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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율, 계산 가능성 그리고 민맥싱
테크 전문 월간지인 와이어드WIRED는 지난 3월 [1](효과/효율적 이타주의의 종언)이라는 장문의 칼럼을 게재했다. 그리고 즉각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어째서 특정한 철학 사조를 비판하는 철학자의 글이 기술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잡지에 실리게 됐으며, 이토록 큰 관심을 유도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효과/효율적 이타주의(통칭 EA)가 처한 특수한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 EA는 실리콘 밸리의 유력한 엔지니어들과 테크 억만장자들(이 두 그룹은 종종 겹친다.) 사이에서 이미 실질적인 종교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Back 효율, 계산 가능성 그리고 민맥싱 18 GG Vol. 24. 6. 10. 극한의 (비)효율충 테크 전문 월간지인 와이어드WIRED는 지난 3월 [1] (효과/효율적 이타주의의 종언)이라는 장문의 칼럼을 게재했다. 그리고 즉각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어째서 특정한 철학 사조를 비판하는 철학자의 글이 기술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잡지에 실리게 됐으며, 이토록 큰 관심을 유도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효과/효율적 이타주의(통칭 EA)가 처한 특수한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 EA는 실리콘 밸리의 유력한 엔지니어들과 테크 억만장자들(이 두 그룹은 종종 겹친다.) 사이에서 이미 실질적인 종교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픈 AI를 둘러싸고 벌어진 샘 알트만의 해임 해프닝과 고객들의 돈을 빼돌려서 세계 최대 규모의 암호 화폐 거래소 FTX를 파산으로 몰고 간 샘 뱅크먼-프리드의 케이스 등 최근 실리콘 밸리에서 벌어진 굵직한 스캔들들은 직, 간접적으로 이 ‘철학 사조’와 연루되어 있다. 즉, EA는 우리의 일상을 세심하게 지배하는 기술 기업들의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등대로서 작동한다. * EA의 화신(?) 샘 뱅크먼-프리드의 재판 풍경 그러므로 법정에서 25년 징역형을 선고받은 샘 뱅크먼-프리드가 사실은 이 사상을 잘못 이해한 돌연변이 같은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EA 그 자체를 현현한 실체에 가깝다는 부분(“SBF is a natural.”)에 이르자, 여기저기서 분노에 가까운 반응들이 방어 기제처럼 터져 나왔다는 사실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정말로 놀라운 일은 수치를 앞세워서 이타주의의 효과를 객관적으로 증명해 내기라도 한 것처럼 의기양양하던 그 수많은 주장이 사실은 그저 빈약한 근거에 기반한 그럴듯한 추측(“precise guesses built on weak evidence”)에 불과했다는 진실이다. 특히 EA의 주창자들이 앞다투어 ‘예시’로 들기 좋아하는 저개발국들을 향한 원조와 관련해서 저자는 매우 신랄한 지적을 한다. 한 마디로 계산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특정한 액수의 돈이 몇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식의 계산은 (설령 복잡한 수식을 동반하더라도) 편의적으로 적은 수의 변수를 취사선택해서 급조한 허접한 모델링에 불과하다. 세계는 훨씬 더 복잡하며 미묘하다. 따라서 최대로 ‘정확한’ 계산을 지향한다면 우리는 지원 받은 구충제를 아이에게 먹여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부모의 마음까지도 변수에 포함할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2] 그런데 이 이야기는 통렬한 비판만으로는 환원되지 않는 잔여를 남긴다. 이를테면 계산 가능성은 효율성이 성립 가능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라는 명제가 그러하다. 많은 이들이 일상에서 효율이라는 말을 밥 먹듯이 사용하지만, 계산할 수 없어지는 순간 그 단어가 가지는 명징함과 위력은 연기처럼 사라진다. 효과/효율적 이타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계산을 통해서 ‘효율성’을 증명해 내는 것에 실패함으로써 그것은 사실 별로 이타적이지도 않다는 회의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EA의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다층적인 세계의 복잡도는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마치 1:1의 축척을 가진 지도처럼 현실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모델을 만들어 내는 일은 (적어도 현재 인류의 기술 수준으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최고로 정교한 모델이 산출해 낸 시뮬레이션 결과를 제시한다고 해도, 우리는 겨우 근사치만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즉, 엄밀히 말해서 틀린 계산인 셈이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기상 예보일 것이다. 날씨를 예측하는 행위는 고대부터 인류의 삶과 분리될 수 없는 (특히 농경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의례로 여겨왔지만, 대기의 물리법칙에 의거해서 수치적인 계산을 시작한 것은 19세기 이후의 일이다. 영국의 수학자이자 기상학자인 루이스(Lewis Fry Richardson)는 지금까지도 전 세계 기상 예보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수치 예보(numerical weather prediction, NWP) 시스템을 1922년에 고안해 냈다. 그런데 이 시스템이 실제로 작동하는 모델로 기능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28년 뒤인 1950년에 이르러서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수많은 연산량을 당시의 기술로는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3] 존 폰 노이만에 의한 수치 예보의 재발견과 세계 최초의 범용 디지털 컴퓨터인 애니악ENIAC이 없었다면, 그 시기는 훨씬 더 늦춰졌을지도 모른다. 흥미롭게도 계산의 ‘불완전’함은 강력한 컴퓨터들과 더 발전된 모델, 그리고 수많은 인공 위성의 도움을 받는 현재에도 계속되는 상황이다. MIT의 대기과학 교수인 케리(Kerry Emanuel)는 기상 예보는 과거와 비교해서 (기후 변화로 인한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놀랄 만큼 정교해졌지만, 극도로 무질서한 대기 현상은 같은 조건으로 출발한 두 개의 시뮬레이션이 전혀 다른 지점으로 나아가는 붕괴 현상을 촉발하기 때문에 여전히 2주 이상의 예측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4] 끝없는 계산 이야기 삶에 필수적인 일기 예보조차 이처럼 불완전한 계산에 기반해 있다는 사실은 효율적이라는 단어에 더 무거운 짐을 지운다. 심지어 우리들 대부분은 계산조차 하지 않고 휴리스틱에 의거해서 무엇이 더 효율적이라는 식의 판단을 곧잘 한다는 것을 돌이켜 본다면, 효율적이라는 말은 사실상 비유적인 표현에 가까워 보인다. 비디오 게임은 이러한 맥락과 겹쳐서 보면 상당히 묘한 위치를 점유한다. 왜냐하면 게임은 시작부터 계산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특정한 하드웨어의 연산력에 의해서 제한될 수밖에 없는 소프트웨어적인 특성이기도 하지만, 또한 게임이 플레이어가 미적인 경험을 하도록 디자인된 매체라는 지점과도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어, 모종의 이유로 [5] 어떠한 스펙의 하드웨어를 동원하든 간에 프레임이 15를 넘지 못하는 게임이 출시되었다고 가정을 해보자. 이는 순수하게 컴퓨터 공학적인 관점으로 보면 (최적화가 더 필요하지만) 작동하는 소프트웨어가 맞다. 하지만 설령 버그가 없더라도 이것은 작동하는 게임이 아니다. 왜냐하면 15프레임도 도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제작자가 의도한 미적 경험을 ‘플레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프레임뿐만 아니라 디스플레이의 해상도, 게임 캐릭터들과 월드의 폴리곤 갯수, 인터페이스를 통한 인풋 레이턴시까지, 이 모든 것들은 게임의 미적 경험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들인 동시에 계산과 직결된다. * 이처럼 아름다운 프레임 하나하나가 많은 계산을 필요로 한다. 이와 같이 컴퓨터 프로그램과 미적인 미디어로서의 두 측면이 분리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확장성을 고려한 ‘불완전한’ 계산이 필수적이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데 있어서 최적의 해상도는 무엇일까? 답은 모른다. 이다. 그 게임이 어떤 게임인가(폴리곤을 무지막지하게 때려 넣은 오픈 월드 게임 vs 도트 그래픽의 2D 플랫포머 게임), 구동하는 하드웨어가 무엇인가(고성능 데스크탑에 연결된 32인치 4K 모니터 vs 스팀덱) 혹은 심지어 플레이어가 누구인지에 따라 선호하는 해상도는 달라진다. 그러므로 (특히 초기) 게임 개발의 역사는 매우 제한적인 컴퓨팅 리소스 내에서 최대한의 확장성을 확보하기 위한 창의적인 ‘계산법’들로 가득하다. <둠>의 프로그래머 존 카멕이 3D 환경을 에러 없이 빠르게 렌더링하기 위해서 이진 공간 분할법(Binary Space Partioning, BSP) [6] 을 도입한 일이나 <롤러코스터 타이쿤>의 개발자 크리스 소이어가 복잡한 시뮬레이션 환경을 제대로 구현해 내기 위해서 시스템 리소스를 더 직접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로우 레벨 언어인 어셈블리어로 게임 전체를 개발했다는 일화는 이제는 그저 전설처럼 떠도는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당시로서는 대부분의 하드웨어에서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 내야만 하는 절박함에 더 가까웠다. [7] 아이러니하게도 최대한의 ‘효율’은 이처럼 불완전한 계산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둠>이 출시된 93년 이후로 컴퓨팅 하드웨어의 연산력은 비약적으로 증가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게임들 역시 방대하고 복잡해졌다. 고해상도의 텍스쳐나 풀 더빙된 사운드 등 게임에 사용되는 에셋들부터 고전 게임들과는 결을 달리한다. 그뿐 아니라 상당히 정교한 물리적인 상호 작용을 선보이는 물리 엔진들과 이름 그대로 3D 공간 내의 오브젝트들의 표면에서 반사되는 빛의 선ray들을 일일이 추적해서 ‘리얼’한 풍경을 구축하는 레이 트레이싱 또한 매우 고도의 연산력을 요구한다. 이외에도 다양한 분기를 품고 있는 수많은 NPC와의 상호 작용 처리, 게임 엔진의 최적화 문제 [8] , 라이브 서비스 게임들의 네트워크 최적화 등에 이르면 그림이 좀 더 명확해진다. 딜레마는 여전한 것이다. 많은 것이 변해 왔고 또 앞으로도 많이 변할 테지만, 계산의 불완전함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하드웨어의 연산력이 세계의 다층적인 복잡성 전체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레벨에 도달하지 않는 한, 양자 컴퓨터의 상용화가 도래하더라도 여전히 개발자들은 첨단 가상 현실 게임을 최적화하느라 골머리를 썩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아마도 또 다른 창의적인 ‘계산법’들을 고안해 내야 할 것이다. 제대로 노는 법 미적인 경험의 전달을 목적으로 프로그램을 직조하는 개발자들의 맞은편에는 그 프로그램을 자신의 하드웨어에 맞춰서 조정하고 실행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그 경험을 수용하는 수많은 플레이어가 있다. 당연하지만 플레이어도 언제나 계산한다. 다만 무엇을 계산하냐고 묻는다면 답은 플레이어의 숫자만큼 천차만별일 것이다. 누군가는 최적의 루트나 최적의 공격 타이밍 같은 것들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로어 프렌들리lore friendly [9] 에 집착하며 출시한 게임 속에 이미 존재하는 버그-꼼수마저 제거하는 모드를 제작하는 방식으로 나름의 ‘최적화’를 위해 애쓸 수도 있다. [10] 이토록 넓은 스펙트럼의 ‘효율’은 무엇보다도 게임을 플레이하는 행위가 대부분의 경우 생산성의 향상과는 무관하다는 지점을 환기한다. 즉, 거기에는 순이익을 지속적으로 늘리며 주가를 부양할 거라고 믿어지는 어떤 특정한 효율성을 향한 압박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폭넓은 스펙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게이머는 한 가지 뚜렷한 경향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바로 그 존재하지 않는 생산성을 향한 집착이다. 뒤집힌 게이미피케이션과도 같은 워키피케이션Workification은 퍼포먼스에 중점을 두고 놀이를 마치 일처럼 하는 경향으로 여러 국가들에서 중산층이 향유하는 (게임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여가 활동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노가다를 유도하는 게임적 디자인과 플레이어들 사이의 동조 압력으로 인해서 이러한 경향이 매우 쉽게 발현되는 MMORPG나 [11] 세세한 랭킹의 구분으로 경쟁 심리를 유발하는 여타 PvP 온라인 게임들의 경우가 아마도 워키피케이션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사례일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명백한 촉매가 없이도 어떤 플레이어들은 여전히 퍼포먼스의 개선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워키피케이션은 ‘적절한’ 예시에 머물지 않는다. 싱글 플레이 RPG게임을 즐겨 하는 유저들 사이에서 종종 회자되곤 하는 민맥싱min-maxing [12] 은 이 지점을 넘어가는 가장 흥미로운 케이스 중 하나다. 민맥싱은 주로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와 같은 CRPG 장르에서 자주 논의가 되는데, 그 이유는 캐릭터들의 모든 능력치가 대부분 간단한 숫자로 표현될 뿐만 아니라 주사위의 확률과 연동됨으로써 세계와의 거의 모든 상호작용이 실제로 계산 가능한 수식으로 탈바꿈하기 때문이다. [13] <사이버펑크 2077> 역시 다양한 분기들을 자랑하지만, V의 스탯이나 출신에 의해서 영향받는 몇몇 대화 옵션들과 스탯의 숫자에 따라 해금되는 루트들을 제외하면 많은 경우 중요한 내러티브적 분기들은 플레이어의 성향과 그날의 기분에 따라 선택된다. 반면 CRPG 게임에서는 예를 들어 카리스마가 15 이상인 캐릭터가 내 파티에 없으면 특정한 분기로 아예 진입할 수 없다거나 혹은 그 이상임에도 주사위 굴림에 실패해서 결국 같은 결과로 이어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특정한 캐릭터의 스탯을 어느 시점에서 어느 정도를 올려야 한다는 식의 매우 디테일한 민맥싱 가이드들이 범람한다. * 최초의 RPG 게임 중 하나였던 <아칼라베스: 파멸의 세계>에도 어김없이 민맥싱을 적용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민맥싱이 기본적으로 2회차 이상의 플레이를 전제로 한 메타플레이를 상정한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웹소설과 웹툰에 자주 등장하는 회귀물 속 주인공처럼 우리의 캐릭터는 이미 끝을 봤기 때문에 정확히 어느 시점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가장 효율적인지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유비는 인터넷이 없다고 가정했을 때만 유효하다. 앞서 말했듯이 민맥싱을 위한 가이드가 온갖 채널에서 넘쳐나는 상황에서 플레이어들은 자연스럽게 1회차부터 민맥싱을 적용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메타플레이‘였던 것’은 이제 예측을 통한 선점의 작동으로 귀결된다. 마크 안드레예비치는 “접근 가능한 모든 콘텐츠를 완전히 숙달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완벽히 알고자 하는 시도는 그것을 경험하는 행위를 선점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선점이란 경험의 정반대다.” [14] 라고 지적하며, “선점은 미래가 현재로 붕괴하는 것” [15] 이라고 못 박는다. 이렇게 본다면 민맥싱의 적용은 게임 플레이 경험에 직접적으로 상충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여러 게임 서브 레딧 게시판에는 민맥싱에 대한 집착으로 게임을 하는 것에 ‘현타’가 왔다고 토로하는 글들이 시차를 두고 종종 출몰하곤 한다. 잡힐 것 같은 최대한의 효율을 목적으로 하는 엔지니어링적인 강박이 일상을 침식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무색하게도, 근본적으로 불완전한 계산과 인간의 유한한 신체에 기반한 경험의 불가피성은 명확해 보이는 ‘효율성’의 청사진을 끊임없이 흐릿하게 만든다. 우리는 여전히 아주 많은 것들을 계산할 수 없을뿐더러 모든 것을 미리 계산하려고 할수록 역설적으로 더 많은 것들이 그 의미와 가치를 상실한다. 앞서 살펴봤듯이 계산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소프트웨어로서 비디오 게임 역시 이와 같은 역설을 품는다. 따라서 효율은 실제로 적용되기보다는 임원진들의 이데올로기적 수사로 점철된 이상향으로 포장되거나 게임 내의 내러티브적인 장치로서 반영된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 플레이어의 존재 자체가 게임의 효율성에 매우 큰 변수로 작용한다. [16] 그러므로 어떤 게임 회사가 플레이어들의 효율적인 아이템 거래를 위해서 NFT를 도입한다고 선언하거나 혹은 실제로는 매우 복잡하고 까다로워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 같은 작업이 클릭 한 번으로 인게임에서 (내러티브적으로) 실현될 때,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의 지지부진함과 난잡함은 더욱더 명백해진다. 그렇게 효율성은 다시 한번 멀어진다. [1] Leif Wenar, “The Deaths of Effective Altruism” Wired 2024.03.27. https://www.wired.com/story/deaths-of-effective-altruism/ [2] 너무나 당연한 지원처럼 느껴져서 고민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면 앞서 언급한 칼럼을 참고하자. [3] 루이스는 고작 6시간 후의 날씨를 ‘예측’하기 위해서 무려 6주간 (기계식 계산기를 활용한) 계산에 몰두했다. 그런데도 결과값은 실제 날씨와 일치하지 않았다. Roland Stull, Practical Meteorology: An Algebra-based Survey of Atmospheric Science (Vancouver, Canada: Univ. of British Columbia, 2017), 759. [4] Andrew Moseman, “Will climate change make weather forecasting less accurate?” Climate Portal 2023.01.30. https://climate.mit.edu/ask-mit/will-climate-change-make-weather-forecasting-less-accurat [5] 개발자가 갑자기 정신이 나가서 CPU 코어 하나만을 활용하도록 프로그래밍하는 바람에 매우 심대한 CPU 병목 현상을 유도했을지도 모른다. [6]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C%A7%84_%EA%B3%B5%EA%B0%84_%EB%B6%84%ED%95%A0%EB%B2%95 [7] 그러한 절박함이 통했는지(?) 현재에 이르러 <둠>은 프로그래밍 가능한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일단 실행해 보는 독보적인 게임이 되었다. 아이템의 인벤토리, “반드시 지켜라! 인터넷의 국룰 :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면 둠을..게임에선 CJ모드를.. Youtube 2024.05.15. https://www.youtube.com/watch?v=YhIrXX-MC6E [8] 언리얼이나 고도 혹은 유니티와 같은 준 범용 엔진들에서 주로 문제가 되긴 하지만, 모회사인 EA의 프로스트 바이트 엔진을 울며 겨자 먹기로 유지하다가 <앤썸>이라는 희대의 망작을 출시한 바이오웨어의 경우를 돌아봐도 이 이슈가 특정한 경우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9] 온갖 마개조(?)가 횡행하는 모딩modding씬 내에서도 특정한 게임 세계의 정합성과 핍진성을 유지하는 선에서 변화를 가함으로써 플레이어들의 몰입을 깨뜨리지 않으려는 흐름이 존재한다. [10] <엘더스크롤 5: 스카이림>의 Unofficial Skyrim Patch 모드가 대표적이다. [11] Bree Royce, “Working As Intended: The gamification of the workification of games” Massively Overpowered 2018.11.01 https://massivelyop.com/2018/11/01/working-as-intended-the-gamification-of-the-workification-of-games/ [12] 주로 RPG게임에서 특정한 능력에 캐릭터의 스탯을 ‘몰빵’하고 나머지 필요 없는 능력은 버림으로써 인위적으로 효율적인 빌드를 구축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13] 이는 CRPG가 기반을 두고 있는 TRPG의 관습을 따른 것이다. [14] 마크 안드레예비치,『미디어 알고리즘의 욕망』, 이희은 역, 컬처룩, 2021, 94. [15] 같은 책, 166. [16] 가장 ‘효율적’인 게임은 인간 플레이어가 완전히 배제된 게임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국내의 모바일 가챠 게임들의 자동 사냥과 아타리의 <퐁>에서 시작해서 바둑과 <스타크래프트 2>를 거쳐서 이제는 여러 게임에서 적용 가능한 AI 에이전트 레벨까지 올라선 구글 딥마인드의 AI는 뜻밖의 접점(?)을 공유한다. Tags: 민맥싱, 최적화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웜뱃 잡다한 일을 하는 프리랜서입니다. 역시 잡다한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게임에는 특히 관심이 더 많습니다.
- 트롤링 권하는 기술: 인게임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에 대한 소고
기술은 매 순간 우리의 기대를 넘어서는 발전 속도를 보여주지만, 결국 그 기술이 그려내고자 하는 것은 과거 우리가 맨몸으로 겪었던 어떤 순간이다. 반드시 한 자리에 모여야만 가능했던 게임을 디지털기술은 원거리에서도 게임 규칙이 제시하는 승부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무언가로 탈바꿈시켰고, 이제는 그 게임의 바깥에 존재하던 음성언어마저도 구현가능한 상황에 우리를 올려놓았다. < Back 트롤링 권하는 기술: 인게임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에 대한 소고 14 GG Vol. 23. 10. 10. 같이 하는 게임으로 시작해 다시 '같이'하는 게임으로 오기까지 디지털게임 안에서 작동하는 플레이어 상호간의 의사소통은 게임의 여러 요소 중에서도 굉장히 후대의 것에 가깝다 . 특히 기원이 되는 디지털 이전의 게임까지 거슬러 올라가보면 애초에 게임 안의 커뮤니케이션은 굳이 따로 만들 이유가 없었는데 , 장기나 바둑 , 체스 같은 게임들은 같은 시공간에서 마주보고 한다는 대원칙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 시기적으로도 그렇지만 애초에 게임이 상호작용으로부터 빚어진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별도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게임 규칙 외에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흥미로운 점이다 . 앞에서 바둑과 장기 이야기를 언급했지만 , 이들 게임은 규칙으로서의 게임만 이야기한다면 대화가 불필요한 것이겠지만 실제 게임이 플레이되는 현장에서 바둑 두는 두 사람간의 대화는 또한 일상적이다 . 프로 간의 대국에서라면 수담 ( 手談 ) 외에는 문답무용이겠지만 , 일상의 놀이가 모두 프로 같지는 않을 것이다 . 딱딱하게 구분해 본다면 텍스트로서의 게임은 순전히 규칙이 제시하는 방식 안에서만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부분만을 가리킬 것이다 . 그러나 애초에 모든 게임이 모여서 한다는 전제 하에 이루어졌음을 감안한다면 그 규칙 바깥의 커뮤니케이션은 언제나 게임과 함께 있어 온 존재이기도 했다 . 이는 초창기 비디오게임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 < 퐁 > 과 같은 경우는 기기 한 대에 두 명이 달라붙어 플레이하는 구조였고 그 과정에서 당연하게도 플레이어 두 사람간의 커뮤니케이션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곤 했다 . 이 자연스러움이 없어지는 첫 번째 분기점은 아마도 싱글플레이 게임의 대두로부터일 것이다 . < 퐁 > 에서 < 브레이크아웃 > 으로 변화하면서 혼자서도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이 대세가 되면서부터는 소프트웨어가 제시하는 규칙에 대응하는 것 외에 다른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불필요해지는 순간을 볼 수 있었다 . 이보다 더 큰 분기점은 온라인 네트워크 기능의 도입일 것이다 . 앞서 이야기한 , 멀티플레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둘 이상의 사람이 같은 시공간에 모여야 한다는 전제는 온라인이 도입되면서 깨졌다 . 아니 애초에 온라인 멀티플레이의 도입이 이루어진 배경 자체가 굳이 한 공간에 있지 않더라도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 오프라인 시절에는 당연했던 , 함께 게임을 하며 이야기나누는 상호작용은 온라인 멀티플레이에 들어오면서 이제 별도로 구현해야만 가능한 무엇으로 그 성격을 바꾸었다 . 멀티플레이 디지털게임에서 커뮤니케이션은 게임의 구성 요소가 아니면서도 게임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며 발전해 왔다 . 그리고 이는 애초에 기술적인 시작점부터도 어느 정도 유사성을 가지고 있었다 . 채팅과 온라인 멀티플레이는 같은 시작점을 가진다 네트워크 상에서 둘 이상의 사용자가 실시간으로 텍스트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의사소통하는 채팅 기술은 1974 년 미국 일리노이대학의 PLATO 컴퓨터 시스템의 내부 네트워크를 통해 처음 세상에 등장했다. 본격적인 채팅 시스템은 핀란드 프로그래머 야르코 외카리넨(Jarkko Oikarinen)에 의해IRC(Internet Relay Chat) 프로토콜이 개발된 1988년 이후 보급되기 시작했으며, 한국에서는 초기 전화 모뎀을 이용한 PC통신 등에서 메일, 동호회, 게시판 기능과 함께 PC통신의 주요 기능 중 하나로 대중에 소개되었다. 1) 채팅의 역사 속에서도 이미 공격적인 행동에 대한 우려는 나타난 바 있다. 영화 <접속>(1997)처럼 비대면의 익명 상대이기에 가능한 로맨스가 있었던 것 이상으로 사람들은 익명의 누군가에게 공격적이었다. 이는 채팅이라는 기술 자체가 가지고 있는 비대면의 다대 다 익명성으로부터 기인하는 문제다. 그리고 이러한 익명성의 문제는 동일하게 온라인게임에서도 나타난다. 최초의 다중접속 게임으로 거론되는 게임인 은 1978년 영국 에섹스 대학의 로이 트럽쇼가 개발한 게임으로, 채팅과 마찬가지로 PLATO 시스템 기반의 대학 서버 내에 올려진 TRPG 기반 텍스트 게임에 여러 사람이 동시접속할 수 있게 만든 게임이다. 접속한 플레이어들은 서로 같은 방에 위치한 플레이어들끼리 텍스트 채팅을 통해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었고, 작동방식이나 기술적 측면에서 이 둘은 서로 비슷할 수 밖에 없었다. 혹자는 게임 안에서의 행동들이 일반적인 커뮤니케이션보다 더욱 거칠게 나타나는 것을 두고 게임이 가진 본질적인 공격성 때문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위와 같은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게임 때문이라기보다는 애초에 비대면 다대다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다분히 참여자들을 공격적으로 만든다고 보는 편이 좀더 합리적이다. 오히려 참여자가 공격적으로 변해가는 상황은 反게임적인데, 로제 카이와는 ‘놀이와 인간’에서 게임의 요소 중 하나인 경쟁agon이 단순히 공격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규칙이라는 틀 안에서 질서정연하게 수행되는 것임을 지적한 바 있다. 놀이 안에서 일종의 학대와 골탕먹이기가 발생하는 과정은 카이와에 따르면 ‘경쟁에서 멀어지는’(42p) 어떤 순간이며, 게임을 벗어나 원시적인 투쟁으로 향하는 순간이다. 이는 게임 자체보다는 채팅이라는 기술 자체가 가지고 있는 특수성에 가까워 보인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대화상대가 누구냐는 것 오늘날 게임들은 네트워크 기술의 발전으로 더욱 방대한 대역폭을 활용하여 텍스트 채팅 이상의 커뮤니케이션 수단들을 제공한다. 보이스채팅이라고 불리는 이 음성 기반의 커뮤니케이션 채널은 이름부터 흥미로운데,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누군가와 음성으로 이야기나누는 것을 인터넷전화라고 부르는 것이 더 자연스러움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름에 ‘채팅’을 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전화’와 ‘채팅’의 위와 같은 용례는 이 둘의 구분이 어떤 상대와 커뮤니케이션하느냐에 있음을 드러낸다. 전화는 (일부 텔레마케팅을 제외하면) 상대가 누구인지 이미 아는 경우에 활용되고, 채팅은 익명성에 기반한다. 게임과 함께 하는 음성기반 커뮤니케이션을 보이스’채팅’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익명성에 기반한 음성 커뮤니케이션은 텍스트 채팅보다 훨씬 더 공격적이고 자극적이라는 사실이다. 미디어학자 매클루언은 음성 언어와 문자 언어의 차이를 두고 부족사회에서의 음성언어가 서구문명의 문자언어로 변화하고, 이것이 전기기술의 힘에 의해(전화, 라디오 등) 다시금 음성언어로 치환되면서 문자언어 중심의 사회에 일종의 내파를 일으키고 있음을 지적한다. 매클루언의 주장을 빌어 온다면, 우리는 과거 부족 사회처럼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 만큼 가까운 사이에서만 작동했던 음성언어가 그 제한과 한계를 기술을 딛고 넘어서면서 익명의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공격적 보이스채팅의 문제를 마주하게 되었다고 이해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멀티플레이 게임이 디디고 있는 '익명성'의 대전제 그러나 원인을 안다고 해서 딱히 해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멀티플레이 기반 게임들은 1:1의 멀티플레이 이상으로 팀 대 팀의 플레이에 중심을 두고 있는데, 이는 다시말해 하나의 팀이 유기적이고 효율적인 협동 플레이를 펼치기 위해서는 게임 규칙 안의 상호작용 외에 더 많은 커뮤니케이션이 게임 승리를 위해 필수적인 상황을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매우 강력하게 게임의 규칙에 “한 팀은 무조건 다섯 명으로 이루어집니다”를 내세우는 게임이다. 친구와 둘이 PC방에 가더라도 두 사람은 결국 모르는 세 명을 팀원으로 받아 다섯 명을 채워야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때에 따라서는 개인의 순수한 실력보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승패에 크게 영향을 주는 사례를 목격할 수 있다. 때문에 제작사인 라이엇게임즈는 초창기에 이용자들로부터 랜덤 매칭된 팀원 사이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해 줄 수단으로서의 보이스채팅 기능 추가를 요구받은 바 있는데, 그에 대해 답변한 기록은 오늘날 보이스채팅의 기능을 역으로 잘 드러내는 자료로 남아 있다. (중략) 이 논의를 시작할 때 먼저 고려해야 할 사항 중 하나는 친구들과 음성 채팅으로 게임을 즐길 때와, 모르는 사람들과 음성 채팅으로 게임을 즐길 때의 차이입니다. 예를 들어, 리그 오브 레전드 플레이어 여러분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면, 친구들과 음성 채팅을 하는 것에 대해선 79% 이상이 이것이 리그 오브 레전드를 더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데 동의한다고 응답합니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과 음성 채팅을 하는 것이 즐거울지를 묻는 질문에는 겨우 50% 정도의 플레이어 여러분만이 동의하셨고, 나 되는 반대 의견이 나왔습니다. 4 명 중 1 명이 모르는 사람과 음성 채팅을 하고 싶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저희들에게도 놀라운 결과였습니다. (중략) 음성 채팅을 하게 되면, 몇몇 플레이어만 끝까지 음성 채팅을 사용하며 나머지 플레이어들은 음성 채팅에 아예 참여하지 않거나 음성을 차단한 후 텍스트 채팅만을 사용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합니다. 기계 학습 (machine learning) 기법을 통해 실제 어떤 대화가 이루어지는지 분석하는 고도화된 모델을 개발하여 적용한 결과, 일부 플레이어들만 음성 채팅을 사용하고 다른 플레이어들은 텍스트 채팅으로 소통하는 게임의 경우 텍스트 채팅에 나타나는 공격적인 언어 사용이 126% 나 증가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플레이어 여러분도 저희도 리그 오브 레전드에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종 차별, 동성애 혐오, 욕설 등의 언어 사용이 126%나 증가한다는 뜻입니다. 음성 채팅을 활용하면 공격적인 언어 사용이나 욕설을 감지하기가 더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음성 채팅을 활용하는 플레이어들이 텍스트 채팅에서 공격적인 언어와 욕설을 훨씬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악성 플레이어를 감지하기가 더 쉬웠습니다. 놀랍지 않은 결과이지만, 모르는 사람과 음성 채팅으로 게임을 즐긴 플레이어들은 평균보다 신고되는 횟수가 47% 나 많았습니다. (중략)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친구들과의 음성 채팅은 매우 훌륭한 게임 경험이며, 사실 리그 오브 레전드 플레이어 여러분께서 원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사실 많은 플레이어 여러분께서 스카이프 등의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친구들과 게임을 즐기고 계시며, 이는 매우 바람직한 직한 일입니다. 하지만 음성 채팅 앱이나 게임에 포함된 음성 채팅 기능은 모르는 사람과의 음성 채팅에 활용되기 쉬우며, 자동으로 그렇게 되기도 합니다. 그 결과 공격적인 언어 및 욕설이 126% 증가하고 신고 횟수는 47%나 증가하며 , 이는 플레이어가 서로를 차단하거나 음성 채팅 기능을 사용하지 않아도 나타나는 현상입니다.(라이엇게임즈 , 2014) 2) 홈페이지를 통해 게시된 라이엇게임즈의 이 공지문은 오늘날 보이스채팅 문제가 가지고 있는 난점들을 매우 정확하게, 그리고 간단하게 요약하고 있다. 친구들과의 음성 채팅과 익명의 음성채팅은 완전히 다르며, <리그 오브 레전드>는 반드시 익명의 사람들이 모여 팀을 이뤄야 하는 구조다. 익명 보이스채팅이 가지는 공격성은 텍스트채팅보다 훨씬 강력하기에 우리는 익명 매칭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우리의 게임에 보이스채팅을 추가할 생각이 없다는 라이엇게임즈의 메시지는 우리가 즐기고 있는 익명 매칭 기반의 팀 온라인 게임이 근본적으로 넘어설 수 없는 소통의 지점을 또렷하게 가리키고 있다. 기술은 매 순간 우리의 기대를 넘어서는 발전 속도를 보여주지만, 결국 그 기술이 그려내고자 하는 것은 과거 우리가 맨몸으로 겪었던 어떤 순간이다. 반드시 한 자리에 모여야만 가능했던 게임을 디지털기술은 원거리에서도 게임 규칙이 제시하는 승부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무언가로 탈바꿈시켰고, 이제는 그 게임의 바깥에 존재하던 음성언어마저도 구현가능한 상황에 우리를 올려놓았다. 그러나 이는 단지 기술적으로 누군가의 목소리를 실시간으로 전달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시작되어 아직까지도 극복되지 못한 비대면 익명성이라는 대전제다. 기술이 모르는 사람들을 강제로 지인으로 만들어버리는 방향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전제가 깨어지지 않는다면 어떤 기술이 어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을 만들어내건간에 우리는 트롤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1) IT동아 (2014, 5, 19). ‘ 채팅 ’ 탄생 40 주년 PC 통신과 메신저 거쳐 모바일까지 2) 라이엇게임즈(2014). 음성 채팅 기능에 대한 내부 논의 내용을 알려드립니다 >. URL: https://leagueoflegends.co.kr/?m=forum&mod=view&topic_id=7&thread _id= Wje_dd9l Uk Tags: 매클루언, 채팅, 보이스채팅, 커뮤니케이션, 음성언어, MUD, PLATO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게임회사는 NFT의 꿈을 꾸는가 : ‘튤립’과 ‘국민템’ 사이에서
새로움은 한계가 눈에 보일 때 도드라진다. 게임에 블록체인을 접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는 것만으로도 주목을 받는 배경에는 그 시도가 만들 새로운 결과에 대한 기대 못지않게 그러한 새로움을 필요로 하는 현재에 대한 불만이 함께 놓여있다. 이를 생각하면 게임에 블록체인을 접목한다는 아이디어는 어떤 변화를 의도하는가와 더불어 그 변화가 왜 필요한지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지는 지금의 위치를 이해하고 그로부터 나아갈 위치가 어디쯤일지 더 분명하게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 Back 게임회사는 NFT의 꿈을 꾸는가 : ‘튤립’과 ‘국민템’ 사이에서 05 GG Vol. 22. 4. 10. NFT, 현상인가 징후인가? 새로움은 한계가 눈에 보일 때 도드라진다. 게임에 블록체인을 접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는 것만으로도 주목을 받는 배경에는 그 시도가 만들 새로운 결과에 대한 기대 못지않게 그러한 새로움을 필요로 하는 현재에 대한 불만이 함께 놓여있다. 이를 생각하면 게임에 블록체인을 접목한다는 아이디어는 어떤 변화를 의도하는가와 더불어 그 변화가 왜 필요한지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지는 지금의 위치를 이해하고 그로부터 나아갈 위치가 어디쯤일지 더 분명하게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블록체인을 접목한 게임에 대한 논의는 현재보다는 미래에 대한 논의에 집중되는 양상이다. 연관된 주제인 ‘P2E’나 ‘NFT’등에 대해서도 현재보다는 미래, 그중에서도 그동안 시도된 사례나 앞으로의 구상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루고 있다. 무언가 빠진 것 같으면서도 일련의 다양한 시도들이 종횡무진 펼쳐진 다음 지속되는 것들이 다음 패러다임을 이루게 될 것을 생각하면, 지금은 일단 결과에 대한 검증보다는 가능성의 좌표를 최대한 넓히는 과정으로 이해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게임에서의 NFT를 사회적인 관점과 기술적인 관점으로 헤아리고자 한다. 대체불가능성과 탈중앙화를 중심으로 게임의 현재와 NFT를 통해 제기되는 미래상을 연결하면서, 연관된 기술적 과제는 무엇인지, 이러한 시도가 게임에 남기게 될 의미는 무엇일지 가늠하고자 한다. 대체불가능성의 여러 맥락 ‘대체불가능한 토큰(Non Fungiable Token)’이라는 뜻의 ‘NFT’는 기술적 맥락보다는 ‘고유성이 강력히 보장되는’ 소유권이 강조된 가상자산의 맥락으로 사용되는 경향이 짙다. 이로 인해 ‘대체불가능한’이라는 속성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것을 전제로 두고 그것의 가치가 어느 정도일 수 있을지, 어떻게 활용할지 등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둔다. 한국 현행법상 아직까지 게임 서비스에 NFT를 본격적으로 도입하는 것은 불가능해서, 활용에 대한 논의가 실질적으로 실현되기까지 여러 제약과 시간이 따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본격적으로 도입하게 되면 초기비용이 큰 가상자산에 비해 게임은 조금 더 수월하게 가상자산에 접근하는 경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게임이 수월한 경로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게이머들은 게임을 하기 위해 어느 정도 부담을 감수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게이머는 게임의 팬이 되는 경우가 많고 팬에게 블록체인에 접근하는 비용은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 금액으로 여겨질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많은 블록체인들에게 게임과 블록체인을 접목하는 시도의 계기를 제공한 〈크립토키티(CryptoKitties)〉의 사례를 주목할 만하다. 게임 내 거래를 가상화폐인 ‘이더리움’을 통해서만 결제하게 한 이 게임은 희귀한 고양이를 만들수록 비싼 금액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이 게임의 재미는 어디에서 발생했을까? 희귀한 고양이를 만드는 과정일까? 아니면 고양이가 희귀할수록 금액이 치솟는 과정일까? 고양이에게서 느끼는 귀여움, 그리고 고양이를 수집하고 교배하는 과정이 이 게임의 속성으로 제시되지만, 게임 바깥에서 활용될 수 있는 화폐가 결합되었기 때문에 게임의 온전히 기본적인 재미만이 발휘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는 이 게임에서 희귀한 고양이를 만든 상황을 가정해보는 것으로 좀 더 살펴볼 수 있다. 만일 수집과 교배를 통해 희귀한 고양이를 얻는 데 성공했다면, 그것이 즐거운 이유는 무엇일까? 나만의 캐릭터를 얻었다는 만족일까, 아니면 높은 금액으로 거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일까. 아마 이 두 가지 모두일 것이다. 실제로 거래할 생각이 없더라도 캐릭터에 평가되는 높은 금액은 소장하는 만족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재미는 기존 온라인 게임에서 경험하던 만족과 닮은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을 것이다. 관건은 NFT를 통해 새로워질 수 있는 측면이 무엇이냐일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게임회사와 게이머의 관점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대체불가능성에 대한 상반된 관점 먼저 게임회사는 NFT를 도입하는 것이 게임의 재미와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지, 어떤 변화를 계획하는지 뚜렷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나인크로니클 (Nine Chronicles)〉과 같은 게임이 모든 로직과 데이터를 블록체인에 올려 탈중앙화함으로써 블록체인의 특성을 게임에 전면적으로 적용한 사례도 분명 있지만, “왜 블록체인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실행하면서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러한 경향은 비즈니스 모델에서도 드러나는데, 현재 가장 유효한 비즈니스 모델은 아이템을 미리 판매하는 것이며, 이는 블록체인만의 특징을 활용했다기보다는 기존의 모델에 블록체인을 접목한 것에 가깝다. 그렇다 보니 게임에 가상자산을 접목하는 개연성이 선명하지 않다. 플랫폼의 수수료나 이용자 간의 거래를 회사가 직접 중개할 수 없는 법적인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의도가 더 큰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제시된 아이디어 대부분이 게임에 블록체인을 접목하는 것보다는 게임회사가 직접 발행한 가상자산을 화폐로 사용하면서 그 과정은 게임회사가 완전히 통제하려는 의도를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짐작할 수 있다. 게임회사의 NFT가 (아직) 상품으로서의 가치에 치중해 있다면 게이머들에게 NFT는 상반된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투자상품으로서의 게임 아이템이고, 다른 하나는 (게임 서비스가 종료되어도 남아 있는) 소장품으로서의 게임 아이템이다. 후자를 주목할 만한데, 서비스 중심으로 운영되는 게임이 종료될 경우 게임이 서비스되는 동안 게이머들이 게임에서 소비한 시간과 재화가 함께 소멸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동안 게이머가 직접 남긴 스크린샷 외에 이용자가 게임에 대해 느끼는 가치를 기록으로 남길 방법이 뚜렷하게 없는 상태에서 NFT는 게임에 대한 고유한 기록을 남기는 방법의 새로운 유형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NFT는 ‘애정’의 차원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기존에 존재하는 게임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여러 방법들 외에 새로운 표현 경로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대체불가능성’은 게임에 대한 애정, 팬심을 뚜렷하게 각인한다는 맥락으로 사용될 수 있다. 기술적으로 정말 대체 불가능함을 달성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게임에 대한 애정을 입증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식으로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용자의 의지와 관계없이 서버 종료를 통해 이루어지는 온라인 게임의 결말을 경험하면서 이용자들은 플레이하는 동안 충분히 누리고 즐기는 것으로 게임의 영속성에 대한 나름의 감각을 체득했다. 서버 종료가 되면 그것이 사라질 수 있음을 알면서도 과금을 하는 것에는 영속성에 대한 기대보다는 현재의 만족을 지향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지만 언젠가 서버 종료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시기를 알 수 없다는 것은 여전히 게이머에게는 위험 요소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NFT는 소멸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면서도 게임에 대한 애정을 가장 뚜렷하게 입증하는 기록이 될 수 있다. 탈중앙화를 둘러싼 배경과 맥락 대체불가능성과 관련하여 현재 블록체인이 보장하는 것은 데이터이다. 작업증명(PoW)이나 용량 제한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관련 기술이 발전하고 있지만, 현재로서 게임의 모든 체계를 블록체인에 올리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게임 자체는 블록체인의 바깥인 아웃체인에 두고 게임회사가 게임을 관리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게임 서비스가 사라지고 아이템을 소유했다는 데이터가 남게 된다. 데이터가 있기는 한데 활용할 수는 없으니 대체불가능성이 덜 유효해진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데이터를 추가할 수 있지만 그럴수록 블록체인에 담을 수 있는 게임 데이터의 양은 줄어들고 비용은 커진다. 게임의 콘텐츠가 줄어들고 이용자의 활동을 기록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려 게임을 플레이하기 힘들어지기도 할 것이다. 한편으로 전력 문제나 거래 비용, 거래시간과 같이 현재 블록체인이 지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새로 시도되고 있는 방법들은 증명을 위임하는 등 효율화를 추구하면서 블록체인이 지향하는 탈중앙화에 배치되는 경향이 있다. 현재 많은 블록체인 거래들이 실제로는 거래소 중심으로 일어나서 블록체인이 지향하고 있는 탈중앙화와는 거리가 있기도 하다. 모든 것을 통제하는 중앙화된 방식을 게임회사가 의도한 것이라면 그것이 굳이 블록체인일 필요는 없다. 지금의 시스템에서 데이터와 아이템의 가치를 보장해주면 되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이 아닌 기존의 데이터베이스를 사용하는 것이 속도와 비용 면에서 훨씬 효율적이기도 하다. 이런 배경 때문에 블록체인을 사용하는 개연성이 크게 보이지 않는 게임은 블록체인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을 표방하더라도 법과 수수료를 피하기 위해 보장할 수 없는 가치를 보장한다고 주장하는 일종의 기만행위라는 의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게임의 탈중앙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시도는 게임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중앙서버를 두지 않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게임회사와 이용자 관계의 새로운 전환을 떠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흥미롭다. 기존 게임에서 중앙화된 서버를 중심으로 게임회사와 이용자의 관계가 형성되었다면, 탈중앙화된 게임에서는 게임회사와 이용자의 관계가 보다 수평적이고 개방적으로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계가 성립될 경우, 게임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과 수익모델 등에 두루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캐릭터의 ‘성장’과 ‘우위’를 지향하면서 발생한 기존 게임의 문제들이 ‘탈중앙화된 관계’를 지향하는 게임에서는 해소되거나 다른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이것과 저것 사이 혹은 너머의 그것 게임에서의 NFT는 어떤 결과를 만들어나가게 될까. 다음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것보다는, 새로운 시도와 지금까지의 경험이 서로 병합되거나 절충되면서 확장되된 형태의 결과를 만들 가능성을 고려해볼 수 있다. 먼저 앞서 지적한 블록체인의 문제를 기술의 발전을 통해 해결할 가능성을 꼽을 수 있다. 블록체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작업증명(PoW)에 지나치게 많은 전력량을 사용한다는 것인데, 요즘은 이 방법을 채택하지 않는 블록체인 기술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미 작동하고 있는 블록체인이 새롭게 이 방법을 채택할 가능성은 낮지만 대체불가능성과 탈중앙화에 대해 제기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의 기술적 대안도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는, 법과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길 원하는 게임회사의 욕망을 블록체인에 담으려는 것은 기술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게임 속 화폐와 실제 화폐가 연계된다는 아이디어가 새롭진 않다. 이를 되짚어 생각해보면 게임 속 화폐가 실제 화폐와 연계되지 않아 온 이유가 있는 것이다. 블록체인이 새롭다고 해서 연계될 수 없는 이유를 단번에 뛰어넘을 수는 없다. 만일 특히 거래 시스템에서 블록체인 활용도가 높아진다면 그 방식은 기존 시스템에 블록체인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방식일 것이다. 자연히 가상자산과 실제 화폐의 연계는 기존의 법안을 충족시키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질 것이 요청된다. 게임 회사와 이용자의 새로운 소통 면에서도 블록체인 활용을 고려해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이브 온라인(EVE Online)〉의 사례를 짚어 볼 만하다. 게임을 서비스하는 CCP 게임즈는 해마다 ‘이브 팬 페스트’를 개최한다. 이브 온라인 이용자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데, 부대행사 중 ‘플레이어 프레젠테이션’은 신청한 게이머에게 40분의 프리젠테이션 기회 또는 원탁회의 주관 기회를 제공한다. 이 게임은 전 세계 단일 서버로 운영되어서 이용자들의 참여가 중요한데, 이 행사에서 여러 가지 정치적인 관계에 대한 협의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게임회사가 이용자들의 의견을 청취할 수 있는 다양한 장을 만들고 또 실제로 그 의견을 수용해 게임에 반영함으로써 이용자의 피드백이 게임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는 게임회사가 의사결정을 주도하여 발생할 수 있는 문제로부터 벗어날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블록체인은 이 과정에서 게이머의 의견을 기록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며, 의사소통과 의사결정 과정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을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서비스가 오래 지속될 경우 게임회사와 이용자 사이의 의사소통 아카이브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신뢰가 낮아진 게임과 이용자 간의 관계를 블록체인으로 보완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게임 안에서 생성되는 아이템에 대한 기록을 블록체인에 기록하고 이용자들이 누구나 블록체인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면 확률 문제 등을 검증할 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도 많은 우려와 문제가 제기되지만 블록체인 기술이 신뢰와 깊이 연관된다면, 신뢰를 회복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을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의 토대 위에서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게임회사가 NFT를 통해 꾸는 꿈은 무엇인가? 다가올 미래를 암시하는 징후인가, 현재의 한계가 중첩된 현상인가? 분명한 것은 그것이 현상인지 징후인지 확인하기 위해 성큼 나아가는 시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발걸음이 어떤 자취를 남기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 발걸음의 경로와 좌표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출발점을 중심으로 한 지형을 파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좌표를 확장하는 앞으로에 대한 논의에 집중하면서 그동안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은 질문들을 살펴야 한다. “게임의 목적이 재미 추구가 아닌 다른 것이 될 때 그것을 게임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부터 말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사회학자) 강지웅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 〈게이머즈〉를 비롯한 여러 게임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했다. 저서로 〈게임과 문화연구〉(공저), 〈한국 게임의 역사〉(공저)가 있다.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에서 게임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게임이 삶의 수많은 순간을 어루만지는, 우리와 동행하는 문화임을 믿는다. (게임개발자, 연구자) 오영욱 게임애호가, 게임프로그래머, 게임역사 연구가. 한국게임에 관심이 가지다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것에 취미를 붙이고 2006년부터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있다. 〈한국게임의 역사〉, 〈81년생 마리오〉등의 책에 공저로 참여했으며, 〈던전 앤 파이터〉, 〈아크로폴리스〉, 〈포니타운〉, 〈타임라인던전〉 등의 게임에 개발로 참여했다.
- 〈로블록스〉의 상상된 즐거움
로블록스는 조악함으로 가득하다. 게임에 보이는 텍스트의 한글 번역은 개발자가 어떤 번역기를 사용했는지 궁금해질만큼 기괴하고 오류가 많다. 글로벌 게임의 필수 업무인 현지화 작업은 기대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게임의 3D디자인은 대체로 투박한 로우 폴리곤이다. 그 오브젝트를 감싸는 텍스쳐는 단색이거나 대충 그려진 수준이 허다하다. 외형만 그러한가. 캐릭터가 걸어다니는 애니메이션은 어색하고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 캐릭터의 몸은 게임 도중에 이유없이 뒤틀리고, 기물 사이에 쉽게 낀다. 다른 온라인 게임에서 버그로 리포트되는 것들이 로블록스에서는 일상적이다. 게임이 추구하는 주제들 또한 무겁지 않고 가볍다. 게임 일부를 예로 들면, 보모가 되어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좀비가 나타나는 학교에서 하룻밤을 보내거나, 무서운 돼지 귀신을 피해 도망다니는 것이 게임의 목적이자 전부다. < Back 〈로블록스〉의 상상된 즐거움 01 GG Vol. 21. 6. 10. “조식은 6AM 날카로운 시간에 제공되며 수업은 오늘 7에 시작합니다.” 로블록스는 조악함으로 가득하다. 게임에 보이는 텍스트의 한글 번역은 개발자가 어떤 번역기를 사용했는지 궁금해질만큼 기괴하고 오류가 많다. 글로벌 게임의 필수 업무인 현지화 작업은 기대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게임의 3D디자인은 대체로 투박한 로우 폴리곤이다. 그 오브젝트를 감싸는 텍스쳐는 단색이거나 대충 그려진 수준이 허다하다. 외형만 그러한가. 캐릭터가 걸어다니는 애니메이션은 어색하고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 캐릭터의 몸은 게임 도중에 이유없이 뒤틀리고, 기물 사이에 쉽게 낀다. 다른 온라인 게임에서 버그로 리포트되는 것들이 로블록스에서는 일상적이다. 게임이 추구하는 주제들 또한 무겁지 않고 가볍다. 게임 일부를 예로 들면, 보모가 되어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좀비가 나타나는 학교에서 하룻밤을 보내거나, 무서운 돼지 귀신을 피해 도망다니는 것이 게임의 목적이자 전부다. 그런데 이렇게 허술해보이는 게임에 매달 전세계 1억 5천 명의 유저가 접속한다 [1] . 그 중 4,200만명은 로블록스에 매일 접속한다 . 이는 리그오브레전드보다 높은 수치다. 로블록스는 그야말로 전세계를 휘어잡고 있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있는 당신은 아마도 전세계 1억 5천명 안에 속하지 않았을 확률이 크다. 이름만 들어만봤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거나, 해본 적이 있더라도 진지하게 즐겨본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플레이하는가? 로블록스의 주 유저층은 명확하게 미성년층이다. 그중에서도 조금 더 어린 축에 속하는 미취학 아동과 초등학생인 만 12세 이하가 전체 유저의 절반이 넘는다(54%) [2] . 만약 당신이 옆에 있는 유저와 팀플레이를 한다면, 상대방은 높은 확률로 초등학생일 것이다. 로블록스는 어른을 위한 게임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린이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하는가? 당연히 게임을 한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로블록스라는 플랫폼에 접속하여 다른 사람들이 만든 게임을 플레이한다. 로블록스 계정을 생성하면 유저는 하나의 아바타를 배정받는다. 유저는 고유한 아바타를 매개로 하여 수만 가지의 게임에 입장한다. 각각의 세계에는 주어진 상황과 룰이 있다. 예를 들면 유저는 〈Twilight Daycare〉를 켜서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기가 되었다가, 머지않아 〈Murder Mystery 2〉게임으로 바꾸어 살인마가 되고, 질릴 때 쯤에 밖으로 나가 〈Tropical Resort Tycoon〉에 접속해 호화 리조트 사장님이 될 수 있다. 로블록스는 유저가 게임을 개발할 수 있도록 ‘로블록스 스튜디오’라는 개발 도구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유저들은 직접 제작한 게임을 게시할 수 있다. 개발자들의 나이 또한 어린 편이다 [3] . 로블록스 내에 올려진 게임의 개수는 1,800만개 [4] 에 이른다. 전세계 애플의 앱 스토어에서 유통되는 모든 애플리케이션의 수가 450만개인 것과 비교했을 때 매우 큰 숫자이지 않은가. 그중 로블록스 유저가 가장 많이 접속하는 월드는 〈입양하세요! Adopt Me!〉 [5] 다. 이 게임은 누적 플레이수 200억 회를 기록하고 있다. * 로블록스의 〈입양하세요Adopt me〉 로그인을 하고 로블록스 메인화면으로 가보자. 화면에는 〈입양하세요〉로 시작하는 인기 게임 순위가 있고, 그 밑에 “나를 위한 추천 체험”, “친구가 방문 중인 체험”과 같이 나와 비슷한 취향의 게임들을 알고리즘에 맞게 보여주는 카테고리가 등장한다. 유저는 로블록스라는 하나의 플랫폼에 접속한 뒤 원하는 게임을 선택하여 입장한다. 어떤 게임을 할지 정하기 귀찮다면 현재 가장 인기있는 것을 플레이해도 되고, 친구가 하고 있는 게임을 따라서 해도 되고, 아니면 원하는 주제의 검색어를 넣어 게임을 찾아도 된다. 어찌 보면 우리가 유튜브에서 영상을 선택하고 시청하는 방식과도 비슷하다. 실시간 인기 동영상 순위가 있고, 나의 피드에는 평소 시청 취향에 맞게, 또는 자신과 사회적으로 연결된 사람들이 보는 영상이 추천되는 것처럼 말이다. 잠깐, 앞의 문단에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지 않은가? 잘 읽어 보면 필자는 문장에서 같은 대상을 지시하더라도 다른 단어를 사용하였다. 게임(game), 체험(experience), 세계(world). 로블록스 플랫폼에서 개별적인 게임들을 지칭하는 용어는 하나가 아니다. 이들은 서로 혼용되며 의미의 경계를 두지 않는다. 유저들은 “무슨 게임 할래?”라고 대화하고, 게임화면으로 돌아가는 버튼에는 “체험 계속하기”라고 쓰여있으며, 게임 개발 도구는 “나만의 월드를 제작해보세요!”라고 자신을 홍보한다. 그동안 게임 문화는 게임, 체험, 세계를 구분해왔다. 특정 역할을 체험하는 부류를 시뮬레이션 장르로, 역할을 설정하는 장르를 RPG로, 가상현실을 탐험하는 것을 어드벤처라고 불러왔다. 로블록스의 용어 사용법은 이러한 게임에 대한 규정들을 흩뜨려놓는다. 앞서 언급한 가장 인기있는 〈입양하세요!〉를 예를 들어보자. 유저는 게임에 진입하자마자 부모 또는 아이가 될지 역할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 역할을 토대로 마을에서 활동하며 퀘스트를 하거나 아이템을 수집하고, 펫을 키우거나 가족을 만들어 다른 유저와 교류한다. 로블록스에서 게임을 하는 일은 부모나 아이가 되어보는 체험을 하는 것이자 그 체험 규칙이 허용되는 세계에 입장하는 것이다. 로블록스의 유명 FPS 게임 중 하나인 〈아스널 Arsenal〉은 누적 30억 회의 플레이 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 게임은 FPS임과 동시에 적과의 긴박한 전투가 펼쳐지는 가상세계이자, 전투병이 되어보는 체험이기도 하다. 또 다른 게임 〈로열 하이 Royale High〉에서는 접속하자마자 호화스러운 궁전이 펼쳐진다. 그곳 나름의 아이템 수집과 퀘스트를 주지만 유저는 굳이 따르지 않아도 무방하며 시스템적으로 강요되지 않는다. 공간을 배회하면서 친구와 수다를 떨거나, 스타일을 꾸미거나, 밥을 먹거나, 아니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화려한 옷을 입고 상류층처럼 살아보기. 유저가 〈로열 하이〉에 접속한 순간 게임은 이미 시작되었다. 로블록스는 ‘체험하는 게임’, ‘게임 세계’와 같은 언어 간의 수식관계를 해체하고, 모두를 동격에 놓는다. 체험하는 것, 세계에 발을 들이는 것이 곧 게임이 된다. * 로블록스 〈로얄 하이〉 게임 내부로 잠시 들어와보자. 로블록스에서 주된 대화법은 사물과의 충돌(collision)이다. 대부분의 게임들이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앞에 가발 아이템이 놓여있다고 가정했을 때, 캐릭터가 가발을 쓰는 방법은 가발과 몸의 부딪힘이다. 그러면 곧바로 머리에 씌워진다. 많은 게임들은 유료 재화인 로벅스(Robux) [6] 로 아이템을 구매하는 부분 유료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아이템을 구입하고 싶은가? ‘구매’라고 쓰여있는 바닥 타일 위에 발을 올리면 된다. 그러면 결제창이 뜰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 물체와 부딪혀라. 로블록스 세계에서 아바타와 오브젝트의 마찰은 주요한 소통방식이다. 이미 예상되어지듯, 그러다보면 엄한 물체와 부딪혀 원치않는 입력이 발생할 것이다. 옆에 놓인 물체에 스쳤을 뿐인데 “구매하시겠습니까?”라는 알림창이 대문짝만하게 뜨는 일은 매우 성가시다. 이쯤 되면 게임들이 왜 이렇게 일차원적인 방법으로 게임을 진행시키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화면에 버튼을 띄워 클릭하게 하거나 키보드 특정 키를 누르게하면 더욱 명확했을텐데 말이다. 그 이유는 로블록스가 게임으로 진입하는 유저의 물리적 조건을 차별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로블록스에는 세 개의 서로 다른 지대가 교차하고 있다. 이곳에서 유저들은 피씨, 모바일 그리고 태블릿 그 어떤 기계를 사용하든간에 같은 서버에서 만나 게임을 즐긴다. 충돌은 가장 심플한 플랫폼 통합적 작동 방식이며, 더 많은 유저를 한 공간에 모을 수 있는 장치다. 마우스나 키보드와 같은 별도의 장치는 유저들을 나눌 뿐이다. 이 공간은 서로 다른 기계에서 공통으로 게임이 펼쳐질 수 있는 방식을 지향한다. 로블록스를 게임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엄밀히 말해 로블록스는 ‘플랫폼’이다. 게임을 매개하는 거대한 땅으로 보는 것이 조금 더 명확할 것이다. 또는 게임으로 들어가는 포털(portal)로 볼 수도 있다. 포털은 곧 상상된 즐거움을 의미한다. 그 곳에 접속하면 무궁무진한 게임이 기다리고 있다는 가능성, 그 가능성에서 오는 즐거움이다. 그리고 그곳에 접속하면 언제, 어디서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전세계의 어린 유저들이 매일 매일 방문하여 이곳을 여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상이 바로 로블록스의 존재 이유다. [1] Statista, 2021년 5월. https://www.statista.com/statistics/1192573/daily-active-users-global-roblox/ [2] Statista, 2020년 9월. https://www.statista.com/statistics/1190869/roblox-games-users-global-distribution-age/ [3] 개발자 Alex Balfanz는 로블록스를 즐겨하던 유저로, 2017년 만 18세의 나이로 유명 게임 〈Jailbreak〉를 제작했다. 출시 후 3주 만에 누적 플레이수 4,400만회를 달성한 이 게임에서 얻은 수익으로 그는 이미 4년치 대학교 등록금을 마련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4] 2020년 11월 기준. [5] Statista, 2021년 3월. https://www.statista.com/statistics/1220905/roblox-most-visited-games/ [6] 로블록스에서 유저가 현금으로 구입하는 유료 통화. 로블록스 플랫폼에서 통합 구매(충전)하여 개별 게임 내에서 사용한다. 개별 게임 내에서 발생한 로벅스 수익은 로블록스와 게임 개발자가 3:7의 비율로 배분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이선 사회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연구합니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결국 인간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 프레임의 너머를 위한 프레이밍 : 「The Star Named EOS 별을 향한 여정」
C. 티 응위옌은 ‘게임은 여러 행위성 형식을 저장하고 주고받기 위한 하나의 매체’라는 흥미로운 주장을 펼친 바 있다. 게임이란 하나의 도전적 고투를 통해 일시적 몰입을 발생시키는 기입적 매체이며, 그 기입의 중심에는 특정한 행위agency가 있다는 의미이다. 물론 티 응위옌이 다루는 ‘게임’이라는 범주는 비디오 게임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따라서 이 ‘행위’의 범주를 조금 복잡하게 바라볼 필요는 있다. < Back 프레임의 너머를 위한 프레이밍 : 「The Star Named EOS 별을 향한 여정」 22 GG Vol. 25. 2. 10. C. 티 응위옌은 ‘게임은 여러 행위성 형식을 저장하고 주고받기 위한 하나의 매체’라는 흥미로운 주장을 펼친 바 있다. 게임이란 하나의 도전적 고투를 통해 일시적 몰입을 발생시키는 기입적 매체이며, 그 기입의 중심에는 특정한 행위agency가 있다는 의미이다. 물론 티 응위옌이 다루는 ‘게임’이라는 범주는 비디오 게임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따라서 이 ‘행위’의 범주를 조금 복잡하게 바라볼 필요는 있다. 요컨대 프라스카의 주장대로 비디오 게임은 현실에 대한 해석체를 매개로 하는 2차성을 지닌다. 따라서 ‘현실’의 게임 [1] 과 달리, 비디오 게임에서의 행위는 어느 정도 중첩된 경향을 가진다. 이를테면 스포츠인 ‘양궁’에서 활을 쏘는 것은 물리적인 행위일테지만, 「마리오와 소닉 올림픽」 시리즈의 양궁에서는 게임적 메커니즘을 위해 해석된 행위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이렇듯 비디오 게임이 저장하는 ‘행위’는 2차적 매개의 결과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적 거리감을 전제할 때, ‘창작의 행위들’은 대개 게임 메커니즘에 안치시키기에 곤란한 경향을 지닌다. 말하자면 2차적 매개가 가지는 표현의 유사성을 발생시킬 수는 있겠으나, 원본과의 괴리를 지우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이를테면, 「파이널 판타지 6」에 등장하는 캐릭터 ‘리름’의 ‘그리다’ [2] 의 작동 원리는 ‘싸우다’와 별 차이가 없다. 그저 전투 중 해당 이름을 가진 커맨드를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이 때, 우리는 ‘싸우다’가 그 원본성에 해당하는 공격적 행동과 상당히 밀접하다고 느끼는 데에 반해 ‘그리다’에서는 그러한 작동이 정지한다. 물론 이 커맨드의 목적이 적을 공격한다는, 즉 그림 그리기의 본래 목적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영향을 주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QTE의 방식으로 그래피티를 그리는 「젯 셋 라디오」의 경우는 어떠한가? 물론 앞선 리름의 사례보다야 조금 더 ‘그림을 그리는’ 감각을 주기는 한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인식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몇 번의 간단한 조작을 통해 복잡한 결과물이 순식간에 생성되는 이 현상이 현실의 복잡한 ‘그리기’로 즉각 치환되지는 않는다. 이런 면은 흥미로운데, 본 게임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버튼을 눌러 점프 후 난간을 타고 그라이딩’ 역시도 현실에 비해 꽤나 단조로운 조작을 요하나 그래피티 그리기 만큼이나 멀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여기에는 분명 ‘창작 행위’라는 것에 대한 우리의 근원적 인식이 작동한다. 창작의 행위에는 창작자의 자의적 목적성과 행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기를 휘두르거나 점프해 난간을 타고드는 행위들과는 다른 층위를 이룬다. 예를 들어, 무기를 휘두르는 행위는 명백한 목적(적들을 쓰러뜨림)과 행위의 효율성이 전제되어 있다. 따라서 버튼을 눌러 해당 행위가 작동할 때, 우리는 그것이 더 의도적이고 자유로울 것이라는 기대를 갖지 않는다. 그에 반해 창작의 행위에는 창작자(를 조작하는 나)의 자의적 목적성과 그것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더 넓은 범주의 자유가 포함되어야 한다. 따라서 고정된 무브셋moveset으로 재현된 ‘그리기’는 우리의 현실과 지나치게 거리가 있다. 원본의 감각을 시뮬레이트하기에는 너무 먼 곳에 위치한 셈이다. 하지만 여기엔 딜레마가 있다. 비디오 게임이 창작자의 자의적 목적성과 행위의 자유를 담지하는 경우,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메커니즘과 분리되어 작용되곤 한다. 즉, 루두스rudus가 아니라 파이디아paidea의 형국을 띄는 것이다. 가난한 예술가의 삶을 따라가는 게임 「파스파투」의 경우가 그렇다. 물론 게임을 진행하기 위해 플레이어는 계속 그림을 그려야 하지만, ‘무엇을 그렸나’가 게임의 진행에 크게 영향을 주지 못한다. 이 게임에서 복잡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것은 규칙이 규정하는 목적과 무관하다. 이는 플레이어의 자의적 목적을 위한 행위로 명백히 파이디아적이다. 무엇을 그려도 상관없다면 이것은 그저 창작의 툴로 전용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이는 자유로운 건축(또는 조형)을 지원하는 「마인 크래프트」 역시 마찬가지다. 1x1x1의 입방체를 이용해 효율적인 보관 체계만을 이루던, 실제 사이즈의 건담을 만들던, 프로그래밍을 통해 작동하는 계산기를 만들던 그것은 게임이 제공하는 목적 지향의 수행과는 무관하다.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킹덤」에서 걸어다니는 거대로봇을 만들 수야 있겠지만, RTS에서 건물 배치를 ‘예쁘게’ 배치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들 모두 게임의 목적과 크게 조응하지 않는 그저 플레이어의 자의적 욕망에 의한 생산물일 뿐이다. 거칠게 정리한다면, 게임이라는 툴로 만들어진 독립적이고 아름다운 창작물이다. 따라서 비디오 게임, 특히 내러티브 비디오 게임에서 창작의 행위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조금은 복잡한 세팅을 전제한다. 플레이어는 의도와 행위에 어느정도 자의성을 가지고 있되, 그 결과물 중 특별한 형태가 목적을 위해 선별되어야 한다. 루카스 아츠의 「룸」이나 닌텐도의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에서의 연주 메커니즘 또는 「포켓몬 스냅」 시리즈의 촬영 메커니즘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물론 이들 역시 고정적인 대상, 특정한 마법의 주문이나 피사체로 수렴되어 버리는 만큼 기능적인 인상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한다. * 「룸」은 특별한 음계의 조합을 통해 마법을 시전한다. 「Behind the Frame : 가장 아름다운 경치」 「The Star Named EOS 별을 쫓는 여정」은 실버 라이닝 스튜디오Silver Lining Studio의 전작 「Behind the Frame : 가장 아름다운 경치」(이하 BTF)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특정한 창작 행위를 서사 추동의 기본으로 삼고 있는 것에 더해, 방탈출의 메커니즘을 이러한 창작을 위한 중간 단계로 제시한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실버 라이닝 스튜디오의 디렉터 윌슨 옌Wilson Yen은 PocketGamers.biz와의 인터뷰에서 본 게임의 특징 중 하나를 ‘페인팅 메커니즘’을 든다. [3] 그만큼 ‘그리기’의 행위를 강조한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플레이어는 특정 챕터를 클리어하기 위해 그림을 완성해야 하나, 챕터의 시작 시에는 물감의 종류가 부족한 상태다. 물감의 수색이 방탈출의 메커니즘으로 이어지며, 이 과정에 마주하 시각적 정보들이 서사의 빈 부분을 보충하는 식이다. 퍼즐을 풀고 물감을 획득하면 캔버스에 앉아 물감을 직접 발라 그림을 완성해야 한다. 여기서 이 게임의 특징이 발생한다. 플레이어는 이미 스케치가 되어 있는 캔버스에 물감을 직접 찍어 ‘발라야’하는 것이다. PC라면 마우스 포인터로, 콘솔이라면 아날로그 스틱으로, 모바일이라면 터치를 이용해 내부에 색을 채워넣어야 한다. 「BTF」는 이 ‘칠하기’의 과정을 적극적인 태도로 다룬다. 즉 퍼즐이 완료되고 물감이 수집되는 순간에 자동으로(또는 컷씬을 통해) 완성되거나, 포인트 앤 클릭이나 QTE 같은 매개적 방식을 사용하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직접, 규정된 만큼의 면을, 자신의 손으로 채워넣어야 하는 것이다. 이 명확한 선택은 「BTF」라는 게임의 서사를 온건히 체감하기 위해선 ‘창작의 행위’ 역시 감각적으로 체감해야 한다는 전제로부터 결정된 것으로 여겨진다. 즉 ‘그리기의 행위’는 게임 디자이너가 의식적으로 배치한 중요한 메커니즘인 것이다. 「BTF」는 ‘창작의 행위’를 그 감각의 핵심에 둔다 할 수 있다. 플레이어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퍼즐을 거치고, 스케치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는 캔버스에 포인터를 세심히 점점 채워나간다. 이 과정은 퍼즐을 해결하며 마주했던 방의 풍경들, 사진이나 그림 또는 텍스트 정보들을 다시금 상기하고 정리하는 것을 돕는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게임의 ‘프레임 뒤에Behind the Frame’있는 진실을 탐구할 수 있다. 그리고 완성된 그림이 그러한 진실의 편린과 맞닿아 하나의 서사적 세트를 이룬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흥미로워야 할 과정에는 약간의 어긋남이 있다. 이 ‘창작의 행위’는 시뮬레이트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 쉽게 말해 「BTF」의 페인팅 메커니즘은 그저 ‘색을 찍어 바르는’ 것에 국한된다. 특정한 위치에 올바른 색을 적당히 발라만 놓으면 ‘완성된’ 그림으로 즉시 치환된다. 플레이어는 명암이나 텍스쳐를 위해 물감을 덧대 바를 필요도 없고, 심지어는 제시된 면을 가득 채울 필요도 없다. 따라서 ‘플레이어가 그린 그림’과 ‘서사의 추동을 위해 필요한 그림’은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전자는 그저 후자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흉내내기’에 가깝다. * 「Behind the Frame : 가장 아름다운 경치」는 플레이어의 불완전한 그리기를 완벽한 그리기로 순식간에 바꿔친다. 이 불일치는 「BTF」가 요구하는 과정상의 몰입을 일정량 끊어버린다. 내가 ‘적당히’ 바른 물감이 그럴싸한 그림으로 변화하는 순간, 플레이어는 게임이 제시하는 서사적 추동으로부터 튕겨져 나온다. ‘내가 그린 그림’이 진실의 편린에 들어서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미리 그려둔 그림’이 진실의 편린으로 제시된다. 플레이어인 자신은 필요의 과정으로 그것을 (적당히 닮은 정도로) 제시한 것 뿐이다. 물론 비디오 게임의 서사가 모두 경험적 몰입의 과정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러한 작동을 위해 삽입된 페인팅 메커니즘이 그 목적을 배신한다면 조금 다른 문제가 된다. 「The Star Named EOS : 별을 쫓는 여정」 「The Star Named EOS : 별을 쫓는 여정」(이하 EOS)에서 창작의 행위는 그림 그리기가 아닌 사진찍기다. 이런 메커니즘의 선택 대해 프로듀서인 웨이첸 린의 인터뷰가 있다. “(실버 라이닝 스튜디오의) 게임 프로듀서 제레미(창)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사진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된 사진을 받는 순간이 ‘추억’과 ‘인화’를 연결시켜 주었다는 말을 따라, 우리 프로젝트 테마의 중심도 사진이 되었습니다.[Silver Lining Studio] game producer Jeremy [Chang] was deeply influenced by her grandfather during her childhood, sparking a strong interest in photography. (...) The moment of developing film and receiving the printed photos connected 'memories' with 'photographic prints' for her, becoming the theme of our project centered around photography.” [4] 사실상 창작의 행위가 추억과 연결된다는 지점에서 전작인 「BTF」와 연결된다. 따라서 그것이 담지하고 있는 서사의 형태나 퍼즐의 경향을 제외하면 「EOS」는 「BTF」와 동일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저 물감 찾기가 사진의 피사체 찾기로 변경된 것 뿐인데, 어차피 ‘창작물의 완성을 위한 재료 수색’이라는 사실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EOS」가 플레이어로 하여금 사진을 직접 찍도록 만드는 것은 「BTF」에서의 ‘그리기’와 동일한 목적-퍼즐의 과정에서 획득한 서사의 편린들을 묶어 하나의 진실로 재구성하기 위해 부여되는 여유의 시간-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 「The Star Named EOS : 별을 쫓는 여정」에서 플레이어는 어머니의 행적을 쫓으며 어머니의 사진과 유사한 대상을 찍어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두 작품간에는 다른 체감이 존재한다. 「EOS」의 ‘사진 찍기’ 역시 그 자체로 기억의 원본은 되지 않는다. 이 게임에서 사진을 찍는 행위는 그 자체가 원본이 되기 보다는 이미 원본으로 제시되는 ‘어머니의 사진’의 재현물이다. 주인공은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어머니가 찍은 사진과 ‘거의 유사한’ 사진을 찍으려 한다. 따라서 결과물은 원본이 되는 ‘어머니의 사진’과 그 재현물인 ‘주인공(과 플레이어)의 사진’으로 양분된다. 그럼에도 이 체감은 전적으로 「BTF」의 그것과는 달리 작동하는데, 「EOS」에서는 주인공과 플레이어의 재현물이 분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핵심은 분리가 발생하는 위치다. 「BTF」에서는 플레이어의 그림과 주인공의 그림이 분리되며, 따라서 게임의 내부에 존치되는 것은 주인공의 그림으로 한정된다. 플레이어의 그림은 게임의 내부에 머무르지 않는 일시적인 환영이자 ‘흉내’였을 뿐이다. 그에 반해 「EOS」의 사진은 게임의 내부에 머무르며 그것이 ‘재현’의 위치에서 서사를 추동하는 장치가 된다. 특히 「EOS」의 ‘앨범’은 이 차이를 더욱 명확하게 만든다. 플레이어는 챕터의 클리어를 위한 사진이 뿐만 아니라 스테이지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자유롭게 찍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게임 내부의 앨범에 남는다. 이를 통해 진행을 위한 정확한 재현물과 플레이어의 자의적/자유로운 창작물이 공존한다. 그리고 이것이 「EOS」는 「BTF」가 머뭇거렸던 지점을 뛰어넘도록 돕는다. 이 선택을 통해 창작의 행위를 게임의 메커니즘과 조금 더 확고히 조응시키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 플레이어는 자유로이 사진을 찍을 수 있고, 그 결과물은 온건히 앨범에 남는다. 부자유의 가능성 실버 라이닝 스튜디오의 이 두 게임의 목적은 서사의 내부로 플레이어를 끌어들여 ‘자신의 현실처럼’ 체험시키는 것이다 [5] . 이 때 창작의 행위는 서사의 이면에 있는 진실을 인식하기 위한 핵심적 행위로 작동한다. 이러한 전제를 위해 게임 메커니즘은 플레이어/캐릭터 간 행위가 분리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창작의 행위’가 내러티브 비디오 게임의 내부에서 온건히 기능하기 위해서는 플레이어 자신의 ‘창작 행위’가 서사의 추동에 영향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자의적이고 자유로운 창작 행위가 반복할 수 있다면 ‘창작의 행위’에 대한 체감의 정도는 증가한다. 흥미로운 것은 「BTF」와 「EOS」 간의 결과적인 차이를 유발한 것은 그 자유로움이 아니라 제약이라는 점에 있다. 결국 「EOS」가 「BTF」의 한계를 돌파한 결정적 요인은 ‘회화’의 방식을 ‘사진’의 방식으로 전환한 부분에 있다. 이 때 플레이어의 조작계를 통해 상대적으로 ‘다양한 것’을 산출할 수 있는 그리기의 행위는 오히려 내적 추동을 위한 ‘정확한 상’으로부터 상당히 동떨어진 방향으로 이끌기 쉽다. 「BTF」는 이러한 미끄러짐을 ‘자동적 원본 제시’라는 방식으로 돌파하려 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분리라는 한계지점을 낳은 셈이다. 「EOS」가 채택한 사진이라는 방식은 (게임이 재현현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회화의 행위성에 비해 가능성의 폭은 적을지라도, 그것이 필요로 하는 최종적인 상에는 언제나 근접한 결과를 낼 수 밖에 없다. 어쩌면 비디오 게임이 서사 추동의 메커니즘으로 담지할 수 있는 창작의 행위는 이러한 고리로부터 완전히 이탈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루두스의 게임은 ’완전히 개방된’ 자유로운 창작이라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모든 논의를 언제나의 그 테마, 비디오 게임에서의 자유라는 것과 연결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완전한 자유가 그럴싸한 아름다움을 만들어주는가, 아니면 제시된 한계가 ‘통합적인 상으로의’ 아름다움을 만들어주는가? 완전한 창작의 행위를 담지하는 루두스는 기술적 한계지점인가, 아니면 불필요의 영역인가? 실버 라이닝 스튜디오의 게임들은 어쩌면 의도치 않게 이러한 질문의 대답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1] 이를테면 스포츠, 도박, 테이블 게임 등. [2] 「파이널 판타지 6」의 캐릭터 중 하나인 ‘리름’의 특수 커맨드. 전투 중 적 캐릭터의 모습을 그려서 해당 캐릭터가 가진 능력을 하나 발동시킬 수 있다. [3] “비하인드 더 프레임의 독특한 두 가지 요소는 페인팅 메커니즘과 2D 360도 파노라마입니다. 전자를 통해 플레이어는 주인공의 모든 작품을 직접 칠하게 됩니다.Two things we found that make Behind the Frame unique are the painting mechanism and the 2D 360-degree panorama. In the former, we let the players paint whatever the main character paints.” ( https://www.pocketgamer.biz/importance-storytelling-silver-lining-studio/ ) [4] gameradar.com ‘The Star Named EOS is a beautiful, deliberate puzzle game where most everything is "a meaningful clue"’ ( https://www.gamesradar.com/games/puzzle/the-star-named-eos-is-a-beautiful-deliberate-puzzle-game-where-most-everything-is-a-meaningful-clue/ ) [5] 실제로 윌슨 옌은 그러한 목적이 있다는 의미의 이야기를 한 바가 있다. “이 모든 결정은 플레이어가 마치 스토리를 체험하는 것처럼 몰입감 있는 게임 경험을 제공하려는 매우 단순한 이유에 기반했습니다.We made all these decisions based on a very simple reason, to provide an even more immersive gaming experience as if the players live the story.” ( https://www.pocketgamer.biz/importance-storytelling-silver-lining-studio/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평론가) 이선인 만화와 게임, 영화를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합니다. MMORPG를 제외한 <파이널 판타지> 전 시리즈 클리어가 라이프 워크입니다. 스팀덱을 주로 사용합니다.
- 게임을 산책하기(장려상)
지난 5월 2일 민형배 국회의원이 대표발의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은 “가상공간에서의 가상인물을 통한 음란행위”를 성범죄로 규정하고 있다1). 물론 민형배 의원의 개정안은 현실의 성폭행 범주를 고스란히 옮겨와 메타버스 속 성범죄를 온전히 규정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이 개정안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메타버스라는 아바타를 신체의 확장으로 바라보며, 아바타의 경험이 실제 신체의 체험과 동등한 위치에 있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 Back 게임을 산책하기(장려상) 07 GG Vol. 22. 8. 10. 지난 5월 2일 민형배 국회의원이 대표발의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은 “가상공간에서의 가상인물을 통한 음란행위”를 성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1) . 물론 민형배 의원의 개정안은 현실의 성폭행 범주를 고스란히 옮겨와 메타버스 속 성범죄를 온전히 규정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이 개정안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메타버스라는 아바타를 신체의 확장으로 바라보며, 아바타의 경험이 실제 신체의 체험과 동등한 위치에 있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메타버스 등의 용어로 불리는 가상공간을 쉽게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은 게임이다. 디지털 게임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가상의 공간 속에서 이동 및 탐험을 경험하는 것이다. 아타리의 게임 〈어드벤처〉(1979)의 이스터에그를 찾아내는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마지막 미션이 시사하듯, 게임이라는 경험의 본질은 공간을 탐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경험은 무엇인가? 앞서 언급한 메타버스 성범죄의 사례는 게임에서의 경험이 실제의 경험과 동등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MMORPG에서 타 유저와의 의사소통, 오픈월드 게임에서 마주하는 NPC와의 랜덤 인카운터 등은, 도시를 돌아다니는 현대인이 마주하는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발터 벤야민은 보들레르나 에드거 앨런 포 등 19세기 문필가의 작품을 분석하며, 대도시 군중의 모티프가 반복됨을 지적한다. 그는 이들의 작품에서 반복되는 대도시 군중 속을 걷는 거리 산책자의 충격체험이 신문, 아케이드의 간판, 대중교통 등이 초래하는 대도시의 촉각적 경험과 충격으로 인해 발생했다고 분석한다 2) . 이는 변화하는 현대 파리의 모습을 보고 기억하는 산책자의 행위에 주목했던 보들레르의 관점이, 대도시 군중과 어깨를 부딪히며 나아갈 수밖에 없는 대도시의 산책자의 상황에 이르러 변화했음을 의미한다. 그러한 변화는 벤야민이 살아가던 1920~30년대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동시에 대도시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가속화되고 있다. 어쩌면 벤야민이 말하던 충격체험은 대도시의 속도 속에서 삭제된, 폴 비릴리오의 말을 빌리자면 “속도에 의한 공간의 절멸”로 인해 사라지고 있는 경험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러한 의미에서 디지털 게임이 구현하는 가상공간의 경험은, 삭제된 경험을 되살리는 것일 수 있다. 가상공간에서 서로의 아바타가 맞닿는 과정이 플레이어의 신체에 물리적인 충격을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디지털 게임은 인간에게 실제 살아가는 공간과 유사한 현실성의 공간을 제공한다. 이러한 디지털 공간의 현실성은 가상공간이 더 이상 실재가 아닌 가상이라 치부되며 실제의 열화된 버전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현실의 공간과 동등한 선상에 놓고 논의해야 할 필요성을 요구하게 된다 3) . 이러한 인식 속에서 게임이 제공하는 공간 경험은 신체가 느끼는 ‘정동적 놀람’의 상태를 동반한다. 게이머들이 〈레드 데드 리뎀션 2〉(2018) 속 아서 모건의 이야기에 동화되어 감동을 느끼거나,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2020) 속 엘리의 폭력적 복수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 그러한 ‘정동적 놀람’ 상태의 대표적 예시다. 공간 경험에 기반한 정동적 놀람의 상태는 앞서 언급한 산책자의 충격경험과 유사하다. 앞서 언급한 예시를 이어가자면, 아서 모건의 여정을 함께한 플레이어의 경험은 광활한 게임 속 영토를 탐험하는 경험과 함께한다. 선형적인 구성의 내러티브를 따라가는 엘리의 여정을 함께하더라도, 그것은 게임 속 스테이지를 옮겨 다니던 이동의 경험이다. 다시 말해, 플레이어는 게임 속 플레이어블 캐릭터 혹은 아바타의 가상 신체를 통해 게임 속 공간을 돌아다니는 산책자가 된다. 그러한 산책자로서의 경험이 강조된 게임을 꼽자면 코지마 히데오의 〈데스 스트랜딩〉(2019)이 있겠다. 〈데스 스트랜딩〉은, 물론 전투가 존재하지만, 근본적으로 이동 자체에 초점을 맞춘 게임이다. 플레이어블 캐릭터인 샘은 배송기사고, 멸망 이후의 미국 대륙을 횡단하며 생존에 필요한 물자를 이 쉘터에서 저 쉘터로 배송한다. 플레이어가 플레이하는 콘텐츠는 그러한 배송 자체다. 때문에 〈데스 스트랜딩〉의 핵심은 ‘배송하는 감각’을 재현하는 것에 있다. 디지털 게임이 게임기기의 입력장치를 통해 캐릭터의 움직임을 모방한다고 할 때, 〈데스 스트랜딩〉의 조작방식은 무거운 화물을 등에 짊어지고 움직이는 주인공 샘의 움직임을 고스란히 체험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게임을 플레이하면 짊어진 화물의 중량에 따라 샘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음을 목격할 수 있다. 플레이어는 그때마다 게임패드의 트리거 버튼을 알맞은 방향으로 눌러 샘의 무게중심을 잡아주어야 한다. 만약 무게중심을 잃은 샘이 넘어지게 된다면 짊어진 화물들이 쏟아지게 되고, 화물들을 다시 주워야 하는 것은 물론 화물이 데미지를 입게 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은 샘이 황량한 게임 속 세상을 걸어 다닐 때뿐 아니라, 바이크 등 탈것에 탑승하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플레이어는 샘을 통해 게임 속 세계를 산책하며 그곳을 경험한다. 게임패드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되는 물리적 경험은 게임이 지닌 가상공간 속에서의 체험을 강조한다. 물류를 배송하며 겪는 BT(Beached Things, 좌초된 것들)나 택배도둑 뮬(Mule)과의 전투, 시시각각 변화하는 기후에 따른 어려움 등은, 비록 벤야민이 정의한 것과는 다른 종류의 것일지라도, 일종의 충격체험을 플레이어에게 선사한다. 혹은 산책을 의도치 않은 게임 속에서 산책을 시도함으로써, 게임에 내재된 규칙을 전용하는 사례도 찾아볼 수 있다. 2021년 배틀로얄 게임 〈배틀그라운드〉(2017) 내에서 진행된 〈에란겔: 다크투어〉 퍼포먼스가 대표적인 예시다. 퍼포먼스는 온라인으로 접속한 다른 참가자들을 이끄는 리드 퍼포먼서로 게임평론가 이경혁, 디지털 스토리텔링 연구자 권보연, 기계비평가 이영준을 섭외하여 각기 게임을 잘 아는 원주민, 게임을 잘 알지만 다른 게임세계에서 이주한 이주민, 게임 자체를 모르고 완전히 낯설게 초대된 이방인 역할을 수행하게끔 하고, 게임방송 BJ를 섭외하여 퍼포먼스를 중계하였다. 〈배틀그라운드〉 속에서 리드 퍼포먼서 및 이들을 돕는 조교 역할을 수행하는 퍼포머들이 참가자들과 함께 게임 내의 지역인 ‘에란겔’을 돌아다니며 강연을 한다는 컨셉으로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 〈에란겔: 다크투어〉의 메뉴얼은 "단 한 명의 생존자가 되기 위해 피 튀기는 싸움을 벌이"는 대신, "단지 총성을 멈추는 것만으로도 이 게임 공간 속에 의미가 풍부한 각종 오브젝트와 건물들이 가득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 4) 이라며, 마치 몰락한 구 소비에트 연방의 어느 변두리를 연상케 하는 게임의 무대가 되는 가상공간 에란겔 섬에 대한 다크투어리즘을 제안한다. 참가자들은 플레이어가 아닌 관광객으로서 게임에 접속하고, 세 명의 리드 퍼포먼서가 진행하는 게임 내 강연의 청중으로, 다른 퍼포먼서 및 참가자들과 함께 게임의 가상공간을 산책하는 산책자로, 마지막에는 한자리에 모여 게임이 구현하는 동작의 한계 내에서 집단적인 의식의 춤을 추는 퍼포먼서로 참여하게 된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에란겔: 다크투어〉는 디지털 게임의 가상공간을 산책하고 관광함으로써 새로운 방식으로 그곳을 경험할 것을 제안한다. 세 리드 퍼포먼서의 강연은 기본적으로 디지털 게임이 그려내는 가상세계가 현실과 동떨어진 일종의 정서적 피난처나 단순한 유희공간이 아닌, 그것이 드러내는 이미지, 텍스트, 사운드, 규칙, 상호작용 등의 요소들을 통해 현실과 관계 맺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령, 〈배틀그라운드〉가 묘사하는 가상공간이 지금의 모습이 되기 전에는 어떤 인류학적 장소였을 수 있다는 암시를 찾아내거나, 각기 다른 규칙이 존재하는 다른 가상세계 혹은 현실세계의 이야기를 에란겔의 상황과 중첩시키는 등의 방식을 택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게임을 전용하는 것은 보들레르가 말했던 산책자의 기억술을 대도시가 아닌 디지털 게임이라는 대안적 공간 안에서 소생시킨다. 또는 정말로 산책과 결합된 게임의 형태를 떠올려볼 수도 있다. 나이언틱이 개발한 〈포켓몬 고〉(2016)를 실행하면 구글맵(Google Map)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지도가 등장한다. 현실의 지리학을 고스란히 가져온 지도 위에 포켓스탑과 포켓몬 체육관이 표시되어 있고, 플레이어의 실제 위치는 스마트폰의 GPS를 통해 게임 내 캐릭터의 위치와 동기화된다. 〈포켓몬고〉의 지도는 아무런 지명, 건물명, 교통수단 정거장 등이 표기되어 있지 않다. 단지 텅 빈 지도 위에 공공시설, 역사적 장소, 공공성을 띠는 조형물 등이 포켓스탑의 형태로 등장할 뿐이다. 그것의 생김새마저 포켓스탑을 터치해야 등장하는 사진을 통해 볼 수 있다. 〈포켓몬 고〉의 플레이어는 평소라면 지나쳤을 장소에 게임을 위해 머무르게 된다. 이를 통해 익숙한 산책로, 등굣길, 출퇴근길은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된다. 게임의 공간은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접속 가능하지만, 게임의 가상공간 자체가 현실의 지리학을 따르는 덕분에 게임의 가상공간과 현실의 공간 사이의 위계가 무력화된다. 그럼으로써 〈포켓몬 고〉의 유저들은 새로운 지역 커뮤니티를 형성하기도 한다. 희귀한 몬스터를 사냥하고 포획할 수 있는 레이드나 인게임 재화를 얻기 위해 필수적인 체육관 점령 등 다수의 유저가 참여해야 하는 콘텐츠는 지역 별로 〈포켓몬 고〉 커뮤니티를 형성하게끔 유도한다. 굳이 오픈 채팅방 등을 통해 커뮤니티에 소속되어 있지 않더라도, 레이드나 체육관 점령 등을 위해 〈포켓몬 고〉를 켜고 산책하다 보면 다른 유저를 마주칠 수 있기도 하다. 그러한 상황을 발생시키는 것 자체가 〈포켓몬 고〉의 콘텐츠인 셈이다. 게임이 만들어내는 가상공간이 점차 현실의 공간과 위계를 구분할 수 없게 되는, 소위 메타버스의 시대라 할 수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포켓몬 고〉의 사례는 그것을 물리적으로 입증하는 하나의 사례다. 더 나아가 정여름 작가의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2020)처럼 실제 공간 위에 덧씌워진 가상이라는 〈포켓몬 고〉의 컨셉을 영화와 미술 작업에 활용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다시 처음 언급한 “성폭력 특례법 일부개정안” 이야기로 돌아가자. 게임의 가상공간 안에서 산책자로서 활동할 수 있다면, 그것에 따른 부작용 내지는 현실에 존재하는 차별 또한 가상공간에 존재한다는 의미다. 산책자, 그러니까 플라뇌르(flâneur)는 프랑스어 남성명사다. 이는 보들레르나 벤야민이 플라뇌르를 개념화하던 시기의 산책자는 주로 남성이었으며, 여성은 남성의 시선이 닿는 사물적 대상이거나 소득을 얻기 위해 길 위를 서성이는 성노동자였다는 사실을 내포한다. 로런 엘킨이 제시한 "도시를 걷는 여자들", 즉 여성명사 플라뇌즈(Flaneuse)는 그러한 개념어의 전복이다. “성폭력 특례법 일부개정안”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작금의 상황은 게임과 메타버스 내에서도 플라뇌르는 여전히 가능하지만 플라뇌즈는 아직 불가능함을 시사한다. 게임에서의 공간 경험이 현실에서의 경험과 점점 분간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아니, 굳이 분간할 필요 없이 제2의 자연으로 가상공간이 존재하는 상황에 가깝다.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게임 내 성폭력, 각종 차별과 혐오발언은 자유로운 산책의 가능성을 배제한다. 그러므로 게임 속 가상공간이 제공하는 경험의 질을 규명하는 것은 그곳의 성격을 직시함으로써, 이곳저곳에 산재한 문제를 해소하는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의 경험이 모두에게 평등한 것이 될 때, 모두가 동등하게 게임 속을 산책할 수 있을 때, 가상공간의 유토피아라는 허황된 꿈에 조금이나마 접근할 수 있다. 1) 국민참여입법센터 국회입법현황, https://opinion.lawmaking.go.kr/gcom/nsmLmSts/out/2115468/detailRP (2022.06.27 접속) 2) 발터 벤야민, 「보들레르의 몇 가지 모티프에 관하여」, 『발터 벤야민 선집 4』, 최성만(역), 서울: 도서출판 길, 2010. 3) 오현주, 「디지털 게임 공간의 체험적 특성」, 홍익대학교 대학원 영상학과 박사논문, 2016. 4) <에란겔: 다크투어>에 관한 스테이트먼트, 매뉴얼 등은 다음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notion.so/03-20-21-14-00-15-00-2-4652d0e6c472438595a27e889dd55b7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박동수 학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했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하고 있다. 영화에 관한 글을 주로 쓰고, 미술, 게임, 방송 등 시각문화 전반에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 영화평론가, 팟캐스트 [카페 크리틱] 진행자, 공동체상영 기획자이기도 하다.
- 게임 역사 초창기의 기록들: 닌텐도 뮤지엄 방문기
2024년 10월 2일, 닌텐도 뮤지엄(Nintendo Museum)이 마침내 문을 열었다. 프로젝트 발표 이후 3년만의 소식이었다. 닌텐도의 역사와 유산을 기념하기 위해 설립된 이 박물관은 일본 교토부 우지시에 자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박물관은 1969년에 세워진 우지 오구라 공장(Uji Ogura Plant)을 개조한 것인데, 이 공장은 닌텐도가 일본 전통 카드 게임인 화투와 서양식 트럼프 카드를 제작하던 시절부터 비디오 게임 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까지 함께한 역사적인 공간이다. 닌텐도의 변천사를 상징하는 장소에서 다시금 과거와 현재를 모아놓은 셈이다. < Back 게임 역사 초창기의 기록들: 닌텐도 뮤지엄 방문기 22 GG Vol. 25. 2. 10. 닌텐도 뮤지엄 개괄 2024년 10월 2일, 닌텐도 뮤지엄(Nintendo Museum)이 마침내 문을 열었다. 프로젝트 발표 이후 3년만의 소식이었다. 닌텐도의 역사와 유산을 기념하기 위해 설립된 이 박물관은 일본 교토부 우지시에 자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박물관은 1969년에 세워진 우지 오구라 공장(Uji Ogura Plant)을 개조한 것인데, 이 공장은 닌텐도가 일본 전통 카드 게임인 화투와 서양식 트럼프 카드를 제작하던 시절부터 비디오 게임 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까지 함께한 역사적인 공간이다. 닌텐도의 변천사를 상징하는 장소에서 다시금 과거와 현재를 모아놓은 셈이다. * (위) 우지 오구라 공장과 (아래) 닌텐도 뮤지엄의 모습 비교 미야모토 시게루에 따르면 닌텐도 뮤지엄은 그동안 닌텐도가 모아놓은 것들을 보존하고, 이를 바탕으로 회사 안팎의 사람들과 닌텐도에 대하여 소통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889년 화투 상점으로 시작한 닌텐도가 오늘날 비디오 게임 산업을 선도하는 세계적인 기업이 되기까지의 역사를 정리하여, ‘닌텐도’가 무엇이고 어떠한 방향성을 추구해왔는지, 또 어떠한 모습을 향해 갈지를 보여주는 것이 곧 박물관 설립의 의미일 테다. 입장 방법 닌텐도 뮤지엄에 가는 길은 마냥 쉽지만은 않다. 박물관은 사전 예약제(추첨제)로 운영되며, 입장을 원하는 사람들은 방문 희망일 3개월 전에 공식 홈페이지( https://museum-tickets.nintendo.com/en)에서 추첨을 넣거나, 취소표를 구매해야 한다. 모든 절차에는 무료로 생성할 수 있는 닌텐도 계정이 필요하다. 입장에 필요한 사전 정보는 다음과 같다. 입장료: 성인 3,300엔, 고등학생/중학생 2,200엔, 초등학생 1,100엔, 미취학 아동 무료 운영 시간: 오전 10시 ~ 오후 6시 휴관일: 매주 화요일, 연말연시 주소: 교토부 우지시 오구라초 카구라다 56번지 교통: ● ・긴테츠 교토선 "오구라역" 동쪽 출구에서 도보 5분 ● ・JR 나라선 "JR 오구라역" 북쪽 출구에서 도보 8분 ● ・JR 나라선 "우지역" 북쪽 출구에서 도보 22분 관람객들은 방문 희망일 기준 세 달 이전에 응모를 진행해야 한다. 만약 2025년 4월에 방문을 원한다면 2025년 1월 1일부터 1월 31일까지 응모를 넣어야 하며, 2025년 2월부터는 5월 분에 응모 가능하다. 각 날짜에는 10시부터 16시까지 총 13개 타임이 열리고, 관람 희망자들은 최대 3개까지 원하는 날짜/시간을 선택하여 신청할 수 있다. 응모에 대한 추첨 결과는 다음 달 1일 오후에 발표된다. 필자의 경우 18시 30분 경 닌텐도 뮤지엄 측으로부터 당첨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당선 및 당락 결과는 개별적으로 발송된 메일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으며, 이는 또한 닌텐도 뮤지엄 홈페이지에서도 가능하다. 당첨되었을 경우 홈페이지를 통하여 결제를 완료해야 티켓을 확정지을 수 있다. 결제를 완료하고 약간의 절차를 따르면 다음과 같은 QR코드를 얻을 수 있다. 해당 코드는 박물관 입장시 필요하며, 이후 관람객들은 표를 실물 카드로 교환하게 된다. 카드에는 8비트 그래픽 마리오 이미지 또는 본인의 Mii를 넣을 수 있다. 모두 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진행 가능하다. * 닌텐도 뮤지엄 QR코드 및 실물 카드 박물관 구성 박물관은 크게 세 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큰 부지를 차지하고 있는 뮤지엄, 그 옆의 기념품점, 마지막으로 체험과 간단한 요깃 거리를 할 수 있는 카페 및 워크숍 구역이다. 지도상 나누어져 있지만, 뮤지엄과 기념품점 구역은 바로 옆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 쉽게 오갈 수 있다. 뮤지엄과 기념품점 중앙에 표시되어 있는 것이 본관의 중앙 입구이다. * 닌텐도 뮤지엄 조감도 건물의 중앙 입구에 들어가면, 관람객들은 우측에서 안내 데스크를 마주할 수 있다. 여기에서 워크숍 예약을 진행할 수 있는데, 모두 한정된 인원을 시간 단위로 받는다. 신청할 수 있는 워크숍으로는 (1) 만들기 (2) 플레이 두 가지가 있다. 모두는 닌텐도 뮤지엄의 상징인 ‘화투’와 관련된 것으로, 화투 세트를 만들어 보거나 주어진 판에서 화투를 플레이해볼 수 있다. 만들기는 2,000엔(한화로 약 20,000원)으로 약 1시간이 소요되며, 플레이는 500엔(한화로 약 5,000원)으로 약 30분이 소요된다. 플레이의 경우 이미지 인식 및 프로젝션 기술이 사용되어 초보자 역시 쉽게 화투를 접할 수 있다. * 닌텐도 뮤지엄 내부 투시도 뮤지엄 동은 크게 두 구역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2층의 전시 구역과 1층의 체험 구역이 바로 그것이다. 먼저 관람객들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는데, 그곳에 대부분의 전시품들이 배치되어 있다. 이후 다른 통로를 통해 아래로 내려가면 다양한 게임을 플레이해볼 수 있는 체험 구역이 나타난다. 전시 구성 우리가 일반적으로 ‘전시’라 부를 법한 것들은 대부분 2층의 전시 구역에서 볼 수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리면 전시 공간의 중앙부로 나오게 된다. * 닌텐도 뮤지엄의 전시 구역. 표시된 구역은 관람 시작 부분이다. 중앙부를 중심으로 10개의 곡면 전시장이 설치되어 있으며, 각 장은 한 가지 종류의 콘솔을 다루고 있다. 자세히 다루고 있는 콘솔로는 패밀리컴퓨터/NES, 슈퍼패미컴/SNES, 닌텐도64, 게임보이, 게임보이 어드밴스, 게임큐브, 닌텐도 Wii, 닌텐도 DS, 닌텐도 2DS/3DS, 닌텐도 스위치가 있으며, 그 외에도 별도의 공간을 통해 기기별/주제별 전시가 마련되어 있다 - 게임앤워치를 위한 공간 역시 작게 만들어져 있다. * 닌텐도 뮤지엄 건축 모형. 간단하게나마 내부 공간 구성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의 콘솔을 다루는 각 전시장은 동일한 구성을 지니고 있다. 모두는 하드웨어를 배치해놓은 직사각형의 전시장을 거대한 곡면의 전시장이 감싸는 형태이다. 곡면의 전시장 위쪽에는 콘솔에 걸맞는 대형 컨트롤러가 있다. 내부에는 지역별 콘솔 판매 비율, 게임 플레이 영상, 소프트웨어 패키지, 주변기기가 전시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지역이나 시기에 따라 바뀌는 패키지의 변화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 전시장 전면부 전시장의 후면부에는 앞서 이야기되지 못한 각 콘솔의 특징과 의미가 전시되어 있다. 여기에는 광고 영상이나 특징적인 기기, 주변기기, 타이틀이 의미 단위로 배치되어 있다. 각각의 의미를 표현하기 위하여 매뉴얼, 인포그래픽, 패키지가 다양하게 등장하며, 그에 따라 동일한 규격의 전면부와는 달리 보다 자유로운 구성을 보인다. 후면부에는 세 가지의 동일한 표지가 등장한다. 첫째는 금색 원 테두리로 해당 콘솔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시리즈를 의미하고(ex: 젤다의 전설 - 패밀리컴퓨터 디스크시스템), 둘째는 은색 원 테두리로 해당 콘솔에서 나타난 의미 있는 변화/도전을 나타내며(ex: 게임큐브 - 게임보이 어드밴스와 연결), 마지막으로 금색 별 모양의 테두리는 해당 콘솔에서 이루어진 세계 최초의 시도를 뜻한다(ex: 닌텐도64 - 컨트롤 스틱). * 전시장 후면부 이 외에도 전시 구역에는 각종 프로토타입 등 다양한 볼거리가 남아 있다. 특히 닌텐도의 시도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가 테마별로 잘 정리되어 있는데, 화투 회사로부터 닌텐도가 확장되어가는 과정, ‘3D’나 ‘운동’이 닌텐도에서 어떻게 다루어져왔는지의 궤적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시리즈별로도 전시 되어있어 각 시리즈가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 - 이를테면 ‘마리오’ 시리즈엔 어떤 게임들이나 캐릭터들이 있는지 - 살펴볼 수 있다. 2층 전시구역의 관람을 마치고 내려가면 체험구역에 들어갈 수 있다. 체험구역의 중앙부는 전시 공간이기도 한데, 여기서 관람객들은 ‘컨트롤러의 비교’, ‘라이트닝건’, ‘아이디어의 연속성’ 등의 테마 전시를 볼 수 있다. 각종 카드 게임 팩들 역시 전시되어 있다. 여기서 관람객들은 총 8가지 종류의 놀이를 체험해볼 수 있다. 모든 관람객들에게는 체험에 쓸 수 있는 10개의 코인이 티켓을 통해 지급된다. 관람객들은 이 코인을 사용하여 체험에 참여할 수 있다. 각각의 체험 마다 드는 코인의 개수가 다르니 체험 동선을 잘 짜는 것이 필수적이다. 체험 전시 목록과 소모 코인은 아래의 사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체험형 전시 목록 필자의 경우 총 5개(Zapper & Scope SP, Ultra Hand SP, Love Tester SP, Nintendo Classics, Big Controller)를 체험했다. 기대 이상이었던 것은 러브 테스터(Love Tester SP)였다. 1969년 출시된 휴대용 콘솔을 크게 만들어놓은 이 체험형 전시는 러브 테스터가 무엇인지를 간단하고 재미있게 체험할 수 있게 했다. 체험이 마무리되면 스크린쪽에서 사진이 자동으로 촬영된다. 이는 닌텐도 뮤지엄 개인 페이지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 닌텐도 뮤지엄 개인 페이지. 체험한 활동의 결과와 사진을 확인할 수 있다. 1층의 체험구역까지 관람을 마치면 퇴장 구역을 통해 전시 동을 나가게 된다. 관람객들은 긴 통로를 따라 걷게 되는데, 벽면에는 그동안 출시된 닌텐도의 제품들이 역순으로 전시되어 있다. 즉, 닌텐도 스위치로부터 시작하여 화투로 끝이 난다. 통로 끝에는 닌텐도 뮤지엄에서 제일 오래된 화투 수납함(Nintendo Storage Shelf for Hanafuda Label)이 배치되어 있다. 전시 총평 닌텐도 뮤지엄의 전시는 관람자 스스로 의미를 발견하도록 유도한다. 일반적인 박물관들이 서문이나 설명을 통하여 의미를 전달한다면, 닌텐도 뮤지엄에서는 줄글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각 구역에는 간단한 키워드 정도만 쓰여져 있었으며, 전시품과 기호들 만이 배치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정해진 관람 동선이 없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대부분의 전시 공간은 한두 개의 동선을 바탕으로 설계되지만, 닌텐도 뮤지엄의 전시 공간은 중앙에서 출발해 원하는 방향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었다. 그 결과, 보다 자유로운 방식의 관람이 가능했는데, 관람 당시도 사람들이 관심사에 따라 뿔뿔이 흩어지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렇게 관람객이 스스로 생각하고 탐구하고, 행동하게 하는 전시 방식은 정말 닌텐도스럽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정보는 제공하되 독해 방식을 특정하지 않음으로써, 자유롭게 생각하고 탐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닌텐도가 그동안 추구해온 방향성과도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전시 방식에서부터 닌텐도스러움을 전달했다는 점에서 앞서 미야모토 시게루가 이야기한 목표 역시 상당수 달성된 것이 아닐까 싶다. 게임 아카이빙과 닌텐도 뮤지엄 닌텐도 뮤지엄은 ‘닌텐도’에 대한 박물관으로, 게임 자체에 대한 박물관이라 보긴 어렵다. 닌텐도 뮤지엄이 전시하는 것은 닌텐도의 족적이고, 이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닌텐도의 가치와 철학이다. 그러나 닌텐도라는 기업이 게임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고려한다면, 게임에 대한 전시를 논하는 데에 있어 닌텐도 뮤지엄은 좋은 사례가 되어준다. 그렇다면 게임을 전시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게임 아카이빙’이 어떤 것인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게임 아카이빙이란 게임과 관련된 자료들을 수집, 보존, 분류하는 일련의 과정을 뜻한다. 이는 게임을 단순히 보관하는 것을 넘어, 게임이 가진 문화적, 역사적, 학문적 가치를 보존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자료를 관리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게임기나 게임팩을 모으는 것만이 게임 아카이빙이 아니며, 게임을 모으고 전시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 방식이나 내용이 게임의 역사적 맥락과 문화적 중요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면 적절한 아카이빙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아카이빙의 핵심은 보존과 선별인데, 역사적 가치와 연구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원형에 가깝게 자료를 보존해야 하며, 결코 모든 자료를 모을 수 없기에 의미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적절히 수집해야 한다. 비디오 게임의 경우 보존 작업이 특히 문제가 된다. 게임이나 게임기의 물리적인 외형 뿐만 아니라 장치의 작동 기능, 소프트웨어 역시 보존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외형만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소프트웨어와 데이터를 온전히 유지해야 하는 것은 매우 힘든 작업이다. 게임 소프트웨어는 특정 하드웨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복잡한 기술적 문제가 수반되기도 한다. 더불어, 비디오 게임의 물질적 특성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게임을 보존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물성이 없는 대상을 어떻게 수집하고 보존할지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에 착안하여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기술이나 에뮬레이터(Emulator) 등이 사용되고 있으나, 이들 역시 게임의 원형이나 사용자 경험을 온전히 보존하지 못할 수 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수집을 넘어 전시를 진행하는 데 있어 사인은 더욱 복잡해진다. 게임은 ‘플레이’를 핵심으로 삼는 상호작용 매체이기 때문에, 단순히 누군가의 플레이 화면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게임을 ‘전시’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행위성을 전시하는 것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관람객이 전시품을 만지고 체험하게 하는 것은 그 자체로 대상의 원본성을 훼손할 수 있으며, 대개 한 번에 한두 명만 수용 가능한 비디오 게임의 특성상 플레이의 전 과정에 관람객들을 참여시키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하여 닌텐도 뮤지엄에서 제시한 해답은 게임의 플레이를 나머지 것들과 분리시켜 전시하는 것이었다. 닌텐도 뮤지엄의 전시는 크게 전시와 체험이라는 두 가지의 섹션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먼저 2층에는 게임기, 게임팩, 광고물, 매뉴얼 등이 의미 단위로 전시되어 있었고, 1층에는 게임과 게임기의 기능 및 특징을 강조한 체험 거리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플레이에 관한 부분은 원본을 그대로 보이기보다는 게임과 게임기의 기능 및 특징을 강조한 형태의 체험장을 새롭게 구성하였는데, 이를 통하여 관람객들이 게임 또는 게임기기가 어떠한 행위성을 지니는지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같은 전시 방식은 원본의 역사와 의미를 설명하면서도 관람객들에게 플레이 경험을 전달하는 데 유용하고, 또 원본을 잘 보존하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다만 닌텐도 뮤지엄의 방식에 역시 한계는 존재한다. 닌텐도 뮤지엄의 체험관은 원본의 플레이 경험을 그대로 제공해주기 어려우며, 더욱이 플레이 타임이 긴 경우나 MMO 등 다양한 사람들이 개입하는 플레이 경험은 충분히 전달하기 힘들다. 따라서, 게임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전시 방식과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게임 아카이빙과 게임을 다루는 전시에 대한 논의가 더 활발히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참고자료 강승진 (2024, 9, 25). [인터뷰] 닌텐도의 살아있는 역사, '미야모토 시게루'를 만나다. <인벤>. URL: https://www.inven.co.kr/webzine/news/?news=299543 (2025, 1, 3 열람) 닌텐도 뮤지엄 공식 홈페이지 ( https://museum.nintendo.com/en/index.html ) Nintendo Museum Direct ( https://youtu.be/JApUMBscKOc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이연우 함께하는 게임에 관심을 가지고 게임의 관계성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게임으로 다함께 즐거워지길 바랍니다.
- 게임, 전쟁, 격리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 검투사 몇이 경기장에 있다. 다른 검투사 하나가 무기를 들고 입장한다. 새로 입장한 검투사는 적절하고 신속한 동작으로 상대 검투사들을 하나씩 도륙낸다. 이따금 불필요하지만 화려한 동작도 섞어준다. 관중들이 환호한다. 만신창이가 된 마지막 상대는 이미 전투 능력을 잃고 선 채로 죽어가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승자는 화려한 기술로 그를 두 동강 내버린다. 홀로 남은 승자가 된 검투사는 신이 나 있는 관중들에게 분노를 담아 외친다. “Are you not entertained?” < Back 게임, 전쟁, 격리 25 GG Vol. 25. 8. 10. 장면 하나.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 검투사 몇이 경기장에 있다. 다른 검투사 하나가 무기를 들고 입장한다. 새로 입장한 검투사는 적절하고 신속한 동작으로 상대 검투사들을 하나씩 도륙낸다. 이따금 불필요하지만 화려한 동작도 섞어준다. 관중들이 환호한다. 만신창이가 된 마지막 상대는 이미 전투 능력을 잃고 선 채로 죽어가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승자는 화려한 기술로 그를 두 동강 내버린다. 홀로 남은 승자가 된 검투사는 신이 나 있는 관중들에게 분노를 담아 외친다. “Are you not entertained?” 2000년의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한 장면이다. 장면 둘. 한 남자가 공항 출국 게이트에 있다. 게임 쇼에 참가해 우승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참여를 했다. 게임 종목은 어린이들의 골목 놀이였지만 패배의 대가는 죽음이었기에 남자는 다른 참가자들이 모두 죽는 지옥을 경험했다. 홀로 남아 우승한 남자는 거금을 갖고 미국에 있는 가족에게 갈 참이다. 하지만 게임의 주최측과 연결된 마지막 통화를 끊자 그는 뒤돌아 걸어간다. 그는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말이 아니야. 인간이야.” 2021년의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이다. 두 장면의 두 인물은 목숨을 건 게임을 했고 승자가 되어 살아남았다. 그들이 경험한 것은 전쟁과 흡사하다. 이들이 일종의 선수로서 게임을 수행했듯, 전쟁은 군인이 선수로서 싸운다. 싸움 바깥에서 싸움을 지켜보는 관중이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다만 전쟁의 승패는 그 관중들에게도 영향을 미치지만, 이들의 게임은 관중에게 영향이 없다. 그래서 전쟁은 일종의 사업으로서 해석되지만, 이들의 게임은 관중에게 유희다. 전쟁과 유희의 관계에 대해 고찰하다 보면, 어떤 네덜란드 사람을 만나게 된다. 호이징가 혹은 하위징어로 불리는 이 네덜란드 학자는 자신의 저서 ‘호모 루덴스’에서 문명의 근간은 놀이성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분석한 놀이성, 놀이의 특징 중 하나는 규칙으로 시공간을 제한하는 것이다. 저녁 먹을 때까지, 여기 이 놀이터 내에서, 얼음땡 규칙으로 게임을 한다는 식이다. 그 시공간을 벗어나면 놀이가 끝나고 놀이의 규칙은 아무런 권위를 갖지 못한다. 이 특징이 확대되어 제의, 법률, 행정 등 문명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 모두가 놀이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이 네덜란드 아저씨의 고찰이었다. 경쟁과 협동은 놀이의 두 축이 되는 원리이고, 이는 자연에 대해, 인간 서로에 대해 투쟁하는 생존 추구의 상태를 극복하는 방법이었다. 이를 제한적인 규칙 속으로 집어넣자 놀이가 되었다. 일상과는 다른 어떤 시공간을 가정하고 거기에서만 통하는 규칙을 만든다는 점은, 인간이 일상의 생존이 아닌 다른 가치를 추구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놀이성은 생존 너머의 문명을 만드는 근간이 되는 원리다. 현대인으로서 완전히 동의하기 어려워지는 대목은, 그래서 자본에 포섭되어 시장화한 스포츠는 삶에서 멀어졌기 때문에 놀이가 아니게 되었다는 해석이다. 놀이는 직접 수행하는 방법 외에도 타인의 놀이를 구경하는 방법이 있다. 콜로세움, 오징어 게임, 스포츠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는 생사를 거는지 아닌지를 제외하면 타인에게 게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자본으로 해석되었다 하여, 관중이 즐기게 되는 ‘보는 게임’으로서 놀이의 본질이 사라졌는지는 더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 콜로세움에서 스타디움까지. 검투사에서 프로 선수까지. 관중을 대신해 게임을 하며 보는 게임을 제공하는 경우는, 싸움-전투-전쟁을 모사하긴 하지만 한 가지 한계가 있다. 소규모 전투의 모사라는 점이다. 격투기가 아니어도 양편이 나뉘어 싸우는 구기 종목이 그 경우다. 축구는 기병과 보병 전술과 유사하다. 농구는 흔히 기병과 궁병 전술에 비유된다. 핸드볼의 전술은 투창 전투와 많이 닮았다. 그렇다면 야구는 포병과 유사할까? 피겨 스케이팅과 같은 점수 경쟁 스포츠는? 하카처럼 전투 전의 의식을 겨루는 모습와 유사하다고 갖다댈 수 있겠다. 유희(遊戲)의 희(戱)는 중국 고대의 전장에서 전투 전에 위세를 겨루기 위해 호랑이 머리를 장식한 기물(䖒)을 창(戈)으로 치는 행위에서 만들어진 글자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여전히 ‘태극 전사’니 ‘상암 대첩’이라는 식으로 전쟁의 용어를 스포츠에 갖다 쓴다. 팀 단위의 경쟁 스포츠는 전쟁에 대한 욕구를 대리 해소하는 용도 또한 갖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적용되는 전쟁의 국면은 전략이 아닌 전술이다. 소규모 전투가 아닌 대규모 전쟁을 경기장 안에서 구현해 전략을 게임화하려면 상당히 많은 권력-자본이 필요해진다. 압도적으로 많은 선수가 필요할 테니까. 혹은 ‘이 말 하나가 사람 천 명이다’라는 식으로 추상화되어 전술과 전투의 재미가 사라진다. 전략을 보는 지적 재미는 추가되지만, 이래선 흥행이 맞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무리 왕이고 부족장이라도 이런 이벤트를 만들었다간 재미없음 이유로 권좌에서 내쫓길 수 있다. 그래서 대규모 전쟁은 추상화되어 보드 위에 자리잡았다. 바둑, 체스, 장기와 같은 게임은 기물을 선수로 대체한다. 그래서 검투사의 유혈을 보고 공감 능력이 발휘되어 몰입이 깨져버리는, 콜로세움 입장료가 아까운 경우도 없다. 현실에선 불가능한 조감도 시야도 제공한다. 게다가 ‘보는 게임’에 특화된 가까운 경기장과 달리 보드는 ‘하는 게임’이 우선이다. 기술과 장르를 옮겨서 디지털 게임으로 오면, 앞서 있었던 많은 제약이 해제된다. 디지털 게임은 보드 게임의 추상성과 경기장 게임의 구체성을 모두 추구할 수가 있다. 프로세서의 연산 기능을 늘리기만 한다면 소규모 전투와 대규모 전쟁을 각각 혹은 한꺼번에 모사해낼 수 있다. 그렇게 전쟁은 게임이 가장 자주 다루는 소재가 된다. 병사 하나가 되어 전장을 누비는 개인 액션부터 10만 단위의 부대가 점 몇 개로 표시되는 전략까지 가능하다. 모두 바둑, 체스, 장기의 후예들이다. 여러모로 전쟁과 게임은 닮았다. 전쟁의 추동력은 전쟁을 수행하는 두 집단의 목표가 충돌하는 상황이니, 결국 경쟁이 핵심이다. 이기기 위해 군대는 계급에 따른 수직적 분업과 보직에 따른 수평적 분업을 수행한다. 분업이 수직-수평으로 직조하는, 협동의 체계가 군대 체계의 핵심이다. 전쟁을 요약하면, 협동하여 적과의 유혈 경쟁을 이기는 것이다. 유혈 부분을 빼면 게임과 동일하다. 게임에서는 1인 플레이의 경우에는 협동이 빠지기도 하고, 역으로 협동이 크게 강조되어 경쟁 요소가 옅어지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전쟁의 저 두 핵심을 그대로 매체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결국 차이점은 유혈의 유무다. 싸움-전투-전쟁은 생명을 잃게 한다. 잘 기능하는 사회 구성원 하나를 키우는 데에 사회가 들이는 비용은 시간만 보아도 20여 년 이상이다. 게다가 인간의 공감 능력은 피 색깔만 비슷해도 그 죽음을 안타까워 할 수 있는데, 종까지 같은 인간의 죽음이기도 하다. 아무리 증오스러운 적이라 하더라도 죽음을 보고 직접 죽이는 것은 인간의 정신에 좋지 않다. 그러면서 아무 가치도 생산하지 않고 가치를 사용하기만 하니 문명 전체의 손해이기도 하다. 한편 전쟁은 전쟁을 수행하는 사회의 경제, 기술, 행정, 정치의 과실이 그대로 반영된다. 그 찬란한 과실을 갖고 하는 것이 조직적 살인이라는 점에서 철학적인 자괴감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서 전쟁은 추악하고 또 아름답다. 문명의 정수와 실력이 발휘되는 시공간이기 때문이다. 추악함을 최대한 제거하고 아름다움을 가능한 부각시키려면, 죽음을 무시할 수 있으면 된다. 콜로세움에서 죽는 검투사에게서 공감을 거두면 그 게임은 재미있다. 하지만 전쟁에서 죽음을 제거하기란 어렵고 모두가 공감 스위치를 끄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대의 전쟁은 그래서, 호이징거 혹은 하위징어의 해석을 따르자면, 놀이성이 강화되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전쟁에 규칙을 두는 것이다. 선전포고를 해야 정식 전쟁이고, 민간 피해는 최소화해야 하고, 전쟁 중의 약탈과 민간인 학살 같은 것을 ‘전쟁 범죄’로 규정하고, 포로를 정식 신분으로 만드는 등등, 전쟁에 놀이성이라는 족쇄를 채우려고 애를 쓰고 있다. 생사를 건 전투가 오직 전시에만 일어나게 하는 시도다. 새로운 시도는 아니다. 놀이성의 특징인 시공간 제한에 의해 게임 안과 밖은 엄격히 구분된다. 콜로세움의 선수, 전장의 병사가 대신 생명의 위협을 받는 대신 제한된 시공간 바깥의 관중은 면제된다. 이미 검투사들을 관중 대신 데스 게임에 밀어넣으면서 인간 문명은 싸움에 놀이성을 부여해봤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약간 불편한 가설도 도출할 수 있다. 전쟁 게임이란 안전해진 사람들의 안도감을 흥분으로 바꾸는 것이 본질일 수도 있다. 게임 안에서 벌어지는 액션의 쾌감, 전술의 합, 전략의 수려함은 결국 게임 밖의 나에게는 해를 가하지 않으므로. 저 사람들이 내 재미를 위해 죽어도, 나는 잠깐 마음이 불편하고 나머지 시간은 즐거우니까. 그래서 보훈은 국가의 중요한 사업 중 하나가 된다. 타인 대신 전장에서 목숨을 걸겠다고 나선 직업인들에 대한 예우다. 그럼 인간은 왜 전쟁을 게임에서 재현하고 있을까? 구성원 대다수가 전쟁에서 벗어나 안전한 문명 영역에 도달했으면서, 자꾸 그 특수한 지옥을 가져와 가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은 이렇게 뒤집어 볼 수도 있다. 인간은 전쟁을 게임 안으로 가두려 하는 걸까? 인류 문명이 전쟁을 국제 사회 질서의 한 부분으로 가두어가는 한편, 인간은 게임 규칙 속으로 전쟁을 가져오면서 콜로세움을 졸업했다. 현재의 스포츠에서 경기 도중 죽는 선수는 격투기 종목에서조차 극단적으로 적다. 오징어 게임은 어디까지나 은유이지 실제 현실에서 유사한 경기가 열리는 일은 없다. 이제 과거의 검투사 대신 뛰는 현재의 스포츠 선수는 전쟁과 유사한 활동을 할 뿐이다. 따라서 ‘대신 놀아주기’는 전쟁을 가두는 행위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앞선 질문에 대한 답은 만들기가 어렵다. 인간이 전쟁을 게임 안에 가두는 중이라면, 오히려 전쟁을 잊거나 제거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고 재현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저 질문을 다르게 바꿔보면, 전쟁은 정말 그렇게 매력적인가? 인간의 내면에는 사실 전쟁의 유혈과 광기를 동경하는 부분이 있는 걸까? 그러고 보면 인간은 모순을 사랑한다. 전쟁은 찬란한 동시에 추악하다. 어쩌면 인간은 전쟁, 전투, 싸움, 죽음을 끊을 수 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혹은 끊기 위해 게임 속에서 전쟁, 전투, 싸움, 죽음을 죽이는 중이라고 서술할 수도 있다. 혹은, 삶에서 아주 특정한 때에만 있는 이벤트라면 질병이라고 치환해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군인은 전쟁 속에서 전쟁을 해소하려 하는 의사로 비유할 수도 있고, 전쟁을 다루는 게임은 예방용 백신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개인의 인생관과 세계관에 따라 답은 달라질 수 있으니 답은 아직 없다. 다만 우리 인류가 전쟁이라는 특정 시공간 상황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기를 소망한다. Tags: 재현, 전쟁, 워게임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 Three Trends in Western AAA Games Research: Creators, Culture, and Cash.
The AAA space continues to be one where art, industry, and culture coalesce. What games research attunes us to most is that each of these elements, while moving forward, seems to be stuck in stasis where the problems of the past remain unresolved. In the pleasure of the next big release, the anticipation of the next hype cycle, and the excitement of the next awards ceremony, it’s clear that AAA development is no-doubt heading full-bore into a future of even greater artistic heights, but these heights come with even more troubling extremes. Despite interventions on the part of games journalists and academics, and mobilization attempts from game workers, long-standing and pervasive issues with the legitimacy of games, and the exploitation of workers and players alike, persist. Academic work on the AAA space shines a spotlight on the issues that continue to go unresolved while major gaming studios propel forward in the perpetual quest for artistic recognition, prestige, and the almighty dollar. < Back Three Trends in Western AAA Games Research: Creators, Culture, and Cash. 10 GG Vol. 23. 2. 10. On December 8th, 2022, the 9th iteration of The Game Awards, a Hollywood-style awards show “celebrating the best in games,” streamed live to 103 million viewers. 1) Not unlike the Oscars, The Game Awards is an amalgamation of industry recognition for games large and small, a validation of the artistic or technical merits of games, and an indicator of the cultural spaces games are being marketed towards. While The Game Awards does recognize smaller games, it is largely part of the cultural apparatus of AAA marketing and recognition for the most recent blockbuster games. Indeed, the Game Awards have been a hype and marketing machine, where numerous awards are given out rapid-fire style without ceremony or acceptance speeches to make room for trailers, first-looks, and gameplay premieres, some of which include elaborate musical presentations, or lead-ins from super-star creators like Hideo Kojima, famous for the Metal Gear franchise (Konami), and more recently Death Stranding (Kojima Productions, 2019). The largest AAA titles such as last year’s God of War: Ragnarok (Sony, 2022) and Game of the Year Winner Elden Ring (FromSoftware, 2022) get the lion’s share of the screen time, and while smaller games are not forgotten, it is mainly a night to celebrate and market big budget and mainstream games. Not inconsequentially, the night ended with a now-infamous young man crashing Hidetaka Miyazaki’s acceptance speech - another reminder that no matter how much we dress up mainstream games culture there is a level of meme-driven social deviance bubbling beneath the artifice. This confluence of socio-economic forces as seen through the pageantry of The Game Awards is emblematic of three linked trends within Western research on the AAA game space: First is the creative domain and the artistic merits of big budget games. Second is the cultural domain, which is concerned with both the studio spaces and work environments that produce and ship these large-scale projects, which tie into the cultures of play that grow out of communities of players. Third is the monetary element through the marketing and monetization of games as premium entertainment experiences. This article is a brief introduction to a small portion of the discourse around these trends in the context of AAA games. To begin with the creative and artistic merits of games, it’s important to understand that a great deal of media and scholarly attention on games into the late 1990s and early 2000s focused on the harms and benefits of games on society, with the largest emphasis on the impact of violent gaming content on children and youth. 2) While many players and some scholars of this time implicitly understood games as having artistic value, there was a prevalent current of thought that saw games as a lesser media form. As Felan Parker notes, the discussion around games and their artistic merit came about in the wake of American film critic Roger Ebert’s notorious, and still oft-quoted comments, “that games can never be art,” between 2005 and 2010. 3) More attention within journalism and academic spaces was reserved for this debate in the wake of these comments, and one strategy to uplift games from this ‘non-art’ assumption was to elevate game designers as auteur figures, not unlike world-famous Hollywood directors who are able to leave a distinct artistic flourish on their games. 4) This trend is still visible through the elevation of key directors at The Game Awards just a few months ago. AAA games, due to their high visibility and large budgets for production and marketing, maintain a status as flagship games for new consoles. They are also more likely to be games that push the technological limits of design, and so dominated the discussion of artistic games until the indie boom of the early 2010s. Brendan Keogh notes that AAA game studios operate under large publishers most interested in making profits, and so many games designed within a AAA framework have traditionally been conventional or risk-averse. 5) Yet, the legend of the videogame auteur continues, and games like Kojima’s Death Stranding (Kojima Productions, 2019) can make unconventional choices regarding gameplay and aesthetic, while ‘indie’ games make up a much smaller portion of games discourse than they did through the 2010s. In part, AAA has both been influenced by and co-opted elements of ‘Indie’ design and aesthetic. 6) There are certainly familiar AAA games that do not defy convention with any regularity, such as annual sports releases or FPS franchises like Call of Duty (Activision). Awards season, and to a larger extent games journalism, has adapted to celebrate a form of AAA game that takes the familiar tropes and genre conventions of yesteryear’s big budget titles while providing the slightest bit of something new or challenging to our collective sensibilities, thereby offering a hint of indie spirit that upholds the idea that these titles are the products of auteurs. In part because the ‘are games art’ debate is still alive in popular culture, players and the industry support this arrangement because it seems to validate gaming as an activity, while elevating the cultural cache of games which will ultimately sell more copies and grow the consumer base. The inner workings of the AAA studio space are unfortunately lost in the emphasis of the auteur figure, but this has also been taken up in academic work on AAA games. There are two prominent topics when thinking about AAA work culture: overwork and the gendered work space. An early piece on overwork in the games industry was written by Dyer-Witheford and de Peuter in 2006, and examined labor exploitation, burnout, worker turnover, and struggles to unionize within this extreme work culture. 7) Twelve years later, in 2018, former Kotaku writer Jason Schreier posted an exposé on the overwork, or ‘crunch culture’ within Rockstar Games as the company was finishing work on Red Dead Redemption II (Rockstar Games, 2018). 8) Despite being a known issue within big budget game development for nearly two decades, crunch persists and continues to be a key topic of analysis, particularly as scholars explore possibilities for unionization and workers rights. 9) Related to this is the gender divide within game studios. Drawing from a 2013 Game Developer’s Magazine survey, deWinter and Kocurek point out that “the gendered disparity in salary is significant in all areas of game employment except programming and engineering (which is 96 percent male).” 10) Contrary to assumptions that this is because women to not play games or are averse to entering the games industry, deWinter and Kocurek found that women were far more likely to be alienated by the workplace culture that has itself been influenced by the toxic and misogynist elements of game culture, and as a consequence would burn out more quickly and leave the industry. 11) Much of the work written on games culture indirectly engages with AAA games precisely because of this feedback loop between the culture and the workplace. Critically, any change to either the player culture or work culture of gaming needs to occur simultaneously between the labor and leisure spaces of gaming culture. Recently much of the focus on AAA games, and gaming in general, has been on business models and monetization. In particular, the prevalence of microtransactions, loot boxes, and battle passes. While these tend to be associated with mobile and free-to-play games, there is no set definition for AAA games and so there is no inherent exclusion of a game from the AAA category based on a free-to-play model. As Daniel Joseph’s work on battle passes shows, big-budget games produced by large studios, such as Apex Legends, DOTA 2, or Fortnite, can use free-to-models and microtransactions as the primary method of monetizing their games. 12) Importantly for Joseph, these models effectively turn games into shopping platforms that obfuscate their primary goal of extracting money from the consumer. 13) Exactly how predatory these models are becoming is of great concern, as is the way microtransactions change what kinds of AAA games are being made as there is a much larger emphasis on the service, or seasonal model of games precisely because they can make more money off of their players. It isn’t just a question of exploitation, but how these monetization models change the way AAA games are made and how they’re consumed. Building on the labor issues within AAA design, this also is creating new forms of crunch, as Joseph points out that Fortnite developers “...reported exhausting 100-h work weeks due to the massive success of the game and the drive to constantly be developing for the next season and battle pass.” 14) The AAA space continues to be one where art, industry, and culture coalesce. What games research attunes us to most is that each of these elements, while moving forward, seems to be stuck in stasis where the problems of the past remain unresolved. In the pleasure of the next big release, the anticipation of the next hype cycle, and the excitement of the next awards ceremony, it’s clear that AAA development is no-doubt heading full-bore into a future of even greater artistic heights, but these heights come with even more troubling extremes. Despite interventions on the part of games journalists and academics, and mobilization attempts from game workers, long-standing and pervasive issues with the legitimacy of games, and the exploitation of workers and players alike, persist. Academic work on the AAA space shines a spotlight on the issues that continue to go unresolved while major gaming studios propel forward in the perpetual quest for artistic recognition, prestige, and the almighty dollar. 1) Zheng, Jenny. “The Game Awards 2022 Received Over 103 Million Views, Sets New Viewership Record.” Gamespot. December 16th, 2022. 2) Ivory, James D., “A Brief History of Video Games.” The Video Game Debate: Unraveling the Physical, Social, and Psychological Effects of Digital Games. Edited by Rachel Kowert and Thorsten Quandt. New York and London: Routledge, 2016, 16-17. 3) Parker, Felan. “Roger Ebert and the Games-as-Art Debate.” Cinema Journal 57, no 3 (2018):77-79. 4) Ibid., 95-96. 5) Keogh, Brendan. “Between Triple-A, Indie, Casual, and DIY: Sites of Tension in the Videogames Cultural Industries.” The Routledge Companion to the Cultural Industries. Edited by Kate Oakley and Justin O’Connor. New York and London: Routledge, 2015. 153-154. 6) Lipkin, Nadav. “Examining Indie’s Independence: The Meaning of ‘Indie’ Games, The Politics of Production, and Mainstream Co-optation.” Loading… The Journal of the Canadian Game Studies Association 7, no 11 (2012): 8-15. 7) Dyer-Witheford, Nick, and de Peuter, Greig. “‘EA Spouse’ and the Crisis of Video Game Labour: Enjoyment, Exclusion, Exploitation, Exodus.” Canadian Journal of Communication 31, no 3 (2006): 599-617. 8) Schreier, Jason. “Inside Rockstar Games’ Culture of Crunch. Kotaku. October 23rd, 2018. 9) Cote, Amanda, and Harris, Brandon, C. “‘Weekends Became Something Other People Did’: Understanding and Intervening in the Habitus of Video Game Crunch.” Convergence: The International Journal of New Research into Media Technologies 27, no.1 (2021): 161-176. 10) deWinter, Jennifer and Kocurek, Carly. “” Gaming Representation: Race, Gender, and Sexuality in Video Games. Edited by Jennifer Malkowski and Treaandrea M. Russworm.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2017, 65. 11) Ibid. 12) Joseph, Daniel. “Battle Pass Capitalism.” Journal of Consumer Culture 21, 1 (2021):68-83. 13) Ibid., 81. 14) Ibid.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Researcher) Marc Lajeunesse Marc is a PhD candidate in Concordia University's department of communication studies in Montreal, Canada. Marc’s research focuses on toxicity in online games. He is driven to understand toxic phenomena in order to help create more positive conditions within games with the ultimate hope that we can produce more equitable and joyful play experiences for more people. He has published on the Steam marketplace and DOTA 2, and is a co-author of the upcoming Microstreaming on Twitch (under contract with MIT Press). (Game Researcher) Bora Na I'm a game researcher. I've been playing games for a long time, but I happened to take a game class at Yonsei University's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fter graduation, I sometimes do research or writing activities focusing on game history and culture. I participated in , , and so on.
- 2023년, 되새기고 싶은 게임들
쏟아지는 게임들을 개인이 매년 다 챙겨 플레이해 볼 수는 없다. 그래도 직업이 직업인지라 꾸준히 신작들을 좇는 과정에서 느꼈던 올해의 여러 게임들을 간략히 정리해보면서 한 해의 게임들이 남긴 의미들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GG는 딱히 평점을 매기거나 개별 타이틀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웹진은 아니지만, 한 해의 마무리로서의 의미 정도는 만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 Back 2023년, 되새기고 싶은 게임들 15 GG Vol. 23. 12. 10. 팬데믹의 여파인지 , 2023 년에는 뭉쳐 두었던 게임들이 갑자기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오는 한 해였다 . 게임 마니아들도 , 게임을 직업으로 삼는 이들도 올해 나온 굵직한 게임들을 다 플레이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 쏟아지는 게임들을 개인이 매년 다 챙겨 플레이해 볼 수는 없다 . 그래도 직업이 직업인지라 꾸준히 신작들을 좇는 과정에서 느꼈던 올해의 여러 게임들을 간략히 정리해보면서 한 해의 게임들이 남긴 의미들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 GG 는 딱히 평점을 매기거나 개별 타이틀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웹진은 아니지만 , 한 해의 마무리로서의 의미 정도는 만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 올해의 아쉬움: <다키스트 던전 2>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기대만큼의 결과를 만들지 못한 올해의 아쉬웠던 게임들이다 . 아무래도 아쉬움을 이야기한다면 올해는 1 순으로 < 다키스트 던전 2> 를 꼽지 않을 수 없다 . < 다키스트 던전 > 1 편은 코즈믹 호러라는 장르가 게임 규칙을 통해 어떻게 얽히고 설킬 수 있는지를 훌륭하게 보여준 작품이었다 . 심연의 공포는 심연 그 자체 이상으로 로그라이크 특유의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미래 , 팀 구성과 이벤트가 결합하며 한 발 한 발 나갈 때마다 플레이어를 조여내는 공포감 , 절체절명의 순간에 단 한 번의 기회가 만들어내는 회생의 짜릿함을 극한까지 만들어낸 바 있었다 . 2023 년에 2 편이 출시된다는 소식은 그래서 적지 않은 이들에게 새로운 기대감을 선사했었다 . 그러나 정작 올해 출시된 2 편은 1 편의 위상을 넘지 못했다 . 영웅 캐릭터들의 배경을 보여주며 스킬을 오픈하거나 마차를 타고 이동하며 어둠의 심연을 향한다는 변경점들이 문제라기보다는 , 영웅 팀을 꾸려 상황에 맞게 성장시키는 본진 중심의 성장감이 크게 흐트러졌다는 점이 문제로 보인다 . 매 막이 끝날 때마다 영웅들의 인간관계가 흔들리며 스킬셋이 뒤바뀌고 , 캐릭터 성장의 누적치가 짧게 디자인되어 후반부로 갈수록 어드밴티지가 줄어드는 점은 여러모로 게임을 고정된 패턴의 반복에 가깝게 만든다 . 지속적인 플레이를 통해 점차 본진이 강화되는 점으로 성장치를 옮긴 듯 하지만 , 이는 결국 게임을 일정 수준 이상 플레이하기 위해선 결국 수십 번의 게임오버를 누적해야 한다는 전제가 되고 말았다 . 리메이크 붐 - <데드스페이스>, < 데드 스페이스 >, 처럼 올해 적지 않은 AAA 게임들은 리메이크를 기반으로 출시되었다 . 9 세대 콘솔게임기들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면서이기도 하고 , 과거의 젊었던 게이머들이 이제 중년에 접어들며 자신의 과거에 남은 명작들을 다시금 곱씹어도 될 만큼의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 비단 스탠드얼론 게임 뿐 아니라 2000 년대의 온라인게임들도 적지 않게 리부트되고 있는 상황도 같은 맥락에서일 것이다 . 산업적으로는 이러한 리메이크들은 게이머 소비자층의 인구구성 변동과 밀접하게 엮여있는 것으로 보인다 . 게임은 기본적으로 선진국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매체고 ,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10 대 -20 대층은 3-40 대에 비해 큰 폭의 인구 감소를 보이고 있어 소비자 모수 층 자체가 두텁지 않다 . 더불어 소비력 또한 경제활동인구인 3-40 대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상황에서 당분간 2000 년대 게임의 리메이크 , 리부트는 훨씬 두터운 소비력을 지닌 3-40 대의 취향에 맞춰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 개별 게임으로 이야기해본다면 , 중년층을 향하면서도 동시에 각각의 게임들은 20 년이 지난 시점에서의 새로운 세대에게도 어필이 가능하게끔 하는 변경은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 몇몇 게임들은 지금 시점에서 보기엔 여전히 불편한 인터페이스를 유지하기도 했지만 전작을 고스란히 새 플랫폼에 포팅하기보다는 나름의 변경요소들을 통해 리 ’ 메이크 ’ 의 의미를 살리는 경향들을 보였다 . 향후 한 100 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이러한 리메이크가 이뤄진다면 우리는 ‘ 데드스페이스 2000’, ‘ 데드스페이스 2023’ 등으로 리메이크 년도를 중심으로 한 게임 플레이와 비평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고 , 이러한 시도들이 만들어내는 같은 게임에 대한 버전별 차이를 통해 또다른 의미들을 되새겨볼 수도 있을 것이다 . 국산 스탠드얼론의 해, <데이브 더 다이버>, 오랫동안 국산 게임의 중심이었던 모바일 MMORPG 들의 수익성이 예전같지 않음은 몇 년 전부터 지적되어 온 바였고 , 그에 따라 많은 회사들이 콘솔 , PC 를 기반으로 해외진출을 모색해 온지도 적잖은 시간이 흘렀다 . 2023 년은 그런 흐름 중 일부가 결과물을 드러낸 해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 데이브 더 다이버 > 는 라이트한 톤을 선택했다 . 어렵지 않은 난이도로 주인공 데이브의 이미지처럼 편안하게 해변에서 맥주마시는 느낌으로 플레이 가능한 이 게임은 바다라는 대상에 대한 독특한 시선의 조합을 보여주었는데 , 휴양지로서의 해변과 취미로서의 다이버를 중심에 세운 뒤 주로 공포의 심연으로 다뤄지던 바닷속은 한편으로는 도전적이면서도 동시에 밝고 명랑한 판타지의 세계로 그려낸 뒤 융합시켰다 . 식량의 보고 , 휴양의 공간 , 심연의 공포와 판타지가 적절하게 융합된 < 데이브 더 다이버 > 의 바다는 라이트해 보이는 게임의 외양과는 달리 나름의 유니크한 세계 구축에 성공했고 , B 급 유머를 통해 전체적인 톤을 잡아가며 성공적인 해외 진출의 성과를 내는 중이다 . 단순 매출지표로서가 아니라 , 독창적인 세계관이 유기적으로 잘 작동하는 게임메이커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가능해 보인다 . 은 AAA 급 소울라이크라는 일련의 도전을 시도했고 이 또한 유의미한 수준의 성과에 도달했다 . 게임 규칙은 과도한 난이도 꼬기나 지나치게 부드러운 진행 사이의 적절한 지점을 (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 납득 가능한 구조로 구축해냈고 , 그런 규칙은 디젤펑크 풍의 세계관 속에 캐릭터와 아이템을 통해 부드럽게 달라붙었다 . 오히려 눈길을 끈 것은 세계관과 스토리 부분이다 . 인공지능의 급격한 발전이 화두가 되는 시대에 은 근대 초기의 오토마타를 통해 동화 ‘ 피노키오 ’ 를 재해석해 그럴듯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 게임 초반 호텔 입구에서 “ 로봇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는 문구와 함께 시작되는 이 게임의 주요 주제는 챗 GPT 를 통해 거짓말을 달고 사는 AI 를 늘상 마주하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 강철과 강철이 맞부딪히는 매 스테이지의 대전은 강한 추진력을 가진 이야기 진행을 통해 좀더 힘을 받는다 . 난이도에 대해 생각하기: <디아블로 4>와 <스트리트 파이터 6>, <아머드코어 6> < 디아블로 > 시리즈는 하드코어 모드를 따로 켜지 않는 한 어려운 난이도의 게임은 아니다 . 플레이어의 숙련도가 배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벤트 클리어는 숙련도보다는 아이템과 스탯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고 , 이는 일정 시간 이상을 투여함으로써 충분히 축적 가능하기 때문이다 . 이 시리즈의 핵심은 그래서 결국 ‘ 아이템 ’ 이다 . 아이템을 어떤 식으로 획득할 수 있느냐가 게임의 핵심이며 , 적어도 3 편에서 시도한 전설 아이템 드랍율 상향은 그다지 매력적인 방식은 아니었다 . 2 편의 영광과 3 편의 실망 이후 발표된 4 편을 처음 접하고 든 생각은 그 적당한 절충점을 찾는다는 게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 그러나 이는 단순히 드랍 확률에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 결국 게임을 지속적으로 플레이하게 만드는 계기는 끊임없이 주어지는 ‘ 해야할 것 ’ 이 얼마나 있는가 , 그리고 그 ‘ 해야할 것 ’ 이 ‘ 해야할 가치 ’ 가 있는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 스토리 진행과 무관하게 성장하는 캐릭터가 중심인 이 게임은 그러나 그 ‘ 해야할 것 ’ 보다는 ‘ 안해도 되는 것 ’ 에 더 무게를 실어버린 느낌이다 . 단순 선악구도에서 다면화된 캐릭터를 통해 복잡해진 이야기로 넘어간 시도는 흥미롭지만 그것이 ‘ 해야할 것 ’ 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 오히려 몹의 빈도 저하와 같은 패치들은 ‘ 해야할 것 ’ 의 양적 , 질적 저하를 가져온 결과를 낳았는데 , 부실한 오픈월드 구현과 함께 게임의 중심을 잃은 느낌을 받은 부분이었다 . 격투 게임을 전문적으로 즐기지 않는 입장에서 < 스트리트 파이터 6> 는 매우 놀라웠는데 , 5 편에 비해 확실히 초보 - 저랭크 존의 대기시간이 크게 줄어듦을 체감했기 때문이었다 . 스틱과 6 버튼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기술을 연속으로 넣어야 하고 , 이를 상대 캐릭터에 반응해 맞춰야 하는 고전적인 대전격투 게임의 방식은 QWER 과 쿨타임으로 구성된 요즘의 버튼과는 다른 차원의 인터페이스이고 , 이는 이른바 ‘ 고인물 ’ 들이나 즐길 수 있는 게임으로 대전격투 게임의 자리를 만들어온 바 있었다 . < 스트리트 파이터 6> 가 도입한 새로운 컨트롤 방식은 충분히 의미있는 시도였고 , QWER 세대에게도 대전격투의 공방과 심리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요소였다고 생각한다 . 정작 오래된 게이머 입장에선 손에 맞지 않아 클래식 컨트롤로 돌아가긴 했지만 , 라이트해진 컨트롤을 사용하는 상대와도 충분히 유의미한 대전을 펼칠 수 있다는 사실은 비전문 격투게이머에게도 한동안 < 스트리트 파이터 6> 를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었음은 분명하다 . < 아머드코어 6> 는 난이도 측면에서도 메카배틀이라는 장르 특성에서도 메이저한 게임으로 부르기는 어려운 축에 속한다 . 6 편의 경우는 난이도가 다소 애매한데 , 어떤 세팅을 하는지에 따라 체감 난이도가 크게 요동친다는 점에서 단순하게 쉽다 어렵다를 이야기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 조작성의 개선과는 별개로 아직까지 특유의 낮은 시인성 문제는 초심자들에게는 쉽지 않은 장벽으로 보인다 . HUD 인디케이터를 통하지 않으면 정확한 타격 시점의 인지가 쉽지 않고 , 이는 일정 시간의 숙련을 거친다 해도 그다지 보편적으로 납득될 수 있는 형태의 숙련으로 자리하지는 않는다 . 그럼에도 숙달에 이르는 과정 자체는 부드러운 우상향을 만들어내고 있어 지속적인 플레이를 가능케한다 . 오히려 꽤 잘 기획된 것으로 보이는 스토리 측면에서 다소 허술한 개연성을 드러내고 있어 아쉬운 부분이라면 아쉬운 부분 . 메이저 IP들의 성공, 실패, 그리고 아쉬움 - <마블스 스파이더맨 2>, <호그와트 레거시> < 호그와트 레거시 > 는 해리포터 세계관을 가져오되 해리포터 시대 이전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측면에서 원작 마니아들로부터 큰 기대를 모은 작품이었다 . 실제로 해리포터 IP 에 친숙한 이들이 플레이 중 발견하는 요소들은 꽤나 흥미로웠던 것으로 보이지만 , 문제는 IP 가 플레이 규칙 안으로까지 들어오지는 못한다는 점이었다 . 다양한 동적 오브젝트들을 통해 빽빽하게 채워진 호그와트 성과 원작의 느낌을 살리는 주변 마을들은 해리포터 세계에 들어와있음을 보여주지만 , 이러한 세계관 요소들은 전투에 개입하지는 못한다 . 마법 속성을 통해 일련의 상성관계를 만들고 이를 통해 방어 - 회피 - 카운터 - 콤보를 유발하는 전투 방식은 해리포터 세계관 속의 전투라고 상상하기는 어려운 , 게임적인 우회 루트의 결과물로 이해된다 . 게임 내 지팡이 상점에서 지팡이를 교체해도 아무런 전투속성 변화가 없다는 점은 게임으로 < 호그와트 레거시 > 에 접근한 이들에겐 다소간의 실망감이었을 것이다 . 다만 원작의 전투 씬 자체가 다소 모호한 구성임은 감안할 필요가 있고 , 오히려 좀더 적극적으로 원작을 기반으로 전투의 공방을 새롭게 재구성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 < 마블스 스파이더맨 2> 는 같은 지점에서 충분히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해볼 수 있겠다 . 1 편의 출시 때부터 < 배트맨 아캄 >3 부작의 프리플로우 액션은 < 스파이더맨 > 에 더 어울린다는 이야기가 많았고 , 2 편에서도 특유의 경쾌한 액션은 원작 IP 의 캐릭터 감성을 고스란히 살리며 이어졌다 . 기본적인 체술 , 웹 스윙을 통한 맵 이동 , 스파이더 센스를 활용한 공격알람 시스템 등은 1 편에서 이미 완성 단계에 이르렀고 , 2 편에 추가된 새로운 특수기들과 장비들은 원작의 스파이더맨 ’ 들 ’ 이 과학 / 공학 너드라는 사실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설득력있으면서도 화려한 액션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 . 애초에 < 스파이더맨 > 시리즈는 원작부터가 도심을 기반으로 한다 . 웹 스윙은 건물이 없으면 사용이 어려운 기술인데 , 2 편에 도입된 윙슈트는 이런 점을 보완하면서도 트렌드를 놓치지 않는 탁월한 선택으로 보인다 . 어반 판타지 액션으로서의 완성도는 뉴욕의 젊은이라는 두 주인공의 이야기와 일상을 녹이는 다양한 서브퀘스트와 잘 엮이며 스파이더맨 세계관이 정밀하게 작동하는 생동감넘치는 도시를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 다만 이 시리즈가 가진 치명적 한계로서의 한국어 더빙 문제는 시리즈의 완성도가 높아질수록 비영어권 사용자들에게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 안그래도 빠른 액션 씬 사이사이에 들어가는 주인공들의 입담은 자막 이용자들에겐 게임의 중대한 재미 하나를 순식간에 놓치게 만든다 . 닌텐도의 길: <젤다의전설: 왕국의 눈물>,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원더> < 젤다 : 왕눈 > 은 발매 직후의 고평가 외에 부정적인 평가들도 없지 않은 편이다 . 특히 1 편인 < 젤다 : 야숨 > 을 플레이했지만 시리즈의 팬이 아닌 경우 부정적 평가가 두드러지는데 , 1 편의 확장팩 같다는 평이다 .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평가는 다소 억울해 보일 정도로 2 편은 새로운 만질 거리들을 제공하고 있지만 , 납득하지 못할 평가는 또 아니다 . 전반적으로 상대적 캐주얼함을 가지고 있는 ‘ 스위치 ’ 계열 게임 중에서 < 젤다 > 시리즈는 꽤 마니악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데 , 이런 요소들이 인터페이스상의 불편함으로 들어간다면 조금은 개선점으로 봐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 이를테면 인벤토리 처리의 불편함이라던가 , 새로 추가된 크래프팅 시스템이 주는 번거로움 같은 부분들은 설령 시리즈의 팬이라 하더라도 다소 부담스럽고 , 물흐르듯 이어저야 하는 플레이를 중간중간 멈추게 만드는 요인이다 . 그래도 전통적인 시리즈 특유의 스타일을 ‘ 스위치 ’ 플랫폼에서 계속 발전 ,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스위치 기반 < 젤다 > 시리즈의 두 작품은 여전히 고평가받을 가치가 충분하다 . 오히려 과도하게 그래픽에 많은 리소스를 투자해 제작비와 제작시간이 산으로 가는 케이스와 비교한다면 < 젤다 > 시리즈 특유의 시각적 분위기는 게임 플레이 자체에 더 많은 공수를 들일 수 있게 만드는 배경이며 , 그로 인해 매 신작마다 여전히 게임하는 이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게 만드는 요소일 것이다 . 플랫포머 액션의 종손이라 불러도 될 <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원더 > 의 성취는 올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수준이다 . 시각과 청각을 모두 활용해 만들어내는 하모니가 게임 메카닉에 고스란히 녹아들며 , 각 스테이지에 등장하는 새로운 적과 오브젝트들은 거의 40 년에 가깝게 이어진 2D 플랫포머라는 장르가 필연적으로 떠안아야 하는 진부함을 넘어서는 참신하고 독창적인 기믹을 들고나온다 . 오히려 이 오래된 장르가 진부하기는커녕 앞으로도 더 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선언으로도 읽힌다 . 본격적인 스위치 플랫폼의 대표주자다보니 특유의 2 인 코옵 또한 훌륭하게 구현되었다 . 오프라인 코옵 뿐 아니라 온라인 코옵도 구현되었고 , 이를 통한 협업으로 난이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구성이라 말그대로 함께 하는 게임으로의 지향 또한 뚜렷하게 잘 드러나고 있다 . 특히 온라인 멀티플레이에서 익명의 매칭을 통해 발생할 수 있는 트롤링에 대한 섬세한 대처는 이 게임을 빛나게 만드는 포인트 . 메이저한 게임은 아니지만, 눈길을 사로잡았던 게임들 건설운영 시뮬레이션 < 어게인스트 더 스톰 > 은 < 심시티 > 류처럼 엔딩없이 무한으로 도시를 키우는 방식을 벗어나 로그라이트적 개념을 통한 스테이지 클리어의 반복을 중심에 둔 게임이다 . < 시저 >, < 세틀러 >, < 안노 > 등의 비슷한 게임들이 최소한의 적을 두고 공 - 방 상호작용을 포함하는 것과 달리 이 게임은 애초에 전투 유닛 자체가 없지만 , 주어진 과제의 기한 내 완수라는 미션이 주는 압박감은 매번 리셋되는 조건과 맞물리며 굉장한 몰입도를 자랑한다 . 중세 용병단을 다룬 전략롤플레잉 < 워테일즈 > 는 정해진 스토리 없이 말그대로 유랑하는 용병단의 상황을 풍성하게 담아낸 수작이다 . 주어지는 상황들은 딱히 진엔딩이라 할 결과로 이어지지 않으며 , 게임의 난이도 조절은 단순히 적의 레벨이 올라가는 것 이상으로 용병단의 재정적 운영 자체가 점점 힘들어지는 구조를 통해서도 이루어지며 전투와 운영 두 면에서의 충분한 고려를 요구하여 게임의 몰입을 높인다 . 사실상 후반부에 이르면 도덕적인 플레이가 어려울 만큼의 처절한 상황 설정은 현실을 떠나 가상공간에 푹 빠져 오랫동안 사고하고 플레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 < 팔루자에서의 6 일 > 은 아직 얼리억세스이지만 FPS 장르에서의 새로운 논점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게임으로 보인다 . 다양한 인터페이스를 통해 편의를 높이는 게임적 방식이 아닌 , 전장이라는 현실이 제공하는 실제 장벽이 되는 상황들을 겪도록 만든 구성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다른 의미의 몰입과 집착을 불러낸다 . 일정 거리를 벗어나면 무전이 아닌 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 채팅이 지원되지 않으며 핑 포인트 또한 자주 시야를 가리는 등 사실상 전장에 놓인 병사가 겪게 되는 고립 상황은 특히 강렬한 사운드 효과들 – 귀가 멍해진다거나 실내 교전시 울리는 소리 등 – 에 의해 배가된다 . 다만 매우 가까운 시대에 실제로 벌어진 전쟁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서는 조금 더 차가운 시점에서의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 그래도 딱 하나를 꼽으라면 - <앨런 웨이크 2>, <발더스 게이트 3> 하나를 꼽겠다 해놓고 굳이 두 개의 게임을 집는 이유는 둘 다 큰 임팩트를 내게 남겼기 때문이다 . < 앨런 웨이크 2> 는 13 년만에 돌아온 후속작을 통해 전작이 미처 다 끝맺지 못한 이야기를 < 퀀텀브레이크 >, < 컨트롤 > 등을 통해 그동안 꾸준하게 쌓아 온 제작사의 세계관을 통해 완성시켰는데 , 그 완성도와 메시지가 올해 나온 여러 게임 중에서도 독보적이다 . 전작인 < 앨런 웨이크 1> 에서 게임은 작가를 통해 만들어지는 예술이 현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라는 주제를 통해 미스터리 어드벤처를 구현해 낸 바 있었다 . 이번 후속작은 창작과 예술의 심연으로 빨려들어간 작가 앨런 웨이크와 함께 FBI 요원 사가 앤더슨이 등장하며 작품을 예술이게 하는 기둥으로 존재하는 것이 작가와 영감 뿐 아니라 작품의 수용자임을 환기시킨다 . 세계를 이해한 작가가 자신의 경험과 영감을 통해 작품을 만들고 , 만들어진 작품은 수용자에 의해 해석되고 피드백되며 다시 작가를 향한다 . 이 루프 피드백은 동시대 매체와 콘텐츠의 구조에 대한 제작자가 게임이라는 형식을 통해 우리에게 보내는 새로운 산출물이며 , 우리는 이 작품에 대해 플레이하고 비평함으로써 비로소 작품을 완성시키는 구조 안에 놓인다 . < 발더스 게이트 3> 은 대중들이 디지털게임에 기대하는 거의 모든 것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수준의 퀄리티로 구현된 세계와 , 그 안에서 일어나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멋지게 얽어내며 모두의 기대를 만족시켰다 . 탄탄한 원전 룰북의 힘을 통해 쌓아올려진 게임의 구성은 잘 만들어진 레고 블록으로 구현해 낸 , 언제 어느 자리에서도 플레이어가 생각할 수 있는 다양한 루트들마다 ‘ 우리도 그거 고민했어 ’ 로 대답하는 제작진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 되었다 . 그리고 그런 구조 위에 올려진 다양한 캐릭터와 이야기들 , 특히 사실상 진주인공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 더 다크 어지 ’ 의 이야기는 가히 오래된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클리셰를 가장 정통적이고 전통적인 방법으로 풀어내되 멀티엔딩과 선택분기라는 방식을 통해 게임 매체적인 방법으로 가장 아름답게 구현한 결과를 빚어냈다 . 너무 많은 게임들이 충분히 유의미한 경험들을 남겨준 2023 년이었고 , 글을 마무리하는 시점에도 나는 계속 쏟아지는 2024, 2025 년의 출시 예고작들을 본다 . ‘ 이 게임은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 것일까 ?’ 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고 또 그런 게임을 선호하는 입장에서 2023 년은 정말 할 말도 , 할 게임도 많은 해였다 . 게임이 넘칠수록 바빠지는 삶이지만 , 이런 식의 바쁨이라면 앞으로도 어느 정도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거라고 자위해볼 수 있는 미래가 될 것이다 . 모두의 게임 경험들이 내년에도 더 풍족하고 흡족하기를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탈출 없는 삶에서 의미를 만드는 게임적 방법
〈하데스 Hades〉는 혹평이 거의 없는 좋은 게임의 정석 같은 게임이다. 2020년 하반기 최고작으로 뽑히며 더 게임 어워드(The Game Awards, TGA) 올해의 게임 노미네이트, 각본상, 인디 게임상, 액션 게임상을 수상했고, 메타크리틱 게임 리뷰에서 93점의 높은 점수를, 현재 스팀에서도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SF 문학상인 네뷸러상과 휴고상까지 수상하니, 국내의 한 게임 비평지에서는 “하데스는 깔 게 없다”고 평하기도 했다. 여기에 이렇게 길게 수상 목록과 긍정적인 평가를 굳이 덧붙이는 이유는 〈하데스〉가 보편적으로 잘 만든 게임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 Back 탈출 없는 삶에서 의미를 만드는 게임적 방법 10 GG Vol. 23. 2. 10. 〈하데스 Hades〉는 혹평이 거의 없는 좋은 게임의 정석 같은 게임이다. 2020년 하반기 최고작으로 뽑히며 더 게임 어워드(The Game Awards, TGA) 올해의 게임 노미네이트, 각본상, 인디 게임상, 액션 게임상을 수상했고, 메타크리틱 게임 리뷰에서 93점의 높은 점수를, 현재 스팀에서도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SF 문학상인 네뷸러상과 휴고상까지 수상하니, 국내의 한 게임 비평지에서는 “하데스는 깔 게 없다”고 평하기도 했다. 여기에 이렇게 길게 수상 목록과 긍정적인 평가를 굳이 덧붙이는 이유는 〈하데스〉가 보편적으로 잘 만든 게임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이미 좋은 평이 많은 〈하데스〉의 리뷰를 쓰기로 결심한 이유는 ‘죽음’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사 때문이었다. 가깝고 먼 이들을 전례 없이 자주 떠나보낸 2022년이었고, 스스로는 잦은 자살 충동과 싸워야 하는 시기를 겪었다. 그러면서 연구자로서 ‘죽음’의 여러 사회적 논쟁을 다뤄보고 싶어졌고, 최근엔 그 준비를 하는 시기였다. 그 이름이 〈하데스〉인 만큼, 많은 리뷰에서 이 게임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죽음’을 다룬다. 이후 서술하겠지만 〈하데스〉는 로그라이크에서의 퍼머넌트 데스(Permanent Death) , 재시작 구조로서 죽음을 영리하게 사용했고, 그것이 게임의 큰 축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필자가 이 글을 쓰기 위해 〈하데스〉를 다시 플레이했을 때 발견한 것은 이 게임에서 ‘죽음’은 별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으며 -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개의치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 오히려 ‘살아있음/삶’ 그리하여 계속 진행되는 ‘이야기’가 그 중심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춰 왜 〈하데스〉가 좋은 게임이 되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우선 게임이어야 한다 아직 〈하데스〉를 플레이하지 않았고, 이후에 플레이하고자 하는 독자는 이 리뷰를 읽는 것을 잠시 뒤로 미뤄주길 부탁드린다. 이렇게 당부하는 이유는 이 게임의 첫 번째 경험만큼은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 첫 번째 플레이 시작 장면 * 첫 번째 플레이 직후, 히프노스, 하데스와 자그레우스 대화 장면 좋은 게임이기 위해서는 우선 ‘게임’이어야 한다. 〈하데스〉를 좋은 게임으로 만든 첫 번째 요소는 군더더기 없는 게임 구조이다. 가장 첫 플레이는 튜토리얼의 역할을 하는데 ‘몬스터를 죽인다 - 방을 넘어간다 - 죽으면 집으로 돌아온다’라는 게임 전체 구조를 바로 경험하게 한다. “잘 있어요. 아버지.” 한 마디 남기고 어떠한 가이드도 없이 바로 시작점에 선 플레이어는 버튼을 눌러 칼을 휘두르고, 앞에 있는 몬스터를 죽이고, 방을 넘어간다. 얼마나 멀리 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최종 보스인 하데스를 만나기 전에 죽게 되고, 기가 죽은 채로 집에 돌아오는 자그레우스를 보게 된다. 반드시 경험할 수밖에 없는 첫 번째 죽음으로 이 게임에 대한 장르적, 방법적 이해를 모두 얻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듣게 되는 아버지의 잔소리를 통해 최대한 덜 죽어야겠다는 동기부여와 앞으로 진행될 이야기에 대한 힌트 그리고 그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선 탈출을 반복해야 한다는 서사적 이해까지 자연스럽게 획득한다. 그다음은 반복되는 플레이를 다채롭게 만드는 방법이다. 로그라이크의 장르적 특성을 따르기 때문에 최대한 지루하지 않게 게임적 요소를 배치하는 것이 흥행의 관건이었을 것이다. 로그라이크 게임은 한번 죽으면 쌓은 경험치가 모두 사라지기 때문에 호불호가 강하다. 그러나 〈하데스〉는 로그라이크의 조건 중 맵의 랜덤 생성만 유지하고 나머지는 유연하게 사용한다. 한번 죽더라도 획득한 경험치나 아이템이 전부 사라지지 않고, 획득한 어둠, 타탄의 피 등은 남아 있어서 무기를 업그레이드하거나 스킬을 강화할 수 있는 것이다. * 심지어 낚시로 얻은 물고기도 집으로 가져와 교환할 수 있다. 플레이가 익숙하지 않은 유저를 위해선 ‘신(God) 모드’라는 친절한 배려도 있다. 신 모드는 일종의 초보자 모드로 20%의 데미지 감소가 적용되고 죽을 때마다 2%씩 증가한다. 한번 죽을 때마다 캐릭터가 강해진다는 설정이다. 캐릭터 레벨이 없는 대신 죽음의 횟수로 플레이어의 실력을 보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게임 외적인 조건인 유저의 실력으로 인한 경험 차이를 만들지 않으면서, 반복되는 지루한 죽음으로 게임 플레이를 포기하지 않도록 만든다. 그 외에도 〈하데스〉에는 사용할 수 있는 6개의 무기와 무기마다 4개의 양상이 있다. 무기에 따라 플레이 경험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플레이의 흥미를 지속시킨다. 또 게임의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는 여러 형벌 규약 으로 게임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며 비교적 짧은 러닝 타임을 보완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반복 플레이를 다시 도전하게 만드는 유인책이다. 플레이어가 엔딩까지 보도록 하는 목표 의식을 어떻게 만드는가? 이 게임을 1회차 이상 플레이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이야기를 더 읽기 위해 책장을 더 넘기겠다는 것과 동일하다. 위에 서술한 게임적 요소도 반복 플레이를 지치지 않게 하지만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데스를 죽이고 지상으로 탈출해 페르세포네를 만나야 한다. 그리고 1번만 탈출해서는 전체의 이야기를 알 수 없고, 엔딩을 보기 위해선 최소 10번의 탈출이 요구된다. 또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올림포스의 신뿐만 아니라 메가이라, 카론, 타나토스, 아킬레우스, 시시포스, 에우리디케 등 여러 인물을 만나고 이들과의 이야기를 진전시키기 위해서 탈출을 반복할 필요를 자발적으로 느낀다. 반전된 죽음의 의미 이야기가 중요한 유인책이라는 것은 앞서 이 게임에서 “죽음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 맥락과 연결된다. 일반적으로 로그라이크에서 말하는 퍼머넌트 데스는 선택으로 인한 결과를 번복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를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매 순간 신중한 판단으로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 중요한 선택 직전 저장&불러오기를 통해 결과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다른 장르의 게임과 달리 로그라이크에서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마주해야 한다. 따라서 극도의 긴장감과 책임감이 이 장르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로그라이크에선 빠른 판단과 반사 신경이 요구되는 플레이보단 턴제 형식으로 적절한 행동을 하도록 장려하기도 한다. 한 번의 죽음으로 너무 많은 것을 잃어야 하는 플레이어가 스트레스로 게임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인 것이다. * 집으로 돌아온 페르세포네와의 대화 그러나 〈하데스〉에서 자그레우스는 반드시 죽는다. 플레이 중간에 만나는 보스에 의해 죽을 수도 있고, 아버지 하데스를 만나 처참히 죽을 수도 있다. 무사히 탈출했어도 스틱스강에 붙잡혀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래서 일반적인 로그라이크에서 경험하는 강한 긴장감은 느슨해진다. 지하의 신인 하데스에게 죽음이 그렇게 나쁜 것만이겠는가? 그래서 〈하데스〉에서 죽음의 의미는 모든 것을 잃는 실수가 아니라 필수적인 조건이다. 죽어야 집으로 돌아오고, 그래야 그 과정에서 만났던 인물과 관계를 전진시킬 수 있다. 페르세포네를 만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더라도 자그레우스에게 죽음은 출생의 비밀을 찾아가는 여정이고 또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과정, 헤어진 연인을 연결하고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는 시도이다. 그 모든 문제를 겪고 나서 마침내 죽음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오기 위한 의미로 바뀐다. 우리는 시시포스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 * 시시포스의 친구, 돌덩이 이것만으로도 〈하데스〉는 좋은 게임이다. 잘 만든 구조, 플레이의 재미, 기존 장르의 특성을 살짝 비트는 전개 방식 말이다. 그러나 충분하진 않다. 나는 〈하데스〉가 삶에 대한 철학적 문제를 ‘이야기’로 풀었고, 더 나아가 게임의 방식으로 전유했기 때문에 좋은 평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자그레우스는 어떤 행동을 해도 탈출할 수 없다. 모든 무기를 해금해도 하데스의 식당에 우수 직원으로 뽑히더라도 결국 ‘죽는다’. 아무리 애를 써도 죽는다는 것은 게임 밖, 플레이어의 운명이기도 하다. 그래서 알베르 카뮈는 생을 “힘들게 살 가치가 없다”고 삶의 부조리를 고백하기도 한다. 삶은 무의미한 작업의 반복이라는 부조리를 폭로한 것이다. “모든 인간의 소통은 죽음에 이르는 한 인생의 무의미함과 고독을 잊어버림으로써 인생을 살 만하게 만들려는 의도에서 일어난다.” 지금은 저명한 커뮤니케이션 학자로 불리는 한 철학자의 말이다. 생의 허무와 죽음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어렵기 때문에 인간(종)은 역경을 극복한 이야기를 사랑하여, 역사 동안 말과 글로 모자라 게임으로도 전하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카뮈는 삶을 시시포스의 형벌에 비유하지만, 다시 바위를 굴려 올릴 수 있음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인간을 상상한다. 〈하데스〉에선 허무의 극복을 게임적 방법으로 해결한다. 태어난 곳을 바꿀 수 없는 자그레우스가 어떻게 가족의 화합과 스스로의 사랑을 획득하는지가 〈하데스〉가 말하는 이야기의 주제이다. 또 탈출할 수 없도록 발목을 잡는 운명을 놀이와 유희로 전복하는 것이 〈하데스〉가 전하는 게임의 본질이다. 플레이어는 죽음을 반복하며 이를 체득한다. 철학자의 말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방식이 아닌, 나의 시간과 경험으로 온전히 습득하는 것이다. 삶과 같은 총체적 경험, 그렇기에 〈하데스〉는 ‘좋은 게임’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획자) 최선주 선주는 기술과 인간 사이의 관계와 그로 인한 사회적 현상에 주목하며 활동해왔다. 새로운 기술이 예술 개념을 어떻게 바꾸는지 관심을 두고 인공지능 창작물의 예술적 가능성에 대한 논문을 작성하였으며 미디어의 이면을 탐색하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는 코리아나미술관 *c-lab 큐레이터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아이돌로직 신드롬』(2021, 공저), 『특이점의 예술』(2019) 등이 있다.
- 古典名著邂逅现代科技: 《黑神话:悟空》与中国的3A游戏想象
但就在这“一切朝钱看”的时代与产业环境里,名不见经传的《黑神话:悟空》(흑신화:손오공,后文简称《黑神话》)却在2020年8月20日如电影《大话西游》(대화서유)里“身披金甲圣衣、驾着七彩祥云”的盖世英雄一般横空降世,不仅搅动整个中国游戏业,甚至点燃了社会舆论对中国游戏业的期待。人们在民族主义情绪的激荡下,憧憬着古典文学《西游记》与现代科技虚幻引擎(Unreal Engine)的“邂逅”能第一次铸就伟大的中国3A游戏。 < Back 古典名著邂逅现代科技: 《黑神话:悟空》与中国的3A游戏想象 10 GG Vol. 23. 2. 10. 이 글의 한글번역본은 다음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本文的韩文译本可在以下链接中看到: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pageNum=1&match=id:197 自2017年始,中国游戏业的实际销售收入就稳居全球第一。当然,这不意味着中国游戏业取得了成功——因为3A游戏才是评价一国游戏产业综合实力的唯一标准。然而刺痛国内玩家的是,中国一直未能开发出自己的3A游戏,甚至欠缺相关尝试。换言之,就中国游戏业的商业成长而言,“这是一个最好的时代”,但就文艺创造而言,“这是一个最坏的时代”。 但就在这“一切朝钱看”的时代与产业环境里,名不见经传的《黑神话:悟空》(흑신화:손오공,后文简称《黑神话》)却在2020年8月20日如电影《大话西游》(대화서유)里“身披金甲圣衣、驾着七彩祥云”的盖世英雄一般横空降世,不仅搅动整个中国游戏业,甚至点燃了社会舆论对中国游戏业的期待。人们在民族主义情绪的激荡下,憧憬着古典文学《西游记》与现代科技虚幻引擎(Unreal Engine)的“邂逅”能第一次铸就伟大的中国3A游戏。 目前,《黑神话》仍是一款制作中的游戏,预计于2024年夏天发售。互联网上一共出现了八部与游戏相关的视频,分别是2020年8月20日①“首爆演示视频”、2021年2月9日②“辛丑年贺岁视频”、2021年8月20日③“UE5实机测试集锦”、2022年1月2日④“游戏科学虎年贺岁小短片”、2022年8月20日⑤“6分钟实机剧情片段”、⑥“游戏插曲《戒网》”、⑧“《黑神话:悟空》全球独家 8分钟实机试玩”,以及2023年1月16日⑦“游戏科学兔年贺岁小短片”。①~⑦为游戏科学官方播出,可在游戏官网( https://www.heishenhua.com)上观看,⑧由合作方英伟达(NVIDIA)独家推出,可在网站哔哩哔哩(LINK)上欣赏。由于完整的游戏尚未问世,我们还无法对《黑神话》进行充分的游戏批评。但可以肯定的是,这款未完成的游戏所凝聚的不只是玩家对国产3A游戏的憧憬,更是他/她们对转变当下中国游戏业以资本增殖为唯一目的的粗暴的产业发展方式的美好愿望。 顾名思义,《黑神话:悟空》的故事底本是中国古代四大名著之一的《西游记》。一般认为,《西游记》最迟于高丽王朝末期传入韩国,它在表面上是讲唐僧、孙悟空、猪八戒、沙僧、白龙马历经九九八十一难去西天取经的故事,实则是以神魔小说的形式曲折地反映现实的社会矛盾。不过从已有的视频内容看来,该游戏不是简单地临摹《西游记》,而是借鉴了《续西游记》(章回体小说)、《大话西游》(电影)、《悟空传》(网络文学)、《斗战神》(MMORPG)等以《西游记》为蓝本的跨媒体作品的想象力,通过后现代的“戏仿”(parody)手法对原著加以解构(deconstruction),“以游戏特有的形式对原著的精神和内涵进行了呈现”。 在上述“原型”作品中尤其值得注意的是,《斗战神》这款腾讯从2010年开始运营的MMORPG。该游戏自立项开始就被定位为腾讯的“自我救赎”之作,但《斗战神》在取得“开门红”之后,却由于各方面的因素——当然核心原因仍是资本逻辑与游戏精神之间不可调和的矛盾——自第三章“白骨夫人”的主线剧情后便迅速衰落,成为21世纪中国游戏史里最大的憾事之一。《斗战神》的主策划正是如今《黑神话》的制作人冯骥(Yocar),而《黑神话》的不少制作成员也参与过《斗战神》的创作。冯骥等人在离开腾讯之后创立了游戏科学。游戏科学在推出《百将行》《战争艺术:赤潮》等手机游戏后,试图挑战3A游戏这一中国游戏业从未染指的高峰,于2020年8月打出“白骨之后,重走西游”这一旨在破镜重圆的理想主义旗帜,再次制作“西游世界观”的游戏——《黑神话》。毋庸置疑,《黑神话》不只是《斗战神》的精神续作,其中还蕴含了这一代中国游戏制作人对于游戏理想的坚持,以及对于充满“铜臭味”的21世纪中国游戏史的批判。当然更重要的是,它指向中国游戏史又一次自我超克的尝试。 不过,光有优秀的文化主题与赤诚的一腔热血显然不够,评价3A游戏的首要标准还是游戏技术。在2020年8月20日第一次播出实机演示画面后,制作人冯骥在新浪微博中坦陈:“13分钟的B1,到处是拼凑的痕迹。胡乱的数值,生硬的落地。小体型体操,大体型乏力。穿模的金蝉,无反馈的水体。粗糙的判定,声音还特么分离。十万天兵掉帧掉到PTSD。”显然当时的《黑神话》还面临着诸多亟待解决的技术难题。但从如今播出的《黑神话》画面可知,游戏科学似乎已在一定程度上解决了上述难题,甚至可以认为,该游戏在某些细节上的质量可媲美《只狼》《赛博朋克2077》等国际顶尖3A游戏。例如正如游戏科学所言,“西游世界观”里大量存在的是较少被全球游戏业处理的四足妖怪,而非简单的两足人型怪,如何才能更好地表现这类妖怪的行动特征,就成为必须处理的难题。《黑神话》因此专门针对这一难题开发了面向四足动物动作捕获的运动模拟系统“陆吾”(luwu)。 不过,中国游戏业亟须解决的还不是尖端却琐碎的技术问题,而是如何使一款游戏从“高精尖”的游戏商品变成富含人文思想的文艺作品,最终实现技术与人文的双重超越。从《黑神话》的制作与宣传中,我们似乎看到了这种双重超越的可能性,即《黑神话》正在酝酿属于中国游戏监督们的“作家性”。这里的“作家性”不是一个只牵扯游戏如何设计才好玩的平庸词汇,它指向游戏作品如何才能被升华为一种人文思想的载体,其中渗入了游戏监督对于社会历史状况的深刻思考。换言之,“作家性”是游戏文本与社会文本互动的结果,它可使玩家在游戏过程中“读出”游戏中隐含的时代语言。 从现有资料看来,《黑神话》的制作人冯骥对于“西游世界观”的驾驭已比较接近日本游戏监督对于游戏思想的阐释。游戏策划出身的他,同时也是游戏科学的创始人,这就使他可以心无旁骛地将自己对于“西游世界观”的理解注入《黑神话》,而无须过多顾及游戏设计之外的商业社会的现实压力。在这样的创作背景下,我们自然可从《黑神话》及其宣传文案中读出一种完全不同于之前任何西游题材游戏的彻底的理想主义色彩——游戏中的角色塑造、动作设计、剧情设置、动画展现、镜头切换、场景搭建,甚至官网文宣等,无不透露出《黑神话》不计成本的高品质与追求卓越的野心。 这样的理想主义,正是在游戏作品中孵化“作家性”的前提。对此,冯骥等人应是有清楚认识的。十三年前,冯骥曾写下如此豪言壮语:“伟大的游戏总是来自伟大的思想,伟大的思想通常来自伟大的游戏设计师”。不难揣测,《黑神话》之中应会注入游戏科学团队关于日常生活世界的总体思考与深度观察,最大可能地丰富“西游世界观”的当代内涵。不过该游戏里究竟会被注入什么样的“伟大的思想”呢?似乎目前公开的游戏视频尚不足以为我们提供确实的判断依据。我们仅能从一些蛛丝马迹中捕风捉影——或许《黑神话》延伸了《悟空传》《斗战神》对现实世界以及“西游世界观”的批判性反思。 这意味着,《黑神话》对于“西游世界观”的再诠释,可能同样不会局限于《西游记》故事本身,即“猴子自是当仁不让的主角,却远非故事的全部”,而是“用顶尖的画面,丰富的细节,沉浸的战斗体验,足量的剧情演绎”重新创造一个新的以东方神魔世界为表象的元叙事空间,歌颂“狡猾的妖精、凶残的鬼怪、多情的星君、怯懦的神仙”心底掩藏的爱恨情仇,“谱写东方的超级英雄史诗”。因此《黑神话》中“伟大的思想”可能不是如欧美漫威宇宙一般的英雄赞歌,而是细腻地刻画取经路上的每一位“平凡”角色,跟他/她们产生共情,理解他/她们的内心世界。用元叙事的故事手法将被神格化的神仙圣佛与被污名化的妖魔鬼怪重新人格化,使得玩家可以走近这些被英雄光环遮蔽的“小人物”身边,感受它们平凡却饱满的“人性”。 众所周知,《西游记》是一部影射现实社会的阴暗面的奇书。因此对于以之为蓝本的《黑神话》而言,或许最大的难题不是3A游戏技术本身,而是如何在中国第一款3A游戏中设置社会批评的议题,并找出解决社会问题的可能方案。《黑神话》究竟会是高端的“数码玩具”,还是社会批评的媒介?明年将会揭晓答案!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Professor) jian deng (邓剑) He is a post-doctoral researcher at the Graduate School of Journalism and Communication at Peking University. It deals with digital game culture research as its main interest, and continues to publish columns on games in 闻湃澎. (Game Researcher) Bora Na I'm a game researcher. I've been playing games for a long time, but I happened to take a game class at Yonsei University's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fter graduation, I sometimes do research or writing activities focusing on game history and culture. I participated in , , and so 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