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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란으로 1277개 검색됨
- 우리가 했다 번역을 - 한글 패치 30년의 흐릿한 역사
유저 한국어 번역의 역사를 정리한다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저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이 기록을 성실하게 남기지도 않았고, 그 기록은 현재 대다수가 소실되어 있다. 또한 다수의 초기 번역 팀은 폐쇄적으로 작업했기에 사료가 존재한다 한들 그 존재를 인지할 수 없었을 수도 있다. < Back 29 GG Vol. 26.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eonggap Hong Freelance writer—a job title suspected of being a synonym for "unemployed." Started out as a reporter at Ddanzi Ilbo, where broke the first story exposing the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s comment-manipulation operation. A lifelong gamer who wrote a first piece of game criticism in 2001—and is very glad it has since been lost.
- 어린이를 위한 게임은 없다
도발적인 제목을 들고 왔지만, 놀랍게도 필자는 어린이가 아니다. 더 놀랍게도 필자는 아직 2세가 없다. 당사자성이 없는 사람이 어린이와 게임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대단히 조심스러웠다. 게임제너레이션(GG) 편집장으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가정에 어린이가 있는 필자를 새로 구해보시는 게 어떠냐'라고 완곡하게 돌려 말했다. 편집장은 '어린이가 없는 입장이 보다 객관적'이라고 답했다. GG 편집진의 고약한 취미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Back 18 GG Vol. 24. 6. 10. Tags: 게임이용자, 유소년, PC방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aeseok Kim Worked for eight years as a reporter at ThisIsGame. Now handles external relations at a subculture startup. Loves editors and the power of cheat codes.
- [공모전수상작] 〈Ib〉: 미술관이라는 공포 체험
2022년은 〈Ib〉의 공개로부터 10주년이 되는 해였다. 제작자kouri는 스팀을 통해 기존 〈Ib〉에 새로운 기능이나 디테일을 더한 리메이크판을 공개했다. 이듬해 2023년에는 닌텐도 Switch 용 〈Ib〉의 발매 소식이 공개되었고, 게임 홍보를 목적으로 게임의 전시를 재현한 ‘게르테나전’이 도쿄 시부야에서 열리기도 했다. < Back [공모전수상작] 〈Ib〉: 미술관이라는 공포 체험 20 GG Vol. 24. 10. 10. “어서오세요 게르테나의 세계에”: 미술관 나라의 이브 2022년은 〈Ib〉의 공개로부터 10주년이 되는 해였다. 제작자kouri는 스팀을 통해 기존 〈Ib〉에 새로운 기능이나 디테일을 더한 리메이크판을 공개했다. 이듬해 2023년에는 닌텐도 Switch 용 〈Ib〉의 발매 소식이 공개되었고, 게임 홍보를 목적으로 게임의 전시를 재현한 ‘게르테나전’이 도쿄 시부야에서 열리기도 했다. 〈Ib〉는 여러 가지 장르로 설명될 수 있다. RPG 만들기 툴(RPG Maker)로 만들어진 롤플레잉 어드벤처 게임이기도 하고, “프리호러게임” [1] 에 들어가기도 하고, 캐릭터 간의 대화 횟수나 대사 선택지에 의해 엔딩이 갈린다는 점이나 캐릭터의 매력을 살린 2차 창작으로 입소문을 탔다는 점에서는 미소녀 게임의 일종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개념미술가 다니엘 뷔랑은 “전시회의 주제가 더 이상 전시된 미술 작품들이 아닌, 미술 작품의 전시 그 자체로 바뀌는 추세”라고 주장했다. [2] 이러한 주장에 따른다면, 〈Ib〉에 등장하는 미술 작품들은 대부분 배경 소품이나 ‘모브 캐릭터' 정도로 등장하는 데에 그치더라도 ‘게르테나전’이라는 전시회 자체가 〈Ib〉의 주제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전시회 체험’으로서의 〈Ib〉에 주목한다. 〈Ib〉에서 ‘게르테나전'은 크게 서너가지 시공간을 가리킨다. 첫번째로 이브가 처음에 부모님과 함께 도착한 미술관이자 비일상적인 호러 세계를 빠져나와 돌아가야 할 장소인 작중 일상 세계의 “게르테나전”이다. 두 번째는 이브가 홀로 뛰어들어 게리와 메리와 함께 탐험하게 되는 위험천만한 “상상화의 세계”이다. 그 안에서도 메리의 세계인 “스케치북의 세계"는 나머지 “상상화의 세계"와는 다소 궤를 달리하는, 어느정도 독자적인 공간으로서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Ib〉의 세계에 등장하는 모든 작품을 포함하는, 제작자 kouri의 전시라고도 할 수 있을 2022년판 〈Ib〉의 “진 게르테나전”이 있다. 다양한 ‘게르테나전’을 탐험하는 〈Ib〉라는 어드벤처 게임에서, 플레이어 캐릭터는 ‘이브’인 동시에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 자신의 분신이다. 게임 도중 특수한 조건을 만족시키면 일정 부분을 다른 캐릭터의 시점에서 플레이할 수 있기는 하지만, 플레이어는 대체로는 이브를 통해, 이브가 되어 ‘게르테나전’을 경험한다. 플레이어/이브에게 있어서 ‘게르테나전’이 어떤 식으로 ‘신비롭고도あやしくも 아름다운’ 경험이 되는가 살펴보자. * 이미지 1: “게르테나가 생전에 그린 신비롭고도 아름다운 작품들을 부디 마음껏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일본어로 あやしい는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것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수상하고 불길한 것을 가리키는 형용사이기도 하다. “작품에 손을 대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게르테나전이라는 ‘화이트 큐브’ 〈Ib〉에서 새 게임을 시작한 플레이어는 부모님과 함께 미술관에 가는 장면 속에 놓인다. 플레이어의 분신이자 게임의 주인공인 ‘이브’는 미술관을 처음 경험하는 아홉 살 소녀이다. 블라우스에 붉은 치마와 리본, 구두 차림에 “진짜 레이스"와 자수로 장식된 손수건을 가지고 있다. 미술관에 도착한 플레이어/이브는 티켓 접수에 시간이 걸리고 있는 부모님에게 먼저 들어가서 전시를 보고 싶다고 표현한다. 게임의 진행을 위해서라도 ‘엄마'는 허락하면서도, 다른 관람객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조용히 관람해야만 한다며 거듭 주의를 준다. 아무튼 잔소리를 다 들었다면, 비로소 플레이어는 자유롭게 이브를 움직일 수 있게 된다. 게르테나전에 발을 들이는 순간 가장 의식하게 되는 세 가지는 흰 벽, 액자 그림, 그리고 BGM ‘코렐리 라 폴리아'다. 테이트 미술관 홈페이지는 “화이트 큐브"란 “사각형 공간, 희게 칠한 벽, 그리고 천장에서 내려오는 광원으로 대표되는 전시회들의 특정한 미적 형식"이라고 요약한다. 바로크 클래식 음악과 관객으로부터 동떨어져(야만 하는) 흰 배경에 놓인 값비싼 예술품들은 ‘화이트 큐브’를 구성하는 요소들 그 자체이다. “게르테나전”과 같은 ‘화이트 큐브’는 지금도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익숙한 미술 전시의 형태일 것이다. 이브/플레이어는 전시장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관람객에게 말을 걸 수 있다. 대뜸 작품에 대한 감상을 물어봤으면서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면 어린애라고 무시하는 관람객이 있으면, 작품의 일부를 먹어보고 싶다는 식욕 왕성한 관람객도 있고, 조각 작품이 조금만 건드려도 무너질 것 같다며 배상금을 상상하며 두려워하는 관람객이 있기도 하다. 그런 관람객들이 넌지시 드러내는 공통된 두려움에 끄떡이듯, 조각상 근처의 벽에는 “작품에 손을 대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하는 경고문이 걸려있다. 게임의 도입부의 “게르테나전”은 플레이어에게 달려드는 초상화나 접촉하면 ‘게임 오버’가 되는 조각품 같은 것들이 등장하지 않는 ‘안전한’ 공간이다. 그러나 아홉 살 어린이 이브에게 있어서, 어쩌면 ‘호러 게임’ 〈Ib〉의 ‘호러’는 이미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느껴졌다. 전시장은 여자 어린이 이브에게 있어서, 그리고 아홉 살 소녀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면에서 이브와 비슷한 면이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결코 편안한 장소가 아니다. 미술관이란 손을 대면 때가 탈 것만 같은 새하얀 벽에 둘러싸여 있고, 실수로라도 만졌다가는 무시무시한 금액을 물어내야 할 성스러운 미술품들이 걸려있는 데다, 기침이라도 했다가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엄격한 공간이다. “게르테나전” 2층에는 “고양이다-! 엄마아-! 고양이 그림이 있어-!” 하며 작품에 대한 열의를 공유하려고 했으나 “알겠으니까 조용히 하렴! 큰 소리 내면 안돼!”하고 꾸중만 듣고 마는, 이브보다 어려 보이는 (작은 도트로 표현되는) 어린이 관람객이 있다. 같은 층의 다른 관람객의 말( “으…… 역시 너 같은 아이한테는 아직 이해하기 어려우려나……” )처럼, 미술관은 때로는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술적 조예’나 ‘똑똑한 머리’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어려운 곳이기도 하다. 이브는 한자로 표기된 작품 라벨을 거의 읽지 못한다. 이브가 혼자서 읽을 수 없는 어려운 한자는 모두 물음표로 표현되고, 라벨이 물음표로 표시되는 작품의 제목을 알기 위해서는 어른 동료와 동행해야만 한다. 미술관에서 실수하기는 너무나 쉽고 미술을 이해하기는 너무 어렵다. “상상화의 세계": 미증유의 ‘그레이 존'에 뛰어들기 이런 게르테나전을 헤매던 이브 앞에 불현듯 나타난, 읽기 쉬운 히라가나로 된 “이 리 오 렴 이 브”는 ‘화이트 큐브’에서 꺼내주겠다고 하는 유혹과 같았을지도 모른다. 불가항력처럼 뛰어든 “상상화의 세계”는 원래 세계의 게르테나전과는 사뭇 다른 미술관의 모습을 보여준다. 벽은 붉고 푸르고 초록색이며, 미술 작품은 자유롭게 만질 수 있고 가격이 매겨져 있지도 않다. 라벨이 없는 작품도 여러 점 있으며, 작품은 반드시 벽에 걸려있지도 않고, 심지어 자아를 가지고 자유롭게 돌아다니기도 한다. * 이미지 2: 먼 곳의 높은 벽에 걸려있는 자신의 초상화에 접근할 수 없는 개미를 위해 액자를 벽에서 떼어 들고 가서 보여줄 수도 있다. 눈높이에서 보고 싶은 작품을 마음대로 떼어서 볼 수 있는 초록색 전시관은, 하얗고 고요한 “게르테나전”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이러한 점에서는 “상상화의 세계”는 원래 세계의 게르테나전에 대한 대안의 상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디지털 문화 이론가 레브 마노비치는 20세기부터 미술관과 극장theatre은 반대되는 개념이었으며, ‘화이트 큐브’인 미술관은 고급문화로, 그리고 ‘블랙 박스’인 극장은 저급문화로 여겨졌다고 설명했다. [3] 한편, 현대예술에서는 공연의 거처가 ‘블랙 박스’에서 ‘화이트 큐브’로 옮겨진 경우도 있다. 극장에서와 달리, 미술관에서의 공연은 유동적인 관객을 상정하기에 관객이 없어도 계속될 수 있으며, 동시에 극장 공연에 비해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기에 용이하다는 특징을 가졌다. 클레어 비숍은 이와 같이 ‘블랙 박스’와 ‘화이트 큐브’의 특성이 혼재된 공간을 ‘그레이 존’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4] 이브나 게리가 뛰어들기 전부터 존재했던 듯이 보이며, 작품이 자아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관람객/플레이어와 교류하는 “상상화의 세계”는 ‘그레이존’이라는 설명에 딱 들어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상화의 세계”는 안전하지 않다. RPG 게임 〈Ib〉에서, “상상화의 세계”에서 자아를 가진 작품들은 플레이어를 향해 달려들며 목숨을 노리고, 그러면서도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지 말고 영원히 남으라고 종용한다. 이것은 확실히 호러다. 그렇다면 작중 서사에서 “상상화의 세계”가 공포스럽게 작용하는 방식을 배제하고, 하나의 전시로서의 “상상화의 세계”는 어떨까? 안타깝게도 “상상화의 세계”라고 해서 “게르테나전”보다 모두에게 안전하고 재미있는 전시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들은 흰 벽에 불안과 강박을 느끼지만, 대안으로써 알록달록한 벽을 채택한다면 과잉된 시각적 자극에 감각 과민을 경험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관람객이 미술품을 만질 수 있게 하면 시각장애인이나 신경다양인 등이 다양한 방법으로 전시를 즐길 수 있게 되지만, 감염의 위험이 커져서 면역이 취약한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안전하지 못한 공간이 될 수도 있다. [5] 전통을 거스르는 대안적 시도는 필연적으로 다면적인 복잡함과 어려움을 마주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상상화의 세계”는 ‘화이트 큐브’를 벗어나려고 하는 시도의 불확실성, 그리고 실패 가능성에 대한 불안의 은유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상상화의 세계”는 “게르테나전”의 한계를 타파하고 극복한 결과라기보다는, 오히려 “게르테나전”에서 느낀 공포의 연장선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 예시로, 작중 이브가 꾸는 악몽에서는 “게르테나전”의 공포와 “상상화의 세계”의 공포가 하나로 합쳐지기도 한다. * 이미지 3: 이브가 “상상화의 세계”에서 정신력이 다해 쓰러졌을 때 꾼 악몽. “상상화의 세계”에 비해 “게르테나전”은 안전하다. 비록 부모님이 데리러 오지 않으면 떠날 수 없고, 큰소리도 내면 혼나고, 쉽게 이해할 수도 없는 데다, 전시품을 건드리면 변상해야 하지만 목숨이 간당간당한 “상상화의 세계”보다는 무한히 안전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상상화의 세계”에 비해서 안전하다고 해서, “게르테나전”이 모두에게 있어서 가장 안전하다는 주장은 ‘화이트 큐브’가 내세우는 이데올로기 그 자체 같다. 미술관에 ‘화이트 큐브’를 처음 적용하기 시작한 데 스틸과 바우하우스와 같은 예술가 그룹들은 ‘화이트 큐브’에 둘러싸여 있을 때 미술이 가장 돋보이고, 방해받을 여지 없이 안전하게 관람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6] 정말 그럴까? 만약 그렇다면, ‘화이트 큐브’에서 ‘안전하게’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브는 거기에 포함될 수 있을까? “스케치북의 세계”: ‘화이트 큐브’에 대한 메리의 도전 큐레이팅이란 무엇일까? 폴 오닐은 저서 『동시대 큐레이팅의 역사』를 통해 큐레이터가 단순히 작품을 관리하고 요구에 따라 꺼내어 전시하는 위치에 있었던 과거와 달리, 현대의 큐레이터는 전시라는 예술적 경험을 총괄하는 비평가이자 일종의 메타적인 예술가라고 주장한다. ‘게르테나전’이 크게 서너 가지 존재하는 것과 짝을 맞추어, 〈Ib〉에는 크게 서너명의 큐레이터가 존재한다. 이브와 부모님이 사는 세계의 ‘게르테나전’을 만든 작중에 등장하지 않는 가상의 큐레이터, “상상화의 세계”의 근본에 있는 바이스 게르테나 (그는 의식적으로는 존재할 수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스케치북”의 세계를 만들어낸 메리, 그리고 물론 ‘진 게르테나전’은 〈Ib〉를 제작한 kouri와 〈Ib〉를 플레이해서 완성하는 플레이어의 합작이다. * 이미지 4: 미술관이 어린이를 환대하는 공간이 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할까? “상상화의 세계” 안에서도 “스케치북”은 메리가 직접 그리거나 모은 오브제들로 구성된 맵이다. 메리가 즐겨 쓰는 그림 도구인 크레용으로 그려진 세계에는 집, 사람, 나무 외에도 백조가 있는 호수, 나비들의 공간, 커다란 푸딩 등이 그려져 있다. 검은 공간은 여백이기에 만지거나 걸을 수 없으며, 색이 칠해져 있는 부분만 물성을 지닌다는 자체적인 물리법칙도 있다. “스케치북 안에는 “장난감 상자”가 있고, “장난감 상자”에는 스토리의 진행에 필요한 열쇠 외에도 그림, 인형, 조각 등… 요컨대 메리의 ‘친구들’이 흩어져 있다. 뉴욕 브루클린의 미술재단 Recess에서 발행한 미술관 접근성 가이드 “Accessibility in the Arts: A Promise and a Practice”에서는 아이들을 동반한 관람객을 위해 미술관에서 놀이방이나 장난감과 그림 도구로 채운 상자를 마련할 것을 제안한다. [7] 이 제안의 모습과 유사한 메리의 “스케치북"은 꼭 어린이 관람객을 위한 놀이공간 같다. * 이미지 5: “스케치북” 속 “장난감 상자” “스케치북” 세계는 그림은 액자 안에 존재해야 하며 액자는 미술관에 걸려 있어야 한다는 전제 자체를 무시한다. 밟고 있는 길, 들어갈 수 있는 집, 호수와 백조와 나무와 과일은 모두 캔버스 바깥에 존재하는 물체인 동시에 그림으로 인식된다. 이런 자유로움은 어린 시절 바닥에 분필로 그림을 그려서 즐겼던 땅따먹기 놀이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평면에 그린 그림을 컴퓨터나 스마트 기기의 카메라로 인식해 3D 영상으로 렌더링하던 초기 AR(증강현실) 애플리케이션들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미술관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화이트 큐브’를 벗어나 놀이 공간에 가까워지려고 더 자주 시도한다면, 메리와 같이 에너지가 많고 집중력이 짧은 어린이 관람객에게도 덜 무섭거나 지루한, 심지어 신나는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억의 미술관 이브의 다사다난한 미술관 경험에서도 비추어지듯, ‘화이트 큐브'로 대표되는 미술관은 어린이 혹은 그 밖에도 신경다양인, 장애인, 티켓을 살 돈이 없는 사람들, 조용하게 걸을 수 있는 신발이 없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썩 환대의 공간은 아니다. 그러나 이미 너무나 오랫동안 미술관의 전통으로 굳어져 온 ‘화이트 큐브'의 대안을 고안하고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새로운 방식의 전시는 저마다 모두 나름의 의의와 한계들이 있고, 때로 전시의 한계는 상업성과 자본이라는 맥락에 의해 결정되기도 한다. ‘게르테나전’은 지난 2023년, 닌텐도 Switch 판 〈Ib〉의 발매를 기념해 현실로 옮겨오기도 했다. 2023년의 게르테나전은 시부야 PARCO백화점 지하 1층의 전시공간인 GALLERY X BY PARCO에서 열렸다. [8] 150점이나 되는 게르테나의 작품이 모두 전시되지는 못했지만, 특히 조각 작품은 제작과 운반에 투자할 여력이 없었는지 한 점도 전시되지 못했다. 흰 사각형 벽에 액자가 걸려있는 모습은 전형적인 ‘화이트 큐브’였지만, 그러면서도 프로젝션 매핑을 통해 그림의 ‘움직이는’ 요소를 재현하고 흰 벽을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VR헤드셋을 쓰고 ‘파란 인형의 방’을 체험할 수 있는 ‘블랙 큐브’도 있었다. 그렇지만 프로젝션 매핑이나 VR 등의 기술적인 시도보다도, 가장 기억에 남은 체험은 ‘세이브 포인트’였다. 〈Ib〉 작중 세이브 포인트인 노트와 펜을 재현한 방명록에는 노트를 전부 채우고도 앞, 뒤표지까지 흘러넘칠 정도로 빽빽한 ‘세이브’가 기록되어 있었다. 전시를 관람했을 뿐만 아니라, 게르테나의 세계에 참여했다는 경험의 기록을 남기고자 한 사람들의 열망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 흔적은 방명록뿐만아니라 수많은 관람객의 휴대폰의 카메라 롤과 SNS의 미디어함에도 기록되었다. ‘그레이 존’ 개념을 제안한 클레어 비숍은 관객이 동원할 수 있는 모바일 기기와 네트워크 기술이 늘어나, 기존에는 촬영을 금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미술관에서 SNS를 통한 전시의 공유와 확산을 권장하게 된 현상이 ‘그레이 존’의 예시라고 보았다 [9] . 그렇다면 ‘화이트 큐브’, ‘블랙 박스’와 ‘그레이 존’의 요소가 모두 존재한 현실의 게르테나전은 아홉 살 이브에게 조금은 더 친절하고 마음 놓이는 공간이 될 수 있었을까?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미술관이 그저 무섭고 끔찍한 공간일 뿐이라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를 ‘호러’라고 정의한다고 해서 그것이 즐거움이나 다른 의미를 줄 수 있는 여지가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Ib〉라는 게임도 그렇다. 어쩌면 이브/〈Ib〉가 그렇듯이, 어린 시절의 ‘호러’의 경험은 곧잘 ‘모험’과 연결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 〈스탠 바이 미〉는 사이가 좋은 어린 소년들이 함께 철길을 따라 걸으며 자라는 성장 영화라고 요약되곤 하지만, 호러적인 위험이 가득한 모험을 통해 묻혀있는 시체를 찾는다는 시놉시스는 영락없는 공포 영화이기도 하다. 이러한 〈스탠 바이 미〉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비디오 게임 〈MOTHER〉 역시 어드벤처 RPG의 교과서적인 고전 작품이지만, 최종 보스 ‘기그’의 공포성은 〈MOTHER〉에서 인상깊은 부분으로 손꼽히는 구성요소 중 하나이다. 첫 〈포켓몬스터〉 게임들 역시 유령이 등장하는 ‘보라타운’이나, 엔딩 후 동굴 깊은 곳에서 플레이어를 기다리는 강력한 ‘뮤츠’는 많은 게이머들의 어린 시절 강렬한 공포 경험으로 남아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오즈의 마법사』도, 『피터 팬』도…… 어린이가 훗날에는 마치 꿈과 같은 기억으로만 남게 되는 흥미진진한 모험을 떠나는 내용의 명작들은 모두 어딘가 공포스러운 면이 있다. 이브의 미술관 모험 역시 공포스러운 동시에 흥미진진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화이트 큐브’는 분명 무서운 공간이고, 특히 이브와 같은 어린이 관람객을 환대하는 것에는 아직 실패하고 있음도 분명하다. 그러한 사실은 ‘화이트 큐브’의 변화를 재촉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 대부분의 미술관이 ‘화이트 큐브’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브가 흥미진진한 미술의 세계를 즐길 여지는 언제든 있다고 믿고 싶다. [1] 〈유메닛키〉, 〈아오오니〉 등 RPG 만들기 툴로 제작된 호러게임 중 제작자의 개인 홈페이지 등을 통해 무료로 배포된 게임 전반을 이르는 장르명으로, 〈Ib〉의 유행 시기를 중심으로 2010년대 초 한국 인터넷에서 자주 사용되었다. [2] “Écrits - Conférences / Les Écrits : Quelques Textes Daniel Buren,” 1972. https://danielburen.com/bibliographies/2/8 . [3] Lev Manovich, “The Poetics of Augmented Space,” Visual Communication 5, no. 2 (June 1, 2006): 219–40, https://doi.org/10.1177/1470357206065527 . [4] Dancing Museums, “Black Box / White Cube - Dancing Museums,” April 16, 2022, https://www.dancingmuseums.com/artefacts/black-box-white-cube/ . [5] Carolyn Lazard, Accessibility in the Arts: A Promise and a Practice (Reading PA: The Standard Group, 2019), 28. [6] Tate, “White Cube | Tate,” n.d., https://www.tate.org.uk/art/art-terms/w/white-cube . [7] Lazard, Accessibility in the Arts, 27. [8] “Nintendo Switch版『Ib』 発売記念『ゲルテナ展』 | GALLERY X BY PARCO | PARCO ART,” PARCO ART, 2023, https://art.parco.jp/galleryx/detail/?id=1160 . [9] Dancing Museums, “Black Box / White Cube - Dancing Museums,” April 16, 2022.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 윤수빈 2007년부터 시작된 포켓몬스터 시리즈와의 인연으로 게이머가 되었으나, 2023년에 결별을 선언하였다. 그래도 여전히 포켓몬 게임 시리즈의 출력 텍스트인 "햇살이 강해졌다!"가 삶의 모토. 좋아하는 게임이 생기면 동인지를 만드는 삶을 살아왔지만, 2024년부터는 게임 비평이라는 새로운 감상의 언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종종 '룬츠'라는 닉네임으로 2차 창작을 쓰고 그린다.
- 울기 싫은 플레이어의 애도하기: <마이 리틀 퍼피>
애도는 개와 인간의 관계만큼이나 <마이 리틀 퍼피>의 중요한 주제다. 봉구에 대한 애도는 재회에 대한 염원에서 시작해 게임에 등장한 모든 영혼에게 각자의 해피엔딩을 쥐어주는 것으로 발전했다. 이 과정에서 봉구와 ‘아빠’는 개와 인간, 죽은 자와 산 자로 관계맺으며 서로를 변화시켰을 것이다. < Back 28 GG Vol. 26. 2. 10. Tags: 건조, 강아지, 반려동물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ujin Park A day-job creator of current-affairs YouTube and podcasts, and an ordinary gamer. Often takes part in telling game stories infused with current affairs.
- <검은 신화: 오공>의 성취는 중국 문화권 바깥에서도 충분히 이해되는 것인가?
이를테면 많은 한국 게이머들은 매 챕터가 끝날 때 등장하는 ‘다음 회에서 알아보자’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 어려운데, 이는 회본 형태로 챕터가 정리되는 서유기 원전의 끝 문장을 그대로 차용해 온 부분이고 원전 ‘서유기’가 한국에서는 널리 읽히는 편은 아니라는 문제에서 기인한다. 그나마 친연성이 있는 한국에서도 이런 상황인데, 서구권까지 넘어가게 되면 사실상 <오공>을 이해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 < Back 21 GG Vol. 24.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인터뷰] 북미 게임연구자 Consalvo, 한국과 북미의 게임문화를 말하다
콘살보 교수와의 이번 인터뷰는 게임에 대한 인문사회학적 고찰에 있어 필수적인 게임학의 현재를 진단해보는 한편 북미의 상황에 대해 들어봄으로써 이 시점, 여기에서 고민해볼 만 한 지점들을 모색하고자 기획하였다. 실시간 인터뷰가 어려운 현재 여건상 이 인터뷰는 이메일로 진행되었음을 밝힌다. < Back 01 GG Vol. 21.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Bora Na A game researcher. Game-playing goes back quite a long way, but the first encounter with game studies came by chance, through a game course taken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Since graduating, has carried out research and writing centered on game history and culture, here and there. Contributed to The History of Games, The Theory of Games, and Mario, Born in '81, among others.
- 예술이 되기 전에, 현실의 주인이 될 각오를 해야 한다
오로지 게임애호가일 뿐인 입장에서 게임과 예술에 대해 생각하면 “게임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외침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다들 아는대로 이러한 클리셰적 항변은 예술과 게임의 본질이나 실제로 게임이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는 조건 등을 따지는 것과는 큰 관계가 없다. ‘게임을 하는 나’에 대한 정당화 시도가 핵심이다. < Back 12 GG Vol. 23. 6. 10. Tags: 예술, 전시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aeSeok Kim Kim is known for his activities as a critical expert on current affairs in various press media. But he is also an active gamer who never let go of games. Some of his publications includes 『a cynical society』, 『Otaku Loved Lenin』, as well as a co-author of 『Now, Here, Far-Rightism』, 『right-wing discontent』, 『Twitter, that 140-character egalitarianism』. His latest publication is 『Democracy where you vote because you don't like that side』.
- ‘너’의 가치를 소멸시키는 ‘우리’의 게임들 : 헤이즈라이트의 강제적 코옵 게임들에 관해
이 때, ‘나’에게 ‘너’는 교환 불가능한 대상으로 남는다. 이 교환 불가능성은 ‘너’가 게임을 특별히 잘해서 남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달성한 순간은 달성의 정도와 무관하게 영원히 감각으로만 남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너’가 아닌 다른 누구를 앉힌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감각을 대체할 수는 없게 된다. 이것이 코옵 플레이의 마술이다. < Back 28 GG Vol. 26.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unin Lee Writes and lectures freely across comics, games, and film. A lifework: clearing every Final Fantasy title except the MMORPGs. Mainly plays on the Steam Deck.
- 게임과 예술: 게임 플레이 경험을 깊이있게 만드는 것은 가능한가
‘게임은 예술인가’라는 질문은, 그 질문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합리적인 대답을 기대한다면 생산적일 수 없다. 나는 이 글을 통해 그 이유를 설명하고,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얻게 되는 “미적 경험(aesthetic experience)”에 대한 사유가 게임을 예술 또는 비예술로 분류하는 것보다 더 나은 접근 방법임을 주장하려고 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 Back 게임과 예술: 게임 플레이 경험을 깊이있게 만드는 것은 가능한가 12 GG Vol. 23. 6. 10. You can see this article's english version at below URL: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match=id:229 ‘게임은 예술인가’라는 질문은, 그 질문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합리적인 대답을 기대한다면 생산적일 수 없다. 나는 이 글을 통해 그 이유를 설명하고,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얻게 되는 “미적 경험(aesthetic experience)”에 대한 사유가 게임을 예술 또는 비예술로 분류하는 것보다 더 나은 접근 방법임을 주장하려고 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술적 작품이란 곧 미적 경험의 주입과 같은 것이 아닌가요?” 이에 대한 대답은 ‘당연하다’겠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와 같은 ‘경험’의 유형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만약 게임이 다양한 감정을 지닌 주인공이 겪게 되는 복잡다단한 내면의 상태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면, 우리는 게임을 문학이나 철학적 작품과 비교(하고 또 그에 따라 판단)하고자 할 것이다. 나의 제안은 (게임의) 예술적 지위 여부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벗어나 그 경험을 조망함으로써 관심의 초점을 (기껏해야 미심쩍을 뿐인 목표인) 게임의 고급 문화로의 편입으로부터 보다 심오한 게임플레이 경험으로 옮기자는 것이다. 이처럼 게임플레이 경험 깊이의 심화라는 목표는, 우리로 하여금 그 경험에 보다 많은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면서 게임이 기존의 경험적 한계를 넘어서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미학’ 그리고 ‘경험’ 게임은 멀티미디어 작업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게임은 숙련된 개인들의 협업으로 만들어져 단일 매체의 경계를 가뿐히 넘어서는 종합예술(Gesamstkunstwerks)라 부를 수 있다. 게임을 플레이할 때 우리는 그 초점을 전체적인 경험에 맞추거나, 또는 시각적 재현이나 애니메이션, 레벨 디자인, 대사, 음악 등 보다 협소한 부분에 맞출 수 있다. 여기서 내가 ‘경험’이라 칭한 것의 개념은 ‘미학(또는 미적인 것)’의 개념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통해 드러날 수 있는데, 그 의미는 다원적이다. 서양 미학은 일반적으로 아이스테시스(aísthēsis, 감각 및 그로부터 얻는 분별력)과 노에시스(noesis, 순수하게 지적인 이해 또는 이성의 적용)을 구분해왔다. ‘미학’은 종종 ‘감각(sensation)’, ‘지각(perception)’ 및 ‘판단(judgement)’의 개념이 중첩되어 확장된 방식으로 이해되곤 하는데, 여기서 감각이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감각적 경험을 통해 얻는 것이고, 지각에서는 관찰자의 활동이 대상을 인식하거나 인지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며, 판단의 경우 미학적 판단이 개념이나 이성의 적용에 의해 매개되지 않는다는 특성을 지닌다. ‘게임 미학’이란 컴퓨터게임, 디지털게임 또는 비디오게임이 지니는 특별한 독특성을 함의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게임 미학은 ‘게임의 플레이란 어떤 느낌인가’와 같은 게임플레이 경험의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감각을 통해 특정한 유형의 경험이나 인식을 얻을 수 있도록 해주는데, 미학적 관점에서 연구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철학자 존 듀이(John Dewey)는 지속적으로 소위 ‘고급’ 문화(high culture)와 대중문화(popular culture)간의 연속성을 주장해왔다. 듀이의 생각은 인간이 분열되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와 같은 분열은 우리의 (감정적, 지적, 감각적) 능력이 서로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하지 못하도록 구획되거나 분리될 때 발생한다. 이 분열은 ‘예술’의 영역이 ‘생활’의 영역과 분리된 것으로 여겨지는 순간에 발생하는데, 예컨대 미술 갤러리나 오페라 하우스 같은 지정된 공간에 진입할 때에만 미적 경험이 가능하다고 가정하는 (그리고 그 외부에서는 미적 경험이 불가능하다고 가정하는) 그 순간에 발생한다. 이러한 인식은 결국 그 외의 다른 모든 경험들을 비(非)미적인 것으로 방치하는 것이자, 심지어는 임금을 벌거나 집 청소하기, 건강 유지, 친구와의 대화 등 다양한 여타의 경험들을 직접적인 목적을 위한 수단적인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거기에는 다른 어떤 가치도 없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우리의 즉각적인 경험(immediate experiences)이 향상되면서 미적 경험이 개인의 주요 관심사와 삶에 통합될 때 가능한 풍요로움을 놓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술가, 큐레이터, 비평가들을 탓하자는 뜻은 아니며, 예술세계에 우리의 경험을 깊이 있게 발전시킨 작품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다 - 그러한 작품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예술세계를 분리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을 원하는 금전적 이해관계가 실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비/예술의 구분을 짓는 권력을 공고히 하고 ‘이것이 예술이다’라는 상징적 지위를 부여하는 권능은 현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게임은 예술인가?’라는 질문에는 다양한 중요 가정들이 내재하는데, 이러한 가정들이 게임 플레이 경험에 대한 세밀한 주의력을 발전시키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우선 어떤 것이 예술 작품인지 아닌지를 추정할 때 적용되는 ‘예술’의 개념에 대한 가정이 있다. 이러한 가정은 이분법적으로 분류함으로써 질문의 확장을 억압할 수 있다. 둘째, ‘게임’을 단일한 카테고리로 묶는 가정이 있다. 이는 단일한 장르에서도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는 게임플레이를 분석하는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게임을 (대부분의) 다른 예술 작품들의 방식을 통해 식별이 가능한 객체 또는 작품이라고 보는 가정이 있다. 이러한 인식틀에서 (게임의 미적) 가치는, 게임플레이의 경험을 최대한 활성화하기 위해 플레이어가 게임플레이에 들여오는 과정보다는, 개발자의 예술적 통찰이 담긴 표현에 존재한다고 여겨진다. 〈다크 소울(Dark Souls, 2011, From Software)〉 같은 게임이 우울증에 대해 도움이 된다는 보고가 있는데, 그와 같은 플레이어의 경험적 변화를 만들어낸 것은 긴 과정 동안 형성된 플레이어와 게임 간의 연결 속에서 플레이어가 가지게 된 심리적 상태(와 게임플레이에 대한 전념)였다. 비평가의 미학적 기준 지난 2005년 영화 평론가 로저 에버트(Roger Ebert)는 저자의 통제를 필요로 하는 문학이나 영화 등의 진지한 예술과는 달리, 본래적 속성상 플레이어의 선택을 요하는 게임은 예술의 위상에 도달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후에 이와 같은 발언이 바보같은 짓이었다고 언급하긴 했지만, 에버트의 주장은 게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관점 - 게임은 유치하고, 세련되지 못하며, 즉각적인 만족을 충족시킬 뿐이며, 화려한 시각효과만 가득하고, 모호성을 배제하기 위해 정량화되고, 저속한 감정에 영합하는 것이라는 - 에 부합하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수행했던) 로저 에버트의 주장에 대한 해체나 반박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주장의 본질을 강조하려 한다. 그 주장이란 예술의 지위를 진지하게 다투려면 게임이 다른 예술 형식들과 같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에게 이와 같은 주장은 논쟁의 여지조차 없을 정도로 당연한 것이며, 심지어 일부 게임 철학연구자들조차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예술 철학자인 그랜트 태비노어(Grant Tabinor)는 주로 게임을 예술로 간주할 수 있을지와 같은 존재론적 문제를 연구해왔다. 이 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음에도, 그는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일부 비디오게임만이 예술로 간주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의 접근 방식은 예술에 대한 기존의 정의에 기반하여, 게임이 해당 조건을 충족시키는지 여부를 분석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어떤 단일한 이론에만 의존하는 접근은 피하는 대신, 미적인 속성이 목록화된 ‘클러스터 이론(cluster theory)’의 방식을 취했다. 즉 목록의 미적인 속성 중 충분한 수를 충족시킨 게임은 예술작품이라 간주되는 것이다. 2009년의 저작 〈The Art of Videogames〉의 177페이지에서 태비노어는 미학자 베리스 거트(Berys Gaut)가 제시했던 클러스터의 정의를 언급하는데, 이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속성들에 부합하는 것을 예술 작품이라 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은 것들은 예술 작품이 아니다: (1) 아름다움이나 우아함 등(감각적인 즐거움의 기반이 되는 속성)과 같은 긍정적인 미적 속성을 지닐 것, (2) 감정을 표현할 것, (3) 지적으로 도전적인 것(예를 들어 기존의 견해나 사고 방식에 대한 질문을 던질 것), (4) 형식적으로 복합적이되 일관될 것, (5) 복잡다단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을 것, (6) 개별적인 관점을 보여줄 것, (7) 창의적인 상상력을 수행할 것(독창적일 것), (8) 숙련된 고도의 기술로 생산된 인공물 또는 퍼포먼스일 것, (9) 기존 예술 형식(음악, 회화, 영화 등)에 속할 것, (10) 예술작품을 만들겠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산물일 것 태비노어는 베리스 거트가 예술 작품이라면 이와 같은 10개의 조건을 전부 충족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예술에 대한 군집적인 정의를 구성하는 조건을 제시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태비노어가 기존의 클러스터 이론이 제시한 이와 같은 조건들이 광범위하게 옳다는데 동의하는 것 - 그러한 이론이 세부 사항에 대한 수정 권한을 보유하고 있을지라도 - 은 명백해 보인다. 이러한 접근 방식에 따라 그는 〈스페이스 인베이더(Space Invader, 1978, Taito)〉나 〈레드 데드 리뎀션(Red Dead Redemption, 2010, Rockstar San Diego)〉 등 게임계에서 클래식으로 인정받은 게임들을 예술적 지위에서 배제했는데, 왜냐하면 이 게임들은 클러스터 이론과 매우 부분적으로만 중첩되었기 때문이다. 〈Routledge Companion to Game Studies(p. 60)〉의 한 챕터에서 태비노어는 〈레드 데드 리뎀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레드 데드 리뎀션〉은 최신 게임 예술의 정점으로서 자주 거론되지만, 게임의 드라마나 내러티브는 섣부르게 흉내낸 파생적인 서부극에 가깝다. 영화로 치면 단호하게 B급이다. 많은 경우 게임의 서사나 캐릭터, 연기, 각본 등에서 낮은 수준이 발견된다. 뿐만 아니라 승인된 예술에서 나타나는 세련됨의 정도에 도달하는 경우를 게임 중에서 찾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상기의 글은 결국 〈레드 데드 리뎀션〉에 대해 ‘내러티브, 캐릭터, 연기, 각본’에 따라 판단했음을 보여준다. 그와 같은 요소들은, ‘상호작용(또는 그 고유한 속성을 지칭하는 다른 프레임)’에 의해 생성되는 게임플레이 경험의 리듬이나 느낌보다는, 클러스터 이론에 더 부합하는 것들이다. 결국 태비노어는 게임이 단순히 기존 예술형식의 파생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하나의 예술 형식이라고 보는 입장임에도, 클러스터 이론을 적용한 그의 주장은 기존의 예술 이론에서 나온 (미적) 속성의 목록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러한 속성들은 게임이 예술로서의 자격 - 심지어는 게임이 미학적으로 고려할만한 가치가 있는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 에 대한 진정성 있는 고려가 이루어지지 않은 문화적, 역사적 맥락 속에서 수립된 것들이다. 결국 태비노어의 철학적 방법론은 이와 같은 결과로 이어져 버렸다. 게임으로 작업하는 예술가들은 게임플레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기존의 철학 분야만 게임플레이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술계는 중립적인 역사적 맥락 내에서 게임을 소개함으로써 게임플레이의 속성에 관한 문제를 우회하는 경향이 있다. 영국에서 최초로 열렸던 게임 전시는 2002년 바비칸 아트 갤러리(the Barbican Art Gallery)에서 열렸던 〈Game on: the History and Culture of Video Games〉였다. 미국의 스미소니언 미술관(The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또한 2012년 The Art of Video Games 전시를 통해 〈컴뱃(Combat, 1977)〉에서부터 〈리틀 빅 플래닛(Little Big Planet, 2011)〉까지의 과정을 역사적으로 접근했다. 또 다른 (우회) 전략으로는 게임의 아바타나 가상세계 거주의 개념, 게임의 표상적 측면 등 게임에 대한 이해에 있어 보편적인 측면들을 앞세우는 것이 있다. 미국의 아티스트 코리 아켄젤(Cory Arcangel)은 게임의 시각적 측면에 관념적으로 접근하는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들은 ‘게임-관련 예술(game-related art)’ 가운데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현대미술 박물관, 휘트니 박물관, 시카고 현대 미술 박물관 등지에서 전시되었다.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1983년의 게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를 모딩하여 푸른 하늘과 8비트의 하얀 구름만 남기고 나머지는 전부 없앤 비디오 설치 작품 〈슈퍼마리오 클라우드(Super Mario Clouds)〉가 있다. 여기에는 마리오도, 쿠파도, 굼바도 없다. 이 작품에서 게임플레이는 시각적 명상(visual contemplation)을 위해 퇴치되었다. 아켄젤은 또한 2011년 바비칸에서 〈Beat the Champ〉라는 전시를 선보였는데,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시간 순서대로 14개의 볼링 게임을 정렬한 이 설치 작품에서도 게임플레이는 배제되었다 . 전시 공간을 걸어가면서 관객은 볼링공이 핀에 부딪히는 소리가 아닌 거터볼(gutter ball) 소리를 듣게 되는데, 이는 점수를 낼 수 없도록 아켄젤이 볼링 게임들을 프로그래밍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갤러리의 관객들은 로저 에버트가 찬양했던 작가적 통제(authorial control)와 조우하게 된다. 연이어 발생하는 상황(실패)에 대한 사유를 유도하기 위해 디자인된 실패한 볼링 게임의 상황을 관객들이 오디오-비주얼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게임플레이의 경험적 측면에서 볼 때 이는 실패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사회적 및 게임의 맥락이 거세된 (미리) 결정된 실패다. 전시회장에 전시된 콘솔의 존재는 - 해당 전시에서 게임 플레이는 단순한 녹화본이 아니었다 - 관객이 게임을 직접 플레이할 수 없다는 불능성(inability)을 강조한다. 이 불능성은 게임플레이와 연계되어 발생하는 긴장과 불안, 춤을 추듯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의 움직임, 게임 리듬에 적응해가는 과정, 피할 수 없는 좌절, 그리고 어떤 게임이 가장 매력적인 게임플레이를 제공했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등에 대한 판단을 경험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아켄젤은 게임을 가지고 이 작품을 만들었으며, 이는 또한 그가 게임을 전시한 방식이기도 하다. 〈수퍼마리오 클라우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 예술성은 전시의 개념적이고 시각적인 측면에 놓여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는 예술 세계에서 익숙한 언어다. 하지만 이는 분명 게임이 아니다. 하나의 경험으로서 게임플레이의 신체적 도전 또한 다뤄지지 않았다. * Image from: https://coryarcangel.com/shows/beat-the-champ 한편, 로비 쿠퍼(Robbie Cooper)의 설치작품 〈Immersion(2008)〉은 게임플레이를 핵심적인 관심사로 둔다. 이 작품은 전세계 디지털 미디어 이용자들의 신체적인 반응을 기록한 것 인데, 아이들의 게임 플레이로 구성된 부분이 눈에 띈다. 플레이어 얼굴의 고화질 캡쳐는 플레이어들의 순간적인 마음 상태를 우리가 엿보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이 작품에서 카메라는 마치 플레이어들이 우리를 똑바로 바라보는 듯한 위치에 놓여있다). 비록 바뀌는 게임 화면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대신 게임에서 들려오는 사운드와 플레이어의 얼굴 표정 및 신체 자세 간의 대응을 볼 수 있다. 한 소녀가 격투 게임인 〈철권5: 다크 레저렉션(Tekken 5: Dark Resurrection)〉을 플레이하고 있다. 타격이 이어지면서 캐릭터들의 신음소리나 고함소리 등과 함께 특수 효과가 곁들어 진 사운드가 들린다. 우리는 게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맞출 수 있는데, 왜냐하면 〈철권〉을 플레이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움직임이 어떤 사운드를 내는지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쿠퍼의 주체들이 신체적으로, 감정적으로, 인지적으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볼 수 있으며, 또한 플레이어에 의해 어떤 행동이 수행되었으며 이후 그러한 행위가 플레이어-게임 간의 장치적 루프(machinic loop) - 즉 게임플레이 - 내에서 플레이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볼 수 있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겪는 경험의 복잡성 및 그러한 경험이 플레이어의 신체적 존재감과 어떤 식으로 엮여들어가는지에 대해 우리가 주의를 집중시키는 데 성공한 쿠퍼지만, 그 너머를 밝히는 것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거울을 들어 보여주기는 했지만 관련해서 주석은 달지 못한 셈이다. * Image from: https://robbiecooper.com/project/immersion 게임 경험을 발전시키기 위해 기존의 게임플레이 규범에 도전하는 인디 게임개발자들은 플레이어와 개발자들이 ‘좋은 게임플레이’ 모델로서 수용하여 일반화된 장르 경험을 인식시킴으로써 우리의 게임 경험을 발전시켜왔다. 그에 따라 그들은 현재의 게임 디자인에 있어서 진부해진 것은 무엇이며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다른 대안적인 경험은 무엇일 수 있는지에 대해 자신들의 의견을 제시해왔다. 물론 보다 규모가 큰 개발사들도 이러한 시도를 해왔다. 나는 여기서 그와 같은 혁신의 역사를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와 연관된 인디 게임의 사례들은 수없이 많고, 이에 대해서 다른 곳에서도 많이 논의가 되어왔으므로, 여기서는 간결하게 정리하고 넘어가려 한다. 우선 〈언더테일(Under Tale, 2015, Toby Fox)〉은 어떤 상황에서 우리가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유일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그리고 그것이 게임플레이가 생성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플레이어로 하여금 RPG라는 장르가 지녀온 가정을 대면하도록 만들었다. 〈브레이드(Braid, 2008, Number None)〉는 시간-기반 메카닉의 가능성을 열어젖히면서 많은 게임들에 영향을 미쳐왔던 인과성에 대한 생각을 재고토록 했다. 〈스탠리 패러블(Stanley Parable, 2013, Galactic Cafe)〉는 게임 내 반복성의 한계를 통해 선택과 자유의 문제를 다루면서 게임 속 자유가 궁극적으로 제한적이라는 문제를 다뤘다. 〈항아리 게임(Getting Over It with Bennett Foddy, 2017, Bennett Foddy)〉는 플레이어가 ‘(스스로를) 이겨내는 것’이 가능한지, 아니면 그 자신의 자아 또는 ‘하드코어 게이머’로서의 정체성을 위해 자신에 대한 가혹한 기대 속에 갇히게 되는지를 통해 플레이어와 그 자신 간의 관계를 시험하게 한다. 그 밖에도 다양한 게임들이 게임플레이 경험에 대한 성찰을 유발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신중한 제안들을 기다려야 한다거나 게임의 예술로서의 지위나 미학적 경험을 그러한 게임들에 온전히 의지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깊이 있는 게임플레이 경험을 위해 일상의 삶과 예술을 통합하자는 존 듀이적 프로젝트는 우리가 하나의 커뮤니티를 이루어 예술적인 관심을 일상으로 가져올 때에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이는 결코 쉬운 도전이 아니다. 이번 글에서 나는 게임플레이 ‘경험’ 및 그 경험을 깊이 있게 만들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각 개인들이 자신만의 고유한 게임 경험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그리고 그러한 능력을 고양시키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규범에 맞춰 자신들의 능력을 구획하지 않는 공동체를 만들자는 듀이적 이념과 부합한다. 다양한 범주의 게임들이 공유하는 게임플레이 경험이 지니는 보편적인 측면들에 대해 개괄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그와 같은 기술적인 일반화(descriptive generalization)는 개인들이 특정 상황에서 겪게 되는 특정한 경험들에 대한 희미한 그림자일 뿐임을 인정해야 한다. (게임 플레이 경험에는) 게임의 메카닉을 내재화하고, (게임에) 적응해가면서 추론해낸 원칙에 따라 행동하고 대응하면서 점진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기술이 발전하는 것에는 기쁨이 존재한다. 또한 다양한 선택에 대한 전략적 평가와 그 선택에 따른 결과에 대한 추측이 존재한다. 관련성 여부에 따라 정보의 조각들이 선택적으로 기억되거나 잊혀지는 긴장이 존재한다. 또한 (게임플레이 경험에는) 움직이는 특정 자극에 대해서 지적이지만 무의식적인 주의 집중 - 다른 것에는 향하지 않는 - 이 존재하는데, 이는 복잡다단하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기회와 위협을 추적하는 것이다. 그리고 휴식과 패배 또는 승리가 걸린 순간들이 흘러들어왔다가 나가는 흐름에 대한 감상도 존재한다. 일부 레벨 같은 특정 맥락에서는 찰나의 행동이 일부 가능성을 응축시키고 다른 가능성을 차단하는 공간과 시간에 대한 예리한 인식이 존재한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으로, 콘트롤이 포기되면서도 행사되는 고요한 순간에 자동적이고, 직관적으로, 그리고 원숙하게(능수능란하게) 행동할 수 있는 능력에서 느껴지는 즐거움이 존재한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게임플레이 경험과 관련해서 기억상실을 겪곤 한다. 게임을 플레이한 경험을 우리 자신의 머리 속에서 단순한 '재미'의 경험으로 치부하고는 나중에 잊어버리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예술’이라 여기지 않는 것에 대해 미학적 관점을 적용하지 않는 탓이다. 그렇지 않으면, 게임을 보다 나아지거나 도전을 이기는 유형의 훈련으로 여겨, 그 진척의 정도에 따라 가치를 측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방식 대신, 게임플레이의 윤곽과 질감에 대해 곰곰히 곱씹어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게임플레이가 어떤 식으로 펼쳐졌고, 어떻게 발전해갔으며, 어떤 부분이 다를 수 있었을지, 그리고 그 가운데서 우리를 매료시켰던 점 또는 그렇지 못했던 점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물론 게임플레이 중에는 수행해야 하는 일들이 많기 때문에 플레이하는 그 순간에 그와 같은 성찰을 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게임에 능숙해질수록 그와 같은 성찰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월해질 것이다. 그와 같은 성취(게임 내에서의 성취와 게임플레이 경험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에 대한 성취 모두)를 이루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습관의 철학자인 클레어 칼라일(Clare Carlisle)은 생각, 신체적 감각 및 감정적 반응에 대한 우리의 주의력이 행동을 통해 습관화할 수 있으며 감정적 감수성을 함양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실천을 통해 복잡다단한 게임플레이 경험 속에서 우리는 그 경험의 미학적 가치에 대한 이해를 고양시킬 수 있을 것이며, 그에 따라 우리의 경험에 깊이를 더함으로써 게임이 잠재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포용성을 키울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Tags: 예술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펑 주 펑 주 박사(Dr. Feng Zhu)는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King’s College London)의 디지털 인문학부에서 게임과 가상환경(Games and Virtual Environment)을 가르치고 있으며, 권력, 주체성, 놀이의 교차점으로서 게임플레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주로 우리가 게임플레이를 통해 어떤 식으로 습관화되는지에 초점을 맞춘 연구를 수행하며, 특히 반영성과 주의력의 양가적 형태를 심어줄 수 있는 종단적 자아 형성으로서 게임플레이 형식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이 가운데서 일부는 존재의 미학적인 측면에서 해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 『관을 가진 신의 손』,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이 감추는 기억
『프린세스 메이커』를 플레이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경험이 있다. 시간을 들여서 정성껏 딸을 키웠는데, 마지막에 도착한 엔딩이 기대와 전혀 다른 것이었던 경험이다. 게임자체에서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어느 수치가 모자랐는지, 어느 계절의 일정이 문제였는지, 아니면 무심코 고른 선택지 하나가 모든 것을 갈랐는지에 대해 게임은 침묵한다. < Back 『관을 가진 신의 손』,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이 감추는 기억 31 GG Vol. 26. 8. 10. 들어가며: 육성 시뮬레이션 장르의 기억 『프린세스 메이커』를 플레이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경험이 있다. 시간을 들여서 정성껏 딸을 키웠는데, 마지막에 도착한 엔딩이 기대와 전혀 다른 것이었던 경험이다. 게임자체에서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어느 수치가 모자랐는지, 어느 계절의 일정이 문제였는지, 아니면 무심코 고른 선택지 하나가 모든 것을 갈랐는지에 대해 게임은 침묵한다. 플레이어는 게임 속의 몇 년, 현실의 몇 시간이었던 자신의 플레이를 스스로 되짚어야 하고, 혼자서 얻지 못한 답은 공략 게시판과 친구의 플레이 경험담 같은 것으로 채워진다. 육성 시뮬레이션은 처음부터 그런 장르였던 셈이다. 게임이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기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 플레이어의 기억이, 나아가 플레이어들의 기억이 메워온 장르 말이다. 그런데 이 익숙한 감각을 유독 극단까지, 그리고 유독 정교하게 밀어붙인 게임이 있다. 『관을 가진 신의 손(冠を持つ神の手)』, 통칭 ‘카모카테’라고 불리는 이 게임은 2009년 일본의 동인 서클 ‘코무기바타케(小麦畑)’가 발표한 육성 시뮬레이션 무료 동인 게임다. 시골에서 자라 어머니를 여읜 주인공은 어느 날 이마에 새겨져 있던 인장, ‘선정인’으로 인해 신의 선택을 받은 차기 왕 후보임이 드러나고, 왕성으로 강제로 옮겨진다. 제목의 '관(冠)'은 바로 이 왕관을 가리킨다. 프린세스 메이커의 플레이어가 아버지가 되어 딸을 키웠다면, 카모카테의 플레이어는 1년이라는 기한 안에 왕 후보가 되어 성장하고 왕성 안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나가야 한다. 오랫동안 아는 사람만 아는 게임으로 남아 있던 이 작품은 2026년 6월 스팀을 통해 리메이크판이 정식 발매되면서 다시 조명받고 있다. 이 게임을 이번 호의 주제인 ‘기억’ 앞에 세운 이유는, 육성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가 플레이어의 기억에 무엇을 맡기고 무엇을 대리 기억해왔는지를 이 게임만큼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드물기 때문이다. 이 게임에는 호감도 게이지가 없다. 정확히 말하면 호감도는 존재하지만, 게임은 그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공략 캐릭터가 주인공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게임 시스템 내부 어딘가에 숫자로 정확히 기록되어 있으나 플레이어는 그 숫자에 접근할 수 없고, 대신 캐릭터에 대한 '인상'을 스스로 판단하여 입력하고 저장과 불러오기를 반복해야 한다. 게임이 기억하는 것과 플레이어가 기억해야 하는 것이 이토록 선명하게 갈라지는 게임은 흔치 않다. 그렇다면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은 플레이어의 기억 중 무엇을 대신 기억해주고, 무엇을 플레이어의 몫으로 남겨두는가. 이 글은 ‘카모카테’ 라는 하나의 사례를 통해 따라가보고자 한다. 인상 시스템, 공략 캐릭터는 어떤 인상으로 남았는가? 이 게임을 처음 플레이했을 때, 호감도가 어디쯤 와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캐릭터에게 말을 걸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이벤트를 겪어도 그 결과로 상대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감으로 이벤트의 선택지를 누르고, 감으로 인상도를 입력했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각 캐릭터와의 만남과 이벤트를 겪은 뒤, 그 캐릭터에 대한 '인상(印象)'을 직접 입력한다. 『도키메키 메모리얼』처럼 호감도 확인이 시스템의 일부로 설계된 일반적인 연애/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이라면 시스템이 알아서 호감도 수치를 올리거나 내리고 그 결과를 게이지로 보여주었을 자리에서, 이 게임은 반대로 플레이어에게 묻는 것이다. 방금의 만남은 어떤 인상으로 남았는가. 조금 전 캐릭터와의 대화는 주인공 캐릭터에게 어떤 감정을 남겼는가. 그리고 이렇게 입력되어 누적된 인상도는 이후 어떤 이벤트가 발생할지, 이야기가 어느 분기로 흘러갈지를 결정하는 실질적인 변수로 작동한다. 말하자면 이 게임에서 관계의 기록을 담당하는 것은 게임이 아니라 플레이어 자신이다. 게임은 입력된 기록을 받아 계산할 뿐, 그 기록이 실제 관계와 얼마나 일치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첫 플레이는 이벤트를 줄줄이 놓친 채, 그 누구와도 이렇다 할 결말을 맺지 못하고 끝나는 게 대부분이다. 게임 내에 각 공략 캐릭터 당 애정, 우정, 증오, 배반, 살해 5가지의 루트나 존재하는데도 말이다. * 동인판 시절의 인상도 입력창 그 대신 발견하게 되는 것이 하나 있다. 그동안 올려온 인상도를 단 한 번에 정반대로 뒤집어버리는 버튼이다. 그 버튼을 누르면, 캐릭터가 공략 캐릭터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이 애정에서 증오로, 증오에서 애정으로 돌변한다. 이 ‘반전’ 시스템은 한 회차에 단 한 번 사용할 수 있는 기능으로, 지금까지 쌓아온 인상을 정반대로 뒤집는다. 호의로 쌓아온 관계를 순식간에 적의로, 적의로 쌓아온 관계를 순식간에 호의로 바꾸어 놓는 이 장치는 그 자체로 극적인 장치이지만, 더 흥미로운 것은 이 버튼을 사용하는 플레이어의 상황, 이유다. 호감도가 얼마나 쌓여 있는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신중하게, 또는 감각에 따라, 그게 아니라면 그냥 누르는 것이다. 뒤집힌 결과가 어디에 도달할지는 결과를 보지 않고선 알 수 없다. 게임은 끝내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캐릭터와 무엇을 쌓아왔는지를 스스로 얼마나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가에 따라, 이 시스템은 정교한 한 수가 되기도 하고 무모한 선택이 되기도 한다. * '반전' 시스템 게임 시스템으로서의 대리 기억 그렇다면 게임은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 이는 플레이어에게는 보이지 않던 것이 사실은 게임 내부에는 정확한 숫자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호감도는 플레이어가 화면에서 확인할 수 없을 뿐, 게임 엔진 안에서는 캐릭터마다 하나의 변수로 계산되고 저장된다. 플레이어가 감으로 입력한 인상도와, 게임이 실제로 들고 있는 호감도는 서로 다른 층위에서 각자의 숫자를 유지하는 셈이다. 플레이어의 기억이 흐릿하고 주관적인 인상으로 남는 동안, 게임의 기억은 숫자 하나까지 정확하다. 세이브 파일이 보존하는 것도 이와 같은 층위에 있다. 육성 파라미터, 캐릭터별 호감도와인상도, 이후 분기의 조건, 도달 가능한 엔딩의 판정 조건 등, 이 모든 것은 저장되며, 그 기억은 게임의 몫이 된다. 다시 게임을 켜면 이 값들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이어진다. 무엇을 몇 번 선택했는지, 어떤 이벤트를 몇 주차에 봤는지는 플레이어가 잊어도 게임은 잊지 않는다. 다만 게임이 기억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결과다. 어떤 선택을 거쳐 지금의 상태에 도달했는지, 그 선택의 과정 자체는 저장되지 않는다. 세이브 파일에는 인상도 몇이라는 최종값만 남을 뿐, 플레이어가 어떤 대화와 어떤 장면에서 느낀 점을 통해 이 값을 만들었는지는 기록되지 않는다.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의 기억은 과정을 소거한 결과값의 기억이다. 물론, 숫자만이 이 게임이 기억하는 전부는 아니다. 카모카테는 공략 캐릭터마다 고유한 테마곡을 두고, 해당 캐릭터의 이벤트가 시작되면 그 곡을 재생한다. 몇 마디만 들어도 곧 누구의 이야기가 시작될지 알 수 있게 하는 장치다. 이 설계는 유료 음원을 쓸 수 없었던 동인판 시절부터 자체 음원을 갖춘 스팀판에 이르기까지 형태를 바꾸지 않고 이어져왔다. 숫자가 아닌 소리로 이루어진 이 기억은, 인상도만큼 정밀하지는 않아도 그 나름의 방식으로 기억을 정확히 짚어낸다. 플레이어의 몫으로 남겨진 기억 게임이 기억하는 것은 결과값이라고 앞서 말했다. 그렇다면 그 결과값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어떤 대사와 어떤 나레이션과 어떤 표정이 플레이어의 인상도를 움직였는가는 어디에도 남지 않는다. 주인공이 캐릭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에 대한 감각, 관계가 지금 얼마나 따뜻한지 혹은 얼마나 서늘한지에 대한 체감은 세이브 파일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이것은 저장되지 않기에, 전적으로 플레이어 자신의 기억에 맡겨진다. 게임을 다시 켜면 스탯과 인상도는 그대로 이어지지만, 그 관계가 어떤 감정의 궤적을 그리며 여기까지 왔는지는 플레이어가 스스로 복기해야만 이어진다. 그것은 공략 캐릭터가 플레이어 캐릭터에게 갖는 호감도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 게임이 호감도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완전히 감춘다기보다는, 근사치로만 짐작하게 하는 쪽에 가깝다. 게임 안에는 두 가지 방법이 마련되어 있다. 하나는 시장에 방문해 '점을 보는' 것이다. 점술사는 공략 대상 캐릭터들 중 주인공에게 느끼는 호애도와 호우도가 가장 높은 인물과 가장 낮은 인물을 알려준다. 정확한 수치도, 중간에 위치한 캐릭터들의 순위도 아니다. 오직 양 극단만이 게임 세계 안의 언어로 플레이어에게 전달된다. 다른 하나는 인상도를 입력하는 화면 자체에 있다. 인상도를 입력할 때마다 화면의 배경색이 노란색, 초록색, 보라색으로 바뀌는데, 이 색은 플레이어가 방금 입력한 인상과 실제 호감도 사이의 간격을 나타낸다. 노란색이면 그 간격이 거의 없다는 뜻이고, 보라색이면 그 간격이 크다는 뜻이다. 정확한 수치는 여전히 주어지지 않지만, 플레이어는 이 색을 단서 삼아 자신의 인상도가 공략 캐릭터의 호감도와 얼마나 어긋나 있는지를 가늠하며 다음 선택을 이어가게 된다. * 인상도와 호감도 격차에 따른 배경색 변화 점보기가 게임 세계 안에 놓인 장치라면, 배경색은 화면이라는 인터페이스 층위에 놓인 장치다. 두 장치는 형식은 다르지만 하는 일은 같다. 정확한 답을 주는 대신, 플레이어의 기억이 놓인 위치를 어림잡게 해주는 것이다. 완전히 보여주지도, 완전히 감추지도 않는 그 중간의 자리에서 플레이어는 계속 짐작하고 기억하며 플레이를 이어가야 한다. 저장되는 기억과 해금되는 기억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은 분명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이는 이 게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상도와 호감도라는 숫자는 게임 내부 어딘가에 정확히 존재하며, 세이브 파일은 그 숫자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보존한다. 그런데도 카모카테는 그 기억을 플레이어에게 온전히 넘겨주지 않는다. 저장되지 않아서 접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저장되어 있음에도 접근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부재의 문제가 아니라 은폐의 문제라는 뜻이다. 생각해보면 육성 시뮬레이션은 처음부터 정보를 얼마나 보여줄 것인가를 설계의 중요한 축으로 삼아온 장르였다. 수치를 전부 공개하고 그 위에서 최적의 육성을 계산하게 하는 게임이 있는가 하면, 일부만 보여주거나 특정 조건에서만 확인하게 하는 게임도 있다. 카모카테는 이 스펙트럼에서 은폐 쪽으로 가장 기울어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 은폐는 플레이의 감각을 특정한 방향으로 밀어붙인다. 관계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확신할 수 없기에, 플레이어는 매 순간 가늠하고, 불안해하고, 스스로의 기억을 의심하며 다음 선택을 고른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바로 이 불확실성이 공략 캐릭터와의 관계를 더 살아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수치로 확인되지 않는 마음은,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실제 사람의 마음처럼 종잡을 수 없는 채로 남는다. 이 역설을 게임 디자인의 언어로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스팀판의 도전과제 체계다. 제작자는 스팀 리메이크의 초회 플레이를 원래보다 어려운 조건에서 시작하도록 설계했다고 밝혔다. 호감도는 보이지 않고, 육성에 대한 보정도 없으며, 주인공의 능력치를 올리는 것부터 쉽지 않은 상태에서 플레이가 시작된다. 그런데 엔딩을 하나씩 보고 도전과제를 하나씩 달성할 때마다, 그동안 잠겨 있던 기능이 하나씩 열린다. 이벤트명 표시, 이벤트 회상, 능력치 지원, 호감도 표시, 무효 선택지 표시, 그리고 반전을 주차당 한 번이 아니라 무제한으로 쓸 수 있게 해주는 기능까지. 이 기능들은 원래 동인판 시절 유료 공략지원판에서 제공되던 것들이었으나, 스팀판에서는 플레이 자체를 통해 도달해야 하는 보상으로 재배치되었다. * 업적 달성으로 해금되는 공략지원기능 이 설계가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이 글 전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그대로 게임 시스템의 형태로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존재하되 접근이 제한된 기억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제로 잠겨 있다가 플레이를 거듭할수록 조금씩 열리는 기능으로 이 게임 안에 구체화되어 있다. 플레이어가 쌓아가는 것은 인상도만이 아니다. 그 인상도에 접근할 권한 자체도, 플레이를 통해 함께 쌓여간다. 나오며 결국 이 게임의 인상 시스템이 플레이어에게 던지는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관계란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는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모른 채로 계속 마주하는 것인가. 대부분의 게임은 전자를 택한다. 호감도는 게이지로 표시되고, 플레이어는 그 게이지를 보며 다음 선택을 계산한다. 카모카테는 후자를 택했다. 숫자는 존재하지만 감춰져 있고, 플레이어는 확신 없이 다음 대화를 건네야 한다. 이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보면, 이것은 프린세스 메이커가 이미 던져두었던 질문이기도 하다. 엔딩에 도달할 때까지 자신이 무엇을 쌓아왔는지 알 수 없었던 그 경험은, 육성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가 처음부터 플레이어의 기억에 무언가를 떠넘겨온 역사와 맞닿아 있다. 카모카테는 그 역사를 계승하되, 감춰진 것과 드러난 것의 경계를 인상 시스템이라는 형태로 훨씬 더 정교하게 다듬은 사례다.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이 무엇을 대신 기억해주고 무엇을 끝내 플레이어의 몫으로 남겨두는가는, 결국 그 게임이 관계를 어떤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카모카테의 답은 인상 시스템의 구조 그 자체에 이미 들어 있다. 게임은 정답을 쥐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채점표로 내밀지 않고, 플레이어가 스스로 적어낸 인상과 감춰진 숫자 사이의 어긋남을 안은 채 다음 플레이로 나아가게 한다. 반전 버튼 앞에서 망설이던 순간을 다시 떠올려보면, 그때 고려했던 것은 게임 내부의 숫자가 아니라 이벤트나 지금까지 골라온 선택지, 공략 캐릭터와의 관계에 대한 스스로의 기억이었다. 게임은 숫자를 기억하고, 플레이어는 시간과 관계를 기억한다. 다음 플레이를 시작할 때, 인상도와 호감도는 처음으로 돌아가지만 그 관계를 기억하는 플레이어의 감각은 처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Tags: 기억, 관을 가진 신의 손, 카모카테, 육성 시뮬레이션, 프린세스 메이커, 동인 게임, 호감도 시스템, Raising Simulation Games, Princess Maker, Doujin Games, Japanese Indie Game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콘텐츠연구자) 이미몽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닌텐도 게임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몇 개월 전 스팀덱을 할부로 구매하여 열심히 즐기고 있습니다. 경희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선 문화매개를 전공했고, 현재는 일본의 리츠메이칸 대학교 첨단종합학술연구과 박사과정에 재학중 입니다. 게임과 웹툰 등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와 문화를 연구합니다.
- 미연시는 시뮬레이션의 꿈을 꾸는가
그리고, 1992년 <동급생>(同級生, elf, 1992)이 출시되었다. < Back 미연시는 시뮬레이션의 꿈을 꾸는가 27 GG Vol. 25. 12. 10.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이라는 단어의 조합 ‘미연시’라는 단어가 있다.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이란 게임 장르를 지칭하는 단어로 이 장르는 코어한 팬층이 존재하며 지금도 계속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게임의 “장르”가 대부분 그렇듯이 이 미연시 역시 엄밀하게 구분되어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많은 사람들이 게임의 장르를 구체적으로 분류하려고 시도를 했으며 대부분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는데, 비슷한 상황으로 “미연시”라는 장르에 대해서도 이 장르에 대해서 들었을 때 떠올리는 게임들이 각기 다를 가능성이 높다. 제작자가 “이것은 미연시입니다.” 라고 하면 미연시이고 아니다 라고 하면 미연시가 아니다 라는 무난한 결론을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먼저 미연시 라는 단어가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통용하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일본에선 이런 단어를 안쓰나요? 라는 의문점이 떠오를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일본에서는 연애시뮬레이션(恋愛シミュレーションゲーム) 이란 단어를 먼저 사용하였었으며 우리가 흔히 미연시라고 통칭하는 장르의 게임의 역사가 깊은 만큼 다양한 게임이 나왔기 때문에 요즘은 연애시뮬레이션보다는 해당 장르에서 발전된 다른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그 단어 역시 어덜트 게임(アダルトゲーム), 에로 게임(エロゲ), 걸 게임(ギャルゲー), 미소녀 게임(美少女ゲーム), 비주얼 노벨(ビジュアルノベル), 노벨 게임(ノベルゲーム)등 해당 장르를 포함하거나 가리키는 단어들이 엄밀하게 구분되지 않고 사용된다. 근래에 커지고 있는 영어권 시장에서는 Dating Sim 이란 장르가 우리가 부르는 미소녀 연애시뮬레이션에 가장 가까운 것을 가리키는 단어가 될 것이다. 물론 이런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한국에서 부르는 “미소녀”와는 거리가 있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다시 미연시라는 장르로 돌아와 국내에서는 이러한 연애 이야기를 다루는 게임들을 미연시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분류는 장르적 구분이 엄밀하지 않다. 시뮬레이션이란 이름으로 캐릭터의 전투와 육성 시스템을 넣었지만 그 수준이 장식인 정도의 게임도 있을 수 있고, 야한 장면이 존재하는 게임이지만 그냥 야겜이라고 부르기 민망해서 미연시라고 부르는 게임들도 존재한다. 아니면 그냥 야한 장면이 없는 연애를 다룬 게임을 미연시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연시라고 부르는 게임에서 ‘미소녀’와 ‘연애’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시뮬레이션’은 미연시의 어떤 부분에서 찾아 볼 수 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한 손쉬운 방식이라면 역시 그 뿌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미연시의 뿌리를 국내에서 찾아보자면 국산 PC 게임에서는 <캠퍼스러브스토리>(남일소프트, 1997), <부킹맨>(FEW, 1997), <스카드젬>(아트림미디어, 2001)등이 나올테고 온라인게임으로 넘어가면 NPC와 쌓아가는 시스템이나 호감도가 존재하는 현재의 캐릭터 뽑기 게임들도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연애 대상으로서의 ‘미소녀’라는 단어를 제외한 연애 시뮬레이션으로 가면 <구운몽-어느 소녀의 사랑이야기>(네오앨리스, 2014)이나 <수상한 메신저>(체리츠, 2016)등을 언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근래에는 한동안 기세가 죽었다고 여겨지던 비주얼노벨 장르의 게임들이 주문형 게임 플랫폼을 중심으로 외산과 국산을 가리지 않고 활발하게 출시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사실 국내에서 국산 게임으로 미연시의 계보를 그리기는 힘든 부분이 있다. 꾸준히 한 장르를 제작하는 크리에이터가 드물고, 각각의 게임들이 국내의 다른 게임의 영향보다는 외산 게임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장르에 한해서라면 그 뿌리를 일본으로 찾아가는 것이 맞다. 연애시뮬레이션의 뿌리 뿐만 아니라 일본의 성인게임은 서브컬쳐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여러 가지 문화코드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성인용 게임 안에 등장한 캐릭터의 원형이나 스토리텔링 방법론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거리가 많겠지만 지면이 부족할 가능성이 높고, 필자 역시 성인용 게임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정리는 다른 지면, 다른 분에게 맡기고자 한다. 우선은 연애시뮬레이션이 시뮬레이션을 다루는 형식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해보자. 미연시라는 장르의 탄생 장르란 이름의 미연시 탄생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일반적으로는 해당 장르명을 전면에 내세운 대표 사례들인 <두근두근 메모리얼>(ときめきメモリアル, KONAMI, 1994) 이나 동시기에 나온 <안젤리크>(アンジェリーク, KOEI, 1994) 정도를 이야기하겠지만, 이 두 게임 역시 일반적인 연애 시뮬레이션으로 인식되는 게임들의 역사의 흐름에서 앞부분이 아니라 중간에 위치해 있다. 그렇다 보니 연애를 주요 소재로 삼는 게임을 찾아보려면 좀더 앞의 역사를 찾아볼 필요가 있다. 보통 일본 게임사를 살피는 시도는 가정용 콘솔 게임을 중심에 두곤 하는데, 지금까지도 시장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콘솔시장에 중심을 두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연애 게임의 계보를 살피려면 PC게임의 역사를 함께 확인해 봐야 한다. 8 0~90년대의 일본 개인용 컴퓨터 환경은 다른 나라의 개인용 컴퓨터 환경과는 크게 달랐다. 개인용 컴퓨터는 기본적으로 업무를 하기 위한 장비이고, 영어로는 일본어 업무를 처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로 개인용 컴퓨터 환경이 인해 일본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국제규격으로 표준 언어 코드 체계가 통일이 되기 전까지는 독자적인 언어코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일본의 개인용 컴퓨터 환경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환경이 아니라 일본어 표시를 지원하는 독자규격 PC와 운영체제 소프트웨어가 갈라파고스처럼 독자적인 생태계를 형성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PC-88 / PC-98 이었다. 하지만 전세계에서 그랬듯이 개인용 컴퓨터로 업무만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개인용 컴퓨터로도 게임을 즐겼으며, 가정용 게임기처럼 개발킷이 따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컴퓨터 그 자체로도 소프트웨어 개발이 가능 했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게임을 만들 수 있었다. 이런 PC환경에서 만들어져 인기를 끈 게임들이 가정용 게임기로 이식되곤 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게임을 만들어 출시 할 수 있었던 점이다. 가정용 게임기 시장은 플랫폼 홀더가 게임의 출시를 강하게 관리했기 때문에, 게임을 자유롭게 출시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개인용 컴퓨터 시장은 게임의 출시에 허락이 필요하지 않았는데 (물론 이후 심의단체가 생겨나면서 지금 시점에서 보기에 무모할 정도의 소재를 다룬 게임들은 안 나오게 된다.) 이러한 특징은 가정용 게임기에서는 다루기 힘든 소재의 게임들이 PC 게임 시장에 출시될 수 있게 만들었다. 성인 게임 등장 성인용 게임은 간단한 규칙에 야한 그림만 붙이면 만 있으면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인식이 있어 초기 게임 개발사들의 적잖은 시도들이 있었다. 그런 흐름 중에는 술자리에서 문란하게 노는 문화들을 컴퓨터 게임으로 옮기는 경우도 있었다. 일본에는 “야구권(野球拳)”이라는 놀이가 있는데, 단순한 가위바위보를 통해 진 사람이 걸치고 있는 옷을 하나씩 벗는 일종의 술자리 벌칙 게임이었다. 최초의 성인용 게임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주로 언급되는 것이 이 '야구권'을 컴퓨터용으로 옮긴 <허드슨의 야구권>(野球拳, HUDSON) , 1981(추정))이다. 허드슨은 2012년에 코나미에 인수되기 전까지도 유명한 게임 회사 중 하나였는데, <허드슨의 야구권>은 텍스트를 이용한 이른바 아스키 아트(ASCII Art)라고 부르는 트릭으로 여성을 화면에 그린 뒤, 가위바위보 게임에서 이기면 텍스트로 만들어진 야한 그림을 볼 수 있는 게임이었다. 동 시기에 나온 코에이의 <나이트라이프>(ナイトライフ, KOEI, 1982)가 최초의 성인용 게임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는데, <나이트라이프>는 게임이라기보다는 성행위의 체위를 알려주는 일종의 교양 소프트웨어였기 때문에 게임으로 보기 힘들다는 의견도 있다. 개발사 이름이 익숙하실 텐데 '그 코에이인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삼국무쌍> 등으로 유명한'그' 코에이가 맞다. 초창기의 이러한 시도들 이후 PC게임 소프트웨어 시장에는 성인용 소프트웨어가 무수히 쏟아졌다. 야한 장면을 모아놓은 사진집 소프트웨어나 간단한 퍼즐 게임을 풀면 야한 사진을 볼 수 있는 게임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초기 게임들이 단순한 포르노에 가까운 사진집들이었다면, 이후에는 좀더 스토리텔링에 무게를 둔 성인용 어드벤처 게임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일본의 어드벤처는 미국의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와는 다른 형태로 발전했는데, 미국 어드벤처 게임들이 포인트 앤 클릭, 텍스트 직접 입력 인터페이스 중심의 게임이었다면 일본의 어드벤처 게임들은 화면 안에 캐릭터가 나오고 선택지가 등장하는 형태로 발전한다. 성인용 게임을 분류하는 사람들이 일컫는 '코에이 성인용 게임 3부작'이 있는데, 앞서 언급한 <나이트라이프>와 함께 <단지처의 유혹>(団地妻の誘惑, KOEI, 1983), <네덜란드 아내는 전기 뱀장어의 꿈을 꾸는가>(オランダ妻は電気ウナギの夢を見るか?, KOEI, 1984)에 이르러서는 좀 더 게임스러워지고 설정도 복잡해 진다. <단지처의 유혹>은 주인공이 여성과 관계를 가지는 보상이 주어지는 형태이긴 했으나, 장면 자체는 자체 규제를 거쳐 직접적으로 행위가 묘사되지는 않았다. 게임 화면은 당시 유행하던 3D 던전 게임의 인터페이스에 기반했다. * <단지처의 유혹> 플레이 장면 1980년대의 성인용 게임은 야한 이미지를 보상의 개념으로 제공하는 게임들이 많았으며, 이야기가 중심이고 야한 이미지는 덤인 정도의 어드벤처 게임, 혹은 성인용 비디오를 컴퓨터로 옮긴 시도들이 상당수 존재했다. 어드벤처 게임들은 선택지를 통해 플레이어가 게임을 진행하는 형식이었고, 이런 형태의 진행은 게임의 시나리오에 플레이어가 개입하여 결과가 바뀌긴 했지만 이러한 게임들을 시뮬레이션으로 인식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성인용 게임 중에 본격적으로 시뮬레이션으로 인식하게 되는 게임들은 이후에 등장한다. 연애를 시뮬레이션하다 연애시뮬레이션의 초기 형태를 띤 게임으로 <도쿄 난파 스트리트>(TOKYOナンパストリート, ENIX, 1985) 가 주로 언급되는데 이 게임 제목에 등장하는 난파(ナンパ)라는 단어는 남성이 여성에게 교제 혹은 성행위를 목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뜻하며 헌팅이라는 표현으로 번역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단어라 부가 설명을 덧붙이자면 일반적으로 호쾌한 혹은 불량스러운 남성을 지칭하는 일본의 표현인 경파(硬派 – 코우하로 발음)와 그 반대편에 있는 여성을 밝히는 남성을 지칭하는 연파(軟派 – 난파로 발음)라는 단어가 존재했는데 여기서 난파라는 단어가 여성을 꼬시는 행위 자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변했다고 인식하고 있다 . 요즘으로 치자면 “여미새”정도로 번역할 수 있지 않을까. (경파에 대한 용례는 가까운 예로 인기있는 고전게임 시리즈인 <열혈경파 쿠니오군> 시리즈를 떠올릴 수도 있다. 난파는 후술할 동급생의 실행 파일명이기도 하다.) '여성을 꼬셔서 에로틱한 상황을 연출해 야한 이미지를 본다' 라는 게임이 기존에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일정 금액을 가지고 특정 장소로 이동하여 캐릭터를 만나 이야기 속에서 선택지를 골라 데이트 중 여성의 호감도를 얻고 야한 상황을 연출하는 것에 이어 결혼까지 가는 흐름은 이후 나오는 연애시뮬레이션 게임 구조의 기초가 여기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의 개발사 에닉스 역시 일본 게임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친숙한 이름인데, 스퀘어를 합병하여 스퀘어 에닉스로 사명을 바꾼 그 에닉스이며, 개발협력에는 호리이 유지가 올라가 있기도 하다. * <도쿄 난파 스트리트> 플레이 장면 성인용 게임들은 이후에도 활발히 나왔는데, 그다지 의미 없는 선택지들과 수위 높은 야한 장면이 연출되는 단순한 어드벤처 게임부터 나름 미스테리처럼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만 야한 장면이 존재하는 이야기 중심의 어드벤처 게임들이 있었다. 이런 어드벤처 장르의 게임 외에도 퍼즐게임이나 테이블 게임에서 승리하면 상대방 여성이 옷을 벗는 연출로 야한 장면을 “보상”의 감각으로 제공하는 게임들이 꾸준히 나왔는데, 점차 RPG나 시뮬레이션 같이 굳이 야한 장면이 필요 없는 장르의 게임에서도 미소녀와 성인용 이미지를 추가한 다양한 장르의 성인용 게임들이 나오는 흐름을 맞는다. 성인용이 아니더라도 미소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다양한 장르의 게임들도 나타났다. 인기있던 성인용 게임들이 이미지의 수위를 낮춰 가정용 게임으로 이식되는 경우들도 존재했다. 이 무렵의 게임 중 특히 주목할 부분은 육성 시뮬레이션 장르의 게임들이다. 장르의 시발점이자 대표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1991년 작 <프린세스 메이커>(プリンセスメーカー, Gainax, 1991)는 어린 고아를 딸로 삼아 10년간 키우는 게임으로 어떻게 육성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파라미터가 변동하며 이를 통해 다양한 엔딩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인기를 끌었다. <프린세스 메이커>의 개발자인 아카이 타카미는 게임 개발 회고에서 자신은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서 전투보다 부하 육성이 더 좋았었고 이것으로 게임을 만들고자 했는데, 사내에서 여성의 일생을 다루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어 딸을 키우는 게임을 만들게 되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프린세스 메이커>의 특징은 파라미터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직업을 가지게 되는 직업 엔딩과 별개로 게임의 진행과 능력치에 따라 바뀌는 결혼 엔딩이 따로 존재했다는 점이다. 연애에 대한 시뮬레이션이라 부르기는 어렵지만 플레이의 결과로 만들어진 수치에 따라 연애의 결과가 나온다는 점은 주목해볼 만 하다. 국내에도 소개되었던 뒤이어 나온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 <탄생>(誕生 〜Debut〜, Headroom/NEC Avenue, 1993) 이나 <졸업>(卒業, Headroom/Japan Home Video, 1992) 같은 게임들은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의 숫자가 늘었다. <프린세스메이커>와 <탄생>, <졸업> 모두 직접적인 성 묘사가 없었지만 플레이어와의 결혼과 같은 엔딩이 존재하는 것처럼 여성 캐릭터 - 플레이어 관계에 대한 묘사가 연애 혹은 유사 연애로 들어가고 있어 이후 미소녀 게임들에 영향을 준 바 있다. 그리고, 1992년 <동급생>(同級生, elf, 1992)이 출시되었다. * <동급생> 커버 이미지 연애 어드벤처로 분류되어 있는 게임이긴 하지만 연애시뮬레이션으로 분류되기도 하는 이 게임의 인기와 영향력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졸업>과 <탄생>의 원화를 담당했던 타케이 마사키가 디자인한 캐릭터들은 지금까지의 게임과 달리 다양한 구도와 맥락의 이벤트 씬 을 추가해 캐릭터의 설득력을 늘려 나갔고, 게임의 시스템 역시 매우 높은 자유도를 갖도록 디자인되었다. 고정된 이벤트들이긴 하지만 플레이어는 2D로 이루어진 도시의 지도에서 자신의 시간과 자금을 관리하며 여성과 이벤트를 진행하고 최종적으로 야한 이미지를 볼 수 있었으며, 반대로 매일 방에서 침대를 클릭하면서 잠만 자면서 아무것도 안하고 게임의 엔딩을 보는 것도 가능할 정도로 자유도가 높은 게임이었다. 이렇다 보니 한정된 시간과 자금으로 최대한 많은 여자와 관계를 맺는 파고드는 공략을 하는 이용자도 존재했다. * <두근두근 메모리얼> PC엔진 버전의 커버 초반에 이야기했듯이 1994년엔 본격적으로 연애시뮬레이션이란 장르를 표방한 <두근두근 메모리얼>이 등장했다. 성인용 게임이 아니라 전연령으로 발매되었으며 PC용이 아니라 가정용 게임기인 PC엔진용으로 출시되었다. <두근두근 메모리얼>은 이후 다른 게임기로 이식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 게임의 장르명은 연애시뮬레이션이긴 했지만 개발자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여성과의 연애보다는 학창생활을 시뮬레이션하는 것에 가까웠다. 게임의 목표가 게임안에 등장하는 다양한 여성중 한 명을 선택해 연애를 하는 것이었지만 그를 위해 본인의 파라미터를 성장시켜야 하는 육성시뮬레이션적인 요소가 강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 게임은 대 히트를 쳤고, 등장하는 히로인 캐릭터들 역시 크게 인기를 끌며 100만단위의 판매량을 달성했다. 이전의 미소녀를 대상으로 한 연애 게임들이 PC 시장을 중심으로 판매되어 큰 히트작으로 알려지더라도 판매량이 10만단위였던것을 생각하면 이 수치는 굉장히 큰 수치였으며 100만단위의 판매량을 만들어낸 연애를 소재로 한 첫번째 게임이 되었다. 이후 연애를 그리지 않더라도 이러한 시뮬레이션 장르에 미소녀가 나오는 다양한 게임들이 가정용 게임기로 출시되는 계기가 되었다. *< 안젤리크> 패키지 아트 미소녀란 이름을 앞에 붙일 수는 없지만 1994년 코에이에서는 여성 플레이어를 대상으로 한 연애시뮬레이션 게임이 나왔다. <안젤리크> 역시 스스로를 연애시뮬레이션으로 분류하였으며, <두근두근 메모리얼>과는 달리 <안젤리크>는 배경을 판타지로 옮기고 주인공 여성 캐릭터는 여왕후보로 다른 후보와 경쟁하며 수호성들의 도움을 받아 행성을 육성해서 여왕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당시 개발 상황에 관한 인터뷰를 들여다보면 시나리오만으로는 게임성이 충분하지 않아 여왕 후보 2명을 두어 경쟁시키고, 수호성과 협력하여 행성을 발전시킨다는 건설운영 시뮬레이션 시스템을 추가해 완성된 형태가 되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안젤리크>가 가진 연애시뮬레이션으로서의 성격은 연애 자체를 시뮬레이션했다기 보다는 연애 요소를 가진 시뮬레이션 게임이란 의미에 가까웠을 수도 있겠다. 시뮬레이션에서 이야기로 <두근두근 메모리얼> 이후 다양한 육성 시뮬레이션이 미소녀를 다루며 많은 게임이 나왔지만 전반적으로는 성인용 게임보다는 미소녀를 다룬 다양한 게임이 더 주목받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Leaf”사의 게임들이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전의 어드벤처 게임들이 캐릭터와 배경, 스탯이 보이는 3D 던전 게임 느낌의 게임화면을 바탕으로 작은 대사창에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형태였다면, Leaf의 <시즈쿠>(雫, Leaf, 1996), <키즈아토>(痕, Leaf, 1996)는 성인용 게임에서도 캐릭터와 스토리에 비중을 좀 더 주며 화면의 전체를 덮는 형태의 이야기를 전달하게 된다. 이러한 움직임은 이러한 미연시 장르의 게임이 본격적으로 읽는 게임으로 변화함을 보이는 상징적인 변화이기도 하다. * 좌 , 대사창 중심의 게임 진행과 우 의 화면을 덮는 게임 진행 한편 트루 엔딩이란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인데, 단순히 히로인을 선택해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으로 끝이 아닌, 개발자가 제시한 진정한 결말이라는 것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후 스토리에 중심을 둬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Key사의 <카논>(Kanon, Key, 1999)이나 <클라나드>(CLANNAD, Key, 2004), 등이 등장하고 연애를 다루지는 않지만 <슈타인즈게이트>(STEINS;GATE, 5pb, 2009)에서는 트루엔딩에 도달하기 위한 반복 플레이를 루프라는 형태로 본격적으로 다루었다. 이처럼 미연시에서는 게임 속 여성 캐릭터와 자신과의 이야기를 즐기는 것이 아닌 게임 안에서 전체 캐릭터의 이야기를 모두 본 후 전체 이야기의 진정한 결말에 도달하는 형태의 어드벤처가 일반적인 형태가 되어갔다. <선택지의 선택사>에서 저자 시모쿠라 바이오는 로컬 플래그와 글로벌 플래그라는 개념을 이야기한다. 선택지 기반 어드벤처 게임들은 선택지에 따라 플래그라 부르는 게임 시나리오의 조건 스위치를 켜고 끄는데, 로컬 플래그가 한 시나리오 안에서만 동작하고 그 밖에서는 동작하지 않는 플래그라면 글로벌 플래그는 게임 전체에서도 관리되는 조건을 가리킨다. 이를 통해 어드벤처 게임들은 트루 엔딩같은 개념이나 엔딩을 봐야 열리는 다른 시나리오를 다루는 플래그를 글로벌 플래그로 분리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플래그는 <당신과 그녀와 그녀의 사랑>(君と彼女と彼女の恋。, Nitroplus, 2013)이나 <두근두근 문예부>(Doki Doki Literature Club!, Team Salvato, 2017) 처럼 메타픽션을 연출하려면 반드시 필요하며, 미소녀 연애시뮬레이션 게임이 선택지를 통한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작가가 제시하는 엔딩이 중심이 되고 플레이어는 캐릭터를 좋아하는 형태로만 남게 되는 시스템을 만든다. 결국 미연시의 “시뮬레이션”부분은 각 게임들은 시뮬레이션이란 단어를 자의적으로 다뤄왔다고 밖에 할 수 없겠다. 그 시뮬레이션은 학창 시뮬레이션일 수도, 전략 시뮬레이션일수도, 육성 시뮬레이션의 그것이었을 수도 있었지만 그 게임 안에 연애는 존재하였고, 이러한 연애요소들은 지금도 캐릭터 게임에서 유사한 시스템으로 제공되고 있다. 하지만 시뮬레이션에 대해 이렇게 접근해 볼 수도 있다. 미연시 시스템을 플레이어 캐릭터의 스탯 달성 여부로 연애 성공을 판단하는 방식과, 플레이어의 선택을 플래그로 관리하는 방식으로 나누는 것이다. 이 중 스탯을 관리해서 연애를 달성하는 게임만이 엄밀하게 연애를 시뮬레이션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키메키 메모리얼>이 등장한 이후 30년동안 한국에서 게임 안의 캐릭터와의 연애를 그린 게임들을 미연시라고 불렀던 이유는 그것이 캐릭터의 수치를 성장시키는 것이든, 시나리오 라이터가 준비한 이벤트를 보며 선택을 하는 것이든 본인이 선택한 선택지를 통해 캐릭터와의 연애가 진행되는 상황을 시뮬레이션으로 받아들였던 시기가 존재하였었던 것이 아닌가 라고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서 연애시뮬레이션이란 장르는 플레이어가 캐릭터와 유사 연애를 즐기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게 되었다. 현대의 미연시에서 플레이어들은 시나리오 라이터가 제시하는 트루 엔딩까지, 게임이 준비한 모든 이야기를 읽어 나간다. 그리고 게임이 끝난 뒤에는 게임 바깥에서 캐릭터를 소비한다. 결국 시뮬레이션이란 단어는 흔적기관으로만 남아 이 장르를 지키고 있는 것 아닐까.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개발자, 연구자) 오영욱 게임애호가, 게임프로그래머, 게임역사 연구가. 한국게임에 관심이 가지다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것에 취미를 붙이고 2006년부터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있다. 〈한국게임의 역사〉, 〈81년생 마리오〉등의 책에 공저로 참여했으며, 〈던전 앤 파이터〉, 〈아크로폴리스〉, 〈포니타운〉, 〈타임라인던전〉 등의 게임에 개발로 참여했다.
- 게임에서 사랑이 재현되는 두 가지 형태 – 자기애와 애착
캐릭터에 대한 애착(attachment)은 단순한 사랑의 방식이 아니다. 여기에는 애착의 대상인 캐릭터가 절대 연애의 주체성을 드러내서는 안 되며, 플레이어를 만족시킬만한 일러스트와 계량화된 수치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포함된다. < Back 게임에서 사랑이 재현되는 두 가지 형태 – 자기애와 애착 16 GG Vol. 24. 2. 10. 들어가며 비디오 게임은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루는데 별로 적합하지 않은 매체라는 견해는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사랑을 테마로 하여 다른 예술 장르들은 작중 인물에 대한 감정 이입을 바탕으로 스토리텔링을 진행하는 반면, 게임의 경우 이러한 스토리의 진행 과정을 세분한 뒤 다양한 가능성을 지닌 형태로 만들어 플레이어가 직접 경험하게 만들어준다. 때문에 사랑을 테마로 하는 게임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하나의 운명적 사랑을 결정적 플롯으로 풀어내기보다는 플레이어가 사랑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직접 탐구하는 형태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90년대 이후 일본을 중심으로 제작된 수많은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하 미연시)들은 이 때문에 고정된 스크립트가 아닌 수많은 분기를 가진 가능태로서의 스크립트인 스크립톤이 다수 뭉쳐있는 형태로 개발된다. 이러한 미연시들이 풀어내는 사랑은 각각의 에피소드로만 보면 전형적인 ‘낭만적 사랑’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한 낭만적 사랑이 한 명의 주인공으로부터 여러 이성을 대상으로 한 복수적인 형태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90년대의 미연시들은 주인공의 바람둥이적인 기질을 성격적으로 반영하기보다는 차라리 기억상실을 시켜 매번의 사랑에 충실하도록 하는 다소 기형적인 스토리텔링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지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이머들이 이러한 형태의 기형성을 큰 거부감 없이 흡수하면서 게임을 즐겼다는 점이다. 게이머의 사랑에 대한 주체적 유연성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주지하다시피 우리는 낭만적 사랑이란 테마가 더 이상 별로 유효하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 극장가에서 정통 로맨스나 로맨틱 코미디 장르는 퇴조한지 오래이며, 사랑이란 현실 속에서 찾아야 할 존재라기보다는 불가능한 대상을 희망하는 판타지의 영역에 머무는 것으로 변해왔다. 회귀, 빙의, 환생을 통해 어떻게든 불가능한 대상과의 합일을 합리화 시키는 웹소설들이 한 발 더 나아간 극단적 서사를 보여준다면, 게임은 서사의 극단성보다는 서사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의 체험을 통해 실체성을 획득하게 된다. 플레이어에게는 사랑이 이루어지는 과정의 리얼리티나 현실성이 중요하다기보다는 그것을 일단 플레이어가 체험하는 것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비디오 게임에서 사랑의 재현은 플레이어의 체험을 절차적으로 재구성하는 형태로 개발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운명적이고 결정적인 플롯을 통한 감정 이입에는 다른 매체가 더 적합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개발자들은 게임 내에서 사랑의 재현을 독특한 형태로 변주시켜왔다. 특히 플레이어가 적극적으로 사랑을 투사할 대상을 다양하게 준비하는 것, 다시 말해 플레이어가 애착을 가질 대상을 다양하게 준비하는 것이 한 가지 방법론이라고 볼 수 있다. 블루아카이브의 김용하 PD가 NDC에서 일찍이 “모에론”을 통해 설파한 바 있지만 1) , 여동생계/동년배계/누님계로 3분화한 여성 캐릭터들은 그 어떤 성애를 가진 플레이어가 들어오더라도 하나 정도는 얻어걸릴 수 있는 보편성(?)을 획득하는데 주력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게임 개발자들은 낭만적 사랑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최근 경향을 반영하여 자기애를 투영할 수 있는 중성적이면서 목소리 없는 캐릭터와 커스터마이징 시스템을 고안해 내었다. <페르소나> 시리즈나 <젤다의 전설> 시리즈의 주인공은 특별히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대사도 매우 절제되게 발화하는데, 이는 미리 설정된 캐릭터에서 빚어질 수 있는 감정 이입을 최소화하고, 캐릭터는 나 자신으로 간주하는 일종의 자기애가 투여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커스터마이징 시스템 역시 캐릭터의 외양을 플레이어가 스스로 꾸밀 수 있도록 하면서 자기애를 부추긴다. 물론 플레이어에 따라 본인 모습과 유사하게 꾸미는 경우도 있고, 이상형의 이성을 상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디자인하기도 하지만 이 캐릭터를 직접적으로 움직이면서 그러한 다양한 외관을 향한 감정이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향하도록 만든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자기애’와 ‘애착’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최근 게임들에 재현된 사랑의 주체화 과정을 간단히 분석해 보고자 한다. 2. 페르소나와 자기 치유의 메커니즘 - <페르소나> 시리즈 아틀러스 사의 <페르소나> 시리즈는 <여신전생> 시리즈의 스핀오프 형태로 1996년부터 출시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온 인기 시리즈 게임이다. <여신전생> 시리즈가 염세적인 아포칼립스 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악마들과의 다툼을 다룬 판타지 게임이라면, <페르소나> 시리즈는 <여신전생> 시리즈로부터 많은 설정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악마와의 다툼을 캐릭터 내면의 문제로 치환시킨다. 또한 학원물 형태로 진행되면서 <여신전생> 시리즈에 비해 훨씬 더 밝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 게임에서 ‘페르소나’는 C.G.융의 분석심리학에서 사용하는 용어임과 동시에 게임 속 캐릭터의 내면에 응축된 억압된 자아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 게임에서 페르소나는 캐릭터들의 내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신을 실체화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 <페르소나 4>의 주인공 스케치 이 시리즈에서 주인공은 늘 구체적인 이름이 정해져 있지 않고(미디어 믹스 형태로 만들어진 애니에서는 주인공의 이름이 구체화되기는 한다), 다른 캐릭터들이 화려한 성우진의 목소리로 꾸며지는 반면 주인공의 목소리는 전면화되지 않는다. 왜 이렇게 주인공 캐릭터를 중성화하고 목소리를 넣지 않는가에 대한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어느 누가 플레이를 하더라도 주인공을 마치 자신의 분신처럼 생각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각 작품마다 줄거리는 좀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페르소나> 시리즈의 주인공은 스스로의 페르소나를 각성한 이후 주변 인물과 관계를 맺으면서 그들의 내면을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게 된다. 예를 들어 <페르소나 4>에서 주인공은 아마기 유키코라는 같은 반 여학생의 페르소나와 마주치게 된다. 이나바 시의 고급 여관집 외동딸인 유키코는 여관의 차기 후계자로서 엄격한 교육을 받았으며, 학교에서도 정숙한 모범생으로 통하고 있다. 그러나 성격이 굉장히 내성적이어서 같은 반 친구 치에를 제외하면 다른 사람과 잘 대화를 하지 않는 소극적인 면모도 보인다. 유키코에게 여관을 물려받아야 하는 정해진 운명은 질곡과 억압으로 작용하여 그녀는 역헌팅을 하러 다니는 유키코 공주로 TV속에서 등장한다. <페르소나 4>에서 TV는 특정한 캐릭터의 본성이 드러나는 가상의 무대로 주인공이 TV 속으로 들어가 문제가 발생한 캐릭터의 본성이 만들어 낸 가상의 공간 속에서 그와 다투게 된다. 유키코의 공주의 성에서 그녀의 본성을 해방시키면 그녀는 자신이 억눌러왔던 어두운 측면을 인정하고 페르소나를 각성시키게 된다. * <페르소나 4> 아마기 유키코의 캐릭터 일러스트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형태의 페르소나 각성 과정이 다양한 인물 군상을 통해 여러 번 반복된다는 점이다. 유키코보다 보다 명랑쾌활한 치에나 화려한 아이돌 활동 속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바라봐주길 바라는 리세, 겉으로는 덩치가 크고 불량한 캐릭터이지만 동성애 기질이 있고 섬세한 측면이 있는 칸지, 하드보일드한 남자 탐정을 동경하는 나오코 등은 게임을 통해 경험하게 되는 타자이지만 실제로 그 중 하나 정도는 실제 플레이어의 삶과 유사한 측면을 발견할 수 있는 “나”의 면모들이기도 하다. 그들의 트라우마가 주인공을 통해 치유되는 과정을 극복해내고 친구들과 관계가 심화되면서 플레이어는 마치 자신의 트라우마가 조금씩 치유되는 것 같은 느낌을 맛보게 된다. <페르소나> 시리즈를 둘러싼 이러한 자기 치유의 메커니즘은 비디오 게임의 매체적 특성과도 제법 잘 어울린다. 비단 <페르소나> 시리즈뿐만 아니라 다른 게임에서도 이러한 형태의 다양한 인물군을 제시하고 그 중 마음에 드는 캐릭터와 연결되게끔 하는 방식은 상당히 자주 사용된다. 이러한 과정은 겉으로는 플레이어의 이상형 찾기로 귀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과정 속에 상당한 자기 치유 과정이 개입되어 있다는 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이는 금세기를 전후하여 소설의 독자와 영화의 관객이 게임의 플레이어로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타인과의 사랑을 갈망하기보다는 자기애를 더욱 내면화하는 과정 속에서 유저들의 주체성이 변화해 온 결과라고 볼 수 있다. 3. 계량화된 사랑과 수치화된 외모 – 수집형 게임의 메커닉 사실 <페르소나 시리즈>는 일반적인 게임에 비하면 상당히 고도화된 스토리텔링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에, 일반적인 게임의 사랑 재현 양상이라고 간주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특히 최근작 <페르소나 5>에서는 악인처럼 설정된 가면 속 주인공이 타락과 구원을 반복해가는 과정을 통해 일종의 피카레스크 식 구성을 선보이기도 하는 등 스토리텔링 과정에 고심한 면모를 보여준다. 모든 게이머가 고급스런 스토리 전개 과정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게임 개발자들은 스토리의 전개 과정을 간소화시키고 량화시킨다. * <우마무스메> 캐릭터의 일러스트와 능력치 개발자 입장에서는 고전적인 형태의 낭만적 사랑이 퇴조한 시기를 채운 자기애의 투사 과정을 굳이 떠올릴 필요가 없다. 이미 자기애 세대의 플레이어들은 카드 한 장에 그려진 일러스트와 능력치만으로 캐릭터를 평가할 준비가 되어 있다. 카드 뒷면에 구구절절 적힌 캐릭터의 전사(前史)는 읽지 않아도 무방한 거추장스러운 것이 된다. 본래 게임에 사용되는 카드는 다양한 배경과 상징을 내재화한 게임 내용물이지만, 그것이 도구적으로만 활용될 때 이는 수치화된 의미를 넘어서지 못한다. <우마무스메>나 <포켓몬>으로 상징되는 수집형 게임의 메커닉에는 복잡한 스토리를 대체하는 일러스트와 캐릭터의 상성, 능력치, 기술 등의 수치적 특성만으로도 그 본질이 치환될 수 있다는 믿음이 내재되어 있다. 캐릭터에 대한 애착(attachment)은 단순한 사랑의 방식이 아니다. 여기에는 애착의 대상인 캐릭터가 절대 연애의 주체성을 드러내서는 안 되며, 플레이어를 만족시킬만한 일러스트와 계량화된 수치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포함된다. 즉, 게임 내에서 플레이어가 가지는 애착의 대상은 살아있는 주체적 인간보다는 캐릭터에 가까운 무언가로 정의되게 된다. 아즈마 히로키 식으로 말하자면 그 캐릭터의 외양은 특정한 형태의 모에적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에 의해 조합되며, 그 캐릭터의 능력치는 적절한 비즈니스 모델을 유발할 수 있을 정도로 희소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수집형 게임을 플레이 할 때 우리는 언제나 산뜻한 기분으로 카드들을 뽑고 포켓몬을 수집할 수 있게 된다. 말의 외양만 보고 모든 플레이어가 그 말에 애착을 가질 가능성은 줄어드니, 모에화된 여성 캐릭터를 달리게 하면서 손쉽게 애착을 형성하는 과정 속에서 플레이어는 매우 손쉽게 애착을 형성할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은 매우 간편하며, 매우 감사하게도 명목상 무료이다. 그러나 그 애착 과정을 좀 더 극대화하기 위해 억만금을 투자하더라도 카드로부터 구체적인 사랑을 얻게 되지는 못할 뿐이다. 1) http://ndcreplay.nexon.com/NDC2014/sessions/NDC2014_0015.html#k%5B%5D=%EA%B9%80%EC%9A%A9%ED%95%98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교수) 이정엽 순천향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게임 스토리텔링과 게임 디자인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인디게임 페스티벌인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 창설을 주도하고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인디게임 행사인 Independent Games Festival(IGF) 심사위원이기도 하다. 저서로 『디지털 스토리텔링』(공저, 2003), 『디지털 게임, 상상력의 새로운 영토』(2005), 『인디게임』(2015), 『이야기, 트랜스포머가 되다』(공저, 2015), 『81년생 마리오』(공저, 2017), 『게임의 이론』(공저, 2019), 『게임은 게임이다: 게임X생태계』(공저, 202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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