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미국을 묻는다면 패드를 들어 GTA를 플레이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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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6. 2. 10.
This Is America[1]
그랜드 테프트 오토(Grand Theft Auto, 이하 GTA) 시리즈는 디지털게임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 아니다.
1997년 첫 작품 이후, GTA 시리즈는 세계적으로 4억 장 이상 판매되었다. 이는 비디오게임 역사상 최상위권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30년 가까운 기간 동안 기록한 누적 4억 장의 판매고는 시리즈가 나타낸 미국의 욕망과 폭력이 전 세계 이용자들에게 하나의 공통 기억이자 문화적 표준으로 자리 잡았음을 시사한다.
특히 13년 전 출시된 <GTA V>는 출시 72시간 만에 매출 10억 달러를 돌파하며, 영화·음악·게임을 통틀어 가장 빠른 엔터테인먼트 흥행 기록을 세웠다. 이 작품은 이후 10년이 넘도록 꾸준히 판매되며, GTA에서 비롯된 문화적 공통기억은 <GTA 온라인>을 통해서 인터넷 공간으로 진출했다.평단 역시 GTA의 새 작품이 나올 때마다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리메이크판 트릴로지 제외) <GTA III>, <GTA: Vice City>(이하 GTA VC), <GTA: San Andreas>(이하 GTA SA), <GTA IV>, <GTA V>는 모두 주요 매체에서 연속적인 ‘올해의 게임(Game of the Year)’ 수상과 90점대 메타크리틱 점수를 기록했다. <GTA 5>의 메타크리틱 점수는 97점이다. 학계에서도 GTA 시리즈를 미국 사회와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풍자물로 인정하고 있다.[2]
이러한 시리즈의 위상은 차기작을 향한 집단적 열광에서도 확인된다. 2023년 12월 공개된 <GTA VI>의 첫 공식 트레일러는 공개 24시간 만에 9천만 회 이상 조회되며, 유튜브 역사상 가장 빠르게 확산된 게임 트레일러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GTA VI>의 발매가 2025년 가을에서 2026년 11월로 연기되자마자 락스타게임즈의 모회사 테이크투인터랙티브의 주가는 8% 떨어졌다. GTA는 현대 디지털게임 '씬' 전체를 대표하는 '킬러 타이틀'이라고 볼 수 있다.
앞서도 짧게 언급했지만, 이 시리즈는 단순한 상업적 성공작이 아니라 지난 30여 년간 미국 사회의 욕망·폭력·자본·권력 구조를 노골적으로 재현해 온 대중문화의 거울이었다. 당장 이번 <GTA VI> 트레일러도 과잉 SNS 문화와 기이한 범죄, 노골적인 사회 불평등, 마약 범죄와 총기 문제에 대한 은유가 가득하다. GTA는 게임 안팎으로 사회적 해석의 대상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GTA는 대중적 찬사와 기대를 받는 동시에 출시 이래 줄곧 보수 진영과 정치권의 집중적인 공격 대상이기도 했다. 락스타게임즈가 3D 게임을 표방하고 게임에 스토리라인을 강조하기 시작한[3] 이래 "범죄를 조장하는 시뮬레이터"나 "사회 악"이라는 비판을 마주해야 했다. 미국 정가에서는 GTA는 '살인 훈련 프로그램'으로 규정하고 온갖 총기 사고의 원흉으로 GTA를 지목했다. 2005년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은 '핫 커피 스캔들'이 터지자 연방거래위원회에 락스타게임즈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GTA VI>이 락스타게임즈의 공동 창립자의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인데, 댄 하우저는 2018년 <GQ>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임 기간 중 GTA 시리즈 신작을 출시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사람들이 얼마나 화를 낼지 상상도 안 된다"라며 자신들의 게임이 “2분 만에 구식이 될 풍자”가 될까 우려했다. 오늘날 뉴스를 보면 알 수 있듯 극단으로 치닫는 정치적 상황 속에서 게임은 현실을 풍자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광기를 뒤늦게 쫓아가는 것에 대한 걱정인 것이다.[4]
이토록 GTA는 찬사와 공격, 열광과 거부를 동시에 받아왔다. 한편에서는 미국 사회를 가장 정확하게 묘사한 문화적 기록물로 평가받고, 다른 한편에서는 국가·도덕·질서에 대한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공격받았던 것이다. 2기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통치가 점입가경으로 치닫는 지금, 미국이라는 지리적, 문화적 배경 속에서 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쉬지 않고 꺼내온 GTA 시리즈가 지니는 의미는 남다르다 할 수 있겠다.이 글은 GTA 시리즈를 단순한 범죄 게임으로 보지 않는다. GTA는 지난 30여 년간 미국과 미국의 도시[5]가 폭력을 조직하고, 배분하며, 정당화하는 방식을 플레이 가능한 구조로 구현해 온 시뮬레이터다. 본문은 <GTA III>에서 <GTA V>에 이르기까지, 이 시리즈가 어떻게 갱스터 서사에서 국가 권력의 관리 체계로 이행했는지를 탐구해본다.

<GTA VI>의 티저 이미지
Concrete Jungle[6]
본격적인 출발에 앞서 두 가지를 밝혀두려 한다. 하나, 분량 문제상 <GTA: Vice City Stories> 등 외전격의 타이틀에 관해서는 논하지 않는다.
둘, 이 글은 <GTA>와 <GTA II>를 건너뛰고 락스타게임즈가 오픈월드 게임의 형태를 채택하기 시작한 <GTA III>부터 시작한다. 오픈월드와 여기에 따라붙는 굵고 가는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형식은 <GTA III>부터 시작되어 발전했다. 그리고 이 오픈월드는 언제나 미국의 특정 도시를 변주한 가상 공간 위에서 전개되어 왔다. 이 지리적 선택은 단순한 배경 설정이 아니다. 락스타게임즈는 오픈월드 가상 도시를 통해서 미국 사회가 처한 문화적 병리와 권력 구조를 꼬집는다.
2001년작 <GTA III>의 무대인 리버티 시티는 뉴욕을 모티프로 한 최초의 3D 오픈월드 도시다. ‘알곤퀸’은 맨하탄, ‘브로커’는 브루클린, ‘듀크’는 퀸즈가 떠오른다. 플레이어는 범죄자로서 이 도시를 떠돌며, 마피아와 야쿠자, 카르텔 등 여러 범죄 조직과 관계를 맺는다. 3편은 여러 조직의 이권 다툼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2001년의 시공간[7]보다는 갱스터 무비의 관습적 답보에 가깝다.
또 3편 주인공 클로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침묵하는 주인공(Silent Protagonist)으로 등장하는 데다, 클로드와 그를 배신한 전 여자친구 카탈리나와의 복수전에 많은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럼에도 주요인물의 배신, 배금주의와 부패한 공권력, 자동차 도둑질과 도로에서 추격전 등을 비롯한 오픈월드 GTA 시리즈의 골격이 되는 요소는 3편에서부터 시작됐다.

<GTA III>. 사진은 리마스터 버전.
2002년작 <GTA VC>는 2001년부터 15년 전인 1986년으로 돌아간다. 무대는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한 바이스 시티. 해당 작품 또한 전편처럼 갱스터 무비를 향한 오마주가 강하게 느껴진다. 특히 저택에서 펼쳐지는 총격전 미션과 캐릭터의 옷차림 등은 <스카페이스>나 <칼리토> 같은 브라이언 드 팔마 영화가 강하게 연상된다. 디스코클럽, 아날로그 전자기기 등등 개발진의 15년 전에 대한 향수 또한 만날 수 있다. 자동차 추격전에 그쳤던 전작과 달리 보트, RC 헬기 등의 탈것 옵션이 추가되었다.
디스코 음악, 파스텔톤 건물, 네온사인, 야자수가 가득한 <GTA VC>에서 인물들의 탐욕은 보다 본격적으로 전시된다. 전작에서 침묵의 클로드와 그의 새 파트너는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 엔딩 장면처럼 곡절 끝에 새로운 길을 향해 걸어간다. 리버티 시티를 떠나가면서 이야기를 맺는 것이다. 토미 버세티는 자신들을 괴롭히는 범죄 조직으로부터 탈출하는 대신, 그들에 맞서 자기 패밀리를 세워 바이스 시티를 접수하려 한다.
<GTA VC>의 토미 버세티는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락스타게임즈는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신화가 어떻게 폭력과 착취로 전환되는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메인 미션 폭동(Riot)을 그 예로 들 수 있을 텐데, 토미가 수행하는 파업 진압 미션은 아메리칸 드림의 밑바닥에 깔린 추악한 공식을 폭로한다. 그의 성공을 향한 자유의지는 기득권의 이익을 위해 약자를 파괴하는 ‘용병술'로 변모한다.
락스타게임즈는 <GTA VC>에 쿠바계와 아이티계 이민자를 등장시키며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실제 마이애미에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던 이민자 문제를 게임에도 반영한 것이다. 쿠바 갱들과 아이티 갱들은 각각 리틀 아바나와 리틀 아이티를 거점으로 이권 다툼을 벌이는데, 버세티는 아이티 갱의 부두술에 세뇌당해 쿠바 갱을 공격한다. 이 퀘스트에서 “모든 아이티인을 죽여라”라는 대사가 노출되고, 공분한 재미(在美) 아이티 교민사회는 2003년 락스타게임즈를 고소했다. 이뿐 아니라 리틀 아이티의 정육점에서 사람의 내장(Human Organ)[8]을 판매 중이라는 정보까지 확인되면서 락스타게임즈는 적잖은 비판을 마주해야 했다.
이 일로 락스타게임즈는 사과하고 게임 내 일부 표현을 수정했다. <GTA VC>는 쿠바 갱과 아이티 갱의 갈등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이 어떻게 타락하는지를 고발하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는 뒤에 소개할 <GTA IV>에 이르러 성취된다.

<GTA VC>
Killing In The Name[9]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GTA: SA>(2004)의 배경은 미국 서부로 확장됐다. 로스 산토스는 LA, 산 피에로는 샌프란시스코, 라스 벤투라스는 라스베이거스로 구성됐다. 지금 플레이해도 광대한 규모의 맵은 1990년대 미국 전체를 하나의 사회적 단면도로 압축한다. 특히 로스 산토스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LA 폭동, 갱 전쟁, 인종 차별, 그리고 경찰 조직의 구조적 부패를 정면으로 소개한다. 여기서 도시는 더 이상 추상적 범죄 공간이 아니라, 인종·계급·공권력이 충돌하는 정치적 장이 됐다. 주인공 칼 존슨(CJ)의 여정은 개인적 성공담이 아니라, 부패한 도시 시스템 속에서 ‘후드’를 지키기 위한 방어전이다.
고향(리버티 시티)에서 버림받은 토미 버세티가 새 터전(바이스 시티)의 왕이 되기를 바랐다면, CJ는 동고동락한 형제들과 함께 스트리트의 부활을 꿈꾼다. 이는 GTA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보기 드문 태도다. 범죄를 통해 도시를 점유해 나가던 이전 작품들과 달리, <GTA SA>는 공권력에 의해 해체될 위기에 놓인 집단을 부활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많은 저작이 지적하듯이 갱스터 문화를 미국 도시 빈민의 자기 방어로 연결지은 것이다.[10]
그러나 CJ의 시도는 이 시리즈가 꾸준히 보여준 배신에 의해, 그리고 이런 배신을 막후에서 종용하는 공권력에 의해 좌절된다. <GTA SA>의 세 지역을 지배하는 실질적 권력은 갱이 아니라 경찰이다. 사무엘 잭슨이 목소리를 연기한 프랭크 텐페니를 중심으로 한 부패 경찰 서사는 90년대 미국의 가장 불편한 진실을 드러낸다. 부패 경찰 조직 ‘C.R.A.S.H'의 텐페니 경관은 CJ에게 살인 누명을 씌워 협박하며, 갱단 간의 유혈 사태를 방조하거나 오히려 부추긴다. 이는 당시 실제 사회적 지탄을 받았던 LAPD의 부패 스캔들을 직접적으로 투영한 설정이다. 플레이어로 하여금 "법과 질서"라는 명분이 어떻게 권력의 도구로 전락하는지 추체험시킨다.
경찰들은 범죄와 적극적으로 싸우지 않는다. 대신 이들은 <블랙 앤 화이트>를 플레이하듯이 필요에 따라서 범죄를 관리하고, 조절하고, 필요할 때 특정 집단을 희생시킨다.
게임에는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지만, 1994년의 폭동도 경찰측 개입에 의해 ‘유색인종’간 갈등으로 비화됐다. <GTA SA>에서도 마약은 단속되지 않고 유통 경로만 바뀌며, 갱들의 전쟁은 경찰이 요리하기 좋은 균형 상태로 유지된다. CJ는 이 과정에서 범죄자이면서 동시에 국가 폭력의 희생자-실행자가 된다. 법 바깥에서 움직이지만, 그가 저지르는 폭력은 공권력의 묵인과 지시에 의해 정당화된다.요컨대 <GTA SA>는 국가폭력이 어떻게 개인의 선택이라는 형태로 위장되는가를 플레이 가능한 구조로 구현한 게임이다. CJ는 경찰의 협박을 "부당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폭력을 내면화하고 동시에 타인에게 실행한다.
게임의 컷씬들은 그렇게 CJ 지역의 질서를 지키는 하청노동자가 되어가는 과정과, 그 속에서 후드를 향한 대의 또한 위협을 받는 모습을 두루 비춘다.게임 중반 이후 맵이 도시를 벗어나 사막과 시골, 군사 기지로 확장되는 이유도 바로 이 부분에서 설명된다. 로스 산토스의 문제는 로스 산토스 안에서 해결되지 않는다. 마약은 월경(越境)하고, 가장 강력한 폭력이 숨쉬는 곳은 스트리트가 아니라 경찰서나 군사기지 Area 69[11]다. 카지노 산업은 검은 돈을 세탁하게 된다. 이때부터 CJ는 라이벌 갱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거대하고도 추상적인 시스템의 내면과 싸우게 된다.
후반부에 이르러 CJ는 명백한 성공을 거둔다. 그는 돈을 벌고, 조직을 확장하며, 도시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이 성공은 해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갱은 기업처럼 운영되고, 충성은 계약으로 대체되며, 폭력은 효율의 문제로 환원된다. CJ는 더 이상 후드를 지키는 청년이 아니라, 자신이 증오하던 시스템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마름에 가까워진다.

<GTA SA>
Flashing Lights[12]
<GTA SA>를 기점으로 GTA 시리즈는 본격적으로 미국이라는 국가가 폭력을 조직하고 분배하며 정당화하는 방식을 해부하는 정치적 텍스트로 기능한다. (기존의 톤, 유머는 유지하면서 말이다.)그리고 이 문제의식은 다음 작품인 <GTA IV>에서 이민자와 아메리칸 드림, 금융자본, 9.11 테러 이후의 미국이라는 보다 노골적인 형태로 이어진다. <GTA IV>는 리버티 시티로 돌아온다.
<GTA IV>의 리버티 시티는 <GTA III>의 그것보다 훨씬 더 잔혹하다. 플레이어는 ‘자유’가 아닌 총성과 배신, 그리고 무차별적 자본 논리만이 작동하는 세계를 체험하게 된다. 여기서 도시는 기회의 공간이 아니라, 개인을 끊임없이 소외시키고 폭력으로 내모는 구조 그 자체로 제시된다. 이민자·마피아·부패한 정치와 자본이 뒤엉킨 “포스트산업 도시”의 축소판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게임이 영국인의 시선에서 제작되었다는 점은 흥미를 더한다.[13]
2008년 <GTA IV>는 다시 리버티 시티로 돌아오지만, 그 톤은 이전과 현격히 다르다. 9·11 테러 이후의 뉴욕을 반영한 이 도시는 불안과 감시, 냉소로 가득 차 있다. 동유럽 이민자 니코 벨릭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미국은 더 이상 약속의 땅이 아니다. 이민자들은 값싼 노동력으로 착취되거나 범죄 세계로 흡수되며, 합법과 불법의 경계는 무의미해진다. <GTA IV>의 도시는 “기회의 땅”이라는 신화를 해체하고, 아메리칸 드림이 정상적으로 작동 불가능해진 풍경을 우울하게 전시한다.

<GTA IV>
니코 벨릭은 GTA 시리즈에서 가장 명확하게 외부자로 설정된 인물이다. 그러므로 그가 접하는 리버티 시티 또한 완전히 낯선 이국이다. 게임에서는 유고슬라비아에서 온 니코 벨릭의 슬라브 억양 영어를 비웃는 컷씬을 왕왕 만날 수 있다. 토미 버세티와 CJ는 감옥에서 갓 나왔지만 일단은 미국인이었던 반면, 니코 벨릭의 <GTA IV>는 그가 미국인화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리하여 <GTA IV>는 세계화 시대의 뉴욕을 드러내고 있다. 리버티 시티에는 이탈리아계 이주민, 러시아계 이주민, 한국계 이주민 등등이 어울리는 메트로폴리탄이다. 리버티 시티는 더 이상 <GTA III> 시절 놀이터가 아니다. 금융자본, 부동산 개발, 이민 노동, 정치 로비, 범죄 조직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얽힌 공간으로 제시된다. 소년병 출신으로 유고슬라비아 전쟁에서 살아남은 설정으로 역대 시리즈 주인공 중 가장 강력한 전투력을 자랑하는 그를 위협하는 것은 총이 아니라 밀입국자라는 신분이다. 촘촘하게 짜여진 사회 시스템에서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 니코는 도시의 청소부, 살인청부업자의 역을 자임한다.
사람을 죽이는 행위에 있어서는 거리낌이 없는 니코지만, 정작 게임에서는 인정(人情)을 중요한 포인트로 내세운다. 게임에서는 관계도가 퍼센트의 확률로 제시되어 친밀도가 높은 NPC에게는 게임을 유리하게 만드는 여러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니코는 몇 명 주요 NPC에게서 결정적인 배신을 당하게 된다. 게임 내내 배신을 당하는 니코 벨릭은 엔딩에 들어서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 두 갈래 길 중에 어느 것을 골라도 범죄와 그리 연관이 깊지 않은 NPC가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두 개의 엔딩 모두 미국과 미국의 자유를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을 비추며 막을 내린다. 거래 엔딩은 여인상의 뒷면을 비추면서, 배신 엔딩은 여신상을 양각으로 비추면서 마무리된다.
니코 또한 전작의 CJ처럼 대도시에서 폭력의 하청을 맡고 그로 인해 얻은 보상으로 많은 돈을 벌지만,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아메리칸드림을 박살난 것에 따른 보상이었다. 니코 벨릭은 그렇게 미국인이 되었다.

<GTA IV>의 자유의 여신상. 전작에서 락스타를 괴롭혔던 당시 상원의원 힐러리 클린턴과 똑 빼닮은 모습. 모드가 아니라 바닐라 버전에 이렇게 나온다.
I Fought the Law[14]
2013년작 <GTA V>의 로스 산토스는 이러한 모든 층위를 집대성한 공간이다. 이 도시는 <GTA SA>의 로스 산토스가 지녔던 인종 갈등과 부패한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그대로 가져오되, 국가에 대응하는 갱 스트리트의 역할은 약화시켰다. 2010년대에 들며 국가행정은 스트리트를 완벽하게 통제하게 됐다. 대형 갱 전쟁은 사라졌으며, 소규모 마찰만이 도시의 새벽을 시끄럽게 만들 뿐이다. 아울러 <GTA IV>의 리버티 시티가 은유한 금융자본, 이민자의 미국은 ‘스마트’한 현대 사회상에 맞게 발전했다. 이 방식은 이전보다 훨씬 냉소적이고 파편화되어 있는데, 스마트폰의 사용, 소셜네트워크, 모바일 주식 트레이딩 등의 기능은 로스 산토스 위에 샌드박스적 재미를 더했다.
락스타게임즈는 시리즈 최초로 <GTA V>에 세 명의 주인공을 등장시켰다. 마이클 드 산타, 프랭클린 클린턴, 트레버 필립스는 각각 현대 미국이 배출한 세 가지 주체 모델을 상징한다. 이들은 협력하지만 결코 하나로 수렴하지 않으며,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도 경멸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필요에 따라서 연대한다. 세 명의 인물이야말로 <GTA V>가 말하려는 핵심이다.
마이클은 신자유주의 시대 백인 중산층의 정신적 빈곤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은퇴한 은행 강도” 설정을 가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금융 위기 이후 미국 사회에서 정체성을 상실한 가장의 초상에 가깝다. (중년 가장의 애처로움은 어딜 가나 비슷하겠으나 한국에는 없는) 증인 보호 프로그램의 비호 속에서 락포드 힐즈(GTA판 베버리 힐즈)의 대저택에 살고 있지만, 가족과의 관계는 붕괴 직전이고, 소비로 유지되는 평온은 꺼림칙하고 불안하다. 마이클의 집은 미국적 부르주아의 완성처럼 보이지만, 정작 이 자리를 일군 마이클은 공허를 느끼며 심리상담사를 찾는다.
마이클이 느끼는 이 공허는 범죄의 위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합법적 성공”에 완벽히 편입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살아 있음을 느끼지 못한다. 백약이 무효하던 마이클은 대도시 안에서의 범죄를 벌이면서 비로소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남성성의 위기를 폭력과 모험으로부터 보충하려는 것이다. 게임 속 마이클은 대저택에서 홀로 서부극이나 갱스터 무비를 감상하고, 총기에 대한 집착을 보인다. 마이클의 특수 능력은 시간을 느리게 흐르게 만들어 상대 명중률을 높이는 불릿 타임이다.

<GTA V>
프랭클린은 <GTA SA>의 CJ와 비슷한 듯 다른 선상에 서있는 인물이다. 그는 스트리트 갱 문화에 속해 있지만, 완벽한 통제(와 여전한 방치) 속에서 그 세계는 사실상 무너졌다. 그러므로 프랭클린 또한 더이상 갱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다. 프랭클린에게 후드는 더 이상 지켜야 할 공동체가 아니라, 탈출해야 할 출발점이다. 그는 범죄를 계급 이동의 사다리로 인식하며, 마이클을 통해 상위층의 세계로 진입하기를 꿈꾼다.
프랭클린은 운전에 각별한 재주가 있고, Theft Auto, 차 도둑에서 출발해 로스 산토스를 주름잡는 대도로 거듭난다. 그러나 <GTA V>는 ‘뒷골목을 벗어나고 싶다’는 프랭클린의 성공욕이 얼마나 집요한지를 계속 보여준다. 프랭클린은 마이클, 그리고 트래버와 함께 은행과 보석상을 털며 성공궤도에 안착한다. 고급 주택을 손에 넣고, 부동산 사업을 벌이고, 스포츠카를 구매하면서 눈부신 성공을 거둔다. 그에게 더 이상의 후드는 없다. 프랭클린은 국가 공권력이 강력하게 막고 있는 범죄를 통해서 밑바닥에서 상류층에 올라가는 데 완벽히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트레버 필립스는 이 두 인물의 대척점에 위치한다. 그는 규범, 소비, 국가, 가족이라는 모든 제도를 거부한다. 그는 환경 변화에 척수 반응하는 동물처럼 행동한다. 공군 비행기조종사 후보생이었던 그는 사적 쾌락을 위해서 전쟁을 벌이고자 하는 정신이상자로 묘사된다. 일반적인 인간상의 틀거리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그는 현대 미국에서 괴물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과장해서 보여준다. 트레버는 GTA 시리즈 캐릭터 중 유일하게 교외(Suburb)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촌뜨기(영어 버전에서는 Redneck으로 표현)다.
트레버는 니코 벨릭처럼 미국인으로 편입되려는 나름의 시도를 했지만 (각각 공군장교 임관과 불법 이민으로) 과거에 대한 죄책감이나 가족에 대한 애정 따위는 하나도 없다. 트레버는 시스템이 배설한 찌꺼기들이 모여 만들어진 괴물처럼 묘사되며,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시스템이 가장 효율적으로 부려 먹을 수 있는 '사냥개'가 된다. 국가 권력은 도덕적 금기를 거리낌 없이 위반하는 그의 광기를 빌려 자신들의 추악한 목적을 달성한다. 트레버는 스스로를 자유로운 존재라 믿지만, 실제로는 시스템이 차마 직접 수행하지 못하는 지저분한 폭력을 대행하는 역할을 맡는다. 몇 번의 예외 빼고.[15]
이 세 인물을 하나로 묶는 것은 FIB(연방수사국의 패러디)다. <GTA V>에서 국가는 더 이상 부패한 경찰 몇 명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국가는 기업화되었고, 정보기관은 회사처럼 운영된다. FIB는 범죄를 단속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기획하고, 배분하고, 필요에 따라 제거한다. 플레이어가 수행하는 대형 미션 대부분은 정보기관의 사적 목적을 위한 것이다.
주목할 점은 <GTA V>가 이 모든 비판을 웃음과 패러디로 포장한다는 것이다. 토크쇼, 라디오 광고, SNS 패러디는 날카롭지만 동시에 무력하다. 비판은 소비 가능한 콘텐츠로 전환된다. 이 점에서 <GTA V>는 가장 현대적이다. 엔딩 시점에서 프랭클린에게 주어지는 선택은 배신, 복종, 혹은 제3의 길이다. 그러나 어느 선택도 근본적인 변화를 낳지 않는다. “모두 살린다”는 선택은 플레이어 사이에서 정답처럼 여겨지고 있는데, 이들은 자신들을 감시하던 FIB 요원들을 제거하고 자유를 얻은 것처럼 나타난다. 그렇다고 그것이 곧 세 주인공이 겪은 범죄나 자신들이 근거한 도시문명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GTA V>의 엔딩 부분
End Of The Road[16]
GTA 시리즈가 지난 30여 년간 구축해 온 범죄의 연대기는 그것도 세계 제일의 자리를 차지한 미국의 도시가 어떤 방식으로 자기 파괴적인 욕망을 잉태하는지를 드리우는 서사시다. GTA의 시공간은 헐리우드 영화의 느와르적 오마주로부터 출발해, 도시가 유지하기 위한 어두운 폭력을 범죄자들이 대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역대 시리즈를 관통하는 가장 도드라진 공통점은 자동차를 훔쳐서 달아나고 그것으로 돈을 버는 설계다. 이는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교통을 통해 완성되며, 신호를 위반하고 역주행하면서 경찰을 따돌리는 경험이야말로 이 시리즈가 과거의 GTA부터 추구하는 재미의 기본이다. 가까운 훗날 이 게임의 이동 시스템에 대해서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찾아오기를 기대해본다.
이러한 기본 위에서 락스타게임즈는 외부자의 시선에서 미국의 총기 문화와 과도한 애국주의, 기복 신앙에 가까운 자본주의를 기괴한 코미디로 치환하여 보여주는 날카로운 풍자 정신을 유지해 왔다. 이들은 뿌리 깊은 수직적 불평등과 공권력의 시스템적 부패, 그리고 아메리칸 드림의 해체 과정을 집요하게 파헤치고 있다.
도시의 마천루, 쥐가 끓는 슬럼가, 그리고 버림받은 교외지역은 서로 극명하게 대비되며 법과 질서는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그 상위층에 끼지 못한 외부자이며 범죄를 통해 폭력을 대행하면서 계급 상승의 경로를 확보한다. 게임사의 같은 시리즈인 레드 데드 리뎀션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정부와 국가는 무법자와 별 다를 게 없다. 공권력이 범죄를 소탕하기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관리하고 조절하는 모습을 통해 국가가 거대한 범죄 조직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GTA 시리즈는 미국 사회의 시대적 병리를 정조준하며, 미국 도시문명의 민낯을 게임이라는 미디어로 마주하게 하는 시뮬레이터다.
출시를 앞둔 <GTA VI>는 트럼프 행정부 재집권기라는 독특한 시대적 배경 속에 등장한다. 현실이 이미 풍자를 초월해버린 '풍자 불가능한 시대'의 게임이 아닐까? 락스타게임즈가 선보이는 레오니다(플로리다)는 얼마나 광기로 가득 차있을까?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 미국의 현실과 겨루었을 때 경쟁력이 있을까? 오늘날 미국 이민세관단속국의 행패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현실이 GTA 속 세상과 얼마나 다른지 묻게 된다. 아직 <GTA VI>가 출시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지금까지 이룩한 성과만 보아도 GTA 시리즈는 미국의 허상을 폭로하는 가장 지독한 텍스트라고 단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