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 3부작의 죄책감은 어떻게 발현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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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3. 6. 14.
한국의 게임개발자 somi는 자신의 작품 중 ‘레플리카’, ‘리갈 던전’, ‘더 웨이크’ 세 작품을 묶어 스스로 ‘죄책감 삼부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일련의 시리즈로 보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 세 작품에는 이들을 관통하는 공통적인 일련의 의도가 들어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somi는 자신의 게임을 통해 스스로 밝혔듯이 일련의 메시지를 게임이라는 매체의 방법론으로 표현하고자 했고, 하나의 시리즈로 명명된 그의 작품들 속에서 우리는 한 작가의 의도와 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얻는다. 죄책감이라는, 작가가 스스로 자신의 세 작품을 묶어낸 키워드는 무엇을 어떻게 가리키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단서다.
3부작 중 가장 먼저 출시된 ‘레플리카’는 포스트모템에서 작가가 직접 밝힌 바로는 2017년의 탄핵정국 속에 게임 디자인의 방향이 바뀐 경우다. 본래 타인의 신분을 훔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소설에서 모티프를 가져오려 시작했던 게임기획은 탄핵정국을 맞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자신의 상황을 생각한 작가의 입장에 따라 국가기관에 의해 테러범으로 몰린 두 학생이 서로 분리된 감옥에서 상대방의 스마트폰을 통해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으로 바뀌었다.
‘레플리카’의 기본 구조는 스마트폰 인터페이스를 활용한다. 오늘날의 스마트폰은 경우에 따라서는 신체 그 이상으로 자아를 대변하는 기기다. 타인의 스마트폰을 열어 가며 보게 되는 정보는 그래서 진실로 여겨지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이조차도 조작될 수 있는 무언가이기도 하다. ‘레플리카’는 정보를 담고 있는 스마트폰의 내부를 추적해 나가며 조금씩 사건의 진상을 향해 나가는 구조를 취한다.
‘레플리카’에서의 죄책감은 포스트모템에서 작가가 언급한 것과는 별개로 게임 안에서도 그려지는데, 스마트폰을 통해 진상을 알게 된 플레이어가 자신의 생존과 석방을 위한 선택을 마주하는 순간에서다. 시놉티콘 체계 안에서 서로가 서로의 감시자가 되고 때로는 자신을 위해 정보와 진실을 조작하는 현장에 대한 고발이 게임제작자가 현실에 아무 행동을 하지 못하는 죄책감의 발로였다면, 제작자가 만든 상황 속의 게이머 혹은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선택하고 맞이하는 여러 결과들은 만들어진 구조 안에서 작동하는 형태로서의 체험 가능한 죄책감이다. ‘레플리카’의 죄책감은 이렇게 작가로서의 입장과 플레이어로성 입장 두 가지를 모두 담고 있으며, 플레이어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둘 모두를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형식은 두 번째 작품 ‘리갈 던전’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다뤄진다. ‘리갈 던전’은 사회에서 벌어지는 실제 행위가 형사법이라는 체계 안에서 범죄로 재구성되는 과정을 경찰의 조서작성이라는 방식으로 풀어내고자 한 게임이었다. 전작에서 스마트폰 인터페이스를 다루며 감춰진 정보를 파헤쳐야 했던 플레이어는 ‘리갈 던전’에서는 좀더 정답이 없어 보이는 경찰 심문 조서를 꾸며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리갈 던전’의 조서 작성은 실재하는 행위를 법의 테두리 안에 넣는 과정을 다루면서 현실의 행위와 법적 관점 안에서의 행위가 달라지는 과정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 차이는 특히 조서를 작성하여 실제로 범죄유무를 결정하는 경찰이라는 존재가 사실 객관적이기 어렵다는 상황을 포함함으로써 죄책감의 문제에 도달한다.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는 끊임없이 실적이 점수화하는 경찰조직의 문제를 마주하며, 연말이 다가올수록 실적을 채워야 하는 위기상황은 점점 고조된다. 범죄를 구성하는 일의 결과가 결국 자신의 성과와 연결된다는 사실은 조서 작성을 업무로 둔 경찰관으로서의 플레이어에게 일련의 죄책감을 경험케 만든다.
3부작의 마지막임을 천명한 ‘더 웨이크’에서는 앞선 두 작품과 달리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의 죄책감보다는 개인의 내면에 자리잡는 죄책감의 의미에 더 무게를 둔다. 혼수상태에서 막 깨어난 주인공은 암호화된 자신의 일기장을 꺼내 해독하여 들춰보며 자신이 자신의 아버지와 어떤 관계였는지를 반추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가족과 맺었던 외면적인 관계와 내면적인 마음 사이에 벌어진 차이만큼의 죄책감을 겪게 된다. ‘더 웨이크’ 또한 다른 두 작품과 마찬가지로 가리워진 진실을 향해 퍼즐을 풀어가는 과정을 플레이어로 하여금 겪게 만들고, 결론적으로 그 과정 속에서 마주하는 사실들로 하여금 플레이어에게 일련의 죄책감을 전달하는 구조를 유지한다.
죄책감 3부작을 이야기함에 있어 먼저 짚어야 할 것은 마지막 3부작의 아쉬움이다. 앞선 두 작품과 달리 3부작은 다소 이질적인데, 이는 단지 게임이 다루는 주제가 내면의 문제에 국한되어서가 아니라 게임이 활용하는 퍼즐의 방식이 주제와 동떨어져 따로 돌아간다는 점에서다.
‘레플리카’는 이제는 신체를 능가하는 주체가 되어버린 타인의 스마트폰이라는 환경으로부터 시작한다. 가장 기본적인 스마트폰 비밀번호를 풀어가는 것부터 시작해 담겨진 정보를 하나하나 풀어가는 과정 자체가 곧 진실 탐구의 여정이 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리갈 던전’이 ‘던전’이라는 이름으로 그려냈던 장면 또한 법과 현실이라는 두 존재가 서로 마주치며 현실이 법의 구멍에 맞추어 깎여나가는 순간을 조서작성이라는 방식으로 연출함으로써 성과제 기반의 관료제라는 주제와 객관적인 듯 보이지만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 경찰에 의한 조서작성이라는 방식이 같은 방향을 지향할 수 있었다.
‘더 웨이크’에서는 그러나 퍼즐과 주제가 분리되어버린다. 에니그마를 연상시키는 치환암호 체계는 다른 두 작품과 달리 굳이 일기장이 그래야 할 강한 설득력을 제공하지 못하며, 퍼즐을 푸는 방식 자체만으로는 ‘레플리카’나 ‘리갈 던전’처럼 어떤 대상을 그려내지 못하고 만다. 3부작을 이야기함에 있어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아쉬움을 접어두고 다시 돌아본다면 이 3부작이 다루는 죄책감이 드러나는 방식에서의 공통점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바로 진실이라는 대상이다. 세 작품 모두 현재로서는 베일에 싸인 어떤 진실이라는 대상을 향해 플레이어를 움직이게끔 하지만, 그 진실로 가는 길로서의 퍼즐은 내가 도달한 진실을 믿게 만들기보다는 진실이 숨겨지고 조작되는 현실 자체를 반추하게 만든다.
친구의 스마트폰을 해킹해 자신과 친구가 왜 공권력에 의해 갇혀 있는지를 파악하는 과정 자체에 ‘레플리카’의 중심이 자리한다. 실제로 엔딩은 경우에 따라서는 영원이 갇힐 수도, 혹은 혁명적인 결론을 향할 수도 있지만, 어느 방향을 타더라도 문제없는 플레이가 된다는 것은 이 게임을 통해 전달되는 죄책감이 어떤 고정된 결론을 다루는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리갈 던전’에서도 이른바 진엔딩이라 할 루트는 존재하지만, 굳이 게임이 제시한 서사를 따라가지 않더라도 우리는 성과 기반의 관료제가 어떻게 사회적 행위를 범죄로 재구성하는지를 이해하게 되며, 이를 이해하는 순간부터의 플레이에서 죄책감이 발현되는 구조다. ‘더 웨이크’는 다른 두 작품과 달리 암호화된 일기장 자체는 그 해독과정 자체만으로 의미있는 연출이 되기보다는 일련의 장치로만 활용되면서 다른 두 작품과 다른, 제시되는 텍스트를 중심으로 한 주제 연출을 선보였다.
이 때의 죄책감은 우리가 ‘진실’이라고 여겼던 것이 실제 진실인지 아닌지와 무관하다. 죄책감은 그저 반추하는 일 자체로부터 비롯된다. 현실을 지금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는 이 현실이 나타나기까지 어떤 메커니즘이 그 배경과 맥락에 있는지를 생각하고 살피는 과정의 결과물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 죄책감 3부작의 죄책감이다. 서두에 이야기한 바 대로, 작가로서의 somi가 존재하는 현실 앞에서 무력한 자신을 책망하며 게임을 만들었던 그 의도 그대로가 어찌보면 게임의 규칙을 통해 다시 발현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