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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류 게임 내 우익 극단주의: 문헌 검토」 의 검토
2021년 11월, <로블록스>는 한 콘텐츠 제작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당한 루벤 심(Ruben Sim)이라는 인물은 사이버 폭력 집단을 조직해 플랫폼과 플레이어, 개발자들을 위협했다. 이미 수년 전 우익 극단주의적 수사법 사용과 플레이어 괴롭힘으로 차단된 바 있지만, 루벤은 타인의 계정을 빌려 계속 <로블록스>에 접속해왔다. < Back 「주류 게임 내 우익 극단주의: 문헌 검토」 의 검토 29 GG Vol. 26. 4. 10. 2021년 11월, <로블록스>는 한 콘텐츠 제작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당한 루벤 심(Ruben Sim)이라는 인물은 사이버 폭력 집단을 조직해 플랫폼과 플레이어, 개발자들을 위협했다. 이미 수년 전 우익 극단주의적 수사법 사용과 플레이어 괴롭힘으로 차단된 바 있지만, 루벤은 타인의 계정을 빌려 계속 <로블록스>에 접속해왔다. 그의 위협은 같은 해 10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로블록스> 개발자 컨퍼런스에 대한 폭력 위협으로까지 확대되어, 행사가 일시적으로 봉쇄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것이 결코 예외적인 사건은 아니다. <로블록스>는 해당 소송을 제기하기 훨씬 전인 2009년부터 이미 극단주의적 팬 제작 콘텐츠와 혐오 발언, 게임 내 행동 문제로 고심해 왔다. 해당 일화는 웰스(Garrison Wells)를 비롯한 6명의 연구자가 학술지 '게임과 문화(Games and Culture)'에 발표한 논문 「주류 게임 내 우익 극단주의: 문헌 검토(Right-Wing Extremism in Mainstream Games: A Review of the Literature)」(2024)의 서두를 여는 장면이기도 하다. 논문의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극단주의 그룹이 온라인 게임 공간을 어떻게,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 활용하는지 그 추세를 파악하는 일이 플레이어를 보호하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저자들이 인용하는 반명예훼손연맹(Anti-Defamation League)의 2021년 보고서는 이 문제의 규모를 잘 보여준다. 미국 내 플레이어 10명 중 1명은 온라인 게임에서 백인 우월주의 이데올로기를 접하고, 청소년 플레이어의 60%, 성인 플레이어의 83%가 괴롭힘을 경험했다. 여성, 흑인, 아시아계 미국인 플레이어 모두 지난 1년간 괴롭힘이 증가했다고 응답했다. 이 숫자를 게임 산업의 규모와 겹쳐 보면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비디오 게임 산업은 영화와 음악 산업을 합친 것보다 더 큰 매출을 올리고 있으며, 약 2억2,700만 명의 미국인이 게임을 즐긴다. 주간 평균 온라인 플레이 시간이 6.5시간에서 7.5시간으로 증가했다는 사실은, 온라인 게임이 단순한 여가가 아니라 사회적 상호작용의 핵심 장(場)이 되었음을 뜻한다. 극단주의 그룹은 과거에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를 활용했던 것처럼, 이제 이 거대한 공간을 모집과 이데올로기 정상화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학술적 검토는 이 논문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저자들은 바로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2021년 9월까지의 관련 문헌을 체계적으로 검토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논문은 체계적 문헌 검토라는 방법론을 채택했다. 2021년 3월부터 9월까지 3단계에 걸친 검색을 실시했으며, 웹 오브 사이언스(Web of Science), 스코퍼스(Scopus), 구글 스칼라(Google Scholar) 등 16개 학술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했다. 검색어는 게임 관련 변형어를 백인 우월주의, 대안 우파(alt-right), 국내 극단주의와 관련된 76개 핵심 용어와 조합하는 방식이었다. 243개의 잠재적 자료를 식별한 뒤 선정 기준을 적용해, 우익 극단주의와 비디오 게임의 관계에 실질적으로 초점을 맞춘 문헌만을 남겼다. 최종 코퍼스는 학술 논문 37편, 웹 기사 및 정기간행물 28편, 편저의 개별 장 12편, 학위 논문 9편, 도서 6권, 보고서 5편 등 총 97편으로 구성되었다. 각 문헌은 최소 2명의 검토자가 독립적으로 읽고 주석을 비교했으며, 의견 차이가 있을 경우 제3의 검토자가 참여해 합의를 도출했다. 10주에 걸친 팀 토론을 통해 공통 주제와 논거를 합성했다. 이 연구의 방법론에는 분명한 강점이 있다. 사전에 정의된 검색 프로토콜과 선정 기준을 통해 선택 편향을 줄이려 했고, 복수 검토자에 의한 독립적 분석과 합의 과정은 주관성을 통제하기 위한 적절한 절차다. 그러나 저자들 스스로도 인정하듯 몇 가지 중요한 한계가 존재한다. 우선 코퍼스의 성격 문제다. 최종적으로 분석을 위해 선별된 97편 중 이론적 논문과 비판적 역사 분석 같은 비실증적 연구가 64.9%를 차지하고, 사례 연구·콘텐츠 분석·민속지학 등 질적 실증 연구가 28.9%다. 양적 연구는 극히 드물었다. 이것은 이 분야 자체가 아직 초기 단계에 있음을 반영하지만, 동시에 이 문헌 검토가 종합하는 것이 실증적 증거의 총체라기보다는 이론적 논거와 사례 분석의 집합에 가깝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저자들의 결론이“기존 문헌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는 2차적 진술이라는 것과, 그 기존 문헌 자체의 실증적 토대가 아직 얇다는 것은 구분되어야 한다. 확증 편향의 가능성도 있다. 저자들은 스스로 “본 검토의 설계는 우익 극단주의와 비디오 게임 사이에 실제로 기존의 관계가 있다는 가설 하에 수행되었다”고 밝히며, 이 관계를 반박하는 연구가 출판 편향으로 인해 미출판 상태일 수 있다고도 인정한다. 실제로 앤드루스(Andrews, 2023)는 게임화와 극단주의 공격 사이의 이론적 관계를 주장하기 전에 대안적 설명을 고려해야 한다고 반론을 제기하고 있으며, 저자들은 이를 한계점 부분에서 직접 언급한다. 이러한 투명성은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독자로서는 논문이 제시하는 서사가 문헌 내의 지배적 경향을 반영하는 것이지 확정된 인과관계가 아님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범위의 인위적 제한 역시 논의가 필요하다. 미국 내 우익 극단주의로 초점을 좁힌 것은 분석의 깊이를 위한 합리적 선택이지만, 동시에 중요한 것들을 놓치게 만든다. 우익 극단주의는 인종차별, 여성 혐오, 반유대주의를 토대로 구축되는데, 이 각각의 영역에 대한 게임 연구 문헌이 별도로 존재한다. 저자들도 이러한 연구 분야의 결과들을 통합한다면 작용 중인 복잡한 상호작용에 대해 더 넓고 맥락화된 이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인정한다. 문헌 수집이 2021년 9월에 종료되고 보충 검색이 2023년 2월까지 이루어졌지만, 이후 이 분야의 연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종합하면, 이 논문은 당시까지의 연구 지형을 지도로 그린 첫 번째 시도로서 의의가 분명하되, 그 지도가 보여주는 것은 확정된 사실의 총체라기보다는 학계가 주목하기 시작한 우려의 윤곽에 가깝다. 논문이 제시하는 첫 번째 핵심 주제는, 게임 산업 자체에 내재된 구조적 조건이 극단주의가 성장하기 좋은 토양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네 가지 차원이 있다. 첫째, 산업 내 다양성의 부족이다. 게임 산업은 백인 이성애자 남성에 의해 압도적으로 지배되어 왔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개발자의 비율은 불균형적으로 낮고, 여성은 리더십과 콘텐츠 주도 역할에서 심각하게 과소 대표된다. 부적절한 행동은 역사적으로 축소되거나 은폐되었으며, 2021년 캘리포니아 공정고용주택부가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상대로 제기한 성희롱·성차별 소송은 이 문제가 과거의 일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둘째, 1990년대부터 이어져 온 마케팅의 문제다. 주류 게임은 이미지와 콘텐츠 모두에서 백인 남성 교외 청소년만을 독점적 대상으로 삼았다. 전쟁, SF, 판타지 테마가 주를 이루면서 적을 정복하는 백인 남성 주인공이 중심이 되었고, 여성 캐릭터는 등장하더라도 연약하거나 성적으로 대상화된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2021년 미국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 협회(ESA) 보고서가 미국 게임 플레이어의 45%가 여성이라고 밝혔음에도, 마케팅은 여전히 젊은 백인 남성에게 영합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 논의가 다소 단선적이라는 점은 지적할 수 있다. 2010년대 이후 여성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대형 타이틀이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뒀고, 인디 게임에서는 다양한 정체성의 재현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코퍼스가2021년까지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최근의 변화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셋째, 여성 혐오의 문제다. 게임 공간을 남성적 영역으로 젠더화하는 것은 남성 플레이어에게 우월감을 부여하고 내집단과 외집단의 분열을 조장한다. 여성의 존재감 증가는 ‘침입’으로 간주되며, 일부 남성 게이머들은 인종차별적·성차별적 행동을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로 합리화한다. 극단적인 경우 강간 위협이나 살해 협박으로까지 이어진다. 넷째, ‘하드코어 게이머’ 정체성과 남성주의 온라인 생태계(Manosphere)의 연결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하드코어 게이머 정체성에는 원망과 피해의식, 즉 자신들이 차별의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는 감각이 포함되게 되었다. 이러한 감정은 학교, 직장, 놀이 공간의 여성화에 대한 반동적 백인 남성 조직의 공포와 맞닿아 있다. 논문에 따르면, 남성 권리 운동가들과 대안 우파 급진주의자들은 백인 남성 게이머들을 “디지털 공간을 침범하는 타자들에 맞서 싸우는 피해자”로 명명하면서 이들에게 호소한다. 지위 상실의 원인을 여성과 소수자에게 돌리는 하드코어 게이머들은 자신들의 세계관을 정상화하고 세력을 확장하려는 극우 극단주의자들과 이해관계가 정확히 일치한다. 이 분석은 설득력이 있지만, 한 가지 주의가 필요하다. 하드코어 게이머라는 범주가 마치 본질적으로 극단주의에 취약한 것처럼 읽힐 수 있다는 점이다. 논문 자체도 퍼거슨과 글래스고(Ferguson & Glasgow, 2021)를 인용하며 “상황의 맥락은 복잡했으며, 이 운동의 많은 지지자들은 하드코어 게이머라는 고정관념의 범주 밖에 있었다”고 언급한다. 게임에 진지하게 몰입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특정한 정체성 구성과 그것이 정치적으로 동원되는 방식이 문제라는 점을 구분해야 한다. 게이머게이트(Gamergate)는 하드코어 게이머 문화와 우익 극단주의가 결합한 분수령적 사건이다. 2014년, 한 여성 게임 개발자에 대한 근거 없는 루머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게임 저널리즘의 ‘윤리’를 표방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게임 커뮤니티 내 다양성과 평등을 옹호하는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에 대한 조직적 괴롭힘 캠페인이었다. 신상 털기, 살해 위협, 강간 협박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 주목할 만한 분석은 우익 극단주의 운동의 지도자들이 게이머게이트를 모집의 기회로 포착했다는 부분이다. 당시 보수 뉴스 사이트 브라이트바트(Breitbart News)에서 활동하던 스티브 배넌(Steve Bannon)과 마일로 이아노풀로스(Milo Yiannopoulos)는 자신들의 자원을 활용해 이 증오 캠페인을 우익 운동으로 포섭했다. 이후 레딧(Reddit) 하위 커뮤니티 분석에서 게이머게이트 지지자들과 열렬한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 상당한 중복이 확인되었다. 게이머게이트에서 사용된 전술들, 즉 ‘안전 공간(safe space)’이나 ‘눈송이(snowflake)’ 같은 용어를 통한 진보적 견해의 묵살, 신상 털기, 트롤링, 폭력 위협 등은 이후 온라인 극단주의의 표준적 전술이 되었다. 논문의 표현을 빌리면, 이러한 전술들은 극단주의자들의 “온라인 일상”의 일부가 되었고, 게이머게이트는 “게임이라는 현대 청소년 문화의 중심 무대에 조직화된 우익 극단주의가 공식적으로 데뷔한 사건”이 되었다. 이에 대해서도 비평적 시각이 필요하다. 게이머게이트에서 우익 극단주의로의 이행을 너무 매끈한 직선으로 그리면, 게이머게이트 참여자들의 다양한 동기와 그중 상당수가 극단주의와 무관했을 수 있다는 복잡성이 가려진다. 저자들도 이 점을 인식하고 있지만, 서술의 전체적 흐름은 게이머게이트를 거의 필연적으로 극단주의로 이어지는 경로의 일부로 읽히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기능한 측면이 있는 것과 본질적으로 그러한 운동이라는 판단은 다르다. 극단주의가 게임 공간에 스며드는 구체적인 방식도 분류한다. 주목하는 것은 유머와 암호화된 언어를 통한 침투다. 극단주의자들은 밈과 농담을 활용해 혐오를 트롤링이나 풍자로 위장한다. 논문이 인용하는 콘디스(Condis, 2019a)의 표현이 정곡을 찌른다. 이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보여주는 동시에 ‘발뺌의 여지(plausible deniability)’라는 방패막을 활용하여, 특정 인종차별적 메시지가 진심인지 장난인지 의도적으로 불분명하게” 만든다. 대표적 사례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인종차별을 자행하는 길드들이 흑인 플레이어를 ‘오크’로 지칭한 것이 제시된다. 게임 용어 뒤에 인종차별을 숨기면서 책임을 회피하는 전략이다. 이러한 ‘암호신호(dog whistles)’를 사용한 수법은 일반 플레이어에게는 무해한 게임 용어처럼 보이지만, 같은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는 이들에게는 분명한 신호로 작동한다. 모딩(modding)을 통한 극단주의 콘텐츠 삽입도 중요한 경로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세계관을 반영한 게임을 직접 개발하기도 했지만, 제작 품질이 낮아 인기가 제한적이었다. 최근에는 주류 게임에 모드를 통해 극단주의 콘텐츠를 주입하는 방식으로 초점이 이동했다. <둠>이나 <카운터 스트라이크> 같은 1인칭 슈팅 게임에 나치 테마나 KKK 스킨을 삽입하고, <하츠 오브 아이언IV>나 <문명> 같은 역사 전략 게임에서는 나치 독일로 플레이하거나 특정 인종 집단의 말살을 승리 조건으로 설정하는 모드가 만들어진다. 살바티(Salvati, 2019)의 표현을 빌리면, “명시적으로 인종차별적, 민족주의적 또는 신파시스트적 테마를 포함하도록 전략 게임을 모딩하는 관행은 최근 몇 년 동안 일종의 가내 수공업처럼 확산”되었다. 이러한 모드는 극단주의 그룹에게 직접 개발한 조잡한 게임보다 훨씬 주류적 매력을 가진 모집과 유포 도구로 활용된다. 가장 논쟁적인 부분은, 주류 게임 자체가 의도치 않게 극단주의 세계관에 부합하는 환경을 제공한다는 이른바 ‘은근한 주입(soft sell)’에 관한 논의다. <콜 오브 듀티>나 <메달 오브 아너> 같은 중동 배경 전쟁 게임이 미국의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고, <문명>이나 <하츠 오브 아이언> 같은 전략 게임이 민족주의·제국주의적 환상을 실행할 수 있어 우익 극단주의자들에게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킹과 레너드(King & Leonard, 2016)에 따르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바이오 하자드>, <그랜드 테프트 오토> 등은 극단주의 커뮤니티에서 “재미의 원천임과 동시에 백인 민족주의를 찬양하거나 홍보할 수 있게 해주는 게임”으로 인용된다. 일부 극단주의자들은 이런 게임을 인종 전쟁 준비를 위한 훈련 모듈로까지 인식한다고 한다. 우익 급진주의를 비판하려 한 <파 크라이5>조차도, 극단주의 집단의 신념을 완전히 비난하기보다는 그들을 부적격하고 무능한 존재로 묘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들을 도왔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 은근한 주입에 관한 논의는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지만, 동시에 가장 신중한 독해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극단주의자가 특정 게임을 자신들의 세계관에 맞게 해석한다는 것과, 그 게임이 실제로 극단주의를 촉진한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주장이다. 성경이나 셰익스피어도 극단주의자에 의해 전유될 수 있지만, 그것이 곧 텍스트 자체의 본질을 규정하지는 않는다. 저자들 역시 이러한 게임들이 극단주의를 의도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지만, 의도치 않은 효과와 수용자의 전유 사이의 구분이 더 명확했다면 논의의 설득력이 한층 높아졌을 것이다. 다만, 게임 내 캐릭터 묘사의 고정관념 문제는 별도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레너드(Leonard, 2006)의 표현처럼, 동양인을 범죄자나 무술가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폭력적 악당이나 운동선수로, 여성을 피해자나 성적 대상으로 반복 묘사하는 패턴은 “인종에 관한 지배적인 아이디어를 반영함으로써 일상적 및 제도적 관계의 나침반 역할”을 한다. 마지막에 제기되는 문제의식은 게임 업계와 입법자들의 대응 부족이다. 게임 회사들은 흔히 탈정치적 입장을 표방하지만, 필자들은 이것이 실질적으로 극단주의의 방치를 의미한다고 비판한다. 콘디스(Condis, 2019a)의 표현을 빌리면, “플랫폼 관리 책임에서 손을 떼려는 기술 기업들의 욕구는 백인 우월주의자들과 다른 증오 집단들이 악용할 수 있는 핵심적인 특징”이 된다. 스팀과 디스코드는 극단주의 활동의 허브로 자주 인용되며, 디스코드는 2017년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발생한 치명적인 극우 집회의 조직 허브 역할까지 한 바 있다. 콘텐츠 중재의 경제학도 문제다. 논문은 기업들이 혐오 표현이 유발하는 참여도 증가를 통해 이윤을 높이면서, 이를 해결하는 비용은 회피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혐오 표현을 생성하는 플레이어들이 가장 열성적인 소비자라는 역설이 중재에 대한 방임적 접근을 부추긴다. 플레이어에게 제공되는 신고 시스템은 사후적으로만 작동하며, 중재의 부담을 커뮤니티 자원봉사자에게 전가하는 구조다. 많은 플레이어는 시스템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신고 자체를 포기한다. 이러한 행동을 근절하지 못한 결과는 이를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환경을 조성했으며, 많은 플레이어는 혐오적 행위를 게임 플레이의 예상되거나 정상적인 부분으로 받아들이며 체념하게 되었다. 법률의 한계도 크다. 미국의 통신품위법 제230조는 플랫폼에 사용자 생성 콘텐츠에 대한 법적 책임을 면제해 준다. 수정헌법 제1조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폭넓은 해석은 혐오 표현이 법망을 빠져나가게 만들며, 코헨-알마고르(Cohen-Almagor, 2018)에 따르면 이것은 “혐오 발언자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계속하도록 정상화하거나 심지어 권한을 부여하는 것을 돕는다.” 게이머게이트에서 사용된 것과 같은 집단 괴롭힘은 기존 법률로는 처벌이 거의 불가능하다. 수많은 사람이 한 마디씩 보태며 집단적으로 괴롭히는 상황에서, 법 집행 기관은 공격에 가담한 한 명을 기소하는 것조차 난관에 부딪힌다. 이와 같은 지적 역시 비평적 균형이 필요하다. 논문의 서술은 주로 기업의 무책임과 법률의 부재를 강조하는데, 콘텐츠 중재의 현실적 어려움과 표현의 자유와 규제 사이의 진정한 딜레마, 그리고 과도한 규제가 초래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물론 이것은 문헌 검토 논문의 성격상 기존 문헌의 논조를 반영한 것이지 저자들만의 일방적 주장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이 문제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반대편 논의도 함께 찾아볼 필요가 있다. 이제까지 검토한 논문의 결론은 이렇다. 많은 주류 게임은 업계에 내재된 형평성 및 포용성 문제를 반영하고 있으며, 비백인·비남성을 외부인으로 규정하는 문화적 모델을 유포한다. 이는 소외된 플레이어를 향한 적대와 배제를 조장했고, 한때 비주류였던 우익 극단주의적 견해가 점차 정상화되는 문화를 허용했다. 지적하는 바는 분명하다. 게임 공간에서의 혐오와 극단주의는 나쁜 개인 몇 명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의 역사와 구조, 문화적 관행, 플랫폼의 설계와 정책, 법률적 환경이 복합적으로 만들어 낸 체계적 문제라는 것이다. 극단주의 그룹은 유머, 밈, 모딩, 암호화된 언어 등 다양한 전술을 통해 게임 공간을 모집과 정상화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업계와 법률의 대응은 부족하다. 그러나 이 논의가 말해주지 못하는 것도 있다. 97편의 연구 대부분이 이론적·비판적 역사적 작업이며, 대규모 양적 데이터에 기반한 실증 연구는 극히 드물다. ‘게임이 플레이어를 극단주의로 급진화시키는가’라는 핵심 질문에 대한 인과적 증거는 아직 확보되지 않았다. 논문의 서사는 일견 납득이 가능한 것이지만, 설득력과 증거는 다른 문제다. 미국 중심의 분석이기 때문에 한국이나 일본, 유럽 등 다른 문화적 맥락에서의 게임과 극단주의의 관계는 별도의 연구가 필요하다. 게임 산업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변화, 예컨대 다양성 확대 노력, 포용적 캐릭터 디자인, 커뮤니티 관리 혁신 등도 이 문헌 검토의 범위 밖에 있다. 이 논문이 게임은 위험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들 스스로 연구의 한계를 인정하며, 게임 공간의 가능성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문제는 게임이 아니라 방치다. 다만, 게임 오픈 채팅창에서 “ㅋㅋ 장난인데 왜 진지해”라는 말을 보게 되면, 이 분석을 상기해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장난이 누구의 진입로(on-ramp)인지는 웃는 쪽이 아니라 웃지 못하는 쪽이 더 잘 알고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성균관대학교 강사) 홍현영 패미콤을 화목한 가족 구성원의 필수품으로 광고한 덕분에 게임의 세계에 입문했다. <저스트댄서> 꾸준러. 『81년생 마리오』, 『게임의 이론』, 『미디어와 젠더』 등을 함께 썼다.
- 무엇이 이스포츠팀을 팀으로 만드는가
2021년 10월말, 이스포츠 업계에서는 전기가 될만한 일이 일어났다. 북미의 명문 이스포츠 구단인 페이즈 클랜이 SPAC을 통해서 내년 상반기에 나스닥 상장을 노린다는 뉴스가 나온 것이다. 사실 이스포츠 구단들의 성장세는 가팔랐고 증권시장에 상장하는 것이 최초도 아니다. 덴마크의 이스포츠 구단 아스트랄리스는 2019년 나스닥 코펜하겐 거래소에 상장됐고 영국의 길드 이스포츠는 2020년에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하지만 사람들이 놀란 것은 페이즈 클랜 측이 밝힌 기업 가치는 10억 달러였다. < Back 무엇이 이스포츠팀을 팀으로 만드는가 03 GG Vol. 21. 12. 10. 2021년 10월말, 이스포츠 업계에서는 전기가 될만한 일이 일어났다. 북미의 명문 이스포츠 구단인 페이즈 클랜이 SPAC을 통해서 내년 상반기에 나스닥 상장을 노린다는 뉴스가 나온 것이다. 사실 이스포츠 구단들의 성장세는 가팔랐고 증권시장에 상장하는 것이 최초도 아니다. 덴마크의 이스포츠 구단 아스트랄리스는 2019년 나스닥 코펜하겐 거래소에 상장됐고 영국의 길드 이스포츠는 2020년에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하지만 사람들이 놀란 것은 페이즈 클랜 측이 밝힌 기업 가치는 10억 달러였다. 10억 달러는 지나친 고평가라는 지적은 앞다투어 나왔다. 이스포츠 산업의 장래가 유명한 것은 누구나 아는 것이지만 2020년 500억에도 못미치는 매출을 올린 회사가 조단위의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페이즈 클랜의 가치에 대한 논의가 나올 때 가장 뼈아픈 지적은 페이즈 클랜이 결국 ‘후디 조직’이라는 것이었다. 후디 조직. 영어로 하면 Hoodie Organization이다. 이는 인기가 높은 이스포츠 구단들에 자주 붙는 멸칭이다. 이스포츠 자체로 내는 수익은 그다지 많지 않고 ‘후디’ 등의 의류를 비롯한 굿즈 판매로 돈을 버는 구단을 비하하는 것이다. 실제로 캐나다의 게임매체 더게이머의 제임스 트로튼은 페이즈 클랜의 전체매출 중 이스포츠로 올리는 수익은 20%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스포츠 구단임에도 불구하고 스포츠로 버는 수익의 규모가 작다는 것은 과연 구단이라는 조직의 존재의의가 뭔지를 생각하게 된다. 스포츠에서 발생하는 수익이 20프로에 미친다면 과연 이들에게 스포츠가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 스트리밍과 같은 미디어 활동과 브랜딩을 통한 수익창출이 주요수입원이라면 스포츠는 그저 그들에게 액세서리에 불과할 수도 있다. 스포츠적인 측면에서 퍼포먼스를 보여주면 자연스럽게 팬베이스가 늘어나게 되고 이를 통해서 수익을 창출하는 기존 스포츠 구단들의 공식이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누군가는 페이즈 클랜이 이스포츠 리그에서 우승을 해서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사진은 그저 후디가 몇천장 더 나가는 식의 마케팅 캠페인의 일환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스트리머들이 모인 집단과 이스포츠 구단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스트리머들이 모인 집단도 브랜딩을 할 수 있고 대회에도 참가를 할 수 있다. 프로로서 이스포츠 판에서 경쟁을 하는 선수들도 스트리밍을 자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둘의 차이점은 더 모호해진다. 두 개의 조직은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이 보인다. 이런 차이점에 대해서 가장 잘 대답해 줄 수 있는 인사들을 인터뷰했다. 북미의 사정을 듣고나서는 한국의 사정도 궁금해져서 인터뷰를 했다. 예상치 못하게 같은 답을 들었다. 게임을 잘 하는 사람이 프로게이머가 되려면 인터뷰에 응한 사람은 조나단 판이었다. 라이엇 게임스의 직원으로 일하던 그가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 구단의 창립자이자 CEO로 일해줄 것을 제안 받은 것은 2015년 이었다. 그가 창단하게 된 팀 엠버는 리그 오브 레전드 챌린저스 리그에 도전을 했다. 성적을 내지 못하고 1년도 안 돼 구단 자체가 해산됐지만 그 이후로도 그는 이스포츠 과목을 가르치는 교수로, 이스포츠에 투자하는 투자자로, 아마존 게임스와 지금은 메타가 된 페이스북의 전략담당으로 일을 했다. 이스포츠의 짧은 역사를 생각할 때 이 표현이 적확할지는 미지수지만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국내 이스포츠 업계에서는 샌드박스 게이밍의 정회윤 단장이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아직도 현업에서 선수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날카로운 인사이트를 제공했다. 그의 대답은 매우 간단했다. 스트리머가 모이면 스트리머 집단이고 선수들이 모이면 구단이다.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이 든다. 게임을 잘하는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미 엘리트 스포츠인들이 받아야 하는 훈련과 거쳐야 하는 과정들이 성립돼 있는 전통적인 스포츠와 달리 이스포츠는 아직 이런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 따라서 정말 게임을 잘하는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의 실력 차이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적은 편이다. 실력에서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의 차이를 찾기는 쉽지 않다. 인사이더들이 이야기하는 ‘프로와 아마의 차이’는 멘탈이었다. 그저 게임을 잘하는 아마추어 시절에는 수 틀리면 게임을 놓아버려도 되고 욕을 해도 된다. 한 개인으로서 인성에 대한 비판은 들을 수 있겠지만 거기까지다. 하지만 프로 선수가 되면 상황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언행에 대한 주목이 높아지고 미디어에 노출된다. 공인의 정의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말들이 있지만 프로 선수가 된 이상 그저 게임을 즐기고 잘하던 시절과는 다른 언행을 보여야 하고 이런 언행들이 모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그들은 공인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프로 선수가 되면 아마추어 선수들 때와는 전혀 다른 수준의 압박이 가해지게 된다. 간단하게 말해서 책임감이 생기고 ‘짜증난다고 때려칠’ 수 있는 상황과는 멀어진다. 게임 한 판을 할 때마다의 압박도 전혀 다르다. 조나단 판은 “프로 선수로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멘탈적인 부분이다. 강도높은 훈련과 경기에서의 압박을 버텨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그래서 모든 게임을 잘하는 사람들이 훌륭한 선수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스트레스와 압박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전했다. 정 단장 또한 “실제로 선수들을 이해하기 위해 몇일간 합숙한 적이 있는데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굉장히 따라가기 힘든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외적인 측면에서도 논란거리를 만들면 안 되기 때문에 개인으로서의 소양도 중요한 부분이다. 한국에서도 많은 선수들이 온라인 상에서 논란이 될만한 용어를 쓰면서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북미에서도 선수들의 발언 때문에 논란이 생긴 사례를 쓰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이런 선수들이 모두 인성을 비판받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소양이 부족해서 생긴 실수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논란거리를 만들지 않고 더 나아가서는 누군가에게 영감이 될 만한 언행을 경기 외적으로도 보여주는 것은 개인적 소양에서 나온다. 구단의 역할에 대해 강한 멘탈과 소양이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의 차이. 그렇다면 여기서 바로 따라오는 것이 구단의 역할이다. 단순히 선수를 모아놓는 것이 구단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이 이스포츠 또한 선수는 항상 완성돼 있는 존재가 아니라 키워지는 존재기도 하기 하다. 그래서 구단은 선수들의 멘탈 케어에 만전을 기해야 하며 소양을 길러주려는 노력도 해야 한다. 조나단 판은 엠버에서의 1년을 다큐멘터리로 남겨놓았다. 그들이 챌린저스 리그에서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At All Cost〉는 이스포츠 구단의 영광스러운 부분이 아닌 실패와 좌절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독특한 지점이 있다. 조나단 판은 구단을 운영하면서 선수들의 멘탈 케어를 매우 중요하게 여겨서 이를 위한 시간을 따로 배분하고 체력적 부분과 정신력의 연결고리 또한 지적하면서 선수들에게 운동세션도 제공했다. 시즌이 진행되면서 긴 시즌을 버텨내게 하는 정신력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깨닫고 스포츠 심리학자인 웰던 그린을 헤드 코치로 영입한 적도 있다. 물론 이런 노력들이 현재 완벽한 것은 아니며 결실을 맺기에는 아직 먼 것이 현실이다. 정 단장은 “기본적으로 우리는 선수들이 스포츠 선수들의 멘탈리티나 소양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어린 연령대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성숙함이나 노련미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스포츠 선수들의 멘탈 관리는 결국 10대-20대 청년들을 케어하는 역할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단순히 스포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업군 - 학원, 아이돌, 심지어 바둑에서까지 많은 케이스를 연구하고 벤치마킹하려 한다”고 전했다. 할리우드 리포터에 따르면 비공식적인 통계가 말하는 프로 게이머의 선수생명은 5년 안팎이라고 한다. 일반적인 스포츠 선수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짧은 ‘생명’이다. 이스포츠 구단이 스트리머 집단과 다른 점에 대한 짧은 연구는 전세계 이스포츠 업계에 강렬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스트리머 집단이 아니고 구단으로 불리고 싶다면 제대로 된 지원체계를 확립해서 구단이 구단다워져야 한다고.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나성인) 홍영훈 캘리포니아에서 살면서 게임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에 출연하고 매체에 기고를 하며 많은 분들에게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패션부터 게임까지 분야에 상관없이 재밌는 글을 평생 쓰고 싶습니다.
- 그 만두는 정말 맛이 없었을까? 2000년대 요리 플래시 게임에 대한 회상
고향만두 아저씨는 혹평을 쏟아내며 만두를 뱉었다. 어린아이의 고사리 손으로 정성스레 빚은 만두가 계속해서 퇴짜를 맞는다. 만두소에 참기름이 들어가나? 또아리 모양의 만두는 팬에 구우면 안되나? 마우스를 쥐고 이리저리 고민하는 플레이어의 모습이다. 2000년대 플래시 게임을 했던 어린이들의 대부분은 이 게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 Back Was That Mandu Really So Tasteless? Recollections of 2000s Cooking Flash Games 30 GG Vol. 26. 6. 10. "Ptooey, ptooey! The mandu you made tastes terrible." The Gohyang Mandu man spat out the dumpling along with his withering verdict. Mandu folded so carefully by a child's little hands gets rejected, over and over. Does the filling take sesame oil? Can you pan-fry a coiled one? This is the player, mouse in hand, turning the problem this way and that. Most children who played flash games in the 2000s will remember this one. It has been well over twenty years since the flash game Gohyang Mandu came out. And yet people still talk about it. Even now, when someone posts a "Gohyang Mandu challenge" run on YouTube, others gather to watch, nod along, and dredge up their own childhood. Some say they only managed as adults to clear what they never could back then. Countless games drifted through our childhoods—so why does the Gohyang Mandu game, of all of them, stay etched so vividly in memory? Child, Win Over the Fussy Proprietor The "ajeossi" of Gohyang Mandu , "Shu" of the ramyeon shop, "Jumma" of the meat-grilling game, "Chef Tinghowa" of the jjajangmyeon game. Among flash games, plenty took cooking as their subject, and they shared a common figure: a character who kept watch over the cyber-kitchen and passed judgment on the food. ( Ajeossi and jumma / ajumma are familiar Korean terms for a middle-aged man and woman—the gruff, everyday grown-ups of the neighborhood.) But the child playing was no expert cook. Still learning the world, they had neither the knowledge to choose ingredients nor a sure hand on the mouse. Inevitably, the cooking heads for failure. And you can read that failure at a glance from the character's plight. Shu, decked out in pink, is sentenced to dishwashing when the player scorches the ramyeon pot. Jumma, who misses the moment to flip the meat, gets an ending where she goes hungry before a slab of blackened beef. The Gohyang Mandu man recites, point by point, exactly why the mandu is bad. Chef Tinghowa—the most theatrical of the lot—hurls the bowl and shouts that it tastes awful. Watching all this, a child laughs at how ridiculous the character is even as the urge to try again takes hold. So the 2000s cooking flash games share a curious family resemblance: the goal of earning a passing grade from a virtual grown-up, and the child players sweating it out with clumsy skills. Try hard enough and you might reach a praise ending, but more often you were treated harshly, served up alongside your bad cooking. Even so, by the nature of flash games, retrying was easy—you could replay as many times as you liked. In 〈Chef Tinghowa: Jjajangmyeon〉, the child earns praise by making a tasty bowl of jjajangmyeon. Wasn't Chef Tinghowa, after all, the child's partner in a game of make-believe house? "Playing House" Moves onto the Digital Screen Children play by imitating grown-ups, and we call it playing house ( sokkomnori ). Among its forms, the most everyday is the mimicry of keeping a home—gripping stones and sand and laying them out as rice and side dishes. Playing house is one face of how a child learns the world. And if the child even asks how the stone-food tastes, that is surely imitation of the nearest adults, the parents they have been watching. In the sense of a game about making food, the cooking flash game is a digital version of playing house. A child frustrated by bad cooking retries; but a child's house-play curiosity—"what would the character do if I left out one ingredient?"—also keeps the game replaying. What digitization changed is that, in place of stones and sand, an image of food on the screen takes on a convincing shape. You cannot touch it, but cooking comes together by sight and sound with each click, and so the play pulls you in more deeply. Virtual characters like Shu or the Gohyang Mandu man fill the empty seat of the make-believe playmate. A child alone with a mouse might have been bored, but the characters minding the kitchen, playing along, add the pleasure of role-play. And they did more than hold down a spot in the skit—they responded to the player's every success and failure, taking on the emotional give-and-take of real interaction. In this way cooking-house became the cooking flash game, and acquired the structure of role-play in sharper, more vivid images. Come to think of it, the flash game was where a child performed their very first stint of kitchen work. With hands that had never once held a knife, they folded mandu, boiled ramyeon, and sold it—and the experience happened on screen before it ever happened for real. In early childhood the brain is still rapidly growing, and a first-time memory gets carved deep, easily summoned even in adulthood. It is the same logic by which a jingle heard as a child is still hummed years later. That is part of why the memory of the cooking flash game stays imprinted so long. In 〈Jumma's Meat Grilling〉, the grilling is staged appetizingly through images and sound, yet there is no heat off the grill, no danger of spattering oil. A safe cooking experience, in other words. Kitchen Work, Sliced Frame by Frame In a flash game, cooking is designed as a game through the challenge of, and the grading of, what order to proceed in, when to move, and which ingredients to pick. In Shu's Ramyeon Shop , the scallions and egg must go in only after the bubbles show that the ramyeon water has come to a boil; in Chef Tinghowa , you have to fry the chunjang first, then mix in the pork. You cannot change the order at will. Timing matters too. Because the ramyeon water boils after about four seconds, a fixed sequence of tasks must be completed on schedule; in Jumma's Meat Grilling , each side of the meat has its set cooking time, and Chef Tinghowa likewise demands that the wok work be timed to a "well-cooked" mark. Nor can just any ingredient go in. In Gohyang Mandu , the puzzle of picking only seven of fourteen options for the filling looks far from easy, even to a seasoned cook. The visual change—mandu taking shape, ramyeon settling into the bowl, meat browning—is the immediate feedback a child's eye responds to best, and it can be run again, freely, any number of times. Burn something in real cooking and the ingredients are gone; ruin it in a game and you lose nothing. To wipe away the sting of failure at once and start over was a generous arrangement for a young player. Mercifully, none of the kitchen dangers a child might face exist in the game. No cutting your hand on a knife, no burns from working the wok. In the end, weren't the cooking flash games well-made play-house kits you could reuse over and over? Food is a thing made of procedure to begin with, which makes it easy to port into a game. And so someone noticed exactly this—and turned the gamifying of cooking into a form of advertising. 〈Shu's Ramyeon Shop〉 is a high-difficulty game, hard even in adult hands. Which is exactly why time spent on the website Haitai Confectionery ran stretched longer. Who Set Up This Kitchen? When Game and Advertisement Merge An advergame is a portmanteau of advertisement and game. Roughly from the late 1990s into the 2000s, food companies' websites began offering children "playable ads"—content you could fairly call games—tied to their products. In the United States, food companies including Kellogg's, McDonald's, and Coca-Cola produced and ran advergames of their own. The Gohyang Mandu and Shu games that Koreans now in their thirties remember are advergames. Gohyang Mandu is a Haitai Confectionery dumpling product, and the game was one of those distributed through iBravo, a flash-game website that Haitai operated. The Shu games lived on iBravo too. Flash games had become a kind of digital playing house for children, and iBravo—an advertising agenda laid quietly underneath—turned into the playground. Children sat in that playground folding mandu and boiling ramyeon. That said, Gohyang Mandu and Shu took different advertising approaches. Gohyang Mandu is so simple as to be downright blunt: you have to land the correct recipe. What you folded in the game was the very dumpling Haitai sold, and hitting the right recipe amounted to memorizing the product. Tucked into the ingredient puzzle were Haitai's own snacks, like Ace and Ongseu-jjang. The Shu game, by contrast, aimed not at an immediate product pitch but at dragging out the minutes, keeping you there. Neither the ramyeon Shu cooks, nor the dress-up clothes, nor the makeup you apply was anything Haitai sold. What the Shu game was after was time—getting children to drop by Haitai's website one more time, and to grow fond of the pink character. The Playground May Vanish, but the Play Does Not The cooking flash games were games for everyone. No download, no sign-up, no parental permission required. One click and the kitchen opened—in the school computer lab, at a friend's house, during recess. They needed no heavy hardware, and a single round did not run long. Those were their hallmarks. Look closely and Gohyang Mandu and Shu were ads selling products, while Jumma's Meat Grilling and Chef Tinghowa were built to raise visitor numbers. One made games to sell snacks, another to hold visitors on a site—the aims differed a little, but the results looked alike. Playing house was processed into a digital game, and children, in front of the screen, began playing house all over again. And so the genre of the cooking flash game was made. Flash, the platform underneath it all, ended service around 2020. Yet that fact seems hardly to matter to us. Just as we still gather at the park to play the childhood "cops and robbers" long after the schoolyard is gone, we are people long accustomed to replaying vanished games on new platforms. So—was that mandu really so tasteless? There is no telling. The digital screen, in the end, cannot deliver taste. Whether the mandu we folded was any good, whether the ajeossi 's scorn was fair, there is no way to confirm. And still, someone today will open that old kitchen again. The little hands have grown now, but the Gohyang Mandu man on the screen will still spit out the dumpling if even a single ingredient is wrong. Ptooey, ptooey—the mandu you made tastes terrible.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Leesun Park Studies games from a social perspective. Believes that games, as a tool, ultimately offer a way to explore what it means to be human. These days, mainly writing.
- MMORPG 레이드와 확률에 대응하는 플레이어
게임은 ‘불확실성’의 매체다. 보통 게임에서 불확실성은 두 차원으로 작동하는데, 하나가 게임의 결과와 관련된다면, 다른 하나는 게임 시스템에 의해 제공되는 특정 기회의 작동과 관련된다. 고도의 플레이 스킬을 요구하는 게임이든 운 중심으로 플레이되는 게임이든, 플레이어가 그에 참여해 플레이한 결과가 어떤 것일지는, 실제 플레이를 끝내기 전까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 < Back MMORPG 레이드와 확률에 대응하는 플레이어 17 GG Vol. 24. 4. 10. 불확실성, 확률, 운, 그리고 게임 게임은 ‘불확실성’의 매체다. 보통 게임에서 불확실성은 두 차원으로 작동하는데, 하나가 게임의 결과와 관련된다면, 다른 하나는 게임 시스템에 의해 제공되는 특정 기회의 작동과 관련된다. 고도의 플레이 스킬을 요구하는 게임이든 운 중심으로 플레이되는 게임이든, 플레이어가 그에 참여해 플레이한 결과가 어떤 것일지는, 실제 플레이를 끝내기 전까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 또, 게임하다 얻게 되는 기회는 다양한 선택지의 밭에서 고르거나 골라지게끔 되어 있다. 이렇듯 게임의 불확실성은 다양한 선택과 그에 따른 다양한 결과, 그리고 기회와 무작위성 등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불확실성을 갖기에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흥미와 긴장감을 제공한다. 게임이 시작할 때 승리자를 미리부터 알 수는 없다. 결과를 알고 보는 이야기가 독자의 흥미를 얻을 리 만무하다. 결과가 정해져 있지 않으므로 궁금하고 그 과정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불확실성이 전혀 없는, 순수하게 확실성만 있는 게임은 있을 수 없다. 흥미와 긴장감이 존재하지 않는 게임은 재미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순전히 불확실성만 지닌 게임도 거의 없다. 플레이어가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게임들은 불확실성의 조합을 어느 정도 갖는 형태를 띤다. 불확실성을 수치화한 것, 즉 일어날 수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하나의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을 수로 나타낸 것이 ‘확률’이다. 확률은 불확실성이라는 애매모호한 것을 우리가 다룰 수 있는 구체적인 것으로 만들어주는 체계적인 방법이며, 여러 불확실한 것들 사이에 어떤 것이 다른 것(들)보다 더 일어날 가능성이 높거나 낮은지를 비교 가능하게 만든다. 게임에서 확률은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알려진 위험값 내 미지수를 감소시키는 데 기여한다. 물론 확률을 알고 있다 해도, 그 사건이 우리 플레이 과정이나 결과에서 나타난다는 보장은 없다. 만약 그 사건이 우리의 실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면, 사건의 발생 가능성은 ‘운’으로 설명 가능해진다.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 이하 ‘MMORPG’)이라는 장르 안에서 작동하는 확률의 방식과, 플레이어들이 그에 대응하는 방식을 살피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그 결과로 플레이어들은 아이템을 얻게 되는데, 게임 시스템에 의해 규정된 아이템 획득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 현실에서도 우리가 노력만으로 갖고 싶은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듯, 아쉽지만 게임에서도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항상 원하는 모든 아이템을 얻을 순 없다. 아이템마다 드랍 확률이 다르고, 또 플레이어마다, 캐릭터마다 운이 다르게 작동한다. 다른 플레이어가 구하고 싶어 안달하는 아이템을 너무 쉽게 획득할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 역시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게임 시스템 상에서 그런 불운을 보정하기 위한 장치를 개발, 제공하기도 하고, 플레이어들이 직접 스스로의 불운을 보정하기 위한 아이템 획득 방식을 만들어 활용하기도 한다. 이런 맥락 하에서 이 글은 MMORPG 속 운과 확률이 어떻게 재현되는지, 플레이어들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며 극복하는지, 그리고 그 교호작용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MMORPG 레이드와 운 사회학, 철학, 인류학 등 여러 분야에 관심을 나타내는 백과사전적 사상가였던 로제 카이와(Roger Caillois)는 ‘놀이’의 요소를 아곤(agon, 경쟁), 알레아(alea, 운), 미미크리(mimicry, 역할극), 일링크스(illinx, 현기증)의 네 가지로 분류한 바 있다. 첫째, 아곤은 놀이가 대부분 경쟁의 형태를 취하는 것과 관련된다. 경쟁은 승자와 패자를 명확히 해 경쟁자들이 이상적 조건 아래 싸우도록 기회의 평등을 인위적으로 설정한다. 아곤은 규칙에 입각해 상대적 경쟁을 통해 자신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을 자극한다. 둘째, 알레아는 아곤과는 정반대로, 놀이하는 자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결정, 그가 영향력을 전혀 행사할 수 없는 결정에 기초하는 놀이와 관련된다. 여기서는 상대방을 이기기보다는 운명을 이기는 것이 문제다. 운명만이 승리를 만들어낼 수 있으며, 이 때 승리란 (상대가 있는 경우) 패자보다 승자가 운으로부터 더 많은 혜택을 입었음을 나타낸다. 알레아는 우연의 불공평을 없애려 하지 않으며, 우연의 자의성 자체가 놀이의 원동력이 된다. 주사위, 룰렛, 바카라, 제비뽑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아곤에서 개인이나 팀이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면, 알레아에서 개인이나 팀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자질과 능력도, 노력, 솜씨도 그 안에서는 의미가 없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운명에 몸을 맡기는 것뿐이다. 운명의 결정을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일은, 무언가를 얻을 수도, 아무 것도 얻지 못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가진 걸 잃을 가능성도 존재함을 뜻한다. 셋째, 미미크리는 놀이가 몇 가지 약속에 따라 정해지고, 허구적인 하나의 폐쇄된 세계를 일시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전제로 한다. 놀이는 가상의 환경 속에서 활동을 전제하거나 운명에 복종하는 것뿐 아니라, 그 안에서 자신이 가공인물이 되어 상황에서 주체적으로 판단해 행동함으로써 성립한다. 그렇기에 미미크리는 어떤 것을 따라하거나 흉내내는 것, 또는 가상의 인격을 설정하고 행동함으로써 재미를 느끼는 것을 말한다. 넷째, 일링크스는 놀이 순간 느낄 수 있는 아찔함을 통해 얻는 즐거움이다. 통제할 수도 없고, 의지가 반영되지 않으며, 규칙에 따르지도 않는 어지러운 상황에서 정신과 감각과 신체를 자극하는 쾌감을 맛보는 일이 곧 일링크스다. 수많은 게임 장르 중에서 롤 플레잉 게임(role playing game, 이하 ‘RPG’)은 말 그대로 역할 놀이가 중심이 되는 게임류를 일컫는다. 가상의 시공간 안에서 플레이어가 특정 역할을 맡아, 그 역할을 중심으로 게임 세계 내 변화를 이끌어가야 한다. 직접 사건의 주체가 되어 게임 내 서사의 흐름을 일정 범위 안에서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에 RPG에서 플레이어는 깊은 몰입과 재미를 느낄 가능성을 획득한다. 그런 점에서 카이와가 제시한 미미크리와 일링크스 개념은 지금 우리가 논의하는 RPG에 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가상의 공간에서 역할극이 주는 재미와 RPG가 주는 재미가 같은 근원을 가졌다는 점을 짐작케 한다. RPG가 환경과 시대에 발맞춰 진화한 결과 중 하나가 MMORPG다. MMORPG는 네트워크를 사용해 수많은 플레이어가 같은 시간 같은 게임공간 안에서 상호작용을 주고받으며 경쟁이나 대립을 하기도 하고 다양한 퀘스트를 통해 플레이를 즐기기도 하는 방식의 게임을 말한다. 흔히 광활한 게임공간, 아이템·가상화폐, 사냥, 종족·직업, 성장형 캐릭터 등의 특징으로 설명된다. 기본적으로 RPG의 속성을 띠는 MMORPG 역시 미미크리적이고 일링크스적이지만, 다른 대부분의 게임과 마찬가지로 아곤적이면서 알레아적이기도 하다. 플레이어의 노력과 경쟁에 의해 결정되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그것들을 벗어나 운에 의해 결정되는 부분들도 많다. 하지만 그 노력과 경쟁, 그리고 운 모두가 다른 게임들과는 다른 양상을 띠기도 한다. 대부분의 게임에서 아곤은 재미의 핵심가치로 기능한다. MMORPG에서 그 궁극에 있는 것이 ‘파티(party)’와 ‘레이드(raid)’다. 파티는 2~5인 정도의 소수로 구성되는 집단이다. 필드 내 좀 더 강력한 몬스터나 인스턴스 던전(instance dungeon)은 파티를 이뤄야 공략할 수 있다. 레이드는 파티보다 더 큰 집단으로, 보통 10~25명, 많게는 수십 명의 플레이어로 구성된다. 그야말로 집단이 참여하는 MMORPG의 속성이 반영된, 파티로는 공략이 불가능한 강력한 적과의 싸움을 위한 협력인 셈이다. 그리고 그 레이드의 과정은 단순히 개인 캐릭터의 성장과 좋은 아이템의 사용으로만 극복할 수 있는 형태로 제시되지 않는다. 레이드에 참가하는 인원들에게는 각기 다른 역할이 부여된다. 똑같이 동료들의 치유를 담당하는 사제라 하더라도 누군가는 보스의 공격을 최대한 몸으로 막는 탱커의 체력을 전담마크하고, 누군가는 다른 동료들의 체력 전체를 책임지는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그 역할을 유기적으로 수행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아이템을 착용하고 있다 해도 공략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십 명이 모여서 주어진 임무를 유기적으로 수행하고, 협동을 통해 주어진 도전과제를 극복하는 레이드는, MMORPG 플레이의 꽃이다. MMORPG 레이드에 대한 보상은 대체로 강력한 아이템의 획득을 의미한다. 더 강한 적일수록 공략이 어렵지만, 플레이어에게는 더 좋은 보상을 제공한다. 강력한 아이템을 장착한 소수의 플레이어는 게임 내에서 그에 따른 명예를 얻게 된다. 다만 협력과 노력의 결과가 아이템의 드랍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해도, 아이템을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 그리고 어떤 아이템을 얻을지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운과 관련된다. 물론 특정 보스가 100%의 확률로 드랍하는 아이템도 종종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역시 모두에게 그 아이템이 돌아가지는 않으며, 유일 혹은 소수의 플레이어만이 해당 아이템을 가져갈 수 있게끔 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아이템 드랍과 획득이야말로 기회 기반의 메커니즘을 포함하며, 무작위성의 경험을 생산하는 대표적인 게임 시스템의 일부다. 물론 개별 게임에 따라 그 기회와 무작위성의 범위가 다르게 나타난다. 하지만 무작위성이 없는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건조하게 느껴질 확률이 높다. 원하는 아이템이 한 번에 나와 획득하기만 한다면, 플레이어가 다시 그 레이드에 참여할 이유는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스가 쓰러졌을 때의 쾌감 못지않게 아이템 드랍할 경우에도 플레이어는 두근거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수많은 아이템들 중 자신이 원하는 아이템이 드랍되고, 또 그것을 획득까지 하게 됐을 때의 경험은 잊지 못할 기억이 되곤 한다. 원하는 아이템이 드랍될 확률이 100%가 아니기에, 그리고 그것을 획득할 확률 역시 경쟁자가 아예 없지 않는 한 100%일 수 없기에, 레이드는 운명과 위험을 걸고 뛰어들만한 의미 있는 것이 된다. 꼭 MMORPG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나, (대체로 아이템) 운과 자신의 캐릭터, 그리고 그 관계를 시스템적으로 규정하는 게임을 일컫는 여러 용어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축(복)캐’와 ‘저(주)캐’다. 전자가 원하는 아이템을 척척 획득하는 캐릭터를 일컫는다면, 후자는 원하는 아이템이 드랍되지 않거나 드랍된다 해도 획득하지 못하는 캐릭터를 일컫는다. ‘운빨망겜’은 말 그대로 운빨이 망한 게임으로, 자신이 플레이하는 캐릭터가 저주에 저주가 걸렸을 때 해당 게임을 일컫는 단어로 사용된다. 나아가서는 현실 인생에서 본인이라는 캐릭터에 운이 없었음을 한탄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운빨망겜의 대척점에 ‘실력망겜’도 있다. 운적 요소가 크게 배제되어, 숙련도 차이에 따른 플레이가 일반적인 게임을 말한다. 게임에 투자한 현금이 승패를 좌우한다는 뜻을 가진 ‘현질망겜’이라는 용어도 있다. 게임 밸런스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 못하지만, 핵납금러에게는 기회로 작용하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보론: 놀이와 게임을 연결 짓는 관점에 대하여] 물론 게임이 놀이와 밀접하게 연관되기는 하나, 둘이 동일한 것은 아니다. 놀이가 곧 게임인 것도 아니며, 게임 또한 전통적 놀이의 속성을 고스란히 반영한다고 보기 어렵다. 둘의 유사점이나 차이점에 주목하는 논의는 다양하며, 그 견해 역시 하나로 좁혀지지 않는다. 게임이 놀이의 부분집합이라 보는 견해(예를 들어 곤살로 프라스카)도 있지만, 놀이를 포섭한 게임이 기존 놀이와는 다른 무언가라는 견해(예를 들어 예스퍼 율, 샐런과 치머만 등)도 있다. 하지만 놀이와 게임의 관계는 하나가 다른 하나의 상위 혹은 하위 범주에 속하는 문제로 축소해 논의할 것이 아니다. 대신 둘이 별개의 차원에 있는, 그럼에도 상호연관되는 범주로 파악하고 둘의 관계를 논의하는 것이 게임의 복잡다단한 특성을 포착하는 데 보다 유익한 일처럼 보인다. 그런 점에서 로제 카이와의 놀이 요소 분류를 MMORPG에 적용해보려는 아이디어는, MMORPG가 곧 놀이라는 의미라기보다는 놀이의 관점에서 MMORPG를 입체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에 가깝다고 보면 될 듯하다. MMORPG 시스템이 규정하는 아이템 분배 방식과 확률 보정 같은 MMORPG 장르라 해도 게임마다 시스템이 규정하는 아이템 분배방식이 다르고, 그 종류도 다양하다. 그럼에도 대표적인 아이템 분배방식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유 획득 방식이다. 이름 그대로 누구나 자유롭게 획득이 가능하며, 먼저 집는 사람이 임자가 된다. 서로 아는 플레이어들끼리 모인 파티에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고렙 플레이어가 도우미로 합류해 저렙 플레이어(들)을 빠르게 레벨업 시켜주거나 장비를 맞춰주고 싶을 때 유리하다. 모르는 플레이어들끼리는 퀘스트 아이템 등을 얻기 위해 파티를 구성하는 경우에 사용하곤 한다. 둘째, 순서대로 획득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에서는 루팅을 몬스터 하나당 파티/공대원 한 명씩만 돌아가며 할 수 있게 한다. 마지막 파티/공대원까지 한 번씩 루팅을 했다면, 다시 첫 파티/공대원에게 루팅 턴이 돌아간다. 셋째, 특정인 획득 방식이다. 자유 획득방식과는 정반대로, 파티나 레이드의 리더나 그 대리인이 아이템 획득 권한을 가지고, 그 권한을 이용해 필요한 파티/공대원에게 아이템을 적절하게 나눠주는 경우를 말한다. 후술하겠지만, 포인트제나 골드 파티에서 주로 사용된다. 넷째, 주사위 획득 방식이다. 특정 아이템이 나왔을 때 해당 아이템을 착용할 수 있는 캐릭터 직업군을 우선으로 주사위를 굴리게 만들어, 가장 높거나 낮은 숫자를 뽑은 플레이어가 가져가는 것을 가리킨다. 해당 아이템 착용 불가 캐릭터들에게는 아예 주사위가 뜨지 않거나, 착용 가능 캐릭터들이 없는 경우 차순위로 가져갈 수 있게끔 하는 경우가 많다. 대개 모든 아이템에 주사위를 굴리게 하지는 않고, 일정 등급 이상의 아이템부터 주사위를 굴린다. 이 때 해당 등급 미만의 아이템은 자유 획득하거나 순서대로 획득하게 만든다. 게임 내에서 권장하는 방식으로 주로 랜덤 파티나 비정규 공격대가 채택한다. 하지만 전술한 바와 같이 아이템마다 드랍 확률이 다르고, 또 플레이어마다, 캐릭터마다 그것을 획득할 운은 다르게 작동한다. 때문에, 극악의 저캐라면 같은 보스 몬스터를 수십 번 공략해도 원하는 아이템을 구경조차 못할 수도 있다. 그런 경험을 한 플레이어라면 해당 레이드를 공략하고 싶지 않아질 수밖에 없고, 나아가 게임에 대한 정이 떨어질 수도 있다. 이런 사례가 극단적인 듯 보이지만, 생각보다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론상 여러 번 잡은 보스 몬스터라 해도, 매번 잡을 때마다 아이템 드랍 확률이 초기화되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게임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해도, 이는 너무 불공평한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게임 시스템도 진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게임 디자이너에 의해 고안된 토큰 제도다. 이는 아이템 드랍 테이블의 불확실성을 보정하기 위한 시도로, 직업이나 역할별 특정 아이템군을 묶은 것이다. 예를 들어 한 보스 몬스터가 특정 직업이나 역할의 가슴 방어구를 드랍한다 했을 때, 해당 아이템이 나온다 해도 혜택을 볼 수 있는 직업이나 역할은 한정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해당 방어구를 가슴 방어구 토큰으로 만들면, 보다 많은 직업이나 역할이 해당 토큰을 획득한 후 자신에게 맞는 방어구로 교환하면 된다. 적용되는 직업이나 역할이 많으면 많을수록 해당 토큰의 활용도는 올라간다. 대신 획득을 위한 경쟁은 훨씬 치열해질 수 있다. 토큰 제도는 아이템 드랍 확률을 보정해주긴 하지만 아이템 획득 확률을 올려주지는 못한다. 원하는 토큰이 나와도 그것을 계속 먹지 못하는 캐릭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에 여러 MMORPG들에서 시스템 상의 불운 보정이 존재해왔다. 디자이너가 플레이어로 하여금 특정 상황에서 특정 아이템을 더 많이 획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경우 일정 시간 내 아이템을 획득하지 못한 플레이어는, (계속 아이템 획득을 위한 노력을 한다는 전제하에) 갈수록 해당 아이템을 획득할 확률이 높아진다. 최근에는 가시적인 불운 보정 아이템도 발견된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 이하 ‘WoW’)>의 최근 확장팩 ‘용군단(Dragonflight)’에서는 판금착용 근거리 딜러용 전설급 양손도끼인 ‘피랄라스 – 꿈 절단기(Fyr’alath the Dream Render)’를 선보였다. 다만 완성형의 무기를 드랍하는 방식은 아니고, 아미드랏실 공격대의 최종 보스 몬스터인 피락을 공략 완료하면 퀘스트 아이템을 드랍한다. 국가별 서버군 내에서 신화난이도 피락을 가장 처음으로 잡은 공격대에게 100% 확률로 1개를, 그 이후 신화난이도 피락을 잡은 공격대에게는 2~30% 확률로 1개를, 영웅난이도 이하 난이도 피락을 잡은 공격대에게는 보다 낮은 확률로 드랍한다. 당연히 공격대 난이도가 높을수록 드랍 확률도 올라가는 구조이며, 국가별 서버군 내에서 신화난이도 피락 첫 공략이 이뤄졌다면 그 다음 주 주간 공격대 리셋 후부터는 모든 난이도에서 피랄라스 획득이 가능해진다. 퀘스트 아이템은 피락이 드랍하는 다른 아이템들과 달리 개별 캐릭터에게 자동 드랍되는데, 아무리 캐릭터별 드랍이라 해도 앞서 말한 것처럼 매번 아이템 드랍 확률이 초기화된다면, 너무 쉽게 획득하는 캐릭터와 아예 영영 획득하지 못하는 캐릭터가 함께 나올 수밖에 없다. 이에 게임에서는 퀘스트 아이템을 획득하지 못했을 경우, 해당 캐릭터의 퀘스트 아이템 드랍율을 영구적으로 소폭 혹은 그보다는 대폭 올려주는 불운 보정 아이템 2종 중 하나를 드랍한다. 이 불운 보정 아이템은 최종 보스 몬스터인 피락만이 아니라 앞선 보스 몬스터들에게서도 나온다. 결론적으로, 난이도 불문 아미드랏실 레이드에 꾸준히 참여하면 언젠가는 퀘템을 먹을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적어도 이 구조 하에서 플레이어가 계속 노력하면 반드시 보상을 얻는다. * 에서 드랍되는 불운 보정 아이템 ‘피랄라스의 불씨’ MMORPG 플레이어들이 고안한 아이템 획득 확률 보정하기 특정 아이템이 드랍될 확률을 플레이어가 어찌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단 드랍된 아이템에 대해서는 시스템이 규정하는 방식을 채택하지 않고, 그것을 다르게 활용함으로써 자신의 아이템 획득 확률을 높일 수 있다. 플레이어들은,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그 다른 식으로의 활용이 레이드에 참여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게끔 한다. 그렇다면 플레이어들이 고안한 아이템 획득 확률 보정방식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첫째, ‘저득(低得) 주사위제’다. 주사위제는 일단 우연성에 의해 드랍된 아이템에, 획득 차원의 우연성까지도 가장 많이 작용하게끔 하는 방식이다. 이에 플레이어들은 합의하에 우연성을 낮추고 조금이라도 특정 플레이어(들)의 아이템 획득 확률을 높이기 위해, 이미 주사위를 던져 아이템을 획득한 플레이어를 배제하고 나머지 플레이어(들)끼리 다음에 나오는 아이템을 입찰하는 방식을 고안했다. 이 방식에서는 적게 아이템을 획득한 플레이어일수록 다음 아이템을 획득할 확률이 높아진다. 둘째, 정규 공격대에서 주요 쓰이는 방법으로, 포인트 획득제가 있다. 정규 공격대란 특정 시간대에 정기적으로 구성원들이 모여 몬스터를 공략하는 공격대를 말한다. 최상위권 몬스터 공략을 위해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포인트 획득제는 그 이름처럼 일정 기간 공략 참여를 통해 플레이어가 획득하게 되는 포인트를 바탕으로 아이템을 획득하는 방식이다. 셋째, 가상화폐 경매제도다. 가상화폐 경매제도는 죽은 몬스터가 주는 아이템들을 경매에 부쳐 더 많은 가상화폐를 경매가로 부른 플레이어가 특정 아이템을 낙찰해가는 제도를 의미한다. 보통 아이템을 사지 않은 레이드원들이나, 실력이 좋아서 그렇지 못한 레이드원(들)에게 소위 ‘버스’를 태워줄 수 있는 레이드원들 중심으로 모인 돈을 나눠 갖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아이템을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참여한 플레이어들에게 마찬가지로 나쁘지 않거나 때론 가상화폐를 벌기 위한 목적이 되기도 하는 제도다. 원래 가상화폐는 몬스터를 사냥하거나, 몬스터 사냥을 통해 획득한 아이템을 상점 혹은 경매장에 팔거나, 퀘스트 수행을 통해서만 획득 가능하다. 때문에 아이템 외의 것을 사고팔기 위한 보조도구로서 주로 기능해왔다. 경매제도는 가상화폐를 게임 내 보조적인 도구에서, 반드시 획득해야 할 게임 내 중요한 목적지로 탈바꿈하게 만드는 계기로 작용한다. 그리고 꽤 많은 게임들의 가상화폐가 현실세상에서 실제 화폐로 거래되기도 한다. MMORPG는 플레이에 시간과 노력이 상대적으로 많이 드는 하드코어(적) 장르인데다, 다른 플레이어들과 관계 맺지 않고 플레이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가상화폐 경매제도는 혼자 플레이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기도 하는데, 가상화폐가 아이템 획득 문제를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경매제도 도입 이전의 MMORPG 세계에서 플레이를 하고 좋은 아이템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다른 플레이어와의 관계에 신경을 쓰고, 다른 한편으로 강한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는 개인 능력을 키워야만 했다. 공격대에서 자기가 맡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플레이어, 즉 공격대에 기여를 하지 못하는 플레이어는 실력을 키울 때까지 공격대에 참여하기가 어려웠다.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소문이 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실력 못지않게 평판도 중요하게 여겨졌고, 실력이 좋아도 매너가 좋지 않으면 공격대에 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경매제도 도입 이후 가상화폐가 부족한 실력과 매너를 메우게 되었다. 공격대에 끼기 위해 중요한 것은 점차 실력이나 평판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가상화폐를 보유하고 있는가가 되었다. 이처럼 플레이어(들)은 저득 주사위를 굴리거나, 포인트, 골드 등을 사용함으로써 아이템 획득 확률일 높일 수 있다. 특히 포인트제와 경매제도에서는, 포인트, 골드 등을 사용해 아이템 획득 확률을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다. 포인트나 골드 등을 다른 공격대원에 비해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아이템 획득 확률이 올라감은 물론이고, 정말 포인트나 골드가 많다면 거의 100% 확률로 아이템을 가져갈 수 있다. 운과 불운 사이, 게임 시스템과 플레이어들 사이 중요한 것은, (특히 플레이어 차원의) 확률 보정 노력들이 긍정적인 것이든 그렇지 않든, 앞으로도 게임 내에서 죽 이어지거나 어쩌면 더욱 활발하게 가시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 글에서 살펴본 게임 시스템 차원의 드랍·획득 확률 보정, 그리고 플레이어 차원의 획득 확률 보정의 양상 및 의미는 게임의 시스템적 디자인과 플레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상호작용 사이의 충돌, 불확실성이 주된 요소일 수밖에 없는 게임에서 발생하는 플레이 방식의 역동성 혹은 진화,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불평등으로 다가갈 수 있는 아이템 획득방식의 변경에 대한 플레이어 간의 합의 또는 수용 문제 등을 폭넓게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된다. 불확실성은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거나 적은 것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것으로 이해돼 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게임의 불확실한 결과는 플레이어(들)에게, 그들의 결정이 게임에 확실한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그리고 플레이어가 게임에 몰입하고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얻는 건, 그러한 의사결정과 결과의 관계로부터 나타난다. MMORPG 레이드에서 아이템을 획득하는 일 역시 다르지 않다. 특히 플레이어(들)이 만들어 활용하는 새로운 아이템 획득방식은, (가상화폐 지상주의라든지 긍정적이지 못한 결과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 게임 시스템의 활용의 하나이자, 전체 플레이의 맥락 속에서 이뤄지는 하나의 실천으로 이해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 또한,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허용하는 선하에서 공식화되는 아이템 획득방식이자 플레이의 일부가 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강신규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게임, 방송, 만화, 팬덤 등 미디어/문화에 대해 연구한다. 저서로 <흔들리는 팬덤: 놀이에서 노동으로, 현실에서 가상으로>(2024), <서브컬처 비평>(2020), <아이피, 모든 이야기의 시작>(2021, 공저), <서드 라이프: 기술혁명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2020, 공저), <게임의 이론: 놀이에서 디지털게임까지>(2019, 공저) 등이, 논문으로 ‘<체인소 맨>의 한국적 수용과 문화적 증폭’(2026), ‘극사실주의의 게임적 재구성: <나는 SOLO>의 상호/텍스트성과 수용구조’(2026), ‘이기지 않아도 재미있다: 부모-자녀 게임 플레이의 사회성과 행위성, 그리고 분투형 플레이’(2024), ‘커뮤니케이션을 소비하는 팬덤: 아이돌 팬 플랫폼과 팬덤의 재구성’(2022) 등이 있다.
- 문예진흥법 개정: 게임이 예술 되어 돈이라도 있고 없고
예술인복지법이 언제 어떻게 개정될지는 알 수 없다. 앞서 말했듯 구체적인 논의가 아직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게임의 예술화에 있어서 한국은 이제 첫 번째 페이지를 연 것이고, 단순히 법 한두 개를 개정하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지속적인 업계 모니터링과 철학적 담론 탐색이 있어야 하며, 그 결과는 향후 여러 번의 개정으로 나타날 것이다. < Back 문예진흥법 개정: 게임이 예술 되어 돈이라도 있고 없고 09 GG Vol. 22. 12. 10. 게임이 예술 되어: 문화예술진흥법 개정 게임이 예술인가 하는 논의는 꾸준히 있어 왔다. 시대 따라 논의의 초점도 발전했다. 학계 내부에서 논의의 초점 하나가 영글면 바깥으로도 튀어나왔다. 열매는 칼럼이나 기사의 형태로 이따금 맺혔고, 지나가던 대중들은 댓글창에서 입씨름을 벌이고 다시 가던 길을 갔다. 그러던 2011년, 열매를 모으던 학계와 지나가던 대중들이 잠깐 멈추어선 소식이 있었다. 2011년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이 게임을 예술에 포함시키는 판례를 남겼다. 캘리포니아 주법에는 미성년자들에게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을 판매 혹은 대여하는 것이 불법이라 규정한 법이 있었는데, 이 법이 위헌이라는 것이었다. 위배되는 헌법은 수정헌법 1조. 예술 장르에게 언론 자유를 보장하는 부분이다. 이 판례가 나온 후 미국의 국립문화예술진흥기금(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 NEA)은 지원 대상에 게임을 포함시켰다. ‘텔레비전과 라디오 예술’ 항목의 이름을 ‘미디어 예술’로 바꾸면서 비디오 게임을 집어넣은 것이다. 11년이 지난 올해, 한국에서도 같은 소식이 있었다. 2022년 9월 27일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이 공포되어 6개월 후인 2023년 3월 23일부터 효력을 가진다. 조승래 의원은 게임을 문화예술의 범위에 추가하는 부분을 대표 발의했다. 애니메이션은 유정주 의원, 뮤지컬은 이병훈 의원 대표 발의에 의해 추가되었다. 판례로 규정을 바꾼 미국과 달리 한국은 입법으로 규정이 바뀌었으므로 바뀐 조항에 따라 자동으로 게임은 지원 대상 예술 장르가 된다. 법의 제목부터 문화예술‘진흥’법이지 않은가. 일찍이 우탱클랜은 불멸의 구절을 랩했다. “Cash Rules Everything Around Me.” 주변 모든 것은 돈으로 돌아갈지니. (줄여서 CREAM이다) 크림처럼 달달한 지원금을 노리기 위해 법을 들여다 보자. 문화예술진흥법에는 지원금과 장려 정책이 명시되어 있다. 7조에는 전문예술법인을 만들 수 있는 규정이 있고, 11조에는 장려금 정책이, 14조에는 문화산업 지원에 관한 규정이 있다. 4장은 아예 전체가 문화예술진흥기금의 설립과 운영에 대한 조항들이다. 게임 속에 예술이 너무도 많아: 게임 내의 예술의 영토 게임의 특성인 경쟁성이나 참여성이 예술의 속성과 맞지 않기 때문에 예술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정도는 반박이 되었고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어서 추가 논의로 들어간 주장들이다. 그런데 상황은 바뀌었다. 이제 게임의 예술성 논의는 국가 시스템에 의해 한 단계를 넘어갔다. 법적으로 예술의 범주에 들어갔다. 다음 차례는 국가가 예술에게 주는 지원금과 지원책을 받으면 된다. 독립 개발자들은 국가 지원금을 받아 제작비로 쓸 수 있을 것이고, 대형 게임사 또한 국가의 연기금을 투자자로 받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대형 회사의 투자 사정은 그렇다 쳐도, 미국 NEA의 기금 지원의 경우에서는 분명히 개인 개발자나 소규모 그룹 개발사에 지원이 갔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게임의 어느 부분이 예술성을 갖고 있을까? 게임은 그림, 영상, 문자, 음악, 음향, 여기에 더하여 프로그래밍 코드 등의 다양한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게임의 예술성은 이 구성 요소 중 어디에 있는가? 혹은 이 구성 요소 모두 내지는 요소의 집합에 있는가? 감독, 각본, 연기 정도로 정리가 가능했던 영화의 경우보다 훨씬 복잡하다. 게임이 훨씬 더 복합적인 장르이기 때문이고, 그래서 게임의 예술성을 부정하는 시각도 있는 것이다.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그래서 게임 제작에 종사하는 사람 중 어디까지가 법적 예술인이 되는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질문은 곱씹어 보면 하나의 질문이 아니다. 게임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디렉터, 혹은 디렉터들인가? 아론 스머츠(Aaron Smurts)는 게임 제작자가 영화 감독처럼 총체적인 환경을 구축하는 작업을 한다며 예술가로 분석한 바 있다. 하지만 게임 제작자도 영화 감독도 독립적으로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영화에서는 서사를 만들어낸 각본, 서사를 수행해낸 연기, 둘을 합쳐 의도를 투사해낸 감독의 셋으로 예술성의 영역을 정할 수 있었다. 이후 점차 촬영 행위 자체도 기법과 의도가 있는 예술이라는 인식이 생겼고, 분장과 의상과 음악도 같은 노선을 탔다. 물론 위계상 감독이나 각본이 가장 상위에서 통합 권위를 가져가는 모양새지만, 그래도 하위 분야들의 예술성이 완전히 부정당하지는 않는다. 그럼 게임에서도 비슷하게 하면 되지 않을까? 그래픽과 디자인을 입히는 파트까지는 예술일 것 같다. 그럼 UI 디자인은? 배경음악을 만드는 인력이 예술인이라면 음향을 디자인하는 인력은? 시나리오 작가는 예술인에 포함될 것 같은데, 이를 검수하고 수정하는 인력은 어떨까? 그러고 보니 소설과 만화에서 편집인은 예술인이던가 아니던가? 지금까지 열거한 모든 요소를 동원해 컷신 시네마틱 영상을 만들어내는 인력은 어떨까? 게임이기에 가능한 질문도 더해진다. 비디오 게임을 하나의 작품/상품이게 만들어내는 기술은 프로그래밍 기술이다. 그럼 게임 코딩을 한 프로그래머들은 예술인이 되는가? 비록 게임 제작진의 대다수가 감독/디렉터의 의도 하에 자기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긴 하지만, 영화 제작도 같은 형태니까 게임에서도 대다수의 인력들을 예술인으로 인정해주면 될 것 같다. 그런데 프로그래밍도? 약간의 거슬림이 생긴다. 비디오 게임의 근간을 쌓는 작업이니 넣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러기엔 이미지가 너무 ‘기술직’이다. 사실 그렇게 이상하진 않다. 어차피 ‘藝術’이건 ‘arts’건 예술을 지칭하는 단어는 기술을 지칭하는 단어에서 왔기 때문이다. 정교하고 완벽에 가까운 기술적 경지를 지칭하는 개념이 점차 변하여 현재에는 예술성을 지칭하는 개념이 된 것이니까. 따라서 우리는 받아들이면 된다. 코딩하는 프로그래머도 게임을 만드는 데에 참여했다면 예술인일 수 있다. 그게 새로운 시대다. 효율적으로 만들어낸 코드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도 하지 않는가. 물론 저 표현은 비유적 표현에 의한 감탄이지만, 법적 영역에서는 건조한 사실 진술이 될 수도 있다. 코딩도 예술적일 수 있다는 시선은 이미 한참 전에 제시되었다. 파올라 안토넬리(Paola Antonelli)는 2013년에 큐레이터로서 뉴욕현대미술관에서 게임 14종을 선정해 전시했다. 안토넬리는 전시작을 선정하기 위해 만든 기준에 그래픽, 유희성 등의 ‘예술적 기준’ 외에도 조작의 참신성과 코딩의 우아함을 집어넣었다. 같은 해, 독일의 미디어아트 전시회인 트랜스미디알레(Transmediale)에는 아예 즉석 코딩 공연이 올라갔다. 게임의 장르적 특성인 유희성이 규칙에서 나오고 그 규칙을 현실화시킨 것이 코딩이므로, 코딩의 최적화 수준 또한 예술성으로 볼 수 있다는 결론을 낸 것이다. * 이미 음악 연주의 방법으로 코딩이 쓰이고 있다. 그래서 게임의 예술화, 혹은 게임의 예술 편입은 예술 역사에서 혁명적 사건이다. 과거 게임의 예술화를 부정하는 논의를 다시 돌이켜 보자. 경쟁성이나 참여성 등의 특성이 기존 예술과 맞지 않는다는 의견들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2001년 경 나왔던 소설가 이영도의 발언이 기억에 남는다. ‘예술의 목적은 타자를 이해하는 것이다. 게임의 목적은 타자를 이기는 것이다. 따라서 게임은 예술이 아니지만 예술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 스포츠는 예술이 아니지만 가치를 폄하 당하지 않는다.’ 게임의 다른 속성인 ‘협동’이 부각되면서 이 논리의 힘은 많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주목할 가치는 있다. 이 관점에서 게임의 예술화를 바라본다면, 예술 역사에서 처음으로 이질적인 체계를 가진 장르가 등장한 것이기 때문이다. 최초로 가장 이질적인 장르라는 점은 게임의 특성 중 수용자의 참여성에서도 드러난다. 기존 예술 장르에서 수용자의 기본 태도는 감상 내지는 관조였다. 반면 예술 신입인 게임에서는 직접 참여하여 경험한다. 새로운 수용 형태가 예술에 들어온 것이다. 게임이 예술이 될 수 있는가보다 사람들이 게임을 예술로 용인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박영욱 숙명여대 교수가 했던 말이다. 수용자 미학 이론으로는 맞는 얘기다. 뒤샹의 변기가 예술이 된 것은 사람들이 미술품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예술을 규정하는 것은 결국 예술을 해석하는 사람들, 수용자에게 달렸다. 사람들이 예술이라 지칭하는 것으로 예술품이 완성되며, 사람들의 해석에 따라 예술품의 가치가 결정된다. 돈이라도 있고 없고: 지원금과 노동권 그리하여 과거 논의까지 건드려가면서 얻어낸 결론은 낯설긴 해도 만족스럽다. 사람들이 게임을 예술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예술임을 인정했다. 이제 만족스러움을 안고 내년 3월부터 국가 지원금을 받아가면 된다. 하지만 당장은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 예술인 지원 정책을 규정하고 있는 법은 예술인복지법인데, 이 법의 개정안이 아직 올라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내의 논의가 끝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이 논의에는 코딩 프로그래머의 예술인 인정 여부가 담겨 있는 것 같다. 담당 부처의 논의가 대강이나마 윤곽이 잡히면, 그때 가서야 예술인복지법의 구체적인 개정안과 새 시행령이 나올 것이다. 현재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의원들이 발의해놓고 논의하고 있는 예술인복지법 내용은 예술인 자격 증명과 경력 증명에 관한 내용이다. 정부에 예술인으로 등록을 하여 지원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각종 서류가 필요하다. 그중에는 국가가 ‘예술 활동’이라고 인정하는 특정 활동의 증명도 있다. 물론 이런 서류 구비는 힘들고 귀찮고 헷갈리는 일이다. 그래서 앨범을 몇 장씩 내고 10년 넘게 활동한 중견 음악인도 예술인복지법에서 보면 예술인이 아닌 상황이 흔하다. 그러다 보니 예술인 등록제는 예술 활동을 증명한다기보다는 예술인임을 증명하는 의미로 더 많이 받아들여진다. 당연히 주류 시장과 비주류 담론 양쪽 모두에서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예술인임을 증명하고 지원금을 타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현재는 이런 부작용을 없앨 패치를 논의하는 중인데, 현재 발의되어 올라와 있는 개정안을 보면 논의가 건설적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 기실 국회는 지원금 관련한 고민만 해서는 안 된다. 예술인복지법 개정에 있어서는 노동권 문제도 다루어져야 한다. 또한 예술인복지법 5조는 예술인이 불공정 계약을 하지 않도록 하는 표준계약서 조항이다. 활동 증명과 표준계약서에서 알 수 있듯 주로 개인 및 프리랜서를 위주로 패러다임이 잡혀 있다. 그래도 프리랜서인 연예인이 기획사와 전속 계약을 체결할 때의 계약서 또한 이 조항을 기준으로 작성된다. 따라서 현재 게임 제작사와 노동 계약을 맺고 입사해 있는 시나리오 라이터, 디자이너, 3D 모델러, 코딩 프로그래머 등등에게도 표준계약서 준수 여부가 중요해질 수 있다. 게임업계의 고질적인 노동 문제를 풀 실마리가 여기서 등장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예술인복지법이 언제 어떻게 개정될지는 알 수 없다. 앞서 말했듯 구체적인 논의가 아직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게임의 예술화에 있어서 한국은 이제 첫 번째 페이지를 연 것이고, 단순히 법 한두 개를 개정하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지속적인 업계 모니터링과 철학적 담론 탐색이 있어야 하며, 그 결과는 향후 여러 번의 개정으로 나타날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 <컨슘 미> 리뷰: 개인적 게임의 등장과 먹는 행위의 의미적 변화
<컨슘 미(Consume Me)>는 여러모로 특이한 면이 많은 게임이다. 중국계 미국인 개발자 제니 지아오 샤(Jenny Jiao Hsia)와 그의 동료 AP 톰슨(AP Thompson)이 개발한 이 게임은 2025년 IGF(Independent Games Festival)에서 그랑프리에 해당하는 시머스 맥널리 상을 수상했다. 글로벌 게임 씬에서 가장 권위있는 인디게임 페스티벌에서 수상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게임 언론에서 이 게임이 리뷰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산업 담론에만 관심 많은 한국의 게임 웹진은 차치하고라도 1,000건이 넘는 스팀 게임 리뷰 중에서도 한국어 리뷰는 단 3건에 불과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메타크리틱에 따르면 <컨슘 미>를 비평한 매체는 17군데로 이 가운데에는 《Edge》, 《Eurogamer》 등 주요 게임 매체를 포함하여 《Guardian》과 같은 종합지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유독 국내에서는 <컨슘 미>에 대한 거의 아무런 비평도 일어나지 않았다. < Back <컨슘 미> 리뷰: 개인적 게임의 등장과 먹는 행위의 의미적 변화 30 GG Vol. 26. 6. 10. <컨슘 미(Consume Me)>는 여러모로 특이한 면이 많은 게임이다. 중국계 미국인 개발자 제니 지아오 샤(Jenny Jiao Hsia)와 그의 동료 AP 톰슨(AP Thompson)이 개발한 이 게임은 2025년 IGF(Independent Games Festival)에서 그랑프리에 해당하는 시머스 맥널리 상을 수상했다. 글로벌 게임 씬에서 가장 권위있는 인디게임 페스티벌에서 수상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게임 언론에서 이 게임이 리뷰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산업 담론에만 관심 많은 한국의 게임 웹진은 차치하고라도 1,000건이 넘는 스팀 게임 리뷰 중에서도 한국어 리뷰는 단 3건에 불과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메타크리틱에 따르면 <컨슘 미>를 비평한 매체는 17군데로 이 가운데에는 《Edge》, 《Eurogamer》 등 주요 게임 매체를 포함하여 《Guardian》과 같은 종합지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유독 국내에서는 <컨슘 미>에 대한 거의 아무런 비평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는 무엇보다 <컨슘 미>를 개발한 제니 자신의 이야기를 어느 정도 가공의 게임적 상황으로 변모시킨 개인적 게임(Personal Games)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국내 게임 저널리즘이 산업 중심의 문법 속에서 발전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반응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한국의 게임 담론은 오랫동안 시장 규모, 플랫폼 경쟁, BM, 업데이트, e스포츠와 같은 산업적 요소들을 중심으로 발전해왔고, 그 결과 게임을 개인적 표현이나 수행적 경험의 차원에서 읽어내는 비평 언어는 상대적으로 축적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작은 게임을 개발해 온 개인들은 2000년대 후반부터 조금씩 플래시나 유니티, HTML5 등으로 무기들을 바꿔가며 시장 내에서 생존했고 이는 인디게임 개발의 민주화로 거듭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2012년 『비디오 게임 진스터의 부상(Rise of the Videogame Zinesters)』이라는 책을 쓴 안나 앤스로피(Anna Anthropy)는 이 책에서 게임을 예술적·개인적 표현의 도구로 바라보며,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강조하고 있다 [1] . 게임 제작 도구의 접근성이 높아짐에 따라, 프로그래밍 기술이 없어도 개인의 경험과 감정을 표현하는 게임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이러한 흐름을 과거의 자비출판 문화인 ‘진(zine)’ 운동에 비추어 설명했다. 이 책의 부제는 “괴짜, 평범한 사람들, 아마추어, 예술가, 몽상가, 낙오자, 퀴어, 주부, 그리고 당신과 같은 사람들이 어떻게 예술 형식을 되찾고 있는가”이다. <컨슘 미>를 개발한 제니는 다이어트에 민감하고 그림을 잘 그리는 감수성 예민한 10대에 불과했지만, 뉴욕대(NYU) 게임센터에 진학하여 프로그래밍을 보강해줄 파트너를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게임으로 바꿔낼 수 있게 되었다. <컨슘 미>는 제니 자신이 고교 생활 중 경험했던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을 소재로 하고 있다. 플레이어는 제니의 입장이 되어 퍼즐 형태의 미니 게임을 통해 음식을 먹을 때 칼로리 목표를 맞추어야 하고, 이를 오버했을 때에는 운동이나 가사 등을 통해 칼로리 목표치를 맞추어야 한다. 그러나 챕터가 진행될수록 제니에게 부과되는 일과 이벤트는 늘어나게 된다. 챕터 2에 들어가면 남자 친구와의 데이트를 위해 돈을 모아야 하는데 이는 가사 일을 도우면서 엄마로부터 용돈을 타쓰는 것으로 충당해야 한다. 챕터 3에 들어가면 학교에서 라이벌이 생기고 그 대결에서 승리해야 하며, 동시에 칼로리 관리 수치도 높아진다. 또한 챕터 4에 들어가면 남친과는 원거리 연애를 지속해야 하는데, 메시지를 보내거나 영상 통화를 하는 것이 모두 하루에 얼마 남지 않은 자유 시간을 저당잡히게 된다. 그러다보면 운동도 밀리고, 빨래, 청소, 강아지 산책, 공부 등이 소홀해지기 쉽다. * <컨슘 미>의 식사 장면 <컨슘 미>의 게임 진행은 전반적으로 이러한 형태의 다이어트와 시간 관리로 진행된다. 여기까지는 기존의 게임 메커닉과 큰 차이가 없는 방식이다. 다만 먹는 행위에 관한 개발자의 메커닉 설정과 게임을 결말 짓는 태도는 장르적 문법에 충실한 게임들과 차이를 보인다. 일반적으로 게임에서 먹는 행위는 에너지의 회복과 버프를 통한 성장 등 보상 체계의 문법에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컨슘 미>에서 먹는 행위는 죄책감과 칼로리 계산을 통한 자기 검열로 이어지며, 이는 게임 내 주인공 제니의 심리적 불안으로 확대된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컨슘 미>의 핸드드로잉 기반 비주얼 스타일이다. 게임 속 제니의 표정과 몸짓, 음식의 형태, 인터페이스 디자인은 전반적으로 낙서 같은 과장과 귀여움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플레이어가 게임 속 상황을 지나치게 비극적이거나 병리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보지 않도록 만든다. 제니는 끊임없이 칼로리를 계산하고 자기 관리를 실패하면서 불안에 휩싸이지만, 게임은 이를 무겁고 우울한 방식으로만 재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컨슘 미>는 다소 우스꽝스럽고 자조적인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자기혐오와 강박을 관찰하게 만든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플레이어를 값싼 동정이나 자기연민으로 밀어넣기보다, 흔들리는 인간의 수행 구조를 잠시 따라가 보도록 만드는 데 더 가까워 보인다. <컨슘 미>의 식사 장면은 간단한 미니 게임류의 퍼즐 맞추기로 진행된다. 음식들은 테트리스의 블록 같은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를 통해 제니의 위장 속을 가득 채워야 한다. 그러나 늘 한두 칸 정도 채우지 못하는 블록이 남게 마련이고, 이는 제니의 포만감 수치를 떨어뜨린다. 이를 보강하기 위해서는 매점에서 $3를 주고 1칸짜리 블록인 치즈 토핑을 구매해 놓은 뒤 퍼즐을 맞추거나 하는 식으로 넘길 수 있다. 다만 이 치즈 토핑은 블록 크기 대비 매우 고칼로리이고 또 가격도 높기 때문에 자주 사용할 수 없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칼로리가 낮지만 가격이 높은 채소 요리 등을 늘 가게에서 비싸게 상비해 놓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 엄마의 가사 일을 완벽하게 도와 용돈을 채워넣어야 한다. 그러나 가사 일과 먹는 행위에만 충실하면, 공부와 운동, 남친과의 데이트를 할 시간이 부족해지기 때문에 일정과 이벤트에 따른 엄정한 계획과 시간 관리가 필요해진다. 그러나 <컨슘 미>는 일정표에서 도중에 플레이어가 통제하기 어려운 랜덤한 이벤트를 삽입함으로써 이러한 시간 관리 체계를 흔들어 놓는다. 플레이어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몸과 식단, 자기관리는 얼핏 보기에 게임 내의 목표로 설정되어 있지만 게임은 지속적으로 이러한 이상적인 몸과 자기관리를 실패할 부분을 삽입시키고 있다. 이안 보고스트(Ian Bogost)의 유명한 게임 이론서 『설득적 게임(Persuasive Games)』의 실패의 수사학(Rhetoric of failure) [2] 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 게임은 일상 속에서 우리가 수없이 경험했던 그 자기관리의 실패 과정을 답습하게 만들어 놓았다. <컨슘 미>에서 경험하게 되는 실패는 단순히 자기관리의 실패를 의미한다기보다는 현대 사회의 자기 관리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지속 불가능한가를 체험시키는 장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컨슘 미>는 보고스트가 『설득적 게임』에서 예시로 든 <9월 12일(September 12th)>나 <맥도날드 비디오게임(McDonald’s Videogame)>과 같은 극단적 실패의 수사학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이 게임의 결말은 몇몇 이벤트에서 우리 삶에 굉장히 가까울 정도로 딱딱한 형태의 절차성과 인과관계와 결말을 알 수 없는 인간성 사이를 번갈아 가면서 횡단하게 만든다. 챕터 3으로 넘어가면 제니의 남자친구 올리버는 잠시 원거리 연애를 하게 되는데, 이 때 게임은 매일 둘의 관계를 –3씩 감소시킨다. 메시지를 보내면서 채팅을 하면 관계는 +2가 회복되고 영상 통화를 하면 +5가 회복되는데, 메시지 채팅에는 1시간, 영상 통화는 2시간이 소모된다. 하루에 주어진 자유 시간은 2시간뿐이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늘 가사일이나 공부, 운동 등에 최소 1시간 정도는 투자해야 하고, 나머지 1시간을 올리버와 메시지 채팅으로 보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메시지 채팅만을 반복한다면 둘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우여곡절 끝에 챕터 4로 넘어가면 제니는 진학지도 선생님과의 상담 후에 목표 대학을 정하고 입학 에세이를 작성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한다. 이는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하기 때문에 제니는 울면서 올리버에게 이러한 상황을 털어놓는다. 이 때 올리버는 “우리 관계는 비디오 게임이 아니야. 내가 그렇게 쫌생이로 보여? 한 1주일 정도 네가 나한테 연락하지 않더라도 나는 우리 관계에 문제가 없다고 봐. 그러니 대학 입학 에세이 작성에 집중해.”라고 친절하게 답해준다. * <컨슘 미>의 영상 통화 장면 <컨슘 미>는 이처럼 게임이 가진 절차적 수사학(혹은 실패의 수사학) 자체가 지니는 기계적인 패턴의 함정을 흔들어 놓으면서 개인적 게임의 장점을 부각시킨다. 결국 이 게임에서 어느 시점에선가 플레이어는 이러한 기계적인 자기 관리의 메커닉을 완벽하게 지속시키기는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게임 내 주인공 제니 스스로도 다이어트, 연애, 운동, 입시, 교우 관계 등을 모두 완벽하게 해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그래도 삶은 지속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는 어찌보면 우리 삶이 늘 지탱해오는 ‘자기 타협’의 과정을 보여주는데, 이는 디지털 게임의 절차성과 매우 다른 면모를 지닌다. 게임이 가지는 절차성의 기계적 면모를 어떻게 근대 소설이 가진 사소설(私小說)적 개인성으로 대치할 수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컨슘 미>는 플레이어를 수행(agency)의 구조로 밀어넣는다. 철학자 C. Thi Nguyen은 게임을 플레이어가 일시적으로 다른 수행 구조를 차용하는 ‘임시적 수행(temporary agency)’의 예술 형식으로 설명한 바 있다 [3] . 마치 사소설이 근대적 주체의 내면을 언어화했던 것처럼, 개인적 게임은 동시대의 개인적 주체를 구성하는 시스템을 플레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그 안에서 사고하게 만든다. 그리고 플레이어를 절차성의 시스템을 철저히 따르도록 내면화 시킨 후, 그 안의 결점을 통해 우리 삶이 절차성으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교묘하게 비틀어 인간성을 옹호하는 모호한 결말을 내린다. 사실 <컨슘 미>를 처음으로 플레이 했던 것은 2019년 BIC에서였다. 코로나가 일어나기 직전 해에 열렸던 BIC에서 필자는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었고, 그 때 플레이 했던 <컨슘 미>는 지금의 챕터 1, 그러니까 제니가 겪었던 섭식 장애만을 다룬 게임이었다. 그 불완전했던 빌드는 지금보다는 좀 더 소셜 임팩트 게임에 가까웠고 개인성은 크게 돌출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5년의 개발 후 스팀에 공개된 <컨슘 미>는 볼륨이 더해지면서 연애, 입시, 교우 관계 등이 결합된 더 복합적인 개인적 게임으로 돌아왔다. 물론 섭식 장애에 대한 명확한 문제 설정은 다소 희석되었고, 초기 데모가 지녔던 폐쇄적 강박의 밀도 역시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 5년의 개발 과정 속에서 <컨슘 미>는 단순한 소셜 임팩트 게임을 넘어 연애, 입시, 교우 관계, 노동과 같은 삶 전체의 구조를 포괄하는 개인적 게임으로 변화했다. 상용화된 <컨슘 미>는 훨씬 더 풍부하고 플레이 가능한 게임이 되었지만, 바로 그 풍부함 때문에 초기 데모가 보여주었던 숨막히는 자기관리의 감각은 다소 완화되었다. 초기의 <컨슘 미>가 플레이어를 하나의 강박적 수행 구조 안에 밀어넣는 게임이었다면, 완성된 <컨슘 미>는 그 구조 속에서도 인간은 끝내 완전히 절차화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게임에 가까워졌다. * <컨슘 미>의 다양한 주차별 목표와 자기 관리 시스템 그러면 현대 게임 개발 문화에서 이러한 개인적 게임이 잘 출현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대규모 게임 개발은 집단적 창작이기 때문에 개인적 표현이 불가능했고 인디 게임에 와서야 1인 개발 혹은 소규모 팀에서 그러한 이야기를 겨우 입밖으로 낼 수 있었다는 이유는 절반만 맞는 설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게임은 구조적으로 게임을 특정한 방향으로 플레이하게 만드는 수행(agency) 구조, 뚜렷한 플레이의 목적이 설정되어야 하는 시스템 투명성을 요구받는 매체이다. 다시 말해 게임이라는 매체가 오랫동안 ‘개인적 경험’을 표현하기에 부적합한 방식으로 설계되어 왔다는 것이 나머지 절반의 설명에 해당하지 않을까. 문학과 영화라는 매체가 비교적 빠르게 개인의 우울과 욕망, 강박, 사소한 감정을 표현 대상으로 받아들인 것에 비해 게임은 오랫동안 승리, 숙련, 정복, 효율, 명확한 목표를 중심으로만 체계를 발전시켜 왔던 것이다. 다시 말해 게임에는 명확한 목표, 계산 가능한 가치, 최적화 가능한 선택 등을 위한 단순화된 합리성이 필요했던 것인데, 개인적 게임은 여러 수사학 장치들을 이용해 그간 게임에서 표현이 어려웠던 섭식장애, 우울, 자기혐오, 불안, 강박 등을 조금씩 표현해내고 있다. 이 때문에 개인적 게임은 단순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게임에 그치지 않는다. <컨슘 미>는 플레이어에게 부여되는 수행 구조를 비틀면서 반복적인 강박과 자기 감시, 불완전한 선택에 따른 실패를 감내하면서 감정적 소모를 경험하는 평범한 개인, 그리고 흔들리는 인간을 그린다. 근대의 사소설이 근대인의 내면을 발견했다면, 현대의 개인적 게임은 자기관리와 최적화의 논리 속에서 살아가는 동시대 인간의 수행 구조 자체를 플레이 가능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컨슘 미>는 그 구조 속에 끊임없이 우발성과 실패, 감정적 흔들림을 삽입함으로써 인간은 결코 완전히 절차화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 Anna Anthropy, Rise of the Videogame Zinesters, Seven Stories Press, 2012 [2] 이안 보고스트는 게임 개발자가 메커닉 설계를 통해 게임 속에 실패의 과정을 의도해서 삽입하여 플레이어로 하여금 실패를 경험하게 하여 의도적인 깨달음을 얻게끔 만드는 실패의 수사학을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실패의 수사학은 다른 매체에서 구현이 어려운 게임 고유의 수사학으로 인정받고 있다. Ian Bogost, Persuasive Games: The Expressive Power of Videogames, The MIT Press, 2010. [3] C. Thi Nguyen, Games: Agency as Art, Oxford University Press, 202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교수) 이정엽 순천향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게임 스토리텔링과 게임 디자인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인디게임 페스티벌인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 창설을 주도하고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인디게임 행사인 Independent Games Festival(IGF) 심사위원이기도 하다. 저서로 『디지털 스토리텔링』(공저, 2003), 『디지털 게임, 상상력의 새로운 영토』(2005), 『인디게임』(2015), 『이야기, 트랜스포머가 되다』(공저, 2015), 『81년생 마리오』(공저, 2017), 『게임의 이론』(공저, 2019), 『게임은 게임이다: 게임X생태계』(공저, 2021) 등이 있다.
- 우크라이나 사태의 de jure와 de facto
러시아 안에서 차르가 된 푸틴은 그렇게 러시아 바깥까지 제패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부디 그런 장면은 역사 다큐멘터리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만 보면 좋겠다. 현실에서는 진짜로 사람이 죽고 다치기 때문이다. < Back 06 GG Vol. 22.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aeseok Kim Worked for eight years as a reporter at ThisIsGame. Now handles external relations at a subculture startup. Loves editors and the power of cheat codes.
- 게이머로서의 경험이 미술의 근간이 될 때, 〈게임사회〉 리뷰
현대미술을 볼 때마다, 스스로가 현대 미술을 향유하는 이들과 관심이 거의 없는 일반 관객들 사이의 회색분자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딱히 현대미술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도, 어렸을 때부터 향유해온 것도 아니지만 뒤늦게 재미를 붙였고,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그래서 꿈보다 제법 마음에 드는 해몽이 나오면 그걸 감상으로 삼아 마음에 두기. 그게 나름의 현대 미술을 즐기는 방식이었다. < Back 12 GG Vol. 23. 6. 10. Tags: 게임사회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미술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MyungKyu Lee Game journalist (2014–), writer (2006–), gamer (1996–).
- [인터뷰] 25년간 게임의 지평은 어떻게 바뀌었나? : 게임 역사연구자 나보라, 게임 아카이비스트 오영욱 대담회
한때 미래 세계를 의미했던 21세기가 들어선 지도 벌써 25년이 지났다. 그 25년 동안 많은 문화적 변화가 야기되었는데, 그중에서도 게임은 급격한 속도로 우리의 일상 안으로 들어왔고 다양한 문화적 유산들을 만들어냈다. 이번 호에서는 게임 역사 연구자인 나보라 박사와 게임 아카이빙을 하고 있는 오영욱 박사를 모시고 그동안 우리의 게임이 얼마나 변했는지에 대해 대담회 형식으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Back [인터뷰] 25년간 게임의 지평은 어떻게 바뀌었나? : 게임 역사연구자 나보라, 게임 아카이비스트 오영욱 대담회 23 GG Vol. 25. 4. 10. 한때 미래 세계를 의미했던 21세기가 들어선 지도 벌써 25년이 지났다. 그 25년 동안 많은 문화적 변화가 야기되었는데, 그중에서도 게임은 급격한 속도로 우리의 일상 안으로 들어왔고 다양한 문화적 유산들을 만들어냈다. 이번 호에서는 게임 역사 연구자인 나보라 박사와 게임 아카이빙을 하고 있는 오영욱 박사를 모시고 그동안 우리의 게임이 얼마나 변했는지에 대해 대담회 형식으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연구자 개인들이 겪은 25년의 세월: 세대 혹은 코호트 이경혁 편집장: 21세기가 시작된 지 벌써 한 쿼터가 지났습니다. 그동안 우리의 게임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이야기하고자 두 분을 모셨는데요. 먼저 조금은 편하게 ‘지난 25년간 내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부터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주제가 너무 무거우니 가볍게 제 이야기를 말씀드리자면, 제가 기억하는 2000년대 초반 게임의 가장 큰 이미지는 댄스 게임이었어요. 99년 6월에 부천역 오락실에 처음 이 등장했는데, 제가 당시 군대를 갔거든요. 딱 두 달 밟아보고 군대를 갔는데 댄스 게임이 굉장히 아른거리더라고요. 이때 흥미로운 점은 ‘게임했던 공간’입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오락실이라는 공간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의미가 조금 달라졌잖아요? 이런 변화들이 우리의 기억 속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보라 박사: 저는 97년에서 2001년 사이에 미국에 유학을 가 있었는데요. 당시에 제가 느꼈던 것은 게임이 ‘아이들만의 것’에서 ‘성인들의 취미’로 변해간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때 ‘플레이스테이션 2’가 미국에서 인기였는데, 그 이유가 DVD 플레이어 기능도 제공하기 때문이었거든요. 그 듀얼 기능이 먹히면서 보였던 변화상 중에 하나가 TV 메인 광고 시간대인 저녁 7시에 게임 광고가 나왔던 지점이었어요. 그전까지 게임 광고는 어린이 채널이나 아이들이 주로 TV를 보는 시간대에 나왔어요. 그런데 ‘드림캐스트’의 <쉔무>나 ‘플레이스테이션 2’의 <파이널 판타지 7> 광고가 영화처럼 만들어졌고 성인들을 타겟으로 하더라고요. 저는 이때부터 비디오 게임이라는 것이 주류의 성인들도 즐길만한 오락으로 등장했다고 보고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한국은 2010년대 들어서서 게임이 성인을 대상으로 포커싱하는 변화가 만들어졌는데, 북미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그런 변화가 있었군요. 당시에 20대를 타게팅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지금 북미 게임 시장은 중년을 타게팅할 수 있겠네요. 오영욱 박사: 저는 2000년에 청주에서 고등학생 시절을 보냈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리듬 게임이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엄청 인기를 끌었거든요. 나 이 나오면서 장판 같은 것을 은박지로 납땜해서 채보를 연습하고, 학교 컴퓨터에 연결해서 야자 시간에 놀고, 그랬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90년대에는 오락실하면 어둑어둑한 분위기가 있었는데, 이런 것들이 확 바뀐 것이 2000년대 초였던 것 같아요. 또 한가지 기억에 남는 경험은 밤새 오락실을 빌리는 문화가 있었다는 점이에요. 당시에 PC통신으로 만난 친구들이랑 같이 다니면서 <이니셜 D>, <태고의 달인> 같은 게임들을 했는데, ‘압구정 조이플라자’같은 곳에서 하루를 대여해서 밤새 대결을 했었어요. 몇만 원 내고 게임기를 빌려서 밤새 돌아가면서 게임했던 문화가 있었던 거죠. 게임하는 공간: 오락실, PC방, 그리고 이경혁 편집장: 확실히 2000년대 초반을 상징했던 게임 중에 리듬 게임이 있었지요. 90년대까지 오락실은 스틱과 버튼 위주의 아케이드 스타일이었다면, 여러 기기들이 만들어진 건데요. 그렇게 보면 2000년대부터는 오락실이 특정 연령이나 특정 성별의 공간이라기보단 누구나 손쉽게 올 수 있는 형태로 대중화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오영욱 박사: 그렇죠. 당시에 신촌을 지나가다 보면, 지금 독수리 다방 건물 1층을 다 리듬게임으로 해놓고 밖에서 볼 수 있는 구조였어요. 그러면 안에서 춤추는 사람들이 보이는 거예요. 그렇게 대중적 공간으로 문화가 변해갔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그러면 오락실이 변모해온 과정을 오늘날 돌아봤을 때, 일종의 대중화나 캐주얼화라고 볼 수도 있는 걸까요? 나보라 박사: 대중화라기보다는 양성화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대중화라고 한다면, 시장의 주류가 되었다는 느낌이 드는데, 사실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문화로 ‘격상’되었다기보다는 공간의 분위기와 이용방식이 바뀌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그렇네요. 사실 붐비기는 예전의 오락실이 더 붐볐거든요. 한편으로는 이러한 변화를 이야기할 때, 공간성의 변화를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요. 아까 오영욱 선생님이 PC 통신에서 만난 사람들과 게임하던 2000년대 초반을 말씀해주셨는데, 당시에는 온라인 문화의 확장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겠죠. 그러나 ‘오프라인에서 모여서 게임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도 구시대 문화가 되어버린 것이 2025년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나보라 박사: 말씀하신 것처럼, 예전에는 오락실이 약속 장소로의 공간이 가지는 의미가 있었어요. 아케이드 오락실을 역사적으로 보면, 원래 영화관 옆에 붙어있던 공간이었잖아요? 미국에서도 그랬고 우리나라에서도 그랬고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기능이 거의 없어진 것 같아요. 오영욱 박사: 일본의 오락실의 경우에는 지금도 여전히 오프라인 중심의 공간이거든요. 확실히 우리의 문화와 다르죠. 그 중심에는 카드 게임기가 있는데, 카드 게임기가 한국에 들어오지 못해서 완전히 다른 형태를 보이는 것 같아요. 재밌는 것은 아케이드 시장을 구축하는 것이 게임기의 순환이라는 점이에요. 일본에서 어떤 아케이드 게임이 유행하면 한 사이클이 돈 뒤에 한국으로 넘어가고, 한국에서 한 사이클이 돌면 동남아로 넘어가고 그런 글로벌 물류 체인 시스템이 아케이드 산업을 지탱하는 점이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바다이야기’ 사태도 있었고 법적인 환경이 제공되지 않아서 카드 게임이 넘어오질 않았어요. 디지털게임 연구 이경혁 편집장: 지금 이야기하신 부분이 한국의 게임 환경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테마일 것 같아요. 2005년에서 2006년 일어났던 바다이야기 사태는 한국 게임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기도 했는데요. 이 사태가 한국 게임 문화에 어떤 영향을 남겼을까요? 오영욱 박사: 산업적인 영역에서는 너무 많은 논의가 있을 것 같고요. 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드려보고 싶어요. 저는 당시에 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였고, 관련 연구를 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요. 바다이야기 사태가 터지면서 게임 연구가 확 줄어들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이경혁 편집장: 나보라 박사님은 당시에도 학계에 계셨는데, 실제로 어땠나요? 나보라 박사: 확실히 바다이야기의 영향이 없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전에는 인문 분야든 이공계든 게임 연구를 전반적으로 지원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이후에는 이공계나 산업쪽으로 지원이 쏠렸어요. 다만 바다이야기 사태가 직접적인 원인인가 라고 묻는다면 명확한 상관관계는 이야기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원래 정부의 연구 지원 풍토가 대체로 산업, 기술 등 실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성과를 선호하기 때문에 인문사회학적 게임 연구가 각광받긴 힘든 분위기였는데, 그런 상황에서 바다이야기 사태가 터진거죠. 이경혁 편집장: 말씀하신 것을 들으니, 인과관계를 딱 잘라서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긴 하네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이전에는 게임 인문 연구를 왜 장려하는 분위기가 있었을까요? 나보라 박사: 이 역시 인과로 이야기하기는 어려운데요.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가 가지는 특수성도 여러 영향 중에 하나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2000년대 초반에 우리나라가 전세계 게임 씬의 주목을 받았잖아요. 세계 최초로 게임 방송 채널이 만들어지고, PC방이 대중문화 공간으로 확산되고 그러니까 외국의 게임 기자나 저널리스트들이 와서 신기해했거든요. 그전까진 항상 서구권을 쫓아가던 입장에서, 정부나 기업을 설득할 때도 중요한 특이점이었던 거죠. 이경혁 편집장: 그런 지점도 중요한 영역이었겠군요. 그러면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지금은 인문학 계열의 게임 연구가 조금 나오고 있나요? 오영욱 박사: 옛날에 비하면 확실히 확 나아졌죠. 지원이나 환경이 좋아졌다고 이야기할 순 없지만, 일단 연구자들이 늘어났고, 관련 논의가 늘어나고 있어요. <제국의 게임> 나왔을 때가 중요한 분기점이었다고 생각을 하고요. 이후로 이경혁 편집장님 책이 나온 것처럼 유의미한 논의들이 나오고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종합해 보면 그런 흐름은 있네요. 2000년대 초반에 스타크래프트와 PC방을 필두로 소위 말하는 ‘게임 문화의 붐’이 있었고, 이를 따라서 연구나 비평이라는 흐름도 형성이 되어 2006, 7년까지 흐름이 이어졌다가 모종의 이유로 침작하는 시기를 거치고 2010년 후반부터 다시 논의가 나오고 있다. 나보라 선생님은 당시에도 연구하셨고 지금도 연구하시는 입장에서 게임 연구의 환경은 나아졌다고 볼 수 있을까요? 나보라 박사: 나아졌다고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때는 게임 연구에 대한 소스를 찾을 만한 게 마땅치 않았고, 박상우 선생님 등을 제외하면 나오는 연구라고는 다 영어 연구들인데 이를 접할 수 있는 창구도 많지 않았죠. 그런데 지금은 바로바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 연구자의 풀이 넓어진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나아졌다고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늘 느끼는 것은 결국 구심점의 문제인 것 같아요. 당시에는 박상우 선생님의 ‘게임문화연구회’라는 구심점이 있었고, 그다음엔 성균관대의 ‘게임 인문학’이나 중대의 ‘엘리스 온’, 인문학협동조합 등 구심점이 있었는데, 앞으로는 어떤 구심점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한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그러면 오늘날 어떤 게임 연구가 필요하다고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나보라 박사: 2000년대 초반의 게임 연구는 게임 자체, 그리고 게임 연구 자체의 정체성을 찾는 데 많은 방점이 찍혀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게임이 대중화되었고 여러 가지 매체와 뒤섞이게 되었죠. 그래서 게임만을 이해할 수 있는 이론을 찾아내는 것은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는 것 같아요. 오늘날과 비교하면 가장 큰 차이점은 게임이 더이상 젊지 않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기에 이제는 더 다면적인, 학제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게임 아카이빙 이경혁 편집장: 연구 이야기를 했는데, 이번엔 아카이빙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죠. 오영욱 박사님은 언제부터 아카이빙을 하셨나요? 오영욱 박사: 저는 2000년대 초에는 일종의 취미 생활로 작품을 모으다가, 2006년쯤부터 본격적으로 아카이빙을 하기 시작했어요. 이경혁 편집장: 아카이빙을 꾸준히 하신 분의 입장에서 2000년대 초반과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오영욱 박사: 일단 2000년대 초에는 게임이 아카이브의 대상으로 인식되지 않았어요. 2006년만 하더라도 <컴퓨터 학습>이나 <게임 월드> 같은 잡지들을 권당 몇천 원으로 팔았거든요. 극단적인 예시지만 제가 2008년에 강원도에서 게임 잡지 6박스를 5만 원에 받아왔어요. 사실 이런 흐름은 미국이랑 일본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런데 2010년대 후반부터 게임이 수집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죠. 2013년에 문을 연 넥슨의 ‘컴퓨터 박물관’ 같은 경우가 게임이 수집의 대상이 되기 딱 직전부터 수집품들을 받았던 형태였어요. 그런데 이후로 수집가들이 수집을 하고 재테크 목적이 들어가면서 체감상 2020년쯤부터는 돈 주고 살 수 없는 가격으로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아카이브를 하는 입장에서 옛날 자료를 모으는 건 거의 불가능한 시대가 된 것 같아요. 제 경우에는 원래 잡지나 게임의 내용을 알고 싶어서 샀었거든요. 그런데 가격이 오르고, 한정판이 나오면서 점점 이게 힘들어져요. 일단 실물 패키지라는 것도 이제는 한정판으로 나오는데, 이 게임을 하려면 기기도 사야 하고, 박물관 입장에서 ’직원이 한정판을 줄서서 사야 하나?라고 물으면 어려운 부분들이 있는 거죠. 온라인 미디어 때문에 애매한 영역도 크고요. 인프라와 플랫폼, 그리고 장르 이경혁 편집장: 물성의 변화도 두 시대를 놓고 본다면 너무나 큰 변화죠. 이제는 수집의 용도 외에는 물질 매체의 의미가 사라졌잖아요? 게다가 이런 변화는 단순히 물건을 소유할 수 없다는 문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서버’라는 형태에 게임 소프트웨어가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물성 때문에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기승전결도 사라졌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특히, 요즘 게임에서 엔딩이 없어졌죠. 어떻게 보면 오늘날을 ‘엔딩이 없어진 시대’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오영욱 박사: 이제는 모바일 게임이나 온라인 게임들은 결국 하나의 게임이라기보다, IP라고 봐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이경혁 편집장: 사실은 2000년대 초반에도 엔딩이 없는 온라인 게임들이 있었거든요. <바람의 나라>도 이미 당시에 서비스를 하고 있었고. 재밌는 것은 <스타크래프트>의 사례인데, 판매는 패키지로 했지만 서비스는 엔딩 없이 돌았잖아요? (웃음) 그 결과, 블리자드는 플레이 양에 비해서 돈을 못 벌었죠. 당시에는 ‘패키지를 사면 베틀넷은 평생 무료’ 이게 마케팅 콘셉이었잖아요. 오영욱 박사: 그 이상의 비즈니스 모델을 못 찾은 거죠. 당시에 돈 내고 베틀넷을 하라고 했으면 아무도 안 했을 테니까요. 그때는 그게 그나마 최선이었을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결제 수단 변화도 되게 크네요. 2010년대 스마트폰 대중화 이후에 ‘오픈 카드’가 가능해지면서, 스마트폰에 카드를 오픈해 놓고 클릭 한 번 하면 그냥 들어가는 이 방식이 2000년대 게임과 지금의 게임을 크게 나누는 부분이기도 한 것 같아요. 예전에는 지로가 있었거든요. 나보라 박사: 옛날에 온라인 게임을 하려면 지로로 보냈어야 했죠. 오영욱 박사: 한국에서 온라인 게임이 발전했던 거는 온라인에서 할 수 있는 결제 모듈, 그런 종류의 그런 온라인으로 쓸 수 있는 결제 모듈, ‘다날’ 이런 게 있어서 가능했죠. 미국에서도 2008년에야 ‘마이크로트랜잭션(소액 결제)’이 주목받는 분위기가 나오기 시작했으니까. 그때는 카드 자동결제도 없었고요. 이경혁 편집장: 신용카드의 보편화도 되게 중요한 변화네요. 2001년까지만 해도 신용카드가 그렇게 막 쉽게 발급되지 않는 시절이 있었어요. 오영욱 박사: 결제가 사실 중요한 부분이긴 한데 연구가 잘 안 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종류의 편의성들이 게임의 디자인이라든가 장르적인 부분에 미치는 영향이 분명히 있을 텐데, 논의가 안 된 거죠. 이경혁 편집장: 지금의 게임 장르 유행이 나오기 위해서는 당연히 인프라의 변화가 있는 거고, 이것처럼 게임 밖의 영역이 게임 내부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겠죠. 특히, 요즘같이 인앱 결제를 베이스로 스토리나 메카닉까지 영향이 가는 거면 당연히 결제 수단 연구가 필요해서 저도 결제 관련 연구들을 하고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변화 중에 하나가 요금 종량제와 요금제의 변화이기도 합니다. PC 통신 때만 해도 전화 요금이라는 거는 사용량 베이스로 갔었어요. 돌이켜 보면 지금처럼 인터넷 요금이 초기 전화 요금처럼 누진제로 갔으면 이 상황은 오지 않았겠죠. 오영욱 박사: 예전에는 데이터양으로 요금을 내거나, WAP(Wireless Application Protocol, 무선 어플리케이션 프로토콜) 같은 경우에는 뎁스마다, 명령 하나 당 돈을 냈어요. 이런 상황에서는 게임 개발도, 플레이도 힘들었을 거예요. 나보라 박사: 실제로 그땐 휴대폰에 인터넷 접속하는 버튼 잘못 누르면 막 끄고 그랬죠. (일동 웃음) 오영욱 박사: 진짜 이런 지점은 외부에서 들어와서 생긴 혁명적인 변화였던 것 같습니다. 아이폰 안 들어왔으면 게임계가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어요. 나보라 박사: 아이폰 같은 경우엔 앱 스토어도 게임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요. 게임 산업 이경혁 편집장: 한국의 게임 역사를 이야기하면 MMORPG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한편으로는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고, 많은 변화를 만들기도 했던 한국의 게임 산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예전에는 각광받던 벤처 기업으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대기업들이 되었잖아요? 그 변화 이면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섞여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저는 최근 드라마에 게임사가 배경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서 ‘예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장면’이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2000년대 초까진 게임을 한다거나, 게임 회사에 다니는 것이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영역으로 여겨졌는데, 이제는 양지화가 된 측면이 있어요. 나보라 박사: 양지화의 측면에서는 NC의 야구단 창설이 가지는 문화적 의미가 크긴 했지요. 대중문화에서 굉장히 아이코닉한 순간이었잖아요? 넥슨의 컴퓨터 박물관도 그렇고, 게임계의 위상이나 인식이 바뀐 순간들이 있어요. 오영욱 박사: 이어서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MMO RPG가 제한한 한국 게임 시장의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그동안은 한국 게임이 많이 수출되었고 중국은 <던전 앤 파이터>, 대만은 <라그나로크 온라인> 등 국민 게임이 될 정도로 영향력을 보였는데, 지금은 한계에 부딪힌 느낌이 있어요.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야 하는데, 인도에서 <배틀그라운드>가 성공한 것처럼 다른 가능성을 여는 작업들이 산업적으로나, 경영적으로나 많이 시도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로스트아크> 정도의 새로운 플레이어가 나오긴 했지만,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 어떤 전략과 기획을 가져가야 할지 더 고민이 필요해보여요. 이경혁 편집장: 그런 지점에 있어서는 MMORPG라는 것도 2000년대 초반의 장르는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그러면 지금의 메이저 장르는 뭐가 될까요? 나보라 박사: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네요. 이경혁 편집장: 어떻게 보면, ‘메이저 장르’라는 개념이 옛날만큼 중요하지 않다고 볼 수 있겠네요. 장르 자체가 다변화됐고 수용자층도 확실히 넓은 저변을 갖게 되면서, 한편으로는 시장에 독이고 한편으로는 시장의 약인 그런 포스트모던한 상황으로 변한 것 같기도 하네요. 이 역시 중요한 변화네요. 2000년대에는 올해의 GOTY를 뽑기 쉬웠는데, 이제는 점점 어려워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그리고, 게이머 이경혁 편집장: 마지막으로 이 질문은 꼭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게이머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2000년대 게이머와 2025년의 게이머. 오영욱 박사: 사실 게이머 자체는 그때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고 생각을 해요. 다만, 분화가 생기고 나눠서 싸운다고 할까요? 예를 들어 그런 이야기 있잖아요.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은 일반인이 하기 어려운 게임이니, 일반인한테 추천하지 말아라” 근데 여기서 누가 일반인이냐, 게이머냐고 싸우는 거죠. 저희 어머니는 예전에도 쓰리매치류 게임을 하셨고 지금도 하고 계신데, 이런 분들이 게임을 안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예전에는 지금처럼 갈라서 싸우는 문화는 없었긴 했어요. 나보라 박사: 문화연구 쪽에서는 전형적인 이야기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게임이 하위 문화였는데 지금은 점점 아니게 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전엔 게이머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균질적인 속성을 공유하고 서브 컬처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했는데, 지금 시점에는 이런 게이머들도 존재하지만, 이들 역시 여러 게이머들 중에 하나일 뿐 다양한 게이머들이 나오고 있다. 게임과 관련된 다양한 정체성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죠. 이경혁 편집장: 사실 오늘날에 텔레비전 보는 사람한테 ‘텔레비저너’라고 부르진 않습니다. 그러니까 게이머가 게이머일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고, 지금 게임을 하는 사람을 게이머로 부르는 게 맞는지에 대한 의심이 들어요. 게이머라는 단어의 사회적 용례는 소멸해 가는 게 아닌가? 옛날에는 ‘게임하는 사람’이 게이머였는데, 지금은 ‘“제가 게이머입니다”하는 사람’이 게이머인 거예요. 왜냐하면 게임하는 행위가 너무나 일반화됐기 때문이죠. 나보라 박사: 말씀하시는 부분을 들으며 그런 생각이 드네요. 최근 말씀하신 그 하드코어 게이머들이 업계에서 목소리를 내는 가장 큰 근거가 ‘본인은 돈을 많이 쓰는 소비자다’는 거잖아요. 따라서 ‘소비자인 내가 이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할 권리가 있고 업계는 들어야만 한다’고 주장을 하는데, 이게 20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만들어진 결과라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어요. 본인이 정말 게임을 사랑하고 매니악하게 파고 든다면, 게임 자체에 대해서 더 깊이 있는 논의를 만들거나 ‘게임에 대한 감수성’ 같은 부분으로 문화적인 권위를 내세웠으면 좋았을텐데, 문화적인 소양이나 매체에 대한 이해로 하드코어함이 성장했으면 좋았을 텐데, 여전히 소비자로의 권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쉬운 거죠. 오영욱 박사: 한국 사회 전반적으로 소비자 주의가 팽배하다는 문제가 있죠. 트럭 집회도 그런 지점에서 볼 수 있고요. 이경혁 편집장: 그런 문제점들을 대면하면서, 확실히 오늘날에는 게임하는 사람을 게이머라고 부르는 것이 무용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마치 밥먹는 사람을 ‘밥먹러’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게이밍이 일반 행위가 되면서, ‘행위하는 사람’으로의 의미는 소멸해간 것 같습니다. 긴 시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Tags: 좌담회, 게임역사, 게임연구, 아카이빙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 하지만, 게임 요리에서는 아무 맛이 나지 않는걸
그러나, 다른 여느 일상의 메커니즘처럼 요리를 게임에 구현할 때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핵심 가치인 맛이라는 스테이터스를 플레이어들에게 현실과 동일한 방식으로 전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결국 게임에서 이러한 행위, 또는 메커니즘은 수치화를 기반으로 재창조될 수 밖에 없고, 요리 또한 그렇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 수치화가 대략 가늠이라도 잡히는 다른 요소에 비해 맛이라는 가치를 파라미터로 표현할 수 있을까? < Back 하지만, 게임 요리에서는 아무 맛이 나지 않는걸 30 GG Vol. 26. 6. 10. 게임의 수많은 게임 플레이와 메커니즘은 현실의 그것을 모방하는 식으로 구현되곤 한다. 자연 법칙, 행정 절차, 인문학적 상식 등등 수많은 행위 또는 현상의 시뮬레이팅은 게임의 기본이다. 게임을 하다보면 느끼는 또 하나의 재미는 이렇게 모사된 현실의 현상이나 행위들이 어떻게 비슷하고 어떻게 달라지는지 찾아보는 일이다. 그러한 대표적인, 게임 속에서 매우 자주 찾아볼 수 있지만 구현의 딜레마가 느껴지는 메커니즘 중 하나는 바로 요리다. 의식주 중의 하나로 우리 삶에 빼놓을 수 없는 요소지만 게임에서는 항상 구현의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요리란 레시피라는 공식을 따라가는 행위이다. 아무리 간단한 음식도 조리법이 있기 마련. 때문에 과정을 실수 없이 해내야 하는 퍼즐 요소로서 수많은 게임에서 활용되었다. 문제는 요리를 하나의 게임 플레이로 구현할 때, 성공의 이면에는 실패가 있다는 점이고, 요리를 하고 나면 발생하는 음식이라는 결과물이 있다는 점이다. 모든 게임플레이에서, 실패의 위험이 있기에 성공의 가치가 생겨나는 법이다. 그런데 요리에서의 실패는 조금 의아한 부분이 있다. 일단 ‘실패한 요리’ 란 무엇일까? 현실에서는 어떤 요리를 실패한다고 하던가? 간단히 생각했을 때, 관건은 역시 ‘맛’ 이다. 어쨌거나 소화 가능한 유기물이라면 모두 가능한 영양분 섭취라는 면을 제외하고, 요리, 음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맛이다. 특히 요리라는 과정을 볼 때, 우리가 어떠한 레시피라는 공식을 따르는 이유 자체는 적절한 조리를 거쳐 가장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기 위함이기에 ‘레시피를 따라 조리하는’ 요리라는 과정의 성공 여부는 결국 맛에 좌우되게 된다. 그러나, 다른 여느 일상의 메커니즘처럼 요리를 게임에 구현할 때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핵심 가치인 맛이라는 스테이터스를 플레이어들에게 현실과 동일한 방식으로 전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결국 게임에서 이러한 행위, 또는 메커니즘은 수치화를 기반으로 재창조될 수 밖에 없고, 요리 또한 그렇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 수치화가 대략 가늠이라도 잡히는 다른 요소에 비해 맛이라는 가치를 파라미터로 표현할 수 있을까? 결국 현실에서 실패한 요리와 게임의 실패한 요리는, 이러한 감각 전달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요리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건 맛이 거의 전부라 해도 거짓이 아닐진대, 게임에서는 그 맛을 전달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맛있음’ 을 기반으로 성공을 재정의하는 작업이 먼저 이루어진다. ‘맛있는 요리’ 또는 ‘맛있는 음식’ 이란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 ‘맛있음’ 이란 구체적으로 어떠한 효과로 정의될 수 있는가? 고민 끝에, 수많은 게임들은 이러한 ‘맛있음’ 의 효과를 일종의 섭취한 플레이어의 상승효과로서 받아들였다. 맛있는 음식은 기본적으로 섭취한 인간의 행복을 고양시킨다. 부차적으로 만약 그 음식의 재료들이나 조리 방법이 특히 건강할 경우, 육체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있음도 자명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게임 속 음식, 요리들은 섭취자에게 버프를 제공하고, 더 귀한 식재료를 쓰고, 더 복잡한 조리 과정을 거치고, 더 맛있는 형태일 때(통솔적인 의미에서) 더 좋은 효과를 부여하게 되었다. 그런데 또다른 문제는 이러한 스테이터스 강화 요소가 모든 게임에 항상 존재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결국 게임에서 ‘맛있는 요리’ 라는 결과물을 판단하려면, 그 게임에서 ‘맛없는 요리’ 또는 ‘실패한 요리’ 는 어떠한 형태를 하고 있는지 먼저 살펴봐야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게임 속 ‘실패한 요리’ 의 유형을 세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각각 이렇다. 1. 아예 음식이 만들어지지 않음. 2. 부정적인 효과가 달리거나 긍정적 효과가 적은 별도의 ‘실패한 음식’ 이 생성됨. 3. 실패한 요리=게임 오버 또는 임무 실패. 첫번째, 요리에 실패할 경우 아예 음식이 만들어지지 않는 경우는 가깝게는 ‘마비노기 모바일’ 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게임의 경우 요리는 확률 생성에 기반하여, 10% 단위로 끊긴 성공 확률에 따라 제작대에 재료를 투입하고 확률적으로 음식이 만들어진다. 매우 단순한 방식이다. 두번째, 요리에 성능이 다른 실패한 요리가 별도로 생성되는 경우 또한 매우 많은 게임이 채택하고 있는 방식이다. 대표적으로 ‘몬스터 헌터’ 시리즈를 보면, 전통적으로 들어가 있는 고기를 굽는 액션은 기본적으로 타이밍에 맞춰 버튼을 눌러야 하는 간단한 퍼즐의 형태다. 고기가 구워지는 도중 고기는 3단계에 걸쳐 모습이 변하고, 구워지는 고기가 적절하게 익은 모습일 때 버튼을 눌러 완료하는 형태다. 실패한다면 덜익은 고기나 탄 고기가 생성되고, 이들은 그 긍정적인 효과(스태미너 증가)가 적게 설정되어 있다. 세번째, 요리의 성공/실패 여부가 게임의 성공/실패 여부 자체를 판가름 하는 기준인 게임들도 종종 있다. 대표적으로는 아예 요리를 협심해서 만드는게 목표인 ‘오버쿡드!’ 가 있으며, ‘커피톡’ 시리즈 역시 넓게는 여기에 포함할 수 있다. ‘커피톡’ 에서는 어떤 재료를 넣더라도 음료는 만들어지지만, 누군가에게 무언가 제공해야 하는 정답이 정해져 있고, 이들이 두루뭉술하게 주문하는 재료의 조합을 가지고 하나하나 맞추어 완성해 제공해야 한다. 즉, 여기서는 요리 자체의 완성이 아니라 ‘먹는 사람의 기호를 맞추는 것’ 까지가 성공적인 요리라는 의미이며, 이를 맞추는 건 게임의 엔딩과 업적 달성에 영향을 주니 게임의 성취도 자체로 음식의 성공을 판가름하는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여기서 두번째 케이스들이다. 어쨌거나 게임의 아이템 데이터 베이스를 쓸모가 그저 ‘실패 판정’ 인 아이템이 차지하고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사하중이나 다름 없다. 그 뿐 아니라 여러가지 이유로 이 ‘실패한 요리’ 가 쓰임새를 갖게 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이렇게 만들어지는 ‘실패한 요리’ 가 특별한, 또는 유용한 쓰임새를 가진 게임들을 살펴보면 ‘룬 팩토리’ 시리즈와 대중적인 게임 중에서는 ‘원신’ 이 있다. (이미지 출처 : 룬 팩토리 4 정보봇 @RF4_KR_info) ‘룬 팩토리’ 시리즈의 실패한 요리는 레시피에서 어긋난 요리를 하게 되면 발생한다. 이 요리들은 적에게 디버프를 거는 용도로 쓰일 수 있고, 또 일부 괴상한 취향을 가진 NPC 에게 주어 호감도를 올리는 용도로 쓰인다. ‘원신’ 에서도 실패한 요리는 비슷한 쓰임이 있다. 이상한 요리를 만들어 접대하거나, 호감도를 올리기 위해 선물하기도 한다. 또 업적 중에도 이 이상한 요리를 만들어내는게 있다. 또한, ‘몬스터 헌터’ 에서도 일부 아이템의 재료로서 잘못 구워진 고기를 요구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요리를 일종의 스킬 체크로 활용하는 방식과 음식이라는 아이템을 얻기 위한 허들로서 활용하는 방식 두가지에 따라 게임 속 ‘요리’ 와 ‘음식’ 의 위상이 달라진다. ‘오버쿡드!’ 와 ‘커피톡’ 은 요리라는 스킬 체크를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활용하는 게임들이다. ‘몬스터 헌터’ 시리즈나 ‘룬 팩토리’ 시리즈, ‘마비노기 모바일’ 등은 음식이라는 아이템을 얻기 위한 과정이고, 이에 실패할 경우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물을 얻게 되는 식이다. 그리고 이쯤 오면, 이들 요리를 판단하는데 ‘맛’ 이 대체 무슨 상관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서 이야기했듯, 근본적으로 이러한 괴리는 게임 속 ‘요리’ 라는 개념이 플레이어에게 직접적으로 그 맛을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현실의 ‘실패한 요리’ 와 개념적으로나 표현적으로나 차이가 생기는데서 발생한다. 현실의 요리는 ‘맛이 없다’ 고 하면 끝이지만, 그 맛이라는게 게임 속에서는 전달할 수 없으니 그 ‘실패’ 를 여러 개념으로 대체하다보니 생기는 일이다. 비슷한 느낌은 현실에서도 있다. 맛있는 요리를 구분하는데 있어 절대적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먹기엔 맛이 없는데, 다른 사람이 먹으면 괜찮고, 또는 만족한 맛은 아닌데 가격 생각하면 괜찮은 것 같고, 또 보기에는 나쁘지 않고... 반대로 나쁘지 않지만 이 가격에 이 수준이면 안될 것 같고. 현실에서 ‘맛있는 요리’ 를 구분하는데에 ‘맛’ 이 지배적이라는데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지만, 그 ‘맛’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기대치, 취향 자체가 모두 다르니 오히려 성공과 실패를 가름하기 어렵다. 결국 게임에서의 요리의 성공과 실패는 현실과는 달리 명확한 기준이 필요했고, 둘은 극적으로 대비되어야만 했다. 더구나 이러한 요리, 그리고 음식이라는 아이템이 게임마다 가지는 플레이에서의 비중이 다르기 때문에 ‘실패한 요리’ 라는 개념은 여기저기 분화하게 되었고, 그 ‘실패한 요리’ 의 대척으로서 ‘성공한 요리’ 또한 변화해 왔다보니 현실의 요리와 게임 상의 요리 상의 괴리가 좁혀지기는 커녕 벌어지기만 했다. 즉 게임 상에서 현실의 요리를 최대한 모사하려던 시도가 결국 또 거리감을 오히려 만드는 셈. 물론 그렇다고 해서 게임 속 요리의 가치 기준이 현실과 아예 상관이 없어져도 되는 건 아니다. 결국 게임 속에 등장하는 요리와 레시피는 현실의 것을 따오거나 그에 기반할 수 밖에 없고, 과거 유행했던 플래시 게임 ‘고향만두’ 처럼 엉터리 스킬체크로 가득하다면 게임이 보여주는 요리에 전혀 공감할 수 없게 된다. 요는 플레이어가 직접 게임 상에서 맛을 보지는 못하지만, 레시피와 외형, 그리고 조리 과정 등을 통해 그 맛을 유추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맛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그 맛으로 연결되는 논리적 연관성(조리법, 외형, 재료의 종류 등)을 설득력 있게 내어야 그나마 게임 속 요리와 현실 요리의 간극을 좁히고 맛을 간접적으로 연상할 수 있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종 게임 내에 등장하는 요리/음식이 특별하게 기억에 남은 경우는 그 맛을 어떻게 표현했느냐보다도, 맛을 제외한 다른 음식의 특성을 이용하여 요리가 가지는 의미를 제대로 전달했을 때였다. 애초에 맛으로 승부할 수 없다면, 감성으로 승부하면 된다. 그래서 게임 플레이에서 어떤 확실한 가치나 대단한 목적이 아닌, 그저 평범한 행위로서 하는 요리가 더 깊게 기억에 남고 의미가 있는 경우도 있다. ‘천수의 사쿠나 히메’ 에서 농사를 하고 밥을 짓는건 그다지 특출난 게임 플레이도 아니고 대단한 요리를 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 자체로 값지게 쌀을 수확해 밥을 지어 동료들과 나눠먹는 기억이 너무나 특별하게 남았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한 ‘커피톡’ 시리즈에서도 어떤 음료를 탄다고 해서 대단한 효과가 돌아오는건 아니지만, 마시고 난 캐릭터가 “마음에 들어요.” 라고 하는 말 하나를 듣기 위해서 레시피를 검토하며 몇 번이고 재시도를 하곤 했다. 정말 일상적인 요소이지만 요리가 가져다주는 만족감은 보편적이면서도 특별하기 때문이고, 요리란 어떤 과정 속에서 플레이어의 행동과 몰입감에 영향을 크게 미친다. 예를 들어 ‘몬스터 헌터’ 시리즈에서의 요리와 음식은 어디까지나 주된 콘텐츠가 아닌 사냥을 준비하는 과정의 일부이고 플레이어의 준비 상태를 점검하는 기능이기도 하다. 그만큼 앞서 소개한 게임들 중 게임 내에서 작거나 크거나 요리가 구현되었을 때 좋은 평가를 받는 경우는 메커니즘의 논리나 구현의 적절함 만큼이나 ‘요리’ 라는 행위가 들어갈 당위성이 크게 영향을 미쳐왔다. 요리는 게임 속 일상성을 유지하고 플레이어의 몰입을 끌어들이는 요소이고, 때론 게임 내 다른 캐릭터와의 유대를 상징하는 물건이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결국 게임이나 현실이나 요리와 음식의 쓰임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저 맛을 느낄 수 있냐 없냐이고, 이런 면에서는 우리가 직접 섭취하는 음식이 아니라 브라운관을 통해서 보는 간접 경험으로서의 요리, 음식과 맥락이 맞닿아 있는 것 같다. 핵심 감각을 배제한 상태에서 어떠한 물질의 특성을 표현하는 건 언뜻 불가능해보이지만, 때론 보이지 않아도 아름다움을 알 수 있듯이 훌륭한 요리, 맛있는 음식의 가치는 다른 방식으로라도 전달되기 마련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이명규 게임 기자(2014~), 글쓴이(2006~), 게이머(1996~)
- 독점 게임의 새 지형도: 많이 목마른 소니, 아직 배고픈 MS
2D 횡스크롤 플랫폼 게임의 역사에 기념비적인 족적을 남긴 '록맨' 시리즈. 보스의 무기를 빼앗아 쓴다는 기믹과 대단히 어려운 난이도, 그리고 귀엽고 다부진 주인공 록맨으로 출시와 함께 게임 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캡콤은 1987년부터 30년 넘는 세월 동안 이 프랜차이즈를 이끌고 있다. < Back 독점 게임의 새 지형도: 많이 목마른 소니, 아직 배고픈 MS 09 GG Vol. 22. 12. 10. 독점? 그땐 그랬지… 2D 횡스크롤 플랫폼 게임의 역사에 기념비적인 족적을 남긴 '록맨' 시리즈. 보스의 무기를 빼앗아 쓴다는 기믹과 대단히 어려운 난이도, 그리고 귀엽고 다부진 주인공 록맨으로 출시와 함께 게임 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캡콤은 1987년부터 30년 넘는 세월 동안 이 프랜차이즈를 이끌고 있다. 〈록맨〉(1987)은 닌텐도 패미컴(ファミコン)의 독점 게임이었다. 클래식 록맨의 정식 넘버링 타이틀 기준, 록맨은 패미컴으로 6편, 슈퍼 패미컴으로 1편(록맨 7, 1995), 플레이스테이션(PS)으로 1편이 출시됐다. 2년 터울을 두고 출시한 〈록맨 2〉(1988)와 〈록맨 3〉(1990)은 나란히 100만 장 넘는 판매고를 넘기며 '캡콤 플래티넘 타이틀'에 올랐다 . 1987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록맨은 패미컴의 킬러 타이틀 중 하나였다. 클래식 록맨 시리즈가 PS에 이식된 것은 1999년의 일이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들 게임을 해볼 방법은 패미컴을 구하는 길밖에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가디언 히어로즈〉(1996)나 〈그란디아〉(1997)를 하려면 세가 새턴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이런 게임들이 시간에 흘러 타 플랫폼에도 이식되거나 리메이크되면서 (특정 기기를 소유하지 않은) 소비자는 아쉬움을 덜고, 공급자는 (이미 재미를 본) 타이틀의 재발매를 통한 경제적 효과를 보는 일이 예사였다. 그리고 어느 한편에서는 '늘 그렇듯이' 답을 찾으려는 몇몇 긱(Geek)들은 에뮬(Emulator)이라는 괴물을 창조하는 등의 방식으로 콘솔 없이 고전게임을 구동했다. 아무튼 오늘날까지 일본 주요 게임사들은 기간 한정 독점 발매 전략을 잘 쓰고 있다. 앞서 록맨 시리즈의 예를 든 캡콤이 대표적이다. 〈몬스터 헌터: 월드〉(2018)는 PS4, XBO 독점작으로 1월 발매되어 큰 인기를 누렸다. 캡콤은 콘솔 독점 발매 7개월 만에 스팀(PC)에서 게임 판매를 시작했고, 그 해 스팀에서 1,000만 장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스팀에서는 동시접속자가 투명하게 공개되는데, 출시 첫날 〈몬스터 헌터: 월드〉에 접속한 사람들은 24만 명을 넘겼다. 10년에서 7개월로 짧아진 독점 기간은 오늘날 게임 생태계의 시계가 얼마나 빠르게 흘러가는지를, 그리고 좋은 게임에 대한 대중적 요구가 얼마나 강력한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판매해야 할 물건이 소프트웨어만 있는 것이 아닌 회사들은 계산법이 다르다. 오늘날에도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2017)이나 〈모여봐요! 동물의 숲〉(2020)을 플레이하려면 필수적으로 닌텐도 스위치(NS)를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닌텐도는 서드파티의 게임이 자사 생태계에 입점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자신들의 킬러 타이틀이 다른 게임기에서 실행되는 부분에는 극도로 보수적이다. 〈포켓몬스터 소드·실드〉(2019), 〈파이어 엠블렘 풍화설월〉(2019)처럼 닌텐도가 유통하는 게임들도 좀처럼 스위치 바깥을 나가지 않는다. 오늘날 NS 바깥의 닌텐도 게임은 모바일게임 〈슈퍼 마리오 런〉(2016)이나 〈피크민 블룸〉(2021)처럼 소수 사례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NS는 5년 만에 1억 대가 팔렸다. 오늘의 주인공 소니는 어떨까?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PS에도 강력한 독점작 파이프라인이 작동한다. 최근 PS 독점으로 나온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2022)가 대표적이다. 전작 〈갓 오브 워〉(2018)의 PS4 독점이 풀린 것은 최초 발매로부터 약 4년이 지난 2022년이다. 〈호라이즌 제로 던〉(2017)이 PC로 간 시점은 3년이 지난 2020년 8월이다. 리메이크작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1〉(2022)에서도, 지난 10월 PC 버전으로 발매된 ‘언차티드’ 합본판에서도 소니가 여타 게임사보다는 긴 호흡의 기간 한정 독점을 가져간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최근 소니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베데스다가 포함된 제니맥스를 인수한 데 이어 액티비전블리자드(AB)까지 가져가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니는 MS의 인수가 성사되면 〈스타필드〉(2023)는 물론 북미 지역 현세대 최고 인기 게임 ‘콜 오브 듀티’를 PS에서 서비스하지 못하게 될까 우려하고 있다. MS Xbox의 필 스펜서는 "콘솔 독점권은 점점 더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시에 MS는 ‘콜 오브 듀티’에 대한 소니의 권리를 계속 보장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독점 게임과 시장 독과점 사이 MS가 벌이고 있는 공격적인 인수전에 대해서는 이미 좋은 자료가 많이 나와 있다. 이 글에서는 짧게 짚고 넘어가자. 요약하자면, MS는 우리 돈으로 90조 원이 넘는 금액을 100% 현금으로 지불하면서 AB를 사려 한다. 그러나 MS는 이미 게임 시장에 지배자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 규제 기관들은 이 딜을 검토해야만 한다. 현재 약 30여 개의 국가 규제당국이 MS의 AB 승인 건을 검토 중이다. 22년 9월, 영국 경쟁시장청(CMA)측은 시장 경쟁 하락의 이유로 인수를 일차 기각했으며,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도 11월 초 집중 조사를 개시했다. 미화 687억 달러가 오가는 역대급 인수합병을 반대하는 선봉에는 소니가 있다. 지난 8월 브라질 경제보호행정위원회(CADE)에 "MS의 인수는 독점 행위", "'콜 오브 듀티'는 유저 커뮤니티의 충성도가 높기 때문에 비슷한 예산으로 비슷한 작품을 만들어도 경쟁이 불가하다"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보냈다. 또 지난 11월, 영국 CMA는 소니와 MS가 제출한 서한 일부를 공개했다. 이때 소니는 "인수가 완료되면 Xbox는 콜 오브 듀티, 헤일로, 기어즈 오브 워, 둠, 오버워치 등 베스트셀러 FPS를 모두 살 수 있는 상점이 되면서 경쟁의 압박이 줄어들게 될 것"이라며 강력한 우려를 표했다. MS는 "PS의 월 사용자는 Xbox의 두 배에 달한다. 약 6천만 명 정도 더 많다", "소니는 MS보다 많은 독점 게임을 가지고 있다", "많은 콘솔 게이머가 ‘콜 오브 듀티’를 플레이하지 않는다"라며 CMA에 방어 논리를 전개했다. 명실상부 ‘콜 오브 듀티’는 서양, 특히 북미 시장에서 파괴적인 프랜차이즈다.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II〉(2022)는 지난 10월 28일 출시 이후 전 세계 매출 8억 달러(약 1조 1천 368억 원)를 벌었다. 액티비전은 보도자료를 내고 “영화 〈탑건: 매버릭〉과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의 박스오피스 오프닝 성적을 합친 것보다 높은 수치”라고 자찬했다. 영화를 ‘콜 오브 듀티’ 흥행 비교 대상으로 사용하기는 액티비전이 자주 쓰는 방식인데, 지난 2019년에도 액티비전은 "'콜 오브 듀티' 프랜차이즈의 전체 매출은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 시리즈 전체보다 많고 영화 '스타워즈'의 2배나 된다"라고 이야기한 적 있다. MS의 독점작이었던 ‘헤일로’, ‘기어즈’, ‘포르자 호라이즌’은 상업적으로 소니에게 절실한 타이틀이 아니었다.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SIE)이 거느리는 강력한 개발사군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흥행 보증 수표 ‘콜 오브 듀티’는 이야기가 다른 듯하다. 소니는 이 프랜차이즈를 계속해서 PS 생태계에 남겨둘 필요가 있다. 이번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II〉에서도 재차 확인되듯, '콜 오브 듀티'의 싱글플레이 분량은 점점 줄고 있다. 일각에서는 "멀티를 위한 튜토리얼로 전락했다"라는 비판이 나오지만, 게임의 멀티플레이 모드는 상당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현재 '콜 오브 듀티' 멀티플레이의 핵심 BM은 스킨인데, 앞으로 ‘콜 오브 듀티’가 PS에서 빠지면 소니는 인 게임 결제 수수료 30%를 잃게 된다. 더구나 MS는 토드 하워드의 신작 〈스타필드〉 출시 플랫폼에 PS를 제외했다. 많이 목마른 소니, 아직 배고픈 MS MS의 AB 인수에 소니는 적잖은 부담감을 느끼고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최근 소니의 게임 분야 실적도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다. 지난 2분기 소니의 게임 분야 영업이익은 421억 엔(약 4,051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9.1% 감소했다. 소니의 실적을 이끈 쪽은 카메라, 영상 장비, 반도체 분야와 음악사업이었다. 그래서 소니는 목이 많이 마르다. 오랜 기간 독점 게임을 서비스하며 성과를 냈던 소니가 이제는 MS 독점 게임에 대응해야 하는 반대 입장에 서게 됐다. 우려를 불식하려는 듯 MS는 소니에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10년 계약 연장을 제안했다. 소니와 액티비전 사이에 맺어진 이전 계약은 2024년에 만료된다. MS에 급한 사안은 세계 규제기관의 승인이므로, 자신들이 시장 독과점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낼 필요가 있다. 애플과 에픽게임즈가 서로에게 소장을 날리며 인앱결제 수수료를 놓고 법률 다툼을 하는 것과는 다르게 MS와 소니는 규제기관에 보내는 ‘입장문’과 투자로 상대적으로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소니의 투자를 보면 독점 게임 철학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소니는 한때 MS 산하에 있던 ‘데스티니’ 시리즈의 번지를 인수했고, 지난 31일에는 〈엘든 링〉(2022)의 개발사 프롬 소프트웨어의 지분 14.09%를 확보했다. MS는 아직 배가 많이 고프다. 이미 윈도우라는 설명이 필요 없는 OS를 보유하고 있고, Xbox 기기를 판매 중이며, 월 구독 모델인 Xbox 게임패스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 중이다. 게이머에게 확실히 그 존재를 각인시킨 게임패스는 독점 게임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스타필드〉나 〈엘더 스크롤 6〉가 게임패스에 입점한다면, 자사 콘솔과 PC를 아우르는 독점 게임 모델이 출현하게 된다. MS는 게임패스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서라면 일부 콘솔, DL 매출을 포기하고 게임패스에 게임을 포함할 수 있다. 캡콤의 〈몬스터 헌터: 월드〉 사례처럼 짧은 독점 기간을 가져갈 가능성도 있다. 소비자는 더이상 독점 게임을 해보기 위해 콘솔을 구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을 피할 수 있다. 국제적인 반도체 수급난이 계속되거나, Xbox 하드웨어 보급이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판단된다면, MS는 게임패스에 힘을 더 실어줄 것이다. 콘솔 사용이 주는 고유한 재미가 변함이 없다면, MS의 ‘하드웨어 + 게임패스’ 투 트랙 전략으로 일어날 자기잠식효과도 치명적인 수준으로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필 스펜서는 ‘클라우드 게임 등으로 콘솔 시장이 위축되지 않겠느냐’라는 물음에 "모바일과 태블릿 등 일부 주요 기기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지만, 가정용 콘솔이 게임을 경험할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이야기한 적 있다. 최근 필 스펜서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꺼냈다. 그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콘솔 독점 게임은 갈수록 보기 힘들어질 것"이라며 "유저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사용 기기에 상관없이 친구들을 만나 플레이하도록 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이 발언 이후, 〈스타필드〉의 PS 출시가 배제되었기에 일각에서는 기업의 언행 불일치를 지적했다. 필자는 싱글플레이가 중요한 게임은 (기간 한정) 독점으로 가져가고, 멀티플레이가 중요한 게임은 여러 플랫폼에 열어놓겠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MS의 AB 인수가 성사되면, MS는 다음 사냥감을 찾아 나설 것으로 보인다. 게임 애널리스트 다니엘 아흐메드는 "게임패스가 이제 Xbox 생태계의 중심에 서면서 MS가 서비스 가치를 높이고, 새로운 유저 유입으로 이어지는 독점 콘텐츠와 IP에 투자하는 게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이에 지지 않으려 소니는 열정적으로 파트너를 찾고 있다. 바로 3주 전 흥미로운 보도가 나왔다. 바로 소니가 한국의 엔씨소프트와 손을 잡고 〈호라이즌 제로 던〉 기반 MMORPG를 개발 중이라는 소식. 엔씨소프트는 "현재 개발 중인 미공개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는 확인이 어렵다"라는 입장이다. 지난 11일, 엔씨소프트는 컨퍼런스콜에서 "아주 훌륭한 글로벌 파트너와 저희가 협력하는 내용이 많이 진행됐다. 회사 이름 공개를 할 순 없으나 곧 사업 쪽에서 발표드릴 것"이라고 말한 적 있는데, 이 '아주 훌륭한 파트너'는 소니일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콘솔 삼국지’에서 닌텐도는 독야청청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 닌텐도의 독점 게임 정책은 전통적이면서 일관된 면이 있다. 게이머에게 닌텐도의 기조는 이미 ‘당연한 조건’처럼 인식되기 때문에, 닌텐도의 독점 정책을 힐난하는 소비자는 드문 듯하다. 그렇게 〈포켓몬 스칼렛·바이올렛〉(2022)은 출시 3일 만에 천만 장을 팔았고, 〈스플래툰 3〉(2022)도 출시 사흘 만에 일본에서만 345만 장 판매됐다. 그러나 하드웨어 판매 실적이 부진한 탓에 닌텐도의 연 매출은 소폭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도 닌텐도의 소프트파워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듯하다. 독점 게임에 새 지형도가 펼쳐져도 닌텐도 월드는 굳건할 것만 같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김재석 8년 동안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서브컬처 스타트업에서 대외협력을 맡고 있다.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