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환에서 도깨비까지 : 게임 속 한국의 코드는 누가 써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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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6. 8. 10.
2020년, 인벤의 정재훈 기자는 “게임 속 ‘한국’을 보고 싶다”는 칼럼 기사를 썼다. 이 칼럼은 한국의 요소가 게임에서 활용된다면 어떤 것이 가능할까를 질문하고 사유하는 마케팅적 내용이다. 그래서 칼럼의 핵심 질문은 이 부분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 앞서 우리는 모른다. 세계가 한국 문화, 한국 역사의 어떤 부분을 좋아하는지, 어떤 부분에 매력을 느낄지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 `닌자`는 팔리고, `사무라이`도 통한다. `삼국지`도 동아시아권에서 엄청나게 소비된다.
그런데 한국적 요소 중 세계에서 이렇게 통하는 게 하나라도 있던가?”
정재훈 기자 자신이 이 질문에 답을 하면서 꼽은 필요 조건은 “코드와 완성도”이다. 완성도-만듦새는 엄밀히는 의미가 없는 지적일 수 있다. 날카로운 문화 코드를 찾아내어 반영했어도, 매력적으로 반영하지 않았거나 게임 디자인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영향력을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핵심은 ‘코드’다. 중국의 쿵푸, 일본의 닌자/사무라이와 같은, 국가 문화에 부여되는 대표 이미지에 대한 고민이다.
정재훈 기자의 결론은, 무엇이 히트하여 대표 코드로 호명될지 알 수 없으니 이것저것 계속해서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완성도 높은 코드 구현이 다양하게 시도되다 보면 그 중에서 몇 가지는 한국의 대표 이미지로 자리잡을 것이다. 비단 게임에만 적용되지 않을 이 생각은 ‘한국을 보여주겠다’, 즉 1인칭 중심의 사고가 아니라 ‘한국을 무엇으로 보는가’ 라는 타인 중심의 사고다. 자신을 규정할 권리는 타인에게도 있으므로, 그리고 마케팅에서는 그 타인이 중심이 되어야 하므로 옳은 방향이다. ‘Do you know...?’가 아닌 ‘How about this?’의 질문이다. 수용자의 해석에서부터 출발하므로 오해와 오독도 일단 긍정하며 출발하는 태도다.
이 태도를 고민함에 있어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것은, 게임이 주로 미국과 일본 위주로 개발-발전해 왔다는 점이다. 따라서 게임 속의 한국이란, 한국 자신이 만들지 않은 이상은 대부분이 미국과 일본의 시선이게 마련이다. 또 하나는 시간적인 변천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의 경우, 거리가 먼 한국에 대한 정보가 적거나 고증의 필요성이 적었던 것이 2010년대 이전이다.

고증이 필수 업무인 역사 게임에서의 한국은, 엄밀히 말하면 한국이 아니고 과거의 한국이기에 되도록 생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국성’의 표현으로서 한국을 쓴다거나, 한국을 표현할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투박한 형태로 표현하다가, 2010년을 전후하면서부터는 서서히 묘사에 구체성이 생기기 시작한다. 특히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신드롬 수준의 글로벌 유행을 타면서 촉발된 K-컬처의 전파가 기점이 된다.
일본은 이런 변곡점이 필요하지 않았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인한 오해와 왜곡은 있을지언정, 오래 쌓인 교류의 역사가 있기에 그 정도는 다른 문화권에 비해 적었다. 외국 중에서 가장 한국을 친숙하게 여기는 일본이, 한국을 게임에서 다루면서 선택한 대표 코드는 태권도였다.
태권도
90년대에 아케이드 격투 게임의 붐이 일면서, 일본산 격투 게임에는 한국 시장을 노리는 겸 하여 들어가는 한국인 캐릭터가 있었다. 94년 ‘통쾌 간간 행진곡’의 이해권, 96년 ‘풍운 슈퍼 태그 배틀’의 김수일, 98년 ‘소울칼리버’의 성미나와 황성경이 등장했다. 당나라 대도술을 조선에서 이어받아 쓴다는 설정의 소울칼리버 캐릭터들은 홍윤성 등의 파생 캐릭터로 이어졌으나, 가장 큰 성공은 태권도 사범으로 등장한 92년 ‘아랑전설2’의 깁갑환이다.

태권도 한국의 상징, 김갑환
그리고 깁갑환은 수많은 파생 캐릭터를 만들어내며 확장했다. 이후 아랑전설 시리즈와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에는, 아들인 김동환과 김재훈, 스승인 강일, 동문인 전훈과 이진주 등의 캐릭터가 깁갑환의 태권도 코드를 확장한 결과로서 등장했다. 여기에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에서 처음부터 깁갑환의 서브 캐릭터로 등장한 장거한과 최번개 역시 설정상으로는 깁갑환의 태권도 제자라는 연결점이 있으며, 아예 ‘풍운 태그 배틀’의 김수일 캐릭터도 이 계보로 흡수되었다.
태권도 코드는 철권 시리즈의 백두산과 화랑 두 캐릭터에도 구현되었고,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 4’의 한주리로도 이어졌다. 다만 한주리의 경우에는 태권도 코드만이 다른 캐릭터와의 공통점일 뿐, 다른 설정은 철저하게 한국 태권도 캐릭터의 클리셰를 비켜간 악역 캐릭터여서 전형성은 적다.

장르적으로 김갑환의 계보에 속하는 백두산과 화랑

‘한국인 여성’이라는 것만 결정된 상태에서는 김연아 이미지도 고려되었으나 거미 테마의 태권도 악녀라는 컨셉으로 결정된, 한주리
하지만 깁갑환, 화랑, 한주리가 등장하는 스테이지의 배경은 일본인이 인식한 한국의 대표 공간이 엿보인다. 소울칼리버와 같이 역사적 과거 시점의 게임에서는 스테이지로 사찰과 같은 전근대 건물의 공간이 나오는데, 이 건축 코드가 현대 시점의 게임에서도 주로 사용되었다.

‘소울칼리버 2’에서의 성미나 스테이지

‘킹 오브 파이터즈 96’에서 김갑환과 한국팀의 스테이지. 김갑환의 경우, 아랑전설에서는 숭례문, 김갑환의 도장 등이 스테이지로 나왔다.

‘철권 3’에서의 화랑 스테이지. 백두산과 화랑은 대부분 이런 전근대 건물을 스테이지로 썼다.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 4’에서의 한주리 스테이지. 사찰 근처의 장터다.
전근대 건축물의 고풍스러움은 일본 제작사 입장에서는 익숙하면서 약간 다른 느낌, 즉 ‘어느 정도의 친근함’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동북아시아 혹은 나아가 동아시아에서는 그런 느낌이겠지만, 비 동아시아 권역에서는 매우 이국적으로 받아들여질 것인데, 그런 경우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사용법에서 볼 수 있다.
아제로스의 수많은 종족이 이룩한 다양한 문화를 구현하기 위해 제작사 블리자드는 현실 세계의 각종 문명에서 디자인을 가져왔는데, 한국의 건축은 나이트 엘프의 문화를 창조하기 위해 참조된 대상 중 하나다. 시작 지역에서 대도시 다르나서스로 들어가는 성문은 남대문을 그대로 가져왔으며, 나이트 엘프의 건축물 중에는 석가탑과 똑같은 구조물이 있으며, 몇몇 건물은 전작인 ‘워크래프트 3’에서의 디자인과 약간 달라지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한국식 처마를 활용했다.

다르나서스의 성문
군대
고풍스러운 옛 건물을 배경으로 태권도를 수련하는 이미지만으로는 외부에서의 한국이 구성되지 않는다. 현재의 한국을 이루는 요소 중에는 휴전 국가, 그리고 징병제가 있다. 이 요소는 일본의 게임 제작자들에게 일종의 판타지로 작용한 것인가 싶다. 철권 시리즈의 화랑은 3편 이후 영장이 나와 입대를 했고, 4편 직전에 탈영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전달하는 일러스트를 보면 병사 계급인데 권총을 쓰고, 실제 무력 사용 작전에 투입되고, 탈영한 화랑을 잡기 위해 완전무장을 한 병력들이 투입되는 등 현실과는 아득한 거리에 있는 묘사가 나온다.

특수부대는 부사관 위주이고 보통 징집병이 가지 않으며, 저 복장은 대체 무엇이며 등등의 의구심이 든다.
비단 일본만 한국군 요소를 오해하고 있지는 않다. 2014년, 김상민은 연구 「미국 문화에 나타난 한국이미지: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디지털 게임을 중심으로」에서 여러 미국산 전쟁 게임에 등장한 한국군 요소를 들여다봤다. 소련이 사라진 후 주적의 자리에 올릴 여러 국가 중 하나로 북한이 선택되었고, 그리하여 한국군 혹은 한국군과 연관 있는 요소가 묘사되는 경우들이다. 대부분은 중요한 이해의 대상이 된다기보다는 유닛의 일종으로서 기능한다.

김상민, 「미국 문화에 나타난 한국이미지: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디지털 게임을 중심으로」, 인문과학연구논총 35권, 인문과학연구소, 2014.
04년 ‘고스트 리콘 2’의 주적은 쿠데타를 일으킨 북한 내 강경파 군부를 제거하기 위해 미군이 침투하는 내용이다. 05년 ‘스플린터 셀: 혼돈 이론’은 같은 전쟁, 즉 2차 한국 전쟁을 다룬다. 그래서 서울과 평양을 비롯한 한반도의 도시가 스테이지로 주어지는데, 북한과 북한군의 묘사는 중국풍이 많이 느껴지고, 스토리상 남북한의 전쟁을 일본의 한 극우 관료가 이간책으로 조장했다는 내용은 오히려 남북한을 서사의 중심에서 탈락시켰다. 현수막과 간판에 적힌 어색한 한국어 단어는 악명이 높다. 07년 ‘로그 워리어’는 원작 소설의 베트남을 북한으로 억지로 바꿨고, 북한의 미국 침공을 다룬 11년의 ‘홈프론트’는 발전된 몰이해를 보여줬다.

‘홈프론트’의 북한은 냉전 시대의 소련을 대체하는 역할이고, 대한민국은 북한의 팽창 정책에 희생당하는 역할이어서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홈프론트의 최초 기획은 중국이 북한, 나아가 남한까지 손에 넣고 일본과 호주를 넘어 미국까지 도달하였기에, 향토 방어(homefront)에 나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배급사의 우려에 이를 북한으로 바꾸는 바람에 핍진성을 하나도 획득하지 못한 게임이 되어버렸다. 중국을 억지로 북한으로 바꾸다 보니 적군의 무기 체계에 관한 고증은 물론이고, 통일을 이룩하고 정복전쟁에 나선 북한의 정식 국호 등의 디테일한 설정에 불명확한 구멍이 많다.
몰이해의 이유 중에는 가상 전장으로 쓰기 좋기 때문에 그 역할만 하면 된다는 식의 납작한 인식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이 몰이해의 이면에는 역으로 한국군의 전투력에 대해, 마치 화랑의 군 복무 내용과 같이 고평가하는 측면이 존재한다. 11년의 ‘소콤 4’에는 한국군의 707 부대원들이 주요 캐릭터로 등장한다.

‘소콤 4’의 707 특임대 소속, 박윤희. 내란을 겪은 후의 한국에서 707 부대는 조금 다르게 다가오지만, 일단 한국군의 유력 특수부대로의 위상이 보이는 캐릭터다.
유능한 군인으로서의 한국군 이미지는 레인보우 식스 시리즈에서는 거의 모든 작품에 등장하는 707 부대원은 물론이고, 12년의 ‘메달 오브 아너: 워파이터’에서 기용할 수 있는 한국군 UDT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에서는 한국군이 은근히 등장하지 않고, 14년의 ‘콜 오브 듀티: 어드밴스드 워페어’에서 주요 적군으로 북한군이 등장하는 정도였다가, 26년 10월에 출시 예정인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4’에서 2차 한국 전쟁을 다루면서 한국군은 물론이고 한국 도시의 거리가 상당한 고증 수준으로 등장한다. 모던 워페어4는 굉장히 오랜만에 등장한 한국군 관련 전쟁 게임이라는 특징 외에도, 캐릭터 모델링 역시 인종 특성을 꽤 반영하여, 비 한국인 인종 인물과 확연히 구분이 된다. 이는 몰이해에 기반했거나 몰이해의 흔적이 보이는, 장기판과 장기말 정도로 인식되던 이전의 한국군 등장에 비해 진일보한 것이다.

상당한 핍진성을 가진 간판이 눈에 띈다.
어쩌면 ‘오버워치’의 D.Va, 송하나 또한 한국군 계열의 캐릭터로 볼 수 있겠다. 메카닉 부대가 창설되고, 전투에서 메카닉 장비를 가장 잘 사용할 수 있는 인재가 필요했고, 그래서 메카닉 전투 게임에서 두각을 나타낸 프로게이머를 징집해 군인으로 삼았다는 설정에는 분명 그런 흔적이 있다. 그리고 동시에 송하나의 캐릭터는 또 다른 한국의 코드, 게임과 IT를 비롯한 첨단성을 보여준다.

군인 신분이라는 설정으로 군대 요소를, 프로 게이머 출신과 메카닉 파일럿이라는 보직으로 첨단성 요소를 띄는 송하나 D.Va. 사회에서는 연예인처럼 활동한다는 설정은 아이돌 산업의 요소도 있어 보인다.
첨단의 도시
문명 시리즈에서 한국 문명에 붙어나오는 특성이 대부분 과학 기술 쪽인 것은, 단순히 세종의 역사적 행적 때문만은 아니다. 깔끔하게 정비된 도시, 빠르게 보급된 대중 인터넷, 도시 곳곳에서 활용되는 각종 기계, 집단 주거 시설인 아파트가 가장 효율적이고 안전한 주거 시설인 나라. 기술에 행정과 치안까지 결합되어야 가능한 상황에, 최신 매체인 게임에서 상위권을 휩쓰는 한국 선수들과 그들을 길러낸 PC방 같은 문화들이 이 이미지를 만들었다. 송하나 캐릭터만큼이나 이런 요소들을 하나에 담아내는 이미지는, 고층 건물이 빽빽하고 온갖 간판과 행인으로 가득한 야간의 대도시 거리다. 이는 사이버 펑크에서 애용하는 이미지가 되어 ‘사이버 펑크 2077’의 거리에서 한국어 간판이 등장하는 식으로도 사용된다. 간단히 압축하면 서울이고, 특히 강남이다.
서울은 비슷한 메갈로폴리스인 뉴욕과는 다른 선택지를 거쳐 비슷해졌다. 뉴욕의 반 정도 크기에 인구밀도는 6배가 되는 도시인지라, 서울은 용적률을 늘리는 방식으로 택했다. 높은 용적률과 인구밀도로 얻는 압도적인 유동 인구로 인해, 서울 혹은 서울과 유사한 대도시의 업장은 행인에 대한 홍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간판이 필요한 수많은 업장이 높은 용적률 공간을 가득 메우고, 그래서 건물의 외관에는 그 모든 업장의 간판이 무수히 붙는다. 여기에 광고용 간판이 추가된다. 간판 투성이의 크고 작은 건물이 연속되는 모습이 자본주의 도시 서울의 풍경이다. 이 도시는 24시간 잠들지 않는 불야성이다.

때문에 3단 점프를 액션의 기본으로 삼은, 17년작 ‘에이전트 오브 메이헴’은 근미래의 서울을 게임의 공간으로 삼았다. 게임에서 가장 많이 수행하는 동작은 여러 간판이 붙은 건물을 뛰어넘고 기어오르는 것이다. 비록 게임 자체의 기술력과 기획력 부족으로 인해 작중의 서울은 유동 인구가 보이지 않는 텅 빈 도시가 되었지만, 그런 도시를 달리고 뛰어오르는 액션은 뉴욕 시내에서 웹스윙을 하는 스파이더맨 게임의 체험과 본질은 같다. 잠들지 않는 도시에서의 질주다.

압축되었으면서도 메갈로폴리스인 사이버 펑크 대도시이면서도 전근대 건축물을 품고 있는 이 특성이 제작진의 구미를 당겼을 것 같다. ‘세인츠 로우: 더 서드’의 책임디자이너 스콧 필립스는 강남스타일의 뮤직비디오를 이 시리즈가 추구하는 톤과 비슷하다는 발언을 했다.
자본주의가 전제되어야 하는 첨단 도시의 불야성 이미지는, 그래서 오버워치와 에이전트 오브 메이헴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닥다닥 붙은 한글 간판의 형태는 97년의 슈팅 게임 ‘아인핸더’의 배경에서도 찾을 수 있고, 08년의 ‘GTA 4’에도 등장한다.

이미 사이버 펑크스러운 야경을 배경으로 쓸 때, 한국어 간판이 활용되는 경우가 97년에 있었다. (출처)
우리 입장의 시도
지금껏 열거한 세 가지가 아마도 한국의 이미지 중 게임에서 구현된 가장 큰 덩어리일 것이다. 물론 다른 장르의 예술 매체에서도 저 셋은 유효해 보인다. 그런데 이쯤에서 다시 최초의 질문, 정재훈 기자의 ‘우리는 아직 모르지 않나?’라는 질문을 다시 소환해 끼워넣어보자.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온다. 과연 저 셋뿐일까? 혹은, 우리는 저 셋만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한국의 게임은 한국을 어떤 식으로 담아내길 원할까? 가장 자주 관찰되는 욕망은, 역시 한국이라는 공간을 게임 공간으로 그대로 사용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03년의 레이싱 게임 ‘시티레이서’와 06년의 레이싱 게임 ‘레이시티’는 당시의 서울을 게임 내에 구현하여 트랙으로 사용했다. 14년의 ‘클로저스’ 역시 서울을 비롯한 한국 곳곳의 거리를, 간판까지 그대로 구현하여 배경 이미지로 활용했다. 현재 개발 중에 있는 게임들은 더욱 과감하게 한국의 공간을 활용하려 시도한다.

클로저스의 배경으로 사용된 실제 거리를 정리한 유저도 있다.
메타버스 시뮬레이션인 ‘인조이’는 현재 세 개의 공간이 공개가 되었는데, 도원의 경우엔 서울 강남구를 모델로 하여 사실상 삼성동의 지리를 그대로 구현한 형태를 하고 있다. ‘낙원: Last Paradise’는 폐허가 된 여의도와 종로의 구현이 발표된 상태로, 탑골공원과 낙원상가가 게임 공간으로 쓰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펄어비스에서 개발 중인 ‘도깨비’ 역시 한국의 현재 공간을 게임 공간으로 옮겨놓으려 한다. 트레일러에서 보여준 흰고래 마을은 부산의 흰여울문화마을을 기반으로 만든 공간이다. 같은 시도를 하고 있는 ‘프로젝트 류’라는 오픈월드 RPG 개발 프로젝트도 있다.
현재의 한국 외에 과거의 한국을 소재로 하는 시도도 존재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이 가상의 조선에서 좀비를 등장시키는 설정으로 글로벌 히트를 친 경험, 그리고 이 드라마에 등장한 ‘cool hats’, 즉 갓, 전립 등의 각종 모자에 대한 열광은 중요한 힌트를 제공해주었다. 역사적 요소도 어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선비라는 코드는 중국의 협객과 일본의 사무라이처럼 스테레오 타입으로의 전환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한국의 과거 코드를 역사물이 아닌 게임에서 반영하기 좋은 장르는 역시 판타지다.
그래서 ‘검은사막’은 2023년에 진행된 ‘아침의 나라’ 업데이트를 통해 한국의 전통 요소를 디자인과 게임 플레이에 대거 도입했다. 그 결과 한양 육조거리와 궁궐이 게임 공간으로 들어왔다. 이 분야에서의 최근 도전은 개발 중인 ‘우치 더 웨이페어러’와 ‘프로젝트 윈드리스’가 있다.
전우치를 주인공으로 한 ‘우치 더 웨이페어러’는, 현재 얼리억세스 단계인 인디 게임 ‘전우치’와 혼동될 수 있지만, 훨씬 규모가 크다. 특히 트레일러로 미루어 보면, 도사인 전우치를 통해 한국의 과거 유교, 불교, 도교, 무속이 중심 요소로 등장할 것이 확실하다. ‘프로젝트 윈드리스’는 소설가 이영도의 ‘눈물을 마시는 새’의 세계 설정을 가져와 제작 중인 게임이다. 이 설정 속에는 한국의 전통 문화에서 따온 요소가 가득하다. 도깨비라는 종족, 씨름이라는 스포츠, 한국식 궁술 등등. 과거 요소를 구현하기 위한 장르는 역사 아니면 판타지다. 이 계통에서의 다음 힌트는 이 두 게임의 결과물이 서로 다른 지점에서 보여주게 될 것이다. 정재훈 기자의 지적에 따르면 완성도가 성공 여부를 결정하겠지만, 힌트로서의 기능은 완성도와 별개로도 발휘될 것이다.

‘우치 더 웨이페어러’는 도사, 무당과 같은 전통 오컬트 요소가 중심이다.

이영도의 ‘새 시리즈’ 세계 속 도깨비를 비롯한 여러 요소가 글로벌 유저에게 어떻게 설명되고 이해될지가 기대되는 지점이다.
자신을 규정할 권한은 타인에게도 있지만 자기 자신에게도 있는 것이 당연하다. 한국의 게임 창작자들은 한국의 현재와 과거에서 이런저런 요소를 찾아내고 있다. 이 요소들이 게임으로서 재배치된 후에, 한국 바깥의 사람들은 게임을 통해 어떤 이해와 오해를 하게 될 것인지가 중요하다. 그것 자체가 힌트이며, 동시에 그 이해와 오해를 거쳐 바깥에서 인식한 한국이 다시 그들의 게임 속에 담겨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그들의 인식이 김갑환, 북한과의 전쟁, 강남 빌딩과는 또 다른 부분에 이르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 다른 우리를 게임을 통해 체험하게 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