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수상작] 시야 바깥에 거주하는 법: 〈스타크래프트〉의 단축키가 분할한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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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6. 10. 10.
교전 중인 〈스타크래프트〉 플레이어의 손놀림은 기이하다. 시선은 모니터에 고정된 채 한 번도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다. 그동안 왼손은 보이지 않는 건반을 연주하듯 여러 개의 키를 오간다. 시선과 조작의 분리다. 나는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저그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며 이 손을 직업으로 썼다. 실력은 예전만 못해도 감각은 남아, 지금도 취미로 게임을 할 때면 이 조작을 그대로 쓴다. 이것은 회고가 아니다. 그 손이 지금도 수행하는 일에 대한 기록이다.
비디오 게임은 대부분 플레이어에게 단일한 몸을 부여한다. 대전 액션 게임의 캐릭터, 1인칭 슈팅 게임의 총구가 그렇다. 화면 속 아바타의 위치가 곧 나의 위치다. 플레이어는 그 몸을 빌려 가상 세계에 머문다. 반면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RTS)의 전장에는 그런 몸이 없다. 플레이어는 한 화면에 담기지 않는 거대한 지도 위에서 기지와 병력 전체를 지휘한다. 동일시할 아바타가 없는 이 세계에서 플레이어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최근 연구는 그래도 머문다는 데까지 답했다[1]. 그런데 머문다면 어딘가에는 몸이 있다는 뜻이다. 그 몸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답은 손에 있다. 한 번에 한 곳만 보는 감각이 게임 안에서 어떻게 해체되고 재조립되는지, 저 손놀림에 모두 드러난다. 플레이어는 감각을 분할해 진영 전체를 몸으로 삼는다. 이 몸을 해부할 메스는 작은 조작 하나, 화면 지정 단축키다.
단축키의 해부학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에서 시야를 옮기는 보편적인 방법은 셋이다. 방향키 누르기, 마우스를 화면 가장자리로 밀기, 미니맵 클릭하기다. 여기에 경고음이 울린 위치로 화면을 옮기는 스페이스바가 더해진다. 넷 모두 한계가 명확하다. 앞의 둘은 화면이 목적지까지 밀려가는 시간을 견뎌야 하고, 미니맵은 시선으로 위치를 찾아 정확히 클릭해야 하며, 스페이스바는 게임이 마지막으로 경고한 곳으로만 향한다. 시각에 의존하지 않고 손가락만으로 원하는 곳에 화면을 옮기는 방법은 둘뿐이다. 부대 지정 번호 연타, 그리고 F2·F3·F4에 할당된 화면 지정 단축키다. 둘 다 화면을 순식간에 옮기지만, 어디에 도달하는지도, 쥐고 있던 병력이 손에 남는지도 정반대다.
부대 지정 번호를 연타하면 화면이 해당 부대 위치로 이동하며 유닛이 선택된다. 시선과 조작 대상이 함께 이동하므로, 직전까지 쥐고 있던 병력의 통제권을 잃는다. 유닛이 이동하면 도착지도 따라 변하니, 목적지를 미리 정해둘 수도 없다. 화면 지정 단축키는 반대다. Shift와 함께 누르면 현재 화면 위치가 저장되고, 이후 해당 키를 누르면 그 자리로 화면이 즉각 도약한다. 유닛 선택 상태는 그대로다. 병력은 손안에 남고 시선만 이동한다. 지정해 둔 자리로 단숨에 도달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나는 선수 시절 F2에 본진, F3에 앞마당(첫 확장 기지), F4에 랠리 포인트 수렴 지점에 지정해 두고 경기했다.
이 차이를 처음부터 아는 이는 없다. 초보자는 마우스만 쓴다. 조작 대상을 시선으로 좇아야 하니 시선과 조작 위치가 늘 일치한다. 이후 생산 단축키를 익히고, 부대 지정을 배운다. 건물과 유닛에 번호를 부여한 뒤에야 시선은 교전에 둔 채 손은 기지를 관리할 수 있게 된다. 시선과 조작 사이에 처음으로 틈이 벌어지는 순간이다. 화면 지정은 이 틈을 반대 방향으로 벌린다. 이번에는 손이 남고 시선이 이동한다. 이 학습 순서에는 이유가 있다.
시선을 교전에 두고 손만 기지로 보낼 때는 감각이 기지만 통제하면 된다. 반면 시선을 기지로 보내고 손을 교전에 남길 때는 감각이 교전 상황 자체를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 시선을 내보내는 쪽이 훨씬 까다롭기에 가장 늦게 습득한다. 나는 팀 연습실에서 동료들의 조작을 모방하며 이를 익혔다. 매뉴얼이나 공략집 없이 프로들 사이에서 어깨너머로 전수되던 기술이었다.
게임 연구자 클레비어(Klevjer)는 전략 게임의 공간을 어항이나 레고 마을 같은 미니어처에 빗댄다. 3D 게임의 카메라는 플레이어의 몸을 화면 안으로 이끌지만, 전략 게임의 플레이어는 현실에 머문 채 바깥에서 안을 내려다보는 것이다[2]. 유닛만 보면 타당한 설명이다. 유닛은 명령을 수행할 뿐, 플레이어의 물리적 개입이 세계 내부로 침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면 지정 단축키를 쥔 플레이어는 어항 밖의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다. 이 키 위에서 유닛을 통제하는 조작과 시점을 옮기는 시선이 교차한다.
때로는 이 키로 시선만 다녀오기도 한다. 교전 중인 부대를 통제하며 본진을 빠르게 훑고 돌아온다. 이때 시선의 위치와 조작의 위치는 철저히 분리된다. 한 번에 한 곳만 보는 몸이 눈과 손을 분할해 여러 곳에 동시에 존재한다.
귀와 가장자리와 시계
중계진과 커뮤니티는 이를 통칭해 ‘멀티태스킹’이라 부른다. 굳어진 말이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멀티태스킹이 여러 작업을 번갈아 수행하는 것이라면, 플레이어는 여러 곳을 오가는 대신 여러 곳에 편재한다. 시선이 한 곳에 머무는 동안에도 나머지 공간은 비지 않는다. 비워둘 수도 없다. 상대의 공격은 대개 시선이 비운 자리를 파고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야 밖의 기지와 유닛은 무엇이 통제하는가. 귀와 시야의 가장자리, 그리고 신체에 각인된 시간이다.
귀는 ‘무엇’이 일어났는지 알린다. 유닛 생산, 업그레이드 완료, 인구수 한계 도달 등이다. 이 소리들은 지도 위 특정 위치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화면 속 공간에 얽매이지 않고 게임 밖 플레이어에게 직접 도달한다. 저그의 유닛 부화음이 대표적이다. 소리를 끄고 게임을 해보면 이 청각적 연결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깨닫게 된다. 시야 밖을 통제하던 감각의 밧줄이 끊어지고, 시각 하나가 모든 부담을 떠안은 채 고립된다.
시야의 가장자리는 사건이 ‘어디서’ 일어났는지 알린다. 미니맵 위를 스치는 점, 피격 위치에서 깜빡이는 경보 등이다. 미니맵은 읽는다기보다 느낀다. 시선의 중심이 교전에 집중하는 동안, 주변부는 지도 전체를 파악한다. 귀와 시야의 가장자리는 정보를 찾아 나서지 않는다. 다가오는 신호를 수동적으로 감각할 뿐이다.
가장 결정적인 채널은 신체의 리듬이다. 수천 번의 경기가 퇴적되어 굳어진 이 시계는, 머리로 세는 초와 다르다. 프로의 하루는 수십 판의 연습 경기고, 그 하루가 수년간 누적된다. 같은 타이밍에 같은 조작을 수만 번 반복하면, 시간은 측정하지 않아도 몸에 깃든다. 화면의 알림이나 청각적 경고가 없어도, 특정 시점이 되면 건물을 짓고 일꾼을 생산해야 한다는 충동이 몸에서 먼저 일어난다. 다가올 사건이 빈칸으로 몸에 미리 새겨져 있다. ‘언제’는 오직 이 신체의 시계만이 안다.
소리는 그 빈칸을 채우러 온다. 부화음은 예상된 사건의 도착을 알리는 신호다. “Spawn more overlords.” 인구수가 막혔으니 오버로드를 생산하라는 이 경고는 신체의 시계가 지연되었다는 질책으로 다가온다. 귀가 반응할 때쯤이면 이미 몸의 일정표에 예정된 일이다.
그러므로 엘리트 플레이어의 눈이 지도를 훑고 상황을 판단해 결정을 내린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눈은 끌려간다. 청각과 시야 가장자리, 신체의 시계가 시야 밖을 감시하다 개입이 필요한 순간 시선을 호출하고, 시선은 불려 가 실행만 마치고 돌아온다. 설계자들의 의도도 같았다. 스페이스바는 소리 난 곳으로 시선을 이동시키는 단일 기능 키다. 플레이어의 시선이 적재적소에 머물지 못하리라 예견했기에, 청각이 시각을 호출하는 직통로를 마련해 두었다.
배는 닻을 내린 곳에 머문다. 그러나 이 감각의 몸은 여러 개의 닻을 내린다. 시선이 내린 닻은 하나뿐이며 끊임없이 이동하지만, 나머지 세계는 다른 감각 채널들이 내린 닻으로 고정되어 있다. 시선이 본진을 향한 짧은 순간에도 몸은 직전의 교전 상황을 근육의 긴장으로 장악하고 있다.
눈 없이 도는 회로
시계가 당긴다고 늘 화면을 옮길 수 있지는 않다. 유닛의 생사가 걸린 정밀한 조작이 벌어질 때는 시선도 몸도 전장에 결박된다. 본진의 작업이 밀려도 시선을 거둘 수 없으며, 교전은 소강상태에 접어들 때만 2초 남짓한 왕복을 허락한다. 교전의 틈에 F2를 눌러도 원거리를 오가는 감각은 없다. 기지를 1~2초간 눈앞에 소환해 일꾼을 붙이거나 건물을 짓고 즉시 치워버리는 감각에 가깝다. 시선이 이동하는 게 아니다. 기지가 잠시 나타났다 사라질 뿐이다.
이 왕복의 전형은 이렇다. 매복한 러커의 사거리 앞에서 상대 마린 부대가 멈칫하는 순간을 응시할 때, 보이지 않는 본진에서 부화음이 들린다. 왼손이 F2를 짚으면 본진이 눈앞에 펼쳐진다. 갓 깨어난 일꾼을 마우스로 미네랄에 붙이고, 애벌레를 오버로드로 변태시킨 뒤 부대 번호를 두 번 연타한다. 화면은 곧장 교전으로 돌아온다. 그사이 전장은 근육의 긴장과 미니맵을 스치는 곁눈에 남아 있었고, 마린은 반걸음도 전진하지 못했다.
이 감각의 분할을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종족이 저그다. 테란과 프로토스는 인구수를 늘리려면 화면을 이동해 빈 땅을 눈으로 찾고 건물을 지어야 한다. 저그는 인구수 확장마저 오버로드라는 유닛이 담당하므로, 지정된 해처리에서 키보드 조작만으로 생산이 끝난다. 해처리는 저그의 전부를 잉태하는 건물이다. 부대 번호, 애벌레(라바) 선택, 유닛 지정 키. 단 세 번의 타건에 애벌레는 병력, 일꾼, 오버로드로 변태한다. 모든 유닛이 같은 애벌레에서 나오므로, 세 종족 중 생산을 위해 시야를 이동할 일이 가장 적다. 인구수가 막힐 때 테란은 건설 위치를 띄우고 일꾼을 보내야 하지만, 저그는 익숙한 타건 리듬에 애벌레 하나를 추가로 할당하면 그만이다. 저그의 경제는 영토 확장이기 이전에 조작 회로를 순환하는 일이며, 이 회로는 시각의 개입 없이 작동한다.
감각의 분할은 시스템 설계에서 비롯되었고, 설계가 바뀌면 사라질 수도 있다. 후속작 〈스타크래프트 2〉는 화면 지정 키를 계승하면서도 시각 없이 조작을 돕는 장치를 대거 도입했다. 부대 선택 제한을 없애고, 여러 건물을 번호 하나로 묶었으며, 유휴 일꾼 호출 버튼을 추가했다. 플레이어들은 이를 “손이 덜 간다”라고 평가했다. 브루드 워에서 시선을 본진으로 돌리던 F2가 후속작에서는 전체 병력을 통제하는 키로 변모했다. 이 글이 추적하는 몸은 게임 일반의 몸이 아니라, 특정 시대의 시스템이 직조해 낸 몸이다.
감각 분할은 의식에만 머물지 않는다. 양손에 물리적으로 새겨진다. 오른손이 쥔 마우스는 화면에 종속된다. 표적이 모니터에 있으므로, 마우스의 정밀함은 시각에 의존한다. 반면 왼손은 다른 공간에 속한다. 생산과 화면 이동을 전담하는 왼손은 경기 내내 시각의 검증을 거치지 않는다. 시선이 교전에 고정된 와중에도 손가락은 F2와 해처리 번호를 오차 없이 두드린다. 건반을 보지 않고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의 정확성이다. 이 손은 키보드 배열이 아니라, 손가락을 뻗어야 할 거리를 암기했다.
감각의 분할이 양손에 그대로 투영된다. 다만 손이 증명해 주는 사실은 여기까지다. 조작의 절반은 시각 없이 수행된다. 통제되는 세계 자체는 손에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도 이 절반의 사실만큼은 주관적 기억에 기댈 필요가 없다. 손 위에 카메라 한 대만 놓으면 누구든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프로게이머 이윤열이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하고 양손으로 게임을 자유자재로 조작하고 있다. 전장에서 유닛을 컨트롤하던 중 단축키를 눌러 생산 건물을 확인한 순간을 캡쳐했다. Razer, ‘The Hax Life: Actions per Minute (APM)’, 2010, 캡처. [https://youtu.be/zmYhX8fjmo8?si=8OKQYJ0dZt9CCQ9p&t=7]
한 곳을 보며 여러 곳에 존재하는 법
이 분할은 정교한 만큼 쉽게 무너진다. 시선 밖의 감각 채널들은 의식의 변두리에 방치할 때만 정상 작동한다. 장기전에 피로가 쌓이거나 상대의 맹렬한 공세가 조여 오는 순간, 신체에 새겨진 리듬은 침묵한다. 신체가 생산 주기를 통보하지 않으면, 자원과 인구수를 눈으로 확인하고 기지를 주시하며 시간을 계산해야 한다. 청각과 신체의 시계가 맡던 몫까지 시각이 떠안는다. 이제 시선은 필요가 호출하지 않는다. 불안에 쫓겨 맹목적으로 떠돈다. 호출이 없어도 기지로 향하고, 새로운 정보가 없어도 화면을 반복 전환하며, 조작 시점을 놓친 뒤에야 뒤늦게 도달한다. 이 세 가지가 붕괴의 징후다.
관전자의 눈에도 드러난다. 중계 화면이 개인 시점을 비출 때, 패색이 짙은 선수의 화면은 본진을 강박적으로 호출하고 같은 지점을 맴돈다. 해설진은 흔들린다고 평하고, 화면에는 그 붕괴가 고스란히 담긴다. 이를 ‘시야 협착’이라 부르기로 하자. 프로게이머의 감각 체계는 이렇게 수만 관중 앞에서 실시간으로 해부되는, 보이는 노동이기도 하다.
시야 협착이라는 말은 시각의 범위가 좁아진다는 뜻으로 들리지만, 실제 과정은 다르다. 시각 자체는 온전하다. 눈앞의 교전 상황은 파악되며 조작도 가능하다. 청각과 신체의 시계가 먼저 마비되고, 시야 밖을 고정하던 감각의 닻들이 차례로 풀리며 시각의 닻만 남는다. 다중 공간에 편재하던 플레이어의 존재가 단일 공간으로 축소된다.
역설적이게도 이 감각 채널들은 의식하는 순간 정지한다. 부화음에 집중하거나 생산 주기를 의식적으로 셈하는 순간, 시야 밖 공간을 장악하던 힘을 잃는다. 숙련도란 곧 이 감각 채널들을 무의식의 영역으로 밀어낼 줄 아는 능력이다.
화면 지정 단축키로 기지를 확인하는 1~2초. 이 찰나의 조작에 아바타 없는 세계에서 플레이어가 존재하는 방식이 응축되어 있다. 시선은 교전이 허락하는 틈에만 짧게 개입하고, 나머지는 시야 밖의 감각들이 분담해 통제한다. 플레이어는 한 곳을 응시하며 여러 곳에 동시에 존재한다. 〈스타크래프트〉는 단일한 몸을 제공하지 않았기에, 플레이어는 스스로 감각을 분할하여 가상 세계에 뿌리를 내렸다.
그렇다면 존재한다는 것은 본다는 것과 다르다. 흔히 시선이 머무는 곳에 자신의 존재가 있다고 믿지만, 이 게임은 그것이 초보적인 환상임을 증명한다. 마우스 조작에만 의존하던 시절, 나는 시선이 닿는 곳에만 존재했다. 그러나 화면 지정을 체화한 이후, 시선이 닿는 곳과 실제 존재하는 곳은 갈라졌고, 존재하는 영역은 훨씬 광활해졌다.
이 영역에서 손의 속도를 측정하는 단위는 APM(Actions Per Minute)이다. 그러나 속도보다 먼저 물어야 한다. 감각이 얼마나 많은 공간에 뻗어 있는가. 승패의 기저에서 우위를 가르는 요소도 이 넓이다. 이 넓이를 얻는 데는 수천 번의 경기가 들지만, 잃는 데는 압박 한 번이면 족하다. 이 게임이 특출난 지점은 따로 있다. 공간을 장악하는 행위가 키 조작 하나하나로 쪼개져 부품처럼 눈에 보인다. F2를 누르는 손과 그렇지 않은 손, 소리를 켠 경기와 끈 경기, 도착을 알리는 부화음과 지연을 경고하는 음성. 감각 체계가 무너질 때는 이 부품들이 해체되는 순서조차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 몸은 나 혼자 만들지 않았다. 화면 지정을 어깨너머로 익힌 연습실은 배움터이자 치열한 노동 현장이었다. 승리하는 동료의 기술은 즉각 모두의 기술이 되었고, 단 몇 판의 승패가 연봉 계약과 다음 시즌의 생존을 결정지었다. 그런 환경에서 감각 분할 훈련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두 번 설계된 몸이다. 한 번은 브루드 워의 제한적인 인터페이스가, 또 한 번은 연습실의 가혹한 일상이 빚어냈다.
다시 첫 장면으로 돌아가자. 모니터를 응시하는 눈, 그리고 시선이 단 한 번도 향하지 않는 왼손. 그것은 내 손이었다. 시선이 교전을 좇는 동안 그 손은 본진에 머물렀고, 앞마당에 도달했으며, 아직 알에서 깨어나지 않은 유닛 곁을 지켰다. 시야 바깥에 거주하는 법이란 결국, 손이 어디 있는지를 시각에 묻지 않는 감각의 자립이다. 그리고 그 손이 뻗어 나가는 모든 공간이, 곧 가상 세계 속 내가 실존하는 자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