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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 전쟁, 격리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 검투사 몇이 경기장에 있다. 다른 검투사 하나가 무기를 들고 입장한다. 새로 입장한 검투사는 적절하고 신속한 동작으로 상대 검투사들을 하나씩 도륙낸다. 이따금 불필요하지만 화려한 동작도 섞어준다. 관중들이 환호한다. 만신창이가 된 마지막 상대는 이미 전투 능력을 잃고 선 채로 죽어가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승자는 화려한 기술로 그를 두 동강 내버린다. 홀로 남은 승자가 된 검투사는 신이 나 있는 관중들에게 분노를 담아 외친다. “Are you not entertained?” < Back 게임, 전쟁, 격리 25 GG Vol. 25. 8. 10. 장면 하나.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 검투사 몇이 경기장에 있다. 다른 검투사 하나가 무기를 들고 입장한다. 새로 입장한 검투사는 적절하고 신속한 동작으로 상대 검투사들을 하나씩 도륙낸다. 이따금 불필요하지만 화려한 동작도 섞어준다. 관중들이 환호한다. 만신창이가 된 마지막 상대는 이미 전투 능력을 잃고 선 채로 죽어가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승자는 화려한 기술로 그를 두 동강 내버린다. 홀로 남은 승자가 된 검투사는 신이 나 있는 관중들에게 분노를 담아 외친다. “Are you not entertained?” 2000년의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한 장면이다. 장면 둘. 한 남자가 공항 출국 게이트에 있다. 게임 쇼에 참가해 우승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참여를 했다. 게임 종목은 어린이들의 골목 놀이였지만 패배의 대가는 죽음이었기에 남자는 다른 참가자들이 모두 죽는 지옥을 경험했다. 홀로 남아 우승한 남자는 거금을 갖고 미국에 있는 가족에게 갈 참이다. 하지만 게임의 주최측과 연결된 마지막 통화를 끊자 그는 뒤돌아 걸어간다. 그는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말이 아니야. 인간이야.” 2021년의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이다. 두 장면의 두 인물은 목숨을 건 게임을 했고 승자가 되어 살아남았다. 그들이 경험한 것은 전쟁과 흡사하다. 이들이 일종의 선수로서 게임을 수행했듯, 전쟁은 군인이 선수로서 싸운다. 싸움 바깥에서 싸움을 지켜보는 관중이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다만 전쟁의 승패는 그 관중들에게도 영향을 미치지만, 이들의 게임은 관중에게 영향이 없다. 그래서 전쟁은 일종의 사업으로서 해석되지만, 이들의 게임은 관중에게 유희다. 전쟁과 유희의 관계에 대해 고찰하다 보면, 어떤 네덜란드 사람을 만나게 된다. 호이징가 혹은 하위징어로 불리는 이 네덜란드 학자는 자신의 저서 ‘호모 루덴스’에서 문명의 근간은 놀이성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분석한 놀이성, 놀이의 특징 중 하나는 규칙으로 시공간을 제한하는 것이다. 저녁 먹을 때까지, 여기 이 놀이터 내에서, 얼음땡 규칙으로 게임을 한다는 식이다. 그 시공간을 벗어나면 놀이가 끝나고 놀이의 규칙은 아무런 권위를 갖지 못한다. 이 특징이 확대되어 제의, 법률, 행정 등 문명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 모두가 놀이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이 네덜란드 아저씨의 고찰이었다. 경쟁과 협동은 놀이의 두 축이 되는 원리이고, 이는 자연에 대해, 인간 서로에 대해 투쟁하는 생존 추구의 상태를 극복하는 방법이었다. 이를 제한적인 규칙 속으로 집어넣자 놀이가 되었다. 일상과는 다른 어떤 시공간을 가정하고 거기에서만 통하는 규칙을 만든다는 점은, 인간이 일상의 생존이 아닌 다른 가치를 추구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놀이성은 생존 너머의 문명을 만드는 근간이 되는 원리다. 현대인으로서 완전히 동의하기 어려워지는 대목은, 그래서 자본에 포섭되어 시장화한 스포츠는 삶에서 멀어졌기 때문에 놀이가 아니게 되었다는 해석이다. 놀이는 직접 수행하는 방법 외에도 타인의 놀이를 구경하는 방법이 있다. 콜로세움, 오징어 게임, 스포츠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는 생사를 거는지 아닌지를 제외하면 타인에게 게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자본으로 해석되었다 하여, 관중이 즐기게 되는 ‘보는 게임’으로서 놀이의 본질이 사라졌는지는 더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 콜로세움에서 스타디움까지. 검투사에서 프로 선수까지. 관중을 대신해 게임을 하며 보는 게임을 제공하는 경우는, 싸움-전투-전쟁을 모사하긴 하지만 한 가지 한계가 있다. 소규모 전투의 모사라는 점이다. 격투기가 아니어도 양편이 나뉘어 싸우는 구기 종목이 그 경우다. 축구는 기병과 보병 전술과 유사하다. 농구는 흔히 기병과 궁병 전술에 비유된다. 핸드볼의 전술은 투창 전투와 많이 닮았다. 그렇다면 야구는 포병과 유사할까? 피겨 스케이팅과 같은 점수 경쟁 스포츠는? 하카처럼 전투 전의 의식을 겨루는 모습와 유사하다고 갖다댈 수 있겠다. 유희(遊戲)의 희(戱)는 중국 고대의 전장에서 전투 전에 위세를 겨루기 위해 호랑이 머리를 장식한 기물(䖒)을 창(戈)으로 치는 행위에서 만들어진 글자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여전히 ‘태극 전사’니 ‘상암 대첩’이라는 식으로 전쟁의 용어를 스포츠에 갖다 쓴다. 팀 단위의 경쟁 스포츠는 전쟁에 대한 욕구를 대리 해소하는 용도 또한 갖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적용되는 전쟁의 국면은 전략이 아닌 전술이다. 소규모 전투가 아닌 대규모 전쟁을 경기장 안에서 구현해 전략을 게임화하려면 상당히 많은 권력-자본이 필요해진다. 압도적으로 많은 선수가 필요할 테니까. 혹은 ‘이 말 하나가 사람 천 명이다’라는 식으로 추상화되어 전술과 전투의 재미가 사라진다. 전략을 보는 지적 재미는 추가되지만, 이래선 흥행이 맞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무리 왕이고 부족장이라도 이런 이벤트를 만들었다간 재미없음 이유로 권좌에서 내쫓길 수 있다. 그래서 대규모 전쟁은 추상화되어 보드 위에 자리잡았다. 바둑, 체스, 장기와 같은 게임은 기물을 선수로 대체한다. 그래서 검투사의 유혈을 보고 공감 능력이 발휘되어 몰입이 깨져버리는, 콜로세움 입장료가 아까운 경우도 없다. 현실에선 불가능한 조감도 시야도 제공한다. 게다가 ‘보는 게임’에 특화된 가까운 경기장과 달리 보드는 ‘하는 게임’이 우선이다. 기술과 장르를 옮겨서 디지털 게임으로 오면, 앞서 있었던 많은 제약이 해제된다. 디지털 게임은 보드 게임의 추상성과 경기장 게임의 구체성을 모두 추구할 수가 있다. 프로세서의 연산 기능을 늘리기만 한다면 소규모 전투와 대규모 전쟁을 각각 혹은 한꺼번에 모사해낼 수 있다. 그렇게 전쟁은 게임이 가장 자주 다루는 소재가 된다. 병사 하나가 되어 전장을 누비는 개인 액션부터 10만 단위의 부대가 점 몇 개로 표시되는 전략까지 가능하다. 모두 바둑, 체스, 장기의 후예들이다. 여러모로 전쟁과 게임은 닮았다. 전쟁의 추동력은 전쟁을 수행하는 두 집단의 목표가 충돌하는 상황이니, 결국 경쟁이 핵심이다. 이기기 위해 군대는 계급에 따른 수직적 분업과 보직에 따른 수평적 분업을 수행한다. 분업이 수직-수평으로 직조하는, 협동의 체계가 군대 체계의 핵심이다. 전쟁을 요약하면, 협동하여 적과의 유혈 경쟁을 이기는 것이다. 유혈 부분을 빼면 게임과 동일하다. 게임에서는 1인 플레이의 경우에는 협동이 빠지기도 하고, 역으로 협동이 크게 강조되어 경쟁 요소가 옅어지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전쟁의 저 두 핵심을 그대로 매체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결국 차이점은 유혈의 유무다. 싸움-전투-전쟁은 생명을 잃게 한다. 잘 기능하는 사회 구성원 하나를 키우는 데에 사회가 들이는 비용은 시간만 보아도 20여 년 이상이다. 게다가 인간의 공감 능력은 피 색깔만 비슷해도 그 죽음을 안타까워 할 수 있는데, 종까지 같은 인간의 죽음이기도 하다. 아무리 증오스러운 적이라 하더라도 죽음을 보고 직접 죽이는 것은 인간의 정신에 좋지 않다. 그러면서 아무 가치도 생산하지 않고 가치를 사용하기만 하니 문명 전체의 손해이기도 하다. 한편 전쟁은 전쟁을 수행하는 사회의 경제, 기술, 행정, 정치의 과실이 그대로 반영된다. 그 찬란한 과실을 갖고 하는 것이 조직적 살인이라는 점에서 철학적인 자괴감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서 전쟁은 추악하고 또 아름답다. 문명의 정수와 실력이 발휘되는 시공간이기 때문이다. 추악함을 최대한 제거하고 아름다움을 가능한 부각시키려면, 죽음을 무시할 수 있으면 된다. 콜로세움에서 죽는 검투사에게서 공감을 거두면 그 게임은 재미있다. 하지만 전쟁에서 죽음을 제거하기란 어렵고 모두가 공감 스위치를 끄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대의 전쟁은 그래서, 호이징거 혹은 하위징어의 해석을 따르자면, 놀이성이 강화되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전쟁에 규칙을 두는 것이다. 선전포고를 해야 정식 전쟁이고, 민간 피해는 최소화해야 하고, 전쟁 중의 약탈과 민간인 학살 같은 것을 ‘전쟁 범죄’로 규정하고, 포로를 정식 신분으로 만드는 등등, 전쟁에 놀이성이라는 족쇄를 채우려고 애를 쓰고 있다. 생사를 건 전투가 오직 전시에만 일어나게 하는 시도다. 새로운 시도는 아니다. 놀이성의 특징인 시공간 제한에 의해 게임 안과 밖은 엄격히 구분된다. 콜로세움의 선수, 전장의 병사가 대신 생명의 위협을 받는 대신 제한된 시공간 바깥의 관중은 면제된다. 이미 검투사들을 관중 대신 데스 게임에 밀어넣으면서 인간 문명은 싸움에 놀이성을 부여해봤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약간 불편한 가설도 도출할 수 있다. 전쟁 게임이란 안전해진 사람들의 안도감을 흥분으로 바꾸는 것이 본질일 수도 있다. 게임 안에서 벌어지는 액션의 쾌감, 전술의 합, 전략의 수려함은 결국 게임 밖의 나에게는 해를 가하지 않으므로. 저 사람들이 내 재미를 위해 죽어도, 나는 잠깐 마음이 불편하고 나머지 시간은 즐거우니까. 그래서 보훈은 국가의 중요한 사업 중 하나가 된다. 타인 대신 전장에서 목숨을 걸겠다고 나선 직업인들에 대한 예우다. 그럼 인간은 왜 전쟁을 게임에서 재현하고 있을까? 구성원 대다수가 전쟁에서 벗어나 안전한 문명 영역에 도달했으면서, 자꾸 그 특수한 지옥을 가져와 가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은 이렇게 뒤집어 볼 수도 있다. 인간은 전쟁을 게임 안으로 가두려 하는 걸까? 인류 문명이 전쟁을 국제 사회 질서의 한 부분으로 가두어가는 한편, 인간은 게임 규칙 속으로 전쟁을 가져오면서 콜로세움을 졸업했다. 현재의 스포츠에서 경기 도중 죽는 선수는 격투기 종목에서조차 극단적으로 적다. 오징어 게임은 어디까지나 은유이지 실제 현실에서 유사한 경기가 열리는 일은 없다. 이제 과거의 검투사 대신 뛰는 현재의 스포츠 선수는 전쟁과 유사한 활동을 할 뿐이다. 따라서 ‘대신 놀아주기’는 전쟁을 가두는 행위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앞선 질문에 대한 답은 만들기가 어렵다. 인간이 전쟁을 게임 안에 가두는 중이라면, 오히려 전쟁을 잊거나 제거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고 재현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저 질문을 다르게 바꿔보면, 전쟁은 정말 그렇게 매력적인가? 인간의 내면에는 사실 전쟁의 유혈과 광기를 동경하는 부분이 있는 걸까? 그러고 보면 인간은 모순을 사랑한다. 전쟁은 찬란한 동시에 추악하다. 어쩌면 인간은 전쟁, 전투, 싸움, 죽음을 끊을 수 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혹은 끊기 위해 게임 속에서 전쟁, 전투, 싸움, 죽음을 죽이는 중이라고 서술할 수도 있다. 혹은, 삶에서 아주 특정한 때에만 있는 이벤트라면 질병이라고 치환해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군인은 전쟁 속에서 전쟁을 해소하려 하는 의사로 비유할 수도 있고, 전쟁을 다루는 게임은 예방용 백신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개인의 인생관과 세계관에 따라 답은 달라질 수 있으니 답은 아직 없다. 다만 우리 인류가 전쟁이라는 특정 시공간 상황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기를 소망한다. Tags: 재현, 전쟁, 워게임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 Three Trends in Western AAA Games Research: Creators, Culture, and Cash.
The AAA space continues to be one where art, industry, and culture coalesce. What games research attunes us to most is that each of these elements, while moving forward, seems to be stuck in stasis where the problems of the past remain unresolved. In the pleasure of the next big release, the anticipation of the next hype cycle, and the excitement of the next awards ceremony, it’s clear that AAA development is no-doubt heading full-bore into a future of even greater artistic heights, but these heights come with even more troubling extremes. Despite interventions on the part of games journalists and academics, and mobilization attempts from game workers, long-standing and pervasive issues with the legitimacy of games, and the exploitation of workers and players alike, persist. Academic work on the AAA space shines a spotlight on the issues that continue to go unresolved while major gaming studios propel forward in the perpetual quest for artistic recognition, prestige, and the almighty dollar. < Back Three Trends in Western AAA Games Research: Creators, Culture, and Cash. 10 GG Vol. 23. 2. 10. On December 8th, 2022, the 9th iteration of The Game Awards, a Hollywood-style awards show “celebrating the best in games,” streamed live to 103 million viewers. 1) Not unlike the Oscars, The Game Awards is an amalgamation of industry recognition for games large and small, a validation of the artistic or technical merits of games, and an indicator of the cultural spaces games are being marketed towards. While The Game Awards does recognize smaller games, it is largely part of the cultural apparatus of AAA marketing and recognition for the most recent blockbuster games. Indeed, the Game Awards have been a hype and marketing machine, where numerous awards are given out rapid-fire style without ceremony or acceptance speeches to make room for trailers, first-looks, and gameplay premieres, some of which include elaborate musical presentations, or lead-ins from super-star creators like Hideo Kojima, famous for the Metal Gear franchise (Konami), and more recently Death Stranding (Kojima Productions, 2019). The largest AAA titles such as last year’s God of War: Ragnarok (Sony, 2022) and Game of the Year Winner Elden Ring (FromSoftware, 2022) get the lion’s share of the screen time, and while smaller games are not forgotten, it is mainly a night to celebrate and market big budget and mainstream games. Not inconsequentially, the night ended with a now-infamous young man crashing Hidetaka Miyazaki’s acceptance speech - another reminder that no matter how much we dress up mainstream games culture there is a level of meme-driven social deviance bubbling beneath the artifice. This confluence of socio-economic forces as seen through the pageantry of The Game Awards is emblematic of three linked trends within Western research on the AAA game space: First is the creative domain and the artistic merits of big budget games. Second is the cultural domain, which is concerned with both the studio spaces and work environments that produce and ship these large-scale projects, which tie into the cultures of play that grow out of communities of players. Third is the monetary element through the marketing and monetization of games as premium entertainment experiences. This article is a brief introduction to a small portion of the discourse around these trends in the context of AAA games. To begin with the creative and artistic merits of games, it’s important to understand that a great deal of media and scholarly attention on games into the late 1990s and early 2000s focused on the harms and benefits of games on society, with the largest emphasis on the impact of violent gaming content on children and youth. 2) While many players and some scholars of this time implicitly understood games as having artistic value, there was a prevalent current of thought that saw games as a lesser media form. As Felan Parker notes, the discussion around games and their artistic merit came about in the wake of American film critic Roger Ebert’s notorious, and still oft-quoted comments, “that games can never be art,” between 2005 and 2010. 3) More attention within journalism and academic spaces was reserved for this debate in the wake of these comments, and one strategy to uplift games from this ‘non-art’ assumption was to elevate game designers as auteur figures, not unlike world-famous Hollywood directors who are able to leave a distinct artistic flourish on their games. 4) This trend is still visible through the elevation of key directors at The Game Awards just a few months ago. AAA games, due to their high visibility and large budgets for production and marketing, maintain a status as flagship games for new consoles. They are also more likely to be games that push the technological limits of design, and so dominated the discussion of artistic games until the indie boom of the early 2010s. Brendan Keogh notes that AAA game studios operate under large publishers most interested in making profits, and so many games designed within a AAA framework have traditionally been conventional or risk-averse. 5) Yet, the legend of the videogame auteur continues, and games like Kojima’s Death Stranding (Kojima Productions, 2019) can make unconventional choices regarding gameplay and aesthetic, while ‘indie’ games make up a much smaller portion of games discourse than they did through the 2010s. In part, AAA has both been influenced by and co-opted elements of ‘Indie’ design and aesthetic. 6) There are certainly familiar AAA games that do not defy convention with any regularity, such as annual sports releases or FPS franchises like Call of Duty (Activision). Awards season, and to a larger extent games journalism, has adapted to celebrate a form of AAA game that takes the familiar tropes and genre conventions of yesteryear’s big budget titles while providing the slightest bit of something new or challenging to our collective sensibilities, thereby offering a hint of indie spirit that upholds the idea that these titles are the products of auteurs. In part because the ‘are games art’ debate is still alive in popular culture, players and the industry support this arrangement because it seems to validate gaming as an activity, while elevating the cultural cache of games which will ultimately sell more copies and grow the consumer base. The inner workings of the AAA studio space are unfortunately lost in the emphasis of the auteur figure, but this has also been taken up in academic work on AAA games. There are two prominent topics when thinking about AAA work culture: overwork and the gendered work space. An early piece on overwork in the games industry was written by Dyer-Witheford and de Peuter in 2006, and examined labor exploitation, burnout, worker turnover, and struggles to unionize within this extreme work culture. 7) Twelve years later, in 2018, former Kotaku writer Jason Schreier posted an exposé on the overwork, or ‘crunch culture’ within Rockstar Games as the company was finishing work on Red Dead Redemption II (Rockstar Games, 2018). 8) Despite being a known issue within big budget game development for nearly two decades, crunch persists and continues to be a key topic of analysis, particularly as scholars explore possibilities for unionization and workers rights. 9) Related to this is the gender divide within game studios. Drawing from a 2013 Game Developer’s Magazine survey, deWinter and Kocurek point out that “the gendered disparity in salary is significant in all areas of game employment except programming and engineering (which is 96 percent male).” 10) Contrary to assumptions that this is because women to not play games or are averse to entering the games industry, deWinter and Kocurek found that women were far more likely to be alienated by the workplace culture that has itself been influenced by the toxic and misogynist elements of game culture, and as a consequence would burn out more quickly and leave the industry. 11) Much of the work written on games culture indirectly engages with AAA games precisely because of this feedback loop between the culture and the workplace. Critically, any change to either the player culture or work culture of gaming needs to occur simultaneously between the labor and leisure spaces of gaming culture. Recently much of the focus on AAA games, and gaming in general, has been on business models and monetization. In particular, the prevalence of microtransactions, loot boxes, and battle passes. While these tend to be associated with mobile and free-to-play games, there is no set definition for AAA games and so there is no inherent exclusion of a game from the AAA category based on a free-to-play model. As Daniel Joseph’s work on battle passes shows, big-budget games produced by large studios, such as Apex Legends, DOTA 2, or Fortnite, can use free-to-models and microtransactions as the primary method of monetizing their games. 12) Importantly for Joseph, these models effectively turn games into shopping platforms that obfuscate their primary goal of extracting money from the consumer. 13) Exactly how predatory these models are becoming is of great concern, as is the way microtransactions change what kinds of AAA games are being made as there is a much larger emphasis on the service, or seasonal model of games precisely because they can make more money off of their players. It isn’t just a question of exploitation, but how these monetization models change the way AAA games are made and how they’re consumed. Building on the labor issues within AAA design, this also is creating new forms of crunch, as Joseph points out that Fortnite developers “...reported exhausting 100-h work weeks due to the massive success of the game and the drive to constantly be developing for the next season and battle pass.” 14) The AAA space continues to be one where art, industry, and culture coalesce. What games research attunes us to most is that each of these elements, while moving forward, seems to be stuck in stasis where the problems of the past remain unresolved. In the pleasure of the next big release, the anticipation of the next hype cycle, and the excitement of the next awards ceremony, it’s clear that AAA development is no-doubt heading full-bore into a future of even greater artistic heights, but these heights come with even more troubling extremes. Despite interventions on the part of games journalists and academics, and mobilization attempts from game workers, long-standing and pervasive issues with the legitimacy of games, and the exploitation of workers and players alike, persist. Academic work on the AAA space shines a spotlight on the issues that continue to go unresolved while major gaming studios propel forward in the perpetual quest for artistic recognition, prestige, and the almighty dollar. 1) Zheng, Jenny. “The Game Awards 2022 Received Over 103 Million Views, Sets New Viewership Record.” Gamespot. December 16th, 2022. 2) Ivory, James D., “A Brief History of Video Games.” The Video Game Debate: Unraveling the Physical, Social, and Psychological Effects of Digital Games. Edited by Rachel Kowert and Thorsten Quandt. New York and London: Routledge, 2016, 16-17. 3) Parker, Felan. “Roger Ebert and the Games-as-Art Debate.” Cinema Journal 57, no 3 (2018):77-79. 4) Ibid., 95-96. 5) Keogh, Brendan. “Between Triple-A, Indie, Casual, and DIY: Sites of Tension in the Videogames Cultural Industries.” The Routledge Companion to the Cultural Industries. Edited by Kate Oakley and Justin O’Connor. New York and London: Routledge, 2015. 153-154. 6) Lipkin, Nadav. “Examining Indie’s Independence: The Meaning of ‘Indie’ Games, The Politics of Production, and Mainstream Co-optation.” Loading… The Journal of the Canadian Game Studies Association 7, no 11 (2012): 8-15. 7) Dyer-Witheford, Nick, and de Peuter, Greig. “‘EA Spouse’ and the Crisis of Video Game Labour: Enjoyment, Exclusion, Exploitation, Exodus.” Canadian Journal of Communication 31, no 3 (2006): 599-617. 8) Schreier, Jason. “Inside Rockstar Games’ Culture of Crunch. Kotaku. October 23rd, 2018. 9) Cote, Amanda, and Harris, Brandon, C. “‘Weekends Became Something Other People Did’: Understanding and Intervening in the Habitus of Video Game Crunch.” Convergence: The International Journal of New Research into Media Technologies 27, no.1 (2021): 161-176. 10) deWinter, Jennifer and Kocurek, Carly. “” Gaming Representation: Race, Gender, and Sexuality in Video Games. Edited by Jennifer Malkowski and Treaandrea M. Russworm.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2017, 65. 11) Ibid. 12) Joseph, Daniel. “Battle Pass Capitalism.” Journal of Consumer Culture 21, 1 (2021):68-83. 13) Ibid., 81. 14) Ibid.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Researcher) Marc Lajeunesse Marc is a PhD candidate in Concordia University's department of communication studies in Montreal, Canada. Marc’s research focuses on toxicity in online games. He is driven to understand toxic phenomena in order to help create more positive conditions within games with the ultimate hope that we can produce more equitable and joyful play experiences for more people. He has published on the Steam marketplace and DOTA 2, and is a co-author of the upcoming Microstreaming on Twitch (under contract with MIT Press). (Game Researcher) Bora Na I'm a game researcher. I've been playing games for a long time, but I happened to take a game class at Yonsei University's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fter graduation, I sometimes do research or writing activities focusing on game history and culture. I participated in , , and so on.
- 2023년, 되새기고 싶은 게임들
쏟아지는 게임들을 개인이 매년 다 챙겨 플레이해 볼 수는 없다. 그래도 직업이 직업인지라 꾸준히 신작들을 좇는 과정에서 느꼈던 올해의 여러 게임들을 간략히 정리해보면서 한 해의 게임들이 남긴 의미들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GG는 딱히 평점을 매기거나 개별 타이틀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웹진은 아니지만, 한 해의 마무리로서의 의미 정도는 만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 Back 2023년, 되새기고 싶은 게임들 15 GG Vol. 23. 12. 10. 팬데믹의 여파인지 , 2023 년에는 뭉쳐 두었던 게임들이 갑자기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오는 한 해였다 . 게임 마니아들도 , 게임을 직업으로 삼는 이들도 올해 나온 굵직한 게임들을 다 플레이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 쏟아지는 게임들을 개인이 매년 다 챙겨 플레이해 볼 수는 없다 . 그래도 직업이 직업인지라 꾸준히 신작들을 좇는 과정에서 느꼈던 올해의 여러 게임들을 간략히 정리해보면서 한 해의 게임들이 남긴 의미들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 GG 는 딱히 평점을 매기거나 개별 타이틀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웹진은 아니지만 , 한 해의 마무리로서의 의미 정도는 만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 올해의 아쉬움: <다키스트 던전 2>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기대만큼의 결과를 만들지 못한 올해의 아쉬웠던 게임들이다 . 아무래도 아쉬움을 이야기한다면 올해는 1 순으로 < 다키스트 던전 2> 를 꼽지 않을 수 없다 . < 다키스트 던전 > 1 편은 코즈믹 호러라는 장르가 게임 규칙을 통해 어떻게 얽히고 설킬 수 있는지를 훌륭하게 보여준 작품이었다 . 심연의 공포는 심연 그 자체 이상으로 로그라이크 특유의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미래 , 팀 구성과 이벤트가 결합하며 한 발 한 발 나갈 때마다 플레이어를 조여내는 공포감 , 절체절명의 순간에 단 한 번의 기회가 만들어내는 회생의 짜릿함을 극한까지 만들어낸 바 있었다 . 2023 년에 2 편이 출시된다는 소식은 그래서 적지 않은 이들에게 새로운 기대감을 선사했었다 . 그러나 정작 올해 출시된 2 편은 1 편의 위상을 넘지 못했다 . 영웅 캐릭터들의 배경을 보여주며 스킬을 오픈하거나 마차를 타고 이동하며 어둠의 심연을 향한다는 변경점들이 문제라기보다는 , 영웅 팀을 꾸려 상황에 맞게 성장시키는 본진 중심의 성장감이 크게 흐트러졌다는 점이 문제로 보인다 . 매 막이 끝날 때마다 영웅들의 인간관계가 흔들리며 스킬셋이 뒤바뀌고 , 캐릭터 성장의 누적치가 짧게 디자인되어 후반부로 갈수록 어드밴티지가 줄어드는 점은 여러모로 게임을 고정된 패턴의 반복에 가깝게 만든다 . 지속적인 플레이를 통해 점차 본진이 강화되는 점으로 성장치를 옮긴 듯 하지만 , 이는 결국 게임을 일정 수준 이상 플레이하기 위해선 결국 수십 번의 게임오버를 누적해야 한다는 전제가 되고 말았다 . 리메이크 붐 - <데드스페이스>, < 데드 스페이스 >, 처럼 올해 적지 않은 AAA 게임들은 리메이크를 기반으로 출시되었다 . 9 세대 콘솔게임기들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면서이기도 하고 , 과거의 젊었던 게이머들이 이제 중년에 접어들며 자신의 과거에 남은 명작들을 다시금 곱씹어도 될 만큼의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 비단 스탠드얼론 게임 뿐 아니라 2000 년대의 온라인게임들도 적지 않게 리부트되고 있는 상황도 같은 맥락에서일 것이다 . 산업적으로는 이러한 리메이크들은 게이머 소비자층의 인구구성 변동과 밀접하게 엮여있는 것으로 보인다 . 게임은 기본적으로 선진국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매체고 ,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10 대 -20 대층은 3-40 대에 비해 큰 폭의 인구 감소를 보이고 있어 소비자 모수 층 자체가 두텁지 않다 . 더불어 소비력 또한 경제활동인구인 3-40 대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상황에서 당분간 2000 년대 게임의 리메이크 , 리부트는 훨씬 두터운 소비력을 지닌 3-40 대의 취향에 맞춰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 개별 게임으로 이야기해본다면 , 중년층을 향하면서도 동시에 각각의 게임들은 20 년이 지난 시점에서의 새로운 세대에게도 어필이 가능하게끔 하는 변경은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 몇몇 게임들은 지금 시점에서 보기엔 여전히 불편한 인터페이스를 유지하기도 했지만 전작을 고스란히 새 플랫폼에 포팅하기보다는 나름의 변경요소들을 통해 리 ’ 메이크 ’ 의 의미를 살리는 경향들을 보였다 . 향후 한 100 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이러한 리메이크가 이뤄진다면 우리는 ‘ 데드스페이스 2000’, ‘ 데드스페이스 2023’ 등으로 리메이크 년도를 중심으로 한 게임 플레이와 비평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고 , 이러한 시도들이 만들어내는 같은 게임에 대한 버전별 차이를 통해 또다른 의미들을 되새겨볼 수도 있을 것이다 . 국산 스탠드얼론의 해, <데이브 더 다이버>, 오랫동안 국산 게임의 중심이었던 모바일 MMORPG 들의 수익성이 예전같지 않음은 몇 년 전부터 지적되어 온 바였고 , 그에 따라 많은 회사들이 콘솔 , PC 를 기반으로 해외진출을 모색해 온지도 적잖은 시간이 흘렀다 . 2023 년은 그런 흐름 중 일부가 결과물을 드러낸 해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 데이브 더 다이버 > 는 라이트한 톤을 선택했다 . 어렵지 않은 난이도로 주인공 데이브의 이미지처럼 편안하게 해변에서 맥주마시는 느낌으로 플레이 가능한 이 게임은 바다라는 대상에 대한 독특한 시선의 조합을 보여주었는데 , 휴양지로서의 해변과 취미로서의 다이버를 중심에 세운 뒤 주로 공포의 심연으로 다뤄지던 바닷속은 한편으로는 도전적이면서도 동시에 밝고 명랑한 판타지의 세계로 그려낸 뒤 융합시켰다 . 식량의 보고 , 휴양의 공간 , 심연의 공포와 판타지가 적절하게 융합된 < 데이브 더 다이버 > 의 바다는 라이트해 보이는 게임의 외양과는 달리 나름의 유니크한 세계 구축에 성공했고 , B 급 유머를 통해 전체적인 톤을 잡아가며 성공적인 해외 진출의 성과를 내는 중이다 . 단순 매출지표로서가 아니라 , 독창적인 세계관이 유기적으로 잘 작동하는 게임메이커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가능해 보인다 . 은 AAA 급 소울라이크라는 일련의 도전을 시도했고 이 또한 유의미한 수준의 성과에 도달했다 . 게임 규칙은 과도한 난이도 꼬기나 지나치게 부드러운 진행 사이의 적절한 지점을 (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 납득 가능한 구조로 구축해냈고 , 그런 규칙은 디젤펑크 풍의 세계관 속에 캐릭터와 아이템을 통해 부드럽게 달라붙었다 . 오히려 눈길을 끈 것은 세계관과 스토리 부분이다 . 인공지능의 급격한 발전이 화두가 되는 시대에 은 근대 초기의 오토마타를 통해 동화 ‘ 피노키오 ’ 를 재해석해 그럴듯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 게임 초반 호텔 입구에서 “ 로봇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는 문구와 함께 시작되는 이 게임의 주요 주제는 챗 GPT 를 통해 거짓말을 달고 사는 AI 를 늘상 마주하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 강철과 강철이 맞부딪히는 매 스테이지의 대전은 강한 추진력을 가진 이야기 진행을 통해 좀더 힘을 받는다 . 난이도에 대해 생각하기: <디아블로 4>와 <스트리트 파이터 6>, <아머드코어 6> < 디아블로 > 시리즈는 하드코어 모드를 따로 켜지 않는 한 어려운 난이도의 게임은 아니다 . 플레이어의 숙련도가 배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벤트 클리어는 숙련도보다는 아이템과 스탯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고 , 이는 일정 시간 이상을 투여함으로써 충분히 축적 가능하기 때문이다 . 이 시리즈의 핵심은 그래서 결국 ‘ 아이템 ’ 이다 . 아이템을 어떤 식으로 획득할 수 있느냐가 게임의 핵심이며 , 적어도 3 편에서 시도한 전설 아이템 드랍율 상향은 그다지 매력적인 방식은 아니었다 . 2 편의 영광과 3 편의 실망 이후 발표된 4 편을 처음 접하고 든 생각은 그 적당한 절충점을 찾는다는 게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 그러나 이는 단순히 드랍 확률에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 결국 게임을 지속적으로 플레이하게 만드는 계기는 끊임없이 주어지는 ‘ 해야할 것 ’ 이 얼마나 있는가 , 그리고 그 ‘ 해야할 것 ’ 이 ‘ 해야할 가치 ’ 가 있는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 스토리 진행과 무관하게 성장하는 캐릭터가 중심인 이 게임은 그러나 그 ‘ 해야할 것 ’ 보다는 ‘ 안해도 되는 것 ’ 에 더 무게를 실어버린 느낌이다 . 단순 선악구도에서 다면화된 캐릭터를 통해 복잡해진 이야기로 넘어간 시도는 흥미롭지만 그것이 ‘ 해야할 것 ’ 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 오히려 몹의 빈도 저하와 같은 패치들은 ‘ 해야할 것 ’ 의 양적 , 질적 저하를 가져온 결과를 낳았는데 , 부실한 오픈월드 구현과 함께 게임의 중심을 잃은 느낌을 받은 부분이었다 . 격투 게임을 전문적으로 즐기지 않는 입장에서 < 스트리트 파이터 6> 는 매우 놀라웠는데 , 5 편에 비해 확실히 초보 - 저랭크 존의 대기시간이 크게 줄어듦을 체감했기 때문이었다 . 스틱과 6 버튼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기술을 연속으로 넣어야 하고 , 이를 상대 캐릭터에 반응해 맞춰야 하는 고전적인 대전격투 게임의 방식은 QWER 과 쿨타임으로 구성된 요즘의 버튼과는 다른 차원의 인터페이스이고 , 이는 이른바 ‘ 고인물 ’ 들이나 즐길 수 있는 게임으로 대전격투 게임의 자리를 만들어온 바 있었다 . < 스트리트 파이터 6> 가 도입한 새로운 컨트롤 방식은 충분히 의미있는 시도였고 , QWER 세대에게도 대전격투의 공방과 심리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요소였다고 생각한다 . 정작 오래된 게이머 입장에선 손에 맞지 않아 클래식 컨트롤로 돌아가긴 했지만 , 라이트해진 컨트롤을 사용하는 상대와도 충분히 유의미한 대전을 펼칠 수 있다는 사실은 비전문 격투게이머에게도 한동안 < 스트리트 파이터 6> 를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었음은 분명하다 . < 아머드코어 6> 는 난이도 측면에서도 메카배틀이라는 장르 특성에서도 메이저한 게임으로 부르기는 어려운 축에 속한다 . 6 편의 경우는 난이도가 다소 애매한데 , 어떤 세팅을 하는지에 따라 체감 난이도가 크게 요동친다는 점에서 단순하게 쉽다 어렵다를 이야기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 조작성의 개선과는 별개로 아직까지 특유의 낮은 시인성 문제는 초심자들에게는 쉽지 않은 장벽으로 보인다 . HUD 인디케이터를 통하지 않으면 정확한 타격 시점의 인지가 쉽지 않고 , 이는 일정 시간의 숙련을 거친다 해도 그다지 보편적으로 납득될 수 있는 형태의 숙련으로 자리하지는 않는다 . 그럼에도 숙달에 이르는 과정 자체는 부드러운 우상향을 만들어내고 있어 지속적인 플레이를 가능케한다 . 오히려 꽤 잘 기획된 것으로 보이는 스토리 측면에서 다소 허술한 개연성을 드러내고 있어 아쉬운 부분이라면 아쉬운 부분 . 메이저 IP들의 성공, 실패, 그리고 아쉬움 - <마블스 스파이더맨 2>, <호그와트 레거시> < 호그와트 레거시 > 는 해리포터 세계관을 가져오되 해리포터 시대 이전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측면에서 원작 마니아들로부터 큰 기대를 모은 작품이었다 . 실제로 해리포터 IP 에 친숙한 이들이 플레이 중 발견하는 요소들은 꽤나 흥미로웠던 것으로 보이지만 , 문제는 IP 가 플레이 규칙 안으로까지 들어오지는 못한다는 점이었다 . 다양한 동적 오브젝트들을 통해 빽빽하게 채워진 호그와트 성과 원작의 느낌을 살리는 주변 마을들은 해리포터 세계에 들어와있음을 보여주지만 , 이러한 세계관 요소들은 전투에 개입하지는 못한다 . 마법 속성을 통해 일련의 상성관계를 만들고 이를 통해 방어 - 회피 - 카운터 - 콤보를 유발하는 전투 방식은 해리포터 세계관 속의 전투라고 상상하기는 어려운 , 게임적인 우회 루트의 결과물로 이해된다 . 게임 내 지팡이 상점에서 지팡이를 교체해도 아무런 전투속성 변화가 없다는 점은 게임으로 < 호그와트 레거시 > 에 접근한 이들에겐 다소간의 실망감이었을 것이다 . 다만 원작의 전투 씬 자체가 다소 모호한 구성임은 감안할 필요가 있고 , 오히려 좀더 적극적으로 원작을 기반으로 전투의 공방을 새롭게 재구성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 < 마블스 스파이더맨 2> 는 같은 지점에서 충분히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해볼 수 있겠다 . 1 편의 출시 때부터 < 배트맨 아캄 >3 부작의 프리플로우 액션은 < 스파이더맨 > 에 더 어울린다는 이야기가 많았고 , 2 편에서도 특유의 경쾌한 액션은 원작 IP 의 캐릭터 감성을 고스란히 살리며 이어졌다 . 기본적인 체술 , 웹 스윙을 통한 맵 이동 , 스파이더 센스를 활용한 공격알람 시스템 등은 1 편에서 이미 완성 단계에 이르렀고 , 2 편에 추가된 새로운 특수기들과 장비들은 원작의 스파이더맨 ’ 들 ’ 이 과학 / 공학 너드라는 사실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설득력있으면서도 화려한 액션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 . 애초에 < 스파이더맨 > 시리즈는 원작부터가 도심을 기반으로 한다 . 웹 스윙은 건물이 없으면 사용이 어려운 기술인데 , 2 편에 도입된 윙슈트는 이런 점을 보완하면서도 트렌드를 놓치지 않는 탁월한 선택으로 보인다 . 어반 판타지 액션으로서의 완성도는 뉴욕의 젊은이라는 두 주인공의 이야기와 일상을 녹이는 다양한 서브퀘스트와 잘 엮이며 스파이더맨 세계관이 정밀하게 작동하는 생동감넘치는 도시를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 다만 이 시리즈가 가진 치명적 한계로서의 한국어 더빙 문제는 시리즈의 완성도가 높아질수록 비영어권 사용자들에게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 안그래도 빠른 액션 씬 사이사이에 들어가는 주인공들의 입담은 자막 이용자들에겐 게임의 중대한 재미 하나를 순식간에 놓치게 만든다 . 닌텐도의 길: <젤다의전설: 왕국의 눈물>,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원더> < 젤다 : 왕눈 > 은 발매 직후의 고평가 외에 부정적인 평가들도 없지 않은 편이다 . 특히 1 편인 < 젤다 : 야숨 > 을 플레이했지만 시리즈의 팬이 아닌 경우 부정적 평가가 두드러지는데 , 1 편의 확장팩 같다는 평이다 .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평가는 다소 억울해 보일 정도로 2 편은 새로운 만질 거리들을 제공하고 있지만 , 납득하지 못할 평가는 또 아니다 . 전반적으로 상대적 캐주얼함을 가지고 있는 ‘ 스위치 ’ 계열 게임 중에서 < 젤다 > 시리즈는 꽤 마니악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데 , 이런 요소들이 인터페이스상의 불편함으로 들어간다면 조금은 개선점으로 봐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 이를테면 인벤토리 처리의 불편함이라던가 , 새로 추가된 크래프팅 시스템이 주는 번거로움 같은 부분들은 설령 시리즈의 팬이라 하더라도 다소 부담스럽고 , 물흐르듯 이어저야 하는 플레이를 중간중간 멈추게 만드는 요인이다 . 그래도 전통적인 시리즈 특유의 스타일을 ‘ 스위치 ’ 플랫폼에서 계속 발전 ,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스위치 기반 < 젤다 > 시리즈의 두 작품은 여전히 고평가받을 가치가 충분하다 . 오히려 과도하게 그래픽에 많은 리소스를 투자해 제작비와 제작시간이 산으로 가는 케이스와 비교한다면 < 젤다 > 시리즈 특유의 시각적 분위기는 게임 플레이 자체에 더 많은 공수를 들일 수 있게 만드는 배경이며 , 그로 인해 매 신작마다 여전히 게임하는 이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게 만드는 요소일 것이다 . 플랫포머 액션의 종손이라 불러도 될 <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원더 > 의 성취는 올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수준이다 . 시각과 청각을 모두 활용해 만들어내는 하모니가 게임 메카닉에 고스란히 녹아들며 , 각 스테이지에 등장하는 새로운 적과 오브젝트들은 거의 40 년에 가깝게 이어진 2D 플랫포머라는 장르가 필연적으로 떠안아야 하는 진부함을 넘어서는 참신하고 독창적인 기믹을 들고나온다 . 오히려 이 오래된 장르가 진부하기는커녕 앞으로도 더 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선언으로도 읽힌다 . 본격적인 스위치 플랫폼의 대표주자다보니 특유의 2 인 코옵 또한 훌륭하게 구현되었다 . 오프라인 코옵 뿐 아니라 온라인 코옵도 구현되었고 , 이를 통한 협업으로 난이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구성이라 말그대로 함께 하는 게임으로의 지향 또한 뚜렷하게 잘 드러나고 있다 . 특히 온라인 멀티플레이에서 익명의 매칭을 통해 발생할 수 있는 트롤링에 대한 섬세한 대처는 이 게임을 빛나게 만드는 포인트 . 메이저한 게임은 아니지만, 눈길을 사로잡았던 게임들 건설운영 시뮬레이션 < 어게인스트 더 스톰 > 은 < 심시티 > 류처럼 엔딩없이 무한으로 도시를 키우는 방식을 벗어나 로그라이트적 개념을 통한 스테이지 클리어의 반복을 중심에 둔 게임이다 . < 시저 >, < 세틀러 >, < 안노 > 등의 비슷한 게임들이 최소한의 적을 두고 공 - 방 상호작용을 포함하는 것과 달리 이 게임은 애초에 전투 유닛 자체가 없지만 , 주어진 과제의 기한 내 완수라는 미션이 주는 압박감은 매번 리셋되는 조건과 맞물리며 굉장한 몰입도를 자랑한다 . 중세 용병단을 다룬 전략롤플레잉 < 워테일즈 > 는 정해진 스토리 없이 말그대로 유랑하는 용병단의 상황을 풍성하게 담아낸 수작이다 . 주어지는 상황들은 딱히 진엔딩이라 할 결과로 이어지지 않으며 , 게임의 난이도 조절은 단순히 적의 레벨이 올라가는 것 이상으로 용병단의 재정적 운영 자체가 점점 힘들어지는 구조를 통해서도 이루어지며 전투와 운영 두 면에서의 충분한 고려를 요구하여 게임의 몰입을 높인다 . 사실상 후반부에 이르면 도덕적인 플레이가 어려울 만큼의 처절한 상황 설정은 현실을 떠나 가상공간에 푹 빠져 오랫동안 사고하고 플레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 < 팔루자에서의 6 일 > 은 아직 얼리억세스이지만 FPS 장르에서의 새로운 논점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게임으로 보인다 . 다양한 인터페이스를 통해 편의를 높이는 게임적 방식이 아닌 , 전장이라는 현실이 제공하는 실제 장벽이 되는 상황들을 겪도록 만든 구성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다른 의미의 몰입과 집착을 불러낸다 . 일정 거리를 벗어나면 무전이 아닌 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 채팅이 지원되지 않으며 핑 포인트 또한 자주 시야를 가리는 등 사실상 전장에 놓인 병사가 겪게 되는 고립 상황은 특히 강렬한 사운드 효과들 – 귀가 멍해진다거나 실내 교전시 울리는 소리 등 – 에 의해 배가된다 . 다만 매우 가까운 시대에 실제로 벌어진 전쟁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서는 조금 더 차가운 시점에서의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 그래도 딱 하나를 꼽으라면 - <앨런 웨이크 2>, <발더스 게이트 3> 하나를 꼽겠다 해놓고 굳이 두 개의 게임을 집는 이유는 둘 다 큰 임팩트를 내게 남겼기 때문이다 . < 앨런 웨이크 2> 는 13 년만에 돌아온 후속작을 통해 전작이 미처 다 끝맺지 못한 이야기를 < 퀀텀브레이크 >, < 컨트롤 > 등을 통해 그동안 꾸준하게 쌓아 온 제작사의 세계관을 통해 완성시켰는데 , 그 완성도와 메시지가 올해 나온 여러 게임 중에서도 독보적이다 . 전작인 < 앨런 웨이크 1> 에서 게임은 작가를 통해 만들어지는 예술이 현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라는 주제를 통해 미스터리 어드벤처를 구현해 낸 바 있었다 . 이번 후속작은 창작과 예술의 심연으로 빨려들어간 작가 앨런 웨이크와 함께 FBI 요원 사가 앤더슨이 등장하며 작품을 예술이게 하는 기둥으로 존재하는 것이 작가와 영감 뿐 아니라 작품의 수용자임을 환기시킨다 . 세계를 이해한 작가가 자신의 경험과 영감을 통해 작품을 만들고 , 만들어진 작품은 수용자에 의해 해석되고 피드백되며 다시 작가를 향한다 . 이 루프 피드백은 동시대 매체와 콘텐츠의 구조에 대한 제작자가 게임이라는 형식을 통해 우리에게 보내는 새로운 산출물이며 , 우리는 이 작품에 대해 플레이하고 비평함으로써 비로소 작품을 완성시키는 구조 안에 놓인다 . < 발더스 게이트 3> 은 대중들이 디지털게임에 기대하는 거의 모든 것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수준의 퀄리티로 구현된 세계와 , 그 안에서 일어나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멋지게 얽어내며 모두의 기대를 만족시켰다 . 탄탄한 원전 룰북의 힘을 통해 쌓아올려진 게임의 구성은 잘 만들어진 레고 블록으로 구현해 낸 , 언제 어느 자리에서도 플레이어가 생각할 수 있는 다양한 루트들마다 ‘ 우리도 그거 고민했어 ’ 로 대답하는 제작진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 되었다 . 그리고 그런 구조 위에 올려진 다양한 캐릭터와 이야기들 , 특히 사실상 진주인공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 더 다크 어지 ’ 의 이야기는 가히 오래된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클리셰를 가장 정통적이고 전통적인 방법으로 풀어내되 멀티엔딩과 선택분기라는 방식을 통해 게임 매체적인 방법으로 가장 아름답게 구현한 결과를 빚어냈다 . 너무 많은 게임들이 충분히 유의미한 경험들을 남겨준 2023 년이었고 , 글을 마무리하는 시점에도 나는 계속 쏟아지는 2024, 2025 년의 출시 예고작들을 본다 . ‘ 이 게임은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 것일까 ?’ 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고 또 그런 게임을 선호하는 입장에서 2023 년은 정말 할 말도 , 할 게임도 많은 해였다 . 게임이 넘칠수록 바빠지는 삶이지만 , 이런 식의 바쁨이라면 앞으로도 어느 정도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거라고 자위해볼 수 있는 미래가 될 것이다 . 모두의 게임 경험들이 내년에도 더 풍족하고 흡족하기를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탈출 없는 삶에서 의미를 만드는 게임적 방법
〈하데스 Hades〉는 혹평이 거의 없는 좋은 게임의 정석 같은 게임이다. 2020년 하반기 최고작으로 뽑히며 더 게임 어워드(The Game Awards, TGA) 올해의 게임 노미네이트, 각본상, 인디 게임상, 액션 게임상을 수상했고, 메타크리틱 게임 리뷰에서 93점의 높은 점수를, 현재 스팀에서도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SF 문학상인 네뷸러상과 휴고상까지 수상하니, 국내의 한 게임 비평지에서는 “하데스는 깔 게 없다”고 평하기도 했다. 여기에 이렇게 길게 수상 목록과 긍정적인 평가를 굳이 덧붙이는 이유는 〈하데스〉가 보편적으로 잘 만든 게임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 Back 탈출 없는 삶에서 의미를 만드는 게임적 방법 10 GG Vol. 23. 2. 10. 〈하데스 Hades〉는 혹평이 거의 없는 좋은 게임의 정석 같은 게임이다. 2020년 하반기 최고작으로 뽑히며 더 게임 어워드(The Game Awards, TGA) 올해의 게임 노미네이트, 각본상, 인디 게임상, 액션 게임상을 수상했고, 메타크리틱 게임 리뷰에서 93점의 높은 점수를, 현재 스팀에서도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SF 문학상인 네뷸러상과 휴고상까지 수상하니, 국내의 한 게임 비평지에서는 “하데스는 깔 게 없다”고 평하기도 했다. 여기에 이렇게 길게 수상 목록과 긍정적인 평가를 굳이 덧붙이는 이유는 〈하데스〉가 보편적으로 잘 만든 게임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이미 좋은 평이 많은 〈하데스〉의 리뷰를 쓰기로 결심한 이유는 ‘죽음’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사 때문이었다. 가깝고 먼 이들을 전례 없이 자주 떠나보낸 2022년이었고, 스스로는 잦은 자살 충동과 싸워야 하는 시기를 겪었다. 그러면서 연구자로서 ‘죽음’의 여러 사회적 논쟁을 다뤄보고 싶어졌고, 최근엔 그 준비를 하는 시기였다. 그 이름이 〈하데스〉인 만큼, 많은 리뷰에서 이 게임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죽음’을 다룬다. 이후 서술하겠지만 〈하데스〉는 로그라이크에서의 퍼머넌트 데스(Permanent Death) , 재시작 구조로서 죽음을 영리하게 사용했고, 그것이 게임의 큰 축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필자가 이 글을 쓰기 위해 〈하데스〉를 다시 플레이했을 때 발견한 것은 이 게임에서 ‘죽음’은 별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으며 -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개의치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 오히려 ‘살아있음/삶’ 그리하여 계속 진행되는 ‘이야기’가 그 중심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춰 왜 〈하데스〉가 좋은 게임이 되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우선 게임이어야 한다 아직 〈하데스〉를 플레이하지 않았고, 이후에 플레이하고자 하는 독자는 이 리뷰를 읽는 것을 잠시 뒤로 미뤄주길 부탁드린다. 이렇게 당부하는 이유는 이 게임의 첫 번째 경험만큼은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 첫 번째 플레이 시작 장면 * 첫 번째 플레이 직후, 히프노스, 하데스와 자그레우스 대화 장면 좋은 게임이기 위해서는 우선 ‘게임’이어야 한다. 〈하데스〉를 좋은 게임으로 만든 첫 번째 요소는 군더더기 없는 게임 구조이다. 가장 첫 플레이는 튜토리얼의 역할을 하는데 ‘몬스터를 죽인다 - 방을 넘어간다 - 죽으면 집으로 돌아온다’라는 게임 전체 구조를 바로 경험하게 한다. “잘 있어요. 아버지.” 한 마디 남기고 어떠한 가이드도 없이 바로 시작점에 선 플레이어는 버튼을 눌러 칼을 휘두르고, 앞에 있는 몬스터를 죽이고, 방을 넘어간다. 얼마나 멀리 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최종 보스인 하데스를 만나기 전에 죽게 되고, 기가 죽은 채로 집에 돌아오는 자그레우스를 보게 된다. 반드시 경험할 수밖에 없는 첫 번째 죽음으로 이 게임에 대한 장르적, 방법적 이해를 모두 얻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듣게 되는 아버지의 잔소리를 통해 최대한 덜 죽어야겠다는 동기부여와 앞으로 진행될 이야기에 대한 힌트 그리고 그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선 탈출을 반복해야 한다는 서사적 이해까지 자연스럽게 획득한다. 그다음은 반복되는 플레이를 다채롭게 만드는 방법이다. 로그라이크의 장르적 특성을 따르기 때문에 최대한 지루하지 않게 게임적 요소를 배치하는 것이 흥행의 관건이었을 것이다. 로그라이크 게임은 한번 죽으면 쌓은 경험치가 모두 사라지기 때문에 호불호가 강하다. 그러나 〈하데스〉는 로그라이크의 조건 중 맵의 랜덤 생성만 유지하고 나머지는 유연하게 사용한다. 한번 죽더라도 획득한 경험치나 아이템이 전부 사라지지 않고, 획득한 어둠, 타탄의 피 등은 남아 있어서 무기를 업그레이드하거나 스킬을 강화할 수 있는 것이다. * 심지어 낚시로 얻은 물고기도 집으로 가져와 교환할 수 있다. 플레이가 익숙하지 않은 유저를 위해선 ‘신(God) 모드’라는 친절한 배려도 있다. 신 모드는 일종의 초보자 모드로 20%의 데미지 감소가 적용되고 죽을 때마다 2%씩 증가한다. 한번 죽을 때마다 캐릭터가 강해진다는 설정이다. 캐릭터 레벨이 없는 대신 죽음의 횟수로 플레이어의 실력을 보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게임 외적인 조건인 유저의 실력으로 인한 경험 차이를 만들지 않으면서, 반복되는 지루한 죽음으로 게임 플레이를 포기하지 않도록 만든다. 그 외에도 〈하데스〉에는 사용할 수 있는 6개의 무기와 무기마다 4개의 양상이 있다. 무기에 따라 플레이 경험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플레이의 흥미를 지속시킨다. 또 게임의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는 여러 형벌 규약 으로 게임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며 비교적 짧은 러닝 타임을 보완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반복 플레이를 다시 도전하게 만드는 유인책이다. 플레이어가 엔딩까지 보도록 하는 목표 의식을 어떻게 만드는가? 이 게임을 1회차 이상 플레이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이야기를 더 읽기 위해 책장을 더 넘기겠다는 것과 동일하다. 위에 서술한 게임적 요소도 반복 플레이를 지치지 않게 하지만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데스를 죽이고 지상으로 탈출해 페르세포네를 만나야 한다. 그리고 1번만 탈출해서는 전체의 이야기를 알 수 없고, 엔딩을 보기 위해선 최소 10번의 탈출이 요구된다. 또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올림포스의 신뿐만 아니라 메가이라, 카론, 타나토스, 아킬레우스, 시시포스, 에우리디케 등 여러 인물을 만나고 이들과의 이야기를 진전시키기 위해서 탈출을 반복할 필요를 자발적으로 느낀다. 반전된 죽음의 의미 이야기가 중요한 유인책이라는 것은 앞서 이 게임에서 “죽음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 맥락과 연결된다. 일반적으로 로그라이크에서 말하는 퍼머넌트 데스는 선택으로 인한 결과를 번복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를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매 순간 신중한 판단으로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 중요한 선택 직전 저장&불러오기를 통해 결과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다른 장르의 게임과 달리 로그라이크에서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마주해야 한다. 따라서 극도의 긴장감과 책임감이 이 장르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로그라이크에선 빠른 판단과 반사 신경이 요구되는 플레이보단 턴제 형식으로 적절한 행동을 하도록 장려하기도 한다. 한 번의 죽음으로 너무 많은 것을 잃어야 하는 플레이어가 스트레스로 게임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인 것이다. * 집으로 돌아온 페르세포네와의 대화 그러나 〈하데스〉에서 자그레우스는 반드시 죽는다. 플레이 중간에 만나는 보스에 의해 죽을 수도 있고, 아버지 하데스를 만나 처참히 죽을 수도 있다. 무사히 탈출했어도 스틱스강에 붙잡혀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래서 일반적인 로그라이크에서 경험하는 강한 긴장감은 느슨해진다. 지하의 신인 하데스에게 죽음이 그렇게 나쁜 것만이겠는가? 그래서 〈하데스〉에서 죽음의 의미는 모든 것을 잃는 실수가 아니라 필수적인 조건이다. 죽어야 집으로 돌아오고, 그래야 그 과정에서 만났던 인물과 관계를 전진시킬 수 있다. 페르세포네를 만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더라도 자그레우스에게 죽음은 출생의 비밀을 찾아가는 여정이고 또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과정, 헤어진 연인을 연결하고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는 시도이다. 그 모든 문제를 겪고 나서 마침내 죽음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오기 위한 의미로 바뀐다. 우리는 시시포스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 * 시시포스의 친구, 돌덩이 이것만으로도 〈하데스〉는 좋은 게임이다. 잘 만든 구조, 플레이의 재미, 기존 장르의 특성을 살짝 비트는 전개 방식 말이다. 그러나 충분하진 않다. 나는 〈하데스〉가 삶에 대한 철학적 문제를 ‘이야기’로 풀었고, 더 나아가 게임의 방식으로 전유했기 때문에 좋은 평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자그레우스는 어떤 행동을 해도 탈출할 수 없다. 모든 무기를 해금해도 하데스의 식당에 우수 직원으로 뽑히더라도 결국 ‘죽는다’. 아무리 애를 써도 죽는다는 것은 게임 밖, 플레이어의 운명이기도 하다. 그래서 알베르 카뮈는 생을 “힘들게 살 가치가 없다”고 삶의 부조리를 고백하기도 한다. 삶은 무의미한 작업의 반복이라는 부조리를 폭로한 것이다. “모든 인간의 소통은 죽음에 이르는 한 인생의 무의미함과 고독을 잊어버림으로써 인생을 살 만하게 만들려는 의도에서 일어난다.” 지금은 저명한 커뮤니케이션 학자로 불리는 한 철학자의 말이다. 생의 허무와 죽음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어렵기 때문에 인간(종)은 역경을 극복한 이야기를 사랑하여, 역사 동안 말과 글로 모자라 게임으로도 전하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카뮈는 삶을 시시포스의 형벌에 비유하지만, 다시 바위를 굴려 올릴 수 있음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인간을 상상한다. 〈하데스〉에선 허무의 극복을 게임적 방법으로 해결한다. 태어난 곳을 바꿀 수 없는 자그레우스가 어떻게 가족의 화합과 스스로의 사랑을 획득하는지가 〈하데스〉가 말하는 이야기의 주제이다. 또 탈출할 수 없도록 발목을 잡는 운명을 놀이와 유희로 전복하는 것이 〈하데스〉가 전하는 게임의 본질이다. 플레이어는 죽음을 반복하며 이를 체득한다. 철학자의 말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방식이 아닌, 나의 시간과 경험으로 온전히 습득하는 것이다. 삶과 같은 총체적 경험, 그렇기에 〈하데스〉는 ‘좋은 게임’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획자) 최선주 선주는 기술과 인간 사이의 관계와 그로 인한 사회적 현상에 주목하며 활동해왔다. 새로운 기술이 예술 개념을 어떻게 바꾸는지 관심을 두고 인공지능 창작물의 예술적 가능성에 대한 논문을 작성하였으며 미디어의 이면을 탐색하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는 코리아나미술관 *c-lab 큐레이터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아이돌로직 신드롬』(2021, 공저), 『특이점의 예술』(2019) 등이 있다.
- 古典名著邂逅现代科技: 《黑神话:悟空》与中国的3A游戏想象
但就在这“一切朝钱看”的时代与产业环境里,名不见经传的《黑神话:悟空》(흑신화:손오공,后文简称《黑神话》)却在2020年8月20日如电影《大话西游》(대화서유)里“身披金甲圣衣、驾着七彩祥云”的盖世英雄一般横空降世,不仅搅动整个中国游戏业,甚至点燃了社会舆论对中国游戏业的期待。人们在民族主义情绪的激荡下,憧憬着古典文学《西游记》与现代科技虚幻引擎(Unreal Engine)的“邂逅”能第一次铸就伟大的中国3A游戏。 < Back 古典名著邂逅现代科技: 《黑神话:悟空》与中国的3A游戏想象 10 GG Vol. 23. 2. 10. 이 글의 한글번역본은 다음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本文的韩文译本可在以下链接中看到: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pageNum=1&match=id:197 自2017年始,中国游戏业的实际销售收入就稳居全球第一。当然,这不意味着中国游戏业取得了成功——因为3A游戏才是评价一国游戏产业综合实力的唯一标准。然而刺痛国内玩家的是,中国一直未能开发出自己的3A游戏,甚至欠缺相关尝试。换言之,就中国游戏业的商业成长而言,“这是一个最好的时代”,但就文艺创造而言,“这是一个最坏的时代”。 但就在这“一切朝钱看”的时代与产业环境里,名不见经传的《黑神话:悟空》(흑신화:손오공,后文简称《黑神话》)却在2020年8月20日如电影《大话西游》(대화서유)里“身披金甲圣衣、驾着七彩祥云”的盖世英雄一般横空降世,不仅搅动整个中国游戏业,甚至点燃了社会舆论对中国游戏业的期待。人们在民族主义情绪的激荡下,憧憬着古典文学《西游记》与现代科技虚幻引擎(Unreal Engine)的“邂逅”能第一次铸就伟大的中国3A游戏。 目前,《黑神话》仍是一款制作中的游戏,预计于2024年夏天发售。互联网上一共出现了八部与游戏相关的视频,分别是2020年8月20日①“首爆演示视频”、2021年2月9日②“辛丑年贺岁视频”、2021年8月20日③“UE5实机测试集锦”、2022年1月2日④“游戏科学虎年贺岁小短片”、2022年8月20日⑤“6分钟实机剧情片段”、⑥“游戏插曲《戒网》”、⑧“《黑神话:悟空》全球独家 8分钟实机试玩”,以及2023年1月16日⑦“游戏科学兔年贺岁小短片”。①~⑦为游戏科学官方播出,可在游戏官网( https://www.heishenhua.com)上观看,⑧由合作方英伟达(NVIDIA)独家推出,可在网站哔哩哔哩(LINK)上欣赏。由于完整的游戏尚未问世,我们还无法对《黑神话》进行充分的游戏批评。但可以肯定的是,这款未完成的游戏所凝聚的不只是玩家对国产3A游戏的憧憬,更是他/她们对转变当下中国游戏业以资本增殖为唯一目的的粗暴的产业发展方式的美好愿望。 顾名思义,《黑神话:悟空》的故事底本是中国古代四大名著之一的《西游记》。一般认为,《西游记》最迟于高丽王朝末期传入韩国,它在表面上是讲唐僧、孙悟空、猪八戒、沙僧、白龙马历经九九八十一难去西天取经的故事,实则是以神魔小说的形式曲折地反映现实的社会矛盾。不过从已有的视频内容看来,该游戏不是简单地临摹《西游记》,而是借鉴了《续西游记》(章回体小说)、《大话西游》(电影)、《悟空传》(网络文学)、《斗战神》(MMORPG)等以《西游记》为蓝本的跨媒体作品的想象力,通过后现代的“戏仿”(parody)手法对原著加以解构(deconstruction),“以游戏特有的形式对原著的精神和内涵进行了呈现”。 在上述“原型”作品中尤其值得注意的是,《斗战神》这款腾讯从2010年开始运营的MMORPG。该游戏自立项开始就被定位为腾讯的“自我救赎”之作,但《斗战神》在取得“开门红”之后,却由于各方面的因素——当然核心原因仍是资本逻辑与游戏精神之间不可调和的矛盾——自第三章“白骨夫人”的主线剧情后便迅速衰落,成为21世纪中国游戏史里最大的憾事之一。《斗战神》的主策划正是如今《黑神话》的制作人冯骥(Yocar),而《黑神话》的不少制作成员也参与过《斗战神》的创作。冯骥等人在离开腾讯之后创立了游戏科学。游戏科学在推出《百将行》《战争艺术:赤潮》等手机游戏后,试图挑战3A游戏这一中国游戏业从未染指的高峰,于2020年8月打出“白骨之后,重走西游”这一旨在破镜重圆的理想主义旗帜,再次制作“西游世界观”的游戏——《黑神话》。毋庸置疑,《黑神话》不只是《斗战神》的精神续作,其中还蕴含了这一代中国游戏制作人对于游戏理想的坚持,以及对于充满“铜臭味”的21世纪中国游戏史的批判。当然更重要的是,它指向中国游戏史又一次自我超克的尝试。 不过,光有优秀的文化主题与赤诚的一腔热血显然不够,评价3A游戏的首要标准还是游戏技术。在2020年8月20日第一次播出实机演示画面后,制作人冯骥在新浪微博中坦陈:“13分钟的B1,到处是拼凑的痕迹。胡乱的数值,生硬的落地。小体型体操,大体型乏力。穿模的金蝉,无反馈的水体。粗糙的判定,声音还特么分离。十万天兵掉帧掉到PTSD。”显然当时的《黑神话》还面临着诸多亟待解决的技术难题。但从如今播出的《黑神话》画面可知,游戏科学似乎已在一定程度上解决了上述难题,甚至可以认为,该游戏在某些细节上的质量可媲美《只狼》《赛博朋克2077》等国际顶尖3A游戏。例如正如游戏科学所言,“西游世界观”里大量存在的是较少被全球游戏业处理的四足妖怪,而非简单的两足人型怪,如何才能更好地表现这类妖怪的行动特征,就成为必须处理的难题。《黑神话》因此专门针对这一难题开发了面向四足动物动作捕获的运动模拟系统“陆吾”(luwu)。 不过,中国游戏业亟须解决的还不是尖端却琐碎的技术问题,而是如何使一款游戏从“高精尖”的游戏商品变成富含人文思想的文艺作品,最终实现技术与人文的双重超越。从《黑神话》的制作与宣传中,我们似乎看到了这种双重超越的可能性,即《黑神话》正在酝酿属于中国游戏监督们的“作家性”。这里的“作家性”不是一个只牵扯游戏如何设计才好玩的平庸词汇,它指向游戏作品如何才能被升华为一种人文思想的载体,其中渗入了游戏监督对于社会历史状况的深刻思考。换言之,“作家性”是游戏文本与社会文本互动的结果,它可使玩家在游戏过程中“读出”游戏中隐含的时代语言。 从现有资料看来,《黑神话》的制作人冯骥对于“西游世界观”的驾驭已比较接近日本游戏监督对于游戏思想的阐释。游戏策划出身的他,同时也是游戏科学的创始人,这就使他可以心无旁骛地将自己对于“西游世界观”的理解注入《黑神话》,而无须过多顾及游戏设计之外的商业社会的现实压力。在这样的创作背景下,我们自然可从《黑神话》及其宣传文案中读出一种完全不同于之前任何西游题材游戏的彻底的理想主义色彩——游戏中的角色塑造、动作设计、剧情设置、动画展现、镜头切换、场景搭建,甚至官网文宣等,无不透露出《黑神话》不计成本的高品质与追求卓越的野心。 这样的理想主义,正是在游戏作品中孵化“作家性”的前提。对此,冯骥等人应是有清楚认识的。十三年前,冯骥曾写下如此豪言壮语:“伟大的游戏总是来自伟大的思想,伟大的思想通常来自伟大的游戏设计师”。不难揣测,《黑神话》之中应会注入游戏科学团队关于日常生活世界的总体思考与深度观察,最大可能地丰富“西游世界观”的当代内涵。不过该游戏里究竟会被注入什么样的“伟大的思想”呢?似乎目前公开的游戏视频尚不足以为我们提供确实的判断依据。我们仅能从一些蛛丝马迹中捕风捉影——或许《黑神话》延伸了《悟空传》《斗战神》对现实世界以及“西游世界观”的批判性反思。 这意味着,《黑神话》对于“西游世界观”的再诠释,可能同样不会局限于《西游记》故事本身,即“猴子自是当仁不让的主角,却远非故事的全部”,而是“用顶尖的画面,丰富的细节,沉浸的战斗体验,足量的剧情演绎”重新创造一个新的以东方神魔世界为表象的元叙事空间,歌颂“狡猾的妖精、凶残的鬼怪、多情的星君、怯懦的神仙”心底掩藏的爱恨情仇,“谱写东方的超级英雄史诗”。因此《黑神话》中“伟大的思想”可能不是如欧美漫威宇宙一般的英雄赞歌,而是细腻地刻画取经路上的每一位“平凡”角色,跟他/她们产生共情,理解他/她们的内心世界。用元叙事的故事手法将被神格化的神仙圣佛与被污名化的妖魔鬼怪重新人格化,使得玩家可以走近这些被英雄光环遮蔽的“小人物”身边,感受它们平凡却饱满的“人性”。 众所周知,《西游记》是一部影射现实社会的阴暗面的奇书。因此对于以之为蓝本的《黑神话》而言,或许最大的难题不是3A游戏技术本身,而是如何在中国第一款3A游戏中设置社会批评的议题,并找出解决社会问题的可能方案。《黑神话》究竟会是高端的“数码玩具”,还是社会批评的媒介?明年将会揭晓答案!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Professor) jian deng (邓剑) He is a post-doctoral researcher at the Graduate School of Journalism and Communication at Peking University. It deals with digital game culture research as its main interest, and continues to publish columns on games in 闻湃澎. (Game Researcher) Bora Na I'm a game researcher. I've been playing games for a long time, but I happened to take a game class at Yonsei University's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fter graduation, I sometimes do research or writing activities focusing on game history and culture. I participated in , , and so on.
- [공모전] 현 시대의 택티컬 FPS 게임은 무엇을 담고 있는가: Ready or Not 비평을 중심으로
이 말은 ‘레드 스톰 엔터테인먼트’의 CEO이자 영국 해군 출신이기도 한 리틀 존스가 한 말이다. 90년대말 ‘레드 스톰 엔터테인먼트’에서 택티컬 FPS의 시초인 ‘레인보우식스’가 탄생한다. 톰 클랜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이 게임은 지금은 당연시되는 밀리터리 택티컬 FPS의 기본 공식들이 대부분 정립하여 FPS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되었다 봐도 과언이 아니다. < Back [공모전] 현 시대의 택티컬 FPS 게임은 무엇을 담고 있는가: Ready or Not 비평을 중심으로 13 GG Vol. 23. 8. 10. “당신 앞에 움직이는 모든 걸 총으로 쏘는 게임들은 성공적이었지만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반면 전략 위주의 게임들은 속도가 너무 느려서 지루했죠. 우린 두가지를 적절히 섞어 놓고 싶었습니다.” 이 말은 ‘레드 스톰 엔터테인먼트’의 CEO이자 영국 해군 출신이기도 한 리틀 존스가 한 말이다. 90년대말 ‘레드 스톰 엔터테인먼트’에서 택티컬 FPS의 시초인 ‘레인보우식스’가 탄생한다. 톰 클랜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이 게임은 지금은 당연시되는 밀리터리 택티컬 FPS의 기본 공식들이 대부분 정립하여 FPS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되었다 봐도 과언이 아니다. 택티컬 FPS의 조건 택티컬 FPS의 조건은 ‘레인보우 식스’가 출시되면서 정립된 밀리터리 택티컬 FPS의 공식이나 요소가 많기 때문에 ‘레인보우 식스’에 들어간 요소를 보면 그 특징을 알 수 있다. 첫번째로는 현대 특수전이 나오게 된 점. 그 당시 게임은 미래의 첨단 무기를 쏘면서 싸우거나 우주 해병이 악마들을 찢어 죽이는 게임같이 ‘하이퍼FPS장르’가 활약했지만 ‘레인보우식스’에서는 처음으로 인질극, CQB등 대테러 특수전을 본격적으로 다루게 되었다. 특히 인질과 테러범이 뒤섞이는 상황은 게이머들에게 참신하게 다가왔고, 위에 ‘리틀 존스’의 말처럼 보이는 타겟을 마음대로 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두번째로는 현대적인 군용 장비. 전투복, 주무장, 부무장, 보조장비를 구분해서 착용할 수 있게 하며, 이 장비들 역시 실제 군용 장비들로 구현이 되어 현실감을 불러일으킨다. 세번째는 피격판정에 대해서 세세하게 나눠진 부분도 ‘레인보우 식스’가 가져온 차별성이라 볼 수 있다. 팔, 다리, 머리를 맞았을 때 몸의 상태가 달라지며, 팔에 총탄을 맞았을 경우 명중률이 떨어지게 되고, 다리에 총탄을 맞을 경우엔 속도가 느려지게 되고, 머리는 즉사인 현실적인 표현으로 더욱 긴장감 있는 전투를 하게 하였다. 마지막은 분대전술로 총알 한발만 맞아도 전투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작전 수행을 위해 분대원들과 함께 전략적(tactical)으로 움직여야 한다. 도어브리칭, 엄호사격, 사주경계, 은엄폐같은 실제 특수작전에서 볼 수 있는 전략적 요소들이 구현되었고 이동 지시는 BLITZ(전력질주), NORMAL(기본 이동 상태), SAFETY(천천히 조용하게)를 선택하여 분대원들을 이동시킬 수 있고 교전상황에서의 명령은 CLEAR(거점 확보 후 사주경계), ENGAGE(선제 사격 및 제압), ADVANCE(일렬로 진입), ESCORT(인질 호송)로 나뉘어 분대원들이 상황에 맞는 할 일을 시킬 수 있었다. 현 시대의 택티컬 FPS 게임 Ready or Not은 Void Interactive에서 21년도 12월 중반 출시하여 이틀만에 ‘스팀 전 세계 최고 인기 제품’ 1위에 오른 뒤 오랫동안 선두를 지켰다. 이는 그 당시의 ‘헤일로인피니트’와 ‘포르자호라이즌 5’ 그리고 ‘레드데드리뎀션2’등 다수의 트리플A급 게임들을 넘었다는 점에서 놀랍고, 출시 후에도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계속 받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2000년대 이후로 레인보우 식스 시리즈의 초기작들과 SWAT 4와 같은 현실성을 지향하는 택티컬 슈팅 게임들은 사실상 명맥이 끊겨 Ready or Not이 이러한 게임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현대적인 감각으로의 재탄생을 목표로 하여 최초 공개 이후로 많은 게이머들이 관심을 갖고 지지한 부분도 있겠지만 결국 게임이 성공하기 위해선 게임의 화려한 마케팅 말고도 게임 속 내용이 중요하다. 마케팅이 성공적이면 게임 판매량은 높을 수 있겠지만 유저들의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선 게임 속에 담긴 내용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케팅만 잘 되고 게임이 가지고 있는 것이 없다면 포장지만 그럴싸한 빈 껍데기였다 생각한다. 요즘은 dlc라던가 업데이트를 통해 사후지원을 해주는 게임도 많지만 처음 기대를 갖고 구매한 유저들은 실망하고 평가는 좋지 않을 것이다. Ready or Not이 택티컬 FPS로써 가지고 있는 것 Ready or Not은 택티컬 FPS 게임으로써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앞에 말한 ‘레인보우 식스’의 택티컬 FPS 조건을 따라가며 현대적인 감각으로 발전이 되어 있어야 한다. 일단 택티컬 FPS니 당연시하게 현대 특수전은 기본. Ready or Not은 여러 상황의 장소를 선택할 수 있고 주택, 주유소, 호텔, 나이트클럽 등 다양한 상황이 있다. 이는 장소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장소마다 용의자가 일으킨 사건, 행동이 다르다. 맵 선택 시 미션의 타입을 선택할 수 있는데 첫번째로는 RAID(습격). 교전 수칙이 느슨하고, 일반적으로 더 많은 용의자와 적은 민간인들이 존재한다. 말그대로 습격이기 때문에 용의자들을 체포해도 좋지만 다른 미션에 비해 굳이 체포할 필요는 없다. 두번째로는 ACTIVE SHOOTER(총기 난사). 총기 난사범이 모든 시민들을 죽이기 전에 그를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시간과의 싸움을 해야 하는 미션이다. 세번째로는 BOMB THREAT(폭탄 해체)로 폭탄의 위치를 파악하고 해제가 목적. 또한 용의자들과 민간인들도 폭발물 근처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네번째로는 HOSTAGE RESCUE(인질 구출)로 인질 구역의 위치를 파악하고 진입해야 하며, 용의자가 팀과 플레이어를 감지할 경우 인질범들이 시민들을 사살하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에 용의자가 눈치채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하는 미션. 특수작전을 위해선 역시 장비를 갖추고 가야 하는데 Ready or Not도 최근 나온 택티컬 FPS답게 무기 및 장비 폭이 넓다. 주무기(PRIMARY WEAPON)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대응이 가능한 돌격소총(ASSAULT RIFLE)과 CQB에 특화된 연사 화기인 기관단총(SUBMACHINE GUN) 그리고 강력한 산탄을 사용하는 산탄총(SHOTGUN). 그 외에도 투척물 발사기나 비살상 플레이를 위한 저살상(LESS LETHAL)무기도 있다. 주무기 폭만 넓은 것이 아니라 보조무기도 357 매그넘, M45A1, 테이저등 여러 총기가 있고, 주무기와 보조무기에서 총기 모딩으로 전방 손잡이, 총열 부착물 등 선택하여 작전에 맞게 준비할 수 있게 된다. 화기 준비가 되었다면 전술 장비도 갖추고 상체 보호 장비(예시로 방검복)와 장갑재(예시로 케블라), 머리장비(예시로 NVG)까지 임무 환경에 맞게 준비하여 다양한 장비를 고르기만 해도 만족스러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레인보우식스’과 유사한 부상 페널티의 차이가 구현되어 있다. 다리가 부상당했다면 속도가 느려지고 문을 차지를 못하게 될 것이며, 팔을 부상당했다면 반동이 심해져 사격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 플레이어가 부상을 치료하지 않는다면, 출혈할 수도 있기 때문에 출혈 시에는 꼭 붕대를 감고 다시 교전해야 한다. 택티컬 FPS로써의 여러 요소가 있지만 제일 중요하다 생각되는 건 역시 분대전술. Ready or Not은 문에 시점을 보고 있는 쪽에 따라 다르게 활성화된다. 문 아래를 보고 미러건 장비 시 문 너머를 확인할 수 있고, 도어웨지 장비 시 문을 막을 수 있어 변수를 차단 효과를 볼 수 있다. 문 가운데를 보고 상호작용키를 누를 시 90도로 그대로 열리지만, 손잡이 쪽을 상호작용할 경우 문을 살짝 열고 문 엿보기가 된다. 문 엿보기의 필요성은 문을 열었을 때 안쪽에서 용의자 반응 유무를 통해 인원파악과 용의자가 무엇을 하고 있는 지, 함정이 있는 지 확인할 수도 있고 섬광을 넣고 진입을 할 때도 문을 다 열고 섬광을 던지면 용의자를 마주칠 수 있기 때문에 살짝 열린 틈으로 섬광탄을 넣고 진입하는 게 효과적이기 때문. 솔로 플레이일 경우에도 마우스 가운데 버튼으로 AI 팀원에게 지시를 다양하게 내릴 수 있는데 CLEAR WITH FLASHBANG을 선택할 경우 AI가 문을 살짝 열고 섬광을 집어넣은 다음 섬광이 터지면서 대열을 갖추어 진입하게 된다. 또한 섬광 외에도 폭발물을 이용해 돌입할 수도 있고 산탄총을 사용하여 안전하게 문을 정리하는 방법 등 다양하다.멀티 플레이어일 경우는 서로 합을 맞추면 재미있게 할 수 있지만, 솔로 플레이어일 경우 마우스 가운데 버튼으로 지시하게 되는데 클릭 시 해당 명령을 행동할 인원을 금색일 경우 전체 분대가 수행하고 파란색일 경우 분대의 반, 빨간색도 나머지 분대의 반 인원이 행동하게 나눠져 있어 편리하다. 행동의 경우에는 1, 2, 3번의 명령이 나눠져 있는데 1번 명령은 스택업, 미러건으로 체크, 트랩 제거, 웨지도어 설치가 있고 2번 명령은 그냥 돌입과 섬광탄, 스팅어, CS가스 투척 후 돌입이 있다. 3번은 브리칭으로 발로 차서 브리칭, 샷건으로 브리칭, C2로 브리칭이 있다. 내가 완전한 택티컬 FPS 경험은 많지 않아서 어렵다 느끼기에 혼자 잘 할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그러한 두려움에도 AI 플레이어들이 잘 커버해주고 수집해야 하는 증거도 알아서 수집하여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초반에 맘 편하게 게임할 수 있었던 점은 혼자서도 멀티 플레이어만큼은 아니지만 분대전술을 할 수 있게 잘 되어 있고, SWAT4의 정신적 후속작인 Ready or Not이 SWAT4보다 아군AI가 뛰어나다고 평가할 수 있다. Ready or Not이 가지고 있는 현실성과 메시지 위에서 Ready or Not에 기존 택티컬 FPS의 규칙이나 요소가 잘 담겨있는 지 보면서 ‘이미 현실성이나 고증이 잘 되어 있는 거 아니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더 말할 부분이 있다. 현 시대의 택티컬 FPS가 Ready or Not이외에도 Zero Hour나 Ground Branch가 있지만 그것들보다 Ready or Not이 가지고 있는 차별성과 메시지가 있기 때문에 내가 Ready or Not을 중심으로 택티컬 FPS 장르에 대해 비평하는 이유이다. ‘그럼 얘네가 가진 차별성과 메시지가 무엇인데?’라는 질문이 올 것이고 나는 역시 내용물, 게임 속에 담긴 배경과 사건에 주목한다. “로스 수에뇨스의 거리는 무법지대입니다. 거리에는 노숙자들이 배회하며,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법을 어기고 있습니다. 이 도시는 범죄 발생률이 최고조에 달할 정도로 치안 공백이 심각합니다. 게임의 스토리 배경은 연속 강력범죄로 큰 혼돈에 빠진 가상 미국의 항만 대도시 ‘로스 수에뇨스시’의 SWAT 팀이 범죄자들을 소탕하는 내용으로 작전은 다른 대원들과 함께 최대 5명으로 진행하게 된다. 게임 로비에 들어가게 되면 경찰서의 모습이 보이고 로비 각 위치에서 위에서 말한 장비 착용이나 미션 선택 등을 해볼 수 있다. 임무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첫번째로 신규 플레이어가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하기 좋은 파크 213번지 주택 맵으로 얘기를 해보겠다. 이 임무는 약물 유통에 직접적으로 개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파크의 213번지를 수색하는 임무이다. The detectives have been following a new lead to locate source of methamphetamine storage in Los Suenos, tracing a potential "affordable housing" development in 213 Park. 메스암페타민은 흔히 히로뽕, 필로폰이라 불리는 마약으로 투약 시 얻는 극단적 쾌락과 심한 중독성, 부작용을 근거로 마약으로 분류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에서 각성제로 애용되었으나 부작용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에서 현재 제조, 판매, 복용이 금지되어 있다. 약물의 효과는 각성 효과, 성욕 증가, 집중력 증가, 인지능력 증가, 육체적인 행복감, 사고 가속, 사교성 및 실행 동기 증가 등이 있지만 약효 때문에 식욕 상실, 배뇨 장애, 폭력적 충동과 분노조절장애를 동반한다. 하지만 진짜 무서운 점은 약효 종료 시의 후유증과 금단증상이라 한다. "필로폰 같은 경우는 한번 투약하게 되면 의존성, 내성이 아주 강해요. 그런 식으로 1회, 2회, 3회 투약했을 경우에는 중독성으로 변해서 상습으로 변하는 거죠." 윤흥희/한성대학교 마약알코올학과 교수(前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 팀장) 우리는 이 메스암페타민을 2개를 증거로 확보하고 모든 민간인을 구출하고, 2명의 용의자(마약범)를 체포하는 것이 목표이다. 주택을 수색하는데 게임 속에서 마약중독자들의 비참한 삶이 잘 표현되어 있다. 주택안은 어둡고 더러운 분위기다.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려 있고 매트릭스 위에는 인분이나 오줌의 흔적이 남아있다. 위에 말한 부작용인 배뇨 장애가 나타나 있는 것이다. 또, 용의자들과 시민들의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는 디테일과 진행을 하다 보면 2층에 아이방이 있는데 마약중독자인 부모 혹은 보호자의 방치인 지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상태로 침대에 누워 꺽꺽소리를 내며 구토를 한다. 이 아이를 구조할 수 있지만 2층까지 주택을 클리어하는데 체포한 수많은 중독자나 혹은 사살한 사람들 중 아이의 보호자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착잡하다. Having taken down a distribution center for an illegal child-pornography ring operating out of Los Suenos, the LSPD cyber-crime team has now located the man profiting from its sales. LSPD SWAT have been sent to his home on a warrant service. 앞서 말한 임무 외에도 아동 포르노 조직과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포르노 남배우 겸 감독 아모스 볼의 저택을 급습하는 고위험 영장 집행 임무에서 마당 한구석 위치한 계단을 타고 지하실에 진입해보면 아동 프로필을 수집한 장소가 있다. 이름, 성, 나이가 적혀 있으며 제일 어린 나이는 4살이다. 지하의 다른 장소에는 무언가로 가득 찬 드럼통엔 아이들의 시체가 들어있을 지 아니면 체액이 묻은 옷가지나 신발 혹은 관련된 기구나 기록물인 지 알 수 없지만 드럼통과 같이 어린아이들의 옷가지나 인형 등을 지하실 바닥에 파묻다가 만 흔적은 분명히 증거인멸을 하려한 흔적이고, 촬영장으로 보이는 장소는 앞에서 말한 프로필을 보다가 본인이 세트장으로 데려와 성관계를 맺었다는 범죄 사실, 붉은 조명 아래에서 어린 아이들의 사진을 인화하는 방이 있는 등. 이런 끔찍한 묘사는 현실의 암울한 범죄를 잘 나타낸다. Void Interactive, 그들이 담고 싶어하는 것 Developer AMA에서 나는 개발 비화 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다. Void Interactive의 CEO인 율리오는 사촌이 있었는데 1984년 캘리포니아주 산 이시드로의 한 맥도날드 매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평소처럼 일하고 있는 와중 갑자기 한 괴한이 매장으로 들어오더니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적 총기를 난사했다고 한다. ‘맥도날드 대학살 사건’로 불리며 이 당시 총기난사로 무려 34명이 사망하고 22명이 부상을 입었다. 당시 용의자인 제임스 휴버티는 UZI 기관단총, 윈체스터 엽총을 사용해 보이는 족족 쏴 죽였다고 한다. 그의 사촌은 다행히도 총격전에서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극심한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렸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2014년 당시 호주에도 한 사건이 발생하는데 바로 유명한 ‘시드니 인질극’이다. 이때 당시 율리오는 dayz 게임을 통해 서로 친해지게 된 3명의 10대 학생이 있었는데 이 중 한명이 스털링이였고 호주인이였던 스털링은 사건 발생 직후 뉴스로 소식을 접하고는 굉장히 충격을 받았으며, 몇년후 스털링과 친구들이 율리오에게 찾아와 SWAT같은 게임을 만들자는 제안에 율리오는 수락하고 Ready or Not이 개발되게 되었다. CEO인 율리오와 COO인 스털링은 서로 공감될 만한 사건을 겪고 이를 게임에 나타나게 한 것이다. 택티컬 FPS 게임은 현실적인 고증이 매우 중요하지만 Ready or Not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와 개발목적성이 현재에 다른 택티컬 FPS와 차별성을 가지고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가 디지털 게임을 할 때 큰 장점은 우리는 게임 속 플레이어가 되고 상상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안전하다. 실제 대테러 상황을 마주하면 큰일나겠지만 현대의 택티컬 FPS인 Ready or Not을 해보면서 암울한 범죄 상황과 그러한 현실들을 마주하는 경험을 할 수 있고 이 게임에 담긴 인지적 가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대학생) 이규연 어릴 적 프로그래밍을 배운 후, 여러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아 게임 기획자(Game designer)를 목표로 하게 되었다. 대학을 다니며 게임업계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음과 동시에 게임 관련 전시, 축제, 대회(E-Sport)를 즐겨 찾고 있다.
- 2023 동아시아 인디게임 답사기: bitsummit 그리고 G-eight
제일 더운 7월에 개최하기로 마음먹은 듯한 일본의 인디 게임 행사 “BitSummit”과, 버닝 비버와 마찬가지로 작년으로 2회차를 맞이한, 그리고 날짜도 거의 비슷하게 12월 초에 개최하지만 훨씬 따뜻한 대만 타이베이의 “G-Eight”이 오늘 답사기의 주인공들이다. < Back 2023 동아시아 인디게임 답사기: bitsummit 그리고 G-eight 16 GG Vol. 24. 2. 10. 벌써 한 달이 넘게 과거가 되어버린 2023 년 , 일로 , 그리고 취미로 여러 게임 행사에 참여해 볼 수 있었다 . 방문한 일곱 개의 게임 쇼 중 인디게임을 메인으로 하는 게임 쇼는 네 개 , 그중 국내에서 개최한 행사는 두 개였다 . 이 둘은 벌서 8 년째 개최한 부산 인디 커넥트 페스티벌 ( 이하 BIC) 과 , 스마일게이트가 주관하는 , 작년으로 2 회차를 맞이한 인디 행사 Burning Beaver( 이하 버닝 비버 ) 이다 . 둘 다 굉장히 특색 있고 매력적인 게임 쇼이니 , 시간이 있으신 분들은 꼭 방문하길 바란다 . BIC 는 주로 8~9 월에 , 버닝 비버는 12 월 첫 주에 개최한다 . 이렇게 BIC 와 버닝 비버에 이야기를 간략히 넘어간 이유는 , 오늘의 주인공은 다른 두 인디 게임 쇼이기 때문이다 . ‘ 엥 ? 왜 게임 쇼가 교토에 ?!’ 할지 모르는 , 이젠 제일 더운 7 월에 개최하기로 마음먹은 듯한 일본의 인디 게임 행사 “BitSummit” 과 , 버닝 비버와 마찬가지로 작년으로 2 회차를 맞이한 , 그리고 날짜도 거의 비슷하게 12 월 초에 개최하지만 훨씬 따뜻한 대만 타이베이의 “G-Eight” 이 오늘 답사기의 주인공들이다 . 이 자리를 빌려 , ‘ 게임 ’ 이 아니라 ‘ 게임 쇼 ’ 를 주인공으로 하여 두 행사를 방문한 경험과 인상 깊었던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 * 사진자료 1, 2 K- 게임 쇼는 잠시 바이바이 ! 하지만 꼭 방문해 보시길 ! 교토에 게임쇼 ? BitSummit! 부끄러운 일이지만 , 방문하기 전까지 교토에 게임 쇼가 있는 줄 몰랐다 . 교토라는 도시는일본의 문화유산을 구경하기 위해 방문하는 장소라 생각했었다 . 그렇기에 게임 쇼를 , 그것도 헤이안 신궁 바로 앞의 ‘ 미야코 멧세 전시장을 이용해 행사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꽤 놀라웠다 . 게다가 심지어 날짜는 여름 축제 기온마츠리와 정확히 겹치는 날짜였고 , 기온은 40 도에 육박했으니까 . * 사진자료 3, 4 헤이안 신궁으로 향하는 길 , 행사장은 실내라 다행입니다 . 다행히도 행사장 안은 쾌적했다 . 공간이 다소 협소한 편이기에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섰지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 덥거나 불쾌한 느낌은 없었다 . 부스들이라 부르기엔 다소 작은 사이즈의 책상이 자신들이 만든 게임을 어필하듯 꾸며져 빈틈없이 들어서 있었음에도 사람끼리 부딪힐지언정 축축하거나 한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으니까 . 밖이 더운 만큼 냉방에 신경을 쓴 것 같았다 . 또한 , 비록 개별 팀에 할당된 공간은 작을지라도 그걸 꾸미는 역량은 전적으로 팀들의 자율에 맡긴 부분이 놀라웠다 . 간단하게 아트북이나 브로마이드를 세워놓은 팀들도 있었지만 , 이런 걸 둬도 되나 ? 싶을 정도로 커다란 인형이나 , 책상 뒤편에 직접 프레임을 세워 배너를 달아놓은 팀도 많았다 . 할당된 공간과 위치에 맞춰 각자 다른 방식으로 공들여 꾸며놓은 모습들에 꽤나 눈이 즐거웠다 . * 사진자료 5, 6. 책상 뒤에 프레임을 설치한 부스와 모서리 위치라는 장점을 이용해 인형을 세운 부스 . 효과는 뛰어났다 ! 공간 자체가 넓지 않았기 때문에 꽉 찬 느낌이 드는 행사였지만 , 그로 인해 발생한 문제들도 많았다 . 일부 게임은 독특한 컨트롤러를 지원하는 방식이었지만 ( 예를 들어 콜라병을 흔드는 방식으로 로켓을 쏘아 올린다던가 ), 그 자리를 마련하기가 힘들어 한 명 한 명 교대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밀려나고 , 줄을 설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다 . 그렇다면 , 게임도 많지 않고 장소도 협소하며 바깥은 엄청나게 더운 BitSummit 최대의 매력은 무엇인가 ? 그건 바로 협소함에서 발생하는 떠들썩함과 놀라울 정도로 높은 비율의 외국인 , 그리고 본 행사 이후의 비공식적이지만 전통적으로 일어나는 가모 강 변의 네트워킹이다 . 장소가 좁다는 것은 몇 번 강조하였으니 외국인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 개인적으로 여러 인디게임 쇼를 다녀보았지만 , 경험한 바로는 BitSummit 은 가장 글로벌한 행사였다 . 부스 자체를 소형화한 것은 혼자 먼 길 오는 외국인을 배려한 것이 아닐까 ? 싶을 정도로 말이다 . 타국에서 외국인들끼리 모여있다 보면 제법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 부스 손님을 맞이하다가도 , 눈 마주친 다른 부스의 개발자와 스몰토크를 하게 되고 , 개발 관련 고충을 토로하다 보면 어느새 행사가 끝나있다 . 하루가 짧을 정도로 . 그리고 그 짧게 느껴지는 하루를 보완하는 행사는 , 지나가던 말을 따르자면 비공식 전통행사 , 가모 강 변 네트워킹으로 보완된다 . * 사진자료 7, 8. 가모 강 변에 모인 업계인들 . 광기의 기사 서임식 . 왜 비공식 전통행사인가 ? 그것은 딱히 누가 가자 ! 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 그냥 맥주 한 캔 들고 서 있다 보면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 7 월의 교토 날씨는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밤에도 기온이 30 도를 넘나들고는 하는데 , BitSummit 이 진행되는 2023 년의 7 월 중순 역시 마찬가지였다 . 그러니 비교적 시원한 강변으로 약속이라도 한 듯 모이는 것이 아닐까 ? 중요한 점은 , 이젠 알아서 발생하는 이 모임이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고 , 그곳에서 어슬렁거리다 보면 정말 별의별 사람들 다 만나게 된다는 점이다 . 1 인 개발자 , 소규모 개발팀 , 대형 퍼블리셔 , 꿈을 이룬 사람 , 꿈을 꾸는 사람 , 가릴 것 없이 말이다 . 자신의 성향이 I 라 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길 바란다 . 필자와 가모 강 변에서 술 마시고 친구가 된 사람 넷 중 셋은 INFP 였다 . 이 공간에서는 게임이라는 공통된 관심사가 있기 때문에 ,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 . 그러니 게임 개발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 그리고 그 꿈이 나만의 게임을 만드는 것이라면 , 꼭 한번 참여해 보길 바란다 . BitSummit 장점 : 남녀노소 동서 구분 없는 다양함 , 활기찬 애프터 네트워킹 . BitSummit 단점 : 다소 협소한 공간 , 더운 날씨 . 어 , 잠깐 ! 이런 것도 전시해요 ? G-Eight BitSummit 이 끝나고 꽤 시간이 흘러 , 12 월 , 한국의 혹독한 추위 속에 불타는 비버를 구경하고 한 주가 지난 후 G-Eight 을 구경하기 위해 대만으로 향했다 . G-Eight 을 알게 된 경위도 사실 우연이었는데 , 앞서 이야기한 BitSummit 에서 “ 서브노티카 ” 개발자님이 찾아와 알려주었고 , 신청 , 참여하게 된 것이다 . 누군가는 필연이라 하겠지만 , 만약 게임 개발 꿈나무분들이 계신다면 많은 행사에 참여하고 많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시길 바란다 . 우연이든 필연이든 경험의 기회는 어디서 찾아올지 모르는 법이니까 . 다시 G-Eight 으로 돌아가자면 , G-Eight 은 버닝 비버와 마찬가지로 작년으로 2 년 차를 맞이한 행사이다 . 아마 2019-2021 판데믹 직후인 2022 년에 둘 다 시작된 데는 분명 이유가 있으리라 . 빠르게 G-Eight 의 매력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 행사 공간에 주목하고 싶다 . 게임 행사장은 주로 별로 놀랍지 않게 검거나 짙은 색상의 부스로 꾸며진 경우가 많다 . 꼭 그렇지만은 않지만 , 게임을 하기 편안한 무드라는게 있기 때문인지 밝은 조명과 대비되는 어두운 부스 , 어딘가 사이버 펑키 한 LED 들로 장식되어 있기 마련이다 . 하지만 G-Eight 은 정 반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밝고 , 개별 부스들의 사이 공간이 넓으며 , 이는 핸드폰을 보며 걸어도 사람과 부딪히지 않을 정도였다 . * 사진자료 9, 10 부스 배치가 이렇게 널찍해도 되요 ? 줄도 편하게 서겠네 ! 대부분의 게임 행사 혹은 인디 게임 행사는 필연적으로 줄을 서서 플레이를 하기 마련인데 , 대기업 부스들을 제외한 부스들은 관람객분들이 줄을 서기 위해 통행로를 점유하는 현상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 사실 기업 부스들의 경우에도 , 마련된 공간에 비해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복도를 차지하게 되는데 , 구경 온 사람들 입장인건 매한가지이니 이해가 되면서도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 하지만 G-Eight 은 부스와 맞은편 부스 사이게 공간을 충분히 두어 이런 불편함을 상당히 해소해 주었다 . 부스들 역시 공간이 여유로우니 꽤 놀라운 것들을 시도해 보는 팀들이 있었는데 , 가령 한 협동 게임은 방석을 두어 집에서처럼 편안히 게임을 할 수 있게 배려 해주고 있었다 . * 사진자료 11, 12. 공간 활용의 훌륭한 예시 . 거실과 같은 편안함이거나 , 층간 소음 신경 안 쓰고 뛸 수 있게 해 주거나 .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마저 하자면 , 행사장 외부 공간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 이는 대부분의 컨벤션 센터들이 넓은 공간을 차지하기 때문에 외진 곳에 자리 잡아 생기는 문제인데 , 게임 행사에 가면 주로 먹을 곳이 주변에 없거나 , 아니면 나가서 잠깐 쉬다 올 만한 곳이 별로 없기 마련이다 . 게임 행사는 걷고 , 줄 서고 , 게임하고 , 또 걷고의 반복이라 몹시 많은 체력이 소모되는데 , 심지어 나가도 밥을 먹을 곳이 없거나 , 푸드트럭을 이용해 서서 먹어야 하는 경우가 잦다 . 하지만 G-Eight 은 타이페이 엑스포 공원에서 행사를 진행하기에 외부에 시민들을 위한 시설이 상시 개방되어있다 . 사실 게임 행사장 밖으로 나가면 바로 공원이라 , 아이들과 산책하는 부부 , 장 보러 온 어르신들 , 춤 연습을 하는 청년들 , 곳곳에서 버스킹을 하는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도 가득하다 . 심지어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쑹산 국제공항이 있어 , 착륙을 위해 낮게 비행하는 항공기를 촬영하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 사회와 동떨어진 공간에서의 축제가 아니라 , 일상에 녹아있는 행사인 것이다 . 이건 그리고 관람객들에게도 굉장한 편의성으로 다가온다 . 행사장 밖에 나가면 휑한 광장이 있는 게 아니라 , 대만의 일상이 존재하니까 . * 사진자료 13, 14. 방문했을 때는 농산물 시장이 열려있었다 . 그리고 푸드코트 역시 훌륭함 . 잠깐 그렇게 허기를 채우고 나서 행사장으로 돌아가면 , G-Eight 만의 독특한 요소들이 눈에 띄게 된다 . 특히 자세히 살펴보면 PC 게임이 아닌 보드게임을 전시하고 판매하고 있는 팀이나 , 아예 사람들이 모여 ‘ 매직 더 개더링 ’ 을 플레이하는 구역 , 그리고 방문객들이 토큰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인기투표를 할 수 있는 돼지 저금통 등 , 독특한 매력을 가진 구역이 많다 . 사실상 여러 취향이 복합적으로 얽힌 놀이터에 가까운 느낌인데 , 이게 행사장 곳곳을 여러 번 돌아다니게 하는 매력이 있다 . 특히 저금통이 꽤 참신하게 느껴졌는데 , 일부로 반투명한 돼지 저금통을 사용하여 어떤 게임에 토큰이 얼마나 쌓여있나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게 해 두었다 .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관람객들은 토큰을 확인하고 해당 게임을 찾아가게 되는데 , 사실상 실시간 인기투표이자 실시간 추천 시스템을 아날로그 방식으로 구현해 둔 셈이다 .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 * 사진자료 15, 16, 매직 더 개더링을 플레이하는 사람들, 그리고 최고의 시스템, 돼지 저금통. 이에 더해 , 사실 행사장을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가장 눈에 띈 것은 다름 아닌 ‘ 사진촬영금지구역 ’ 이다 . 해당 구역을 마주한 후 주변을 살펴보면 , 마스코트 캐릭터 역시 다른 게임 행사의 마스코트들과 사뭇 다름을 알 수 있다 . BIC 의 스키복 펭귄이나 , Burning Beaver 의 불꽃머리 안경 비버와는 달리 , 뿔 달린 마족과 요정의 하프 같은 여성 캐릭터니까 . 이 캐릭터가 마스코트로써 다양한 곳에서 부각되지는 않는데 , 딱 세 곳 확인한 것이 방문 인증샷을 남길 수 있는 포토존과 공식 굿즈샵 , 그리고 사진촬영 금지 안내판이었다 . 두 번이나 썼지만 , 이 게임 행사장에는 사진촬영 금지구역이 있다 . 간혹 한국 게임 행사에서도 잔인함을 이유로 성인 이용 등급을 받은 개별 부스가 검은 천으로 덮여있어 연령 확인을 하고 입장하고는 하는데 , 그것과는 달리 정확하게 선정성을 이유로 특별 마련된 구간이었다 . 생각해 보면 행사 주관 업체 중 한 곳이 Mango Party 라는 퍼블리셔인데 , 최근 한국에서 유명해진 해당 퍼블리셔의 게임으로는 ‘ 여닌자 타락시키기 ’ 와 ‘ 관리인의 엿보기 ’ 가 있다 . 그러니 굉장히 이색적이고 특이한 공간이 생길 수 밖에 . 정말 인상 깊었던 것은 , 안에서 , 그리고 해당 구역 출입구 앞에서 성인 용품을 판매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 이게 가능하단 말인가 ? * 사진자료 17, 18. 바로 그 사진촬영 금지 구역 , 그리고 그 앞의 유명 성인 용품 부스 . 정리하자면 , G-Eight 은 굉장히 개성 있는 행사이다 . 행사장은 온 가족이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은 밝은 분위기이고 , 각 부스들은 각자 전시하는 게임의 매력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꾸며져 있다 . 행사장 외부의 공간 역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활용하는 공간이기에 게임 쇼 외에 즐길 거리 역시 많이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 관람하느라 지친 심신의 휴식을 취하기에도 좋다 . 메인 행사존에서는 저스트 댄스 대회를 하기도 하고 , 인터뷰존을 통해 유튜브 라이브로 개발진과의 실시간 토크를 생중계하기도 한다 . 그러는 중 한 편에는 성인용 게임만을 위한 공간과 성인 용품 판매점 역시 자리하고 있다 . 어딘가 혼란스럽긴 하지만 , 컨텐츠는 분명 다양하다 . 물론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 아직 신생 게임 행사이기에 로컬적인 색채가 굉장히 강하다 . BitSummit 에 이어 G-Eight 에서 만난 대만 친구는 ‘ 대체 이 행사를 어떻게 알고 찾아왔냐 ?’ 라고 물어볼 정도였으니까 . 부스를 세운 대부분의 개발자들 역시 영어를 매우 어려워하는데 , 사실 이는 어느 정도 예상해야 할 부분이다 . 외국인이 한국 인디게임 쇼에 와도 마찬가지니까 . 읽을 수 없더라도 어렸을 적 일본어로 포켓몬을 하던 추억을 더듬으며 게임을 하면 , 언어가 다르다고 게임을 못할 것도 없다 . 헤매면 최대한의 영어로 열심히 설명해 준다 . 추가적으로 , 애프터행사가 다소 약하다 . 이는 BitSummit 이 특출나게 강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 G-Eight 이 게임 행사치고는 특이하게 오전 11 시부터 저녁 7 시라는 느지막한 스케줄을 가지고 있음을 감안하면 더 아쉬운 부분이다 . 바로 앞에 굉장히 여유로운 공간이 있는 만큼 , 다 같이 맥주 한 잔 들고 커뮤니케이션을 할 시간이 있다면 더욱 즐겁지 않을까 ? 개별로 친해진 사람들끼리 따로 한잔 하러 가거나 , 특정 퍼블리셔가 주관하는 행사는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말이다 . 하지만 이는 다시 한번 , BitSummit 이 특이한 부분임에 유의하자 . 상기 두 요인은 관람객이라면 무관한 요소들이나 , 인디게임 개발자의 입장에서 아쉬움을 논해보았다 . * 사진자료 19, 20. 이런 공간을 두고 없어서 아쉬운 애프터 파티와 다음날의 CWT. 게임과 애니는 뗄 수 없건만 이렇게 분산되다니!. 마지막으로 , 이건 일장일단이 있는 부분인데 , Comic World Taipei( 이하 CWT) 와 날짜가 겹쳤던 문제도 있다 . 게임 행사와 애니메이션 행사를 같은 날 같은 도시에서 열다니 , 대체 무슨 생각인가 ? 하면서도 , 한국에서 역시 작년 버닝비버가 Anime x Game Festival 과 같은 날짜에 열렸으니 할 말은 없다 . 더 많은 사람들이 게임 쇼를 찾아왔으면 하는 마음에서 단점으로 꼽았지만 , 덕분에 여유롭게 관람할 수 있었고 , 다른 날에는 CWT 를 구경하러 갈 수 있었으니 . BitSummit 장점 : 놀이터같이 다양한 행사장 , 다른 게임 쇼에서 보지 못한 광경 . BitSummit 단점 : 해외 게임팀이 거의 없음 , 아직 아쉬운 네트워킹 파티 . 맺으며 . 관람객 입장에서 BitSummit 과 G-Eight 은 정말 즐거운 행사였다 . 평소 시장에서 찾지 못했던 독특한 게임을 체험해 볼 기회이기도 했지만 , 둘 다 일상에 접해있는 장소에서 행사가 진행된 영향도 컸다고 본다 . 게임 쇼를 보다가 , 관광을 하다가 , 타국의 일상에 잠시 녹아있을 수 있었다 . 일로 떠난 것이라도 여행의 감각이 없는 것이 아니었으니 , 정말 만족스러웠다 . 개발자 입장에서 , 인디게임 쇼는 개발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게임을 선보일 기회이지만 , 다른 개발자들과 직접 만나 소통할 기회이기도 하다 . 최근에는 메이저 게임 쇼에서 역시 인디게임존을 따로 만들어 행사를 진행하고 , 인디게임 참여사만을 위한 애프터파티를 준비해 네트워킹 기회를 마련해 준다 . 인디 개발자들이 제일 만들기 힘든 기회를 게임 쇼를 통해 제공하고 , 더 좋은 게임들이 만들어질 확률을 늘리는 셈이다 . 그런 부분에서는 BitSummit 은 최고였고 , G-Eight 은 살짝 아쉬웠다 . 매년 많은 게임쇼가 열린다 . 인디 게임쇼는 어쩔 수 없이 메이저 게임쇼에 비해 방문 인원이 적은 편이다 . 더군다나 해외에 나간다 하면 , 인디게임쇼를 즐기기위해 출국장을 밟는 사람은 더욱 없으리라 . 하지만 BitSummit 은 교토의 축제 기간에 , 그리고 G-Eight 는 한국은 한창 춥고 대만은 따뜻한 12 월에 열린다 . 전략적으로 관광 시즌에 열리는 셈이다 . 그러니 이 글을 읽은 여러분도 , 올해에는 해외 인디 게임 쇼를 구경 가보시는 건 어떻겠는가 ? 겸사겸사 관광 계획도 잡으면서 말이다 . 혹은 관람객이 아니라 , 개발자로써 행사에 참가해 그 어떤 티켓보다 빠르게 입장할 수 있는 패스를 받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 물론 , 더 좋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기획자) 임윤혁 육각형 캐릭터를 좋아해서 현실을 그렇게 사는지, 현실이 그래서 육각형 캐릭터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는 (구)이과생, (구)경제학도, (현)게임기획자. 즐기며 때떄로 배우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 게임이 대체 왜 예술이 되어야 할까? 『게임: 행위성의 예술』을 둘러싼 이야기들
C. 티 응우옌의 『게임: 행위성의 예술』은 게임에 대한 미학이자 윤리학이다. 그는 우리가 게임을 단지 이기기 위해서만 플레이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제한된 행위성(agency)의 조건을 게임 플레이를 하는 동안 스스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즐기는 분투형 플레이(striving play)가 가능하다는 점은 그의 이야기의 핵심에 있다. 우리는 게임 디자이너가 만들어 놓은 규칙과 환경, 그리고 행위성이라는 형식 안에서 머리 싸매는 고투(struggle)를 즐기기 위해 게임을 플레이하기도 한다. < Back 게임이 대체 왜 예술이 되어야 할까? 『게임: 행위성의 예술』을 둘러싼 이야기들 12 GG Vol. 23. 6. 10. * C. 티 응우옌, 『게임: 행위성의 예술』, 이동휘 옮김, 워크룸 프레스, 2022. 괄호에 숫자로 페이지만 표시한 것은 모두 상기 책의 인용이다. C. 티 응우옌의 『게임: 행위성의 예술』은 게임에 대한 미학이자 윤리학이다. 그는 우리가 게임을 단지 이기기 위해서만 플레이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제한된 행위성(agency)의 조건을 게임 플레이를 하는 동안 스스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즐기는 분투형 플레이(striving play)가 가능하다는 점은 그의 이야기의 핵심에 있다. 우리는 게임 디자이너가 만들어 놓은 규칙과 환경, 그리고 행위성이라는 형식 안에서 머리 싸매는 고투(struggle)를 즐기기 위해 게임을 플레이하기도 한다. 응우옌은 이 책에서 이렇게 분투하는 플레이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분석해 나간다. 사람들은 결국 무언가 성취하기 위해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회의론자들의 반박들을 논파하면서 어찌 보면 굉장히 전형적인 서구 철학의 방법론으로 게임의 고유한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이 책의 주요한 내용이다. * 『게임: 행위성의 예술』 표지 이미지 응우옌의 논의는 게임 담론 내부의 논쟁뿐만 아니라 철학과 미학, 예술학 등 게임과 연결될 수 있는 다양한 담론장까지 면밀히 검토하면서 게임의 미학적 가능성을 설파한다. 그것을 통해 게임을 행위성의 예술이라고 규정하고, 예술로서 게임의 영역을 확보하는 것이다. 책 전반에 깔려있는 철학자 특유의 논법은 (그가 베트남 이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구 철학/미학 담론 안에서만 대부분 작동하는데, 이는 내재적인 논리를 단단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의문을 가지게 만들기도 한다. 이 글에서 논하겠지만 이토록 정교한 논의를 통해서 게임을 예술로 규정해 버리는 것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일까? 근본적인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이 책은 차라리 게임의 존재론이거나 게임을 통해서 삶을 대하는 방법을 돌아보는 윤리학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저자는 게임을 통해 세계를 살아가는 방법까지 생각하도록 만든다. 또한 응우옌이 이 책에서 다루는 대상은 인터페이스 장치 앞에 앉아서 화면을 보고 즐기는 디지털 비디오 게임뿐만 아니라 보드 게임, 등산, 술자리 게임, 나아가 사랑까지 포괄하면서 삶 그 자체까지 나아간다. 앞서 말을 꺼냈듯 분투형 플레이라는 개념은 『게임: 행위성의 예술』의 핵심이다. (분투형 플레이는 응우옌이 고안한 개념이 아니라, 버나드 슈츠의 개념을 가져와 확장하는 것에 가깝다. 책의 초반부의 대부분은 슈츠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분투형 플레이의 회의론자들, 특히 성취형 플레이를 옹호하는 입장을 논파해 나가는 내용이다.) 우리는 게임을 할 때 무조건 이기기만을 원하지 않는다. 때로는 심지어 이겨버리는 것을 걱정하기도 한다.(76) 게임이 쉬워져서 난이도를 보다 어렵게 조정하는 상황이나 애인과 보드게임을 하는 상황 등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는 헨리 시지웍의 ‘쾌락주의의 역설’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설명한다. 쾌를 직접적으로 추구하면 오히려 쾌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머리를 비우려고 하면 절대로 머리를 비울 수 없다. 오직 다른 목표에 헌신해야만 그러한 쾌를 얻을 수 있다. 예컨대, 요가는 특정한 자세를 취하는 육체적인 목표에 집중하는 것을 통해서 손을 뻗어서는 결코 도달하기 어려운 영적 효과에 가닿으려는 행위성의 형식이다. 학부 시절 즐기던 술자리 게임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술자리 게임에서 기를 쓰고 이기려고만 한다면 그 게임은 아무런 재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술자리 게임을 통해 술을 마시고 얼큰하게 취해 바보 같은 행동을 하면서 서로 웃고 친해지는 것이 그 게임을 플레이하는 진짜 목적이다. 〈트위스터〉 같은 게임을 통해서도 분투형 플레이의 중요한 지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것은 제한된 행위성을 통해서 결국 넘어지도록 고안되어 있다. 그러나, 플레이어가 일부러 넘어지면 재미가 없어진다. 진짜로 실패하여 넘어졌을 경우에만 재미가 생긴다. 진심으로 게임이 제안하는 어떤 동작을 하려고 최선을 다할 경우에만 진짜 실패가 되어 모두가 크게 웃을 수 있게되는 것이다. 성공을 추구하지만, 실제로 성공에 가치를 두지는 않는다. 이렇게 분투형 플레이에서는 목표(goal)와 목적(purpose)이 어긋나 있다. 일상 생활에서는 결과를 얻기 위해 수단을 취한다면, 분투형 플레이에서는 수단을 취하기 위해서 결과를 추구한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는 그러면서도 일시적인 목표에 제대로 몰입하지 않고, 무관심하다면 게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시적으로 게임 속 목적에 완전히 몰입해야만, 목표는 추구될 수 있다. 게임의 과정을 즐기려면 일시적으로 승리에 대한 관심을 철저하게 장착해야한다. 누군가 게임에 진지하게 몰입하지 못한다면 그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금방 재미를 잃고 만다. 이것이 분투형 플레이의 핵심적인 구조이다. 응우옌은 게임과 사랑을 비교하기도 한다. 사랑의 경우 목표에 대한 진심 어린 헌신이 요구된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들어지는 자신의 감정을 도구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그릇된 나르시시즘이다. 심할 경우 스토커가 되어버린다. 게임에서 분투형 플레이는 게임 속 목표에 그토록 진정성 있는 헌신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목표가 일시적이고 인공적인 형식이라는 점이 더 중요하다. 〈부루마블〉을 할 때, 게임 속 씨앗은행 화폐는 너무도 소중한 것이지만, 친구들과 함께하던 게임이 끝나면 그것은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종이가 되어버린다. 누군가 부루마블 속 화폐를 계속 소중하게 여겨서 게임이 끝난 뒤에도 마차 상자 안에 넣지 못하고 지니고 다닌다고 생각해 보자. 생각만해도 살짝 소름이 끼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를 논할 때, 오늘날 온라인 게임들의 화폐가 실제 세계의 화폐와 연동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빼놓으면 안 될 것이다. (응우옌의 책에서 이러한 문제는 의도적으로 간과되어 있다.) 한국 맥락에서 〈리니지〉 작업장 같은 사례를 떠올린다. 이런 문제는 단순히 게임과 노동의 구분이 사라지는 문제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분투형 플레이라는 개념틀을 가지고 게임과 삶의 경계를 오가는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사유할 수 있다. 게임은 특정한 방식으로 형식화된 환경과 행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게임 속 목표들은 현실과 달리 굉장히 명료하다. 현실에서는 그토록 뚜렷할 수 없는 것들이 게임에서는 목적론적으로 명백한 것으로 재구성된다. 수치화될 수 없는 것을 수치화하기도 한다. 삶을 그 자체로 게임처럼 생각하는 것은 삶의 목적들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문제를 낳는다. 이른바 게이미피케이션의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지점이다. 다시 돌아와, 분투형 플레이어들은 게임 속 목표들에 일시적으로 헌신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무심해야 한다. 분투형 플레이에서는 목표에 대한 어느 정도의 변덕스러움이 요구된다. 기존의 행위성 관련 논의들은 행위자의 통일성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분투형 플레이는 행위성에 여러 가지 유의미한 불일치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알려준다.(100) 행위성이란 복잡하고 다층적이며 긴 시간에 걸쳐 있는 것이다. 이렇게 무언가에 대한 일시적인 관심을 장착할 수 있는 인간 행위성의 유동적인 역량과 자율성 때문에 가능해지는 것이 바로 분투이다.(98) 그렇기에 게임 속 목표가 일회용이라는 점은 게임이 허망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게임라는 매체가 행위성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형식화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측면이 된다. 게임을 만드는 디자이너는 게임의 목표와 규칙, 그리고 다양한 요소들이 하나의 제약 체계에서 작동하도록 하는 환경 등을 고안한다. 게임 플레이어가 취할 수 있는 실천적 행위성, 그리고 플레이어가 맞설 실천적 환경을 통해 특정한 실천적 경험을 조형해 내는 것이다. 이런 형식화의 차원에서 게임을 예술적 매체라고 규정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게임 디자이너의 매체는 행위성이다. 하나의 표어로 만들어 보자면, 게임은 행위성의 예술이다.”(35) 예술은 특정한 형식을 가지고 미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응우옌은 마크 로스코의 회화를 여러 차례 언급하는데, 그것이 현실의 어떤 부분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형식을 통해서 미적 경험을 증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게임은 플레이어가 맞설 실천적 환경과 플레이어가 취할 일시적 행위성을 형식으로 삼아서 우리에게 특정한 미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의 아름다움은 행위가 형식화된 제약 속에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렇게 제한되는 조건이 여기에서 예술가라고 할 수 있는 게임 디자이너의 형식이기도 하다. 〈리그 오브 레전드〉 경기에서 페이커의 플레이가 아름답다고 할 때, 그것은 그 움직임의 절대적인 형태가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게임의 엄밀한 규칙의 체계 안에서 게임의 목표와 관련된 엄청난 행위가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요한 문제는 제한된 행위성의 형식 안에서 성공만이 예술적으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행위성을 제한하면서 발생하는 실패나 부조화에서도 예술성을 드러난다. 키보드의 QWOP 버튼만을 이용해 다리의 관절을 제각각 조정하여 달리기를 해야하는 게임을 떠올려 보자. 일부러 조작하기 어렵게 만들어진 형식 안에서 제대로 한번 달려보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 자체가 그 게임의 중요한 형식이 되는 것이다. * 베네트 포디(Bennett Foddy)가 2008년에 만든 게임 〈QWOP〉. 출처: https://www.foddy.net/2010/10/qwop/ 게임은 이렇게 특정한 미적 경험을 제공하는 행위의 형식으로서 예술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은 논리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타당하고, 오늘날 게임과 예술을 둘러싼 논쟁적인 담론에서도 중요한 입장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응우옌의 논의를 딛고서 다시, 게임이 왜 예술이 되어야 하는지 묻는 것이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고 생각한다. 게임을 예술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예술이라는 범주와 관념에 대한 비판적 성찰도 필요하다. 게임을 예술로 규정하면서 음악이나 회화 같은 예술의 매체 중 하나로 여기는 것은, 모더니즘적 장르 구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오히려 게임을 통해서 예술이라는 영역을, 예술을 통해서 게임이라는 영역을 불안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사진이나 영화 같은 매체가 예술에 편입되면서 발생했던 과거의 논쟁들을 변증법적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1) 한편으로 이 책에는 니콜라 부리요나 권미원 같이 미술계에서는 낯익은 필자들도 등장한다. 응우옌은 사회적 관계나 공동체에 관련된 예술 형식을 논하는 관점을 게임에 적용하며 니콜라 부리요의 논의를 빌려온다. “예술은 특수한 사회성을 생산하는 공간이다.”라는 니콜라 부리오의 말을 빌려와 게임도 바로 그것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282) 니콜라 부리오는 『관계의 미학』에서 관계를 다루는 예술 작업들이 자본주의 체제 내부에 이례적이고 특수한 관계적 상황을 창출한다며 옹호한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지는 관계가 ‘작은 유토피아’를 창출한다는 그의 주장은 다양한 차원의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그러한 관계가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적대(antagonism)를 은폐하고, 오히려 이데올로기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클레어 비숍의 논의는 굉장히 유효한 비판이다. 물론, 응우옌이 책에서 언급하는 게임이 모두 니콜라 부리오식 관계를 창출하는 것은 아니다. 게임이 만들어내는 행위와 관계를 통해서 적대를 감각할 수 있는 사례들에 대한 언급도 책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브렌다 로메로가 2009년에 만든 보드게임 〈기차〉에서 플레이어들은 기차를 운행하기 위해 분투하지만, 나중에 그 기차가 유태인들을 수용소로 이송하는 나치의 기차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브렌다 로메로(Brenda Romero)가 2009년에 만든 게임 〈기차(Train)〉. 출처: http://brenda.games/train 게임을 예술로 규정하는 문제에는 저자성의 문제도 있다. (보통 한명의) 예술가가 정해진 미적 형식을 인준하고 통제하는 전통적인 저자성은 굉장히 근대적이고 서구 중심적인 관념이다. 응우옌의 논의에는 게임을 전형적인 예술의 개념틀에서 비추어 보기 위해 게임 디자이너를 전통적인 예술의 저자로 상정하는 문제가 전반에 깔려있다. 응우옌은 12쪽 각주 2번에서 게임 디자이너가 복수의 사람들일 수 있다는 것을 짚으면서도 논의를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 한명인 것처럼 상정할 것이라고 쓰는데, 오히려 게임의 저자가 한명일 수 없다는 점을 중요하게 짚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저자성의 문제는 단지 게임을 제작하는 관점에서만 중요한 논의가 아니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의 저자성에 대한 논의까지 확장해 생각해야한다. 반갑게도 응우옌은 책의 후반부에 게임의 아름다움이 누구에게 귀속되는지에 대한 사유를 펼쳐놓는다. “(미적 책임이란) 게임 디자이너와 플레이어 사이에 복합적으로, 예술가와 관객이라는 전통적인 개념으로 포착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분배되어 있다. 어떤 경우에는 그 책임이 주로 플레이어에게 있고 다른 경우에는 디자이너에게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이 책임은 복합적인 협업의 형태를 띤다. 이 경우, 게임 디자이너들이 ‘플레이어의 행위성을 통해서’ 그들이 의도한 미적 효과의 상당수를 성취하고, 그 최종 결과는 디자이너와 플레이어 모두에게 미적으로 귀속된다.”(253) 이러한 언급은 이 책에서 게임의 미적 역능에 대한 가장 중요한 논의가 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디자이너가 의도하지 않은 행위성을 발생시키는 플레이어의 역능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디자이너가 만들어 놓은 행위성의 제약을 위반하거나 허점을 찾아내는 플레이어들이 있다. 주어진 역량을 의심하고, 게임 자체를 전유해 버리는 플레이어들. 자크 랑시에르의 ‘해방된 관객’을 비틀어 ‘해방된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의 역능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해방된 플레이어들은 단지 주어진 행위성을 가지고 노는 정도가 아니라, 게임을 아예 다른 것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서로를 죽여야 하는 역할이 주어진 게임에서 서로를 죽이지 않고 함께 산에 올라 풍경을 감상하는 플레이어들을 떠올린다. 바로 이런 곳에서 미학(감각)의 정치가 발생한다. 이런 문제는 게임을 예술로 규정하는 것보다 더욱 근본적으로 게임의 미학적 가능성에 대해 사유할 틈을 만들어 낸다. 응우옌의 논의를 이러한 관점과 함께 밀어붙여 볼 수도 있다. 그가 게임과 게임 플레이의 자율성에 대해 논하기 때문이다. 게임의 플레이어는 다른 사람이 고안한 제한된 행위성을 스스로 받아들인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모든 행위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방식으로 조직화되고 형식화된 행위성이 그곳에 있다는 점이다. 게임은 형식화된 행위성들의 다발이다. 그리고 게이머들은 게임을 통해서 다양한 행위성들의 라이브러리를 탐험하게 된다. 혹은, 서로 다른 게임들을 플레이하면서 여러 가지 행위성들을 넘나들 수 있게 된다. 게임이 행위성을 매체로 삼는 예술이라면, 그것이 서로 다른 행위성 사이를 가로지를 수 있는 특유의 감각을 제공하기 때문에 예술적이다. “(미적인 분투형 플레이는) 우리에게 여러 행위성을 넘나들고, 완전히 상충하는 여러 유형을 오갈 것을 요구한다.”(341) 심지어 플레이어는 서로 다른 행위성 사이의 상충되는 태도를 종합해야 할 때도 있다. 이런 감각적 경험을 통해서 플레이어들은 명료하게 조직화된 가치들 사이를 오가며 가치에 대한 어렵고 세심한 질문을 던질 것을 주문받는다. 응우옌이 보기에 게임은 이런 방식으로 명료성과 유혹의 쾌를 폐기한 뒤, 가치를 대하는 세밀함을 회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한다. “게임의 구조는 우리의 자율성 전체를 체계적이고 광범위한 방식으로 강화할 수 있다.”(125) 게임은 플레이어들을 특정한 방식의 행위성에 순응하도록 만들지만, 우리는 그런 게임을 통해서 행위성 자체에 대해서 사유할 수 있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행위성이 제한적으로 형식화되어 있기에 해방적으로 전유할 가능성도 열린다. 응우옌은 우리가 미적인 분투형 플레이를 통해 특정한 실천적 틀에 너무 집착하거나 너무 명료한 목표를 고수하지 않을 방법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어딘가에 푹 빠졌다가 또 빠져나오고, 깊게 몰입했다가도 다시 거리를 두는 방법을 게임을 통해서 익힐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게임이라는 형식화된 행위성을 통해서 행위의 역량 그 자체에 대해 사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또한, 게임이라는 가장 목적론적인 체제를 통해서 세계가 목적론적 수렁에 빨려 들어가는 상황을 다시 감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가능성을 더 넓게 열어내는 일이 『게임: 행위성의 예술』이라는 책을 통해서 게임을 예술로 규정하는 문제보다 훨씬 더 중요할 것이다. 1) 이러한 논의를 입체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C. 티 응우옌의 또 다른 논고 「예술은 게임이다: 왜 중요한 건 (예술과의) 고투인가」를 함께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글에서 응우옌은 예술 감상 또한 고투의 과정이라고 쓴다. 예술 감상은 결코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다. 예술 감상에 목표(goal)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예술품 앞에서 가이드북이나 미술사 교과서만 읽고 있는 사람들이 과연 예술을 감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우리 삶이 예술작품으로써 결말이 열려 있는, 끝나지 않는 대화가 되기를 바라지,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논변으로써 끝나버릴 무언가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옮긴이 이동휘의 블로그: http://economic-writings.xyz/text/textblocks1/art_is_a_game.html Tags: 행위성, 응우옌, 행위성의예술, 북리뷰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큐레이터, 미술비평가) 권태현 글을 쓰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예술계에서 활동하지만 쉽게 예술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것들에 항상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 예술 바깥의 것들을 어떻게 예술 안쪽의 대상으로 사유할 수 있을지 탐구한다. 정치적인 것을 감각의 문제로 파악하는 관점에 무게를 두고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7000eichen@gmail.com )
- 도시 밖도 자본의 바깥은 아니다 - 〈동물의 숲〉과 자본주의
‘문명 6’에 등장하는 ‘쇼핑몰’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상업지구가 아닌 주거지역에 지을 수 있는 건물로 등장한다. 건물의 효과 또한 쇼핑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과 조금 다른데, 단순히 상업수익이 나는 곳이 아니라 거주민의 쾌적도와 지역의 관광을 크게 올려주는 효과가 핵심이다. 우리의 여가는 시스템 밖을 꿈꾸지만, 그 밖을 향하는 경로까지도 자본주의 시스템은 상품화한다. 설령 무인도에서의 고요한 삶을 꿈꾸더라도 그조차도 Inc. 가 붙은 기업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숲〉의 설정은 애초에 그런 삶을 생각하며 게임 시스템에 접속하게 되는 시대에 대한 거친 스케치로도 읽힌다. < Back 도시 밖도 자본의 바깥은 아니다 - 〈동물의 숲〉과 자본주의 04 GG Vol. 22. 2. 10.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하 〈동숲〉)은 여러 모로 게임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다. 새로운 콘솔 플랫폼이었던 ‘스위치’의 흥행에 일조했으며, AAA급 게임들이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전통적인 게이머 타겟층과는 사뭇 다른 지점에서 붐을 일으켜 한편으로는 게이머의 범주 확장도 만들어냈다. 무엇보다도 한국에서 ‘〈동숲〉 현상’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붐을 일으키며 게이머가 아닌 이들의 입에도 오르내릴 수 있는 수준의 흥행을 가져왔다는 점은 이 게임의 영향력이 결코 적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널리 퍼져나가는 게임은 그만큼 사회와 관계맺는 영향력의 면적 또한 넓을 수 밖에 없다. 하나의 게임이 만들어낸 세계와 그 세계의 법칙은 내적 완결성을 갖추고 아름답게 작동한다는 점에서 게임이용자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다. 〈리그 오브 레전드〉가 사람들로 하여금 무작위 팀 매칭 기반의 협업 플레이라는, 마치 대학교 조별과제 같은 협업의 방식을 일상화시킨 것과 비슷하게 〈동숲〉의 게임 구조 또한 플레이어에게는 일련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물론 그 메시지가 대단히 강력한가, 별다른 영향력이 없는가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부분이 많지만, 한 게임이 제시하는 완결된 세계가 주는 메시지의 의미 자체를 살펴보는 일은 그리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모든 게임은 깊게든 얕게든 어떤 식으로든 우리가 사는 세계 혹은 우리가 상상하는 세상에 대한 해석과 재현으로 이루어진다. 〈동숲〉의 게임규칙 또한 이러한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인도에 정착해 여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진 구조는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는가? 휴양의 섬은 누구의 것인가? 〈동숲〉은 기본적으로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강렬하게 무엇을 추구해야 한다는 요구를 밀어붙이지는 않는다. 플레이어는 휴양과도 같은 목적으로 준비된 무인도에 입도하며, 거기서 간단한 텐트를 치면서 이런저런 활동을 시작한다. 무엇을 하건, 언제까지 하건 딱히 게임은 급하게 달성해야 할 무언가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매우 느리고 담담한 템포가 게임 전반을 지배한다. 그러나 느린 템포가 곧 게임이 완전한 샌드박스임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동숲〉은 천천히, 그러나 꼼꼼하게 플레이어로 하여금 도전해야 할 다음 과제를 은근하게 제시하며 게임의 진행에 일련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텐트로 만들어진 집은 조금씩 튼튼하고 넓은 집의 모양으로 발전해 나가며, 낚시와 수집의 결과물들은 박물관과 수족관 안에서 빈 자리를 채워나가며 쌓여간다. 게임이 제시하는 이 모든 과제들은 제한시간 내에 해결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사실 반드시 해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게임을 진행시키기 위해 거쳐야 할 요소들로 제시된다. 도전을 요구하는 갈등을 제시하는 게임의 방식은 조금 색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를테면 집 구매를 위한 대출의 방식이 대표적이다. 일반적인 플레이 결과로는 〈동숲〉에서 플레이어는 집 건축의 시기가 도래했을 때 충분한 금액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태에 놓인다. 매우 자연스럽게도 너구리는 플레이어에게 ‘그래서 대출이 준비되어 있습니다’를 제시하고, 플레이어 또한 자연스럽게 이 대출을 받아들이며 집의 개축이 시작된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표면적인 방식은 동일하지만, 이때부터 〈동숲〉의 플레이는 조금 달라진다. 기존의 방식이 되는대로 플레이하며 돈을 모으는 식이었다면, 대출 이후부터는 원금상환을 위한 플레이로 변화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상환이 돈으로만 이뤄지지는 않는다. 게임 안에서는 딱히 돈을 크게 벌 만한 요소들이 직접적으로 제시되지는 않으며(단 하나의 예외는 후술한다) 오히려 여러 활동으로 쌓는 마일리지 포인트가 주요 대출상환의 방법으로 이용된다. 상환의 압박은 현실처럼 거세지 않고 다양한 방법, 무기한에 가까운 상환기한처럼 유연하게 제시되지만 그렇다고 근본적인 구조인 대출 – 상환 시스템이 사라지는 것 또한 아니다. 대출이라는 방식을 통해 부동산(집)을 구매하고 개축하는 것은 우리에게 이제는 보편적인 일로 다가오긴 하지만, 게임에서의 방식은 흔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다른 방식, 돈을 모아 집을 사는 일과 비교해볼 때 그 효과가 잘 드러난다. 더 넓고 많은 장식물과 비품을 갖춰둘 수 있는 좋은 집을 갖기 위해 먼저 막대한 자금을 열매 주워팔기와 물건만들어 팔기로 시도한다고 생각해 보자. 집의 효용을 맛보기 전까지 이런저런 활동으로 푼돈을 모으는 시간은 길고 지루해진다. 그러나 자금이 충당되기 전에 먼저 집 공사가 시작되고 대출장부에 이름만 올라가는 〈동숲〉의 방식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대출자금의 긴 상환을 잊게 만들 만큼의 효용을 제시한다. 이는 게임 디자인의 일환이지만 동시에 오늘날 부동산과 같은 고가의 거래물이 대출을 끼고 돌아가는 매우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어차피 장기간에 걸친 축적으로만 살 수 있는 물건이라면, 적절한 신용보증이 되는 상황이라면 효용을 먼저 누리고 천천히 자금을 갚아 나가는 편이 더 효율적이다. 먼저 누리고 나중에 내되, 선불과 후불만큼의 시간차는 금리로 계산되어 상환액에 포함되는 것이 오늘날의 대출 구매 방식이다. 〈동숲〉은 표면적으로는 대자연 속의 힐링, 복잡한 도시를 떠난 무인도에서의 맑고 아름다운 삶을 제시하지만 그런 삶의 중심을 이루는 주택구매라는 포인트는 자연속의 힐링이라는 주제와는 사뭇 다른, 현대 금융자본주의의 핵심이 뼈대에 자리한 대출구조를 통해 연출된다. 비슷하게 무인도의 삶을 소재로 삼았던 게임 〈심즈 2: 캐스트 어웨이〉는 (물론 여기는 조난에 가까운 상황이지만) 섬에서의 삶을 구현할 때 별도의 화폐경제나 대출 같은 방식이 포함되지 않는다. 같은 무인도의 자연 속 삶이지만 〈동숲〉은 여기가 현대 문명과 완전히 동떨어져있지 않은 곳임을 건축회사와 대출구조, 상점 등을 통해 끊임없이 플레이어에게 주지시킨다. 많은 이들의 탄식과 환호성을 불러왔던 게임 속 시스템인 ‘무 상인’의 존재도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다. 일요일마다 방문하는 행상 ‘무파니’의 무는 딱히 다른 용도가 주목받지 않는, 말그대로 투자수익을 위한 미니게임의 용도로 게임 안에 의미지어진다. 막대한 채무를 손쉽게 돌파할 수 있는 루트로서의 무 투자는 마일리지 도전과제가 있을 만큼 추천되는 플레이인데, 무 값의 변동은 게임 내 다른 요소들과 완전히 무관하며 오직 매수가와 매매가의 차이만이 중요하게 다뤄질 뿐이다. 평화로운 섬에서의 휴양 중에 그것도 매주 일요일마다 찾아오는 ‘무파니’의 존재 또한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연에서의 휴양이라는 컨셉과 어딘가 모르게 이질적이다. 〈동숲〉, 사이버공간에 만들어진 또 하나의 '스타필드'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하는 평화로운 풍광에서의 휴양이라고는 하지만 〈동숲〉이 보여주는 그 힐링의 현장은 우리의 이상과는 다르게 매우 자본주의적인 과정에 의해 만들어진 힐링공간이다. 플레이어가 전입해 온 이 평화로운 섬에 먼저 와 기다리는 것은 너굴 주식회사의 인프라임을 게임 도입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곤충채집과 조개줍기, 낚시와 정원가꾸기는 모두 너굴 주식회사가 제공하는 휴양 프로그램의 일환임을 게임은 시작부터 끝까지 여러 가지 요소들을 통해 강조한다. 휴양을 위해 도시는 벗어났지만, 플레이어는 여전히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를 벗어나지는 못한 것이다. 복잡한 도시를 벗어날 수 있는 출구로서의 무인도 또한 주식회사라는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경로이며, 낭만적인 휴양도 거대 자본에 의해 만들어진 인프라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동숲〉은 시사한다. 심지어 그 시스템이 부과한 채무를 손쉽게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되는 것 또한 일종의 투자 게임인 무 투매라는 점에서 〈동숲〉이 제시하는 휴양의 세계는 한편으로는 섬뜩하다. 우리가 늘 동경하고 욕망하는, 세계의 짜여진 틀을 벗어나고자 하는 것조차도 결국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그 욕망을 포착하고 만들어낸 상품일 뿐이라는 점에서다. 〈동숲〉이 드러낸 현대인의 여가와 휴양에 관한 단면은 실제 현실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다. 대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주말의 여가를 위해 이른바 ‘교외’로 불리는 곳을 향해 나들이를 떠난다. 실제로 도시의 삭막한 환경을 벗어나 산과 강을 찾기도 하지만, 그 교외에 위치한 복합 엔터테인먼트 쇼핑몰들의 존재는 〈동숲〉이 보여준 상품으로서의 휴양을 현실에서 만나볼 수 있는 좋은 예시들이다. ‘스타필드’와 같은 브랜드 쇼핑몰들은 도시의 번화가에 자리한 백화점과 달리 ‘교외’를 중심으로 자리잡으며, 방문객들로 하여금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쇼핑’이라는, 소비와 여가를 결합시킨 활동을 통해 소비자들로 하여금 상품관계 속의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문명 6’에 등장하는 ‘쇼핑몰’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상업지구가 아닌 주거지역에 지을 수 있는 건물로 등장한다. 건물의 효과 또한 쇼핑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과 조금 다른데, 단순히 상업수익이 나는 곳이 아니라 거주민의 쾌적도와 지역의 관광을 크게 올려주는 효과가 핵심이다. 우리의 여가는 시스템 밖을 꿈꾸지만, 그 밖을 향하는 경로까지도 자본주의 시스템은 상품화한다. 설령 무인도에서의 고요한 삶을 꿈꾸더라도 그조차도 Inc. 가 붙은 기업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숲〉의 설정은 애초에 그런 삶을 생각하며 게임 시스템에 접속하게 되는 시대에 대한 거친 스케치로도 읽힌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눈 먼 돈 사냥: 멈춰버린 메타버스와 살아있는 메타버스 진흥법
그 시절의 보도자료 중 대부분은 메타버스-NFT&P2E 소식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모든 기업이 '메타버스'를 선언했다. 게임사는 물론이고 통신사, 제조사, 심지어 은행까지 너도나도 메타버스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그들의 보도자료는 놀랍도록 비슷했다. 실체가 모호한 가상공간 그림 몇 장에 'MOU 체결', '생태계 확장', '미래 선도' 같은 단어들이 버무려져 있었다. 블록체인 기술은 메타버스를 완성할 열쇠처럼 여겨졌다. < Back 눈 먼 돈 사냥: 멈춰버린 메타버스와 살아있는 메타버스 진흥법 25 GG Vol. 25. 8. 10. 지금으로부터 대략 5년 전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자. 코로나19 팬데믹 탓에 모두가 집 밖을 나가기 꺼리던 시절, 필자가 재직 중인 회사에서도 유례없는 재택근무를 실시했다. 콩나물시루처럼 사람으로 가득 찬 출근길 지하철을 탈 수 없다니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하릴없이 침대에 누워 보도자료를 읽던 때였다. 필자는 또렷이 기억한다. 잠옷 바지에 와이셔츠를 챙겨 입고 화상인터뷰를 했던 나날들을. 공교롭게도 그 시절에는 읽을 만한 보도자료가 그리 많지 않았다. 야외활동 대신 집에서 게임을 즐기라는 세계보건기구의 조언 덕인지 게임 유저는 날로 늘어갔고 매출도 잘 나왔지만, 모두가 원격으로 일을 해야 하는 시기여서 정작 다룰 만한 신작 소식은 드물었다. 여러 주요 기업들은 개발자들에게 파격적인 연봉 인상을 제안하면서 화제가 됐고, '단군 이래 최대 연봉 인상 직종'이라는 농담까지 돌았다. 그 시절의 보도자료 중 대부분은 메타버스-NFT&P2E 소식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모든 기업이 '메타버스'를 선언했다. 게임사는 물론이고 통신사, 제조사, 심지어 은행까지 너도나도 메타버스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그들의 보도자료는 놀랍도록 비슷했다. 실체가 모호한 가상공간 그림 몇 장에 'MOU 체결', '생태계 확장', '미래 선도' 같은 단어들이 버무려져 있었다. 블록체인 기술은 메타버스를 완성할 열쇠처럼 여겨졌다. 과문한 필자의 눈에는 대단히 기이한 광경이었다. 수십 년간 'MMORPG' 또는 '가상세계' 내지는 그냥 '게임'이라고 불러온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메타버스'라는 이름표를 달고 미래를 구원할 신개념으로 등장한 것이다. 필자와 비슷한 공감대를 가진 이들이 결코 적지 않았으나, 이 광풍은 수년간 꺼질 줄 몰랐다. 돌이켜보면 좋지 않은 어감의 게임 대신에 '메타버스'라는 비전을 판매하는 것이 더 쉽고 빠르게 투자를 유치하는 길이었다. 그리고 이 소란스러운 시장의 움직임을, 정치권에서는 '새로운 기회'의 신호로 읽었다. 기업들이 열광하고 언론이 떠드는 이 '메타버스'라는 것을 국가적 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조급증이 퍼져 나갔다. 2025년, 지금 미디어에서 메타버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극히 줄어들었다. 그때 메타버스가 온다던 분들은 지금 인공지능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당혹스럽다. 물론 인공지능과 메타버스의 결합을 추구할 수 있을 일이지만, 이렇게도 하나의 개념이 반짝였다가 수그러들 수 있는 것인지. 하지만 지금부터 필자가 하려는 이야기는 제법 씁쓸하다. 기술 유행어에 편승한 보여주기식 정책이 어떻게 산업 생태계를 왜곡하고 '눈먼 돈'의 향연을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소극이자 비극이다. 메타버스의 홍보에는 이런 이미지가 왕왕 쓰였다. (출처: 블록체인어스) # 눈 먼 돈 사냥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기왕 과거로 온 김에 시계를 조금만 더 돌려보자. '4차 산업혁명'이라는 유행어가 널리 유포되던 2016년 10월, 정부는 VR을 '9대 국가전략 프로젝트' 중 하나로 선정하며 본격적인 육성에 나섰다. 2020년까지 VR 전문기업 50개 육성, 1조 원 규모의 신시장 창출과 같은 구체적인 목표가 제시됐다. 언론은 연일 VR이 게임과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국방, 의료,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쏟아냈다. 이에 발맞춰 과기정통부와 문체부는 수천억 원의 R&D 및 콘텐츠 제작 지원 예산을 편성했다. 전국의 지자체들은 앞다퉈 VR 체험관을 구축하며 미래 산업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듯한 모양새를 취했다. 예산 편성 소식에 전국의 연구자들과 기업도 발빠르게 반응했다. '다누리 엔진'도 그중 하나였다. 2015년부터 7년간, 357억 원의 세금이 투입된 국책 사업이다. 국산 VR 엔진과 저작도구를 개발해 외산 기술에 대한 종속을 끊고, 'K-VR' 생태계를 자립시키겠다는 것을 목표로 사업을 벌여왔다. 그러나 오늘날 이 VR 엔진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며, 실제로 현장에서 사용하는 사람도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 6월,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의 감사 결과로 이 모든 것은 사기극이었음이 드러났다. 감사를 해봤더니 연구를 주관하는 기관이었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실제로 엔진을 개발하지 않았다. 이들이 일을 맡긴 민간 기업이 가지고 있던 외산 엔진(아마 두 엔진 중 하나일 것이다)의 소스코드를 거의 그대로 복사해 '다누리'라는 이름만 붙여놓고는 "자체 개발한 국산 엔진"이라며 허위로 보고했다. 이뿐 아니라 이 엔진은 실사용이 불가능한 미완성 상태였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책임연구원은 자신의 제자가 창업한 업체에 7억 원 규모의 용역을 몰아주고, 공동연구기관으로부터 1천만 원의 현금을 받는 등 개인 비리까지 저지른 정황이 포착됐다. 국산화라는 대의명분 아래, 기술 사기와 부패가 공공연하게 벌어진 것이다. 이 '다누리 엔진' 사건은 뒤늦게 알려져 충격을 주었으나 어떻게 보면 수면 위로 드러난 하나의 관행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서 특별하거나 일회적인 일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모습은 필자가 반복적으로 목격해 온, 기술 유행을 좇는 '눈먼 예산'이 만들어내는 왜곡된 산업 생태계의 단면에 불과하다. 팬데믹 시절, 필자가 메일로 받은 무수히 많은 보도자료는 대체로 그 유행을 만들어내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었다. 눈 먼 돈 사냥 생태계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필자가 지켜본 바에 따르면 ‘눈먼 돈 사냥’에는 일종의 패턴이 있다. — 과제가 뜰 수 있도록 외곽에서 부채질을 한다. VR나 메타버스는 거기에 동원된 중요한 개념어였다. 공무원들이 설득되고 정부 과제 공고가 뜬다. 이때 일을 쉽게 만들기 위해 산학협력단 또는 컨소시엄을 조직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사업계획서에는 온갖 유행어가 삽입된다. 때로는 내부자의 비호 아래 기술도 경험도 없는 업체가 수억 원의 용역을 수주하기도 한다. 이렇게 선정된 기업들은 단기 결과물 납품에만 집중할 뿐, 지속적인 서비스 운영이나 고도화에는 관심이 없다. 만들어서 납품하면 시쳇말로 ‘땡’이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인력은 흩어지고, 결과물은 방치된다. 전국적으로, 장기적으로 이러한 일이 일어났다. 지금부터 하나씩 그 예를 불러드리겠다. 오세훈 시장이 65억 원을 투입하고도 하루 이용자 수백 명을 넘기지 못한 채 사라진 <메타버스 서울>, 10억 원을 들여 만들었으나 조악한 품질로 외면받은 <잼버리 메타버스>와 새만금의 실물 체험관, 통영 VR존, 광주 VR/AR 제작거점센터, <메타버스 대구>, <부산 메타버스>, <전주·익산 도서관 메타버스>, <강원 청소년 동계올림픽 메타버스>, 이밖에 셀 수 없이 많은 각종 VR, 메타버스 제작 지도 자격증과 '가상현실 콘텐츠 제작지원' 사업들… 정부의 VR 사업 진흥 정책으로 본격화된 업계의 관행은 코로나19라는 새로운 흐름을 타고 메타버스라는 유행을 만나게 됐다. 수십억 규모의 메타버스 지원 사업이 전국적으로 진행되었다. 팬데믹이 끝난 지금도 활발하게 서비스되는 메타버스는 사실상 없다. 돈만 쓰고 활용도가 지극히 낮은 결과물만 남게 된 것이다. 소프트웨어로 제작된 프로젝트는 소리 소문없이 사라져 이제 그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다누리 엔진이라는 것이 있었다. 2016년 정부는 VR을 미래 먹거리로 제시했지만,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다누리 엔진은 특별한 먹거리를 만들어주지 못했다. (출처: 다누리 엔진) # 후일담이 되었어야 할 이야기 ‘가상현실’을 만들려는 움직임도 이제는 잠잠해졌다. 우리는 일상을 회복했고, 메타버스는 빠르게 잊혀져 갔다. 팬데믹도, 메타버스 유행도 끝났지만, 지금은 법이 남게 됐다. 후일담으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른바 '메타버스 진흥법'이 통과되어 법전에 명문화됐다. 미증유의 아이러니다. 2024년 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같은 달 8월 시행을 시작한 가상융합산업 진흥법은 전 세계 최초의 메타버스 진흥 법률이다. 과기정통부 장관으로 하여금 3년마다 '가상융합산업 진흥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관련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전담 기관을 지정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또한, '우선 허용, 사후 규제' 원칙을 적용해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에 대해 법령이 없거나 불분명할 경우, 일단 허용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나중에 규제하는 원칙을 명문화했다. 또 정부 주도의 직접 규제보다는 민간 중심 자율규제를 지원하는 체계를 구성했다. 이 법은 논의 단계에서부터 현행 '게임산업법'과의 중복 및 충돌 문제를 안고 있었다. 문체부는 메타버스 안에 게임이 있다면 당연히 게임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펼쳤다. <제페토>와 <이프랜드> 등의 메타버스가 등급분류를 피하게 되고, P2E의 뒷문을 열어버리면 또 다른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네이버제트를 포함한 업계와 과기부는 메타버스를 게임과 다른 새로운 산업으로 보고, 게임법의 엄격한 규제를 피하려 했다. 결국 접점은 '메타버스 안에 게임이 있다면 게임법의 적용을 받는다'라는 애매한 지점에 형성되었고, 혼란이 해결되기 전에 네이버제트를 제외한 다수의 사업자들이 메타버스에서 한 발 빼면서 지금의 애매한 형국이 나타나게 됐다. 업계는 메타버스가 무엇인지 설명하다가, 자신이 설명하려던 사업을 접어버렸고, 법은 남아서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꼴이 되었다. 과기부 장관의 기본계획 정도가 거의 유일한 쟁점인데, 정부가 의지가 있다면 전문인력 양성과 연구 개발 기반 조성을 위한 국책사업을 펼칠 수 있다. 그동안 필자는 이 국책사업이라는 것이 어떻게 진행됐는지에 관해서 길게 설명해드렸다. 여기서는 그만 이야기하겠다. 지난 상반기, 서울회생법원은 메타버스 플랫폼 개발사 컬러버스에 파산을 선고했다. 컬러버스는 카카오가 주도하던 프로젝트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사라졌다. SKT의 <이프렌드>도 조용히 모습을 감추었다. 국내 주요 게임사들의 여러 메타버스 프로젝트도 거의 빛을 보지 못했다. 미래를 예견하기는 어려운 일이나, 지금까지의 메타버스는 명백히 실패했다. 과거를 점검하고 미래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포스트모템이나 백서라도 잘 남아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업자들은 그런 일도 하지 않았다. 공공의 지원사업은 물론이요 사기업의 메타버스가 얼마나 근시안적인 프로젝트였는지 보여주는 방증이다. 하긴 페이스북도 메타로 사명을 바꾸었으니 국내 기업만 탓할 일은 아니다. 혹자는 생성형 인공지능과 메타버스의 조합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 예견했으나 그 물꼬도 좀처럼 트이지 않고 있다. 화려한 구호와 넘치는 지원사업 대신에 냉철한 평가와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 모두가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한국형 인공지능을 다누리 엔진처럼 만들 수는 없을 일 아닌가. 정부가 추진 중인 가상융합세계 분야 규제 개선방안 도출 과정표. 과기정통부는 아직 이 계획에 대해 입장을 업데이트하지 않고 있다. (출처: 과기정통부) Tags: 게임산업, 정책, 공공기관, 메타버스, 산업진흥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김재석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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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ck This is a Title 02 This is placeholder text. To change this content, double-click on the element and click Change Content. This is placeholder text. To change this content, double-click on the element and click Change Content. Want to view and manage all your collections? Click on the Content Manager button in the Add panel on the left. Here, you can make changes to your content, add new fields, create dynamic pages and more. You can create as many collections as you need. Your collection is already set up for you with fields and content. Add your own, or import content from a CSV file. Add fields for any type of content you want to display, such as rich text, images, videos and more. You can also collect and store information from your site visitors using input elements like custom forms and fields. Be sure to click Sync after making changes in a collection, so visitors can see your newest content on your live site. Preview your site to check that all your elements are displaying content from the right collection fields. Previous Next
- 손맛보다 눈맛, 사람들은 이제 게임을 ‘본다’
2020년 초, 한 모바일 게임의 광고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제 모두들 손 떼!”라고 외치고, 가끔씩만 만져줘도 맛이 최고라며 게이머들을 유혹한다. 그리고 “게임은 원래 이 맛”이라고 선언한다. “어머, 어딜 손 대요?”라며 능청을 부리기도 한다. 게임의 제목부터 “키보드에서 떨어지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소위 방치형 RPG로 불리는 〈AFK(Away from keyboard) 아레나〉 이야기다. < Back 손맛보다 눈맛, 사람들은 이제 게임을 ‘본다’ 03 GG Vol. 21. 12. 10. 잘못된 전제 2020년 초, 한 모바일 게임의 광고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제 모두들 손 떼!”라고 외치고, 가끔씩만 만져줘도 맛이 최고라며 게이머들을 유혹한다. 그리고 “게임은 원래 이 맛”이라고 선언한다. “어머, 어딜 손 대요?”라며 능청을 부리기도 한다. 게임의 제목부터 “키보드에서 떨어지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소위 방치형 RPG로 불리는 〈AFK(Away from keyboard) 아레나〉 이야기다. 게임은 원래 ‘손맛’이 아니라 ‘보는 맛’이라 우기는 광고 카피. 적잖은 게이머들은 “게임은 플레이할려고 하는 거 아닌가? 본질을 없애버리네!”같은 댓글에 동의하고 공감했다. 가만히 내버려둬도 진행되는 게임을 게임이라 부를 수 있는가? 키보드나 마우스로 입력을 하고 그래서 점수든 승리든 목표를 달성하는 것, 즉 게이머와 게임 텍스트의 상호작용이 게임의 매체적 본질 아니던가? 버릇처럼 텔레비전을 켜놓고 연예인들이 박장대소하며 히히덕대는 장면들을 멍하니 쳐다보는 카우치 포테이토족의 모습과 21세기 디지털 시대의 역동적인 게이머 모습은 당연히 구분되어야 하는게 아닌가? 수동적 텔레비전 시청자와 능동적 게임 플레이어의 구분은 꽤 오랜 기간 양 미디어의 본질적 차이인 것처럼 여겨졌다. 직관적으로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두 가지 암묵적인 전제가 있다. “본다”는 것은 (손을 움직이는 것보다) 수동적인 행위라는 전제가 있고, ‘상호작용성’이야말로 (텔레비전이나 영화와 차별되는) 게임의 매체적 본성이라는 전제가 있다. 크게 의심받지 않던 이 전제들. 최근,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들이 자꾸 생긴다. 자기가 게임을 하는 대신 남들이 게임하는 모습 보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내가 조작을 하는 대신 기계가 알아서 내 캐릭터를 육성시켜주는 게임을 즐기는 이들이 많아졌다. 키보드에서 손 떼라는 게임도 나왔고, 성공했다. 우리가 뭔가 잘 못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보는 행위는 결코 수동적이지 않다 무엇인가를 바라보는 것은 그리 게으르고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다. “(흘긋) 보다(see)”와 “바라보다(look)”는 구별되어야 한다. 일상적 삶에서 우리 시선이 어떤 대상들에 우연히 머물거나 스쳐가는 상황이 아니라 목적성과 방향성을 가진 자발적인 행동으로서의 ‘바라봄’은 바라보는 ‘실천 행위’이다. 길가에서, 술집에서, 운전을 하다가, “뭘 봐, 인마!”라는 마술같은 네 글자로 인해 싸움이 일어나고 목숨이 왔다갔다하기도 한다. 지하철에서, 해변에서, 클럽에서, 응시하는 자와 시선을 피하려는 자의 줄다리기는 드문 일이 아니다. CCTV로 잠재적 범죄자들을 감시하는 편의점 사장이나 몰래카메라로 누군가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변태 범죄자에게 ‘바라봄’은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행위이다. 그리고 힘 있는 행위이다. 시선만으로도 권력과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감옥의 간수와 죄수는 이 명제를 보여주는 가장 적나라한 사례다. 푸코(Michel Faucault)가 19세기 공리주의 철학자 벤담(Jeremy Bentham)의 아이디어를 빌려와 원형 감옥의 작동 원리를 설파할 때, 그 핵심은 시선의 권력이 내면화된다는 점이었다. 중앙 첨탑에서 죄수의 방을 비춘다면 죄수는 첨탑의 간수를 볼 수 없다. 나는 그를 볼 수 없지만 그는 나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일차적인 권력의 자원이 된다면, 그가 지금 나를 보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가 정한 규율과 표준을 내면화하여 행동해야 하는 것이 권력 작동의 최종 결과가 된다. 간수는 시각의 주체이다. 죄수는 대상이다. 시각중심주의는 주체와 대상을 공간적으로 분리하고, 주체에게 바라보고 분석할 힘을 준다. 이론(theory)의 어원은 본다(theoria)이다. 눈은 권력을 가졌지만 대상에 개입하지 못한다. 하지만 바라보는 주체는 능동적인 해석의 주체이기도 하다. 코미디를 보면서도 울 수 있다면 이를 어찌 수동적 수용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텍스트 중심주의의 미디어 문화이론이 수용자에 대한 관심으로 선회했던 이유도 바로 해석 주체의 능동성 때문이었다. 홀(Stuart Hall)이 부호화와 해독에 대한 도발적 논의를 시작한 때가 40여 년 전이고, 이를 이어받아 피스크(John Fiske)가 저항적 즐거움과 기호론적 민주주의를 제기한 지도 30년 이상이 흘렀다. 오히려 수용자의 능동성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 아니냐는 반성이 나왔을 정도니,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 신문기사나 만화를 보는 것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행위보다 수동적이라 믿어버리는 것은 시대착오적 전제가 아닐 수 없다. 게임은 과연 상호작용적 미디어인가? 하지만, 여전히, 게이머의 개입적 행동을 영화 관객의 해석적 행동과 동일선상에서 이해할 수는 없다. 게임의 본질이 ‘상호작용성’이라는 믿음도 여기서 출발한다. 주체와 대상이 공간적으로 분리된 전통적 시각매체와 달리, 게임에선 수용자가 대상 텍스트의 내용과 구조에 작용을 가하고(입력) 그 결과 새로운 의미가 만들어진다는 점은 분명한 차별 지점이기 때문이다. 게임문화연구의 초기, 게임과 게임플레이를 유희의 관점에서 보는 접근(루돌로지)과 서사의 관점에서 보는 접근(내러톨로지)이 대립했을 때도 상호작용성에 대한 의심은 없었다. 전자는 게임의 본질을 게이머의 입력행위에서 찾았고 후자는 게임 텍스트가 상호작용적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놀이’가 놀이 주체(플레이어)의 작용과 그에 대한 반응으로 구성된다. 이것을 상호작용적이라 단정할 수 있을까? 무엇과의 상호작용인가? 축구는 공과의 상호작용인가, 상대 팀과의 상호작용인가, 아니면 심판이나 관중과의 상호작용인가? 축구 경기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경기를 하나의 서사로 간주하는 비유이다. 이 서사는 선수들이 플레이함으로써 완성된다. 자유도는 높지만, 서사 구성의 정해진 규칙은 있다. 게임을 게이머의 참여로 완성되는 서사의 일종으로 이해했던 머리(Janet Murray)의 정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축구라는 ‘각본 없는 드라마’를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 관중이다. 영화의 서사를 즐기듯, 축구 서사를 만끽한다. 놀이의 주체가 선수로부터 관중으로 옮겨지는 순간이다. 게임에 대한 두 가지 암묵적인 전제, 즉 ‘보는’ 행위가 수동적이라는 전제와 ‘상호작용성’이야말로 게임의 매체적 본성이라는 전제는 처음부터 불안한 기반 위에 놓여 있었다. 게임을 설명하는 여러 요소 가운데 하나일 수는 있지만, ‘본질’이라 말할 수는 없다. 게임의 주체도 게이머로부터 관중으로 옮겨질 수 있다. 이스포츠(eSporsts)나 게임 스트리밍 시청의 경우이다. 이스포츠의 경우, 프로 게이머가 게임 서사를 완성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관중은 게임 서사를 (능동적으로) 바라보고 즐기는 주체가 된다. 방치형 게임 플레이어는 적극적인 입력을 하는 대신 서사의 전개과정을 바라보는 관찰자가 된다. 게임을 즐기는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일 뿐, 게임의 본질을 거스르는 기형적 상황은 아니다. 시각성의 재림 게임을 즐기는 새로운 방식이라 치더라도, 왜 하필 지금 ‘보는 게임’이 각광을 받게 되었는지 의문은 남는다. 더 정확히 질문하자면, 시각과 청각과 촉각을 모두 사용하던 게임 플레이가 당연하던 시기를 지나 거의 전적으로 시각에만 의존하는 방식의 플레이(관람)가 중요해진 시기가 도래한 계기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쇄술의 발달 이후 시각은 다른 감각에 비해 상대적 우위에 있어 왔다. 매체 철학자인 맥클루언(Marshall McLuhan)은 인쇄술이 인간의 감각들을 서로 떼어 놓고, 다양한 감각들이 상호작용하는 것을 방해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구술 중심의 부족문화에서 문자 중심의 필사문화로, 그리고 인쇄술 발전으로 인해 ‘구텐베르크 은하계’가 등장했다는 그의 매체사적 통찰 속에서, 시각은 필사문화 시기부터 중심적 감각으로 등장하여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시기에는 다른 감각들을 억압하는 지배적 감각이 된 것이다. 총체적 인간 감각이 분화되고, 시각이 나머지 감각으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시각 권력은 근대성의 등장에 맞춰 지배적 지위에 올랐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시각 권력과 원형감옥의 간수가 갖는 시각 권력이 같은 의미는 아니다. 맥클루언이 강조한 근대적 시각성의 지배는 인쇄술과 선형적 문자중심성과 더불어 등장, 강화되었고, 따라서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와 과학에 대한 맹신으로 이어진다. 신의 시점이 아닌 인간의 시점을 강조하면서 원근법에 충실한 과학적 그림이 등장한 것은 같은 맥락이다. 누군가를 감시하거나 훔쳐보고 나아가 통제하는 생체권력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 제기이다. 다시 맥클루언을 인용하자면, 시각 중심으로 형성된 인쇄-미디어 문화가 주술적이며 마법적인 청각 세계를 붕괴시켰던 것처럼, 구텐베르크 은하계 역시 전기 미디어의 발명과 함께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전신과 라디오, 텔레비전은 메시지를 찰나적으로 만들어 합리성보다는 직관과 통찰을 더 중요하게 만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은 가장 탈근대적인 매체이다. 게임 내의 다양성과 차이들을 잠시 접어두고 단순화하자면, 게임은 시각중심성에 저항하는 감각 분산적 매체이다. 게임을 즐기는 이들의 태도는 인쇄매체에 담긴 선형적 언어를 따라가는 (맥클루언이 말하는) 시각중심적 자세도 아니고 경건한 자세로 예술 작품을 바라보는 (벤야민이 말하는) 정신집중의 태도도 아니다. 7,80년대의 오락실에서 시작해 90년대말 PC방에 의해 대중화되고 21세기 이후의 모바일 미디어로 인해 폭발한 디지털 게임은 근대성에 대한 회의와 도전과 때를 같이한다. 그렇다면 이스포츠와 방치형 게임에서 발견되는 시각성의 재림은 근대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일까? 다시 시각성이 지배하는 사회로 변하고 있다는 단서로 이해해야 할까? 탈근대적 시각성의 게으름 여기서 근대적 시각성과 구별되는 탈근대적 시각성을 발견한다. 전자가 시지각에만 의존해서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사고하는 과정을 설명한다면, 후자는 시각 주체로서 대상을 바라보되 게으르고 산만하고 찰나적인 바라봄을 지칭한다. 물론 다른 감각기관이 주변화된다는 면에서는 유사하고, 시각중심적 문화라는 지칭도 온당하다. 그러나 디지털 영상을 보는 지금의 태도는 읽고 이해하고 해석해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탈근대적 시각성은 디지털 영상매체의 발전과 같은 속도로 전파되었다. 일방적으로 뿌려지는 (근대 성격의) 텔레비전 방송이 아닌, 개인화되고 상호작용적이며 시공간 제약도 극복할 수 있는 미디어들이 보편화되면서, 몰입하지만 자유로운, 유익하지만 심심풀이인 바라봄도 따라서 보편화되었다. 비유하자면, 노동과 생산을 위한 시각성이 아니라 여가와 휴식을 위한 시각성이다. 공을 차는 대신 축구 중계를 시청하고 먹는 대신 먹방을 즐겨보는 행위는 게으르고 산만하다. 방치형(idle) 게임의 idle은 게으름, 나태함, 빈둥거림을 뜻한다.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 상태. 생산성 없는, 노동의 반대편에 있는 휴식의 상태이다. 노동의 반대편에는 휴식 대신 여가가 자리잡기도 한다. 일하지 않는 주말, 사람들은 열심히 여가활동을 즐긴다. 영화를 보거나 근교 관광지를 가거나, 아마 골프를 치러갈 수도 있을 것이다. 낮잠을 자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것을 ‘여가활동’이라 부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가활동’은 준(準)노동이기도 하다. 함께할 친구들과 미리 약속을 하고, 버스 시간을 알아보고, 말을 듣지 않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야 하기도 한다. 생산하지 않는 행위라 하여 노동이 아니라고 하기엔 너무 피곤한다. 이를 적극적/소극적 여가로 구분하기도 하고, ‘준노동적 여가’와 ‘보상적(compensatory) 여가’로 구분할 수도 있다. 혹은 (학술적 개념은 아니겠으나) ‘진지한’ 여가와 ‘게으르고 산만한’ 여가로 구분하는 편이 더 직관적일 수도 있겠다. 맑스의 사위이기도 한 라파르그(Paul Lafargue)는 자본주의에 저항하기 위한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찾는 운동을 제창한 바 있는데, 게으르고 산만한 여가야말로 이 운동에 딱 맞는 활동 아닐까. 방치형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진지한 플레이를 거부하는 것이고, 게으른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다. 시각 주체 노릇은 하지만 개입하지 않고, 열심히 바라보지만 해독하지 않는 게이머. 탈근대적 시각성은 게으르고 산만하다. 게임 본질주의의 쇠락 방치형(idle) 게임이라 퉁치기는 했지만, 게이머의 게으름에 기댄 게임의 종류는 상당히 많다. 역사도 결코 짧지 않다. 요즘은 흔해진 자동전투 기능도 방치의 일종이고, 방치를 필수 요건으로 만들어 놓은 파밍 게임들도 있다. 방치형 게임 연구 논문을 발표한 박이선은 게임의 방치 구조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5분 이내로 방치하면서 간헐적으로 게임에 진입하는 게임 (〈AFK아레나〉)도 있고, 몇 시간까지 게임을 켜두고 꾸준히 방치해야 하기 때문에 일과를 보내다가 잠시 게임이 생각나면 화면을 확인하고 개입하는 방식 (〈리니지2 레볼루션〉)도 있다. 플레이어가 게임에 접속하지 않아도 게임이 항상 진행되는 항시적 방치 게임(〈중년기사 김봉식〉)도 있다. 다양한 종류와 위계 속에서,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게으름’에 맞는 적절한 게임을 선택해서 즐긴다. 혹은 바라본다. 이스포츠를 예로 들었지만, 사실 남들이 게임하는 것을 관람하는 방식도 여러 종류이다. 특정 게임의 공략방법을 배우기 위한 유튜브 채널을 열심히 보는 사람도 있고, 셀러브리티의 미숙한 게임 플레이를 팬심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내가 플레이하는 대신 남들을 보며 즐기는 행동을 ‘상호수동성’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하는데, 관찰주체는 감정을 다른 대상에게 위임함으로써 안도감을 얻는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시각에만 의존하여 즐거움을 얻는 이런 관람행위들은 근대적 의미의 진지한 바라봄과는 구별되는, 산만한 바라봄이라는 점이다. 플레이어의 적극적 개입 없이 시각에만 주로 의존하는 게임(관람) 방식이 확대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방치형 게임이 게임산업의 미래라는 의미는 아니다. 이스포츠가 게임보다 더 중요한 문화적 영역이 될 것이라는 뜻도 아니다. 빠르고 정확하게 자판이나 마우스, 컨트롤러를 움직이는 것이 게임 플레이의 지향점이 되는 시기를 벗어났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PC방에서 컵라면 먹으며 밤을 새는 것이 전형적인 게이머의 이미지가 되는 시기가 지났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다른 글이나 사석에서도, 나는 소위 ‘진짜’ 게이머가 설 자리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꾸준히 해왔다. 캐주얼 게이머, 노년 게이머, 방치형 게이머를 무시하며 “너희가 게임을 알아?”라며 언제든지 코웃음칠 자세가 되어 있던 이들이 점점 주변화됨을 목격하기 때문이다. 게임의 가장 중요한 ‘매체적 본질’이 상호작용성이라는 전제를 폐기한다면, 그리고 방치형 게이머의 산만한 바라봄을 근대적 시각 권력과 차별화하여 이해할 수 있다면, 게임 씬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금의 변화는 소소한 유행이 아니라 거대한 문화적 변동의 일면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학교 과제를 하면서 자동 사냥을 흘긋 쳐다보는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유형의) 게이머를 보며, 혹은 게임을 전혀 하지 않으면서도 이스포츠 중계에 열광하는 (과거 시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유형의) 게이머를 보면서, 사실은 탈근대를 향해 천천히 움직이는 코끼리의 종아리 어딘가를 만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세대학교 교수) 윤태진 텔레비전 드라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지금까지 20년 이상 미디어문화현상에 대한 강의와 연구와 집필을 했다. 게임, 웹툰, 한류, 예능 프로그램 등 썼던 글의 소재는 다양하지만 모두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활동들”을 탐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몇 년 전에는 『디지털게임문화연구』라는 작은 책을 낸 적이 있고, 요즘은 《연세게임·이스포츠 연구센터(YEGER)》라는 연구 조직을 운영하며 후배 연구자들과 함께 여러 게임문화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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