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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이스포츠팀을 팀으로 만드는가

03

GG Vol. 

21. 12. 10.

2021년 10월말, 이스포츠 업계에서는 전기가 될만한 일이 일어났다. 북미의 명문 이스포츠 구단인 페이즈 클랜이 SPAC을 통해서 내년 상반기에 나스닥 상장을 노린다는 뉴스가 나온 것이다. 사실 이스포츠 구단들의 성장세는 가팔랐고 증권시장에 상장하는 것이 최초도 아니다. 덴마크의 이스포츠 구단 아스트랄리스는 2019년 나스닥 코펜하겐 거래소에 상장됐고 영국의 길드 이스포츠는 2020년에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하지만 사람들이 놀란 것은 페이즈 클랜 측이 밝힌 기업 가치는 10억 달러였다. 


10억 달러는 지나친 고평가라는 지적은 앞다투어 나왔다. 이스포츠 산업의 장래가 유명한 것은 누구나 아는 것이지만 2020년 500억에도 못미치는 매출을 올린 회사가 조단위의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페이즈 클랜의 가치에 대한 논의가 나올 때 가장 뼈아픈 지적은 페이즈 클랜이 결국 ‘후디 조직’이라는 것이었다. 


후디 조직. 영어로 하면 Hoodie Organization이다. 이는 인기가 높은 이스포츠 구단들에 자주 붙는 멸칭이다. 이스포츠 자체로 내는 수익은 그다지 많지 않고 ‘후디’ 등의 의류를 비롯한 굿즈 판매로 돈을 버는 구단을 비하하는 것이다. 실제로 캐나다의 게임매체 더게이머의 제임스 트로튼은 페이즈 클랜의 전체매출 중 이스포츠로 올리는 수익은 20%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스포츠 구단임에도 불구하고 스포츠로 버는 수익의 규모가 작다는 것은 과연 구단이라는 조직의 존재의의가 뭔지를 생각하게 된다. 스포츠에서 발생하는 수익이 20프로에 미친다면 과연 이들에게 스포츠가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 스트리밍과 같은 미디어 활동과 브랜딩을 통한 수익창출이 주요수입원이라면 스포츠는 그저 그들에게 액세서리에 불과할 수도 있다. 스포츠적인 측면에서 퍼포먼스를 보여주면 자연스럽게 팬베이스가 늘어나게 되고 이를 통해서 수익을 창출하는 기존 스포츠 구단들의 공식이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누군가는 페이즈 클랜이 이스포츠 리그에서 우승을 해서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사진은 그저 후디가 몇천장 더 나가는 식의 마케팅 캠페인의 일환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스트리머들이 모인 집단과 이스포츠 구단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스트리머들이 모인 집단도 브랜딩을 할 수 있고 대회에도 참가를 할 수 있다. 프로로서 이스포츠 판에서 경쟁을 하는 선수들도 스트리밍을 자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둘의 차이점은 더 모호해진다. 두 개의 조직은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이 보인다. 이런 차이점에 대해서 가장 잘 대답해 줄 수 있는 인사들을 인터뷰했다. 북미의 사정을 듣고나서는 한국의 사정도 궁금해져서 인터뷰를 했다. 예상치 못하게 같은 답을 들었다. 



게임을 잘 하는 사람이 프로게이머가 되려면


인터뷰에 응한 사람은 조나단 판이었다. 라이엇 게임스의 직원으로 일하던 그가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 구단의 창립자이자 CEO로 일해줄 것을 제안 받은 것은 2015년 이었다. 그가 창단하게 된 팀 엠버는 리그 오브 레전드 챌린저스 리그에 도전을 했다. 성적을 내지 못하고 1년도 안 돼 구단 자체가 해산됐지만 그 이후로도 그는 이스포츠 과목을 가르치는 교수로, 이스포츠에 투자하는 투자자로, 아마존 게임스와 지금은 메타가 된 페이스북의 전략담당으로 일을 했다. 이스포츠의 짧은 역사를 생각할 때 이 표현이 적확할지는 미지수지만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국내 이스포츠 업계에서는 샌드박스 게이밍의 정회윤 단장이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아직도 현업에서 선수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날카로운 인사이트를 제공했다. 


그의 대답은 매우 간단했다. 스트리머가 모이면 스트리머 집단이고 선수들이 모이면 구단이다.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이 든다. 게임을 잘하는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미 엘리트 스포츠인들이 받아야 하는 훈련과 거쳐야 하는 과정들이 성립돼 있는 전통적인 스포츠와 달리 이스포츠는 아직 이런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 따라서 정말 게임을 잘하는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의 실력 차이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적은 편이다. 실력에서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의 차이를 찾기는 쉽지 않다. 


인사이더들이 이야기하는 ‘프로와 아마의 차이’는 멘탈이었다. 그저 게임을 잘하는 아마추어 시절에는 수 틀리면 게임을 놓아버려도 되고 욕을 해도 된다. 한 개인으로서 인성에 대한 비판은 들을 수 있겠지만 거기까지다. 하지만 프로 선수가 되면 상황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언행에 대한 주목이 높아지고 미디어에 노출된다. 공인의 정의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말들이 있지만 프로 선수가 된 이상 그저 게임을 즐기고 잘하던 시절과는 다른 언행을 보여야 하고 이런 언행들이 모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그들은 공인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프로 선수가 되면 아마추어 선수들 때와는 전혀 다른 수준의 압박이 가해지게 된다. 간단하게 말해서 책임감이 생기고 ‘짜증난다고 때려칠’ 수 있는 상황과는 멀어진다. 게임 한 판을 할 때마다의 압박도 전혀 다르다. 조나단 판은 “프로 선수로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멘탈적인 부분이다. 강도높은 훈련과 경기에서의 압박을 버텨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그래서 모든 게임을 잘하는 사람들이 훌륭한 선수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스트레스와 압박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전했다. 정 단장 또한 “실제로 선수들을 이해하기 위해 몇일간 합숙한 적이 있는데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굉장히 따라가기 힘든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외적인 측면에서도 논란거리를 만들면 안 되기 때문에 개인으로서의 소양도 중요한 부분이다. 한국에서도 많은 선수들이 온라인 상에서 논란이 될만한 용어를 쓰면서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북미에서도 선수들의 발언 때문에 논란이 생긴 사례를 쓰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이런 선수들이 모두 인성을 비판받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소양이 부족해서 생긴 실수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논란거리를 만들지 않고 더 나아가서는 누군가에게 영감이 될 만한 언행을 경기 외적으로도 보여주는 것은 개인적 소양에서 나온다. 



구단의 역할에 대해


강한 멘탈과 소양이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의 차이. 그렇다면 여기서 바로 따라오는 것이 구단의 역할이다. 단순히 선수를 모아놓는 것이 구단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이 이스포츠 또한 선수는 항상 완성돼 있는 존재가 아니라 키워지는 존재기도 하기 하다. 그래서 구단은 선수들의 멘탈 케어에 만전을 기해야 하며 소양을 길러주려는 노력도 해야 한다. 


조나단 판은 엠버에서의 1년을 다큐멘터리로 남겨놓았다. 그들이 챌린저스 리그에서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At All Cost〉는 이스포츠 구단의 영광스러운 부분이 아닌 실패와 좌절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독특한 지점이 있다. 조나단 판은 구단을 운영하면서 선수들의 멘탈 케어를 매우 중요하게 여겨서 이를 위한 시간을 따로 배분하고 체력적 부분과 정신력의 연결고리 또한 지적하면서 선수들에게 운동세션도 제공했다. 시즌이 진행되면서 긴 시즌을 버텨내게 하는 정신력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깨닫고 스포츠 심리학자인 웰던 그린을 헤드 코치로 영입한 적도 있다.  


물론 이런 노력들이 현재 완벽한 것은 아니며 결실을 맺기에는 아직 먼 것이 현실이다. 정 단장은 “기본적으로 우리는 선수들이 스포츠 선수들의 멘탈리티나 소양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어린 연령대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성숙함이나 노련미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스포츠 선수들의 멘탈 관리는 결국 10대-20대 청년들을 케어하는 역할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단순히 스포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업군 - 학원, 아이돌, 심지어 바둑에서까지 많은 케이스를 연구하고 벤치마킹하려 한다”고 전했다. 


할리우드 리포터에 따르면 비공식적인 통계가 말하는 프로 게이머의 선수생명은 5년 안팎이라고 한다. 일반적인 스포츠 선수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짧은 ‘생명’이다. 이스포츠 구단이 스트리머 집단과 다른 점에 대한 짧은 연구는 전세계 이스포츠 업계에 강렬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스트리머 집단이 아니고 구단으로 불리고 싶다면 제대로 된 지원체계를 확립해서 구단이 구단다워져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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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인)

캘리포니아에서 살면서 게임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에 출연하고 매체에 기고를 하며 많은 분들에게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패션부터 게임까지 분야에 상관없이 재밌는 글을 평생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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