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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공모전수상작] 서브컬처 모바일 게임 비평을 위한 시론 - 캐릭터 뽑기가 갖는 의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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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5. 10. 10.

페이트/그랜드 오더, 블루 아카이브, 원신, 승리의 여신 니케 등등 2010년대 중후반부터 독자적인 시장을 확보해온 소위 서브컬처 게임이라고 불리는 일군의 게임 장르가 있다. 서브컬처 게임의 특징은 모에 캐릭터/수집형/확률형 뽑기로 여겨진다. 추가적으로 일부 웹게임도 존재하며 미호요(현 호요버스)가 2020년 공개한 원신과 같이 멀티 플랫폼을 지원하는 경우도 점차 증가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모바일을 중심으로 향유되는 라이브 서비스 게임이기도 하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하지만 ‘서브컬처’라는 명명에는 꽤나 기묘한 구석이 있다. 문화연구 분야에서 서브컬처는 고급 문화 혹은 주류 문화에 대응하는 하위 문화를 뜻하지만 근래에는 그 외연이 확장되어 “‘주변부’의 취향 공동체로, 전체 문화 속 문화 혹은 사회 내 다양한 문화들”로 규정되곤 한다.[1] 그러나 한편으로 국내에서는 일본의 오타쿠 문화와 거기서 파생된 컨텐츠를 가리키는 용어로서 서브컬처가 수입 및 활용되며 정착된 사회적 의미가 존재한다.


유사하게 중국에서는 우리가 ‘서브컬처 게임’이라 부르는 장르를 2차원 모바일 게임(二次元手游)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2차원이란 단순히 그래픽이 2D냐 3D냐는 구분에 따른 것이 아니라 일본 오타쿠 컬처에 바탕을 둔 ‘ACG(애니메이션・코믹・게임) 스타일’을 지칭한다. 즉 앞서 서브컬처 게임의 특징 중 하나로 언급한 모에한 이미지・그래픽으로 어느 정도 그 의미가 수렴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서브컬처 게임 시장은 오타쿠 문화에 깊은 이해를 공유하고 있는 한중일 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 증권사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3년까지의 전체 게임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보다 서브컬처 게임 시장이 동일 기간 약 3배에 가까운 성장율을 보여왔으며 앞으로도 10% 이상의 성장률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2]


그러나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시장 상황과 달리 해당 장르는 진지한 비평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곤 한다. 게임 비평이 아니더라도 진성 게이머를 자처하는 이들에게서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뽑기 시스템에 대한 거부감은[3] 서브컬처 게임을 진정한 게임 미만의 것으로 치부하게 만드는 요인이곤 한다. 그 외에도 매력적인 캐릭터를 수집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하는 플레이어들의 향유 태도도 또한 게임의 플레이에서 오는 재미를 부차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되곤 한다.


서브컬처 게임에 대한 비평적 곤란함은 단순히 식자층이 던지는 자격 미달의 시선 때문만은 아니다. 전술했듯이  서브컬처 게임은 대개 모바일 게임으로 완성된 패키지 게임이 아니라 라이브 서비스 게임으로 제공된다. 과거 온라인 MMORPG 게임 ‘서비스’들과 마찬가지로 사실상 완결성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의 완성된 ‘작품’을 다루는 비평이 작동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이렇게 끝이 지워지고 무한히 연속하는 라이브 서비스의 활동성live-ness은 유저에 의해 소유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실시간live으로 소화 및 접속의 대상으로 여겨진다.[4] 때문에 라이브 서비스, 특히 서브컬처 모바일 게임을 두고 기존의 게임 비평은 하나의 메인 시나리오 혹은 하나의 캐릭터에 대한 서사적 분석 정도에 그치곤 했다. 간혹 게임 플레이에 중점을 둔 비평도 시도되었으나 캐릭터를 컨텐츠의 핵심으로 내세우는 서브컬처 게임의 모방적인 게임성으로 인해 한계가 뚜렷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과거와 같은 근대적 작품관에 입각한 비평으로는 동시대의 라이브 서비스 게임을 온전히 다룰 수 없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라이브 서비스를 다루기 위한 비평의 원리가 요청되고 있는 셈이다. 이 글에서는 특히 기존의 게임 비평이 상정해온 ‘게임성’과 일선을 달리하는 서브컬처 게임을 위한 비평의 시론을 전개하고자 한다.



서브컬처 게임의 핵심이 무엇인가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필자는 캐릭터 수집 요소라고 본다. 해당 장르의 제작자도 향유자도 모두 게임이라는 특정한 플레이 경험 속에서 자신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캐릭터를 필수불가결적으로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타 게임 장르에 비해서 유독 두드러지는 캐릭터 존재가 컨텐츠의 핵심이라고 보는 것은 큰 무리가 없다.[5] 특히 호요버스가 2020년 공개한 〈원신〉 이래로 트리플 A급 게임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레퍼런스 삼아 유려한 그래픽과 거대한 볼륨의 컨텐츠를 앞세운 중국발 서브컬처 게임─‘원신 라이크’들은 이러한 장르적 핵심을 가장 잘 이해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최전선을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캐릭터성의 강조에는 그것이 곧 뽑기라는 과금으로 이어지며 게임사의 매출과 직결한다는 이유도 존재한다. 게임 내 부분유료 컨텐츠로 제공되는 확률형 아이템, 즉 뽑기는 일반적으로 게임의 수익 모델로 여겨지곤 한다. 그리고 국내 게임 담론에서 BM에 대한 논의는 대개 사행성이나 유독성에 대한 논의에 머무르곤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과연 뽑기는 게임성과 완전히 무관할까? 뽑기 시스템이 도입된 RPG 게임의 플레이 경험이나 그 게임성에 손상을 입힌다는 주장이 성립한다면, 특정 게임에서는 뽑기가 게임성을 구성하는 데에 핵심적일 수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메타 게이밍의 요소로서 현질을 플레이의 한 형식, 즉 ‘납금 플레이’로 이해하는 접근도 존재한다.[6] 그러나 여기서 납금이란 플레이 형식은 어디까지나 게임과 유저 사이에 존재하는 난이도와 숙련도 관계에 대한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지, 캐릭터의 매력이나 애정과 같은 게임 플레이에서 부수적인 것으로 여겨지던 영역에서 추동되는 과금 행위까지 설명하지는 못한다.


물론 서브컬처 게임에서 캐릭터 수집이 게임 플레이와 완전히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다. 특히 앞서 설명한 것처럼 캐릭터가 컨텐츠 기획의 핵심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게임 내적 난이도와 캐릭터의 성능은 매우 직접적 관계를 갖는다. 소위 라이브 서비스 중 버전이 진행됨에 따라 게임의 재미를 제공하기 위해 점차 상승하는 난이도 및 다양한 기믹-메타에 최적화되어 최신 픽업 캐릭터가 디자인된다.


즉 최신 버전의 메타를 쾌적하게 즐기기 위해서는 최신 캐릭터의 필요성을 느끼게 만드는 점에서, 캐릭터의 사용가치는 중요하다. 그러나 캐릭터를 포함한 유료 아이템의 성능이 사업 모델과 직결하는 ‘페이 투 윈’조금 다른 이유는 성능이 다시 캐릭터의 매력으로 회수되기 때문이다. 그 예시로 원신에서 중국을 배경으로 한 리월 출신의 강력한 신이란 컨셉을 가진 종려 캐릭터가 자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지만 실성능이 무척 낮다는 이유로 ‘자국 신임에도 성능이 낮다’와 ‘컨셉이 성능과 불일치한다’는 등의 이유로 반발을 샀다가 큰 상향을 받게 된 사례가 있다.


그러나 오타쿠 문화에 익숙한 게임 유저들 사이에서는 일찍부터 ‘외모도 성능이다’란 금언이 있었듯이, 실제 사용가치만으로 캐릭터 뽑기에 참여하지는 않는다. 성능 때문에 뽑기도 하지만,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자신의 취향에 완전히 맞지 않는 경우에는 그 어떤 게임 유저들과 다르게 강고한 거부 태도를 보이기도 하는 것이 바로 오타쿠 유저들이다.


원신 라이크 게임들에서는 각 버전마다 진행되는 메인 스토리에서 새로 추가된 픽업 캐릭터가 크게 활약하는 장면을 넣어두고 또 자연스러운 체험 플레이를 유도함으로써 ‘강제애착 스토리’를 제공하고 있다.[7] 하나의 게임 내에서 다양한 메인 스토리 및 이벤트, 서브 이벤트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픽업 캐릭터의 매력을 어필하는 것은 다양한 매체를 동시에 전개하는 미디어 믹스적 전략으로 이해해볼 수 있다. 호요버스의 최신 작품인 〈젠레스 존 제로〉 속 유즈하 캐릭터의 경우 픽업과 함께 추가된 메인 에피소드 외에도 여름 바캉스 특집 이벤트에 맞춰 스킨이 출시되며 해당 스킨에 맞는 대규모 특별 이벤트를 준비하면서 게임 내에서 체험할 수 있는 이벤트성과 상품의 내적 연결고리가 강력하게 착종되어 있었다. 이와 같이 상품의 사용가치(성능)와 별개로 상품이 갖는 일종의 기호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전략이 호요버스 게임 속에서 매우 첨예하게 갱신되고 있다.


한편으로, 이러한 서브컬처 게임의 최신 경향 속에서 캐릭터의 매력에 사로잡힌 유저가 자연스럽게 해당 캐릭터를 뽑아 수집하고자 한다는 일련의 흐름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대상에 대한 애정이 대상에 대한 소유(수집)으로 이어진다는 비약이 존재한다. 이는 단순히 사랑에서 비롯되는 독점욕이나 소유욕과 같은 본성적 차원으로 소급해서 이야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욕망이 자연적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오늘날 그것을 경험하는 방식은 비자연(=기술)적이기 때문이다.[8] 


그런 의미에서 ‘비오타쿠의 현명함’이란 인터넷 밈은 복제가능한 이미지로서의 ‘캐릭터’가 게임 내 개인계정으로 수집되는 행위와 게임 외적으로 데이터로서의 기록(캡처)에 대한 의미론적 질문을 던지며 동시에 오타쿠적 소비 양태에 근간은 이루는 (과)몰입에 대한 냉소적 비판을 던지고 있다. 여기서 표적이 되는 것은 캐릭터라는 비실재 대상에 대한 애정과 몰입이라는 지극히 ‘리비도적 경제’ 활동이다. 지금까지 많은 서브컬처 게임들이 서비스 종료됨에 따른 ‘최애’ 캐릭터들에 대한 상실과 그로 인한 불가능한 애도가 유저에게 문제가 되는 반면에, 페이 투 윈으로 유명한 리니지 라이크 게임들의 서비스 종료는 유저 개인의 리비도가 아니라 아이템 재산이나 소유권 같은 지극히 실물 경제적 측면이 문제가 된다는 점에서 리비도적인 것의 차이를 도출할 수 있다.


동시대 서브컬처 게임에서 이뤄지고 있는 이러한 리비도적인 것, 즉 애정과 몰입을 소유와 연결지어내는 마법과 같은 작업을 이해하는 데 있어 롤랑 바르트가 《사랑의 단상》에서 보여준 놀라운 통찰을 빌려와 설명해볼 수 있다. 바르트는 매혹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그러한 ‘첫눈에 반한 사랑’은 대상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장면에 대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말하는 장면이란 ‘사물들의 배치’이며, 특정 대상을 둘러싼 환경이 대상과 맺는 관계성이 대상을 특별하게 만들며 대상을 사랑에 빠질만한 것으로 ‘축성을 내린다’. 그리고 이러한 바르트의 통찰은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뤄지는 상품화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플랫폼, 알고리즘과 같은 디지털 기술에 의한 기호적 환경에 대한 이해로 연결될 수 있다.[9]


앞서 예시로 들었듯이 젠존제라는 하나의 플랫폼 내에서 제공되는 미디어 믹스, 그 이미지와 서사, 플레이의 관계망 속에 배치된 유즈하에 대한 애정은 매우 잘 짜인 코드화의 결과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10] 이처럼 종합적이고 중층적인 배치를 통해서 캐릭터가 제공되는 형태를 ‘장면화’라고도 부를 수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게임 속 서사는 장면화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보다 정확히는 서사의 장면화는 게임에서 제공되는 단일한 서사가 아니라 서사가 제공되는 구조에서 비롯된다.


수집형 서브컬처 게임 속에서 서사와 캐릭터의 매력이 결합하여 제공되는 구조적 형태에 대해 연구한 이아름의 연구에 따르면,[11] 수집형 게임 속에서 무수히 병렬되며 추가되는 캐릭터들과 그 서사는 “전체를 아우르는 큰 이야기”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 각자로 완전히 별개된 ‘커뮤니케이션(=일정량의 작은 이야기)’으로 전환된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하나의 서사(루트) 속에서 선택과 분기를 경험할 필요 없이 초월적 위치에서 모든 가능성을 확보하며 하나의 시간성(=무시간성)을 체험한다. 그런 의미에서 수집이란 행위는 실제로 시간성을 초월한 질서를 수집된 대상에 부여함으로써 무역사성 안에서 자기 폐쇄적인 형태를 추구하는 행위다.[12] “모든 시간은 수집품의 세계 안에서 동시 존재 또는 동시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호요버스 게임에서는 이러한 수집형 게임에서 발견할 수 있는 ‘수집품’의 서사적 시간성의 구조뿐만 아니라, 그와 반대되는 ‘기념품’으로서의 시간성의 구조 또한 발견할 수 있다. 기념품은 “각각의 경험을 특별하게 인식”하며 “이야기를 통해 본래의 맥락을 끊임없는 소비의 맥락으로 대체”한다. 나아가 과거와 현재의 ‘거리’를 의식하며 우리의 관심을 과거로 전치시켜 “과거 안에 현재를 가둬 넣는 기능”을 수행한다.[13] 이아름은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메인 스토리)와 함께 병치되는 다양한 이벤트 스토리 및 후속 이벤트를 통해서 메인 스토리에서 활약하지 못한 캐릭터의 주목도와 매력을 높이는 보완적 기능을 해낸다고 설명한다.[14] 그런데 흥미롭게도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서브컬처 모바일 게임이 ‘모바일 게임’으로서 갖는 특징은 과거에 진행된 픽업뿐만 아니라 한시적 이벤트까지도 반복해서 개최하는, 유실과 변형을 갖지 않는 무한 반복이 가능한 데이터성에서 비롯되는 소위 ‘복각’에 있었다.


하지만 출시 이래 원신은 기존 서브컬처 모바일 게임과 달리 현재까지 단 한 번도 과거에 이뤄진 이벤트를 복각한 적이 없었다. 유사하게 2015년 출시한 페그오의 경우도 2021년 이후로는 과거와 달리 거의 이벤트 복각이 이뤄지지 않는 운영 노선을 보여주고 있다.[15] 이처럼 무손실의 반복과 복제가 가능한 데이터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복각 정책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그만큼 메인・이벤트 서사와 함께 연동된 캐릭터의 매력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유저에게 매우 찰나적이며 한정적으로 제공되는 셈이다. 때문에 신규 캐릭터의 등장과 함께 유저가 느끼는 애정이 ‘뽑기’를 통한 소유로 나아가는 이유 중 하나는 계정 내의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그 ‘캐릭터 자체’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기 위한 기념품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가 뽑기를 통해 소유한 캐릭터는 해당 ‘캐릭터’에 대한 (상실과 추억의) 지표임과 동시에, 유저에 의해 뽑혀 게임 내에서 플레이됨으로써 상실된 과거에 대한 대상행동으로서 새롭게 생성되는 게임 내의 ‘행위서사’가 현재를 구성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논의의 핵심은 아즈마 히로키가 오타쿠 비평을 통해서 논한 바 있듯이 “캐릭터의 본질보다도 캐릭터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상상력의 환경”에 관한 것이다.[16] 아즈마가 분석하던 시기와 차이가 있을지라도 “이야기보다 캐릭터쪽이 기초적인 단위로서” 상정되고 있다는 상황 판단에는 여전히 시의성이 존재한다. 나아가 그는 작품 자체가 이미 소비 환경을 감안해 제작되었으므로 분석자도 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면서 ‘환경 분석’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타쿠적 문화 소비의 가장 큰 특징은 ‘동인’이라고 하는 2차창작 향유라고 할 수 있다. 모에한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는 서브컬처 게임들은 과거에도 일러스트 공모전과 같은 수용자 참여를 독려하는 이벤트를 꾸준히 개최하곤 했다. 그러나 아예 제작사가 전면에 나서서 공식적으로 이를 독려하는 대대적인 장을 마련한 것은 역시나 호요버스가 선구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021년부터 개최되어 여러 분야의 크리에이터가 참여하는 호요페어는 ‘공식’이 제공하는 재미를 보충하고 확장하면서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게임 내외부로 순환되는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동인 품기’를 통해서 노리는 것은 역시나 게임 외적인 미디어 믹스가 빚어내는 ‘사물들의 배치’다. 나아가 현재 젠존제를 비롯한 호요버스의 게임들은 서비스 초기와 다르게 적극적으로 신규 캐릭터에 대한 정보를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디테일하게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관련 유튜버들을 지원하여 신규 캐릭터에 대한 성능 및 육성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유출’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호요버스는 현재 서브컬처 게임 제작사 중 가장 소비 환경을 잘 활용하는 회사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유저는 이처럼 게임 내외부의 환경 속 배치 안에서 해당 캐릭터의 매력에 매혹된다. 때문에 복제가능한 ‘모두의’ 캐릭터라고 할지라도 개인이 해당 캐릭터를 소유하고자 하는 것에는 ‘뽑은 캐릭터’가 고유명사로서의 캐릭터에 대한 기념품이자 수집품이란 양가적 의미로 성립한다.


뽑기는 단순히 해당 캐릭터를 구매하는 행위와는 다르다. 극악의 확률에 기대어 자신이 원하는 대상을 손에 넣는 우연성이 개입되어 있다. 물론 충분한 금액을 투여한다면 반천장과 같은 확률 조정 시스템을 통해 확실하게 얻을 수는 있지만 고래가 아닌 일반 유저들은 결국 확률에 기댈 수밖에 없고 유저들은 기원을 하게 된다.[17] 기도라는 행위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즉 우연(우발)성에 대한 요청이다. 그러나 만일 해당 기도의 내용이 이뤄진다면 기도란 행위 자체는 내용이 이뤄지는 것과 실질적인 인과성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후적으로 인과적 필연성으로 인식된다는 점에 기도의 신비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뽑기를 통해 특정 캐릭터를 갖게 된 것은 우연성을 필연성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비오타쿠적인 현명함은 우연성을 포함한 총체적 ‘사물의 배치’ 외부에서 특정 대상만을 포착하는 것에서 비롯되지만, 오타쿠적 어리석음은 배치 안에서 우연성을 필연성으로 엮어내는, 바로 그 양가성의 성립을 통해서만 활성화되는 리비도에서 기인한다.


마지막으로 서브컬처 게임 비평에 관해 한가지 짚어두자면, 그렇다면 과연 뽑기 시스템은 서브컬처 게임에 있어 필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호요버스의 원신 이래로 게임 내 뽑기의 평균 단가가 상승해 과금 부담이 매우 높아졌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서브컬처 게임의 중소과금 유저들의 뽑기 양태는 ‘명전’[18]으로 수렴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2025년 상반기에 발표된 중국 게임 산업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모바일 서브컬처 게임 매출은 전년의 19%에서 11%로 크게 하락했다고 한다.[19]


이처럼 포화 상태의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중국발 서브컬처 게임 시장에서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20] 이러한 시도가 앞서 다룬 서브컬처 게임 장르의 핵심을 얼만큼 갱신시킬지는 아직 섣불리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뽑기를 통해서 캐릭터와 유저가 맺게 되는 리비도 경제가 변화한다면 역시나 서브컬처 게임의 배치 또한 변화하게 되고, 최종적으로 게임성 자체에도 많은 변화를 불러올 것임은 분명하다. 원신으로 시작된 거대자본 서브컬처 게임이 5년차를 맞이하면서 해당 장르의 변곡점에 진입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서브컬처 게임을 향한 비평의 움직임 또한 시동이 걸릴 최적의 시기가 아닐까 싶다.





[1] 강신규, 《서브컬처 비평》, 커뮤니케이션북스, 2021, p.11
[2] 미래에셋증권, 〈시프트업─호요버스의 성장 스토리가 보인다〉, 2024.9.11
[3] 이경혁, 《현질의 탄생》, 이상북스, 2022, p.178-179
[4] KAI-YOU, 北出栞, 〈ソーシャルゲーム以降、主体的に生きることは可能なのか?──『マギレコ』サービス終了から始める批評原論〉, https://premium.kai-you.net/article/830, 2024.8.21
[5] 기존 게임 장르 중 비슷한 경우는 격투 게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캐릭터를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게임 플레이 경험이 극적으로 달라지는 동시에 캐릭터 자체의 매력이 플레이어에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근래에는 리그 오브 레전드, 오버워치, 레인보우 식스 시즈 등 다양한 장르에서 컨텐츠 기획이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방향으로 전환되어 왔다. 나아가 2021년 출시된 〈배틀필드 2024〉가 FPS 시리즈의 전통적인 병과 분류가 아니라 병과 내에서 비대칭 능력을 가진 개별 캐릭터(스페셜리스트)를 내세우며 변화를 시도한 적이 있다. 이처럼 라이브 서비스 게임들에서 점차 캐릭터 중심으로 컨텐츠가 재편되는 현상에서 서브컬처 게임의 특성을 엿볼 수 있다.
[6] 이경혁, 같은 책, p.182-183
[7] 그러나 동시에 해당 메인 스토리에서의 활약 이후에 다른 메인 스토리에서 주연으로 다시 활약하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고할 수 있다, 家無しララ, “なぜガチャ嫌いの私は課金沼に堕ちたのか? 沼らせるカラクリを鳴潮から学ぼう”, https://www.youtube.com/@NHLala, 2025.8.4.
[8] 앨피 본, 박종주, 《게임 사랑 정치》, 시대의창, 2023, p.174
[9] 앨피 본, 같은 책, p.55-61
[10] 물론 그 코드의 다발은 또 ‘서브컬처’라고 하는 오타쿠 문화에서 공유되는 모에의 데이터베이스 소비를 통해 구성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둘 필요가 있다.
[11] 이아름, 디그라 한국학회 제1회 〈플레이어에서 프로듀서로─캐릭터 수집형 게임 시대의 게이머 주체성〉, 2025
[12] 수잔 스튜어트, 박경선, 《갈망에 대하여》, 산처럼, 2015, p.313
[13] 수잔 스튜어트, 같은 책, p.282-283, p.312
[14] 이아름, 같은 곳
[15] 이에 대해서는 2021년부터 페그오를 인수한 애니플렉스 측으로부터 공식적인 입장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일각에서는 페그오 자체가 매우 뒤떨어진 개발 엔진을 사용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버전간 호환이 어려워 복각이 시스템적으로 어렵다는 추측도 있다. 그러나 2020년대 호요버스를 위시한 현재 서브컬처 게임 중 무복각 노선 운영이 일반적인 경우가 되었다는 사실을 보면 신규 캐릭터・이벤트 중심으로 컨텐츠 지형이 이동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16] 아즈마 히로키, 이은미,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문학동네, 2007, p.27
[17] 〈원신〉에서 뽑기 시스템의 이름이 ‘기원'이며 이에 사용되는 교환 화폐의 이름은 ‘뒤얽힌 인연’이다.
[18] 명함과 전용무기를 합쳐 줄여 부르는 용어. 명함은 중복 캐릭터 뽑기를 통해서 할 수 있는 돌파를 하지 않은 ‘돌파횟수 0’을 가르키는 말이다. 전용무기는 신규 캐릭터의 성능을 최적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설계된 신규 무기를 가르킨다.
[19] 게임메카, 〈중국 게임시장 성장 속, '서브컬처’는 쇠퇴하고 있다〉,  https://www.gamemeca.com/view.php?gid=1764382, 2025.8.5.
[20] 게임메카, 〈캐릭터 뽑기 삭제, 듀엣 나이트 어비스 10월 28일 출시〉, https://www.gamemeca.com/view.php?gid=1765332, 2025.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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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오타쿠 문화 독립연구자. 근래 PC 싱글 게임 구력을 보드게임 구력이 추월하고 있다. 최근까지 티바트 세계(원신)와 뉴에리두(젠존제)의 수호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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