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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 계산 가능성 그리고 민맥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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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4. 6. 10.

극한의 (비)효율충

 

테크 전문 월간지인 와이어드WIRED는 지난 3월 <The Deaths of Effective Altruism>[1](효과/효율적 이타주의의 종언)이라는 장문의 칼럼을 게재했다. 그리고 즉각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어째서 특정한 철학 사조를 비판하는 철학자의 글이 기술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잡지에 실리게 됐으며, 이토록 큰 관심을 유도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효과/효율적 이타주의(통칭 EA)가 처한 특수한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 EA는 실리콘 밸리의 유력한 엔지니어들과 테크 억만장자들(이 두 그룹은 종종 겹친다.) 사이에서 이미 실질적인 종교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픈 AI를 둘러싸고 벌어진 샘 알트만의 해임 해프닝과 고객들의 돈을 빼돌려서 세계 최대 규모의 암호 화폐 거래소 FTX를 파산으로 몰고 간 샘 뱅크먼-프리드의 케이스 등 최근 실리콘 밸리에서 벌어진 굵직한 스캔들들은 직, 간접적으로 이 ‘철학 사조’와 연루되어 있다. 즉, EA는 우리의 일상을 세심하게 지배하는 기술 기업들의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등대로서 작동한다.


* EA의 화신(?) 샘 뱅크먼-프리드의 재판 풍경

그러므로 법정에서 25년 징역형을 선고받은 샘 뱅크먼-프리드가 사실은 이 사상을 잘못 이해한 돌연변이 같은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EA 그 자체를 현현한 실체에 가깝다는 부분(“SBF is a natural.”)에 이르자, 여기저기서 분노에 가까운 반응들이 방어 기제처럼 터져 나왔다는 사실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정말로 놀라운 일은 수치를 앞세워서 이타주의의 효과를 객관적으로 증명해 내기라도 한 것처럼 의기양양하던 그 수많은 주장이 사실은 그저 빈약한 근거에 기반한 그럴듯한 추측(“precise guesses built on weak evidence”)에 불과했다는 진실이다. 특히 EA의 주창자들이 앞다투어 ‘예시’로 들기 좋아하는 저개발국들을 향한 원조와 관련해서 저자는 매우 신랄한 지적을 한다. 한 마디로 계산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특정한 액수의 돈이 몇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식의 계산은 (설령 복잡한 수식을 동반하더라도) 편의적으로 적은 수의 변수를 취사선택해서 급조한 허접한 모델링에 불과하다. 세계는 훨씬 더 복잡하며 미묘하다. 따라서 최대로 ‘정확한’ 계산을 지향한다면 우리는 지원 받은 구충제를 아이에게 먹여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부모의 마음까지도 변수에 포함할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2] 


그런데 이 이야기는 통렬한 비판만으로는 환원되지 않는 잔여를 남긴다. 이를테면 계산 가능성은 효율성이 성립 가능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라는 명제가 그러하다. 많은 이들이 일상에서 효율이라는 말을 밥 먹듯이 사용하지만, 계산할 수 없어지는 순간 그 단어가 가지는 명징함과 위력은 연기처럼 사라진다. 효과/효율적 이타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계산을 통해서 ‘효율성’을 증명해 내는 것에 실패함으로써 그것은 사실 별로 이타적이지도 않다는 회의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EA의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다층적인 세계의 복잡도는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마치 1:1의 축척을 가진 지도처럼 현실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모델을 만들어 내는 일은 (적어도 현재 인류의 기술 수준으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최고로 정교한 모델이 산출해 낸 시뮬레이션 결과를 제시한다고 해도, 우리는 겨우 근사치만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즉, 엄밀히 말해서 틀린 계산인 셈이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기상 예보일 것이다. 날씨를 예측하는 행위는 고대부터 인류의 삶과 분리될 수 없는 (특히 농경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의례로 여겨왔지만, 대기의 물리법칙에 의거해서 수치적인 계산을 시작한 것은 19세기 이후의 일이다. 영국의 수학자이자 기상학자인 루이스(Lewis Fry Richardson)는 지금까지도 전 세계 기상 예보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수치 예보(numerical weather prediction, NWP) 시스템을 1922년에 고안해 냈다. 그런데 이 시스템이 실제로 작동하는 모델로 기능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28년 뒤인 1950년에 이르러서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수많은 연산량을 당시의 기술로는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3] 존 폰 노이만에 의한 수치 예보의 재발견과 세계 최초의 범용 디지털 컴퓨터인 애니악ENIAC이 없었다면, 그 시기는 훨씬 더 늦춰졌을지도 모른다.


흥미롭게도 계산의 ‘불완전’함은 강력한 컴퓨터들과 더 발전된 모델, 그리고 수많은 인공 위성의 도움을 받는 현재에도 계속되는 상황이다. MIT의 대기과학 교수인 케리(Kerry Emanuel)는 기상 예보는 과거와 비교해서 (기후 변화로 인한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놀랄 만큼 정교해졌지만, 극도로 무질서한 대기 현상은 같은 조건으로 출발한 두 개의 시뮬레이션이 전혀 다른 지점으로 나아가는 붕괴 현상을 촉발하기 때문에 여전히 2주 이상의 예측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4] 

  

 

끝없는 계산 이야기

  

삶에 필수적인 일기 예보조차 이처럼 불완전한 계산에 기반해 있다는 사실은 효율적이라는 단어에 더 무거운 짐을 지운다. 심지어 우리들 대부분은 계산조차 하지 않고 휴리스틱에 의거해서 무엇이 더 효율적이라는 식의 판단을 곧잘 한다는 것을 돌이켜 본다면, 효율적이라는 말은 사실상 비유적인 표현에 가까워 보인다. 비디오 게임은 이러한 맥락과 겹쳐서 보면 상당히 묘한 위치를 점유한다. 왜냐하면 게임은 시작부터 계산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특정한 하드웨어의 연산력에 의해서 제한될 수밖에 없는 소프트웨어적인 특성이기도 하지만, 또한 게임이 플레이어가 미적인 경험을 하도록 디자인된 매체라는 지점과도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어, 모종의 이유로[5] 어떠한 스펙의 하드웨어를 동원하든 간에 프레임이 15를 넘지 못하는 게임이 출시되었다고 가정을 해보자. 이는 순수하게 컴퓨터 공학적인 관점으로 보면 (최적화가 더 필요하지만) 작동하는 소프트웨어가 맞다. 하지만 설령 버그가 없더라도 이것은 작동하는 게임이 아니다. 왜냐하면 15프레임도 도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제작자가 의도한 미적 경험을 ‘플레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프레임뿐만 아니라 디스플레이의 해상도, 게임 캐릭터들과 월드의 폴리곤 갯수, 인터페이스를 통한 인풋 레이턴시까지, 이 모든 것들은 게임의 미적 경험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들인 동시에 계산과 직결된다.


* 이처럼 아름다운 프레임 하나하나가 많은 계산을 필요로 한다.

이와 같이 컴퓨터 프로그램과 미적인 미디어로서의 두 측면이 분리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확장성을 고려한 ‘불완전한’ 계산이 필수적이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데 있어서 최적의 해상도는 무엇일까? 답은 모른다. 이다. 그 게임이 어떤 게임인가(폴리곤을 무지막지하게 때려 넣은 오픈 월드 게임 vs 도트 그래픽의 2D 플랫포머 게임), 구동하는 하드웨어가 무엇인가(고성능 데스크탑에 연결된 32인치 4K 모니터 vs 스팀덱) 혹은 심지어 플레이어가 누구인지에 따라 선호하는 해상도는 달라진다. 그러므로 (특히 초기) 게임 개발의 역사는 매우 제한적인 컴퓨팅 리소스 내에서 최대한의 확장성을 확보하기 위한 창의적인 ‘계산법’들로 가득하다. <둠>의 프로그래머 존 카멕이 3D 환경을 에러 없이 빠르게 렌더링하기 위해서 이진 공간 분할법(Binary Space Partioning, BSP)[6]을 도입한 일이나 <롤러코스터 타이쿤>의 개발자 크리스 소이어가 복잡한 시뮬레이션 환경을 제대로 구현해 내기 위해서 시스템 리소스를 더 직접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로우 레벨 언어인 어셈블리어로 게임 전체를 개발했다는 일화는 이제는 그저 전설처럼 떠도는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당시로서는 대부분의 하드웨어에서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 내야만 하는 절박함에 더 가까웠다.[7] 아이러니하게도 최대한의 ‘효율’은 이처럼 불완전한 계산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둠>이 출시된 93년 이후로 컴퓨팅 하드웨어의 연산력은 비약적으로 증가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게임들 역시 방대하고 복잡해졌다. 고해상도의 텍스쳐나 풀 더빙된 사운드 등 게임에 사용되는 에셋들부터 고전 게임들과는 결을 달리한다. 그뿐 아니라 상당히 정교한 물리적인 상호 작용을 선보이는 물리 엔진들과 이름 그대로 3D 공간 내의 오브젝트들의 표면에서 반사되는 빛의 선ray들을 일일이 추적해서 ‘리얼’한 풍경을 구축하는 레이 트레이싱 또한 매우 고도의 연산력을 요구한다. 이외에도 다양한 분기를 품고 있는 수많은 NPC와의 상호 작용 처리, 게임 엔진의 최적화 문제[8], 라이브 서비스 게임들의 네트워크 최적화 등에 이르면 그림이 좀 더 명확해진다. 딜레마는 여전한 것이다. 많은 것이 변해 왔고 또 앞으로도 많이 변할 테지만, 계산의 불완전함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하드웨어의 연산력이 세계의 다층적인 복잡성 전체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레벨에 도달하지 않는 한, 양자 컴퓨터의 상용화가 도래하더라도 여전히 개발자들은 첨단 가상 현실 게임을 최적화하느라 골머리를 썩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아마도 또 다른 창의적인 ‘계산법’들을 고안해 내야 할 것이다.

 

 

 제대로 노는 법

 

 미적인 경험의 전달을 목적으로 프로그램을 직조하는 개발자들의 맞은편에는 그 프로그램을 자신의 하드웨어에 맞춰서 조정하고 실행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그 경험을 수용하는 수많은 플레이어가 있다. 당연하지만 플레이어도 언제나 계산한다. 다만 무엇을 계산하냐고 묻는다면 답은 플레이어의 숫자만큼 천차만별일 것이다. 누군가는 최적의 루트나 최적의 공격 타이밍 같은 것들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로어 프렌들리lore friendly[9]에 집착하며 출시한 게임 속에 이미 존재하는 버그-꼼수마저 제거하는 모드를 제작하는 방식으로 나름의 ‘최적화’를 위해 애쓸 수도 있다.[10] 이토록 넓은 스펙트럼의 ‘효율’은 무엇보다도 게임을 플레이하는 행위가 대부분의 경우 생산성의 향상과는 무관하다는 지점을 환기한다. 즉, 거기에는 순이익을 지속적으로 늘리며 주가를 부양할 거라고 믿어지는 어떤 특정한 효율성을 향한 압박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폭넓은 스펙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게이머는 한 가지 뚜렷한 경향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바로 그 존재하지 않는 생산성을 향한 집착이다. 뒤집힌 게이미피케이션과도 같은 워키피케이션Workification은 퍼포먼스에 중점을 두고 놀이를 마치 일처럼 하는 경향으로 여러 국가들에서 중산층이 향유하는 (게임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여가 활동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노가다를 유도하는 게임적 디자인과 플레이어들 사이의 동조 압력으로 인해서 이러한 경향이 매우 쉽게 발현되는 MMORPG나[11] 세세한 랭킹의 구분으로 경쟁 심리를 유발하는 여타 PvP 온라인 게임들의 경우가 아마도 워키피케이션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사례일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명백한 촉매가 없이도 어떤 플레이어들은 여전히 퍼포먼스의 개선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워키피케이션은 ‘적절한’ 예시에 머물지 않는다.


싱글 플레이 RPG게임을 즐겨 하는 유저들 사이에서 종종 회자되곤 하는 민맥싱min-maxing[12]은 이 지점을 넘어가는 가장 흥미로운 케이스 중 하나다. 민맥싱은 주로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와 같은 CRPG 장르에서 자주 논의가 되는데, 그 이유는 캐릭터들의 모든 능력치가 대부분 간단한 숫자로 표현될 뿐만 아니라 주사위의 확률과 연동됨으로써 세계와의 거의 모든 상호작용이 실제로 계산 가능한 수식으로 탈바꿈하기 때문이다.[13] <사이버펑크 2077> 역시 다양한 분기들을 자랑하지만, V의 스탯이나 출신에 의해서 영향받는 몇몇 대화 옵션들과 스탯의 숫자에 따라 해금되는 루트들을 제외하면 많은 경우 중요한 내러티브적 분기들은 플레이어의 성향과 그날의 기분에 따라 선택된다. 반면 CRPG 게임에서는 예를 들어 카리스마가 15 이상인 캐릭터가 내 파티에 없으면 특정한 분기로 아예 진입할 수 없다거나 혹은 그 이상임에도 주사위 굴림에 실패해서 결국 같은 결과로 이어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특정한 캐릭터의 스탯을 어느 시점에서 어느 정도를 올려야 한다는 식의 매우 디테일한 민맥싱 가이드들이 범람한다.


* 최초의 RPG 게임 중 하나였던 <아칼라베스: 파멸의 세계>에도 어김없이 민맥싱을 적용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민맥싱이 기본적으로 2회차 이상의 플레이를 전제로 한 메타플레이를 상정한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웹소설과 웹툰에 자주 등장하는 회귀물 속 주인공처럼 우리의 캐릭터는 이미 끝을 봤기 때문에 정확히 어느 시점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가장 효율적인지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유비는 인터넷이 없다고 가정했을 때만 유효하다. 앞서 말했듯이 민맥싱을 위한 가이드가 온갖 채널에서 넘쳐나는 상황에서 플레이어들은 자연스럽게 1회차부터 민맥싱을 적용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메타플레이‘였던 것’은 이제 예측을 통한 선점의 작동으로 귀결된다. 마크 안드레예비치는 “접근 가능한 모든 콘텐츠를 완전히 숙달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완벽히 알고자 하는 시도는 그것을 경험하는 행위를 선점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선점이란 경험의 정반대다.”[14]라고 지적하며, “선점은 미래가 현재로 붕괴하는 것”[15]이라고 못 박는다. 이렇게 본다면 민맥싱의 적용은 게임 플레이 경험에 직접적으로 상충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여러 게임 서브 레딧 게시판에는 민맥싱에 대한 집착으로 게임을 하는 것에 ‘현타’가 왔다고 토로하는 글들이 시차를 두고 종종 출몰하곤 한다.

  

 

잡힐 것 같은

  

최대한의 효율을 목적으로 하는 엔지니어링적인 강박이 일상을 침식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무색하게도, 근본적으로 불완전한 계산과 인간의 유한한 신체에 기반한 경험의 불가피성은 명확해 보이는 ‘효율성’의 청사진을 끊임없이 흐릿하게 만든다. 우리는 여전히 아주 많은 것들을 계산할 수 없을뿐더러 모든 것을 미리 계산하려고 할수록 역설적으로 더 많은 것들이 그 의미와 가치를 상실한다. 앞서 살펴봤듯이 계산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소프트웨어로서 비디오 게임 역시 이와 같은 역설을 품는다. 따라서 효율은 실제로 적용되기보다는 임원진들의 이데올로기적 수사로 점철된 이상향으로 포장되거나 게임 내의 내러티브적인 장치로서 반영된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 플레이어의 존재 자체가 게임의 효율성에 매우 큰 변수로 작용한다.[16] 그러므로 어떤 게임 회사가 플레이어들의 효율적인 아이템 거래를 위해서 NFT를 도입한다고 선언하거나 혹은 실제로는 매우 복잡하고 까다로워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 같은 작업이 클릭 한 번으로 인게임에서 (내러티브적으로) 실현될 때,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의 지지부진함과 난잡함은 더욱더 명백해진다. 그렇게 효율성은 다시 한번 멀어진다.





[1] Leif Wenar, “The Deaths of Effective Altruism” Wired 2024.03.27. https://www.wired.com/story/deaths-of-effective-altruism/ 

[2] 너무나 당연한 지원처럼 느껴져서 고민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면 앞서 언급한 칼럼을 참고하자.

[3] 루이스는 고작 6시간 후의 날씨를 ‘예측’하기 위해서 무려 6주간 (기계식 계산기를 활용한) 계산에 몰두했다. 그런데도 결과값은 실제 날씨와 일치하지 않았다. Roland Stull, Practical Meteorology: An Algebra-based Survey of Atmospheric Science (Vancouver, Canada: Univ. of British Columbia, 2017), 759.

[4] Andrew Moseman, “Will climate change make weather forecasting less accurate?” Climate Portal 2023.01.30. https://climate.mit.edu/ask-mit/will-climate-change-make-weather-forecasting-less-accurat

[5] 개발자가 갑자기 정신이 나가서 CPU 코어 하나만을 활용하도록 프로그래밍하는 바람에 매우 심대한 CPU 병목 현상을 유도했을지도 모른다.

[6]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C%A7%84_%EA%B3%B5%EA%B0%84_%EB%B6%84%ED%95%A0%EB%B2%95

[7] 그러한 절박함이 통했는지(?) 현재에 이르러 <둠>은 프로그래밍 가능한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일단 실행해 보는 독보적인 게임이 되었다.아이템의 인벤토리, “반드시 지켜라! 인터넷의 국룰 :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면 둠을..게임에선 CJ모드를.. Youtube 2024.05.15. https://www.youtube.com/watch?v=YhIrXX-MC6E

[8] 언리얼이나 고도 혹은 유니티와 같은 준 범용 엔진들에서 주로 문제가 되긴 하지만, 모회사인 EA의 프로스트 바이트 엔진을 울며 겨자 먹기로 유지하다가 <앤썸>이라는 희대의 망작을 출시한 바이오웨어의 경우를 돌아봐도 이 이슈가 특정한 경우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9] 온갖 마개조(?)가 횡행하는 모딩modding씬 내에서도 특정한 게임 세계의 정합성과 핍진성을 유지하는 선에서 변화를 가함으로써 플레이어들의 몰입을 깨뜨리지 않으려는 흐름이 존재한다.

[10] <엘더스크롤 5: 스카이림>의 Unofficial Skyrim Patch 모드가 대표적이다.

[11] Bree Royce, “Working As Intended: The gamification of the workification of games” Massively Overpowered 2018.11.01 https://massivelyop.com/2018/11/01/working-as-intended-the-gamification-of-the-workification-of-games/

[12] 주로 RPG게임에서 특정한 능력에 캐릭터의 스탯을 ‘몰빵’하고 나머지 필요 없는 능력은 버림으로써 인위적으로 효율적인 빌드를 구축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13] 이는 CRPG가 기반을 두고 있는 TRPG의 관습을 따른 것이다.

[14] 마크 안드레예비치,『미디어 알고리즘의 욕망』, 이희은 역, 컬처룩, 2021, 94.

[15] 같은 책, 166.

[16] 가장 ‘효율적’인 게임은 인간 플레이어가 완전히 배제된 게임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국내의 모바일 가챠 게임들의 자동 사냥과 아타리의 <퐁>에서 시작해서 바둑과 <스타크래프트 2>를 거쳐서 이제는 여러 게임에서 적용 가능한 AI 에이전트 레벨까지 올라선 구글 딥마인드의 AI는 뜻밖의 접점(?)을 공유한다.

Tags:

민맥싱, 최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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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잡다한 일을 하는 프리랜서입니다. 역시 잡다한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게임에는 특히 관심이 더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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