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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ORPG 레이드와 확률에 대응하는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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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4. 4. 10.

불확실성, 확률, 운, 그리고 게임

     

게임은 ‘불확실성’의 매체다. 보통 게임에서 불확실성은 두 차원으로 작동하는데, 하나가 게임의 결과와 관련된다면, 다른 하나는 게임 시스템에 의해 제공되는 특정 기회의 작동과 관련된다. 고도의 플레이 스킬을 요구하는 게임이든 운 중심으로 플레이되는 게임이든, 플레이어가 그에 참여해 플레이한 결과가 어떤 것일지는, 실제 플레이를 끝내기 전까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 또, 게임하다 얻게 되는 기회는 다양한 선택지의 밭에서 고르거나 골라지게끔 되어 있다. 이렇듯 게임의 불확실성은 다양한 선택과 그에 따른 다양한 결과, 그리고 기회와 무작위성 등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불확실성을 갖기에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흥미와 긴장감을 제공한다. 게임이 시작할 때 승리자를 미리부터 알 수는 없다. 결과를 알고 보는 이야기가 독자의 흥미를 얻을 리 만무하다. 결과가 정해져 있지 않으므로 궁금하고 그 과정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불확실성이 전혀 없는, 순수하게 확실성만 있는 게임은 있을 수 없다. 흥미와 긴장감이 존재하지 않는 게임은 재미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순전히 불확실성만 지닌 게임도 거의 없다. 플레이어가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게임들은 불확실성의 조합을 어느 정도 갖는 형태를 띤다.

     

불확실성을 수치화한 것, 즉 일어날 수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하나의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을 수로 나타낸 것이 ‘확률’이다. 확률은 불확실성이라는 애매모호한 것을 우리가 다룰 수 있는 구체적인 것으로 만들어주는 체계적인 방법이며, 여러 불확실한 것들 사이에 어떤 것이 다른 것(들)보다 더 일어날 가능성이 높거나 낮은지를 비교 가능하게 만든다. 게임에서 확률은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알려진 위험값 내 미지수를 감소시키는 데 기여한다. 물론 확률을 알고 있다 해도, 그 사건이 우리 플레이 과정이나 결과에서 나타난다는 보장은 없다. 만약 그 사건이 우리의 실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면, 사건의 발생 가능성은 ‘운’으로 설명 가능해진다.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 이하 ‘MMORPG’)이라는 장르 안에서 작동하는 확률의 방식과, 플레이어들이 그에 대응하는 방식을 살피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그 결과로 플레이어들은 아이템을 얻게 되는데, 게임 시스템에 의해 규정된 아이템 획득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 현실에서도 우리가 노력만으로 갖고 싶은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듯, 아쉽지만 게임에서도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항상 원하는 모든 아이템을 얻을 순 없다. 아이템마다 드랍 확률이 다르고, 또 플레이어마다, 캐릭터마다 운이 다르게 작동한다. 다른 플레이어가 구하고 싶어 안달하는 아이템을 너무 쉽게 획득할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 역시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게임 시스템 상에서 그런 불운을 보정하기 위한 장치를 개발, 제공하기도 하고, 플레이어들이 직접 스스로의 불운을 보정하기 위한 아이템 획득 방식을 만들어 활용하기도 한다. 이런 맥락 하에서 이 글은 MMORPG 속 운과 확률이 어떻게 재현되는지, 플레이어들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며 극복하는지, 그리고 그 교호작용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MMORPG 레이드와 운

     

사회학, 철학, 인류학 등 여러 분야에 관심을 나타내는 백과사전적 사상가였던 로제 카이와(Roger Caillois)는 ‘놀이’의 요소를 아곤(agon, 경쟁), 알레아(alea, 운), 미미크리(mimicry, 역할극), 일링크스(illinx, 현기증)의 네 가지로 분류한 바 있다. 첫째, 아곤은 놀이가 대부분 경쟁의 형태를 취하는 것과 관련된다. 경쟁은 승자와 패자를 명확히 해 경쟁자들이 이상적 조건 아래 싸우도록 기회의 평등을 인위적으로 설정한다. 아곤은 규칙에 입각해 상대적 경쟁을 통해 자신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을 자극한다.

     

둘째, 알레아는 아곤과는 정반대로, 놀이하는 자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결정, 그가 영향력을 전혀 행사할 수 없는 결정에 기초하는 놀이와 관련된다. 여기서는 상대방을 이기기보다는 운명을 이기는 것이 문제다. 운명만이 승리를 만들어낼 수 있으며, 이 때 승리란 (상대가 있는 경우) 패자보다 승자가 운으로부터 더 많은 혜택을 입었음을 나타낸다. 알레아는 우연의 불공평을 없애려 하지 않으며, 우연의 자의성 자체가 놀이의 원동력이 된다. 주사위, 룰렛, 바카라, 제비뽑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아곤에서 개인이나 팀이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면, 알레아에서 개인이나 팀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자질과 능력도, 노력, 솜씨도 그 안에서는 의미가 없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운명에 몸을 맡기는 것뿐이다. 운명의 결정을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일은, 무언가를 얻을 수도, 아무 것도 얻지 못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가진 걸 잃을 가능성도 존재함을 뜻한다.

     

 셋째, 미미크리는 놀이가 몇 가지 약속에 따라 정해지고, 허구적인 하나의 폐쇄된 세계를 일시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전제로 한다. 놀이는 가상의 환경 속에서 활동을 전제하거나 운명에 복종하는 것뿐 아니라, 그 안에서 자신이 가공인물이 되어 상황에서 주체적으로 판단해 행동함으로써 성립한다. 그렇기에 미미크리는 어떤 것을 따라하거나 흉내내는 것, 또는 가상의 인격을 설정하고 행동함으로써 재미를 느끼는 것을 말한다. 넷째, 일링크스는 놀이 순간 느낄 수 있는 아찔함을 통해 얻는 즐거움이다. 통제할 수도 없고, 의지가 반영되지 않으며, 규칙에 따르지도 않는 어지러운 상황에서 정신과 감각과 신체를 자극하는 쾌감을 맛보는 일이 곧 일링크스다.

     

수많은 게임 장르 중에서 롤 플레잉 게임(role playing game, 이하 ‘RPG’)은 말 그대로 역할 놀이가 중심이 되는 게임류를 일컫는다. 가상의 시공간 안에서 플레이어가 특정 역할을 맡아, 그 역할을 중심으로 게임 세계 내 변화를 이끌어가야 한다. 직접 사건의 주체가 되어 게임 내 서사의 흐름을 일정 범위 안에서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에 RPG에서 플레이어는 깊은 몰입과 재미를 느낄 가능성을 획득한다. 그런 점에서 카이와가 제시한 미미크리와 일링크스 개념은 지금 우리가 논의하는 RPG에 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가상의 공간에서 역할극이 주는 재미와 RPG가 주는 재미가 같은 근원을 가졌다는 점을 짐작케 한다.

     

RPG가 환경과 시대에 발맞춰 진화한 결과 중 하나가 MMORPG다. MMORPG는 네트워크를 사용해 수많은 플레이어가 같은 시간 같은 게임공간 안에서 상호작용을 주고받으며 경쟁이나 대립을 하기도 하고 다양한 퀘스트를 통해 플레이를 즐기기도 하는 방식의 게임을 말한다. 흔히 광활한 게임공간, 아이템·가상화폐, 사냥, 종족·직업, 성장형 캐릭터 등의 특징으로 설명된다. 기본적으로 RPG의 속성을 띠는 MMORPG 역시 미미크리적이고 일링크스적이지만, 다른 대부분의 게임과 마찬가지로 아곤적이면서 알레아적이기도 하다. 플레이어의 노력과 경쟁에 의해 결정되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그것들을 벗어나 운에 의해 결정되는 부분들도 많다. 하지만 그 노력과 경쟁, 그리고 운 모두가 다른 게임들과는 다른 양상을 띠기도 한다.

     

대부분의 게임에서 아곤은 재미의 핵심가치로 기능한다. MMORPG에서 그 궁극에 있는 것이 ‘파티(party)’와 ‘레이드(raid)’다. 파티는 2~5인 정도의 소수로 구성되는 집단이다. 필드 내 좀 더 강력한 몬스터나 인스턴스 던전(instance dungeon)은 파티를 이뤄야 공략할 수 있다. 레이드는 파티보다 더 큰 집단으로, 보통 10~25명, 많게는 수십 명의 플레이어로 구성된다. 그야말로 집단이 참여하는 MMORPG의 속성이 반영된, 파티로는 공략이 불가능한 강력한 적과의 싸움을 위한 협력인 셈이다. 그리고 그 레이드의 과정은 단순히 개인 캐릭터의 성장과 좋은 아이템의 사용으로만 극복할 수 있는 형태로 제시되지 않는다. 레이드에 참가하는 인원들에게는 각기 다른 역할이 부여된다. 똑같이 동료들의 치유를 담당하는 사제라 하더라도 누군가는 보스의 공격을 최대한 몸으로 막는 탱커의 체력을 전담마크하고, 누군가는 다른 동료들의 체력 전체를 책임지는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그 역할을 유기적으로 수행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아이템을 착용하고 있다 해도 공략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십 명이 모여서 주어진 임무를 유기적으로 수행하고, 협동을 통해 주어진 도전과제를 극복하는 레이드는, MMORPG 플레이의 꽃이다.

     

MMORPG 레이드에 대한 보상은 대체로 강력한 아이템의 획득을 의미한다. 더 강한 적일수록 공략이 어렵지만, 플레이어에게는 더 좋은 보상을 제공한다. 강력한 아이템을 장착한 소수의 플레이어는 게임 내에서 그에 따른 명예를 얻게 된다. 다만 협력과 노력의 결과가 아이템의 드랍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해도, 아이템을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 그리고 어떤 아이템을 얻을지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운과 관련된다. 물론 특정 보스가 100%의 확률로 드랍하는 아이템도 종종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역시 모두에게 그 아이템이 돌아가지는 않으며, 유일 혹은 소수의 플레이어만이 해당 아이템을 가져갈 수 있게끔 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아이템 드랍과 획득이야말로 기회 기반의 메커니즘을 포함하며, 무작위성의 경험을 생산하는 대표적인 게임 시스템의 일부다. 물론 개별 게임에 따라 그 기회와 무작위성의 범위가 다르게 나타난다. 하지만 무작위성이 없는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건조하게 느껴질 확률이 높다. 원하는 아이템이 한 번에 나와 획득하기만 한다면, 플레이어가 다시 그 레이드에 참여할 이유는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스가 쓰러졌을 때의 쾌감 못지않게 아이템 드랍할 경우에도 플레이어는 두근거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수많은 아이템들 중 자신이 원하는 아이템이 드랍되고, 또 그것을 획득까지 하게 됐을 때의 경험은 잊지 못할 기억이 되곤 한다. 원하는 아이템이 드랍될 확률이 100%가 아니기에, 그리고 그것을 획득할 확률 역시 경쟁자가 아예 없지 않는 한 100%일 수 없기에, 레이드는 운명과 위험을 걸고 뛰어들만한 의미 있는 것이 된다.

     

꼭 MMORPG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나, (대체로 아이템) 운과 자신의 캐릭터, 그리고 그 관계를 시스템적으로 규정하는 게임을 일컫는 여러 용어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축(복)캐’와 ‘저(주)캐’다. 전자가 원하는 아이템을 척척 획득하는 캐릭터를 일컫는다면, 후자는 원하는 아이템이 드랍되지 않거나 드랍된다 해도 획득하지 못하는 캐릭터를 일컫는다. ‘운빨망겜’은 말 그대로 운빨이 망한 게임으로, 자신이 플레이하는 캐릭터가 저주에 저주가 걸렸을 때 해당 게임을 일컫는 단어로 사용된다. 나아가서는 현실 인생에서 본인이라는 캐릭터에 운이 없었음을 한탄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운빨망겜의 대척점에 ‘실력망겜’도 있다. 운적 요소가 크게 배제되어, 숙련도 차이에 따른 플레이가 일반적인 게임을 말한다. 게임에 투자한 현금이 승패를 좌우한다는 뜻을 가진 ‘현질망겜’이라는 용어도 있다. 게임 밸런스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 못하지만, 핵납금러에게는 기회로 작용하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보론: 놀이와 게임을 연결 짓는 관점에 대하여] 

물론 게임이 놀이와 밀접하게 연관되기는 하나, 둘이 동일한 것은 아니다. 놀이가 곧 게임인 것도 아니며, 게임 또한 전통적 놀이의 속성을 고스란히 반영한다고 보기 어렵다. 둘의 유사점이나 차이점에 주목하는 논의는 다양하며, 그 견해 역시 하나로 좁혀지지 않는다. 게임이 놀이의 부분집합이라 보는 견해(예를 들어 곤살로 프라스카)도 있지만, 놀이를 포섭한 게임이 기존 놀이와는 다른 무언가라는 견해(예를 들어 예스퍼 율, 샐런과 치머만 등)도 있다. 하지만 놀이와 게임의 관계는 하나가 다른 하나의 상위 혹은 하위 범주에 속하는 문제로 축소해 논의할 것이 아니다. 대신 둘이 별개의 차원에 있는, 그럼에도 상호연관되는 범주로 파악하고 둘의 관계를 논의하는 것이 게임의 복잡다단한 특성을 포착하는 데 보다 유익한 일처럼 보인다. 그런 점에서 로제 카이와의 놀이 요소 분류를 MMORPG에 적용해보려는 아이디어는, MMORPG가 곧 놀이라는 의미라기보다는 놀이의 관점에서 MMORPG를 입체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에 가깝다고 보면 될 듯하다.

     


 MMORPG 시스템이 규정하는 아이템 분배 방식과 확률 보정

     

같은 MMORPG 장르라 해도 게임마다 시스템이 규정하는 아이템 분배방식이 다르고, 그 종류도 다양하다. 그럼에도 대표적인 아이템 분배방식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유 획득 방식이다. 이름 그대로 누구나 자유롭게 획득이 가능하며, 먼저 집는 사람이 임자가 된다. 서로 아는 플레이어들끼리 모인 파티에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고렙 플레이어가 도우미로 합류해 저렙 플레이어(들)을 빠르게 레벨업 시켜주거나 장비를 맞춰주고 싶을 때 유리하다. 모르는 플레이어들끼리는 퀘스트 아이템 등을 얻기 위해 파티를 구성하는 경우에 사용하곤 한다.

     

둘째, 순서대로 획득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에서는 루팅을 몬스터 하나당 파티/공대원 한 명씩만 돌아가며 할 수 있게 한다. 마지막 파티/공대원까지 한 번씩 루팅을 했다면, 다시 첫 파티/공대원에게 루팅 턴이 돌아간다.

     

셋째, 특정인 획득 방식이다. 자유 획득방식과는 정반대로, 파티나 레이드의 리더나 그 대리인이 아이템 획득 권한을 가지고, 그 권한을 이용해 필요한 파티/공대원에게 아이템을 적절하게 나눠주는 경우를 말한다. 후술하겠지만, 포인트제나 골드 파티에서 주로 사용된다.

     

넷째, 주사위 획득 방식이다. 특정 아이템이 나왔을 때 해당 아이템을 착용할 수 있는 캐릭터 직업군을 우선으로 주사위를 굴리게 만들어, 가장 높거나 낮은 숫자를 뽑은 플레이어가 가져가는 것을 가리킨다. 해당 아이템 착용 불가 캐릭터들에게는 아예 주사위가 뜨지 않거나, 착용 가능 캐릭터들이 없는 경우 차순위로 가져갈 수 있게끔 하는 경우가 많다. 대개 모든 아이템에 주사위를 굴리게 하지는 않고, 일정 등급 이상의 아이템부터 주사위를 굴린다. 이 때 해당 등급 미만의 아이템은 자유 획득하거나 순서대로 획득하게 만든다. 게임 내에서 권장하는 방식으로 주로 랜덤 파티나 비정규 공격대가 채택한다.

     

하지만 전술한 바와 같이 아이템마다 드랍 확률이 다르고, 또 플레이어마다, 캐릭터마다 그것을 획득할 운은 다르게 작동한다. 때문에, 극악의 저캐라면 같은 보스 몬스터를 수십 번 공략해도 원하는 아이템을 구경조차 못할 수도 있다. 그런 경험을 한 플레이어라면 해당 레이드를 공략하고 싶지 않아질 수밖에 없고, 나아가 게임에 대한 정이 떨어질 수도 있다. 이런 사례가 극단적인 듯 보이지만, 생각보다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론상 여러 번 잡은 보스 몬스터라 해도, 매번 잡을 때마다 아이템 드랍 확률이 초기화되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게임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해도, 이는 너무 불공평한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게임 시스템도 진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게임 디자이너에 의해 고안된 토큰 제도다. 이는 아이템 드랍 테이블의 불확실성을 보정하기 위한 시도로, 직업이나 역할별 특정 아이템군을 묶은 것이다. 예를 들어 한 보스 몬스터가 특정 직업이나 역할의 가슴 방어구를 드랍한다 했을 때, 해당 아이템이 나온다 해도 혜택을 볼 수 있는 직업이나 역할은 한정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해당 방어구를 가슴 방어구 토큰으로 만들면, 보다 많은 직업이나 역할이 해당 토큰을 획득한 후 자신에게 맞는 방어구로 교환하면 된다. 적용되는 직업이나 역할이 많으면 많을수록 해당 토큰의 활용도는 올라간다. 대신 획득을 위한 경쟁은 훨씬 치열해질 수 있다.

     

토큰 제도는 아이템 드랍 확률을 보정해주긴 하지만 아이템 획득 확률을 올려주지는 못한다. 원하는 토큰이 나와도 그것을 계속 먹지 못하는 캐릭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에 여러 MMORPG들에서 시스템 상의 불운 보정이 존재해왔다. 디자이너가 플레이어로 하여금 특정 상황에서 특정 아이템을 더 많이 획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경우 일정 시간 내 아이템을 획득하지 못한 플레이어는, (계속 아이템 획득을 위한 노력을 한다는 전제하에) 갈수록 해당 아이템을 획득할 확률이 높아진다.

     

최근에는 가시적인 불운 보정 아이템도 발견된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 이하 ‘WoW’)>의 최근 확장팩 ‘용군단(Dragonflight)’에서는 판금착용 근거리 딜러용 전설급 양손도끼인 ‘피랄라스 – 꿈 절단기(Fyr’alath the Dream Render)’를 선보였다. 다만 완성형의 무기를 드랍하는 방식은 아니고, 아미드랏실 공격대의 최종 보스 몬스터인 피락을 공략 완료하면 퀘스트 아이템을 드랍한다. 국가별 서버군 내에서 신화난이도 피락을 가장 처음으로 잡은 공격대에게 100% 확률로 1개를, 그 이후 신화난이도 피락을 잡은 공격대에게는 2~30% 확률로 1개를, 영웅난이도 이하 난이도 피락을 잡은 공격대에게는 보다 낮은 확률로 드랍한다. 당연히 공격대 난이도가 높을수록 드랍 확률도 올라가는 구조이며, 국가별 서버군 내에서 신화난이도 피락 첫 공략이 이뤄졌다면 그 다음 주 주간 공격대 리셋 후부터는 모든 난이도에서 피랄라스 획득이 가능해진다.

     

퀘스트 아이템은 피락이 드랍하는 다른 아이템들과 달리 개별 캐릭터에게 자동 드랍되는데, 아무리 캐릭터별 드랍이라 해도 앞서 말한 것처럼 매번 아이템 드랍 확률이 초기화된다면, 너무 쉽게 획득하는 캐릭터와 아예 영영 획득하지 못하는 캐릭터가 함께 나올 수밖에 없다. 이에 게임에서는 퀘스트 아이템을 획득하지 못했을 경우, 해당 캐릭터의 퀘스트 아이템 드랍율을 영구적으로 소폭 혹은 그보다는 대폭 올려주는 불운 보정 아이템 2종 중 하나를 드랍한다. 이 불운 보정 아이템은 최종 보스 몬스터인 피락만이 아니라 앞선 보스 몬스터들에게서도 나온다. 결론적으로, 난이도 불문 아미드랏실 레이드에 꾸준히 참여하면 언젠가는 퀘템을 먹을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적어도 이 구조 하에서 플레이어가 계속 노력하면 반드시 보상을 얻는다.


* <WoW>에서 드랍되는 불운 보정 아이템 ‘피랄라스의 불씨’

    

     

MMORPG 플레이어들이 고안한 아이템 획득 확률 보정하기

     

특정 아이템이 드랍될 확률을 플레이어가 어찌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단 드랍된 아이템에 대해서는 시스템이 규정하는 방식을 채택하지 않고, 그것을 다르게 활용함으로써 자신의 아이템 획득 확률을 높일 수 있다. 플레이어들은,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그 다른 식으로의 활용이 레이드에 참여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게끔 한다. 그렇다면 플레이어들이 고안한 아이템 획득 확률 보정방식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첫째, ‘저득(低得) 주사위제’다. 주사위제는 일단 우연성에 의해 드랍된 아이템에, 획득 차원의 우연성까지도 가장 많이 작용하게끔 하는 방식이다. 이에 플레이어들은 합의하에 우연성을 낮추고 조금이라도 특정 플레이어(들)의 아이템 획득 확률을 높이기 위해, 이미 주사위를 던져 아이템을 획득한 플레이어를 배제하고 나머지 플레이어(들)끼리 다음에 나오는 아이템을 입찰하는 방식을 고안했다. 이 방식에서는 적게 아이템을 획득한 플레이어일수록 다음 아이템을 획득할 확률이 높아진다.

     

둘째, 정규 공격대에서 주요 쓰이는 방법으로, 포인트 획득제가 있다. 정규 공격대란 특정 시간대에 정기적으로 구성원들이 모여 몬스터를 공략하는 공격대를 말한다. 최상위권 몬스터 공략을 위해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포인트 획득제는 그 이름처럼 일정 기간 공략 참여를 통해 플레이어가 획득하게 되는 포인트를 바탕으로 아이템을 획득하는 방식이다.

     

셋째, 가상화폐 경매제도다. 가상화폐 경매제도는 죽은 몬스터가 주는 아이템들을 경매에 부쳐 더 많은 가상화폐를 경매가로 부른 플레이어가 특정 아이템을 낙찰해가는 제도를 의미한다. 보통 아이템을 사지 않은 레이드원들이나, 실력이 좋아서 그렇지 못한 레이드원(들)에게 소위 ‘버스’를 태워줄 수 있는 레이드원들 중심으로 모인 돈을 나눠 갖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아이템을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참여한 플레이어들에게 마찬가지로 나쁘지 않거나 때론 가상화폐를 벌기 위한 목적이 되기도 하는 제도다. 원래 가상화폐는 몬스터를 사냥하거나, 몬스터 사냥을 통해 획득한 아이템을 상점 혹은 경매장에 팔거나, 퀘스트 수행을 통해서만 획득 가능하다. 때문에 아이템 외의 것을 사고팔기 위한 보조도구로서 주로 기능해왔다. 경매제도는 가상화폐를 게임 내 보조적인 도구에서, 반드시 획득해야 할 게임 내 중요한 목적지로 탈바꿈하게 만드는 계기로 작용한다. 그리고 꽤 많은 게임들의 가상화폐가 현실세상에서 실제 화폐로 거래되기도 한다.

     

MMORPG는 플레이에 시간과 노력이 상대적으로 많이 드는 하드코어(적) 장르인데다, 다른 플레이어들과 관계 맺지 않고 플레이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가상화폐 경매제도는 혼자 플레이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기도 하는데, 가상화폐가 아이템 획득 문제를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경매제도 도입 이전의 MMORPG 세계에서 플레이를 하고 좋은 아이템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다른 플레이어와의 관계에 신경을 쓰고, 다른 한편으로 강한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는 개인 능력을 키워야만 했다. 공격대에서 자기가 맡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플레이어, 즉 공격대에 기여를 하지 못하는 플레이어는 실력을 키울 때까지 공격대에 참여하기가 어려웠다.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소문이 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실력 못지않게 평판도 중요하게 여겨졌고, 실력이 좋아도 매너가 좋지 않으면 공격대에 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경매제도 도입 이후 가상화폐가 부족한 실력과 매너를 메우게 되었다. 공격대에 끼기 위해 중요한 것은 점차 실력이나 평판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가상화폐를 보유하고 있는가가 되었다.

     

이처럼 플레이어(들)은 저득 주사위를 굴리거나, 포인트, 골드 등을 사용함으로써 아이템 획득 확률일 높일 수 있다. 특히 포인트제와 경매제도에서는, 포인트, 골드 등을 사용해 아이템 획득 확률을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다. 포인트나 골드 등을 다른 공격대원에 비해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아이템 획득 확률이 올라감은 물론이고, 정말 포인트나 골드가 많다면 거의 100% 확률로 아이템을 가져갈 수 있다.

     


운과 불운 사이, 게임 시스템과 플레이어들 사이

     

중요한 것은, (특히 플레이어 차원의) 확률 보정 노력들이 긍정적인 것이든 그렇지 않든, 앞으로도 게임 내에서 죽 이어지거나 어쩌면 더욱 활발하게 가시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 글에서 살펴본 게임 시스템 차원의 드랍·획득 확률 보정, 그리고 플레이어 차원의 획득 확률 보정의 양상 및 의미는 게임의 시스템적 디자인과 플레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상호작용 사이의 충돌, 불확실성이 주된 요소일 수밖에 없는 게임에서 발생하는 플레이 방식의 역동성 혹은 진화,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불평등으로 다가갈 수 있는 아이템 획득방식의 변경에 대한 플레이어 간의 합의 또는 수용 문제 등을 폭넓게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된다.


불확실성은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거나 적은 것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것으로 이해돼 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게임의 불확실한 결과는 플레이어(들)에게, 그들의 결정이 게임에 확실한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그리고 플레이어가 게임에 몰입하고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얻는 건, 그러한 의사결정과 결과의 관계로부터 나타난다. MMORPG 레이드에서 아이템을 획득하는 일 역시 다르지 않다. 특히 플레이어(들)이 만들어 활용하는 새로운 아이템 획득방식은, (가상화폐 지상주의라든지 긍정적이지 못한 결과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 게임 시스템의 활용의 하나이자, 전체 플레이의 맥락 속에서 이뤄지는 하나의 실천으로 이해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 또한,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허용하는 선하에서 공식화되는 아이템 획득방식이자 플레이의 일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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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게임, 방송, 만화, 팬덤 등 미디어/문화에 대해 연구한다. 저서로 〈서브컬처 비평〉(2020), 〈아이피, 모든 이야기의 시작〉(2021, 공저), 〈서드 라이프: 기술혁명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2020, 공저), 〈게임의 이론: 놀이에서 디지털게임까지〉(2019, 공저) 등이, 논문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소비하는 팬덤: 아이돌 팬 플랫폼과 팬덤의 재구성’(2022), ‘‘현질’은 어떻게 플레이가 되는가: 핵납금 게임 플레이어 심층인터뷰를 중심으로’(2022, 공저), ‘게임화하는 방송: 생산자적 텍스트에서 플레이어적 텍스트로’(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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