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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근대에서 현대로의 궤적을 따르다, <더 파이어 노바디 스타티드> 아로코트 개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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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5. 4. 10.

작년 8월 열린 부산인디게임페스티벌(BIC)에 출품된 <더 파이어 노바디 스타티드(The Fire Nobody Started)는 흔히 접할 수 있는 게임들과는 다른 내러티브와 아트의 독창성을 자랑하는 게임이다.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형식의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는 각각 특정 시대로 대변되는 기차 칸들을 오가며 유럽 근세사의 질곡을 체험하게 된다. 산업혁명기부터 베트남 전쟁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사회의 다양한 굵직한 사건들을 다루는 이 게임에는 인류로부터 비롯되는 발전과 폭력이라는 양가적 주제가 녹아나 있다. GG에서는 <더 파이어 노바디 스타티드(이하 <더 파이어>)>를 제작한 ‘팀 스핏파이어’의 개발자 아로코트를 만나 서양 근세사라는 게임의 테마와 작가로서 개발자가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들을 들어보고자 했다.


 

이경혁 편집장: GG의 인터뷰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더 파이어>를 만드시게 된 계기를 여쭙고 싶습니다.

     

아로코트: 원래 이 게임은 무한히 위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모티프였지만 아무래도 게임의 배경으로 쓰기에는 좁은 감이 있어 기차로 바꾸었어요. 어딘가를 향해서 끝없이 질주하는데 어딘가로 향하는지는 모르는 기차 안에서 대화하는 게임을 만들고 싶어서 친구랑 이야기를 했어요. 메타 판타지 느낌으로 우로보로스처럼 세상 밖을 도는 열차로서 다양한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임을 할까, 아니면 좀더 현실에 가까운 얘기를 할까 하다가 친구가 아무래도 기차라면 산업혁명이 떠오르니 산업혁명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를 하자고 제안했어요. 그렇게 친구와 얘기하며 한 2시간 만에 스토리 개요가 짜인 거죠.

     


이경혁 편집장: 기차로 시작할 수 있는 여러 맥락 중에 산업 혁명이라는 주제를 타고 가셨다는 거죠. 말씀하신 개발 동기로서의 기차가 이 콘텐츠의 외피라면 이 게임의 알맹이 자체는 근대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혹시 관련 전공자이신지도 궁금했습니다.

     

아로코트: 사실 저는 컴퓨터공학이 전공이라 역사 쪽 전공자는 전혀 아니에요. 다만 평소에 그 친구나 저희 아버지와 관련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그러면서 뭔가 제 안에서 관련 지식이나 고찰이 쌓여 갔던 거죠. 그렇게 쌓여왔던 것들이 그 날의 대화로 일종의 촉매가 되어서 게임으로서 형태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이경혁 편집장: <더 파이어>에서 하고 싶으셨던 이야기 자체는 그림이나 소설이나 시 같은 문학의 방식, 혹은 영화로도 만들어볼 수 있었을 텐데 여러 방식 중 게임을 고르셨습니다. 이 작품이 혹시 아로코트님께 첫 작품이신지요?

     

아로코트: 대중에 제 이름을 공개한 게임으로는 <더 파이어>가 처음입니다. 저는 정말 그냥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게임으로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어떤 사람은 영화로 만들고 어떤 사람은 소설을 쓰듯이 저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그게 게임의 형식으로 구체화되는 거죠.

     


이경혁 편집장: 첫 게임의 주제로 서구 근대사를 다루게 된 이유가 있으셨을까요? 게임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메세지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아로코트: 사실 대중에게 공개하는 첫 게임이긴 하지만, 제가 이제껏 기획해 왔던 게임의 성격이 굉장히 개인적인 수준에서의 심리적 고찰에 가까웠다 보니 <더 파이어>가 특이한 사례긴 해요. 학생 시절까지는 정말 저에 대해서만 집중했는데, 어른 되고 나서 보니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 조금 더 눈길이 가더라고요. 물론 다른 사람보다는 서구 근대사에 대한 관심이 좀더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에 아버지가 이런 얘기를 해주신 적이 있어요. '세상에서 모두를 만족시키는 선택이나 정책은 없다. 내가 무언가를 선택을 하면 누군가는 이득을 보고 또 누군가는 어떻게든 고통을 받는다. 그렇게 보면 인간이 사회를 만들고 선택을 해야 되는 사회구조 자체가 원죄처럼 느껴진다'. 그게 굉장히 뇌리에 남았어요. 사회 구조 자체가 아무에게도 상처 입히지 않거나 피해 주지 않는 삶을 만들 수 없게 한다. 자본주의 사회구조 속에서 어떤 행위 자체는 필연적으로 또 어떠한 착취로 이어지는 것 같다. 근데 그런 걸 인식을 해봐야 이 세상은 너무 거대하고 저는 너무나도 작잖아요. 제가 그렇다고 혁명을 할 인물상인가 하면 그렇지 않고.


 그래서 저는 게임을 통해 어떤 대답 대신 이제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을 하고자 했어요. 이 세상의 구조와 그 안에서 맞닥뜨리는 부조리들이 우리에게 주어진 질문이라면, 사실 해답은 개개인의 삶과 경험이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절대로 하나로 정해질 수는 없고 개별적인 것이겠죠. 하지만 각자의 해답에 대해서 서로 논의하고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해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모두 한번 이 질문을 생각해 보자라는 느낌으로, 어떻게 보면 그게 이 게임을 만들게 된 동기인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저는 <더 파이어>에 실제로 사용된 문구나 글을 보면 피상적인 인용이 아니고 레퍼런스를 참조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어 마르크시즘에 대한 언설들도 나오는데 그것도 나름의 공부를 하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혹시 이 주제와 관련해 책이나 자료 같은 소위 말한 레퍼런스로 볼 만한 것들이 있으셨을까요?

     

아로코트: 사실 처음부터 특정한 레퍼런스를 잡고 진행했다기보다는 작업을 하면서 참고한 것들이 많다 보니 딱 어느 것이 레퍼런스라고 짚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마르크시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기본 지식이 있었긴 했지만 추가로 정보가 필요하면 그때그때 여러 가지 문헌들을 찾아봤어요.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에서 관련된 사항들을 읽고 가져올 수 있는 정보를 메모해두기도 했구요.


     

이경혁 편집장: 제작 과정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더 파이어>의 마지막 크레딧에 한 명이 더 들어가 있는 걸 보긴 했는데, 완전히 혼자 게임을 제작하신 것인지요? 전공은 개발자신데 그림도 그렇고 사실 글 쓰는 것도 굉장히 힘드셨을 것 같아요.

     

아로코트: 마지막 크레딧에 나온 분은 아까 말씀드렸던 제 친구입니다. 게임 자체는 사실상 1인 개발로 이루어졌지만, 내용적인 부분에서는 친구가 초반에 등장하는 1차 세계대전 시기까지의 고증 작업을 도와주었어요. 예를 들어 챕터 3에서는 막스 베버의 책을 어떤 노동자가 읽었다는 설정을 만들었다가 고증을 통해 그걸 수정한다던지. 챕터 5에서 대공황 시대에 나오는 볼스테드 법의 허점에 대해 알려준다던지. 고증이 세게 들어간 부분은 제 친구가 써준 것도 있고, 그걸 기반으로 제가 다듬은 것도 있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거의 다 제가 썼어요.

     


이경혁 편집장: 게임의 전체 플레이 타임이 1시간 정도로 그렇게 길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위 말하는 기존의 게임 팬들 사이에서 '이건 게임이 아니야'라는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되는데, 만약 이런 질문이 나오면 어떻게 답을 하시겠어요?

     

아로코트: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 같아요. 이건 사실 게임의 정의에 대한 문제이긴 한데, 흔히 게임도 예술이다라는 얘기를 하잖아요. 무엇이 게임이라는 매체를 예술로 만드는가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대중들이 그 매체를 예술로서 다룰 수 있어야 하고 가장 단순하게는 다른 예술들이 할 수 있는 걸 이 매체도 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게임이 예술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 안에서 정말 다양한 시도를 할 수도 있고 다른 매체들이 다룰 수 있는 주제를 게임도 다룰 수 있다고 생각을 해서요. 이 게임이 인기가 없을 거라는 건 짐작했어도 스스로 이 게임은 게임이 아니다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네요.

     


이경혁 편집장: 인디게임의 1인 개발자로서 BIC(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에 참석하시게 된 계기와 현장 부스의 분위기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아로코트: BIC는 처음에 게임 만들 때, 되든 안 되든 게임쇼 같은 데 작품을 내고 싶다는 제 로망이 있어서 직접 참여하게 됐어요. 현장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런 전시가 처음이었고 실은 돈이 없어서 장비도 못 빌렸거든요. 개발하던 걸 그대로 갖고 가서 동생 노트북과 제 노트북으로 전시를 했는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고 저는 그 정도면 만족이라고 생각해요. 또 현장에서는 그런 한계도 있었어요. 데모판 플레이 타임이 아무리 짧게 잡아도 한 10-15분은 걸리는데 저는 한 30분 정도로 상정했었으니까 게임쇼 내내 <더 파이어>를 돌린다고 해도 직접 경험시켜 드리는 데는 한계가 있더라구요.

     


이경혁 편집장: 저도 뒤쪽에서 봤습니다. 게임쇼의 안타까운 점이기도 하죠. <더 파이어>도 그렇지만 플레이타임이 긴 게임들은 사실상 거기서 시연이 어렵다 보니까요.

     

아로코트: 아무래도 게임 쇼에서는 뭔가 짧고 메커니즘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종류의 게임이 부스로서 사람들에게 강점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좀 많이 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국내에서 <더 파이어>와 비슷한 시도를 하는 분으로 저는 소미(SOMI) 님이 생각나기도 했어요. 혹시 소미님 작품은 플레이 해보셨을까요?

     

아로코트: 네, 소미님은 항상 존경하는 분이에요. 스토리랑 게임의 시스템을 잘 맞물리게 하는 방법을 잘 아시는 것 같고 사실 그게 그분의 강점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사실 그래서 저도 원래는 어느 정도 게임에 퍼즐 요소를 넣어서 인물들의 이야기가 퍼즐로 표현이 되었으면 했는데, 프로그래밍을 그렇게 잘 못했던 건 아쉬운 점이에요.

     


이경혁 편집장: <더 파이어> 중간에 알파벳 맞추기라던가 퍼즐을 시도하시는 것도 느껴졌는데 확실히 게임에서 퍼즐 요소가 적긴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로코트: 원래는 시대별로 보드 게임을 반영해서 첫 번째 챕터에서는 틱택토, 두 번째 챕터는 체스 이런 식으로 반영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제 경우에는 아트까지 다 담당을 하다 보니 무엇 하나는 포기를 해야만 했었어요. 아트는 약간 (이 게임의) 정체성 같은 거라서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림과 퍼즐 사이에서 퍼즐을 포기했던 거죠. 그래서 팀원을 되게 절실하게 원하긴 했어요. 저 스스로도 개인적으로 개발 쪽으로는 욕심이 많이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사소하게 작동하는 메카닉 하나도 굉장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투여된다는 걸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그러고 보니 <더 파이어>에서는 아트도 상당히 눈에 띄는데요. 아트에 비중을 많이 두고 싶으셨던 이유와 구성하기까지의 과정들이 궁금합니다.

     

아로코트: 전공자도 아니고 그림은 초등학생 때 이후로 배운 적은 없었지만, 게임과 관련된 퍼즐 요소에는 확신이 없어도 아트는 이걸 해내면 정말 대단할 것 같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원래는 <더 파이어>에서 아트를 칸마다 다양화할 생각이 없었는데, 아까 저를 어드바이스해준 친구와 얘기하면서 시대에 맞춰 아트를 각자 그리자는 얘기가 나와서 하게 됐어요. 결국 제가 제 무덤을 팠던 거지만요(웃음).

     


이경혁 편집장: 각 시대별로 예술 사조를 다 맞추신 거잖아요. 마지막엔 팝아트랑 컨템포러리까지 가셨던 것 같아요.

     

아로코트: 실은 후반으로 갈수록 각 시대에 아트 스타일이 명확하게 들어맞지는 않아요. 예를 들면 1950년대 매카시즘이 나오는 시대의 아트 스타일로 바우하우스를 선택했는데 사실 바우하우스는 1930년대거든요. 점차 사조들이 갈래가 다양해지기도 하고, 그보다 후반으로 가면 저작권 문제도 있습니다. 이전 시대까지는 각자 모티프로 삼은 작가들이 있었어요. 첫 챕터인 산업혁명 시대 같은 경우에는 신문에 나오는 단색 리소그래피 판화를 택했고, 두 번째 챕터에서는 구스타프 클림트, 세 번째 챕터에서는 툴루즈 로트랙, 네 번째 챕터에서는 몽고메리 플래그 이런 식으로 명확한 작가들을 정했어요. 그런데 후반부로 가니 그렇게 하면 법적인 문제에 걸릴 가능성이 있어 그보다는 시대별 분위기에 맞춰서 선정하고자 했어요. 개인적인 느낌인데 그래서 후반으로 갈수록 제 취향이나 경향성이 조금 더 많이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이경혁 편집장: 콘텐츠에 대한 질문으로 저는 이 얘기를 꼭 여쭤봐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제작자이자 창작자로서 인류의 근대라는 걸 어떻게 보시나요?

     

아로코트: 저희가 <더 파이어>를 만들 때 명확하게 합의하고 넘어간 게 있었어요. 우리가 볼 때 인류의 근대는 실패의 역사다. 지금도 보세요, 이 게임을 완성할 때까지만 해도 세상이 이렇게 돌아갈 줄은 몰랐지만 계엄령도 내려지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지금보다 조금 더 이전 시대 사람들은 그래도 자신만의 이상이나 최선을 상상하고 꿈꾸지 않았나 싶거든요. 근데 지금의 세상은 더 이상 최선을 생각할 겨를이 없이, 최악과 차악 사이에서 최악을 고르지 않기 위해서 애쓰고 있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작품에서 불이라는 모티브를 많이 사용하셨지요. 처음에는 남포등에 성냥으로 불을 붙이고, 그것이 나중에는 원자폭탄이 되고 최종에는 불이 타오르는 쪽으로 계속 걸어가면서, 마지막쯤에 ‘우리가 불이다’ 라는 선언을 하는 모습도 나오고요. 하지만 기술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도 사실이라는 이야기도 살짝 나오잖아요. 그래서 저는 <더 파이어>에서 불이 갖는 의미의 이중성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게 아닌가 했어요.

     

아로코트: 맞아요, 이중적이에요. ‘우리가 불이다’는 아까 말씀드린 인류의 사회와 구조 자체가 원죄라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피우지 않은 불에 의해서 고통받고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세상을 잘 살펴봤을 때 고통받고 있는 우리도 이 부조리의 일부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게임 후반부로 갔을 때 그렇게 산발적으로 그려놓은 불이라는 이미지와 상징을 하나하나 다 끌어모아서 하나로 통합하지는 않았어요. 이 게임을 대답이 아니라 질문으로 만들고자 했기 때문에, 그 상징들을 보면서 플레이어가 그 상징들과 제가 대략적으로 잡아놓은 형태를 보면서 플레이어가 불꽃이란 무언가에 대해서 스스로 결론을 내렸으면 했어요.

     


이경혁 편집장: 산업혁명이나 원자 폭탄 등으로부터 출발해 세계 대전과 베트남 전쟁 등의 서사를 보면, 물질적으로 생명이 죽어나가는 순간들을 포착하시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완전히 근현대까지는 안 오셨고 사실상 베트남 전쟁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로코트: 사실 후반에 소련 붕괴나 911, 서브프라임 사태 이런 것들이 짧게 짧게 지나가잖아요. 원래는 그 사이에 이라크 전쟁을 넣어서 그 문제를 부각하려 했어요. 그랬지만 저한테도 두려움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웃음)... 저는 그래서 사실 계엄령이 내려왔을 때 정말 무서웠거든요. 이성적으로는 게임 창작자로서 역사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할 수 있어야 하고, 이게 정치 사회적으로 짚고 넘어갈 만한 이야기인 것도 맞는데 왜 이런 부분에서 두려워해야 되나 생각하며 현타도 많이 오더라구요.

     


이경혁 편집장: <더 파이어>가 언어를 그래도 꽤 많이 지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번역은 어떻게 처리하셨을까요?

     

아로코트: 번역의 경우 제 친구가 영어 부분을 해줬고, 그걸 기반으로 BIC에서 마사케이라는 분을 만나서 그분이 일본어 번역해 주셨고 나머지는 itch.io(해외 인디게임 커뮤니티)에서 번역 자원봉사자 분들을 구해서 했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역시 개발자들은 itch.io에서 시작하시는군요. 게임의 판매수익은 얼마 정도 될까요? 그동안 들어간 공수가 있으니, 그와 대비해서 이 정도는 회수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기대가 있으셨을 것 같아요. 이런 물질적 기반이나 상업적 성과가 창작자가 다음 작품으로 가는 데 또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해서 여쭤봤습니다.

     

아로코트: 저는 이 게임에 정말 (상업적으로)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모르겠습니다. 돈을 벌면 좋으니까 최대한 게임을 알리기는 하는데, 이성적으로 따져보면 이 게임이 해외에서도 되게 마이너한 분야이고 얼마만큼의 수요를 낼지 장담할 수 없는데 한국에서는 어떻겠어요.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시장의 크기가 있다 보니 그만큼 마이너 장르도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걸 많이 느껴요. 그래도 그런 것 치고는 제 기대보다는 잘 됐다의 느낌이구요. 하지만 조금 더 잘 됐으면 좋겠다고 항상 느끼고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더 파이어>의 경우 국내보다도 해외 쪽 반응이 좀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해외 반응들은 좀 보신 게 있으세요?

     

아로코트: <더 파이어>도 사실 국내보다는 해외 쪽에서 뭔가 조금 이제 힘을 낼 수 있는 작품 같은데, 해외 반응을 살피기 전에 게임이 애초에 해외로 잘 퍼져 나가야 되는데 그러기가 사실 쉽지는 않아요. 인디 게임 홍보에 가장 난점이고 가장 필요한 부분이 네트워크인 것 같아요. 제가 그렇게 사회적인 인간이 아니기도 하지만 예전에 학생일 때는 그런 걸 모르고 살았다가 이제야 그것들을 체감하기 시작하니까, 이걸 앞으로 어떻게 홍보를 하고 알릴지가 정말 힘들더라구요. 우선은 비트 서밋(일본 국제 인디게임 페스티벌)에 내보긴 했습니다. 아무래도 <더 파이어>가 아트라는 명확한 장점이 있으니까 이걸로 어떤 수상을 하면 관심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요.

     


이경혁 편집장: 개발자 본인에 대해 좀더 이야기를 다가가 보면, 게이머로서는 또 어떤 분이신가 궁금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인상이 깊었던 게임들을 두세개 정도 꼽아주시면 어떤 건가요?

     

아로코트: 쯔꾸르 게임 중에서 08년도에 나온 <오프>라는 RPG 게임이 있어요. 서양권에서는 많이 유명한 메타픽션 게임의 계보에 있는데. <오프>는 RPG 쯔꾸르라고 하면 보통 생각하는 일반적인 이미지를 전혀 따르지 않는 게임이었어요. 이렇게 게임을 만들어도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저에게 있어 게임이란 시스템 이전에 이야기가 먼저 존재하고 게임은 그 이야기를 표현하는 수단인데요. 쯔꾸르 게임들, 특히 <헬로우 샤를로테>라는 게임을 하면서 그런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에반게리온 같은 느낌의 우울증 걸린 게임인데(웃음). 제가 고등학생 때 정말 힘들었고, 저한테 학교라는 공간은 단 한 번도 좋게 기억된 적이 없었는데 <헬로우 샤를로테>가 그러한 감성들을 정말 명확하게 풀어낸 거예요. 게임을 하면서 개발자가 겪었을 그 고통들이 정말 생생하게 느껴졌어요. 그 게임을 통해 저도 제가 가지고 있는 이 기억들을 언젠가 게임으로 다시 풀어내고 싶다, 자기 표현 욕구의 수단으로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 외에는 <이브>나 <마녀의 집> <원샷> 같은 이야기를 표현하는 게임과 메타적인 연출들을 많이 좋아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기획부터 완성까지 여러 고충이 있었습니다만, 결국 스스로 이 게임을 만들 때 재미있으셨을까요?

     

아로코트: 정말 솔직히 난점이 많았죠. 특히 아트 스타일을 만들 때는 진짜 미치는 줄 알았어요(웃음). 고쳐도 별로고 안 고쳐도 별로고, 진짜 내가 처음에 기대했던 거랑 너무 다르고. 그런데 재미있었냐라고 묻는다면 정말 재미있어요. 하는 시간만 놓고 봤을 때는 사실 힘들고 고민도 많이 해야 되고 특히 저는 주변에 아무도 없이 그냥 집에서 이것만 개발했거든요. 속으로는 내가 이렇게 시대별로 고생을 해봐야 누가 알아줄 거라는 보상도 확신도 없었어요. 그런데도 그게 재밌었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개발자로서 아로코트님의 향후 진로나 창업에 대한 생각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아로코트: 언젠가는 회사를 세워서 제가 생각한 이야기들을 더 만들고 싶은 게 목표고, 제가 생각하는 것들을 일종의 IP나 프랜차이즈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해요. 제가 원하는 게임을 만드는 것 외에도 어느 정도 수익성이 나는 그런 것들을 많이 고려하지만 특별히 현실에 타협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제 게임 스타일이 이런 걸로 고정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제 개발 능력의 모자람이기도 해서(웃음) 지금은 저보다 훨씬 더 능력이 있으신 분들과 협업을 할 기회가 생겼는데, 앞으로는 그럴 수 있다면 훨씬 더 적극적이고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고 싶어요.

     


이경혁 편집장: 마지막으로 후속작 계획을 좀 들을 수 있을까요? 간단한 컨셉트 같은 걸 공개해 주실 수 있으면 그것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로코트: 후속작으로는 지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어요. <더 파이어>를 보고 같이 작업하자고 연락 주신 분들이 계셔서 그분들과 하는게 있고 개인적으로도 기획 중인 게임들이 있습니다. 먼저 팀으로 제작중인 게임으로 한국 도깨비가 등장하는 뱀서가 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제작하는 스토리 게임 중에서는 우선 브로맨스 요소가 들어간 대화 형식의 게임을 만들고 있구요. 도시에서 괴물을 키우는 텍스트 어드벤처 계열 게임도 기획 중인데, 사이키델릭한 심리적 요소를 많이 곁들인 게임으로 계획하고 있어요.

Tags:

근대, 인디게임, 역사, 1인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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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구자)

문화와 지식, 공간과 학술 장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합니다. 게임의 역사와 게이머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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