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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게임 바깥에서 서성거리기 : 다크소울3과 ‘프롬갤’의 ‘요르시카 살해 전통’ (장려상)

07

GG Vol. 

22. 8. 10.

1. 암호 설정 fromgall, 그곳의 ‘전통’  


다크소울3은 나의 첫 패키지 게임이었다. 유튜브를 돌아다니다 이 게임을 소개하는 영상을 우연히 접했다. 고딕 건물이 빛바랜 색감과 얽혀드는 게임 속 광경이 매력적이었고, 그렇게 난생처음으로 스팀 게임이라는 걸 구매해 봤다. 무턱대고 시작한 게임은 참 까다로웠다. 알고 보니 다크소울은 어려운 난이도로 이름이 높은 타이틀이었다. 이 게임의 디자인은 다양한 함정이나 어려운 전투를 활용해 플레이어에게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부각한다.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죽고 화면에 떠오르는 'You Died' 문구는 일종의 밈이 될 정도였다. 튜토리얼 보스인 '군다'를 9번의 시도 끝에 잡았을 때, 나는 완전히 기진맥진해지고 말았다. 동시에 짜릿한 흥분이 온몸을 내달렸다. 거듭된 죽음 끝에 쟁취해낸 승리는 퍽 달콤했다. 그렇게 맵을 순차적으로 진행하기 시작했는데, 공략을 봐도 내 힘으로 온전히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했다. 그러던 와중 '프롬 소프트웨어 갤러리(이하 : 프롬갤)'라는 사이트를 방문했다 이곳에서는 프롬 소프트웨어 사가 발매한 다크소울3을 좋아하는 플레이어들이 머무르고 있었다. 이들은  fromgall이라는 통일된 서버 비밀번호를 설정해 까다로운 보스나 맵을 협력해줬고, ‘복지’와 같은 이름으로 이제 막 게임을 시작한 뉴비에게 각종 템을 지원했다. 별도의 가입 절차 없이 익명으로도 글을 업로드할 수 있다는 갤러리의 특성은 이제 막 게임이라는 걸 시작한 당시의 나에게 더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눈팅 끝에 익명으로 도움 요청 글을 작성하기도 했다. 댓글은 바로 달렸다. “그었음.” 


나는 프롬갤의 게시글을 훑으며 게임 관련 새로운 정보를 발견하기도 하고, 타인의 기묘한 플레이를 보며 즐거움을 얻기도 했다. 그러는 한편, 특정한 게시글은 어떤 순간에서 내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오히려 분리감을 느끼게 했다. 프롬갤의 '전통'이었다. ‘어떤 한 집단에서 꾸준히 전해져 내려오는 행위’라는 전통의 사전적 의미를 환기하듯, 다양한 사람이 게임 내에서 유사한 행위를 수행하고 그것을 인증하는 형식으로 게시글을 작성했다. 많은 갤러들은 이에 긍정적으로 동조함으로써 긴 수명을 유지했다. 이 특정한 게시글은 일정한 포맷을 갖고 있다. 그 골자는 이러하다. 요르시카라는 이름의 NPC가 있다. 이 NPC는 '암월의 검'이라는 계약을 주관한다. 플레이어는 그와 계약을 맺고 특정 아이템을 모아 바쳐 보상을 얻는다. 아이템을 얻는 조건은 상당히 까다롭기 때문에 지난한 노가다를 요한다. 모든 노가다를 마쳐 보상을 다 얻은 플레이어는 요르시카를 (창의적으로) 죽인다. 



2. “요르시카 야발련아 드뎌끝났다”1) 

 

프롬갤에 게시된 글을 바탕으로 이 온라인 커뮤니티의 전통 포맷을 한 번 살펴보자. “요르시카 야발련아 드뎌끝났다”는 글은 프롬갤의 전통의 요소를 모두 갖췄다. ‘드뎌(드디어) 끝났다’는 부사와 동사를 통해 작성자가 요르시카와 계약-서약자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장치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해준다. 작성자는 NPC의 이름 뒤로 디시인사이드에서 욕설 ‘시발’을 변용한 ‘야발년’을 결합하여 이 인물에게서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낸다. 



캡쳐된 게임 화면에서 작성자의 캐릭터는 ‘탐욕의 낙인’이라는 머리 장비를 장착하고 있다. 이는 캐릭터의 발견력 스탯을 올려주는 장비로, 아이템 노가다 작업에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상자를 뒤집어 쓴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캐릭터의 모습은 그 자체로 노가다 행위를 증빙해준다. 다크소울3에서 발견력 스탯을 증가시키는 장비는 제한적으로 존재하므로 공물 노가다에 뛰어든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외관은 전형적인 구석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스크린샷 속 캐릭터의 모습은 작성자와 유사한 경험을 겪은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표상이 된다. 작성자는 이제 막 암월의 검 노가다를 끝냈다. 공물 아이템 30개를 모아왔을 때 요르시카가 이를 보상과 교환하며 출력하는 특수 대사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왼쪽 하단의 UI는 작성자의 캐릭터가 장착하고 있는 장비를 보여주는데, 윗칸은 주문 아이템이 할당된 자리이다. ‘암월의 빛의 검’이라고 적힌 흰 글씨는 스크린샷 속에서 캐릭터가 대검에 인챈트하고 있는 기적의 이름을 보여주고 있다. 이 기적은 암월의 검 계약의 최종 보상이다. 작성자는 대사를 확인했으며, 노가다의 보상을 획득했다. 따라서 프롬갤의 전통이란 곧 게임 내 성취를 인증하는 자리이기도 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요르시카라는 NPC가 인게임에서 제공할 수 있는 물리적(인벤토리에 기입되는) 인센티브를 모두 취득했다. 이제 다른 동기가 개입하지 않는 이상 그와의 관계를 지속할 이유가 없다. 이에 그는 요르시카로부터 받아낸 기적을 살해에 직접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요르시카 어금니 꽉 깨물어라..’는 문장은 막 행할 폭력을 예고한다. 그는 자기 캐릭터가 암월의 빛의 검 기적을 대검에 바르는 순간적인 모션을 포착함으로써 역동성을 강화하며 이미지를 끝맺는다. 


한편으로 NPC를 어떻게 창의적으로 죽였는지는 글의 매력을 판가름하는 요소가 된다. 이 글에서 인용한 게시글의 작성자는 오른손에 로스릭 기사의 대검으로 요르시카를 가격하려 한다. 그런데 UI를 자세히 살펴보면 대검의 이미지 우측 상단에 빨간 X자가 표시되어 있다. 이는 작성자의 캐릭터가 대검 아이템을 장비하기 위한 최소한의 스탯을 갖지 않았다는 알림이자 경고다. 요구치를 충족하지 않은 장비는 제 성능을 낼 수 없으며 미진한 피해를 준다. ‘일부러 데미지 낮춰서 더 때릴꺼라는 생각은 안하십니까? 당신’이라는 타 갤러의 댓글은 일견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작성자의 행위에 개연성을 부여해준다. 타인이 내러티브를 붙여 해석해줌으로써 작성자의 게시글은 전통의 계보에 안착하는 데에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즉 전통이란 프롬갤이라는 온라인 커뮤니티 내에서 축적된 일정한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구성원들의 웃음을 유발하는 발화 형식이라고 바라볼 수 있다. 



3. 게임에서의 죽음 문제 


여기서 내가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살해 행위 그 자체가 아니다. 율이 게임 플레이를 두고 “플레이어가 게임 내부의 규칙과 상호작용 하면서 그 자신의 목표, 레퍼토리, 선호를 추구하는 것”이라 정의한 바 있듯, 게임은 플레이어의 직접적인 개입을 필요로 한다. 플레이어의 상호작용과 몰입을 강화하기 위한 요소로써 죽음은 적극적으로 활용되어 왔다. 죽음은 지속해오던 모든 상태 일체로부터 정지되는 것이며, 존재의 소멸을 의미하는 영원한 단절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게임 속 죽음은 플레이어가 규칙을 이해하게 해주는 수단이 된다. 특히나 RPG 게임과 같은 장르에서는 길을 막는 적을 제거하면서 특정한 장소에 도달하는 것을 가장 기본적인 게임 메커닉으로 차용해 왔다. 플레이어가 경험한 죽음은 내부 규칙을 이해할 단초가 되며, 피드백을 거쳐 적을 성공적으로 살해할 경우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역량을 높인다. 게임에서의 죽음은 바로 이 지점에서 플레이어 개인의 폭력성·사회성에 대한 우려와 만나기도 한다. 화면 속이지만 누군가를 찌르고, 때리고, 살해하는 행위는 규범과 법률 속에서 자란 교양 시민과는 반대 선상에 놓인 행위로 이해된다. 게리 영은 이를 STA(Symbolic Taboo Activity)로 설명한다. 이는 가상에서는 가능한 행위이나 현실에서는 법과 도덕에 의해 금지되는 행위들이라는 것이다2).  그러나 플레이어의 행동 범주를 설정하는 절대적인 배경으로 게임의 규칙이 존재한다. 특정한 행위를 유도하는 일련의 규칙이 있는 이상 이를 개인의 비도덕성 문제로 환원하기는 어렵다는 측면이 존재한다3).  실제로 요르시카를 죽여야만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인 '요르시카의 성령'은 강력한 살해 동기로 작동한다. 이렇게 바라보았을 때 단순히 요르시카를 죽이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주로 플레이어 개인이 그 게임 세계 내부에 시선을 두고 플레이를 수행하고 완결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특성을 갖기 때문이다. 이는 놀이가 일상생활과 분리된 그 고유의 질서를 갖는다는 ‘매직 서클’의 의미를 환기한다. 



4. 여기 ‘나쁜 남자’가 있다 


프롬갤 전통이 갖는 독특한 지점은 커뮤니티에 전시하여 공유하는 과정에 있다. 전시는 게임 밖의 세계에 위치한 청중을 동반한다. 독특한 플레이는 화제성을 갖기 마련이다.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의 인터페이스는 경우에는 ‘추천’을 받아 ‘개념글’로 올라가는 구조를 통해 화제성을 수치화한다. 존 스튜어트 밀의 위해 원칙과 같이 보편적인 범주로 규정된 것 이상으로 발휘된 폭력이 심저에서 불쾌감을 자극할 때, 게시글 아래에 달린 경악성의 댓글은 그가 수행한 괴멸적인 플레이에 대한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즐길 수 있다. 니스는 “부도덕한 것으로 여겨지는 행위에 참여한다는 사실 자체가 일종의 즐거움을 준다”고 이야기한다.4)


이 ‘나쁜 남자’와 같이 규범을 위협하는 존재에 자기를 동일시할 수 있는 데서 즐거움은 증폭된다. 전시는 보다 많은 관객을 동원할수록 좋다. 그러한 목적성을 갖고 특정한 라인을 따라 행위를 수행하게 되면 갤러들은 익숙한 내용에 익숙한 반응과 익숙한 호의를 내비친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플레이가 따라가야 할 일종의 포맷이 생기는 셈이다. 그렇게 형성된 게시판 내의 놀이 형식에 맞추어 나의 플레이를 만드는, 게임의 매직 서클 내외부를 넘나드는 상호작용이 발생한다. 프롬갤이라는 공동체 내의 동력이 게임 내 플레이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요르시카 야발련아 드뎌끝났다”에서 작성자는 NPC를 폭행하기 위해 대검을 선택했다. 대검이라는 무기 종은 프롬갤 내부에서 특정한 상징성을 갖는데, ‘상남자’라면 마땅히 들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떤 무기로 플레이하는지에 따라 ‘게이’와 ‘진짜 남자’를 구분하는 발화를 프롬갤 내에서 목격할 수 있다. 게이와 상남자의 구분을 통해 프롬갤이라는 공동체가 공유하는 남성성에 대한 상상을 엿볼 수 있다. 이를테면 직검과 방패의 조합을 의미하는 ‘직방’은 이상적인 남성성을 갖추지 못한 ‘게이’와 동의어로 활용되는데, 이는 구르기를 통해 공격을 피하는 대신 방패로 막아내는 게 남자답지 못한 행위로 여겨지는 탓이다. 대검을 들기 위해서는 캐릭터가 양손으로 칼자루를 쥐어야 한다. 방패를 들지 않고서 자신의 체격을 훨씬 상회 하는 무기를 든 캐릭터는 그 자체로 공세적인 인상을 준다. 그는 비열하게 방패 뒤로 숨지 않는 ‘진정한 사나이’나 다름없다. 이는 수잔 제퍼드가 레이건 시대의 할리우드 남성 재현을 설명하기 위해 표현한 ‘하드 바디’를 떠올리게 한다. “지치지 않는, 근육질의, 무적의 남성 육체”에 대한 환상을 바탕으로 프롬갤은 “자신의 뜻을 남에게 강요하기 위해 강화된 몸”을 꿈꾼다.5) 


그러는 한편 암월의 검 계약은 플레이어를 노가다로 인도하며, 그는 희박한 확률이 그저 터지기만을 바라면서 주체성을 상실한다. 플레이어는 무력한 확률 앞에서 억울함을 환기한다. 프롬갤의 갤러들은 이를 남성 섹슈얼리티의 문제로 치환하여 요르시카를 정복함으로써 주체성을 되찾으려 한다. 게시글 작성자의 캐릭터는 대검을 들 수 없는 스탯임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소화하기 힘든 장비를 들기를 고수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프롬갤이라는 집단 내부에서 설정된 남성성의 환상을 입고서 요르시카를 살해한 셈이다. 



5. 밈 앞에서 웃지 못할 때 


이길호는 디시인사이드에서 발생하는 게시물이 끝없이 분화하고 변형되는 과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생산물은 하나의 갤러리 안에서 생산된다. 그것은 갤러들 사이의 관계에서 결과적으로는 어느 특정 갤러의 결과물로 도출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생산물의 소스는 명백히 다른 갤러에게 제공받았다. 그것은 여러 갤러들의 손을 거치면서 변형을 맞는다. 최종적으로 하나의 갤러가 일종의 ‘완성본’을 내놓는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매 순간 새로운 변형의 힘을 통과한다는 점에서 언제나 ‘미완성’이다.”6) 

 

이러한 갤러리 내 생산물의 분화 과정은 밈의 발생과 활용 방식을 닮아있다. 본래 밈이란 리처드 도킨스가 특정한 문화 요소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도입한 문화 유전자의 개념이나 온라인 생활에서는 달리 통용된다. 주로 밈이란 “특정한 이미지, 영상, 대사나 어휘 등이 유행하면서 퍼지는 현상을 일컫는다.”7) 밈의 재미가 “공동의 이해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며, 이에 밈이 호응을 얻은 것은 “개인주의 시대에 나타나는 하나의 증상”이라는 분석이 존재한다.8)  밈이 생산되는 환경은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와 유사해 보인다. 갤러들은 모여든 게시판에서 해당 주제를 갖고 말하기 위해 존재한다. 친목질을 배제한다는 엄격한 수평 관계를 유지하며 그저 한 개인으로 쉼 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디시인사이드의 게임 게시판이 유머러스한 공간으로 여겨진다면 그것은 게임 플레이라는 공감대를 나누는 과정에서 타 갤러와 동질감을 발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유머란 곧 집단 내부에서 통용되는 규율이나 사고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다. 프롬갤의 요르시카 살해 전통에서 유머를 느낀다면 그것은 어째서인가? 또 유머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전통이라는 밈에서 유머를 느낄 수 없는 것은 그 속에서 프롬 갤러들이 발화하는 여성 혐오의 의미가 자연스럽게 이들 공동체 내부에서 승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요르시카를 살해하는 게시글은 2016년 다크소울3이 발매된 이래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주 개념글로 올라갔다. 2022년 프롬 소프트웨어의 신작인 엘든링이 출시된 이래, 엘든링의 열기를 즐기는 지금의 시점에서 요르시카를 죽이는 전통은 이제 개념글에서 찾아보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프롬갤의 전통을 전통으로 만들어낸 동원을 상실하지 않은 이상, 새로운 전통이 태어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다만 밈이 될 정도로 화제성을 가진 플레이가 아직 전시되지 않았을 뿐이다. 나쁜 남자가 되기 위해 안달 난 프롬갤 앞에서, 나는 그저 서성거리고 있다.  



1) 권천. “[일반] 똥3)요르시카 야발련아 드뎌끝났다.” 2021.11.28.등록. 2022.06.02.접속. 프롬소프트웨어 마이너 갤러리.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fromsoftware&no=2383063&page=1
2) Young, G. (2019). Enacting immorality within gamespace: Where should we draw the line, and why? In A. Attrill-Smith, C. Fullwood, M. Keep, & D. J. Kuss (Eds.), The Oxford handbook of cyberpsychology (pp. 588–608). Oxford University Press. pp. 589. 
3) 미구엘 시카트. 김겸섭 역. 컴퓨터 게임의 윤리(n.p.: 커뮤니케이션 북스, 2014
4) Young, G. (2019). Enacting immorality within gamespace: Where should we draw the line, and why? In A. Attrill-Smith, C. Fullwood, M. Keep, & D. J. Kuss (Eds.), The Oxford handbook of cyberpsychology (pp. 588–608). Oxford University Press. pp. 600. 
5) 수잔 제퍼드. 이형식 역. 하드 바디(n.p.:동문선, 2002) 
6) 이길호. 우리는 디씨. (2012). 이매진: 서울. 82쪽. 
7) 정지우. “무엇이 밈이 되는가”. 민음사. 릿터(32). 14쪽. 
8) 이자연. “밈 검열, 그게 진짜이긴 해?”. 민음사. 릿터(32).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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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

자기 소개 :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데스티니2를 오래 즐겨왔고, 다음 작인 마라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익숙한 게임이 주는 재미와 낯선 경험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보려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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