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게임 내 우익 극단주의: 문헌 검토」 의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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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6. 4. 10.
2021년 11월, <로블록스>는 한 콘텐츠 제작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당한 루벤 심(Ruben Sim)이라는 인물은 사이버 폭력 집단을 조직해 플랫폼과 플레이어, 개발자들을 위협했다. 이미 수년 전 우익 극단주의적 수사법 사용과 플레이어 괴롭힘으로 차단된 바 있지만, 루벤은 타인의 계정을 빌려 계속 <로블록스>에 접속해왔다. 그의 위협은 같은 해 10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로블록스> 개발자 컨퍼런스에 대한 폭력 위협으로까지 확대되어, 행사가 일시적으로 봉쇄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것이 결코 예외적인 사건은 아니다. <로블록스>는 해당 소송을 제기하기 훨씬 전인 2009년부터 이미 극단주의적 팬 제작 콘텐츠와 혐오 발언, 게임 내 행동 문제로 고심해 왔다. 해당 일화는 웰스(Garrison Wells)를 비롯한 6명의 연구자가 학술지 '게임과 문화(Games and Culture)'에 발표한 논문 「주류 게임 내 우익 극단주의: 문헌 검토(Right-Wing Extremism in Mainstream Games: A Review of the Literature)」(2024)의 서두를 여는 장면이기도 하다. 논문의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극단주의 그룹이 온라인 게임 공간을 어떻게,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 활용하는지 그 추세를 파악하는 일이 플레이어를 보호하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저자들이 인용하는 반명예훼손연맹(Anti-Defamation League)의 2021년 보고서는 이 문제의 규모를 잘 보여준다. 미국 내 플레이어 10명 중 1명은 온라인 게임에서 백인 우월주의 이데올로기를 접하고, 청소년 플레이어의 60%, 성인 플레이어의 83%가 괴롭힘을 경험했다. 여성, 흑인, 아시아계 미국인 플레이어 모두 지난 1년간 괴롭힘이 증가했다고 응답했다.
이 숫자를 게임 산업의 규모와 겹쳐 보면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비디오 게임 산업은 영화와 음악 산업을 합친 것보다 더 큰 매출을 올리고 있으며, 약 2억2,700만 명의 미국인이 게임을 즐긴다. 주간 평균 온라인 플레이 시간이 6.5시간에서 7.5시간으로 증가했다는 사실은, 온라인 게임이 단순한 여가가 아니라 사회적 상호작용의 핵심 장(場)이 되었음을 뜻한다. 극단주의 그룹은 과거에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를 활용했던 것처럼, 이제 이 거대한 공간을 모집과 이데올로기 정상화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학술적 검토는 이 논문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저자들은 바로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2021년 9월까지의 관련 문헌을 체계적으로 검토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논문은 체계적 문헌 검토라는 방법론을 채택했다. 2021년 3월부터 9월까지 3단계에 걸친 검색을 실시했으며, 웹 오브 사이언스(Web of Science), 스코퍼스(Scopus), 구글 스칼라(Google Scholar) 등 16개 학술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했다. 검색어는 게임 관련 변형어를 백인 우월주의, 대안 우파(alt-right), 국내 극단주의와 관련된 76개 핵심 용어와 조합하는 방식이었다. 243개의 잠재적 자료를 식별한 뒤 선정 기준을 적용해, 우익 극단주의와 비디오 게임의 관계에 실질적으로 초점을 맞춘 문헌만을 남겼다. 최종 코퍼스는 학술 논문 37편, 웹 기사 및 정기간행물 28편, 편저의 개별 장 12편, 학위 논문 9편, 도서 6권, 보고서 5편 등 총 97편으로 구성되었다. 각 문헌은 최소 2명의 검토자가 독립적으로 읽고 주석을 비교했으며, 의견 차이가 있을 경우 제3의 검토자가 참여해 합의를 도출했다. 10주에 걸친 팀 토론을 통해 공통 주제와 논거를 합성했다.
이 연구의 방법론에는 분명한 강점이 있다. 사전에 정의된 검색 프로토콜과 선정 기준을 통해 선택 편향을 줄이려 했고, 복수 검토자에 의한 독립적 분석과 합의 과정은 주관성을 통제하기 위한 적절한 절차다. 그러나 저자들 스스로도 인정하듯 몇 가지 중요한 한계가 존재한다.
우선 코퍼스의 성격 문제다. 최종적으로 분석을 위해 선별된 97편 중 이론적 논문과 비판적 역사 분석 같은 비실증적 연구가 64.9%를 차지하고, 사례 연구·콘텐츠 분석·민속지학 등 질적 실증 연구가 28.9%다. 양적 연구는 극히 드물었다. 이것은 이 분야 자체가 아직 초기 단계에 있음을 반영하지만, 동시에 이 문헌 검토가 종합하는 것이 실증적 증거의 총체라기보다는 이론적 논거와 사례 분석의 집합에 가깝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저자들의 결론이“기존 문헌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는 2차적 진술이라는 것과, 그 기존 문헌 자체의 실증적 토대가 아직 얇다는 것은 구분되어야 한다.
확증 편향의 가능성도 있다. 저자들은 스스로 “본 검토의 설계는 우익 극단주의와 비디오 게임 사이에 실제로 기존의 관계가 있다는 가설 하에 수행되었다”고 밝히며, 이 관계를 반박하는 연구가 출판 편향으로 인해 미출판 상태일 수 있다고도 인정한다. 실제로 앤드루스(Andrews, 2023)는 게임화와 극단주의 공격 사이의 이론적 관계를 주장하기 전에 대안적 설명을 고려해야 한다고 반론을 제기하고 있으며, 저자들은 이를 한계점 부분에서 직접 언급한다. 이러한 투명성은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독자로서는 논문이 제시하는 서사가 문헌 내의 지배적 경향을 반영하는 것이지 확정된 인과관계가 아님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범위의 인위적 제한 역시 논의가 필요하다. 미국 내 우익 극단주의로 초점을 좁힌 것은 분석의 깊이를 위한 합리적 선택이지만, 동시에 중요한 것들을 놓치게 만든다. 우익 극단주의는 인종차별, 여성 혐오, 반유대주의를 토대로 구축되는데, 이 각각의 영역에 대한 게임 연구 문헌이 별도로 존재한다. 저자들도 이러한 연구 분야의 결과들을 통합한다면 작용 중인 복잡한 상호작용에 대해 더 넓고 맥락화된 이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인정한다. 문헌 수집이 2021년 9월에 종료되고 보충 검색이 2023년 2월까지 이루어졌지만, 이후 이 분야의 연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종합하면, 이 논문은 당시까지의 연구 지형을 지도로 그린 첫 번째 시도로서 의의가 분명하되, 그 지도가 보여주는 것은 확정된 사실의 총체라기보다는 학계가 주목하기 시작한 우려의 윤곽에 가깝다.
논문이 제시하는 첫 번째 핵심 주제는, 게임 산업 자체에 내재된 구조적 조건이 극단주의가 성장하기 좋은 토양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네 가지 차원이 있다.
첫째, 산업 내 다양성의 부족이다. 게임 산업은 백인 이성애자 남성에 의해 압도적으로 지배되어 왔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개발자의 비율은 불균형적으로 낮고, 여성은 리더십과 콘텐츠 주도 역할에서 심각하게 과소 대표된다. 부적절한 행동은 역사적으로 축소되거나 은폐되었으며, 2021년 캘리포니아 공정고용주택부가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상대로 제기한 성희롱·성차별 소송은 이 문제가 과거의 일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둘째, 1990년대부터 이어져 온 마케팅의 문제다. 주류 게임은 이미지와 콘텐츠 모두에서 백인 남성 교외 청소년만을 독점적 대상으로 삼았다. 전쟁, SF, 판타지 테마가 주를 이루면서 적을 정복하는 백인 남성 주인공이 중심이 되었고, 여성 캐릭터는 등장하더라도 연약하거나 성적으로 대상화된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2021년 미국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 협회(ESA) 보고서가 미국 게임 플레이어의 45%가 여성이라고 밝혔음에도, 마케팅은 여전히 젊은 백인 남성에게 영합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 논의가 다소 단선적이라는 점은 지적할 수 있다. 2010년대 이후 여성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대형 타이틀이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뒀고, 인디 게임에서는 다양한 정체성의 재현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코퍼스가2021년까지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최근의 변화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셋째, 여성 혐오의 문제다. 게임 공간을 남성적 영역으로 젠더화하는 것은 남성 플레이어에게 우월감을 부여하고 내집단과 외집단의 분열을 조장한다. 여성의 존재감 증가는 ‘침입’으로 간주되며, 일부 남성 게이머들은 인종차별적·성차별적 행동을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로 합리화한다. 극단적인 경우 강간 위협이나 살해 협박으로까지 이어진다.
넷째, ‘하드코어 게이머’ 정체성과 남성주의 온라인 생태계(Manosphere)의 연결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하드코어 게이머 정체성에는 원망과 피해의식, 즉 자신들이 차별의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는 감각이 포함되게 되었다. 이러한 감정은 학교, 직장, 놀이 공간의 여성화에 대한 반동적 백인 남성 조직의 공포와 맞닿아 있다. 논문에 따르면, 남성 권리 운동가들과 대안 우파 급진주의자들은 백인 남성 게이머들을 “디지털 공간을 침범하는 타자들에 맞서 싸우는 피해자”로 명명하면서 이들에게 호소한다. 지위 상실의 원인을 여성과 소수자에게 돌리는 하드코어 게이머들은 자신들의 세계관을 정상화하고 세력을 확장하려는 극우 극단주의자들과 이해관계가 정확히 일치한다.
이 분석은 설득력이 있지만, 한 가지 주의가 필요하다. 하드코어 게이머라는 범주가 마치 본질적으로 극단주의에 취약한 것처럼 읽힐 수 있다는 점이다. 논문 자체도 퍼거슨과 글래스고(Ferguson & Glasgow, 2021)를 인용하며 “상황의 맥락은 복잡했으며, 이 운동의 많은 지지자들은 하드코어 게이머라는 고정관념의 범주 밖에 있었다”고 언급한다. 게임에 진지하게 몰입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특정한 정체성 구성과 그것이 정치적으로 동원되는 방식이 문제라는 점을 구분해야 한다.
게이머게이트(Gamergate)는 하드코어 게이머 문화와 우익 극단주의가 결합한 분수령적 사건이다. 2014년, 한 여성 게임 개발자에 대한 근거 없는 루머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게임 저널리즘의 ‘윤리’를 표방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게임 커뮤니티 내 다양성과 평등을 옹호하는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에 대한 조직적 괴롭힘 캠페인이었다. 신상 털기, 살해 위협, 강간 협박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
주목할 만한 분석은 우익 극단주의 운동의 지도자들이 게이머게이트를 모집의 기회로 포착했다는 부분이다. 당시 보수 뉴스 사이트 브라이트바트(Breitbart News)에서 활동하던 스티브 배넌(Steve Bannon)과 마일로 이아노풀로스(Milo Yiannopoulos)는 자신들의 자원을 활용해 이 증오 캠페인을 우익 운동으로 포섭했다. 이후 레딧(Reddit) 하위 커뮤니티 분석에서 게이머게이트 지지자들과 열렬한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 상당한 중복이 확인되었다.
게이머게이트에서 사용된 전술들, 즉 ‘안전 공간(safe space)’이나 ‘눈송이(snowflake)’ 같은 용어를 통한 진보적 견해의 묵살, 신상 털기, 트롤링, 폭력 위협 등은 이후 온라인 극단주의의 표준적 전술이 되었다. 논문의 표현을 빌리면, 이러한 전술들은 극단주의자들의 “온라인 일상”의 일부가 되었고, 게이머게이트는 “게임이라는 현대 청소년 문화의 중심 무대에 조직화된 우익 극단주의가 공식적으로 데뷔한 사건”이 되었다.
이에 대해서도 비평적 시각이 필요하다. 게이머게이트에서 우익 극단주의로의 이행을 너무 매끈한 직선으로 그리면, 게이머게이트 참여자들의 다양한 동기와 그중 상당수가 극단주의와 무관했을 수 있다는 복잡성이 가려진다. 저자들도 이 점을 인식하고 있지만, 서술의 전체적 흐름은 게이머게이트를 거의 필연적으로 극단주의로 이어지는 경로의 일부로 읽히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기능한 측면이 있는 것과 본질적으로 그러한 운동이라는 판단은 다르다.
극단주의가 게임 공간에 스며드는 구체적인 방식도 분류한다. 주목하는 것은 유머와 암호화된 언어를 통한 침투다. 극단주의자들은 밈과 농담을 활용해 혐오를 트롤링이나 풍자로 위장한다. 논문이 인용하는 콘디스(Condis, 2019a)의 표현이 정곡을 찌른다. 이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보여주는 동시에 ‘발뺌의 여지(plausible deniability)’라는 방패막을 활용하여, 특정 인종차별적 메시지가 진심인지 장난인지 의도적으로 불분명하게” 만든다. 대표적 사례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인종차별을 자행하는 길드들이 흑인 플레이어를 ‘오크’로 지칭한 것이 제시된다. 게임 용어 뒤에 인종차별을 숨기면서 책임을 회피하는 전략이다. 이러한 ‘암호신호(dog whistles)’를 사용한 수법은 일반 플레이어에게는 무해한 게임 용어처럼 보이지만, 같은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는 이들에게는 분명한 신호로 작동한다.
모딩(modding)을 통한 극단주의 콘텐츠 삽입도 중요한 경로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세계관을 반영한 게임을 직접 개발하기도 했지만, 제작 품질이 낮아 인기가 제한적이었다. 최근에는 주류 게임에 모드를 통해 극단주의 콘텐츠를 주입하는 방식으로 초점이 이동했다. <둠>이나 <카운터 스트라이크> 같은 1인칭 슈팅 게임에 나치 테마나 KKK 스킨을 삽입하고, <하츠 오브 아이언IV>나 <문명> 같은 역사 전략 게임에서는 나치 독일로 플레이하거나 특정 인종 집단의 말살을 승리 조건으로 설정하는 모드가 만들어진다. 살바티(Salvati, 2019)의 표현을 빌리면, “명시적으로 인종차별적, 민족주의적 또는 신파시스트적 테마를 포함하도록 전략 게임을 모딩하는 관행은 최근 몇 년 동안 일종의 가내 수공업처럼 확산”되었다. 이러한 모드는 극단주의 그룹에게 직접 개발한 조잡한 게임보다 훨씬 주류적 매력을 가진 모집과 유포 도구로 활용된다.
가장 논쟁적인 부분은, 주류 게임 자체가 의도치 않게 극단주의 세계관에 부합하는 환경을 제공한다는 이른바 ‘은근한 주입(soft sell)’에 관한 논의다. <콜 오브 듀티>나 <메달 오브 아너> 같은 중동 배경 전쟁 게임이 미국의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고, <문명>이나 <하츠 오브 아이언> 같은 전략 게임이 민족주의·제국주의적 환상을 실행할 수 있어 우익 극단주의자들에게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킹과 레너드(King & Leonard, 2016)에 따르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바이오 하자드>, <그랜드 테프트 오토> 등은 극단주의 커뮤니티에서 “재미의 원천임과 동시에 백인 민족주의를 찬양하거나 홍보할 수 있게 해주는 게임”으로 인용된다. 일부 극단주의자들은 이런 게임을 인종 전쟁 준비를 위한 훈련 모듈로까지 인식한다고 한다. 우익 급진주의를 비판하려 한 <파 크라이5>조차도, 극단주의 집단의 신념을 완전히 비난하기보다는 그들을 부적격하고 무능한 존재로 묘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들을 도왔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 은근한 주입에 관한 논의는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지만, 동시에 가장 신중한 독해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극단주의자가 특정 게임을 자신들의 세계관에 맞게 해석한다는 것과, 그 게임이 실제로 극단주의를 촉진한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주장이다. 성경이나 셰익스피어도 극단주의자에 의해 전유될 수 있지만, 그것이 곧 텍스트 자체의 본질을 규정하지는 않는다. 저자들 역시 이러한 게임들이 극단주의를 의도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지만, 의도치 않은 효과와 수용자의 전유 사이의 구분이 더 명확했다면 논의의 설득력이 한층 높아졌을 것이다. 다만, 게임 내 캐릭터 묘사의 고정관념 문제는 별도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레너드(Leonard, 2006)의 표현처럼, 동양인을 범죄자나 무술가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폭력적 악당이나 운동선수로, 여성을 피해자나 성적 대상으로 반복 묘사하는 패턴은 “인종에 관한 지배적인 아이디어를 반영함으로써 일상적 및 제도적 관계의 나침반 역할”을 한다.
마지막에 제기되는 문제의식은 게임 업계와 입법자들의 대응 부족이다. 게임 회사들은 흔히 탈정치적 입장을 표방하지만, 필자들은 이것이 실질적으로 극단주의의 방치를 의미한다고 비판한다. 콘디스(Condis, 2019a)의 표현을 빌리면, “플랫폼 관리 책임에서 손을 떼려는 기술 기업들의 욕구는 백인 우월주의자들과 다른 증오 집단들이 악용할 수 있는 핵심적인 특징”이 된다. 스팀과 디스코드는 극단주의 활동의 허브로 자주 인용되며, 디스코드는 2017년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발생한 치명적인 극우 집회의 조직 허브 역할까지 한 바 있다.
콘텐츠 중재의 경제학도 문제다. 논문은 기업들이 혐오 표현이 유발하는 참여도 증가를 통해 이윤을 높이면서, 이를 해결하는 비용은 회피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혐오 표현을 생성하는 플레이어들이 가장 열성적인 소비자라는 역설이 중재에 대한 방임적 접근을 부추긴다. 플레이어에게 제공되는 신고 시스템은 사후적으로만 작동하며, 중재의 부담을 커뮤니티 자원봉사자에게 전가하는 구조다. 많은 플레이어는 시스템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신고 자체를 포기한다. 이러한 행동을 근절하지 못한 결과는 이를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환경을 조성했으며, 많은 플레이어는 혐오적 행위를 게임 플레이의 예상되거나 정상적인 부분으로 받아들이며 체념하게 되었다.
법률의 한계도 크다. 미국의 통신품위법 제230조는 플랫폼에 사용자 생성 콘텐츠에 대한 법적 책임을 면제해 준다. 수정헌법 제1조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폭넓은 해석은 혐오 표현이 법망을 빠져나가게 만들며, 코헨-알마고르(Cohen-Almagor, 2018)에 따르면 이것은 “혐오 발언자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계속하도록 정상화하거나 심지어 권한을 부여하는 것을 돕는다.” 게이머게이트에서 사용된 것과 같은 집단 괴롭힘은 기존 법률로는 처벌이 거의 불가능하다. 수많은 사람이 한 마디씩 보태며 집단적으로 괴롭히는 상황에서, 법 집행 기관은 공격에 가담한 한 명을 기소하는 것조차 난관에 부딪힌다.
이와 같은 지적 역시 비평적 균형이 필요하다. 논문의 서술은 주로 기업의 무책임과 법률의 부재를 강조하는데, 콘텐츠 중재의 현실적 어려움과 표현의 자유와 규제 사이의 진정한 딜레마, 그리고 과도한 규제가 초래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물론 이것은 문헌 검토 논문의 성격상 기존 문헌의 논조를 반영한 것이지 저자들만의 일방적 주장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이 문제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반대편 논의도 함께 찾아볼 필요가 있다.
이제까지 검토한 논문의 결론은 이렇다. 많은 주류 게임은 업계에 내재된 형평성 및 포용성 문제를 반영하고 있으며, 비백인·비남성을 외부인으로 규정하는 문화적 모델을 유포한다. 이는 소외된 플레이어를 향한 적대와 배제를 조장했고, 한때 비주류였던 우익 극단주의적 견해가 점차 정상화되는 문화를 허용했다. 지적하는 바는 분명하다. 게임 공간에서의 혐오와 극단주의는 나쁜 개인 몇 명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의 역사와 구조, 문화적 관행, 플랫폼의 설계와 정책, 법률적 환경이 복합적으로 만들어 낸 체계적 문제라는 것이다. 극단주의 그룹은 유머, 밈, 모딩, 암호화된 언어 등 다양한 전술을 통해 게임 공간을 모집과 정상화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업계와 법률의 대응은 부족하다.
그러나 이 논의가 말해주지 못하는 것도 있다. 97편의 연구 대부분이 이론적·비판적 역사적 작업이며, 대규모 양적 데이터에 기반한 실증 연구는 극히 드물다. ‘게임이 플레이어를 극단주의로 급진화시키는가’라는 핵심 질문에 대한 인과적 증거는 아직 확보되지 않았다. 논문의 서사는 일견 납득이 가능한 것이지만, 설득력과 증거는 다른 문제다. 미국 중심의 분석이기 때문에 한국이나 일본, 유럽 등 다른 문화적 맥락에서의 게임과 극단주의의 관계는 별도의 연구가 필요하다. 게임 산업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변화, 예컨대 다양성 확대 노력, 포용적 캐릭터 디자인, 커뮤니티 관리 혁신 등도 이 문헌 검토의 범위 밖에 있다.
이 논문이 게임은 위험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들 스스로 연구의 한계를 인정하며, 게임 공간의 가능성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문제는 게임이 아니라 방치다. 다만, 게임 오픈 채팅창에서 “ㅋㅋ 장난인데 왜 진지해”라는 말을 보게 되면, 이 분석을 상기해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장난이 누구의 진입로(on-ramp)인지는 웃는 쪽이 아니라 웃지 못하는 쪽이 더 잘 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