변형되는 과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생산물은 하나의 갤러리 안에서 생산된다. 그것은 갤러들 사이의 관계에서 결과적으로는 어느 특정 갤러의 결과물로 도출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생산물의 소스는 명백히 다른 갤러에게 제공받았다. 그것은 여러 갤러들의 손을 거치면서 변형을 맞는다. 최종적으로 하나의 갤러가 일종의 ‘완성본’을 내놓는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매 순간 새로운 변형의 힘을 통과한다는 점에서 언제나 ‘미완성’이다.” 6) 이러한 갤러리 내 생산물의 분화 과정은 밈의 발생과 활용 방식을 닮아있다. 본래 밈이란 리처드 도킨스가 특정한 문화 요소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도입한 문화 유전자의 개념이나 온라인 생활에서는 달리 통용된다. 주로 밈이란 “특정한 이미지, 영상, 대사나 어휘 등이 유행하면서 퍼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7) 밈의 재미가 “공동의 이해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며, 이에 밈이 호응을 얻은 것은 “개인주의 시대에 나타나는 하나의 증상”이라는 분석이 존재한다. 8) 밈이 생산되는 환경은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와 유사해 보인다. 갤러들은 모여든 게시판에서 해당 주제를 갖고 말하기 위해 존재한다. 친목질을 배제한다는 엄격한 수평 관계를 유지하며 그저 한 개인으로 쉼 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디시인사이드의 게임 게시판이 유머러스한 공간으로 여겨진다면 그것은 게임 플레이라는 공감대를 나누는 과정에서 타 갤러와 동질감을 발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유머란 곧 집단 내부에서 통용되는 규율이나 사고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다. 프롬갤의 요르시카 살해 전통에서 유머를 느낀다면 그것은 어째서인가? 또 유머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전통이라는 밈에서 유머를 느낄 수 없는 것은 그 속에서 프롬 갤러들이 발화하는 여성 혐오의 의미가 자연스럽게 이들 공동체 내부에서 승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요르시카를 살해하는 게시글은 2016년 다크소울3이 발매된 이래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주 개념글로 올라갔다. 2022년 프롬 소프트웨어의 신작인 엘든링이 출시된 이래, 엘든링의 열기를 즐기는 지금의 시점에서 요르시카를 죽이는 전통은 이제 개념글에서 찾아보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프롬갤의 전통을 전통으로 만들어낸 동원을 상실하지 않은 이상, 새로운 전통이 태어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다만 밈이 될 정도로 화제성을 가진 플레이가 아직 전시되지 않았을 뿐이다. 나쁜 남자가 되기 위해 안달 난 프롬갤 앞에서, 나는 그저 서성거리고 있다. 1) 권천. “[일반] 똥3)요르시카 야발련아 드뎌끝났다.” 2021.11.28.등록. 2022.06.02.접속. 프롬소프트웨어 마이너 갤러리.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fromsoftware&no=2383063&page=1 2) Young, G. (2019). Enacting immorality within gamespace: Where should we draw the line, and why? In A. Attrill-Smith, C. Fullwood, M. Keep, & D. J. Kuss (Eds.), The Oxford handbook of cyberpsychology (pp. 588–608). Oxford University Press. pp. 589. 3) 미구엘 시카트. 김겸섭 역. 컴퓨터 게임의 윤리(n.p.: 커뮤니케이션 북스, 2014 4) Young, G. (2019). Enacting immorality within gamespace: Where should we draw the line, and why? In A. Attrill-Smith, C. Fullwood, M. Keep, & D. J. Kuss (Eds.), The Oxford handbook of cyberpsychology (pp. 588–608). Oxford University Press. pp. 600. 5) 수잔 제퍼드. 이형식 역. 하드 바디(n.p.:동문선, 2002) 6) 이길호. 우리는 디씨. (2012). 이매진: 서울. 82쪽. 7) 정지우. “무엇이 밈이 되는가”. 민음사. 릿터(32). 14쪽. 8) 이자연. “밈 검열, 그게 진짜이긴 해?”. 민음사. 릿터(32). 30쪽.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김규리 게임이 이야기를 경험시키는 방식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것저것 기웃거리다가 최근에는 <마라톤>을 플레이했습니다.

  • 김갑환에서 도깨비까지 : 게임 속 한국의 코드는 누가 써왔는가

    이 태도를 고민함에 있어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것은, 게임이 주로 미국과 일본 위주로 개발-발전해 왔다는 점이다. 따라서 게임 속의 한국이란, 한국 자신이 만들지 않은 이상은 대부분이 미국과 일본의 시선이게 마련이다. 또 하나는 시간적인 변천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의 경우, 거리가 먼 한국에 대한 정보가 적거나 고증의 필요성이 적었던 것이 2010년대 이전이다. < Back 김갑환에서 도깨비까지 : 게임 속 한국의 코드는 누가 써왔는가 31 GG Vol. 26. 8. 10. 2020년, 인벤의 정재훈 기자는 “게임 속 ‘한국’을 보고 싶다” 는 칼럼 기사를 썼다. 이 칼럼은 한국의 요소가 게임에서 활용된다면 어떤 것이 가능할까를 질문하고 사유하는 마케팅적 내용이다. 그래서 칼럼의 핵심 질문은 이 부분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 앞서 우리는 모른다. 세계가 한국 문화, 한국 역사의 어떤 부분을 좋아하는지, 어떤 부분에 매력을 느낄지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 `닌자`는 팔리고, `사무라이`도 통한다. `삼국지`도 동아시아권에서 엄청나게 소비된다. 그런데 한국적 요소 중 세계에서 이렇게 통하는 게 하나라도 있던가?” 정재훈 기자 자신이 이 질문에 답을 하면서 꼽은 필요 조건은 “코드와 완성도”이다. 완성도-만듦새는 엄밀히는 의미가 없는 지적일 수 있다. 날카로운 문화 코드를 찾아내어 반영했어도, 매력적으로 반영하지 않았거나 게임 디자인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영향력을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핵심은 ‘코드’다. 중국의 쿵푸, 일본의 닌자/사무라이와 같은, 국가 문화에 부여되는 대표 이미지에 대한 고민이다. 정재훈 기자의 결론은, 무엇이 히트하여 대표 코드로 호명될지 알 수 없으니 이것저것 계속해서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완성도 높은 코드 구현이 다양하게 시도되다 보면 그 중에서 몇 가지는 한국의 대표 이미지로 자리잡을 것이다. 비단 게임에만 적용되지 않을 이 생각은 ‘한국을 보여주겠다’, 즉 1인칭 중심의 사고가 아니라 ‘한국을 무엇으로 보는가’ 라는 타인 중심의 사고다. 자신을 규정할 권리는 타인에게도 있으므로, 그리고 마케팅에서는 그 타인이 중심이 되어야 하므로 옳은 방향이다. ‘Do you know...?’가 아닌 ‘How about this?’의 질문이다. 수용자의 해석에서부터 출발하므로 오해와 오독도 일단 긍정하며 출발하는 태도다. 이 태도를 고민함에 있어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것은, 게임이 주로 미국과 일본 위주로 개발-발전해 왔다는 점이다. 따라서 게임 속의 한국이란, 한국 자신이 만들지 않은 이상은 대부분이 미국과 일본의 시선이게 마련이다. 또 하나는 시간적인 변천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의 경우, 거리가 먼 한국에 대한 정보가 적거나 고증의 필요성이 적었던 것이 2010년대 이전이다. 고증이 필수 업무인 역사 게임에서의 한국은, 엄밀히 말하면 한국이 아니고 과거의 한국이기에 되도록 생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국성’의 표현으로서 한국을 쓴다거나, 한국을 표현할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투박한 형태로 표현하다가, 2010년을 전후하면서부터는 서서히 묘사에 구체성이 생기기 시작한다. 특히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신드롬 수준의 글로벌 유행을 타면서 촉발된 K-컬처의 전파가 기점이 된다. 일본은 이런 변곡점이 필요하지 않았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인한 오해와 왜곡은 있을지언정, 오래 쌓인 교류의 역사가 있기에 그 정도는 다른 문화권에 비해 적었다. 외국 중에서 가장 한국을 친숙하게 여기는 일본이, 한국을 게임에서 다루면서 선택한 대표 코드는 태권도였다. 태권도 90년대에 아케이드 격투 게임의 붐이 일면서, 일본산 격투 게임에는 한국 시장을 노리는 겸 하여 들어가는 한국인 캐릭터가 있었다. 94년 ‘통쾌 간간 행진곡’의 이해권, 96년 ‘풍운 슈퍼 태그 배틀’의 김수일, 98년 ‘소울칼리버’의 성미나와 황성경이 등장했다. 당나라 대도술을 조선에서 이어받아 쓴다는 설정의 소울칼리버 캐릭터들은 홍윤성 등의 파생 캐릭터로 이어졌으나, 가장 큰 성공은 태권도 사범으로 등장한 92년 ‘아랑전설2’의 깁갑환이다. 태권도 한국의 상징, 김갑환 그리고 깁갑환은 수많은 파생 캐릭터를 만들어내며 확장했다. 이후 아랑전설 시리즈와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에는, 아들인 김동환과 김재훈, 스승인 강일, 동문인 전훈과 이진주 등의 캐릭터가 깁갑환의 태권도 코드를 확장한 결과로서 등장했다. 여기에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에서 처음부터 깁갑환의 서브 캐릭터로 등장한 장거한과 최번개 역시 설정상으로는 깁갑환의 태권도 제자라는 연결점이 있으며, 아예 ‘풍운 태그 배틀’의 김수일 캐릭터도 이 계보로 흡수되었다. 태권도 코드는 철권 시리즈의 백두산과 화랑 두 캐릭터에도 구현되었고,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 4’의 한주리로도 이어졌다. 다만 한주리의 경우에는 태권도 코드만이 다른 캐릭터와의 공통점일 뿐, 다른 설정은 철저하게 한국 태권도 캐릭터의 클리셰를 비켜간 악역 캐릭터여서 전형성은 적다. 장르적으로 김갑환의 계보에 속하는 백두산과 화랑 ‘한국인 여성’이라는 것만 결정된 상태에서는 김연아 이미지도 고려되었으나 거미 테마의 태권도 악녀라는 컨셉으로 결정된, 한주리 하지만 깁갑환, 화랑, 한주리가 등장하는 스테이지의 배경은 일본인이 인식한 한국의 대표 공간이 엿보인다. 소울칼리버와 같이 역사적 과거 시점의 게임에서는 스테이지로 사찰과 같은 전근대 건물의 공간이 나오는데, 이 건축 코드가 현대 시점의 게임에서도 주로 사용되었다. ‘소울칼리버 2’에서의 성미나 스테이지 ‘킹 오브 파이터즈 96’에서 김갑환과 한국팀의 스테이지. 김갑환의 경우, 아랑전설에서는 숭례문, 김갑환의 도장 등이 스테이지로 나왔다. ‘철권 3’에서의 화랑 스테이지. 백두산과 화랑은 대부분 이런 전근대 건물을 스테이지로 썼다.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 4’에서의 한주리 스테이지. 사찰 근처의 장터다. 전근대 건축물의 고풍스러움은 일본 제작사 입장에서는 익숙하면서 약간 다른 느낌, 즉 ‘어느 정도의 친근함’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동북아시아 혹은 나아가 동아시아에서는 그런 느낌이겠지만, 비 동아시아 권역에서는 매우 이국적으로 받아들여질 것인데, 그런 경우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사용법에서 볼 수 있다. 아제로스의 수많은 종족이 이룩한 다양한 문화를 구현하기 위해 제작사 블리자드는 현실 세계의 각종 문명에서 디자인을 가져왔는데, 한국의 건축은 나이트 엘프의 문화를 창조하기 위해 참조된 대상 중 하나다. 시작 지역에서 대도시 다르나서스로 들어가는 성문은 남대문을 그대로 가져왔으며, 나이트 엘프의 건축물 중에는 석가탑과 똑같은 구조물이 있으며, 몇몇 건물은 전작인 ‘워크래프트 3’에서의 디자인과 약간 달라지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한국식 처마를 활용했다. 다르나서스의 성문 군대 고풍스러운 옛 건물을 배경으로 태권도를 수련하는 이미지만으로는 외부에서의 한국이 구성되지 않는다. 현재의 한국을 이루는 요소 중에는 휴전 국가, 그리고 징병제가 있다. 이 요소는 일본의 게임 제작자들에게 일종의 판타지로 작용한 것인가 싶다. 철권 시리즈의 화랑은 3편 이후 영장이 나와 입대를 했고, 4편 직전에 탈영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전달하는 일러스트를 보면 병사 계급인데 권총을 쓰고, 실제 무력 사용 작전에 투입되고, 탈영한 화랑을 잡기 위해 완전무장을 한 병력들이 투입되는 등 현실과는 아득한 거리에 있는 묘사가 나온다. 특수부대는 부사관 위주이고 보통 징집병이 가지 않으며, 저 복장은 대체 무엇이며 등등의 의구심이 든다. 비단 일본만 한국군 요소를 오해하고 있지는 않다. 2014년, 김상민은 연구 「미국 문화에 나타난 한국이미지: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디지털 게임을 중심으로」에서 여러 미국산 전쟁 게임에 등장한 한국군 요소를 들여다봤다. 소련이 사라진 후 주적의 자리에 올릴 여러 국가 중 하나로 북한이 선택되었고, 그리하여 한국군 혹은 한국군과 연관 있는 요소가 묘사되는 경우들이다. 대부분은 중요한 이해의 대상이 된다기보다는 유닛의 일종으로서 기능한다. 김상민, 「미국 문화에 나타난 한국이미지: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디지털 게임을 중심으로」, 인문과학연구논총 35권, 인문과학연구소, 2014. 04년 ‘고스트 리콘 2’의 주적은 쿠데타를 일으킨 북한 내 강경파 군부를 제거하기 위해 미군이 침투하는 내용이다. 05년 ‘스플린터 셀: 혼돈 이론’은 같은 전쟁, 즉 2차 한국 전쟁을 다룬다. 그래서 서울과 평양을 비롯한 한반도의 도시가 스테이지로 주어지는데, 북한과 북한군의 묘사는 중국풍이 많이 느껴지고, 스토리상 남북한의 전쟁을 일본의 한 극우 관료가 이간책으로 조장했다는 내용은 오히려 남북한을 서사의 중심에서 탈락시켰다. 현수막과 간판에 적힌 어색한 한국어 단어는 악명이 높다. 07년 ‘로그 워리어’는 원작 소설의 베트남을 북한으로 억지로 바꿨고, 북한의 미국 침공을 다룬 11년의 ‘홈프론트’는 발전된 몰이해를 보여줬다. ‘홈프론트’의 북한은 냉전 시대의 소련을 대체하는 역할이고, 대한민국은 북한의 팽창 정책에 희생당하는 역할이어서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홈프론트의 최초 기획은 중국이 북한, 나아가 남한까지 손에 넣고 일본과 호주를 넘어 미국까지 도달하였기에, 향토 방어(homefront)에 나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배급사의 우려에 이를 북한으로 바꾸는 바람에 핍진성을 하나도 획득하지 못한 게임이 되어버렸다. 중국을 억지로 북한으로 바꾸다 보니 적군의 무기 체계에 관한 고증은 물론이고, 통일을 이룩하고 정복전쟁에 나선 북한의 정식 국호 등의 디테일한 설정에 불명확한 구멍이 많다. 몰이해의 이유 중에는 가상 전장으로 쓰기 좋기 때문에 그 역할만 하면 된다는 식의 납작한 인식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이 몰이해의 이면에는 역으로 한국군의 전투력에 대해, 마치 화랑의 군 복무 내용과 같이 고평가하는 측면이 존재한다. 11년의 ‘소콤 4’에는 한국군의 707 부대원들이 주요 캐릭터로 등장한다. ‘소콤 4’의 707 특임대 소속, 박윤희. 내란을 겪은 후의 한국에서 707 부대는 조금 다르게 다가오지만, 일단 한국군의 유력 특수부대로의 위상이 보이는 캐릭터다. 유능한 군인으로서의 한국군 이미지는 레인보우 식스 시리즈에서는 거의 모든 작품에 등장하는 707 부대원은 물론이고, 12년의 ‘메달 오브 아너: 워파이터’에서 기용할 수 있는 한국군 UDT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에서는 한국군이 은근히 등장하지 않고, 14년의 ‘콜 오브 듀티: 어드밴스드 워페어’에서 주요 적군으로 북한군이 등장하는 정도였다가, 26년 10월에 출시 예정인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4’에서 2차 한국 전쟁을 다루면서 한국군은 물론이고 한국 도시의 거리가 상당한 고증 수준으로 등장한다. 모던 워페어4는 굉장히 오랜만에 등장한 한국군 관련 전쟁 게임이라는 특징 외에도, 캐릭터 모델링 역시 인종 특성을 꽤 반영하여, 비 한국인 인종 인물과 확연히 구분이 된다. 이는 몰이해에 기반했거나 몰이해의 흔적이 보이는, 장기판과 장기말 정도로 인식되던 이전의 한국군 등장에 비해 진일보한 것이다. 상당한 핍진성을 가진 간판이 눈에 띈다. 어쩌면 ‘오버워치’의 D.Va , 송하나 또한 한국군 계열의 캐릭터로 볼 수 있겠다. 메카닉 부대가 창설되고, 전투에서 메카닉 장비를 가장 잘 사용할 수 있는 인재가 필요했고, 그래서 메카닉 전투 게임에서 두각을 나타낸 프로게이머를 징집해 군인으로 삼았다는 설정에는 분명 그런 흔적이 있다. 그리고 동시에 송하나의 캐릭터는 또 다른 한국의 코드, 게임과 IT를 비롯한 첨단성을 보여준다. 군인 신분이라는 설정으로 군대 요소를, 프로 게이머 출신과 메카닉 파일럿이라는 보직으로 첨단성 요소를 띄는 송하나 D.Va . 사회에서는 연예인처럼 활동한다는 설정은 아이돌 산업의 요소도 있어 보인다. 첨단의 도시 문명 시리즈에서 한국 문명에 붙어나오는 특성이 대부분 과학 기술 쪽인 것은, 단순히 세종의 역사적 행적 때문만은 아니다. 깔끔하게 정비된 도시, 빠르게 보급된 대중 인터넷, 도시 곳곳에서 활용되는 각종 기계, 집단 주거 시설인 아파트가 가장 효율적이고 안전한 주거 시설인 나라. 기술에 행정과 치안까지 결합되어야 가능한 상황에, 최신 매체인 게임에서 상위권을 휩쓰는 한국 선수들과 그들을 길러낸 PC방 같은 문화들이 이 이미지를 만들었다. 송하나 캐릭터만큼이나 이런 요소들을 하나에 담아내는 이미지는, 고층 건물이 빽빽하고 온갖 간판과 행인으로 가득한 야간의 대도시 거리다. 이는 사이버 펑크에서 애용하는 이미지가 되어 ‘사이버 펑크 2077’의 거리에서 한국어 간판이 등장하는 식으로도 사용된다. 간단히 압축하면 서울이고, 특히 강남이다. 서울은 비슷한 메갈로폴리스인 뉴욕과는 다른 선택지를 거쳐 비슷해졌다. 뉴욕의 반 정도 크기에 인구밀도는 6배가 되는 도시인지라, 서울은 용적률을 늘리는 방식으로 택했다. 높은 용적률과 인구밀도로 얻는 압도적인 유동 인구로 인해, 서울 혹은 서울과 유사한 대도시의 업장은 행인에 대한 홍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간판이 필요한 수많은 업장이 높은 용적률 공간을 가득 메우고, 그래서 건물의 외관에는 그 모든 업장의 간판이 무수히 붙는다. 여기에 광고용 간판이 추가된다. 간판 투성이의 크고 작은 건물이 연속되는 모습이 자본주의 도시 서울의 풍경이다. 이 도시는 24시간 잠들지 않는 불야성이다. 때문에 3단 점프를 액션의 기본으로 삼은, 17년작 ‘에이전트 오브 메이헴’은 근미래의 서울을 게임의 공간으로 삼았다. 게임에서 가장 많이 수행하는 동작은 여러 간판이 붙은 건물을 뛰어넘고 기어오르는 것이다. 비록 게임 자체의 기술력과 기획력 부족으로 인해 작중의 서울은 유동 인구가 보이지 않는 텅 빈 도시가 되었지만, 그런 도시를 달리고 뛰어오르는 액션은 뉴욕 시내에서 웹스윙을 하는 스파이더맨 게임의 체험과 본질은 같다. 잠들지 않는 도시에서의 질주다. 압축되었으면서도 메갈로폴리스인 사이버 펑크 대도시이면서도 전근대 건축물을 품고 있는 이 특성이 제작진의 구미를 당겼을 것 같다. ‘세인츠 로우: 더 서드’의 책임디자이너 스콧 필립스는 강남스타일의 뮤직비디오를 이 시리즈가 추구하는 톤과 비슷하다는 발언을 했다. 자본주의가 전제되어야 하는 첨단 도시의 불야성 이미지는, 그래서 오버워치와 에이전트 오브 메이헴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닥다닥 붙은 한글 간판의 형태는 97년의 슈팅 게임 ‘아인핸더’의 배경에서도 찾을 수 있고, 08년의 ‘GTA 4’에도 등장한다. 이미 사이버 펑크스러운 야경을 배경으로 쓸 때, 한국어 간판이 활용되는 경우가 97년에 있었다. ( 출처 ) 우리 입장의 시도 지금껏 열거한 세 가지가 아마도 한국의 이미지 중 게임에서 구현된 가장 큰 덩어리일 것이다. 물론 다른 장르의 예술 매체에서도 저 셋은 유효해 보인다. 그런데 이쯤에서 다시 최초의 질문, 정재훈 기자의 ‘우리는 아직 모르지 않나?’라는 질문을 다시 소환해 끼워넣어보자.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온다. 과연 저 셋뿐일까? 혹은, 우리는 저 셋만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한국의 게임은 한국을 어떤 식으로 담아내길 원할까? 가장 자주 관찰되는 욕망은, 역시 한국이라는 공간을 게임 공간으로 그대로 사용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03년의 레이싱 게임 ‘시티레이서’와 06년의 레이싱 게임 ‘레이시티’는 당시의 서울을 게임 내에 구현하여 트랙으로 사용했다. 14년의 ‘클로저스’ 역시 서울을 비롯한 한국 곳곳의 거리를, 간판까지 그대로 구현하여 배경 이미지로 활용했다. 현재 개발 중에 있는 게임들은 더욱 과감하게 한국의 공간을 활용하려 시도한다. 클로저스의 배경으로 사용된 실제 거리를 정리한 유저도 있다. 메타버스 시뮬레이션인 ‘인조이’는 현재 세 개의 공간이 공개가 되었는데, 도원의 경우엔 서울 강남구를 모델로 하여 사실상 삼성동의 지리를 그대로 구현한 형태를 하고 있다. ‘낙원: Last Paradise’는 폐허가 된 여의도와 종로의 구현이 발표된 상태로, 탑골공원과 낙원상가가 게임 공간으로 쓰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펄어비스에서 개발 중인 ‘도깨비’ 역시 한국의 현재 공간을 게임 공간으로 옮겨놓으려 한다. 트레일러에서 보여준 흰고래 마을은 부산의 흰여울문화마을을 기반으로 만든 공간이다. 같은 시도를 하고 있는 ‘프로젝트 류’라는 오픈월드 RPG 개발 프로젝트도 있다. 현재의 한국 외에 과거의 한국을 소재로 하는 시도도 존재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이 가상의 조선에서 좀비를 등장시키는 설정으로 글로벌 히트를 친 경험, 그리고 이 드라마에 등장한 ‘cool hats’, 즉 갓, 전립 등의 각종 모자에 대한 열광은 중요한 힌트를 제공해주었다. 역사적 요소도 어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선비라는 코드는 중국의 협객과 일본의 사무라이처럼 스테레오 타입으로의 전환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한국의 과거 코드를 역사물이 아닌 게임에서 반영하기 좋은 장르는 역시 판타지다. 그래서 ‘검은사막’은 2023년에 진행된 ‘아침의 나라’ 업데이트를 통해 한국의 전통 요소를 디자인과 게임 플레이에 대거 도입했다. 그 결과 한양 육조거리와 궁궐이 게임 공간으로 들어왔다. 이 분야에서의 최근 도전은 개발 중인 ‘우치 더 웨이페어러’와 ‘프로젝트 윈드리스’가 있다. 전우치를 주인공으로 한 ‘우치 더 웨이페어러’는, 현재 얼리억세스 단계인 인디 게임 ‘전우치’와 혼동될 수 있지만, 훨씬 규모가 크다. 특히 트레일러로 미루어 보면, 도사인 전우치를 통해 한국의 과거 유교, 불교, 도교, 무속이 중심 요소로 등장할 것이 확실하다. ‘프로젝트 윈드리스’는 소설가 이영도의 ‘눈물을 마시는 새’의 세계 설정을 가져와 제작 중인 게임이다. 이 설정 속에는 한국의 전통 문화에서 따온 요소가 가득하다. 도깨비라는 종족, 씨름이라는 스포츠, 한국식 궁술 등등. 과거 요소를 구현하기 위한 장르는 역사 아니면 판타지다. 이 계통에서의 다음 힌트는 이 두 게임의 결과물이 서로 다른 지점에서 보여주게 될 것이다. 정재훈 기자의 지적에 따르면 완성도가 성공 여부를 결정하겠지만, 힌트로서의 기능은 완성도와 별개로도 발휘될 것이다. ‘우치 더 웨이페어러’는 도사, 무당과 같은 전통 오컬트 요소가 중심이다. 이영도의 ‘새 시리즈’ 세계 속 도깨비를 비롯한 여러 요소가 글로벌 유저에게 어떻게 설명되고 이해될지가 기대되는 지점이다. 자신을 규정할 권한은 타인에게도 있지만 자기 자신에게도 있는 것이 당연하다. 한국의 게임 창작자들은 한국의 현재와 과거에서 이런저런 요소를 찾아내고 있다. 이 요소들이 게임으로서 재배치된 후에, 한국 바깥의 사람들은 게임을 통해 어떤 이해와 오해를 하게 될 것인지가 중요하다. 그것 자체가 힌트이며, 동시에 그 이해와 오해를 거쳐 바깥에서 인식한 한국이 다시 그들의 게임 속에 담겨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그들의 인식이 김갑환, 북한과의 전쟁, 강남 빌딩과는 또 다른 부분에 이르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 다른 우리를 게임을 통해 체험하게 해줄 것이다. Tags: 게임 속 한국, 한국 재현, K-컬처, 김갑환, 태권도, 오버워치 D.Va, 검은사막, Korea in Video Games, Korean Representation in Games, K-Culture, Seoul in Game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 죄책감 3부작의 죄책감은 어떻게 발현되는가

    한국의 게임개발자 somi는 자신의 작품 중 ‘레플리카’, ‘리갈 던전’, ‘더 웨이크’ 세 작품을 묶어 스스로 ‘죄책감 삼부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일련의 시리즈로 보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 세 작품에는 이들을 관통하는 공통적인 일련의 의도가 들어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somi는 자신의 게임을 통해 스스로 밝혔듯이 일련의 메시지를 게임이라는 매체의 방법론으로 표현하고자 했고, 하나의 시리즈로 명명된 그의 작품들 속에서 우리는 한 작가의 의도와 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얻는다. < Back 죄책감 3부작의 죄책감은 어떻게 발현되는가 12 GG Vol. 23. 6. 14. 한국의 게임개발자 somi는 자신의 작품 중 ‘레플리카’, ‘리갈 던전’, ‘더 웨이크’ 세 작품을 묶어 스스로 ‘죄책감 삼부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일련의 시리즈로 보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 세 작품에는 이들을 관통하는 공통적인 일련의 의도가 들어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somi는 자신의 게임을 통해 스스로 밝혔듯이 일련의 메시지를 게임이라는 매체의 방법론으로 표현하고자 했고, 하나의 시리즈로 명명된 그의 작품들 속에서 우리는 한 작가의 의도와 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얻는다. 죄책감이라는, 작가가 스스로 자신의 세 작품을 묶어낸 키워드는 무엇을 어떻게 가리키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단서다. 3부작 중 가장 먼저 출시된 ‘레플리카’는 포스트모템에서 작가가 직접 밝힌 바로는 2017년의 탄핵정국 속에 게임 디자인의 방향이 바뀐 경우다. 본래 타인의 신분을 훔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소설에서 모티프를 가져오려 시작했던 게임기획은 탄핵정국을 맞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자신의 상황을 생각한 작가의 입장에 따라 국가기관에 의해 테러범으로 몰린 두 학생이 서로 분리된 감옥에서 상대방의 스마트폰을 통해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으로 바뀌었다. ‘레플리카’의 기본 구조는 스마트폰 인터페이스를 활용한다. 오늘날의 스마트폰은 경우에 따라서는 신체 그 이상으로 자아를 대변하는 기기다. 타인의 스마트폰을 열어 가며 보게 되는 정보는 그래서 진실로 여겨지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이조차도 조작될 수 있는 무언가이기도 하다. ‘레플리카’는 정보를 담고 있는 스마트폰의 내부를 추적해 나가며 조금씩 사건의 진상을 향해 나가는 구조를 취한다. ‘레플리카’에서의 죄책감은 포스트모템에서 작가가 언급한 것과는 별개로 게임 안에서도 그려지는데, 스마트폰을 통해 진상을 알게 된 플레이어가 자신의 생존과 석방을 위한 선택을 마주하는 순간에서다. 시놉티콘 체계 안에서 서로가 서로의 감시자가 되고 때로는 자신을 위해 정보와 진실을 조작하는 현장에 대한 고발이 게임제작자가 현실에 아무 행동을 하지 못하는 죄책감의 발로였다면, 제작자가 만든 상황 속의 게이머 혹은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선택하고 맞이하는 여러 결과들은 만들어진 구조 안에서 작동하는 형태로서의 체험 가능한 죄책감이다. ‘레플리카’의 죄책감은 이렇게 작가로서의 입장과 플레이어로성 입장 두 가지를 모두 담고 있으며, 플레이어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둘 모두를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형식은 두 번째 작품 ‘리갈 던전’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다뤄진다. ‘리갈 던전’은 사회에서 벌어지는 실제 행위가 형사법이라는 체계 안에서 범죄로 재구성되는 과정을 경찰의 조서작성이라는 방식으로 풀어내고자 한 게임이었다. 전작에서 스마트폰 인터페이스를 다루며 감춰진 정보를 파헤쳐야 했던 플레이어는 ‘리갈 던전’에서는 좀더 정답이 없어 보이는 경찰 심문 조서를 꾸며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리갈 던전’의 조서 작성은 실재하는 행위를 법의 테두리 안에 넣는 과정을 다루면서 현실의 행위와 법적 관점 안에서의 행위가 달라지는 과정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 차이는 특히 조서를 작성하여 실제로 범죄유무를 결정하는 경찰이라는 존재가 사실 객관적이기 어렵다는 상황을 포함함으로써 죄책감의 문제에 도달한다.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는 끊임없이 실적이 점수화하는 경찰조직의 문제를 마주하며, 연말이 다가올수록 실적을 채워야 하는 위기상황은 점점 고조된다. 범죄를 구성하는 일의 결과가 결국 자신의 성과와 연결된다는 사실은 조서 작성을 업무로 둔 경찰관으로서의 플레이어에게 일련의 죄책감을 경험케 만든다. 3부작의 마지막임을 천명한 ‘더 웨이크’에서는 앞선 두 작품과 달리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의 죄책감보다는 개인의 내면에 자리잡는 죄책감의 의미에 더 무게를 둔다. 혼수상태에서 막 깨어난 주인공은 암호화된 자신의 일기장을 꺼내 해독하여 들춰보며 자신이 자신의 아버지와 어떤 관계였는지를 반추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가족과 맺었던 외면적인 관계와 내면적인 마음 사이에 벌어진 차이만큼의 죄책감을 겪게 된다. ‘더 웨이크’ 또한 다른 두 작품과 마찬가지로 가리워진 진실을 향해 퍼즐을 풀어가는 과정을 플레이어로 하여금 겪게 만들고, 결론적으로 그 과정 속에서 마주하는 사실들로 하여금 플레이어에게 일련의 죄책감을 전달하는 구조를 유지한다. 죄책감 3부작을 이야기함에 있어 먼저 짚어야 할 것은 마지막 3부작의 아쉬움이다. 앞선 두 작품과 달리 3부작은 다소 이질적인데, 이는 단지 게임이 다루는 주제가 내면의 문제에 국한되어서가 아니라 게임이 활용하는 퍼즐의 방식이 주제와 동떨어져 따로 돌아간다는 점에서다. ‘레플리카’는 이제는 신체를 능가하는 주체가 되어버린 타인의 스마트폰이라는 환경으로부터 시작한다. 가장 기본적인 스마트폰 비밀번호를 풀어가는 것부터 시작해 담겨진 정보를 하나하나 풀어가는 과정 자체가 곧 진실 탐구의 여정이 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리갈 던전’이 ‘던전’이라는 이름으로 그려냈던 장면 또한 법과 현실이라는 두 존재가 서로 마주치며 현실이 법의 구멍에 맞추어 깎여나가는 순간을 조서작성이라는 방식으로 연출함으로써 성과제 기반의 관료제라는 주제와 객관적인 듯 보이지만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 경찰에 의한 조서작성이라는 방식이 같은 방향을 지향할 수 있었다. ‘더 웨이크’에서는 그러나 퍼즐과 주제가 분리되어버린다. 에니그마를 연상시키는 치환암호 체계는 다른 두 작품과 달리 굳이 일기장이 그래야 할 강한 설득력을 제공하지 못하며, 퍼즐을 푸는 방식 자체만으로는 ‘레플리카’나 ‘리갈 던전’처럼 어떤 대상을 그려내지 못하고 만다. 3부작을 이야기함에 있어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아쉬움을 접어두고 다시 돌아본다면 이 3부작이 다루는 죄책감이 드러나는 방식에서의 공통점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바로 진실이라는 대상이다. 세 작품 모두 현재로서는 베일에 싸인 어떤 진실이라는 대상을 향해 플레이어를 움직이게끔 하지만, 그 진실로 가는 길로서의 퍼즐은 내가 도달한 진실을 믿게 만들기보다는 진실이 숨겨지고 조작되는 현실 자체를 반추하게 만든다. 친구의 스마트폰을 해킹해 자신과 친구가 왜 공권력에 의해 갇혀 있는지를 파악하는 과정 자체에 ‘레플리카’의 중심이 자리한다. 실제로 엔딩은 경우에 따라서는 영원이 갇힐 수도, 혹은 혁명적인 결론을 향할 수도 있지만, 어느 방향을 타더라도 문제없는 플레이가 된다는 것은 이 게임을 통해 전달되는 죄책감이 어떤 고정된 결론을 다루는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리갈 던전’에서도 이른바 진엔딩이라 할 루트는 존재하지만, 굳이 게임이 제시한 서사를 따라가지 않더라도 우리는 성과 기반의 관료제가 어떻게 사회적 행위를 범죄로 재구성하는지를 이해하게 되며, 이를 이해하는 순간부터의 플레이에서 죄책감이 발현되는 구조다. ‘더 웨이크’는 다른 두 작품과 달리 암호화된 일기장 자체는 그 해독과정 자체만으로 의미있는 연출이 되기보다는 일련의 장치로만 활용되면서 다른 두 작품과 다른, 제시되는 텍스트를 중심으로 한 주제 연출을 선보였다. 이 때의 죄책감은 우리가 ‘진실’이라고 여겼던 것이 실제 진실인지 아닌지와 무관하다. 죄책감은 그저 반추하는 일 자체로부터 비롯된다. 현실을 지금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는 이 현실이 나타나기까지 어떤 메커니즘이 그 배경과 맥락에 있는지를 생각하고 살피는 과정의 결과물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 죄책감 3부작의 죄책감이다. 서두에 이야기한 바 대로, 작가로서의 somi가 존재하는 현실 앞에서 무력한 자신을 책망하며 게임을 만들었던 그 의도 그대로가 어찌보면 게임의 규칙을 통해 다시 발현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Tags: 소미, somi, 레플리카, 리갈던전, 더웨이크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게임 디자이너, 수익모델의 변화 앞에서

    결국 온라인 게임의 수익 모델이 부분유료화로 귀결되는 것은 필연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부분유료화로 뭉뚱그려 취급되는 과금 모델 내에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 Back 게임 디자이너, 수익모델의 변화 앞에서 04 GG Vol. 22. 2. 10. 어떤 게임 디자이너의 시작 때는 바야흐로 스타크래프트와 리니지의 투탑이 한국 게임 시장을 견인하던 시기. 인터넷의 대중화와 더불어 두 게임이 워낙 잘나가고 있을 때이므로, 한국의 다른 게임 개발사들도 이 둘을 벤치마크하여 기회를 엿보곤 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대다수 개발사들은 단품으로 팔 때에만 매출이 발생할 뿐 이후에는 별도의 비용을 받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서비스를 유지해줘야하는 RTS, 즉 스타크래프트보다는 리니지처럼 월정액제를 통해 꾸준히 매출을 올릴 수 있는 mmorpg를 대체로 선호했고, 나 또한 그런 mmorpg를 서비스 중인 회사들 중 하나에 게임 디자이너 (게임 기획자)로 입사했다. 오래 하는 게임 만들기 당연하지만 같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들도 서로 바라는게 매우 다르다. 각자 다른 취향의 플레이어들을 만족시키려는 노력은 다양한 시도들을 하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한 가지 공통된 점은 유지해야만 했다.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자주 찾고 오래 플레이하도록 만들 것’ . 온라인 게임 이전 세대의 단품 게임들은 대체로 멋지고 훌륭한, 강력하고 기억에 남는 경험을 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얼마나 오래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느냐는 그다지 중요한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사업적 관점에서 본다면 그때의 게임은 한 번 팔면 그걸로 끝이니 플레이 타임과 매출의 관계는 데면데면한 것이었고, 따라서 그다지 비중이 높지 않았다. 그러나 온라인 게임은 다르다. 사람들이 게임에 더 오랜 기간 머물수록 더 많은 매출을 기대할 수 있다. 과금모델이 단품 판매가 아닌 월정액제이기 때문에. 한달 만에 모든걸 경험하고 돌아보지 않아도 될 게임을 만든다면 1개월치 월정액 밖에 받을 수 없다. 하지만 몇 개월, 몇 년을 플레이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만큼 더 많은 매출을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재밌는걸 만들자’라는 기본 위에, ‘오래 플레이하게 한다’라는 요소가 중요하게 고려된다. 지금도 일반적으로 mmorpg들은 수십 시간에서 수백 시간, 때로 수천 시간까지도 플레이하는걸 전제로 한다. 가능하다면 평생 게임을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으로. 그렇다면 일종의 ‘가성비’를 찾아볼 수 있게 된다. 가격 대 성능비. 여기서 가격이란 ‘개발에 소요되는 비용’이다. 성능은? ‘플레이어가 얼마나 오랜기간 게임을 플레이하느냐’하는 것이다. 요약하면 이런 식이다 “얼마나 적은 비용을 들여 만든 컨텐츠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랜 시간을 플레이하게 만들었는가?” 이것이 월정액제 시대에 만들어지던 게임에 대해 주어지던 가장 중요한 질문들 중 하나이다. 그렇게, ‘주어진 시간과 비용 내에 만들어진 컨텐츠로 최대의 플레이타임’을 달성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채택된 방법은 게임에 단순 반복적 플레이, 즉 ‘노가다’를 많이 넣는 것이었다. 물론 일부러 지루한 컨텐츠를 만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같은 컨텐츠를 만들더라도 언제나 ‘가능한한 오래 플레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캐릭터의 게임과 플레이어의 게임 이게 가능한 이유는 mmorpg가 플레이어의 게임이기보다는 캐릭터의 게임이기 때문이다. 게임의 승패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아주 큰 범주에서 두 가지로 나눠보자면, 플레이어의 실력이 좋아서 승리하는 게임과 캐릭터에 쏟은 시간이 더 많아서 승리하는 게임으로 나눌 수 있다. 편의상 전자를 플레이어의 게임, 후자를 캐릭터의 게임이라고 하겠다. 플레이어 게임에서 소위 말하는 ‘재능충’은 10시간의 플레이만으로도 남들에 비해 월등한 솜씨를 자랑하게 되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100시간을 플레이해도 아주 조금 발전하는데 크치고 만다. 그러나 캐릭터의 게임에서는 노력의 효율이 대체로 모두에게 비슷하다. 같은 시간을 플레이한다고 할 때, 남들은 50레벨까지 키웠는데 혼자만 100레벨로 키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모든 게임이 무 자르듯 플레이어의 게임과 캐릭터의 게임으로 깔끔하게 나뉘는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대부분의 게임들은 플레이어의 게임과 캐릭터의 게임 중간 어딘가에 있다. 그러나 두드러지게 플레이어 게임의 비중이 매우 높은 장르가 있는데 대전격투 게임, FPS, RTS 등이 여기에 속한다. 반대로 캐릭터 게임의 비중이 아주 높은 대표적인 장르가 mmorpg이다. 플레이어의 게임은 승리했다는 사실 자체가 플레이어에게 보상이 된다. 나의 실력이 이정도나 대단해! 또는 이 어려운걸 해냈어! 라는 기쁨이 게임을 더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캐릭터의 게임은 그렇지 않다. 캐릭터의 게임에서 주어지는 장애물들의 난이도는 일반적으로 시간을 많이 들인다면 누구나 성취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다. 그리고 장애물을 극복하면 게임 내에서 아이템, 경험치 등 뭔가가 주어진다. 아이템과 경험치에 부여된 일련의 ‘숫자’들은 내 캐릭터를 강하게 만들어주고, 그렇게 아이템과 경험치를 모아 점점 더 강해진다. 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라는 기분이 캐릭터 게임을 지속하게 하는 주된 동기부여 장치이다. 플레이어의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플레이어 본인이 연습을 통해 자신의 실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캐릭터의 게임은 시간을 들여 과제를 해결하고 그 결과 주어지는 보상을 통해 캐릭터를 강하게 만들면 된다. 캐릭터 게임의 대표적 장르인 mmorpg에서, 플레이어는 ‘강해졌다’라는 느낌을 즐긴다. 그리고 그런 느낌은 게임 내에서 ‘보상’의 형태를 통해 제공된다. 단순반복 플레이가 지루하다면 플레이어가 캐릭터의 게임을 지속해야 할 동기는 어디에 있는가? 그건 노가다의 끝부분에 배치된 보상 때문이다. 다소 지루한 플레이를 일정정도 마치고 나면 얻게될 보상. 그 보상을 통해 내 캐릭터는 더 강해질 것이라는 기대감. 이런 메커니즘이 가장 많이 쓰인 장르들 중 하나가 mmorpg이다. 앞서 말한대로,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 대비 매출의 관계는 결국 mmorpg 만들기를 ‘얼마나 노가다를 더 잘 만드느냐’의 문제로 바꾸었다. 더 잘 만들어진 노가다란 대체로 플레이어가 게임이 지겨워 떠나가기 직전까지 단순반복 플레이를 시켜 시간을 끌다가,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멋지고 근사한 보상을 획득케함으로써 다시 게임을 지속할 의지를 불태우게 만드는 것이다. 노가다가 낳은 현질 그리고 부분유료화 보상은 좋다. 그건 명백한 동기부여장치이다. 하지만 노가다는 싫다. 그래서 플레이어들은 노가다를 피할 방법을 찾아냈다. ‘돈을 주고 남에게 시키는 것’이다. 획득하기까지 지난한 시간이 걸리는 아이템이 있다면? 그걸 이미 얻은 누군가에게 돈 – 즉 현금 – 을 주고 구입하면 된다. 캐릭터를 성장시키는게 어렵다면? 누군가에게 돈을 주고 내 캐릭터를 대신 플레이하여 레벨을 올리게 한다. (부주副主. 캐릭터의 본래 주인인 본주本主 에 대비되는, 대신 키워주는 이들을 일컫던 당시의 용어) 게임 내 화폐가 더 많이 필요한데 플레이를 통해 얻을 시간이 없거나 귀찮다면 마찬가지로 현금 거래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대로 mmorpg는 ‘캐릭터의 게임’ 속성이 매우 강한 게임이고, 그렇기에 시간을 투자한만큼 강해진다. 이 시간의 대부분이 단순 반복적 플레이, 즉 노가다로 채워진다는 것은 지금까지 설명한 바와 같다. 그렇다면 강해지고 싶지만 노가다를 하고 싶지는 않다면? 사려는게 아이템이든 캐릭터이든, 돈을 주고 구입하면 된다. 당시 mmorpg에서는 지금과는 달리 모든 아이템은 거래 가능한 것이 기본이었기에 가능했던 일들이다. 다양한 게임에서 유사한 현상을 찾아볼 수 있겠지만 특히 mmorpg에서 이러한 거래는 광범하게 일어났다. 인기가 높은 게임일수록 현질 – 아이템을 현금거래를 통해 매매하는 것 – 의 빈도와 비중이 높았다. 게임 속의 아이템 또는 고레벨 캐릭터와 현금을 서로 거래하기 위해 아이템 베이를 위시한 아이템 거래 전문 사이트까지 생겨났고 한동안 상당한 성업을 이루기도 했다. 아이템 거래 사이트의 활황은 게임 개발사들에게는 꽤 배아픈 일이었다. 내가 만들고 서비스하는 게임의 아이템과 재화와 캐릭터가 다른 서비스 (아이템 거래 서비스)를 통해 거래되면서 높은 중개수수료를 먹고 있다니? 심지어 개발사에게 아무런 라이선스나 로열티에 대한 합의도 없이? 물론 ‘배가 아팠다’라고 하면 너무 저속해보이니까 회사 입장에서는 점잖게 ‘새로운 사업 기회가 열렸음을 깨닫게 되었다’라고 해야겠지만. 바로 이 ‘새로운 사업 기회’는 결국 mmorpg들이 월정액제 중심에서 부분유료화 중심으로 옮겨가게하는 계기가 되었다. 초기에는 ‘들인 시간 대비 캐릭터의 성장은 모두에게 같아야 한다’라는 유저들의 믿음으로 인해 부분유료화에 대한 저항이 매우 강했으나, 수년간에 걸친 인식 변화를 통해 지금은 ‘월정액제만으로 서비스되는 mmorpg’는 찾아보기 어려울정도로 보편화되었다. 한편, 한국 캐주얼 게임은 또 다른 이야기로 들어가기에 앞서 ‘캐주얼 게임’이라는 용어에 대해 잠시 부연하고자 한다. 명확한 조어는 아닐지언정 당시 한국 게임 시장에서 ‘mmorpg가 아닌 장르의 게임들’은 모두 ‘캐주얼 게임’으로 통칭되곤 했다. 게임 자체만 놓고 보면 전혀 캐주얼하지 않았음에도 그랬는데, 적절한 단어라는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들지 않지만 어쨌건 그것이 널리 쓰이는 용어였으므로, 이 글에서도 ‘캐주얼 게임’이라는 것은 ‘mmorpg가 아닌 다른 장르의 게임들’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하겠다. mmorpg가 한국 게임 시장에서 탄탄한 위치를 차지하고 그걸 꾸준히 유지하는동안에도, 소위 ‘국민 게임’이라 불리우는 게임들은 mmorpg가 아니었다. BnB나 카트라이더, 포트리스 블루 등이 대표적이다. 이 게임들은 모두 mmorpg와 선명히 대비되는 특징이 있다. mmorpg가 ‘캐릭터의 게임’인데 비해 이들 게임은 모두 ‘플레이어의 게임’이라는 점이다. 이런 게임들은 월정액제 도입이 어렵다. 흔히 말하는대로 ‘남는게 없’기 때문이다. 캐릭터의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게임에 투자한 시간은 게임 내의 캐릭터나 캐릭터가 장비한 아이템 등의 형태로 남는다. 그것은 이후에 다시 그 게임에 접속할 경우 내가 여전히 강력한 위치에 있을 것임을 보장해준다. 심지어 아이템 거래 사이트에 내다 팔아서 현금화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캐주얼 게임은 플레이어의 실력에 의존하는 게임이고 그렇기에 지금 내가 고수에 해당하는 실력을 가졌더라도 이후에도 그러리라는 보장이 전혀 없다. 이 장르에서 게임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게임 내의 그 무엇도 아닌 내 실력을 높이는 것이다. 결국 게임 내에 남는건 없는 셈이다. mmorpg에서 승리하기 위해 내 캐릭터가 필요하다면 그걸 이용하기 위해 플레이어들은 기꺼이 월정액을 지불한다. 하지만 캐주얼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게임 내에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 자신의 실력이다. 그렇다면 월정액을 지불할 이유도 없다. 플레이어의 게임이기에 게임에서 거둔 승리의 기쁨 등은 분명 게임을 지속하게 하는 동기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과금을 유도할 수는 없었다. 단순히 ‘재미있었다’만으로 게임이 유저들의 결제를 이끌어내기엔 부족했다. 이런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이 퀴즈퀴즈 초기의 월정액제 도입 실패 사례이다. 퀴즈퀴즈는 1999년 오픈 베타 테스트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바 있다. 초기 베타 테스트 기간이 어느정도 지나 상용화를 시도할 즈음이 되어 넥슨은 퀴즈퀴즈에 월정액제를 도입했다. 가격은 월 16,500원으로 당시 다른 게임들에 비해 낮은 편이었고, 그때는 게임 = 월정액제가 너무 자연스러웠기에 이 결정이 현명한 것이지는 못했을지언정 당시 관점에서 얼토당토 않은 수준의 이상한 결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월정액제 퀴즈퀴즈는 게이머들에게 철저히 외면받는다. 놀란 넥슨이 곧바로 가격을 인하했음에도 상황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기대 이하의 성적을 보이던 퀴즈퀴즈의 인기를 반전시킨 것은 게임 본편을 무료 플레이로 전환하되 부분유료화의 초창기 모델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부분유료화 도입 이후 퀴즈퀴즈는 상용화 이전에 보이던 인기를 회복하게 된다. 이후 “mmorpg는 월정액제, 캐주얼 게임은 부분유료화” 구도가 한동안 유지되었다. 그러면 결국은 …? 지금까지 얘기를 정리하면 이렇다. 캐릭터 게임에서 요구하는 긴 플레이 타임은 필연적으로 상당한 양의 단순 반복적 플레이를 수반하게되고, 이를 우회하려는 유저들의 니즈는 초기의 반발을 딛고 부분유료화로의 전환을 대체로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 플레이어 게임에서는 어차피 월정액제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렇기에 부분유료화가 태어났으며, 당시로서는 새로웠던 이 수익 모델은 시장에 환대받으며 안착했다. 그렇다면 결국 온라인 게임은, 캐릭터 게임이건 플레이어 게임이건 관계없이 어차피 나중엔 부분유료화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게이머로서의 나는 월정액제를 선호하는 편이다. 부분유료화가 요구하는 다양한 상품들을 살펴보고 내게 맞는 상품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필요할 때마다 잦은 빈도로 이것저것 결제한 다음에도 남들보다 내가 뭔가 손해본게 아닐까? 같은 돈을 게임에 써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걸 고민하고 가끔 후회하는게 피곤하다. 게임에만 집중할 수 있기를 바라고, 그런 측면에서 월마다 자동결제 해두고 컨텐츠에만 집중하면 되는 월정액제가 내게 맞다고 느낀다. 게임의 가장 코어한 부분까지 가서 가장 깊은 부분에 있는 핵심 컨텐츠까지 맛보기 위해 필요한 비용 또한 부담된다. 월정액제 게임에서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건 월정액 요금이 전부였다. 부분유료화 게임에서 그렇게 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은 아무리 적어도 월 수십만원인 경우가 보통이며, 많게는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이 필요한 경우조차 있다. 하지만 어쨌건 게임 디자이너이자 게임 개발자로서 나는, ‘서비스 형태의 게임이 대체로 부분유료화로 쏠리는 것’에 대해 지금까지 설명한 바와 같은 생각을 거쳐 꽤 납득하게 되었다. 잘 모르면서 어떻게든 만들던 월정액제 게임 시대 게임 개발 경험 상에서 월정액제 게임과 부분유료화 게임은 다른 점들이 꽤 있다. 월정액제 게임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고 살펴보게 되는건 동시 접속자수이다. 특히 mmorpg는 동기화 플레이가 필수적이고, 그렇기에 동시 접속자수는 매우 중요한 지표로 취급된다. 그럼 다른 수치들은? 아쉽게도 월정액제 게임을 서비스하던 시기에는 그러한, 지표에 의해 유저의 행동을 살피는 일은 흔치 않았다. 왜냐면 … 그게 가능하다는걸 몰랐기 때문이다. 당시 함께 게임을 만들던 이들은 대체로 단품으로 구성된 게임을 즐기며 성장한 이들이다. 한 번 구입해서 엔딩을 볼 때까지 플레이하는 형태의 게임들. 계속해서 서비스되는 형태의 게임에 대해 만드는 입장에서도 처음인 것들이 많았다. 아울러 이 시기는 인터넷 문화 자체가 새로운 것이었기에, 지금처럼 서비스측에서 여러 유저 지표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교차해서 살피는 일들 자체가 아직 보편화되기 전이었다. 게임의 형태 자체도 지표를 뽑아 분석하기에 까다로운 지점들이 많았다. 전술했듯 이 시기의 게임들은 많은 경우 단순반복 플레이로 메워져있고, 사람들은 그 속에서 알게된 다른 이들과 때로는 우호적인 때로는 적대적인 관계를 맺곤 했으며 그 자체가 게임이 제공하는 컨텐츠의 일부로 여겨질 때이다. ‘커뮤니티는 온라인 게임 서비스에 매우 중요한 것’이라는 말은 금과옥조로 여겨지긴 했지만, 그래서 그걸 자극하고 증진시키기 위해 어떤 일들이 가능한지를 게임 플레이에서 알수 있는 숫자만 가지고 짐작하기는 쉽지 않았다. 전세계적으로 거대한 임팩트를 던졌던 게임인 World of warcraft가 나오면서 mmorpg를 컨텐츠로 채워넣는다는 개념이 보편화되기 시작했고, 플레이어들은 노가다를 하면서 다른 이들과 교류를 즐기던 시절에서 벗어나 게임이 제공하는 여러 피쳐들을 플레이하게 되었으며, 이런 일종의 정형화된 플레이 패턴이 정립되면서 비로소 ‘분석하기에 좋은 행동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전의 mmorpg 게임들이 널따란 운동장에 축구공 몇 개 던져놓고 ‘재밌게들 노세요’하는 편이었다면, 와우는 운동장을 미끄럼틀, 시소, 그네, 정글짐, 철봉 등 다양한 놀이기구로 채워놓고 ‘뭐 하고 노실래요?’하는 식이다. 뭔가 좀 알게 된 부분유료화 게임 시대 그리고 대략 2010년 정도를 기점으로 모바일 게임 이슈가 PC 온라인 게임을 앞서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때 이후로 나온 게임들은 대부분이 와우가 제시했던 ‘컨텐츠로 가득한 놀이공간’의 개념을 따른다. 나는 와우의 임팩트가 던진 충격이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고 그게 새로 개발되는 게임에 보편화된 시점을 그 즈음으로 보고 있다. 이전 세대의 게임들에 비어 있는 공간이 많고 그 공간을 ‘커뮤니티 활동’이라 통칭되는 유저간의 상호작용이 메워주는 모양새였다면, 와우 이후에 나온 게임들은 플레이어들이 다른 플레이어에 주목하기보다는 게임 자체에 좀더 시선을 주길 원했고, 그 과정은 다양한 경로의 플레이 경로를 만들어냈고, 그 모든 플레이 경로에서 플레이어들이 하는 일들은 수치로 환산되어 관찰과 분석의 대상이 된다. 아무 것도 없는 빈 운동장에 축구공과 함께 놓여진 이들이 누군가는 축구공과 관계없이 혼자 담벼락 옆에 서있을 뿐이고 또 누구는 축구는 안하고 스탠드에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고 그 중 일부는 축구공으로 축구는 안하고 발야구를 하고 있을 때, 다들 왜 그러는지를 짐작하는건 얼추 가능하겠지만 정확한 이유를 알아내는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다양한 놀이기구로 채워진 운동장에서 그네가 시소보다 유저가 머무르는 시간이 32%가량 길다거나, 어딘가에는 줄이 너무 길어 불편함을 겪고 있다거나, 정글짐에서 유난히 부상자 발생율이 높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취해야 할 조치가 좀더 분명해진다. 이를 게임에 대입하면, 대부분의 퀘스트를 대다수의 플레이어들이 잘 수행하고 있지만 327번 퀘스트에서 유독 퀘스트 포기 확률이 15%를 넘는다면? 이 퀘스트에 뭔가 문제가 있으므로 살펴봐야 한다는 의미이다. 37레벨까지 모든 클래스의 레벨업 속도가 일정하지만 37레벨 이후부터 마법사의 성장 속도가 유난히 느려진다면? 37레벨 직후의 퀘스트나 던전 플레이에 마법사를 어렵게하는 뭔가가 있으므로 찾아서 고쳐야한다는 뜻이 된다. 이런 많은 것들을 알아내고 조치하기 위해 다양한 지표들이 개발되어 쓰인다. Organic user와 non-organic user, UV/NRU/ARU, DAU/WAU/MAU, PU/NPU/PUR, Retention Rate과 Bounce Rate, ARPPU 등등. 이들은 말하자면 게임 개발의 도구이다. 월정액제 시대에는 모호해서 분석하기 난해했던 여러 측면들을 자세히 뜯어보기 위한, 우리가 만든 게임이 어떻게 플레이되고 있는지를 자세히 살펴보기 위한 도구. 어차피 게임 개발 게임 디자이너를 포함하여 게임 개발자들은 원래가 다양한 제약과 함께 일하는 이들이다. 월정액제 시대에는 그게 동시 접속자수라는 지표와 다양하게 해석이 가능한 여러 현상들이었다면, 부분유료화 시대에는 게임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가급적 정확하게 해석하기 위해 분석 도구들이 더욱 정교해졌다. 월정액제 시대에는 플레이어들이 게임에 더 오래 머무르도록 해야한다는 제약 아래에서 일했고, 지금은 더 많은 상품을 팔면 좋다는 제약 아래에서 일한다. 둘은 언뜻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시야를 넓혀보면 결국 매출이라는 같은 목표에 다름아니다. 이왕 제약이 주어진다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더 정교한 도구와 방법을 쓸 수 있는 쪽이 더 좋다. 한때는 모바일 게임들이 다들 너무 엇비슷하다는 생각도 했었다. 내 가설은 이러했다. 먼저 수익 모델은 고정된다. 가장 검증된 모델만을 쓰는게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익 모델이 안정을 추구하면, 수익 모델에 엮인 게임 디자인도 거기에 호응해야만 한다. 둘은 너무 긴밀하게 엮여있어서 따로 다룰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게임 디자인에 변화를 줄 여지가 적어지면, 게임 자체가 다른 게임들과 엇비슷한 것만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여러 모바일 게임들을 직접 플레이해보면 모두 조금씩 다른 구석을 가지고 알고 있다는걸 알게 된다. 장르 내에서 플레이 패턴이 상당히 비슷한건 부인할 수 없겠지만, 원래가 ‘장르’라는건 비슷한 핵심 요소를 공유하는 것들끼리 모아둔 것을 칭하는 말이다. 월정액제 mmorpg들을 만들던 시기 게시판에 모여든 유저들이 입을 모아 ‘요새 mmorpg들은 어차피 다 천편일률적이지 않나요?’하는 의견이 큰 호응을 얻었던 것도 기억한다. 난 그 ‘천편일률적’이라 불리우는 게임들 중 하나를 만들면서 같은 장르 내의 다른 게임들과 차별화를 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는데. 이후의 수익 모델에 기대하는 것 결국 온라인 게임의 수익 모델이 부분유료화로 귀결되는 것은 필연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부분유료화로 뭉뚱그려 취급되는 과금 모델 내에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기초적인 치장 아이템으로부터 게임 진행에 필수적으로 여겨지는 경험치 획득 효율 향상 효과 상품까지.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 기간제 아이템이 한때는 높은 매출을 올리는 상품이었던 것도 주목할만 하다. 그리고 최근에 이 분야에서 가장 핫한 이슈는 아마도 확률형 아이템일 것이다. 그러나 확률형 아이템조차 적절한 선에서 형성된 소위 ‘천장’과 공들여 만든 캐릭터가 연계하여 컨텐츠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그 대상을 구입하게 하는 게임이 있는가하면, 더 우월한 효과를 갖기 위해 컴플리트 가챠를 완성해야하는 형태까지 자세히 살펴보면 다름이 눈에 들어온다. 전자의 경우 자신이 구입한 컨텐츠에 만족하는 경우가 많지만, 후자는 다른 이들에게 지지 않기 위해 해야하는 경우도 있다. 부분유료화 상품들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계속 변화해나가겠지만, 가능하다면 ‘구입한 후에 후회하지 않는’ 방향을 지향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이머, 디자이너) 김주용 30+년차 게이머, 20+년차 게임 디자이너. 게이밍 컬쳐 전반에 걸쳐 관심이 많습니다. 요새는 스탠드 얼론으로 게임을 시작한 오래된 세대와 멀티 플레이가 디폴트인 요즘 세대 사이의 게임을 대하는 관점 차이에 관심이 많습니다. 종종 기고나 강연에 나서기도 합니다.

  • 게이머는 난민이 될 수 있는가? - <로스트아크> 대량이주 사태와 난민의 정체성

    2021년은 한국 mmorpg 게이머들에게 대량이주의 해로 기록될 것이다. <메이플 스토리>나 <마비노기>의 경우, 아이템을 강화하는 세공도구 같은 유료아이템의 불투명한 확률 매커니즘이 문제였다. 랜덤이라고 표기되었지만 실은 옵션별 숨어있는 차등확률을 통해 랜덤확률에도 못미치는 효과를 보거나, 응당 적용되어야 할 옵션이 오류로 적용되지 않아 수년동안 0%의 확률로 실패한 뽑기를 유발한 것이 문제였다. < Back 게이머는 난민이 될 수 있는가? - <로스트아크> 대량이주 사태와 난민의 정체성 01 GG Vol. 21. 6. 10. 2021년은 한국 mmorpg 게이머들에게 대량이주의 해로 기록될 것이다. <메이플 스토리>나 <마비노기>의 경우, 아이템을 강화하는 세공도구 같은 유료아이템의 불투명한 확률 매커니즘이 문제였다. 랜덤이라고 표기되었지만 실은 옵션별 숨어있는 차등확률을 통해 랜덤확률에도 못미치는 효과를 보거나, 응당 적용되어야 할 옵션이 오류로 적용되지 않아 수년동안 0%의 확률로 실패한 뽑기를 유발한 것이 문제였다. 확률 매커니즘을 공개하고,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문제발견이 빨랐거나 유저들이 기망당했다고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유저들은 손해를 입었다고 생각해 게임사에 시정과 해명을 요구해 개발사와 각각 간담회를 열었다. 하지만 만족할만한 답변이나 조치를 받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게이머들은 대체재가 될만한 게임으로 <로스트 아크>를 지목해 올해 3월 한달동안 대량이주를 이어갔다. 한편 <리니지M>의 유저들은 핵과금 유저와 중저과금 유저들의 경쟁구도를 만들어 과금을 부추기는 게임구조를 숨기고, 유저들간의 반목처럼 보이도록 일관한 개발사에 화가 나 있었다. 이들은 과거 <리니지2>의 혈맹 간 계급투쟁이었던 <바츠 해방전쟁>을 패러디 해 <개돼지해방전쟁>으로 자신들의 저항적 행동을 명명하고 항의성 차원에서 <로스트 아크>나 <검은 사막>으로 이주해 나갔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각기 메난민(메이플스토리 난민), 마난민(마비노기 난민) 등으로 불리우며 '난민'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게임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 게임이주 운동은 제품향상이나 서비스개선을 요구하는 소비자운동의 연장선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민'이라는 명명에는 몇 가지 중요한 함의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메난민, 마난민에 비해 린난민(리니지M)보다는 린저씨가 더 자주 사용되는데, 그 이유는 리니지M 유저의 경우 난민이 겪을 고단함이나 소수자, 약자의 입장이 없을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들은 돈많은 침략자처럼 묘사되는 경향을 보였다. 여기서 대중들이 생각하는 리니지M의 게임적 정체성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다. 플레이를 숙련하기 앞서 상세한 전략을 세워 각종 아이템을 맞추고, 한정 아바타를 과감히 구입하는 플레이 습관으로 <로스트 아크>의 경제를 인플레이션 시킬 수 있다는 공포를 로아 유저들은 느꼈다고 한다. '난민'이라는 명명에는 다음과 같은 무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첫째, 이주자들은 그 스스로 하나의 가상적 종족성을 가진 존재로서, 새로운 게임환경에 적응을 해야 하는 고단함을 '난민'으로 표현하고 있다. 둘째, 이주자들이 본래 활동하던 게임공간을 가상의 고향땅으로 간주하고, 혹시라도 고향땅의 문제가 해결되면 돌아갈 준비가 되어있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난민'으로 지칭한다. 셋째, 이주 대상이 된 게임의 올드 유저들은 특정한 게임성으로 훈련된 뉴비들이 와서 자신들이 형성한 게임성을 오염시키고 변형할 지 모른다는 공포를 드러내는 단어로 '난민'이라는 명칭을 쓴다. 이 경우 '난민'은 멸칭에 가깝다. mmorpg의 게임공간은 단지 놀이적 재미만을 얻는 곳이 아니라 현실과는 또 다른 인격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곳으로 유저로 하여금 다른 어떤 장르보다 오랜 시간을 가상적 환경에서 보내며 사회적 관계를 이루도록 만든다. 그들이 특정 게임에서 형성한 게임적 습관은 제시된 게임룰을 개량하도록 개발사에 요구하고 유저들과 암묵적으로 합의해 얻은 사회적 결과다. 그들이 자신의 게임에 불만이 있다해도 바로 탈주할 수 없는 이유는, 게임공간이 여전히 유저들의 역사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적 공간에서는 매일 같이 전쟁이 벌어지고, 강제될 수밖에 없는 협력의 업무들이 있다. 물론 이들은 재미를 위해 디자인되었고, 노력이 필요하다 한들 현실의 노동에 비하면 가볍게 즐길 만하다. 적게 노력하면서 손쉽게 소속감을 얻을 수 있다. 게이머가 자신의 자부심을 특정한 게임종족으로 표출하거나 게임성을 유지하려는 욕망은 정체성의 불안과 연관을 맺는다. 현실 속의 모호함을 가상 속의 명확함으로 돌파하려는 것이다. 게임공간과 게이머의 관계는 단순한 상품과 소비자의 관계가 아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만 운영체제 안드로이드에서 iOS로 이주했다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반면 메난민, 마난민 등으로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난민'이라는 표현은 게임이라는 플랫폼이 오늘날 새로운 가상적 정체성을 발명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특정한 게임의 문화는 특정 집단의 민속적인 기록으로서 가치를 갖는다고도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들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인터넷과 게임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공간이다. 가상 민족지학(virtual ethnography)은 인터넷 공간 속의 다양한 매개를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집단과 문화적 기록에 대한 학문적 접근을 뜻하는 신조어로 점차 그 실체가 입증되어가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3월말 도입된 <로스트 아크>의 염색시스템을 소위 마난민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해 기존에 없는 새로운 플레이를 선보였다는 점이다. 그들은 아바타의 신체와 의상의 색을 바꾸는 꾸미기 플레이를 <마비노기>시절부터 익혀왔는데, 그 수준이 일반적인 갈색이나 노란색의 구분이 아니라 선호하는 색을 다크초코(#29141A)와 바나나(#FFE062)로 세분화하고, 해당 색의 색상코드(HEX)까지 암기하는 경지에 이른 자들이었다. 당연히 마난민들의 아바타 꾸미기 실력은 장인급이었고, 이들은 황금비율의 색배합을 담은 문건과 노하우를 공유하거나 다양한 예시를 보여주어 지금까지의 <로스트 아크>에서는 보지 못한 캐릭터들을 게임 내 전시하였다. 이는 염색 시스템을 이용해 꾸미기 플레이로 빠져들 가능성을 열어준 적극적인 게이밍으로 평가받을만 하다. 이 점에서 '난민'은 단순히 유입된 신규유저가 아니라 적극적인 혼종 플레이의 유발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기존에 <로스트 아크>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잠재적 플레이를 극대화시켜, 해당 게임의 게임성을 풍부하게 만든다. 그들은 이주하기 전 게임의 게임성을 새로운 게임공간 안에 이식시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마 자신들도 온전히 과거의 플레이를 모두 구현할 수 없으므로 자연스럽게 변형 굴절되면서 <로스트 아크>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중일 것이다. 다시 말해 기존 게임성을 변형시키면서 그 안으로 동화되고 있는 것이다. 인류학자 아르준 아파두라이(Arjun Appadurai)는 현대인들이 단지 이동상의 초국적 경험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 미디어에 노출되면서 이미 가상적인 초국성을 띤다고 지적한다. 현실의 민족적 정체성이라는 것이 사라지고 제멋대로 파편적으로 구성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김치를 먹으면서 유럽인의 정체성을 내재화하기도 하고, '한국적인'이라는 수식어는 점점 모호해져서 실상은 글로벌 코드에 가까운 보편성에 이르렀음을 확인하기도 한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이 임시적이라는 것을 안다. 동시에 서로 다른 정체성이 중층으로 겹쳐서 나타날 수도 있음을 이해하고 있다. 게임 속 난민이 보여준 혼종적 플레이는 인터넷 공간이 가속화하고 권유하는 혼종적 정체성의 작은 판본이다. 무엇보다 디지털공간은 현실보다 매끄럽고 장애물이 적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재난이나 박해로 인한 강제적 이주의 의미가 강한 '난민'보다 본래적으로 흩어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의 존재라는 점에서 '디아스포라'를 강조해 새로운 조어를 선택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이른바 사이버 디아스포라(Cyber Diasporas)라는 개념이다. 사이버 디아스포라의 주인공인 우리들은 정체성이 모호하거나 없는 자들이 아니라 이 곳 저 곳을 매끄럽게 여행하며, 다종의 정체성을 획득하고 혼용하는 존재들이다. 지난 3월 20일 공연한 다원예술작품 <에란겔: 다크투어>에서는 배틀로얄 게임 <배틀그라운드>의 커스텀 게임을 이용해 게임공간을 기존 플레이 방식과 다르게 전유하는 실험을 했다. 사전에 신청한 일반관람객들을 에란겔 섬 세 곳(스쿨, 갓카, 밀타파워)을 지정해 모이게 하고, 그들이 그 안에서 다양한 형식의 게임비평을 듣게 해 교감하는 것이 전반부의 내용이었다. 그 중 스쿨에서 열린 권보연(게임씽킹 디자이너)-장병호(문화연구자)의 스크립트의 한 대목을 소개해본다. "플레이어란 현실과 가상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플레이하고 접속하면서 자기존재를 증명해요. 나는 그것을 착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도 배틀그라운드가 전쟁게임이고 내가 살아남으려면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놀이를 해야한다는 것은 알고 왔어요. 하지만 내가 동숲러 '뽀'로서 이곳에 왔다는 사실은 내가 누군가를 죽이러 선택해 온 것이 아니라는 뜻이예요. 나는 이 곳 배틀그라운드에 내가 좋아하는 것이 많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여기 와보고 싶었죠. 아름다운 자연, 멋진 건물, 신기한 아이템. 그리고 귀여운 춤도 마음껏 출 수 있다고요. 배틀그라운드에서는 총에 맞아 죽는 것만 빼면 내가 동물의 숲에서부터 좋아했던 것들을 다 할 수 있고 즐길 수 있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NZUGs-uYmMA ‹에란겔: 다크 투어› #2 .이주민(권보연)/삼선동 주민(장병호) (c)가상정거장) 연사들은 <동물의 숲>의 유저였지만 <배틀그라운드> 에란겔 섬에 자기 발로 왔다고 말한다. 동시에 이 곳의 룰을 이해하고 존중하지만 한편 다르게 사용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그들은 에란겔 섬을 마치 동물의 숲처럼 뛰어다니고, 탐색하는 게임공간으로 만들자고 제의한다. 이 뻔뻔함은 이들이 쫓겨온 난민보다는 자발적 디아스포라처럼 보이게 한다. 약간의 풍자적 유머를 담은 이 씬은 우리 시대의 게이머가 보다 더 적극적인 디아스포라로 전향되었을 때, 오히려 게임공간이 더 많은 가능성으로 해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2021년 대한민국의 게임 난민들은 스스로 자신이 거주한 게임공간에 이의를 제기하고 뛰쳐나왔다. 그리고 이주해 온 땅에 기꺼이 스며들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필자는 게이머가 게임성을 바꾸는 혁명적인 사건의 시작으로 이 사태가 기록되길 바래본다. 이러한 경험이 중요한 이유는 단지 조금 더 공정하게 게임의 룰을 바꾸는 것 뿐 아니라 자신이 가담하고 있는 세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시뮬레이션으로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길어내는 공간이 게임이라면 이 공간에서부터 개길 수 있어야 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오영진 2015년부터 한양대학교 에리카 교과목 [소프트웨어와 인문비평]을 개발하고 [기계비평]의 기획자로 활동해 왔다. 컴퓨터게임과 웹툰, 소셜 네트워크 등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문화의 미학과 정치성을 연구하고 있다. 시리아난민을 소재로 한 웹반응형 인터랙티브 스토리 〈햇살 아래서〉(2018)의 공동개발자이다. 가상세계에서 비극적 사건의 장소를 체험하는 다크투어리즘 〈에란겔: 다크투어〉(2021.03.20-21)와 학술대회 [SF와 지정학적 미학] 연계 메타버스 〈끝나지 않는 항해〉(2012.06~19)를 연출했다.

  • 마블 스파이더맨 2, 코믹스의 그늘을 벗어나 자신의 서사를 하는 방법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답할 수 있는 방법은 너무나 많다. 그건 방법론도 다양해서 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제대로 된 독자를 설정하지 못하면 어떤 좋은 이야기라도 먹히지 않을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스티븐 킹은 이야기를 쓰기 전에 가상의 독자를 설정하기를 당부했다. 그리고 매번 그의 가상의 독자 역할을 맡아준건 그의 부인, 태비사 킹이었다. 비록 그런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떤 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달할 것인가, 하는 고민은 좋은 이야기에서는 필수적인 고민이다. < Back 마블 스파이더맨 2, 코믹스의 그늘을 벗어나 자신의 서사를 하는 방법 15 GG Vol. 23. 12. 10. 요즈음의 콘텐츠는 독립적이지 않다 . 모든 콘텐츠는 유기적이고 , 서로 다른 매체 , 서로 다른 차원에서 가지를 치고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낸다 . 하나의 기원에서 출발하더라도 어느 순간 돌아보면 수많은 매체에서 저마다 다른 과실을 맺어내는 미디어 프랜차이즈는 모든 창작물이 지향하는 바가 되었다 . 비디오 게임과 관련된 수많은 프랜차이즈들도 여러 방면으로 확장을 시도해왔다 . 영화에서 시작해 이미 코믹스 , 소설 , 애니메이션이 계속 쏟아져 나온 ‘ 스타워즈 ’ 는 게임 쪽에서도 루카스아츠의 작품들을 위시해 꽤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 ‘ 헤일로 ’ 는 반대로 게임에서 영상물 , 소설 , 코믹스로 뻗어나간 사례다 . 이런 흐름은 슈퍼히어로 파생 작품들도 시작지점만 다를 뿐 유사하다 . 하지만 슈퍼히어로 창작물들은 어떤 면에서 다른 작품들과 큰 차이를 보이는데 , 바로 캐넌 , 정사의 기준이 매우 느슨하다는 점이다 . 미국의 코믹스는 하나의 정사가 아니라 , 수많은 비사들의 집합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 제작사 , 제작자 쪽에서 캐넌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 코믹스는 개별 이슈가 서로 다른 설정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하나의 공인된 정사를 중심으로 돌아가기보다는 수많은 비사 중에서 인기가 많고 , 가장 퀄리티가 좋은 것들이 선택을 받아 이어나가는 식의 구조를 띈다 . 때문에 유독 코믹스 기반의 파생 작품들은 독자적인 서사를 만드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는 했다 . 코믹스의 감각을 그대로 이어가던 많은 창작물들이 혹평을 받고나서야 사람들은 ‘ 코믹스는 생각보다 대중적이지 않다 ’ 는 사실을 깨달았다 . 원작 코믹스 팬들의 기준으로 만들게 되면 , 지나치게 유치하거나 아무리 원작 설정이라지만 선을 넘는게 있었던 것 . 슈퍼히어로 기반의 최고의 프랜차이즈였던 MCU 가 최근 부진한 이유도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여기서도 찾을 수 있다 . 스칼렛 위치를 위시한 캐릭터들의 코스튬이 점점 원작을 닮아가고 , 설정만 믿고 배경서사를 생략하거나 , 인물 간의 관계를 대충 그리거나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 . 그러다보니 중심 서사도 재미가 없어지고 , 또는 관객이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 특히 멀티버스의 적극적인 채용은 그런 이른바 ‘ 뇌절 ’ 의 끝으로 가 , 모든 이슈와 관련 설정을 다른 차원의 이야기 , 그저 멀티버스라는 식으로 사건의 근원과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서 더더욱 성의없는 이야기처럼 보이게 했다 . * 스파이더 토템 , 마스터 위버 , 스파이더 마더 … 문자 그대로 우주로 뻗어나가는 설정 그렇다면 ‘ 마블 스파이더맨 2’ 게임은 어떨까 . 우선 , 스파이더맨은 원작 코믹스에서는 그야말로 뇌절 설정의 상징이다 . 스파이더 토템 같은 설정이 바로 그러한데 스파이더맨과 같은 거미류 슈퍼히어로의 숫자가 늘어다나보니 추가된 설정으로 , 그냥 유전자 변이 거미에게 물려 생긴 슈퍼히어로가 갑자기 우주적이고 신화적인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다 . 거기에 스파이더맨은 복식만 수십가지에 이르고 ,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 스파이더 센스에 대한 묘사도 작품마다 제각각이곤 한다 . 이는 기본적으로 미국 코믹스가 각 작가에 의해서 뇌절에 뇌절에 뇌절을 반복하여 마구잡이로 확장한 뒤에 , 이 중에 괜찮은 걸 타이인 이벤트로 정리하면서 채택하는 식으로 전체 흐름이 흘러가기 때문이다 . 그러니 기본적으로 굉장히 난잡하고 , 온갖 좋은 , 그리고 나쁜 설정이 난립하면서 그 안에서도 어떤 설정은 버려지고 어떤 건 정사로 채택된다 . 물론 코믹스 팬들에게는 이것이 재미요소였고 , 다른 것보다 훨씬 짦은 코믹스의 소비 사이클에서는 괜찮은 방법이기도 했다 . 그러나 , 게임이나 영화처럼 제작 기간이 길고 한 작품의 서사 단위가 긴 매체에서는 이런 방식을 채택할 수 없었다 . 때문에 게임이나 영화는 그 자체로 일종의 총집편처럼 , 작품이 어떤 설정을 채택하고 있고 , 또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정리가 되어 있어야 했다 . 인섬니악의 비디오 게임 ‘ 마블 스파이더맨 ’ 시리즈는 그 정리의 시작을 빌런과 주인공 , 스파이더맨의 관계 정리에서부터 시작한다 . ‘ 스파이더맨 ’ 에게는 정말이지 수많은 빌런이 있다 . 단일 히어로로서는 가장 많은 빌런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 그와중에 극적인 서사를 위해서 스파이더맨이 어떤 빌런을 만나게 될지를 미리 정리해두는건 매우 중요했다 . 그래서 1 편에서는 시작과 동시에 스파이더맨이 이미 히어로 활동을 한지 꽤 시간이 지났고 , 수많은 잡다한 빌런들을 이미 다 정리했다는 걸 단 번에 보여준다 . 스콜피온 , 라이노 , 벌쳐 같은 단일로서는 큰 비중을 가지기 어려운 빌런들은 이미 스파이더맨을 만나 싸웠고 , 감옥에 가있다 . 그런데 그 와중에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인물인 옥타비우스 박사가 서사의 중심으로 초반부터 등장한다 . 여기서 대강의 합의가 이루어진다 . 이 작품의 스파이더맨은 여러 잡다한 빌런들은 이미 다 처리했지만 , ‘ 닥터 옥토퍼스 ’ 나 ‘ 그린 고블린 ’ 은 아직 만나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 그리고 서사가 옥타비우스 박사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이상 , 우리는 이 작품에서 이 빌런과 대적하게 될 것임을 직감한다 .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여러 다른 설정들도 빠르게 정리하기 시작한다 . 아직 스파이더맨이 되기 전인 마일즈 모랄레스는 피터 파커의 그 유명한 각성의 과정 , 본작에서는 이미 과거의 일이라고 스킵한 그 과정을 대신 되풀이하고 보여주며 , 이 작품의 후반이나 또는 다음 작품에서 그가 두번째 스파이더맨이 될거라고 넌지시 일러준다 . 히로인은 그웬 스테이시가 아니라 MJ 라는 것 , 이번 스파이더맨이 가진 기술적 역량들 , 그리고 멀티버스 따위는 없다는 것 , 그의 경제적 상태 등등 수많은걸 빠르게 정리한다 . 우리는 이미 ‘ 스파이더맨 ’ 이라는 캐릭터를 알고 있다 . 이는 코믹스보다는 대중 서사인 영화의 덕택이 더 클 것이다 . 그래서 이미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부분은 게임에서는 빠르게 생략되거나 암시되며 , 그 이상의 부분들은 명시적으로 정리된다 . 그래서 모든 독자들 , 스파이더맨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코믹스팬부터 스파이더맨이라고는 영화 밖에 보지 않은 이들까지 모든 독자를 동일한 출발선에 위치시킨다 . 이는 이 게임을 구성하는 수많은 장점 중에 정말 일부분이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부분일 수도 있다 . 그러나 , 서사가 이 게임에서 정말 중요한 위치이고 그 서사라는게 원작과 수많은 변형이 이미 있어왔던 이야기의 반복이라는 점에서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 즉 , 이 게임은 ‘ 무엇인가 ?’ 뿐만 아니라 ‘ 무엇이 아닌가 ?’ 도 동시에 이야기해야 한다 . 이 스파이더맨은 멀티버스도 아니고 , 등장하지 않을 빌런은 누구이며 , 우리가 아는 스파이더맨 서사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같은걸 계속 전해야 한다 . ‘ 마블 스파이더맨 2’ 는 이런 부분이 더더욱 중요했다 . 2 편이 제대로 가속을 받아 서사를 진행시키려면 1 편에서의 이런 정지작업이 필수였고 , 그 다음을 보여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 그 때문에 2 편에서는 새로운 인물들 , 그리고 이전에 등장했지만 아직 서사적인 쓰임이 다하지 않은 인물들 , 그리고 이제는 이야기 전면에 나서야 하는 기존의 인물들 등 수많은 인물들이 다시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 오스본 부자가 전면에 나섰고 , 베놈이라는 새로운 빌런을 위해 필요한 부가 인물들도 등장한다 . 그리고 동시에 기존의 빌런들이 퇴장하기 시작한다 . 벌쳐 , 스콜피온 같은 부가 빌런들은 확정적인 죽음을 통해 서사에서 사라진다 . 이런 과정을 통해 , ‘ 이미 익숙한 이야기 ’ 인 스파이더맨은 ‘ 새로운 이야기 ’ 로서의 당위성을 얻게 된다 . 원래 우리가 알고 있는 인물 간의 관계 , 설정 장치 , 서사의 흐름들을 어떤 것은 지키고 어떤 것은 어기면서 , 전체 총합은 크게 변하지 않음에도 굉장히 새로운 이야기를 접하는 것 같은 감각을 만들어 낸다 . * 어쩌면 이런 부분이 좀더 설득력을 줄 수도 있겠다 원작이 있는 작품들에게 원작은 좋은 참고가 되기도 하지만 , 많은 경우에는 독이 된다 . 이유는 근본적으로 원작과 파생작들은 대체로 차원 자체가 다른 ( 말그대로 과학적인 의미의 ‘ 차원 ’ 도 )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아무리 1 대 1 로 대응하여 옮기더라도 본질적으로 차이가 생길 수 밖에 없고 , 또 여러가지 사정으로 그 1 대 1 이식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결국 스핀오프나 파생작품들은 원전의 요소들을 취사선택할 수 밖에 없으며 , 이 취사선택이 어떻게 되느냐가 항상 논쟁거리가 되곤 한다 . 특히나 코믹스에서 온갖 설정을 쏟아내는 슈퍼히어로물은 이 문제가 더욱 심하다 . 간단하게는 코스튬의 재현에서부터 멀리가면 빌런의 선택 , 캐릭터에 걸친 부가 서사들의 선택까지 모든게 선택의 문제가 된다 . 가령 스파이더맨의 경우에는 뇌절 그 자체인 설정들과 절대 빼놓아서는 안되는 설정들이 많이 있다 . 벤 삼촌의 죽음은 스파이더맨을 구성하는데 빠져서는 안되는 사건이다 . 반대로 스파이더 토템 같은 설정이나 , 많은 이들이 고평가하는 이슈인 ‘ 슈피리어 스파이더맨 ’( 닥터 오토퍼스의 정신이 스파이더맨의 육체에 깃들어 히어로가 되는 이야기 ) 의 경우에도 자칫하면 설정이 과한 , 표현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 ‘ 마블 스파이더맨 ’ 시리즈는 여기서 재미있는 선택을 한다 . 먼저 벤 삼촌의 죽음 같은 , 영웅을 형성하는 서사를 모두 본편에서 빼버렸다 . 설정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 이미 작품 상에서는 오래전 지나간 일이며 구체적으로 언급되거나 묘사되기보다는 플레이어 , 스파이더맨의 팬들이 ‘ 당연히 그런 사건이 있었겠지 ’ 라고 추측하고 넘어가게 만든다 . 대신에 이런 시련을 본편에서 겪는 건 2 대 스파이더맨인 마일즈 모랄레스다 . 이는 매우 영리한 선택이다 .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되풀이하는 건 항상 구태의연하고 지루할 위험이 있다 . 그게 비록 필수적인 부분이라 하더라도 , 서사를 정직하게 항상 모든 사건의 발단에서 시작하는 건 좋은 수가 아니다 . 모든 서사는 시작부터 독자를 강력하게 흡인할 의무가 있으며 , 이야기의 시작지점은 이야기의 마무리와의 간극을 고려해 정해져야 한다 . 동시에 비극의 과정을 마일즈 모랄레스에게로 옮겨 , 플레이어들에게 쉽게 인정받기 어려운 2 대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본작에 녹이고 , 감정적인 이입을 만들어 낸다 . 그리고 결정적인 부분은 , 원작의 설정을 차용하되 그 주도권은 확실하게 본작에 있고 , 원작의 설정을 가져오는데에 1 대 1 로 매칭하지 않고 적절히 변용한다는 점이다 . 이는 마치 기표와 기의의 상관관계 같다 . 예를 들어 ‘ 베놈 ’, ‘ 카니지 ’, ‘ 스크림 ’ 같은 주요한 이름들은 모두 등장하지만 , 그 기표 아래에 본질들은 원작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 . 카니지의 정체인 클리터스 캐서디는 광신도 컬트의 수장으로서 새로운 캐릭터성을 부여 받아 뉴욕 전체를 흔들 가능성이 있는 세력을 이끌어 DLC 의 리딩 빌런이 될만한 포스를 풍긴다 . 반면에 스크림은 단편적인 등장이지만 MJ 의 속내를 피터 파커에게 비춰주고 , 둘의 화해와 결합을 더 단단하게 하는 기폭제로서 작용한다 . * 본작의 베놈은 그 정체가 코믹스와 다르지만 ,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또한 심비오트를 활용하는데 있어 베놈 , 카니지 , 안티베놈 , 스크림을 넘어서서 2 세대니 뭐니하는 설정으로 양산되던 것들을 모두 쳐내고 유명한 심비오트까지만 딱 사용한 것도 적절한 원전의 채용이라고 볼 수 있겠다 . 이렇게 원작 설정에 휘둘리지 않으며 그 설정을 본작이 우위를 가지고 취사선택하고 있다는 점 , 또한 설정에 과도하게 매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매우 훌륭하다 . MCU 는 오히려 그런 설정 자체에 휘말려 , 수많은 등장인물을 그대로 등장시키면서 적절한 번안을 하지 못해 영화 내에서 캐릭터 활용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점이 역력하다 . ‘ 이터널스 ’ 에서 청각장애인으로 번안하여 꽤 깊이있는 캐릭터를 보여준 마카리를 제외하면 이렇다할 특색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실크의 경우 , 원작에서는 지나치게 피터 파커에 의존하는 캐릭터성을 가지고 있었던걸 의식하듯 마일즈 모랄레스와의 다른 접점을 가지고 등장한다 . 또한 확실하지는 않지만 , 중간에 등장한 헤일리의 주변인물과 동일하다면 ( 비슷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 ) 실크 , 신디 문도 원작과 다른 독자적인 캐릭터 서사의 길을 걷는 듯 보인다 . 이런 과정을 통해 , 우리가 그 탄생부터 성장 과정까지 모두 알고 있는 슈퍼히어로가 또 한 번 새로운 이야기로서 매력을 품게되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다 . 무엇보다도 원전의 설정을 있는 그대로 모두 써야 한다는 강박 아래 미리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는 설정 덩어리가 아니라 , 쳐낼 것은 쳐내고 핵심만을 남김으로서 가지각색인 플레이어들의 사전 지식 정도와 무관하게 ( 물론 스파이더맨이라는 존재 자체는 알고 있어야 하지만 ) 대다수의 플레이어가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다는게 중요하다 .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영화 시리즈 까지만 챙겨봤어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이야기들이다 . ‘ 마블 스파이더맨 2’ 의 서사는 단순히 본작 , 아니 조금 더 나가서 1 편에서 시작된게 아니다 . 이 게임은 플레이어들을 수십년 동안 여러 차원을 통해 이어진 스파이더버스에 플레이어들을 중간 난입시켜야 하는 게임이다 . 동시에 이미 지난 수많은 스파이더맨 이야기를 겪은 이들에게도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여야 했다 . 이 두가지를 모두 잡는건 성공보다 실패가 가까운 일이지만 , 인섬니악은 그걸 해냈고 , 그래서 올해 최고의 게임을 논하는데 한자리를 꿰차기 부족하지 않다 . ‘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 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답할 수 있는 방법은 너무나 많다 . 그건 방법론도 다양해서 이기도 하지만 , 무엇보다 제대로 된 독자를 설정하지 못하면 어떤 좋은 이야기라도 먹히지 않을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 스티븐 킹은 이야기를 쓰기 전에 가상의 독자를 설정하기를 당부했다 . 그리고 매번 그의 가상의 독자 역할을 맡아준건 그의 부인 , 태비사 킹이었다 . 비록 그런 정도는 아니더라도 , 어떤 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달할 것인가 , 하는 고민은 좋은 이야기에서는 필수적인 고민이다 . 훌륭한 독자설정 , 그리고 이들을 휘어잡기 위한 폭넓으면서 절제된 이야기 . ‘ 마블 스파이더맨 2’ 은 올해 최고의 서사 중 하나다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이명규 게임 기자(2014~), 글쓴이(2006~), 게이머(1996~)

  • 제4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 발표

    제 4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에 응모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공모전의 당선작과 수상자를 아래와 같이 공지합니다. < Back 제4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 발표 25 GG Vol. 25. 9. 22. 제 4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에 응모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공모전의 당선작과 수상자를 아래와 같이 공지합니다. 당선작: 게임은 어떻게 우리를 소외시키는가 - 류호준 서브컬처 모바일 게임 비평을 위한 시론 - 캐릭터 뽑기가 갖는 의의란 - 강현 당선작은 오는 10월 10일 오픈할 게임제너레이션 26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심사위원장의 심사평도 26호에 동시 게재될 예정입니다. 응모해주신 많은 분들께 다시한번 감사드리며, 수상자분들께 축하를 전합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게임비평공모전, 공모전, 수상작발표, 공지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모바일게임 이용자의 입장에서 게임 라이브러리 구독에 대해 생각해보기

    2022년 9월 29일 구글 스태디아의 서비스 종료가 발표되었다. 스태디아는 클라우드로 게임을 할 수 있는 서비스로 또 한가지의 특징은 월정액으로 구글이 계약해서 제공하는 여러 게임을 플레이할수 있는 게임 라이브러리 구독 서비스였다는 점이다. 다만 따로 돈을 내야하는 게임도 있어서 완전한 구독형 서비스는 아니었다. 제공하는 게임이 썩 만족스럽지 않았고 최신 게임을 하려면 월정액 요금 외에도 추가적인 비용을 내야했기 때문에 구글 스테디아는 이용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고 결과적으로 구글의 의지 부족으로 서비스를 종료했다. < Back 모바일게임 이용자의 입장에서 게임 라이브러리 구독에 대해 생각해보기 10 GG Vol. 23. 2. 10. 2022년 9월 29일 구글 스태디아의 서비스 종료가 발표되었다. 스태디아는 클라우드로 게임을 할 수 있는 서비스로 또 한가지의 특징은 월정액으로 구글이 계약해서 제공하는 여러 게임을 플레이할수 있는 게임 라이브러리 구독 서비스였다는 점이다. 다만 따로 돈을 내야하는 게임도 있어서 완전한 구독형 서비스는 아니었다. 제공하는 게임이 썩 만족스럽지 않았고 최신 게임을 하려면 월정액 요금 외에도 추가적인 비용을 내야했기 때문에 구글 스테디아는 이용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고 결과적으로 구글의 의지 부족으로 서비스를 종료했다. 일반 이용자에게 구독형 서비스로 가장 자리잡고 인지도가 높은 것은 넷플릭스일 것이다. 넷플릭스는 영상 콘텐츠를 제공하는 구독 서비스이고 돌이켜보면 장난감 대여 서비스나 아동도서 대여 서비스,등 현실에도 월정액 모델이 없지 않았다.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가 먼저 자리잡긴 했지만 콘텐츠를 압도적으로 확보하고 자체콘텐츠를 제작하면서 월정액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비지니스모델을 가장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것이 넷플릭스라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다. 넷플릭스는 사람들에게 월정액으로 콘텐츠를 대여한다 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상당수 줄이는데 성공했고 많은 콘텐츠 업체들이 넷플릭스의 뒤를 이어 월정액 서비스를 만들고 독점 콘텐츠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는 음악CD나 DVD를 사지 않고 스트리밍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문화가 되었다. 게임은 어떨까. 우선 과거의 게임의 판매형태에 대해서 간단하게 언급해보자. 게임 패키지 구매가 일반적이었던 북미나 유럽, 일본의 게임시장에서는 가정용 게임기를 중심으로 게임 하나에 돈을 지불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심지어 온라인 게임의 초기에는 패키지를 사면 클라이언트 파일이 담긴 디스크 혹은 CD와 함께 몇 달 정도의 이용권을 넣어주는 형태의 판매가 일반적이었다. 한국에서도 〈라그나로크 온라인〉 같은 경우가 비슷한 모델로 예약을 받았으며,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경우 CD 4장의 패키지를 제공했다. 하지만 한국의 온라인 게임은 오픈베타에서 유료화로 넘어가는 형태가 일반적이었으며 외국보다 인터넷 속도가 빠른 탓에 클라이언트의 용량이 크더라도 굳이 CD를 받아 설치하는 것보다는 다운로드 받아 설치하는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90년대에는 패키지 게임의 판매가 일반적인 형태였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패키지 게임 시장은 자리잡지 못했고 불법복제가 불가능하고 월정액등으로 계속 수입이 확보되는 온라인 게임 형태가 국내에 자리잡았다. 초기에는 오픈베타라는 이름으로 시범서비스를 한 후 월정액으로 넘어가는 형태의 비지니스 모델이 중심이었다. 하지만 가벼운 웹보드 게임들이 무료로 서비스를 시작한 후 유료화로 넘어가는 대신 부분유료화 정책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퀴즈퀴즈〉가 무료서비스 때의 회원수를 회복했는데도 불구하고 유료화 1년 반만에 월정액 모델을 포기하고 부분유료화 전략을 택하면서 게임 비지니스 모델의 방향은 정해진 것일 수도 있겠다. 이용자에게 게임에 무료로 접근할 수 있게 한 후 유료로 게임 내 콘텐츠를 파는 전략은 한국에서 자리잡은 이후 소셜게임붐 모바일게임 붐과 함께 전세계로 뻗어나갔다. 한국의 부분유료화 전략은 microtransaction(소액결제)와 Freemium(프리미엄) 이란 형태로 빠르게 서구로 퍼져나갔다. 한편 현재까지도 서구 게임의 중심이 되는 가정용 게임기 중심의 게임시장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예전엔 단일 게임 패키지를 구매하면 더 이상 게임으로 수입을 내기 힘들었지만 네트워크 연결이 일반적이 되면서 게임기도 인터넷이 없으면 100% 동작하지 않게 되었으며 한번 판매한 게임에도 다운로드 콘텐츠(DLC) 등으로 이용자에게 추가적인 비용을 받으며 콘텐츠를 제공하게 되었다. 특히 AAA게임들은 늘어나는 개발비를 위해 게임을 출시한 후 나중에 추가 콘텐츠를 판매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되었으며 이 모델은 이후 판매 초기부터 DLC를 포함하여 등급을 나눠 고가 상품을 판매하거나, 시즌패스라는 이름으로 이후의 DLC를 미리 판매하는 형태가 자리잡았다. 게임기에도 인터넷 서비스가 붙게 되면서 게임기를 관리하는 플랫폼 홀더들도 서비스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온라인 서비스에도 과금을 하기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XBOX의 경우 라이브 골드라는 추가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으면 단독 게임은 실행할 수 있었지만 게임에서 제공하는 멀티플레이를 즐길 수 없었다. 이러한 형태는 다른 게임기들도 받아들이면서 게임기를 사고 추가적인 온라인 서비스를 구매해야만 멀티플레이가 가능했다. 멀티플레이 외에도 자사의 퍼스트 파티 게임이나 이전 세대 게임기의 게임들을 서비스 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가정용 게임기에도 게임 라이브러리 구독 서비스가 자리잡았다. 아직 클라우드를 통해 게임을 스트리밍 하는 것은 기술적인 한계가 있긴 하지만 게임기가 온라인으로 연결되는 것이 일반적이 되면서 인증을 온라인에서 하게 함으로써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게임을 인증을 통해 구동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게 되었다. 이를 통해 가정용 게임기들은 스트림이이 아니더라도 게임 라이브러리 구독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이용자들은 어차피 멀티플레이등의 콘텐츠를 이용하려면 금액을 지불하는데 추가로 돈을 조금 더 지불하고 게임사에서 제공하던 퍼스트파티 게임이나 고전게임을 즐기게 되었다. * XBOX 게임패스 화면. 발매 직후 포함되는 데이원으로 서비스 되는 게임들이 눈에 띈다. 다만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임패스를 제외하면 이런 구독서비스보다는 다른 독점 콘텐츠들이 게임기의 선택에 더 큰 영향을 끼치고 있고 각 플랫폼 홀더들은 회원들을 늘리기 위해 고민은 하는 것 같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임패스처럼 적극적으로 발매일부터 구독자에게 게임을 제공하는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는 않다. 조금 냉정하게 바라보자면 가정용 게임기나 PC로 AAA 게임들을 중점적으로 즐기는 이용자들에게 게임패스는 어차피 멀티로 게임을 할 것 그냥 돈을 조금 더 내고 고전게임들을 즐기거나 하는 정도일 것이다. 게임에서 구독 서비스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앞서 이야기했던 단일 온라인게임의 월정액 구독 모델과 함께 지금 일반적으로 이야기되는 게임 라이브러리 구독을 분리해서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게임 라이브러리 구독 서비스가 어떻게 자리 잡았고 그것이 가정용 게임기나 개인용 PC에서는 어떻게 서비스되고 있는지를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러한 게임 라이브러리 구독은 모바일에서도 서비스되고 있지만 각 서비스의 플랫폼 홀더들이 투자하고 있는 것만큼 많이 알려져 있지는 못하다. 하지만 게임 이용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모바일 게임의 게임 라이브러리 구독서비스는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다. 모바일 게임들의 구독 서비스들이 적극적으로 알려져 있지 못한 이유는 아무래도 산업적으로는 성과가 증명되지 못했기 때문이라 짐작한다. 우리는 〈원신〉과 〈리니지〉같은 게임이 구글 플레이에서 어떤 매출순위를 기록하고 얼마나 큰 금액의 매출을 내는지는 꾸준히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러한 매출의 뒷편에는 흔히 약탈적인 BM이라 이야기하는 확률형 아이템 뽑기, 부분유료화를 통한 강화와 경쟁, 압도적일 만큼 많은 이용자를 모아서 30초씩 시간을 뺏는 광고모델들을 통해 이루어지고 이러한 수익은 이용자를 붙잡아 놓을 수만 있다면 꾸준히 수입을 가져다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동작한다. 물론 이 경지를 추구한다고 모든 게임개발사가 쉽게 도달할 수 있지는 않다. 코어 게이머들은 가챠나 경쟁을 통해 비용을 지불하는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게임사에서 VIP라고 부르는 슈퍼고래들은 한 달에 몇천만 원을 쓰는 경우가 드물지 않고 인기 있는 캐릭터 게임들의 경우 원하는 캐릭터를 뽑으려면 작게는 몇십에서 크게는 백만 원이 넘게 드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런 게임들을 모든 이용자에게 이것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경쟁에서 이기고 싶지 않다면, 혹은 원하는 캐릭터 없이 소소하게 게임을 즐기려면 그것도 가능하다. 욕심을 품지 않는게 가능하다면 말이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모바일 게임의, 특히 캐릭터 게임이나 경쟁 중심의 RPG장르를 즐기는 게이머들은 게임에 돈을 쓰는 것에 크게 거부감이 없는 상태다, 게임개발사에서 흔히 ARPPU라고 부르는 ‘결제이용자당 평균 결제 금액’이 압도적으로 높은 게임들이다. 그 반대편에는 캐주얼 게임이 있다. 이러한 게임들은 이용자들을 많이 모으고 해당 이용자들에게 아주 소액을 결제하거나, 혹은 게임에 돈을 쓰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계속 광고를 보게 만드는 콘텐츠이다. 퍼즐이나 방치형 게임이 이런 형태일 것이다. 결국 모바일 게임을 하려면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 해야한다. 게임에서 계속 큰 금액을 쓰면서 원하는 콘텐츠를 즐길 것인가, 아니면 보상을 2배씩 얻기 위해 매일매일 출석하며 30초씩 광고를 보던가이다. 이것을 무작정 부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 게임 개발사가 게임으로 수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로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리니지라이크라 부르는 경쟁과 그를 위한 강화가 섞여있는 확률형 콘텐츠 모델과 〈블루아카이브〉, 〈우마무스메〉 등 이야기와 캐릭터를 가챠로 파는 모델, 그리고 광고와 소비형 아이템을 가득 붙인 캐주얼 게임 모델 정도일 것이다. 다른 방법들은 이 모델만큼 수익을 내지 못하거나 아니면 망했다. iOS에서 게임기의 풀프라이스에 가까운 비용을 받고 콘텐츠를 팔려고 시도한 경우도 있었다. 마켓에 다른 게임들이 공짜로, 그러니까 옆에 “앱내결제”딱지를 붙인 공짜로 판매되고 있지 않았다면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한편 아이들에게도 모바일기기가 하나씩 있는 것이 보편적으로 되면서 이제 아이들이 가장 처음 접하는 게임들은 이러한 “앱 내 결제” 딱지가 붙은 “받기” 버튼만 누르면 받아지는 공짜 게임들이다. 그리고 버튼을 눌러서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것은 실제로 돈을 쓰는 것보다 훨씬 더 아무렇지도 않은 감각이다. 그렇다 보니 가정에서 보호자 몰래 게임에 큰돈을 써서 문제가 되는 것을 심심찮게 뉴스로 볼 수 있다. 이렇다보니 휴대폰 OS 제작사들도 보호자들이 피보호자들의 이용 형태나 결제들을 관리할 수 있도록 계속 기능을 추가하고 있다. 이를테면 iOS의 경우 피보호자가 구매를 요청하면 보호자에게 알림이 가고 보호자가 허락해야 결제가 진행된다. 여기서 광고는 완전히 논외이다. 모바일 게임의 광고들을 보면 이미 실제 게임과는 안드로메다 정도 떨어진 광고를 보여주면서 이용자의 클릭을 유도하는데 성인게임 광고가 무분별하게 노출되는 문제들도 있었다. 아이들이 계속 광고에 노출되는 것이 긍정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현재 무료게임의 경우. 특히 미성년자 대상의 무료게임의 경우 돈을 쓰지 못하는 상황의 이용자에게 수익을 얻는 유일한 방법이 광고밖에 없는 상황에서 안타깝지만 미성년자들이 계속 게임 광고에 노출되는 것이 적절한가는 고민을 해볼 지점이라 생각한다. 한편 보호자 입장에서는 고민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어떤 게임을 하는지 신경쓰는 것을 넘어서 게임안에서 어떤 광고가 나오는지까지 신경써야한다면 ‘게임기를 한대 사주는게 속 편하겠네’ 라는 생각이 들고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이 ‘차라리 게임기를 사주세요.’ 라고 이야기한다. 많은 구독서비스에는 구독을 걸어놓고 실제로 게임을 하지도 않으면서 아니면 영화를 보지도 않으면서 매달 돈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 고백하자면 나도 그렇다. 애플아케이드와 넷플릭스에 꾸준히 돈을 내고 있던 나는 어느 날 별 생각없이 애플아케이드를 훑다가 〈쿠킹마마〉를 발견했다. 〈쿠킹마마〉는 NDS가 유행하던 시기에 한국어 버전이 나와서 인기를 끌었던 게임이고, 코로나로 원격수업등이 늘어나면서 집에는 패드가 하나 더 있는 상황이었다. 심심해하는 아이가 광고가 나오는 게임보다는 어쨌든 이게 낫지 않을까 하고 〈쿠킹마마〉를 열어보고는 이 게임에는 광고도 아이템 결제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들에게 탭을 통해 간단한 색칠놀이나 그림그리기 앱들을 시켜준 보호자들은 알 것이다. 아이가 추가 그림을 고르고 싶어한다면 결제를 해야한다는 것을. * 애플 아케이드 탭의 화면. 이렇게 되니 애플아케이드의 게임들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애플아케이드의 게임들은 기본적으로 애플 기기에서는 독점서비스인 게임들이 많으며 가끔 전 기기를 통틀어서 애플기기에서만 즐길 수 있는 게임들이 많다. 초기에 iOS에서 유행했던 게임들이 많이 들어와 있다. 광고나 부분유료화 결제를 피하고 싶고 모바일게임을 처음 접해서 모든 것이 새로운 이용자들에겐 딱 적절한 큐레이션이다. * 구글 플레이에서 확인할 수 있는 넷플릭스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게임들. 한편 넷플릭스의 구독서비스에도 게임이 포함되고 있다. 밴더스니치 같이 영상 콘텐츠에 선택지를 넣는 경우도 있고 이 기능을 통해 퀴즈게임들을 만들기도 했지만 정말 게임들도 존재한다. 넷플릭스의 게임들은 좀 더 성인 취향이고 실제로 아이들은 접근할 수 없다. 초반엔 〈기묘한이야기 RPG〉 등 넷플릭스의 기존 콘텐츠를 활용한 게임들이 예고되었지만 〈12분〉이나 〈캔터키루트제로〉, 〈옥센프리〉 같은 인디게임들도 추가되었다. 특히 이러한 인디게임들은 넷플릭스를 가입해야만 게임을 할 수 있으며 〈옥센프리〉 같은 경우는 한국어로 번역된 게임을 하려면 현재로서는 넷플릭스가 유일한 방법이다. 가장 흥미로운 경우는 〈고양이와 스프〉일 것이다. * 고양이와 스프 기본판과 넷플릭스판. 〈고양이와 스프〉는 기본 버전과 넷플릭스 버전이 두 개가 존재한다. 독점이 아니라면 무슨 차이지? 라는 의문이 들 텐데 넷플릭스 버전에선 광고와 아이템 결제가 모두 들어내어져 있다. 우리가 흔히 방치형 게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더 많은 자원을 얻으려면 광고를 보세요. 가 없고 매일 게임 플레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플레이포인트를 재화로 사용하여 광고 대신 콘텐츠를 얻을수 있는 구조이다. 체감상 밸런싱도 조금 빠르게 올릴 수 있어 보인다. 이를 통해 매우 쾌적한 30초 대기가 없는 방치형 게임이나 퍼즐게임들을 넷플릭스를 통해 체험해볼 수 있다. 물론 돈으로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답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 고양이와 스프 구매화면 비교 좌. 일반판, 우. 넷플릭스판. 이러한 구독형 게임이 미래인가에 대해서는 쉽게 이야기할 수 없다. 지금 모바일 게임이나 온라인게임, 넷플릭스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는 구독형 게임들에도 해당한다. 이미 콘텐츠를 개인이 소유할수 없는 시대라고 하면 할 수 없겠지만 넷플릭스에선 생각보다 서비스에서 내려가는 영화들이 상당하다. 즐겁게 즐기고 있는 모바일 게임이 어느 날 계약기간의 종료로 서비스를 중지합니다. 라는 사태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열심히 키운 게임 캐릭터가 그렇게 사라지면 상실감이 상당할 것이다. 이 것은 구독형이 아니라 서비스 중심의 온라인게임에서는 항상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온전히 게임 서비스가 개발사가 아니라 플랫폼에 달려있다면 더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 서비스가 지속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구글 역시 서비스를 포기하는 와중에 게임 서비스가 중심이 아닌 업체라면 이것으로 얻는 이득보다 비용이 더 크다고 판단하면 얼마든지 서비스가 중지될 수 있다. 그리고 현재까지의 산업적인 지표는 긍정적이라기보다는 부정적인 것에 가깝다. 애플아케이드에는 유명 게임 개발자의 독점 콘텐츠들이 들어오긴 했지만 그런 콘텐츠가 계속 이어질 것인가에 대한 기대나 소식이 적고 넷플릭스 이용자들 중 아주 일부만 게임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더 많은 수익을 위해 구독에 아이템 판매를 추가할지도 모른다. 게임사 입장에서도 성공만 하면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는 확률형 아이템 대신 상대적으로 적은 돈이 들어올 이러한 구독형 서비스에 입점하는 것이 매력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가 모바일게임에서 이야기하는 약탈적인 BM에서 숨을 돌릴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이곳이라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각 서비스 플랫폼들이 큐레이션하고 한국어로 번역한 게임들을 광고나 추가결제 없이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공간은 모바일에서 지금 이러한 게임 라이브러리 구독서비스 말고는 없지 않을까. 장기적으로 자리만 잡는다면 현재의 모바일 게임 비즈니스 모델과 어울리지 않는 게임들을 구독서비스에서 계속 만날 수 있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평소에 비디오게임에 큰 비용을 지출하고 싶어하지 않는 캐주얼 게이머들에게는 안전하게 추천할 수 있는 게임들이기도 할 것이다. 이미 넷플릭스를 구독하고 있다면 한번 쯤 훑어보는 것은 어떨까.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개발자, 연구자) 오영욱 게임애호가, 게임프로그래머, 게임역사 연구가. 한국게임에 관심이 가지다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것에 취미를 붙이고 2006년부터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있다. 〈한국게임의 역사〉, 〈81년생 마리오〉등의 책에 공저로 참여했으며, 〈던전 앤 파이터〉, 〈아크로폴리스〉, 〈포니타운〉, 〈타임라인던전〉 등의 게임에 개발로 참여했다.

  • 〈디아블로3〉는 왜 ‘똥3’, ‘수면제’가 되었는가?

    누구든 이 글의 제목이 표시하고 있는 의문에 현혹되어 본문을 읽기 시작한 독자라면 그의 추억 속에서 디아블로가 스타크래프트와 마찬가지로 ‘민속놀이’에 준하는 반열에 올려져 있음직하다.1) 특정 게임을 민속놀이에 비유하는 표현은, 물론 오래도록 익숙해진 대상에 대한 게이머들의 애정에 기반을 두고 만들어진 밈 중 하나이다. 그러나 어느 로맨스도 항상 분홍빛으로만 채색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 애정은 옅어지고 힐난과 혐오의 감정이 찾아오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때마다 변하게 된 것은 ‘나’와 대상이거나 양자가 달라지면서 마땅히 뒤따른 관계의 양상이지 ‘사랑했다는 사실’이 아니다. < Back 〈디아블로3〉는 왜 ‘똥3’, ‘수면제’가 되었는가? 05 GG Vol. 22. 4. 10. 이 글은 〈게임과 공포 서사를 통해 살펴본 언어화와 공포의 비대칭적 상관관계에 대한 비교연구: 〈디아블로3〉, 현대 괴담, 고전 원귀서사를 중심으로〉(비교문학 86, 2022.2.)라는 표제로 공개된 논문을 웹진 형식에 맞추어 적절하게 개고한 글이다. 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815374 ‘갓겜’의 전락 누구든 이 글의 제목이 표시하고 있는 의문에 현혹되어 본문을 읽기 시작한 독자라면 그의 추억 속에서 디아블로가 스타크래프트와 마찬가지로 ‘민속놀이’에 준하는 반열에 올려져 있음직하다. 1) 특정 게임을 민속놀이에 비유하는 표현은, 물론 오래도록 익숙해진 대상에 대한 게이머들의 애정에 기반을 두고 만들어진 밈 중 하나이다. 그러나 어느 로맨스도 항상 분홍빛으로만 채색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 애정은 옅어지고 힐난과 혐오의 감정이 찾아오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때마다 변하게 된 것은 ‘나’와 대상이거나 양자가 달라지면서 마땅히 뒤따른 관계의 양상이지 ‘사랑했다는 사실’이 아니다. * 대명사가 된 ‘똥3’. Google을 이용하여 ‘똥3’를 표제어로 삼아 검색해보면 무려 3천만 건 이상의 〈디아블로3〉에 관한 페이지가 결과로 주어진다(2022년 3월 현재 기준). 여기서 검토 가능한 정보들 대다수가 ‘똥3’을 곧 〈디아블로3〉의 대명사로 쓰고 있다는 사실이 여실히 확인된다. 이 글이 일단 주목하고 있는 것도 그러한 변이의 순간이다. 2012년, 〈디아블로3〉가 발매되었다. 시리즈의 전작과 신작 사이에 놓인 십여 년의 격차는 팬들의 기대를 더욱 부풀렸다. 출시 직후부터 〈디아블로3〉는 블리자드 사의 다른 작품과 비교했을 때도 유례없이 많은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2) 그만큼 성공가도를 달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유저들 의 평가는 기존과 사뭇 달랐다. 일각에서는 “〈디아블로3〉를 하면 할수록 졸음이 쏟아진다”라고 호소했으며, 캐릭터가 죽었는데도 이미 유저는 태연히 잠든 사진들이 ‘유머 짤’로 퍼지기 시작했다. 한 웹진에서는 〈디아블로3〉를 비롯해 이른바 ‘수면제’라 불리는 게임들의 숙면 유도 효과를 검증하는 내용으로 아예 기사 한 꼭지를 채웠다. 3) 그 어떤 저예산의 아마추어 게임일지라도 지루함을 분명히 몰아내기만 한다면 이 점 하나만으로 그 게임은 자기의 탁월성을 증명한다. 기본 조건을 〈디아블로3〉가 어겼다고 여기는 일부 유저들은 게임 타이틀을 아예 ‘똥3’이라고 바꾸어 부르기도 서슴지 않았다. 이러한 흐름은 〈디아블로3〉가 잠을 부른다는 평에 대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공감하였음을 방증하면서도, 일종의 전락이라 이르기 충분한 낙폭을 또한 보여주고 있다. 상당한 기대감을 아우르면서 출시 직후까지 ‘갓겜’으로 불리던 상황이 어느새 ‘수면제’, ‘똥3’이라는 조롱 성격이 가득한 밈의 유행으로 대체된 것이다. * 죽었습니다. 4) 위 이미지들은 PC방에서 〈디아블로3〉 플레이 중에 잠들어버린 유저와 플레이 화면을 지켜보던 중에 잠들어 버린 고양이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중 캐릭터의 사망 상태를 알리는 문장은 게임 자체에 대한 은유로도 쓰인다. 공포의 공백: 무섭지 않다 〈디아블로3〉는 왜 ‘똥’이 되었는가? 지루함과 잠은 결과이지 원인일 수 없다. 사람들은 몇 가지 요인들을 꼽아보기도 한다. 시스템적으로 전보다 단순해진 레벨링, 한정된 배경의 던전을 계속 전전하는 파밍, 이 과정의 반복이 지나친 나머지 화면 연출이 암만 화려하고 맵이 아무리 임의로 생성되더라도 그것들을 단조롭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유저의 인지 상태 등이 그것이다. 반복 속에서 차이가 희소해질수록 지루함이 찾아드는 법이다. 그러나 반복은 전작들에도 포함되어 있던 요소였고 더욱이 반복으로 인해 결국 잠들고 말았다는 평은 전작들에 대해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주의해서 기억하도록 하자. 물론 예의 레벨링 및 파밍에서 일어난 어느 변화가 신작의 흥미를 한껏 줄여버린 원인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들만 고려할 때 쉽게 놓치고 마는 부분이 있다. 애초에 이 시리즈가 공포 요소를 상당히 강조하는 게임이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따라서 〈디아블로3〉가 전작에 비해 더 이상 플레이 중에 공포가 체험되지 않는다는 지적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여전히 있는 것들이 현재에는 달리 작동해서 가져온 결과에 대해 논하는 것보다, 있었던 것의 부재가 지금 가져온 결과에 대해 먼저 살피는 것이 사태의 중층성을 파헤치는 초석일 수 있다. 요컨대 1996년 마지막 날에 발매된 〈디아블로〉는 던전크롤링과 핵앤슬래시의 구현에 충실했다. 가공할 만한 몬스터, 과장된 유혈, 잔혹하게 도살된 인간들의 형상이 탐험 공간 곳곳에 비치되어 있어서 공포와 카타르시스를 체험하기에도 알맞았다. 이를테면 특유의 외침과 함께 등장하는 부쳐(butcher)와의 첫 맞대결에서 압살당한 경험은 여전히 유저들 사이에서 소름 끼치게 충격적이었다고 회자될 정도다. 2000년에 발표된 〈디아블로2〉는 여전히 신비를 잃지 않은 초월자들의 등장과 암흑에 가까운 공간 연출 등으로 유저의 긴장을 적절히 고조시키고 공포감을 부풀리는 데에 많은 신경을 썼다. 문제는 3편에서 이런 장점들이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는 것이다. 무엇이 과연 공포를 몰아냈을까? 이 자리에서는 다소 생경하게 들릴 수 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바로 ‘언어화’다. * 부쳐(도살자)와 그의 소굴(〈디아블로 1〉). 훼손된 시체가 즐비한 방에 들어서자마자 ‘ah, fresh meat!’라고 외치며 달려드는 막강한 적에 압도되어버렸던 그 순간을 유저들은 절대 잊지 않는다. 이미지출처: Steve Burke, “Most Memorable Moments of the Diablo Franchise.” Gamers Nexus, 2012.5.14. www.gamersnexus.net/gg/844-most-memorable-diablo-moments 공백의 공포: 호러 바쿠이 디아블로 시리즈가 후속편을 이어가면서 나타낸 변화의 방향은 어느 정도 일관성을 띤다. 바로 온갖 언설과 언어적 존재들이 서사의 빈자리에 들어서며 늘어난다는 점에서 그렇다. 1편은 ‘최하층에 다다라 거대한 악을 물리친다’라는 단순한 목적을 곧 서사의 골자로 삼았으며 게임 체험의 거개를 전투로 채웠다. 유저가 가야 할 곳, 해야 할 일 등의 정보가 NPC들에 의해 거의 최소한으로 주어지고, 악마의 출처나 살육의 목적도 모두 베일에 감춰져 있었다. 그리고 디아블로라는, 게임 타이틀이 가리키는 악마 자신이며 최대 숙적인 그는 마지막에 쓰러질 때까지 그 이름을 제외하고서 아예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정도로 비언어적이다. 1편에 비하여 2편은 세계관을 확대하고 세부적인 요소까지 규정했다. 선택 가능한 영웅 캐릭터들이 추가되었고 다변화된 지역을 배경으로 디아블로를 비롯해 그 형제들이 등장한다. 악마는 사실 오래전부터 천사와 대립하여 싸우고 있었으며, 더 강한 무력을 얻어 이 같은 쟁투에서 승리를 취하고자 인간 세계에 혼란을 몰고 왔다는 전사(前史)도 제시되었다. 이렇게 더 많은 사건과 내화(內話)를 배치하여 서사 구조를 복잡하게 만들면서도 다른 초월자의 존재, 세계의 기원 등 해명되지 않은 것들을 여럿 남겨놓음으로써 다음 편을 기대하도록 안배하기도 했다. 3편에서는 이야기의 구체성을 더하고 볼륨을 키우는 이러한 경향성이 굳어진다. 더 많은 캐릭터와 지역, 더 장구한 역사와 아티팩트, 다원화된 세계들 간의 더 깊은 갈등, 더 교묘한 음모, 더 복잡한 사연들이 새롭게 엮이고 관계를 형성한다. 작중 인물의 발화와 대화는 물론, 책자나 일지로 가장된 독백뿐만 아니라 시네마틱 영상, 내레이션을 통해, 이 이야기-언어는 인물 표현과 서사 부분에서 풍부함과 상세함을 더한다. 작중 해설가나 다를 바 없던 역을 담당한 캐릭터 케인이 죽음으로 퇴장한 이후에도 설명과 다변의 과잉상태는 달라지지 않는다. 살육과 폭력을 과묵하게 자행하던 악마도, 그런 악마를 저지하기 위해 분주하던 천사도, 모두가 자기에 대해 말을 (그것도 많이!) 하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한다. 그리하여 디아블로 세계관이 낱낱이 해명된다. 그런데 이렇게 추가된 언설들이 아무리 다양해지고 서로 교차하더라도 그것들 사이엔 공통된 특징이 있다. 설명이 없던 부분에는 이야기를, 말이 없던 존재에게는 육성을 부가하는 방식으로, 이전 작들이 남겨놓은 서사상의 공백을 모두 메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적인 두려움을 제작진들이 해소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는 점이다. 블리자드 사의 이 같은 행위 양상을 가리킬 수 있는 오랜 표현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호러 바쿠이’이다. 이 관용구는 언필칭 그대로 ‘공백(Vacui)에 대한 공포(Horror)’를 의미하며, 어떤 여백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모든 자리를 패턴으로 채우려고 하는 특정 시기의 예술 양식이나 기법을 지시하기도 한다. 문제는 빈자리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 채움의 강박이 과도한 언어화를 낳았으며 정작 게임이 전달할 수 있는 공포 정서를 축출해버렸다는 데 있다. 어째서 그러한가? 우선 이러한 현상이 게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여러 영역에서도 일반적으로 발견될 수 있다는 점을 일러두기로 한다. * 호러 바쿠이 혹은 채움의 강박. Jean Duvet, 〈The Fall of Babylon〉 이미지 출처: Mads Soegaard, “Horror Vacui: The Fear of Emptiness.” Interaction Design Foundation, 2020.9. interaction-design.org/literature/article/horror-vacui-the-fear-of-emptiness . 16세기에 활동한 뒤베의 판화는 도상의 모든 면을 특별하게 의도한 알레고리로서 의미를 갖추도록 만들고 있다. 언어화는 공포를 잠식한다 “공포는 총성(bang)이 아니라 그것의 예측(anticipation)에서만 일어난다”라고 진술한 것은 히치콕이었다. 공포의 감정은, 감각과 언어로서 인지되는 사태의 바깥에 인간의 상상력이 미쳤을 때라야 어떤 예기(豫期)와 함께 발생한다는 점에서 그는 진실을 말하고 있다. 그 어떤 규정성과 동질성 너머에 놓인 상상의 공간, 이 빈자리야말로 공포가 당당하게 차지하게 되는 자신만의 영토다. 이는 공포가 공백에서 발생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언어는 근본적으로 의미의 담지체로서 규정성을 발생시킨다. 어떤 사태를 포착한 단 한 장의 사진에 인과관계가 담긴 이야기를 덧붙이자 그것이 사태의 의미로 대체돼 버리는 경우를 우리는 경험한다. 또한 언어는 인간의 인식, 사고, 정서, 행동 등에 담긴 질서를 근본적으로 반영한다. 그래서 어떤 존재가 언어를 구사하는 언어적 존재로 재현된다는 것은 그 존재가 이미 인간적 질서를 공유하고 그것에 동참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언어화는 규정성을 부여하거나 이질적 거리를 단축함으로써(즉 동질성을 확보하게 함으로써) 빈자리를 채운다. 이러한 사실들은 〈디아블로3〉의 과잉된 언어화가 이미 잘 드러내주고 있기도 하다. 세계관, 전사(前史), 배경에 대한 다변들은 결국 게임 내 세계, 악마와 괴물, 천사에게서도 신비함을 탈각한다. 그들이 미지의 존재가 아니게 됨으로써 그들은 공포의 영역에서도 추방을 당한다.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구석을 찾아볼 수 없게 된 대상은 신비하고 공포스러운 존재가 아니라 성가시거나 혹은 친근한 존재가 될 뿐이다. 경외와 두려움은 동근원적이다. 그리고 미지의 존재와 세계는 그 정체가 밝혀짐과 동시에 경외와 두려움의 대상이기를 멈추고 우리에게 친숙해지고 만다. “ 그래서 떨어졌습니다. 내 의지로.” (〈디아블로3〉). 대천사 티리엘은 스스로 날개를 찢고 지상으로 떨어진다. 이 하강은 초월적이고 비의적 존재에서 인간적이고 탈신비화된 존재로의 변신이기도 하다. 미지의 대상이 설명됨으로써 정체가 폭로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언어적 존재로 변하여 묘사될 때도 마찬가지의 결과가 이어진다. 악마와 천사들은 〈디아블로3〉에 이르러 무척이나 수다스러운 존재로 나타났다. 그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꺼리는지, 무엇을 의심하는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무엇을 두려워하는지에 대해 그들은 말한다. 이와 동시에 악마와 천사는 공포를 일으키는 존재가 아니라 공포에 사로잡히기도 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게다가 악마들이 두려워하는 대상은 그 악마를 격퇴시키기 위해 진격하고 있는 유저 자신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유저가 공포를 느끼기를 기대하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이다. 우리는 공포에 떨고 있는 다른 누군가를, 심지어 우리 자신이 유발하는 공포에 의해 떨고 있는 그를,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민속놀이’의 부흥을 기대하며 지루함이나 잠은 공포와 대척점에 서 있다. 어떤 것이 충분히 음산하고 무섭다면, 그것은 우리를 잠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다. 공포를 다루는 많은 매체들이 ‘잠 못 드는 밤’을 강조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다른 요인들도 물론 고려해야 할 테지만 ‘수면제’나 ‘똥3’이라는 밈에는 〈디아블로3〉의 과도한 언어화로 인해 공포를 재현하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이 반영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공포는 공백과 짝을 이루어 실현되며, 언어화는 공백을 메움으로써 공포를 비워버린다. 이처럼 단순한 진실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수많은 괴담이나 호러 영화를 두고 의식적으로 연결하여 공통된 특성을 골라내 보지 않고 있었을 뿐이다. 해원(解冤)을 모티프로 삼은 고전적인 귀신이야기는 어떠한가? 사람을 사로잡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악귀는 그저 공포의 대상일 수 있지만, 그 악귀가 어떤 원한에 사로잡혀 있는지 스스로 호소하며 탄원하는 순간 우리의 두려움은 줄어들고 급기야 달아나버리기까지 한다.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는 ‘나폴리탄 괴담류’들은 어떠한가? 그중 성공적인 것들은 이야기-언어로 공포가 둥지를 틀 수 있는 인지상의 공백을 만드는 기교를 구사한다. 즉 규정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그것을 벗어난 상대적인 빈틈을 절묘하게 주조하면서, 그 빈틈에 어떤 경악할만한 것이 있을지 우리가 예감하도록 하여 심리를 불안하게 자극하다가 서서히 스며드는 공포 한가운데로 우리를 포획하고 마는 것이다. 공포 구현에 있어 놀라움과 즐거움을 선사했던 여타의 매체나 작품들이 후속편에 이르러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게 된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이를테면 〈둠〉은 호러 요소로 과거 큰 인기를 끌었고 세기를 넘어서도 리부트를 비롯하여 새로운 후속편들을 다수 이어갔다. 그러면서 서사의 연장ㆍ삽입, 세계관ㆍ인물ㆍ사물에 관한 설정과 관계망의 추가를 피할 수 없게 되었는데 공포가 발원하는 자리인 공백을 그러한 설명과 규정성의 과잉이 잠식해버린 결과에 대해 이 자리에서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편 지난 여름 〈디아블로2 레저렉션〉의 공개는 오랜 향수와 함께 신선한 열기를 불러왔다. 〈디아블로3〉가 출시된 지도 벌써 십수 년이 지난 상황에서 시리즈 후속작에 대한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제작진이 네 번째 작품을 더욱 어둡고 사실적으로 표현하겠다고 약속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5) 이것이 인상적인 까닭은 3편에서 공포의 부재를 가져온 그들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고 앞으로는 더 음산하고 공포스러운 작품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디아블로4〉가 그들의 계획대로 ‘갓겜’의 진면목을 이어가는 데 성공하려면 언어적 미니멀리즘은 불가결하다. 1) 특정 게임을 민속놀이로 일컫는 용례 가운데 하나는 다음 기사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삼대가 즐기는 한국 민속놀이 ‘스타크래프트’〉, 《게임톡》, 2019.1.29. gametoc.hankyung.com/news/articleView.html?idxno=50637; 리마스터 판 〈디아블로2: 레저렉션〉이 2021년 여름 공개된 후 일대 선풍이 한동안 일어 디아블로 역시 민속놀이에 비유하는 움직임도 없지 않았으나 대세를 이루지는 못했다. 2) 〈디아블로3〉는 출시 첫날 350만 장, 1주일 후 630만 장 판매량을 보였다. 발매가 이뤄진 2012년 한 해 동안의 글로벌 판매량은 약 1,200만 장으로 추산되었는데, 이는 계측이 이뤄진 2013년 당시 기준으로만 보아도 전작 〈디아블로〉와 〈디아블로2〉를 합친 것을 압도한 수치였으며, 〈스타크래프트〉의 기록마저 넘어선 것이라고 한다. 〈'디아블로3' 1200만 장 판매, 확장팩 발표 없었다〉, 《머니투데이》, 2013.2.8. news.mt.co.kr/mtview.php?no=2013020814008169621 3) 〈한 판만 해도 꿀잠…최고의 수면제 게임은?〉, 《데일리게임》, 2016.11.2. game.dailyesports.com/view.php?ud=2016110117545981392_26 4) 이미지들의 출처는 다음과 같은 웹페이지들이며, 오래전부터 이들 밈이 광범하게 유포되었기에 원출처를 확인하기가 매우 어렵다. 〈부작용 없는 완벽한 수면제〉(유머 게시판 사용자 콘텐츠), 《루리웹》, 2018.10.04. 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744/read/39367858, 〈죽었습니다〉(유머 게시판 사용자 콘텐츠); 《이토랜드》, 2019.9.12. etoland.co.kr/bbs/board.php?bo_table=etohumor02&wr_id=650119&mobile=1 5) Andy Chalk, “Blizzard is trying to make Diablo 4 characters look cool while keeping them ‘grounded in reality’.” PCGAMER, 2021.7.1. pcgamer.com/blizzard-is-trying-to-make-diablo-4-characters-look-cool-while-keeping-them-grounded-in-reality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장지영 한국어문학을 전공으로 삼아 주로 근대 비평과 문화사를 공부했으며 식민지 시기 및 해방기의 학술과 관련한 지성사 연구를 이어왔다. ‘게임보이’로서 지냈으나 게임을 잘/많이 하지/알지 못했음을 뒤늦게 안 게이머이다. (철학연구자) 최건 철학연구자로서의 정체성과 게임애호가 및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강의, 강연, 연구, 저술, 번역 활동에 임해왔으며, 현재는 인하대 등에서 학생들과 사유를 공유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 펌프잇업의 플레이 분화에 놓인 '기계'의 의미

    앤서니 던에 따르면 전자제품의 사용자 친화적 인터페이스는 사용자들을 제품에 구현된 가치와 개념을 사용자들이 스스로 제품을 계속해서 사용하는 동안 학습시킨다.1) 이것이 전적으로 맞는 전제라고 가정한다면 게임도 마찬가지일까? 게임은 다른 전자제품들과는 다르다. 일반적인 상품은 그것이 완성되거나 완벽하게 조립된 것으로 제시된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로서의 게임은 완성된 상품이기도 하지만 그 소프트웨어가 제공하고자 하는 게임이라는 상품의 형태는 게이머의 ‘수행’이라는 행위에 의해서 각각의 게이머들에게 다른 방식으로 체험된다. 소프트웨어로서는 완성된 상품이기도 하지만, 게이머가 게임을 수행하고 난 뒤에야 ‘게임’ 그 자체는 완성된다.  < Back 펌프잇업의 플레이 분화에 놓인 '기계'의 의미 11 GG Vol. 23. 4. 10. 편집자 주 - 이 글은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1990년대 이후 전자오락 문화의 변형에 대한 연구, 2023) 4장의 내용의 일부를 가져와 새롭게 재구성한 것입니다. 앤서니 던에 따르면 전자제품의 사용자 친화적 인터페이스는 사용자들을 제품에 구현된 가치와 개념을 사용자들이 스스로 제품을 계속해서 사용하는 동안 학습시킨다. 이것이 전적으로 맞는 전제라고 가정한다면 게임도 마찬가지일까? 게임은 다른 전자제품들과는 다르다. 일반적인 상품은 그것이 완성되거나 완벽하게 조립된 것으로 제시된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로서의 게임은 완성된 상품이기도 하지만 그 소프트웨어가 제공하고자 하는 게임이라는 상품의 형태는 게이머의 ‘수행’이라는 행위에 의해서 각각의 게이머들에게 다른 방식으로 체험된다. 소프트웨어로서는 완성된 상품이기도 하지만, 게이머가 게임을 수행하고 난 뒤에야 ‘게임’ 그 자체는 완성된다. 그런데 게임이라는 것은 보통 비물질적인 무엇인가로 인지된다. 특히 개인용 컴퓨터와 콘솔게임기는 물론이고 스마트폰과 같이 모바일기기를 통해 이루어지는 현재의 게임은 네트워킹을 기반으로 하기에 더욱더 비물질적인 것이라는 상상이 견고해지는 것 같다. 하지만 게임의 수행이라는 것은, 그 어떤 게임이라도 신체와 게임을 연결해주는 인터페이스를 통해 매개되어야만 가능하다. 즉 인터페이스를 통해 게임의 소프트웨어와 게이머가 연결되지 않으면 게임이라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다. 이처럼 게임은 그 물질적인 토대가 확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게임 수행(performance) 혹은 게임 플레이라는 물질적 차원의 행위가 가지는 힘에 주목해야한다. 인터페이스로서의 조작장치와의 상호작용은 게이머가 단순히 게임에 신호를 전달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는 자신의 신체의 움직임을 체험하는 동시에 그 움직임이 화면이라는 인터페이스를 통해 재현되는 것을 종합하여 게이머들의 신체에 각인되는 총체적 감성과 지성이 작동하는 행위이다. 즉 인터페이스를 매개로 이뤄지는 게이머의 게임 수행은 손과 몸으로 ‘사물’을 더듬으며 지혜를 얻는다는 제작(make) 행위와 연결되는 지점인 것이다. 제작 문화(메이커 문화)에서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보는 경험은 주요한 정치적 행위이다. 손과 몸으로 사물을 더듬어가며 지혜를 얻는 것은 사물의 속성을 파헤치고 그 안에 내재된 설계를 간파해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제작 문화의 차원에서 게임을 바라보려는 접근은 있어왔다. 흔히 모드(mod)라고 부르는 ‘플레이어 혹은 이용자에 의한 수정 및 변경’을 통해 게임을 변형시키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 ‘모드’라는 행위는 기술적 소양이 일정부분 쌓여있는 소수의 사람들만 가능한 게임 실천이라는 한계를 가진다. 게다가 모드행위에만 집중한다면 게임을 즐기는 평범한 게이머들이 수동적이며 그들의 게임 실천은 행위능력을 가지지 못했다라는 견해를 갖게 만들 위험성도 있다. 제작문화라는 것이 손과 몸으로 사물을 더듬어가면서 사물의 속성을 파헤치고, 그 설계를 간파하는 것이라고 할 때, 게임 수행은 손과 몸을 이용해 게임기의 인터페이스를 더듬어가며 게임을 이해하는 제작 행위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일반 게이머들도 게임 수행을 통해 게임의 설계에 접근하고, 비판적 제작 혹은 해킹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행위를 할 능력이 있지 않을까? 이제부터 〈펌프잇업〉이라는 게임이 명확한 게임성을 갖고 있지 못했던 시기, 즉 하나의 게임기에서 다른 게임을 즐길 수 있었던 시기를 되짚어보며 확인해보도록 하자. 게임의 공연성 1990년대 말부터 리듬게임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게임이 전지구적 유행을 하게 된다. 이는 1997년 일본 코나미라는 회사의 〈비트매니아〉의 출시 이후로 시작해 〈댄스댄스레볼루션〉의 대히트에 기인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펌프잇업〉이 크게 유행했다. 〈펌프잇업〉은 춤이라는 놀이가 게임에 매개되어 들어간 아케이드 게임이다. 리듬게임은 전자오락실을 일종의 공연장과 같은 분위기로 만드는 효과가 있었는데, 〈펌프잇업〉은 이런 게임의 공연성을 한층 더 강화하였다. 전자오락실 업주들의 업주들은 이런 〈펌프잇업〉의 공연성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펌프잇업〉을 위시로 한 리듬게임의 유행에 따라 어두컴컴하던 전자오락실은 점점 환해지고, 외부에서도 〈펌프잇업〉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잘 지켜볼 수 있게 하려고 하였다. 또한 〈펌프잇업〉의 숙련도가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가 있는 이용자에게 게임을 공짜로 즐길 수 있게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는데, 이는 일종의 광고 수단으로 사람들을 자신의 업장으로 유인하는 전략의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퍼포먼스 혹은 프리스타일 플레이 게이머들은 게임 설계에 내장된 규칙에 따라 게임을 진행한다. 대다수가 알고 있겠지만, 〈펌프잇업〉의 규칙은 간단하다. 특정한 곡을 선택하면, 게임이 제공하는 리듬에 맞춰 화면에 표시되는 화살표(노트)에 맞춰 발판을 발로 밟는 것이다. 〈펌프잇업〉이 게이머들에게 요구하는 목표는 두 가지이다. 정확하게 발판을 밟아서 일정 점수를 획득하여 다음 단계로 진행하는 것이다. 두 번째 목표는 다음 단계로 진행하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고득점을 획득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게임이 게이머에게 제시하는 목표와 게이머들이 게임을 하고자 하는 목적이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다. 게이머들이 궁극적으로 게임을 하는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임이 게이머에게 제시하는 목표를 완수해가면서 재미를 찾을 수도 있지만, 꼭 그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할 필요는 없다. 〈펌프잇업〉은 앞에서 이야기했듯 춤이라는 것이 매개되어 들어가 있는 공연성이 강한 게임이다. 숙련도를 쌓은 게이머들에게 〈펌프잇업〉의 플레이는 게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게임을 바라보는 구경꾼들에게 보여주는 ‘공연’이기도 했다. 따라서 게이머들은 그들이 흔히 갤러리라고 칭하던 구경꾼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화려한 게임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고득점을 노리는 게임에서 구경꾼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공연으로 변모하자 일정 점수를 획득해서 게임을 다음 단계로 진행시키는 규칙은 중요하지만, 고득점을 획득해야한다는 게임의 규칙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된다. 이렇게 〈펌프잇업〉은 춤을 추면서 구경꾼과 상호작용한다는 새로운 게임으로 변모해간다. 이렇게 변화된 새로운 게임에서는 자신들이 구상한 안무를 위해 의도적으로 게임에서 밟으라고 강제하는 발판을 밟지 않아도 ‘게임오버’가 되지 않는 선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신들의 보여주고 싶은 안무를 위해 1P와 2P의 발판을 모두 이용하는 ‘더블 모드’가 선호되었다. 이렇게 되자 게임성이 변화하자 게임의 인터페이스를 이용하는 방식도 변화되었다. 게이머들의 안전을 위해, 또 정확하게 발판을 밟을 때 이용하라고 설치된 안전 바를 잡는 것은 추한 행동이 된다. 안전 바를 뛰어넘는다던가 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안무에 이용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안전 바는 자신들의 퍼포먼스를 제약하는 방해물로 인식되었다. 게임제작사도 자신들의 설계와는 다른 방식으로 게임이 이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자신들의 설계를 고수하기 보다는 오히려 이런 이용방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이는 〈펌프잇업〉이 전국적인 유행을 하자 게임 제작사가 개최한 전국대회가 어떻게 치러졌는지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심사위원들이 피플크루 막 이랬어요. … (중략) … 결국 비보이들이 심사위원을 봤어요. … (중략) … 심사도 일단 뭘 얼마나 멋있게 하던 간에 하다가 죽으면 탈락이에요. 그거는 확실했어요. 그 규칙은 있었어요. 하다가 죽으면 안 된다. 점수도 중요하긴 하죠. … (중략) … 그러니까 심사위원석에 있으면 이게 보여요. 이 사람이 딱 추고 있는 걸 보면 이 사람은 (춤)선이 있는 사람이다. 잘 춘다. 한눈에 확 들어오는 그런 사람들을 따로 체크를 해두죠.” “이제 2회 대회 때 우승했을 때 상금 500만 원에 부상으로 컴퓨터 하나 그리고 안다미로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자격 같은 것도 있었어요. … (중략) … 이제 조금 잘 하는 사람들한테 채보 작업 5) 을 맡겼어요. 그러니까 이제 춤추고 이렇게 좀 유명하고 잘하는 사람들한테 채보 작업을 맡겨서 (중략)” 명확한 심사기준은 오로지 ‘게임 오버’가 되지 않는 것이었고, 게이머들이 어떻게 춤을 추는가를 심사했다. 고득점이라는 〈펌프잇업〉에 내장된 규칙은 동점자 처리용 정도로만 사용되었다. 발판이라는 인터페이스는 게이머의 ‘발’의 움직임만을 요구했으나 게이머들은 발판이라는 인터페이스 위에서 자신의 ‘온 몸’을 이용해 게임을 적극적으로 즐겼고, 이런 게임 수행은 게임제작사에도 적극적으로 수용되어 게임의 방향성을 변경시키는 비판적 제작 행위 혹은 해킹적 실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스테퍼들의 창조적이면서도 수동적인 플레이 〈펌프잇업〉에서 퍼포먼스 플레이만이 유행을 했던 것은 아니다. 일명 ‘스테퍼’라고 불린 집단도 존재했다. 이들 역시 게임기의 발판이라는 조작장치 위에서 발 뿐만 아니라 무릎, 손, 머리 등을 이용한다. 하지만 이들이 퍼포먼스를 펼친 이유는 퍼포머들과는 달랐다. 이들은 게임이 제공하는 난도로 표현되지 않을 만큼 더 높은 수준의 숙련도를 가지고 있음을 뽐내고 싶었던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퍼포머들은 같은 기계를 이용하지만 다른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즉 〈펌프잇업〉이라는 ‘무대’는 공유하지만 ‘다른 공연’을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퍼포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멋’이지만 스테퍼들에게 중요한 것은 ‘점수’이다. 쉽게 발로만 누르는 것이 아니라 무릎, 손, 머리 등으로 발판을 누르면서 스스로 난도를 높였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점수를 획득하는 것을 통해 그들의 숙련도를 보여준다. 게임이란 무릇 후속작이 나올 때마다 게임의 난도가 올라 신규 게이머들의 유입이 어려워진다는 경향이 존재한다. 채보 작업에 스테퍼들이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이런 경향이 급속도로 진행된다. 왜냐하면 스테퍼들에게는 난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특별히 안무를 짜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이 가능했으며, 어려운 채보를 진행하는 도중에 퍼포먼스를 구사하는 편이 자신들의 숙련도를 더욱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플레이는 난도를 높이기 위해서라는 측면에서는 창조적인 게임 수행이지만, 동시에 게이머 스스로가 게임의 재미를 능동적으로 찾기 보다는 게임이 제공하는 장애믈을 넘어서는 것에 의존한다는 점에서는 수동적인 플레이라 할 수 있다. “옛날에는 이제 그거(퍼포먼스)를 하면서 위에서 멋있게 하고 그런 것들이 먹히는 시대였잖아요. 지금은 사실 그런 게 이제 잘 통용되지 않는 세상이 온 거죠. 펌프라든가 그런 것도 그때 당시에는 대중적으로 사람들이 그런 걸해도 괜찮다는 분위기가 있었으니까 사람들이 구경하고 했지만, 요새는 글쎄요.” 퍼포머와 스테퍼들이 가지고 있는 게임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각은 경합을 했고, 결국 스테퍼들이 지배적인 게이머 집단이 되었다. 퍼포머들의 공연은 조금씩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취급받기 시작했고 게임기에 손상을 가하는 옳지 못한 행위로 간주되기까지 되었다. 스테퍼들이 바라는 대로 〈펌프잇업〉은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게임에서 무수히 쏟아지는 노트들에 대응해서 발을 이용에 입력하는 게임, 즉 본래의 〈펌프잇업〉이 강제하는 고득점을 얻는 것이 중요한 게임으로 또다시 변경되었다. * 초창기 〈펌프잇업〉의 채보.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DK8GyszjmUg&t=53s 에서 캡쳐. 인터페이스와 신체의 결합의 효과 〈펌프잇업〉은 한때 추한 행위로 여겨졌던 안전 바를 부여잡고 일반적 인간의 신체적 능력을 벗어난 빠른 발놀림, 즉 피지컬을 요구하는 게임으로 변했다. ‘온 몸’을 이용해 게임이 강제하는 규칙에서 벗어난 다른 의미들을 생산하는 게임 수행은 어려워졌다. 이제 게이머들은 안전 바를 두 팔로 움켜쥐고 자신의 몸을 기계와 연결시킨다. 이렇게 기계와 연결된 게이머가 게임을 수행하기 위해 이용하는 것은 자신의 다리 뿐이다. 춤이 매개된 온 몸을 이용하던 놀이는 전자오락기의 인터페이스에 자신의 몸을 연결해서 고정시키고 ‘다리’만을 사용한다. 더 이상 나뉘어질 수 없는 의미의 개인(indivisual)으로 존재했던 게이머들은 이제 나뉘어질 수 있는 가분체(divisuals)라는 것이 된다. 〈펌프잇업〉의 발판이라는 인터페이스는 과거나 현재나 모두 살아있는 인간 게이머의 발동작을 요구했으나, 과거에는 숙련도가 쌓였다면 게임의 규칙을 벗어나 창조적으로 새로운 의미생산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펌프잇업〉은 온몸을 움직이며 발판이라는 인터페이스와의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상체를 인터페이스에 연결하고 고정한 뒤 자신의 몸에서 ‘상체와 하체를 분리’시킨다. 이렇게 상체는 게임기의 일부가 되고, 신체에서 분리된 하체는 게임을 수행한다. 하체의 게임 수행은 이전처럼 무언가를 표현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신체를 얼마나 잘 제어하는지를 보여줄 뿐이고 게임에 입력되고 수치화되는 하체의 움직임만이 중요해진다. 게임을 잘 하기 위해서는 자기 신체의 역량을 증진, 즉 피지컬을 계발해야한다. 얼마나 잘 계발했는가는 게임 화면이라는 인터페이스에 점수와 등급으로 나타나고, 이것을 통해 다른 게이머들과 경쟁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춤이라는 의미 생산의 요소는 〈펌프잇업〉이라는 게임에서 희미해진다. 한때 두 가지 차원에서 즐길 수 있던 〈펌프잇업〉은 명확한 게임성을 가진 하나의 게임으로 수렴되었다. 제품의 디자인이 품고 있는 이데올로기를 학습할 것인가? 아니면 제품의 설계에 내장된 행위유발성에 저항하여 방향성을 재설정 할 것인가? 이것은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당신이 게임과 연결되는 인터페이스를 어떻게 활용하면서 플레이하는가에 달려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술문화연구자) 전은기 문화인류학과 문화연구를 전공하고, 현재 청계천기술문화연구실과 한양대학교글로벌다문화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압둘 와합과 〈21DAYS〉를 플레이하다

    필자는 최근 압둘 와합과 〈21Days〉를 같이 플레이해 보았다. 한국 사회에서 난민을 다룬 이야기가 드문 가운데 그것도 소설이나 영화가 아닌 게임적 형식이라는 점이 꽤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압둘 와합(Abdul Wahab Al Mohammad Agha)은 시리아 출신으로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 활동을 하다 시리아 내 한국 유학생들을 친구를 둔 인연으로 2009년에 처음 한국에 유학을 오게 되었다. 하지만 2011년 고국의 민주화 시위 이후 복잡하게 전개된 내전 때문에 고향에 돌아갈 수가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 때부터 그는 ‘헬프 시리아’라는 단체를 만들며 시리아 문제의 실상을 알리고, 난민들을 돕는 활동을 시작했다. < Back 압둘 와합과 〈21DAYS〉를 플레이하다 04 GG Vol. 22. 2. 10. 시리아 난민을 다룬 시리어스 게임 〈 21Days 〉(2017)는 독일에 도착한 시리아 난민 모하메드 쉐누가 자신의 가족들을 기다리며, 21일동안 노동과 교육, 외로움과 편견으로부터 견뎌내는 경험을 다루고 있다. 서울대 정보문화학 연합전공 수업 〈게임의 이해〉를 통해 만난 현유지, 고은비, 최우빈, 김진형, 이원석 등이 이정엽 교수의 코디네이팅을 받아 출시했다. 제작자들은 게임연구자 이안 보고스트의 시리어스 게임이론을 기초로 플레이어가 퀘스트 완료에 성공하기보다는 오히려 실패하도록 만듦으로써 난민의 현실을 드러내는 게임 디자인을 추구했다. 필자는 최근 압둘 와합과 〈21Days〉를 같이 플레이해 보았다. 한국 사회에서 난민을 다룬 이야기가 드문 가운데 그것도 소설이나 영화가 아닌 게임적 형식이라는 점이 꽤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압둘 와합(Abdul Wahab Al Mohammad Agha)은 시리아 출신으로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 활동을 하다 시리아 내 한국 유학생들을 친구를 둔 인연으로 2009년에 처음 한국에 유학을 오게 되었다. 하지만 2011년 고국의 민주화 시위 이후 복잡하게 전개된 내전 때문에 고향에 돌아갈 수가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 때부터 그는 ‘헬프 시리아’라는 단체를 만들며 시리아 문제의 실상을 알리고, 난민들을 돕는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난민에 대한 막연한 혐오가 없어지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스토리텔링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고 말한다. 스토리텔링은 나와 다른 자의 입장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그들 또한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만드는 유일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같은 이야기라도 게임적으로 경험한다는 것은 어떤 특이성이 있을까? 당사자 입장을 가진 플레이어로서 압둘 와합이 느낀 바를 중심으로 기록해 보았다. 이는 컴퓨터 게임이라는 형식에 대해, 타자의 입장을 플레이한다는 윤리적 당위를 넘어서 그 입장을 어떻게 구조화하고 설계하는 것이 더 좋을 지 논평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몇 가지 비판적인 발언으로 시리아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감에 따라 여권 갱신 등이 자유롭지 않아 활동에 제약이 생긴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귀화뿐이었다. 압둘 와합은 2020년 10월 한국에 귀화했다. * 교사 김혜진이 저술한 〈내 친구 압둘와합을 소개합니다〉(2021, 원더박스) 표지 - 게임 하기 앞서 Q: 압둘 와합은 게임을 즐겨했었나? A: 유년시절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주로 경험해 보았다. 축구게임같은 스포츠 게임을 친구들과 했었다. 게임을 자주 하기에는 언제나 부모님의 잔소리가 많으셨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웃음) 요즘 사람들처럼 깊게 파고 든 적은 없었다. Q: 오늘 플레이할 게임은 조작이 어렵거나 복잡한 계산이 필요하지는 않으니 저와 상의하면서 플레이하면 될 것 같다. A: 좋다. - 0Days 압둘 와합은 게임의 첫장면, 난민관리국에서 모하메드의 난민인정이 신속하게 이뤄지는 부분에서 놀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이 게임이 시작부터 가장 어려운 것을 해결한 것 같다고 말했다. 현실에서는 난민인정을 받기까지 신원조회부터 적응교육까지 여러 준비를 해야 한다. 그는 “게임에서지만 가장 어려운 것을 시작부터 이루게 되어 기쁘네요.”라고 말했다. 제작진에 따르면 이같은 상황은 게임 디자인 안에서 의도된 것이었다. 그 동안 난민 소재의 시리어스 게임들이 주로 유럽지역 탈출루트 이동의 어려움이나 난민캠프에서 어려움을 극적으로 게임화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21days〉는 그러한 고난이 끝나고도 발생하는 일상의 어려움을 시뮬레이션 하고자 했다. 그들이 한 사회에 들어와 겪는 노동의 고단함과 차별 또한 난민의 고통이지만 표현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게임 상에서 주인공 모하메드는 자신의 난민인정 이후 아내와 아들을 독일에 무사히 도착하게 해 UN의 가족결합원칙 하에 난민인정을 받게 만드는 일을 목표로 삼게 된다. 이제부터 플레이어는 이를 위해 브로커를 고용할 돈을 벌어야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 압둘 와합은 모하메드가 받아든 난민인정 증명서의 국적이 ‘RYSIA’인 점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이것이 제작진의 오타인가 싶었지만 이 또한 의도된 것으로 실제하는 시리아 난민뿐 아니라 모든 난민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특정 국가를 표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같은 게임적 의도는 게임이 끝난 후 제작자에게 문의하여 압둘 와합에게 알려주었다. - 1 Days 우리는 모하메드를 난민관리국이 소개해 준 아파트 공사장에서 일하도록 했다. 공사장 반장에게 일에 대해 설명을 받는 데, 자막 곳곳에 ㅁㅁ표시로 구멍이 나서 자세한 내용을 알아듣지 못하게 되었다. 아직은 모하메드의 언어능력이 좋지 않아 독일어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점을 표현한 것이다. 벽돌을 나르는 일 같은데, 대충 알아듣고 한 것으로 처리가 되었다. 3시간 30분을 일하고 80시리를 받았다. 압둘 와합은 이 같은 게임적 표현이 재밌다고 평가했다. “제가 한국에 처음 와 일할 때도 열심히 일하라는 것인지, 그만 두라는 것인지 알아듣기 어려워 고생한 경험이 떠올라요”라고 말했다. 모자란 언어능력이 신경쓰여 공사장 아래 위치한 어학원에 등록해 독일어를 공부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압둘 와합은 이 부분은 게임적인 연출같다고 말한다. 실제로 난민들은 어학교육을 이수하는 조건으로 생활비를 보조받기에 자신이 개인적으로 등록하는 일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언어학습은 〈21Days〉의 중요한 요소로 언어능력이 모자랄 때, 일을 맡지 못하거나 노동 시 급료가 깍이는 패널티가 있다. 심지어 어학원 등록비는 40시리로 비싸다. 벌면 족족 어학원비로 나가도록 디자인되어 있어 이 게임의 난이도에 영향을 끼친다. 필자는 지속적인 언어학습이 없을 때 외국인이 사회에 적응하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압둘 와합에게 주었다. 노동도 하고 공부도 했으니 우리는 모하메드에게 음식을 먹이기로 했다. 더 싼 맥도날드가 있었으나 그곳에는 돼지고기가 섞인 음식이 많아 실제로도 무슬림들은 꺼려 한다고 한다. 첫날이니 아랍 음식점으로 가서 케밥과 허머스, 페투쉬, 팔라펠 중 무엇을 먹을 지 골랐다. 압둘 와합은 웃으며 비싼 음식 순서가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비싼 순서가 팔라펠→페투쉬→허머스→케밥 순서가 아니라 케밥(고기)→페투쉬(샐러드)→허머스(병아리콩으로 만든 소스형 음식)→팔라펠(병아리콩으로 만든 고로케) 순이 대충 맞을 것 같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게임상에서 케밥은 가성비가 좋은 음식이니 우리는 앞으로도 자주 케밥을 먹어야 겠다고 농담을 던졌다. - 2Days 어제보다 떨어진 멘탈 지수가 신경쓰였다. 혹시 지도상에 보이는 모스크에 가서 기도를 하면 이 수치가 올라갈 수 있을 지 궁금했다. 모스크에 가는데, 교통비가 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게임에서 이동은 곧 시간과 돈을 소모한다. 궁금하다고 아무 곳이나 가기보다는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스크에 가니 같은 처지에 있는 난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과 대화 도중 모하메드는 “그래도 이 나라만큼 난민들을 환영하는 나라는 없어”라고 대답했다. 압둘 와합은 게임에서 언급하고 있는 독일 메르켈 총리는 난민들 입장에서는 정말 좋은 사람이며, 훌륭한 정치가라고 평가했다. 메르켈은 각종 난민문제로 지지율이 흔들리는 가운데 뚝심있게 난민유입 정책을 체계적으로 세워나가 여론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모스크에서 기도를 하니 멘탈 수치가 올랐다. 압둘 와합은 한국에 와서 고국이 어려움에 휩싸일 때,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내 계획은 무엇이고 그 진행과정대로 진행하고 있는 지, 나는 왜 무엇을 위해 고생해야 하나 같은 질문을 던지며 매일 기도했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이 게임에서 모스크에 가서 기도하는 일이 멘탈점수를 높이는 것은 사실적인 표현이라고 말했다. 귀가하는 도중 숙소 앞에서 노래하는 버스커에게 팁을 주었다. 무려 10시리나 되었기에 몇 번을 망설이다가 주었다. 혹시나 독일인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압둘 와합은 멘탈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고독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결정이 게임 상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 지 기대하며 우리는 버스커 친구에게 돈을 주었다. 그는 시리아에 파병된 아들을 둔 자로 훗날 자신이 일하는 라이브 카페를 소개해 주었다. -3 Days 아내가 보내달라는 200시리를 보내야 하는 날짜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그 동안의 사치?를 반성하고 일을 열심히 하기로 했다. 배고픔 수치가 절반 이상 떨어져도 계속해서 오전 오후로 일하기로 했다. 공사장에 일이 없어 레스토랑에 취직해 설겆이를 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도 어학원은 다니려고 노력했다. 아무리 급해도 공부를 멈추면 기회가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 앞에는 난민을 혐오하는 남자가 “ㅁㅁ나는 무슬림”이라고 모하메드에게 외쳤다. 굶어가면 모은 돈 중 200시리를 아내에게 송금했다. 배고픔 수치가 너무 떨어져 있어, 싫어도 맥도날드에 가서 핫도그를 먹고 이른 잠을 청했다. - 4 Days 아침부터 교통비가 없는 상황이 되어 모하메드는 40분이나 걸려 모스크에 가야 했다. 압둘 와합은 별 다른 현지인 커뮤니티에 가입하지 못하고 직장과 모스크 정도만을 가야하는 게임안의 상황이 너무 리얼하며 동시에 안타깝다고 말했다. 유럽식 레스토랑이 선택지에 생겼지만 가격이 너무 비쌌고 동시에 돼지고기가 든 음식이 많았다. 게임 상에서 먹을 수는 있었지만 플레이어인 압둘 와합은 선택하지 않았다. 공원에 들려 “우리 나라에도 가난한 사람이 많다고” 주장하는 노인을 만났다. 압둘 와합은 자신이 만났던 어떤 한국 할아버지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결국엔 그 사회에서도 대우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외국인에 대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 현실이 드러난다고 평가했다. 물론 공원에는 모하메드에게 선의를 보이는 시민도 있었다. 다시 돈을 벌어야 하니 공사장까지 걸어가 노동을 했다. - 5 Days 아내의 편지가 도착했다. 가방을 도둑맞아서 송금한 돈을 다 잃어버렸다고 한다. 가족에게 3일안에 다시 200시리를 보내야 하게 되었다. 교통비가 없어 역시 또 공사장까지 걸어가야 했다. 오전 오후 일을 했으니 아랍식당에 가는 호사를 누리기로 했다. 배고픔이 조금 가시면서 멘탈도 약소하게 오르게 되었다. 버스커 친구가 일하는 카페 블루노트에 갔더니 입장료 25시리를 지불하라고 한다. 술과 음악을 즐기는 현지인들을 부러워 하며 친구의 노래를 들었다. 취객 중 하나가 이민자였는데, 그는 모하메드에게 “어허 독해져야 해”라고 충고했다. 순간 매우 한국적인 충고라서 압둘 와합과 나는 한참 웃었다. 압둘 와합은 아직 해금되지 않은 지역 중 무엇이 있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문화원과 유원지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장소를 모하메드가 다녀야 그 사회에 대한 호기심도 유지하고 멘탈도 건강해진다는 논리였다. 실제 본인의 경험을 말하는 것이었다. 모하메드는 이제 숙소 앞에서 노래를 부르던 버스커 친구와 이런 저런 속내를 털어놓으며 고향에 있던 부모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압둘 와합은 시리아 내전이 일어나자 대개의 나이든 부모님들이 피난을 고사하고, 젋은 자식들부터 탈출시켰다고 말해 주었다. - 6 Days 아내에게 돈 독촉하는 편지가 왔다. 플레이어에게 긴장감을 주려는 게임 내 장치는 이해되지만 돈 이야기만 들어야 하는 모하메드의 상황이 피로하게 느껴졌다. 돈을 아껴야 하기 때문에 맥도날드로 가서 가장 싼 햄버거를 먹었다. 조금 먼 곳에 주유소 일자리가 해금되어 있어 세차 일을 했다. 압둘 와합은 독일의 난민 정책은 실제로는 난민에 대한 직업훈련코스가 정비되어 있어, 게임처럼 공사장과 식당, 주유소 같이 일용직만 전전하게 만들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독일 외 지역 대개의 난민들은 저런 악순환 고리 속에서 바보가 되어가기 때문에 또 한편으로는 사실적인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공원에서 다시 만난 할아버지는 역시 또 난민혐오적 발언을 한다. 모하메드는 최대한 정중하게 대답한다. 압둘 와합은 이 상황이 모하메드의 심성이 착한 것이 아니라 싸움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취하는 언행이라고 해석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뭔가 한탕을 노리는 룸메이트를 만났다. - 7 Days 주유소에 일이 없어 공사장으로 가서 일을 하게 되었다. 일을 계속 했더니 멘탈과 배고픔이 계속 떨어졌다. 아내에게 돈을 송금해야 하기 때문에 모하메드에게 밥도 먹지 않고 일만 시켰다. 이른 오후에 숙소에 들어가 잠을 잤다. - 8 Days 아내로부터 브로커를 고용하기 위해 250시리가 필요하다고 편지가 왔다. 압둘 와합과 나는 모하메드의 멘탈과 배고픔 수치의 관리를 완전히 포기하고, 오직 빠르게 일만 시키기로 했다. 배고픔이 거의 바닥을 치니 캐릭터는 느려지고 멘탈 수치는 점점 감소되고 만다. 모하메드는 공원의 할아버지와 티격태격 대화를 나누었다. 그가 IS에 대해 욕하고 있기에, 우리도 그 IS를 피해서 도망친 사람들이라고 답변했다. 압둘 와합에게 이 할아버지의 생각이 혹시 바뀔 수 있을까 질문해보았다. 압둘 와합은 자신의 경험으로는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쉽게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고 말했다. 모하메드는 이 날도 녹초가 되어 잠이 들었다. - 9 Days 아내는 기차역 근처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고 연락을 했다. 헤이트 스피치를 하는 남자를 또 숙소 앞에서 만났다. 배고픔과 멘탈 수치가 바닥이 치는 가운데, 일할 의욕도 공부할 의욕도 잃어버렸다. 모스크에 가서 간신히 멘탈수치를 높였다. 하지만 이미 바닥난 멘탈과 배고픔에 모하메드는 일할 의욕을 잃었다. 멘탈수치를 조금이라도 높이고자 카페 블루노트에 가서 음악을 들었지만 크게 오르지는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숙소로 이른 귀가를 했다. 룸메이트는 새로운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뭔가 나쁜 일인 것처럼 보였다. 잠을 잤다. 아내가 말한 250시리를 모으지 못한 상황이다. - 10 Days 아내로부터 메일이 도착했다. 아들 압둘이 아프다고 한다. 오늘까지 반드시 기차표를 살 돈을 보내야 하는데 여의치 않았다. 일할 의욕이 사라져서 모스크에 갔다. 약간의 멘탈 회복이 되어 공사장에 갔으나 결국 작업명령을 못 알아들어 사고를 치게 되었다. 급료가 깎였다. 결국 아내에게 보낼 돈을 다 벌지 못하고 숙소에 왔다. 숙소에 도착하니 룸메이트가 3층 카심의 방으로 오라는 쪽지를 남겼다. 주인 없는 방에 가서 룸메이트 메흐디의 지갑이 떨어진 것을 보게 되었다. 훔칠까 말까 고민하다 훔쳤다. 이것만 훔치면 아내에게 돈을 보낼 수 있으니까. 아내에게 송금하고 돌아오니 메흐디가 지갑을 잃어버려서 화가 나 있었다. - 11 Days 아내가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했다. 내일까지 다시 200시리를 보내야 한다. 하지만 모하메드는 멘탈도 체력도 바닥이 나서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다. - 12 Days 도저히 방법이 없어 모하메드는 모스크에 갔다. 멘탈 수치가 조금 올랐지만 돈도 없고, 여전히 배고프다. 어학원을 다닌 지 오래되니 공원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대화도 잘 들리지 않게 되었다. 아내에게 송금하지 못했다. - 13 Days 아내와 아들에게서 소식이 없다. 모하메드는 이제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렸다. 이렇게 배드엔딩을 보게 된 압둘 와합과 나는 매우 허탈한 마음이었다. 우리는 모하메드의 가족이 도착하기 까지 21일 중 겨우 13일을 버틴 것이었다. 이 게임을 더 나은 방식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21Days〉는 일반적인 세이브 로드 시스템이 없었다. 완전히 새로 시작하거나 지난 날 중 하나를 선택해 그 이후의 날짜는 되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재플레이가 가능했다. 다음날 터키로 실제 출국을 앞 둔 압둘 와합이 사정상 빠진 이후, 필자는 게임 4일차로 되돌아 가 플레이 해 보았다. 하지만 게임 상의 모하메드가 겪는 현실은 소매치기의 유혹과 범죄가담 등으로 더욱 더 암울해져 갔다. 노동조건은 가혹해지고 건강상태는 나빠지니 필연적으로 옳지 못한 길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가족과 상봉하는 날짜가 다가오지만 내용상으로 결코 좋은 엔딩이 아니었다. 이 게임은 성실한 노동자가 된 모하메드의 행복한 가족상봉은 애초 염두에 두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 스팀에 진열된 이 게임에 대한 평가로 누군가 ‘순진한 프로파간다’라고 적어놓았는데 세상에 프로파간다를 이렇게 암울하게 재현하는 법은 없을 것이다. 난민들의 입장을 미화시키기는 커녕, 그들의 행동이 필연적으로 어긋나도록 디자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게임은 깔끔하게 클리어하도록 만든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로 하여금 실패시켜 그 원인에 대해 질문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 게임 플레이 후 소감 1회차 게임이 끝난 뒤 압둘 와합에게 아래와 같이 질문하였다. Q: 난민문제에 대한 게임적 접근법에 대한 본인의 의견은? A: 다양한 방식으로 타인의 문제를 다루는 일은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뉴스나 영화도 좋지만 게임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특이성이 분명 있다고 본다. 5년 전에 한 시리아 출신인 압둘라 알 카람이라는 친구를 만났는데 그는 직접 컴퓨터 게임을 만들어 난민 포비아와 이슬람 포비아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그는 플레이어들에게 게임을 통해 시리아 사태를 경험시켜 난민들에 대한 선입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싶다고 했다. 압둘라 알 카람의 게임 [〈 Path Out 〉(2017)]의 초반부 한 씬은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내전이 발발하기 직전 시리아인의 평범한 생활상을 경험하던 중 플레이어는 도시의 골목에서 낙타를 발견하게 된다. 대개의 플레이어는 당연히 낙타를 향해 타기 위해 돌진한다. 그 때 프로그래머는 게임 화면에 실사화면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시리아인들이 낙타를 타고 다닐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이며 또 하나의 오리엔탈리즘이라고 일갈한다. 게임 플레이와 다큐적 표현, 가벼움과 진지함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나도 그 때부터 게임의 가능성에 대해 알게 되었다. 게이머 세대에게 게임을 통해 세계의 문제를 제기하는 일은 매우 필요하다. Q: 〈21Days〉는 의도적으로 배드엔딩만을 보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A: 그렇다. 아마도 이 게임은 난민의 고난을 체험시켜 현실을 환기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 같다. 게임을 통해서 직접 당사자가 되는 경험을 주는 이런 시뮬레이션은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개발자 분들이 난민이 하나의 사회에 편입되는 과정을 테마로 후속작을 따로 만들어주시도 좋을 것 같다. (웃음) 중간 중간 모하메드가 범죄의 유혹에 빠지는 데 실은 이런 결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희망’이 필요하다. 희망이 높은 자는 범죄의 선택지를 선택할 수 없는 디자인도 멋지지 않을까? Q: 게임적인 구조 안에서 희생되는 현실의 디테일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A: 이러한 현실적인 요소들 하나 하나 다 신경쓰다 보면 게임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게임은 복잡한 현실에 대한 최대한 단순한 구조적 분석을 바탕으로 하기에 중요한 것은 게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Q: 만약 이 게임에 해피엔딩이 가능하려면 어떤 요소를 추가해 달라고 말하고 싶은가? A: 게임 안에 희망(hope)이라는 수치를 추가하고, 모하메드의 선택지에 여행과 놀기를 집어넣어 반영하고 싶다. 실제로 이러한 장소들은 난민으로서 내게 큰 도움이 된 적이 있다. 현지 독일인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커뮤니티도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웃음) 난민이나 이주노동자가 그 사회에 잘 적응하는 방법은 그 곳을 즐겁게 느끼는 일에서 시작한다. 실제로 이 게임의 주인공처럼 일만 하는 사람은 고독을 견디지 못한다. 그런 사례를 자주 보았다. 일만 하다가 멘탈이 무너지는 사람들이 많다. - 재현에서 아쉬웠던 점 압둘 와합은 모하메드가 게임상에서 아내에게 돈을 송금할 때 ATM기를 사용하는데, 실제로는 그리 용이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갓 난민지위를 얻은 자가 유럽밖으로 돈을 보내는 일에는 여러 절차가 필요하다. 차라리 모하메드쪽에서 브로커를 고용하는 방법이 현실적이라고 말한다. 또한 게임 상에서 아내에게 메시지를 받을 때, 컴퓨터 메일로 받는데 실제로는 스마트폰 문자로 소통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내의 상황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동하는 가운데 컴퓨터를 쓰는 행위보다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편이 기동성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실제 난민들이 되도록 좋은 스마트폰을 갖고 있으려는 이유다. - 게임과 사회 게임 플레이가 반드시 퀘스트 수락과 클리어만으로 이루어질 필요는 없으며, 때로는 현실의 부조리를 시뮬레이션해 보다 나은 질문을 유도하기 위해 설계될 수 있다는 것을 〈21Days〉의 사례는 잘 보여준다. 게임체험을 내적 구조 안에 갇힌 유희가 아니라 현실 밖으로 질문하는 하나의 사고방식으로 여길 때 게임은 사회와 또 다른 연결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게임의 개념을 무엇이든 접속 가능한 매개의 개념으로서 상상하면 게임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재미의 회로와 현실의 회로 사이를 연결하는 일은 여전히 발명중이며, 이 발명품들로 게임의 역사는 지금보다 더 다양한 계보를 가질 것이다. 옳음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다름을 위한 투쟁이라는 점에서 〈21Days〉를 응원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오영진 2015년부터 한양대학교 에리카 교과목 [소프트웨어와 인문비평]을 개발하고 [기계비평]의 기획자로 활동해 왔다. 컴퓨터게임과 웹툰, 소셜 네트워크 등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문화의 미학과 정치성을 연구하고 있다. 시리아난민을 소재로 한 웹반응형 인터랙티브 스토리 〈햇살 아래서〉(2018)의 공동개발자이다. 가상세계에서 비극적 사건의 장소를 체험하는 다크투어리즘 〈에란겔: 다크투어〉(2021.03.20-21)와 학술대회 [SF와 지정학적 미학] 연계 메타버스 〈끝나지 않는 항해〉(2012.06~19)를 연출했다.

  • 거대전쟁기계와 게이밍, 전 지구적 지각의 병참학 - 세계체제 자본주의 게임공간의 알레고리

    이 냉혹한 전지구 권력의 게임공간 안에서 플레이어들은 힘의 수직적 전달자, 말 그대로 행위의 주체가 아닌 논 플레이어블 캐릭터(None Playable Character)가 된 것은 아닐까? 우리에게 전쟁은 이제 단순히 TV나 소셜미디어에서 흘러나오는 스펙타클이 아닌, 실존의 위협이라는 사실이 인지되어야 한다. “전쟁, 전쟁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 Back 거대전쟁기계와 게이밍, 전 지구적 지각의 병참학 - 세계체제 자본주의 게임공간의 알레고리 25 GG Vol. 25. 8. 10. 시뮬레이션, 지각의 재목적화 혹은 전술화 먼 미래, 22세기 말 우주로 진출한 인류는 태양계 외곽에서 외계 종족 ‘버거’와 조우한다. 버거는 인간을 적으로 간주하고 두 차례 지구를 침공하지만 지구 함대는 가까스로 막아내고 3차 전쟁을 준비한다. 지구인들은 뛰어난 상황 판단, 전술 지휘 능력을 지닌 아이들을 선발해 게임으로 그들을 훈련시킨다. 이 게임은 각각 ‘마인드 게임’, ‘배틀 게임’, ‘함대 지휘 시뮬레이션’ 세 가지로 이뤄져 있다. ‘마인드 게임’은 심리 분석용 롤플레잉 게임, ‘배틀 게임’은 무중력 공간에서 펼쳐지는 분대 단위 전투 게임이며, ‘함대 지휘 시뮬레이션’은 대규모 함대를 통제해 싸우는 지휘 게임이다. ‘엔더 위긴’은 특출난 재능을 지닌 유망주로, 유년 학교에서 사령관 학교까지 승승장구하며 성장한다. 엔더는 졸업 시험으로 전 인류 군대를 이끌고 버거의 모행성을 침공하는 함대 결전 시나리오를 플레이하는데, 엄청난 아군 희생, 비인간적이고 극단적인 전략 운용 끝에 가까스로 버거 종족을 멸망시키는 데 성공한다. 게임이 끝나나자 그를 지도하던 선생들은 엔더를 추켜세우며 환호한다. “자네가 해냈어. 자네가 인류를 구원한 거야. 이건 게임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었다네, 엔더.” 망연자실한 엔더는 그제야 자신이 희생시킨 동료들, 폐허, 버거 종족 멸망이 모두 자기 손에서 벌어진 진짜였음을 깨닫는다. * 올슨 스콧 카드, 『엔더의 게임』(1985). 영화 <엔더의 게임>(2013). 올슨 스콧 카드의 SF소설 <엔더의 게임>의 스토리다. 이 작품은 <스타워즈>, <스타트렉>, 은하영웅전설>, <듄> 등 전쟁을 소재로 한 유명 스페이스 오페라물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게임을 소재로 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소설이 다루는 전쟁 게임 덕분에, 다른 작품들에 비해 훨씬 현실적으로 전쟁의 본질을 보여준다. 왜 그럴까? 프랑스의 기술철학자 폴 비릴리오(Paul Virilio)에 따르면, 전쟁의 핵심은 적의 인구와 영토를 파괴하는 물리력이 아니라 적의 ‘지각’을 지배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전쟁은 마술적 스펙타클로부터 분리될 수 없으며, 스펙타클을 생산하는 것이 전쟁의 목표다. 적을 무찌르는 것은 곧 적의 지각을 사로잡는 것이고, 죽음 이전에 죽음의 공포를 적에게 심어주는 것이다…무기의 힘은 야만적인 물리력이 아닌 영적인 힘이다.” [1] 그렇다면 공포와 흥분, 무력감과 엔돌핀, 도파민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길들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무엇이 될까? 흥분과 공포를 대리 체험하고 뇌리에서 구조화하도록 만들어주는 ‘시뮬레이션’은 게임을 만들고, 플레이할 때 가장 활성화된다. 두뇌의 시뮬레이션 기능은 인간 진화의 핵심으로 단순히 시청각적 감각의 모방을 넘어 지각의 체계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인간은 어릴 때부터 본능적으로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상황의 서사를 시뮬레이션한 뒤 스스로 모방·학습해 나간다.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들은 예술의 본질이 모방이라고 했지만, 모방의 진정으로 구조적이고 구성적인 측면은 놀이에 있음을 우린 유년 시절 즐겼던 수많은 게임으로부터 배웠다. 경찰과 도둑놀이, 술래잡기에서 사냥감을 쫓거나 혹은 포식자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체득했으며, 장난감 총칼을 든 전투에서는 폭력의 위험성과 쾌감을 동시에 느꼈다. 게임, 특히 폭력이나 전쟁을 소재로 한 게임은 이 감각을 체험하는 가장 가깝고도 단순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게임이 아이를 폭력적으로 만든다’는 말이 진공에서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그것은 특정한 방식으로 우리의 지각을 바꿔놓기 때문이다. 이라크전쟁 미 해병대의 잔혹한 현실을 풍자한 전쟁드라마 <제너레이션 킬>에는 게임광 출신 병사 ‘트롬블리 일병’이 등장한다. 그는 전투에서 자신이 즐겼던 FPS 게임의 효과음을 입으로 내며 사격하고, 적군을 사살할 때마다 킬 카운트를 확인한다. “전쟁은 왜 이리 지루하죠? 게임은 화려하고 실감나던데.” 마인드게임, 배틀 게임, 지휘 시뮬레이션 폴 비릴리오는 인류 전쟁 역사의 본질이 ‘지각의 병참학’ 이었다고 정의한다. 전쟁은 점점 물리적인 공간이라기보다는 ‘지각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다시 말해 물리적인 힘이 직접 교차하는 성격은 사라지고 은폐와 드러내기, 즉 ‘보기’에 대한 테크닉의 장으로 바뀌어가는 중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론은 현대전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최첨단 대공 레이더는 드론을 포착하지 못했고, 수십억짜리 주력전차들은 마트에서나 파는 상용 드론에 무력화됐다. 군함 한 척 없는 우크라이나 해군은 해상 드론으로 러시아 해군 기함 모스크바함을 격침했다. 트위터X에는 양측이 올린 전투드론 영상으로 도배되어 있는데, 보병의 개인화기로는 드론을 잡는 게 불가능하다. ‘보는 순간 교전한다’가 아니라 ‘보는 순간 모든 건 끝났다’가 이 전쟁이 자아내는 냉혹한 현실이다. 현대 전쟁은 동호인들이 즐기던 값싼 취미에 의해 공간의 소멸을 야기하고 있으며, <콜 오브 듀티> 나 <메달 오브 아너>의 흥분 넘치는 ‘택티컬’은 전쟁의 도파민을 가장 장벽 없이 즐길 수 있는 밀리테인먼트로 기능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게임이 <엔더의 게임>에서 주인공이 마지막에 느낀 절망감을 반영하는가? ‘마인드 게임’에 해당하는 심리분석 및 RPG게임, ‘배틀 게임’에 해당하는 피지컬 중심의 전술 게임(FPS), 함대 지휘 시뮬레이션(실시간 및 턴제 전략 시뮬레이션)은 놀라울 정도로 전쟁의 심연에 가까이 있다. 전쟁-게임-기술의 삼체문제가 향하는 지점은 더 많은 살상, 더 효율적인 응시, 유기체적 지각에 대한 무기체적 지각의 승리에 있다. 우리는 <에이스 컴뱃> 같이 화려한 현대 전투기 도그파이팅을 소재로 한 슈팅 게임에서 인간 인지와 감각의 승리를 자처하지만, 붉은 남작의 시대와 같은 낭만 넘치는 기사도 이야기는 전쟁기술과 게임기술의 결합 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능동 위상 배열 레이더(은폐를 드러내는 장치), 장거리 공대공 미사일(물리력 투사), 조기 경보 시스템(전장 조망 체계), 네트워크전 시스템(데이터 공유), 그리고 조종사에 주어지는 HMD(헬멧 마운트 디스플레이)와 키네틱 조작장치의 조합으로 구성되는 BVR(Beyond Vision Range) 전투는 밀리테인먼트에서 순수 인간 육체의 지각 능력이 얼마나 비루한지를 보여준다. 러-우 전쟁에 참전했던 서방의 한 용병은 전쟁 내내 어디서 날아오는지 모르는 자주포 포격음과 폭발소리, 드론의 비행 소리만 들었고, 육안으로 적을 볼 기회는 거의 없었다고 증언한다. “그들을 눈으로 본다는 건 곧 내가 죽는다는 걸 의미합니다.” * 17세기 천체 망원경의 출현은 전쟁 기계와 정찰 기계를 합치시켰다. 광학장치로 조망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시야가 미치지 않는 곳까지 전투가 확장되고, 현실적인 것과 가상적인 것은 뒤섞인다. 20세기 초 카메라와 항공기, 인공위성과 레이더는 H.G.웰스가 자신이 직접 제작한 전쟁게임 <리틀 워즈>의 현실-가상 복합 조망체계를 실현시켰다. 현대의 정찰드론과 VR기술의 결합은 시야가 미치지 않는 곳에 물리력을 투사할 뿐 아니라 ‘본다는 것’의 의미를 바꾸고, 배틀 게임-지휘 시뮬레이션의 가상적 지각을 실제 전장에 위상학적으로 정렬시킨다. 개입할 수 없는 플레이어, 그리고 전쟁이라는 게임 공간 ‘게임을 즐기면 폭력에 둔감해지고 야만성에 휩싸인다’는 비판은 정말 1차원적인 발상이다. <콜 오브 듀티>, <스타크래프트>, <하츠 오브 아이언>이나 시리즈를 즐긴다고 플레이어가 야만 전사가 되지는 않는다. 이런 주장은 ‘게임은 질병이다’라는 허무맹랑한 거짓말과 더불어 종교 근본주의자, 전미 총기협회 관계자가 즐겨 쓰는 조삼모사 수사학에 불과하다. 총기 난사 사고의 근본적인 문제는 총을 둘러싼 삶의 규범(예컨대 미국 수정헌법 2조)에 있지 시리즈에 있지 않다. 한편 게임을 사랑하고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게이머들, 게임 산업 관계자들, 의료 전문가 집단은 게임과 폭력이 아무 상관없으며 산업에 해가 되는 규제를 모두 풀어야 한다거나 ‘자유’ 라는 측면에서 검열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소모적인 갑론을박 속에서 두 가지가 뒤로 밀려나게 되는데, 하나는 전쟁-폭력-게임을 둘러싼 전 지구의 지정학적 갈등에 대한 구조적 비판이 사라진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기와 게임을 결합하는 군산복합 기술체계의 실체가 가려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투의 폭력이 아닌 전쟁의 폭력이 무엇인지 아는 문제, 전쟁-게임을 매개하는 기술을 이해하는 문제가 시급하게 요청되는 바이다. 상황주의 예술가이자 좌파 정보기술 비평가인 맥켄지 와크(Mckenzie Wark)는 자신의 책 『게이머 이론』에서 이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낸다. 게임은 단순히 군사 기술을 민간에 옮겨온 것이거나 병사를 훈련시키는 장치가 아니라, 인터페이스와 컨트롤러를 조작해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고 반응하는 능력(capability)의 총체라는 것이다 [2] . 문제는 VR기기를 쓰고 전투 중인 드론 조종사가 전쟁의 정치경제적 맥락에 개입할 수 없는 것처럼, 인터페이스를 조작하는 게이머들 또한 그러하다는 것이다. 군인들처럼 게이머들 또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임무를 완수하는 것만 요구될 뿐이다. 무기에 복잡하게 연동되어있는 인터페이스, 통제장치의 코드(전쟁의 정치적 목적)는 감춰져 있고, 전쟁 폭력은 추상화된다. <제너레이션 킬>에서 트롬블리 일병이 왜 전쟁을 지루해 했는지 이제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게임에서는 ‘임무 완료’ 와 임무 소요시간, 성과 등이나마 보여주지만 현실에서 전투의 결과는 모호하기 짝이 없다. 적군을 몇 명 죽여서 어떤 정치적 승리를 거뒀는지, 그 영향력이 무엇이었는지 일개 병사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군인은 끊임없이 고통(agony)에 시달린다. 자신의 행위가 만들어낸 결과가 도대체 뭔지 파악할 길이 없어서이다. 와크에 따르면, 전 지구적 군산복합체를 중심으로 펼쳐진 세계체제 공간은 이제 게임공간(Gamespace)이 되어간다. 지정학, 전쟁, 국제정치, 산업과 노동 모두 게임 인터페이스-컨트롤러의 코드를 닮아가지만, 게임의 규칙은 불공정하고 깨져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게임의 규칙이 공정하다고 믿고 이 게임의 알레고리(Allegory)를 수행하지만, 현실이라는 게임공간에는 정당한 보상도 공정한 규칙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게임간이란 곧 자본주의 불평등의 게임이며, 알레고리는 지배 권력이 예외상태로 배제된 자들을 추방하는 알고리즘이라 할 수 있다 [3] . 거대전쟁기계(Mega War Machine)의 전달자로서 플레이어 이런 관점에서 보면, <콜 오브 듀티>와 <배틀필드> 등 전쟁 스펙타클 게임류는 다른 문제, 전쟁을 둘러싼 국제정치의 복잡한 지형들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보여주는 문제로 비판받는다고 할 수 있다. 이 게임을 즐긴 사람들, 그러니까 프라이스 대위를 존경하거나 멋있다고 느끼는 플레이어들 중 중동의 복잡한 정세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이 게임들은 시아파와 수니파, 대영제국 시절의 식민주의와 이스라엘의 극단적인 시오니즘, 그리고 ISIS의 창궐과 아프가니스탄의 부족주의, 쿠르드족 민병대 등이 왜 각자의 이해관계로 전쟁에 얽히는지에 대해 지나친 일반화를 통해 말초적 재미로 소구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페르시아인과 아랍인들의 차이조차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프라이스 대위가 전쟁을 통해 도대체 무슨 값(price)를 받아내려는지도 알 길이 없다. 플레이어가 이른바 ‘택티컬’한 흥분 속에서 얻는 가짜 교훈이란 이슬람교가 극단적인 테러리즘 종교라는 일차원적 믿음과 허구헌날 클리셰로 등장하는 러시아 갱단의 무기 탈취 및 지구 멸망 시나리오 등이다. 다이어-위데포드와 드 퓨터의 명저, 『제국의 게임』은 이런 관점에서 게임이 MIME-NET(Military, Industry, Media, Entertainment Network)이라고 일부라고 비판한다. 비디오게임은 한 마디로 ‘제국’의 가상 이데올로기적 장치이다. 그것은 군사적인 해결책을 정상인 것처럼 포장하고, 지정학적 갈등을 단순한 선과 악의 대결로 그리며, 게이머들을 가상의 군인으로 훈련시킨다 [4] . * 당신은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하는가? 전설적인 델타포스와 네이비 씰 대원이 되어 적진에서 ‘택티컬’한 교전을 하길 갈망하는가? 2004년 그런 확신을 안고 미군이 이라크를 점령했지만, 이라크에 대량 살상무기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 국제사회로부터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을 향한 ‘택티컬한’ 침략이 하마스의 인질극에서 비롯됐다고 보는가? 실상은 20여년 가까이 이어진 봉쇄로 가자지구 인구 대부분이 굶어죽는 비참한 현실이다.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자신의 선조들이 아우슈비츠에서 당한 인종청소와 똑같은 전쟁범죄를 재현하는 시오니스트들의 추악한 형용모순이다. 이스라엘인들이 가자지구에서 행하는 ‘전술’이란 굶주린 사람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하고, 병원과 구호트럭을 폭격하는 학살행위 등이다. 불평등이라는 룰이 적용된 이 세계체제 게임공간에서, <콜 오브 듀티>를 즐기는 것의 의미와 <디스 워 오브 마인>이 생산하는 전쟁의 구조적 폭력 비판은 동시에 상기되어야 한다. 이 게임의 플레이어는 군 통수권자들이지 당신이 아니다. 당신은 플레이어가 아니라 그저 폭격으로부터 살아남고자 발버둥 쳐야만 하는 NPC(None Playable Character)에 불과할 따름이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전쟁을 찬미하고 미국 중심 국제 질서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는 게임 말고도 영화, 드라마, 다방면에 널려 있다. 그렇지 않은 매체를 찾기가 힘들 정도다. 그러나 ‘세계 체제 게임공간’ 에 접속해 최신 전쟁무기를 휘두르는 플레이어의 감각은 이데올로기 너머의 문제로, 기술체계와 지각의 병참학에 깊이 연루되어 있다. 오래 전 기술문명사학자인 루이스 멈포드는 기술의 본질이 단일한 대상이나 혹은 용도 변경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라, 거대기계(Megamachine)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거대기계란 물리적 강제력과 물리학, 수학, 천문학 등 과학적 지식, 그리고 관료제의 권위가 결합한 사회적 기계로, 인간 자체를 부품으로 삼아 구축된 사회조직의 총체이다 [5] . 고대 이집트 시대 피라미드에서부터 현대 증기기관까지, 인류의 기술 문명은 대량 살상 능력과 대량 생산 노동력, 사회 지배 이데올로기를 결합한 기술 체계의 앙상블로 진화해 왔다. 현대의 거대기계는 더 파괴적인 원자력과 미디어 재현 기술을 흡수하며 ‘권력의 펜타곤’으로 진화한다. 여기에는 기업의 경제력, 군사력, 그리고 대중매체까지 포함되며, 레짐의 유지와 권력 증식만을 목표로 움직이는 반 유기적 시스템(anti-organic system) 안에서 인간은 부품 그 자체로 전락한다 [6] . 게임산업과 군산복합체, 그리고 전쟁과 세계체제 빅테크-자본주의 권력은 이미 유기적으로 결합한 거대 전쟁기계(Mega Warmachine)이 된 것은 아닐까? 자폭드론은 VR과 조이패드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드론에 탑재된 전장AI는 피터 틸, 일론 머스크 같은 빅테크 기술 영주들이 정부와 동맹을 맺고 발달시킨 안면인식, 스타링크, 범죄자 식별 알고리즘을 망라하는 AI와 거대 언어모델을 동반한다. 이를 처리하기 위한 컴퓨터 연산 장치를 공급하는 업자는 엔비디아와 AMD 등 게임계 핵심적인 하드웨어 업체들이다. 이 냉혹한 전지구 권력의 게임공간 안에서 플레이어들은 힘의 수직적 전달자, 말 그대로 행위의 주체가 아닌 논 플레이어블 캐릭터(None Playable Character)가 된 것은 아닐까? 우리에게 전쟁은 이제 단순히 TV나 소셜미디어에서 흘러나오는 스펙타클이 아닌, 실존의 위협이라는 사실이 인지되어야 한다. “전쟁, 전쟁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1] 폴 비릴리오, 『전쟁과 영화』. 권혜원 역, 한나래, 2004. [2] Wark, Mckenzie. 2007. Gamer Theory. Havard University Press. [3] Ibid. [4] 닉 다이어-위데포드, 그릭 드 퓨터, 『제국의 게임』. 남청수 역, 갈무리, 2015. [5]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1』. 유명기 역, 아카넷, 2013. [6]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2』. 김종달 역, 경북대학교 출판부, 2012. Tags: 전쟁기계, 이데올로기, 국제정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디지털 문화연구/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신현우 문화연구자, 문화평론가이며 기술비판이론과 미디어 정치경제학을 전공했다. 게이밍, 인공지능, 플랫폼, 블록체인을 둘러싼 문화현상을 연구하며 서울과기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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