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 모바일 리듬 게임에서 ‘엄지러’를 선택하기-‘프로젝트 세카이 컬러풀 스테이지! feat.하츠네 미쿠’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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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3. 8. 10.
‘엄지러’는 선택을 해야 한다
‘엄지족’이라는 신조어가 있었다. 2000년대 폭발적으로 보급된 스마트폰이 사회 전 분야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을 때였다. 엄지를 이용해 스마트폰의 화면을 누르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청년을 일컬어 ‘엄지족’이라 불렀다. M으로 시작하는 것에 착안해 이들 세대를 모바일 세대, M 세대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무도 그런 말을 쓰지 않는다. 모두가 ‘엄지족’이자 모바일 세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바일 리듬 게임의 세계에서 ‘엄지족’, 다른 말로 ‘엄지러’는 여전히 실존한다. 스마트폰 리듬 게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00년대 후반 이후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모두가 ‘엄지러’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모바일 리듬 게임의 세계에서 ‘엄지러’의 위치는 다소 미묘하다. 노트를 정확한 타이밍에 터치해야 하는 일반적인 포맷의 모바일 리듬 게임을 상상했을 때, 분명히 모바일 리듬 게임의 유저 대다수는 엄지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엄지러’다. 그러나 노트가 더 많이, 빨리 등장하며 고난도의 플레이가 요구될수록 뚱뚱한 엄지 두 개만을 움직이는 플레이는 명확한 한계를 가진다. 이론상 발로도 플레이할 수 있는 <지오메트리 대시Geometry Dash>나 엄지가 누비기 비교적 수월한 세로형 인터페이스의 <피아노 타일 2Piano Tiles 2>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기에 모바일 리듬 게임의 ‘엄지러’는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한계가 있음을 알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엄지로 플레이하거나, 지금부터라도 낮은 레벨부터 다른 손가락을 사용하는 연습을 하며 플레이 스타일을 ‘교정’하는 방법이다. 전자를 선택한 이용자라도 이걸 엄지로 하라고 만든 것이 맞는지 의심되는 곡을 만나면 다시 갈등을 시작한다. 이 필연적인 고민은 하나의 의문을 낳는다. 리듬 게임의 ‘엄지러’는 바뀌어야만 하는가?
인터페이스의 전환과 ‘엄지러’의 탄생
‘엄지러’는 원래 리듬 게임에 존재하지 않는 계층이었다. 리듬 게임은 이전까지 감각적인 콘트롤러를 탑재한 아케이드 기기를 무기로 이용자를 매혹시켰다. 이용자는 강렬한 음악이 귓가를 때리는 오락실에서 버튼을 누르고, 돌리고, 발판을 밟고, 북을 치고, 기타를 치는 식으로 리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2000년대부터 오락실이 쇠퇴함에 따라 온라인과 콘솔, 모바일 등 각각의 형태를 기반으로 리듬 게임이 분화되었다.
모바일 리듬 게임으로 넘어오며 리듬 게임은 기존의 무기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각양각색의 감각적인 콘트롤러 대신 게임사가 활용할 수 있는 것은 피처폰의 조악한 버튼, 조금 더 나아가서는 스마트폰의 작은 터치스크린뿐이었다. 이 터치스크린 속에서 특정한 버튼을 누르면 여전히 소프트웨어는 우리의 입력에 반응하지만, 과거와 같이 게임 소프트웨어 바깥에서 주어지는 ‘눌렸음’의 촉각적 신호는 사라진다.1)
이 물리적 제약은 감각적인 콘트롤러를 내세웠던 리듬 게임에 엄청난 도전이었다. 대신 스마트폰은 리듬 게임에게 휴대성과 대중성을 가져다주었다. 게임사는 모바일 환경에 맞춰 ‘엄지족’이 엄지로 간편하게 플레이할 수 있게끔 리듬 게임을 설계했고, ‘엄지족’은 엄지로 플레이를 했다. ‘엄지러’의 탄생이었다. 2000년대 후반부터 리듬스타 등의 피처폰 모바일 리듬 게임이 인기를 끌었으며, 2010년부터는 고사양의 스마트폰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아이폰, 안드로이드와 같은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한 리듬 게임들이 개발되었다.2)
형태의 전환은 새로운 규범을 만들었다. 스마트폰으로 리듬 게임을 한다는 것은 게임사가 더는 이용자가 리듬 게임을 하는 방법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케이드 리듬 게임을 플레이할 때는 정해진 장소로 가 정해진 콘트롤러를 정해진 방식으로 조작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모바일 리듬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용자들에게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그들은 불특정한 장소에서 불특정한 기기를 불특정한 방식으로 조작한다. 이용자는 카페에서 태블릿을 눕혀놓고 모든 손가락을 활용해 게임을 플레이할 수도 있고, 핸드폰을 들고 집에 누워서 엄지로 플레이할 수도 있으며 최신형 접히는 핸드폰을 산 것을 후회하며 접히지 않도록 조심하며 검지로 플레이할 수도 있다. 이 새롭고 다양한 사용자 경험 위에서 이전과 다른 플레이 문화가 축적됐다. 인터페이스의 전환이 새로운 장르적 전통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바일 리듬 게임에게 ‘어느 정도 엄지 플레이를 가능하게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은 필수적인 동시에 중요하다. 이 질문에 어떤 답을 내리느냐에 따라 해당 리듬 게임의 방향성이 결정된다. 캐릭터 IP를 내세운 대중적인 모바일 리듬 게임인 <Bang Dream! 걸즈 밴드 파티!>처럼 이론상 엄지로만 플레이 가능한 게임이 있는 한편, 아예 어려운 리듬 게임을 테마로 한 <다이나믹스Dynamix>처럼 엄지 플레이가 거의 불가능한 게임도 있다. <칼파KALPA>처럼 엄지 플레이 난이도와 다지 플레이 난이도를 이원화하는 선택을 하거나, 특정 레벨 이상부터 다지 플레이를 필수로 만드는 등의 절충안을 내놓은 경우도 존재한다.
“모든 곡은 두 손가락으로 풀 콤보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중 ‘프로젝트 세카이 컬러풀 스테이지! feat.하츠네미쿠’(이하 프로세카) 또한 이론상 엄지로만 플레이가 가능한 모바일 리듬 게임이었다. 주식회사 세가와 컬러풀 파레트, 크립톤 퓨처 미디어가 공동 개발한 프로세카는 보컬로이드 IP를 이용한 캐릭터 수집 요소를 결합해 만든 대표적인 모바일 리듬 게임 중 하나다.
이 리듬 게임이 호명된 이유는 이 게임이 더 이상 엄지로만 플레이 가능한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 서버에서 개최된 창작 콘테스트 ‘초고난이도 프로세카 ULTIMATE’의 당선작 3곡이 게임 내 최고 레벨을 경신하는 37레벨로 수록되며 이 명제가 깨진 것이다. 이는 게임의 프로듀서인 콘도 유이치로의 “모든 곡은 두 손가락으로 풀 콤보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는 과거 발언을 번복하는 문제로써 이용자들 사이에 논란이 되었다. 이에 게임사는 37레벨은 번외 레벨로 예외적인 경우이며, 이하의 레벨에서는 앞서 말한 원칙을 지키겠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사실 프로세카가 이론상으로 엄지로만 플레이가 가능했을 때에도 높은 난이도의 곡들은 거의 엄지로 플레이하기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실제로 프로세카에는 엄지만 사용하여 올 퍼펙트를 달성한 것이 확인되지 않은 곡이 다수 존재하며, 같은 난이도의 곡이라도 엄지로 플레이할 때 압도적으로 어려운 곡도 존재한다. 높은 난이도의 곡을 엄지로 플레이하는 이용자가 있더라도 그것은 극히 소수일 뿐이다. 그리고 가능과 불가능의 영역을 넘어, 여러 손가락으로 플레이하는 것은 엄지로만 플레이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그런데 왜 ‘엄지러’는 그렇게 하지 않는가?
물론 여러 손가락을 사용하려면 태블릿과 같은 일정 크기 이상의 터치스크린을 눕혀야 한다는 제약이 존재한다. 하지만 높은 난이도의 곡을 시도할 정도로 열성적인 이용자가 단지 그것 때문에 엄지를 고수한다는 점은 이상하다. 더 이상한 점은 여러 손가락으로 플레이하는 이용자조차 37레벨 곡 업데이트에 대하여 ‘엄지 배려’를 하라고 목소리를 낸다는 점이다. 높은 난이도의 곡 플레이가 가능한 ‘엄지러’는 원래도 거의 없었는데, 그들은 무엇을 위해 이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는가?
‘엄지러’라는 전통
이 모든 반응은 ‘엄지 플레이’와 ‘다지 플레이’의 구분이 단순한 플레이 방식의 차이 그 이상을 함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만약 이 구분이 단순한 플레이 방식의 차이였다면 엄지로 32레벨까지 클리어하고 막히면 33레벨부터는 다지로 플레이 해 클리어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용자들은 33레벨 ‘엄지’ 클리어와 33레벨 ‘다지’ 클리어를 다른 것으로 구분한다. 게임 내적 시스템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클리어하든 아무 구분 없이 표기되는 데도 말이다.
이용자들은 대신 게임 외적으로 엄지로 특정 레벨까지 클리어 한 사실을 자랑한다거나, 엄지로 특정 곡을 클리어 한 영상을 공유하며 그들만의 전통을 축적한다. ‘엄지러’를 기준으로 한 비공식 곡 난이도 표를 만들고, ‘다지러’가 엄지로 어디까지 플레이가 가능한지 도전하기도 한다. 이렇게 축적된 전통 위에서 ‘엄지러’의 높은 난이도 도전은 몇몇 이용자의 기행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런 모습은 플레이 방식의 차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여러 직업이 있는 RPG 게임에서 상이한 난이도의 직업 루트를 선택하는 것과 더욱 유사해 보인다. 하나의 직업으로 최종 보스를 처치했다는 사실이 인정받으면서도 그것이 곧 다른 직업의 성취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다른 매체와 구분되는 게임의 특징을 논할 때 공통적으로 거론되는 점이 바로 게임과 이용자 간의 상호작용으로 생성되는 새로운 맥락과 이용자의 창조성이다. 이경혁3)은 게임 매체의 수용이 일종의 창조 행위라는 것을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로 오락실의 <펌프 잇 업> 고수가 펼치는 두 발 외의 몸을 사용하는 펌프 퍼포먼스를 들었다. 이런 예시는 개별 이용자의 창조적 수용을 보여준다.
‘엄지러’의 전통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게임사를 포함한 모바일 리듬 게임이라는 장르의 구성원은 모두 이 암묵적인 장르적 전통을 공유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게임 외적으로 구축된 전통은 개별적인 창조적 행위가 아닌 인터페이스의 특징에서 촉발되어 장르의 구성원이 새롭게 창조한 ‘규범’에 가깝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앞선 프로세카 같은 리듬 게임은 특히 게임 내적 시스템의 영향으로 다른 모바일 리듬 게임보다 ‘엄지러’의 규범이 강하게 작용한다. 실제로 엄지 플레이를 염두에 두고 설계된 것뿐만 아니라, 대중성을 위해 양적 랭킹 시스템을 도입하였기 때문이다. 프로세카에는 일정 기간 동안의 플레이 횟수에 따른 양적 랭크인 이벤트 랭킹과 실력을 겨루는 질적 랭크인 랭크 매치가 동시에 존재한다. 그리고 양적으로 순위를 매길 때 더 유리한 플레이 방법은 당연히 엄지를 이용한 플레이다. 이러한 이원화는 엄지 플레이에 확실한 효용을 부여함으로써 엄지 플레이의 지위를 보장한다.
‘엄지러’를 선택하기
단순한 플레이 방식 이상의 ‘엄지러’ 전통을 고려했을 때, 프로듀서의 발언을 차치하고서라도 이론상 엄지로만 칠 수 없는 곡의 등장이 강한 논란을 불러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RPG 게임의 비유를 다시 가져오면,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지 여부와 별개로 하나의 직업 루트에만 번외 콘텐츠가 개방된 셈이니 말이다. 혹여 ‘다지러’로 전직하더라도, 모바일 리듬 게임을 하는 한 ‘엄지러’의 전통은 우리와 함께 숨 쉬고 있다. 다시 질문해보자. 리듬 게임의 ‘엄지러’는 바뀌어야만 하는가? 무의미한 질문이다. 바꾼다 해도 내가 선택해 키운 ‘엄지러’는 사라지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