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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란으로 1346개 검색됨

  • [UX를찾아서] 오버워치에는 미니맵이 없다

    미니맵은 게임에서 주로 사용되는 UI(User Interface)중 하나로, 게임의 상단이나 하단 구석에 항상 압축적이고 간략하게 표시되는 작은 지도를 말한다. 특히 MMO(Massively Multiplayer Online) 게임이나 FPS(First Person Shooter) 장르에서 게이머의 시야는 1인칭 혹은 3인칭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미니맵이 이용자의 편의를 위해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 보통 확장된 버전의 전체 지도는 특정 버튼을 눌렀을 때 보이는 토글(toggle) 화면으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 반면, 미니맵은 대부분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Head Up Display)로서 화면에 상시 표시된다. < Back 05 GG Vol. 22.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iyoon Kim Studied communication and anthropology at Yonsei University, and majored in media cultural studies at its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fter playing games with no great skill, grew interested in the bodily performance of gameplay and took up game research. Wrote a master's thesis analyzing the gameplay experiences of women gamers, which received the 2020 Outstanding Thesis Award from the Korean Women's Communication Association. Currently a doctoral student in Cinema and Media Studies at the University of Chicago in the United States, specializing in game culture.

  • 리듬 게임, 가장 빈곤해서 가장 자유로운(우수상)

    거듭 말하자면 리듬 게임은 빈곤한 장르다. 그러나 그 빈곤함은 게임 일반에 공통된 특정한 요소를 급진적으로 밀어붙임으로써 세공된 빈곤함이다. 가위바위보를 할 때조차도 우리는 상대와 ‘동시’에 손을 내밀어야 하고, “안 내면 술래”다. 동궤에서 리듬 게임은 유한하고 폐쇄적인 장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유한성과 폐쇄성 덕분에 우리는 극도의 해방감을 체험하게 된다. < Back 07 GG Vol. 22.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Minho Kim Received a master's degree with a thesis on Descartes' The Passions of the Soul, and is currently writing a doctoral dissertation on the development of Derrida's thought. Interested in philosophical criticism of media and culture.

  • <폴아웃 3>로 보는 후쿠시마 오염수 사태

    인간은 절멸을 앞둔 위기 속에서도 ‘프로젝트 퓨리티’가 가능하든 그렇지 않든, 계속 노력할 것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방사능 비가 내리게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상기에 서술한 문제가 실제로 발생하거나 그것이 우려될 때, 인류는 블레이드 러너의 그 장면을 다시 떠올리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인류는 살아갈 것이고 또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오늘의 결정을 신중히 하고 혹시 다른 대안이 없는지 좀 더 찾아보자는 주장은 보편타당성을 갖게 된다. 그렇기에 우려나 악몽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남의 발언을 선동으로 규정하는 선동이 더 위험한 세상 아닌가? < Back <폴아웃 3>로 보는 후쿠시마 오염수 사태 14 GG Vol. 23. 10. 10. 한국의 대표적 록 밴드 자우림의 멤버인 김윤아가 트위터(지금은 엑스)에 한 마디 쓴 걸 가지고 정치권이 시비를 거는 것을 보면서 해도 너무한다 싶었다. 김윤아는 정확히 이렇게 썼다. “나는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블레이드러너> + 4년에 영화적 디스토피아가 현실이 되기 시작한다. 방사능 비가 그치지 않아 빛도 들지 않는 영화 속 LA의 풍경. 오늘 같은 날 지옥에 대해 생각한다.” 보시다시피,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해 앞으로 방사능 비가 내리게 될 거라는 ‘사실’을 얘기한 게 아니다. 아티스트로서의 감상을 말하고 있는 것 뿐이다. 로봇개가 대통령실 경비를 선다는 뉴스를 보면서 “<사이버펑크 2077>이 현실이 되고 있다”고 쓰면 안 되는 것인가 어떤 사람은 현실판 아라사카나 밀리테크와의 부적절한 커넥션을 의심할 수도 있을 거고, 그런 얘기를 소재로 한 시나리오를 쓰는 데에 이를 수도 있을 거다. 그런데, 그런 얘기를 공개적으로 했다는 이유로 여당 대표에게 비난받아야 한다면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런 사회는 어떤 기준으로도 ‘자유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없다. 영화든 게임이든 작품은 현실의 어떤 요소로부터 영감을 받아 태어난다. 그렇기에 작품은 늘 현실의 반영이다. 동시에, 작품은 현실을 정확하게 모사할 것을 강요받지 않는다. 가령 블레이드 러너 작중의 일본적 이미지는 1980년대 “도쿄를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다”고들 하던 시기 서구인들이 가졌던 어떤 불안감의 표현이다. 친일 혹은 반일 ‘선동’이 아니다. 록펠러센터가 미쓰비시에 팔리던 시대다. <블레이드 러너>를 보고 ‘서구의 미래는 일본 자본에 지배당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라고 생각할 게 아니라 그러한 불안감의 원인, 즉 버블경제는 미국과 일본의 시민에게 무엇이었나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게 바람직한 태도이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현실을 반영한 작품을 해석해 다시 현실을 돌아보는 기회를 얻게 된다. 핵전쟁과 방사능 등 다양한 이유로 인한 지구 멸망을 다룬 이야기는 다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최근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를 통해 볼 수 있듯, 인류 최초의 핵실험은 1950년대의 국제 정세를 지배할 정도였다. 역사학자 앨런 브링클리는 자신의 저서에서 매카시즘 발흥의 원인 세 가지 중 하나로 소련의 핵실험 성공을 꼽았다(나머지 두 개는 중국의 공산화와 한국전쟁의 장기화이다). 그만큼 인류에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던 거다. 핵과 방사능을 주제로 한 창작이 많을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이치다. 이러한 작품 중에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직접적으로 연상하게 되는 것도 있는데, 핵전쟁으로 멸망한 황무지에 깨끗한 물을 공급하겠다는 ’프로젝트 퓨리티’를 주요 소재로 한 <폴아웃3>가 대표적이다. <폴아웃3>의 주인공은 ‘프로젝트 퓨리티’ 가동을 가업으로 하는 집안에 태어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아버지와 생이별하는 것으로 모험을 시작해 결국은 물의 방사능을 정화하는데에 성공한다. 어찌보면 간단하게 감동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서사 구조지만 현실과 연결해보면 쉬운 얘기는 아니다. <폴아웃3>를 통해 현실을 돌아보도록 하자. 후쿠시마 원전의 현실에서 ‘프로젝트 퓨리티’는 가능할까? 도쿄전력은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통해 가능하다는 방식의 설명을 내놓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들의 설명이 이론적으로 맞다는 것을 인증했다. 물론 이론이 실제가 될 것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 따라서 IAEA는 장기간의 관찰에 나서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론이 실제가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예외적 상황을 만들 수 있는 변수를 최대한 줄이고 통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확률적으로 볼 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시행횟수, 즉 시간이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방류가 최소 30년간 진행되는 것을 전제로 폐로 계획을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데브리’라 불리는, 방사능 폐기물과 융합된 잔해물 제거에 여태까지 진척이 없으므로 폐로에 걸리는 기간은 더 길어질 수밖에 없다. 일본 언론은 70년 이상, 나아가서는 다음 세기까지도 방류가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렇게 시간이 길어지면 예외적 상황이 발생할 절대적 가능성도 늘어날 것이다. 여기서 예외적 상황이란 ALPS의 고장 또는 외적 요인에 의한 파괴 등이다. 원전도 처음에 설계할 때에는 다양한 시나리오에서 안전성을 유지하는 걸 전제로 한다. 미사일에 직격을 당해도 멀쩡하다는 식의 설명이 대표적이다. 이론적으로는 후쿠시마 원전도 완벽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진과 쓰나미, 이로 인한 비상전력 차단과 냉각장치의 무력화는 ‘상정 외’의 사태였고, 그 결과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원전을 만들 때에는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ALPS를 중심으로 한 오염수 방류 시스템에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있는가? 만일 ALPS에 문제가 생기고 상당 기간 이것이 방치될 경우 어떻게 되는가 찬성론자들은 과학을 믿으라며 ‘원자의 아이들 교단’과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다. 정화하기 전의 오염수를 마시는 것으로 안전성을 증명하겠다거나 ‘세슘 우럭’도 평생에 한 번 정도라면 먹어도 된다는 식이다. 반대론자들은 해양생태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방사성 물질에 영향을 받은 플랑크톤이나 소형 생물들이 먹이사슬의 상위를 차지하는 다른 생물의 방사능 농축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슘 우럭’의 존재는 이의 근거이다. 과학의 최대 장점이자 약점은 이 시점에서는 뭐라 단언할 수 없다, 즉 모른다는 점을 겸허하게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근거없는 우려라고 할지 모르지만, 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근거가 없다는 게 없다는 것의 근거는 될 수 없다. 인류는 지금 있을지 모를 희생을 감수하면서 핵문명에 안주하느냐, 아니면 당장 고통스럽더라도 희생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느냐의 갈림길에 서있다. 후자는 불가능할 것 같지 않지만, 전자를 주장하는 힘이 워낙 막강하다. 사고 원전의 성공적 수습은 친원전론자 입장에선 대반격의 기틀이다. ‘사고가 나면 수습할 길이 없다’는 원전의 최대 약점을 어떤 방식으로든 극복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핵무기를 적극적으로 운용하는 것에 방점을 찍는 사람의 입장에서 봐도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배출은 승인돼야 한다. 원전에서 배출된 핵연료 등의 재처리 등을 시행하는 군사시설에서도 오염수 배출을 둘러싼 같은 논란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폴아웃3>에서 묘사된 ‘프로젝트 퓨리티’는 오히려 그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암시한다는 점을 같이 보면 어떨까 이야기에는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기 위한 비현실적 장치가 종종 등장한다. 가령 <발더스 게이트 3>의 일리시드 올챙이는 어떤가 감염병의 공포를 연상케 하는 이 장치 덕분에 주인공들은 서로의 의도나 동기를 의심하지 않고 곧바로 신뢰관계를 쌓을 수 있다. 올챙이 자체는 원 설정에 있는 것이라 해도 주인공들이 서로 신뢰를 쌓게 되는 계기가 되는 ‘올챙이 타임’은 시점이 인위적이다. 만일 이 장치가 없었다면 주인공들이 파티를 구성하기까지 그야말로 한세월이 걸렸을 것이다. <폴아웃> 시리즈 에서는 G.E.C.K이 그 역할을 한다. G.E.C.K은 시리즈마다 설정이 조금씩 다르지만 방사능 오염이라는 장애물을 타파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로 등장한다. 3편에서 ‘프로젝트 퓨리티’가 가능한 핵심 근거이다. 주인공이 볼트87에서 찾아내지 못했다면 ‘프로젝트 퓨리티’는 가능하지 않았다. 그런데 G.E.C.K은 애초에 노골적으로 비현실적 존재를 상정한 결과물처럼 느껴진다. 그렇기에 설정이 일관되지 않은 부분이 있는 거다. 게임에서와는 달리 현실에 G.E.C.K은 존재하지 않는다. Rad-away 같은 약물의 복용으로 방사능 오염을 한순간에 되돌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때문에 ‘프로젝트 퓨리티’는 애초에 비현실적이라는 가정을 전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핵은 G.E.C.K도 없고 Rad-away도 없는 우리가 함부로 이용하기에 너무나 위험한 존재이다. 그렇다면 <폴아웃3>를 통해 우리는 미래의 어떤 모습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을까? 세계 멸망 이후에도 어떻게든 인간은 살아간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인간은 절멸을 앞둔 위기 속에서도 ‘프로젝트 퓨리티’가 가능하든 그렇지 않든, 계속 노력할 것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방사능 비가 내리게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상기에 서술한 문제가 실제로 발생하거나 그것이 우려될 때, 인류는 블레이드 러너의 그 장면을 다시 떠올리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인류는 살아갈 것이고 또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오늘의 결정을 신중히 하고 혹시 다른 대안이 없는지 좀 더 찾아보자는 주장은 보편타당성을 갖게 된다. 그렇기에 우려나 악몽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남의 발언을 선동으로 규정하는 선동이 더 위험한 세상 아닌가? Tags: 후쿠시마, 오염수, 폴아웃3, 프로젝트퓨리티, GECK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시사평론가) 김민하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시사평론가로 활동하지만 게임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게이머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냉소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돼지의 왕』이 있고,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우파의 불만』, 『트위터, 그 140자 평등주의』 등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최근작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가 있다.

  • 스트리밍 어드벤처 : 서사라는 꿈과 퍼즐이라는 전의식으로

    어드벤처 게임이란 상당히 이상한 맥락의 장르명이다. 농담을 조금 보태자면, 서사가 있는 비디오 게임 중 ‘어드벤처’를 경험하지 않는 게임이 어디 있겠는가? 어니스트 아담스Ernest Adams는 『 Fundamental of Game Design』에서 ‘많은 모험적인 특징을 가진 게임들이 어드벤처 장르가 아니며, 반대로 많은 어드벤처 장르의 게임들이 모험을 다루지 않는다.’라며 이 장르명이 가진 이상한 아이러니를 언급한다. < Back 스트리밍 어드벤처 : 서사라는 꿈과 퍼즐이라는 전의식으로 29 GG Vol. 26. 4. 10. 어드벤처 게임이란 상당히 이상한 맥락의 장르명이다. 농담을 조금 보태자면, 서사가 있는 비디오 게임 중 ‘어드벤처’를 경험하지 않는 게임이 어디 있겠는가? 어니스트 아담스Ernest Adams는 『 Fundamental of Game Design』에서 ‘많은 모험적인 특징을 가진 게임들이 어드벤처 장르가 아니며, 반대로 많은 어드벤처 장르의 게임들이 모험을 다루지 않는다.’라며 이 장르명이 가진 이상한 아이러니를 언급한다. 물론 이 명명에는 명백히 역사적 근거가 있다. 이 장르가 지칭하는 ‘어드벤처’는 모험이라는 일반명사가 아니라 돈 우즈Don Woods와 윌리엄 크라우더William Crowther가 제작한 최초의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 「콜로설 케이브 어드벤처Colossal Cave Adventure」(1976)에서 가져온 단어이기 때문이다. 이후 간단히 부르기 위해 제목을 「어드벤처Adventure」로 축약한 이래, 이 게임과 유사한 게임들을 묶어 ‘어드벤처’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근간의 ‘게임명-like’의 방식으로 장르명을 붙이는 경향과 같다고 할 수 있다. * DOS 버전의 「콜로설 케이브 어드벤처」 어드벤처 장르는 초기 비디오 게임이 가진 한계, 그러니까 길고 복잡하며 기존 매체와 유사한 형식의 서사를 담지 못하던 그 때에 대안으로 등장했다. 일단 그 시초인 「콜로설 케이브 어드벤처」가 텍스트와 문자 입력식 파서(Parser) [1] 를 이용했던 것은 TRPG의 형식을 비디오 게임에 적용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 장르에 시각적 요소를 이식한 로버타 윌리엄스Roberta Williams가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유사한 서사를 재현하기 위해 「미스터리 하우스Mystery House」(1980)를 만들었다는 사실 또한 익히 잘 알려져 있다. 물론 초기 비디오 게임 전반이 기존의 매체를 일정량 재매개remediation하는 일이야 흔했겠지만, 어드벤처는 그러한 목적을 꽤나 진지하게 다룬 장르다. 다른 곳도 아닌 조지 루카스의 ‘루카스 아츠Lucas Arts’가 이 장르의 대표적인 제작사였다는 사실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이들은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2] 장르로 두 편의 「인디아나 존스」게임을 만들었으며, 스티븐 스필버그의 미완된 영화 아이디어를 이용해 「더 디그The Dig」 (1995)를 만들었다. 앞서 언급한 로버타 윌리엄스도 이후 애거사 크리스티의 미스터리를 떠오르게 하는 「로라 보우」 연작을 만든다. 더 드리머스 길드The Dreamers Guild는 할란 엘리슨Harlan Ellison의 명작 SF 단편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I Have No Mouth, and I Must Scream」(1995)를 동명의 어드벤처 게임으로 만들었다. 델핀 소프트웨어Delphine Software가 만든 첩보 어드벤처 게임인 「오퍼레이션 스텔스Operation Stealth」(1990)가 북미판에선 「007 제임스 본드 : 더 스텔스 어페어007 James Bond : The Stealth Affair」로 둔갑한 웃지못할 사례도 존재한다. 따라서 어드벤처라는 장르가 하나의 ‘장르’로 규합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서사라는 개념을 취득하겠다는 ‘꿈’같은 욕망이 있다. 그리고 이 ‘서사성’이란 기존 매체에 대한 전유적 성질을 가진다. 제이 데이비드 볼터Jay David Bolter와 리처드 그루신Richard Grusin은 이 재매개를 흥미있게 바라본다. 그들은 비디오 게임(특히 「미스트Myst」(1993))를 두고 ‘영화와 비슷해보이면서 더 나은 것’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다고 말한다. 그루신과 볼터는 「미스트」가 필름 누아르에서의 탐정의 시점을 차용하고 있지만, 그 서사적 평온함은 오히려 비할리우드적 영화들(이를테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과 더 유사하다고 말한다. 탐정으로서의 플레이어는 끝없이 세계를 탐색하지만 그 뒤를 기대하게 만들어야 할 폭력, 공포, 폭로는 부재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미스트」에 안토니오니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퍼즐 풀이’다 [3] . 볼터와 그루신의 연구 대상은 특정 장르가 아니라 비디오 게임이라는 매체 전체였다. 그럼에도 그들의 사유가 「미스트」로 대표되는 어드벤처 게임의 본질과 연결되었다는 지점이 흥미롭다. 클라라 페르난데즈-바라Clara Fernández-Vara는 「Introduction to Game Analysis」에서 어드벤처 게임을 ‘플레이어가 퍼즐을 해결함에 따라 게임의 스토리를 열어주는 일련의 서사적 퍼즐로 구성’된다고 규정한다. ‘어드벤처’라는 장르는 「콜로설 케이브 어드벤처」이래 다종의 하위 장르로 분화했으며, 따라서 이들을 명백한 하나로 규합하기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핵심을 ‘서사’와 ‘퍼즐’이라는 양대의 축에 두는 것은 가능하다. 어드벤처 게임은 본질적으로 ‘서사장르’다. 하지만 단순히 서사를 출력하기만 해서야 비디오 게임으로서의 구조는 구축될 수 없다. 따라서 동원되는 것이 바로 ‘퍼즐’이다. 여기서 말하는 ‘퍼즐’은 광의의 의미를 가진다. 이를테면 춘소프트의 「 카마이타치의 밤」같은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은 어떠한가? 이런 게임에선 「미스트」나 「원숭이섬의 비밀」등에서 볼 수 있는 명시적이고 발상적인 퍼즐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텍스트 어드벤처가 근본적으로 지니고 있는 하이퍼 텍스트적인 성질이 퍼즐을 대신한다. 텍스트 어드벤처는 상황과 함께 가능한 선택지를 제공한다. 그 경중에 차이는 있겠지마는, 어찌되든 각 선택은 이후 출력되는 텍스트(=서사)의 방향을 결정한다. 따라서 이 게임에서 퍼즐은 ‘서사’라는 미로 전체가 된다. 여기서 퍼즐은 형식이 아니라 구조다. 어드벤처는 ‘퍼즐’이라는 구조를 통해 ‘서사’를 체감시킨다. 꼭 텍스트 어드벤처가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원숭이 섬의 비밀」(1990)의 디렉터인 론 길버트Ron Gilbert는 「 Why Adventure Games Sucks」(1989)에서 어드벤처 게임이 지향해야 할 요소로 ‘목표의 명확성’과 더불어 ‘퍼즐과 서사의 결합성’을 거론한다. 이 기치 아래에서 서사적 목표와 퍼즐적 목표는 일체화한다. 쉽게 말해 ‘문’이라는 목적이 발생하면 플레이어는 그 문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간다는 것은 서사를 추동하는 것이다. 어드벤처 장르에 있어서 플레이어의 주요 수행은 결국 퍼즐 풀이다. 그리고 서사는 이 퍼즐에 대한 일종의 보상으로 주어진다. 플레이어는 퍼즐과 서사라는 양대의 축 사이에서 진자운동을 하며 점진적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이 관점이 현재에 어드벤처라는 장르를 규정하는 중요한 준거틀이 된다. 비디오 게임에 서사가 보편화 되어버린 지금 시기에, 과연 ‘무엇’을 어드벤처라는 범주로 확정할 수 있을까? 어드벤처는 결국 (광의의 개념에서의) 퍼즐과 그것을 지탱하는 (구체성과 무관한 개념에서의) 서사라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장르다. 퍼즐은 아이템 수색, 결합, 비밀번호 탐색, 문 열기 따위의 보편적인 방식을 넘어 대화의 양상 조정, 진행 방향의 지시, 인간 관계의 관리, 추리와 해답, 단순 수집과 정보 처리 등을 모두 포함한다. 서사 역시 단방향성이나 순차성을 넘어 「미스트」나 「곤 홈Gone Home」 (2013)같은 환경 스토리텔링, 「파이어워치Firewatch」(2016)같은 비의적이고 내적 서술에 가까운 방식을 모두 포함할 수 있다. 보는 것과 플레이하는 것 어드벤처 게임이 기존의 매체, 특히 영화를 상당히 의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해보자. 어드벤처라는 장르의 욕망은 아무리봐도 플레이 가능한playable 서사의 구축을 향하고 있다. 「 미스트」같은 퍼즐 중심의 게임이 서사의 직접성을 극히 줄였지만, 오히려 「곤 홈」같은 워킹 시뮬레이터 [4] 들은 환경 스토리텔링이라는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서사’의 텍스처를 확장한다. ‘영화와 가까워지고 싶은’ 욕망은 시에라 온라인의 문제작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 (1995)나 FMV 같은 하위 장르의 게임들에서 읽을 수 있다. 물론 대상으로 삼는 영화는 ‘서사 영화’임이 자명하다. 따라서 어드벤처 장르는 서사를 ‘보는 것’에서 ‘플레이하는 것’으로 전환시키는 것에 장르적 준거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어드벤처는 비디오 게임의 모든 장르 중 가장 기존 미디어와 강하게 관계하며, 그 긴장의 한복판에 있다. 타입문의「Fate/Stay Night」(2004)을 두고 ‘이것은 문학’이라는 우스개가 나오는 배경에도 아마 이러한 긴장이 있었을 것이다. 즉 어드벤처에는 전(前) 매체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있다. * 「판타스마고리아」 문제는 서사 수용이라는 행위에 드는 본질적 수동성에 있다. 서사는 왜 재미있는가? 혹시 수동적이기 때문에 재미있지는 않는가? 브라이언 업튼Brian Upton은 서사를 ‘읽거나 보는’ 행위에도 일정한 플레이의 양식이 있다고 정의한다 [5] . 하지만 이 플레이는 어디까지나 정신적 작동일 뿐 물리적 수행을 동반하지는 않는다. 「헤비 레인Heavy Rain」(2010)에서 서사를 추동시키기 위해 아기의 기저귀를 직접 갈아야 할 때, 여기엔 무언가 이상한 저항감이 발생한다. 플레이어는 뒷 이야기를 알고 싶을 뿐이지 생전 처음보는 아기의 기저귀를 갈기 위해 스틱과 버튼을 허우적 대고 싶은 마음은 없었을텐데 말이다. 한편 비디오 게임 플레이에는 노동과도 같은 측면이 있다. 줄리안 퀴클리흐Julian Kücklich는 플레이Play와 레이버Labour를 합쳐 플레이버Playbour라는 단어를 만들어냈다. 물론 퀴클리흐가 규정한 플레이버는 플레이어들의 자발적인 노동으로서의 모딩Modding을 일컫는 것이었다 [6] . 하지만 이 개념은 점차 범주가 넓어져 이제는 게임 플레이 내부의 노동화된 행위까지 아우르게 되었다. 조이스 고긴Joyce Goggin은 플레이버의 의미를 아이템 파밍이나 레벨 그라인딩같은 반복적 행위에까지 플레이버의 범주를 확장한다. 범주는 유동적인 것이며, 플레이버의 문제는 전통적인 노동과 여가의 경계를 뒤흔든다 [7] . 이 논의를 다시 어드벤처 장르로 던져보자. 올드 미디어에서 서사는 조건없이 주어지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스티븐 스필버그의 「인디아나 존스 : 최후의 성전Indiana Jones and The Last Crusade」(1989)에서는, 베네치아 도서관 지하에 무덤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얼마지나지 않아 석판을 획득하는 인디애나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루카스 아츠가 만든 동명의 게임(1989)에서 지하 무덤은 상당히 복잡한 미로로 구성되어 있으며, 석판을 획득하기까지 상당히 많은 양의 퍼즐을 풀어야 한다. 어드벤처 게임의 흥미로운 지점은 퍼즐 풀이라는 메커닉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서사의 측면에서 보자면야, 이것은 불필요한 노동의 강요와도 같다. 어드벤처 장르가 전(前) 매체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앞선 규정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솔직히 말해 어드벤처 게임에는 일부 ‘피곤한’ 구석이 있다. 대행화된 노동과 매체의 아이러니컬한 우회로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표한 『2025 게임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게임을 즐기지 않은 사람들의 36%가 그 이유로 ‘게임의 흥미가 감소했으며 게임방송 시청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이 자료에 즉시 플레이버의 논의를 가져오는 것은 지나친 연결일 수 있겠다. 하지만 2022년 NewZoo가 발표한 「Gamer Segmentation」연구 자료에 의하면. 게임의 플레이보다 게임 방송을 더 많이 보는 게이머들, 소위 The Backseat Viewer 집단은 ‘게임을 하기에 적합한 기기를 갖추지 못했거나 시간이 없기 때문에’ 게임 방송을 본다고 답했다. 말하자면 (기기 마련의 조건을 경제적 조건으로만 한정짓지 않는다면) 이런 구성에는 필히 게임의 플레이를 하기 위한 ‘자원의 소모’가 일정량 장벽으로 작용한다고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의 커뮤니티 플레이 게임 방송의 현장에서 여전히 인기 있는 종목은 경쟁형 게임이다. 하지만 종합 게임 스트리머들에게 있어 소위 ‘서사 게임’ 플레이는 적은 비중이라고 할 수 없다. 일부는 음성이 지원되지 않는 게임의 텍스트를 스트리머가 직접 ‘연기’해 전달하기도 하고, 게임의 불투명하거나 혼란스러운 서사를 시청자들과 논의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게임이 어드벤처 게임의 형식에 포함되는 호러 장르 게임은 특히 스트리밍계의 인기 콘텐츠다. 공포 게임 전문 스트리머라고 할 수 있는 수탉은 2026년 3월 기준 구독자가 100만 명을 돌파했다. 덕분에 이러한 ‘방송’의 방식을 게임의 내부에 이식하는 어드벤처 게임들도 존재한다. 퀀틱 드림은 당사의 게임에 사용할 수 있는 트위치 확장 프로그램인 ‘Community Play’를 제공해 시청자들의 의견을 수집할 수 있도록 한다. 「애즈 더스크 폴즈As Dusk Falls」의 경우 게임 내부에 ‘방송 모드’가 탑재되어 플랫폼의 채팅을 통해 선택지 투표가 가능하도록 유도한다. 어드벤처 게임을 위시한 ‘서사 게임’은 이미 게임 방송이라는 구조에 상당히 적응해있는 상태다. 앞서 말했듯 어드벤처 장르는 퍼즐과 서사라는 두 개의 축으로 움직이는 장르다. 이 때 퍼즐은 수행이고 서사는 결과다. 그것이 어드벤처 게임이 스스로 매개하고 있는 전(前) 매체와의 차이점이다. 이렇게 정리했을 때, 어드벤처 게임에서의 ‘유희 노동’은 전적으로 서사가 아니라 퍼즐에 매여있다. 어드벤처 게임을 플레이 한다는 것, 특히 그 안에서 서사를 추동하기 위해 게임 메커닉에 집중한다는 것은 ‘퍼즐’이라는 플레이버 수행에 대한 몰입이다. 만약 이 수행이 없는 상태로 서사만을 즐긴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어드벤처 게임이 매개하고 있는 전(前) 장르의 수용에 한없이 가까워진다. 지하동굴의 퍼즐에서 골머리를 썩지 않는다면, 석판을 획득하는 인디애나를 즉시 관람하는 「 인디아나 존스 : 최후의 성전」을 보는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뜻이다. 즉 누군가가 퍼즐이라는 노동을 대행해준다면, 관람자의 위치는 다시금 전(前) 매체 수용자의 자리로 돌아가버리게 된다. * 「인디아나 존스 : 최후의 성전」의 지하 묘지 따라서 르네 글라스René Glas가 규정한 대리적 플레이Vicarious Play [8] 란 상당히 이상한 역학을 만든다. 어드벤처 게임에서 퍼즐 수행을 타인에게 ‘맡겨버리고’, 그 결과물인 서사만 취한다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서사 비디오 게임이라는 매체적 변곡을 ‘가로지른 뒤’, 다시 이전 미디어의 형식으로 ‘귀환해버리는’ 우회된 경로를 그리는 수용자성이다. 이 때 ‘게임’이며 동시에 ‘영화’인 이상한 형식이 만들어진다. 물론 다른 장르 역시도 그러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드벤처 게임에서 (그 전제조건을 따져보았을 때) 퍼즐이라는 요소가 상실된다는 것은 다른 의미를 가진다. 그 결과는 매개하는 다른 매체와의 친연성의 즉시적 증가다. 퍼즐이 포기된 어드벤처 게임에는 무엇이 남는가? 그것은 (재매개로서의) 서사 뿐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어드벤처 게임의 현재는, 오히려 그것이 (기술적 한계 때문에) 우회적으로 매개하려 했던 바로 ‘그것’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만 같다. 물론 여전히 어드벤처 게임의 팬덤은 존재하고, 퍼즐을 직접 수행하는 플레이어는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비중에서 이러한 ‘대행된 모험Vicarious Adventure’의 비중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퍼즐과 서사라는 양대의 축으로 지탱되던 어드벤처 게임은, 이제 수행적 노동을 위임해 서사라는 결과만을 취하려는 수용자들의 손에 의해 재구성되고 있다. 기술적 한계를 넘어 서사를 체감시키려 했던 이 야심의 장르는 아이러니하게도 스트리밍 플랫폼이라는 환경 속에서 ‘서사만을 관람’하는 매체로 선회하려 한다. 어찌보면 서사를 얻기 위한 퍼즐 풀이라는 행위가 일종의 유희 노동playbour으로 분류될 수 있게 되었을 때에, 외주화를 통한 수용의 등장을 필연적으로 내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노동이 대행되고 서사만이 남은 이 기이한 우회로 속에서 어드벤처 장르는 (볼터와 그루신이 말했던) ‘더 나은 무언가’가 되려는 에너지를 소실하고 전(前) 매체의 그림자로 되돌아가고 있다. 긴 세션과 복잡함을 담지하기 어려웠던 초기 비디오 게임은 서사라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그 꿈은 문학 또는 영화를 향한 재매개적 형식으로 그려졌다. 그렇게 보자면 어드벤처 게임은 비디오 게임의 꿈과 같은 장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구체성의 엔진은 퍼즐과 서사의 진동이라는 독특한 모델의 ‘비디오 게임’을 성립시킬 수 있었다. 그러므로 대행된 플레이를 통한 퍼즐의 소거는 오히려 초기 비디오 게임이 꾸던 바로 그 꿈과 맞닿는다. 하지만 어쩐지 그 꿈에는 현재는, 지나치게 꿈이 되어서 현실 감각이 소실되어 가는 것 같은 이상한 아이러니를 만든다. 물론 당연하게도 영화를 보는 것과 어드벤처 게임의 스트리밍을 보는 것은 결코 같지 않다. 게임 플레이 관람에는 대행된 수행 육체와 결과로서의 서사라는 이중화된 관람 경험이라는 특이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래도, 꿈과 연결되기 위한 전의식preconscious으로서의 퍼즐은, 그것의 감각을 완전히 전달하지 못하는 공허함으로 향하는 것만 같다. 비디오 게임에서의 서사의 일상화, 그리고 (퍼즐보다 전투를 중시하는) 액션 어드벤처의 주류화는 일견 고전적인 어드벤처 장르의 축소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어드벤처 게임은 오히려 ‘서사와 퍼즐 사이의 변증법적 진동’을 통해 그 생존을 연장했다. 그렇기에 ‘서사의 전달’이라는 가장 꿈같던 그 목적에 한없이 가까워진 지금이 어드벤처 게임이라는 장르의 가장 기묘한 시간처럼 보인다. 물론 그럼에도 어드벤처 게임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여전히 퍼즐이라는 전의식의 불투명함에 매료된 자들이, 서사라는 꿈을 꿈으로 남겨두기 위해 분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해보자면, 그러니까, 어쩌면 처음부터, 서사의 매체가 되려는 꿈을 꾼 게 원인이었을지도 모를 일 아닐까. 시에라 온라인 게임의 제목을 얄궂게 빌리자면, 완전한 서사 매체라는 목적이야로 비디오 게임의 ‘판타스마고리아’였던 것 아니었을까. [1] 컴퓨터가 처리할 수 있도록 텍스트를 이용해 자연어 명령어를 적어넣는 행위를 말한다. 초기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들은 플레이어가 직접 텍스트를 타이핑해 게임을 진행해야 했다. [2] 포인터를 이용해 특정한 오브젝트와 명령어를 클릭해 진행하는 어드벤처의 하위 장르. [3] 제이 데이비드 볼터 & 리처드 그루신, 『재매개』, 커뮤니케이션북스(2006) [4] 워킹 시뮬레이터를 어드벤처의 하위 장르로 포섭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 무엇보다 서사는 있지만 퍼즐의 구조가 상당히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퍼즐이라는 개념을 광의적으로 해석한다면 환경 스토리텔링이 가진 정보의 수집과 결합을 퍼즐의 영역에 넣을 수 있다. 자이언트 스패로우의 「왓 리메인즈 오브 에디스 핀치」같은 게임은 워킹 시뮬레이터면서 일부 복잡하지 않은 퍼즐을 삽입하기도 한다. [5] 브라이언 업튼, 「플레이의 미학」, 에이콘(2019) [6] Julian Kücklich(2005), Precarious Playbour: Modders and the Digital Games Industry, The Fibreculture Journal [7] Joyce Goggin(2011), Playbour, farming and leisure, Ephemera: Theory & Politics in Organization, 2011, Vol 11, Issue 4, p357 [8] 르네 글라스는 스트리머의 유희적 몰입Ludic Immersion을 지켜보는 비유희적 참여Non-Ludic Engagement라는 구분으로 이 개념을 정리한다. 이 과정에서 시청자는 게임 플레이라는 인지적/육체적 수고를 스트리머에게 ‘위임’하는 구조를 가진다. 대리 플레이의 결과, 시청자는 그 결과로서의 서사와 감정적 보상만을 취사적으로 취하게 된다. René Glas(2015), Vicarious play: Engaging the viewer in Let's Play videos, European Journal for the Philosophy of Communication 5 (1):81-86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평론가) 이선인 만화와 게임, 영화를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합니다. MMORPG를 제외한 <파이널 판타지> 전 시리즈 클리어가 라이프 워크입니다. 스팀덱을 주로 사용합니다.

  • 피카츄는 나와 함께 잠드는 것이 기대되는 모양입니다....-<포켓몬 GO>와 <포켓몬 슬립>의 현실 침투 작전

    왜 포켓몬 컴퍼니는 ‘수면 엔터테인먼트’라는 처음 들어보는 단어의 조합으로 우리의 수면 습관을 관리하고 싶어 하며, 왜 이 수면 측정 앱은 흥행에 성공했는가? < Back 피카츄는 나와 함께 잠드는 것이 기대되는 모양입니다....-<포켓몬 GO>와 <포켓몬 슬립>의 현실 침투 작전 16 GG Vol. 24. 2. 10. 내 포켓몬이 부르니까 자러 가야지 2023년 7월 처음 출시된 포켓몬 컴퍼니의 새로운 모바일 게임 <포켓몬 슬립Pokémon Sleep>은 출시 2개월 만에 전 세계 누적 수면 시간 10만년을 돌파 1) 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포켓몬 컴퍼니는 ‘수면 엔터테인먼트’라는 듣도 보도 못한 장르를 내세우며 이 앱이 게임이라고 주장했다. 게임의 방식은 단순하다. 이용자가 자면, 게임은 이용자의 수면패턴을 분석하고 이에 맞는 포켓몬을 수집한다. 보다시피 이용자가 재미를 느낄 요소라고는 포켓몬밖에 없다. 즉 <포켓몬 슬립>의 흥행은 오로지 ‘포켓몬스터’라는 유명하고 사랑받는 주머니 괴물들의 매력 하나만으로 이루어졌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전 세계 엄청난 열풍을 일으킨 <포켓몬 GO>의 목표 또한 오로지 현실 공간을 무대로 다양한 포켓몬을 포획하는 것이었다. 포켓몬스터라는 IP는 성공적으로 게임 이용자에게 재미를 유도하고 두 게임을 ‘게임’이라고 인식시켰다. 일단 게임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자 두 게임은 IP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IP를 통해 흥행에 성공한 게임은 역으로 자신들의 현실과의 접합을 이용해 포켓몬스터 IP의 해상도를 높여갔다. <포켓몬 슬립>을 살펴보자. <포켓몬 슬립>이 이용자 수면 측정의 개연성으로 채택하는 것은 바로 포켓몬의 잠자는 모습 연구다. 정해진 시각이 되면 이용자의 파트너 포켓몬은 잠자기 약속을 지키라며 이용자에게 알림을 띄운다. 이용자는 파트너 포켓몬과 함께 잠자리에 든다. 다음날 눈을 뜬 이용자를 맞이하는 것은 자신과 비슷한 수면 습관을 가진 새로운 포켓몬들이다. 이를 반복하며 이용자는 포켓몬을 수집하고 연구하며 성장시킨다. 그 과정에서 이용자는 자연스럽게 매일 밤 포켓몬과 함께 잠들고, 포켓몬과 눈 뜨는 일상을 보내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용자는 게임에게 지시받은 대로 매일 포켓몬이라는 생명체를 ‘연구’하게 된다. 포켓몬 연구자가 된 이용자는 포켓몬이라는 가상의 생명체에 대해 현실의 생명체보다 많은 정보를 얻게 된다. 포켓몬이라는 형상은 이용자 속에서 점점 구체화되며, 이용자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매개로 그들과 가장 내밀한 일상을 공유하며 ‘현실을 함께 한다’는 감각을 전달받는다. 구체화된 형상과 실재하는 감각이 심상에서 결합하며 포켓몬이라는 가상의 생명체는 현실 공간에서의 존재감을 획득한다. 포켓몬 컴퍼니의 이 같은 전략은 기존 팬들의 애착을 강화하고 모바일의 접근성을 이용해 새 이용자를 유치한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이러한 전략은 포켓몬스터가 단순히 거대한 IP일뿐만 아니라 꾸준히 콘텐츠의 무한확장 및 구체화를 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포켓몬 컴퍼니는 대내외적으로 포켓몬이라는 생명체를 구체화시키고 그들과 이용자의 거리를 좁히는 방향으로 IP를 개발해왔다. 대표적인 사례인 <포켓몬 GO>는 그저 일부분이다. 현재 포켓몬 게임은 가장 기본이 되는 콘솔 게임이외에도 모바일 게임, 오프라인 카드게임, 아케이드 게임 등 모든 매체를 통해 서비스되고 있다. 어딜 가나 보이는 다양한 상품과의 콜라보 ‘굿즈’까지 포함할시 포켓몬은 체감상 비둘기보다도 자주 목격된다. 포켓몬이라는 허구의 생명체는 여러 매개를 통해 지금도 끈질기게 현실을 침범하고 있는 셈이다. 포켓몬스터 게임 시리즈의 가장 최근작인 <포켓몬스터 스칼렛·바이올렛>의 DLC에서는 이용자가 포켓몬을 씻기고, 먹이는 걸 넘어 포켓몬의 몸으로 행동하고 다른 이용자와 상호작용할 수 있다. <포켓몬 슬립>이 게임이냐? 앞선 일련의 전략들은 현실의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AR 게임 <포켓몬 GO>의 엄청난 흥행과 현실의 생활 습관을 관리하는 <포켓몬 슬립>의 약진이라는 특수한 결과를 탄생시켰다. 왜 ‘특수한’ 결과일까? 평소 우리가 보아온 다른 사례들과 비교하면 쉽게 답을 알 수 있다. 이 대대적인 IP 경쟁력 강화 작업은 포켓몬 컴퍼니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가령 <포켓몬 슬립>은 정말 ‘게임’인가? <듀오링고Duolingo>는 ‘게임하듯 재미있게’ 언어를 배우는 언어학습 앱이지만, 아무도 그것을 게임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아무리 녹색 부엉이가 호들갑을 떨어도 <듀오링고>를 재미있기 때문에 시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반면 <포켓몬 슬립>은 <듀오링고>처럼 수면습관 개선이라는 명백히 실용적인 목적을 가지지만 게임으로 여겨진다. 물론 앞서 말했듯 포켓몬의 존재 덕분이다. ‘포켓몬’에 대한 애정이 사람들을 웬 수면측정 앱으로 이끌었다.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이란 게임이 아닌 분야에 게임적 요소를 적용하여 흥미를 유발하는 것을 뜻하는 단어다. 이 연로한 단어를 모셔온 이유는 이 단어가 근래에는 더 이상 예전만큼 주목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디지털 환경이 인간의 생활을 지배하는 지금, 게임적 메커니즘 또한 인간의 생활 전반에 스며들었다. 사람들은 매일 금융거래 앱에 들어가 출석체크를 하고 포인트를 받으며, 중고거래 앱에서 다양한 미션을 수행하며 자신의 레벨을 올린다. 이것은 달리 말해 이런 세상에서 게임이 ‘게임’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게임적 요소로 치장한 가지각색의 서비스보다 그들이 조금 더 게임 같아야 한다는 뜻이다. 대다수의 게임에게 이것은 고민거리가 아니다. 거의 대부분의 게임은 게임적 요소를 통해 이용자를 유혹해야만 하는 실용적인 목적이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떠한 사명감이나 따내야할 사업 예산이 없는 이상 게임에 실용적인 목적을 넣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다. 게임의 본질, 즉 재미에만 충실하면 당연히 게임은 금융거래 앱이나 중고거래 앱보다 재밌고 게임 같다. 그렇지 않은 게임도 물론 일부 있다. 그에 대해선 유감이다. 이런 현실에 반해 포켓몬 컴퍼니는 실용적인 목적을 역으로 자신들의 IP 강화에 이용하였다. 게임 이용자는 대개 현실을 바라지 않는다 이번에는 훨씬 최신이지만 마찬가지로 근래 관심이 부쩍 시들어버린 단어를 가져와보겠다. 바로 한때 전 세계인을 3차원 가상공간으로 불러 모았던 메타버스(Metaverse)다. 코로나19를 타고 전 세계로 퍼진 메타버스 열풍은 빠르게 퍼진 만큼 빠르게 식었다. 대면 활동이 제한되는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현실의 사회·경제활동이 가능하단 점은 한때 메타버스를 주목해야하는 가장 큰 이유이자 게임과의 차별점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종식되고 현재 남아있는 <로블록스Roblox>나 <제페토ZEPETO> 등의 메타버스 공간을 게임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그들 세계는 현실과 닮아있을지언정 현실 공간과 별개의 규범으로 운영되며, 이용자들은 즐거움을 추구하고, 그들이 즐거운 이유는 그것이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메타버스로 통칭되는 게임의 현재 모습은 현실의 사회·경제활동을 수행하는 것과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메타버스의 대다수 이용자가 어린 연령대라는 사실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로블록스>의 로우 폴리곤 세상은 빈말로도 현실과 닮았다고 할 수 없다. 이용자들은 현실과 다른 다양한 세계를 넘나들며 체험하고 교류하는 것을 주요 즐거움으로 삼는다. <제페토> 역시 마찬가지다. 언론에 <제페토>는 어쨌든 얼굴인식과 AR 기술을 활용한 메타버스로 소개되지만, <제페토>의 아바타는 현실과 거리가 멀다. 더 중요한 사실은 <제페토>를 깊게 즐길수록 아바타가 점점 현실의 모습과 멀어진다는 것이다. 달라진 아바타로 다양한 테마의 배경을 즐기는 것이 <제페토>의 핵심이다. 이 사실은 대부분의 AR 게임이 왜 흥행에 실패하였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해준다. 즐거움을 원하는 게임 이용자는 대개 현실을 바라지 않는다. 반면 포켓몬이 선사하는 이 모든 간접 체험에도 포켓몬은 현실이 아닌 가상의 생명체다. 이용자들은 포켓몬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을 현실에서 보고 싶어 한다. 가상공간에서 굳이 현실의 일을 하는 것은 내키지 않지만, 현실의 일에 가상의 상상력이 끼어드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거의 유일하게 성공한 AR 게임이 <포켓몬 GO>라는 사실은 AR 기술의 한계에도 포켓몬이 그들의 방대한 배경을 통해 이용자들을 감성적으로 매혹하고, 이를 믿어주고 싶은 이용자들이 넘어가준 것에 가깝다. ‘포켓몬’을 가지고 있지 않은 다른 게임이 현실에 발을 들이기 위해서는 현실에 첨가할 매력적인 가상을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는 다른 도구를 찾아야만 할 것이다. 보통은 기술력으로 돌파구를 찾고, 그래서 돈이 많이 든다. 캐릭터는 좋은데 게임성은 별로? <포켓몬 슬립>은 강력하게 형성된 IP에 힘입어 성공한 ‘게임’으로 거듭남과 동시에 그 자체로 이용자들이 ‘포켓몬’에 몰입할 수 있도록 유도하였다. 모바일 게임의 규모를 무시할 수 없는 현재의 게임 지형에서 포켓몬 컴퍼니의 이러한 노력은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더불어 <포켓몬 슬립>의 사례는 매력적인 캐릭터 IP의 영향력이 단순히 뽑기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캐릭터 수집 모바일 게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캐릭터 IP는 게임의 한 구성 요소를 넘어 독자적으로 재미와 아우라를 창출할 수 있는 요소로 등극하였다. 독자성을 가진 IP는 결코 베껴지지 않는단 점에서 그것을 보유한 회사의 가장 강력한 무기로 남는다. 점진적으로 애착 관계를 형성한 이용자에게 캐릭터의 존재는 이미 현실이고, 이는 대체 불가능하다. 다만 캐릭터 IP가 게임 안에서 독자적으로 재미를 창출하는 지위에 놓였다는 이야기는 사실임과 동시에 아이러니한 논란을 동반한다. IP는 게임의 중대한 구성 요소로서 애정을 기반으로 한 재미를 담보하지만, 게임 이용자들이 ‘게임성’이라는 각자 다른 정의를 기준으로 게임을 평가할 때 ‘캐릭터’의 존재는 흔히 논외이기 때문이다. ‘게임성’이라는 모호한 개념은 대개 재미와 비슷한 용도로 사용되지만 캐릭터를 보며 느끼는 재미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실제로 포켓몬스터 게임 시리즈는 신작이 나올 때마다 이용자들 사이에서 격한 ‘게임성’ 논란을 일으켰다. 같은 시기 같은 장르의 다른 게임에 비해 질 낮은 그래픽과 각종 버그 등 기술력이 떨어진다는 지적 또한 매 게임 시리즈마다 있어왔다. <포켓몬스터 스칼렛·바이올렛> 출시 초기에는 게임이 불가능할 정도의 다양한 버그가 문제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용자들이 게임을 할 때 이 모든 요소는 종합적으로 고려되므로, 이런 식의 분리는 무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당연하게도 게임의 모든 요소는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미비한 기술력이나 불합리한 시스템은 게임 진행 및 몰입을 방해해 시리즈 자체의 호감을 하락시키며, 그것은 IP도 마찬가지다. ‘게임성’이라는 합의되지 않은 정의를 합의하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이미 이용자들의 게임 선택 기준에는 IP를 포함한 다양한 요소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포켓몬은 왜 우리의 수면을 책임지려 하나? 왜 포켓몬 컴퍼니는 ‘수면 엔터테인먼트’라는 처음 들어보는 단어의 조합으로 우리의 수면 습관을 관리하고 싶어 하며, 왜 이 수면 측정 앱은 흥행에 성공했는가? ‘포켓몬’이라는 가상의 아이콘은 이용자가 키, 몸무게, 습성, 성격, 먹이와 서식지를 넘어 잠자는 모습까지 연구하게 만들며 구체화된 형상으로 머릿속에 안착하는 것에 성공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들은 점차 거리를 좁히며 치밀하게 이용자의 현실 공간에 침투해 일상 속에 자리 잡았다. 포켓몬에 대한 애정이 게임을 플레이하게 만들고, 게임 플레이는 다시금 이용자의 애정을 강화시켰다. 게임에서 흔히 ‘현실’이라는 요소가 가상의 몰입을 방해하는 것과 정반대되는 구조를 통해 <포켓몬 슬립>이라는 독특한 ‘게임’은 목표를 달성했다. 이것은 현재 게임에서 IP라는 요소가 게임의 궁극적인 목표인 재미를 달성할 수 있는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동시에 이는 오랜 기간 축적된 IP가 어디까지 위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무엇까지 할 수 있을지 질문하게 만든다. 확실한 것은, 포켓몬은 앞으로도 이용자들의 일상을 서슴없이 침략하고 더욱 친근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1) 디스이즈게임, 2023.10.20., 수면 게임 ‘포켓몬 슬립’ 전 세계 누적 수면 시간 10만 년 돌파, https://www.thisisgame.com/webzine/game/nboard/225/?n=179083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대학원생) 손민정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현대문학과 문화를 공부 중입니다. 글과 함께한 만큼 게임과 늘 함께 해왔습니다. 별별 게임 다 합니다.

  • [논문세미나] “Sexuality does not belong to the game” - Discourses in Overwatch Community and the Privilege of Belonging

    한때 전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했던 AAA급 게임 〈오버워치(OVERWATCH)〉. 〈오버워치〉는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 내 다양한 논쟁이 오갔던 2010년대 후반을 상징하는 게임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그 인기를 입증하듯, 〈오버워치〉에는 늘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쏟아져나왔고 이를 통해 드러난 현상과 논의들이 논문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한 시기를 풍미한 〈오버워치〉는 작년 10월, 서비스를 종료해 후속작인 〈오버워치 2(OVERWATCH 2)〉로 재탄생했다. 이 글은 Triple A!라는 주제를 맞아, 2010년대 후반을 대표한 AAA급 게임 〈오버워치〉에 관한 한 논문을 다루고자 한다. 바로 오버워치 속 ‘퀴어’를 다룬 논문이다. < Back 10 GG Vol. 23.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ahin Park Interested in the boundary between the real and the virtual. Recently returned to a certain online game.

  • ‘모에’는 어떻게 발현되는가?:  서브컬처 게임 속의 인물에 대한 애착 유발 구조의 고찰

    2022년 즈음부터, 한국의 게임 업계는 만화‧애니메이션에 가까운 비주얼 표현 기법을 내세우는 게임들을 ‘서브컬처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호칭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만화‧애니메이션풍으로 묘사된 캐릭터가 등장하는 게임’이라는, 이름이라기보다 차라리 서술에 가까운 호칭으로 일컬어졌던 이들에게 상대적으로 간결한 이름이 붙은 것이다. < Back ‘모에’는 어떻게 발현되는가?: 서브컬처 게임 속의 인물에 대한 애착 유발 구조의 고찰 16 GG Vol. 24. 2. 10. 서론: ‘애착’에 살고 죽는 ‘서브컬처 게임’ 대략 2022년 즈음부터, 한국의 게임 업계는 만화‧애니메이션에 가까운 비주얼 표현 기법을 내세우는 게임들을 ‘서브컬처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호칭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만화‧애니메이션풍으로 묘사된 캐릭터가 등장하는 게임’이라는, 이름이라기보다 차라리 서술에 가까운 호칭으로 일컬어졌던 이들에게 상대적으로 간결한 이름이 붙은 것이다. 이는 그러한 표현 양식을 내세우는 게임들에 의한, 시장에의 참여도가 높아졌음을 방증한다. 순위 타이틀명 MAU(명) 19 원신 43만 23 좀비고등학교 39만 34 붕괴: 스타레일 31만 39 승리의 여신: 니케 24만 40 리버스 1999 24만 [표1] 2023년 12월 월간 인기 게임 순위(IGAWorks, 2023) 순위 타이틀명 스토어별 순위 구글 애플 원스토어 16 승리의 여신: 니케 14 18 - 18 원신 16 40 - 20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20 34 - 31 블루 아카이브 94 77 2 35 붕괴: 스타레일 33 28 - 41 리버스 1999 37 45 - 48 더블유: 크로스월드 43 61 34 39 던전앤파이터 44 36 - [표2] 2023년 12월 월간 게임 매출 순위(IGAWorks, 2023) 시장에의 참여도가 높아졌는가의 여부는, 그 장르의 게임들이 국내외 게임 시장에서 얼마나 고도의 월별 이용자(MAU) 인구수와 매출 순위를 기록하는지를 확인하여 알아볼 수 있다. IGAWorks가 발표한 2023년 12월 게임 MAU‧매출 순위에 따르면 한국 시장에서 ‘서브컬처 게임’ 중 상위권을 기록한 게임들은 〈원신〉(MAU 43만명, 19위/매출 종합 18위), 〈붕괴:스타레일〉(MAU 21만명, 39위/매출 종합 34위), 〈승리의 여신:니케〉(MAU 24만명, 39위/매출 종합 14위) 등 이미 다수가 존재한다(IGAWorks 2023) [표1][표2] . 한편으로는 MAU 실적 부문에서 다른 게임들에 비해 MAU에 있어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서브컬처 게임’이 매출 기준으로는 준수한 성적을 거두는 경우도 관측된다. 〈승리의 여신:니케〉와 더불어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MAU 50위권 바깥/매출 종합 20위), 〈블루 아카이브〉(MAU 50위권 바깥/매출 종합 31위)와 같이, 똑같은 만화‧애니메이션에 가까운 비주얼을 사용하면서도 여성형 플레이어 캐릭터로 채워진 게임들이 그러한 특징을 잘 나타낸다. 간단히 말하여 이러한 게임들에서는 상대적으로 소수의 게이머들이 보다 많은 비용을 투자하며 즐기는 경향이 강하게 드러난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러한 유형의 게이머들(이후 ‘서브컬처 게이머’들로 표기)은 게임 그 자체에 대한 충성도가 매우 높으며, 특히 여성형 플레이어 캐릭터로 채워진 게임에서 그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것은 그 캐릭터에 대한 애착, 즉 ‘모에’(萌え)를 강하게 느끼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이정훈 2021). 도대체 서브컬처 게이머들은 어떤 이유로, 그들이 즐기는 게임 속의 인물에 대해 이와 같은 애착을 어필하는 것일까? 2. 본론: 캐릭터에 대한 ‘모에’의 보편화와 개량, 노출 [그림1] 〈겨울연가〉를 모티프로 일본만화 〈은혼〉의 패러디를 시도한 일본 동인지(©白玉団子) [그림2] 〈블루 아카이브〉를 패러디한 한국 동인지 〈삼인삼색〉(©순수한불순물) ‘모에’, 다시 말하여 캐릭터를 비롯한 공상적인 피조물을 깊이 마음에 품는 행태(야스다‧손낙범 편저 2016)가 발현되는 계기는 그 행위자의 취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다만 ‘모에’를 유발할 수 있는 캐릭터의 표현 요소가 하나의 작품군, 또는 하나의 캐릭터 안에서도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음은 아즈마(東 2001) 등의 연구를 통해 확인된 바가 있다. ‘모에’라는 심리상태 자체는 그것이 굳이 만화‧애니메이션이 아닌 TV드라마를 통해서도 발현될 수 있으나(井手口 2009), 일본에서 한국 드라마 〈겨울연가〉를 시청하고 팬이 된 일본인 중에서, 작중 인물을 패러디하거나 세계관, 혹은 극중 클리셰를 오마쥬한 2차 창작물을 생산해 유통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림1] . 그러나 예를 들어 〈블루 아카이브〉와 같은 ‘서브컬처 게임’을 향유하는 ‘서브컬처 게이머’들은 캐릭터를 모사하거나 다른 IP와 조합한 2차 창작 출판물, 즉 ‘동인지’를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판매전에서 제작‧매매하는 형식으로 그 ‘모에’ 촉발 요소를 유통하고 있다 [그림2] . 즉, ‘서브컬처 게이머’들은 ‘모에’의 요소를 반복적으로 접하면서 익숙해지고, 때로는 그 표현 양식에서 파생된 창작물을 스스로 제작‧유통함으로써, 자신들 또한 다른 향유자들이 같은 표현 양식에 익숙해지도록 만드는 공모자에 위치하게 된다. 아즈마는 TV애니메이션 〈디‧지‧캐럿〉(デ・ジ・キャラット, 1998) [그림3] 의 주인공 캐릭터인 데지코(でじこ)의 대표적인 조형상 특징점인 ‘고양이 귀’, ‘메이드복’, ‘더듬이처럼 뻗은 머리카락 한 가닥’, ‘큰 손발’ 등이, 사실은 성인용 비디오 애니메이션 〈크림 레몬‧흑묘관〉(くりぃむレモン・黒猫館, 1989) [그림4] 이나 미소녀 어드벤처 게임 〈키즈아토〉(痕, 1996) [그림5] 에서 처음 등장하여 전파된 의상이나 신체적 특징 묘사의 흐름을 따르고 있다고 정리하였다(東 2001). 그의 설명대로라면 캐릭터를 조합하는 과정은 소비자로 하여금 최대한 ‘모에’를 느껴 구매욕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상업적 프로세스인 것이다. 이윽고 만화 정보 검색 사이트 〈TINAMI〉( https://www.tinami.com) 와 같은 온라인 정보교류 공간을 통해, ‘모에’를 유발하는 캐릭터의 특징들을 팬들과 크리에이터가 공유하고 유통하는 구도가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물론 이들이 캐릭터의 특징을 유통하는 과정에는 원작 캐릭터에 대한 패러디가 수반되기도 하며, 2차 창작을 통해 원작과 무관한 세계에 처할 가능성도 다분하다. 그럼에도 그 대상이 되는 캐릭터는 자신만의 특색을 굳게 지켜나가고 있는데, 이는 이토(伊藤 2005, p54)가 지적했듯 이야기보다는 캐릭터에 중점을 둔 소비가 보편화된 것에 기인한다. [그림3(왼쪽)] 〈디‧지‧캐럿〉의 주인공 캐릭터 데지코 (©Bushiroad ©令和のデ・ジ・キャラット ©BROCOLLI) [그림4(가운데)] 〈크림 레몬‧흑묘관〉의 작중 장면(©フェアリーダスト) [그림5(오른쪽)] 미소녀 어드벤처 게임 〈키즈아토〉(©Leaf) 2010년대 이후 한국의 ‘서브컬처 게임’ 크리에이터들 중에는, 상술한 과거 일본으로부터 전수된 ‘모에’ 코드를 이어받으면서도 그것을 독자적인 방식으로 가공하고, 나아가서 ‘모에’를 유발하는 동기의 설명 자체를 개량하려 시도하는 개인도 등장하고 있다. 이후 〈블루 아카이브〉의 총괄PD에 오른 김용하는,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초정상 자극(supernormal stimulus)을 입증하는 ‘거위가 가짜 알을 품게 만들기’ 실험을 2014년 당시 강연에서 소개하면서, 실존하는 대상의 특징을 극대화한 가짜는, 심지어 자연계에서조차 진짜보다도 더욱 선호된다고 주장했다(Barrett 2010). 또한 인간이 보았을 때 가장 매력을 느끼는 타인의 얼굴에는, 성적 매력을 자극하는 요소와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귀여움의 요소가, 7:3 전후의 비율로 조합되어 있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선행 연구도 함께 언급하였다(김용하 2014). 그의 주장을 폭넓게 해석하자면, 앞에서 말한 ‘고양이 귀’, ‘메이드복’이나 ‘안경’과 같이 ‘모에’를 유발하는 요소를 무작정 조합하기보다, 캐릭터의 종합적 매력을 최대화하면서도 시대의 유행에 부합하는 맥락을 세우면서 그에 맞는 조합을 선택해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시청자들은 매주 정기적으로 시청한 TV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을 심리적으로 더욱 가깝게 느낀다는 연구 사례까지 고려하면, 똑같이 ‘모에’ 코드를 이어받은 게임 중에서도, 일별 로그인 보상과 같이 정기적인 접속을 권장하는 게임이야말로 유저의 친근감을 노리기 용이해진다. 예를 들어 TV애니메이션의 오프닝과 같이 연출상의 이유로 매주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장면은 시청자의 머릿속에 더욱 쉽게 기억된다. 그런데 해당 장면의 배경 장소가 실존하는 어딘가를 모티프로 삼았으며, 추후 시청자가 그 실존하는 장소를 실제로 찾았을 경우, 시청자는 그 장소에 대한 친근감을 크게 느낀다고 한다. [그림6(왼쪽)] 〈블루 아카이브〉의 뽑기 장면에 등장하는 ‘아로나’ (©2021 NEXON Korea Corp. & NEXON GAMES Co., Ltd.) [그림7(오른쪽)] 〈아이돌 마스터 밀리언 라이브! 시어터 데이즈〉의 로그인 장면에 등장하는 ‘아오바 미사키’(©窪岡俊之 THE IDOLM@STER™& ©Bandai Namco Entertainment Inc.) 이러한 일종의 각인 효과는, 공간은 물론 인물에게도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다. 매일 게임에 로그인하여 소소한 게임머니나 강화 아이템을 비롯한 접속 보상을 챙기는 동안 [그림6] , 그 게이머는 자신이 ‘모에’를 느끼거나 느낄 만한 캐릭터가 출력되는 화면을, 로그인 화면이든 가챠(뽑기) 화면 [그림7] 이든 어디선가 일정한 상황에서 항상 접하게 된다. 3. 결론: 정리, 그리고 연구 노력의 필요성 지금까지의 내용을 순서대로 다시 정리해 보자. ‘서브컬처 게임’에 대하여 게이머들이 ‘모에’를 느끼게 되는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작용한다. 첫 번째로 현재의 ‘서브컬처 게임’들이 출현하기 이전부터 과거의 미디어에 의해 형성된 ‘모에’ 코드는, 이후 다른 크리에이터와 팬들에 의해 유통되고 재가공되면서 제작의 노하우를 축적했고 세력 또한 확장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1990년대까지만 해도 캐릭터의 신체‧복장상 특징을 우선시하던 ‘모에’ 코드에의 고찰은,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얼굴에서 드러나는 ‘성적 본능 자극’과 ‘귀여움’의 요소 조합, 시대 맥락에의 부합까지 따지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완성도를 높여간 ‘모에’의 노하우는 게이머들에게 긍정적으로 기억될 수 있는 디자인 외적인 기회를 얻게 되는데, 매주‧매일마다 반복 방영되는 TV드라마나 애니메이션처럼 게이머들을 일상적인 접속으로 이끌게 해주는 일일 로그인 보상이나 가챠 연출과 같은 상투적 연출이 그러한 역할을 수행한다. 〈승리의 여신:니케〉와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블루 아카이브〉에게 모두 해당되는 말이지만, 게이머가 캐릭터에 대한 ‘모에’를 느끼는 게임들 중에는 미소녀를 내세우는 것들이 다수인 것이 현실이다. 또한 그로 인해 이들 게임을 ‘남성 전용 게임’이라고 오해하는 태도가 게임 업계의 내외를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주마를 미소녀형 캐릭터로 재창조한 게임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의 한국 서버 기준 남녀 성비가 2023년 7월 기준으로 정확히 50:50이었다는 기사에서처럼, 남성 캐릭터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게임이라도 적지 않은 여성 유저들이 기여하고 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한다(게임와이 2023.7.4.). 여성 게이머라고 해서 모두가 ‘모에’ 그 자체를 기피하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미소녀 캐릭터를 문제시하는 여성 게이머들은 그 캐릭터의 디자인보다는, 예를 들어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성적 특성의 묘사와 같은, 다른 것에 문제의식을 느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일련의 문제를 포함하여, 게임계에서의 ‘모에’ 담론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다양한 연구와 분석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모에’를 소중히 생각하는 팬이나 크리에이터에 의한 자기진술 이외에도, 게임업계 바깥에서 문화연구라는 본업에 종사하는 다른 연구자들의 참여도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참고문헌] 게임와이(2023.7.4) 「서브컬쳐의 힘…’우마무스메’ 국내에서 1년 동안 1,000억 원 매출 올렸다」, https://www.gamey.kr/news/articleView.html?idxno=3005749 . 김용하(2014) 「모에론」, NEXON DEVELOPERS CONFERENCE 2014, http://ndcreplay.nexon.com/NDC2014/sessions/NDC2014_0015.html . 야스다 요시미‧손낙범 편저(2016) 「萌え」, 『엣센스 일한사전』, 민중서림. IGAWorks(2023) 「월간 인기 앱‧게임 순위 2023년 12월」, https://mktcloud.igaworks.com/report/mkt/376 . 이정훈(2021) 「콘텐츠투어리즘과 지역활성화: 일본의 ‘애니메이션 성지순례’를 중심으로」, 박사학위논문, 건국대학교 대학원. Barrett, D.(2010) Supernormal Stimuli ~How Primal Urges Overran Their Evolutionary Purpose~, W. W. Norton & Company. 東浩紀(2001) 動物化するポストモダン オタクからみた日本社会』, 講談社. 井手口彰典(2009) 「萌える地域振興の行方--「萌えおこし」の可能性とその課題について」, 『地域総合研究』(37), 鹿児島国際大学附置地域総合研究所, pp.57-69. 伊藤剛(2005), 『テヅカ・イズ・デッド ひらかれたマンガ表現論へ』, NTT出版.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건국대학교 아시아콘텐츠연구소 연구원) 이정훈 ‘국민학생’ 시절부터 PC게임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즐겼으나, 지금처럼 게임과 애니메이션을 하나의 생활로 받아들인 것은 2001년부터의 일이었다. 특히 미소녀 캐릭터에 정성을 많이 두는 게임을 선호해 왔으며, 짧게나마 게임회사 및 라이트노벨 출판사에도 재직하는 기회를 얻은 바 있다. 업계를 떠난 이후에도 메이지대학 대학원 국제일본학연구과(2016~2018, 석사)와 건국대학교 대학원 일본문화·언어학과(2019~2021, 박사), 히로시마대학 인간사회과학연구과(2022~2023, 객원연구원) 등의 학업과정에서 서브컬처 문화를 계속 다루었다. 지금까지 「일본의 애니메이션 성지순례와 도시의 전략-시즈오카현 누마즈 시의 관광객 증감 및 상업시설의 형상 변화를 중심으로」(2020, KCI 등재), 「The Violation of the Freedom of Play by the Game Rating and Administration Committee of South Korea」(2023, A&HCI 등재) 등 총 8건의 논문을 집필하였다.

  • 콘솔게임 시장으로 진입하는 한국 게임산업을 바라보며

    자주는 아니고 진지하지도 않지만 가끔 닌텐도 스위치 구매를 후회할 때가 있다. 최근 2년 넘게 스위치를 제대로 가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오직 개인적인 게임 취향 탓이다. 무거운 테이스트에 충분한 핍진성을 통해 몰입감이 있는 게임을 선호하는데, 밝은 테이스트에 캐주얼한 게임이 많은 닌텐도가 잘 맞지 않음을 너무 늦게 즉 스위치 구매 후에 깨달았다. < Back 콘솔게임 시장으로 진입하는 한국 게임산업을 바라보며 11 GG Vol. 23. 4. 10. 자주는 아니고 진지하지도 않지만 가끔 닌텐도 스위치 구매를 후회할 때가 있다. 최근 2년 넘게 스위치를 제대로 가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오직 개인적인 게임 취향 탓이다. 무거운 테이스트에 충분한 핍진성을 통해 몰입감이 있는 게임을 선호하는데, 밝은 테이스트에 캐주얼한 게임이 많은 닌텐도가 잘 맞지 않음을 너무 늦게 즉 스위치 구매 후에 깨달았다. 그래도 주기적으로 향후 출시 예정 타이틀을 둘러 보기는 한다. 콘솔은 어린 시절부터의 로망이었고(이 쓸데없는 개인사는 과거 칼럼인 ‘왜 한국 콘솔시장은 작을까? - 한국 콘솔게임에의 회상’ 의 도입부를 참조하면 좋다) 이왕 산 스위치이니 어떻게든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얼마 전 ‘베요네타 3’이 출시되어 실로 오랜만에 스위치를 켜보았다. 예정 신작 리스트를 볼 때마다 확인하는 부분은 한국어화가 되어 있는가이다. 영어여도 게임 진행을 할 수는 있는 정도의 어학 능력이 있긴 하나, 즉각적으로 독해가 가능한 모국어를 따라갈 수준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산 콘솔 게임이 적은 것은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그래서 ‘더 코마’가 스위치로 발매되었을 때 즐거웠던 기억은 오래 남아 있다. 한국 게임의 콘솔 점유율이 낮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앞서 링크한 과거 칼럼에서 분석했던 바, 한국은 다양한 사회문화적 요소로 인해서 당시 청소년이었던 게임 유저들이 거실의 권력을 가져가지 못했다. 대신 자기 권력이 작동하는 ‘방’에서 가능한 PC 게임이 가정 내 게임의 헤게모니를 가져갔다. 그 결과 약하지만 확실한 오프라인 소셜의 콘솔 게임보다 확고한 온라인 소셜의 PC 게임이 주류가 되었고, 오프라인 소셜의 성격이 지배적인 아케이드(PC방 포함) 게임의 전통은 역설적 오프라인 소셜 기능을 가진 모바일로 계승되었다. 이것이 모바일-콘솔 우선의 세계 여타 시장, 특히 북미 및 유럽 시장과 모바일-PC 우선의 한국 시장의 차이를 낳은 원인이며 과정이었다. (이제 저 과거의 글을 읽을 이유가 없어졌다!) 스위치 구매를 이따금 회의하는 가운데, 요즘은 PS5 구매를 고민하고 있다.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와 같은 PS 독점의 트리플A 게임을 하고 싶기 때문인데, 스위치의 전례가 있다 보니 출시작과 출시 예정작을 면밀히 훑고 있다. 즐길 게임이 최소 두 자릿수는 있어야 저 돈이 아깝지 않을 테니까. 그러다 보면 괜히 살 마음 없는 엑스박스의 출시작 리스트도 보게 된다. 호기심엔 답이 없다. 이 지점에 오면 눈에 들어오는 경향성이 있다. 각 콘솔의 출시 예정작 중에서 한국산 게임들의 비중이 점차 늘어난다. NC소프트의 ‘쓰론 앤 리버티’, 넥슨의 ‘데이브 더 다이버’, ‘카트라이더 드리프트’, ‘퍼스트 디센던트’ 등에 넷마블이 유명 원작을 바탕으로 제작하는 ‘나혼자만 레벨업’ 등이 눈에 띈다. 여기에 네오위즈 작품인 ‘P의 거짓’, 위메이드의 ‘나이트크로우’, 개인적으로는 내 안의 변태를 깨우는 그래픽이라 위험작으로 분류한 시프트업의 ‘스텔라 블레이드’ 등등까지. 여기에 ‘크로스파이어: 시에라 스쿼드’와 같은 콘솔 기반의 VR 게임들까지 합하면 숫자와 무게감은 더욱 늘어난다. 전통적으로 콘솔 진출에 소극적이었던 한국 게임사들이 대대적인 도전을 하고 있다. 2022년 한국 게임 시장에서 콘솔 게임이 차지하는 비율은 유저의 이용률로 볼 때 17.9%에 불과하다. 이를 세계 전체 게임 시장으로 확장해보면 시장 규모 대비 1.7%다. 자본 규모로는 1조 원 가량에다 5% 정도 비중의 작은 시장이다. 한국이 미국-중국-일본에 이어 세계 게임 시장의 7.6%를 차지하는 세계 4위 시장임에도, 혹은 감안하지 않아도 작다. 그나마 한국 콘솔 게임 시장은 최근 7년 동안 꾸준한 성장을 해오긴 했다. 2015년에 1.8% 비중에 불과했던 이 시장은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라는 히트작이 발매된 2020년에는 6.4%까지 성장했다. 다만 바로 대형 히트작이 없었던 바로 다음 해에 5.5%로 떨어지긴 했지만,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에서는 한국 게임사들의 출시 예정작이 출시되면 다시 성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 출처 :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 하지만 게임 개발 현장과 전문가들의 지적은 콘솔 성장보다 PC와 모바일의 성장에 집중되어 있다. 일단 최고 파이인 모바일의 비중과 매출에서 성장세가 둔화되는 현상이 뚜렷하다. 팬데믹 특수를 탔던 2020년에 잠시 성장세가 늘어났을 뿐이다. 매출액 기준으로 보면 시장이 성장 한계점에 다다른 것이 더욱 눈에 띈다. 이런 상황은 PC 게임 시장 또한 마찬가지다. 유명 IP의 신작이 출시되면 잠시 매출이 늘어나는 정도인데, 이건 시장이 이미 한계에 도달한 후라는 의미다. * 출처 :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 이미 시장에서의 신호는 PC와 모바일에서 더 이상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음이 관측되고 있다. 게임사 입장에서 당장 오늘 먹을 것은 있지만 내일, 다음 주, 다음 달, 내년의 먹거리가 불확실해지는 상황이다. 게다가 시장과 개발 현장이 성숙해지고 법적 예술의 지위도 확보된데다 노조들이 제 역할을 하려고 나서기 시작하면서, 인건비 상승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다른 표현을 쓰자면 개발 비용 증가다. 그리하여 한국 게임사들은 다양한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블록체인과 NFT를 접목해서 환금성이 높은 게임을 만들어보는 시도가 있다. 하지만 이 시도는 기존의 과금유도 게임과 기본 구조가 같고, 한국 국내 시장에서는 게임사의 현금 환금을 금지하는 법안이 합헌이라는 판결까지 나와 갈 길이 애매하다. 메타버스 개념을 활용하는 방안도 시도되고 있다. 메타버스는 환경만 제대로 조성된다면 이용자가 곧 컨텐츠 창작자가 되어주기 때문에 컨텐츠 개발 소요가 많이 줄어드는 장점이 있다. 반면 시장에 안착한 후에는 여타의 MMO 게임과의 차별성을 두는 부분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높고, 온라인 성범죄의 플랫폼이 되는 등 신종 범죄에 이용 당하는 부작용도 관찰된다. 게임 개발의 노하우를 다른 분야에 적용시켜 가상인간이나 버튜버를 만드는 수익 모델도 제시가 되었지만, 일단 이건 게임 분야가 아니니 논외로 하자. 이런 와중에 느리게나마 확실하게 성장 중인 국내 콘솔 시장과, 이미 확고한 규모를 유지하고 있는 북미/유럽의 콘솔 시장이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현재 한국의 게임 수출 대상국 1위는 압도적으로 중국인데, 이런 중국의 게임 시장 상황은 최근 몇 년 동안 좋지가 않다. 중국 게임사의 개발 역량이 양질의 측면에서 궤도에 오르면서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데다, 중국 정부가 자국의 게임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 게임에 대한 판호 발급을 줄이는 중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콘솔 게임에 진출하는 것은 중국 시장 대신 북미/유럽 시장을 개척하는 2중의 개척이며, 필수불가결한 개척이 된다. 여기에 더해서 진출 정체 상태인 중국 시장에서조차 콘솔 게임은 성장 중이다. 2021년 대비 2022년의 중국 콘솔 시장의 매출은 17% 증가했다. 비록 불법인 그레이마켓 매출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혹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잠재 성장 예상은 더 높다. 그렇다면, 판호만 얻어낼 수 있다면, 이 성장하는 콘솔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것이다. 여러 모로 한국 게임사에게 콘솔이 다음 개척지가 될 이유들이다. * 출처 : 니코파트너스 그리고 배틀그라운드가 흥행했다. 배틀그라운드의 성공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게임 개발 현장에 준 메시지 중 하나는, 기존 MMO 게임처럼 온라인 퍼블리싱 판매가 아닌 ESD(Electronic Software Distribution)에서의 판매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었다. 한국 게임이 ESD에서 판매가 가능하다면, 그 ESD는 스팀일 수도 있고 플레이스테이션 스토어일 수도 있고 닌텐도샵일 수도 있다. 그리하여 배틀그라운드의 2017년 이후 대작과 인디 가릴 것 없이 많은 게임이 스팀을 비롯한 ESD를 통해 출시되었다. 스팀 기준으로 판매 및 접속 성적을 보면 ‘블레스’, ‘섀도우 아레나’ 같은 게임들은 기대 이하의 성적이었지만, ‘스컬’, ‘플레비 퀘스트: 더 크루세이즈’, ‘영원회귀: 블랙서바이벌’ 등은 나쁘지 않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러고 보면 스위치에서 할 게임이 없다고 징징대던 내가 닌텐도샵에서 ‘더 코마: 커팅 클래스’를 샀던 시기도 배틀그라운드 이후인 2019년이었다. 따라서 한국 기업들의 콘솔 게임 시장 진출 시도는 약간의 절박함도 묻어 있다. 집 안에서는 더 이상의 산출이 어려운데, 바깥에서 희망의 씨앗을 보았기에, 그리로 가는 것이다. 당장의 먹거리는 있지만 통계 지표는 그 먹거리가 조만간 포화 상태가 될 것을 경고하고 있으니까. 이는 제국주의에 비유할 수도 있고 이민자에 비유할 수도 있다. 사실 비유의 측면에서는 두 가지 모두 같은 동인을 갖고 있다. 국내에서의 시장 성장이 한계이니 외국으로 나간다는 제국의 동인과, 국내에서 원하는 성취나 생존을 이루기 어려우니 외국으로 나간다는 이민의 동인은 사실 포화 상태에서 추동력을 얻는다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같다. 단지 서있는 입장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뿐이다. 매출 통계 보고서를 받아든 현장의 경영자와 개발자는 절박한 이민자의 마인드를 갖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절박함은 보상 받을까? 앞서 스팀에 진출했다가 실패를 맛본 게임들의 예를 들었는데, 최근에는 ‘칼리스토 프로토콜’이 비평적으로 실망을 끌어내면서 사실상 실패의 성적을 거뒀다. 이후에 올 도전들이 이런 식이 되면 큰일난다. 이미 ‘P의 거짓’과 ‘퍼스트 디센던트’는 아류작에 불과하지 않느냐는 눈길을 받고 있다. 우리가 출시 예정작의 미래를 전망할 때 쓸 수 있는 가장 쉬운 단어는 ‘완성도’다. 특히 콘솔이면 소위 ‘패키지 게임’이 우선 떠오르기에 차차 고쳐나갈 수 있는 온라인 기반 게임보다도 출시 직후의 완성도가 더욱 중요하다. 가장 흔히 그리고 가장 먼저 짚는 요건이고, 따라서 엄밀히 따지면 하나마나 한 말이다. 그러니 자칫 놓치기 쉬운 완성도의 중요 요소를 짚어 보는 것이 의미 있을 것이다. 경영 분야에서 비유를 빌려온다면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의 원리가 있다. 언론인 토머스 프리드먼이 동명의 저서에서 제시한 비유적 개념이다. 렉서스는 세계화, 보편성의 아이콘이고 올리브나무는 전통성, 문화적 오리지널리티의 아이콘이다. 이 짝패는 또한 개방성과 폐쇄성, 수출과 내 수의 상반된 개념을 의미하기도 한다. 프리드먼은 반대의 두 가치 중 하나를 선택하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다국적 요소에 의해 만들어져 다양한 국가로 팔려나가는 렉서스만을 택해 개방 일변도, 세계화로 나아가기만 하면 큰 시장에서 거대한 성과를 얻어낼 수는 있어도 지구 반대편의 악재로 인한 도미노 현상에 얻어맞을 수가 있다. 때 되면 찾아오는 금융 위기가 가장 확실한 예시다. 이것을 문화 분야로 번역하면 ‘상품에 줏대와 무게감이 없어진다’. 반면 동네 올리브나무를 놓고 싸우는 분쟁은 지엽적이고 유치해 보이지만, 동시에 지역의 뿌리이기도 하다. 프리드먼은 국가를 최후의 올리브나무라고 규정한다. 가족, 지역, 민족, 종교 등은 ‘우리’를 규정하는 판단 준거다. 배타주의와 혐오를 낳기 쉽고 확장성은 0에 가깝지만, 이 또한 렉서스만큼이나 확고한 인간 욕망의 한 축이다. 다시 이를 문화 분야의 언어로 번역하면 ‘확고한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컨텐츠’가 된다. 이 지점에서 떠오르는 장면은 ‘바이오하자드/레지던트 이블’의 1편, 도입부 컷신에서 흘러나왔던 전설적인 대사다. “Wow, What a Mansion!” 본래의 일본어 대사는 “대단한 저택이군” 정도의 문장이지만 허술한 영어 번역과 방만한 연기로 인해 저런 어처구니없는 감정선의 대사가 만들어졌다. 또는 드라마 ‘로스트’에서 한국 장면이랍시고 동남아 식생이나 60년대 간판을 등장시켰던 것을 떠올릴 수 있다. 두 경우 모두 제작진들이 렉서스를 제대로 타고 저쪽의 올리브나무에 도착하는 임무를 해내지 못한 경우다. * 1편의 왓어맨션은 밈이 되었지만 7편의 현지 재현도는 강력한 효과를 냈다. 반면 성공한 경우는 ‘바이오하자드/레지던트 이블’의 7편이다. 루이지애나 외딴 늪지에 위치한 베이커 저택의 음침함을 현실성 있게 표현해내기 위해, 제작사는 텍사스 출신의 작가를 기용하고 로컬라이제이션 디렉터를 따로 기용했다. 이는 해당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렉서스에 제대로 탑승한 시도였다. 반대의 경우는 드라마 ‘킹덤’이 있다. 일본도 중국도 아닌 조선의 복식과 정부 시스템이 등장하는 이 드라마에서 세계인의 관심을 끈 것은 의외로 복식, 특히 갓이었다. 생소하지만 멋져 보이는 ‘cool hats’에 대한 관심은 올리브나무가 렉서스를 타고 넘어가 전파에 성공한 경우다. 유사한 성과를 보인 게임으로 ‘고스트 오브 쓰시마’를 들 수도 있겠다. * 드라마 속 복식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시킨 드라마 ‘킹덤’. 이는 우리 동네 올리브나무를 설득력 있게 파는 방법에 대해 큰 힌트가 된다. 렉서스 개념과 올리브나무 개념은 서로 정반대의 원리 같아 보인다. 하지만 이 둘을 한 콘텐츠 안에서 구현하려고 한다면 둘의 지향점이 같아진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현실성 혹은 핍진성이다. 그리고 이 지향점의 끝은 몰입감으로 이어지고, 이는 완성도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래서 향후의 콘솔 도전기에서 개인적인 기대작은 올리브나무를 제대로 분석해 딱 맞는 렉서스에 싣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펄어비스의 ‘도깨비’가 되겠다. 이 게임 역시 멀티 플랫폼으로 콘솔을 지원할 예정인데, 트레일러를 통해 본 예상 장점으로는 현대 한국적 환경을 훌륭히 녹여낸 배경이 있다. 한국적이라 하여 고궁이나 한복을 우선 내미는 구시대의 우를 범하지도 않고, 반대로 그런 요소를 철저히 배격하지도 않으며, 전통과 현대가 맥락을 넘어 뒤섞여 있는 현실 한국의 특색을 그대로 녹여냈다. 딱히 이런 배경을 선택하지 않은 다른 게임의 경우에도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의 원리는 적용될 수 있다. ‘쓰론 앤 리버티’에서는 ‘기상이 전술에 미치는 영향’을 얼마나 현실감 있게 구현해내는지가 이 게임의 올리브나무가 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한 명의 게이머로서, 아무쪼록 모든 출시 예정작들이 자신의 올리브나무를 잘 파악하길 바란다. 가능하면 닌텐도 스위치 버전으로 살 것 같지만, 어느 날의 내가 간이 커져서 PS5를 질렀을 수도 잇으니 장담은 못 한다. 다만 어느 버전이든 충분한 몰입감을 주는 핍진성 구축에 성공하였기를. 그리하여 우리의 게임 라이프가 PC와 모바일을 넘어 콘솔의 로망에 다시 가닿기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 스팀의 ‘양식화된’ 태그를 통해서 본 예술로서의 게임, 혹은 게임으로서의 예술

    지금으로부터 자그마치 12년 전, 그러니까 2014년에 ‘태그’ 기능이 스팀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스팀은 스스로 이 기능을 “새롭고 강력한 게임 구매 방법”이라 설명한다. “지속적으로 부착된 태그는 독립적인 부류로 나누어지고, 모두가 함께 정의한 장르, 주제, 특징으로 나누어진 상품들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 즉 여기서 ‘태그’는 “장르, 주제, 특징”과는 다른 제4의 분류법이다. 나아가 스팀의 ‘태그’ 기능 소개 페이지는 “어떤 단어로도 태그를 달 수 있”음을 명시한다. < Back 29 GG Vol. 26.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eong-Yi Writes with an interest in the interrelations among violence, suffering, and division. Produced works including Mapping the Affective, Pouring Water into a Poisoned Bottomless Jar, and Monthly Paper, and served as dramaturg for the plays Opera Charlotronique and The Man Who Became a Pillow. Author of Hormone Journal and Game Chorus, and co-author of A Mad, Love Song.

  • 라이브 서비스 전쟁 · 역사 기계 - <폭스홀>과 <헬다이버즈 2>

    <폭스홀>은 극단적으로 상세화된 활동적 측면으로, <헬다이버즈 2>는 운영진의 적극적 개입과 플레이어 활동 반영 등의 실시간 소통의 방식으로 각각 전쟁 앞 개인의 감각을 생산해 플레이어들에게 역사를 체험하게 만든다 할 수 있다. < Back 25 GG Vol. 25. 8. 10. Tags: 온라인게임, 라이브서비스, 전쟁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eong-Yi Writes with an interest in the interrelations among violence, suffering, and division. Produced works including Mapping the Affective, Pouring Water into a Poisoned Bottomless Jar, and Monthly Paper, and served as dramaturg for the plays Opera Charlotronique and The Man Who Became a Pillow. Author of Hormone Journal and Game Chorus, and co-author of A Mad, Love Song.

  • 게임에 재현된 농업의 유형들과 재현의 의미에 대하여

    디지털게임이 농업을 다루는 일은 보기 드물지 않다. 적지 않은 게임들이 본격적으로 농업의 과정을 재현함으로써 그 속에서 재미를 만들려고 하고, 농업 자체의 재현이 아닐지라도 농업이라는 개념 속에 우리에게 익숙한 어떤 과정을 게임 규칙 안에 편입시키는 시도를 많은 게임사들이 이어 온 바 있다. 다만 이 때 ‘농업’, ‘농사’라는 것은 무엇인지를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되물어보면, 같은 농업이라는 단어와 개념을 사람들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고 살펴보며 의미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Back How Games Represent Farming: Five Types and What They Mean 30 GG Vol. 26. 6. 10. This essay is adapted from the paper [Lee Kyung-hyuk (2026), "How Is Agriculture Imagined in Games: Types of Agricultural Representation in Digital Games and Their Social and Cultural Meaning," Rural Society, vol. 36(1), 349–407]. The original can be read via the KCI link (here). How Does Farming Reach the City Gamer at the PC? In 2020 a rather striking thing happened in the world of games, in Korea and Japan at nearly the same moment: a single game brought down the websites of both countries' rural development agencies. Sakuna: Of Rice and Ruin , a platform-action game that folded the rice farming central to East Asia's food supply into surprisingly fine detail, sent its players hunting down every scrap of agricultural information they could find—because in this game, the minutiae of growing rice are effectively what governs the character's growth. This longing for a virtual paddy field flattened the servers and made the news. That digital games take up agriculture is hardly rare. A fair number of games set out in earnest to represent the processes of farming and to make their fun out of that representation, and even where it is not the representation of farming as such, many studios have carried on the attempt to fold some process familiar to us, under the heading of "agriculture," into the rules of a game. And yet if we put on a slightly more serious face and ask back what this "agriculture," this "farming," actually is, we find that people think about, examine, and give meaning to the very same word and concept from quite different angles. That the digital game—a medium that handles process—represents agriculture is something we cannot afford to miss when we want to examine how the concept of agriculture is understood in a modern society where the non-farming population is overwhelmingly the larger. But whereas there exists research asking what the story of farming and the countryside in the film Little Forest implies, there has been no study asking what it means for us when farming is handled in games. This essay collects the contents of the paper that set out from precisely that question: "How Is Agriculture Imagined in Games: Types of Agricultural Representation in Digital Games and Their Social Meaning" ( Rural Society , vol. 36, no. 1). The paper sorts the representations of agriculture appearing in digital games since the 2000s into five broad types, and tries to analyze how each type represents today's agriculture and countryside. The five types of agriculture and rurality represented in games appear as the pastoral way of life, the industrial management system, the reproductive apparatus for survival, the growth-support system, and the time-mechanism of cyclical recurrence—and each reveals, from a different vantage, how we perceive the idea of agriculture and the countryside. Pastoral Farming, Industrial Farming, Survival Farming The first type, agriculture as a pastoral way of life, is the type—represented by Stardew Valley —that renders farming and the countryside with a strong dose of the so-called "healing" element. In Stardew Valley , where the protagonist, sick of a regimented city life, moves to the country to rebuild and live on a farm, agriculture is drawn less as the mere production of crops than as a total set of relations encompassing the countryside as a lived space and the human networks woven within it. The so-called "rurality" carried in the word agriculture is the trait of farming and the countryside most prominently represented in Stardew Valley . Games that, carried down from titles like Harvest Moon , place this representation of rurality at their center want to see agriculture as one part of a pastoral way of life. What matters more than competition, risk, market, and production is the sense of stability, recovery, and settling in. To draw agriculture and the countryside as a space of such emotionally settled relations is a pattern that has already appeared in other media under the concept of the "rural idyll"—the way the aforementioned Little Forest , or Country Diaries , portray the countryside as a "space brimming with human warmth" set against the city being the representative cases. Such games, treating agriculture as a pastoral way of life, are counted as the type that effectively represents the farming game even if their numbers are not large—and the danger of drawing agriculture and the countryside as so romantic a space is a pattern already pointed out in other media. The rural sociologist Lee-Ann Sutherland conceptualized the image of agriculture and the countryside held by city dwellers who encounter farming only through games at their computers as the "desk-chair countryside," pointing out that this is a third way of understanding the countryside and farming, distinct both from living and farming in the countryside oneself and from looking at an image of the countryside someone else has made, as in a film or a novel. The second type is agriculture as an industrial management system. This type, represented by Farming Simulator , unlike the preceding one, strips farming of romance and human relations and handles only agriculture within a market system of crop production, distribution, and sale. Games of this type see crops not so much as food but, like factory-made goods sold on the market, as one kind of commodity, and they seek to represent a production process carried out not through communion with nature but through modernized equipment and systems, in mass quantities. If we split the image of agriculture in two, the earlier type would be closer to "farming in the countryside" and this one closer to "the farming of an agribusiness corporation." What most distinguishes the industrial-management type of farming game from the other types discussed below is that it looks at agriculture and its produce solely as a commodity relation. In Farming Simulator the player neither eats nor cooks the produce of farming; wheat and corn are portrayed as valuable only once they have been turned into cash through sale. It is a type best read as a representation of farming in spaces like North America—running mechanized agriculture on large tracts of land—rather than the small family farms and village-scale cooperation of Korean agriculture. The third type is agriculture as a reproductive apparatus for survival, perhaps the one most universally dissolved into all sorts of games. On the premise of a rule that says you die if you do not eat, agriculture is folded into games with survival rules as a part of securing food to stay alive. Don't Starve —a game whose very name stands for this concept—is the representative case: at the outset, food is procured by gathering and hunting, but later it shifts toward stabilizing the survival of the group's members by getting farming properly underway and folding it into a system of mass production. In the end the farming games of this type, too, come to possess a mass-production system at their final stage; but unlike the games handling agriculture as an industrial management system, here this mass production functions mostly as a device for "the survival of the members." In most survival and management-simulation games, where production must gradually be increased as the population grows, food is incidentally an element of trade but is fundamentally put to the use of "eating." The primal and fundamental aim of agriculture—creating food to live by, producing the edible in a game where not eating means death—is what this type of game represents. Farming as Growth Support, or as a Time-Mechanism The fourth type is games in which agriculture is handled as a growth-support system. A game like Sakuna: Of Rice and Ruin does not insert a rule that you starve to death if you do not eat, yet to raise the character's stats you must produce food and eat it. This is a type that also appears universally across many role-playing games to which no hardcore survival rule applies, dovetailing with the way food functions as a kind of buff in games like World of Warcraft . The fourth type proceeds under the notion that agriculture and food share in "food and medicine having one source" (食藥同原)—the idea that by eating, one grows stronger in body and mind. It is closer to a second layer laid down after the "you die if you do not eat" concept has been set as the groundwork: you grow stronger by eating, and to pursue that strength you must make something to eat. That players in the early days of World of Warcraft called the act of circling respawn zones to gather buff herbs "radish farming" speaks to the same context. The last, fifth type is one whose status as a representation of agriculture may itself be in doubt: agriculture as a time-mechanism of cyclical recurrence. It is easiest to grasp by looking back at the agriculture that appeared in FarmVille , which swept the West in the 2010s, and in many similar social network games. The agriculture in such games has the skeleton of farming—the production and harvest of crops—but examined closely, its structure is closer to the platform-designed cycle of revisits, the retention structure, dressed in the outer skin of agriculture. Such social games all share a structure of issuing a command to make or build some particular thing, which is then completed hours or days later; and the sowing-harvest cycle of agriculture entered as one of these. Agriculture represented this way becomes possible by being received from gamers as an industry in which harvest is possible only after waiting a fixed span of time. The cyclical structure of sowing seeds, then waiting and reaping, works as an element of persuasion that lets gamers naturally wait for the reward they want from the platform. The various images of countryside and agriculture discussed above matter little in this type. The key piece of evidence is that this type appears, in the first place, only when the user's revisit cycle is being designed on a mobile or online basis. Chewing Over the Deeper Meaning of Saying We Understand Agriculture Through Games To say that games handle agriculture, then, can by no means be generalized into a single way. All five types are representing agriculture, but as we have seen, the concept of agriculture itself is understood differently by each person, and depending on the web of relations through which one views farming, the agriculture represented in a game takes on a form wholly different in meaning and in structure alike. Even so, if there is a commonality cutting across these types, it is perhaps that the harshness of real farming is itself excluded or softened. As was pointed out in an earlier GG piece as well, in the representations of digital games conceived as play, the toil of farming is not something one bothers to draw. The debt that inevitably trails real farming, the catastrophic losses from a price collapse, the grueling labor and the natural disasters—these tend to be drawn at a level that is recoverable. The pastoral type covers over the difficulty of agriculture with the warmth of community; the survival type draws it as a strategically manageable crisis; the time-mechanism type resolves it into a predictable timer. This is, of course, not a claim that the game as a medium must capture every facet of agriculture. The agriculture and countryside drawn by a digital game—which produces meaning through rules and repetition—are bound to have limits to begin with, and that in itself cannot be held against it. The problem, rather, lies in the media-theoretical question of what it can mean to see, within a represented medium, only a system of agriculture that is sometimes romanticized and sometimes industrialized, inside a modern popular culture centered on city dwellers who are ever further removed from real farming. As the various objections to Little Forest pointed out, are we not passing excessively easy judgments on the very concept of agriculture and the countryside—which we have not actually experienced—on the strength of nothing but a medium's represented results? What ought to be weighed about agriculture in games may not be "how accurate it is." More important is what is chosen again and again and what is left out again and again, and which way the pattern of those choices drags our manner of imagining agriculture. To say this is not to deny the fun or the value of the farming game. On the contrary: a player who knows that the farming in a game is a single representation, carefully chosen and arranged by someone, can enjoy the pleasure of that experience while at the same time gauging where it meets real farming and where it parts from it. That odd curiosity that crashed the rural development agency's servers—was it not, after all, a fine occasion to remind city dwellers who do not know what farming is, once more, of just what "agriculture" might be?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쿨타임과 숨고르기

    숨고르기가 중요한 이유는 지속에 있다. 게임은 승패가 분명하게 정해져 있기 때문에 재미있지만, 이겼을 때만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과정이 충분하다면 지는 것도 재미있을 수 있다. 게임에서 승리하는 것을 우선시한다면 패배는 게임을 지속하는 것을 방해하며, 다른 게임을 선택할 때 이길 수 있느냐를 가장 염두에 두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게임에 흥미를 느끼는 동안 지더라도 다시 도전하고, 다른 게임을 선택할 때 자기만의 취향과 기준으로 고를 수 있다. 숨고르기는 게임을 ‘잘하는’ 것뿐만 아니라 ‘잘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 Back 21 GG Vol. 24.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iwoong Kang Senior researcher at the Institute for Social Development Studies, Yonsei University. Has written for various game outlets, including Gamers. Books include Game and Cultural Studies (co-authored) and The History of Korean Games (co-authored). Writes a regular game column for the children's magazine Goraega Geuraesseo. Believes that games are a culture that walks alongside us, touching countless moments of our l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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