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비평은 XX다” - 누적된 22편의 당선작을 되짚어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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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6. 10. 10.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게임비평을 쓴다고 생각해 보자. 어떤 글을 쓸 것인가? 4년 전 처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공지가 올라왔을 때 가졌던 난감함 중 하나였다. 영화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기에, 영화에 대한 비평/평론을 쓴다는 게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레퍼런스도 충분했다. 영화잡지에 누적된 글들이 있었고, 평론가들의 단행본이 출간되어 있었고, 번역된 책과 글도 많았으며, 비슷한 나이대의 평자들이 이런저런 지면에 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게임 비평/평론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아니, 참고할 수 있는 레퍼런스를 찾아가는 것에서 우선 애를 먹었다.
디스이즈더게임이나 게임메카 등 게임전문지는 비평을 위한 매체는 아니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잠시 진행한 게임비평공모전의 수상작 수는 많지 않았다. 『디지털 게임문화연구』(윤태진, 2015), 『게임과 문화연구』(강지웅, 2008), 『게임포비아』(박근서 외, 2014) 등 문화연구자들이 낸 책들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비평보단 연구의 맥락에 놓인 책들이었다. 『게임하기』(박근서, 2009), 『게임, 게이머, 플레이』(이상우, 2021) 등 게임비평서라 부를 수 있는 책들이 소수 있었지만, 개별 게임들에 관한 평론이라기보단 ‘디지털 게임’ 혹은 ‘비디오 게임’으로 묶이는 범주 전체를 이야기하고자 한다는 인상이 강했다. 지면에 발표된 개별 평론을 모은 익숙한 비평집의 형태를 갖춘 레퍼런스는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이경혁, 2016) 정도였달까. 물론 영화, 문학, 미술 비평과 마찬가지로 비평과 연구의 영역과 필자를 무 자르듯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잡식성으로 게임에 관한 글들을 찾아 읽으며 조금씩 “게임 비평/평론은 무엇일까?”에 대한 상을 그려나가는 게 그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게임제너레이션의 게임비평공모전이 5회차를 맞이했다. 제1회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받고 몇 편의 글을 기고했다. 당시 시상식에서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는 “영화 글 쓰는 분인줄 알았는데 게임에도 관심 있으신 줄 몰랐습니다”였다. 내가 게임제너레이션에 기고한 글 대부분은 영화 혹은 영상-보기와 관련된 글(게임원작영화, 머시니마, 스트리밍, 블록버스터와 트리플A게임, 장르적 계보)였기도 했다. 실제로 1회에 함께 당선된, 그리고 이후의 당선자 중엔 기존에 영화나 음악, 미술 등에 대한 글을 쓰던, 개인적으로 동료 비평가라 생각하던 이들도 여럿 있었다. 누군가는 자신의 분야를 벗어나 지면을 확보하고자 하는 기존 필자의 욕망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실제로 종종 듣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 게임이 비평의 언어로 말해지기 좋은 텍스트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각자가 자신의 본래 장에서 갖고 있던 도구를 들고 게임을 바라보는 과정을 독자로서, 동료 필자로서 바라보는 것은 꽤 흥미진진한 일이다.

제 1회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 특집호(7호) 표지
게임은 XX다, 또한 게임비평은 XX다
가장 많은 9명의 당선자를 배출한 제1회 공모전은 그 흥미진진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결과물을 보여준다. ‘루도내러티브 부조화’라는 다소 전형적인 주제를 다루더라도 그것을 판타지적 자각몽의 관점에서 바라보거나[1], <레드 데드 리뎀션 2>(2018)을 소재 삼아 로맨스 문학으로 해석하고[2], 혹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이머와 캐릭터라는 두 개체 사이의 관계에 주목하여 풀어내기도 한다[3]. 게임의 메카닉과 그에 대한 게이머의 경험이 게임 바깥으로 확장되는 맥락을 다루기도 한다.
비평의 대상과 소재는 일종의 확장된 게임플레이로서의 ‘커뮤질’일 수도 있고[4], 리듬게임이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통찰이기도 하며[5], 가속화된 기후위기와 슈퍼리치를 주축 삼는 소비자본주의를 인디 퍼즐게임에서 발견하기도 한다. 완전히 게임 바깥의 맥락인 듯 보이는 대상이 끌여들여지기도 한다[6]. CRPG의 전통 속에서 구성된 메카닉과 내리티브가 근대를 어떻게 해독하게끔 하는지 분석하는 비평[7], 모바일 AR게임부터 트리플A 게임과 배틀로얄에 이르는 일련의 게임 공간 경험과 당시 제출된 입법안을 다루는 글[8]이기도 했다.
그중 최우수상을 수상한 글 “게임은 XX다: 동어반복적 회로를 차단하기[9]”가 던지는 질문은 흥미롭다. AI 챗봇과의 대화부터 루도내러티브 부조화를 통과해 “게임은 지식인가?”라는 질문까지 이어지는 이 글은 “게임은 (실패한) 실험 과정이다”라는 독특한 가설, 혹은 가능성에 도달한다. 게임을 문화, 예술, 지식과 같은 대문자 대상과 등치시키고자 하는 다소 고루한 시도들을 뒤로 미뤄둔 채, 특정한 결과값에 대한 목표나 기대 없는 반복적 실험과 게임플레이를 연결하기.
이 글은 그간의 예술비평이 숱하게 던져온 질문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미술 비평은 뒤샹의 소변기부터 잭슨 폴록의 액션페인팅까지를 목격하며 “미술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했다. 영화 비평은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를 찍는 영화들을 목도하며 “영화란 무엇인가?”를 질문했다. 한 분야의 비평은 자신이 소재 삼는 대상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과정에서 비평 자신 또한 정의된다. 물론 순수 회화론을 주창한 그린버그도, 영화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 앙드레 바쟁도 완벽한 답을 내놓지 못했지만, 그 답이 제출되는 것은 그 자체로 비평의 마지막 장이 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제1회 게임비평공모전에 당선된 글들은 게임을 무언가로 정의내리고자 하는 “동어반복적 회로”를 각자의 방식으로 차단해보는 시도들에 가깝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게임비평은 XX다”라는, 아직 장이 열리기도 전에 쏟아지던 게임비평에 대한 언급들과 거리를 두고 다른 실험을 수행해 보는 것에 가까웠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에겐 레퍼런스가 부족했고, 각자의 실험이 곧장 레퍼런스가 되어야 하는 때였으니까.
제1회 공모전 당선작이 온라인에 공개된 이후 트위터(현 X)나 게임 커뮤니티에 (쏟아졌다고 할 수는 없고) 올라온 반응들은 게임비평이라는 실험에 대한 환영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게임비평은 XX다라는 동어반복적 회로의 반복이기도 했다. 그리고 저 XX가 무엇으로 채워졌을지는, 지난 4년 간의 게임비평공모전을 따라와 준 독자라면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이다.

제2회 게임비평공모전 특집호(13호) 표지
실험의 가능성 - 현실 개입에서 즐거움까지
장려상에서 최우수상까지의 위계를 나누지 않은 7편의 당선작을 배출한 제2회 공모전은 “게임비평은 XX다”라는 제1회 공모전에 대한 응답처럼 다가왔다. 내러티브 비평보단 게임이 내러티브를 풀어내는 방식, 게임의 메카닉과 레벨 디자인이 그려내는 세계-만들기(world-building)를 각자가 애정하는 게임을 상대로 풀어내는 실험들이 이어졌다. 이제는 익숙한 로어 전달 장치로 기능하는 오디오 로그가 게임 스토리텔링 방법론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10], 게임의 주춧돌이 되는 레벨 디자인이 게임의 장르와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하는지[11], 2006년작 <셜록 홈즈: 디 어웨이큰드>와 2023년 리메이크를 비교하며 전통적인 문학적 세계가 충돌하는 두 게임의 방식에 대한 분석[12], 리듬게임이 플레이되는 디바이스의 변화에 따른 게임플레이의 변화[13]와 같은 주제들이 제2회 공모전을 채웠다.
그중 두 개의 글은 게임과 게임플레이를 게임 바깥의 사회와 연동시키길 시도한다. 텍티컬 FPS 장르가 가진 ‘택티컬’의 재현이 그저 좋은 고증에만 머물지 않게끔 할 수 있다는 이규연의 글[14]은 유사한 장르의 게임 사이에서 <Ready or Not>(2023)이 성공한 방식을 본인의 게임플레이 경험에 빗대어 분석한다. 영이의 글 “게임과 행위 원리 – 놀이와 협박”은 <핫라인 마이애미>(2012)를 중심으로 폭력과 죽음, 부활이라는 시간성을 게임플레이를 통해 체험하는 게이머의 경험을 다뤄낸다[15].
전자는 게임과 게임 바깥에 사회적 사건을 직접적인 결부됨을, 후자는 게임이 우리를 게임플레이라는 시간성으로 우리를 개입시키는 방식 자체를 이야기한다. 두 글은 게임이 현실의 시뮬레이션임과 동시에 시뮬레이션으로서의 게임은 현실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풀어냄으로써 게임의 가능성을 상호보완적으로 드러낸다. “게임은 XX다”라는 동어반복적 회로를 끊어내는 게임비평이 가능하다면, 게임비평은 게임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임을 게임을 그저 즐거움을 위한 현상일 뿐이라 말하는, 그 둘이 서로 모순된 진술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제2회 공모전의 당선작들은 그것을 보여주었다.

제3회 게임비평공모전 특집호(20호) 표지
게임비평의 즐거움
당선작의 수를 줄인 대신 상금 규모가 커진 제3회 게임비평공모전의 당선작 4편은 상반되거나 공통점을 찾기 어려워 보였던 앞선 공모전의 당선작들과 달리, 게임하기의 즐거움을 말하는 데 비중을 둔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마인크래프트>(2009)의 각진 그래픽 표현과 그것을 더 작은 사각형으로 부숴버리는 몬스터 크리퍼에 대한 서정적인 에세이[16], ‘알만툴’로 만들어진 인디게임 〈Ib〉(2012)와 게임 속 전시를 실제로 재현한 ‘게르테나전’이 화이트큐브라는 전통적인 공간 경험을 어떻게 매개하는지에 대한 글[17]은 게임플레이 경험과 일상적/개인적 경험을 연결시킨다.
게임플레이는 어떻게 우리의 시야를 바꿔놓는가, 게임의 즐거움은 우리가 눈과 몸으로 마주하는 세계를 어떻게 새로이 감각하게끔 하는가, 이 질문은 게임플레이의 즐거움이라는 맥락 속으로 재차 환원된다. 나머지 두 글, 선택의 스토리텔링을 선보인 두 게임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2018)과 <언더테일>(2015)에서의 선택이 세상을 스토리텔링으로 받아들이는 인간들을 끌어들이는 방식[18], <레인 월드>(2017)가 <아우터 와일즈>(2019)라는 두 걸출한 인디게임이 게이머에게 전능감을 부여하는 방식이 세계에 대한 불능감을 통해 가능하다는 분석[19]은, 장기간 게임에 담겨 있는 세계를 헤매고 파헤친 후에 도달할 수 있는 비평의 즐거움을 보여준다.

제4회 게임비평공모전 특집호(26호) 표지
제4회 게임비평공모전에선 단 두 편의 당선작만이 배출되었기에 어떤 경향성을 논하기는 어렵다. 다만 윤태진 심사위원장의 심사평[20]에 실린 다섯 편의 수상 후보작의 제목에서 공모작이 이전보다 작고 좁은 대상을 택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게임 속 상점에 대한 분석, <슈퍼로봇대전>(1991~) 시리즈에 대한 분석, 타워 디펜스에 대한 장르론, 게임 속 오브제의 잔여적 성격에 대한 분석처럼, 앞선 당선작들이 던진 널찍한 화두보단 보다 사소할 수 있는 지점이나 개인적 애정이 담긴 특정 시리즈, 장르에 대한 분석이 주를 이뤘다는 인상이다.
당선작 중 하나가 서브컬처 모바일 게임에 대한 시론적 성격의 글[21]이라는 점도 이와 궤를 함께한다. 과금유도 중심의 BM과 수집이 메인 콘텐츠가 되곤 하는 서브컬처 모바일 게임에 비평이 개입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거니와, 게임비평보단 서브컬처 비평에 가까워질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다만 강현의 글은 ‘캐릭터 뽑기’라는 게임 메카닉이 BM 구조 속으로 게이머를 개입시키는 과정을 그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그 함정을 피해 간다. 다른 한편, 몇몇 인디게임을 경유하며 ‘소외’를 논의하는 류호준의 글[22]은 게임이 사회 보편의 소재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안정적인 글이었다. 재4회 공모전의 당선작은 위험을 무릎쓴 도전적인 필자와 다소 전형적이지만 안정적이고 단단한 필자를 발굴했달까.
이상 살펴본 지난 4회차의 게임비평공모전은 22편의 당선자를 배출했고, 그중 적지 않은 수가 게임제너레이션의 필자로 활동하고 있다. 모든 필자가 당선 이후에도 게임비평을 기고한 것은 아니지만, 매해 쏟아지는 여러 비평상/평론상의 당선자들이 지면을 찾지 못해 방황하며 재차 공모전을 기웃거리는 현실 속에서, 게임제너레이션의 공모전은 필자 발굴과 지면 제공이라는 최소한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이 글이 수록될 게임제너레이션 32호를 통해 공개될 당선작이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지 나는 아직 모른다. 다만 제1회 공모전에 참여하며 한국 필자의 한국어 레퍼런스를 찾아 온라인과 도서관을 뒤적거리던 나의 경우와 달리, 제5회 공모전의 당선자들에겐 누적된 22편의 레퍼런스가 있었을 것이다.
22편의 레퍼런스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진 않는다. 누군가의 글이 누군가의 글에 대한 반박이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어쩌다 이런 글이 당선되었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 이는 당연한 일이다. 5~6년 전 여러 영화평론상에 지원하던 나는 당시 지면에 실리던 평에 동의하지 않거나, 어딘가 부족하다고 느꼈었다. 공모전에 글을 투고하는 행위는 그런 부정에서 출발하곤 한다. 게임비평공모전에 처음 글을 낼 당시엔 그러한 부정의 대상도 충분히 누적되지 않은 상황이었달까. 게임제너레이션이 32호를, 공모전이 5회를 맞이하는 동안 누적된 글들은 “게임은 XX다”라는 각자의 시도에서 출발한 이곳의 게임비평이 “게임비평은 XX다”라고 말할 수 있게끔 해준다. 게임비평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이제는 나름대로 구색을 갖춘 장을 만들고 있다. 이제 이 문장의 XX를 채워 넣을 새로운 필자들의 글을 읽어 볼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